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1837년 11월 10일)



베를린, 11월 10일


사랑하는 아버지!


지나간 시기를 마감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방향으로 단호하게 나아가는 이정표와 같은 인생의 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환기에 서서 우리는 우리의 현실 상황에 대한 참된 자각에 도달하기 위해 독수리 같이 사유의 눈을 부릅뜨고 과거와 현재를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사실 세계사 자체는 이러한 성찰을 하면서 가끔은 퇴행하거나 현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한 편으로는 자신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행위와 정신의 행위를 정신적으로 꿰뚫어 보기 위해 아직도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아있기만 합니다.

그러나 개인은 이런 순간에도 서정적인 마음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변주곡은 한 편으로는 백조의 노래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로운 위대한 시의 전주곡이며, 아직도 몽롱하고 찬란한 색조 가운데서 형체를 얻으려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에 대해 하나의 기념비를 만들어야 합니다. 행동에서 상실한 것은 감수성을 통해 다시 여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우리 부모님의 흉중(胸中)에 있는 것보다도 더 비밀스러운 장소, 가장 관대한 재판관, 가장 친밀한 참여자, 그 불길이 우리의 노력의 내면적인 중심을 따뜻하게 감싸줄 사랑의 태양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성격에서 달갑지 않은 비난받을만한 것들을 현재의 필연적 조건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이를 조정하고 용서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이를,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탓만큼이나 적의를 가진 운명의 장난이나 정신이상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비뚤어진 마음가짐에 대한 비난을 제거할 수 있는 무슨 다른 방법이 없을는지요?

여기에서 지낸 한 해의 막바지에 서서, 한 해 동안의 사건들을 회고해 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께서 엘름에서 제게 보내신 애정 어린 편지에 답장을 드린다면, 저의 상황과 제 자신의 인생관을 점검할 여유를 누릴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점검을 학문과, 예술과, 개인적인 노력 등 모든 방면에 대한 성찰의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을 떠났을 때 제게는 새로운 세계가 활짝 열렸습니다. 사랑의 세계가, 처음으로 그토록 갈망했던 소망이자 공허했던 사랑이 활짝 열렸습니다. 사정이 달랐더라면 완전히 매료되고, 자연을 사변하게끔 고무하고, 삶의 희열에 불타게 했을 베를린으로의 여행조차도 정말이지 저를 냉담하게 내버려두었으며 상당히 우울하게 했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본 암벽들도 저의 영혼의 감동보다는 더 가파르거나 거칠지 않았으며, 넓은 도시도 저의 혈기보다는 활기가 덜했으며, 레스토랑의 식탁도 저의 상상력의 내용물보다는 소화시킬 수 없는 음식이 적었으며, 예술 자체도 예니 만큼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으며, 남의 집을 방문한 적도 거의 없고, 방문했을 경우에도 마지못해 했을 뿐이며,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 열중했습니다.

당시의 저의 마음 상태에서는 서정적인 시가 제가 시작한 최선의 과제, 적어도 가장 즐거운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들은 저의 입장과 종전까지의 전개과정으로 말미암아 순전히 관념론적이었습니다. 저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가 저의 천국이자 예술이 되었습니다. 현실적인 모든 것들은 점점 희미해져 갔으며, 모호한 것들은 구분의 경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광범위하지만 형체도 없는 현재의 감정에 대한 공격, 전혀 자연적이지 않은 것, 우울한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해야 할 것들의 완전한 대립, 시적 관념을 대신하는 수사학적 성찰, 그러나 아마도 약간의 따뜻한 감정과 정열적인 노력 - 이 모든 것들이 제가 예니에게 보낸 첫 세 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의 성격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갈망의 지평선은 다양한 형식을 띠고 있으며, “시작(詩作)”을 “폭(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단지 하나의 말동무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법학을 공부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철학과 씨름해야 할 절박성을 느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하이네키우스(Heineccius), 티보(Thibaut)를 읽고, 고등학생처럼 무비판적으로 원전들을 공부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판덱트(Pandect)의 첫 두 권을 독일어로 번역했으며,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 법철학을 독파하려 노력했습니다. 법철학에는 형이상학적 명제로 서문을 달았으며, 이 불운한 저술은 공법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략 300 보겐이나 되는 저술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관념론의 특징인 존재와 당위 사이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곤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쓸데없이 다음과 같은 부정확한 구분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법 형이상학은, 불필요하게 이런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그 개념의 원리와 성찰과 정의는, 피히테처럼, 실재하는 모든 법과 법 형식과는 다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약간 더 현대적이고 약간 덜 실체적인 것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 주체가 문제의 주위를 돌며, 이성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문제 자체도 풍부하고 생동하는 어떤 것으로 형식화되지도 않은 수학적 독단주의의 비학문적인 형식인 - 이것은 처음부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삼각형은 수학자들에게 작도하고 증명하게 유도하지만, 삼각형은 공간 내의 단순한 이념으로만 남아 있으며, 다른 어떤 것으로 발전되지 않습니다. 삼각형은 다른 위치를 가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과는 별도로 존재해야 합니다. 이것들이 연관된 삼각형과 나란히 있을 때는 다른 관계와 진리에 속하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법, 국가, 자연, 모든 종류의 철학과 같이 생동하는 관념의 세계에서의 모든 구체적인 표현들 속에서 대상 그 자체는 그것의 발전 속에서 관찰되어야 하며, 자의적인 구분이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사물 자체의 이성은 그의 고유한 논쟁적 자아 내에서 전개되어야 하며, 그 자신의 통일성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법철학은 여기에서, 즉 실증적인 로마법에서의 이념의 발전에 대해 당시 내가 견지했던 입장에 의거하여, 마치 지적 진화에 있어서의 실증법(실증법의 순수히 제한된 정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이 법 개념의 형식과는 완전히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뒤따라옵니다. 이는 결국 첫 부분에 포함되어야 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 부분을 형식적 법 이론과 실질적 법 이론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부분은 그 경과와 맥락, 그 구조와 범위에 있어 체제의 순수한 형식을 개관하는 것을 의미하며, 다음 부분은 그 내용과, 형식을 내용에 합한 것을 다룬 것입니다. 제가 폰 사비니 교수와 공유하는 하나의 오류가 있습니다. 저는 재산에 관한 박식한 저술을 읽고서 나중에야 이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사비니 교수가 형식적 정의라 부른 것은 “이 혹은 다른 원칙이 (가설적인) 로마법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며, 실질적 정의는 “로마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정의된 개념에 부여하는” 실증적인 것들의 원칙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형식을 개념 형성에 요구되는 지식 체계로 간주했으며, 질료를 이러한 형식에 요구되는 성질이라 여겨 왔습니다. 저의 오류는 (형식과 질료 중) 하나는 다른 하나와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발전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참된 형식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중에 모래를 가득 채운 서랍을 가진 책상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결국, 개념은 형식과 내용 사이를 매개하는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법학에 관한 어떤 철학적 논문도,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형식은 내용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처럼 저는 다만 단순하고 피상적인 분류를 위한 구분에 도달했으며, 반면에 이로 말미암아 법 정신과 그 진리는 애매해졌습니다. 법의 전체 체제는 계약적 요소와 비계약적 요소로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더 좋은 실례를 들기 위해 외람되나마 여기에 공법의 구분에 이르는 체계를 적고자 합니다. 이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진 것입니다.



           I                                                          II

    사법(jus privatum)                                         공법(jus publicum)


I. 사법

a. 조건적인, 계약적 사법

b. 무조건적인, 비계약적 사법

A. 조건적인, 계약적 사법

a. 동산법(動産法)         b. 재산(財産法)            c. 동산적 부동산법(不動産法)

a. 동산법

I. 채무 계약에 관하여       II. 보증 계약에 관하여       III. 관용적 계약에 관하여

I. 채무 계약에 관하여

2. 사회 계약(societas)     3. 임차 계약(locatio conductio)

3. 임차 계약

       1. 고용 관련(operae)

   a. 실제적 임차계약(로마법의 주택 및 농지 임차법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b. mandatum

           2. 사용권 관련(usus rei)

   a. 토지: ususfructus(그러나 순수한 로마법적 의미뿐만 아님)

   b. 주거: habitatio

 II. 보증 계약에 관하여

1. 분리 계약과 분쟁조정 계약  2. 보증 계약

    III. 관용적 계약에 관하여

2. 합의 계약

1. fidejussio  2. negotiorum gestio

3. 기부 계약

1. donatio  2. gratiae promissum

b. 재산법

I. 채무 계약에 관하여

                                   2. permutatio stricte sic dicta(본래적 의미의 교환)

1. 순수한 교환     2. mutuum usurae[대부] (이자)

3. emtio venditio(매매)

II. 보증 계약에 관하여

pignus(저당)

  III. 관용적 계약에 관하여

2. commodatum(임차 계약, 혹은 대부 계약)   3. depositum(물건의 위탁)



그런데 저는 왜 저 자신이 거부했던 것으로 지면을 계속 채워야 하는지요? 삼분법적 구분이 전체에 걸쳐 있지만, 지루한 장광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저의 법체계 안에 이들을 억지로 넣기 위해 로마법 개념을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남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한 편으로, 저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일반적 관점을 적어도 어느 정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에 관한 끝 부분에서 저는 이 전체가 거짓임을 알았으며, 토대에 있어 칸트철학에 근접하고 있으나 이를 적용함에 있어서는 칸트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철학이 없이는 어떤 것도 마스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처럼 저는 다시 한 번 분명한 양심을 가지고 제 자신을 두 팔로 껴안을 수 있었으며, 새로운 형이상학적 체계의 저술을 진행했습니다. 그 끝 부분에서 저는 또 다시 저 자신의 이전의 노력의 부정확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제가 읽은 모든 책들 - 레씽의 ??라오쿤??, 졸거의 ??어윈??, 빙켈만의 예술사, 루덴의 독일사 - 로부터 발췌하는 습관을 얻었으며, 곁에다가 성찰한 내용을 적어 두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와 오빋의 ??리브리 트리스티움??을 번역했으며, 혼자서 영어와 이탈리아어 공부를 문법부터 시작했으나 아직은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저는 클라인의 형법과 그의 아날과, 최근의 모든 문학 작품들을 읽었으나, 문학작품은 곁다리로 읽었을 뿐입니다.

한 학기가 지난 후, 저는 다시 뮤즈의 춤과 사티르의 음악을 찾아보았으며, 제가 보내드린 지난 번 노트에서도 아버님은, 부자연스러운 유머(??스코르피온과 펠릭스??) 속에는 관념론이 작용하고 있으며, 환상적이고 서툰 희곡(??울만??)에서도 관념론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완전히 달라졌으며, 다시 옮겨간 예술 형식에서는 영감을 받은 대상이나 고동치는 관념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시들은 아직, 졸지에 마술적 일격을 받은 것 마냥 - 정말이지, 처음에는 이러한 일격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 진정한 시의 영역이 마치 멀리 떨어진 우아한 궁전처럼 제게 비친 유일한 것이었으며, 저 자신의 모든 창작물은 해체되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첫 학기동안의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으로, 깨어있는 상태로 수많은 밤들이 지나갔으며 수많은 전투가 치러졌으며, 안팎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자극들을 극복했어야 했지만, 결국 큰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연, 예술, 제 주변의 세계를 소홀히 했으며, 많은 친구들과 낯설어졌습니다. 몸이 약해지자 의사는 시골로 가도록 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으로 드넓은 도시를 가로질러 스트랄로프 문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 곳에서의 체류가 저를 창백한 병약자에서 육체적으로 건강한 남자로 바꿀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장막이 걷혔으며, 저의 지성소(至誠所)는 갈가리 찢겨 나갔으며, 새로운 신이 그것을 대치했습니다.

저는 문득 칸트철학과 피히테 철학을 비교해 강화한 관념론에서 현실 자체 안에서 이념을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전에는 신들이 지상을 초월한 곳에 살았다면, 이제 신들은 지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로테스크하고 육중한 멜로디처럼 들려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헤겔 철학의 단편들을 읽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다시 한번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의 정신적 본성을 본질적으로 구체적으로 발견하려는 일정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물리적 본성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펜싱 기술을 실천에 옮기지는 않겠지만, 순수한 진주를 백일하에 드러낼 것입니다.

저는 거의 24쪽이나 되는 ??크레안테스, 혹은 철학의 출발점과 필연적 진보??라는 제목의 대화록을 썼습니다. 이 대화록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었던 예술과 학문을 상당히 결합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력적으로 작품 자체 속으로, 신성의 철학적-변증법적 발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신성 자체는 개념으로써, 종교로써, 자연으로써, 역사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마지막 주제는 헤겔 철학 체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자연과학, 쉘링, 역사에 대한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었던 이 과제는 끝없는 두통을 일으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씌어져있기 때문에, (이는 실제로 새로운 논리 체계를 구성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 [초고에서 지워진 부분] ), 지금은 이를 간신히 뒤따라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저의 이 사랑스러운 분신은 기대와는 달리, 달빛 아래 나타난 가짜 요정처럼, 저를 적의 품안으로 유혹합니다.

저는 너무나 화가 나서, 이틀 동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으며, 미친 사람처럼 스프리의 더러운 강물 가까이 있는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이 강물에 대해 “이 물은 영혼을 씻어주고, 차를 묽게 만든다”(하인리히 하이네, ??북해Die Nordsee??)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주와 함께 사냥모임에 가 본적도 있지만 서둘러 되돌아와 버렸습니다. 거기에는 길모퉁이의 모든 건달들이 다 모인 것 같았습니다.

곧 이어서 저는 오로지 실증적 연구를 해 나갔습니다. 저는 사비니의 ??재산??, 포이어바하와 그롤만의 형법, 크라머의 ??유의미한 말에 대하여(De verborum significatione)??, 베닝-잉겐하임의 판덱 제도, 그리고 뮐렌브루흐의 ??판덱의 원리(Doctrina Pandectarum)??를 읽었으며, 마지막 것은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 라우터바흐의 저작 중 몇 가지, 민사법과 특히 교회법을 공부했으며, 여기에는 그라티우스의 ??불일치한 법의 일치(Concordia discordantium canonum)??의 첫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가운데서 부록을 포함한 전집을 읽고 발췌했으며, 또 랑셀로티의 ??제도(Institutione)??을 읽었습니다.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번역했으며, 유명한 베이컨의 ??과학적 논증에 대하여??를 읽었으며, 라이마루스에 매우 심취했습니다. 전 그의 ??동물의 충동에 대하여??라는 책을 매우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는 또 독일법을 공부했으나, 아직 저의 독서는 프랑크 왕들의 교회 법령집교황이 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데 한정되어 있습니다. 예니의 병과 저의 쓸모 없는 지적 노동으로 인한 안타까움 때문에, 그리고 제가 싫어했던 견해를 우상화했던 데 대한 분노 때문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병중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러나 저의 건강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것들을 모두 단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저의 모든 시와 단편소설의 초고 따위를 불태워버렸습니다 - 그러나 아직도 이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습니다.

병중에서도 저는 헤겔의 저술들과 그의 대부분의 제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스트랄로프에 있는 친구들과 몇 차례 모임을 가진 후 저는 (철학)“박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이 클럽의 회원 중에는 대학강사도 있고, 저와 가장 친한 친구인 루텐베르크 박사도 있습니다. 우리의 논쟁 과정에서 많은 대립되는 견해가 드러났으며, 전 저 자신의 세계관에 더욱 더 몰두했습니다. 사실 전 저의 세계관에 대해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졌을법한 어떤 메아리치는 이념도 침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토록 많은 부정이 존재할 때 종종 나타나는, 아이러니에 대한 분노에 사로 잡혔습니다. 이는 예니의 침묵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방문?? 따위와 같은 몇 개의 해로운 작품을 없애버림으로써 현대성과 현대에 대한 관점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의 현재의 상황을 말씀드리는데 골몰하느라 지난 학기의 분위기며 그에 대한 명료한 생각과 자세한 사항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폰 샤미소 씨가 제게 간략한 쪽지를 보내왔는데 “출판사에 넘긴 지 오래여서 귀하의 원고를 연감에 싣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썼더군요. 저는 화가 나서 그 쪽지를 씹어 삼켜버렸습니다. 서적거래상인 비간트 씨가 저의 계획서를 좋은 치즈와 나쁜 문학을 판매하는 분더스 가게의 출판인인 [칼] 슈미트 박사에게 보냈습니다. 비간트 씨의 편지를 동봉해 드립니다. 슈미트 박사는 아직 답장을 하지 않는군요. 그러나 한 편, 저의 동료인 루텐베르그 박사는 물론, 헤겔학파 사이에서 큰 역할을 하는 브루노 바우어 사강사의 연구실을 통해, 헤겔학파의 유명한 미학 전공자가 도와주기로 약속한 만큼, 저는 이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정부 공무원에 관한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저는 슈미트헤너라는 판사보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저에게 3차 법학시험에 통과되면 자기 사무실에 들어오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조언은 공공행정에 관한 연구보다는 사법부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만큼 제게는 더 매력적인 조언입니다. 이 분은 제게, 베스트팔렌에 있는 뮌스터 지방재판소가 자기와 다른 많은 동료들에게 3년 동안 판사보로 일하게 해주었다면서, 그 곳은 승진 단계가 베를린이나 다른 곳에서처럼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 물론 일은 힘들지만 - 일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판사보로 있다가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으면, 지방법규에 대한 평범한 책을 쓴 후 곧 바로 본 대학으로 간 게르트너의 경우처럼 곧바로 교수로 특별 채용될 수 있는 훨씬 더 좋은 전망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명성을 높인 유일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자칭 헤겔 법학파의 멤버라는 점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최고이신 아버지,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인지요? 동생 에두아르트의 상태, 사랑하는 어머님의 병환, 아버님의 불편한 심기, 이 모든 문제들이 더 심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이 모든 문제들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게 하며, 이는 사실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만약 아버님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낼 수 있다는 확신만 있었더라면 저는 벌써 그곳에 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예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이는 한낱 이기적인 소망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생각 때문에 자꾸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든 돌아가는 일은 어렵겠지요. 저의 유일한 사랑스러운 예니가 편지에 쓴 것처럼, 아직 돌아간다는 생각은 신성한 의무의 충족에 양보하고 미루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아버지 생각대로 하시겠지만, 사랑하는 아버지, 이 편지를 천사 같은 어머니께는 보여드리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최소한 지금 읽으시는 이 쪽만큼은 보여드리지 마세요. 저의 갑작스러운 도착이 위대하고 찬란한 어머니를 즐겁게 할 테니까요.

예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예니의 자상한 편지가 도착하기 오래 전에 씌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저는 무의식적으로, 적절치 않는, 적절하다 하더라도 아주 조금만 적절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썼습니다.

저의 가족 위에 드리워진 구름이 걷히기를 고대하면서, 제가 당신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당신과 저의 눈물을 뒤섞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기를 고대하면서, 가끔은 빈약하게 표현해온 저의 깊은 애정과 끝없는 사랑을 당신의 면전에서 증명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고대하면서, 저의 흔들리는 마음의 혼란 상태를 염려하고 계시는 아버지, 사랑하는 영원히 사랑하는 아버지께서도 너무 무거운 짐을 진 영혼이 숨막혀 하듯이, 가끔 마음에 죄를 지을 것 같은 저를 용서하시기를 고대하면서, 제가 진심으로 당신께 더 가까이 할 수 있고, 제가 느낀 모든 것들을 당신께 다 말씀드릴 수 있도록 당신이 곧 완전히 쾌차하시기를 고대하면서.


당신의 영원히 사랑하는 아들로 남기를 바라는 칼 올림


사랑하는 아버지, 엉망인 글씨와 조악한 문체를 용서해 주세요. 이제 4시가 다 되어갑니다. 촛불이 다 타들어 갔습니다. 저의 눈도 침침해졌습니다. 정말 불안이 저를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면전에 있을 때까지 전 저를 에워싼 망령들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사랑스러운 귀여운 예니에게 부디 안부를 전해주세요. 저는 예니의 편지를 벌써 열 두 번이나 읽었답니다. 그녀의 편지를 볼 때마다 저는 매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곤 한답니다. 모든 점에서, 문체까지도, 그녀의 편지는 여성이 쓴 편지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편지입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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