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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애국심의 공화주의론 :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읽기

by 상겔스 201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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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애국심의 공화주의론 :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읽기

*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김경희·김동규 옮김, 인간사랑

  Maurizio Viroli 2002 Republicanism Hill and Wang (New York)


1. 들어가며

이 글은 근래 들어 자유주의를 대신할 공공철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공화주의의 사상을 비롤리의 『공화주의』에 입각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시민혁명의 시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의 시대 등 서구 역사의 곳곳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최근에는 존 포콕(John Pocock)과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를 중심으로 한 캠브리지학파의 연구에 의해 그 의의가 재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지닌 특색은 사상을 역사적 맥락(context)에서 읽는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스키너는 이런 기법을 통해 영국의 시민혁명 시대를 검토하면서, 이 시대에는 현재의 자유주의와는 상이한 이론(신로마이론)1)이 있었다고 지적했다(Skinner 1998). 또한 이들이 공화주의를 ‘자유’라는 관점에서 논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2) 스키너 등의 역사연구에 정치철학적 관점을 덧붙여 이것의 현대적 적용을 모색하는 논자로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을 거론할 수 있는데, 이때 그는 이른바 분석철학의 기법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적 자유’를 대신할 ‘공화주의적 자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Pettit 1997).3) 이처럼 스키너의 흐름은 ‘자유’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도 이 스키너의 흐름과 연관된 이론가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철학 학위를, 피렌체에 있는 유럽대학에서 사회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는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는 마키아벨리와 루소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 연구다. 이 책에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공화주의의 논점들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의 논의는 ‘공화주의적 자유’를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스키너나 페팃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이들과는 다른 점으로는 이탈리아의 역사(특히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사상이나 제도를 분절한다는 점, 그리고 ‘정념’(passion)에 관한 테마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래에서는 그의 논의를 각 장별로 소개할 것이다.


2. 공화주의의 역사

이 책의 목적은 「영어판 저자 서문」에 잘 서술되어 있다. 그 목적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라는 더 큰 이론의 부록과도 같은 민주주의 이론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을 바꾸는 것, 즉 오히려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보다 시대상 앞설 뿐만 아니라 가치 면에서도 우월한 이론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이탈리아 공화주의의 역사부터 설명해 나간다. 1장에서 비롤리는 14세기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이탈리아의 자유 공화국들에서 구축된 공화주의의 정치이론에 관해 서술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가 일찍이 근대성에 주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공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당시 이탈리아 공화국들은 부유하고 힘센 가문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많은 인민들은 정부 및 주권적 권한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공화국들은 대공회(consiglio grande)에 기초한 대의제 정부이며, 그 전체로서 인민 또는 도시를 대표했다. 특히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특색 중 하나인 혼합정(mixed government) 이론이 이 시대에 세련되게 가다듬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혼합정이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다. 당시 이론가들(여기에는 마키아벨리, 프란체스코 귀챠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 도나토 지아노티Donato Giannoti의 이름이 거론된다)은 이러한 혼합정의 다양한 기관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줘야 할 것인지(즉 혼합정부를 어떻게 제도화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일인(전제자) 하에서든, 다수자(민중) 하에서든 한 곳에서 무제한의 자의적 권력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분할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해 동의했다고 말한다.

16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이 서서히 외국세력 등의 지배를 받게 됨에 따라 공화주의 이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정신은 이후 유럽 속에 널리 퍼진 계몽주의의 한 가지 원천이 되며, 영국시민혁명이나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19세기의 이탈리아 독립의 이론적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비롤리는 이탈리아에서 공화주의가 실제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서술한다.


3. 공화주의의 자유

그렇다면 공화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비롤리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그 핵심은 ‘자유’라고 파악한다. 이런 공화주의의 자유 개념을 설명한 것이 2장이다. 비롤리는 우선 정치적 자유를 간섭(interference)의 결여로서의 자유와 지배(domination)의 결여로서의 자유로 구별한다. 여기서의 ‘간섭’이란 어떤 사람의 행위를 방해하는 다른 누군가의 행위를 가리키는 반면에, ‘지배’란 자신이 타인의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에 의존하는(depend on)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의 자유를 ‘간섭’의 결여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는 간섭과 지배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간섭 없는 지배’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그는 폭군에 의한 시민의 지배, 남편에 의한 아내의 지배, 고용주에 의한 노동자의 지배 등을 거론한다. 여기서는 ‘간섭이 행해지는가 여부’가 아니라 ‘설령 지금 간섭이 행해지지 않더라도 간섭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나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는 상태인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다른 한편, ‘지배 없는 간섭’도 존재한다. 그것은 ‘법에 의한 제약’이다. 이 제약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개인의 자의적 이익을 위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또는 공공선public good을 지향한다는) 점으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다.4) 따라서 지배의 결여로서의 공화주의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지지하는 논리를 도출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장은 공화주의의 자유와 법이 맺는 관계를 더욱 자세히 논한다. 그는 과거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공화주의자가 법의 지배를 자유의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점,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제약을 개인의 자의적인 의지로부터의 유일하게 타당한 방어로 간주되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 논점에 관해서는 벤담처럼 “모든 법은 자유의 침해이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른바 자유주의)에서 나오는 반론이 있다. 홉스와 공화주의자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논쟁은 이 점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홉스는 법에 복종하는 이상, 루카(Lucca) 같은 공화국의 시민들도 법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같은 술탄의 신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해링턴은 루카의 경우 통치자와 시민이 공히 동일한 법률과 헌법에 복종하는 데 반해, 콘스탄티노플의 경우 술탄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제 맘대로, 즉 자의적으로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처분하기 때문에 루카의 시민이 더 자유롭다는 반론을 펼쳤다.

해링턴 같은 논의는 초기 자유주의의 이론가인 존 로크에게서도 발견된다. 로크의 책에는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논의를 토대로 비롤리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속박(제약)과 개인에게 자의적으로 가해지는 속박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자를 후자의 상위에 두는 것이 자유의 조건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이처럼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에 관해 간섭과 지배의 구별이나 자유와 법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논한다. 이것들은 페팃의 저작에서도 볼 수 있는 논점이며, 비롤리와 페팃은 모두 현대 공화주의 연구의 선구자인 스키너로부터 이러한 논점을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비롤리는 ‘논쟁’과 ‘수사학’이라는 관점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이해한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무엇이 자의적인 행위를 구성하는지, 개인의 자의적 의사에 예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가 소득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시민들에게는 완전한 자의적 간섭으로 간주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정당한 간섭의 사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비롤리는 여기서 당파적 논쟁의 발생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을 과학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고전적 의미에서의 수사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그는 어떠한 사실도 논쟁을 결정적이고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용될 수는 없으며, 또한 논쟁에 참여한 모든 당파가 만족할만한 방식으로 그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사실이 수립할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공선이나 법이 항상 만장일치로 결정된다는 예정조화적인 비전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지적이며, 바로 여기서 역사연구에 뿌리를 둔 그의 현실적인real 인식이 빛난다.


4.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

4장에서는 다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가 논의되고,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역사적 우선성이 주장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스키너의 주장(‘자유주의에 선행하는 자유’)을 따른 것인데, 여기서 비롤리가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은 그의 논의가 지닌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공화주의에서 파생된 원리가 보다 타당한 원리이고,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비롤리는 이러한 원리의 사례로 정치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개별 구성원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데 둔다는 점, 획일성에 대한 비판과 다양성에 대한 찬미, 권력분할의 권고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원리들은 J.S. 밀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미 마키아벨리 등의 저작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가 지닌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는 ‘자연적 권리’라는 학설이 ‘권리는 관습이나 법에 의해 인정될 때에만 권리가 된다’는 사실과 충돌한다는 문제를 품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공공봉사(공익에의 헌신)를 자유의 자연적 반려자로 파악하지만, 자유주의는 그것을 자유의 제한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롤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강조한다.5)

또 4장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일반적으로 공화주의를 공동체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논의도 있지만, 비롤리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는 공화주의의 공동체가 민족적·문화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라는 점, 어떠한 도덕적 선보다도 ‘정의’를 기초로 한다는 점(가장 중요한 공통선/공공선은 정의라고 한다)을 거론한다. 이처럼 그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를 완전히 상이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전자의 차이는 구별의 축이 ‘자연-인위’에 있으며, 루소 연구를 배경으로 한 비롤리의 입장이 여기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6)


5. ‘시민의 덕’과 ‘애국심’

다음으로 그는 스키너나 페팃이 그다지 충분하게 논하지 않은 ‘정념’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5장은 자유주의의 경우 비판적인 어조로 말하고 공화주의의 경우에는 중심테마의 하나로 간주된 ‘시민의 덕’(civic virtue)을 고찰한다. 그리고 6장은 시민의 덕(또는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애국심’(patriotism)을 논한다. 이런 점들을 비중있게 다룬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이고, 사실 이것들에 대해 논하는 두 개의 장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시민의 덕’에 관한 비롤리의 논의를 살펴보자. 우선 그에 따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시민의 덕, 즉 공동선에 봉사하길 마다하지 않는 ‘정서/기분’과 능력에 기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이론가들(특히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덕이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덕이 불가능한 이유로는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집단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선에 봉사하는 동기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또한 시민의 덕이 위험한 이유로는 만일 우리의 다문화사회 속에서 시민이 보다 덕스럽게 된다면, 시민은 보다 불관용하고 보다 광신적으로 될 것이며, 결국 덕의 지배가 시민의 자유를 보다 제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 놓여 있는 것은 시민의 덕을 욕망의 단념과 희생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에 반하여 비롤리는 사적인 삶을 단념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형태의 시민의 덕이 존재한다는 것을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해 설명한다. 거기서 시민의 덕은 사적인 삶의 기초로서 파악되며, 부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시민의 덕은 이성에 의한 정념의 압박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정념(시민적 자선)이 다른 정념을 지배하는 걸 허용하고, 시민의 덕이나 공화국에 대한 봉사가 사적인 삶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성질의 시민의 덕은 18세기의 프랑스 시민생활 속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가령 여기서는 시민들이 불법적인 이익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타자의 필요성이나 약함 때문에 이익을 얻지도 않으며,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 부정의한 법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서, 또한 공통의 이익에 관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지도자를 추천하기 위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종류의 조직에 들어가 활동한다는 것.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를 바라는 것. 국가의 역사에 관해서 알고 논의하고 반성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들이 시민의 덕의 내용이며, 이것을 행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로는 도덕감정(환대, 차별, 추락, 방만, 야만에 대한 보상)이나 양질의 상품과 의례에 대한 미적인 욕구, 특정한 것에 관한 고려(안전한 도로, 쾌적한 공원, 잘 정비된 광장, 존경할 수 있는 기념비, 좋은 학교와 병원 등), 명성(공적인 명예를 얻고, 의장의 자리에 앉고, 연설을 하며, 예식에서 맨앞에 서는 것)이 거론된다. 그리고 비롤리는 이런 형태를 취한 시민의 덕은 불가능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롤리에 따르면 이러한 시민의 덕, 즉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한다. 6장에서는 다른 현대공화주의의 이론가들이 그다지 다루지 않았던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논의된다. 우선 비롤리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대상이 ‘조국-자유로운 공화국’임을 강조한다. 여기서의 조국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났던 장소가 아니라 시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관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루소의 말을 인용한다. “조국을 만드는 것은 장벽도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법, 관습, 습관, 정부,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삶의 존재방식이다”. 또한 그는 “18세기의 정치학의 저술가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연적인 심정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또한 한층 더 좋은 경우에는 좋은 정부와 공공의 생명에의 참여에 의해 육성되는, 인공적인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의 ‘자연-인위’의 축이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이처럼 그가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인위’라고 파악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대비하여 이해되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의 ‘나라사랑’은 ‘자연적인 정서’이며 사람들의 문화적·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인위적 감정’이고 이것의 중심 가치는 정치적 가치에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비롤리도 기본적으로는 이것에 기초하여(이런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적 애국심과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구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화주의적 애국심에 의해서 국내의 통합은 문화·민족·종교의 동질성을 요구하지 않고서도 행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애국심이 있으면 종교적 정신이 없더라도 시민의 덕을 육성할 수 있다는 주장에 호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롤리는 종교적 신앙에서 불관용을 발견하고, 그것보다도 오히려 균형의 감각이나 회의의 감각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는 현대에서의 시민의 덕의 육성, 나아가 애국심의 재생과 보급을 위해 조국의 역사에서 의의를 찾아내는 것(기억과 기념축제의 중시)이나 정의와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것(이런 관점에서 복수·용서의 금지, 후견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다)을 강조한다. 또한 시민이 자치에 참여하는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장려된다.


6.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

이상으로 ‘시민의 덕’이나 ‘애국심’에 관한 그의 논의를 따라가 봤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것들은 자유주의의 주요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예상된 비판의 칼날을, 시민의 덕을 희생이라고 파악하는 입장이나, 문화적·민족적 동질성을 파악하는 종류의 내셔널리즘으로 향하게 하고, ‘시민의 덕’ 및 ‘애국심’의 적극적이고 온건한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정의를 기저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 한 가지 모습인데,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다. 그는 조국은 ‘공통의 집’인데, 그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집과 나란히 서 있는 집’이라고 말하고, 조국의 바깥 세계를 암시한 후에, “인간성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우리의 조국에 대한 의미보다 선행한다. 어떤 특정한 조국의 시민이기 전에, 우리는 인간이다. 이것은 민족이라는 장벽이 도덕적으로 귀를 막는 구실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그는 인간성이라는 심급을 고려하면서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를 사고한다. 그렇다면, 개인과 인간성 사이에 조국이라는 심급을 집어넣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우리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과 인간성 일반의 중개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개 역할을 맡은 것이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이다. 이처럼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은 그 외부로부터도 적극적인 의미부여가 이뤄지고 있다. 이 점에서도 그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와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에 관한 그의 이해나 자치에 대한 참가의 위상에 관해서는 논의가 갈라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자치에 참여함으로써 시민이 공공선에 애착(attachment)을 느낀다는 점을 거론하고, 또한 토크빌에 의거하면서 “시민들이 참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서로의 차이를 말할 기회를 갖고 있는 경우나, 논의하는 문제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권한을 도시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그의 의도를 넘어서서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개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이른바 문제를 자각하는) 데에 있어서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말할 경우에는 이러한 기초에 토대를 두고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공화주의의 논점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들을 숨겨놓은 논의가 포함되어 있기에 일독을 할 경우 큰 도움이 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Maurizio Viroli(2002)Republicanism, New York: Hill and Wang

Quentin Skinner(1998)Liberty Before Liber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Michael Sandel (1996) Democracy’s Discontent,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Philip Pettit (1997) Republican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hilip Pettit (1998) “Reworking Sandel’s Republicanism” Anita L. Allen & Milton

C. Regan Jr. (ed.) Debating Democracy’s Discontent, New York: Oxford University


1) 스키너는 흔히 ‘공화주의’라고 불리는 이 이론을, 이 이론가들이 반드시 왕정의 폐절을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마키아벨리를 통해 고대 로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 때문에 ‘신로마이론’이라고 부른다.


2) 공화주의에 관해서는 제도(혼합정체론), 덕(시민의 덕)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파악하여 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스키너나 페팃,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공화주의론의 핵심은 ‘자유’에 있다.


3) 그밖에 공화주의에 주목한 정치철학자로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있다. 그는 미국 공화주의의 전통을 파헤쳐 이것을 현대에 부활시키고자 한다(Sandel 1996). 페팃은 한편으로는 샌델의 논의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공화주의 이론과는 다르다고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적’ 공화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시민참여가 공화주의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Pettit 1998). 이런 관점은 스키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페팃의 논의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비롤리의 논의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4) 또한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유의 차이에 관해서도 말한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자율, 자유의지, 강제에 대한 반대 등을 주장한다(벌린이 말한 ‘적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자유는 자율보다는 강제에 예속될 항구적인 위험(constant danger)으로부터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법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시민의 욕구에 들어맞는가가 아니라 법이 자의적이지 않는가, 공공선을 지향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쓴다. 여기서 자기결정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성을 인정받는다. 그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벌린이 말한 ‘소극적 자유’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5) 이 점은 오히려 「서장」에서 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요소로서 법의 지배와 인민주권을 거론하고,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에만,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에만 특화된 빈약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6) 또한 6장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구별도 같은 축에서 이뤄지며, 이런 점에서 비롤리의 관점의 일관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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