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그러나 왜 채무는 변제[상환]해야 하는가? 빌린 돈은 왜 반드시 갚아야 하는가? 대차(貸借)를 포함한 거래 일반이 등가교환이며, 가치는 누군가의 사적 소유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치가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는 원칙이 더해지면, 이미 봤듯이, 오늘날의 혁명은 채무 상환의 근거가 이미 실질적으로 무너지고 있지 않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태였다. 노동시간이 가치의 유일한 척도이고 거래가 등가교환이라면, 오늘날의 채무문제는 단적으로 말해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치생산자인 노동자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 근거를 적용받아 채무 상환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공공공간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가치의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을 받아들인다는 사태에 다름 아니다. 왜 상환 의무의 근거를 넘어서까지 빌릴 수 있었을까? 숨겨진 다른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등에 대한 설명 의무를, 공공의 것은 모든 관여자에 대해 짊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채무 문제의 관여자로서 부담을 분담해야만 하는 근거와 채무가 막대하게 불어날 수 있었던 원리는 다르며, 후자를 방치해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아니라, 공화국 위정자는 시민의 재산을 훔치는 도둑의 편이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생산 과정의 내부에서 생산된 가치를 생산 과정의 외부에서 합법적으로 빼앗아가는 구조는 사실 맑스가 이미 발견했다. 지대, 즉 토지의 렌트(임대료)이다. 자본의 유명한 마지막 장 계급들은 적고 있다. “임금, 이윤, 지대를 각각 수입의 원천으로 하는 노동력의 단순 소유자, 자본의 소유자, 토지 소유자, 즉 임금노동자, 자본가, 토지소유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기초로 하는 근대 사회의 3대 계급을 구성한다.”[각주:1] 말할 것도 없이 맑스에게 세 가지 수입 원천의 더 근본적인 원천은 노동뿐이며, 3대 계급은 노동이 산출한 가치를 나눠 갖는 것에 불과하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생산과정에서 분리 불가능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으며, 그 분리 불가능성을 초래하는 자본가가 가변자본을 임금으로 선불한다라는 사태가 잉여가치의 착취를 정당화했다. 그에 반해 토지소유자는 토지의 희소성을 근거로, 잉여가치의 일부를 자본가로부터 받는 것일 뿐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토지가 희소하다는 것에 의해 자본가와 잉여가치를 나눠 가질 권리를 갖는 것이다. 지대는 생산과정에 외적인 수입의 범주이며, 희소성에만 근거하여 잉여가치를 빼앗는다. 때문에 맑스는 이렇게 단언한다.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이 둘만이 생산의 대리인이다. 토지소유자라는 고대 및 중세에서는 생산에 있어서 이렇게도 본질적이었던 기능자는 산업시대에서는 무용지물이다”(잉여가치학설사).[각주:2] 주지하듯이, 토지의 희소성은 결코 자연의속성이 아니라 토지가 자본에 의해 생산 불가능하기 때문에 희소한 토지의 임대료가 절대적인 것으로서 사회적으로생겨났다(절대지대). 비옥도의 차이에 의한 차액지대는 이 절대적 희소성 위에 있는 상대적인 희소성에 지나지 않는다. 배타적인 소유권이 설정됨으로써 토지는 희소해지는 것이다. 토지가 공유되어 있는 한, 지대는 발생하지 않는다. 본원적 축적과정에서의 종획(엔클로저)’에 의해, 그때까지 농민이 무상의 접근권을 갖고 있었던 공유지가 소멸됐기 때문에 토지는 희소재가 됐다. 공유에서 사유로의 이행이 토지 렌트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미래에 전망되는 렌트 총액의 할인 현재 가치가 토지의 가격이라고 여겨지게 됐다. 농민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떼어내 노동력을 의제적으로 상품화한 (자본의 생산물이 아닌 노동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제적으로 상품일 뿐이다) 본원적 축적은 동시에 토지라는 또 다른 의제적 상품을 산출한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는 그 역사적이고 원리적인 기원에 대해 묻지 않지만, 이것도 희소한 화폐의 소유권이 대여에 의한 이자(렌트)를 낳는다는 현상은 태곳적부터 존재했다. 신용제도와 주식회사의 발전은 그런 화폐 렌트에 기대하는 자본 소유와, 이윤을 낳는 현장인 자본 경영의 분리를 추진한다. 그러나 분리의 결과는 화폐 렌트(금융적 수입)와 산업 이윤의 차이를 자본이라는 관점에서는 애매하게 할 것이다. 양자는 하나의 자본 소득이 될 것이다. 시장의 작용은 이자율과 이윤율을 균등하게 하지만, 자본가의 수입 속에서, 원리적으로는 토지 렌트와 마찬가지로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생산의 외부에서 가치를 빼앗아 가는 부분(‘이자 낳은 자본’)이 생겨난다. 케인스는 바로 이런 것에 초조해 했다. “오늘날 이자는 어떤 순수한 희생에 대한 보수도 뜻하지 않는다. 이 점은 지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각주:3]렌트 생활자의 안락사와, 이것에 뒤이은 자본의 희소성으로부터 가치를 착취하는 자본가의 누적적·억압적 권력의 안락사[각주:4]야말로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바람직하다. 주식회사의 전반화에 의해, “말하자면 자본 소유가 생산영역으로부터 외부화되고, 토지 소유와 마찬가지로 자본 소유는 노동의 조직화가 실행될 때 아무런 직접적인 기능을 맡지 않고, 잉여가치를 끌어내게 된다”(카를로 베르첼로네).[각주:5] 생산과정에 남는 것은 그저 기능뿐이게 되며, 자본가들은 쓸데없는 인간으로서 생산과정으로부터 사라진다”(자본323이자를 낳는 자본).[각주:6]

이것 자체는 잘 알려진 맑스 이론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두 가지 점을 확인해 둬야 한다. 첫째, 생산에 직접 관련된 과정의 외부로부터 가치를 빼앗아가는 메커니즘이 자본주의의 초기부터 존재하며,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이미 그 메커니즘이 미치는 범위는 지대에서 자본 자체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이자를 낳는 자본의 공급원은 모든 수입 범주에 걸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렌트를 확장하려는 동기는 그것에 의해 더 높아질 수 있으며, 케인스가 우려했듯이 렌트는 산업자본주의의 성장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 산업자본으로부터 이자를 낳은 자본으로의 전환(생산으로부터의 자본의 철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성장이 렌트의 확장속도를 상회해야 한다. ‘생산은 모든 수입 범주로부터, 비록 이자를 낳은 자본의 기생을 허용하더라도 자금을 흡수하는 힘을 계속 가져야 한다. 유효수요의 원리와 적자재정 정책의 거시경제학적 의미는 거기에 있을 것이며,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포드주의적 축적 체제는 국가를 경유해서 모인 사람들의 자금을 실제로 흡수했다. 케인스 정책에서 국채는 국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사람들의 미래의 구매력을 이자를 낳은 자본으로 대신하는 장치이며 또 그것을 생산확장에 쏟아 붓고 이윤과 렌트를 공존시키는 구조였다. 산업의 자금 흡수력이 추락했을 때 이 균형은 무너진다. 단순히 무너질 뿐 아니라, 이윤이 아닌 렌트를 요구하는 경향(주식에서 채권으로의 자금의 이동 모건 스탠리가 혁명이라고 부른 현상의 저류에 있는)을 가속도적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으며, 산업의 자금 흡수력을 한층 약화시킬 것이다. 케인스가 우려한 위협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 즉 노동가치설적으로 보면, 유일한 잉여가치 생산의 현장 이외에, 렌트를 최종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는 장소가 있을까? 노동이 가치의 유일한 원천인 한, 렌트는 노동이 생산한 가치를 가로채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확인해 둬야 할 두 번째 점은 이것과 관련된다. 원래 렌트는 사적 소유권이 재화를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함으로써 발생한다는 점이다. 토지소유가 렌트 청구권을 갖는 것은 토지가 공유재산이 아니게 됐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면 자본 소유의 경우는? 화폐는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희소하며, 어째서 렌트 청구권을 갖는가? 그 대답은 화폐론이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노동을 원천으로 하는 자본에 있어서는, 더욱이 노동 자체에 있어서도, 대답을 알 수 있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화폐 소유에 대해 가치를 넘겨주어야 하는 사태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렌트를 요구하는 이자를 낳은 자본의 압력은 다른 곳에서 실천적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적으로는 노동가치설을 자본이 포기하는 것이다.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그 척도라고 보는 원리를 버리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 토지와 마찬가지로 사유(私有) 가능한 공유재산을 한꺼번에 만들어 낼 수 있다. 고정자본에 결합되지 않는 노동 전반에 임금이 아니라 렌트의 청구권을 인정하면 된다. 인간 자체를 이자를 낳은 자본으로 한다고 해도 좋다. 인간의 활동 전반을 공유지화하고, 각각의 활동에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고(인간의 민영화’), 모든 활동에 렌탈료를 매긴다. 과거 본원적 축적이 노동을 의제적인 상품으로 했다면, 이번은 노동을 의제적인 자본으로 하는 것. 인간만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무상의 접근권을 가지고 있던 것(수자원, 기술, ‘문화)에 배타적 소유권을 설정하고, 인위적으로 그것들의 희소성을 만들어내고, 렌트 청구권을 인정하는 제2본원적 축적을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서비스노동은 인간의 활동 자체에 값을 매기고, 그 가격은 비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렌탈료이다. 문자 그대로 서비스미다 가격이 다른 성산업이 가장 알기 쉽지만, 엄청나게 많은 보수를 받는 기술자라고 해도, 그가 받은 교육을 비용으로서 보수가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개발 잠재력을 빌려주고있는 서비스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신체, 정서적 행동, 지적 능력 등등은 모두, 사회적으로 희소한 나의 사유재산이며, 나는 그것을 판매한다는 형식으로 빌려주고있다. “판매하는것이 의제라는 것은, 서비스가 팔리더라도 나의 재화인 뇌를 포함한 신체는 물질적 재화와 달리 소비=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할 것이다. 장기매매 서비스는 정반대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희소재로 간주함으로써 성립하는 점은 마찬가지이며, 단순육체노동조차도 희소한 나의 육체능력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간주하는 것이 가능하다(어떤 단순노동도 희소하다). 종종 얘기되는 물질적 노동과 비물질적 노동의 차이는 노동 자체의 특성(육체노동인가 두뇌노동인가)에서 유래하는 게 아니라, 고정자본과 결부되어 상품에 가치를 이전시키는 더하면서 노동이, 그 자체로 일개 자본처럼 간주되는 산 노동인가의 차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를 사유재산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활동에 렌트를 발생시키는 것이 가능해지며, 렌트가 정해지면, 미래에 걸쳐서 전망되는 렌트 총액의 현재 할인 가치[각주:7]로서, ‘자체에 토지와 마찬가지로 가격을 매길 수 있다. 무상이었던 인간 자체, 인간의 전체로부터, ‘에워싸이게’(인클로저) 된다. 지적재산권은 그것의 가장 현대적인 한 예일 뿐이다. 이전비용이 기본적으로 0인 지식과 기술과 아이디어는 국가적 제도에 의한 에워싸임이 없으면 상품이 될 수 없으며, 그런 생산비들은 개발자에게 지불한 인적 자본 렌트에 의해서만 계산할 수 있다. 경제학은 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에 있어서 기술을 경제외적 요인, 즉 비용 0으로 가정하고 상품가치를 일의적, 객관적으로 도출했지만, “지식에 의한 지식의 생산에 있어서는, 상품의 가치 자체가 자기 언급적으로만 정해질 뿐이다. “지식은 설령 소프트웨어처럼 패키지화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작업을 자동화하는 서비스나 노하우의 렌탈 상품이다. 미래에 전망되는 이익을 어떻게 현시점에서 평가하는가라는 주관적인 값일 뿐이며, 거의 0에서부터 거의 무한대까지 가능하며, 그 주관적 성격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잠정적으로 정해져버리면, ‘객관적으로 가치가 정해진 물적 상품과 교환 가능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관적 가치에 있어서도, 사물을 지배할 수 있다. ‘경제외적요인이, 경제의 한복판에서 경제적인 위력을 떨칠 수 있다. 지대는 차액지대에 관해서는 수확량에 의한 객관적평가가 가능했으나, 비물질적 노동의 전체로 이루어진 일개 인적 자본에 있어서는, 그 어떤 객관적 가치기준도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토지보다 먼저 인간의 렌탈’이 있었을 것이다. 토지가 공유됐던 시대에도, 혹은 더 오래된, 토지를 점유하는 것에 큰 경제적 의미를 두지 않은 사회에서도, 인간과 그 능력은 대차되었다[빌려주고 빌려왔다]. 양도도 됐다. 인류학이나 종교학은 빌려주다보다 먼저 갚는행위가 인간을 묶고[속박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고 시사하기도 할 것이다. 희생제의나 회개의 습관은 근원적인 부채를 진 존재로서 인간의 탄생 순간부터 구속한다. 인간은 우선 갚도록운명지어지며, ‘갚음을 받은누군가(, 자연, 선조 )의 지위를 다른 누군가가 참칭함으로써 빌려준다는 관념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빌려준다가 선행한 것처럼 보이는 포틀래치에서조차도 상환의 의무를 미리 지고 있지 않은 상대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아무튼 인적 자본 렌트가 지닌 자기 언급성은, 그 너머에서, 결코 객관적으로 근거지을 수 없는 폭력이나 지배의 존재를 암시한다. 근원적으로 비대칭적인, 즉 대차[빌려주고 빌려옴]의 대칭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연적 현상을 사후적으로 은폐-정당화-합리화하기 위해 등가성과 희소성의 관념이 도입된 게 아닌가를 시사한다. ‘을 진 사람에게, ‘빌려온것은 희소하며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갚을수 있다고 속삭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이 요청된 것은, 그런 법 없는 세계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인적 자본 렌트의 자기 언급성은 눈에는 눈의 가치가 있다고 동어반복적으로 말함으로써 가치라는 것을 중지시키며, 뜻밖에도, 희소재의 등가성의 맞은편에 있는 그런 세계 폭력이 우발적으로 응수되는 세계 ― 를 지시한다. 절대지대를 가능케 하는 지대의 희소성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가치 부여되는 역사에 선행되며, 인간의 가치 부여는 비대칭적이고 우연적이고 폭력적인, ‘가치라는 것이 없는 객관세계에 선행된다. , 역사적으로, 어딘가에서 역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치가 노동시간에 의해 객관적으로 결정되며, 그 예외로서 지대가 발생하고, 그것이 인간으로 확장되는 듯한 순서는, 이론적으로 전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에 의해, 경제적인 것의 역사는 전도의 정치적 역사로서 재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과 서비스가 전망에 의해 가치부여되고 교환되는 오늘날, 인류는 함무라비 법전 이전의 세계로 반쯤은 되돌아가고 있다. 등가성이 객관적으로는 정해지지 않은 세계인 것이다. 경제적인 에 의한 등가성의 설정을 기다리고 있는 세계이다.[각주:8] 거기로 반쯤돌아간다는 것은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정해질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만은, “인적 자본 렌트사회에 승인시키기 때문이다. 맑스는 등가교환 아래에서 착취를 발견했으나, 착취 아래에서는 오늘날 근거 없는 희소한 가치가 가치 자체를 횡령-수탈하는 세계가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이보다 더 아래에는 벌거벗은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치와 비가치, 등가교환과 등가성의 어정쩡한 교환, ()과 폭력이나 수탈이 특수 역사적으로 혼재-공존-병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생산과정의 바깥으로부터 렌트 메커니즘에 의해 가치가 빼앗긴다는 사태는, 즉 역사적이고 초역사적이다.

 


  1. カール・マルクス, 『資本論』第3巻, 大月蓄庖版, 『マルクス-エンゲルス全集』25b, 1130頁. [본문으로]
  2. 같은 곳, 26II, 42頁. [본문으로]
  3. ケインズ前掲, 『雇用、利子および貨幣の一般理論』下巻、一八三頁. [본문으로]
  4. 같은 곳. [본문으로]
  5. カルロ・ヴェルチェッローネ, 「価値法則の危機と利潤のレント化」, A・フマガッリ, S・メッザードラ 編, 『金融危機をめぐる10のテーゼ』, 朝比奈佳尉・長谷川若枝 訳, 以文社, 87頁. [본문으로]
  6. 前掲, 『マルクス=エンゲルス全集』 25a, 487頁. [본문으로]
  7. ‘현재 할인 가치(Present discounted Value)’ 또는 ‘현재 가치(Present Value)’라고 한다. 이것은 어떤 시점의 미래에 받을 가치를 만일 현재 받게 되면, 이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가령 1년 후에 100만원을 받는 것이 지금 90만원을 받는 것과 등가라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1년 후의 100만원의 현재 할인 가치는 90만원이다. [본문으로]
  8. 함무라비 법전의 경제학적 독해에 관해서는 칼 폴라니의 『인간의 경제 1 : 시장사회의 허구성』의 6장을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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