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푸코가 70년대 말의 강의(생명정치의 탄생, 1978-1979년 강의)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을 자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인적 자본론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데올로기가 생명정치의 한 가지 표현 형태임을 보여주는 절호의 예 신자유주의란 생명을 자본주의에 기입하기 위한 울트라 관리주의이다 로 말이다. 그러나 인적 자본 개념을 '관리하는 정치'로서의 생명정치아래로 포괄해버리면, 등한시되는 논점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은 주로 성공을 거둔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적 자본 개념은 1930년대 이후 서구경제와 일본경제의 성장이 결국 케인스주의적인 정부의 재량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발명됐다. 그 대표적인 논자인 세오도어 슐츠(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1971)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3분할(토지, 노동, 자본)근대적 부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없다.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 등으로 구성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을 성공리에 이룩한 나라들에서는 현저하게 관찰되며, 성장의 근본 원인은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적 자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적 자본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것이 인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인간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이라는 것은, 그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 또는 그 둘 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하물며 자동적으로 수익의 원천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려면 우선 인간의 활동들을 스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했는데, 푸코도 깨달았듯이, 이 정의 자체는 인적 자본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20세기 초반, 소득에 대한 어빙 피셔의 고전적 정의를 원용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소득이란 자본에 의한 생산물 또는 수익일 뿐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소득의 원천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본’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이런 무전제적 자본파악에 대해서 자본의 출신[지]이 어디에 있으며, ‘자본은 어떻게 소득을 낳는가라고 질문하고(쓸데없는 참견’?), 출신은 스톡이며, ‘스톡은 재화나 서비스를 렌트로서 빼앗는 경제적 수법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이 질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피셔와 슐츠의 정의는 옳다.’ 사실을 올바르게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이자를 낳는 자본이 실제로 메타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모양 소득이 있는 곳에 자본이 있다 올바르게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을 제기한 순간 이 정의는, 우리가 머니터리즘의 항등식(MV=PT)에 대해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바뀐다. 이 항등식이든 메타자본이든, 국가에 의한 화폐 스톡의 형성과 유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는 것은, ‘사실을 그 성립 이전의, 아직 필연성을 결여한 상태로 되돌려 보내는 조작이다.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그러나 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아무튼 간에 임금은 자본소득이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자본이라는 것에 머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또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제학에 대한 라이오넬 로빈스의 정의를 자신의 것으로 한다. “경제학은 목적들과, 서로 배타적인 용도를 가진 희소 수단 사이의 관계로서의 인간의 행동양식에 관한 과학이다.” , 신자유주의에서의 인간은 희소한 수단을 무기로 삼고 그 희소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성장을 목적으로 싸우는 동물이다. 바꿔 말한다면, 희소성에 찌든 환경 속에서 그 희소성과 투쟁하고, 그것을 극복제거하려고 하는 동물이다. 희소성은 수단이며, 그 목표는 희소성의 부재인 것이다. 일종의 자기 언급성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 실제로 실현되는 동안에는, 그 점은 아무런 문제도 빚지 않는다. 노동자(인적 자본의 소유자)와 자본가(화폐자본의 소유자)는 희소성이라는 공통의 적과 싸우는 동맹자이며, 성장으로부터 똑같이 자본 수익으로서 소득을 끄집어낼 수 있다. 똑같은 ‘비율’밖에는 인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양자에게 하나의 동일한 합리성 아래에 포섭되고 있다.

그러나 원인은 고사하고, 성장이 정지하면 어찌될까? 성장의 사실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것을 설명한 논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본 것은, 수단과 목적이 같다는 자기 언급성이 행복한 순환을 형성하기를 멈추고, 배리로 전환한다는 사태이다. 193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성장을 설명하는 이론이었을 인적 자본론은 희소성 그 자체로부터 수익을 끄집어내는 방법론으로 전화했다. 희소성과 싸우는, 즉 희소성을 감소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됐다.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희소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경제학이 그것들의 합리적인 사용방식, 대처 방식을 가르치는 제약 조건이었던 것, 즉 경제학이 그것들과 목적 사이의 합리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던 것이, 그대로 직접적으로 수단이 된 것이다. 행동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메워야 할 틈새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경제학에는 더 이상 목적=수단을 논증 없이 주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희소한 것에는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자. 가치 있는 것의 생산이 성장이다. 이것이 배리라고 한 까닭은 사실상 희소해질수록 풍부해진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차이를 찬양하는 문화좌익은 이와는 다른 것을 말했던 것일까?). 설명해야 할 현상이 사라졌을 때, 대상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논리는 공회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혹은 폭력으로 반전할 수밖에 없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지 않음으로써 그 신분을 유지했던 사실, 여전히 그것을 묻지 않은 채, 벌거벗은 규범으로 바뀌는 것이다. 원래 신자유주의의 시장관은, 양차 대전의 질서 자유주의의 시대부터, 시장이 최적의 자원배분을 실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이룩하는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공간인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의 성장은 시장이 잘, 또는 올바르게 기능하는 지표이며, 시장에 탑재[내장]되어 있는 자연적경향 그 자체인데, 그 결실을 둘러싼 부정의부패자연적으로는 억제할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시장은 하게객관적으로 가치를 정해주지만, 그 메커니즘은 전통사회가족의 정서적이고 한 가치관에 포위되어 있으며, 항상 이상적으로 작동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시장의 안쪽으로부터는, 끊임없이 독점으로 향하는 위험이 자라난다. 이 취약한 시장 메커니즘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자유주의의 대답은 주지하듯이, 사회 전체를 시장 원리를 따라서 조직하는 것이었다. 시장을 포위하는 시장에 대한 저해요인을, 시장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위협과 함께 제거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을 막는 과 싸우고, 더 나아가 의 신장을 불허하라, 끊임없이 선행적으로 을 확대시키라. 성장이라는 지표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면, 시장은 더 이상, 혹은 이미, 각자가 에고를 추구해도 좋은 장소, ‘사악(私悪) 즉 공익근대자유주의를 준비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의 부제 을 보증하는 메커니즘이 아닌 것이다.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가르고, 신자유주의에 특유한 개입주의가 이로부터 귀결된다. 시장 게임에는 엄격한 규칙과 그 적용을 감시하는 심판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행위자(player)는 인적 자본, 푸코의 말투를 차용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으로 끊임없이 육성되어야 한다. 자기 투자를 권하고, 자본 가치를 늘리려고 하는 존재로 훈육되어야 한다. ‘전통이나 가족은 인적 자본의 가치를 높여주는(프로테스탄티즘처럼) 반면, 안정에 만족해서 이노베이션[혁신]을 게을리 하는 저해요인도 된다. 시장에 독점 경향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동안 소규모 가족 경영을 건전하게 유지시켰던 문화가 가족회사에 의한 독점을 향한 욕망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싹을 제도질서(ordo)’를 구사하여 먹어치워야 한다. 게다가 비용 대비 효과라는 시장의 잣대를 사회생활이나 행정의 모든 국면에 적용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재량적(=비시장 메커니즘적)인 개입과 규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도태되어야 할 것을 도태시키지 않고 껴안은 부패를 시장에 들여올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불평등하며, 실업자는 고용에서 고용으로 이동 중인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고 간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즉, ‘경제학이 아닌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들은 이미 해명되었으며, 이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시장은 인적물적 자원 배분에 관해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신자유주의자들은 알고 있다. 즉 자신들의 연구는 포스트경제학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장속도가 시들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성장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제의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딘가에 악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그것 자체가 정의의 전쟁으로서 수행된다. 사회의 개입적 시장화가 을 위해 실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강제에 덧붙여, ‘을 향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구사한 것이어야 한다. ‘경제정책인 한에서는 말이다. 희소재를 사회 속에 투입하면 좋다. 사회 속에서 희소성을 산출하면 좋다. 교육도 희소해져서 효과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공교육을 그만두면 좋다 , 무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존의 공공재를 파괴하면 좋다. 세금조차 들지 않는 경제특구를 공공의 토지에 끼어들게 하면 좋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을 본받아라. 아무튼, 신자유주의자의 임무는 전쟁과 동질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넘어선 곳에서부터 그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일종의 혁명이 된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평등의 실현 다만 공공재가 누구에게나 희소해진다고 하는 평등 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본서가 주제로 삼은 현대의 채무는 이 폭력혁명의 결말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다음에 찾아온 신자유주의의 실패의 결말이다. 그것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의 저명 저널에서조차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선언하게 됐다. 공공성의 사회민주주의가 실패를 복원하는 데 최적의 사고방식으로 호출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인 인적 자본론은, 스탈린이 이를 선구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앞 절)을 차치하더라도, 문화좌익을 집어삼킨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사고방식과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희소성과 싸우는 인간의 힘을 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에 의해 높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유행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론을 완전히 선취하고 있지 않은가? 함께, “열심히 하면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개발의 노력과 빚 상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동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정의의 프런티어의 확장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좌파 철학자(마사 너스바움)세계개발경제연구소의 조언자를 맡아, 아마티아 센과 함께 제3세계민중의 가능력可能力 capability’ 채무 상환의 가능력은 포함시키지 않는가? 증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현대이다. 역사적으로 잊어서 안 되는 것은, 푸코는 지적하지 않았으나,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이, 스탈린주의보다 오래됐기 때문에 스탈린 이후에도 소프트-스탈린주의로 살아남은 생산협동조합의 사회주의에서도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출연 자본액에 의해 투표권을 배정하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노동자본인적 자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라고 간주하는 11표제의 생산협동조합에서,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생산의 존재방식을 탐색해온 사회주의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실상 가입시키고 있는 것은, 누구나 평등하게 생산이 아닌 채무를 짊어지는 인적 자본의 협동조합이다. ‘평등에서 기인하는 불공평감이 생산협동조합을 실패하게끔 해온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소프트-스탈린주의는 소프트(=‘금전의 평등과 친화적)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사실상의 채무 노예에게 여전히 열심히 해라고 역설하는 사회-임파워먼드empowerment/정의-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드hard) 스탈린주의의 역습인 걸까?

생명권력’(푸코)의 작용형태가 변했다고 봐야 할 수도 있다. 과거의 질서자유주의는,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는, 취약한 이상적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을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키우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촉구했다고 했다. 그것은 자본 일반의 생산력, 성장을 초래하는 [] 힘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시장적 관계를 확장하고, 시장 규모를 성장시키고, 자본의 힘을 인간 속에 내장[탑재]시키려고 했다.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70년대 푸코의 기본 테제로부터 봐도,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상정하는 양의 힘에 그가 주목한 것은 틀림없을 테다. 하지만 오늘날의 생명권력은 채무라는 음의 힘에 의해 생산이 아닌 수탈(수입의 무상이동)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희소성의 생산은 결여의 생산 즉 문자 그대로 음의 생산이며, 그것을 산출하는, 사적 소유권에의 공공재의 증여, 하나의 렌트로부터 다른 렌트로 (인적 자본으로부터 화폐 자본으로) 수입을 이동시키는 권력 장치로서 기능한다. ‘생명권력이 단순히 사회적담론적추상적인 권력이기를 멈추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 속에 내장[탑재]됐다고 말해도 좋다. ‘추상기계’(푸코)로서의 권력이 하나의 신체를 가진 것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 권력은 억압하지 않지만,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가치를 끌어당기는 진공지대이다. 그것은 가치를 우선 희소한 것, 결여된 것, 마이너스의 것으로서 사회의 중심에 두고,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의 근대가 행복의 원천으로 바꾼 노동labor, 다시 한 번 죄에 대한 보답’, 고역으로서의 labor로 바꾸는 것이다. 빚을 진 죄, 채무를 방치한 죄.

 

*

우리는 제안해야 할 대안이 공공재의 탈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긴축에 반대하고, ‘성장을 위한 투자라면서 채무를 옹호하는 네오(?) 케인지안 노선이 아니다. 채무의 옹호란, 얼마나 개인들에게 평등하게 부담을 배정하느냐라는 문제일 뿐이며, 바로 인적 자본의 논리일 뿐이다. 긴축이란,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 개인이 부채를 짊어진다는 정책일 뿐이다. 우리가 본 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와 케인스주의적인 큰 정부의 차이가 사실상 소멸했다는 사태이다. 경제성장이 멈췄을 때, 양자의 차이는 채권채무관계를 청산하는 타이밍의 차이일 뿐이다. 방금이거나, 조금 뒤이거나. 반면 긴축과 채무 둘 다로부터 공공재를 탈환한다는 것은, “위기의 타겟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라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관리된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다. 신용공간의 강제적 축소, 희소성의 인위적인 자연사이다. 국내적으로는, 채권을 순차적으로 종잇조각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주택의 압류 같은 채권회수를 금지할 시장가치 제로로 공공재산화할 뿐이며, 렌트의 횡령은 억제될 것이다. 그것에 의한 은행의 도산에는, 예금보호만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IMF를 대신해 채무국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자본 수지에 의한 환율을 중지하고, 채무국을 버리지 않는 보증이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현재 문제가 되는 채무총액은 IMF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액수를 훌쩍 뛰어넘으며, 적자국의 책임과 흑자국의 책임을 균형 있게 만드는 케인스의 플랜(국제청산동맹)을 재차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필요가 있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지불되지 못한 채무를, 우선 순위를 매겨서 지불하는 것이지 않아도 되는 계획권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민간보험으로부터 국영으로 역행하는 사회주의? 그렇다. 시장가치 제로로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 국영이라면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다. 누군가를 부담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사회주의이다. 국영화에 의해 이윤 인센티브를 잃은 기술혁신은 급속히 후퇴한다? 환상일 것이다. 인센티브를 가진 주체를 자본에서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뿐이다.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일한 보수를 렌트로 받는 것을 막는 사회주의이다. 어떤 불로소득도 부정의하다고 간주하는 사회주의이다. 도대체 어떤? 계획책정하기 시작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다. ‘계획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권력이다. 권력의 구성이 없으면, 어떤 공공의 것=공화국도 위기를 질질 끌 뿐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황인식이다. 이것은 민영화보다 공영을 옹호하고, 사적 소유권을 공적으로 제한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와 확실히 비슷하다. 공립학교는 분명히 지켜져야 할 공공재이다. 그러나 공적으로 소유되어야 할 것은 더 이상 스톡이 아니다. 미래의 부의 원천, ‘성장의 모태로서의 자산이 아니다. 그런 것의 실체는 이미 상실되고 있으며, 파산관리의 소비에트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채무의 원천으로 반전되는 스톡에 대한 렌트 청구권을 정지시키는 권력만이, ‘소유하는 것에 값한다. ‘스톡을 국가에 의해서조차 소유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소임을 이 권력은 담당한다.

사적 소유권의 대표자로서의 또는 주권권력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사유재산을 지키고, 더 나아가 준다 타국으로부터 빼앗아 는 것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공권력으로 스톡의 해체를 할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일찍이 이 해체를 행할 것이었다. ‘자본으로부터 ()’성을 우선 빼앗고, 그 이후 자본그 자체의 해체로 향하는 것을 이 노선은 표방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본 것 그대로, 노동의 전반적 스톡화, ‘국가노예제의 오늘과 내일을 일그러지게[비뚤어지게] 예시했을 뿐이었다. 생산이 아닌 스톡, 그것이 낳는 채무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에트는 아직 생각된 적도, 따라서 시도된 적도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99퍼센트의 반란이나 EU 내의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긴축반대의 소요가 이런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시도를 일정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가를 문제 삼은 것이다. 리먼 쇼크의 파도가 빈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융조치로는 빈부의 차이를 축소하기는커녕 확대시킬 뿐이며, 가맹국들 모두에게 성장을 가져올 것인 공통 통화로는 채무의 짓누르기를 가속화할 뿐이라는 막다른 골목의 단적인 표현이,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란이었다. 원래 정치의 루틴(routine)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반란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란은 발생한다. 문제의 심각성 이상으로, 해결의 부재가 반란을 발생시킨다. 반란은 항상 정치에 맞서는 정치이다. 물론 정치 과제를 제출할 수 없는 한, 반란을 기다리는 것은 패배이다. 그러나 월가 점거에, ‘정치 일정에 올릴 수 있는 과제나 승패의 지표 따위는 있을 리 없고, 시위에 의한 정치가의 퇴진요구가 과제를 둘러싼 가능한 옵션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오늘날의 반란은, ‘정치에 대한 구체적 요구가 될 수 없는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다. 어떤 내용을 갖고 있든, ‘정치가 그 욕망의 실현에 길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에, 반란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정치이다. 거기에서는 해결의 부재가 해결에 대한 욕망을 증대시킨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일어난 반란의 연속도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반란이 정치화의 여정에 오르자마자, 다음번 반란의 싹이 자라는 것이다. 이 반란을 지탱하는 욕망에 있어서, ‘정치튀김을 온통 가리고 있는 토핑에 다름 아니다. 혹은 오히려, 이 반란은 자신의 패배를 통해서, 문제를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수조차 없는 정치의 패배 라는 현재의 상황 를 무의식적으로 연출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원래 정치적 승리를 바라지 않음으로써, ‘정치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보이도록 한다고 말이다.

아무튼 긴축이냐 성장이냐, 성장을 위한 긴축이냐 성장에 의한 긴축의 회피이냐 같은 논의가 계속될수록, 이런 반란은 일종의 사고(事故)’로서 되풀이될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 그것은, 요구가 불명료하거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들을 귀 따위는 갖고 있을 리가 없는 사고에 지나지 않으며, ‘사고로서 처리될수록, 반란에 대한 문턱은 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는 일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보험적 발상으로 대비하는 것을, 금융자본주의는 권장하지 않았는가. 리먼 쇼크는 사고조차 벌이가 된다[이문이 남는다]고 실증한 게 아닌가. ‘사고로서의 처리도 또한 파산관리의 수법임에는 틀림없고,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누구에게 그것을 맡길 것인가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화주의의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라고 하는 답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부나 재원을 요구함으로써, 내부에서의 이해대립을 균형시키고, 계급투쟁을 억제하려고 했다. 오늘날에도 또한, ‘바깥이란 아시아이다, 아프리카이다 등이라고 선전하고 있다(‘성장력을 수중에 넣어라!). 바깥도 또한 금융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에 불과하다(그들에게 투자하라, 돈을 빌려주라)고 하는 것의 반면(半面)에는 더 파고들지 말고. ‘바깥에 대한 기대에 관한 한, 여기서도 선구는, 신자유주의와의 차이를 스스로 소멸시킨 중국의 스탈린주의이다. 아프리카 진출이다. 그러나 그 중국에서조차도, ‘바깥으로의 확장은 에서의 반란의 발생과 보조를 맞출 때에만 가능해진다. 아무튼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의 대항 모델로서는, 아직 사고(事故)’만 존재할 뿐이다. 보험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곳까지 사고를 확대하려고 하는 무의식의 노선만을 대항정치는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그것이 계속되는가, 바꿔 말하면, 지속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는 공화국이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는가는, ‘참을성 겨루기의 영역에 있는 문제일까? 비록 사실로서는 그렇더라도, 무의식의 의식화를 시도해도 나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채무공화국은 끝나가고 있다. 어떻게 살 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말로, 또한 현실적으로 끝나게 할 것인가를 논의의 일정에 올려야 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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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츠미 타케시(内海健) / 치바 마사야(千葉雅也) / 마츠모토 타쿠야(松本卓也)


S1또는 S1뿐인 세계

치바 그런데 초보적으로 투박하게 여쭈는데요자체성애가 처음 생길 때라는 것은 외부로부터 언어 체험이 충격(shock)적으로 도입되고 그것에 어떻게 응답하느냐라는 것으로원래 갖고 있던 유전적기질적 경향성과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의 특이성의 조합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는 건가요모든 것을 특이성에 기초해 말씀하신 거라면유소년기에 특수한 외적 사태가 있었다고 하신 것이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요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체질이 다르다는 얘기에도 가깝다고 느껴지네요.

 

마츠모토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꽤 가까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에서도라의 기침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에서의 향락의 체질 문제를 다루었습니다시니피앙의 수준에서 증상을 해석하면아무래도 풀리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그러면 도라가 유년기부터 고무젖꼭지만 빨고 있었다는 등 신체의 소인(素因)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이런 소인(素因)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넘고 있으며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 ‘유전적으로’ 혹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소질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나 거꾸로 말하면거기까지 다다르지 않으면 정신분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치바 정신분석은 기질성이 아니라 심인성의 영역 안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가라는 이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그러나 그것으로는 너무 단순하죠라캉의 경우는 끝이 있는 분석을 믿었는데요왜 끝이 있냐 하면낫지 않고 제거할 수 없는 증상에까지 도달한다는 것입니다그것은 대충 말하면기질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계면界面으로서 있는움직이기 힘든 부분에 부딪칠 때까지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만거기에 부딪침으로써정신분석의 한계이며또한 신체의 의학과 어울리는 듯한 장면이 아무래도 문제가 된다는 것일 테죠.

 

마츠모토 그곳이 바로 라캉이 프로이트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간 점입니다프로이트의 경우끝이 없는 분석에 왜 끝이 없냐 하면거세 콤플렉스와 페니스 선망이라는 벽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팔루스의 존재/부재에 대해 구축된 콤플렉스라는 곳에서 끝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다른 한편라캉의 경우는 그것을 뚫고 나온 분석을 목표로 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거기에서 프로이트로부터 라캉에게로라는 정신분석의 갱신 또는 재정의를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아까 치바 씨의 물음에 대해서인데요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애당초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폐증의 정신병리의 기본입니다반응은 일어나지만 응답은 없다타자로부터 이쪽으로 향해오는 지향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시선이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다처음에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 이비인후과로 데려가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마츠모토 씨라고 부르면 마츠모토 씨는 이쪽을 봅니다만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혹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는 거의 자발적 운동을 할 수 없지만그래도 부모가 품에 안으면 그것에 맞춰서 몸의 자세를 취합니다그런데 자폐증 아이를 품에 안으면곡물이 든 배낭을 안고 있는 것처럼 너무 무겁습니다그렇게 품에 안는 것에 포함되는 지향성에 대해서도 신체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반응성의 결여가 자폐성의 핵심 특징입니다정형발달의 경우품에 안는 것에 대한 응답은 꽤 이른 단계부터 느껴집니다만눈빛이나 호명에 대한 응답은대부분 9개월부터 시작됩니다시선이 맞으면 수줍은 듯이 낯가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이것이 자기라는 것의 밑바탕[元基] 같은 것입니다그 이전에는전반적인 짜임새가 없는 세계 속에 있습니다.

    마츠모토 씨의 얘기와 관련되는 것은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의 맨 처음에서 -상징계에 대해 논한 대목입니다그곳에서는 부분대상과 전체대상이 전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데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라캉적으로는부분대상은 현실적[실재적]인 것인 반면전체대상은 팔루스적인 다발[묶음]에 의해 만들어져 있으며상징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클라인파는 발달사적으로 보면우선 부분대상이 있고그것이 통합되어 전체대상이 된다고 해설합니다만그것은 전혀 얘기가 다릅니다부분대상은 전체대상이라는 관점이 있고서야 비로소 소급해서 나오는 것입니다전체대상은시선이 마주치거나 부름에 반응하는 등의 상징적인 개체화로의 힘이 걸리는 9개월만에 한꺼번에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차원의 것입니다부분대상은 이런 상징적인 것의 설정의 피안에 있습니다.

    자폐아의 행동에서부분대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은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그들이 뭔가를 갖고서 놀고 있는데그걸 집어들어 방해했다고 칩시다보통의 아이라면방해한 상대로 향합니다만자폐아는 방해를 하는 손으로만 향합니다혹은 카나의 논문의 있는 사례인데요바늘로 찌르면찌른 상대가 아니라 바늘 자체를 두려워한다이처럼 자폐아는 단편적 세계 속에 있으며그것을 자체성애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츠모토 부분대상만이 있고전체대상으로서의 타자가 일어서지 않는다는 거죠.

 

우츠미 그렇게 되면다음으로 S2 없는 S1의 신분이 문제가 됩니다. S1은 S2가 있어서 사후적으로 설정되는 것입니다만, S1밖에 없을 때그 양태는 어떻게 될까요?

 

마츠모토 얼마전 한밤중에 NHK 방송을 봤다면아르 브루트(Art Brut, 아웃사이더 아트)의 특집을 했습니다그 프로그램에서 장애인 시설에 있는 분으로해외에서도 개인전을 열게 된 시바타 에이이치(柴田鋭一) 씨라는 분의 작품을 소개했는데요그 분은 처음 무렵에는, ‘2’와 ‘3’만을 오로지 반복해서 캔버스에 그렸어요그것이 대단한 작품이 되었습니다오랫동안 ‘2’와 ‘3’을 반복했는데요그 후에 비누[石鹸세켄]의 []’”라는 문자만 줄곧 그리게 됩니다그것이 해외에서 받아들여져 개인전까지도 열게 됐다고 합니다이 경우, ‘2’와 ‘3’, ‘[]’ 같은 문자가 S1입니다이런 문자들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본인도 자폐적이며 중독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극치인 것은반복하고 있는 []’라는 글자가 다름 아닌 비누[세켄]의 []’”라는 것입니다본인은 단순히 []’라고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이 []’는 예를 들어 세계[세카이]’나 석유[세키유]’ 등으로 분절화되는 세[]’가 아니라항상 비누[세켄]의 []’” 그 자체이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치바 문맥 형성을 하지 않는 문자로서의 문자.

 

마츠모토 바로 레트르(lettre)’네요그런 자체성애적인 것의 향락성의 제시와 에크리튀르 사이의 관계를라캉은 조이스론에서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마츠모토 씨는 에릭 로랑이 언급한 로신느 르포르Rosine Lefort의 분석에서, “늑대!”라고 고함을 지르는 사례를 참조했습니다저것은 [누군가의시선을 받거나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패닉 상태가 됐을 때 외치는 것이었죠.

 

마츠모토 (증례인 로베르Robert[Rosine et Robert LEFORT : Naissance de l'Autre, Seuil, 1980])는 자신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은 구멍의 출현에 대한 명명으로서 늑대!”라는 소리를 지르는데요그 시니피앙은 분절화되지 않고항상 늑대!”인 채입니다.

 

우츠미 반면 청년기 혹은 성인기의 자폐증 스펙트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일정한혹은 그것 이상의 언어능력이 있습니다그 경우의 특징은말을 도구처럼혹은 모국어인데도 외국어처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말이 신체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다고 할까말하자면 앱(App)처럼 사용됩니다바꿔 말한다면신체가 언어에 의해 포맷되지 않았다이 경우는 S2만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다른 한편에릭 로랑이 언급한 사례처럼 중증 자폐아가 내뱉는 것은 단독적인 S1이며주술적인 것처럼 생각합니다지시한다고 하는처음 부분만 있습니다언어는이 지시에 의해 대상을 절취하고공동 주의(注意등에 의해 공유되는 과정을 통해서 생성합니다그러나 그 앞에서는무엇이든 늑대!”라고 말하면 일단은 패닉 상태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식으로주술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치바 매직워드이며와일드카드인 거네요.

 

마츠모토 자폐증자에게는정형발달의 사람과 똑같은 의미에서 자신의 말이 되는 것은 그 말(S1)뿐이며그들은 그것에 이어진 S2를 거절하고 있습니다라캉은 그것을자폐증자는 말에 대해 자신을 지킨다고 표현합니다그런 사람들이 현행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S2를 S1과 떼어낸 상태에서 사용하게 됩니다. S1 없는 S2입니다그러면공공공간에서 그들이 이용하는 언어(S2)일종의 컴퓨터 언어처럼 되어 버린다현대 라캉파에서는 자폐증에 있어서의 언어의 병리는이처럼 S1과 S2의 분리로서 파악되는 것입니다한편에는 주술적반복적중독적인 매직워드로서의 언어(S1)의 사용이 있으며그것이 똑같은 말에 대한 상동적(常同的)인 집착이 된다다른 한편에서는그들이 S2를 인공언어로서 만들어냅니다땅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상징적인 논리만으로 쓴 루이스 캐롤이 그 일례입니다.

 

우츠미 자폐증 스펙트럼의 S2는 사적 언어처럼 기능할 뿐인 곳이 있습니다사용하는 말은 우리와 공통이며대화가 가능하지만Speech act[발화행위, 발화수행]로서는 기능하지 않는다비트겐슈타인의 그것과 함께 [맞물려다른 것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기어” 같은 것입니다제가 경험한 어떤 청년 사례는자신의 괴로움을 현실감이 없다”, “이인감(離人感)이 있다[자신이 자신이라는 감각을 상실해버리는 것]”, “만족감이 없다라는 세 개의 말로 나눠서 호소한다그러나 저는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습니다매회 그렇듯이그것이 어떤 괴로움인지를 물어보는 처지가 된다그도 끊임없이 그때마다 알려줍니다만역시 금방 잊어버린다사적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통증의 경우처럼 아파!’라는 것에 의해 공통의 코드가 열리고타인에게 이해되는 동시에 자신밖에는 모르는 고유한 감각이 남는다는 것이 되지 않는다감각만이 있고그것에 태그를 열심히 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치바 극히 사적인 기준으로 연합을 하기 때문에듣는 쪽에도 전해지지 않는군요.

 

우츠미 그렇군요에르곤즉 잘 만들어진 언어에 가까운개념 규정이 먼저 있고그 태그로서 말이 있다아까의 늑대!”의 예에서는지시만 있고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만이번에는 정반대로개념이 있고거기에 말이 붙어 있을 뿐지시가 기능하지 않는다. “여기가 아파라든가 이것 때문에 괴로운 거야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치바 시스템이랄까언어 체계만이 있다논리의 공리계의 세계.

 

마츠모토 바로 수학기초론이라든가 분석철학 같은 세계네요.

     그런데 우츠미 씨가 방황하는 자기 포스트모던의 정신병리(さまよえる自己───ポストモダンの精神病理)(筑摩選書, 2012)의 마지막에서 논하신 것은근대의 노모스가 만들어져 근대적 주체가 생산되던 시대 이후에 초월론적인 것이 절멸한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도래하면타자의 부름이나 시선에 반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비근한 예로 깊숙이 들어갑니다만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이떠들고 있는 학생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면그 시선을 눈치 챈 학생들이 차츰차츰 조용해진다선생님은 거기서 여러분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3분이 걸렸습니다” 등이라고 말하는 거네요(웃음). “조용히 해라고 말하지 않아도눈빛의 힘에 의해,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묻는 자로서 기능하는 타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그런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근대적 주체였던 것입니다.

 

치바 :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가 근대의 기조네요그러나 포스트모던에서는눈앞에 서 있어도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를 떨 수 있다교실의 뒤로 돌아가면 판옵티콘의 기능이 작동한다는 예가 [아사다 아키라의구조와 힘』[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에 나오는 것입니다만현재에는 앞에 있든 뒤에 있든 관계가 없다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마츠모토 현대의 주체는 타자성과 시선이 기능하지 않게 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우츠미 씨는 그런 주체의 모습은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를 따른 계산기적 합리성이며거기에는 결단의 계기도 없고근대적인 의미의 자기도 형성되지 않는다고 평가하시네요. 이 논의는 확실히 그렇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도 많네요더 흥미롭게도 근대적 주체가 전제로 삼았던 타자성의 일어섬がり이나 시선과 목소리에 의한 주체화가 기능하지 못한 후에 등장한이런 포스트 휴먼적 인간상에국내의 정신병리학자들이 거의 동시대적으로 주목하고여러 가지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예를 들어스즈키 쿠니후미(鈴木國文씨는 신자유주의란 자유란 무엇인가?” 혹은 자유는 가능한가?” 등의 물음을 빼고서, “자유니까 이렇다”, “자유니까 이래도 된다고 말하는 원리라고 지적하십니다바로 직전에서 물어야 할 질문을 묻지 않은 채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알고리듬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입니다현대에서는 그런 논리가 이러저러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고그것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발달장애의 임상풍경과 꽤 가까운 것이 있다는 것을 스즈키 씨는 지적합니다카토 사토시(加藤敏) 씨는 똑같은 사태를 사회의 아스퍼거화라고 부릅니다.

 

우츠미 그것은 자유가 S1에서 S2가 되었다는 것인가어떤 의미에서는 진리의 보증인으로서 있었던 S1지금은 하인처럼 혹사한다[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전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인가요?

 

마츠모토 아마 자유를 S2만으로 생각하게 되며진리(S1)가 배제되어 버린즉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우리 세대가 보면그렇게 되는데요꽤 올드 패션한 시각이 아닐까요그래서 마츠모토 씨나 치바 씨의 세대에서는 어떻게 보는지흥미가 있습니다.

 

치바 저는 우츠미 씨의 그런 감각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제가 신세대에 속해 있고 알고리즘적인 사물의 처리에 친화성을 느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근본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듯한 물음그 문제성이라는 부정성 ― 들뢰즈는 문제성을 부정성이라고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존재” 같은 식으로 불렀습니다만 ― 이 근본에 있은 다음에그 부정성을 달래면서가설(仮設)된 체계에서 어떻게 사물을 움직이는가그 위에서그래도 답할 수 없는 물음으로 다시 되돌아간다이런 답할 수 없는 문제와당장의 시스템 운용의 이중구조로 해온 것이 근대문화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렇게 해서 가설되고 있는 것을 그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지금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분석철학 등의 논의에는 그런 경향이 강하네요대륙철학에서는 사물의 정의가 반드시 약정되지는 않은 상황에서 얘기를 하기 때문에분석철학자로부터는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하게 된다이쪽에서 보면거꾸로 그런 절차적 논의를 하고 있는 쪽이 섬뜩하고[낯설면서 친숙하고]조금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분석철학은 언어의 사용방식 자체가 S2적이고, “그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항상 듣는다그런 게 아니라사용이야말로 본래의 언어이죠그러나 그 전에,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함으로써단단하게 다져버린다[확고하게 해버린다].

 

마츠모토 저는 알고리즘적인 사고방식은 싫어하지는 않지만그래도 지난날 눈에 띄게 됐던 S2만의 원리에는 자주 놀라며분석철학 책은 읽는 데 꽤 고생니다자폐증자였던 템플 그랜딘은, “라는 개념이 형성되지 못해 괴로워하고모든 개를 관찰한 결과, “라고 불리는 것은 코의 모양이 모두 한결 같다는 것을 깨닫고그것에 의해 라는 개념의 내포를 처음으로 만들게 됐다고 말하더군요.

 

치바 일부의 분석철학은 [단단하게 다져진 것이 아니라] 흔들림이 있는 프래그머틱스로 사용된 사물의 정의를형식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토해 S2만의 구성으로 봤을 때이전의 애매함이 붕괴하고, “사실은 개의 본질은 그 코에만 있었던 것이다처럼 이상하게 한정적인 결론이 되는 것을특별히 지적인 놀라움이나 학문의 발전인 것처럼 말하고그것의 향락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마츠모토 그렇게 함으로써 향락하고 있다.

 

치바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프래그머틱스에 있어서의 말의 두께가 S2적인 단조로움 속에 해체되는 것을 기분 좋다고 생각하고 있죠그리고 그것을말의 두께의 세계에 대해모종의 위협적으로 대치시키는 것에 쾌를 느끼고 있다.

 

우츠미 아이가 말을 배울 때에도혹은 부모가 말을 가르칠 때에도개념은 가르칠 수 없죠차를 보고 붕붕이라고 가르쳐보죠그래서 차가 아닌 것을 아이가 붕붕이라고 부르고, “그것은 붕붕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개념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처음에 지시가 있는 것입니다개념 규정에 너무 얽매이면 잘 안 되는 거죠.

 

치바 최근에는 여러 가지 절차적인 것을 직장에서 요구합니다. “이러저러할 때에는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내고 몇 초 기다렸다가 이렇게 해라” 같은 것을 하는 것이 분명한 가게도 있습니다그런 것은 바로 사회의 아스퍼거화라고 말하고 싶은 상황입니다대학 업무에서도 그것에 가까운 것을 하도록 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우츠미 어떤 카페의 체인점에서는수십 시간의 연수가 있다고 합니다다만셀프엔조이먼트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커피가.

 

마츠모토 최근의 전지구적 기업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개개의 고객에 인간적인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매뉴얼로 인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치바 그런 건 왠지 섬뜩하죠[낯선 친숙함이죠].

 

마츠모토 섬뜩합니다[낯선 친숙함입니다]. 어떤 카페의 체인점에서는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사람에게 점장이 개인적으로 코칭 같은 것을 하는 것 같아요거기에는 꽤 심리학의 메소드가 들어 있어서그래서 나오는 것이 완전히 통제된 인간미가 있는 접객입니다.

 

치바 : S2밖에 없는 가설적 공리체계로서의 인간 같음.

 

마츠모토 인공지능은 그곳에서 이미 완성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바 불가능한 것이나 무한이라는 것이 지성에 있어서 문제였던 시대에는 인공지능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만거꾸로 시대가 인간의 지성을 인공지능적으로 했다면그건 인공지능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최근에는 알고리듬으로 문제 해결하는 것이 인공 지능이라고 꽤 흔하게(casual) 불리게 됐네요.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인공지능 알고리듬으로 라든가저런 캐주얼화는 기묘하다고 생각합니다옛날 같으면 인공지능이 만들었다고까지 야단스럽게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 인공지능이라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요이렇게 인공지능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원래 모델이 되는 인간 문명이 인공 지능적으로 되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해설

클로드 르포르의 낡음과 새로움

解説 クロード・ルフォールのさとしさ

토나키 요테츠(渡名喜庸哲)

 

* 아래에 번역한 것은 클로드 르포르의 책 <민주주의의 발명>의 일역자 토나키 요테츠가 이 번역서에 붙인 해설이다. 평이한 내용도 있고 정보도 있기에 번역해둔다. 이 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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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번역한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다.

낡았다고 한 것은 단순히 이미 최초로 출판된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금세 읽을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직 소련이 세계에 대해 패권 중 하나를 쥐고, 동유럽의 민주화의 다양한 운동들을 억압했던 시대의 사건이다. 냉전 붕괴 이후, 이런 틀 자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낡고, 게다가 읽기 쉽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문체로 써진 책을 굳이 번역한 까닭은, 르포르가 지닌 뻣뻣하고 느릿한 충격을 전하는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이라는 시대에도 명확하게 손에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이, 이 책은 이후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한 가지 조류를 창시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런 영향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한쪽의 전체주의라는 말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학문적 검토를 받지 못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체제라면 어느 체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제멋대로 사용하기 좋은 형용사나 비판을 위한 욕설로 격하되고, 다른 한편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다수결이나 숫자 세기의 표대결 게임과 동의어인 양 회자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 과정(르포르라면 권력자본지식이 융합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민주주의전체주의에 대해 지금도 색이 바래지지 않은 근원적인 고찰이 르포르에게는 있을 터이다.

얼핏 보면, 소련형 혹은 프랑스형 공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는 르포르의 손놀림은 자유주의’, 더 나아가 보수주의에 의한 공산주의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을 비판하는 형태로, 르포르 나름의 전체주의 비판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르포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보이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반공서’로 읽는 것은 완전한 오독이다. 맑스를 공부하면서도 이른바 맑스주의와는 선을 긋는 르포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이나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됐을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사회에서조차도 왜 똑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조직화된 지배양식이 발견되는가, 그리고 좌파를 자칭해온 지식인들은 왜 이것을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쫓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르포르가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자유주의라는 구도 자체가 더 이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 포스트공산주의’(iv)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전체주의공산주의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체주의민주주의의 둘 다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의 모습을 한계까지 추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그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당분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로 그렇게 부르기에 알맞은가? 원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을 계속 제기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르포르의 딱딱하고 둔탁한 충격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과 경력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La Brèche, avec Edgar Morin et Jean-Marc Coudray, Paris, Fayard, 1968/2008〔『学生コミューン西川一郎訳合同出版一九六九年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 Genève, Droz, 1971/Paris, Gallimard, 1979〔『官僚制批判諸要素未邦訳

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Paris, Gallimard, 1972〔『マキァヴェッリ作品研究未邦訳

Un homme en trop. Essai sur « L’Archipel du Goulag », Paris, Seuil, 1975〔『余分人間──『収容所群島をめぐる考察宇京頼三訳未来社一九九一年

Sur une colonne absente. Écrits autour de Merleau-Ponty, Paris, Gallimard, 1978.〔『不在──メルロ= ポンティをめぐって未邦訳

Les Formes de l’histoire, Paris, Gallimard, 1978〔『歴史諸形象未邦訳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Paris, Fayard, 1981/1994.本書

Essais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le), Paris, Seuil, 1986.〔『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世紀)』未邦訳〕 ->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Écrire à l’épreuve du politique, Paris, Calmann-Lévy, 1992/Paris, Pocket, 1995〔『エクリール──政治的なるものにえて宇京頼三訳法政大学出版局一九九五年

La Complication ── retour sur le communisme, Paris, Fayard, 1999.〔『錯綜──共産主義への回帰未邦訳

Le Temps présent. Écrits 1945-2005, Paris, Belin, 2007.〔『現在── 一九四五年〇〇五年未邦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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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많은 논문을 집필했다.[각주:1] 또한 서문가序文家로서의 모습도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의 프랑스어 번역(Flammarion, 1985), 에드가르 키네의 『혁명(Belin, 1987), 단테의 『제정론(帝政論)의 프랑스어 번역(Belin, 1993)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필두로 하는 많은 저작에 서문을 붙였다.

 

클로드 르포드는 192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파리의 카르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만난다. 메를로-퐁티의 영향으로 맑스에 눈을 뜬 르포르이지만, 서서히 트로츠키주의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설에 포함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부감을 깨닫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해 위화감을 품는다. 전후 유네스코에서 근무한 후, 194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전후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한 르포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라는 그룹을 설립하고,[각주:2] 동명의 잡지에서 이미 동구권의 관료주의적 지배양식에 대해 호된 비판을 던졌다. 50년대에 작성된 논문 중 주요한 것은, 이후 관료제 비판의 요소들역사의 형상들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에서도 훨씬 더 지배억압의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스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주류파가 자치또는 자율을 지향한 하나의 혁명정당으로서의 활동의 방향성을 탐색한 반면, 르포르는 그 어떤 조직화도 경직화하고 억압장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도저히 감추지 못했고, 1958년에 갈라선다. 맑스주의적인 문제계를 르포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의 5장에서의 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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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Merleau-Po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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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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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르포르는 두 개의 중요한 논쟁을 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논집 인류학과 사회학(1950)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붙였는데, 이것에 대해 르포르는 51년에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논문 교환과 인간 사이의 투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특히 상징의 지위를 둘러싸고) 반론을 가했다.[각주:3] 다른 한편, 르포르는 실존주의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사르트르의 52년의 논고 공산주의자와 평화에 대해 『레 탕 모데른느195389호에 맑스와 사르트르를 발표하고, 사르트르가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을 동일시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고, 이 때문에 『레 탕 모데른느』와도 멀어지게 된다.[각주:4]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의 이별은 르포르에게 정치활동보다 대학에서 연구자·교육자로서 집필을 통한 정치철학의 이론화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5년부터 71년에는 칸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다. 거기서의 제자들로는 알랭 카이예, 마르셀 고셰, -피에르 르고프 등이 있다.

이른바 <685> 때에는, 옛 친구 에드가 모랭 및 카스토리아디스와 함께 곧바로 반응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공저 685: 균열(일역본 제목은 학생코뮌)을 같은 해에 저술했다(이 책의 장-마르크 크드레이는 카스토리아디스의 가명이다). 혁명의 주체를 학생운동에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급에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쳐놓고, 르포르는 학생반란에, 단지 대학 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대학으로 구현된 근대 산업사회 전반에 대한 재물음을 보고 있다. 동유럽의 민주화에 대해 논한 이 책에도 밑바탕에 깔린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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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논문을 레이몽 아롱에게 제출하고,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을 거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애드가 모랭과 함께 사회학·인류학·정치학의 영역횡단적 연구소”(현재의 에드가 모랭 연구소)를 지휘하고, 나중에 피에르 로장발롱과 함께 레이몽 아롱 정치학 연구소를 세운다. 1989년에 이 연구원을 퇴직한 후에도 정력적으로 집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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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의 르포르의 과제는, 1950년대부터의 관료제 비판의 작업에 의거하여, 후술하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출판을 필두로 하는 동시대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여분의 인간을 참조) 마키아벨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철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전체주의개념을 정밀화하고, 거꾸로 그것과 대쌍이 되는 형태로 민주주의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민주주의의 발명은 그런 일련의 작업의 성과에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조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르포르에게 그때마다의 친구들과 더불어 발간하고, 열띤 논고를 모은 몇 호의 잡지를 간행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잡지로 이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친구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과 새로운 잡지를 세운다는 단속적인 학술잡지를 통한 논의의 장이야말로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레 탕 모데른느이후에도, 68년에는, 현재는 현상학자로서 알려진 마르크 리실(이 책의 7장 참조) 등 브뤼셀자유대학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잡지 텍스처에 마르셀 고셰와 함께 참여하여 이 잡지의 편집에도 종사한다. 게다가 77년부터는 고셰와 더불어, ‘유토피아개념에 대한 사회사상사로 나중에 유명해진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등과 리브르를 창간한다(이 책의 1, 9장의 초출은 이 잡지이다). 이 잡지는 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부언하면, 리브르의 면면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함께 시도한 것이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재독해이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읽히는 자발적 복종론의 파이요 사의 문고판에는 당시에 쓴 고셰와 아방수르가 연명한 서문과 클라스트르의 라 보에티론에 덧붙여, 르포르의 <일자>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도 보이는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는 사상의 실마리를 라 보에티한테서 찾고 있는 것이다.[각주:5] 그 후 80년대에는 아방수르, 피에르 파셰, 니콜 로로 등과 새로운 잡지 과거/현재(Passé/Présent)를 창간하고, ‘개인이나 테러등을 테마로 특집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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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드 라 보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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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80년대에는 민주주의론, 혁명론에 덧붙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논고 등을 보탠 논집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19세기-20세기)을 저술했다. 이것은 본서와 나란히 르포르 정치철학의 이론적 고찰이 정리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서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면서 시사되고 있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중세적인 신학적 정치관의 현대적 잔존을 문제 삼는 중요 논문 신학-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은 특필할 만하다.

이 시기의 르포르의 활동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이론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1988년의 이른바 라쉬디[루시디]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만 라쉬디[루시디] 옹호위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 라쉬디[루시디]론은 1992년 간행된 에크리르에 수록되어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론이나 다른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사드, 토크빌, 기조 등에 관한 논고도 수록되어 있고, 르포르의 사상적 영향관계나 동시대적 관심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999년 간행된 착종은 부제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했지만, 물론 그때까지의 신랄한 공산주의 비판을 거친 말년의 변절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다시금 공산주의의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계획 하에서 이와 관련된 논고가 정리되어 있다. 2007년의 현재 : 1945-2005은 그때까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을 중심으로 모은 선집(anthology)이다.

최후의 르포르는 췌장암을 앓았다. 파리 좌안 7구의 벡(Beck)가에 있는 5층짜리 자택에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르내리기를 하고, 뤽상브르 공원에 나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전부터 친한 벗인 에드가 모랭이 뻔질나게 병문안을 한 보람도 없이, 201010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의 장례식 때, 모랭은 르포르의 죽음을 앞에 둔 스토아학파 같은 고귀함을 증언하고, 그를 “그 어떤 진보주의적 환상에도 양보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사상가, 그리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사상가를 그리워했다.[각주:6]

 

클로드 르포르를 어떻게 위치시킬까?

우노 시게키(宇野重規)는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조류들을 개괄하는 저서 정치철학으로에서, 거기에는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레이몽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또는 반-맑스주의적 흐름이다. 둘째는 알튀세르 이후의 맑스주의적 사상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비판이나 주체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및 클로드 르포르 등처럼 맑스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맑스주의 비판을 거쳐 전체주의 비판에 이르는 조류라고 한다. 우노의 정리에 따르면, 그 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은 알튀세르의 흐름에 속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뤽 낭시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포함한 그룹, ‘68년 사상을 비판하는 소르본 계열의 알랭 르노나 뤽-페리 등의 그룹, 그리고 아롱 및 르포르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을 중심으로 한 그룹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각주:7]

이처럼 르포르는 80년대 이후 복권이 외쳐지는 프랑스 정치철학의 하나의 원류를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르포르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절친인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서는 주요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한 에구치 칸(江口幹) 씨가 쓴 평전이 있으나,[각주:8] 르포르에 대한 연구 논문은 매우 적다.[각주:9] 르포르가 경원시됐던 것은 그의 난해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른바 정통파 맑스주의 사상은 물론, 실존주의에도, 구조주의에도 과감하게 논쟁을 걸고, 유행하고 있는 학파로의 귀속을 항상 거부했다는 독자적인 입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금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치철학복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돌이켜보면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1981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꽤 커다란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미 50년대부터 스탈린비판과 폴란드의 폭동(이 책의 10) 및 헝가리 봉기(이 책의 8, 9) 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68),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 등의 사건, 게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 50년대 말부터 집필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73년의 프랑스어 번역이 처음이었다 에 의해 소련 및 공산당을 근거의 하나로 삼았던 정당 및 사상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뚜렷한 조짐은 이 책의 11장에서 논하는 폴란드의 민주화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치의 겉 무대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의 구호와 더불어 소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프랑스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은 좌파연합을 실현시켰다(이 책의 4장 참조).

좌파연합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81년의 미테랑 사회당 정권을 실현시켰지만, 아무튼 그것이 다양한 모순이나 균열을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미테랑 정권이 사회주의적 기업 국유화 노선으로부터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대전환을 보였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상 면에서는 알튀세르의 맑스주의의 주축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다양한 사상 조류가 생겨난다. 대체로 <685> 이후, <>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혁명이론에 무게를 둔 사상으로부터, <좌익 급진주의>라고 불리는 극좌파조직이나, 3세계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이 활짝 꽃피게 된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얘기되는 앙드레 글뤽스만, 베르나르-앙리 레비 등 신철학(누벨 필로조피)”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에 의한, 미디어용 전체주의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더욱 광범위한 사상의 변동이 프랑스를 덮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치의 이름으로 경시됐던 종교윤리가 복권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일반적으로 인지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며, 유대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쪽에서도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가 회자됐다. 그리고 정치철학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해진 것도 역설적으로 이 시기이다. 그때까지 정치철학이라고 하면, 생산관계를 도외시한 부르주아 이론이라고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퇴조에 의해,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정치철학에 본격적인 주목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기에, 공산주의는 물론 실존주의로도 구조주의로도, 더 나아가 자유주의로도 공화주의로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바로 난간[그 무엇에도 기댈 곳] 없는 사고를 실천한 르포르는, 1983년의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정치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고,[각주:10]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이 부흥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각주:11] 르포르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많다. 맑스를 근본으로, 박사논문의 주제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보에티, 미슐레, 토크빌 등 과거의 사상가, 게다가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레이몽 아롱,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같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흔한 정치철학사또는 정치사상사로는 귀착하지 않는다. 제도로서의 정치(la politique)’와 그 배후에서 그 구체적인 현상형태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구별하고, 후자의 모습을 철학적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는 스승 메를로-퐁티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인 것의 현상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자세를 바탕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통저(通底)하는 현대의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특히 관료제와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도려내는 것,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자명시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이른바 이런 비판적 사회철학이야말로 르포르가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자세 때문에 르포르는 그 어떤 유파도 구성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은 폭넓다.

앞서 인용한 우노(宇野)가 서술하는 것처럼, 르포르 자신이 소속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레이몽 아롱 연구소의 정치철학자에 대한 영향은 물론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칸대학 시절의 제자인 마르셀 고셰에 의한, “근대의 탄생을 정치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관계로 파악하는 최초의 주저 세계의 탈마술화세[네] 권짜리 대작민주주의의 도래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신학정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르포르의 관점을 확대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각주:12]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피에르 마냉이나 필립 레노 등에 의한, 특히 토크빌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재평가나, 피에르 로장발롱의 대표제개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사의 시도도 크게 말하면 똑같은 조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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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르포르의 영향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상사나 사상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종교 등등 다양한 사회과학의 영역을 횡단하는 비판적 사회철학이라는 관점이야말로 르포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고셰와 마찬가지로 칸대학에서 르포르에게 배운 알랭 카이예와 장-피에르 르고프의 사회학적 경향을 지닌 정치철학의 시도를 언급해야 한다. 특히 르포르로부터의 영향을 자인하는 카이예는 모스의 증여개념을 기축으로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등의 사회과학 전체를 내다보는 영역 횡단적인 관점 하에서 연구 그룹 “MAUSS(사회과학에서의 반공리주의 운동)”을 수립하고, 동명의 잡지를 무대로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경제주의나 의회제 민주주의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공리주의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독파한 카이예의 자세는 바로 르포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3] 또한 르고프는 <685>의 사상의 비판적 총괄에서 출발하고, 르포르가 논하는 시대보다도 나중인 미테랑의 현대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프랑스의 정치적·사상적 변동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르포르 및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이론적 전거로 삼고, 매니지먼트적 사상이 기업이나 교육에 침투하는 온화한 야만이나 포스트전체주의시대에서의 전체주의그 자체의 변용된 모습을 그러내는 르고프의 작업 또한 르포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각주:14]

위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관계와는 별개로, 80년대 이후 프랑스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사상적 고찰과 르포르 사이의 공명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동시대부터, 특히 권력론이나 근대의 파악방식을 놓고 푸코와의 관계가 논해졌으며, 혹은 르포르가 말하는 근원적인 분열내지 항쟁, 리오타르에 있어서의 쟁론(le différand)’ 개념과의 가까움에 대해 주목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리오타르도 또한 과거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멤버였다. 혹은 정신분석과의 관계도 없지 않다. 이 책의 5장은 정신분석가 르네 마조르를 중심으로 한 잡지 Constellations의 연구회에 초청됐을 때 발표된 것이다. 혹은 르포르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이라는 생각의 원류로서,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라캉을 찾아내며, 르포르가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인 것실재적인 것을 정치사상에 응용했다고 파악하고, 게다가 이로부터 최근의 급진민주주의에 이르는 논리를 보는 해석도 제시되고 있다.[각주:15] 정신분석가이기도 했던 카스토리아디스의 상상적인 것과의 관계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참고로 세포국가를 주제로 하는 Constellations의 같은 호에는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적 패닉도 게재되어 있다.[각주:16] 또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 원래는 이 두 사람이 주최한 81년부터 82년에 걸친 정치적인 것의 후퇴를 주제로 한 연구회에서의 발표가 바탕이 됐다.[각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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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중에 보듯이, 르포르의 정치철학의 근본에는 정치적인 것의 장소를 인민이나 군중같은 얼마간의 주체내지 실체에 의해 차지될 리가 없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소”, “공허의 장소로서 파악하고, 거기에서의 사회/권력의 분할, 혹은 실재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근원적인 항쟁을 통해서 사회라는 것이 구현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점에서 현대의 프랑스 사상에 공통되는 포스트정초주의의 흐름에 르포르를 위치시키고, 낭시, 알랭 바디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과 관련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각주:18] 다만 민주주의의 주체장소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예를 들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프랑스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사상가들과는 가까울 뿐만 아니라 거리도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가령 랑시에르는 주저 불화에서 이런 르포르에 있어서의 이런 미규정적인 장소로서의 인민내지 데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을 쟁점으로 했던 것이다.[각주:19]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실상형상화작품화’(, 제도화)로 회수되지 않는, ‘무한프락시스를 보고 있는 낭시의 생각은 오히려 르포르와의 가까움을 보여줄 것이다.[각주:20]

르포르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어권은 물론이고,[각주:21] 영어권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번역 소개나 독해가 진행되고 있다. 1인자로는 르포르 저작의 영어번역에 붙인 해설 등으로 그 사상의 보급에 진력한 딕 하워드가 있다. 또한 버나드 플린의 클로드 르포르의 철학은 프랑스어로 번역될 정도로 빼어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각주:22] 뉴스쿨포소셜리서치는 르포르의 사후 곧바로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공적을 칭송하고 있다.[각주:23] 프랑스에서는 20123월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166월에는 과거 르포르가 가르친 칸 근교의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에서 르포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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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명에 대해

이 책에는 원래 독립적 형태로 각종 매체에서 공표된 11장이 2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초출은 원주를 참조). 그래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초판에 대한 서문말미에서 말하듯이, 전체는 하나의 논의로 관통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논의이다. 거기에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발명은 동쪽에서 온 온갖 이의제기, 온갖 반항이라고 간주되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369). 1부와 제2부의 표제를 각각 따오면, 전자가 전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전체주의 개념의 이론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이론편이며, 후자는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반소련적·반전체주의적 봉기를 이런 민주주의의 발명새로운 조짐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각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첫머리에서 옮긴이의 요약을 붙여두었기에 자세한 것은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주 간단하게 전체의 흐름만 확인해두면, 1장과 2장이 가장 이론적인 장으로, 전자에서는 인권개념을 축으로 근대의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고, 후자에서는 바로 전체주의의 논리가 정면에서 논해지고 있다. 3장은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스탈린주의와의 관계, 4장은 70년대의 프랑스 공산당·사회당의 좌파연합, 5장에서는 르포르 자신이 과거 맑스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빼져나갔는가라는 구체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각 장의 후반부에서 전체주의의 개념 그 자체의 이론화가 시도되고 있으며, 서로 공명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6장에서 (주로 소비에트에서의) 반체제파의 문제, 7장에서 혁명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결하게 논의된 후, 7장부터 9장에 걸쳐서 1956년의 헝가리 봉기(동란), 10장에서는 같은 해의 폴란드의 이른바 포즈난 폭동이라는, 스탈린 비판 이후의 반소련의 민중봉기가 다뤄진다. 11장은 같은 폴란드에서 80년대부터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르포르의 기본 테제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가, 그 개략을 확인해두자.

르포르는 다양한 표현으로 전체주의를 특징짓고자 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은 <하나인 인민(Peuple-Un)>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첫째로, 르포르가 논적으로 삼은 기존의 공산주의 사상과의 관계에서도, 둘째로 르포르의 또 다른 열쇠 개념인 분할의 철폐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선 곳곳에서 이뤄지는 르포르에 의한 기존 공산주의 비판의 요점은, 공산당부터 트로츠키주의자, 좌익급진주의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전체주의라는 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히 파시즘과 나치즘에는 비판을 향했지만, 싸워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이라고 하며,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를 보려고 하는 비판은 자본주의에 이로울 뿐이라고 기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포르에 따르면, 그들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은 사실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가를 인민의 의지와 권력에 종속하는 하나의 국가로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 아래에서 국가가 사회와 일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바로 이 발상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상이한 차원의 구별을 철폐했지만, ‘권력의 특이성을 깨닫지 못하고, 관료제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그 특질을 분명히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르포르에 따르면, 바로 이 점이야말로 전체주의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민사회의 분할이 철폐되고, 하나의 신체를 이루듯이, 인민=프롤레타리아트로 융합한다는 생각이다. 5장의 제목이 적절하게 말하듯이, “신체의 일체성이야말로 문제이다(143). 이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2장 및 3장에서 인용되는 스탈린에 대한 트로츠키의 말이다(52, 99). 거기에서는 짐은 국가이다라고 말하는 루이 14세에게 나는 사회이다라고 말한 스탈린이 대치되어 있는데, 루이 14세의 시대는 아무리 절대왕정이었다고 해도, ‘사회의 부분이 그 외부에 남겨져 있었던 반면에, 스탈린의 전체주의에서는 <>을 매개로 하여 국가도 사회도 인민도 모든 것이 하나의 신체혹은 조직을 이루게 해서, <일자>로 환원된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파는 이런 사회의 외부에 추방해야 할 <타자>, 신체의 건전한 일체성을 위협하는 기생자라고 지목된다. <하나인 인민>인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내부에 분할이나 항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다양한 분할이 철폐된 <하나인 인민>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추상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에서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할의 철폐란, 구체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생산, 교육, 과학연구, 사법, 문화 등 본래 독립적이어야 할 시민사회의 각 영역에 침입한다는 사태를 동반하고 있다. 이런 영역들은, 비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독립된 가치를 지니며, 그 나름대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에서는,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법적 차원, 문화적 차원, 미적 차원, 과학적 차원, 교육적 차원 등의 분할까지도 철폐되고(르포르가 곳곳에서 말하는 <권력>, <>, <지식>이라는 것은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심급을 가리킨다), 법적으로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가, 학문적으로 무엇이 참인가, 교육기관에서 무엇이 가르쳐져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판단되는가 등등이 <하나인 인민>의 논리에 기초하여 결정되어 버린다 각각의 영역에 더 이상 독립된 판단을 내리는 심급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르포르는 이런 융합을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관료조직의 작동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기업적 논리가 침투하고, 관료 조직이 금융계나 산업계로부터의 압력에 종속한다는 구조도 물론 시야에 넣고 있다는 것도 부언해두자. <권력>, <>, <지식>에는 물론 <자본>도 보태진다.

이처럼 르포르는 전체주의에서의 표상이나 상징의 작용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소비에트적인 지배양식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거기로부터 이론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상징의 차원과 현실/실재의 차원을 구별한 뒤, 그 양자를 오가는 형태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려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얘기되듯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실/실재에 사회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것을 악마화해 버리는 그 전능함을 천진난만하게 상정하는 것의 단적인 물구나무 세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르포르에게 전체주의에 의한 상징적인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실재에 있어서는 다양한 분열이나 항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균열’(221, 319)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균열을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민주주의의 발명조짐을 읽어내는 작업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대중봉기를 논하는 2부의 주제이다.

이런 현실[실재]적인 균열에 기초하여, 르포르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가? 르포르에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까지 봤던 전체주의 사회의 물구나무 세우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와 사회, 사회 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권력>, <>, <지식> 등등의 각 차원도 분리해야 하는 사회이다. ,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민에게 <권력>의 원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외재적인 <>에 제약되어야 하며, <지식>도 독립된 장소를 갖고 이어야 한다고 간주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인민(peuple)’ 그 자체가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고 일체화를 거부하고, 내부에 균열이나 항쟁을 들여온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르포르가 이따금 이의제기권리요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각의 인민은 스스로의 권리에 기초하여, 혹은 현실/실재로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을 향해, ‘인민그 자체가 쥐고 있다고 하는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 보면, ‘인민은 항상 완전한 일체를 달성하는 것이 없으며, 말하자면, “인민의 동일성은 끊임없이 물음에 부쳐진다”(150). 민주주의 사회가 내부인 이타성의 시련을 겪는다고 얘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129).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사회와 사회 그 자체의 분리로부터 새로운 사회가 끊임없이 산출되는 것이다.

참고로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조짐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민중봉기에서 찾아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그런 예외적인 사태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르포르가 보통선거의 상징적 의미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 보통선거는 인민의 의지의 발현이며 새로운 사회조직의 정초인 동시에, 일체적인 것이라고 상정된 인민이 개별적인 수로 세어질 수 있는 단위로 변환되고”, 사회의 해체가 모방되는 계기라는 것이다(122-123). “수가 일체성을 해체하고, 동일성을 무화한다고도 얘기된다(149). 여기에 있는 것은 보통선거를 통한 이의제기라는 현실주의적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통선거를 통해 바로 사회라는 장소가 결코 일체화할 수 없는 항쟁의 장소로서 드러난다는 그 상징적인 작용이 문제인 것이다. 르포르가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를 굳이 원용한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속표지에 그려진 괴수 리바이어던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군중이, 개개의 다수의 군중으로서 가시화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각주:24]

헌데, 그렇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인민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는 권력이란 어떤 장소를 갖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그것은 인민이 스스로를 물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산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다”(57).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은 공허한 장소(lieu vide)”, “정의상 점유할 수 없는 상징적인 장소이다(91). 참고로 르포르는 권력, 인민이 자율 혹은 자주관리를 위해 기피해야 할 것으로도, 똑같은 목적을 위해 탈취해야 할 것으로도 파악하지 않는다. 르포르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곳곳에서 얘기되듯이, 사회 공간을 질서화하고,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상화또는 제도화하는 차원이다. ‘권력이 어떤 방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형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나인 인민>에 있어서의 <권력>, <>, <지식>의 융합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해, “공허한 장소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민의 내적 항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대치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단순한 이항대립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항쟁적 민주주의의 실천으로의 유혹이 르포르의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니며, 20세기의 정치경험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에 기초한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권력의 장소를 둘러싼, 정치사상사적인 이해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적해둔다.

문제는 1장이 다루고 있듯이, 근대 민주주의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점에 있다. 르포르는 이것을 중세 봉건제로부터의 해방으로서 파악하는 것도,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주체화의 전단계로서의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의 신학정치적인 정치체로부터의 모종의 연장선상에서 근대민주주의의 도래를 파악하고, 그 위에서 양자의 차이를 봄으로써, 더욱이 이로부터의 전체주의로의 변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5장에서 상술되듯이, 이 논의는,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가지 신체론에 근거하고 있다.[각주:25] 근대 이전까지는, 주권자로서의 왕은,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구체저인 신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징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로 이어지는 초월적 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인 신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 구상화된 외재적·초월적 질서야말로, 하나의 국가의 일체성을 떠받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의의가, 왕의 신체가 파괴된다, 혹은 지금까지 초월적인 질서와 세속적인 질서를 연결했던 머리가 잘려짐으로써, 그때까지 하나의 신체를 이루었던 국가가 탈신체화(désincorporation)’한 점에서 본다(24, 149). 이런 외재적·초월적 질서 간단하게 말하면 <>의 질서 야말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이며, <권력>, <>, <지식> 등 다양한 심급을 묶었지만, 이 연결이 해소되고, 각각의 심급이 독립해가는 과정이 탈착종화(désintrication)”이다(25). 근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이런 탈신체화·탈착종화야말로, 앞에서 본 권력공허한 장소를 낳게 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권력>의 원천 내지 근거를 지금까지처럼 외재적·초월적인 질서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란 권력, , 지식이 근본적인 미규정성에 노출된 사회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자신 속에 양의성또는 모순을 본질적으로 품고 있다. 권력의 장소는 이제 외재적 원천을 갖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닌”, “공허한 장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은 인민자신 속에서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공허한 장소에, 현실적인 실체라고 상정된 대문자 <인민>삽입되고, 바로 그것이 권력의 주체라고 간주되자마자, 그 사회는 <하나인 인민>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를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내부인 타자를 대문자의 <타자>화하고, 이것을 외부의 혹은 기생자로서 배제할 것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의 이유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는 동시에, 그 이행을 방해하기 위한 이의제기, 권리요구 등 내적 항쟁의 실천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정당성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인 신체>로서 응고되고, 전체주의로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항상 내적 항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수화시키고, 스스로를 재창출=재발명(réinventer)필요가 있는 것이다(369).

 

위와 같이, 약간은 고풍스러운 대상을 다루고, 복잡한 논리에 입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시도가 어떤 것인지, 그 현실[실재]적 및 상징적 작용을 철저하게 캐묻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 민주주의라는 것의 윤곽을 밝히려고 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판 간행 당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도, 전제하고 있는 지적 틀도, 현재에서 보면 오래됐음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우 30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망각하기에는 충분히 길지만,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에는 적당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눈앞에 있던 것은 과연 민주주의였는가? 만일 민주주의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면, ‘전체주의는 형태를 바꿔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을 생각하기 위해 약간 관점을 과거로 물리는 것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결코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1. 일본어로 번역된 주된 논문으로는 다음이 있다. 「民主主義という問題」(本郷均 訳, 『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二〇世紀)』 수록), 「人権と政治」(松浦寿夫 訳, 『現代思想』, 17巻 12号, 1989年 ; 18巻 4号, 1990年(이 책에 수록), 「デモクラシーの社会学のために」(竹本研史 訳, 『アナール 一九二九―二〇一〇』, 第3巻, 藤原書店, 2013年). [본문으로]
  2. 그 중 카스토리아디스의 논문을 모은 것은 이미 일본어 번역이 있다. 『社会主義か野蛮か』(江口幹 訳, 法政大学出版局, 1990年). [본문으로]
  3. C. Lefort, « L’échange et la lutte des hommes », Les Temps modernes, nº64, 1951.(『歴史の諸形象』 수록). [본문으로]
  4. 일련의 논쟁은 다음의 일본어 번역에서 읽을 수 있다. サルトル, ルフォール, 『マルクス主義論争』, 白井健三郎 訳, ダヴィッド社, 1955年. [본문으로]
  5. E. de la Boétie, Le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Paris, Payot, 1976. [본문으로]
  6. E. Morin, « Claude Lefort(1924 -2010). Avec Lefort », Hermès, La revue, no. 59, 2011. [본문으로]
  7.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48頁 이하. [본문으로]
  8. 江口幹, 『疎外から自治へ──評伝カストリアディス』, 筑摩書房, 1988年.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르포르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으나, 특히 エンツォ・トラヴェルソ의 훌륭한 책인 『全体主義』(平凡社新書, 2010年)의 관련된 부분은 유익하다. 또한 佐々木允臣 씨가 법학(특히 인권론) 분야로부터 일관되게 르포르를 논하는 것은 특필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佐々木允臣, 『自律的社会と人権』, 文理閣, 1998年을 참조. 이 밖에도 松葉祥一, 「民主主義の両義性──クロード・ルフォールと「政治哲学」の可能性」(『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 및 宇野重規, 「メルロ=ポンティ/ルフォール 身体論から政治哲学へ」(『現代思想』, 36巻 16号, 2008年)도 참조. [본문으로]
  10. 「民主主義という問題」, 일역본 앞의 논문, 40頁. [본문으로]
  11. 프랑스의 학술지 『정치와 사회』의 2003년의 “프랑스에서의 정치철학의 회귀”를 주제로 한 특집호에서 편집자들은 르포르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G. Labelle et D. Tanguay(eds), « Le retour de la philosophie politique en France », Politique et société vol. 22, no. 3, 2003. [본문으로]
  12. M. Gauchet,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Gallimard, Paris, 1985 ;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 Gallimard, t. 1 , t. 2, 2007, t. 3, 2010. 이하도 참조. マルセル・ゴーシェ, 『民主主義と宗教』, 伊達聖伸・藤田尚志 訳, トランスビュー, 2010年. [본문으로]
  13. アラン・カイエ, 『功利的理性批判──民主主義・贈与・共同体』(藤岡俊博 訳, 以文社, 2011年)을 참조. [본문으로]
  14. ジャン=ピエール・ルゴフ, 『ポスト全体主義の民主主義』(渡名喜庸哲・中村督 訳, 青灯社, 2011年)을 참조. 또 최근에는 남프랑스의 한 마을로부터의 정점 관측에 의해, 20세기의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형을 묘사하고 있다. 『プロヴァンスの村の終焉』(伊藤直 訳, 青灯社, 2015年)을 참조. [본문으로]
  15. W. Breckman, Adventures of the symbolic : post-Marxism and radical democrac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본문으로]
  16.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フィリップ・ラクー=ラバルト, 「政治的パニック」, 柿並良佑 訳, 『思想』, 岩波書店, 1065号, 2013年. [본문으로]
  17. P. Lacoue-Labarthe, J.-L. Nancy(dir.), Le retrait du politique, Galilée, 1983. [본문으로]
  18. O. Marchart, Political Difference in Nancy, Lefort, Badiou and Laclau,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7. [본문으로]
  19.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 『不和あるいは了解なき了解──政治の哲学は可能か』, 松葉祥一 dhl 訳, インスクリプト, 2005年, 167頁. [본문으로]
  20.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民主主義の実相」, 『フクシマの後で』, 渡名喜庸哲 訳, 以文社, 2012年. [본문으로]
  21. 특히 다음이 중요하다. C. Habib et C. Mouchard,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 Éditions Esprit, 1993 ; H. Poltier,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 Genève, Labors et Fides, 1998 ; N. Poirier(éd.), 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éxpérience démocratique, Le Bord de l’eau, 2015. [본문으로]
  22. B. Flynn, The Philosophy of Claude Lefort,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5. [본문으로]
  23. 그 기록은 우선 정치철학계의 학술지에 게재되고(Constellations, vol. 19, no. 1, 2012), 더 나아가 다음의 증보판으로 출간됐다. M. Plot(ed.), Claude Lefort. Thinker of the Political, Palgrave Macmillan, 2013. [본문으로]
  2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ジョルジョ・アガンベン, 『スタシス──政治的パラダイムとしての内戦』(高桑和巳 訳, 青土社, 2016年)을 참조. [본문으로]
  25. エルンスト・カントーロヴィチ, 『王の二つの身体』, 小林公 訳, ちくま学芸文庫, 2003年.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자폐증 스펙트럼의 시대

: 현대사상과 정신병리

自閉症スペクトラムの時代: 現代思想精神病理

우츠미 타케시(内海健) / 치바 마사야(千葉雅也) / 마츠모토 타쿠야(松本卓也)


  

 * 이 글은  現代思想』 2015년 3월호 '정신병리의 시대'에 수록된 첫 번째 대담을 옮긴 것이다. 이 대담을 옮기면서 다시금 실감한 것은, '영어'나 '불어'를 번역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말을 할 때, 꼭 필요한 경우를 빼면 절대로 영어나 불어 등을 그대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무튼 위 사진의 가운데 인물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기 위해 이 글을 옮긴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인 마츠모토 타쿠야의 글은 이미 <현대 라캉파의 논점들>이라는 번역으로 소개했으므로 그것도 참고하기 바란다.

現代思想』 2015년 3월호를 전체적으로 볼 때, 들뢰즈(와 가타리)에 기반한 논의가 중심이라는 점도 지적해둔다. 

* 일본에서는 라캉의 '실재계'를 대체로 '현실계'로 옮긴다. 이를 다시 '실재계'로 옮겨적었으나, '현실'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에도 이것이 '실재계'와 연결된 것임을 생각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바꾸긴 했으나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 또한 '스키조프레니'의 경우 예전에는 '정신분열증', '정신분열증자' 등으로 옮겨졌으나, 요즘에는 '조현병', '조현병 환자' 등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전처럼 이해하는 게 좋겠다. 아무튼 이것도 '스키조프레니'로 그대로 적어뒀다. 그들이 그렇게 발음했기 때문이다. 

  

일자의 향락

마츠모토 : 이번에 저는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 : 자크 라캉과 감별진단의 사상(はみな妄想する : ジャック・ラカンと鑑別診断思想(青土社, 2015)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대적인 라캉 연구를 참조하면서, 라캉을 통사적으로 재독해함으로써 라캉을 이른바 프랑스 현대사상속에 다시금 자리매김하는 저작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서서히 실감하며 알게 된 것은, 라캉파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인 자크 알랭 밀레르의 라캉 독해, 표준판 라캉을 만드는 공식화 작업이 전기·중기 라캉뿐 아니라 후기 라캉에도 미치며, 하나의 도달점이랄까, 모종의 일단락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일단락은 밀레르가 2011년에 한 존재와 일자(l’Étre et l’Un)(별명 : 하나뿐인 일자(L’Un-tout-seul), 하나뿐인 자들(Les-tout-seuls))라는 강의입니다. 이 강의는 70년대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후기 라캉의 행보를 지금까지 읽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사후적으로 보면, 이 독해는 밀레르가 편집한 [라캉의] 세미나출판의 흐름과도 합치했습니다. 2005년에 13권인 생톰이 출판되고, 2007년에는 18권인 외양이 아닐 수도 있는 담론에 대해(On a discourse that might not be a semblance), 2011년에 19권인 우 피르(Ou Pire)가 출판됐습니다. 그리고 그 집대성인 밀레르의 2011년의 강의는 우 피르의 해설이기도 합니다. 제 책이 노린 것은 우선 우 피르에 이르는 라캉 독해를 밀레르에 의거하면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그 독해의 성과를 프랑스의 정신병리학의 논의에 떨궈놓고, 더 나아가 들뢰즈=가타리나 데리다와의 대결 등 현대사상의 여러 가지 과제 속에서 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최근의 밀레르 주변 논자들의 논의에는 아무래도 들뢰즈=가타리나 데리다와의 논의와 친근성을 가진 논의가 있는데도 그 누구도 그것을 정색하면서 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존재와 일자에서의 라캉 독해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라캉은 그동안 주로 하이데거 존재론의 영향이 강한 이론가로 불렸지만, 밀레르에 따르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캉은 세미나18, 19권의 논의를 거쳐, 20권인 앙코르에서 성별화의 식(性別化)”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존재론(ontologie)”을 버리고, 파르메니데스=플로티누스적인 일자론(hénologie)”으로 전회했다고 밀레르는 주장합니다. 물론 라캉은 71~72년의 우 피르세미나에서 일자론이라는 말을 이미 썼어요. 하지만 세미나 해적판을 편찬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자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거의 모든 해적판이 라캉이 일자론(hénologie)’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정확하게 옮겨 적지(transcription) 못했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에서 일자론으로의 전회를 중시하는 밀레르의 2011년 강의에 의해, 아마 처음으로 후기 라캉의 일자론의 이론적 의의가 끄집어내진 것입니다.

    헌데, 이 일자론은 치바 씨가 너무 움직이지 마라 :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きすぎてはいけないジル・ドゥルーズと生成変化哲学)(河出書房新社, 2013)에서 다룬 존재론적 파시즘얘기와 유비적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들뢰즈한테는 모든 것이 융합하고 점점 연결되어 하나(일자)가 된다는 논의의 흐름이 있으며, 그것은 특히 네그리=하트화된 들뢰즈에서 현저한데요, 그것은 일자의 파시즘이 되어버릴 위험성을 품고 있다. 그런 접속적 들뢰즈와는 정반대의 들뢰즈 상()을 치바 씨는 절단이라는 키워드로 끄집어낸 것입니다. 다른 한편, 밀레르가 후기 라캉의 일자론에서 끄집어낸 일자도 존재론적 파시즘의 일자 밀레르는 그것을 융합적 일자(Un fusionnel)’라고 말합니다 가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존재와 일자의 다른 제목이기도 한 “L’Un-tout-seul”, 즉 단 하나뿐이며, 타자와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별개의 형태인 듯한 일자임을 하이데거적인 라캉이 아니라, 파르메니데스=플로티누스적인 라캉 속에서 밀레르는 끄집어낸 것입니다.

 

치바 : 일자에 대해 융합적 일자라는 이해가 있다는 것을 한 번 말한 뒤에, 그런 게 아니라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네요.

 

마츠모토 : 그렇죠. 앙코르의 세미나에서도, 맨 처음에 융합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 일자였다고 간주되는 남자와 여자가 재융합하는 것을 지향하는 안드로귀노스(androgynos)의 신화처럼, 융합적인 것을 지향하는 에로스적 향락을 라캉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라캉은 보편적 융합의 일자와는 상이한 향락으로서, “여성의 향락(<다름>의 향락)”을 끄집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라캉의 일자론은 여성의 향락의 발견을 경유하여, 보편적 융합의 원리로부터 벗어나는 각각의 개별적인 일자의 향락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앙코르6장과 7장에서, 라캉은 유명한 성별화의 공식을 완성시킵니다. 7, 8장에는 백치[바보]의 향락(jouissance de l’idio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 백치인가? 라캉은 남성의 향락이 기본적으로 자위행위(masterbation) 같은 것이며, 자신의 팔루스를 사용해 자위하는 듯한 것이며, 그래서 타자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남성의 향락은 타자와 관계를 갖지 않는 어리석고 못난 향락이라는 의미에서 라캉은 백치의 향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앙코르 8장에서 백치의 향락이라고 말할 경우의 백치라는 말에는 사실 그리스어의 어원인 ίδιώτης가 지닌 기묘한개별적인이라는 두 개의 의미가 있다고 라캉은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백치의 향락이 지닌 개별적이라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특이적=단독적(singulier)”이라는 의미를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그 향락이, 융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하나뿐인 각각의 개별적인 형태인 일자의 향락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앙코르성별화의 식이 완성된 후에 라캉이 발견한 것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앙코르8장 이후의 라캉은 전년도의 우 피르에서 도입된 일자론을 논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후 라캉은, 그 일자의 향락은 자체성애적인 것이며, 거기에 주체의 향락의 특이성=단독성(singulalit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거기에서 분석의 종결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생톰의 세미나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임스 조이스는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예술을 만든 것이라는, 꽤 표층적인 이해가 생톰에 관해 이뤄져왔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신병 같은 증상이 있은 후에 창작을 한 사람이라면 뭐든지 생톰입니다. 그러나 라캉의 주안점은, 사실은 거기에 없는 게 아닐까? 라캉은 생톰을 개강하기 직전에 증상으로서의 조이스(Joyce le symptôme)라는 강연을 했습니다만, 거기에서 라캉은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가 자신의 향락의 특이성을 전면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하다, 보통이라면 분석을 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지만, 조이스는 분석을 하지 않고서도 거기에 도달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체성애적인 향락은 무엇이냐 하면, 라캉은 그것을 신체의 사건이라는 말로 얘기합니다. 신체의 사건이란, 어린이가 자체성애적으로 향락하는 곳에 처음으로 언어가 개입할 때에 주어진 충격 같은 것이며, 거기에서는 시니피앙이 물론 들어오지만, 그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과 분절화되지 않고 하나뿐이며, 게다가 그것은 향락과 일체가 된 일종의 에크리튀르 같은 것이다. 그 에크리튀르의 장소를 정신분석은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를 라캉은 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논의가 2011년까지 프랑스에서 라캉 독해의 모종의 일단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까 화제에 올린 치바 씨의 책과 닮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바 : , 공통의 규범화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개 별별의 특이성을 어떻게 격려하는가, 부활하는가라는 방향으로 후기 라캉의 임상은 향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들뢰즈-가타리와 거의 같죠. 다만, 거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더라도 어떤 규범화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분석을 밀고나가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규범성에 의거하는 기술과 특이성을 장려하는 기술이 어떤 관계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각날 수밖에 없죠. 이것은 나중에 재차 건들고 싶습니다.

    그 전에, 일자론 얘기는 재미있네요. 여기에서 얘기되는 일자성, 혼자서 있는 것의 일자성은 일종의 자위(onanism)를 긍정한다는 의미이죠. 그것도 바로 들뢰즈적 의미에서의 욕망의 특이성을 긍정하는 것으로 통하며, 제 책에서 독신자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비전과도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에서는 일자-전체가 융합적 기능을 갖는 것을 경계한 것인데요, 일자에게 다른 의미를 나누고, 분리한 상태, ‘분리성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사용하는 것은 있죠.

 

마츠모토 : 너무 움직이지 마라에서, 자기항략(self-enjoyment, 이하 '셀프엔조이먼트'로 옮김)론을 전개하는 곳에서 바로 플로티누스를 인용하고 있고, 전체화 불가능한 단편의 세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도 논합니다만, 꽤 자폐증적인 세계에 가깝다고 느끼며, 후기 라캉이 봤던 특이성의 세계에 겹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밀레르의 존재와 일자를 읽은 것은 2012년 혹은 13년인데요, 2013년에 치바 씨의 책이 나왔을 때, 양자의 가까움에 꽤 놀랐습니다.

 

치바 : 저는 밀레르를 읽지 않았지만, 뭔가 세계동시적으로 움직이던 해석 경향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폐증 개념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어떤 밸런스로 생각하는가가 오늘날에도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튼 양보할 수 없는 향락의 장소라는 의미를 자폐라는 말로 형언하고 싶다는 것은 제게도 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의료 전문가가 아니라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도 포함해 자폐증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할 수 없다며 제 자신에게 금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자폐증을 비유로서는 말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사실 이 책을 한창 쓰고 있을 때부터 마츠모토 씨와는 몇 번이나 얘기는 나눴고, 그 속에서 자폐증 개념을 셀프엔조이먼트와 가깝게 하는 고찰은 이미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죽치고 앉아 있던 맥락이 마침내 마츠모토 씨의 책에서 전면 전개됐다는 형태가 됐으며, 이것이 이후 어떤 식으로 논의를 파급시키게 될지는 참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츠미 : 셀프엔조이먼트와도 얽혀 있는 얘기인데요, 자체성애는 브로일러1911년에 스키조프레니를 개념화했을 때, 구스타프 융을 경유하여 프로이트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만일 자체성애를 싱귤라리티(singularité)로 바꿔 읽으면, 스키조프레니의 경우 싱귤라리티(singularité)의 도상에서 초월론적인 것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미지화해서 말하면, 카프카의 법의 문 앞에서같은 것이랄까요. 시골에서 온 남자는 문 앞에 가까스로 도착합니다만, 문지기한테 걸려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거기에 머뭅니다. 마지막에 문지기는 이 문은 너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집니다. 스키조프레니싱귤라리티에 대해 어피니티(affinity, 친화성)를 갖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치료자는, 이런 싱귤라리티를 관계성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요구됩니다. 기묘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싱귤러(singular)양자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여부가 치료자로서의 자질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스키조프레니의 경우에는, 아직 초월론적 심급이 기능하고 있으며, 부정신학적 구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은 그 빈 곳에 출현하는 자기장에 홀리고 이끌립니다. 라캉은 그것을 인격신(대타자)에게 말을 걸고 파라노이아에 준한 방향에서 얘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역시 카프카의 문이 이미지로는 가깝습니다. 실재계와 상징계가 떼어내진(decoupling) 양태랄까, 슈미트가 형식적인 법과 그것을 행사하는 힘을 나눠서 얘기하는 것을 흉내 낸다, 그 힘이 충만한 공백지대 같은 것이 개시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치료관계에 있어서의 싱귤라리티는 이런 강한 자기장으로부터, 얼마나 이심적(離心的)인 지점까지 데려오게 되느냐는 것에 관련된 프락시스입니다. 두 사람의 저작을 읽으면서, 자폐증 임상과 스키조프레니 임상을 대비해 보는 관점이 부상하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마츠모토 : 예전에 기무라 빈(木村敏) 씨는 정신분열증이 개별화의 위기에서 발병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어쩌면 혹시 청년기에 다시금 싱귤라리티를 낼 때에 실패하여 발병한다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면, 자폐증에서 왜 싱귤라리티가 정신분열증만큼 위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안전하게 나오게 되는가 하면, 그들은 개별화의 위기가 위기로 되지 않도록, 초월론적인 것과의 마주침을 모종의 방식으로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싱귤라리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츠미 : 우리가 일반임상에서 관련된 자폐증 스펙트럼의 사례는, 주로 청년기 이후의 사람들에서, 자타미분화의 상태로부터 개체화가 시작될 무렵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아주 고통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관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타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만, 반드시 그것이 초월론적 차원의 것이지는 않습니다.

    밀레르는 라캉 독해에서 배제가 최종적으로는 일반화 배제이며, 신경증과 정신병 둘 다가 토템과 터부적인 구도 하에 있다고 했습니다. , “아버지의 이름이 배제되는 것은 정신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양자에 공통적인 구조라는 것입니다. 자폐증 스펙트럼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재에서 돌이켜보면, 이 일반화 배제에 의해 정신병도 신경증도 정형 발달定型発達한 것이라고 말한 게 됩니다.

 

치바 : 일반화 배제를 정형 발달의 표식으로 보는 읽기를 할 수 있다고.

 

우츠미 : 그렇군요. 정형자(定型者)라는 것은, 자신에게 눈뜨기 전에, 타자와 한번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키조프레니에게 찾아온 타자는, “어딘가에서 한번쯤 만난 듯한 타자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혀 만난 적이 없었을 텐데도, 왠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녀석인 것 같다는 느낌이니까, 전적으로 무관한 타자가 아닌 것입니다.

 

마츠모토 : 그래서 무서움이 있다는 것이죠.

 

우츠미 : 그렇군요. 반면, 자폐증 사람들은 바로 처음에 타자와 만나는 것입니다.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타자에게 마음이라는 것이 있었다니!”라는 식으로 놀라게 됩니다. 레오 카나1943년의 논고에서 자폐증개념을 제시했습니다만, 그때, 똑같은 자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스키조프레니withdrawal인 반면, 자폐증은 aloneness이며, 양자는 철저하게 다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브로이어 식으로 말하면, 스키조프레니는 한 번 구성된 현실로부터 철퇴[뒤로 물러섬]하여 공상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반면 아까 말한 셀프엔조이먼트나 자체성애는 카나가 자폐증 속에서 찾아낸 aloneness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츠모토 : 자체성애라는 곳으로 얘기를 되돌리면, 우츠미 씨가 아까 설명하셨듯이, 자체성애는 원래 정신분열증 개념이 생길 때 문제가 된 개념입니다. 프로이트는 1911년의 슈레버 증례론에서 슈레버의 파라노이아를 논합니다만, 그는 거기서 동시에 스키조프레니를 논합니다. 그는 거기서, 스키조프레니파라노이아보다 더 옛날까지, 즉 자체성애에 가까운 곳까지 퇴행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자폐증과 스키조프레니를 구별할 수 없다. 그러자, 프로이트-라캉파에서는 자폐증을 정신병과 똑같은 것으로 보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라캉파 속에서도 생깁니다. 그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퇴행의 지점에 의해, 라캉파의 말투로 얘기하면 향락의 회귀모드(mode)의 차이에 의해, 스키조프레니와 자폐증을 차이화하려고 했다는 것이 에릭 로랑(Éric Laurent) 등의 논의입니다. 어떻게 차이화하는가 하면, 파라노이아는 향락을 대타자 쪽에서 찾아내기에, 슈레버처럼 대타자(신이나 파울 에밀 플렉지히Paul Emil Flechsig(1847~1929) 교수)가 나를 향락하려고 한다는 망상을 구축한다. 스키조프레니에서는 향락이 자신의 신체에 회귀하기에, 몸 위에 향락이 다양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다른 한편, 자폐증자는 원래 대타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폐증자에게는 일자의 시니피앙”(S1)만이 도입되고 있지만, 그들은 S1에 연쇄하게 되는 시니피앙(S2)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S2를 거절하는 대신, 자체성애가 새겨진 일자의 시니피앙”(S1)을 줄곧 반복해서 사용하고, 특히 신체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향락한다. 그것은, 신체의 이른바 전체의 향락이 회귀해오는 스키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