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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도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초벌을 올린다. 삶정치/생정치에 관한 작업 노트의 일환으로 꾸준한 읽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고민의 가닥을 잡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무난할 듯... 조만간 기회를 내서 다시 수정할 것이다.

생정치에서 통치와 계몽으로

― 네그리와 푸코의 생정치 개념에 관한 노트

* 글쓴이 : 하코다 테츠(箱田徹)

* 출 처 : ≪현대사상≫ 2008년 5월호, (173~179쪽)

네그리의 푸코 독해는 비판적이며 도발적이다. 현재적 푸코 수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이론적 틀에서 푸코와 대화한다. 확실히 푸코는 근래 들어 다양하게 독해되고 있다. 생권력론을 묵시록적인 주권론과 결합시키는 철학자라든지, 통치성론보다는 감시사회론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도 있고, 말년의 계몽론을 자유주의 부흥의 큰 흐름 속에 위치시키는 정치철학자도 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통치성론으로부터 큰 정부에 대한 비판과 자기책임론을 이끌어내고, 신자유주의의 옹호로 재빨리 변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러한 모든 경향과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나아가 푸코를 현대의 사상상황에 관한 논쟁의 무대 위로 다시 올려놓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서 푸코란 ‘현실의 새로운 물질적 규정들이나 생산적 및 혁명적 컨텍스트의 변용과 결합된 이론적인 가능성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냈던’ 철학자이다.[안토니오 네그리, <제국적 포스트근대의 정치철학>, 上村忠男 감수, 提康德, 中村勝己 옮김, 東京: 築摩書房, 2007년, 146쪽.] 네그리는 생권력과 생정치라는 푸코에서 유래한 개념을 개정하고, 나아가 후기 푸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통해 현대적 푸코 독해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1. 생정치와 생권력 ― 푸코, 네그리, 아감벤

네그리는 ‘생권력’과 ‘생정치’라는 근래의 핵심 개념을 푸코에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넘어서는 것에, 이러한 두 개념의 의미가 네그리와 푸코 사이에 크게 달라진다는 것은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다. 푸코가 ‘생권력’을 정리된 형태로 논했던 것은 ≪앎에의 의지≫(1976)의 마지막 장인 <죽음에 대한 권리와 생에 대한 권력>이었다. 푸코는 여기에서 유럽에서는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주권자인 군주가 개인으로서의 신민의 생살여탈의 권리를 장악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권력 쪽에, 개인들을 주민(=인구)로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권력의 새로운 형태가 대두하게 되었다고 논하며, 이것을 생에 대한 권력, 즉 생권력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보다 앞서서 76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마지막 회(3월 17일)에서는 우생학이나 국가에 의한 인종차별(인종주의)이 권력장치의 질적인 이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언급되며, 나치에 의한 통치가 생권력의 일반화된 사회의 존재방식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푸코가 나중에 말하듯이, 주민이란 국가의 고유한 이해에 토대를 두고 돌봐주는 것에 다름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필요가 있다면 주민을 학살할 수도 있다. 죽음의 정치tanato politique는 생정치biopolitique와 표리일체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특히 2000년대 초반에 생권력과 생정치라는 말이 일거에 확산된 계기를 만들었던 것은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 네그리&하트의 ≪제국≫이었다. 아감벤에 따르면 ‘생정치’란 주권의 현대적 형태이며, 사람들은 여기에서 생물학적 존재, 벌거벗은 생이라는 극한상태로 환원되고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우생학이나 나치에 의한 강제수용소와 유대인 학살이다.[Foucault, Michel, Dits et écrits: 1954-1988, 4 tomes,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1994, IV, p. 826.] 다른 한편, 네그리는 현대는 포스트규율훈육형 사회로서의 ‘감시관리(control)형 사회’라고 말한 들뢰즈를 토대로 하여, ‘생권력’이란 규율훈육 권력이 전면화하여 생에 대한 감시관리의 양상을 점점 강화하는 권력의 현대적 존재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국’이란 생권력적인 전지구적 주권이다.

그러나 이들의 용어법은 사실과 개념 규정이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푸코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선 사실의 수준에서 말하자면, 푸코에게는 ‘생권력’과 ‘생정치’의 구별이 없다. 원래 ‘생권력’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던 시기는 1976년에 한정되며, ≪말해진 것과 쓰여진 것≫ 전체에서는 76년의 강연 <권력의 네트워크>에서 한번 등장했을 뿐이다.[Foucault, Dits, III, pp. 198~199.] 70년대 말의 통치성 강의에서도, 78년 강의 ≪안전, 영토, 인구≫에 한번 등장할 뿐이며, 이듬해인 79년의 강의 ≪생정치의 탄생≫에서는 한 번도 이 말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Foucault, Michel, Securitiè, territoire et population,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2004, p. 23.] 푸코의 이론적 틀에는 ‘생권력’은 고유한 개념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생정치’와 ‘안전’(securité)에 포섭되고 있다.

푸코에 따르면 ‘생정치’란 어떤 영역(베스트팔렌 체제 이후의 주권국가와 거의 같은 뜻)의 내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주민’(=인구)로서 집합적으로 파악한 위에서, 거기에서 생기는 건강, 위생, 출생율, 수명, 인종 등 생물학적 ․ 병리학적 현상을 문제화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국가의 통치 이성의 존재방식을 가리킨다.[Foucault, Michel,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2004, p. 323 & Foucault, Securitiè, p. 377.] 물론 섹슈얼리티의 병리학적인 문제화라는 주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안전’이란 생정치적 관리를 떠받치는 이념형 또는 장치이다. 범죄나 역병(疫病)을 사회에 부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 발생을 일정한 틀 안에서 통제하고자 하는 공중위생적인 발상을 일례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의 생정치에는 네그리가 논하는, 포스트-포드주의 체제 하에서의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의 구별의 상실, 경향으로서의 비물질노동의 대두 등과 같은 사태는 포함되지 않는다. 푸코의 생정치란 어디까지나 폴리스, 즉 행정관리에 관련된 것이며, 정치 개념이 아니다.

2. 생정치, 생권력과 주권 : 관계적 주관개념으로

이 사실을 토대로 한 위에서 푸코와 네그리의 개념 규정에 관한 차이를, 즉 생정치와 ‘주권’의 관계에 관한 차이를 검토하고 싶다. 푸코에게 있어서 생정치, 안전, 인구 등의 개념군은 무엇보다도 우선, 법을 축으로 한 주권형 권력으로부터 규범(norm)을 축으로 한 규율훈련. 안전형 권력으로의 이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푸코에게 있어서 자유주의의 결정적 새로움이란 죽음을 담보로 하여 명령하는 절대적인 주권형 권력으로부터 신체의 길들이기에 의한 규범의 내면화를 축으로 한 규율형 권력으로, 그리고 이로부터 나아가 집단에 관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의 일탈이나 비정상을 허용한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는 안전형 권력으로 이행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로부터 간파할 수 있듯이, 푸코에게 있어서 ‘주권’이란 무엇보다도 우선 주권자로서의 군주를 통해서 작동하는 권력장치이며, 군주․신민 간의 지배․피지배의 관계이다. 물론 ‘주권-규율훈련-안전’이라는 권력장치의 세 가지 유형은 시대관통적으로 병존하는 것이며, 시대 구분을 위한 틀이 아니다. 다만 그것과 주권개념이 푸코의 권력론 속에 존재론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나아가 말하자면, 주권개념을 역사 한정적인 것으로 하는 푸코의 입장은 권력론의 주춧돌인 관계론적 권력 개념의 존재방식으로부터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란 국가와 개인들이 소유․행사․양도․탈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권개념이 권력 개념의 기초로 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네그리에게 있어서 주권은 생권력의 측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그런 위에서 생권력과 생정치의 본질적인 비대칭성이 파악되고 있다. 즉 생권력이란 전지구적 형태로 행사되는 주권의 ‘제국’적 형태이며, 생정치란 거기에서 영위되는 다중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생산활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틀 아래에서 네그리는 ‘제국’과 다중 사이의, 또는 자본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현대적 적대성의 쟁점이, 생 그 자체라는 것을 서술한다. 그리고 ‘일자의 통치’를 섬기며, 주권에 관한 투쟁을 정치적인 범주의 사태에 한정하는 주권이론이 ‘만인의 만인에 의한 통치’라는 절대민주주의의 이념과, 다수이자 종별적인 다중의 구성적 권력을 항상 가두어 왔다고 지적한다.[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다중≫ 제3부 제3장 <다중의 민주주의>를 참조.] 물론 ‘제국’에는 중심이 없으며, 생권력도 무엇인가가 독점하여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푸코가 탈중심화한 권력 개념을 얻기 위해 상대화한 주권개념을 분석의 중심에 놓고, 생권력을 통해 현재의 세계를 고찰한다는 것은 이 개념을 아감벤이 묘사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1976년의 푸코에게 극히 충실한) 생정치와 근접하게 되며, 종말론적인 어조를 띠게 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네그리, ≪다중≫, 제1부 <전쟁>을 참조.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다음 대담 속의 이치다의 논의를 참조. (특히 71~73쪽) 이치다 요시히코 외, <다중이란 무엇인가>, ≪현대사상≫ 제33권, 제12호, 2005년, 56~75쪽.]

그러나 동시에 네그리에게 있어서는 주권의 생권력화라는 사태는, 생권력의 저항의 가능성을 조금도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견 비틀어진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중≫ 제3부 제3장 <다중의 민주주의>에서, 네그리가 강조하는 주권의 ‘관계’적 성격이다. 즉, 주권이란 일자의 통치를 집행하는 권력이면서 동시에 자본과 노동, 통치자와 피치자, ‘제국’과 다중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네그리는 여기에서 생정치와 생권력의 본질적 비대칭성을 확인함으로써 ‘제국’의 주권이 지구 전체를 포함해가기 때문에, 양자의 적대성은 더욱 첨예화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권이 양면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주권이 품고 있는 본래적인 모순을 노출시켜 보여준다. 확실히 현대의 주권은 생권력이라는 형태로, 신민에 대한 생살여탈의 절대적 권리를 손에 넣고 있다. 다만 그 권리를 전면적으로 행사하는, 즉 신민을 섬멸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며, 생에 대한 지배를 거절하는 다중의 저항을 억누를 수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이 자기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노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며, 노동과의 타협을 반드시 강요받게 되듯이, 제국의 주권도 다중의 생산성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즉, 주권이란 외부가 없다는 의미에서 절대적이지만, 피치자로부터 자율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제국’은 다중의 동의를 취득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존속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네그리가 관계라는 표현으로 주권을 재파악하고, 그것을 항쟁이 전개되는 장으로서 제시하는 것은 후기의 푸코가 ‘통치’를 권력과 저항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물음의 틀로 파악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3. 자기와 타자를 이끄는 운동으로서의 통치

통치 개념은 1978년에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의 이론적 틀 속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이듬해 ≪생정치의 탄생≫을 포함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에 관한 고찰로부터, 82년 강의 ≪주체의 해석학≫이나 ≪쾌락의 활용≫과 ≪자기에의 배려≫(모두 84년)에서 논해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 학파들과 자기에의 배려의 실천, 또한 동시기에 전개된 파레시아론에 이르기까지, 후기 푸코의 사색 전체를 인솔한다. 푸코는 이 개념을 도입했을 때부터 이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파악하고 있다. 원래 ‘통치’라는 말이 ‘국가의 통치’라는 현대적 의미를 얻었던 것은 16세기 이래의 것으로, 그 이전의 기독교 세계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이끈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나아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통치하다’에 해당하는 라틴어나 그리스어 단어는 관리나 운영, 배의 조타(操舵)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위를 토대로 하면 ‘통치’gouverner란 무엇인가를 ‘이끄는’conduire 운동이다.

확실히 현대의 ‘통치’라고 말하면,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서양 근대의 통치이성의 존재방식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푸코가 70년대 말에 다루었던 대상은 베스트팔렌 체제에 의한 주권국가 체제의 성립에서부터 절대왕정 말기에 성립된 자유주의의 맹아적 형태로서의 중농주의의 경제이론, 그리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쳐 성립한 수정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석유위기 이후의 서방 세계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던 시장원리주의적인 신자유주의의 통치이성이었다. 이러한 ‘사람의 통치’의 원형에 있는 것은 기독교의 사목, 신도 관계를 원형으로 이념화된 ‘전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목권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 이해를 뛰어넘은 통치성 강의의 흥미로운 점은 통치 개념의 계보학적 분석이 당초의 목적이었던 국가론 영역을 처음부터 보기 시작하여 사목의 구조도 포함한 ‘통치’와 ‘이끎’의, 초역사적이라고 말해도 좋은 틀을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틀에서 보면, 자유주의도 또한 ‘자기의 자기에 대한 통치’이며, 국가의 자신에 대한 관계를 문제화하여, 항상 자신이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에 대한 불안에 빠져드는 통치이성의 한 가지 유형으로서 파악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목의 구조와 주권국가 체제가 결합된 근대적 통치성이란 중요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보면 통치의 한 형태에 불과한 ‘통치의 사고accident’인 것이다.[Carsenti, Bruno, “La politique de dehors,” in Multitudes, vol. 22. 2005, pp. 42~3. 이 전후의 논의에 관해서는 다음의 졸고를 참조. 箱田徹, <에로스의 기법을 재독하다 ― 푸코 통치론의 형성과정>, ≪사회사상사연구≫, 제31호, 2007년, 91~107쪽.]

‘통치’의 문구(問口)가 이렇게 넓게 설정되었다는 것의 의의는, 이 개념이 권력론과 저항론의 두 측면을 나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흥미롭게도 푸코는 통치성이 변용하는 원인을 학문이나 통치구조에 의한 실천의 ‘자율적인’ 전개에서가 아니라 기존의 통치성에 대한 도전(또는 저항)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아가, 기존의 ‘이끎’과 ‘대항 이끎’[≪안전, 영토, 인구≫]의 역동성에 의해서, 종교개혁이나 자유주의의 탄생을 이해하고자 했다고도 할 수 있다.[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Foucault, Michel, “Qu'est-ce que la critique?”[Critique et Auflärung], Bulletin de la Société française de Philosophie, vol. 84, no. 2, 1990.] 그리고 여기에서는 통치의 양의적인 성격이 확실히 의식되고 있다. 예를 들어 푸코는 중세의 개혁적 수도원에서의 성직자의 육성방법을 사목권력의 모형으로서 논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도원의 설립 자체를 부패한 카톨릭교회의 이끎에 대한, 신자의 대항이끎으로써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란 혁명을 대항 이끎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그 도식을 염두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箱田徹, <이슬람적 통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 푸코의 이란혁명론과 대항이끎>] 양자에 공통적인 것은 개혁이나 저항이라는 대항이끎이 제도화라는 이끎에 항상 선행한다는 점이다. 즉 푸코는 1970년대 말에 통치를 자신의 어휘에 덧붙인 단계에서 이미, 권력과 저항의 물음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개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생정치와 계몽의 현행성

이렇게 보면 네그리에 의한 관계로서의 주권개념과 푸코에 의한 이끎으로써의 통치 개념은 모두 권력관계의 내부에서 투쟁하는 주체의 운동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역사적 배경을 돌이켜 보면 의외의 것을 알 수 있다. 네그리가 ‘제국’ 개념을 신자유주의의 전지구화의 맥락에서 구상했듯이, 푸코는 ‘통치’ 개념을 석유위기 이후의 프랑스 경제의 지속적 저하와 지스칼 데스탕 정권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도입의 맥락 속에서 구상했다. 푸코는 규율훈육형 권력의 시대가 결정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안정형 권력이 전경화되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다른 한편, 훈육규율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감시와 처벌≫ 제4부의 후반에 등장하여 규범의 체현자로서의 재판관의 교설을 가볍게 받아넘기는 경범죄자(비행자)에 의한 비규율indiscipline의 실천이며, 수용과 교정을 목표로 한 체제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울려퍼졌던 ‘투쟁의 울림’이었을 것이다. 다만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비규율은 이미 저항으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하고, 개별적 투쟁은 급격히 쇠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푸코는 ‘계몽’과 마주쳤던 것이다.

푸코가 계몽의 사상가로 간주한 것은 칸트와 보들레르이다.[다음을 참조. Foucault, “Qu'est-ce que les Lumières,” Dits, IV, pp. 562~578; Foucault, Michel, Le Gouveranement de soi et des autres,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2008, pp. 3~39.] 칸트에게 있어서의 ‘계몽’이란 이성에 관한 미완성 상태로부터 벗어나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즉 타인의 이끎이 없이, 자신을 이끄는 것, 이성을 공적으로 사요할 수 있는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람은 역사적인 과정의 한 요소로서 계몽을 집단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행위자로서 계몽에 참가하는 것에 된다. 이 세상이 이미 계몽의 시대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현재란 어떠한 시대인가를 자신에게 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들레르도 역시 예술을 통해 현재를 살고자 한다. 그의 태도는 시대의 유행을 뒤따라가기만 하는 댄디적인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현재와의 관련 속에서 자신을 당사자로서 ‘미적으로’ 구성해 가는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끊임없이 실천한다는 고유한 생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계몽적이고 모던한 댄디즘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기에서이다. 칸트와 보들레르,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현재란 과거와 마래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위치지어지는 역사상의 한 시대가 아니다. 현재성(현행성)이라고 푸코가 부른, 종별적인 지금 여기의 것이다. 두 사람이 계몽을 살았던 것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살고, 또한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문제화하는 것을 통해 통치의 물음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이러한 계보학적 시간의식의 존재방식을 푸코의 방법에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과거의 마래 사이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현재 속에서, 물음의 장소가 설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 그의 관점은 사건의 지각, 싸우는 것의 지각에 걸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지각되고 있는 모든 필연성이나 모든 목적론으로부터 빠져 나와 위험을 부르짖는 기쁨을 지각하는 것에 걸맞는 것입니다.”[네그리, <‘제국’적 포스트근대의 정치철학>] 이것은 ≪제국≫에서 발견되는 푸코의 계몽론에 대한 비판, 즉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머문다는 그의 입장은 일반적인 계몽론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제국≫, 윤수종 옮김, 이학사]로부터 한걸음 내딛은 것이다. ≪다중≫에서는 또한 이렇게 쓴다. 생정치적인 이의제기의 존재론적 조건은 “미셸 푸코가 현재성과 우리들 자신에 관한 비판적 물음이라고 부른 것에 가깝다. … 이러한 이의지게의 하나하나 속에 민주주의의 기획이 내포되어 있으며, 많은 투쟁은 다중의 ‘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네그리, ≪다중≫, 조정환 외 옮김, 세종서적.]

물론 푸코의 이론적 틀에서 보면 주권의 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가 욕망이라는 말에 포함시킨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어조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열지 않았듯이, 주권도 또한 법적 권력관의 뉘앙스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양대세력이 형성하는 적대성도 선택지에 들어가지 않는다. 푸코가 통치나 이끎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은 개인으로부터 국가에 이르는 모든 주체의 이끎을 동일한 구도에 의해 설명하고, 권력론과 저항론을 접속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통치란 자기를 이끌고, 타자로부터 이끌어진, 타자를 이끈다는 삼중의 운동이며, ‘자기’란 재귀대명사인 이상, 어떠한 것도 통치의 주체로 될 수 있다. 말하자면 푸코는 집합적인 주권성의 조직화를 상세하게 말하는 것도, ‘좋은’ 이끎의 조건들을 논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푸코에게 있어서 계몽이란 “의지와 권위, 이성의 사용과의 사이의 종래의 관계의 변천”이며, 방기나 부정이 아니다. 이 변천이라는 실천의 형태는 자기와 타자가 이끎과 대항이끎을 통해 관계하는 모든 장면에 공통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신을 이끈다는 운동을 거절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푸코에게 있어서 통치의 장에는 항상 이미 이끎이 있으며, 투쟁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통치의 실천으로서의 다중의 미래에 관해서 푸코가 무엇인가를 말할 수 없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네그리가 생정치 개념을 ‘정치적인’ 것으로서 재독해하는 것을 통해, 이끎과 대항이끎이 서로 다투는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무대 위에서 이 개념을 꺼내었다는 것은 후기 푸코의 개념군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해 논쟁적으로 독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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