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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와 모럴리티 :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론

「負債とモラリティ―デヴィッド・グレーバーの負債論」、 

『現代思想』2012年2月号(特集:債務危機―破産する国家―)、40巻2号、218-231頁。

마츠무라 케이이치로(松村圭一郎)


부채 그 첫 5000년

 

2011917일에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 이 운동에서, ‘총회’를 개최하자고 호소하고 합의제에 기초한 민주적 체제 형성을 위해 노력한 한 명이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였다. 그레이버는 전지구적 정의운동(Global Justice Movement)”의 활동가이며, 아나키스트로도 유명하다. 그가 월가 점거의 2개월 전에 출판한 부채 : 그 첫 5000(2011)은 일련의 사회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연구로서 큰 주목을 모았다.

월가 점거에 참가한 사람들의 항의에서는 두 개의 초점이 있었다[주1]. 우선, 정치에 있어서 돈의 영향력 문제. 다음으로 부동산 담보부터 신용대출(credit loan), 학생대출(loan)에 이르는 부채를 둘러싼 문제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은 채무를 탕감받고 공적 자금으로 구제된 반면, 개인은 대출금(loan) 상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주1]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20111026일 기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 월가 점거의 안티-리더에서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1-10-26/david-graeber-the-anti-leader-of-occupy-wall-street#

그레이버는 인류학 연구를 감안하면서 부채나 화폐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일반적인 경제학의 이해와는 완전히 다른 부채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본고에서는 그의 논의를 뒤따라가고 싶다.

 

폭력, 모랄리티, 화폐

부채에 대한 그레이버의 문제의식의 배경에는 그가 인류학적 조사를 벌였던 마다가스카르에서의 경험이 있다(Graeber 2011 : 4). 아프리카 국가들이 선진국에서 조달한 거액의 차입금이 커지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지원의 조건으로 긴축재정을 요구했다. 이른바 구조조정정책이다. 많은 나라에서 농업 보조금이나 의료 등 사회서비스의 예산이 삭감되고, 빚 갚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레이버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조사를 시작한 1980년대 말, 현지에서는 말라리아가 창궐했다. 구조조정정책 속에서 말라리아의 매개체인 모기 퇴치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그 결과, 이미 수십년 동안 말라리아가 근절됐던 중앙고지에서도 말라리아 감염이 확산되면서 1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은행의 재무제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고 있는데도 이런 사태가 묵인됐다. 그레이버는 우리가 부채개념의 우연성을 모른다는 데 문제의 근원이 있다고 지적한다.

부채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그레이버는 다음의 예를 들면서, 문제의 소재지를 보여준다(Graeber 2011 : 5-7).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 지불을 부과받았다. 이라크는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배상금을 여전히 지불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패전국은 전승국의 전쟁비용이나 손해를 부채로 짊어졌다. 거꾸로 패전국이 배상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 아이티에서 반란군이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한 직후, 프랑스는 몰수당한 플랜테이션과 전쟁비용에 대한 배상으로, 180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를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완전히 다른 양상의 부채도 존재한다. 1980년대부터 일본이나 독일, 한국 등 국내에 미군 기지가 있는 국가들은 미국의 국채를 보유하게 됐다. 이것은 공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레이버는 부채가 양의적인 얼굴을 갖고 있으면서도, 거기서 지배와 종속에 관한 폭력이 나누기 힘들게 얽혀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점은,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 인류 역사에서 종교적인 의무나 도의성의 문제로 다뤄져 왔다는 점이다(Graeber 2011:8-13). 수천 년 동안 부자와 빈자의 싸움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투쟁이기도 했다. 항상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논의가 계속됐다. 많은 장소에서, 빌린 돈을 갚는 것이 도덕적으로 요구된 동시에, 돈을 빌려준 사람도 나쁘다고 간주됐다. 중세의 프랑스에서는 돈놀이의 도의적인 입장이 큰 문제로 여겨졌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자를 취하는 것을 금지하려 했고, 고리사채업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이 퍼졌다.

다른 한편, 중세의 힌두의 법률에서는 이자를 취하는 사채[사금융]가 허용되고, 빌린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 대주[貸主, 빌려주는 사람]의 집의 노예나 가축으로 다시 태어난다[탈바꿈한다]고 여겨졌다. 일본의 설화에서는 거꾸로 폭리를 취한 사채업자 여성이 반인반수의 괴물로 둔갑하고, 친족이 모든 빚을 탕감해야 겨우 죽을 수 있었다. 모든 종교적 전통은 빌려주는 사람과 차주[借主, 빌린 사람] 중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죄가 더 많은가라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이렇게 부채는 언제나 도덕과 정의의 문제로 다뤄져 왔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것이 비즈니스의 문제라고 이야기되기에 이르렀는가? 도덕적 의무를 경제적인 부채로 간주하는 것은 무엇을 초래했는가? 그레이버는 부채가 기타 의무와 다른 것은 지급해야 할 금액으로 계량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Graeber 2011: 13). 이렇게 됨에 따라 부채는 비인격적이게 되며, 이전 가능해졌다. 원금이나 잔액, 이자율을 계산할 수 있으면, 빌려준 사람이 누구인가, 빌린 사람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이 도덕을 산술의 문제로 만든 것이 화폐였다.

그레이버는 폭력과 수량화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Graeber 2011: 14). 프랑스의 고리대금은 교회도 매입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일본의 설화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여성의 남편은 영주였다. 무력을 갖지 못한 자는 집요한 징수[부채 추심]를 할 수 없다. 폭력, 혹은 폭력의 위협이 인간의 관계를 산술의 문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것이 부채를 둘러싼 모든 도덕적 혼란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레이버는 이 점이 현대의 시장과 국가 같은 시스템에서 자유나 도덕, 사회성이라는 기본 관념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논한다.

본서를 통해 그레이버는 경제와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다양한 부채에 관한 신화를 검토한다. 이로부터 국가와 시장이라는 대립하는 원칙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이, 함께 태어나고 서로 뒤얽혀 왔던 역사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가 처음으로 다루는 신화는 물물교환화폐의 기원에 관한 신화이다.

 

화폐와 부채의 기원

부채는 정확하게 계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화폐가 필요하다. , 부채의 역사는 화폐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레이버는 여기에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가 있다고 논한다(Graeber 2011: 21-23).

화폐의 기원을 말하는 경제학자에게 부채는 항상 화폐 이후에 발달한 것이었다. 인류학이 그 잘못을 줄곧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적으로는 신용대출과 부채는 순전히 경제적 동기에서 생기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래서 부채가 화폐 이전에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제학자는 교환의 매개로서의 화폐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했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직접적인 물물교환은 번거로워진다. 화폐가 매개가 되고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시장이 생겨나고 거래가 잘 기능하게 됐다. 그러나 그레이버는 이 신화가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한다.

화폐가 미개의 물물교환을 대체했다는 신화의 기초를 만든 것이 아담 스미스였다(Graeber 2011: 24-28). 스미스는 화폐가 정치체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그 이전에 화폐와 시장이 존재했을 뿐 아니라 화폐와 시장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인간만이 어떤 것을 다른 물건과 교환하고 거기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이런 인간의 성질이 노동의 분업으로 이어지며, 인류의 번영과 문명을 가져왔다. 정치의 역할은 화폐의 공급을 보증하는 등 한정적인 것에 불과하다. 스미스의 이런 관점은, 경제가 도덕과 정치에서 분리되어 그 자신의 규칙에 입각해 작용한다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레이버는 이런 설명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Graeber 2011: 28-36). 인류학은 물물교환이 이방인이나 적들 사이에서 축제적, 의례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줬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상대, 계속적인 관계를 맺을 일이 없는 상대와의 교환에서는, 상호 책임과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회성 물물교환이 적절했다. 경제학의 텍스트는 서로 교환을 하는 사람들이 친해진다고, 지위의 차이도 없다는 식으로 현실을 벗어난 가정을 한다. 실제로 사회관계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아니라 증여교환이 이루어진다. 인류학이 밝혀왔던 것이 이것이다[주2].

[주2] 그레이버는 증여교환에 있어서 화폐를 거치지 않고 거래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많은 인류학적 연구가 논했던 교환영역의 예를 든다(Graeber 2011: 36-37). 교환되는 물건들에 등급이 매겨진 범주가 만들어지고, 동일한 범주 사이의 교환만이 허용된다. 예를 들어 높은 등급에 위치한 산호 목걸이를 받은 사람은 같은 등급에 있는 목걸이나 보석을 돌려주어야 한다. 등급이 다른 물건은 교환할 수 없다. 이렇게 교환물의 등가성이 보증된다

세련된 물물교환은 오히려 국가경제의 붕괴와 함께 생겨났다(Graeber 2011: 37-41). 최근에는 1990년대의 러시아, 그리고 2002년 전후의 아르헨티나에서 화폐가 사용되지 않게 됐다. 과거 로마 제국과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가 몰락하고 물물교환으로의 전환이 일어났을 때에도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신용 거래가 이뤄졌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기원전 3500년의 기록도, 동전의 발명에 앞서 신용거래가 이루어졌다고 적고 있다. 수메르 문명 시대에 발명된 동전의 사용 방법에서 우리는 화폐가 상업적 거래의 산물이 아니라 물자를 관리하기 위해 관료기구가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채나 시장에서의 가격이 은화로 산정되더라도 그것을 은화로 지불할 필요는 없었으며, 대부분 신용 거래였다.

그레이버는 다양한 시대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물물교환의 신화가 허구라고 논한다. 이른바 버추얼 머니(가상통화)’가 먼저 만들어졌고, 동전은 한참 뒤에 만들어졌다. 꽤 오랫동안 화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신용거래를 대체하지도 않았다. 물물교환은 화폐의 일시적인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럼 왜 경제학에서 이 신화가 유지된 것일까? 그레이버는 그 이유로 물물교환의 신화가 경제학 담론 전체에서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Graeber 2011:44-45). 경제학에는 물물교환 시스템이 경제의 기초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개인과 국가에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배제된 것이 국가 정책의 역할이었다. 그레이버는 화폐에 관한 두 이론을 참조하면서 국가와 화폐의 관계를 고찰한다.

 

화폐의 신용이론과 국가이론

화폐의 신용이론이라는 입장이 있다(Graeber 2011: 46-47)[주3]. 이 이론에서 화폐는 상품이 아니라 셈[계량]을 위한 도구로 간주된다. , 화폐는 사물이 아니다. 화폐 단위는 단순히 계산의 추상적인 단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척도로서의 화폐는 무엇을 측정하는가? 그 대답이 부채이다.

[주3] 화폐의 신용이론의 논자로서 그레이버는 Innes(1914)를 꼽고 있다

신용이론가들은 은행권(銀行券)이란 1온스의 금과 똑같은 가치를 담은 뭔가가 지불된다는 약속이라고 논했다. 이런 의미에서는, 화폐가 은이든 금처럼 보이는 구리와 니켈 합금이든, 은행 컴퓨터에서의 디지털 점멸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것들은 차용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입장이 독일역사학파로 알려진 역사가가 주창한 화폐의 국가 이론이다(Graeber 2011: 47-49)[주4]. 화폐는 계량[] 단위이기 때문에 황제나 국왕의 관심사다. 그들은 결국 국내에서 도량형의 통일을 목표로 했다. 실제의 통화의 순환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국가가 세금의 납부 등으로 인정하기만 한다면, 통화가 된다. , 통화는 정부에 대한 채무의 표시로서 거래되어 왔다. 근대의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성공한 근대적인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설립되었을 때, 영국의 은행가연합은 왕에게 120만 파운드의 대출(loan)을 제공했다. 그 대신 그들은 은행권 발행에 대한 왕실의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대출은 상환되지 않고 있다. 최초의 대출이 상환되어 버리면, 영국 전체의 화폐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주4] 그레이버는 Knap(1925)의 화폐의 국가 이론 등을 참조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국가가 왜 화폐를 이용해 과세를 하는지가 밝혀진다. 스미스가 상정했듯이,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시장의 자연스러운 작용에 의해 금과 은이 화폐가 된 게 아니다. 그레이버는 오히려 화폐와 시장이 국가에 만들어졌다고 강조한다(Graeber 2011: 49-50)[주5]. 국가와 시장이 대립한다고 하는 스미스에 유래하는 자유주의자의 사고방식은 잘못이며,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국가 없는 사회에는 시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5] 그레이버는 다음의 예를 든다(Graeber 2011: 49-50). 처음에 동전을 주조하고 병사에게 건넨다. 그리고 국왕의 모든 가족에게 동전으로 세금을 낼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단숨에 국가경제가 병사의 공급기계로 바뀐다. 모든 가족이 동전을 획득하기 위해 병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제공하려 하며,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병사가 되는 인간을 제공한다. 시장은 이렇게 고대의 군대의 주변에서 생겼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1901년의 프랑스의 점령에 의해 인두세가 부과됐다(Graeber 2011: 50-51). 이 세금은 새로이 발행된 마다가스카르 프랑으로만 지불이 가능했다. 납세는 수확 직후 이뤄졌으며, 농민들은 수확한 쌀을 중국인이나 인도인의 상인에게 팔고 지폐를 손에 넣었다. 수확기는 쌀의 가격이 가장 낮은 시기였다. 많은 쌀을 팔아야 했던 세대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면 가격이 비싼 시기에, 같은 상인에게서 외상으로 쌀을 다시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빚에서 벗어나려면 환금 작물을 짓거나 아이를 도시와 프랑스인 식민자의 농원에 일하도록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싼 노동력을 농민에게서 착취하기 위한 장치였다. 농민의 수중에 남은 돈은 중국인의 가게에 진열된 우산이나 립스틱 같은 상품의 소비에 사용됐다. 이 소비자의 수요는 식민자가 없어진 후에도, 마다가스카르를 프랑스로 영원히 연결시켰다. 1990년에 혁명 정부에 의해 인두세가 폐지되었을 때 시장 논리는 이미 침투했다. 같은 것이 유럽의 군대에 의해 정복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 없었던 시장이 바로 주류경제학이 부정한 국가에 의해 창출된 것이다.

 

원초적 부채이론으로 보는 사회=국가의 신화

현재 우리는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낸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처음의 사회계약으로 돌아간다. 그 계약이 누구에 의해 언제 체결됐는지 아무도 모르며, 왜 먼 조상에 의해 이루어진 계약에 아직도 속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시장이 정부보다 전에 생겨났다고 가정하면, 이것들은 이해 가능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모든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프랑스에서 발전한 원초적 부채이론이다(Graeber 2011: 55-60)[주6]. 이 이론은 최근 유로의 성질에 대한 논의에서 생겨났다. 중심적인 논의는 국가의 사회정책으로부터 금융정책을 떼어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원초적 부채이론은 그것들이 항상 같은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정부가 세금에 의해 화폐를 만드는 것은 모든 시민의 상호 부채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채는 사회의 기본이다. 그것은 화폐나 시장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오히려 종교적인 것으로서 존재했다. “원초적 부채는 누구나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보증하는 사회의 영속성에 지고 있는 부채이다. 최초의 왕들은 인간과 우주를 지배하는 특권적인 중개자로서의 신성 왕이었다. 왕이 인민의 원초적인 부채에 대한 후견인이었다면, 정부가 세금의 지불을 요구하는 이유는 알 수 있다. 세금은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부채를 측정하는 수단이었다. 그레이버는 이 설명이 설득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Graeber 2011: 60-62).

[주6] 그레이버는 원초적인 부채 이론의 대표자로, 아글리에타 & 오를레앙(1992, 1995) 등을 들고 있다

원초적 부채 이론가들은 인간성의 조건이 사회(/국가)에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고대세계에서는, 보통 자유시민은 세금을 내지 않고, 피정복민에게만 공납이 부과됐다. 설령 국가가 수수료와 범칙금, 관세 등을 시민에게 부과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세계의 수호자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최근까지 많은 사람은 자기가 어느 나라 정부 하에 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다. 설령 사람들이 무한한 부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거기에 사회라고 불리는 자연의 단위는 없었다.

사회가 자명한 개념으로 보이는 것은 그 말을 국가과 거의 동의어로 쓰기 때문이다. 사회가 존재하고 정부가 그 사회를 대표하거 세속적인 으로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프랑스 혁명 때에 생겼다. , ‘사회는 근대 국민국가의 개념과 함께 탄생한 것이다[주7]. 그레이버는 사회가 국가에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왔다는 의미에서 원초적 부채이론의 사고방식이 내셔널리스트의 신화라고 지적한다(Graeber 2011: 69-71).

[주7]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그레이버가 지적하는 것이 오귀스트 콩트와 에밀 뒤르켐 같은 사회학자였다(Graeber 2011: 69-70). 콩트의 사회에 대한 무제한의 의무라는 사고방식이 사회적 부채라는 관념과 연결되고, 유럽에서의 사회개량주의자나 사회주의의 정치가들의 슬로건이 됐다. 뒤르켐에게 있어서 모든 종교는 인간의 상호의존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법이며, ‘사회는 최종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사회국가와 동일시됐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개인은 서로 아무것도 빚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시장의 논리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도 상환할 수 없는 부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국가의 논리가 있다. 그레이버는 그것이 허위의 이항대립이라고 논한다.

 

자기희생과 구제에 관한 논리

물물교환의 신화와 원초적 부채의 신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인간의 생활을 일련의 상업적 거래로 봤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부채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Graeber 2011: 73-80).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의 관계야말로 모든 인간관계에 앞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도 언어와 인간의 사고의 기원을 교환에서 찾았다. 교환이나 매매가 먼저이며, 사회는 나중에 생긴다. , 타자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은, 엄밀하게 상업적인 관점에서 생겨났다고 간주됐다. 그러나 니체는 스미스와는 달리, 모든 거래가 즉각적으로 청산되는 세계를 상상하지 않았다. 그는 상업적 계산勘定이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간의 모랄리티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독일어의 채무(Schuld)’부채둘 다의 의미를 가진다고 지적한다[주8].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부채의 감각이 영속적인 죄의식으로 전환되고, 죄의식이 자기혐오나 고행이라는 자기희생에 이르는 것을 시사한다. 기독교의 메시지의 핵심에 있는 구원 영원한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신 당신의 자식을 희생시키는 을 금융 거래의 용어로부터 설명한 것이다.

[주8] 니체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논한다(Graeber 2011: 77-79). 부채를 갖는 것은, 단순히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빌려주는 사람은 빚을 상환할 수 없는 빌린 자의 신체를 기꺼이 욕보이거나 고통을 주고 벌을 준다.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 때,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와의 관계를 이런 관점에서 상상한다. 부족은 그들에게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그들은 부채를 진다. 그 법을 따라, 자기 희생을 치르는 것은 그 빚을 갚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전제와 동일한 곳에서 시작되는 니체의 논의는 결국 원초적인 부채 이론과 같은 귀결에 이른다

그레이버는 니체처럼 모랄리티를 상업적 거래를 바탕으로 상상하는 관점을 상대화하려 한다(Graeber 2011: 80-87). 구원(redemption)의 히브리어의 어원은 누군가에게 팔린 것(특히 조상의 땅이나 빌려준 자에게 건넨 저당)을 다시 사는 것을 의미했다. 히브리 왕국의 예언자나 신학자가 상정한 것도, 빚의 인질로 사로잡힌 가족을 되찾는 것이었다. 흉년에는 가난한 자는 부채를 지고, 토지의 권리를 잃고 소작인이 되거나 자녀를 하인이나 노예로 내놓아야 했다.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 부채 대탕감의 해”(Jubilee)의 법이다. 모든 부채는 칠년이 지나면 탕감되며, 부채 때문에 수감된 자들도 석방됐다. 구원은 더 이상 뭔가를 다시 사는 것도 아니었다. 이른바 계정勘定 시스템 전체의 파괴였다.

구약성서 시대부터, 부채는 도덕적 논의를 환기했다. 계급 간의 정치적 싸움은 갇힌 자의 해방과 토지의 재분배 같은 부채의 탕감을 탄원하는 형태를 취했다. 성서와 기타 종교적 전통에도 그런 요구를 정당화하는 도덕적 담론이 보인다. 그레이버는 거기에도 시장의 언어가 피하기 힘들게 혼동됐다고 논한다.

 

경제관계의 도덕적 근거

부채의 역사를 펼쳐 있는다는 것은, 시장의 용어가, 얼마나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 침투했는가, 표면적으로는 그것에 반대하는 도덕적, 종교적인 담론에도 시장이 용어법을 제공하고 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기도 하다(Graeber 2011: 89-90). 베다(Veda)나 기독교에서도 처음에는 모든 모랄리티가 부채로서 기록되면서도, 모랄리티가 참으로는 부채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드러난다. 종교적 전통은 보다 광대한 우주론적 답변으로 해결을 도모하려 해 온 것이다.

현대의 사회이론은 이 점, 놀랄 만큼 무력했다(Graeber 2011: 91). 1929년에 마르셀 모스가 증여의 인류학적 논의를 시작한 이후, 엄청난 논의가 거듭됐다. 그러나 그것들은 증여가 부채를 초래하며, 받는 쪽은 답례를 해야 한다는 호혜성의 논의로 시종됐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교환이론으로 불리는 연구도, 호혜성을 토대로 전개됐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생활이 말의 교환인 언어, 여성의 교환인 친족, 물건의 교환인 경제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저에 호혜성의 원리가 상정됐다. 그레이버는 모든 정의와 도덕적 올바름을 호혜성으로 환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Graeber 2011: 91). “눈에는 눈을의 원칙은 정의라기보다, 오히려 집요하게 잔인함을 상기시킨다. 어머니와 어린애처럼 호혜성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분명 인간은 정의와 모랄리티의 감각을 부모로부터 배운다. 우리는 부모에게 빚지고 있는 것을 모종의 부채로서 상상할 수 있는 한편으로, 그것이 사실 때 상환할 수 있는, 혹은 변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상환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채인가? 부채가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인가?

그레이버는 여기서의 포인트를 다음처럼 말했다(Graeber 2011: 91). 세계에는 극단적인 평등과 불평등이 존재하며, 각각에 독자적인 모랄리티가 있다. 특정 상황마다 일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논의하는 방법이 있으며, 각각의 모랄리티는 호혜적 교환과는 전혀 다르다. 그레이버는 경제관계가 뿌리내린 주요한 도덕적 원칙을 코뮤니즘, 교환, 위계질서라는 세 가지 점에서부터 검토한다.

 

코뮤니즘, 교환, 위계질서

그레이버는 코뮤니즘을 각각의 능력에 따라서, 각각의 필요성에 응한다라는 원칙대로 인간관계라고 정의한다(Graeber 2011: 94-96). 코뮤니즘은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도 아니고, 생산수단의 공유와도 관계없다. 그것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인간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무엇이다. 모든 사회 시스템은, 자본주의에서조차도 항상 코뮤니즘의 기반 위에 구축되어 왔다.

누구나 어떤 공통의 프로젝트에서 공동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코뮤니즘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거기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능력에 따라 사람들에 일을 분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기업에서도, 내부는 코뮤니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임기응변에 대처할 필요성이 높아질수록, 기업은 더 민주적으로 된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코뮤니즘은 모든 인간의 사회성의 근저에 있으며, 사회를 가능케 하는 토대이다. 이 토대로서의 코뮤니즘은 사회적 평안의 실질이 상호의존에 있다는 인식이다. 그레이버는 그것이 호혜성이 아니라고, 혹은 매우 넓은 의미에서의 호혜성 밖에 없다고 논한다(Graeber 2011: 98-102).

코뮤니즘은 교환이나 호혜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기껏해야 상호의 기대나 책임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한정된다). 그레이버는 교환이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도덕적 논리라고 강조한다(Graeber 2011: 102-108). 교환은 등가성을 의미한다. 쌍방이 얻은 것과 같은 것을 상대에게 주는 상호적인 과정이다. 상업적 교환은 비인격적이고, 원칙적으로 두 물건의 가치만 비교된다. 교환되는 물건은 등가로 간주되고, 동시에 주고받는 사람도 대등하다고 간주된다. 쌍방에 새로운 추가 부채와 의무가 없을 때, 양자는 함께 자유롭게 이별하다. 그래서 왕은 교환을 좋아하지 않으며 커뮤니티 중에서도 관계가 해소되는 교환이 기피된다.

교환은 공적인 평등성을 나타낸다. 반대로 확연한 위계의 관계에서는 호혜성이 작동하지 않는다(Graeber 2011: 109-113). 농민이 식량을 제공하고 영주가 보호해주는 것은 호혜성이 아니다. 위계는 관례라는 논리에 의해 작용한다. 우열을 구별하는 선이 명확하게 그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관계의 틀로서 계속적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관계는 관습으로서 규정된다. 어떤 사회관계도 최초부터 관습적으로 불평등한 것처럼 간주된다. 그것이 카스트의 논리로 전환되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간주된다. 이제 일반적인 공정성이나 호혜성의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선물이든, 지급이든, 상위자와 하위자 사이의 물질적 부의 교환에서는 쌍방에게 주어진 사물이 근본적으로 다른 질의 것으로 간주된다. 그 가치는 수량화할 수 없으며, 계산[]을 맞추는 방법도 없어진다.

그레이버는 이런 세 가지 관점에 대해 상이한 사회 유형이 있는 게 아니라, 복수의 도덕적 원칙이 항상 어디에도 병존하고 있다고 말한다(Graeber 2011: 113-114). 문제는 완전히 다른 도덕적 설명의 틀을 오가는 데도, 왜 이 모든 것을 호혜성으로부터 설명하는 것이냐는 점이다.

호혜성은 우리가 정의를 상상하는 주요 방법이었다(Graeber 2011: 114). 특히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이념적 사회를 만들려고 할 때 참조됐다. 코뮤니즘을 추상적인 것으로서 상기할 때에도 호혜성을 통해 이뤄진다. 위계도, 현실의 사회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최종적으로 호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사회와 문화를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하는 인류학자에게 있어서도, 호혜성이 사회 전체상을 그리는 설명틀이 됐다[주9].

[주9] 여기서의 그레이버의 논의는 굳이 호혜성이나 교환을 좁은 의미로 파악함으로써, 특 특수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인류학에서는 그가 말하듯이 넓은 의미의(이념적)” 호혜성이 논의의 중심이었다. 예를 들면 小田(1994)는 레비스트로스의 교환론에 근거하면서 [부담감]’이라는 부채의 관점에서, [부담감]을 지속시키는 증여교환’, [부담감]을 무한하게 하는 재분배’, [부담감]을 애매하게 하는 분배’, [부담감]을 해소하는 시장교환이라는 네 가지 교환유형을 제시한다. 그레이버가 말하는 코뮤니즘은 분배’, 위계질서는 재분배’, 교환은 시장교환에 해당하며, “부채가 특정한 상황 속에서 생긴다(강조되거나 모호하게 되거나 한다)”라는 논의와도 겹친다. 그레이버는 호혜성이라는 단일한 원리로부터 사회의 전체성을 설명하려 하는 지향 자체에,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환원하는 것과 같은 위험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부채란 무엇인가? 그레이버는 부채가 특정 상황에서 생기는 점을 강조한다(Graeber 2011: 120-122). 먼저 양자가 함께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은 것이 필요하다. 증여라면, 사회적 신분의 평등성이 전제된다. 금전 대출의 경우, 쌍방이 법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적 부채는 탕감된다. 만약 구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부채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채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채는 아직 완료되지 않은 교환이며, 코뮤니즘은 영원한 상호 부채의 상태이다. 위계는 상환할 수 없는 부채로부터 구축되고 있다.

부채가 없어지면, 평등이 회복되고, 양자는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한다. 부채는 그 동안에 생긴다. 어떤 지속적인 사회관계도 부채의 형식을 취한다. 부채 없는 세계는 원초적인 카오스이다. 서로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것도 없이 누구나가 고립된 존재가 된다.

 

인간의 교환이라는 폭력 : 노예제의 역사

모든 인간생활을 교환/호혜성으로 환원하는 것은 그 밖의 모든 경제적 경험인 위계질서나 코뮤니즘을 제외하는 것을 의미한다(Graeber 2011: 127). 결과적으로 경제에 대한 정화된 시각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경제학자가 주장하듯 경제생활이 물물교환에서 시작되며, 누구도 강간도 고문도 당하지 않고 순수하게 화살이 오두막과 교환되는 이야기는 환상에 불과하다.

고대의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의 노예가 대량으로 있었고, 그것이 화폐로서 기능했다(Graeber 2011: 128-130). 이것에 관해 화폐의 역사를 적은 문헌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류학의 연구대상이었던 원시화폐도 경제학에 의해 무시됐다. 이 화폐는 매매에는 사용되지 않고 오로지 사람들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재조직화하기 위해 이용됐다. 사회생활이 그 화폐의 주변에서 전개했던 것만큼 중요한 것으로 이른바 사회적 통화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상업/시장경제는 비교적 새로운 존재이다. 오히려 줄곧 인간의 경제가 우세했다. 그 인간의 경제가 갑자기 더 큰 경제적 순환인 상업적인 경제로 통합되었을 때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을까?

대부분의 인간의 경제에서 화폐는 특히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용됐다(Graeber 2011: 131-133). 다만 남성 측에서 신부의 친족에게 지급하는 혼수의 화폐는 신부라는 부채를 갚기 위해 지불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채가 있음을 인정하는 증서였다. 나중에 남성의 친족으로부터 여성이 제공되거나 부부의 자녀 중 한 명이 아내 쪽의 일쪽(clan)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대됐다. 살인 배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피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살인의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래 이빨이나 놋쇠 막대 같은 화폐가 건네졌다. 그것은 살인자의 친족이 피해자 가족에게 생명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징표였다. 아무도 그 화폐로 잃어버린 생명과의 등가교환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대리로서의 화폐보다 훨씬 귀중한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는 것의 승인이었다.

그러면, 부채를 지불하지 않는 것의 표시였던 화폐가, 어떻게 그것에 의해 부채가 소멸할 수 있다는 지불형식으로 전환된 것일까? 그레이버는 렐레(Lele)를 대상으로 한 메리 더글라스의 연구 등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논한다(Graeber 2011: 137-146). 인간관계에 새겨진 선호와 의무, 기대와 책임이라는 끝없는 미궁을 타개하기 위한 폭력이 모든 경제관계의 첫 번째 규칙 인간의 목숨은 인간의 목숨으로 밖에는 교환할 수 없다 의 극복을 가능케 했다. 인간의 목숨이 물질적인 사물과 등가가 되는 것은 폭력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인간의 경제에서 무언가를 매각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 그것을 문맥에서 떼어 낼 필요가 있다. 노예는 더 이상 부모도 친족도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매매할 수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레이버는 나이지리아의 티브사회가 경험했던 노예무역의 역사를 추적하고, 목숨의 대가가 불가능한 것의 증거로서의 화폐가, 어떻게 등가교환 가능한 것으로 전환했는지를 탐구한다(Graeber 2011: 148-164). 사회적 관계에서 떼어 낸 시체로서의 노예가 생성하는 과정은 인간의 경제 속에서 진행됐다. 통과의례를 위한 지불이나 죄나 배상을 산정하는 수단, 사회적 통화, 부채의 저당잡히기 등의 동일한 구조가 정반대의 것으로 전환됐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제가 상업적인 경제와 접촉한 곳에서는 같은 일이 일어났다. 특히 선진적인 군사기술과 만족할 줄 모르는 노동력 수요가 동반될 때 현저했다. 인간이 교환의 대상으로서 사회적 문맥에서 떼어내지고, 부채를 측정하는 수단이 되려면 폭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인간다운 상호 약속(commitment)과 공유된 역사, 집합적인 책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내쫓고 교환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인간을 부채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노예제는 그 가장 극단적인 논리형식이다. 현대가 상업적인 부채사회가 되었다면, 전쟁과 정복과 노예제의 유산이 완전히 상실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자유소유라는 개념 속에도 침투하고 있다.

 

 

재산소유에 근거한 자유

그레이버는 고대 아일랜드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의 시대와, 느린 변화가 일어났던 과정을 추적한다(Graeber 2011: 165-203). 로마시대의 법은 인간의 자유라는 개념을 파괴했다. 그때까지 자유라는 말은 노예가 되지 않는 명예, 혹은 불명예스러운 노예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다. , 사회적 관계를 갖고 타자에 대한 도덕적 헌신/약속(commitment)을 유지하는 능력을 가리켰다. 그런데 2세기까지, 자유가 주인의 권력과 거의 동의어가 됐다.

자유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재산 소유권에 뿌리를 둔다. 이런 사고방식은 자유주의자의 전통에 있어서의 세계의 상상의 방식 자유란 자신의 재산에 의해 좋아하는 일을 할 권리이다 으로 이어진다(Graeber 2011: 204-207). 거기서는 재산이 하나의 권리가 될 뿐 아니라, 권리 자체가 재산처럼 다뤄진다. 권리는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며, 양도나 매각도 할 수 있는 것이 됐다.

고대의 가장 조야한 측면은 현재의 우리 자신에 대한 개념 자유를 소유하는 주인이며, 자신의 신체의 소유자이다 속에 이중으로 비쳐진다(Graeber 2011: 209-210). 그 개념에 의해 우리는 자신들이 완전히 고립한 존재라고 상상한다. 로마의 새로운 개념이었던 자유로부터의 직접적인 라인(line)이 거기에 있다. 그 자유는 타자와의 상호관계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정복에 의해 획득한 동산에 대한 절대적 권력을 의미했다. 공식적 노예제는 폐지됐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를 이양[양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영속하며,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화폐, 부채, 신용거래의 역사

역사상 노예제는 몇 번이나 폐지됐다가 부활했다. 그레이버는 이 사이클을 분명히 하기 위해, 화폐, 부채, 신용거래의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다.

유라시아의 과거 5천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신용 화폐가 우세하는 시대와 금과 은이 지배적이 되는 시대가 번갈아 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Graeber 2011: 214). 가상의 신용 화폐가 지배적이었던 제1농업제국의 시대(기원전 3,500-800), 동전이 탄생하고 금은으로의 이동이 일어난 추축시대枢軸時代(Achsenzeit, Axial Age ; 기원전 800-기원후 600), 노예제가 쇠퇴하고, 가상의 신용화폐로 돌아간 중세(600-1450), 세계적으로 금은이 다시 회귀하고 노예제가 부활한 1450년 이후의 자본주의 제국의 시대, 그 시대는 미국 달러가 금과의 태환을 중지한 1971년에 끝나며, 다시 가상통화가 우세하게 됐다.

이 사이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전쟁이다(Graeber 2011: 213). 금은이 우세해질 때는 광범위한 폭력의 시대였다. 금은이 신용거래와 명확하게 다른 것은, 이것들이 훔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채는 기록이며, 신뢰관계 자체이다. 전쟁과 폭력의 위협이 있는 세계에서는, 거래를 단순화하기에 이점이 있었다. 또한 병사들은 약탈품에 접근하기 쉽고, 그 대부분을 차지한 금이나 은을 거래하는 것이 필요했다. 정부도 무기를 구입하고 병사에게 지불하는 데 금이나 은을 사용했다.

상품시장과 보편적 세계종교라는 상보적 이념이 탄생한 추축 시대에 화폐는 제국의 수단이었다(Graeber 2011: ch. 9, 320-321). 지배자에게 있어서 화폐는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이며, 정치체제는 수익을 위한 사업이었다. 그러므로 중세에 제국이 붕괴하고, 군대가 해체하면, 그 전체의 구조가 상실됐다. 새로이 나타난 자본주의적 질서에서는 화폐의 논리가 자율적인 것이 되며, 정치와 군대의 권력은 그것에 의해 재조직화됐다. 화폐가 국가와 군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는 금융의 논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오랫동안, 부채는 사회성의 기본구조였다. 그러나 정부나 상업 속에서 노동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이 완전히 다른 관점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Graeber 2011: 329-335). 현금교환이 보통이고, 부채가 범죄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부채의 범죄화는 인간사회의 기초의 범죄화였다. 폭력에 의해 그때까지 사회성의 본질이었던 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18세기까지 빌려주는 사람도 빌리는 사람도 모두 수상한 존재로 간주되고, 오히려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이게 됐다.

자본주의의 탄생의 이야기는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힘에 의한 전통적 커뮤니티의 파괴의 얘기가 아니다. 신용거래의 경제가 이익의 경제로 전환된 이야기였다(Graeber 2011: 332-353). 도덕적 네트워크는 오히려 비인격적인 국가의 힘에 의해 변용됐다. 과거의 노예제의 원리는 임노동 속에서 유지됐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관계는 모두 비인격적이다. 노예를 사고, 노동자를 고용하려면 보통 신용거래가 아니라 현금이 이용된다. 누구나 현금으로 지불하게 되며, 비인격적인 신용거래가 나타나면서 부채가 죄이며 타락이라고 했던 낡은 엄격한 관념이 침투한 것이다.

 

1971년 이후의 세계

1971815일에,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미국 달러와 금의 태환을 정지한다고 선언했다(Graeber 2011: 361-362). 금의 가격은 급등하고 금이 없는 가난한 나라로부터 금을 보유하는 미국이나 영국 등의 선진국으로 막대한 부가 옮겨졌다. 일단 신용화폐의 전지구적 시스템이 금으로부터 분리되자, 세계는 금융의 역사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건국 이래 미국이 누적해 온 부채는 전쟁비용이었다(Graeber 2011: 364-367). 미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군사에 예산을 많이 썼다.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는 해외로 달러를 유출시켰다. 그러나 닉슨의 선언에 의해 달러를 보유하는 외국의 중앙은행은 미국 국채를 사게 되며 다른 선택지가 없어졌다. 저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상승[협동]효과에 의해 미국 국채의 가치는 줄었다. 그것은 세계의 나라(특히 국내에 미군 기지를 보유한 국가)에 대한 모종의 세금이라는 것 이상으로 공납이었다. 미국 제국의 힘이 이 부채에 뿌리를 둔 이상, 그것은 결코 상환되는 것이 아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신용카드의 근대적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후, 1990년대에는 대규모 현금 없는(cashless) 경제가 실현됐다(Graeber 2011: 367-368). 만약 역사가 옳다면, 버추얼한 화폐의 시대에는 전쟁과 제국확장, 노예제와 부채에 의한 고역이 수습되고 세계적으로 채무자를 지키는 기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새로운 전지구적 통화는 과거 이상으로 군사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빚 상환을 위한 강제노동은 세계적으로 노동력을 조달하는 주요 원칙이길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노동자의 대부분이 대출을 갚기 위해서 일한다고 느낀다. 새롭게 생긴 세계적인 기구는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채권자의 권리를 강제하는 것이었다. IMF는 그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후에 만들어진 유엔과 세계은행, 세계 무역 기구 등은 모두 부채는 갚아야 한다는 원칙을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들은 어떤 국가의 채무 불이행도, 세계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위협했다[주10].

[주10] 그레이버는 빈곤국가에 부채의 상환을 요구하는 IMF의 정책이 전지구적 정의운동에 의한 저항에 직면하고, 2000년까지 동아시아 국가들이 IMF의 조직적 보이코트를 필두로 하여 2002년에 아르헨티나가 궁극의 죄인 채무 불이행을 실행하고, 중국이 미국 국채의 주요한 보유국이 되는 등, 이 체제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지적한다(Graeber 2011: 368-372). 

1971년을 기점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Graeber 2011: 375-377) 최초로 통화주의(monetarism)’로의 회귀가 일어났다. 이제 화폐는 금이나 기타 상품에 근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마치 화폐가 신성한 상품인 것처럼 그 공급을 주의 깊게 통제했다. 심지어 시중에 투자된 화폐의 대부분이 상업생산으로부터 분리되고, 순수하게 투기적인 것이 됐다. 이 새로운 관리체제 속에서 임금은 더 이상 상승하지 않고, 그래도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상품을 살 것을 요구했다. 이 세계에서는 부채를 갚는다가 모랄리티의 정의가 됐다.

주요한 담론에서는, 빈곤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적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적절한 금융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효율적인 신용거래에 접근할 수 있으며, 노동하지 않는 부유층으로부터 가난한 일꾼들에게 돈이 흘러든다고 말이다. 그레이버는 거기서는 일꾼이 아닌 빈자가 구제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며, 부채의 모럴리티의 파멸적인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고 논한다(Graeber 2011: 387-389). 학생 대출을 탕감하는 것은, 상환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애를 쓴 사람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강도를 당한 사람이, 이웃집 사람도 강도를 당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에 뿌리 깊은 자기 파괴적인 성질은 과거 반세기 동안에 세계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시나리오로 변질됐다(Graeber 2011: 390). 일하는 자가 아닌 빈자는, 그들이 친구나 가족과 잘 지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한에서, 세계를 더 잘 살고 있다. 현재의 자기 파괴적인 기호에는 없는, 새로운 경제질서의 선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레이버는 하나의 제안으로 책을 마무리한다(Graeber 2011: 390-391). 오랫동안, 성경의 부채 대탕감의 해”(Jubilee)가 지연되어 왔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고통을 해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돈은 신성이 아니고, 부채를 갚는 것은 모랄리티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고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숙한 모랄리티와 결별하고 재출발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장부를 깨끗하게 하는 것. 그레이버는 그 이상으로 지금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레이버의 부채론의 사정거리

지금까지 그레이버의 부채의 논의를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그의 주장의 위상을 확인한 뒤, 일본의 상황과도 관련시키고 싶다.

그레이버는 그 동안의 저작에서도, 국가와 시장의 논리를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가치의 인류학 이론을 향해(2001)에서는 포스트모던의 인류학적인 교환론이 신자유주의의 경제주의와 동일한 관점 개인의 자기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 에 의해 관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기에서도 시장의 논리가 표면상 이에 반대되는 듯한 담론에 침투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시장의 논리 없이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의 기이함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그레이버가 목표로 한 것은 시장의 논리라는 특정의 가치에 의한 전체화에 대항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가치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더 강제적이지 않는 제어기구였다.

이 아나키스트로서의 그의 입장을 명확히 제시되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을 위한 단장󰡕(2004)에서는 국가라는 상상적인 전체성의 강고함이 비판의 한 가지 초점이 됐다. 국가나 경찰이 없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육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국가라는 틀은 인간의 생존의 조건으로서,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 없는 사회의 무수한 사례를 제시한 인류학은 그것이 자명하지 않다고 증명하고 있다. 그의 주장의 근저에는 국가라는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온 인간의 잠재적인 힘에 대한 신뢰가 있다.

부채에서도 그레이버는 국가와 시장이 함께 상보적인 힘에 의한 개입을 하면서 화폐의 논리 인간의 목숨과 사회성과 자유 등의 모든 것이 교환이양계량 가능하다 에 따른 모랄리티를 형성해 왔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거기서는 부채는 갚아야 한다가 제1원칙이 된다. 이 기묘한 모랄리티는 힘의 비대칭 속에서, 군사적 강국과 대기업에는 적용되지 않고, 약한 국가나 사람들에게만 강제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오히려 부채에 의해 곤경에 빠진 사람들과 자신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내면화되어 왔다.

이 지적은 바로 일본의 현재 상황과 겹친다. 일본의 2010년의 자살자 수는 31,670명으로 늘어났다[주11]. 원인이 특정된 23,572명 중 경제생활을 동기로 하는 사람은, ‘건강문제에 이어 7,438명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 부채’(‘다중채무’, ‘연대보증채무’, ‘기타 채무’, ‘빚 독촉으로 인한 고통’)를 원인으로 하는 사람이 2,742명으로 가장 많다. 나아가 빛 걱정에 의한 야반도주나 가출은 연간 수십 만 명이 된다고 말해진다[주12].부채가 그것에 시달리는 개인에게, 그 구조를 규정하는 국가나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책임의 문제, 혹은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행위로서 강하게 의식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주11] 자살에 관한 통계자료는 경시청, 2011에서

[주12] 宇都宮(2010)에서. 이 책에서는 빚 걱정으로 야반도주나 가출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달아났으며, 제대로 취직이 안 되거나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등 혹독한 생활환경에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200612월에 통과된 신대부업법(대부업법, 출자법, 이자제한법 등의 개정법)에서는 금융업계나 미국정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자법의 상한금리가 연 29.2%에서 연 20%로 인하됐다. 이 법개정의 배경에는 국민적인 금리인하운동의 확산과 여론의 고조가 있었다고 한다(宇都宮, 2010). ‘부채가 바로 사회적 합의형성의 문제이며, 개인의 모랄리티와는 다른 차원에서 재정의되는 유연한 개념임을 나타낸다.

이 개정법 속에서 대출자/채무자의 자살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계약의 체결이 금지됐다. 과거에는 대부업자가 대출자/채무자에게 생명보험을 거는 것이 묵인됐다. 그레이버의 논의를 끌어들인다면, 인간의 목숨의 대가 불가능성의 증명이었을 화폐가, 인간의 목숨에 의해서도 대체 상환 가능한 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것은 노예제나 다름 아니다.

모든 것을 교환 가능케 하는 데 화폐의 논리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성(그레이버 식으로 말하면 코뮤니즘)의 모랄리티에 의해 언제든 변경 가능한 규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담론 속에 섞여 들어온 지배적인 신화에 이의제기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레이버는 월가 점거에 관해 기고한 글에서, 이 운동의 의의가 우리의 상상력을 속박시켰던 멍에를 떼어내고, 지배적 담론에 급진적인 물음을 던진다고 말했다[주13]. 그레이버의 부채론은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다시 상상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다.

[주13] 가디언2011925일 기사 월가 점거는 급진적 상상력을 재발견하고 있다에서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cifamerica/2011/sep/25/occupy-wall-street-pro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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