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년 동안 <호모 사케르>를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뭐 봐야 할 여력이나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옮긴이 <박진우>씨가 굉장히 깔끔한 문장과 번역어를 구사하는구나라는 감탄을 새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에 공개했던 번역본과 대조해 보면서, (물론 그것은 출판이 아니라 그냥 대충 한 것이기는 하지만) 번역본을 던져 버렸습니다...ㅋㅋ
그 대신 이 빼어난 국역본을 보고 있는데, 그래도 역시 원문과 번역본은 다르기 때문인지, 그리고 저의 어감과 역자의 어감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좀 석연찮은 구석들이 있어서 몇 가지 지적하려고 합니다. 이건 독서와 동시에 진행되므로, 계속 늘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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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의 수정사항

파란색 부분(편의상 앞으로 이를 "주석"이라고 칭하겠습니다.)을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는 번역어의 일관성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Ordnung des Raumes(공간 확정)이나 Landnahme(공간 취득), Ordnung(법질서), Ortung(영토질서의 확정)과 같은 생소한 단어들을 옮긴이가 새롭게 어휘를 구사하여 정리하느라 정말로 고생을 했는데, 단어 자체가 비슷하다보니 "공간"이라는 단어와 "영토질서"라는 단어가 뒤섞여 사용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논리구조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63쪽에 있는 "공간 확정"이라는 단어는 옮긴이가 채택한 번역어를 그대로 존중한다면 모조리 "영토질서의 확정"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64쪽의 맨 마지막에 있는 "공간 질서" 역시 "영토 질서"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렇게 바꾸고 나서 논리 구조를 따져보면 더 이해가 잘 될 겁니다.

1.3
65쪽의 위에서 5~6번째 줄 : "즉 실제적인 외시가 무한히 지연되는 담화라는 형식 속에서" / 불어본 28쪽 : la denotation actuelle est maintenue indefiniment en suspesns ...(악상 생략) / 영어본 20쪽 : in the form of a discourse whose actual denotation is maintained in infinite suspension.
--> 불어 : 즉 실제적인 외시가 무한정한 정지 속에서 유지되는 / 영어 : 실제적인 외시가 무한한 정지 속에서 유지되는 (무한정한/무한한에서 불어판의 무한정한이 맞을 듯.)
* "지연"이라고 하면 데리다가 생각납니다.^^

1.4 
* 67쪽의 하단부에 있는 "계열체"라는 용어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앞에서 문법적 사례를 예로 들고 있기는 하지만, 맥락상, 그리고 실제로 "어원상" <예>는 <범례, 즉 패러다임>이죠. [그리고 아감벤 자신도 예전에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했고, 최근에는 이게 책으로도 나왔죠.]
*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라는 용어는 general case가 아니라, 또한 usual case가 아니라 <cas normal/normal case>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례(경우)"나 "통상적인 사례(경우)"라는 번역어가 더 나을 수 있겠다. 이 용어 자체에서 '정상/비정상/규칙/불규칙'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이라는 용어로는 그런 어감이 살 수 없을 것이다. [아감벤은 norm과 rule(지배라는 의미를 띠기도 하지만 때로는 규칙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하는)이라는 용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합니다. 푸코와의 유사성과 차이를 속시원히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이 용어들이 갖는 의미는 결코 사소하지 않을 겁니다. 조만간 깡길렘과 아감벤에 관한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 한편, 중간의 괄호에 있는 대목, "(언어적 구문의 경우 예는 자신에 고유한 기표를 드러내며 자신의 기의를 유예시킨다)"고 했는데, 옮긴이는 다른 대목에서는 suspension을 정지로 옮겼으면서도 여기에서는 유독 "유예"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건 앞에서 '지연'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 것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건 제가 갖고 있는 어떤 생각 떄문에 하는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패스해도 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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