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철학자 Christian Delacampagne가 <르몽드>에 수록한 것으로, 2009년 11월 4일자에 공개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Christian Delacampagne가 2007년 5월 20일에 사망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쓰여진 날짜는 좀 오래된 것일 수 있다. 이 글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방법과 구조주의에 대해 레비-스트로스가 갖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철학자의 문장인지라 상당히 엄밀하다. 그리고 그런 엄밀한 문장을 이 번역이 잘 살리고 있다고는 전혀 자부할 수 없다. 일단 나 역시 올려놓은 다음에 시간을 내서 다시 뜯어보기로 한다. 차후를 기약하며.

*****

* 원문 : La révolution copernicienne du structuralisme

친족관계의, 그리고 나중에 신화의 분석방법이 되었던 구조주의는, 1942년에 뉴욕의 고등자유학교(Ecole Libre des Hautes Etudes)에서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피난 중이었던 알렉상드르 코이레의 소개로 만난 러시아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소쉬르 언어학을 예로 들면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게 권한 것이다. 그 당시에 이미 30년의 과거를 갖고 있었던 구조언어학이 레비-스트로스에게 분석모델을 제공했던 것이다.
하나의 언어를 -- 우선 모네메(monemes, 의미단위)와 페네메( phonemes, 음절단위)라는 -- 이중의 마디로 분해하는 언어분석법에 의해 유발되어, 표기할 문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사회의 복잡한 친족관계는 엄밀한 논리를 갖고 있으며 진짜 '체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당시의 레비-스트로스가 세운 계획이었다. 그 계획의 첫번째 성과가 1949년에 발표된 <Les Structures elementaires de la parente>(친족의 기본구조)이다.
프랑스로 귀국한 후 레비-스트로스는 구조라는 수단을 신화, 의례와 마술적 종교의 독해에 접목시킨다. 새로운 대상으로 확대된 이 방법은 세 권의 저작에서 볼 수 있다. <Anthropologie structurale>(구조인류학, 1958), <Le Totemisme aujourd'hui>(오늘날의 토테미즘, 1962), <La Pensee sauvage>(야생적 사유, 1962)가 그것이다. 야생적 사유는 사르트르식 변증법 및 역사관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서 쓰여진 동시에 사회학. 인류학자인 루시앙 르페브르가 전개한 "전(前)논리적 정신구조"라는 개념을 결정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표기할 문자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처럼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고 방식은 구조적 분석에 의해 우리의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적 구조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법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특히 풍부하고 복잡한 분야에 몰입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학(mythologies amérindiennes)이라는 분야이다.
야심찬 대작인 총4권의 신화학(Mythologiques, 1964-1971)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전체가 단일한 corpus를 이루고, 그 내부에서 개별 변이가 어떤 규칙을 따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것은 레비-스트로스가 세운 기획의 강렬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네 권은 동시에 한계도 보여준다. 사실, 그가 상정하는 신화의 구조적 해석(공식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되는)이나 그 '프리그머티브'한 사회의 견해(비정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되는)에, 모든 민속학자가 동의한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레비-스트로스의 방식이 신화에 관한 '그의' 과학을 보다 잘 수립하기 위해서,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신화를 추출하고 -- 규범을 따라 수립할 수 있는, 결국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대수적(代数的)이라는 -- 의미론적semantiques 단위의 연결로 단순화해 버린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문제로 되는 체계가 실제의 환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와 같은" 상징적 체계의 구조에만 쏟은 관심은 곧바로 구조주의의 주요한 특색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한정된 대상 분야(민속학이나 언어학)에 응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구조가 어떠한 대상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되어 버렸다. 동시에 레비-스트로스는 중요한 운동의 지도자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 수없이 많은 연구자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왜냐하면 경험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은 영미권 나라들에서는 레비-스트로스 학파의 '형식주의'(/formalisme)에 대해 커다란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짧지만 구조주의와 레비-스트로스의 관계를 잘 서술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경력을 보면 실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떠오르는 사람만 하더라도 (초현실주의의) 앙드레 브레통을 비롯하여 언어학자 롤랑 바르트, 역사가인 브로델, 철학자인 메를로-퐁티 등과 친분을 맺었고, 또한 음악에 대한 관심도 아주 높았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 호기심을 갖고 사유해 나가는 자세는 어느새인가 앎의 주류에서 사라져 버린 감이 있지만, 이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는 레비-스트로스의 사망과 관련하여 몇 개의 글을 덧붙여 둔다.

**************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1908.11.28∼2009. 11. 4))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구조주의의 선구자. 벨기에 브뤼셀 출생. 1927~32년 파리대학교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장 폴 사르트르 등과 지적 교제 관계를 맺었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에서 사회학교수로 재직 중(1934~37) 브라질 원주민을 현지 조사했다. 뉴욕 시의 사회연구학교 객원교수로 있는 동안(1941~45)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저작을 접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74년 파리대학교 에콜 프라티크 데 조트제튀드(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 연구지도교수를 지냈으며,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학과장이 되었다.

   1949년 최초의 주요저서인 <친족의 기본구조>(1949)를 출간했으며, 1955년 문학적이고도 지적인 자서전 <슬픈 열대>(1955)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 밖의 저서로는 <구조인류학>(1958) <야만적 사고>(1962) <오늘날의 토테미즘>(1962) 등이 있다. 방대한 규모의 저서 <신화>는 <날것과 요리된 것>(1964) <꿀에서 재까지>(1962) <식사예절의 기원>(1968) <벌거벗은 인간>(1971)의 4권으로 출간되었으며, 1973년 <구조인류학> 제2권이 나왔다. <가면을 쓰는 법>(2권, 1975)은 미국 북서해안 인디언의 예술ㆍ종교ㆍ신화를 분석한 책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문화체계에 관련된 엄청난 양의 정보를 그가 핵심적인 것이라고 파악한 요소들 사이의 형식적 관계들로 환원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문화를 커뮤니케이션 체계로 보았으며 그 체계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구조언어학·정보이론·인공두뇌학에 기초를 둔 모델을 설정했다.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문화체계(예를 들어 친족 및 신화체계)를 분석하는 데 쓰이는 구조주의는, 20세기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비교종교학·문학·영화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구조주의에 입각한 그의 연구 업적은 3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1) 친족구조

   혼인규제와 친족체계를 일종의 언어, 즉 개인간, 집단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매체가 되는 것은 여성이며, 친족 집단간에 말과 동일하게 순환된다고 논한다. 그는 혼인규제의 다양성의 배후에서 몇 가지 원리를 추출해 냈으며, 친족 체계에서는 출신보다도 혼인규제가 한층 중요함을 제시하였고, 혼인규제와 친족 명칭과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나아가 그는 친족체계를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구조에 의해 설명하려고 하였다. 다만 여성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친족구조를 친족의 일반이론으로서 확대시키는 점에 대해서는 후에 J.T.니덤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2) 분류의 논리 또는 야생의 사고

   아직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의 사고에 영향받기 이전의 인간의 사고를, 미개인의 동식물 분류 등을 통하여 파악하려고 했다.

   특정 동식물을 집단의 시조로 여기고, 이를 먹는 것을 금하는 토테미즘이라는 제도에 관한 종래의 기능주의적인 해석이 타당치 못함을 지적하고, 특정 동식물이 자연계로부터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분이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논하고, 토테미즘의 원리는 대립하는 것의 통합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M.포테스 등의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토템연구는 종래 설명되지 못했던 현상의 해면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3) 신화의 구조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의 800개가 넘는 많은 신화를 연구하여 4권의 저작으로 정리하였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추이는 날것으로부터 불에 익힌 것 요리된 것으로의 추이에 의해 상징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북아메리카의 신화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추이는 의류, 장식품의 발명과, 그것에서 유래되는 물품의 교환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서】<친족의 기본구조>(1949) <인종과 역사>(1952) <슬픈 열대>(1955) <신화학>(1964) <구조인류학)(1958) <오늘날의 토테이즘>(1962) <야만적 사고>(1962) <신화>(4권.1964∼1971) <가면을 쓰는 법>(2권.1975)

 

------------------------------------------------------------------------

별세한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101년 생애[중앙일보 2009. 11. 4]

20세기 서구 지성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제17회 국제카탈루냐상을 받은 직후의 레비스트로스 모습. 국제카탈루냐상은 스페인 카탈루냐 주정부가 인류에 큰 공헌을 남긴 사상가·예술가·과학자 등에 게 주는 상이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년)가 지난 주말 타계했다고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 프랑세즈)이 3일 밝혔다. 11월 28일, 101세 생일을 몇 주 앞두고서다.

그의 타계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4일 새벽. 지성의 한 세기가 마감했다는 소식에 국내 학계도 감회에 젖었다. 그는 1981년 한국에 3주 가까이 머물면서 강연과 현장 연구를 하기도 했다. 55년 나온 그의 명저 『슬픈 열대』는 문학적 표현으로 일반 독자 사이에서도 널리 읽혔다. 브라질에서의 인류학 현장 연구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로 ‘문학’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대표적 문학상인 공쿠르상위원회는 “『슬픈 열대』가 ‘소설(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상을 줄 수 없어 아쉽다”고 했을 정도였다.

레비스트로스는 무엇보다 ‘문명’과 ‘야만’, ‘서구’와 ‘비서구’의 경계를 허물었다. 우수한 서구 문명이 미개한 원시문화를 지배한다는 서구 사회의 편견을 비판했다.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꿰뚫는 인간 정신의 동일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야만적 문명’에서도 인류 보편적인 문화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중심의 문명관을 뒤집는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그의 연구 성과는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루이 알튀세 등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쳐 20세기의 주요한 철학 사상을 형성했다.

◆신화가 된 사상가=레비스트로스는 80년 장 폴 사르트르의 사후 프랑스 지성계를 이끌어 갈 사상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1905년생인 사르트르와 레비스트로스는 고작 세 살 차이다. 둘 다 이미 20세기의 ‘신화’가 된 지식인이어서 최근 레비스트로스의 타계 소식이 더 ‘신화적’이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프랑스 알사스 출신의 유대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화가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유소년기부터 예술에 대한 조예를 쌓을 수 있었다. 소르본대에서 철학과 법학을 전공했으나 인류학에 눈을 돌리게 된다. 35년 우연히 찾아온 브라질 체류 기회로 4년여 상파울루대 방문교수를 지내며 브라질 내륙의 원주민 부족을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 39년 귀국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미국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강의하며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 등과 교유했다.

48년 프랑스로 되돌아와 제출한 박사 논문이 책으로 나온 게 『친족의 기본구조』(49년)다. 이어 55년에 낸 『슬픈 열대』가 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그는 일약 ‘스타 학자’로 떠올랐다. 『야생의 사고』(62년)에서 ‘실존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함으로써 사르트르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실존주의’와 체계·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구조주의’ 사이에 필연적인 충돌이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임봉길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슬픈 열대』가 그의 주저(主著)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철학에서 인류학으로 넘어가는 동안의 과도기적 저서”라고 설명한다. 레비스트로스 사상의 정수는 64~71년에 나온 『신화학』(전 4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레비스트로스가 철학과 문예 이론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그의 ‘구조주의 인류학’에 대한 국내 학계의 이해는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임 교수는 “‘문명’과 ‘야만’, 과거와 현재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1만 년 전의 인류나 현대인이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 그래서 어떤 문명이나 민족도 다른 집단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게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라고 설명했다. 

배노필 기자

----------------------------------------------------------------------------------------------------------------------------

내가 만난 레비스트로스-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2009. 11.4)

1981년 인왕산 국사당을 방문했던 클로드레비스트로스, 장주근 전 경기대 교수, 부인 모니카, 필자(왼쪽부터). [중앙포토]

 

 

 

한 시대가 마감됐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교수가 101세 생일을 앞두고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다. 백인 중심주의, 서구 우월주의를 보기 좋게 무너뜨린 그였다. 28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재직 당시 그를 한국에 초청한 적이 있다. 그는 1981년 10월 11일부터 20일간 한국에 머물렀다. 학술 세미나에 참여한 것은 물론 한국 전통문화도 직접 체험했다. 사실 “한국인의 생활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그가 내건 방한 조건이었다.

중앙일보 81년 11월 21일자를 검색하니 내가 그를 동반해 인왕산 국사당에 갔을 때의 기사와 사진이 나온다. 당시 조상굿 현장을 보고 난 다음, 제사상 차림을 관찰하는 모습이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메리칸 인디언, 시베리아 샤먼은 저승을 다녀오는 경우가 보이는데, 한국의 샤먼은 살아 있는 사람(이승) 사이의 일상을 중심으로 연행(演行·performance)하는 것 같다.” 무당이 마치 죽은 혼백이 말하는 것처럼 입을 열면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시줏돈을 챙기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했던 이야기다.

그는 한국의 곳곳을 방문했다. 서울 장위동 골목집에서 열린 무속인 김금화씨의 굿판을 참관했고, 경주 양동마을 월성 손씨 종가 댁에 머물며 가묘를 관찰했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경봉 스님을 만났고, 새벽 예불도 경험했다. 안동 하회마을 유성룡 선생의 충효당에서도 하룻밤을 지냈다. 또 해인사·불국사·석굴암 등을 둘러보았다.

그는 특히 “한국의 많은 시골 서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도서관을 갖춘 아카데미가 도시에만 있는 유럽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경주는 세계문화유산의 보고”라고 감격하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 시장을 구경하기 좋아했는데,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멸치 비늘을 보며 “저것 좀 보게! 진주(pearl) 같지 않느냐!”며 탄성을 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역시 그는 인류 삶의 현장과 동고동락한 인류학자였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