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3/3)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III. 생명권력론과 근대

근대의 외부는 있는가

히가키 : 아까 이치노카와 씨가 왜 푸코는 생명정치를 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말하려 했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근대의 문제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생명권력의 외부는 없잖아요. 그때 자유인격이나 주체같은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우리는 아직 근대가 아닌가, 다시 근대가 아닌가, 아니면 근대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투르는 우리는 아직 근대인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카스가 :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죠.

히가키 : 근대와 비근대를 나누지만, 이것들을 나누는 인간은 모두 근대입니다.

카스가 : 그래서 과학(science)의 힘은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에 의한 지식은 계속 증식하면서 진리가 사회를 바꿔갑니다.

이치노카와 : 그 과학의 힘을 에워싸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생명정치일지도 모릅니다.

카스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아니, 그것은 미묘하고, 과학의 힘을 해방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카스가 : 섹슈얼리티나 퀴어 등은 바로 신화적 사고와 관련된 것이죠.

히가키 : 레비스트로스의 세계군요.

카스가 : 바로 그렇습니다. 서로 죽이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기도 하고, 너무 성행위를 많이 하고 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벌어집니다. 그런 원초적인 사고에는 섹슈얼리티나 퀴어적인 것이 표면화하는가? 레비스트로스는 거기에도 논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문제는 그 전입니다. 야생의 과학이라는 것을 다시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빼고 생명권력을 생각할 수는 없겠죠. 이 문제를 저는 아직 뚜렷하게 다루진 않았으나, 한 가지만 말한다면, 서두에서 히가키 씨가 말했듯이, 푸코가 말하는 생명권력은 개인을 향하는 해부-정치학과 인구나 종에 정위된 생명정치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섹슈얼리티는 이 두 가지 극을 가교하는 것입니다. , 개체는 언젠가 죽지만 생식으로 이어지는 섹슈얼리티를 통해 종으로서 계속 살아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푸코가 말하는 섹슈얼리티의 장치는, 생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잡다한 성적 욕망, 프로이트를 좇아 말한다면, 다형도착을 발견하거나 증식시키거나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또한 일종의 생산입니다. 생식을 통해 개체와 종은 서로 결부되지만, 그런 식으로는 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탈선하는 다양한 욕망 또한 섹슈얼리티의 장치에 의해 산출됩니다. 그것들을 일탈이나 병리라며 관리하거나 배제하거는 움직임이 섹슈얼리티 장치의 내부에서, 예를 들어 정신의학으로서 형성됐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아닙니다. 권력을 단순히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푸코의 지적을 여기서 떠올릴 필요가 있으며, 아까의 히르쉬펠트의 성과학이 일례입니다만, 그것은 틀림없이 섹슈얼리티의 장치 중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독일제국형법 175조의 철폐를 향한 길을 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단순히 해방’이라고 일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푸코는 비판했지만, 거기에 저항의 계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을 간과하면 푸코가 말하는 억압의 가설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혹은 그저 냉소주의가 될 뿐입니다. 생명권력이나 섹슈얼리티의 장치는 175조를 산출하는 것인 동시에, 히르쉬펠트의 성과학을 산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는 없습니다.

히가키 :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이 이라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잘 알고 있으나, 푸코는 고대로 옮겨갔습니다. 푸코는 그것들을 연결하는 선을 탐색하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치노카와 : 확실히 성의 역사2권과 3권에서는 주체(개인)의 문제에 화제가 집중되어 있으며, 종으로서의 신체나 인구에 정위된 생명정치의 문제는 어디로 갔어, 이런 생각이 들지만, 섹슈얼리티를 두 개의 극 사이에 둔다고 하는 1권의 문제설정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저는 푸코는 자세히 모르지만, ‘해부-정치학은 일단 빼버리려는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히가키 : 그런 것 같습니다. 

이치노카와 : ‘해부정치학에 관해서는 감시와 처벌에서 썼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성의 역사2권과 3권에서는 감시와 처벌과는 다른 형태로 주체(개인)의 문제가 재사고됩니다.

 

근대라는 인식틀들

이치노카와 : 미안합니다. 제가 화두를 탈선시킨 탓에 섹슈얼리티 문제로 조금 파고들어간 꼴이 됐네요. 히가키 씨가 제기한 근대라는 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말한다면,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근대, 정확하게는 서양 근대는, 역사와 시간의 인식틀 자체를 바꾼 것으로, 그렇게 하면, 근대가 끝났는지 여부는, 그 근대가 수립한 역사와 시간의 인식틀 자체가 끝났는가 아닌가라는 형태로 논의해야겠네요. ‘포스트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빼어나게 근대적인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죠.

히가키 : 그렇죠.

이치노카와 : 라인하르트 코젤렉(1923-2006) 등의 개념사 연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만(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r Zeiten, Suhrkamp, 1979, S.300ff), ‘modernus’라는 라틴어의 형용사는 이미 중세에 존재했습니다. 5세기 말경부터 존재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antiquus’(옛날의)와 대비되는 말로, 단순히 지금(오늘)’이라는 거죠.

Vergangene Zukunft 

히가키 : ‘현대라는 의미로 이해되더라도, 단순히 지금’이라는 의미죠.

이치노카와 : 우리는 지금부터 수백 년 전의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에서 시작해 근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중세의 ‘modernus’에서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세의 ‘modernus’에 따른다면, 우리에게서의 ‘modernus’2012[2016]인 것이며, 1512년이나 1612년일 수 없어요. 중세의 ‘modernus’ 개념이 우리를 훨씬 현재에 가깝게 하며, 반대로 근대적인 ‘modern’이나 ‘modernity’가 우리를 훨씬 현재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수백 년 전의 과거로 향하게 한다는 기묘한 전도가 있네요.

   또 한 가지. ‘Renaissance’(르네상스)‘Reformation’(종교개혁), 이것들은 ‘Re-’라는 문자에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본래 원점으로 회귀하는 운동, 일종의 반복인 것이지, 옛날의 것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운동이 원래 아니었습니다. 그 원점(고대)과 지금(modernus) 사이에 가로놓인 기간이 중세’(‘media tempestas’ )라고 부르기 시작하기도,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걸쳐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우리로 이어지는 새 시대의 개막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위치시킵니다. 그것들을 당시 추진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중세보다 더 옛날의) 과거에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쪽으로, 즉 그들한테는 미래에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전도가 있습니다.

   하나 더. 아렌트가 혁명에 대해서(1963)에서 지적했듯이, ‘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원래 천체의 회전 운동을 의미하며, 17세기의 영국에서 이 말은 크롬웰이 최초의 혁명적 독재를 수립한 때가 아니라, 1660년에 왕정이 복고됐을 때 사용됐습니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을 중시하는 시간의식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아직 그랬으며, 루소도 사회계약론(1762)에서 대의제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표자라는 생각은 최근의(moderne)것이다. 그것은 봉건정치에, 즉 인간이 타락하고, 인간이라는 이름이 치욕 속에 있었던, 그 부정의하고 어리석은 정치에서 유래한다. 고대의(ancien) 공화국에서 인민은 결코 대표자를 갖지 않았다”(315). 루소는 여기서도 ‘moderne’이라는 말을 중세의 ‘modernus’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마찬가지로, 이상으로 삼아야 할 것을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찾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또한 현재보다 미래가 뛰어나다는 진보의 이념이 확립되고, 동시에 ‘moderne’라는 말이 근대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르네상스 및 종교개혁이라는 과거는 소급적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1800년경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것을 코젤렉은 집합 단수형으로서의 역사의 탄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달리 말하면 세계사의 탄생이며, ‘문명()’라는 도식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훌륭히 체현하는 것이 콩도르세의 인간정신 진보사(1793-94)이죠. 콩트의 사회학도 1800년 무렵에 확립됐습니다. 그런 근대적인 시간의식역사의식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버려서 얘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근대적인 시간의식, 역사의식은, 그런 의식들에 의해 소급적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무렵이 아니라, 훨씬 뒤인 1800년 무렵이 되어야 처음으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히가키 : 푸코는 말년에 칸트의 계몽에 대해 썼는데요, 칸트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유년시대가 끝나고 비로소 처음으로 성숙한 근대에 이르렀다는 식의 매우 근대주의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푸코는 부정하기는커녕,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푸코는 인간은 소멸한다고 말했지만, 소멸하는 축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것에 계속 천착한 것이며, 푸코는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거든요.

이치노카와 : 사회학에서도, 예를 들면 미타 무네스케(見田宗介, 真木悠介) 선생이, 인류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시간의 비교사회학(이와나미쇼텐, 1981)에서 근대적 시간의식과는 상이한 시간의식을 열고자 했습니다만, 근대와는 상이한 시간의식이 거기서 재발견되고, 근대적인 시간의식이 상대화됐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시간의식이나 역사의식 자체는 그렇게 간단하게 깨지지 않으며, 미타 선생 자신이 근대적인 시간의식역사의식의 안쪽으로부터 이 책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서양 근대 이외의 것을 보는 시선 자체가 서양 근대의 틀에 내속해 있는 듯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듯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제게 근대라는 것은 그다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

히가키 : 인류학에서는 그렇겠네요.

이치노카와 : 히가키 씨는 아직 근대가 아닌가, 또 다시 근대가 아닌가, 아니면 근대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만, 제 대답은 지금으로서는 마지막 것에 가장 가깝습니다. 정확하게는 아직 근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만.

히가키 : 제 대답도 그렇습니다. 푸코-들뢰즈주의라고 오해되는 것은 그것입니다. , ‘내재입니다. 내부밖에는 있을 수 없으며, 내부로부터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외부를 요구하니까, 이상한 독해 방식이 됩니다. 특히, 들뢰즈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들뢰즈가 후기에 썼던 것은 영화(1983, 1985)이죠. 영화나 영상은 근대의 으뜸가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영화나 영상에 의해 처음으로 생명의 자연에 접하는, 우리는 진화적 신체에 의해 보는 것이 아닌 생생한 세계를 근대적 테크놀로지를 개입시킴으로써 처음 봤다고 들뢰즈는 쓰고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그렇군요.

히가키 : 그것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외부라고 하면 초월이 되어버립니다. 들뢰즈는 철저하게 내재적입니다.

카스가 : 그것은 알겠지만, 세간의 일반인들은 대부분 외재적입니다.

히가키 : 그건 그렇습니다만 .

카스가 : 인간을 주제로 삼는다면, 그것은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요? 외재랄까, 초월에 예탁하는 것이 끝없이, 겹겹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는 내재에 투철한 쪽이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러면 결국, 갇혀버린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경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히가키 : 철학자에게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론으로(웃음). 철학자는 원래 경험이 부족한 인종이니까요. 현장(field)이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치노카와 : 그건 사회학도 마찬가지이고, 인류학을 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카스가 : 그 대신 [인류학은] 제대로 된 것을 말하지 못한다구요. 그야말로 들뢰즈적 사고로 완결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며

마지막으로 오늘의 논의를 거친 뒤의 감상이나 포부 등을 듣고 싶습니다.

히가키 : 철학에는 경험이 부족한 건가라고.

이치노카와 : 그것은 사회학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사회조사를 많이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는 안 되겠죠. 푸코도 벤야민도 아감벤도, 어떤 경험을 배경으로 삼아 읽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과학자가 생각하고 있는 정도로 깊이 있는 것은 아니며, 연구대상도 포함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푸코나 아감벤의 독해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카스가 씨의 외재에 관한 얘기를 듣고서,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벤야민의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그 말도, 저는 아직 근대의 내부에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 아직 인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스가 씨가 벤야민의 어디에 매료되고 있는지도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카스가 : 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 ‘수평적 반향이라는 것이 두 분과 제 자신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내재적인 논리 전개는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아까 얘기한 스트라썬의 감성도 결국 거기서 유래합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사고양식으로는 세 명 모두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뭐랄까 이 반향을 소중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히가키 : 공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죠.

카스가 : ‘생명권력이라는 게 이론적으로도 세 사람을 결부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그렇군요. 20년 전, 30년 전에도 후기 푸코를 읽다라는 테마로 특집을 짰다면, 벤야민이나 레비-스트로스를 결부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비베이로스  카스트로처럼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에 연결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영역의 확장이 진행되고 있고, 그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 점점 크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인 이치노카와 씨가 구축주의를 매우 싫어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끌어낸 것도 아주 컸습니다(웃음).

이치노카와 : 저는 전부터 줄곧 공언했습니다만(웃음).

히가키 : 철학에서도 자연주의로의 회귀가 보이지만, ‘다자연(多自然)’이라고 말하면 소박한 실재론으로 돌아가버리는 부분이 있고, 물론 이에 대한 의구심은 있습니다. 다만, 큰 흐름으로서 말하면, ‘자연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것이 큰 주제가 됩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결론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도 자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치노카와 : 그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 자신은 못할 수도 있지만.

히가키 : 거대이론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커다란 의미에서의 이론은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역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생명권력생명정치같은 개념을 계속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학에도 요구하고 싶은 것으로, 제가 젊었을 때는 야마구치 마사오(山口昌男)처럼 제 자신이 트릭스터(trickster; 신화나 이야기 속에서 신이나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자를 가리킨다)가 되어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움직임은 정말로 적죠.

카스가 : 학문으로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재의 시대라고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설프게 학문이 됐으니까 수재만 되어 버렸습니다.

히가키 : 온통 수재만이 있는 가운데 다양한 영역을 연결해나가기 위해서도 생명권력생명정치같은 개념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특집이 그 계기가 된다면 좋겠네요.

(2012918, 이와나미쇼텐)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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