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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사회계약론>의 2부 5장 「생살권에 관하여/삶과 죽음에 대한 법권리에 관하여」라는 적절한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보존을 위해 생명을 걸 권리가 있다.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을 자살범이라고 누가 말한 적이 있는가? … 사회계약은 계약자들의 생명 보존을 목적으로 한다. … 남을 희생하고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원하는 사람은 필요할 때엔 마찬가지로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시민은 더 이상 법률이 그로 하여금 무릅쓰기를 요구하는 그 위험의 판단자가 아니다. 그리하여 <군주/통치자>가 그에게 ‘그대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라고 말할 때, 그는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그때까지 그 계약에 의해 안전하게 살아왔기에 그의 생명은 단지 자연의 은혜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조건부 선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사회계약론>>, 김중현 옮김, 웅진펭귄클래식, 2010, 67~68쪽)

루소는 여기에서 우선 첫째로, 자기 방어권을 양의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즉 생명의 긍정이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린 결과, 운 나쁘게도 죽어버린 경우처럼) 생명의 부정일 수도 있다고 역설한다.

둘째로, 홉스의 경우 방어권이나 안전성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한 반면에, 루소는 이를 집단적인 것으로 정정한다. “계약자들의 보존”이라고 루소가 복수형으로 말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계약자들 한 명 한 명의 생명의 보존이 아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서 루소는 셋째로, 어떤 사람의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부정할 수도 있으며,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역설한다. “그대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는 언명에 대해, 홉스는 그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계속 인정하지만, 루소는 그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생명을 위해 죽음을 초래한다는 생명권력을 떠받치는 이론은 이미 루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루소는 친구와 적이라는 사회에 관한 이분법과, 전쟁이라는 문제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게다가 사회적 권리를 침해한 악당은 자신의 중죄로 조국에 대한 반역자이자 배신자가 된다. 그는 법을 위반함으로써 조국의 일원이기를 멈추는 것이 되며, 조국과 싸우기까지 하는 것이 된다. 그때 국가의 보존은 그 악당의 보존과 양립할 수 없기에,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므로 죄인은 시민으로서보다는 적으로 간주되어 처형되는 것이다"
.(68쪽) D'ailleurs tout malfaiteur attaquant le droit social devient par ses forfaits rebelle et traître à la patrie, il cesse d'en être membre en violant ses lois, et même il lui fait la guerre. Alors la conservation de l'Etat est incompatible avec la sienne, il faut qu'un des deux périsse, et quand on fait mourir le coupable, c'est moins comme citoyen que comme ennemi.

여기서 마지막 구절은 조금 모호하게 번역되어 있다. “죄인을 죽음에 이르게faire mourir 할 때, 죄인은 시민이라기보다는 적으로 간주되어 살해되는 것이다”의 의미가 적합하다. 어쨌든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규율/조절하는 제3자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대립하는 이질적인 두 집단 또는 범주 중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적으로 간주하는 형태로 여겨진다. 더욱이 동일한 국가(커먼웰스)의 내부에서도 그러하다.

나아가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본보기로 처형을 한다 할지라도, 살려 둘 경우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처형할 권리가 없다./그대로 계속 살아갈 경우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을 빼면, 설령 본보기로 처형을 한다고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69쪽)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인정되지 않지만,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위험한 인간”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생명권력이 왜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해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인 인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것이다.”(<앎의 의지>) ‘생물학적’이라는 형용사가 없더라도 타자에게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생명을 말소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는 이미 루소에게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강력한 호흡을 불어넣은 최초의 사람인 루소는, 그러나 푸코가 ‘고대의 법권리’의 원형으로 본 홉스의 정치철학과는 다양한 의미에서 거리를 두며,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쫓아내는 ‘권력’으로 크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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