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정치를 말하다> 발췌


1. “오늘날 ‘68년’이라고 하면, 전세계 어디서든 공통된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동일시를 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그 내용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구좌익 운동은 1950년대에 매카시즘으로 괴멸당했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 공민권운동(흑인해방)과 베트남반전운동을 계기로 하여 좌익운동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구좌익과 관계가 없는 신좌익이었습니다.”(p. 12)

2. “그런데 일본의 ‘68년’에는 이런 다의성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동시성이랄까, 서양과 공통된 문제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60년의 안보투쟁은 1955년부터 시작된 고도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생긴 것입니다. 64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이 사이에 농업인구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전까지 일본은 절반은 농업국가였습니다. 60년 이후 대학 진학률이 급격하게 올라갔습니다. 대학생이 엘리트였던 시대가 없어졌습니다. 포스트-산업사회로 이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68년’은 이런 변화의 결과로 생겼던 겁니다.”(pp.16-17)

3. “문학에는 재능과 동시에 노동이 필요했다. 재능과 동시에,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p.24)

4. “프랑스의 ‘현대사상’은 어떤 의미에서 68년 5월 혁명의 좌절 때문에 문학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문학적인 것이었습니다.”(p.25)

5. “또한 그때까지는 계급투쟁이 중시되었고, 젠더와 소수자 등의 문제는 이차적, 부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68년에서는 그런 사고방식이 부정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와 같은 거시 정치나 권력이 중시되었는데, 미시 권력 또는 미시 정치학이라는 영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그것은 68년 이후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환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거시 차원, 국가나 네이션이라는 차원을 간단하게 정리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사람은 푸코죠. 푸코는 알튀세르라기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그람시의 ‘헤게모니’라는 개념으로부터 배웠다고 생각합니다만, 국가를 폭력장치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보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맑스주의자들과는 다르며, 국가가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성립한 권력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교육적 장치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은 오히려 동의에 기반한 힘(헤게모니)로서 있다고. 그래서 그는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한 권력, 보이지 않는 미시 권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른바 거시 정치를 대신하여 미시 정치학을 강조했던 셈입니다.

이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투쟁의 역점이 계급투쟁에서 페미니즘, 게이, 그 밖의 소수자 문제로 이행했을 때, 이런 견해가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국가에 관한 견해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람시도 그렇습니다만,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맞서 존재한다는 점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가 성립했던 것은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계속적으로 지배함으로써입니다. 공동체가 확대하여 국가로 전화하거나 그 내부에서 계급투쟁이 생겨 국가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pp.30-32)

 
6. “즉, 한 국가가 어떤 의지를 가진 주체라는 것은 바깥에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p.33)


7. “예를 들어 「의미라는 병」이라는 에세이(1972년)는 맥베스론인데, 연합적군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60년대 초부터 생각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안보투쟁 후에, ‘맑스주의는 끝났다’는 합창이 있었습니다. 70년대 이후에도 역사에 목적은 없다, 의미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80년대에는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풍미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는 그것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미라는 병」은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종교적 원리주의가 있겠죠. 향후에도 ‘의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p.49)

8. “이념을 필요로 한 시대는 전혀 끝나지 않았습니다.”(p.70)

9. “이 시기의 ‘현대사상 붐’은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프랑스 철학의 붐입니다. 왜 그것이 유행했는가?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현대사상은 일종의 정치적 좌절의 표현이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관념에서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가. 1968년 파리의 5월 혁명에서 화장실에 쓰여진 낙서에, ‘상상력이 권력을 잡는다’라는 슬로건이 유명해졌는데, 오히려 상상력이 권력을 잡았던 것은 5월 혁명이 패한 뒤입니다.

어떤 상상력인가? 문학이 아닙니다. 문학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철학이 문학에 접근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데리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중략) … 이미 전쟁 전의 하이데거가 그랬습니다. 그는 시를 철학보다도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랬던 것은 나치에 참가하고 그것에 실망했던 후였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혁명은 나치 정치가 아니라 문학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처럼 정치적 좌절·불가능성 때문에 문학으로 향하는 것은 그다지 보기 드문 것은 아닙니다. 그 경우 말의 힘에 빈다는 것이 됩니다. … (중략) …

그러나 이것은 독일관념론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18세기 말에, 영국에는 발달한 자본주의가 있으며, 프랑스에는 정치적 부르주아 혁명이 있었지만, 독일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생겼던 것은 관념적 혁명입니다. 이것은 어중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독일 관념론은 그 이후 철학적 혁명의 모델로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칸트, 피히테, 헤겔, 맑스 등과 같은 철학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좌절과 무력감 때문에 관념론적 혁명으로 향하는 예는 다름 아닌 일본에도 있습니다. 교토학파가 그렇습니다. … (중략) …

사실 프랑스에서는 전후에, 독일의 하이데거를 도입함과 더불어 독일 관념론을 도입했습니다. 독일은 전쟁에 졌지만 철학적으로는 전후 프랑스를 점령했던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의 언어와 스타일이 기존의 프랑스적인 철학·문학(발레리로 대표되는)을 대신했습니다. 일본에 들어왔던 프랑스의 ‘현대사상’은 그러한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의외로 일본의 과거의 담론과 친화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사상이 유행할 때에는, 현실의 정치적 좌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근본에는 무력감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소 냉전 구조 속에서는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이 없다. 때문에 그것을 사변적인 상상력에서 찾게 된다. 그 때문에 철학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문학적인 것이 됩니다. 일본에서도 70년대 이후, 요시모토 타카아키(吉本隆明)가 우위에 섰던 것은 그 때문이죠.”(pp. 58-60)


10. “그래서 91년에 소련이 현실에서 붕괴하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은 오히려 소련의 존재에 의존했다는 점입니다. 소련의 붕괴로 구좌익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은 신좌익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때까지 신좌익은 소련이나 구좌익을 비판하면 되었다.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이라든가, 관념적 논의를 하면 되었다. 즉, 신좌익은 소련 또는 구좌익에 의존했던 것이다. 그것이 붕괴할 것 같지 않았기에 편했다. 그것을 비판하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 붕괴하는 것을 보자 더 이상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80년대에 풍미했던 ‘현대사상’이 급격하게 리얼리티를 잃었던 것도 그 때문이죠. 예를 들어 데리다는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또는 이항대립의 탈구축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언뜻 보면 서양의 역사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웅대한 물음처럼 보입니다만, 이것이 리얼리티를 가졌던 것은 현실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라는 이항대립, 즉 냉전구조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pp. 65-66)

11.  “저는 사회주의가 근본적으로 윤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는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지향하는가)?”(p. 71)

12.  “대학의 민영화라는 것은 실제로는 국영화입니다. 그때까지의 대학은 국립이면서도 실제로는 문부성에서 독립했습니다. 즉, 중간세력이었습니다. 민영화에 의해 이러한 자치가 박탈당했습니다. 사립대학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국가의 재정적 원조의 증대와 더불어, 국가에 의한 통제가 강화되었던 것입니다.”(p. 82)

13.  “근대의 주권국가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소수의 대국(大国)에만 들어맞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다른 국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국가는 존속하기 위해서라면 연합이나 종속을 마다하지 않습니다.”(p. 129)


14.  “공동체로부터 일단 분리된/벗어난 개인이 아니라면 타자와 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고립의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생각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던 것은 1990년대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당시까지 있었던 다양한 공동체, 중간단체와 같은 것이 일제히 해체되거나 송두리째 뿌리뽑혔기 때문입니다. … (중략) …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개인이라는 것은 일정한 집단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사태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집단인가가 중요합니다.”(pp. 145-146)


15. 역사의 120년 주기설 도표.

‘근대세계체제의 역사적 단계’ 또는 ‘세계자본주의의 단계들’

1750~

1810

1810~

1870

1870~

1930

1930~

1990

1990~

세계자본주의

후기중상주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국가

영국

미국

경향

제국주의적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적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적

자본

상인자본

산업자본

금융자본

국가독점자본

다국적자본

세계상품

섬유산업

경공업

중공업

내구소비재

정보

국가

절대주의왕권

국민국가

제국주의

복지국가

지역주의

1789

프랑스혁명

↓↑

1795

칸트 영구평화를 위해

1848

1917

러시아혁명

↓↑

1920

국제연맹

1968


16.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개별사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것과 같은 것을, 몽테스키외에게서 빌려 중간세력이라고 불렀습니다. … (중략) … 그는 서양에서 ‘학문의 자유’라는 전통을 만들었던 것은 진보파가 아니라 오래된 세력, 중간세력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국가가 교육의 권리를 장악하는 것에 교회가 저항했기 때문에, 학문의 자유가 성립했다. … (중략) …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근대화 속도의 비밀은 봉건적=신분적 중간세력의 저항이 천박하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중간세력이 약한 곳에서는 개인도 약합니다. 1990년대에 일본 속의 중간세력, 중간단체가 소멸했습니다. 국노(国労), 창가학회, 부락해방동맹 …. 교수회 자치를 가졌던 대학도 그렇습니다. 이런 중간세력은 어떻게 으깨진 것인가? 미디어의 캠페인에서 일제히 비난받았던 것입니다. 봉건적이고 불합리하며 비효율적이다, 이것으로는 해외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pp. 148-149)


17. “일본에서 중간세력이 거의 소멸했던 것은 2000년입니다. 그래서 고이즈미 정권이 나온 것입니다. 더 이상 적은 없다. 그는 중간세력의 잔당을 ‘수구세력’이라고 부르며 일소했던 것입니다. 몽테스키외가 중간세력이 없는 세계는 전제국가가 된다는 것을 언급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전제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그 한 가지 예가 일본에는 시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 (중략) … 주권자인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대의제에서 국민은 이른바 ‘지지율’이라는 형태로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통계학적으로 처리되는 ‘유령’적 존재이다. … (중략) … 대의제가 귀족정이라는 것은 오늘날,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정치가의 유력자는 2세, 3세, 또는 4세입니다. 그들은 각 지방의 영주와 같은 것입니다. … (중략) … 현재의 일본은 국가관료와 자본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제국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의제 이외의 정치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죠. … (중략) … 민주주의는 의회에서가 아니라 의회 밖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시위와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pp. 150~152)

 
18. “어소시에이션의 전통이 있는 곳에서는, 인터넷은 그것을 조장하는 것처럼 기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같은 곳에서는, 인터넷은 ‘원자화하는 개인’의 유형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 (중략) … 일단, 시위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어소시에이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옛날, 시위가 있었던 것은 결국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죠. … (중략) … 그래서 어소시에이션을 창출하는 것, 그것이 특히 일본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단독자)는 그 속에서 단련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창출되면 좋습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죠. 부족이 강하고 종파가 강하다. 에스닉 조직도 강하다. 거꾸로 일본에서는 좀 더 ‘사회’를 강하게 할 필요가 있죠.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pp. 155-157)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Now, several voyages of comparison made (between 1948 and l958) to the United States and the U.S.S.R. gave me the impression that if the Americans give the appearance of rich Sino-Soviets, it is because the Russians and the Chinese are only Americans who are still poor but are rapidly proceeding to get richer. I was led to conclude from this that the “American way of life” was the type of life specific to the post-historical period, the actual presence of the United States in the World prefiguring the “eternal present” future of all of humanity. Thus, Man's return to animality appeared no longer as a possibility that was yet to come, but as a certainty that was already present.

그런데 나는 (1948년에서 1958년 사이에) 미국과 소련을 여러 번 여행하고 비교해 본 결과, 미국인에게서 부유한 중국-소련의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소련인이나 중국인이 아직은 가난하지만 급속도로 풍요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나는 이런 결론을 끌어냈다. 즉, ‘미국식 생활양식’은 포스트역사 시대의 고유한 생활양식이라는 것, 미국이 현실로서 세계에 현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전체의 ‘영원히 현존하는’ 미래를 예시하는 것이라는 결론. 따라서 인간이 동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전하는 확실성으로서 나타났다.

It was following a recent voyage to Japan (1959) that I had a radical change of opinion on this point. There I was able to observe a Society that is one of a kind, because it alone has for almost three centuries experienced life at the “end of History” ― that is, in the absence of all civil or external war (following the liquidation of feudalism by the roturier Hideyoshi and the artificial isolation of the country conceived and realized by his noble successor Yiyeasu). Now, the existence of the Japanese nobles, who ceased to risk their lives (even in duel) and yet did not for that begin to work, was anything but animal.

내가 이에 대한 견해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최근(1959년) 일본을 여행한 후이다. 나는 거기서 유일무이한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왜 유일무이한가 하면, 일본이 (농민/평민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봉건제’가 청산되고, 그의 후계자이자 원래 무사/귀족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쇄국이 구상되어 실현된 후) 거의 3세기 동안 ‘역사의 종말’에서 삶을 경험했던 ― 즉 어떤 내전도 대외전쟁도 없는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무사/귀족은 자신의 목숨을 (심지어 결투에서조차) 위험에 빠뜨리길 멈췄지만 그렇다고 노동을 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들의 실존은 완전히 동물적이었다.

“Post-historical” Japanese civilization undertook ways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American way.” No doubt, there were no longer in Japan any Religion, Morals, or Politics in the "European" or "historical" sense of these words. But snobbery in its pure form created disciplines negating the “natural” or “animal” given which in effectiveness far surpassed those that arose, in Japan or elsewhere, from “historical” Action ― that is, from warlike and revolutionary Fights or from forced Work. To be sure, the peaks (equalled nowhere else) of specifically Japanese snobbery ― the Noh Theater, the ceremony of tea, and the art of bouquets of flowers ― were and still remain the exclusive prerogative of the nobles and the rich. But in spite of persistent economic and political inequalities, all Japanese without exception are currently in a position to live according to totally formalized values ― that is, values completely empty of all “human” content in the “historical” sense. Thus, in the extreme, every Japanese is in principle capable of committing, from pure snobbery, a perfectly “gratuitous” suicide (the classical épée of the samurai can be replaced by an airplane or a torpedo), which has nothing to do with the risk of life in a Fight waged for the sake of “historical” values that have social or political content. This seems to allow one to believe that the recently begun interaction between Japan and the Western World will finally lead not to a rebarbarization of the Japanese but to a “Japanization” of the Westerners (including the Russians).

‘포스트역사의’ 일본문명은 ‘미국식 생활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일본에는 더 이상 ‘유럽적’ 혹은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수 형태에서의 속물들(스노비즘)은 ‘자연적’이거나 ‘동물적인’ 소여(주어진 바)를 부정하는 규율을 창출했다. 이것은 효과라는 면에 있어서 일본이나 다른 곳에서 ‘역사적’ 행동을 통해 생겨났던 것, 즉 전쟁과 혁명적 투쟁 또는 강제노동에서 생겨났던 것을 훨씬 능가했다. 확실히 노가쿠(能樂)나 다도(茶道)나 꽃꽂이(華道) 등과 같은 일본 특유의 스노비즘의 정점(이에 필적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은 귀족과 부유층의 배타적 전유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완전히 형식화된 가치에 기초하여, 즉 ‘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내용을 모두 상실한 가치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극단적(궁극적)으로 보면 모든 일본인은 순수한 스노비즘에 의해 원리적으로는 완전히 ‘아무 대가도 없는’ 자살을 행할 수 있다(사무라이의 고전적 칼épéee은 비행기나 어뢰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자살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내용을 가진 ‘역사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수행되는 투쟁 속에서 무릅쓰게 되는 생명의 위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일본과 서구 세계 사이에서 최근 시작된 상호교류는 결국 일본인의 재야만인화(일본인을 야만인으로 다시 간주하는 것)가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포함하여) 서구인들의 ‘일본인화’로 귀착될 것으로 보인다.

Now, since no animal can be a snob, every “Japanized” post-historical period would be specifically human. Hence there would be no “definitive annihilation of Man properly so-called,” as long as there were animals of the species Homo sapiens that could serve as the “natural” support for what is human in men. But, as I said in the above Note, an “animal that is in harmony with Nature or given Being” is a living being that is in no way human, To remain human, Man must remain a “Subject opposed to the Object” even if “Action negating the given and Error” disappears. This means that, while henceforth speaking in an adequate fashion of everything that is given to him, post-historical Man must continue to detach “form” from “content,” doing so no longer in order actively to transform the latter, but so that he may oppose himself as a pure “form” to himself and to others taken as “content” of any sort.

오늘날 그 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화된’ 포스트-역사적 시대는 분명히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인간적인 것의 ‘자연스런’ 뒷받침 역할을 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라는 동물들이 있는 한, “고유하게 그렇게 불리는 인간의 경정적인 무화”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의 주석에서 말했듯이, “자연이나 주어진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동물”은 살아 있는 존재이되 결코 인간적이지는 않다. 인간적인 채로 머물러 있으려면, 인간은 설령 “소여(주어진 것)를 부정하는 행동과 오류”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대상과 대립된 주체”로서 남아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다음을 뜻한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적합한 방식으로 말을 동안에도 포스트-역사적 인간은 ‘내용’으로부터 ‘형식’을 계속해서 떼어내야만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내용’을 적극적으로 변형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형식’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대립시킬 것이며, 모든 종류의 ‘내용’으로서 받아들여진 타인에게 대립시켜야만 한다.

(영어판, 160~161쪽)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자유와 애국심의 공화주의론 :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읽기

*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김경희·김동규 옮김, 인간사랑

  Maurizio Viroli 2002 Republicanism Hill and Wang (New York)


1. 들어가며

이 글은 근래 들어 자유주의를 대신할 공공철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공화주의의 사상을 비롤리의 『공화주의』에 입각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시민혁명의 시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의 시대 등 서구 역사의 곳곳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최근에는 존 포콕(John Pocock)과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를 중심으로 한 캠브리지학파의 연구에 의해 그 의의가 재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지닌 특색은 사상을 역사적 맥락(context)에서 읽는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스키너는 이런 기법을 통해 영국의 시민혁명 시대를 검토하면서, 이 시대에는 현재의 자유주의와는 상이한 이론(신로마이론)1)이 있었다고 지적했다(Skinner 1998). 또한 이들이 공화주의를 ‘자유’라는 관점에서 논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2) 스키너 등의 역사연구에 정치철학적 관점을 덧붙여 이것의 현대적 적용을 모색하는 논자로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을 거론할 수 있는데, 이때 그는 이른바 분석철학의 기법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적 자유’를 대신할 ‘공화주의적 자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Pettit 1997).3) 이처럼 스키너의 흐름은 ‘자유’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도 이 스키너의 흐름과 연관된 이론가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철학 학위를, 피렌체에 있는 유럽대학에서 사회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는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는 마키아벨리와 루소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 연구다. 이 책에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공화주의의 논점들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의 논의는 ‘공화주의적 자유’를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스키너나 페팃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이들과는 다른 점으로는 이탈리아의 역사(특히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사상이나 제도를 분절한다는 점, 그리고 ‘정념’(passion)에 관한 테마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래에서는 그의 논의를 각 장별로 소개할 것이다.


2. 공화주의의 역사

이 책의 목적은 「영어판 저자 서문」에 잘 서술되어 있다. 그 목적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라는 더 큰 이론의 부록과도 같은 민주주의 이론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을 바꾸는 것, 즉 오히려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보다 시대상 앞설 뿐만 아니라 가치 면에서도 우월한 이론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이탈리아 공화주의의 역사부터 설명해 나간다. 1장에서 비롤리는 14세기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이탈리아의 자유 공화국들에서 구축된 공화주의의 정치이론에 관해 서술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가 일찍이 근대성에 주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공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당시 이탈리아 공화국들은 부유하고 힘센 가문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많은 인민들은 정부 및 주권적 권한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공화국들은 대공회(consiglio grande)에 기초한 대의제 정부이며, 그 전체로서 인민 또는 도시를 대표했다. 특히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특색 중 하나인 혼합정(mixed government) 이론이 이 시대에 세련되게 가다듬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혼합정이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다. 당시 이론가들(여기에는 마키아벨리, 프란체스코 귀챠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 도나토 지아노티Donato Giannoti의 이름이 거론된다)은 이러한 혼합정의 다양한 기관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줘야 할 것인지(즉 혼합정부를 어떻게 제도화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일인(전제자) 하에서든, 다수자(민중) 하에서든 한 곳에서 무제한의 자의적 권력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분할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해 동의했다고 말한다.

16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이 서서히 외국세력 등의 지배를 받게 됨에 따라 공화주의 이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정신은 이후 유럽 속에 널리 퍼진 계몽주의의 한 가지 원천이 되며, 영국시민혁명이나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19세기의 이탈리아 독립의 이론적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비롤리는 이탈리아에서 공화주의가 실제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서술한다.


3. 공화주의의 자유

그렇다면 공화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비롤리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그 핵심은 ‘자유’라고 파악한다. 이런 공화주의의 자유 개념을 설명한 것이 2장이다. 비롤리는 우선 정치적 자유를 간섭(interference)의 결여로서의 자유와 지배(domination)의 결여로서의 자유로 구별한다. 여기서의 ‘간섭’이란 어떤 사람의 행위를 방해하는 다른 누군가의 행위를 가리키는 반면에, ‘지배’란 자신이 타인의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에 의존하는(depend on)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의 자유를 ‘간섭’의 결여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는 간섭과 지배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간섭 없는 지배’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그는 폭군에 의한 시민의 지배, 남편에 의한 아내의 지배, 고용주에 의한 노동자의 지배 등을 거론한다. 여기서는 ‘간섭이 행해지는가 여부’가 아니라 ‘설령 지금 간섭이 행해지지 않더라도 간섭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나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는 상태인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다른 한편, ‘지배 없는 간섭’도 존재한다. 그것은 ‘법에 의한 제약’이다. 이 제약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개인의 자의적 이익을 위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또는 공공선public good을 지향한다는) 점으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다.4) 따라서 지배의 결여로서의 공화주의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지지하는 논리를 도출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장은 공화주의의 자유와 법이 맺는 관계를 더욱 자세히 논한다. 그는 과거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공화주의자가 법의 지배를 자유의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점,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제약을 개인의 자의적인 의지로부터의 유일하게 타당한 방어로 간주되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 논점에 관해서는 벤담처럼 “모든 법은 자유의 침해이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른바 자유주의)에서 나오는 반론이 있다. 홉스와 공화주의자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논쟁은 이 점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홉스는 법에 복종하는 이상, 루카(Lucca) 같은 공화국의 시민들도 법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같은 술탄의 신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해링턴은 루카의 경우 통치자와 시민이 공히 동일한 법률과 헌법에 복종하는 데 반해, 콘스탄티노플의 경우 술탄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제 맘대로, 즉 자의적으로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처분하기 때문에 루카의 시민이 더 자유롭다는 반론을 펼쳤다.

해링턴 같은 논의는 초기 자유주의의 이론가인 존 로크에게서도 발견된다. 로크의 책에는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논의를 토대로 비롤리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속박(제약)과 개인에게 자의적으로 가해지는 속박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자를 후자의 상위에 두는 것이 자유의 조건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이처럼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에 관해 간섭과 지배의 구별이나 자유와 법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논한다. 이것들은 페팃의 저작에서도 볼 수 있는 논점이며, 비롤리와 페팃은 모두 현대 공화주의 연구의 선구자인 스키너로부터 이러한 논점을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비롤리는 ‘논쟁’과 ‘수사학’이라는 관점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이해한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무엇이 자의적인 행위를 구성하는지, 개인의 자의적 의사에 예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가 소득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시민들에게는 완전한 자의적 간섭으로 간주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정당한 간섭의 사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비롤리는 여기서 당파적 논쟁의 발생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을 과학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고전적 의미에서의 수사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그는 어떠한 사실도 논쟁을 결정적이고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용될 수는 없으며, 또한 논쟁에 참여한 모든 당파가 만족할만한 방식으로 그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사실이 수립할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공선이나 법이 항상 만장일치로 결정된다는 예정조화적인 비전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지적이며, 바로 여기서 역사연구에 뿌리를 둔 그의 현실적인real 인식이 빛난다.


4.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

4장에서는 다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가 논의되고,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역사적 우선성이 주장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스키너의 주장(‘자유주의에 선행하는 자유’)을 따른 것인데, 여기서 비롤리가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은 그의 논의가 지닌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공화주의에서 파생된 원리가 보다 타당한 원리이고,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비롤리는 이러한 원리의 사례로 정치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개별 구성원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데 둔다는 점, 획일성에 대한 비판과 다양성에 대한 찬미, 권력분할의 권고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원리들은 J.S. 밀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미 마키아벨리 등의 저작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가 지닌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는 ‘자연적 권리’라는 학설이 ‘권리는 관습이나 법에 의해 인정될 때에만 권리가 된다’는 사실과 충돌한다는 문제를 품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공공봉사(공익에의 헌신)를 자유의 자연적 반려자로 파악하지만, 자유주의는 그것을 자유의 제한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롤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강조한다.5)

또 4장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일반적으로 공화주의를 공동체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논의도 있지만, 비롤리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는 공화주의의 공동체가 민족적·문화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라는 점, 어떠한 도덕적 선보다도 ‘정의’를 기초로 한다는 점(가장 중요한 공통선/공공선은 정의라고 한다)을 거론한다. 이처럼 그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를 완전히 상이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전자의 차이는 구별의 축이 ‘자연-인위’에 있으며, 루소 연구를 배경으로 한 비롤리의 입장이 여기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6)


5. ‘시민의 덕’과 ‘애국심’

다음으로 그는 스키너나 페팃이 그다지 충분하게 논하지 않은 ‘정념’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5장은 자유주의의 경우 비판적인 어조로 말하고 공화주의의 경우에는 중심테마의 하나로 간주된 ‘시민의 덕’(civic virtue)을 고찰한다. 그리고 6장은 시민의 덕(또는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애국심’(patriotism)을 논한다. 이런 점들을 비중있게 다룬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이고, 사실 이것들에 대해 논하는 두 개의 장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시민의 덕’에 관한 비롤리의 논의를 살펴보자. 우선 그에 따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시민의 덕, 즉 공동선에 봉사하길 마다하지 않는 ‘정서/기분’과 능력에 기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이론가들(특히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덕이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덕이 불가능한 이유로는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집단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선에 봉사하는 동기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또한 시민의 덕이 위험한 이유로는 만일 우리의 다문화사회 속에서 시민이 보다 덕스럽게 된다면, 시민은 보다 불관용하고 보다 광신적으로 될 것이며, 결국 덕의 지배가 시민의 자유를 보다 제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 놓여 있는 것은 시민의 덕을 욕망의 단념과 희생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에 반하여 비롤리는 사적인 삶을 단념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형태의 시민의 덕이 존재한다는 것을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해 설명한다. 거기서 시민의 덕은 사적인 삶의 기초로서 파악되며, 부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시민의 덕은 이성에 의한 정념의 압박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정념(시민적 자선)이 다른 정념을 지배하는 걸 허용하고, 시민의 덕이나 공화국에 대한 봉사가 사적인 삶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성질의 시민의 덕은 18세기의 프랑스 시민생활 속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가령 여기서는 시민들이 불법적인 이익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타자의 필요성이나 약함 때문에 이익을 얻지도 않으며,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 부정의한 법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서, 또한 공통의 이익에 관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지도자를 추천하기 위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종류의 조직에 들어가 활동한다는 것.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를 바라는 것. 국가의 역사에 관해서 알고 논의하고 반성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들이 시민의 덕의 내용이며, 이것을 행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로는 도덕감정(환대, 차별, 추락, 방만, 야만에 대한 보상)이나 양질의 상품과 의례에 대한 미적인 욕구, 특정한 것에 관한 고려(안전한 도로, 쾌적한 공원, 잘 정비된 광장, 존경할 수 있는 기념비, 좋은 학교와 병원 등), 명성(공적인 명예를 얻고, 의장의 자리에 앉고, 연설을 하며, 예식에서 맨앞에 서는 것)이 거론된다. 그리고 비롤리는 이런 형태를 취한 시민의 덕은 불가능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롤리에 따르면 이러한 시민의 덕, 즉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한다. 6장에서는 다른 현대공화주의의 이론가들이 그다지 다루지 않았던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논의된다. 우선 비롤리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대상이 ‘조국-자유로운 공화국’임을 강조한다. 여기서의 조국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났던 장소가 아니라 시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관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루소의 말을 인용한다. “조국을 만드는 것은 장벽도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법, 관습, 습관, 정부,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삶의 존재방식이다”. 또한 그는 “18세기의 정치학의 저술가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연적인 심정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또한 한층 더 좋은 경우에는 좋은 정부와 공공의 생명에의 참여에 의해 육성되는, 인공적인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의 ‘자연-인위’의 축이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이처럼 그가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인위’라고 파악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대비하여 이해되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의 ‘나라사랑’은 ‘자연적인 정서’이며 사람들의 문화적·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인위적 감정’이고 이것의 중심 가치는 정치적 가치에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비롤리도 기본적으로는 이것에 기초하여(이런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적 애국심과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구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화주의적 애국심에 의해서 국내의 통합은 문화·민족·종교의 동질성을 요구하지 않고서도 행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애국심이 있으면 종교적 정신이 없더라도 시민의 덕을 육성할 수 있다는 주장에 호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롤리는 종교적 신앙에서 불관용을 발견하고, 그것보다도 오히려 균형의 감각이나 회의의 감각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는 현대에서의 시민의 덕의 육성, 나아가 애국심의 재생과 보급을 위해 조국의 역사에서 의의를 찾아내는 것(기억과 기념축제의 중시)이나 정의와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것(이런 관점에서 복수·용서의 금지, 후견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다)을 강조한다. 또한 시민이 자치에 참여하는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장려된다.


6.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

이상으로 ‘시민의 덕’이나 ‘애국심’에 관한 그의 논의를 따라가 봤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것들은 자유주의의 주요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예상된 비판의 칼날을, 시민의 덕을 희생이라고 파악하는 입장이나, 문화적·민족적 동질성을 파악하는 종류의 내셔널리즘으로 향하게 하고, ‘시민의 덕’ 및 ‘애국심’의 적극적이고 온건한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정의를 기저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 한 가지 모습인데,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다. 그는 조국은 ‘공통의 집’인데, 그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집과 나란히 서 있는 집’이라고 말하고, 조국의 바깥 세계를 암시한 후에, “인간성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우리의 조국에 대한 의미보다 선행한다. 어떤 특정한 조국의 시민이기 전에, 우리는 인간이다. 이것은 민족이라는 장벽이 도덕적으로 귀를 막는 구실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그는 인간성이라는 심급을 고려하면서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를 사고한다. 그렇다면, 개인과 인간성 사이에 조국이라는 심급을 집어넣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우리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과 인간성 일반의 중개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개 역할을 맡은 것이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이다. 이처럼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은 그 외부로부터도 적극적인 의미부여가 이뤄지고 있다. 이 점에서도 그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와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에 관한 그의 이해나 자치에 대한 참가의 위상에 관해서는 논의가 갈라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자치에 참여함으로써 시민이 공공선에 애착(attachment)을 느낀다는 점을 거론하고, 또한 토크빌에 의거하면서 “시민들이 참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서로의 차이를 말할 기회를 갖고 있는 경우나, 논의하는 문제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권한을 도시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그의 의도를 넘어서서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개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이른바 문제를 자각하는) 데에 있어서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말할 경우에는 이러한 기초에 토대를 두고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공화주의의 논점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들을 숨겨놓은 논의가 포함되어 있기에 일독을 할 경우 큰 도움이 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Maurizio Viroli(2002)Republicanism, New York: Hill and Wang

Quentin Skinner(1998)Liberty Before Liber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Michael Sandel (1996) Democracy’s Discontent,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Philip Pettit (1997) Republican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hilip Pettit (1998) “Reworking Sandel’s Republicanism” Anita L. Allen & Milton

C. Regan Jr. (ed.) Debating Democracy’s Discontent, New York: Oxford University


1) 스키너는 흔히 ‘공화주의’라고 불리는 이 이론을, 이 이론가들이 반드시 왕정의 폐절을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마키아벨리를 통해 고대 로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 때문에 ‘신로마이론’이라고 부른다.


2) 공화주의에 관해서는 제도(혼합정체론), 덕(시민의 덕)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파악하여 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스키너나 페팃,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공화주의론의 핵심은 ‘자유’에 있다.


3) 그밖에 공화주의에 주목한 정치철학자로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있다. 그는 미국 공화주의의 전통을 파헤쳐 이것을 현대에 부활시키고자 한다(Sandel 1996). 페팃은 한편으로는 샌델의 논의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공화주의 이론과는 다르다고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적’ 공화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시민참여가 공화주의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Pettit 1998). 이런 관점은 스키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페팃의 논의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비롤리의 논의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4) 또한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유의 차이에 관해서도 말한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자율, 자유의지, 강제에 대한 반대 등을 주장한다(벌린이 말한 ‘적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자유는 자율보다는 강제에 예속될 항구적인 위험(constant danger)으로부터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법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시민의 욕구에 들어맞는가가 아니라 법이 자의적이지 않는가, 공공선을 지향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쓴다. 여기서 자기결정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성을 인정받는다. 그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벌린이 말한 ‘소극적 자유’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5) 이 점은 오히려 「서장」에서 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요소로서 법의 지배와 인민주권을 거론하고,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에만,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에만 특화된 빈약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6) 또한 6장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구별도 같은 축에서 이뤄지며, 이런 점에서 비롤리의 관점의 일관성을 볼 수 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1. 롤즈의 전환에 대한 응답
이른바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출발점으로 간주되곤 하는 마이클 샌델의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의 독자가 그의 두 번째 저작인 <민주주의의 불만 : 미국에서 공공철학의 연구>(1996)를 읽게 되면, 무엇보다도 우선 글쓰기 스케일에 큰 변화가 있다는 점 때문에 크게 놀랄 것이다.<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는 철학적인 개념 분석을 중심으로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을 시도한 책이다. 고찰 대상은 존 롤즈의 <정의론>(1971)이라는 단 한 권의 책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더욱이 논의의 대부분은 롤즈의 ‘자기’(self) 개념―샌델이 ‘무연고적 자아(unencumbered self)’라고 비판했던 것―의 타당성과 한계를 묻고 있다. 이에 비해<민주주의의 불만들>의 경우, 철학적인 분석은 뒤로 물러나고 롤즈에 대한 직접적 언급 역시 별로 없다. 오히려 미국의 대법원 판례나 연방정부의 경제정책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법적․정치적․도덕적 문제를 중요한 고찰대상으로 삼으며, 이것들의 변천과 해석을 둘러싸고 건국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는 장대한 (두 가지) 역사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변화를 초래한 것이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에서 샌델의 주요 비판대상이었던 롤즈의 이론적 전환이었음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롤즈는 1980년대에 자기론(자아론)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정의론>의 ‘칸트주의적 자유주의’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로 논리적 전환을 감행했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정통성의 기반을 자기(자아)의 존엄이나 개인의 선택 능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철학적인 자기(자아)에 관한 논의를 회피하고, 오히려 서구 입헌민주주의 전통의 ‘정치’ 문화 자체에서 그 정통성의 근거를 찾는 것이었다. 샌델의 이 책은 이러한 롤즈의 방향전환에 대한 극히 대담한 반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샌델은 롤즈의 ‘이론으로서의 자유주의’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문화 전통에서의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으로서의 자유주의’의 정당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롤즈의 시도가 최종적으로 실패했음을 증명하고자 하며, 현실의 법적․정치적 제도와 실천을 뒷받침하는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나아가 그 대안까지도 제시하려는 것이다.


2. 두 개의 공공철학, 두 개의 역사
그렇다면 이제 <민주주의의 불만들>에서 샌델이 제시하는 두 개의 공공철학과 두 개의 역사적 이야기의 이론적 틀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자. 샌델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자유주의는 결코 유일한 공공철학이 아니었다. 그가 자유주의의 경쟁자로 제시하는 것은 공화주의(republicanism)이다.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는 (1) 자유의 이념을 목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자기/자아의 선택의 자유로 이해하고, (2) 옳음(正)을 항상 선(善)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파악하며(선에 대한 정의 우선성, priority of rights over goods), (3) 정부는 항상 다양한 선(善)에 대해 중립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공화주의는 (1) 자유를 자기통치(self-government)로 이해하고, (2) 공동체에서 공유될 수 있는 공동선(common goods)을 중시하며, (3) 시민의 덕(徳)을 육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간주한다.
샌델은 미국의 역사를 이러한 두 개의 공공철학의 투쟁, 그리고 어느 한쪽(자유주의)의 승리와 다른 쪽(공화주의)의 쇠퇴의 역사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부분에서는 두 개의 역사적 이야기가 언급된다. 제1부인 "절차적 공화국의 헌법"(The Constitution of the Procedural Republic)에서는 미국 헌법을 둘러싼 논의와 판례의 변화 ― 헌법에 대한 공화주의적 해석으로부터 자유주의적 해석으로의 변화 ― 가 분석된다. 건국 당시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신앙이나 언론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권리 등은 시민의 자기통치를 위해 필요한 도덕성을 유지하고 육성하는 관점에서 제한되거나 옹호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재판소는 이러한 자유나 권리를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절차적인’(procedural) 차원에서 해석하고, 정부는 선에 대해 중립적일 것을 요구했으며, 그리하여 도덕적 판단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예를 들어 1973년 연방재판소 Roe vs. Wade 판결).
제2부 "시민권의 정치경제"(The Political Economy of Citizenship)에서는 실제의 정치․경제적 논의나 연방정부의 정책에서의 변화가 다뤄진다. 혁명 당시부터 혁신주의의 시대, 나아가 뉴딜 초기만 하더라도 정치적․경제적 정책에서는 여전히 시민의 덕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예를 들어 제퍼슨의 농본주의․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의). 또한 민주적 자치의 장애물이 된 권력 집중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가 정치경제학의 중심적 논점이었으며, 건국 초기부터 19세기 중반에는 연방정부로의 권력집중 대신에 주(州)로의 분권이, 혁신주의의 시대에는 대기업(big business)에 의한 자본 집중에 맞서는 반(反)트러스트법으로 대표되듯이 권력과 자본의 분산이 목표였다. 그러나 뉴딜 후기에 도덕적 문제를 괄호에 넣고, 그 대신 정부의 재정지출에 의해 정치․경제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케인지안 혁명’이 출현함으로써 덕의 육성과 권력의 분산을 목표로 한 공화주의적 공공철학과 정책은 폐기되고, 정치경제학의 초점은 ‘시민권의 유지와 육성’에서 ‘성장과 분배적 정의’로 이행하게 된다. 이리하여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양자의 역사적 이야기에서 공화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가 거의 결정적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의 한계가 노정된 것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불만’의 시작이기도 했다. 자유를 개인의 선택의 자유로만 이해하고, 공동체의 공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는 공화주의적 전통이 패배함으로써 초래된 시민의 자기통치의 상실과 공동체의 쇠퇴에 대한 ‘민주주의의 불만’에 답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70년대 이래, 미국의 내적․외적인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고조된 ‘민주주의의 불만’에 편승해, 공화주의적 수사학에 호소하여 도덕적․정치적 공간을 지배했던 것은 조지 왈라스(George Wallace),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제리 팔웰(Jerry Falwell) 등으로 대표되는 강고한 보수주의였다. 이러한 근래의 자유주의의 혼미와 보수주의의 대두에 대해 샌델은 공공철학으로서의 공화주의를 보다 다원적인 형태로 소생시킬 필요성을 역설한다.


3. ‘롤즈 비판’을 넘어서는 시도
이 글의 분량상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는 그의 실증적 분석을 낱낱이 검증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 책에 대해 평가와 비판을 해 보자.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에서는 철학적 논의(예를 들어 자기/자아와 선, 또는 자기/자아와 공동체의 관계성에 관한 고찰)와 정치적 논의(예를 들어 시민의 덕의 육성이나 문화의 보호에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에 관한 문제)라는, 두 가지 차원의 논점이 혼재되어 있음이 자주 지적되었다(Taylor, 1995, pp.181-203). 이에 대해 롤즈는 자유주의의 정당성의 기반을 ‘철학’에서 ‘정치’로 전환시킴으로써 대응하고자 했다. 즉, 자기/자아나 공동체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피하고, 정치적 전통에 의거한 ‘상호중첩된 합의(overlapping consensus)’로 논의의 초점을 이행시킨 것이다. 그러나 샌델이 비판하듯이, 실제로는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상호중첩된 합의’와 사회의 기본구조에 있어서의 ‘안전성’이라는 이름하에 종교적 관용, 낙태의 권리, 또는 재화의 분배와 차등원리의 문제 등 극히 정치적인 논의까지도 피해 버렸다.
이에 반하여 샌델은 철학적 논의와 정치적 논의, 이론적 고찰과 실증적 분석을 연관시킴으로써 ‘철학에서 정치로’라는 롤즈가 본래 목표로 삼았던 논쟁 영역의 전환을 충실하게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자아나 자유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 개념분석과 가족법의 판례나 노동정책에 관한 역사실증적 분석, 또는 칸트, 아렌트, 롤즈 등의 이론에 대한 해석과 제퍼슨, 잭슨, 로버트 케네디 등의 정책에 대한 해석을 맞물려 논의하는 샌델의 자세는 과거의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논쟁 영역을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롤즈가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한 미국의 정치문화에서의 다양한 갈등을 분절화함으로써, 그 전통에 정당성의 근거를 둔 롤즈 등의 자유주의에 대한 중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저작이 발간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에 관한 고찰은 칸트 해석이나 프라이버시의 권리의 범위 등 ‘철학’적 논의뿐만 아니라 현실의 판례나 정책을 대상으로 하여 시민의 덕이나 가족의 역할 등과 같은 ‘정치’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행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4. 공화주의는 현대의 공공철학이 될 수 있는가?
이처럼 샌델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시도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관점이 교착하는 새로운 논쟁의 차원을 개척했다는 것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를 공공철학으로서 부흥시킨다는 그의 정치적․실천적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첫 번째 원인은, 마이클 린드가 지적하듯이(Lind, 1996), 70년대 이래, 어쩌면 공화주의를 대신하여 새로운 공공철학으로서 출현한 보수주의와의 차이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있다. ‘철학에서 정치로’라는 논쟁의 전환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형이상학적 논의를 전개했던 아카데믹한 영역으로부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전개했던 현실정치Real Politik의 세계에 발을 담궜다는 것도 의미한다. 주지하듯이 미국의 보수주의는 자유지상주의와 도덕주의를 동시에 주장하는 특이한 보수주의인데, 공민권 운동에서 공화주의적 요소를 발견하고, 재화의 분배와 복지를 옹호한다는 점 등에서 그의 ‘비-보수주의적인’ 공화주의의 독창성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샌델의 공화주의, 또는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대립을 극복하는 제3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상으로서도 인식되고 있다(Etzioni, 1996).
그러나 샌델의 이 책에서는 현대적인 정치적 문제이자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논의에서 가장 중대한 초점이 되고 있는 젠더와 에스니시티의 문제에 관해 공화주의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은 거의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치명적 결함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샌델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하는 존재(storytelling beings)’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공화주의가 그랬듯이, 공공철학은 늘 당대의 현실적인 정치적 문제에 응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샌델이 킹 목사의 사상을 공화주의적인 것으로 인용하고 있듯이, 젠더나 에스니시티를 둘러싼 담론이나 운동에 일종의 ‘적극적 자유’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 가치를 “권리-이야기rights-talk”로 환원시켰던 자유주의자의 전략은 그 도덕적․정치적 가능성을 왜소화해 왔다는 그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더 젠더나 에스니시티의 문제에 관해 민감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샌델 자신도 인정하듯이, 역사적으로 공화주의는 인종․성별․계급에 의한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서도 기능해 왔으며, 샌델이 쇠퇴의 역사로서 그린 공화주의의 패배와 자유주의의 승리의 역사는 여성이나 소수자에게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방의 역사이기도 했다. 오히려 공화주의에는 샌델이 제시하는 위의 세 가지 특질에 덧붙여 (4) 퍼블릭-프라이버시(공과 사)의 편협한 구별, (5) 정치문화의 동질성의 전제라는 특질이 있으며, 이러한 특질에 의해 역사적으로 배제와 억압을 정당화한 이념으로서 기능해 왔던 것이 아닐까?
샌델은 배타적․강제적인 루소적 공화주의와 구별된 다원적인 토크빌적 공화주의를 현대적인 공화주의로 제시하고,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월마트Wal-Mart와 같은 거대쇼핑몰의 진출에 반대하는 sprawlbusters 운동 등, 현대에서 공화주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운동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도 공화주의의 특질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분절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공민권 운동의 성과인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공동선이라며 옹호하는 것이 가능할까? 싱글맘 가정에서 시민의 덕은 육성될 수 있을까? 보수주의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명쾌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편, 자유주의자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이를 변호하는데 주력할 것이며, 공동선이나 시민의 덕과 같은 개념을 폐기할 것이다. 샌델이 말하는 토크빌적 공화주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보수주의자와도 자유주의자와도 다른 대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공화주의가 현대에서 자유주의와도 보수주의와도 다른 공공철학으로서 부흥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현대적 문제에 대한 독자적이고 구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 때에야 부흥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공화주의의 특질, 특히 위에서 서술한 (4), (5)의 특질에 관한 ‘정치․철학’적 고찰이 다시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공동체주의를 한편으로 단순히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는 철학적 이론으로서만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방식의 보수적인 정치사상으로 찬양 또는 비판하는 경향이 아직 강한 한국의 많은 논자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철학적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그의 대담한 시도는 실천적 정치이론의 참된 가능성이라는 것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Michael J. Sandel (1996), Democracy’ Discontent: America in Search of a Public Philosophy, Cambridge: Belknap Press.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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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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