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17. 인간발생


서양철학의 인간학 기계에 관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독해의 잠정적 결과들을 테제의 형태로 진술해보려 노력하자.

 

1. 인간발생[인류창생]Anthropogenesis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틈새/중간휴지/균열caesura와 분절articulation의 결과로서 생겨난 것이다. 이 중간휴지caesura는 무엇보다 우선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2. 존재론 혹은 제일철학은 [인간과 가축에] 무해한 학문분과가 아니라 인간발생, 즉 생명 존재living being의 인간-되기가 실현되는, 모든 의미에서 근본적인 조작이다. 당초부터 형이상학은 이런 전략에 사로잡혀 있었다. , 형이상학은 인간적 역사의 방향으로 동물적 퓌시스의 극복을 완성하고 보존하는 메타와 관련되어 있다[형이상학은 바로 동물의 자연을 인간의 역사로 지양하고 온존시키는 메타와 관련되어 있다]. 이 극복[지양]은 한꺼번에 완성된 사건event이 아니며, 오히려 항상 진행 중인 사건occurrence이며, 매 시간마다, 그리고 각 개인에게 있어서[이것이야말로 끊임없이 개개인 각자에게 있어서] 인간과 동물, 자연과 역사,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결정한다.

3. 하지만 존재, 세계, 열림은 동물적 환경 및 생명과 관련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생명과 비교해 봐도, 이것과는 다른 것이 아니다]. , 이것들은 생명 존재living being가 자신을 억제 해제하는 것과 맺는 관계의 중단과 포획[교착]capture에 다름 아니다. 열림은 열려 있지 않은 동물의 포착grasping[보충]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동물성을 중지시키고, 이런 식으로 생명이 예외의 지대에서 포획되고 내버려지게 되는[추방되는](ab-bandonata) ‘자유롭고 공허한지대를 연다.

4. 동물적 생명을 중지시키고 포획함으로써만 세계가 인간에게 열려지기 때문에, 존재는 항상 이미 무에 의해 가로질러져 있다. ‘열림(Lichtung)’은 항상 이미 무화(Nichtung)’이다.

5. 우리 [현대] 문화에서 모든 다른 갈등을 다스리는 결정적인 정치적 갈등은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갈등이다. 말하자면 서구의 정치는 그 기원에 있어서 또한 생명정치이다.

6. 인간학 기계가 인간의 역사적으로 되기의 동력이었다고 한다면, 철학의 종언과 존재의 획기적인 이정표의 완성[시대에 좌우되는 존재목적의 완수]은 오늘날 기계가 공회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개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a) 포스트-역사적[역사 이후의] 인간은 자신의 동물성을 탈은폐될 수 없는[열리지 않는] 것으로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크놀로지에 입각해 그것을 채용하고 다스리려 한다[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 (b) 존재의 목자인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은폐성, 자기 자신의 동물성을 고유화하는데[제 것으로 삼는데, 수탈.징발하는데], 이것은 감춰진 채로 있는 것도 아니고 지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것 자체로서, 순수한 내던져짐으로서 사유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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