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o sum=ego cum

이 책에서 낭시는 '함께'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선언한다. 그는 자기와 타자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전제에 입각하여 동일자와 차이를 차례차례 등장시킨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수적이고 복수적인 것'(sisingulier pluriel)이나 '공-존재/함께-있음'(etre-arec), '공동-존재'(etre-ensemble), 나아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타자와-함께-있음'(etre-les-uns-arec-les-autres)이다. 특히 '타자와-함께-있음'은 '서로-함께-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나'와 '그'와 같은 1인칭 단수, 3인칭 단수 개념이 아니라 '1인칭 복수'인 '우리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낭시에게 의미론은 항상 '전달=공동화(코뮈니케)'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일방통행식 의미 전달은 전달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전달=공동화'는 '분할=분유(partage)'라는 틀에서도 서술된다. 이 두 개념은 동의어이다. 즉, 커뮤니케이션은 의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의미를 분유=공동화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낭시의 존재론으로서의 존재란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틀이 부각된다. 낭시의 존재론은 '타자와-함께-있음'이며, 같은 것이 '공-실존'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틀을 커뮤니케이션의 자기 → 타자 → 자기 → 타자라는 순환 구조와 일치시켜, 니체의 영원회귀론을 커뮤니케이션론으로 재평가한다.
낭시에게는 개인의 원본성originality이 강조된다. 그는 라이프니츠의 식별불가능자 동일성 원리로부터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존재자의 복수성을 차이론과 결합시켜 존재자 하나 하나의 원본성이라는 관점으로 이끌고 있다.
"존재자의 복수성은 존재의 기초에 있다."
또한 루소 + 맑스적인 '공동체'(communaute) 개념과 '타자와-함께-있음'은 원리적으로 불일치한다는 점을 주의하라고 촉구한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형제애' 등의 용어도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히 레비나스 - 데리다의 후계자이다.
여기에서 염두에 둘 것은 원래 '함께-있음'(Mitsein)', '서로-함께-있음(Miteinandersein)', '함께-거기-있음/공동-현존재(Mitdasein)'라는 개념들은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서 낭시가 특화시킨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핵심 골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함께'이다. 후설 현상학적으로 표현하면 '초월론적 상호주관성'에 기초를 둔 '상호세계'가 된다. 데카르트적 낭시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의 요점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Ego sum=ego cum(나는 존재한다=나는 함께)
인상적인 표현인데, 이 책은 자신의 말로 개념을 재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진다. 이것이 철학을 중시하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감동이 아닐런지.

"철학이란 결국, 공-존재의 사유이며, 따라서 또한 함께-사유하다(penser-avec)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특이한 것이란 어떤 복수적인 것이다."

"<함께>란 공간-시간의 '분할=분유'이며, 그 자신 속에서 그 자신과 분리되는 것으로서의, <같은-때에-같은-장소에서>이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확장된 동일성의 원리이다."(pp. 84~85)
여기에서 낭시는 '자기≒타자'라는 동일성 원리를 도입한다.
"즉, 존재란 사이화이며, 복수적이고 단수적인 co-의 불의의 도래 -- 갑자기 도래하는 사이화 -- 이다."
'co-'는 '함께'를 의미하는 접두사이다. 낭시의 존재론의 기초 개념이다. 주의할 것은 이 '사이화'이다. 이것은 '자기≠타자'가 아니라 '자기=타자'에 접근하기 위한 개념이지만,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다음의 담론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일자는 1보다 많은데, 그것은 일자가 <스스로를 분할하다>는 것이 아니라, 1은 곧 1 이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1 이상을 셀 수 없다면 '1'을 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자 = 자기 = 개인이다. 낭시는 일자를 1 이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극히 놀라워 해야 할 존재론이지 않을까? 낭시에 따르면 "나는 오직 한 사람으로 도서관에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는 본질적으로 '우리'로서 도래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항상 '나'는 일자 이상, 즉 1명이 아니다. "나는 오직 한 사람으로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는 '배리'이다.
"20세기의 철학에서 Mitsein(함께-있음, 공-존재)에 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서술에만 머물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낭시의 존재론을 표현하는 공식은 단적으로 다음이 될 것이다.
'자기' ― 'co-' ― '타자'
"어떻게 그것으로서의 존재는 그 동시성에 있어서의 존재자의 '비' 유사성에 다름 아닌 것으로 있을 수 있는가?"
이것도 극히 긴장감이 넘치는 사유이다. 낭시에 따르면, 현존재는 유사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비)유사한 것이다. 이 괄호의 사용법에 주의하자. 유사를 '미분적 차이'라고 해석하면 비-유사성은 '동일성'이다. 그러나 낭시는 비(非)를 괄호 안에 넣는다. 즉, 강조점은 '유사'이다. 그리고 '유사'를 보강하기 위해 '비' 개념을 도입한다. 이것에 의해 '동일성' 원리로부터 벗어난 인간성의 성질이 '동일성'이라는 말에 의존하지 않고 표현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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