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의 Profanazioni/Profanations의 초역을 마친 지 좀 되었다. 영역본을 가지고 초역을 했고, 일단 출판사(난장)로 넘겼다. 그런데, 아무래도 군데군데 이상하여,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어본>을 출판사에서 받아 검토에 들어갔다. 지금도 검토를 하고 있는데, 영역본을 낸 Zone Books라는 출판사의 번역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익히 짐작하고도 남았지만, 그래도, 아쉽다는 느낌이다.
대표적으로, 이 책의 중심 아티클이라고 할만한 글인 <Elogio della profanazione/In Praise of Profanation/세속화 예찬>의 첫머리만 보자.


일단 이탈리아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I giuristi romani sapevano perfettamente che cosa significhi "profanare". Sacre o religiose erano le cose che appartenevano in qualche modo agli dèi. Come tali, esse erano sottratte al libero uso e al commercio degli uomini, non potevano essere vendute né date in pegno, cedute in susfrutto o gravate di servitú.

이 대목이 영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The Roman jurists knew perfectly well what it meant to "profane." Sacred or religious were the things that in some way belonged to the gods. As such, they were removed from the free use and commerce of men; they could be neither sold nor held in lien, neither given for usufruct nor burdened by servitude.

첫 문장과 두번째 문장은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두번째 문장은 영어로 다음과 같이 쓰는 것이 의미 전달이 더 명확할 것이다. Sacred or religious were those things that belonged in one fashion or another to the gods.
가장 큰 문제는 세번째 문장이다. 영역자는 né date in pegno를 nor held in lien으로 옮겼다. 영어에서 lien은 선취특권, 유치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해서는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could) not be given as deposit으로 옮겨야 한다. pegno가 영어의 deposit, 즉 담보물, 저당물, 법적인 의미에서의 질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담보물이 될 수도 없는/질권이 성립할 수도 없는> 정도의 의미인 것이다. 동사도 부적절하다. cedute in susfrutto에서 cedute는 영어로 cede로 옮기면 된다. gravate di servitú의 경우 servitú를 servitude, 즉 지역권(타인의 토지를 자기 편익에 이용할 수 있는 권리)으로 옮기면 되지만, 이때의 gravate/gravitare의 경우 burden, 즉 "무게를 달다, 압력을 주다, 부담을 주다"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부과되다" 정도로 옮기면 될 것이다.

하여간 엉성한 영역본 때문에, 물론 상당한 도움을 받았고, 앞에서 밝혔듯이 초역은 영역본으로 했지만, 어쨌든 전면 재수정을 해야 한다. 쉽게 넘어가려 했더니, 쉬운 일이 없다.. 쩝...

참, 아래에 쓴 글에서 Profanations를 무엇으로 번역할 것인지 고심하다가 결국 <세속화>로 기울고 있다. 내용상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secularization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이다. / 아감벤을 읽을 때 항상 유의해야 할 것은 베냐민에 대해 통달하지 않으면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profane이라는 용어도 베냐민이 자주 쓰는 것이다. the profane order와 같은 말들이 이 책에서 아감벤이 전개하는 사유의 원천이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점은 영역판의 경우 벤야민의 구절을 the secular로 옮겼다는 점이다. 독일어본에는 베냐민이 secular와 profane를 일관되게 구분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도르도는 이를 전혀 구별하지 않고 profane을 일관되게 secular로 옮겼다고 한다.
Profanazioni/Profanations는 여러 모로 재미 있는 책이지만, 그러나 쉽지는 않다. 그래서 짤막한 역자 후기 대신에 해제 비슷한 것을 쓸 생각이다. 원문만큼이나 긴 역자 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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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감벤에 관한, 기대하고 있던 2차 문헌이 나왔다. Leland de la Durantaye, <Giorgio Agamben: A Crtical Introduction>(Stanford University Press, May 4, 2009). http://www.amazon.com/Giorgio-Agamben-Introduction-Leland-Durantaye/dp/0804761434/ref=sr_1_2?ie=UTF8&s=books&qid=1242231603&sr=1-2#
아마존에서 보니 목차와 내용 일부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주 약간이지만.... 이건 또 언제 내 손에 들어오게 될지....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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