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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이스모, 주체성[주관성], 계급구성 (제2부)

Intervista a Gigi Roggero. Operaismo, soggettività e composizione di classe (2) 

히로세 준(廣瀬 純)


* 일본어 원문 : 여기를 클릭. http://www.koshisha.co.jp/blog/archives/446


※ 지지 로제의 약력 등은 제1부 첫머리를 참조. 

【承前】
Elogio della militanza

포스트오페라이스모가 계급의 기술적 구성과 정치적 구성을 "쇼트[단락]"시켜 버렸다고 한 후에, 너는 이 단락 회로를 절단하기 위해서 사회적 노동자의 계층화 혹은 위계질서라는 논의를 도입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계급 분열을 문제 삼고 있다. 이 논의는 이번 네 책 밀리턴시를 치켜세우다 : 주관성[주체성]과 계급 구성에 대한 노트의 핵심 중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된다. 이 점에 대해서 조금 말해주겠는가?


위계질서라는 단어는 오늘날의 많은 밀리턴트[투사] 혹은 액티비스트[활동가]에게는 요란한 얘기이다. 그들은 수평성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위계질서는 그들에게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좋은지 나쁜지의 구별이 아니라 무엇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직접적인 여건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위계질서를 통해 산출되고, 또 위계질서를 끊임없이 계속 산출하는 시스템의 내부에 수평성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투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개개의 투쟁마다 그 포텐셜리티는 다르다. 다만 그것은 개개의 투쟁의 포텐셜리티가 자본제 위계질서 내부에서 배정된 각각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개개의 투쟁의 포텐셜리티는 그런 위치와 행동양식 사이의 관계에 의해, 즉 절단과 구축의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60년대 오페라이스타[노동자주의자]들이 대중 노동자의 정치적 중심성을 말했을 때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제반 투쟁들 사이에서 그렇게 산출되는 위계질서였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로마노 알콰티에게서 시스템은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 현실은 여러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수준들이 각각 어떤 내막을 지니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항상 중요하다고 말이다. 수평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도달 목표인 것이다. 예를 들어 콘리체르카’(공동 조사)’(공동)이라는 접두사는 밀리턴트[투사]와 노동자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추호도 아니다. 밀리턴트는 밀리턴트이며, 노동자는 노동자이며, 각각의 위치는 시스템 속에서, 지식이나 지식의 소유에 비추어 위계적으로 결정된다. ‘(con)’은 밀리턴트와 노동자가 함께 위계질서에 대해 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양자가 함께 해서 아직 없는 것을 산출한다는 것, 양자가 함께 해서 절단을 이루고 새로운 조직화 과정, 새로운 주체화 과정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에 관한 오늘날의 논의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을 말해야 한다. 인터넷 등에 대해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수평성의 이념을 구현하고 있다고 흔히 말해지지만, 여기서 새삼 확인하지 않더라도 네트워크는 실제로는 수평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로 철저히 위계화되어 있다. 운동의 조직화 형태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No Global운동(이탈리아에서의 대안지구화 운동은 그 네트워크형 조직화의 수평성이 얘기되고 찬미되기도 했지만, 어떤 조직화 형태도 수평적일 수는 없다. 조직화에 관해 씨름해야 할 문제는 필연적으로 위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조직화 형태가 그 고정화로 향하는, 그 내부에서 여러가지 동일성이 재생산되어 버리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점에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위계적 조직화 형태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저항한다는 것이며, 위계질서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불가능하다. 투쟁과 그 조직화 형태에 있어서의 위계질서를 위와 같은 관점에서 문제 삼지 않으면, 위계질서가 그 최악의 형태에 빠지는 사태를 반복하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여기서 너의 질문에 돌아가고 싶다. "사회적 노동자""대중 노동자"의 투쟁 사이클이 종언한 뒤, 1970년대 후반에 노동자의 새로운 중심적 형상으로서 등장했다. "공장 형태"의 해체를 떠맡을 새로운 형상, 그러므로 기존의 테일러 시스템형 공장에는 더 이상 결부되지 않은 형상, 사회적 맥락 자체의 공장화로서의 "사회적 공장"을 그 활동의 장소로 삼는 형상이 "사회적 노동자"라고 규정된 것이다. 사회적 노동자는 일련의 구체적인 충돌을 통해 그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그러한 충돌의 상징이 되는 것이 이른바 "이탈리아의 77"이며, 이 사건에서는 주로 학생들이, 더 이상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자로 투쟁의 무대에 등장했다. 이에 대해서 당시 공산당은 77년 발간한 알베르토 아소르=로자(Alberto Asor Rosa)의 유명한 책 두 사회(Le due società. Ipotesi sulla crisi italiana, Einaudi)의 구별에 따라 말하면, "보장 있는 사회"의 편에 섬으로써 "보장 없는 사회"를 억압하려 했다.

 사회적 노동자는 단순한 개념 따위가 아니며 실질적 주체였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 존재로서 출현한 주체이며, 불안정 노동자들, 77년의 학생들, 사회 전체로 확산된 공장에서 어둠 노동에 종사하는 젊은 주체[闇労働につく主体]였다. 사회적 노동자는 70년대 후반에 억압적 국가 장치와의 격심한 갈등을 통해 압도적인 포텐셜리티를 갖고서 출현했지만, 개념으로서는 그 후 모습을 감추게 된다. 개념으로서는 상실됐지만, 그러나 문제로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문제로 지금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까 내 책이 무엇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말했지만, "정보의 짧은 시간성"이라고도 불러야 할 것도 내 책에서는 이견의 대상이다. 흔히 말해지지만, 인터넷에서는 단시간 내에 여론이 눈부시게 변화한다. 오늘의 화제의 중심이 내일이면 잊혀진다. 시간을 오래 붙잡는 관점에 입각한 논의를 회복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대중 노동자는 이탈리아에서는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정치적 주체로 형성됐지만,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경우에는 그 시점에서 처음 출현한 주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중 노동자는 20세기 전반기의 미국에서의 투쟁 사이클에서 이미 출현했으며, 독일을 비롯한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이미 출현했다. 이탈리아 사례의 특징은 그 폭발성에 있었다. 필요한 것은 " 긴 역사" 속에서 사회적 노동자를 재고한다는 것이며, 오늘날의 계급 구성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사회적 노동자에 대한 담론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사용할지를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가령 "프레카리아트" 개념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프레카리아트" 개념은 실제로 "플렉시빌리티[유연성]" 같은 신자유주의의 일련의 진보주의적 수사에 대한 대항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으로서 매우 중요했지만, 그러나 모든 것에 대해서 프레카리티가 얘기되는 오늘날, 이 개념은 이미 힘을 잃고 있다고 역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이 된 것은 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서 똑같이 프레카리티가 발견되게 되면, 위계질서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무엇이 주체인지, 투쟁과 갈등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지 등이 안 보이게 된다. 좌파와 노조 수사에는 오늘날 "프레카리티에 대한 투쟁"이라는 게 있으며, 그 자체로는 올바른 요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서 프레카리티에 대치되는 것은 항상 정규직으로의 회귀, 무기한 계약으로 주 35시간 노동 같은 의미로 이해되는 "규범적인 노동"으로의 회귀이다. 그러나 바로 그 "규범성"이야말로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통해서 두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분쇄한 것은 아니었던가. 노동자들은 테일러 시스템형 공장에서의 사보타주에 의해, 또 거기로부터의 도주에 의해 규범성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규범성의 해체는 자유 세계의 구축을 이끄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거부에 대해 자본이 응답했고 규범성의 해체에 입각하는 형태로 사회 전체를 하나의 공장으로서 조직하는 데에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프레카리티[불안정성] 혹은 플렉시빌리티[유연성]는 노동자 자신이 창출한 것이며, 계급투쟁에 의해 그 자율적인 형태에 있어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산출된 플렉시빌리티가 적에 의해 노동력 통치의 새로운 형태 속에 포섭되어 버린 것이다.

 60년대에는 자본에 의한 노동력 통치의 그 엄격성을 위협하는 것이었던 플렉시빌리티가 90년대에는 자본주의적 노동 정책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환된다. 그 동안에 힘관계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힘관계를 문제 삼는 데서 시작하지 않으면 30년 동안에 일어난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 앞으로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머물 것이다.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등처럼 플렉시빌리티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거나 "정책"으로 요구하거나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제안"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본주의 쪽의 싱크탱크의 일이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에 있어서 어떻게 새로운 엄격성을 획득할 것인가, 그러나 동시에 또한 자본주의의 엄격함에 대해 위협을 이루는 새로운 플렉시빌리티를 얼마나 획득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플렉시빌리티를 요구하는 곳에서는 절대적으로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되며, 반대로 또한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엄격성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절대적으로 유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노동자의 출현은 "기름으로 더러워진 푸른 작업복" 등의 의미에서는 노동자가 더는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적대적이며 대립적인 행동양식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에 다름 아닌 새로운 주체의 그것이었다. 알콰티가 " 새로운 노동자성"이라고 정의했던 것을 오늘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노동자성"(오페라이에타)은 생산 과정의 위계에 있어서의 위치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행동양식과 주관성[주체성]의 관점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창출해야 하는 중심적 결속점이며 그것은 그저 물질적인 방식에 의해서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뭐가 진행 중이냐는 것이지 우리가 뭐를 좋다고 생각하느냐가 아니다. 앞에서 콘리체르카에 대해, 밀리턴트가 개입하는 것은 포텐셜리티가 발견되는 장소에서라고 이야기했다. 라니에로 판치에리(Raniero Panzieri)는 과거 노동자 조사는 뜨거울 때 실시하는 조사”(갈등을 이루는 운동 상황 속에서 실시하는 조사)라고 불렀다(«Uso socialista dell’inchiesta operaia», 1965). 오늘날의 문제는 저항이나 거부 같은 포텐셜리티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런 포텐셜리티의 높은 곳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자신들의 불충분함을 계급구성의 불충분함에 투영하여 자기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투쟁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투쟁이 우리의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것은 투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생각은 단적으로 잘못이다. 50년대 얘기만 하면 당시를 신격화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굳이 다시 50년대를 예로 들어 얘기한다면, 50년대는 바로 사막의 시대였다. 단순히 정치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어디를 보면 좋을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오페라이스모의 독창성은 그런 상황 속에서 바로 올바른 장소에 주목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이 본 장소가 옳았다는 것은 나중에야 판명됐다. “오페라이스타들의 시대는 단순했다, 공장에 가면 대중 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늘날에는 사태는 줄곧 복잡해지고 있고, 어디로 가야 좋을지 이제 모르게 되었다라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복잡성이라는 용어는 자본에 의한 반혁명의 시대, 80년대의 키워드 중의 하나인데, 이것이 우리의 무능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복잡하기 때문에 한층 밀리턴트는 머리를 써서 그 복잡성을 떠맡고, 단순함을 좇아 행동해야 한다. 50년대도 실제로는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50년대에도 패배감이 확산되어 있었고, 파업은 무의미하다며 거부됐다. 그러나 오페라이스타들은 파업의 이런 거부가 새로운 투쟁일지도 모른다, 파업을 무의미하다고 거부한 그 행동이 새로운 갈등적인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의 그런 수동적인 자세에서 새로운 투쟁 형태의 출현을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한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해졌던 것은 오페라이스타들이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또한 기존의 동일성에 구애되지 않고, 사물을 보는 방식을 일신하여 얻었기 때문이며, 맑스주의의 역사를 따르지 않고 맑스라는 인물에서 재출발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의 그 깊은 양의성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 여부가 오늘날에도 또한 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ジジ・ロッジェーロ

실제로 오늘날에 관해서도 또한, 기존의 상식에 비춰보면 바람직하다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주체가 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몇년에 이탈리아에서 보여진 커다란 투쟁에서도, 거기서 등장하고 있던 주체들의 행동 양식은 매우 양의적으로, 기존의 보는 방식에서라면 바람직한 주체 따위는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의 행동에는 항상 양의성이 수반되는 것이다. 201312포르코니 운동”(Movimento dei Forconi. 시칠리아의 농업 생산자를 중심으로 2011년에 시작된 운동)이 현행 시스템 전체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탈리아를 멈춰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탈리아 각지에서 시위를 조직했는데, 특히 토리노에서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준 이 운동의 중심은 빈곤화된 중산층과 도시 외곽의 젊은이들이었다. 좌파는 이들을 모두 파시스트라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끝내자고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빈곤화된 사람들이었다. 농가, 상인, 운송업 등을 비롯한 각 부문의 개인 영업자 같은 전형적인 중산층이며,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약속했던 것을 이제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은 좌파의 이해의 틀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며, 그래서 좌파는 그들을 파시스트라 볼 수밖에 없었다. 1962년 토리노의 헌법 광장에 넘쳐난 대중노동자들이 단순한 선동자로서만 받아들여졌던 것과도 똑같다.

 최근 몇 달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은행 구제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구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에트루리아 라치오 은행, 페라라 저축 은행 등, 이미 이탈리아 은행의 지도하에 놓인 중소지방은행 4곳인데, 특히 에트루리아 라치오 은행은 렌치 정권의 장관 마리아-엘레나 보스키의 아버지가 부사장을 지냈다는 점에서도 민주당과 가까운 은행이다. 올해 11일부터 EU에서는 베일 인”(bail in)에 따른 은행 파산 처리가 의무화됐는데, 예금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베일 인의 적용을 피한다는 이유로 렌치 정부는 지난해 1123일 주식과 채권을 무효로 한 후에 부족분을 파탄처리기금(은행 간 준비금)으로 보완한다는 방식으로 이들 은행을 구제했다. 그러나 많은 예금자(13만 가구)는 실제로는 그 예금에서 후순위채(주니어 국채)를 구입했기 때문에, 그 무효화로 인해 저축의 모든 것을 잃고, 자살자까지 나오게 되며, 렌치 정권은 이탈리아 주민들로부터의 강력한 증오를 받게 됐다. 베일 인의 사실상의 사전 적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은행 구제에 의해 저축을 잃은 것은 특히 중산층, 노동자층이며, 이들은 그동안 줄곧 일했으며, 복지국가체제가 붕괴하고 연금제도도 불안정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전히 자력으로 장래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을 믿고 수입의 일부를 예금하고, 은행원의 권고를 따라 그것을 운용에 충당해 온 사람들이다. 은행이 도산하는 것 등은 상상조차 못했던 이들은, 그러나 노후를 위해서 평생에 걸쳐 모은 돈 전부가 갑자기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자살한 초로의 남성은 10만유로의 큰돈을 잃었다.

 우리는 이번의 은행 구제에서 희생된 예금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그 기사를 Commonware의 사이트에 올리고 있다(«Banche salvate, risparmiatori azzerati», 24 Marzo 2016). 인터뷰에서 그들은 각각, 은행과의 지금까지의 교류가 어떤 것인지, 어떤 경위로 채권을 사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돈을 되찾기 위해 향후에도 온갖 행동을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면서, 그러나 명확해진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적대성과 갈등의 주체는 오늘날에는 좌파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오늘날, 은행에 대한 그들의 그동안의 신뢰, 대표성 위기라는 문맥에 있어서는 더 일반적으로, 시스템 전체에 대한 그들의 그동안의 신뢰를 끊어버렸지만, 그 절단을 구체적으로 조직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하고 있는 것은 다섯 개의 별운동”(매우 양의적이긴 하지만 오늘날 특히 주목할만한 조직)인 북부동맹(파시스트이자 인종주의적인 우파조직)이다. 사람들이 다섯 개의 별운동이나 북부 동맹을 선택하는 것은, 그러나 이들 조직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에 반드시 찬동하는 것은 아니고, 무엇보다 우선 자신들이 처한 조건의 그 물질성에 입각한 것, 즉 중산층 붕괴, 장래 설계의 파탄, 약속된 미래의 상실, 신뢰 메커니즘의 절단과 같은 오늘날의 물질적 조건에 입각한 것이며, 또한 다섯 개의 별운동이나 북부동맹이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러한 조직의 소위 포퓰리즘이 적을 규정하고 지목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서 규정되는 이 가짜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북부동맹은 이민자를 으로 규정하고 있다. 맑스가 말한 의미에서의 신비화(mystification, 현혹시킴)가 여기서 보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좌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을 이민에서 찾는 것은 양식에 위배된다고 반박할 뿐이다. 오늘날의 좌파정치는 양식을 휘두를 뿐인 것이 되어버렸으며, 내가 보기에는, 어떤 시대 때보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좌파 정치의 타도가 급한 적은 없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 맥락의 양극화이며, 양극화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또한 양극화를 정치적으로 창출하는 힘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적으로 규정해야 할 계층은 단적으로 말하면 금융자본이며, 물론 이 계층은 어디까지나 이름도 성도 있는 특정한 구체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며, 추상적인 존재가 전혀 아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적을 규정하고 계층화를 창출하는 한에서 비로소 우리는 포퓰리즘과 그 신비화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양의성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독해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견해를 일신하고, 그 위에서 더 나아가, 양의적이고 불순하며 꾀죄죄한 주체들을 조직화로 이끌어야 한다. 노동이 사회화된 오늘날, 새로운 위계를 어디서 읽어내면 좋을 것이냐는 문제는 분명 난문[아포리아]이다. 노동의 공간과 시간은 테일러 시스템형 공장과 포드주의 사회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비교적 분명히 한정됐으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공간성도 시간성도 분쇄되고 있다. 그러나 분쇄됐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같아지고, 어떤 구별도 불가능해져버리는 것이 전혀 아니다. 메트로폴리스 전체가 생산과정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는 인식은 옳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메트로폴리스는 평탄한 흐름 따위가 아니다. 메트로폴리스는 90년대에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한 평평한 세계(flat world)” 따위가 추호도 아니며, 위계를 그 새로운 형태에서 살고[낳고] 있다. 금융화는 확실히 흐름(flow)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흐름이 창출되려면 어딘가에 구체적으로 수도꼭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러한 수도꼭지가 어디 있는가? 그런 수도꼭지가 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식별하고 그곳을 공격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3부에 계속 】: 3부는 공개되지 않았음. 기대 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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