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스펙트럼의 시대

현대사상과 정신병리 (3/4)

自閉症スペクトラムの時代現代思想精神病理

우츠미 타케시(内海健) / 치바 마사야(千葉雅也) / 마츠모토 타쿠야(松本卓也)


 

포스트모던의 정신병리를 살면서

우츠미 그런데 치바 씨는 들뢰즈의 흄론에 주목하셨네요그리고 흄철학에서 절단의 계기를 끄집어내고들뢰즈에게서 생기론이나 잠재성의 파시즘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측면을 찾아냈다.

 

치바 그렇습니다모종의 픽션론으로서의 흄론이었습니다.

 

우츠미 흄은 낱개의[개개별별의] 세계를 연합에 의해 묶으려고[통합·정리하려고] 했습니다만그 통합정리할 때 작동하는 것은 무엇인가요치바 씨는 아이러니와 유머를 거론한 것 같다고 기억합니다흄의 경우, 파트그래피컬[パトグラフィカル, 바이오그래피컬의 오식인 듯. 즉, 전기적인]한 얘기인데요, 18세부터 23세까지 꽤 힘겨운 우울 상태에 있었고어쩌면 이인증(離人症)을 경험했습니다이인증에서는 사물을 서로 이어주는 아교랄까치바 씨의 말로는 ’ 같은 것이 누락되어 있습니다그것이 흄의 어소시에이션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일단 아이러니적인 파괴를 경험한 곳에서부터 턴(turn)해온다유머적인 턴(turn)이랄까대타자 또는 초월론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은 통합·결말[まとまり]마조히즘에 있어서의 억압을 변형하는 듯한 턴(turn)입니다그 언저리의 모습이살아가는 지혜랄까경험론의 진면목이 아닐까 합니다만.

 

치바 제 말투에서 유머를 흄의 맥락으로 연결한다면어떤 우연적으로 생겨난 연합을그렇게 해도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그 정의나 시스템을 묻겠다고 생각한다면근거는 없습니다어떤 우연의 마주침즉 최초의 자체성애적인 것이 생길 때의 외부와의 마주침의 우연성 같은 것으로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것을 떠맡고우연히 뭔가와 뭔가가 서로 달라붙게 됐을 때그로부터 연쇄적으로 다른 것이 또한 달라붙게 되는 것을 좋다고 한다모든 것은 근가가 없다고 하는 곳으로 향해서 비판을 캐고 들어가는 아이러니만을 하다 보면 엉망진창이 되며모든 것이 붕괴되기 때문에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이러니와 유머를 대조적으로 묘사했던 것입니다그리고 유머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츠미 초월론적인 타자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후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네요.

 

마츠모토 : ‘일단은’ 식으로.

 

치바 그렇죠저는 어드혹(ad hoc)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생각해보면제가 전에 기고한 트랜스어딕션 동물-성의 생성변화(トランスアディクション───動物-生成変化(現代思想特集=人間/動物分割線, 2009年 7月号)와도 공명하네요. S1을 되풀이하는 것은 중독적이라고 밀레르는 말하고 있으니까요제가 생각한 어딕션(addiction)도 그런 의미에서의 어떤 특이적인 증상이며또한 크리에이션(creation)과 결부된다는 것이었습니다지금의 얘기로 말하면, S1이 몸을 옥죄어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변형하여 다른 크리에이션을 가능케 하는 것이 될 가능성을 트랜스어딕션이라는 말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우츠미 단독의 S1에는 그런 어딕션적·에크리튀르적인 측면과 더불어그런 단순한 외침으로서의 측면도 있습니다외침은 마츠모토 씨의 논의에서 원-상징계의 + - + - … 라는 곳과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거기에서 상징적인 심급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머니입니다정형발달의 경우, “이 칭얼거림[외침]은 이런 의미예요라고 어머니가 유닛(unit)화한다. “배가 고프구나라고어머니도 칭얼거림이 매번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그런 감각적인 차이에 배가 고프다라는 상징적 유닛을 덧씌운다그리고 그것을 되풀이함으로써칭얼거림이 배가 고프다가 된다그러나 자폐증의 경우는 그런 응답이 없기에칭얼거림인 채인 것입니다.

 

마츠모토 그래서 늑대!”, “늑대!”라고 외칠 뿐이다.

 

치바 그리고 똑같은 그 외침이 온갖 것에 적용 가능해진다면.

 

우츠미 자폐증의 언어적인 측면은 매우 다양하네요.

 

마츠모토 정형발달처럼 S1과 S2가 연쇄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자폐증자에게는 하나뿐인 S1과 알고리즘적인 S2가 존재하며그 양자 사이에서 이러저러한 언어의 병리가 생겨나는 거죠그것은 거꾸로 정형발달이 무엇인지를 겉으로 드러내는[해명하는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도 되죠.

     조금 전 치바 씨의 트랜스어딕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한 건데요인프라크리틱 서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에서 포스트인문학으로(インフラクリテイーク序説───ドゥルーズ 意味論理学からポスト人文学)(思想地図β』, vol. 1, 2011)에서는 장애를 짊어지게 된 후 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썼습니다그 논의는 S1과 관계하고 있습니까?

 

치바 역시그곳은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통할지도 모르겠네요그곳은 말라부에게서 얻은 발상입니다만.

 

마츠모토 그것은 예전과 똑같은 S1에서 다른 것이 발생한다는 느낌이겠죠아니면 S1 자체가 유물론적으로 고쳐 써진다는 것일까요?

 

치바 그런 식으로 연결한다면, S1의 변형을 생각했던 게 되겠죠말라부를 좇아 말한다면데리다적인 똑같은 흔적의 이전(移転)오배송[誤配] 모델이 아니고흔적 그 자체가 변형되어 버렸다는 그녀의 모델을 구별하지요그리고 원래 S1을 복수 갖고 있거나, S1을 새롭게 추가한다는 것도제 테마입니다마츠모도 씨의 논의에서도라캉과 가타리의 대비에서특이성을 단수적으로 생각하는가 복수적으로 생각하는가라는 갈림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적혀 있네요제가 여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라캉에게는 S1이라는 말을 ‘essaim(무리)’라는 단어로 바꿔 부르는 말놀이가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하나이면서도 거기에는 뭔가 무리성이 있다는 것일까요?

 

마츠모토 : ‘essaim’이 라캉파 에서 사용되는 경우기본적으로는 스키조프레니인 자의 언어사용에 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말 하나하나가 현실계의 수준에 있으며상징적인 것으로서 서로 분절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언어의 병리의 행방言語病理行方『유이티카ユリイカ, 2012年 9月号)에 적은 사례인데요제가 전에 본 사춘기 유형의 환자로환청을 호소했습니다그 사람은 어느 날, “소리를 질러서[말을 걸어서] 잡아주세요[をかけられたのでってください]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걸다[かける]라는 말이, “물을 뒤집어썼으니까 닦아줘[をかけられたからいてくれ]라고 할 때의 걸다[かける]라는 뉘앙스가 되는 것입니다이렇게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리는[かけられる]’ 것이었을 터인 목소리라는 말이 현실계와 직접적으로 이어지고물질화되는 언어사용이 모든 곳에서 이뤄지고메타포로 말하지 못하게 된다시니피앙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バラバラになり]그것 자체로 자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정신분열증의 정신병리로 말하면아마 콘크리티즘concretism(구상화 경향具象化傾向)이 될 것입니다.

     다만처음에 언어가 들어올 때하나의 언어만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크게 할 수 있으니까요밀레르조차, ‘essaim’에 관해서클로스프스키=니체적인 주체의 동일성의 산란散乱을 말하고 있습니다.

 

치바 과연 그렇군요복수의 언어가 상처로서이른바 폴리트라우마틱’[polytraumatic]한 형태에서 들어온다인프라크리틱(infracritique) 서설」 무렵저는 폴리트라우마티즘과 모노트라우마티즘이라는 대비를 했고, 50년대의 라캉은 전형적으로는 모노트라우마틱한 이론으로서 수용됐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들뢰즈=가타리특히 가타리는폴리트라우마티즘을 도입했다는 것이 제 견해였습니다.

 

마츠모토 그것은 재미있네요라캉은 1974년에 외상(traumatisme)을 구멍-외상(trou-matisme)’이라고 말합니다불가능한 것즉 존재하지 않는 성관계로서의 외상은 구멍이라고 말이죠그러면 언어의 도입에 의해 구멍이 몇 개 비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어요들뢰즈=가타리의 라캉 비판에 연결하면외상은 사실 다공적[구멍이 여럿]이고 이러저러한 곳에서 누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됩니다.

    일찍이 아즈마 히로키 씨는 존재론적우편적(存在論的郵便的)(新潮社, 1998)에서 불가능한 것은 부정신학에서처럼 하나인가아니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그 뒤에 나온 토가와 유키(十川幸司) 씨의 정신분석에 대한 저항(精神分抵抗)(青土社, 2000)각주에서 히로키 씨의 논의를 다루었습니다라캉적인 정신분석에서는 분석을 통해 불가능한 것과 하나[한 가지] 만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것은 하나뿐이라고 해도동시에 불가능한 것은 복수적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왜냐하면 각 주체는 각각에 있어서 상이한특이적인 정신분석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이죠개인에게 있어서의 정신분석이라는 리미트(limit, 극한속에서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은 하나이게 되지만다른 한편 가타리는 집단성에 대해 생각하며시니피앙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그러면 불가능한 것이 단수인가 복수인가라는 대립은정신분석과 스키조분석의 양자에 있어서의 임상의 장면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합니다개인의 정신분석이라면 역시 시니피앙의 주체를 원칙으로서 다루기 때문에구멍=불가능한 것은 하나가 되는 셈이지만라 보르도 병원처럼 집단적 실천에서 하면 복수가 된다.

 

치바 제 논의라면한 개인 속에 복수의 구멍이 있다는 사고방식에 집착하는데요그렇기에 해리(解離)나 다중인격을 문제 삼았던 것이죠.

      90년대 말 경은페르소나의 다중성이 인터넷이나 버추얼한 것의 등장으로 강하게 의식된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히로키 씨의 복수성에 대한 논의도멀티레이어(multi-layer)한 상황과 관련해서 나온 것이죠저도 그 시기에 청춘기를 보냈기에그런 감각을 어떻게 이론과 결부시키면 좋을까줄곧 생각했습니다.

 

우츠미 우리는 본래 이디어트(idiot, 백치) 같은 것이며거기에 조금만 공약 가능한 곳이 있다는 거죠실제로 자신의 경험을 이른바 의식의 흐름처럼 관찰해 보면,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 같은 매우 기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하지만 “He war”가 아니라 “Ich denke” 같은 녀석이항상 가만히 들러붙어 있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오히려 그것들이 불가사의랄까어째서 그럴게 될까그런 의미에서의 일자여라”, “개체여라는 명령법이 지금도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지만향후 그것이 어떻게 될까?

 

다른 방식으로?

치바 여기서 저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오늘의 일련의 화제는 특이성단독성각각의 별개[それぞれパラバラ]라는 방향을 향합니다만굳이 나쁘게 말한다면결국 사람 각각이라는 얘기가 되며그것은 이론적 퇴행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만일 이론에 재미가 있다면다소 폭력적이라고 할지라도복수의 것에 걸친 어떤 일반화를 행하는 곳에 있으며결국 임상의 현장에서 개개의 것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사례별]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면이론의 [종언]이 아닌가라고 말이죠마츠모토 씨는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마츠모토 확실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모든 것은 싱귤라리티이다라는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이 결론이 되면이론은 죽어버립니다라캉이 목표로 한 것은자기 자신의 분석에서 얻어진 싱귤라리티가 있다며그것을 타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정신분석의 이론 자체를 갱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점입니다분석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싱귤라리티에 도달한 곳으로부터 새롭게 이론을 가다듬어 내어야 합니다그것이 분석가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인가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치바 분석가마다 주목의 중점이 다르다는 거네요그것은 분석가 자신의 생톰의 반영이며그것을 밑천으로 클라이언트와 관계함으로써변화를 야기한다.

 

마츠모토 그렇군요좀 더 근원적으로는학파 속에서 다른 분석가와 공유할 수 있는가 여부입니다다른 분석가와 공유하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분석가를 차례로 산출한다그리고 거기서 산출된 분석가는 다시 새롭게 자신의 특이성과 만나서 정신분석 이론을 갱신한다이른바 영구혁명입니다.

 

치바 그래서 궁금한데요각각의 분석가가 자신의 특이성을 발견하고다른 분석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클라이언트와 마주대하려고 하며그 다른 방식이란 도대체 어떻게 다를까요?

 

마츠모토 예를 들면라캉의 단시간 세션은그가 특이적으로 발견한 방식이죠.

 

치바 그러면 사람에 따라서는 장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마츠모토 : 24시간 내구(耐久) 정신분석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분석가도 있을지 모르죠(웃음).

 

치바 그래서 효과를 올리도록 별난 분석가가 나와도 원리적으로는 더 좋다고.

 

우츠미 치바 씨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치바 씨가 부분대상과 팔루스적 대상 사이에 기관 없는 신체”, 또는 전체화하지 않는 정리[모둠]를 놓고 있는 곳에 주목하고 싶습니다한쪽에 부분대상으로서의 현실적인 것이 있고다른 한쪽에 팔루스적인 대상으로서의 상징적인 것이 있다고 하며그 중간에 기관 없는 신체가 있다저는 팔루스적 전체성과 전체 대상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클라인이 말하는 부분대상은 오히려 기관 없는 신체와 닮은 곳이 있습니다.

 

치바 지금의 3항도식에서는클라인의 부분대상은팔루스적 통일과 전체화하지 않은 정리[모둠] 둘 다를 거듭[중첩적으로] 갖고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저의 해석입니다.

 

우츠미 아까 말한 아이러니적 잠재성과 분화·현동성의 중간에 유모적 개체화가 자리매김 되어 있습니다.

 

치바 글쎄요그것을 저는 특히 이마지네르(imaginaire)한 것으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츠미 현실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에 상상적인 것혹은 요도[尿道]적인 것을 넣는 곳이 급소라고 하죠이 구도는 두 사람의 책에서 공통된 것으로서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그리고 치료가 어디를 목표로 하는 것이냐 하면각각의 별개バラバラ의 단편으로부터 자그마한 [turn, 선회]을 만드는버추얼리티 쪽으로 확산하면서도, [갔던 길을] 약간 되짚어와서 기관 없는 신체 쪽으로 간다아마 여기에 싱귤라리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흄도 데카르트도 비슷한 것을 했던 것처럼 생각합니다흄의 경우이인증(離人症)적으로 각각의 별개가 된[산산조각 난] 단편을 어소시에이트[associate, 연합]합니다만그렇다고 강력한 자기는 만들지 않는다일단 다발 같은 자신으로 좋다고 한다데카르트가 과장적인 회의를 하는 곳은 급진적인 사디즘이죠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의심하고어느 정도의 네거티비티[부정성]을 견딜 수 있는가그 위에서 무엇이 남는가라는 물음 아래에서마지막으로 잠깐 그래도 생각하는 나만은 부정할 수 없다고 [turn, 선회]한다. “코기토” 등이라고 잘난 체 하는 느낌이 아닌 것입니다그저 자그마한잠깐 동안 생각한다는 형식뿐으로아무런 내실도 갖지 못하는미결정의 중지[허공에 붕 떠있는 것]로서 코기토가 산출된다마지막은 신이라는 상징적인 것을 증명하고 보증인으로 합니다만그것은 그가 정말로 했는가 여부는 의문입니다.

 

치바 그렇게 하면-코기토-회의(악령)상징-상상-현실이라는 3항도식을 할 수 있다.

 

우츠미 그렇네요흄의 경우는 공간이 단편화하는 반면데카르트의 경우는악령이 시간적으로 절단하는 건데요이런 아이러니에서 유머로 [turn, 선회]한다는 도식이 임상적으로도 생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치바 단편화를 거쳐서가까스로 정리[모둠, 종합]로 돌아간다이마지네르[imaginaire]한 것이라고 저라면 말할 것제 논의의 경우그 차원은 특히 상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달리 말하면 판타슴이죠라캉파에서는판타슴의 횡단이라는 논의가 될까요?

 

마츠모토 판타슴의 횡단의 경우는모든 상징체계의 폐절까지를 지향하는 아이러니이죠모조리 없애버리는 듯한.

 

치바 그래도 뭔가가 남죠?

 

마츠모토 외상적인 핵이 남는다그 잔여를 꺼내기 위해라캉은 생톰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죠우츠미 씨가 지금 말했듯이조금 돌아온다고 할까당분간의 정리[모둠, 통일]를 만든다고 할까.

 

우츠미 생톰 그 자체가 이마지네르(imaginaire)한 것이라는 논의가 아닙니까?

 

마츠모토 콩시스탕스[consistance]의 이마지네르(imaginaire)라는 논의이죠(フィリップ・ジュリアンラカンフロイトへの回帰誠信書房). 밀레르는 타투나 피어스로 무너지고 있는 신체의 고리를 지탱해도 되잖아라고도 말합니다.

 

우츠미 들뢰즈에게 공백의 [바둑판] 칸(case vide)”이라는 개념이 있죠단적으로 말하면상상력은 빈 그릇이 있어야 비로소 기능할 수 있습니다제가 자주 드는 사례로, “나는 퍼즐에 비유하면 빈 칸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그녀는 눈에 보이는 것혹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포화되어 버린다는 것 같습니다이것이 자폐증 스펙트럼에 있어서의 상상의 부자유의 원형입니다정말 머리가 좋은 아이였기 때문에그렇게 은유적으로 말할 수 있었고지금은 그 세계로부터 탈출하고 있습니다만이번에는 정형자의 얄팍한 세계いい加減世界에 들어가는 것의 고통이 있다후설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극단적으로 말하면그는 이 방의 건너편この部屋こう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혹은 자신에게는 등이 없다がない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습니다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혹은 집들의 건너편에 사람의 생활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든가.

    이른바 장애의 세 쌍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운데상상력의 장애는 매우 조잡한 취급방식을 하고 있습니다수집벽이나 철도 마니아 등흥미 관심의 폭이 좁다든가곧바로 그런 얘기가 되어버립니다그런 게 아니라경험 속에 빈 눈금을 어떻게 만들까이렇게 그들은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마츠모토 빈 칸이 있어서 처음으로 전개되는 유형의 공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죠.

 

우츠미 다른 식으로 공상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츠모토 당사자인 후지이 히로코(藤家寛子) 씨는분명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보이는 수많은 집의 각각에 가정이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고 썼네요집이 일 뿐이고그 속에는 가정이 있고사람들의 생활이 있다는 공상이 미치는 공백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것일까요?

 

우츠미 그것을 가진다고 포지티브하게 파악되지 않을까요정형으로 이끌어가는 것만이 우리의 작업이 아니니까.

 

마츠모토 공상하는 공백의 칸이 없는 대신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우츠미 후설의 현상학도 하나의 예일 수 있죠가령 타인의 마음도 지금 보이고 있는 세계의 건너편이니까그에게 있어서는 자명한 것은 아닌 겁니다.

 

치바 얼마나 그것이 임시로 마련된 것인가에 대한 이론 구성이 되는 거네요.

 

우츠미 또 한 명을 거론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일까요그의 논리철학논고는 명제의 다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도중에논리에서 윤리로 문제가 이행합니다이 전회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죽음이라는 것에 직면하여다시금 개체화가 촉진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관은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말하듯이한계라는 막간隙間가까스로 자신의 장소가 확보되고 있습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TAG essaim, essaim(무리),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앙코르』, 『외양이 아닐 수도 있는 담론에 대해(On a discourse that might not be a semblance)』, 『정신분석에 대한 저항(精神分析への抵抗)』, 『존재와 일자(l’Étre et l’Un)』,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 『하나뿐인 일자(L’Un-tout-seul)』, 『하나뿐인 자들(Les-tout-seuls)』, インフラクリテイーク序説───ドゥルーズ 『意味の論理学』からポスト人文学へ, ジャック・ラカンと鑑別診断の思想, 人はみな妄想する, 가타리, 과타리, 구멍-외상(trou-matisme), 구상화 경향, 네그리-하트, 네그리=하트, 데리다, 데이비드 흄, 들뢰즈-가타리, 들뢰즈=가타리, 들뢰즈의 독신자론, 방황하는 자기 : 포스트모던의 정신병리, 백치[바보]의 향락(jouissance de l’idiot), 사회의 아스퍼거화, 성별화의 식, 아사다 아키라, 아스퍼거 증후군, 안드로귀노스(androgynos), 어드혹(ad hoc), 어딕션(addiction), 외상(traumatisme), 융합적 일자(Un fusionnel), 이인증(離人症), 인프라크리틱 서설 :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에서 포스트인문학으로, 일자론(hénologie), 일자의 파시즘, 자크 라캉, 자크 알랭 밀레르, 자크-알랭 밀레르, 절단적 들뢰즈, 접속적 들뢰즈, 정형발달, 제임스 조이스, 존재론(ontologie), 존재론적 파시즘, 초월론적 타자, 토가와 유키(十川幸司), 특이성=단독성(singulalité), 파르메니데스, 페르소나, 플로티누스, 하이데거적인 라캉, 「증상으로서의 조이스(Joyce le symptôme)」

프랑스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 피에르 로장발롱의 프랑스 민주주의론

フランスの政治文化とデモクラシー

: P.ロザンヴァロンのフランス・デモクラシー

野末, 和夢

Citation 一橋社会科学, 7: 33-41

Issue Date 2015-05-21

 

* 로장발롱의 책 번역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를 식힐 겸 로장발롱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미리 포스팅한다. 관련된 문서나 책들도 연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 일본에서는 '통일성' 대신 '일체성'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이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약호

* 이 글에서 빈번하게 인용·참조하는 로장발롱의 문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약호, 쪽수의 순서로 표기한다.

∙ MG :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SC :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1.

PI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2.

∙ DI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3.

MPF :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coll. «Points Histoire », 2006.

CD :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08.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론을 대표하는 피에르 로장발롱(현재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에 의한 일련의 19세기 연구를 재구성하고, “프랑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을 추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통선거, 대표정, 인민주권을 각각 주제로 하는 3부작(이하 SC ; PI ; DI로 약칭)에서 주로 검토했다. 이 세 개의 역사상을 통합한 것이 2004년의 프랑스형 정치모델』이다. 이런 전체상을 밝힌 일본어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각주:1]

로장발롱의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계보를 잇고 있다.[각주:2] 첫째, 프랑스 혁명 및 현대사 연구의 조류이다. F. 퓌레로 대표되는 수정학파는, 정통사학과는 달리,[각주:3] 1793년의 자코뱅지배를 혁명의 ‘탈선[삐그덕댐]으로 파악하고, 19세기를 자코뱅주의의 초극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해석을 전개했다.[각주:4] 로장발롱은 퓌레의 관심을 계승하고, 정치사를 경제구조가 아니라 정치문화에 의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cf. MG:26 ; MPF:13).

둘째, 1970년 이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의 조류이다. C. 르포르나 M. 고셰로 대표되는 이 시기 이후의 논자들은, ‘정치(la politique)’와 구별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다시 물었다.[각주:5] 로장발롱은 그들의 연구를 계승하면서도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긴장이라는 시각을 도입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두 세기에 걸쳐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정초해온 자코뱅주의를 검토한다(2). 다음으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검토한다(3). 이 두 개념의 긴장관계가 민주주의의 사상사를 구성한다고 간주된다. 이상의 틀을 사용해, 대혁명 이래의 민주주의의 전체상을 제출한다(4). 마지막으로 그의 연구에 내재하는 사상적 특징을 지적한다(결론).

 

2. 근대정치적 사고양식으로서의 자코뱅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적인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자코뱅주의라고 명명하고, 그것을 일반성의 정치문화(culture politique de la généralité)”이라고도 바꿔 부른다(MPF:13). 그 특징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1) 사회적 일체성

첫째,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은 사회 형태(forme sociale)”로부터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혁명에서는 직업기능에서 유래하는 단체(corps)로 구성되는 사회에 매몰되어 온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해방하고, “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것이 희구되었다(MPF:13 ; PI:22).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는 개인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결정론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개인” = “시민(citoyen)”으로 정립된다(SC:113 ; PI:17).

이런 추상성은 대표=표상(représentation)”이라는 작용과 불가분하다. 각종 축제나 시에예스의 논의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듯이, “인민이나 국민이라는 집합은 대표=표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PI:47 et s.). 오히려 상징이나 픽션을 통해 표상됨으로써, 다양한 개인들은 유일한 집합으로 추상화된다(MPF:28). 대표정은 개인의 해방과 집합적 권력[=국민 주권] 사이의 모순을 송두리째 해소하는” “기술로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관통한다(DI:29, 189-190). 자코뱅주의의 전통에서 단일성(Un[일자])”, “일체성(unité[통일성])”, “전체성(totalité)”, “불가분성(indivisibilité)” 등의 추상적 어휘는, 프랑스 시민들이 국민이라는 집합으로서 대표=표상되기 위해 사용됐다(MPF:26-28).

이러한 프랑스적 정치관에서는, 특수이익과 동떨어진 곳에 일반이익이 설정되고, 그것을 추상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정치체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MPF:118). “추상화에 의해 개개인의 특수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고, 개인 일반이 공화국의 불편부당한(impartial)” 주권의 연원으로 간주됨으로써 평등이 담보된다(MPF:118-124). 따라서 투표권 보유자로서의 평등한시민은 국민적 일체성을 구성하는 간단한 로 환원되고, 사회의 실체는 이 배후로 숨었다(MPF:122 et s.). “수로서의 일반성이 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일반성의 가장 명백한 형태를 취한다”(CD:115).

 

2) 민주적 직접성

두 번째 특징은 무매개적 의사표시에 대한 희구이다. “중간단체(corps intermédiaires)”의 법적 부정이 의미하는 사정거리는, 종교단체나 직업단체의 해체에 한정되지 않고, 일체성을 가로막는 모든 매개적 제도나 상징의 부정도 포함한다. 1791930일의 포고령에서는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든 정치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표명됐다. 왜냐하면 매개적 제도를 통해서는, 시민들은 집합적인 이름 하에서자기 자신을 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MPF:59). 그러므로 피대표자의 다양성은 대표자에 의해 일반이익을 가진 집합으로서 직접 표상된다(MPF:72).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이 부정되는 것은, 그것이 영속하는 제도(institution)”로서 고정화되고, 대표정에 이중성(dualité)”을 도입하는 것(민주적 직접성의 훼손)으로 간주되는 한에서였다(PI:16 et s ; MPF:76-79).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나 다양성 등의 특수이익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cf. SC:135-147, 155-169 ; DI:219 et s.). 한편, 르 샤플리에가 주장했듯이, “공적인 것(le public)”은 국회의원의 활동으로 집약되며, 공적 영역은 통치제도로 환원된다(DI:232 et s ; MPF:71 ; cf. CD:113). 로베스피에르나 보나파르트는 통치제도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대항권력(contre-pouvoirs)”(e.g. 연설활동, 청원운동, 시위 등)간접적 권력” = 민주주의의 울타리 바깥이라며 배제하고, 민주적 직접성을 촉진시켰다(CD:87, 100-103, 114 ; MPF:71). 이러한 불가분성을 통한 정당성이 일반성을 형성하는 한 측면이 된다(CD:115).

중요한 것은 구체제 하의 전통적 구분(지연, 종파, 직군 등)일반성의 정신과 상반되는 특수성의 정신으로서 분극화(polarisation)”된다는 것이다(MPF:35-37). 헤겔이 체계화한 변증법적 관계와는 달리, 프랑스적 정치관에서 특수성과 일반성(보편성)의 관계는 서로 긴장하는 양극으로 구별되고, 일반성만이 단일하고 불가분한 공화국을 형성한다. 로장발롱은 혁명 이래 이용됐던 이런 구별을 분극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cf. MPF:37-54, 117-121).

 

3) 법의 신성시

세 번째 특징으로서, 법의 신성시를 꼽을 수 있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두 가지 유토피아를 따르는 정치문화의 형성에 기여한다. 우선 사법 엘리트는 법의 제정자라는 것 이상으로, “단일한 인민을 제정하는자로서 생각된다. 그에 따르면, 사법 엘리트는 정치적 일반화를 추진하는 자인 동시에 교사였다. 법에 대한 교육관은 많은 논자(e.g. Fénelon, Condorcet)들의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으며, 국민적 일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교육(instruction publique)의 이론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MPF:93 et s.).

다음으로 법은 정당성 있는 규범(norme légitime)인 동시에 정치적인 작동자(opérateur politique)”로 간주된다. 법을 개입시킴으로써, 모든 사람 및 행위는 개개의 특수성이라는 현실에서 분리된다. 일반성은 탈현실화(déréalisation)”라는 작업을 통해 구축된다(MPF:94-96). 이러한 법이나 권리에 내재하는 픽션으로서의 성질이 일반성의 형성에 관여한다(CD:115).

단적으로 정리하면, 구체제의 사회적 유대를 해체한 프랑스에서 픽션이 시민적 평등(égalité civile)”을 빚어내는 공민적 유대(lien civique)”로서 요구됐다(SC:88 et s.). 혁명 이후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는 추상화일반화”, 그리고 픽션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주의(formalisme)” = “정치적 유토피아로서 우선 묘사된다(SC:385).

 

 

3. 민주주의의 이중성 :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위와 같은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이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에 의해 공적인 것을 독점하는, “공적 영역에 대한 환원적인 시각이다(DI:333 et s.). “정치적인 것이란 구체적 제도나 당파 간 경쟁 등에 관련된다기보다는 일반이익·국민적 일체성의 표상과 창출 등 직접적인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련된 개념으로 여겨진다.[각주:6]

그러나 사회적인 것(le social)”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현실에 적합한 질서를 구축할 수 없었다고 하며, 항상 비판에 노출된다(MPF:47).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의해 배제·억압된 특수이익의 총칭을 의미하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실망의 역사, 또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의 역사속에서 개시된다.[각주:7] 그러므로 혁명 이래의 정치문화는 정치적인 것의 찬양과, “사회적인 것에 의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나 실망이라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cf. MPF:158 et s.). 아래에서는 그 비판의 논점을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한다.

 

1) ‘새로운 사회의 사상

첫째, 자코뱅주의적 수사가 사회의 해체(dissolution sociale)”를 이끈다고 하는 비판이다. 자유주의자(e.g. M. Staël, Constant), 보수주의자(e.g. Ballanche, Bonald), 사회학자(e.g. Saint-Simon, Comte), 사회가톨릭(e.g. Lamennais), 독트리네르(e.g. Royer-Collard, Guizot) 등은 각각의 방법으로 사회의 해체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MG:75). 중간단체를 배제한 자코뱅국가에서의 사회는 유대(lien) 없는 원자화된 사회에 불과하고, 공화국의 일체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공유한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결합의 결여(déficit de sociabilité)”를 보전하는 사상운동이 전개됐다(cf. MPF:160, 213-218).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중간단체의 재건이 필요해진다. 동업자조합의 재건은 이미 1800년 이후의 개별법령에 의해 모색됐다(MPF:132). 그리고 1820년대부터 어소시에이션의 설립과 분권론이 많은 논자(e.g. Rémusat, de Laborde, Leroux, Tocqueville)에 의해서 주장됐다(MPF:164 et s.). 로장발롱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의 키워드가 일체성이라면, “사회적인 것의 키워드는 어소시에이션이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과 국가를 중개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로서 갈망됐다(MPF:164, 236).

 

2) 대표정의 역설

둘째, 이 견해는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내재하는 모순, 즉 대표자(représentant)와 피대표자(représenté)와의 괴리를 메우는 것으로 얘기됐다. “대표란 구체적 환경 속에 매몰된 다양한 개인들을, 단일한 추상적 집합체로서 다시 얘기하고, 정치적 일체성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복수성을 단일성으로 환원하는 이 조작에는, 본질적으로 곤란이 내재해 있다(PI:53).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일정한 수의 개인 사이에 집합적 속성을 규정함으로써, 그 곤란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 “정치적인 것에서 배제된 대중을 계급이나 사회집단으로 포섭하고, 일반이익과는 상이한 이익을 대표=표상한다(SC:343, 369).

예컨대 시에예스에 의한 능동적 시민/수동적 시민의 기능적 구별은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에 의해, 제한선거제론으로서 계승됐다(PI:68 et s;SC:325). 1860년대에는 노동자에 의한 계급대표론(PI:100 et s.), 3공화정 중기에는 뒤르켐 등에 의한 (보통선거제를 대신한) 직능대표제가 주장됐다(PI:140, 175). 그것은 20세기 이후 산업민주주의론으로 계승된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인 것이 집합적 속성을 수반해 다시 얘기됐다는 것이다(cf. SC:383).[각주:8]

 

3) 이데올로기와 사실

셋째는, 이데올로기와 사실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다. 19세기 전반기부터 되풀이되는 실증”, “관찰”, “예견이라는, “사실을 객관화하는 과학관에 의해, 혁명기의 추상적 원리는 형이상학이라며 비판된다(SC:453 et s.). 3공화정기의 사회학자(e.g. Fouillée, Durkheim, Ferneuil)나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정치가(e.g. Gambetta, Ferry), 개인의 대표=표상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일원론(“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을 비판한다(PI:140 ; MPF:263-274.). 왜냐하면 사실의 관찰에 기초하면, 질서의 조화(harmonie)”는 중간단체의 유기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되풀이되어 비판을 받음으로써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일체[한 몸]”(MPF:71)인 공화국을 목표로 삼았지만,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이 정치적인 것해체가 아니라 그 수정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유토피아, 사회적 현실사이의 상호 긴장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그 자체로 달성되지 않는(inachevée)” 이념이기 때문이다(cf. DI:37). “사회적인 것에 의한 비판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항상 수정되고 재생·존속된다는 운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구성한다. “프랑스의 정치모델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극, 분극화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MPF:231).

 

4.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

이하에서는 자코뱅주의의 수정이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상을 검토한다.

 

1) 19세기 전반기와 자유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는 자코뱅주의가 수정(amendement)”되는 최초의 시기이다. , 1789년에서 비롯된 정치문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일반성이 재구성되는 시기이다(MPF:199 et s.). 그는 그것을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 속에서 찾아낸다.

흔히 자유주의자는 국가권력의 확대를 경계하고, 그 외부에서 개인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가를 가리킨다(e.g. Constant, Daunou, Tocqueville, Prévost-Paradol, Leroy-Beaulieu).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논자들은 통치의 문화를 구축할 수 없고, 프랑스에서는 이차적인 것에 그쳤다(MPF:223).

다른 한편, 기조, 티에르, 비탈-루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는, 사회의 다원성과 정치적 집권화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cf. MG:63 ; MPF:223). “정치적 자유는, 개인들의 독립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 능력에서 비롯된다”(MPF:226). 로장발롱에 따르면, 공화국에서의 개인의 자율은 집합체의 자율에 종속된다. 기조 등은 정치적 집권화에 의한 자유의 확보를 주장했다(MPF:203-212). 그들은 국가의 관리운영(administration)에 의해 정치적 집권화를 보완하는 기제를 시민사회에서 찾아내는 한편, 전근대적 특권의 재생을 기피하고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을 부정했다. 어소시에이션은 기조가 말했듯이 일반적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한에서만 허용된다(MPF:248 et s.).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을 분극화하는 이 조류에 의해 자코뱅주의를 수정하는 최초의 길이 열리게 된다(MPF:218, 225-231).

 

2) 2공화정과 제2제정

2월 혁명기 및 제2공화정기는 자코뱅주의적 전통이 명시적으로 부흥되는 시기로 여겨진다. 보통선거법의 도입은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을 반영했다. 그들은 정치에서 배제된 비시민(non-citoyen)”이라는 공화국의 일체성에 있어서의 위협으로서 당시 묘사됐다(SC:335-342). 그들을 시민으로서 포섭하는 것, “정치적인 것을 통해 국민적 일체성을 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가 된다(SC:381 et s.).

예를 들어 2월혁명기에는, 공화주의자 논자(e.g. Ledru-Rollin, Leroux, Blanc)에 의해 보통선거를 통한 인민의 일체성의 창출이나, 국가와 개인의 무매개적 결합이라는 관념이 부활한다(cf. SC:Ch.3). 개인들은 시민으로서,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사회로 결집(associer)”해야 한다(SC:381 et s.). 중간단체에 대한 의구심이 잔존하는 가운데, 1848년의 어소시에이션은 자코뱅주의적 유토피아를 계승하고, 국민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에 대한 어소시에/어소시에이션)을 스스로 표상하려고 했다.(SC:383-386 ; MPF:239). 2공화정 하에서는, 블랑키주의자에 의한 소요론, 급진적 공화주의자에 의한 직접 통치론이 제창되지만, 모두 자코뱅주의의 한 변형으로 간주된다(DI:139-167, 169-195).

다른 한편, 2제정기는 정치적인 것의 집권화와 사회적차원에서의 결사의 다양성이 구별되고, “분극화라는 특징이 다시 등장한다. 우선 나폴레옹 3세는 국민투표를 자신의 정치 모델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제도로 삼고, “인민의 일체성/단일성을 찬양한다(DI:201-217). 50년대까지의 그는 일반의지의 직접적 표상을 교란하는 정치적 자유(출판, 정치결사, 집회, 신앙 등)을 부정한다(“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그런데 60년대에 직업적 결사의 허용, 공제조합의 장려, 실업기금의 정비, 단결권과 집회권의 허가 등, 사회적 다원성이 일정 정도 인정된다. 자코뱅주의적인 후견국가상은 자유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받는다. 노동자의 결사나 집회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움직임은 후견국가상의 대안의 모색이며(MPF:249-254), “프랑스 사회사에 있어서의 대전환”(DI:221)으로 위치지어진다. 의회 내에서는 중간단체 부정론이 혁명의 잘못으로서, 계파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서(e.g. Gambetta, de Mun, Brousse, Jaurés) 규탄됐다. 그러나 정치적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의 승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회적 영역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은 정치적 영역의 격리에 의한 보전을 의도했다(DI:218 et s;MPF:260).

 

3) 3공화정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 시기의 사상적 대전환(grand tournant)”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존속했다. 3공화정의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 강화를 도모하는 엘리트 의회 정치와 민중의 정치 개입을 목표로 하는 사회”(의회의 외부”)의 이원론적 도식으로 파악되는, “한정된 민주주의(démocratie limitée)”이다(DI:249, 259). 󰡔프랑스형 정치모델󰡕에서는 이런 테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사회학자와 공화파 정치가 사이의 사상적 구별이며, 특히 후자에 의한 직업적 결사(생디카)와 정치적 결사(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의회 토론이다.

로장발롱에 중요한 것은 급진공화파의 정치가/엘리트(e.g. Waldeck-Rousseau, Bourgeois, Clemenceau, Paul-Boncour)의 사상이다(cf. SC:507 et s.). 애초에 특수이익의 표상에 의해 일반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기피되던 직업적 결사는, 그 조직률과 가입률의 상승도 있고, 서서히 노동자[전반]의 일반이익으로서, 그 유용성이 인정받게 됐다(MPF:283-293). 다만 급진공화파 주도로 성립된 1884321일의 직업조합법은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질서의 조절(régulation)” 양식을 의도했을 뿐이다. 그것은 A. 밀랑이 그러했듯이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얘기됐다(MPF:297-299).

어소시에이션 일반은, 20년 후의 1901년법에서 승인된다. 로장발롱은 이 기간의 의회 토론에 프랑스 모델의 핵심이 표현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 의회를 통해 일반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와 중간단체(직업조합, 대학, 상공회의소, 각종 협회·위원회 등)를 통해 다원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와의 구별이 되풀이되어 얘기됐다(MPF:351). 발덱-루소가 전형적이었듯이, 종교단체나 재정기반에 대한 법적 제약을 겪은 어소시에이션은, 출판이나 언론과 똑같은 시민이 지닌 행위(acte)”자유로서 인정받은 것에 불과하다(MPF:323, 334-337, 343 et s.). 급진공화파에 의해 정치적인 것이 의회를 통해 강조되는 한편, L. 뒤기가 역설한 직능대표제는 공화국이 무수한 작은 거점으로 해체하는 것을 우려되고, 강한 반대를 받았다(MPF:352-354). G. 클레망소가 주장했듯이 사회적인 것을 전제로 한 탈중앙집권화프랑스의 일체성과 합치하는 한에서만 인정받았다(MPF:375). 로장발롱에 의하면 위의 두 가지 영역의 분극화가 프랑스 모델의 본질인 분극화 민주주의(démocratie polarisée)”를 구성한다(MPF:359, 376 et s.). “사회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상()을 모색한 사회학자는 주변(périphérique)”에 머물렀다고 한다(cf. SC:498 et s.).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서 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논의에 의해 사회의 자율성이 승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적인 특권화는 수정을 겪을 뿐이었다. “분극화를 통한 일반성의 정치문화의 구원이 항상 이뤄졌다(MPF:356-359).

 

4) 20세기의 전개

분극화 민주주의의 틀은 20기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계승됐다. 의회를 통한 정치적 집권화가 유지된 한편, 엘리트 관료주도의 행정권력이 강화됐다. 후자는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서”, 사회의 다원성을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고 민주적 일반성을 보완하기 위한 존재라고 진단된다(cf. PI:238, 257, 262).[각주:9]

이런 정치모델은 전후 성장 속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지속됐다(cf. DI:42;PI:13 et s.). 다만 1970년대 이래, 3부문 등의 어소시에이션과 다양한 커뮤니티 등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중간단체의 흥성·융성은 전지구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의 프랑스 방식을 다시 묻도록 강제하고 있다(MPF:425-428). 그러나 로장발롱은 자코뱅주의가 과거의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기의 자코뱅주의적인 조직(organisation)’은 훨씬 수정되기는 했으나, 일반성의 정치문화[주권이나 일반이익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의] 사고양식으로서 계속 머물러 있다(MPF:432)

 

5. 결론

로장발롱은 분극화를 핵심 개념으로 함으로써, 민주주의 역사에 내재하는 아포리아의 해결을 시도했다. “사회적인 것쪽에서의 저항도 있으면서도,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소여를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통합을 형식적으로가능케 했다. “정치적인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SC:112).

우선 그의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의 특징은, 2세기 동안의 사상사에서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상극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풀이한 것에 있다. 양자의 대항·긴장관계가 내재함으로써, “미완이기를 계속하는 이념이 프랑스적 민주주의로서 설정[정립]됐다. 르포르나 고셰가 자코뱅주의적 전통을 전체주의”, “종교()”, “권력등에 이어진 것이라며 비판적으로 논한 것에 비해, “분극화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시각에 입각해 그 전통을 재평가한 것에 로장발롱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일반성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을 우위로 하는 해석 도식을 제시했으나,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과제를 국민(nation)”의 재통합/재창조라는 수준에 있어서 파악하는 그 자신의 현대 정치에 대한 관여(commitment)가 반영되어 있다(PI:416-432 ; DI:Conclusion).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시스템”, “문구일 뿐만 아니라, “일반의지의 체현자인 국민”=“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레짐이다(cf.DI:435 et s ; PI:469).

 

민주주의는 일반의지의 레짐이며, 일반의지는 오랜 시간 속에서 구축된다.[각주:10]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근본에는 사회가 일반의지에 근거한 단일한 것으로서 인식/표상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DI:390 et s.).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래, “일반의지”, “일반성의 형성은 수정을 동반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에 기초해 왔지만, “사회적인 것쪽은 그런 지속성·단일성은 없기 때문에 거부됐다. 따라서 일반성의 정치문화라는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전통의 재평가야말로 오늘날의 프랑스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역시 중요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로장발롱은, 오늘날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 배후에는 일반성()정의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MPF:434).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대항민주주의』 이래, 그는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 현대 민주주의론을 주축으로 유럽국가들과의 비교 정치사 속에서 현재 탐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연구 동향과 아울러 향후의 검토 과제로 하고 싶다.

査読審査201523日掲載決定

一橋大学大学院社会学研究科修士課程

  1. 2003년까지의 로장발롱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서 다음에 언급되는 문헌이 있다. 只野雅人, 「代表の概念に関する覚書(1)~(4・完)」, 『一橋法学』(1권 1호, 107-124頁, 2002년 3월 ; 1권 3호, 669-686頁, 2002년 11월 ; 2권 3호, 891-924頁, 2003년 11월 ; 3권 1호, 83-109쪽, 2004년 3월). [본문으로]
  2. 田中拓道,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19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史研究の現状と課題」, 『社会思想史研究』, 31호, 108-117頁(2007년 9월) 참조. [본문으로]
  3. Mathiez, Albert, La Révolution française(Tome 1-3), Paris, Denoël, 1985(réédition) (ねずまさし, 市原豊太 訳, 『フランス大革命』 총3권, 岩波書店, 1958-1960年) ; Albert, Soboul,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coll. « Tel », 1984. [본문으로]
  4. Furet, François, Penser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大津真作 訳, 『フランス革命を考える』, 岩波書店, 1989年) ;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au milieu du 19e siècle : Edgar Quinet et la question du Jacobinisme, 1865-1870,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Lefort, Claude,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81 ; Lefort, Essais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 Gauchet, Marcel,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Paris, Gallimard, 1985 ; Gauchet,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다음의 문헌도 참조.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Artous, Antoine, Démocratie, citoyenneté, emancipation : Marx, Lefort, Balibar, Rancière, Rosanvallon, Negri, Paris, Syllepse, 2010. [본문으로]
  6. Rosanvallon, P., Pour une histoire conceptuelle du politique, Paris, Seuil, 2003, p.14(富永茂樹 訳, 「政治的なものの近代・現代史―コレージュ・ド・フランス開講講義(上)」, 『みすず』, 499号, 2002年, 4頁). [본문으로]
  7. Ibid., p.43(邦訳(下), 500号, 2002年, 19頁). [본문으로]
  8. Cf. Rosanvallon, P., L’Etat en Franc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1990, Ch.2-3ème partie et Ch.3-2ème partie. [본문으로]
  9. Cf. Rosanvallon, P., La légitimité démocratique : Impartialité, réflexivité, proximité,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10, pp.12-14, 67-78, 85. [본문으로]
  10. Rosanvallon, P., « Penser le populisme », in Le Monde du 21 juillet 2011. 󰡔르몽드󰡕에는 요약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문은 다음의 URL을 참조(2014年 9月 27日閲覧)。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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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푸코가 70년대 말의 강의(생명정치의 탄생, 1978-1979년 강의)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을 자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인적 자본론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데올로기가 생명정치의 한 가지 표현 형태임을 보여주는 절호의 예 신자유주의란 생명을 자본주의에 기입하기 위한 울트라 관리주의이다 로 말이다. 그러나 인적 자본 개념을 '관리하는 정치'로서의 생명정치아래로 포괄해버리면, 등한시되는 논점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은 주로 성공을 거둔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적 자본 개념은 1930년대 이후 서구경제와 일본경제의 성장이 결국 케인스주의적인 정부의 재량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발명됐다. 그 대표적인 논자인 세오도어 슐츠(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1971)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3분할(토지, 노동, 자본)근대적 부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없다.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 등으로 구성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을 성공리에 이룩한 나라들에서는 현저하게 관찰되며, 성장의 근본 원인은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적 자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적 자본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것이 인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인간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이라는 것은, 그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 또는 그 둘 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하물며 자동적으로 수익의 원천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려면 우선 인간의 활동들을 스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했는데, 푸코도 깨달았듯이, 이 정의 자체는 인적 자본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20세기 초반, 소득에 대한 어빙 피셔의 고전적 정의를 원용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소득이란 자본에 의한 생산물 또는 수익일 뿐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소득의 원천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본’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이런 무전제적 자본파악에 대해서 자본의 출신[지]이 어디에 있으며, ‘자본은 어떻게 소득을 낳는가라고 질문하고(쓸데없는 참견’?), 출신은 스톡이며, ‘스톡은 재화나 서비스를 렌트로서 빼앗는 경제적 수법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이 질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피셔와 슐츠의 정의는 옳다.’ 사실을 올바르게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이자를 낳는 자본이 실제로 메타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모양 소득이 있는 곳에 자본이 있다 올바르게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을 제기한 순간 이 정의는, 우리가 머니터리즘의 항등식(MV=PT)에 대해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바뀐다. 이 항등식이든 메타자본이든, 국가에 의한 화폐 스톡의 형성과 유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는 것은, ‘사실을 그 성립 이전의, 아직 필연성을 결여한 상태로 되돌려 보내는 조작이다.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그러나 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아무튼 간에 임금은 자본소득이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자본이라는 것에 머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또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제학에 대한 라이오넬 로빈스의 정의를 자신의 것으로 한다. “경제학은 목적들과, 서로 배타적인 용도를 가진 희소 수단 사이의 관계로서의 인간의 행동양식에 관한 과학이다.” , 신자유주의에서의 인간은 희소한 수단을 무기로 삼고 그 희소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성장을 목적으로 싸우는 동물이다. 바꿔 말한다면, 희소성에 찌든 환경 속에서 그 희소성과 투쟁하고, 그것을 극복제거하려고 하는 동물이다. 희소성은 수단이며, 그 목표는 희소성의 부재인 것이다. 일종의 자기 언급성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 실제로 실현되는 동안에는, 그 점은 아무런 문제도 빚지 않는다. 노동자(인적 자본의 소유자)와 자본가(화폐자본의 소유자)는 희소성이라는 공통의 적과 싸우는 동맹자이며, 성장으로부터 똑같이 자본 수익으로서 소득을 끄집어낼 수 있다. 똑같은 ‘비율’밖에는 인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양자에게 하나의 동일한 합리성 아래에 포섭되고 있다.

그러나 원인은 고사하고, 성장이 정지하면 어찌될까? 성장의 사실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것을 설명한 논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본 것은, 수단과 목적이 같다는 자기 언급성이 행복한 순환을 형성하기를 멈추고, 배리로 전환한다는 사태이다. 193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성장을 설명하는 이론이었을 인적 자본론은 희소성 그 자체로부터 수익을 끄집어내는 방법론으로 전화했다. 희소성과 싸우는, 즉 희소성을 감소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됐다.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희소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경제학이 그것들의 합리적인 사용방식, 대처 방식을 가르치는 제약 조건이었던 것, 즉 경제학이 그것들과 목적 사이의 합리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던 것이, 그대로 직접적으로 수단이 된 것이다. 행동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메워야 할 틈새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경제학에는 더 이상 목적=수단을 논증 없이 주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희소한 것에는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자. 가치 있는 것의 생산이 성장이다. 이것이 배리라고 한 까닭은 사실상 희소해질수록 풍부해진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차이를 찬양하는 문화좌익은 이와는 다른 것을 말했던 것일까?). 설명해야 할 현상이 사라졌을 때, 대상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논리는 공회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혹은 폭력으로 반전할 수밖에 없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지 않음으로써 그 신분을 유지했던 사실, 여전히 그것을 묻지 않은 채, 벌거벗은 규범으로 바뀌는 것이다. 원래 신자유주의의 시장관은, 양차 대전의 질서 자유주의의 시대부터, 시장이 최적의 자원배분을 실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이룩하는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공간인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의 성장은 시장이 잘, 또는 올바르게 기능하는 지표이며, 시장에 탑재[내장]되어 있는 자연적경향 그 자체인데, 그 결실을 둘러싼 부정의부패자연적으로는 억제할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시장은 하게객관적으로 가치를 정해주지만, 그 메커니즘은 전통사회가족의 정서적이고 한 가치관에 포위되어 있으며, 항상 이상적으로 작동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시장의 안쪽으로부터는, 끊임없이 독점으로 향하는 위험이 자라난다. 이 취약한 시장 메커니즘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자유주의의 대답은 주지하듯이, 사회 전체를 시장 원리를 따라서 조직하는 것이었다. 시장을 포위하는 시장에 대한 저해요인을, 시장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위협과 함께 제거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을 막는 과 싸우고, 더 나아가 의 신장을 불허하라, 끊임없이 선행적으로 을 확대시키라. 성장이라는 지표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면, 시장은 더 이상, 혹은 이미, 각자가 에고를 추구해도 좋은 장소, ‘사악(私悪) 즉 공익근대자유주의를 준비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의 부제 을 보증하는 메커니즘이 아닌 것이다.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가르고, 신자유주의에 특유한 개입주의가 이로부터 귀결된다. 시장 게임에는 엄격한 규칙과 그 적용을 감시하는 심판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행위자(player)는 인적 자본, 푸코의 말투를 차용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으로 끊임없이 육성되어야 한다. 자기 투자를 권하고, 자본 가치를 늘리려고 하는 존재로 훈육되어야 한다. ‘전통이나 가족은 인적 자본의 가치를 높여주는(프로테스탄티즘처럼) 반면, 안정에 만족해서 이노베이션[혁신]을 게을리 하는 저해요인도 된다. 시장에 독점 경향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동안 소규모 가족 경영을 건전하게 유지시켰던 문화가 가족회사에 의한 독점을 향한 욕망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싹을 제도질서(ordo)’를 구사하여 먹어치워야 한다. 게다가 비용 대비 효과라는 시장의 잣대를 사회생활이나 행정의 모든 국면에 적용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재량적(=비시장 메커니즘적)인 개입과 규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도태되어야 할 것을 도태시키지 않고 껴안은 부패를 시장에 들여올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불평등하며, 실업자는 고용에서 고용으로 이동 중인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고 간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즉, ‘경제학이 아닌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들은 이미 해명되었으며, 이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시장은 인적물적 자원 배분에 관해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신자유주의자들은 알고 있다. 즉 자신들의 연구는 포스트경제학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장속도가 시들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성장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제의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딘가에 악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그것 자체가 정의의 전쟁으로서 수행된다. 사회의 개입적 시장화가 을 위해 실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강제에 덧붙여, ‘을 향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구사한 것이어야 한다. ‘경제정책인 한에서는 말이다. 희소재를 사회 속에 투입하면 좋다. 사회 속에서 희소성을 산출하면 좋다. 교육도 희소해져서 효과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공교육을 그만두면 좋다 , 무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존의 공공재를 파괴하면 좋다. 세금조차 들지 않는 경제특구를 공공의 토지에 끼어들게 하면 좋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을 본받아라. 아무튼, 신자유주의자의 임무는 전쟁과 동질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넘어선 곳에서부터 그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일종의 혁명이 된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평등의 실현 다만 공공재가 누구에게나 희소해진다고 하는 평등 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본서가 주제로 삼은 현대의 채무는 이 폭력혁명의 결말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다음에 찾아온 신자유주의의 실패의 결말이다. 그것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의 저명 저널에서조차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선언하게 됐다. 공공성의 사회민주주의가 실패를 복원하는 데 최적의 사고방식으로 호출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인 인적 자본론은, 스탈린이 이를 선구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앞 절)을 차치하더라도, 문화좌익을 집어삼킨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사고방식과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희소성과 싸우는 인간의 힘을 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에 의해 높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유행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론을 완전히 선취하고 있지 않은가? 함께, “열심히 하면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개발의 노력과 빚 상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동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정의의 프런티어의 확장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좌파 철학자(마사 너스바움)세계개발경제연구소의 조언자를 맡아, 아마티아 센과 함께 제3세계민중의 가능력可能力 capability’ 채무 상환의 가능력은 포함시키지 않는가? 증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현대이다. 역사적으로 잊어서 안 되는 것은, 푸코는 지적하지 않았으나,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이, 스탈린주의보다 오래됐기 때문에 스탈린 이후에도 소프트-스탈린주의로 살아남은 생산협동조합의 사회주의에서도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출연 자본액에 의해 투표권을 배정하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노동자본인적 자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라고 간주하는 11표제의 생산협동조합에서,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생산의 존재방식을 탐색해온 사회주의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실상 가입시키고 있는 것은, 누구나 평등하게 생산이 아닌 채무를 짊어지는 인적 자본의 협동조합이다. ‘평등에서 기인하는 불공평감이 생산협동조합을 실패하게끔 해온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소프트-스탈린주의는 소프트(=‘금전의 평등과 친화적)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사실상의 채무 노예에게 여전히 열심히 해라고 역설하는 사회-임파워먼드empowerment/정의-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드hard) 스탈린주의의 역습인 걸까?

생명권력’(푸코)의 작용형태가 변했다고 봐야 할 수도 있다. 과거의 질서자유주의는,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는, 취약한 이상적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을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키우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촉구했다고 했다. 그것은 자본 일반의 생산력, 성장을 초래하는 [] 힘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시장적 관계를 확장하고, 시장 규모를 성장시키고, 자본의 힘을 인간 속에 내장[탑재]시키려고 했다.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70년대 푸코의 기본 테제로부터 봐도,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상정하는 양의 힘에 그가 주목한 것은 틀림없을 테다. 하지만 오늘날의 생명권력은 채무라는 음의 힘에 의해 생산이 아닌 수탈(수입의 무상이동)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희소성의 생산은 결여의 생산 즉 문자 그대로 음의 생산이며, 그것을 산출하는, 사적 소유권에의 공공재의 증여, 하나의 렌트로부터 다른 렌트로 (인적 자본으로부터 화폐 자본으로) 수입을 이동시키는 권력 장치로서 기능한다. ‘생명권력이 단순히 사회적담론적추상적인 권력이기를 멈추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 속에 내장[탑재]됐다고 말해도 좋다. ‘추상기계’(푸코)로서의 권력이 하나의 신체를 가진 것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 권력은 억압하지 않지만,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가치를 끌어당기는 진공지대이다. 그것은 가치를 우선 희소한 것, 결여된 것, 마이너스의 것으로서 사회의 중심에 두고,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의 근대가 행복의 원천으로 바꾼 노동labor, 다시 한 번 죄에 대한 보답’, 고역으로서의 labor로 바꾸는 것이다. 빚을 진 죄, 채무를 방치한 죄.

 

*

우리는 제안해야 할 대안이 공공재의 탈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긴축에 반대하고, ‘성장을 위한 투자라면서 채무를 옹호하는 네오(?) 케인지안 노선이 아니다. 채무의 옹호란, 얼마나 개인들에게 평등하게 부담을 배정하느냐라는 문제일 뿐이며, 바로 인적 자본의 논리일 뿐이다. 긴축이란,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 개인이 부채를 짊어진다는 정책일 뿐이다. 우리가 본 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와 케인스주의적인 큰 정부의 차이가 사실상 소멸했다는 사태이다. 경제성장이 멈췄을 때, 양자의 차이는 채권채무관계를 청산하는 타이밍의 차이일 뿐이다. 방금이거나, 조금 뒤이거나. 반면 긴축과 채무 둘 다로부터 공공재를 탈환한다는 것은, “위기의 타겟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라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관리된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다. 신용공간의 강제적 축소, 희소성의 인위적인 자연사이다. 국내적으로는, 채권을 순차적으로 종잇조각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주택의 압류 같은 채권회수를 금지할 시장가치 제로로 공공재산화할 뿐이며, 렌트의 횡령은 억제될 것이다. 그것에 의한 은행의 도산에는, 예금보호만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IMF를 대신해 채무국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자본 수지에 의한 환율을 중지하고, 채무국을 버리지 않는 보증이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현재 문제가 되는 채무총액은 IMF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액수를 훌쩍 뛰어넘으며, 적자국의 책임과 흑자국의 책임을 균형 있게 만드는 케인스의 플랜(국제청산동맹)을 재차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필요가 있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지불되지 못한 채무를, 우선 순위를 매겨서 지불하는 것이지 않아도 되는 계획권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민간보험으로부터 국영으로 역행하는 사회주의? 그렇다. 시장가치 제로로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 국영이라면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다. 누군가를 부담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사회주의이다. 국영화에 의해 이윤 인센티브를 잃은 기술혁신은 급속히 후퇴한다? 환상일 것이다. 인센티브를 가진 주체를 자본에서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뿐이다.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일한 보수를 렌트로 받는 것을 막는 사회주의이다. 어떤 불로소득도 부정의하다고 간주하는 사회주의이다. 도대체 어떤? 계획책정하기 시작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다. ‘계획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권력이다. 권력의 구성이 없으면, 어떤 공공의 것=공화국도 위기를 질질 끌 뿐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황인식이다. 이것은 민영화보다 공영을 옹호하고, 사적 소유권을 공적으로 제한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와 확실히 비슷하다. 공립학교는 분명히 지켜져야 할 공공재이다. 그러나 공적으로 소유되어야 할 것은 더 이상 스톡이 아니다. 미래의 부의 원천, ‘성장의 모태로서의 자산이 아니다. 그런 것의 실체는 이미 상실되고 있으며, 파산관리의 소비에트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채무의 원천으로 반전되는 스톡에 대한 렌트 청구권을 정지시키는 권력만이, ‘소유하는 것에 값한다. ‘스톡을 국가에 의해서조차 소유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소임을 이 권력은 담당한다.

사적 소유권의 대표자로서의 또는 주권권력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사유재산을 지키고, 더 나아가 준다 타국으로부터 빼앗아 는 것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공권력으로 스톡의 해체를 할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일찍이 이 해체를 행할 것이었다. ‘자본으로부터 ()’성을 우선 빼앗고, 그 이후 자본그 자체의 해체로 향하는 것을 이 노선은 표방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본 것 그대로, 노동의 전반적 스톡화, ‘국가노예제의 오늘과 내일을 일그러지게[비뚤어지게] 예시했을 뿐이었다. 생산이 아닌 스톡, 그것이 낳는 채무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에트는 아직 생각된 적도, 따라서 시도된 적도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99퍼센트의 반란이나 EU 내의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긴축반대의 소요가 이런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시도를 일정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가를 문제 삼은 것이다. 리먼 쇼크의 파도가 빈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융조치로는 빈부의 차이를 축소하기는커녕 확대시킬 뿐이며, 가맹국들 모두에게 성장을 가져올 것인 공통 통화로는 채무의 짓누르기를 가속화할 뿐이라는 막다른 골목의 단적인 표현이,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란이었다. 원래 정치의 루틴(routine)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반란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란은 발생한다. 문제의 심각성 이상으로, 해결의 부재가 반란을 발생시킨다. 반란은 항상 정치에 맞서는 정치이다. 물론 정치 과제를 제출할 수 없는 한, 반란을 기다리는 것은 패배이다. 그러나 월가 점거에, ‘정치 일정에 올릴 수 있는 과제나 승패의 지표 따위는 있을 리 없고, 시위에 의한 정치가의 퇴진요구가 과제를 둘러싼 가능한 옵션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오늘날의 반란은, ‘정치에 대한 구체적 요구가 될 수 없는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다. 어떤 내용을 갖고 있든, ‘정치가 그 욕망의 실현에 길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에, 반란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정치이다. 거기에서는 해결의 부재가 해결에 대한 욕망을 증대시킨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일어난 반란의 연속도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반란이 정치화의 여정에 오르자마자, 다음번 반란의 싹이 자라는 것이다. 이 반란을 지탱하는 욕망에 있어서, ‘정치튀김을 온통 가리고 있는 토핑에 다름 아니다. 혹은 오히려, 이 반란은 자신의 패배를 통해서, 문제를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수조차 없는 정치의 패배 라는 현재의 상황 를 무의식적으로 연출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원래 정치적 승리를 바라지 않음으로써, ‘정치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보이도록 한다고 말이다.

아무튼 긴축이냐 성장이냐, 성장을 위한 긴축이냐 성장에 의한 긴축의 회피이냐 같은 논의가 계속될수록, 이런 반란은 일종의 사고(事故)’로서 되풀이될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 그것은, 요구가 불명료하거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들을 귀 따위는 갖고 있을 리가 없는 사고에 지나지 않으며, ‘사고로서 처리될수록, 반란에 대한 문턱은 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는 일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보험적 발상으로 대비하는 것을, 금융자본주의는 권장하지 않았는가. 리먼 쇼크는 사고조차 벌이가 된다[이문이 남는다]고 실증한 게 아닌가. ‘사고로서의 처리도 또한 파산관리의 수법임에는 틀림없고,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누구에게 그것을 맡길 것인가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화주의의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라고 하는 답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부나 재원을 요구함으로써, 내부에서의 이해대립을 균형시키고, 계급투쟁을 억제하려고 했다. 오늘날에도 또한, ‘바깥이란 아시아이다, 아프리카이다 등이라고 선전하고 있다(‘성장력을 수중에 넣어라!). 바깥도 또한 금융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에 불과하다(그들에게 투자하라, 돈을 빌려주라)고 하는 것의 반면(半面)에는 더 파고들지 말고. ‘바깥에 대한 기대에 관한 한, 여기서도 선구는, 신자유주의와의 차이를 스스로 소멸시킨 중국의 스탈린주의이다. 아프리카 진출이다. 그러나 그 중국에서조차도, ‘바깥으로의 확장은 에서의 반란의 발생과 보조를 맞출 때에만 가능해진다. 아무튼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의 대항 모델로서는, 아직 사고(事故)’만 존재할 뿐이다. 보험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곳까지 사고를 확대하려고 하는 무의식의 노선만을 대항정치는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그것이 계속되는가, 바꿔 말하면, 지속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는 공화국이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는가는, ‘참을성 겨루기의 영역에 있는 문제일까? 비록 사실로서는 그렇더라도, 무의식의 의식화를 시도해도 나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채무공화국은 끝나가고 있다. 어떻게 살 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말로, 또한 현실적으로 끝나게 할 것인가를 논의의 일정에 올려야 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자폐증 스펙트럼의 시대

현대사상과 정신병리 (2/4)

自閉症スペクトラムの時代現代思想精神病理

우츠미 타케시(内海健) / 치바 마사야(千葉雅也) / 마츠모토 타쿠야(松本卓也)


S1또는 S1뿐인 세계

치바 그런데 초보적으로 투박하게 여쭈는데요자체성애가 처음 생길 때라는 것은 외부로부터 언어 체험이 충격(shock)적으로 도입되고 그것에 어떻게 응답하느냐라는 것으로원래 갖고 있던 유전적기질적 경향성과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의 특이성의 조합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는 건가요모든 것을 특이성에 기초해 말씀하신 거라면유소년기에 특수한 외적 사태가 있었다고 하신 것이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요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체질이 다르다는 얘기에도 가깝다고 느껴지네요.

 

마츠모토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꽤 가까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에서도라의 기침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에서의 향락의 체질 문제를 다루었습니다시니피앙의 수준에서 증상을 해석하면아무래도 풀리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그러면 도라가 유년기부터 고무젖꼭지만 빨고 있었다는 등 신체의 소인(素因)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이런 소인(素因)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넘고 있으며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 ‘유전적으로’ 혹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소질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나 거꾸로 말하면거기까지 다다르지 않으면 정신분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치바 정신분석은 기질성이 아니라 심인성의 영역 안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가라는 이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그러나 그것으로는 너무 단순하죠라캉의 경우는 끝이 있는 분석을 믿었는데요왜 끝이 있냐 하면낫지 않고 제거할 수 없는 증상에까지 도달한다는 것입니다그것은 대충 말하면기질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계면界面으로서 있는움직이기 힘든 부분에 부딪칠 때까지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만거기에 부딪침으로써정신분석의 한계이며또한 신체의 의학과 어울리는 듯한 장면이 아무래도 문제가 된다는 것일 테죠.

 

마츠모토 그곳이 바로 라캉이 프로이트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간 점입니다프로이트의 경우끝이 없는 분석에 왜 끝이 없냐 하면거세 콤플렉스와 페니스 선망이라는 벽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팔루스의 존재/부재에 대해 구축된 콤플렉스라는 곳에서 끝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다른 한편라캉의 경우는 그것을 뚫고 나온 분석을 목표로 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거기에서 프로이트로부터 라캉에게로라는 정신분석의 갱신 또는 재정의를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아까 치바 씨의 물음에 대해서인데요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애당초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폐증의 정신병리의 기본입니다반응은 일어나지만 응답은 없다타자로부터 이쪽으로 향해오는 지향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시선이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다처음에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 이비인후과로 데려가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마츠모토 씨라고 부르면 마츠모토 씨는 이쪽을 봅니다만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혹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는 거의 자발적 운동을 할 수 없지만그래도 부모가 품에 안으면 그것에 맞춰서 몸의 자세를 취합니다그런데 자폐증 아이를 품에 안으면곡물이 든 배낭을 안고 있는 것처럼 너무 무겁습니다그렇게 품에 안는 것에 포함되는 지향성에 대해서도 신체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반응성의 결여가 자폐성의 핵심 특징입니다정형발달의 경우품에 안는 것에 대한 응답은 꽤 이른 단계부터 느껴집니다만눈빛이나 호명에 대한 응답은대부분 9개월부터 시작됩니다시선이 맞으면 수줍은 듯이 낯가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이것이 자기라는 것의 밑바탕[元基] 같은 것입니다그 이전에는전반적인 짜임새가 없는 세계 속에 있습니다.

    마츠모토 씨의 얘기와 관련되는 것은 사람은 모두 망상한다의 맨 처음에서 -상징계에 대해 논한 대목입니다그곳에서는 부분대상과 전체대상이 전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데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라캉적으로는부분대상은 현실적[실재적]인 것인 반면전체대상은 팔루스적인 다발[묶음]에 의해 만들어져 있으며상징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클라인파는 발달사적으로 보면우선 부분대상이 있고그것이 통합되어 전체대상이 된다고 해설합니다만그것은 전혀 얘기가 다릅니다부분대상은 전체대상이라는 관점이 있고서야 비로소 소급해서 나오는 것입니다전체대상은시선이 마주치거나 부름에 반응하는 등의 상징적인 개체화로의 힘이 걸리는 9개월만에 한꺼번에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차원의 것입니다부분대상은 이런 상징적인 것의 설정의 피안에 있습니다.

    자폐아의 행동에서부분대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은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그들이 뭔가를 갖고서 놀고 있는데그걸 집어들어 방해했다고 칩시다보통의 아이라면방해한 상대로 향합니다만자폐아는 방해를 하는 손으로만 향합니다혹은 카나의 논문의 있는 사례인데요바늘로 찌르면찌른 상대가 아니라 바늘 자체를 두려워한다이처럼 자폐아는 단편적 세계 속에 있으며그것을 자체성애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츠모토 부분대상만이 있고전체대상으로서의 타자가 일어서지 않는다는 거죠.

 

우츠미 그렇게 되면다음으로 S2 없는 S1의 신분이 문제가 됩니다. S1은 S2가 있어서 사후적으로 설정되는 것입니다만, S1밖에 없을 때그 양태는 어떻게 될까요?

 

마츠모토 얼마전 한밤중에 NHK 방송을 봤다면아르 브루트(Art Brut, 아웃사이더 아트)의 특집을 했습니다그 프로그램에서 장애인 시설에 있는 분으로해외에서도 개인전을 열게 된 시바타 에이이치(柴田鋭一) 씨라는 분의 작품을 소개했는데요그 분은 처음 무렵에는, ‘2’와 ‘3’만을 오로지 반복해서 캔버스에 그렸어요그것이 대단한 작품이 되었습니다오랫동안 ‘2’와 ‘3’을 반복했는데요그 후에 비누[石鹸세켄]의 []’”라는 문자만 줄곧 그리게 됩니다그것이 해외에서 받아들여져 개인전까지도 열게 됐다고 합니다이 경우, ‘2’와 ‘3’, ‘[]’ 같은 문자가 S1입니다이런 문자들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본인도 자폐적이며 중독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극치인 것은반복하고 있는 []’라는 글자가 다름 아닌 비누[세켄]의 []’”라는 것입니다본인은 단순히 []’라고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이 []’는 예를 들어 세계[세카이]’나 석유[세키유]’ 등으로 분절화되는 세[]’가 아니라항상 비누[세켄]의 []’” 그 자체이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치바 문맥 형성을 하지 않는 문자로서의 문자.

 

마츠모토 바로 레트르(lettre)’네요그런 자체성애적인 것의 향락성의 제시와 에크리튀르 사이의 관계를라캉은 조이스론에서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마츠모토 씨는 에릭 로랑이 언급한 로신느 르포르Rosine Lefort의 분석에서, “늑대!”라고 고함을 지르는 사례를 참조했습니다저것은 [누군가의시선을 받거나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패닉 상태가 됐을 때 외치는 것이었죠.

 

마츠모토 (증례인 로베르Robert[Rosine et Robert LEFORT : Naissance de l'Autre, Seuil, 1980])는 자신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은 구멍의 출현에 대한 명명으로서 늑대!”라는 소리를 지르는데요그 시니피앙은 분절화되지 않고항상 늑대!”인 채입니다.

 

우츠미 반면 청년기 혹은 성인기의 자폐증 스펙트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일정한혹은 그것 이상의 언어능력이 있습니다그 경우의 특징은말을 도구처럼혹은 모국어인데도 외국어처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말이 신체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다고 할까말하자면 앱(App)처럼 사용됩니다바꿔 말한다면신체가 언어에 의해 포맷되지 않았다이 경우는 S2만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다른 한편에릭 로랑이 언급한 사례처럼 중증 자폐아가 내뱉는 것은 단독적인 S1이며주술적인 것처럼 생각합니다지시한다고 하는처음 부분만 있습니다언어는이 지시에 의해 대상을 절취하고공동 주의(注意등에 의해 공유되는 과정을 통해서 생성합니다그러나 그 앞에서는무엇이든 늑대!”라고 말하면 일단은 패닉 상태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식으로주술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치바 매직워드이며와일드카드인 거네요.

 

마츠모토 자폐증자에게는정형발달의 사람과 똑같은 의미에서 자신의 말이 되는 것은 그 말(S1)뿐이며그들은 그것에 이어진 S2를 거절하고 있습니다라캉은 그것을자폐증자는 말에 대해 자신을 지킨다고 표현합니다그런 사람들이 현행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S2를 S1과 떼어낸 상태에서 사용하게 됩니다. S1 없는 S2입니다그러면공공공간에서 그들이 이용하는 언어(S2)일종의 컴퓨터 언어처럼 되어 버린다현대 라캉파에서는 자폐증에 있어서의 언어의 병리는이처럼 S1과 S2의 분리로서 파악되는 것입니다한편에는 주술적반복적중독적인 매직워드로서의 언어(S1)의 사용이 있으며그것이 똑같은 말에 대한 상동적(常同的)인 집착이 된다다른 한편에서는그들이 S2를 인공언어로서 만들어냅니다땅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상징적인 논리만으로 쓴 루이스 캐롤이 그 일례입니다.

 

우츠미 자폐증 스펙트럼의 S2는 사적 언어처럼 기능할 뿐인 곳이 있습니다사용하는 말은 우리와 공통이며대화가 가능하지만Speech act[발화행위, 발화수행]로서는 기능하지 않는다비트겐슈타인의 그것과 함께 [맞물려다른 것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기어” 같은 것입니다제가 경험한 어떤 청년 사례는자신의 괴로움을 현실감이 없다”, “이인감(離人感)이 있다[자신이 자신이라는 감각을 상실해버리는 것]”, “만족감이 없다라는 세 개의 말로 나눠서 호소한다그러나 저는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습니다매회 그렇듯이그것이 어떤 괴로움인지를 물어보는 처지가 된다그도 끊임없이 그때마다 알려줍니다만역시 금방 잊어버린다사적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통증의 경우처럼 아파!’라는 것에 의해 공통의 코드가 열리고타인에게 이해되는 동시에 자신밖에는 모르는 고유한 감각이 남는다는 것이 되지 않는다감각만이 있고그것에 태그를 열심히 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치바 극히 사적인 기준으로 연합을 하기 때문에듣는 쪽에도 전해지지 않는군요.

 

우츠미 그렇군요에르곤즉 잘 만들어진 언어에 가까운개념 규정이 먼저 있고그 태그로서 말이 있다아까의 늑대!”의 예에서는지시만 있고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만이번에는 정반대로개념이 있고거기에 말이 붙어 있을 뿐지시가 기능하지 않는다. “여기가 아파라든가 이것 때문에 괴로운 거야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치바 시스템이랄까언어 체계만이 있다논리의 공리계의 세계.

 

마츠모토 바로 수학기초론이라든가 분석철학 같은 세계네요.

     그런데 우츠미 씨가 방황하는 자기 포스트모던의 정신병리(さまよえる自己───ポストモダンの精神病理)(筑摩選書, 2012)의 마지막에서 논하신 것은근대의 노모스가 만들어져 근대적 주체가 생산되던 시대 이후에 초월론적인 것이 절멸한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도래하면타자의 부름이나 시선에 반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비근한 예로 깊숙이 들어갑니다만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이떠들고 있는 학생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면그 시선을 눈치 챈 학생들이 차츰차츰 조용해진다선생님은 거기서 여러분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3분이 걸렸습니다” 등이라고 말하는 거네요(웃음). “조용히 해라고 말하지 않아도눈빛의 힘에 의해,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묻는 자로서 기능하는 타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그런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근대적 주체였던 것입니다.

 

치바 :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가 근대의 기조네요그러나 포스트모던에서는눈앞에 서 있어도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를 떨 수 있다교실의 뒤로 돌아가면 판옵티콘의 기능이 작동한다는 예가 [아사다 아키라의구조와 힘』[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에 나오는 것입니다만현재에는 앞에 있든 뒤에 있든 관계가 없다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마츠모토 현대의 주체는 타자성과 시선이 기능하지 않게 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우츠미 씨는 그런 주체의 모습은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를 따른 계산기적 합리성이며거기에는 결단의 계기도 없고근대적인 의미의 자기도 형성되지 않는다고 평가하시네요. 이 논의는 확실히 그렇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도 많네요더 흥미롭게도 근대적 주체가 전제로 삼았던 타자성의 일어섬がり이나 시선과 목소리에 의한 주체화가 기능하지 못한 후에 등장한이런 포스트 휴먼적 인간상에국내의 정신병리학자들이 거의 동시대적으로 주목하고여러 가지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예를 들어스즈키 쿠니후미(鈴木國文씨는 신자유주의란 자유란 무엇인가?” 혹은 자유는 가능한가?” 등의 물음을 빼고서, “자유니까 이렇다”, “자유니까 이래도 된다고 말하는 원리라고 지적하십니다바로 직전에서 물어야 할 질문을 묻지 않은 채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알고리듬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입니다현대에서는 그런 논리가 이러저러한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고그것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발달장애의 임상풍경과 꽤 가까운 것이 있다는 것을 스즈키 씨는 지적합니다카토 사토시(加藤敏) 씨는 똑같은 사태를 사회의 아스퍼거화라고 부릅니다.

 

우츠미 그것은 자유가 S1에서 S2가 되었다는 것인가어떤 의미에서는 진리의 보증인으로서 있었던 S1지금은 하인처럼 혹사한다[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전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인가요?

 

마츠모토 아마 자유를 S2만으로 생각하게 되며진리(S1)가 배제되어 버린즉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우리 세대가 보면그렇게 되는데요꽤 올드 패션한 시각이 아닐까요그래서 마츠모토 씨나 치바 씨의 세대에서는 어떻게 보는지흥미가 있습니다.

 

치바 저는 우츠미 씨의 그런 감각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제가 신세대에 속해 있고 알고리즘적인 사물의 처리에 친화성을 느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근본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듯한 물음그 문제성이라는 부정성 ― 들뢰즈는 문제성을 부정성이라고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존재” 같은 식으로 불렀습니다만 ― 이 근본에 있은 다음에그 부정성을 달래면서가설(仮設)된 체계에서 어떻게 사물을 움직이는가그 위에서그래도 답할 수 없는 물음으로 다시 되돌아간다이런 답할 수 없는 문제와당장의 시스템 운용의 이중구조로 해온 것이 근대문화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렇게 해서 가설되고 있는 것을 그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지금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분석철학 등의 논의에는 그런 경향이 강하네요대륙철학에서는 사물의 정의가 반드시 약정되지는 않은 상황에서 얘기를 하기 때문에분석철학자로부터는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하게 된다이쪽에서 보면거꾸로 그런 절차적 논의를 하고 있는 쪽이 섬뜩하고[낯설면서 친숙하고]조금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츠미 분석철학은 언어의 사용방식 자체가 S2적이고, “그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항상 듣는다그런 게 아니라사용이야말로 본래의 언어이죠그러나 그 전에,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함으로써단단하게 다져버린다[확고하게 해버린다].

 

마츠모토 저는 알고리즘적인 사고방식은 싫어하지는 않지만그래도 지난날 눈에 띄게 됐던 S2만의 원리에는 자주 놀라며분석철학 책은 읽는 데 꽤 고생니다자폐증자였던 템플 그랜딘은, “라는 개념이 형성되지 못해 괴로워하고모든 개를 관찰한 결과, “라고 불리는 것은 코의 모양이 모두 한결 같다는 것을 깨닫고그것에 의해 라는 개념의 내포를 처음으로 만들게 됐다고 말하더군요.

 

치바 일부의 분석철학은 [단단하게 다져진 것이 아니라] 흔들림이 있는 프래그머틱스로 사용된 사물의 정의를형식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토해 S2만의 구성으로 봤을 때이전의 애매함이 붕괴하고, “사실은 개의 본질은 그 코에만 있었던 것이다처럼 이상하게 한정적인 결론이 되는 것을특별히 지적인 놀라움이나 학문의 발전인 것처럼 말하고그것의 향락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마츠모토 그렇게 함으로써 향락하고 있다.

 

치바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프래그머틱스에 있어서의 말의 두께가 S2적인 단조로움 속에 해체되는 것을 기분 좋다고 생각하고 있죠그리고 그것을말의 두께의 세계에 대해모종의 위협적으로 대치시키는 것에 쾌를 느끼고 있다.

 

우츠미 아이가 말을 배울 때에도혹은 부모가 말을 가르칠 때에도개념은 가르칠 수 없죠차를 보고 붕붕이라고 가르쳐보죠그래서 차가 아닌 것을 아이가 붕붕이라고 부르고, “그것은 붕붕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개념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처음에 지시가 있는 것입니다개념 규정에 너무 얽매이면 잘 안 되는 거죠.

 

치바 최근에는 여러 가지 절차적인 것을 직장에서 요구합니다. “이러저러할 때에는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내고 몇 초 기다렸다가 이렇게 해라” 같은 것을 하는 것이 분명한 가게도 있습니다그런 것은 바로 사회의 아스퍼거화라고 말하고 싶은 상황입니다대학 업무에서도 그것에 가까운 것을 하도록 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우츠미 어떤 카페의 체인점에서는수십 시간의 연수가 있다고 합니다다만셀프엔조이먼트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커피가.

 

마츠모토 최근의 전지구적 기업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개개의 고객에 인간적인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매뉴얼로 인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치바 그런 건 왠지 섬뜩하죠[낯선 친숙함이죠].

 

마츠모토 섬뜩합니다[낯선 친숙함입니다]. 어떤 카페의 체인점에서는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사람에게 점장이 개인적으로 코칭 같은 것을 하는 것 같아요거기에는 꽤 심리학의 메소드가 들어 있어서그래서 나오는 것이 완전히 통제된 인간미가 있는 접객입니다.

 

치바 : S2밖에 없는 가설적 공리체계로서의 인간 같음.

 

마츠모토 인공지능은 그곳에서 이미 완성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바 불가능한 것이나 무한이라는 것이 지성에 있어서 문제였던 시대에는 인공지능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만거꾸로 시대가 인간의 지성을 인공지능적으로 했다면그건 인공지능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최근에는 알고리듬으로 문제 해결하는 것이 인공 지능이라고 꽤 흔하게(casual) 불리게 됐네요.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인공지능 알고리듬으로 라든가저런 캐주얼화는 기묘하다고 생각합니다옛날 같으면 인공지능이 만들었다고까지 야단스럽게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 인공지능이라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요이렇게 인공지능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원래 모델이 되는 인간 문명이 인공 지능적으로 되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해설

클로드 르포르의 낡음과 새로움

解説 クロード・ルフォールのさとしさ

토나키 요테츠(渡名喜庸哲)

 

* 아래에 번역한 것은 클로드 르포르의 책 <민주주의의 발명>의 일역자 토나키 요테츠가 이 번역서에 붙인 해설이다. 평이한 내용도 있고 정보도 있기에 번역해둔다. 이 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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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번역한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다.

낡았다고 한 것은 단순히 이미 최초로 출판된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금세 읽을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직 소련이 세계에 대해 패권 중 하나를 쥐고, 동유럽의 민주화의 다양한 운동들을 억압했던 시대의 사건이다. 냉전 붕괴 이후, 이런 틀 자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낡고, 게다가 읽기 쉽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문체로 써진 책을 굳이 번역한 까닭은, 르포르가 지닌 뻣뻣하고 느릿한 충격을 전하는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이라는 시대에도 명확하게 손에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이, 이 책은 이후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한 가지 조류를 창시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런 영향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한쪽의 전체주의라는 말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학문적 검토를 받지 못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체제라면 어느 체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제멋대로 사용하기 좋은 형용사나 비판을 위한 욕설로 격하되고, 다른 한편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다수결이나 숫자 세기의 표대결 게임과 동의어인 양 회자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 과정(르포르라면 권력자본지식이 융합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민주주의전체주의에 대해 지금도 색이 바래지지 않은 근원적인 고찰이 르포르에게는 있을 터이다.

얼핏 보면, 소련형 혹은 프랑스형 공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는 르포르의 손놀림은 자유주의’, 더 나아가 보수주의에 의한 공산주의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을 비판하는 형태로, 르포르 나름의 전체주의 비판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르포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보이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반공서’로 읽는 것은 완전한 오독이다. 맑스를 공부하면서도 이른바 맑스주의와는 선을 긋는 르포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이나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됐을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사회에서조차도 왜 똑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조직화된 지배양식이 발견되는가, 그리고 좌파를 자칭해온 지식인들은 왜 이것을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쫓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르포르가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자유주의라는 구도 자체가 더 이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 포스트공산주의’(iv)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전체주의공산주의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체주의민주주의의 둘 다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의 모습을 한계까지 추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그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당분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로 그렇게 부르기에 알맞은가? 원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을 계속 제기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르포르의 딱딱하고 둔탁한 충격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과 경력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La Brèche, avec Edgar Morin et Jean-Marc Coudray, Paris, Fayard, 1968/2008〔『学生コミューン西川一郎訳合同出版一九六九年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 Genève, Droz, 1971/Paris, Gallimard, 1979〔『官僚制批判諸要素未邦訳

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Paris, Gallimard, 1972〔『マキァヴェッリ作品研究未邦訳

Un homme en trop. Essai sur « L’Archipel du Goulag », Paris, Seuil, 1975〔『余分人間──『収容所群島をめぐる考察宇京頼三訳未来社一九九一年

Sur une colonne absente. Écrits autour de Merleau-Ponty, Paris, Gallimard, 1978.〔『不在──メルロ= ポンティをめぐって未邦訳

Les Formes de l’histoire, Paris, Gallimard, 1978〔『歴史諸形象未邦訳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Paris, Fayard, 1981/1994.本書

Essais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le), Paris, Seuil, 1986.〔『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世紀)』未邦訳〕 ->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Écrire à l’épreuve du politique, Paris, Calmann-Lévy, 1992/Paris, Pocket, 1995〔『エクリール──政治的なるものにえて宇京頼三訳法政大学出版局一九九五年

La Complication ── retour sur le communisme, Paris, Fayard, 1999.〔『錯綜──共産主義への回帰未邦訳

Le Temps présent. Écrits 1945-2005, Paris, Belin, 2007.〔『現在── 一九四五年〇〇五年未邦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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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많은 논문을 집필했다.[각주:1] 또한 서문가序文家로서의 모습도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의 프랑스어 번역(Flammarion, 1985), 에드가르 키네의 『혁명(Belin, 1987), 단테의 『제정론(帝政論)의 프랑스어 번역(Belin, 1993)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필두로 하는 많은 저작에 서문을 붙였다.

 

클로드 르포드는 192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파리의 카르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만난다. 메를로-퐁티의 영향으로 맑스에 눈을 뜬 르포르이지만, 서서히 트로츠키주의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설에 포함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부감을 깨닫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해 위화감을 품는다. 전후 유네스코에서 근무한 후, 194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전후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한 르포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라는 그룹을 설립하고,[각주:2] 동명의 잡지에서 이미 동구권의 관료주의적 지배양식에 대해 호된 비판을 던졌다. 50년대에 작성된 논문 중 주요한 것은, 이후 관료제 비판의 요소들역사의 형상들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에서도 훨씬 더 지배억압의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스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주류파가 자치또는 자율을 지향한 하나의 혁명정당으로서의 활동의 방향성을 탐색한 반면, 르포르는 그 어떤 조직화도 경직화하고 억압장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도저히 감추지 못했고, 1958년에 갈라선다. 맑스주의적인 문제계를 르포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의 5장에서의 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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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Merleau-Po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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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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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르포르는 두 개의 중요한 논쟁을 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논집 인류학과 사회학(1950)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붙였는데, 이것에 대해 르포르는 51년에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논문 교환과 인간 사이의 투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특히 상징의 지위를 둘러싸고) 반론을 가했다.[각주:3] 다른 한편, 르포르는 실존주의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사르트르의 52년의 논고 공산주의자와 평화에 대해 『레 탕 모데른느195389호에 맑스와 사르트르를 발표하고, 사르트르가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을 동일시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고, 이 때문에 『레 탕 모데른느』와도 멀어지게 된다.[각주:4]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의 이별은 르포르에게 정치활동보다 대학에서 연구자·교육자로서 집필을 통한 정치철학의 이론화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5년부터 71년에는 칸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다. 거기서의 제자들로는 알랭 카이예, 마르셀 고셰, -피에르 르고프 등이 있다.

이른바 <685> 때에는, 옛 친구 에드가 모랭 및 카스토리아디스와 함께 곧바로 반응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공저 685: 균열(일역본 제목은 학생코뮌)을 같은 해에 저술했다(이 책의 장-마르크 크드레이는 카스토리아디스의 가명이다). 혁명의 주체를 학생운동에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급에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쳐놓고, 르포르는 학생반란에, 단지 대학 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대학으로 구현된 근대 산업사회 전반에 대한 재물음을 보고 있다. 동유럽의 민주화에 대해 논한 이 책에도 밑바탕에 깔린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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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논문을 레이몽 아롱에게 제출하고,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을 거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애드가 모랭과 함께 사회학·인류학·정치학의 영역횡단적 연구소”(현재의 에드가 모랭 연구소)를 지휘하고, 나중에 피에르 로장발롱과 함께 레이몽 아롱 정치학 연구소를 세운다. 1989년에 이 연구원을 퇴직한 후에도 정력적으로 집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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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의 르포르의 과제는, 1950년대부터의 관료제 비판의 작업에 의거하여, 후술하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출판을 필두로 하는 동시대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여분의 인간을 참조) 마키아벨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철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전체주의개념을 정밀화하고, 거꾸로 그것과 대쌍이 되는 형태로 민주주의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민주주의의 발명은 그런 일련의 작업의 성과에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조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르포르에게 그때마다의 친구들과 더불어 발간하고, 열띤 논고를 모은 몇 호의 잡지를 간행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잡지로 이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친구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과 새로운 잡지를 세운다는 단속적인 학술잡지를 통한 논의의 장이야말로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레 탕 모데른느이후에도, 68년에는, 현재는 현상학자로서 알려진 마르크 리실(이 책의 7장 참조) 등 브뤼셀자유대학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잡지 텍스처에 마르셀 고셰와 함께 참여하여 이 잡지의 편집에도 종사한다. 게다가 77년부터는 고셰와 더불어, ‘유토피아개념에 대한 사회사상사로 나중에 유명해진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등과 리브르를 창간한다(이 책의 1, 9장의 초출은 이 잡지이다). 이 잡지는 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부언하면, 리브르의 면면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함께 시도한 것이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재독해이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읽히는 자발적 복종론의 파이요 사의 문고판에는 당시에 쓴 고셰와 아방수르가 연명한 서문과 클라스트르의 라 보에티론에 덧붙여, 르포르의 <일자>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도 보이는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는 사상의 실마리를 라 보에티한테서 찾고 있는 것이다.[각주:5] 그 후 80년대에는 아방수르, 피에르 파셰, 니콜 로로 등과 새로운 잡지 과거/현재(Passé/Présent)를 창간하고, ‘개인이나 테러등을 테마로 특집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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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드 라 보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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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80년대에는 민주주의론, 혁명론에 덧붙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논고 등을 보탠 논집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19세기-20세기)을 저술했다. 이것은 본서와 나란히 르포르 정치철학의 이론적 고찰이 정리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서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면서 시사되고 있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중세적인 신학적 정치관의 현대적 잔존을 문제 삼는 중요 논문 신학-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은 특필할 만하다.

이 시기의 르포르의 활동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이론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1988년의 이른바 라쉬디[루시디]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만 라쉬디[루시디] 옹호위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 라쉬디[루시디]론은 1992년 간행된 에크리르에 수록되어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론이나 다른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사드, 토크빌, 기조 등에 관한 논고도 수록되어 있고, 르포르의 사상적 영향관계나 동시대적 관심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999년 간행된 착종은 부제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했지만, 물론 그때까지의 신랄한 공산주의 비판을 거친 말년의 변절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다시금 공산주의의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계획 하에서 이와 관련된 논고가 정리되어 있다. 2007년의 현재 : 1945-2005은 그때까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을 중심으로 모은 선집(anthology)이다.

최후의 르포르는 췌장암을 앓았다. 파리 좌안 7구의 벡(Beck)가에 있는 5층짜리 자택에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르내리기를 하고, 뤽상브르 공원에 나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전부터 친한 벗인 에드가 모랭이 뻔질나게 병문안을 한 보람도 없이, 201010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의 장례식 때, 모랭은 르포르의 죽음을 앞에 둔 스토아학파 같은 고귀함을 증언하고, 그를 “그 어떤 진보주의적 환상에도 양보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사상가, 그리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사상가를 그리워했다.[각주:6]

 

클로드 르포르를 어떻게 위치시킬까?

우노 시게키(宇野重規)는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조류들을 개괄하는 저서 정치철학으로에서, 거기에는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레이몽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또는 반-맑스주의적 흐름이다. 둘째는 알튀세르 이후의 맑스주의적 사상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비판이나 주체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및 클로드 르포르 등처럼 맑스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맑스주의 비판을 거쳐 전체주의 비판에 이르는 조류라고 한다. 우노의 정리에 따르면, 그 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은 알튀세르의 흐름에 속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뤽 낭시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포함한 그룹, ‘68년 사상을 비판하는 소르본 계열의 알랭 르노나 뤽-페리 등의 그룹, 그리고 아롱 및 르포르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을 중심으로 한 그룹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각주:7]

이처럼 르포르는 80년대 이후 복권이 외쳐지는 프랑스 정치철학의 하나의 원류를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르포르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절친인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서는 주요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한 에구치 칸(江口幹) 씨가 쓴 평전이 있으나,[각주:8] 르포르에 대한 연구 논문은 매우 적다.[각주:9] 르포르가 경원시됐던 것은 그의 난해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른바 정통파 맑스주의 사상은 물론, 실존주의에도, 구조주의에도 과감하게 논쟁을 걸고, 유행하고 있는 학파로의 귀속을 항상 거부했다는 독자적인 입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금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치철학복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돌이켜보면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1981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꽤 커다란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미 50년대부터 스탈린비판과 폴란드의 폭동(이 책의 10) 및 헝가리 봉기(이 책의 8, 9) 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68),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 등의 사건, 게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 50년대 말부터 집필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73년의 프랑스어 번역이 처음이었다 에 의해 소련 및 공산당을 근거의 하나로 삼았던 정당 및 사상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뚜렷한 조짐은 이 책의 11장에서 논하는 폴란드의 민주화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치의 겉 무대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의 구호와 더불어 소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프랑스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은 좌파연합을 실현시켰다(이 책의 4장 참조).

좌파연합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81년의 미테랑 사회당 정권을 실현시켰지만, 아무튼 그것이 다양한 모순이나 균열을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미테랑 정권이 사회주의적 기업 국유화 노선으로부터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대전환을 보였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상 면에서는 알튀세르의 맑스주의의 주축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다양한 사상 조류가 생겨난다. 대체로 <685> 이후, <>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혁명이론에 무게를 둔 사상으로부터, <좌익 급진주의>라고 불리는 극좌파조직이나, 3세계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이 활짝 꽃피게 된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얘기되는 앙드레 글뤽스만, 베르나르-앙리 레비 등 신철학(누벨 필로조피)”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에 의한, 미디어용 전체주의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더욱 광범위한 사상의 변동이 프랑스를 덮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치의 이름으로 경시됐던 종교윤리가 복권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일반적으로 인지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며, 유대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쪽에서도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가 회자됐다. 그리고 정치철학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해진 것도 역설적으로 이 시기이다. 그때까지 정치철학이라고 하면, 생산관계를 도외시한 부르주아 이론이라고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퇴조에 의해,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정치철학에 본격적인 주목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기에, 공산주의는 물론 실존주의로도 구조주의로도, 더 나아가 자유주의로도 공화주의로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바로 난간[그 무엇에도 기댈 곳] 없는 사고를 실천한 르포르는, 1983년의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정치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고,[각주:10]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이 부흥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각주:11] 르포르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많다. 맑스를 근본으로, 박사논문의 주제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보에티, 미슐레, 토크빌 등 과거의 사상가, 게다가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레이몽 아롱,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같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흔한 정치철학사또는 정치사상사로는 귀착하지 않는다. 제도로서의 정치(la politique)’와 그 배후에서 그 구체적인 현상형태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구별하고, 후자의 모습을 철학적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는 스승 메를로-퐁티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인 것의 현상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자세를 바탕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통저(通底)하는 현대의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특히 관료제와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도려내는 것,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자명시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이른바 이런 비판적 사회철학이야말로 르포르가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자세 때문에 르포르는 그 어떤 유파도 구성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은 폭넓다.

앞서 인용한 우노(宇野)가 서술하는 것처럼, 르포르 자신이 소속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레이몽 아롱 연구소의 정치철학자에 대한 영향은 물론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칸대학 시절의 제자인 마르셀 고셰에 의한, “근대의 탄생을 정치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관계로 파악하는 최초의 주저 세계의 탈마술화세[네] 권짜리 대작민주주의의 도래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신학정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르포르의 관점을 확대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