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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06 『사상』, 2013년 2월 / 1부 4장. 구조주의의 생성변화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1부 4장. 

구조주의의 생성변화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Castro)


** 이 글의 일본어 중역본은 <사막여우>의 블로그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그것으로 대체한다. 여기를 클릭

** 이 글이 실린 책은 <후마니타스>에서 출간 예정이며, 프랑스어본에서 번역했다고 한다. 

** 아래에는 <사상>이라는 잡지에 수록된 [역자 해제]와 이 책의 프랑스어본과 영어본을 수록해두었다. 


[역자 해제] 에두아르도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Eduardo Viveiros de Castro)1951년에 태어난 브라질 인류학자·민족지학자로, 현재는 리오데자네이로국립박물관 교수이다. 아마존의 선주민 아라웨테(Araueté, 아라우에테)의 샤머니즘이나, 그 정신적 세계관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로 알려져 있는 것 외에, 최근에는 그런 민족지적 연구에 의거하면서 레비스트로스의 재평가, 인류학에 들뢰즈 철학의 도입, 또한 현대의 과학실천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 등, 넓은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포르투갈어로 쓴 저작이 많지만, 영어 논문도 적지 않다. 아라웨테의 민족지 적의 관점에서(From the Enemy’s Point of View : Humanity and Divinity in an Amazonian Society)(tranlated by Catherine V. Howar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1992년에 시카고대학교출판부에서 영역본이 간행됐다.

여기서 번역한 것은 2009년에 프랑스어로 출판된 저서 식인의 형이상학(Métaphysiques cannibales : lignes d’anthropologie post-structurale, traduit du portugais par Oiara Bonilla, PUF, 2009)의 마지막 장 구조주의의 생성변화이다. 본서는 처음에 포르투갈어로 쓰고 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후, 마지막으로는 저자 자신이 프랑스어 텍스트 전문을 살펴보고 만들어낸 저작이다. 따라서 같은 제목의 책은 영어는 물론이고 포르투갈어판도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프랑스어판이 원본이라는 것이다. 다만, 본서의 내용에는 부분적으로 포르투갈어나 영어 논문으로 발표된 것이 포함돼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이미 발표된 논문의 내용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다루고, 프랑스어로 출판한 저작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저자의 최근의 주요 관심이 담긴 중요한 한 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논문으로는 強度的出自悪魔的縁組(Intensive filiation and demonic alliance)(山崎吾郎小倉拓也訳, 現代思想39권 제16, 201111)이 있는데, 그 내용도 일부 식인의 형이상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적시한다. 또 본서에 관해서는 곧 전문을 번역할 예정이다.

식인의 형이상학은 전체적으로 안티 나르키소스의 인류학적 구상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 장인 이 글에서는 레비스트로스에 의한 일련의 신화연구를 검토하면서, 거기서 보이는 인간적 생명의 질서와 반질서, 그리고 들뢰즈로 통하는 -사회학으로의 전개가 추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현대의 인류학적 과제와 조우하게 된다. 거기서는 무엇보다 우선, 브루노 라투르에서 시작되는 일련의 과학기술의 인류학과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젊은 세대의 인류학자나 철학자가 씨름하고 있는 레비스트로스의 재평가라는 움직임과도 많은 점에서 연관이 보인다. 이 글에서는 가령 파트리스 마니글리에의 레비스트로스론에 대한 많은 언급이 이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의 재검토에 씨름하면서 현대의 과학적 실천 인간-동물 관계나 생명정치학의 문제들 으로의 논의를 전개하는 프레데릭 퀙 등과도 공통하는 관심이 엿보인다.

이하에서는 해설을 대신해 201016일에 리우데자네이루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이 인터뷰는 오사카대학에서 행하는 연구 프로젝트 바이오사이언스의 시대에서의 인간의 미래バイオサイエンスの時代における人間未来의 일환으로, 2명의 번역자(槍垣立哉, 山崎吾郎)가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2시간에 걸쳐 주로 영어로 진행됐다. 인터뷰는 저자의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학문적 관심에서 시작해, 지금까지의 연구 편력, 최근의 인류학적 과제에 대한 견해, 본서에 관련된 문제관심, 현대의 특히 과학적 기술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와의 관계, 또한 향후 연구 전망에까지 미치게 됐으며, 아주 내용이 풍부한 것이었다. 특히, 최근의 인류학을 둘러싼 변화를 저자의 관점을 통해 아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에, 본인의 허락을 얻어 여기에 그 일부를 소개하는 바이다.

또한 아래의 해설에서는 비베이로스 데 카르스토의 발언으로서, 몇 가지 정리된 문장을 인용의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인터뷰의 장에서 말해진 말을, 해설자인 山崎가 내용과 관련되지 않은 범위에서 표현상의 수정을 가하고,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인용 부분에 대해서는 문장을 덧붙이거나 순서를 바꾸거나 등의 편집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번역작업이나 최소한의 편집작업은 포함돼 있으며, 그 책임은 해설자에게 귀착될 것이다. 이 해설을 쓰는 데 있어서 인터뷰를 흔쾌히 수락하고 또 이번에 그 일부를 인용하는 것을 허가해주신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이미 적은 대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씨름했던 연구는 아마존의 선주민에 관한 민족지적 조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가령 최근의 인류학이 연구대상이 되는 사회의 변화에 호응하면서 도시환경이나 개발, 나아가 과학기술, 생물의학적 실천, 금융시장 같은 주제로까지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에서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정통적인 인류학적 스타일을 답습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기서의 관심은 반드시 기존의 학문적 행위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작업이 최근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이 글(혹은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오히려 레비스트로스의 재독해를 통해 들뢰즈의 철학을 인류학에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이에 덧붙여 현대의 다양한 인류학적 연구, 그 중에서도 라투르를 효시로 하는 과학기술의 인류학적 연구와의 밀접한 관계이다.

아마존의 선주민에 관한 연구가, 왜 현대의 과학실천을 둘러싼 연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은, 현대의 인류학에 있어서 도전적인 과제의 하나인 동시에,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작업을, 남미연구라는 틀을 넘어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자신의 연구의 경력을 돌이켜봤을 때, 라투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리는 근대인인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 essai d’anthropologie symétrique)(Bruno Latour, La Découverte, 1991 ; 虚構近代」──科学人類学警告する川村久美子訳新評論OO八年 ;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갈무리, 2009)와의 만남이 큰 계기가 됐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역사적으로는, 인류학은 비서양 사람들의 연구로서 시작됐습니다. 산업화되지 않은 사회의 사람들, 혹은 미개사회에 관한 연구입니다. 그 인류학자가, 근대사회에 대해 연구하려고 시작했을 때, 즉 미국사회나 유럽사회나 일본이나 중국처럼 산업화된 커다란 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비슷한 테마에 주목했습니다. 가령 친족이나 종교에 관해 생각하려고 할 때에는, 친족체계가 영국사회에서는 어떻게 보이는가와 같은 식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좋습니다만, 그러나 거기서 인류학에 뭔가 새로운 문제의식이 초래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물이 조금 바뀌었던 것은, 인류학자가, 그 방법론을 근대사회에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 미개사회에서 중심에 있는 것, 친족이나 요술, 주술 같은 것이 근대사회에서는 무엇에 해당하는가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발 라투르가 시작한 것입니다. , 그는 인류학적 관심을 품으면서 과학의 실천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stance의 연구가 지금까지의 인류학적 연구와 매우 중요한 상호작용을 산출합니다. 왜냐하면 가령 미개사회의 샤머니즘에 대응하는 근대사회의 현상은, 결코 뉴에이지의 힐링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과학자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문화적 배치 속에, 샤머니즘에 대응하는 것은 과학자인 것입니다. 의료를 다루는 것은 미개사회에서는 샤머니즘이지만, 우리의 근대사회에서는 의사입니다. 그래서 미개사회의 샤머니즘에 관해 생각할 때 정말로 비교해야 하는 것은 근대사회의 샤머니즘이 아닙니다. 근대사회의 샤머니즘은 주변적인 현상이며, 의료야말로 우리에게서의 샤머니즘입니다. 그것은 물론 의료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니며, 우리를 둘러싼 코스몰로지의 중심적 교의가 거기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사회와 문화에서는 전통적인 사회에서 샤머니즘이 전개하는 사항을, 바로 의료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류학자로서 제 연구를 하면서, 근대사회의 과학 연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라웨테의 샤머니즘을 연구해 왔습니다만, 그때 근대사회에서의 샤머니즘 연구도 읽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에 관해 제가 정말로 흥미를 가졌던 것은, 가령 북미의 근대적 뉴에이지의 샤머니즘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게 흥미 깊었던 것은 가령 의학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안에서 중심적인 가치를 산출하는 것은 어떤 시스템인가입니다. 라투르는 우리 사회를 인류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명을 진지하게 생각한 최초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투르가 시작한 인류학적 연구 프로젝트는 대칭성이라는 키워드와 더불어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근대사회에서의 실천들과 비근대사회에서의 실천들을, 모두 같은 분석언어로 기술하는 프로젝트라고 고쳐 말할 수 있다. 거기서 라투르가 제출한 주제를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일종의 비교 방법으로서 받아들인다. , 만일 대상을 같은 방법으로 기술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로부터 우리는 테마에 의한 비교와는 상이한, 다른 비교의 가능성을 열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비교인 동시에 일종의 구조 변환으로 생각된다고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말한다. , ‘우리그들사이에 연속성이 상정되고, 그로부터 양자의 공통성을 변환의 과정으로서 파악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가령 레비스트로스로부터 인출되는 구조주의적 방법론의 하나의 전개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술연구와 과학연구, 샤먼과 과학자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며, 다른 실천으로서 영위되면서도, 거기에는 어떤 연속성이 항상 상정된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마찬가지로 사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글에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라투르의 방법론을 구조주의와 의도적으로 겹쳐서 논의를 조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현대의 인류학에서의 중요한 변화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것[대칭성]은 라투르가 고전적인 인류학을 아주 환기적으로 채용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서양의 과학은, 인류학자가 주술이나 전통적인 농업 등을 기술할 때 이용한 것과 똑같은 분석적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학은 그것 자체가 과학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술이나 종교를 기술하는 언어를 과학의 실천에 채용하면, 그 행위는 완전히 상이한 문화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라투르가 행한 것은, 이런 사항을 모두 똑같은 씨름판 위에 올리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예를 들어 아라웨테의 연구를 한 저 같은 고전적인 인류학자도, 서양의 의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됐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지구화의 한 가지 부분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뉴욕에도 파푸아뉴기니에도 브라질에도 일본에도,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더 이상 긴 여행이라는 것은 없으며, 더 이상 마르코 폴로의 시대도 아닌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했습니다.

식민주의가 종언한 것처럼 생각되고, 혹은 공식적 기획으로서 끝을 고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모종의 타자로서 생각하지 않는 한, 타자를 손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이 새삼 인식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인류학에 있어서의 타자의 파악방식을 변화시키고, 현지인, 혹은 주변성의 파악방식을 변화시키고, 동시에, 사회학자, 과학자, 철학자의 파악방식도 변화시켰습니다. 인류학자는, 문명화된 사람들도 연구하게 됐습니다. 인류학은 이렇게 보편화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인류학의 연구대상으로 될 수 있다는 상황입니다. 물론, 거꾸로 말하면, 모든 대상은 사회학, 역사학 등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샤머니즘을 배우더라도, 고전적인 인류학의 관점이 아니라, 과학의 인류학이라는 관점에서 배울 수도 있습니다. 샤먼이 어떻게 해서 신체적인 지식을 획득하는가는 점을, 병원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라는 점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전통적인 치유의 방법과, 과학의 지식생산의 방법을, 똑같은 언어를 사용해 비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것이 20년 동안에 일어난 인류학의 변화에서 보이는 새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라투르와의 영향 관계는, 들뢰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라투르가 들뢰즈를 언급하게 되는 것은 잠시 후의 일이다(예를 들어 사회를 재편하기(Bruno, Reassembling the Social : An Introduction to Actor-Network-The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05에는 리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보인다). 그러나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말을 빌리면,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언급되는 현대의 인류학자(특히 브루노 라투르, 마릴린 스트라썬, 로이 와그너)에는, 공통적인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도 말해야 할 것이 보인다. 본서는 들뢰즈의 철학을 인류학에 도입하면서, 이런 현대의 인류학의 저변에 있는 어떤 관심을 명확하게 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Marilyn Strather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마릴린 스트라썬

 

들뢰즈는 매우 중요한 인물로, 100% 들뢰지안이라는 것은 아니더라도, 라투르는 많은 영향을 들뢰즈에게서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시하는 것은, 안티 오이디푸스천 개의 고원으로, 왜냐하면 이 저작에는 고전적인 인류학의 문헌이 도처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리치(Edmund Leach), 포테스(Meyer Fortes), 레비스트로스, 빅터 터너(Victor Turner), 아프리카연구에 미국연구 등입니다. 두 명의 저자[들뢰즈와 가타리]는 인류학과 철학을 오가면서, 몽골의 연구에서 철학적 개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몽골 사람들은 철학을 하고 있다는 것도 되겠죠. 철학적인 개념을 산출하기 위해, 토착 개념을 이용하는 것이니까,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이 삼각관계,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라투르에 의한 근대사회의 인류학, 제가 관계하고 있는 전통적인 사회의 연구, 들뢰즈와 가타리 같은 철학자(거기에서는 인류학과 철학의 구별은 더 이상 없습니다)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와 인간의 실천적 삶을 연결시키는 것, 이런 방식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들뢰즈를 읽기 시작한 것은, 동시대였다고 한다. 대학 입학이 1968년이며, 당시는 맑스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사회학의 클래스에 소속하면서, 레비스트로스나 포스트구조주의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상적 전개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다. 그 한 가지 배경으로서, 당시 브라질의 하이컬쳐(high culture), 영어권보다 훨씬 프랑스어권으로부터의 영향이 강하고, 실질적으로 프라스의 문화적 영향 하에 있으며, 그것이 현재의 작업이나 관심에도 영향을 줬다고 술회하고 있다.

 

저는 이른 시기부터, 70년대부터 들뢰즈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인류학 공부를 시작하고, 들뢰즈를 읽는 것은 완전히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라투르의 책과 만났을 때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는 책입니다 프랑스의 사상60년대 이후 새로운 것도 없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겨우 겨우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라투르가 아주 중요한 들뢰즈적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들뢰즈를 다시 읽을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자고 말이죠. 그때까지 20년 동안은, 오로지 인류학 문헌밖에는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삼 들뢰즈를 읽어보니,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스트라썬이나 와그너와의 공통성이라는 것은, 영향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시대정신 같은 것으로 68년 이후의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들뢰즈를 통해 인류학 속에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한 것은, 스트라썬이나 와그너, 혹은 라투르를, 들뢰즈를 실마리로 삼아 독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대칭적인 방식으로, 그의 철학을 인류학에 재차 도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연(縁組, 결혼, 혼인)이라는 개념을 들뢰즈는 사용합니다만, 이것은 인류학에서 온 개념입니다. 저는 그것을 다시 인류학의 맥락에 들여오려고 했습니다.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작업에 관련해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 멀티내추럴리즘(multinaturalisme)이나 퍼스펙티비즘(perspectivism)이라는 사고방식도, 이런 들뢰즈 독해와 관련되어 있다. 다만 그것은 반드시 들뢰즈로부터 직접 인출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나중이 되어 들뢰즈와 결합하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개념들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민족지적인 관심, 아라웨테의 세계관에 관련된 연구에서 착상되고, 무엇보다 그들의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인 카니발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해두자. 본서의 제목은, 반드시 저자의 발안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기는 해도 거기에는 자기와 타자와 재파악 같은 현대의 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숨어 있다.

아라웨테투피어족(語族)에 속하며, 그들에게는, 예를 들어 몽테뉴의 에세에서의 서술을 통해, 식인의 의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아라웨테는 전쟁에서 죽인 적을 먹는다는 의례적인 식인은 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카니발리즘은, 그들의 종교 속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비데이로스 데 카스트로는 파악한다. 본서의 제목에 담겨 있는 식인의 주제는, 이런 카니발리즘의 고전적 의미를, 현대의 실천 속에 하나의 사상적 과제로서 독해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카니발리즘은, 그들의 종교 속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혼이 죽는다는 것은 신이 그것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이 아니라, 신이 카니발리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먹음으로써, 신으로 모습을 바꾼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 필드연구(fieldwork)를 한창 하고 있는 중에 만났고, 여기에는 어떤 역사적인 연결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1000년 전에 그들의 조상이 행했던, 현실의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카니발리즘의 구조전환처럼 보입니다. 이런 카니발리즘을,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다른 카니발리즘으로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투피남바(Tupinambá)의 행동방식은 적을 붙잡아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만, 그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 아니라, 좋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죠. 만약 그런 과거에 행해졌던 카니발리즘의 이유를 알려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나중 시대의 코스몰로지컬하고 상상적인 카니발리즘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아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제게는, 자기와 타자, 자기와 적에 관련된 아주 특유한 개념이, 양자에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인류학적 구상은, 지금까지의 인류학에 대해, 어떤 위상을 갖는 것일까? 현대의 인류학이, 지금까지처럼 비서양사회나, 비근대사회, 이윽고 미개사회를 연구할 뿐만이 아니게 됐을 때, 인류학의 고유한 문제의식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본서에서 보이는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시도는, 이러한 일견 다양화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인류학의 연구 속에, 공통적인 관심을 찾아내며, 그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그때, 직접적으로는, 레비스트로스나 구조주의라고 불린 방법론의 재검토가 이뤄지며, 그것을 들뢰즈와의 관련에서 독해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그러나 그것은, 비근대적이고 전통적인 사회의 질서를 기술한다는 인류학의 잘 알려진 주제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예를 들어 과학지식의 생산이나, 생산된 과학 지식을 사용해 사회를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의 재파악, 혹은 우리 눈앞에 있는 대상을 다른 식으로 사고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려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파악하려고 하는 현대의 인류학적 과제 예를 들어 과학적 실천에 뒤따르는 인간상의 변경이나 생명정치적 상황에서의 삶의 방식, 비인간적 존재와의 공생 같은 주제 에도, 중요한 공헌을 가져다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가, 자신의 기획을 칸트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언급한 다음의 대목을 인용하고 싶다.

 

제 자신이 칸트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인류학(인간학)이라는 것은 완전히 칸트의 논의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셈이니까, 인류학이라는 명칭은 칸트가 명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를 포함해, 위대한 인류학자는 모두 칸트주의자입니다. 뒤르켐도, 모스도, 레비-브륄도, 그리고 물론 레비스트로스도. , 인류학은, 예컨대 분류라든가 범주라는 것을 통해, 칸트의 문제에 따라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조금 거리를 취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기서 들뢰즈가, 비칸트적인 인류학이라는 것을 구상할 때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이외의 것에 눈을 돌리고, 자연에 귀속해도 좋습니다만, 칸트적 인식론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학을 자연철학의 일부로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든가, 무엇을 기대하는가 등의 물음과는 다른 물음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근대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물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그런 논의는 다소 불모의 것이 되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인간 이외의 생물들이 많으며, 인간 이외의 종도, 그들의 살기 방식으로 세계를 잘라서 나누는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인간과는 다른 형식의 삶이라는 것에 눈을 돌려도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칸트적 인류학의 기원으로부터 거리를 두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것은 경의를 동반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야마자키 고로山崎吾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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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a été beaucoup question du structuralisme dans ce livre ; et pour cause. Le structuralisme lévi-straussien doit être compris comme une transformation structurelle de la pensée amérindienne : il est le résultat d'une inflexion subie par cette pensée dans la mesure où elle s'est laissée filtrer par des problèmes et des concepts caractéristiques de la logopoiesis occidentale (le même et l'autre, le continu et le discret, le sensible et l'intelligible, la nature et la culture ... ), selon un mouvement d'équivocité contrôlée, en équilibre instable, constamment fécondé par la trahison et par la corruption. Je reprends ainsi la thèse énoncée au début de l'essai (supra, p. 6), sur la condition traductive intrinsèque de l'anthropologie, discours conceptuellement codéterminé par les discours sur lesquels il discourt. Il serait tout aussi malavisé de considérer l'anthropologie de Lévi-Strauss sans tenir compte des conditions dans lesquelles elle s'est constituée au contact de la linguistique de Saussure ou de la morphologie de d' Arcy Thompson que de la séparer de l'expérience formatrice vécue par l'auteur auprès des peuples amérindiens, autant sur le terrain que dans les bibliothèques. Les «soubassements amérindiens du structuralisme» pour reprendre A.-C. Taylor, ne peuvent être ignorés sans perdre une dimension vitale pour la compréhension de l'œuvre de Lévi-Strauss dans son intégralité. Cela ne veut aucunement dire que la validité des problèmes et des concepts proposés par cet anthropologue se restreint à une « aire culturelle», aussi vaste qu'elle soit, mais bien au contraire. L'œuvre de Lévi-Strauss est le moment où la pensée amérindienne émet son coup de dés : par les bons offices de son grand médiateur conceptuel, elle y dépasse pour de bon son propre « contexte » et se montre capable de donner à penser à autrui, à tout un chacun qui, Persan ou Français, se dispose à penser - sans plus, et sans au-delà.

This book’s question has often been the status of structuralism, and for good reason. Levi-Strauss’ structuralism ought to be understood as a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Amerindian thought the result of an inflection sustained by the latter inasmuch as it was amenable to being filtered through problems and concepts characteristic of Occidental logopoiesis (the same and the other, the continuous and the discrete, the sensible and the intelligible, nature and culture...), according to a movement of controlled equivocation and unstable equilibrium incessandy fertilized by corrupting translations. I will thus reprise my thesis from the first chapter concerning the intrinsically translational condition of anthropology, a discourse conceptually codetermined by the discourse about which it discourses. It would be inadvisable to consider Levi-Strauss’ anthropology without accounting for the conditions of its constitution, which is to say his contact with Saussurean linguistics or d’Arcy Thompsons morphology as well as the formative experience of living among Amerindian peoples, as much in the field as the library. “The Amerindian foundations of structuralism,” to employ Anne-Christine Taylor’s formula again, can be ignored only at the cost of losing a dimension vital for understanding Levi-Strauss’ work in its integrality. Which does not at all mean that the issue of the validity of its problems and concepts can be restricted to considerations of some “cultural atmosphere,” however vast. No, Levi-Strauss’ work is on the contrary the moment when Amerindian thought casts its roll of the dice: through the good offices of its great conceptual mediator, it exceeds its own context and proves itself capable of inciting thought in the other, in everyone who, Persian or French, is prepared to thinknothing more, nothing less.

 

La grande question qui s'ouvre aujourd'hui dans le processus de réévaluation de l'héritage intellectuel de Lévi-Strauss est celle de décider si le structuralisme est un ou multiple, ou, pour utiliser une polarité lévi-straussienne, s'il est continu ou discontinu. Sans cesser d'être d'accord avec les interprètes qui sont d'accord avec Lévi-Strauss, c'est-à-dire, ceux qui voient son œuvre comme étant marquée par une profonde unité d'inspiration et de méthode, je vois la personnalité théorique du structuralisme et de son auteur comme étant divisée - mais non pas opposée - en deux jumeaux éternellement inégaux, un héros culturel et un décepteur, le personnage de la médiation (mais qui est également celui qui instaure le discret et l'ordre) et le contre-personnage de la séparation (mais qui est en même temps le maître du chromatisme et du désordre). Il y a bel et. bien deux structuralismes, mais, comme Lévi-Strauss l'a montré lui-même, deux c'est toujours plus que deux.

The big question opened up by the current reevaluation of the intellectual heritage of Levi-Strauss is that of deciding if structuralism is one or multipleor, to employ one of the great Levi-Straussian dichotomies, continuous or discontinuous. Without ceasing to be in agreement with the interpreters who are in agreement with Levi-Strauss about his work having a single inspiration and method, I see the theoretical personality of structuralism and its author as being divided into two, eternally unequalbut not opposedtwins: a cultural hero and a deceiver; a persona, on the one hand, of mediation (who just as much establishes order and the discrete) and, on the other, a counterpersona of separation (who is also at the same time the master of chromaticism and disorder). There really are two structuralisms. But as Levi-Strauss himself showed, two is always more than two.

 

Nous commenc;ons, en effet, a nous rendre compte que l’αuvre de Levi-Strauss collabore activement, et ce, depuis ses debuts, avec ce qui semblera participer a sa subversion future. Prenons par exemple l'idee selon laquelle l’anthropologie structurale utilise une methode plutot de transformations que de fluxions 》 ( cf. ci-dessus p. 118). Elle est devenue, tout au long de l’reuvre de Levi-Strauss, une verite assez approximative, vu que la notion cle de transformation a elle-meme subi une transforma­ tion progressive : en premier lieu, elle a commence par prendre le dessus sur la notion de structure ; en second lieu, elle s’est revetue graduellement d'un habit de plus en plus analogique, plus proche des fluxions dynamiques que des permutations algebriques. Cette transition conceptuelle est elle-meme chromatique, faite de petits deplacements, de quelques brefs retours en arrire, mais sa ligne directrice generale est claire. Le point d’inflexion de la courbe est situe, il me semble, entre le premier et le second volume des M ythologiques. En effet, une curieuse note de bas de page dans Du miel aux cendres est sans doute le premier indice explicite du changement :

We are beginning to grasp that Levi-Strauss’ oeuvre is in active collaboration (and was so from its very beginning) with its future subversions. We can take as an example the idea that structural anthropology employs “a transformational rather than fluxional method.” (See page 147) This became, throughout Levi-Strauss’ work, a true enough approximation, as this key concept of transformation was itself submitted to a progressive transformation ... first, by gaining the upper hand over structure and, second, by gradually getting redressed in an outfit that is more and more analogical, and closer to dynamic fluxes than algebraic permutations. This conceptual transition is itself chromatic, being composed of small displacements and brief returns to the background, but its guiding thread is clear. The curve’s point of inflection can be located, it seems to me, somewhere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volumes of the Mythologiques. A rather curious footnote in From Honey to Ashes is probably the first explicit indication of this change:

 

Leach nous a reproché ... de faire exclusivement appel à des schémas binaires. Comme si la notion même de transformation, dont nous faisons un si constant usage après l'avoir empruntée à d' Arcy Wentworth Thompson, ne relevait tout entière du domaine de l'analogie ... (L.-S., 1966 : 74, n. l ).

Leach has accused me of [...] using exclusively binary patterns. As if the very notion of the transformation of which I make constant use and which I borrowed in the first instance from d’Arcy Wentworth Thompson were not entirely dependent on analogy... (1973: 90, n. 12)

 

Vingt ans plus tard, l'idée se voit réaffirmée par l'auteur : la notion ne lui est venue ni de la logique ni de la linguistique, mais bien du grand naturaliste d' Arcy W. Thompson et, en filigrane, de Goethe et de Dürer (L.-S. et Éribon, 1988: 158-159). La transformation est maintenant une opération esthétique et dynamique et non plus logique et algébrique. Avec cela, l'opposition entre les paradigmes conceptuels centraux de la phase classique du structuralisme, tels que {totémisme, mythe, discontinuité} vs {sacrifice, rite, continuité}, devient beaucoup plus fluide et instable que ce que l'auteur continuera, néanmoins, à affirmer dans certains passages de la phase postérieure de l'œuvre, comme dans la célèbre opposition entre mythe et rite du « Finale » de L'homme nu.

An interview given over twenty years later sees Levi-Strauss confirming that the notion derives not from logic or linguistics but from the great naturalist d’Arcy W. Thompson as well as, implicitly, Goethe and Diirer (Levi-Strauss and Eribon 1991: 113-14). Transformation transforms into an aesthetic and dynamicnot logical and algebraicoperation. And with that, the opposition between the central conceptual paradigms of the classic phase of structuralism{totemism, myth, discontinuity} vs. {sacrifice, ritual, continuity}becomes far more fluid and unstable than what their author will nonetheless continue saying about it in certain passages from the later phase of his work, such as the celebrated discussion of the myth-ritual opposition found in the “Finale” of The Naked Man.

 

Le partage des eaux se situe clairement entre, d'un côté, l'algèbre finitaire convenant aux contenus de la parenté et, de l'autre, la forme intensive du mythe

The parting of the waters is clearly located between, on one side, the finite algebra that was appropriate for the contents of kinship and, on the other, the intensive form of myth:

 

 

Le problème posé dans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 relevait directement de l'algèbre et de la théorie des groupes de substitutions. Ceux posés par la mythologie semblent indissociables des formes esthétiques qui les objectivent. Or celles-ci appartiennent à la fois au continu et au discontinu... (L.-S. et Éribon, 1988 : 192).

The problem raised in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was directly related to algebra and the theory of groups and substitutions. The problems raised by mythology seem impossible to dissociate from the aesthetic forms in which they are objectified. Now these forms are both continuous and discontinuous.... (Levi-Strauss and Eribon 1991: 137-38)

 

La conclusion que l'on peut tirer c'est que la notion structuraliste de transformation a connu une double transformation, historique et structurelle - en vérité, une seule transformation complexe, une double torsion qui l'a transformée en une opération simultanément «historique» et « structurale». Ce changement est dû en partie à l'influence, sur Lévi-Strauss, des nouvelles interprétations mathématiques disponibles (Thom, Petitot); mais, surtout, je pense, au changement du type d'objet privilégié par son anthropologie. À partir d'une figure initiale de caractère principalement algébrico-combinatoire, la transformation s'est progressivement déformée et autodéphasée, pour finir par devenir une figure aux caractéristiques beaucoup plus topologiques et dynamiques que ce qu'elle était dans sa première mouture. Les frontières entre permutation syntaxique et innovation sémantique, déplacement logique et condensation morphogénétique, se sont faites plus tortueuses, contestées, compliquées - plus fractales. L'opposition entre forme et force (les transformations et les fluxions) a perdu ses contours et, d'une certaine manière, s'est affaiblie.

We can draw the conclusion that the structuralist notion of transformation underwent a double, at once historical and structural, transformationin truth, a single but complex transformation, a double twist that transformed it into a simultaneously “historical” and “structural” operation. This change owed much to the then-novel influence of mathematical innovations, like those of Thom and Petitot, exercised on Levi-Strauss; but of far greater importance, I believe, was the fact that the kind of object his anthropology privileged changed. After getting an algebraic-combinatory figuration in the early work, transformation is progressively deformed and self-dephased, and ends up becoming a figure whose characteristics are more topological and dynamic than they were in that first draft. The borders between syntactical permutation and semantic innovation, logical displacement and morphogenetic condensation are rendered more torturous, contested, and complicatedin effect, more fractal. The opposition between form and force (between transformations and fluxions) loses its contours and in a certain way is weakened.


Cela ne signifie pas que Lévi-Strauss monte en épingle un tel changement, ni qu'il s'y attarde, au-delà de la réflexion citée cidessus au sujet des différents problèmes traités par la méthode structurale. Au contraire, sa tendance a toujours été de souligner « la continuité du programme que nous suivons méthodiquement depuis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 » (1964 : 17). Continuité - notion ambivalente s'il en est, dans le vocabulaire structuraliste ...

This does not mean that Levi-Strauss emphasizes this change, or goes back on it, apart from his reflections on the subject of different problems treated by structural method. On the contrary, his tendency was always to emphasize “the continuity of the program I have been pursuing since I wrote The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L.-S. 1969: 9). Continuity being, if there is one, an ambivalent notion in the vocabulary of structuralism.

 

Or, il est évident que Lévi-Strauss a raison ; il serait un peu ridicule de vouloir le corriger sur lui-même. Mais l'insistance du maître français sur l'unité de l'inspiration de son œuvre ne doit pas nous dispenser de proposer, en bons structuralistes, une lecture de cette œuvre en clé de discontinuité ; moins cependant pour insister sur des ruptures ou des coupures univoques que pour suggérer une coexistence complexe ou une superposition intensive d' « états » du discours structural.

Now it should be obvious that Levi-Strauss was right; it would be a little ridiculous to correct him on what he had to say about himself. But the French master’s insistence on the unity of inspiration underlying his work should not prevent us from proposing, as good structuralists would, that he be read in the key of continuity; less, though, in order to insist on unequivocal breaks or ruptures in his work than to suggest a complex coexistence or even intensive superposition of the “states” of structural discourse.

 

Les discontinuités du projet structuraliste peuvent être distribuées dans les deux dimensions classiques : sur l'axe des successions, suivant l'idée que différentes phases jalonnent l'œuvre lévistraussienne ; et sur l'axe des coexistences, selon l'idée que cette œuvre énonce un double discours, qu'elle décrit un double mouvement. Les deux discontinuités coexistent dans la mesure où les moments de l'œuvre se distinguent par l'importance donnée à chacun des deux mouvements, opposés en contrepoint tout au long de celle-ci.

The discontinuities in the structuralist project could be distributed along two classic dimensions: on an axis of successions, following the idea that Levi-Strauss’ oeuvre is composed of successive phases; and on an axis of coexistences, following the idea that it enunciates a double discourse, and describes a double movement. The two discontinuities would then coexist to the extent that the oeuvre’s moments can be distinguished on the basis of the importance each grants to two movements opposed in counterpoint throughout it.

 

*

Commençons par la diachronie en disant que le structuralisme est comme le totémisme : il n'a jamais existé. Ou, plus exactement, tout comme le totémisme, son mode d'existence n'est pas celui des substances, mais bien celui des différences. En l'occurrence, la différence, souvent remarquée par les commentateurs, existant entre la première phase de l'œuvre de LéviStrauss, représentée par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 (196711949) et que l'on pourrait appeler préstructuraliste, et la seconde phase, post-structuraliste, associée aux Mythologiques (1964-1971) et les trois monographies subséquentes; La voie des masques (1979), La potière jalouse (1985) et Histoire de Lynx(1991).

We can start with diachrony, with the argument that structuralism is just like totemism: it never existed. Or to be more precise, like totemism, its mode of existence is not that of substances, but differences. In this case, the difference is, as the commentaries often remark, between the first of Levi-Strauss’ phases, that of the 1949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which could be called prestructuralist, and a second, poststructuralist phase associated with the 1964-1971 Mythologiques and the three monographs that follow1979 s The Way of The Masks, 1985’s The Jealous Potter, and the late, 1991 text The Story of Lynx.

 

Je dis que la seconde phase serait post-structuraliste parce que c'est avant elle que s'inscrit le bref moment indiscutablement « structuraliste» de l'œuvre, représenté par les deux études sur le problème totémique, que l'auteur décrit lui-même comme marquant une pause (une discontinuité) entre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et les Mythologiques. C'est dans les livres de 1962, en effet, que Lévi-Strauss identifie la pensée sauvage, autrement dit, les conditions concrètes de la sémiose humaine, à une gigantesque et systématique entreprise d'ordonnancement du monde, et élève le totémisme, jusqu'alors emblème de l'irrationalité primitive, au statut de parangon de toute activité n1tionnelle. C'est à ce moment de l'œuvre que le jugement malveillant de Deleuze et Guattari (1980 : 289) semble le mieux s'appliquer : « Le structuralisme est une grande révolution, le monde entier devient plus raisonnable. »

This second phase can be considered poststructuralist because the brief, indisputably “structuralist” moment of the pair of studies on totemism precede it; books Levi-Strauss himself described as constituting a pausea discontinuitybetween The Elementary Structures and the Mythologiques. These 1962 texts are where Levi-Strauss identifies savage thought (in other words, the concrete conditions of human semiosis) with a gigantic, systematic enterprise of arranging the world, and also raises totemism, which had until then been the emblem of primitive irrationality, to the stature of the paragon of all rational activity. It is at this moment in the oeuvre that a certain malicious judgment of Deleuze and Guattari seems most applicable: “Structuralism represents a great revolution; the whole world becomes more rational” (1987: 237).

 

En effet, il serait possible de faire à La pensée sauvage une objection semblable à celle que Deleuze avait formulée contre la philosophie critique, à savoir que le champ transcendantal kantien est « décalqué » de la forme empirique de la représentation, en étant construit par une sorte de rétroprojection du conditionné sur la condition. Dans le cas de Lévi-Strauss, on dirait que la pensée sauvage a été décalquée de la forme la plus rationalisée de la pensée domestiquée, à savoir, la science (« il existe deux modes distincts de pensée scientifique ... » [L.-S., 1962 b : 24]), alors qu'il aurait été nécessaire, au contraire, de construire le concept d'une pensée proprement sauvage, c'est-à-dire, qui ne ressemble en rien à sa version domestiquée (domestiquée, rappelons-le, «en vue d'obtenir un rendement» - ibid. : 289) 1Mais un esprit plus conciliant pourrait aussi pondérer cette idée que, avec le structuralisme, le monde ne devient pas plus raisonnable sans que la raison ne devienne autre chose ... plus mondaine peut-être, au sens de plus séculière, plus populaire. Mais plus artiste aussi, moins utilitaire, moins rentable.

0 In effect, it would be possible to raise an objection to The Savage Mind similar to the one Deleuze made against critical philosophy, which is that the Kantian transcendental field is traced from the empirical form of representation, on account of having been constructed through a sort of retrospective projection of the conditioned onto the condition. In Levi-Strauss’ case, the savage mind could be regarded as having been traced from the most rationalist form of domestic thoughtscience (“there are two distinct modes of scientific thought” [L.-S. 1966: 15]) even though it would have been necessary, on the contrary, to construct the concept of a properly savage thought not at all resembling its domesticated version (domesticated, it should be recalled, “for the purpose of yieldinga return” (LS 1966: 219).5 But one could also, in a more conciliatory spirit, entertain the idea that with structuralism, the world does not become more rational unless the rational at the same time becomes something else ... something more worldly, perhaps, in the sense of in-the world and popular. But also more aesthetic, and less utilitarian and profitable.

 

1. Deleuze (D., 1974) nous rappelle que, pour Spinoza, la différence« entre un cheval de course et un cheval de labour ... peut être pensée peut-être comme plus grande que la différence entre un cheval de labour et un bœuf».

 

L'idée selon laquelle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 est un livre préstructuraliste doit être comprise, évidemment, par rapport aux travaux postérieurs de Lévi-Strauss lui-même, et est quand même à prendre avec des pincettes. De toute façon, je pense que des anthropologues de la portée d'un David Schneider ou d'un Louis Dumont ont raison de classer ainsi l'ouvrage de 1949, organisé comme il l'est autour des deux dichotomies fondatrices des sciences humaines, Individu et Société, d'une part - le problème de l'intégration et de la totalisation sociales -, et Nature et Culture, de l'autre - le problème de l'instinct et de l'institution. Les Lumières et le Romantisme - Hobbes et Herder, disons; ou si l'on veut des éponymes plus récents, Durkheim et Boas1 Le problème de Lévi-Strauss, dans son premier grand livre, est le problème « anthropologique » par excellence, celui de l'hominisation : l'émergence de la synthèse de la culture comme transcendance de la nature. Et «le groupe», c'est-à-dire, la Société, se maintient comme sujet transcendantal et cause finale de tous les phénomènes analysés. Cela, bien sûr, jusqu'au dernier chapitre du livre, quand, comme le souligne Maniglier (2005 a), tout semble soudain se dissoudre dans la contingence :

The idea that The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is a prestructuralist book should be understood, obviously, with reference to the late works of Levi-Strauss, but will all the same have to be approached with surgical delicacy. In any case, I think that anthropologists of the caliber of David Schneider or Louis Dumont were right to categorize the 1949 text in this way, organized as it is around two of the founding dichotomies of the human sciences: the individual and society, on the one handthe problem of social integration and totalizationand, on the other, Nature and Culture, the problem of instinct and institution. In other words, at the heart of The Structures lies the difference between the Enlightenment and Romanticismbetween Hobbes and Herder, that is, or if more recent eponyms would be preferable, between Durkheim and Boas.6 In his first great work, Levi-Strauss’ focus is the consummate anthropological problem of hominization: the emergence of the synthesis of culture as the transcendence of nature. And the “group,” or Society, is maintained as the transcendental subject and final cause of every one of the phenomena under consideration. At least, of course, until the book’s final chapter, when all of that, as Maniglier has emphasized, is suddenly dissolved into contingency:

 

 

Les multiples règles interdisant ou prescrivant certains types de conjoints, et la prohibition de l'inceste qui les résume toutes, s'éclairent à partir du moment où l'on pose qu'il faut que la société soit. Mais la société aurait pu ne pas être (L.-S., 1967/1949: 561).

The multiple rules prohibiting or prescribing certain types of spouse, and the prohibition of incest, which embodies them all, become clear as soon as one grants that society must exist. But society might not have been. (L.-S. 1969: 490)

 

1. En médiateur de ces polarités, naturellement, on trouve Rousseau, ce trickster philosophique que Lévi-Strauss n'a pas choisi pour saint patron par hasard.

 

Et s'ensuit le grandiose développement conclusif, où il est établi à la fois que la société est coextensive à la pensée symbolique et non pas sa cause antécédente ou sa raison d'être, que la sociologie de la parenté est une sous-division de la sémiologie (tout échange est échange de signes, c'est-à-dire, de perspectives), et que tout ordre humain contient en soi une impulsion permanente de contrordre. Ces derniers accords marquent l'entrée, encore en sourdine, de ce que l'on pourrait appeler la deuxième voix du discours anthropologique de Lévi-Strauss, au moment où la sociologie de la parenté commence à faire une place à une « antisociologie »1, c'est-à-dire, à une économie cosmopolitique - en d'autres mots, au régime du plan d'immanence amérindien qui sera tracé dans les Mythologiques.

What follows is the great conclusive development in which it is at once established that society is coextensive with symbolic thought (and not its antecendent cause or raison d'etre), that the sociology of kinship is a subdivision of semiology (every exchange is an exchange of signs; that is, of perspectives), and that all human order contains in itself a permanent impetus toward counter-order. These latter statements mark the appearance, still surreptitious, of what could be called Levi-Strauss’ other, second voice, the moment when the sociology of kinship begins to give way to an “anti-sociology,”7 which is to say a cosmopolitical economy to the regime, in other words, of the Amerindian plane of immanence that will be drawn in the Mythologiques.

 

Car c'est avec les Mythologiques que l'inversion de l'ordre des voix se complète - ou mieux, qu'elle se complète presque; il n'aurait vraiment pas été nécessaire d'aller plus loin: comme Moïse et la Terre promise ... La notion de société se voit désinvestie au profit d'une attention portée systématiquement sur les transformations narratives intersociétaires; l'opposition Nature/Culture cesse d'être une condition anthropologique universelle (objective ou subjective) pour devenir un thème mythique, interne à la pensée indigène - thème dont l'ambivalence dans cette pensée, par ailleurs, ne fera que croître dans chaque volume de la série ; et les objets algébriformes appelés « structures» prennent des contours plus fluides, en dérivant, comme nous l'avons dit, vers une notion analogique de la transformation 2 Les relations qui constituent les récits amérindiens, plutôt que de former des totalités combinatoires en distribution discrète, en variation concomitante et en tension représentationnelle avec les realia socioethnographiques, exhibent de façon exemplaire les principes de « connexion et hétérogénéité », « multiplicité », « rupture assignifiante » et « cartographie » que Deleuze et Guattari contraposeront aux modèles structuraux au nom du concept de « rhizome » - ce concept qui était supposé être le nom propre de l'anti-structure, le cri de guerre du post-structuralisme.

For it is with the Mythologiques that the inversion of the hierarchy between these voices is completedor better, almost completed; it was probably not truly necessary to go any further: to take up Mauss’ formula again, Levi-Strauss was a Moses looking at the Promised Land.... The notion of society sees itself disin-vested from in favor of a systematic focus on intersocietal narrative transformations; the Nature/Culture opposition ceases to be a universal (objective or subjective) anthropological condition and becomes a mythic theme internal to indigenous thought, a theme whose ambivalent status in said thought only deepens from volume to volume of the series; and those algebriform objects called “structures” assume more fluid contours, drifting, as we saw, toward an analogical notion of transformation.8 And finally, instead of forming discretely distributed combinatory totalities having a concomitant variation and being in relational tension with socioethnographic realia, the relations constituting Amerindian myths evince, in exemplary fashion, the very principles of “connection and heterogeneity,” “multiplicity,” “asignify-ing rupture,” and “cartography” that Deleuze and Guattari counterpose to structural models in the name of the rhizomethe concept supposed to have been anti-structure’s proper name, and that became the battle-cry of Poststructuralism.

 

1. «[Il faut] renoncer à l'idée que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sont un grand livre de sociologie, et admettre qu'il s'agit bien plutôt de dissoudre la sociologie» (Maniglier, 2005 b : 768).

2. Le mot « structure » lui-même est soumis à un régime de variation continue, cohabitant sans grands distinguos sémantiques avec «schéma», «système», «armature» et congénères (voir par. ex. les légendes des diagrammes très inventifs qui agrémentent les Mythologiques).

 

 

La marche démonstrative des Mythologiques, en effet, est celle d'une transversalité hétérogénétique généralisée, où le mythe d'un peuple transforme le rituel d'un deuxième peuple et la technique d'un troisième peuple; où l'organisation sociale des uns est la peinture corporelle des autres (comment faire la navette entre la cosmologie et la cosmétologie sans quitter le politique) ; et où la rondeur géométrique de la terre de la mythologie est constamment court-circuitée par sa porosité géologique, grâce à laquelle les transformations semblent sauter entre des points extrêmes du continent américain, jaillissant par-ci par-là comme des éruptions ponctuelles d'un océan souterrain de magma1.

The demonstrative itinerary of the Mythologiques is effectively that of a generalized heterogeneous transversality wherein the myth of one people transforms another’s ritual and the technics of a third, the social organization of one is the body-painting of another (a.k.a., how to shuttle between cosmology and cosmetology without leaving politics), and the geometric curve of the Earth of mythology is constantly short-circuited by its geological porosity ... on account of which the transformations appear to leap distant points on the Amerindian continent, spurting up here and there like isolated eruptions of a subterranean lava-sea.9

 

1. Un des paradoxes les plus intéressants du système mythique panaméricain est la combinaison entre une dense connectivité métonymique du réseau transformationnel et la présence d' «effets d'action à distance», comme ceux qui font que les récits de peuples du Brésil central réapparaissent parmi les tribus de l'Oregon et de Washington.

 

Pierre Clastres disait que le structuralisme était «une sociologie sans société» ; si c'est exact - et Clastres le formulait comme un reproche - alors, avec les Mythologiques, nous avons un structuralisme sans structure - et je le dis comme un compliment. Toute personne disposée à faire le périple entre Le cru et le cuit et Histoire de Lynx constatera que la mythologie amérindienne cartographiée par la série ne relève pas de l'arbre, mais du rhizome : elle est une gigantesque toile sans centre ni origine, un méga-agencement collectif et immémorial d'énonciation disposé dans un «hyperespace» (L.-S., .1967 : 84) incessamment traversé par des «flux sémiotiques, flux matériels et flux sociaux» (D. G., 1980 : 33-34); un réseau rhizomatique parcouru par diverses lignes de structuration, mais qui est, dans sa multiplicité in-terminable et sa contingence historique radicale, irréductible à une loi unificatrice et impossible à représenter par une structure arborescente. Il existe d'innombrables structures dans les mythes amérindiens, mais il n'y a pas une structure du mythe amérindien - il n'y a pas de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mythologie.

Pierre Clastres said that structuralism was “a sociology without society”; if this is accurateand for Clastres, it was a reproach then we encounter in the Mythologiques a structuralism without structure, which for me is a compliment. Anyone inclined to take the long trek that leads from The Raw and The Cooked to The Story of Lynx will notice that the Amerindian mythology charted in the series does not grow from a tree but a rhizome: it is a gigantic canvas with neither center nor origin, a collective and immemorial mega-assemblage of enunciation arranged in a “hyper-space” (L.-S. 1979: 105) endlessly traversed by “semiotic flows, material flows, and social flows” (D. G. 1987: 22-3); a rhizomatic network shot through with diverse lines of structuration but that is, in its interminable multiplicity and radical historical contingency, irreducible to a unifying law and impossible to represent via an arborescent structure. There exist innumerable structures in Amerindian myths, but there is not a (single) structure o/Amerindian myth. No “elementary structures of mythology.”

 

La mythologie amérindienne, enfin, est une multiplicité ouverte, une multiplicité à n - 1, ou disons plutôt à « M_ 1 », en hommage au mythe de référence, Mi, le mythe bororo qui, comme on le constate très tôt dans Le cru et le cuit, n'était qu'une version inversée et affaiblie des mythes gé qui s'ensui-vaient (M 7 . 12 ). Le mythe de référence est ainsi un mythe quelconque, un mythe «sans références», un m - 1, comme tout mythe. Car tout mythe est une version d'un autre mythe, tout autre mythe s'ouvre sur un troisième et un quatrième mythe, et les n - 1 mythes de l'Amérique indigène n'expriment pas une origine, ni ne désignent un destin: ils n'ont pas de référence. Discours sur les origines, le mythe est précisément ce qui se dérobe à une origine. Le « mythe » de la référence cède sa place au sens du mythe, au mythe comme machine de sens : un instrument pour convertir un code en un autre, pour projeter un problème sur un problème analogue, pour faire « circuler la référence» (dirait Latour), contre-effectuer le sens de façon anagrammatique.

In the end, Amerindian mythology is an open multiplicity or multiplicity at n-1or better still, we could say, at M-l, in homage to the reference myth Ml, the Bororo myth that, as we discover very early on in The Raw and The Cooked, was only an inverted, weakened version of the Ge myths that follow it (M7-12). The reference myth is thus “any myth,” a myth “without references,” an M-l, like all myth. For every myth is a version of another, which in turn opens to a third and fourth myth, and the n-1 myths of indigenous America neither express an origin nor point to a destiny: they are without reference. A discourse on origins, myth is nonetheless precisely that which throws off the origin. The reference “myth” gives way to the sense of myth, to myth as sense machine: to myth as an instrument for converting one code to another, for projecting one problem onto an analogous problem, and for making “reference circulate” (as Latour would say), anagrammatically counter-effectuating sense.

 

On a également beaucoup parlé de traduction dans ce livre. La première approche du concept de mythe esquissée par LéviStrauss mettait en valeur sa traductibilité intégrale : « On pourrait définir le mythe comme ce mode du discours où la valeur de la formule traduttore, traditore tend pratiquement à zéro » (L.-S., 1958/1955 : 232). Dans L'homme nu, la définition est élargie et va du plan sémantique au plan pragmatique ; nous apprenons alors que plus que seulement traduisible, le mythe est, avant tout, traduction :

Translation has been equally at issue in the present book. The first approach Levi-Strauss outlines to the concept of myth emphasizes its full translatability: “Myth is the part of language where the formula tradutore, tradittore reaches its lowest truth value” (L.-S. 1963: 210). In The Naked Man, the definition is expanded, and transferred from the semantic to the pragmatic plane.

 

 

Tout mythe est par nature une traduction [. .. ] il se situe, non pas dans une langue et dans une culture ou sous-culture, mais au point d'articulation de celles-ci avec d'autres langues et d'autres cultures. Le mythe n'est jamais de sa langue, il est une perspective sur une langue autre ... (Id., 1971 : 576-577).

We learn at that point that far from being merely translatable, myth is primarily translation-.

Properly speaking, there is never any original: every myth is by its very nature a translation [...] it does not exist in a language and in a culture or subculture, but at their point of articulation with other languages or cultures. Therefore a myth never belongs to its language, but rather represents a perspective on a different language [...] (L.-S. 1981: 644-45).

 

Du Bakhtine chez Lévi-Strauss? ... Comme le généralisera de façon si caractéristique l'auteur duel de Mille plateaux, « s'il y a langage, c'est d'abord entre ceux qui ne parlent pas la même langue. Le langage est fait pour cela, pour la traduction, non pour la communication» (D. G., 1980 : 536).

Do we detect some Bakhtin in Levi-Strauss...? One could say, to generalize in the characteristic manner of A Thousand Plateaus’ authors, that “if there is language, it is fundamentally between those who do not speak the same tongue. Language is made for that, for translation, not for communication” (D. G. 1987: 430).

 

 

Cette définition perspectiviste du mythe proposée dans L'homme nu le rend contigu à l'anthropologie elle-même, savoir qui se constitue, tel que le posait déjà Lévi-Strauss en 1954, comme «la science sociale de !'observé». Nous savons aussi que les Mythologiques sont «le mythe de la mythologie». Or, ces deux définitions sont convergentes. Le discours de la mytho-!agie structurale établit les conditions de toute anthropologie possible. Toute anthropologie est une transformation des anthropologies qui sont son objet, toutes situées, depuis toujours, au «point d'articulation d'une culture avec d'autres cultures ». Ce qui permet de passer d'un mythe à un autre, et d'une culture à une autre, est de même nature que ce qui permet de passer des mythes à la science des mythes, et de la culture à la science de la culture (je généralise ici un argument fondamental de Maniglier [2000]). Transversalité et symétrie. S'ouvre ainsi une connexion inesperee entre le projet des Mythologiques et le principe de symétrie généralisée de Bruno Latour et d'Isabelle Stengers.

The effectively perspectivist conception of myth in The Naked Man renders myth contiguous with anthropology itself, specifically with what constitutes it, as Levi-Strauss had already remarked in 1954, as “the social science of the observed.” We also know that the Mythologiques are “the myth of mythology.” Now these two definitions in fact converge. The discourse of structural mythology establishes the conditions for every possible anthropology. Every anthropology is a transformation of the anthropologies that are its object, and both are always already situated at “the point of articulation of a culture with other cultures.” What enables one to move from one myth to another and from one culture to another is of the same nature as what enables one to move from myth to the science of myths, and from culture to the science of culture. (I am generalizing one of Maniglier’s core arguments [2000].) Transversality with symmetry ... an unanticipated link, that is, between the Mythologiques and Latour and Stenger’s principle of generalized symmetry.

 

Si le mythe est traduction, c'est parce qu'il n'est surtout pas représentation, car une traduction n'est pas une représentation, mais bien une transformation. «Un masque n'est pas d'abord ce qu'il représente mais ce qu'il transforme, c'est-à-dire choisit de ne pas représenter» (L.-S., 1979: 144) 1 Ce qui donne au métaobjet que sont les Mythologiques un caractère proprement holographique, comme le rhizome mythique avec lequel il fait rhizome, le réseau qui contient dans c.haque mythe une image réduite du système mythique panaméricain (le mythe « unique ») .

«C'est bien parce que la structure est plus rigoureusement définie comme un système de transformation, qu'elle ne peut être représentée, sans faire de sa représentation une partie d'ellemême » (Maniglier, 2000 : 238). Cela nous mène à une reconception de la structure comme « transformaliste », ou mieux, comme transformationaliste - c'est-à-dire, ni formaliste à la Propp, ni transformationnelle à la Chomsky :

If myth is translation, this is because it is above all not representation-, for a translation is not a representation but a transformation. “[A] mask is not primarily what it represents but what it transforms, that is to say, what it chooses not to represent” (L.-S. 1982: 144).10 This is what gives to the metaobject of the Mythologiques its properly holographic character as the mythic rhizome with which it forms a rhizome, the network that contains in each of its myths a reduced image of the Panamerican mythic system (the “unique” myth). “It is because structure is more rigorously defined as a system of transformation that it cannot be represented without making the representation part of itself” (Maniglier 2000: 238). This leads us to a reconceptualization of structure as “transformalist” or, better, “transformationalist” which is to say, neither formalist a la Propp nor transformational a la Chomsky:

 

!. L'approximation entre mythe et musique qui marque les Mythologiques aurait ainsi comme raison ultime le caractère foncièrement non représentatif de ces deux modes sémiotiques.

 

 

Une structure est donc toujours entre-deux: entre deux variantes, entre deux séquences d'un même mythe, ou même entre deux niveaux à l'intérieur d'un même texte ... L'unité n'est donc pas celle d'une forme qui se répéterait identique à elle-même dans une variante et dans l'autre, mais d'une matrice qui permet de montrer en quoi l'une est précisément une transformation réelle de l'autre ... , et la structure est rigoureusement coextensive à ses actualisations. C'est pourquoi Lévi-Strauss insiste sur la différence du structura-lisme et du formalisme, différence que l'on tend obstinément à négliger (Maniglier, op. cit. : 234-235) 1

A structure is therefore always in between: between two variants, between two sequences of the same myth, and even between two levels internal to the same text. [...] The unity is thus not that of a form that would repeat itself identically in one variant or another, but that of a matrix enabling one to show what makes one precisely a real transformation of the other [...], and structure is rigorously coextensive with its actualizations. This is why Levi-Strauss insists on the obstinately neglected difference between structuralism and formalism (Maniglier, op cit 234-235).11

 

1. C'est pourquoi aussi la recherche d'une « structure du mythe» en tant qu'objet syntagmatique clos est un parfait contresens. Comme il en ressort clairement de cette observation de Maniglier, et encore plus nettement de la démonstration d' Almeida (2008), la transformation structurale par excellence, la formule canonique du mythe, ne permet pas de définir la «structure interne» d'un mythe - car une telle chose n'existe pas (« ... le principe reste le même»: voir le passage décisif dans L.-S., 1964: 313-316). Un mythe ne se distingue pas de ses versions, la composition « interne » d'un récit est de même nature que ses transformations «externes». L'idée d' «un même mythe» est purement opérationnelle, provisoire. Ce qui se passe à l'intérieur d'un mythe est ce qui permet de passer d'un mythe à un autre. Tout mythe est« en bouteille de Klein» (L.-S., 1985: 209 et s.).

 

Un structuralisme sans structures? Disons, du moins, un structuralisme travaillé par une autre notion de structure, plus proche du rhizome de Mille plateaux que de la structure à laquelle ce dernier voulait s'opposer; autre notion qui, en vérité, a toujours été présente dans l'œuvre de Lévi-Strauss. Ou alors, peut-être devrait-on dire qu'il y a deux usages différents du concept de structure dans cette œuvre : en tant que principe transcendantal d'unification, loi formelle de l'invariance ; et en tant qu'opérateur de divergence, modulateur de variation continue (variation de variation). La structure comme combinatoire grammaticale fermée ou comme multiplicité différentielle ouverte.

A structuralism without structures? At least a structuralism animated by another notion of structure much closer to a rhizome than the kind of structure A Thousand Plateaus opposes to ita notion, in truth, that had always been present in Levi-Strauss’ work. Or perhaps we should say that there are two different ways Levi-Strauss employs the concept of structure: as a principle, on the one hand, of transcendental unification or formal law of invariance, and as an operator of divergence and modulator of continuous variation (of the variation of variation), on the other. In other words, structure both as a closed grammatical combinatory and as an open differential multiplicity.

 

Il serait instructif d'entreprendre une étude minutieuse de ce que l'on pourrait appeler la «dialectique de l'ouverture et de la fermeture analytique » dans les Mythologiques, en empruntant un motif omniprésent dans la série. Si LÇvi-Strauss croit reconnaître, dans la mythologie amérindienne, une version de la problématique anthropologique de la Nature et la Culture, on peut constater, en revanche, que la dialectique de l'ouverture et de la fermeture qu'il a vu à l'œuvre dans les mythes opère aussi sur le plan métamythologique de l'anthropologie. Car, si les Mythologiques sont un «mythe de la mythologie», alors elles doivent contenir les thèmes développés dans les mythes dont elles sont une transformation structurale, en d'autres mots, une transformation qui permet de passer du contenu à la forme et réciproquement.

It would be quite instructive to undertake a detailed study of what could be called the dialectic of analytic opening and closing in the Mythologiques, to borrow from the series one of its omnipresent motifs. If Levi-Strauss believed he recognized a version of the anthropological problem of Nature and Culture in Amerindian mythology, it could be noted, conversely, that the dialectic of the open and closed he perceived to be at work in myth was also operant on the metamythological plane of anthropology. Because if the Mythologiques are indeed “the myth of mythology,” then they should contain the themes developed in the myths of which they are a structural transformation; a transformation, in other words, allowing one to move from content to form and vice versa.

 

Ainsi, on a vu que Lévi-Strauss signale souvent que les mythes qu'il est en train d'analyser forment« un groupe clos». L'idée de clôture semble parfois consubstantielle à l'analyse structurale : pour Lévi-Strauss, il faut toujours démontrer que « le groupe se ferme», que l'on est revenu à l'état initial d'une chaîne de mythes moyennant une dernière transformation ; qu'en vérité, « le groupe » se ferme sur divers axes. Cette insistance est liée au thème de la nécessaire redondance du langage mythique, condition de l'établissement d'une «grammaire» de la mythologie, comme parfois l'auteur se complaît à concevoir son entreprise; et on connaît l'antipathie qu'il voue à la notion d' « œuvre ouverte».

We saw that Levi-Strauss often indicates that the myths he analyzes form “a closed group.” The idea of closure sometimes appears to be consubstantial with structural analysis itself: it should, in his view, always be demonstrated that “the group closes itself,” that there is always a return to the initial state of a chain of myths after a final transformation; that in truth, “the group” is closed on diverse axes. This insistence is bound up with the theme of the necessary redundancy of the language of mythical language, which is the condition for establishing mythology’s grammar (as Levi-Strauss sometimes enjoys casting his enterprise). And, finally, his avowed antipathy to the “open work” is well known.

 

Il arrive, cependant, que la multiplication des démonstrations de fermeture finit par donner l'impression apparemment paradoxale qu'il y a un nombre théoriquement indéfini, c'est-à-dire, ouvert, de structures fermées. Les structures se ferment, mais le nombre de structures, et de voies par lesquelles on les ferme, est ouvert - il n'y a ni une structure de structures, dans le sens d'un niveau final de totalisation structurale, ni une détermination a priori des axes sémantiques (les codes) mobilisés en structure 1Tout «groupe» de mythes finit par se retrouver à l'intersection d'un nombre indéterminé d'autres groupes; et dans chaque groupe, chaque « mythe » est également une interconnexion ; et dans chaque mythe ... Les groupes doivent pouvoir se clore ; mais l'analyste ne peut pas s'y laisser enfermer :

It nonetheless happens that the proliferation of demonstrations of closure ends up giving the apparently paradoxical impression that there is a theoretically indefinite, or open, number of closed structures. The structures are closed, but both their number and the ways in which they are closed is openthere is neither a structure of structures, in the sense of a final level of structural totalization, nor an a priori determination of the semantic axes (the codes) mobilized in structure.12 Every group of myths is in the end located at the intersection of an indeterminate number of other groups; in each group, each myth is equally an interconnection, and in each myth____The groups should be able to close, but the analyst cannot allow them to become locked:

 

Le propre de tout mythe est d'interdire qu'on s'y enferme: un moment vient toujours, au cours de l'analyse, où un problème se pose et qui, pour le résoudre, oblige à sortir du cercle que l'analyse s'était tracé (L.-S., 1971 : 538) 2

[I]t is in the nature of any myth or group of myths to refuse to be treated as a closed entity: there inevitably comes a point during the analysis when a problem arises which cannot be solved except by breaking through the boundaries that the analysis has prescribed for itself. (L.-S. 1981: 602)13

 

!. L'inexistence d'une métastructure est annoncée dès !' «Introduction à l'ceuvre de Marcel Mauss» et «La notion de structure en ethnologie». Sur l'indétermination de principes des axes sémantiques d'un système mythique, cf. la maxime de La pensée sauvage selon laquelle «le principe d'une classification ne se postule jamais».

2. Noter, dans le même sens que la note 1, p. 181 ci-dessus, la façon dont LéviStrauss parle indifféremment de «mythe» et de «groupe de mythes».

 

 

De plus, et surtout, l'importance accordée à l'impératif de clôture est fortement relativisée dans divers passages de l'œuvre qui, en sens inverse, soulignent l'interminabilité de l'analyse, la marche en spirale des transformations, le déséquilibre dynamique, la dissymétrie, la cooptation latérale de structures, la pluralité des niveaux où s'étalent les récits, les dimensions supplémentaires, la multiplicité et la diversité des axes nécessaires à l'ordonnement des mythes ... Le mot clé ici est déséquilibre:

Moreover and above all, the importance granted to the imperative of closure undergoes a strong relativization in diverse places in Levi-Strauss’ work that emphasizes the opposite: the interminable character of analysis, the spiral movement of transformations, dynamic disequilibrium, dissymmetry, structures laterally coopting each other, the plurality of levels the stories are spread over, their many supplementary dimensions, and the multiplicity and diversity of axes needed to arrange the myths.... The keyword in all of this is disequilibrium:

 

Le déséquilibre est toujours donné ... (L.-S., 1966 : 222).

Disequilibrium is always present. (L.-S. 1973: 259)

 

Loin d'être isolée des autres, chaque structure recèle un déséquilibre qu'on ne peut compenser sans faire appel à un terme emprunté à la structure adjacente ... (Id., 1967 : 294).

Far from being isolated from the others, each structure conceals a disequilibrium, which can only be compensated for through recourse to some term borrowed from the adjacent structure. (L.-S. 1979: 358)

 

Même quand la structure change ou s'enrichit pour surmonter un déséquilibre, ce n'est jamais qu'au prix d'un nouveau déséquilibre qui se révèle sur un autre plan ... [. .. ] la structure doit à une inéluctable dissymétrie son pouvoir d'engendrer le mythe, qui n'est rien d'autre qu'un effort pour corriger ou dissimuler cette dissymétrie constitutive (ibid. : 406).

Even when the structure, in order to overcome some disequilibrium, changes or becomes more complex, it can never do so without creating some new disequilibrium on a different level. We observe once again that it is the unavoidable dissymmetry of the structure which gives it its power to create myth, which is nothing else but an attempt to correct or mask this inherent dissymmetry. (L.-S. 1979: 489)

 

Comme en Amérique du Sud [cf. 1966: 222 supra] un déséquilibre dynamique se manifeste donc au sein du groupe des transformations ... (Id., 1971 : 89).

As in South America, a condition of dynamic disequilibrium is visible at the center of a group of transformations. (L.-S. 1981: 103)

 

Or, ce déséquilibre n'est pas une simple propriété formelle de la mythologie, qui répond de la transformabilité ou traduisibilité des mythes, mais, comme nous le verroris bientôt, c'est un élément fondamental de son contenu. Les mythes, en se pensant entre eux, pensent à travers ce déséquilibre - et ce qu'ils pensent, c'est ce déséquilibre lui-même, la disparité même de «l'être du monde» (Id., 1971, 539). Les mythes contiennent leur propre mythologie ou théorie «immanente» (Id., 1964, 20), la théorie qui affirme une

Such disequilibrium is not a simple formal property of mythology responding to the transformability or translatability of myth but, as we will soon see, a fundamental element of its content. In thinking among themselves, myths think through this disequilibrium itself, which is the very “disparity” of the “being of the world” (L.-S. 1981: 603). Myths contain their own mythology or “immanent” theory, and it affirms

 

... asymétrie première, qui se manifeste diversement selon la perspective où l'on se place pour l'appréhender: entre le haut et le bas, le ciel et la terre, la terre ferme et l'eau, le près et le loin, la gauche et la droite, le mâle et la femelle, etc. Inhérente au réel, cette disparité met la spéculation mythique en branle ; mais parce qu'elle conditionne, en deçà même de la pensée, l'existence de tout objet de pensée (Id., 1971 : 539).

an initial asymmetry, which shows itself in a variety of ways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from which it is being apprehended: between the high and the low, the sky and the earth, land and water, the near and the far, left and right, male and female, etc. This inherent disparity of the world sets mythic speculation in motion, but it does so because, on the hither side of thought, it conditions the existence of every object of thought. (L.-S. 1981: 603)

 

*

Le perpétuel déséquilibre traverse le mythe, ensuite le mythe de la mythologie, pour venir se répercuter sur tout le structuralisme. Nous avons déjà vu que cette dualité entre une notion de structure comme combinatoire grammaticale fermée et comme multiplicité différentielle ouverte apparaît même dans la phase tardive de l'œuvre. En vérité, elle traverse l'entièreté de l'œuvre ; c'est le poids relatif de chacune de ces conceptions qui changera : la première d'entre elles prédomine dans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la seconde est prééminente dans les Mythologiques.

Perpetual disequilibrium cuts through myth, then the myth of mythology, and finally reverberates through the whole of structuralism. We have already seen that the duality between the notions of structure as grammatical combinatory and as open differential multiplicity appears only in a very late phase of Levi-Strauss. In truth, though, it traverses the entirety of his work; it is just the relative weight accorded to each of these conceptions that changes: the first of them predominates in The Elementary Structures, and the second attains preeminence in the Mythologiques.

 

Revenons un pas en arrière, ou plutôt, associons ce pas diachronique à la discontinuité synchronique dont nous parlions plus haut. Depuis très tôt, l'œuvre de Lévi-Strauss recèle un important sous-texte ou contre-texte post-structuraliste. (Si LéviStrauss n'est pas le dernier préstructuraliste - loin de là, hélas -, il a bel et bien failli être le premier post-structuraliste.) La prédilection supposée du structuralisme pour des oppositions symétriques, équipollentes, duelles, discrètes et réversibles (comme celles du schéma totémique classique), est démentie d'abord par la critique, encore aujourd'hui surprenante, du concept d'organisation dualiste faite dans l'article de 1956 - qui postule le ternarisme, l'asymétrie et la continuité comme étant antérieurs au binarisme, à la symétrie et à la discontinuité ; ensuite, par la « formule canonique du mythe », tout aussi ancienne et déconcertante, qui peut être tout ce que l'on veut, sauf symétrique et réversible. De plus, il est à noter que Lévi-Strauss boucle les deux phases des Mythologiques (le « Finale » de L'homme nu et le livre Histoire de Lynx) en émettant des réserves sur les limites du vocabulaire de la logique extensionnelle pour rendre compte des transformations qui ont lieu au sein des mythes (L.-S., 1971 : 567-568 ; 1991 : 249).

Let’s take a step back, or rather, connect this diachronic step to the synchronic discontinuity mentioned above. From very early on, Levi-Strauss harbors an important poststructuralist subtext or counter-text. (If Levi-Strauss is not the last prestructuralistfar from it, sorryhe should truly be taken as the first poststructuralist.) The supposed predilection of structuralism for symmetric, equipollent, discrete, dual, and reversible oppositions (such as those of the classic schema of totemism) is first refuted by the criticism, astonishing even today, of the concept of dualist organization made in the 1956 article of nearly the same name. Ternarism, asymmetry, and continuity are conceived there as being anterior to binarism, symmetry, and discontinuity. Then we have the canonical formula of myth, which comes as disconcertingly early, and that would seem to be everything desired except something symmetric and reversible. Just as notable, finally, is the fact that Levi-Strauss closes both of the two phases of the Mythologiques (the “Finale” of The Naked Man and The Story of Lynx) by expressing his reservations about the feasibility of accounting for mythic transformations with the vocabulary of extensional logic (L.-S. 1981: 635; 1995: 185).

 

Surtout, ce n'est sûrement pas par hasard que les deux derniers livres mythologiques de Lévi-Strauss sont construits précisément comme des développements de ces deux figures que nous venons d'évoquer du dualisme instable : La potière jalouse (1985) illustre à satiété la formule canonique, alors qu' Histoire de Lynx est centré sur l'instabilité dynamique - le « déséquilibre perpétuel», expression qui fait sa première apparition dans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pour décrire le mariage avunculaire des Tupi - des dualités cosmo-sociologiques amérindiennes. Cela me fait supposer que nous sommes face à une même intuition inaugurale de Lévi-Strauss (une même structure virtuelle, si vous voulez), dont la formule canonique, qui prédéconstruit l'analo-gisme totémique du type A:B::C:D, et le dualisme dynamique, qui déstabilise la parité statique des oppositions binaires, ne seraient que deux expressions (ou actualisations) privilégiées. Il pourrait, sans doute, y en avoir d'autres. Il y a peut-être « bien des lunes mortes, ou pâles, ou obscures» au firmament des structures, un autre firmament peut-être, moins ferme, plus mouvant, plus ondulatoire ou vibratoire, un firmament hipo-structural, qui demande un structuralisme pour ainsi dire sub-quantique. De toute façon, les anthropologues ont toujours pratiqué la théorie des cordes - je veux dire, des relations.

Above all, it is surely not by chance that Levi-Strauss’ final two mythological books are developments of the two figures of unstable dualism: The Jealous Potter (1988) exhaustively illustrates the canonical formula, and The Story of Lynx is focused on dynamic instability“perpetual disequilibrium,” an expression that first appears in The Elementary Structures in order to describe the avuncular marriage of the Tupiboth of them being Amerindian cosmosociological dualities. Which leads me to presume that we are faced with the same initial intuitionthe same virtual structure, if you willof which the canonic formula (which predeconstructs totemic analogism of the A:B::C:D kind) and dynamic dualism (which destabilizes the static parity of binary oppositions) would only be two privileged expressions or actualizations. There are doubtlessly others; perhaps some “dead, pale, or obscure moons” in the firmament of structures, perhaps another firmament that would be less closed and more moving, more wavelike and vibratorya hypostructural firmament demanding, so to speak, a subquantum structuralism. In any event, anthropologists have always practiced a kind of string theoryer, I mean, a theory of relations.

 

D'abord, la formule canonique, ce monument tordu de perversité mathématique. Avec la formule canonique, plutôt que de nous confronter à une opposition simple entre métaphore totémique et métonymie sacrificielle, on nous installe d'emblée dans l'équivalence entre une relation métaphorique et une relation métonymique, avec la torsion qui fait passer d'une métaphore à une métonymie, et réciproquement (L.-S., 1966 : 211) : la « double torsion», la « torsion surnuméraire» qui en fait n'est pas autre chose que la transformation structurale, pure et simple (ou plutôt, hybride et complexe) : la « relation déséquilibrée ... [qui est] une propriété inhérente aux transformations mythiques» (L.-S., 1984 : 13). La conversion asymétrique entre le sens littéral et figuré, le terme et la fonction, le contenant et le contenu, le continu et le discontinu, le système et son extérieur - voilà les thèmes qui traversent toutes les analyses lévi-straussiennes de la mythologie, et au-delà (L.-S., 2001). Nous nous sommes attardés dans les pages précédentes sur le concept deleuzien de devenir, sans savoir vraiment où il pouvait nous mener si on le faisait aller à l'encontre (de façon transversale) de l'appareil de notions du structuralisme classique. Nous commençons à voir maintenant que la « formule canonique du mythe » est une traduction approximative - faite dans une langue étrangère, avec un drôle d'accent ou une inflexion bizarre, presque comme une dimension suprasegmentaire du discours théorique lévi-straussien -, ou plutôt, une anticipation prémonitoire de la généralité de ce mouvement instantané sur place que Deleuze appellera devenir. Le devenir est une double torsion.

First of all, we have that twisted monument to mathematical perversity known as the canonical formula. Instead of confronting us with a simple opposition between totemic metaphor and sacrificial metonymy, it installs us from the outset in the equivalence between metaphoric and metonymic relations, via the twist that passes from metaphor to metonymy and back (L.-S. 1973: 248): a “double” or “supernumerary twist” which is in fact nothing other than structural transformation pure and simple (or rather, hybrid and complex): “the relation of disequilibrium [...] inherent in mythical transformations” (L.-S. 1987: 5) The asymmetric conversions between literal and figurative sense, term and function, container and contained, the continuous and the discontinuous, the system and its exterior are all themes present in both the entirety of Levi-Strauss’ analyses of mythology and what lies beyond them (2001). We dwelt in the last chapters on the Deleuzian concept of becoming, without truly knowing where it would lead us if it was forced, transversally of course, against the notions of classic structuralism. We now begin to see, however, that the canonical formula is an approximate translation, spoken with a cute, strangely inflected accent in a foreign language, an almost suprasegmentary dimension of Levi-Strauss’ theoretical discourse; or rather, a premonitory anticipation of the generality of that instantaneous movement-in-place that Deleuze will call becoming. Becoming is a double twist.

 

Ensuite, le « dualisme en déséquilibre dynamique » ou « en perpétuel déséquilibre », qui est au cœur d' Histoire de Lynx. Nous voyons en lui un mouvement conceptuel à travers lequel le mythe amérindien accède à ce que l'on pourrait appeler son moment proprement spéculatif. Lévi-Strauss, en effet, montre comment le déséquilibre en tant que forme devient contenu du discours mythique, ou en d'autres mots, comment un déséquilibre qui était condition devient un déséquilibre qui est thème, comment un schéma inconscient devient une «inspiration profonde»:

There is also, second, the dualism in dynamic or perpetual disequilibrium at the heart of The Story of Lynx. What it reveals is a conceptual movement whereby Amerindian myth accedes to what could be called its properly speculative moment. In effect, Levi-Strauss shows how disequilibrium changes from myth’s form to its content; or, in other words, how disequilibrium goes from being condition to theme, how an unconscious schema becomes a “profound inspiration”:

 

Quelle est en effet l'inspiration profonde de ces mythes? [. .. ] Ils représentent l'organisation progressive du monde et de la société sous la forme d'une série de bipartitions; mais sans qu'entre les parties résultantes à chaque étape apparaisse jamais une égalité véritable [. .. ] De ce déséquilibre dynamique dépend le bon fonctionnement du système qui, sans cela, serait à tout moment menacé de tomber dans un état d'inertie. Ce que proclament implicitement ces mythes, c'est que jamais les pôles entre lesquels s'ordonnent les phénomènes naturels et la vie en société : ciel et terre, feu et eau, haut et bas, près et loin, Indiens et non-Indiens, concitoyens et étrangers, etc., ne pourront être jumeaux. L'esprit s'évertue à les coupler sans réussir à établir entre eux une parité .. Car ce sont ces écarts différentiels en cascade, tels que les conçoit la pensée mythique, qui mettent en branle la machine de l'univers (1991 : 90-91).

What, indeed, is the underlying inspiration for these myths? [...] These myths represent the progressive organization of the world and of society in the form of a series of bipartitions but without the resulting parts at each stage ever being truly equal. [...] The proper functioning of this system depends on this dynamic disequilibrium, for without it this system would at all times be in danger of falling into a state of inertia. What these myths implicitly proclaim is that the poles between which natural phenomena and social life are organizedsuch as sky and earth, fire and water, above and below, Indians and non-Indians, fellow citizens and strangerscould never be twins. The mind attempts to join them without succeeding at establishing parity between them. This is because it is these cascading differential gaps, such as mythical thought conceives them, that set in motion the machine of the universe. (L.-S. 1995: 63)

 

Les mythes, en se pensant entre soi, se pensent en tant que tels, en un mouvement qui, s'il «réfléchit» - c'est-à-dire s'il s'autotransforme - correctement, ne pourra pas échapper au déséquilibre auquel il réfléchit. La dualité imparfaite autour de laquelle tourne la dernière grande analyse mythologique de LéviStrauss, la gémellité qui est «la clé de tout le système», est l'expression achevée de cette asymétrie autopropulsive. Enfin, nous comprenons par le déséquilibre dynamique d' Histoire de Lynx que la véritable dualité qui intéresse le structuralisme n'est pas le combat dialectique entre Nature et Culture, mais bien la différence intensive et interminable entre jumeaux inégaux. Les jumeaux d' Histoire de Lynx sont la clé et le chiffre, le mot de passe de la mythologie et de la sociologie amérindienne. Le chiffre : la disparité fondamentale de la dyade, l'opposition comme limite inférieure de la différence, le deux comme cas particulier du multiple.

Myths, by thinking among themselves, think themselves as such, via a movement that, if it makes their “reflection” a good one which is to say if it transforms itselfcannot escape the disequilibrium thus reflected. The imperfect duality around which Levi-Strauss’ last great analysis of myth turnsthe twinhood that is “the key to the whole system”is the realized expression of this self-propelling asymmetry. In the end, we learn from the dynamic disequilibrium of The Story of Lynx that the true duality of interest to structuralism is not the dialectical combat between nature and culture but the intensive, interminable difference between unequal twins. The twins of The Story of Lynx are at once the key and the cipher [la chijfre\, the password of Amerindian mythology and sociology. A (numerical) cipher, meaning: the fundamental disparity of the dyad, opposition as the inferior limit of difference, and the pair as a particular case of the multiple.

 

Patrice Maniglier a observé, au sujet de la différence entre les deux phases principales du projet structuraliste, que :

As Patrice Maniglier remarked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phases of the structuralist project:

 

[A]utant le premier moment de l'œuvre de Lévi-Strauss semble se caractériser par une intense interrogation sur le problème du passage de la nature à la culture, et sur la discontinuité entre ces deux ordres qui seule semblait à Lévi-Strauss assurer la spécificité de l'anthropologie sociale contre l'anthropologie physique, autant le second moment est caractérisé par une dénonciation obstinée par Lévi-Strauss de la constitution de l'humanité en ordre séparé (Maniglier, 2000 : 7) 1

As much as the first moment of Levi-Strauss’ work appears to be characterized by an intense interrogation of both the problem of the passage from nature to culture and the discontinuity between the two orderswhich alone would seem to Levi-Strauss to guarantee social anthropology’s specificity in the face of physical anthropologythe second moment is equally characterized by an obstinate denunciation of the constitution of humanity into a separate order.14

1. Voir, dans le même sens, le livre pionnier de Schrempp (1992).

 

Et en effet, considérons le dernier paragraphe de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éjà évoqué dans cet essai (ci-dessus p. 101 ), dans lequel l'auteur observe que le bonheur absolu, «éternellement nié à l'homme social », est celui qui consiste à « vivre entre soi». Comparons ce constat, tout compte fait si freudien, à un autre passage déjà cité ici (p. 31) de l'œuvre de LéviStrauss, lorsqu'il définit le mythe comme étant « une histoire du temps où les hommes et les animaux n'étaient pas encore distincts». L'auteur y ajoute que l'humanit~ n'a jamais réussi à se résigner face à l'absence de communication avec les autres espèces de la planète. Or, la nostalgie d'une communication originaire entre toutes les espèces (une continuité interspécifique) n'est pas exactement la même chose que cette nostalgie de la vie «entre soi» responsable de la fantaisie de l'inceste posthume (une discontinuité intraspécifique). Bien au contraire, je dirais:

l'accent et le sens de ce que Lévi-Strauss entend comme le contre-discours humain a changé. Ou, en d'autres termes, le second niveau du discours anthropologique du structuralisme fait surface.

And in effect, we should consider the last paragraphs, already invoked above (page 130), of The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where the author observes that absolute joy, “eternally denied to social man,” consists in “keeping to oneself.” Let’s compare this remark, which is after all still Freudian, to another that was also already citedthe one where Levi-Strauss defines myth as the “story of the time before men and animals became distinct” (Levi-Strauss and Eribon 1991: 139). The author adds there that humanity has never successfully resigned itself to not being in communication with the other species inhabiting the planet. Yet the nostalgia for an original communication between all speciesfor interspecific continuityis not exactly the same thing as this nostalgia for a life of “keeping to oneself,” itself behind the fantasy of posthumous incestof intraspecific continuity. Very much to the contrary, I must say: the accent and meaning of what Levi-Strauss understands to be human counter-discourse has changed. The second level of the anthropological discourse of structuralism surfaces.

 

La discordance ou la tension créatrice entre les « deux structuralismes» contenus dans l'œuvre de Lévi-Strauss est internalisée de façon particulièrement complexe dans les Mythologiques. Nous avons vu plus haut que Lévi-Strauss opposait l'algèbre de la parenté des Structures élémentaires, qui serait complètement du côté du discret, à la dialectique mythique entre continu et discontinu. Cette différence n'est pas simplement formelle. Car ce n'est pas seulement une forme esthétique de la mythologie amérindienne qui se présente comme un mélange de continu et de discontinu, mais aussi son contenu philosophique - et, de plus, comment un véritable structuraliste pourrait-il séparer forme et contenu?

The creative discord or tension between the two stucturalisms of Levi-Strauss is internalized in a particularly complex way in the Mythologiques. We saw above that Levi-Strauss opposed the algebra of kinship of The Elementary Structures, which would be completely on the side of the discrete, to the mythic dialectic between the continuous and the discontinuous. This latter difference cannot be merely formal. For it is not only an aesthetic form of Amerindian mythology, a melange of the continuous and the discontinuous, but also its philosophical content. And how, realty, could a veritable structuralist separate form and content?

 

Voilà pourquoi, force nous est de conclure que les Mythologiques sont un peu plus qu'une entreprise centrée sur «l'étude des représentations mythiques du passage de la nature à la culture», telle que l'auteur décrit modestement son projet dans Paroles données (L.-S., 1984). Car, c'est justement au fur et à mesure que les Mythologiques sont rédigées que son auteur commence, pour sa part, à contester la pertinence d'un contraste radical entre Nature et Culture, comme l'observe Maniglier. Ce serait alors un peu absurde d'imaginer que Lévi-Strauss transfère aux Indiens la même démence qu'il diagnostiquait comme la tare fatale de l'Occident. Et en effet, les Mythologiques, loin de décrire un passage clair et univoque entre Nature et Culture, obligent leur auteur à cartographier un labyrinthe de chemins tortueux et équivoques, de voies transversales, de ruelles étroites, d'impasses obscures, de fleuves qui coulent dans les deux sens à la fois ... La voie à sens unique menant de la Nature à la Culture ne va pas au-delà, dans un certain sens, de la première moitié du premier livre de la tétralogie. À partir de là, les sept livres de la série complète sont hantés par les «mythologies de l'ambiguïté» (Du miel aux cendres), par les « mythologies des fluxions » (L'origine des manières de table), par les parcours régressifs et les marches rétrogrades de la Culture à la Nature, les zones de compénétration entre ces deux ordres, les petits intervalles, les périodicités courtes, les répétitions rapsodiques, les modèles analogiques, les déformations continues, les déséquilibres perpétuels, les dualismes qui se dédoublent en semi-triadismes et qui éclatent de façon inattendue en une multitude d'axes transversaux de transformation ... Le miel et la séduction sexuelle, le chromatisme et le poison, la lune et l'androgynie, le vacarme et la puanteur, les éclipses et la bouteille de Klein, les triangles culinaires qui, vus de plus près, se transforment en courbes de Koch, c'est-à-dire en fractales infiniment complexes ... On pourrait presque dire que le contenu de la mythologie amérindienne consiste en une négation de l'impulsion génératrice du mythe lui-même, dans la mesure où cette mythologie pense de façon active, et contemple de façon nostalgique, un continuum dont la négation est, dans l'idée de Lévi-Strauss, la condition fondamentale de la pensée. Si la mythologie amérindienne possède, comme l'affirme plus d'une fois Lévi-Strauss, un endroit et un envers, un sens progressif et un autre régressif, c'est aussi parce que tels sont les deux sens ou directions du discours structuraliste lui-même (ou vice versa). La distinction polémique entre mythe et rituel du « Finale » de L'homme nu se révèle, en fin de compte, comme ayant été un mouvement récursif d'intériorisation du message du mythe luimême: le grand mythe Tupi d'Histoire de Lynx décrit une trajectoire identique à celle qui définit l'essence de tout rite (rite, et non pas mythe, notons-le bien), l'enchaînement en cascade d'oppositions de portée décroissante, sa convergence asymptotique dans un effort « désespéré » pour capter l'asymétrie ultime du réel. Comme si le seul mythe qui fonctionnait incontestablement comme un mythe lévi-straussien était le « mythe de la mythologie», c'est-à-dire, les Mythologiques elles-mêmes. Ou pas ; elles non plus. Tel est certainement un problème qu'il faudra reprendre.

This is why we are forced to conclude that the Mythologiques are something more than an enterprise centered on the “the study of the mythic representations of the study of the passage from nature to culture,” as the author modestly describes his project in Anthropology &Myth (L.-S. 1987b). Because as the Mythologiques are progressively drawn up, its author increasingly contests the relevance of a radical distinction between nature and culture, just as Maniglier observes. It would be a bit absurd to imagine that Levi-Strauss transfers onto the Indians the same dementia he diagnoses as the fatal flaw of the West. Indeed, the Mythologiques, far from describing a clear, unequivocal passage between Nature and Culture, obliges their author to map a labyrinth of twisting, ambiguous pathways, transversal trails, tight alleys, obscure impasses, and even rivers that flow in both directions at once. The one way, nature-to-culture street stops where the first book of the tetralogy begins. Starting there, the seven books of the series are increasingly haunted by “mythologies of ambiguity” (From Honey to Ashes), “fluxional mythologies” (The Origin of Table Manners), by a reverse traffic going from culture to nature, zones where the two orders copenetrate, tiny intervals, brief periodicities, rhapsodic repetitions, analogic models, continuous deformations, perpetual disequilibriums, dualisms that split into semi-triad-isms and shatter, without warning, into a multitude of transversal axes of transformation. Honey and sexual seduction, chromaticism and fish, the moon and androgyny, din and stench, eclipses and Klein bottles, culinary triangles that, when viewed up close, transform into Koch curvesinto infinitely complex fractals, that is.... It could almost be said that the content of Amerindian mythology consists in a negation of the generative impulse of myth itself, insofar as this mythology thinks in an active fashion, and nostalgically contemplates, a continuum whose negation is in Levi-Strauss’ view the fundamental condition of thought. If Amerindian mythology possesses, as Levi-Strauss more than once affirms, a right side and a reverse, a progressive and a regressive sense, this is also because these are the two senses or directions of structuralist discourse itself (and vice versa). The polemical distinction between myth and ritual made in the “Finale” of The Naked Man is in the end revealed to have been a recursive internalization of the message of myth itself: the grand Tupi myth of The Story of Lynx describes a trajectory identical to the one that defines the essence of every ritual (ritual and not myth, nota bene) as a cascading enchainment of oppositions of decreasing significance, a “desperate” attempt to make them do more than asymptotically converge and thereby capture the ultimate asymmetry of the real. As if the only myth that incontestably functions as a Levi-Straussian myth is “the myth of mythology,” by which I mean the Mythologiquts themselves. Or not, since it must now be considered that they are not what they were long understood to be. A problem that will doubtlessly have to be returned to.

 

J'attire l'attention ici sur un paragraphe situé vers la fin de L'homme nu. Au sujet d'un mythe nord-américain sur la conquête du feu céleste, qui met en jeu l'utilisation d'une échelle de flèches qui se brise et qui rompt les communications entre le ciel et la terre, l'auteur observe - le même auteur, rappelons-le, qui commençait Le cru et le cuit par un éloge du discret, de l'enrichissement logique effectué par la réduction des continus primordiaux - maintenant, je répète, l'auteur observe et conclut:

I offer as clarification a certain paragraph from the end of The Naked Man. On the subject of a North American myth concerning the conquest of the celestial fire, which sets in motion the utilization of an arrow-ladder that shatters the communication between sky and earth, Levi-Strauss observesthe same author, recall, who begins The Raw and the Cooked with a eulogy to both the discrete and the logical enrichment achieved through the reduction of primordial contentsLevi-Strauss observes and concludes:

 

On n'aura donc garde d'oublier que ces actes de médiation non réversible entraînent de lourdes contreparties : appauvrissement quantitatif de l'ordre naturel - dans la durée, par le terme assigné à la vie humaine, dans l'espace, par la diminution du nombre des espèces animales après leur désastreuse équipée céleste ; et aussi, appauvrissement qualitatif puisque, pour avoir conquis le feu, le Pic perd la majeure partie de sa parure de plumes rouges (M729) ; et que si, en revanche, le Merle acquiert un poitrail rouge, c'est sous la forme d'une lésion anatomique consécutive à son échec au cours de la même mission. Soit donc par destruction d'une harmonie primi-tive, soit par introduction d'écarts différentiels qui l'altèrent, l'accession de l'humanité à la culture s'accompagne, sur le plan de la nature, d'une sorte de dégradation qui la fait passer du continu au discret (L.-S., 1971 : 448).

We must not forget, then, that these irreversible acts of mediation entail serious adverse consequences: first, a quantitative impoverishment of the natural orderin time, by the limit imposed on human life, and in space, by the reduction in the number of the animal species after their disastrous celestial escapade; and also a qualitative impoverishment, since by having conquered fire, the woodpecker loses most of his decorative red feathers (M729); and since the red breast acquired by the robin takes the form of an anatomical injury, resulting from his failure during the same mission. So, either through the destruction of an original harmony, or through the introduction of differential gaps which impair that harmony, humanity’s accession to culture is accompanied, on the level of nature, by a form of deterioration entailing a transition from the continuous to the discrete.(L.-S. 1981:498-99)

 

Voici l'un de ces passages un peu perdus dans la jungle des Mythologiques et que l'on perçoit subitement comme cruciaux, lorsque l'ambiguïté entre les deux discours du structuralisme, celui de l'hominisation triomphante de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et celui de la dénonciation de l'autoséparation de l'humanité, est « intériorisée » de façon analytique et mise sur le compte d'une réflexion immanente au mythe. Ce sont les mythes qui racontent les deux histoires, et la marche régressive n'est pas si négative que cela, ou du moins, n'est pas seulement négative : la genèse de la culture est-elle dégénérative? Et dans ce cas, la marche régressive serait-elle régénérative ? Impossible, pourtant ? Imaginaire, simplement? Ou pire? Car il y a des moments où la nostalgie du continu apparaît pour Lévi-Strauss comme étant le symptôme d'une maladie réelle provoquée par la prolifération incontrôlée du discontinu en Occident, çlirait-on, et non seulement comme simple fantaisie ou liberté imaginaire. Le réchauffement global de l'histoire, la fin des histoires froides, c'est la fin de la Nature.

Here we have one of those crucial passages, almost completely lost in the jungle of the Mythologiques, where the ambiguity between the two discourses of structuralismthe triumphant hominiza-tion of The Elementary Structures and the denunciation of this self-separation of humanityis analytically internalized and attributed to an immanent reflection of myth itself. These myths recount two stories, and the regressive movement is not as negative as might be expected, or at least not only negative. Would the genesis of culture then be degenerative, and the regression out of it regenerative? Or would the latter be impossible, or merely imaginary, or something worse? For there are moments where a nostalgia for the continuous appears to be for Levi-Strauss the symptom of a real illness provoked by what could be called the uncontrolled proliferation of the discontinuous in the West, and not just a simple fantasy or imagined freedom. The global warming of history, the end of cold histories, would in that case be the end of Nature.

 

Quoi qu'il en soit, si la mythologie amérindienne possède, comme l'affirme plusieurs fois Lévi-Strauss, un endroit et un envers, un sens progressif (totémique) et un autre régressif (sacrificiel, donc) - les deux sens ou directions du discours structuraliste lui-même -, alors le chamanisme et le perspectivisme amazoniens appartiennent, sans équivoque, à l'envers, monde du sens régressif. Le complexe civilisateur de l'origine du feu de cuisson, rappelons-le, suppose les schémas : disjonction ciel/terre ; instauration des périodicités saisonnières ; différentiation des espèces naturelles. Mais le chamanisme perspectiviste opère dans l'élément inverse et régressif: l'élément du chromatisme crépusculaire ciel-terre (voyage chamanique), celui du fond universellement humain de tous les êtres, et d'une technologie des drogues (le tabac) qui brouille radicalement la distinction entre nature et culture, en définissant une province de la « surnature », c'est-àdire, de la nature pensée en tant que culture - la Surnature, ce concept crucialement rare dans les Mythologiques. Progression et régression : souvenons-nous de la définition ironique, anti-sartrienne (L.-S., 1962 b : chap. IX) de la méthode structurale comme «méthode doublement progressive-régressive». Méthode, d'ailleurs, pratiquée avec entrain par les mythes 1Contre le mythe de la méthode, la méthode du mythe.

Whatever the case may be, if Amerindian mythology has, as Levi-Strauss affirms several times over, a right side and its reverse, a progressive, totemic sense and a regressive, sacrificial one (those again, being the two orientations of structuralism itself), then shamanism and Amerindian perspectivism unequivocally belong to the reverse, to a world whose direction is regressive. It will be recalled that the civilizing complex of the origin of fire and cooking presupposes the following schemas: the sky/earth disj uncture, the establishing of seasonal periods, and the differentiation of natural species. But shamanic perspectivism operates in the reverse, regressive element of the twilight chromaticism of the sky and the earth (i.e., the shamanic voyage), the universal background humanity of all beings, and a pharmaceutical technique (tobacco) that radically scrambles the nature/culture distinction by defining a province of “supernature,” of nature thought qua culture. (Supernaturea rather crucial rare concept in the Mythologiques.) We are reminded of the ironic, anti-Sartrean definition (L.-S. 1966, ch. 9) of stuc-turalist method as “progressive-regressive not once but twice-over.” A method, moreover, enthusiastically practiced by myths themselves. 15 Against the myth of method, then, the method of myth.

 

1. Voir Du miel aux cendres: «À propos du mythe ofaié sur l'origine du miel (M192), nous avons mis en évidence une démarche progressive-régressive dont nous voyons maintenant qu'elle appartient à l'ensemble des mythes jusqu'à présent considérés» ... (L. S., 1966: 129).

 

*

On a beaucoup parlé du corps dans ce livre, enfin. En vérité, la phase finale de l'œuvre de Lévi-Strauss est le théâtre d'un combat serré entre l'unité de l'esprit humain et la multiplicité du corps amérindien. L'esprit commence avec une bonne longueur d'avance, dans !'Ouverture de Le cru et le cuit; mais le corps domine progressivement le combat, jusqu'à l'emporter indubitablement, bien que par points - par un petit clinamen qui s'accentue nettement au cours des derniers rounds, qui se jouent dans Histoire de Lynx. La psychologie de l'esprit humain a cédé sa place à une anti-sociologie des corps indigènes.

The body, finally, has often been at issue in this book. In truth, the final phase of Levi-Strauss’ work is the theater of a closely fought match between the unity of the human mind and the multiplicity of the Amerindian body. When things get underway in the Overture to The Raw and The Cooked, the mind starts with an advantage, but the body progressively gets the upper hand and then carries the long match, although only by pointsby means of a little clinamen that intensifies in the final rounds, which are played out in The Story of Lynx. The psychology of the human mind cedes its place to an anti-sociology of the indigenous body.

2. L' Histoire de Lynx aboutit dans son tout dernier chapitre à l' «idéologie bipartite des amérindiens» plutôt qu'à de quelconques «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mythologie», explicitement rejetées car inutiles et vides.

 

Et c'est ainsi que se réalise, au terme du parcours de la mythologie structurale de Lévi-Strauss, précisément au moment où il donnait l'impression d'avoir restreint ses ambitions à des dimensions plus modestes 2 , ce que l'on pourrait appeler le destin le plus élevé de son entreprise théorique : celui de restituer la pensée des autres dans leurs propres termes, de pratiquer cette « ouverture à l' Autre » dont, par un frappant retour des choses, l'anthropologie découvre qu'elle est l'attitude qui caractérise ces autres qu'elle étudie, ces autres qu'elle se complaisait auparavant à imaginer enfermés dans leur intemporel cocon ethnocentrique. Le troublant message final d' Histoire de Lynx est que l'autre des autres est aussi Autre : qu'il n'y a de place pour un « nous » que déjà déterminée par l'altérité. S'il y a une conclusion plus géné-rale à tirer, donc, c'est que l'anthropologie ne dispose pas d'une autre position possible sinon celle de l'établissement d'une coplanarité de principe avec la pensée sauvage, le tracé d'un plan d'immanence commun avec son objet. En définissant les Mythologiques comme le mythe de la mythologie et la connaissance anthropologique comme une transformation de la praxis indigène, l'anthropologie lévi-straussienne projette une philosophie à venir: L'Anti-Narcisse.

Which is how, at the very end of the long voyage of Levi-Strauss’ structural mythology and at the moment where it gives the impression of having at last cut its ambitions down to modest size,16 what could be regarded as its theoretical enterprise’s greatest destiny is realized: to restore the thinking of the others in its own terms, to practice this “opening to the Other” that (in another “remarkable reversal”) anthropology discovers to be the attitude characteristic of the others it studiesthe others that for so long it complacently imagined to lie dormant in atemporal ethnocentric cocoons. The disturbing final message of The Story of Lynx is that the other of the others is also Other: that there is space for a “we” only if it is already determined by alterity. And if there is a more general conclusion to be drawn, it is that anthropology has access to no other possible position except a “coplaneness” of principles with savage thought, a plane of immanence that it would hold in common with its object. In defining the Mythologiques as the myth of mythology and anthropological knowledge as a transformation of indigenous praxis, Levi-Strauss’ anthropology projects a philosophy to come: Anti-Narcissus.

 

*

Dans le dernier quart du siècle passé, la théorie structuraliste de l'alliance de mariage, qui dominait la scène des années 1960, a commencé à tomber dans une disgrâce critique croissante. L'Anti-Œdipe a beaucoup contribué à précipiter cette chute, dans la mesure où il a exprimé, dans un langage particulièrement vigoureux et efficace, le refus intransigeant de toute conception «échangiste» du socius. Mais, s'il est indiscutable que cette attitude persiste dans Mille plateaux, les termes du problème y changent radicalement. Dans L'Anti-Œdipe, l'échange était écarté en faveur de la production comme modèle général de l'action, et la circulation (à laquelle Deleuze et Guattari assimilaient unilatéralement l'échange dans le sens de Mauss) y était subordonnée à l'inscription 1 Dans Mille plateaux, comme nous l'avons vu, la production cède sa place à une autre relation non représentative, le devenir. Si la production était filiative, le devenir montrera une affinité avec l'alliance. Que se passe-t-il alors avec la position anti-échangiste, lorsque l'on passe ainsi de la production au devenir?

The final quarter of the last century saw the structuralist theory of marriage alliance, which dominated the scene in the 1960s, fall into growing critical disrepute. Anti-Oedipus contributed much to this decline, again (Chapter 8), inasmuch as it vigorously expressed an intransigent refusal of every exchangeist conception of the socius. Yet even if it is indisputable that this attitude persisted in A Thousand Plateaus, the terms of the problem had by then radically changed. In Anti-Oedipus, exchange was discarded as a general model of action in favor of production, and circulation (to which Deleuze and Guattari unilaterally assimilated exchange in Mauss’ sense) was subordinated to inscription.17 In A Thousand Plateaus, as we have seen, production ceded its place to another nonrepresentational relationship, that of becoming. Where production had been filiative, becoming would evince an affinity with alliance. But then what happened to the anti-exchange position?

1. L 'Anti-Œdipe reprend le cliché marxiste sur une prétendue « réduction de la reproduction sociale de la sphère de circulation» qui accablerait l'ethnologie de type maussien et structuraliste (D. G., 1972 : 222).

 

 

On sait, même si très souvent il convient à certains de l'oublier, que la production de L 'Anti-Œdipe n'est pas exactement identique au concept marxiste homonyme. La « production désirante »de Deleuze et Guattari ne doit pas être confondue avec la « production nécessitée » hégéliano-marxiste, dominée par les notions de manque et de besoin (D. G., 1972 : 33 et s.). La diffé-ence est plusieurs fois soulignée: «Notre problème n'a jamais été un retour à Marx ; il est beaucoup plus celui d'un oubli, un oubli de Marx y compris. Mais, dans l'oubli, des petits fragments surnagent... » (D., 1973). Ajoutons que le système fluxcoupure de la production désirante de L 'Anti-Œdipe se distingue mal d'un processus de circulation généralisée; comme Lyotard l'a suggéré peut-être avec un certain esprit de taquinerie (1977 : 15) : «Cette configuration du Kapital, la circulation de flux, s'impose par la prédominance du point de vue de la circulation sur celui de la production ... »

Even if some find it convenient to forget this, Anti-Oedipus’ notion of production is not exactly identical with its Marxist homonym. “Desiring production” should not be confused with Hegelian-Marxist “necessitarian production” and its notion of need (D. G. 1983: 25 et seq.),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m is emphasized multiple times. “Our problem was never a return to Marx; it is much more a forgetting, a forgetting of Marx included. But, in the forgetting, small fragments floated____” We can add that the flux/break system of desiring production in Anti-Oedipus is poorly distinguished from a process of generalized circulation; as Jean-Franfois Lyotard suggested in a certain teasing spirit, “This configuration of Kapital, the circulation of flows, is imposed by the predominance of the point of view of circulation over that of production” (1977: 15).

 

La conception finitiste (ou finitive, pourrait-on dire, par opposition à infinitive) et nécessitariste de la production est monnaie courante dans les cercles anthropologiques; c'est en son nom et au nom de ses accessoires - domination, fausse conscience, idéologie - que les positions « échangistes » sont, en général, critiquées dans l'anthropologie. Mais s'il s'avérait désirable, et même nécessaire, de faire cette distinction entre la production nécessitée de l'économie politique et la production désirante de l'économie machinique, la production-travail et la productionfonctionnement, on peut avancer, par analogie, qu'il serait également intéressant de faire la distinction entre une alliance-structure et une alliance-devenir, un échange-contrat et un échangechangement. Cette distinction permettrait d'isoler et d'écarter la conception contractualiste de l'alliance, en jouant délibérément sur l'homonymie équivoque entre l'alliance intensive des sociocosmologies amazoniennes (par exemple) et l'alliance extensive des théories classiques de la parenté, structuralisme inclus. Naturellement, dans les deux cas l'homonymie est un peu plus que cela, étant donné qu'il y a une filiation, même si elle est monstrueuse plutôt que reproductive, entre les paires de concepts respectivement impliqués. La production de L 'Anti-Œdipe doit beaucoup à la production de l'économie politique, même si elle la subvertit. De même, l'alliance potentielle amazonienne existe en filigrane ou à contre-jour (pour ainsi dire, virtuellement) dans l'œuvre lévi-staussienne, dont le potentiel anti-œdipien, et ainsi (auto)subversif doit être pleinement dégagé.

The finitist (or “finitive” rather than infinitive) and necessitarian conception of production is still valid currency in anthropological circles, as it is generally in its name and that of its accessories that “exchangeist” positions are critiqued in anthropology. Yet if it proved both desirable and even necessary to distinguish between the need-based production of political economy and the desiring production of machinic economy, between labor-production and function-production, it could be proposed, by analogy, that it might be just as interesting to distinguish between alliance-structure and alliance-becoming, contract-exchange and “change-exchange.” Such distinctions would allow us to isolate and displace the contractualist conception of alliance by deliberately playing on the equivocal homonymy between the intensive alliance of Amazonian sociocosmologies, for example, and the extensive alliance of classical theories of kinship, structuralism’s included. There is, naturally, something more than a homonymy in each case, given that there is a filiation (even if monstrous rather than reproductive) between the pairs of concepts respectively implicated. Anti-Oedipus notion of production owes a great deal to political economic production, even if it subverts it. In the same way, Amazonian potential alliance exists in filigree (virtually, so to speak) in Levi-Strauss, and the latters anti-oedipal and (self-) subversive potential should be fully brought out.


Le problème est, en dernière analyse, celui de construire un concept non contractualiste et non dialectique de l'échange: ni intérêt rationnel, ni synthèse a priori du don ; ni téléologie inconsciente, ni travail du signifiant ; ni fitness inclusif, ni désir du désir de l' Autre ; ni contrat, ni conflit - mais plutôt un mode de devenir-autre 1 L'alliance est le devenir-autre propre à la parenté.

The problem, in the last analysis, is that of constructing a non-contractualist, nondialectic concept of exchange that would make it neither a rational interest nor an a priori synthesis of the giftnot an unconscious teleology, work of meaning, inclusive fitness, desire of the desire of the other, conflict, or contract, but rather a becoming-other.139 Alliance is the becoming-other proper to kinship.

 

La latéralité machinique et rhizomatique de l'alliance est en fin de compte beaucoup plus proche de la philosophie deleuzienne que ne l'est la verticalité organique et arborescente de la filiation. Le défi, alors, est celui de délivrer l'alliance de la tâche de gestion de la filiation et, réciproquement, de son contrôle par la filiation, en libérant ainsi ses puissances «monstrueuses», c'est-à-dire créatrices. En ce qui concerne la notion jumelle de l'alliance, celle d'échange, je pense qu'une chose est claire aujourd'hui: elle n'a jamais été posée comme l'autre de la production, malgré ce que veut le dogme courant. Au contraire, l'échange a toujours été traité par l'anthropologie comme la forme la plus éminente de production: production de la Société, justement. La question donc n'est pas de dévoiler la vérité nue de la production qui se cacherait sous le couvert hypocrite de l'échange et de la réciprocité, mais, plutôt, de libérer ces concepts de leurs fonctions équivoques dans la machine de la production filiative et subjectivante, en les rendant à leur élément (contre-)naturel, l'élément du devenir. L'échange, ou la circulation infinie de perspectives - échange d'échange, métamorphose de métamorphose, point de vue sur point de vue, c'est-à-dire: devenir.

The machinic, rhizomatic laterality of alliance is, at the end of the day, much closer to Deleuze’s philosophy than the organic and arborescent verticality of filiation. The challenge, then, is to liberate alliance both from the task of organizing filiation and, reciprocally, from being dominated by filiation, and to do so by releasing its “monstrous”which is to say, creativepowers. Where alliance’s twin, exchange, is concerned, I think something has recently become clear: it never really was postulated as the contrary of production, whatever current dogma says. On the contrary, the anthropology of exchange has always treated it as production’s most eminent form: the production of Society. So the question is not to unveil the naked truth about production supposedly concealed under the hypocritical cover of exchange and reciprocity but, rather, to free these concepts from their equivocal functions in the machine of filiative, subjectivating production by presenting them with their (counter-) natural element, which is becoming. Exchange, then, as the infinite circulation of 139. If “the expression ‘difference of intensity* is a tautology” (D. 1994: 222), then “becoming-other” is yet another, or maybe the same, tautology. perspectivesexchange of exchange, metamorphosis of metamorphosis, perspective on perspective: again, becoming.

 

Double mouvement donc, pour un double héritage qui repose avant tout sur une alliance monstrueuse, des noces contre nature: Lévi-Strauss avec Deleuze. Ces noms propres sont des intensités et c'est par elle que passe, dans la réserve virtuelle où nous l'avons laissé, où nous l'avons posé, l'Anti-Narcisse.

A double movement, therefore, for a double heritage that rests above all else on a monstrous alliance or counter-natural nuptials: Levi-Strauss with Deleuze. Those two names are in fact intensities, and it is from the virtual reserve of their liaison that came (the book we at once let happen and elaborated) Anti-Narcissus.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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