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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적 사고, 정세적 발언

13세기에 그려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by 상겔스 201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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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가 옥스포드에 체재할 때 도서관에 봤던 13세기의 그림. 소크라테스가 쓰고 플라톤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Bodleian Library, University of Oxford, ms, Ashmole 304).

만일 플라톤의 책이 없었다면, 그것에 대한 '주석의 역사'로 간주된 서양철학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플라톤주의(니체)로 간주된 서양정신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플라톤의 책이, 텍스트가, 에크리튀르가 쓰여지지 않았다면?
아감벤도 <사유의 역량>에서 인용하고 있는 플라톤의 '7번째 편지'와 데리다가 이것 외에도 인용한 '2번째 편지'.
플라톤에 의한 에크리튀르(문자, 그리고 글쓰기)의 배제는 <플라톤의 책은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에서 극에 달한다. 플라톤의 책은 존재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플라톤의 책은 '소크라테스의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플라톤이 쓰기 시작했던 것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후다. 따라서 만일 플라톤의 책이 플라톤의 책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책이라면, 그것은 처음부터 죽은 자에 의해, 또는 유령에 의해 쓰여진 책이게 된다. '아버지이자 쓴 본인의 도움'을 원칙적으로 얻을 수 없다면, 가장 '사생아적'인 에크리튀르이게 된다. 이때 서양의 철학사, 정신사는 어떻게 될까? 플라톤의 책이 플라톤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에 의해 쓰여졌다고 한다면, 그때 <소크라테스, 이 쓰지 못한 사람>이라고 쓴 니체의 서양정신사 해석은 어떻게 될까(<우편엽서>)? 소크라테스는 '서양의 가장 순수한 사유가'이며 '바로 그렇기에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썼던 하이데거의 서양정신사 해석은 어떻게 될까? 
플라톤의 책에 기입된 '플라톤'이라는 서명, 고유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플라톤'의 서명이 들어간 텍스트는 소크라테스(의 유령)의 목소리를 빌려 플라톤이 썼던 책인가, 플라톤의 손을 빌려 소크라테스(의 유령)이 쓴 책인가? 그리고 플라톤은 자신의 사유에 의해서 스스로 그 존재를 전면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책을 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플라톤은 많은 책을 쓰고, 그것을 썼다는 것을 부인하기 위해 또한 편지=문자(lettre)를 쓰고, 그리고 그 편지를 '불태워버릴 것'을 요구한다(<두번째 편지>). 파르마콘으로서의 에크리튀르는 파르마코스의 사체와 마찬가지로 소각되어야만 한다. 사체나 에크리튀르가 소각된 후에는 재가 남는다. Il y a la cendre. 거기에 재가 있다. 이 기묘한 문구를 데리다는 기입하며, 이 글을 둘러싸고 약 20년 후에 <Feu la cendre>가 쓰여졌다.  파르마코스의 남겨진 재는 바다로 흩어지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재조차도 남지 않았다면 어떨까? <재>는 데리다에게 <재조차도 남기지 않은 형상>이 되며, <에크리튀르>를 대신할 정도로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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