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푸코가 70년대 말의 강의(생명정치의 탄생, 1978-1979년 강의)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을 자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인적 자본론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데올로기가 생명정치의 한 가지 표현 형태임을 보여주는 절호의 예 신자유주의란 생명을 자본주의에 기입하기 위한 울트라 관리주의이다 로 말이다. 그러나 인적 자본 개념을 '관리하는 정치'로서의 생명정치아래로 포괄해버리면, 등한시되는 논점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은 주로 성공을 거둔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적 자본 개념은 1930년대 이후 서구경제와 일본경제의 성장이 결국 케인스주의적인 정부의 재량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발명됐다. 그 대표적인 논자인 세오도어 슐츠(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1971)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3분할(토지, 노동, 자본)근대적 부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없다.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 등으로 구성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을 성공리에 이룩한 나라들에서는 현저하게 관찰되며, 성장의 근본 원인은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적 자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적 자본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것이 인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인간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이라는 것은, 그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 또는 그 둘 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하물며 자동적으로 수익의 원천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려면 우선 인간의 활동들을 스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했는데, 푸코도 깨달았듯이, 이 정의 자체는 인적 자본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20세기 초반, 소득에 대한 어빙 피셔의 고전적 정의를 원용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소득이란 자본에 의한 생산물 또는 수익일 뿐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소득의 원천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본’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이런 무전제적 자본파악에 대해서 자본의 출신[지]이 어디에 있으며, ‘자본은 어떻게 소득을 낳는가라고 질문하고(쓸데없는 참견’?), 출신은 스톡이며, ‘스톡은 재화나 서비스를 렌트로서 빼앗는 경제적 수법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이 질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피셔와 슐츠의 정의는 옳다.’ 사실을 올바르게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이자를 낳는 자본이 실제로 메타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모양 소득이 있는 곳에 자본이 있다 올바르게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을 제기한 순간 이 정의는, 우리가 머니터리즘의 항등식(MV=PT)에 대해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바뀐다. 이 항등식이든 메타자본이든, 국가에 의한 화폐 스톡의 형성과 유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는 것은, ‘사실을 그 성립 이전의, 아직 필연성을 결여한 상태로 되돌려 보내는 조작이다.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그러나 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아무튼 간에 임금은 자본소득이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자본이라는 것에 머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또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제학에 대한 라이오넬 로빈스의 정의를 자신의 것으로 한다. “경제학은 목적들과, 서로 배타적인 용도를 가진 희소 수단 사이의 관계로서의 인간의 행동양식에 관한 과학이다.” , 신자유주의에서의 인간은 희소한 수단을 무기로 삼고 그 희소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성장을 목적으로 싸우는 동물이다. 바꿔 말한다면, 희소성에 찌든 환경 속에서 그 희소성과 투쟁하고, 그것을 극복제거하려고 하는 동물이다. 희소성은 수단이며, 그 목표는 희소성의 부재인 것이다. 일종의 자기 언급성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 실제로 실현되는 동안에는, 그 점은 아무런 문제도 빚지 않는다. 노동자(인적 자본의 소유자)와 자본가(화폐자본의 소유자)는 희소성이라는 공통의 적과 싸우는 동맹자이며, 성장으로부터 똑같이 자본 수익으로서 소득을 끄집어낼 수 있다. 똑같은 ‘비율’밖에는 인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양자에게 하나의 동일한 합리성 아래에 포섭되고 있다.

그러나 원인은 고사하고, 성장이 정지하면 어찌될까? 성장의 사실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것을 설명한 논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본 것은, 수단과 목적이 같다는 자기 언급성이 행복한 순환을 형성하기를 멈추고, 배리로 전환한다는 사태이다. 193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성장을 설명하는 이론이었을 인적 자본론은 희소성 그 자체로부터 수익을 끄집어내는 방법론으로 전화했다. 희소성과 싸우는, 즉 희소성을 감소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됐다.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희소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경제학이 그것들의 합리적인 사용방식, 대처 방식을 가르치는 제약 조건이었던 것, 즉 경제학이 그것들과 목적 사이의 합리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던 것이, 그대로 직접적으로 수단이 된 것이다. 행동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메워야 할 틈새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경제학에는 더 이상 목적=수단을 논증 없이 주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희소한 것에는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자. 가치 있는 것의 생산이 성장이다. 이것이 배리라고 한 까닭은 사실상 희소해질수록 풍부해진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차이를 찬양하는 문화좌익은 이와는 다른 것을 말했던 것일까?). 설명해야 할 현상이 사라졌을 때, 대상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논리는 공회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혹은 폭력으로 반전할 수밖에 없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지 않음으로써 그 신분을 유지했던 사실, 여전히 그것을 묻지 않은 채, 벌거벗은 규범으로 바뀌는 것이다. 원래 신자유주의의 시장관은, 양차 대전의 질서 자유주의의 시대부터, 시장이 최적의 자원배분을 실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이룩하는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공간인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의 성장은 시장이 잘, 또는 올바르게 기능하는 지표이며, 시장에 탑재[내장]되어 있는 자연적경향 그 자체인데, 그 결실을 둘러싼 부정의부패자연적으로는 억제할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시장은 하게객관적으로 가치를 정해주지만, 그 메커니즘은 전통사회가족의 정서적이고 한 가치관에 포위되어 있으며, 항상 이상적으로 작동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시장의 안쪽으로부터는, 끊임없이 독점으로 향하는 위험이 자라난다. 이 취약한 시장 메커니즘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자유주의의 대답은 주지하듯이, 사회 전체를 시장 원리를 따라서 조직하는 것이었다. 시장을 포위하는 시장에 대한 저해요인을, 시장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위협과 함께 제거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을 막는 과 싸우고, 더 나아가 의 신장을 불허하라, 끊임없이 선행적으로 을 확대시키라. 성장이라는 지표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면, 시장은 더 이상, 혹은 이미, 각자가 에고를 추구해도 좋은 장소, ‘사악(私悪) 즉 공익근대자유주의를 준비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의 부제 을 보증하는 메커니즘이 아닌 것이다.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가르고, 신자유주의에 특유한 개입주의가 이로부터 귀결된다. 시장 게임에는 엄격한 규칙과 그 적용을 감시하는 심판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행위자(player)는 인적 자본, 푸코의 말투를 차용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으로 끊임없이 육성되어야 한다. 자기 투자를 권하고, 자본 가치를 늘리려고 하는 존재로 훈육되어야 한다. ‘전통이나 가족은 인적 자본의 가치를 높여주는(프로테스탄티즘처럼) 반면, 안정에 만족해서 이노베이션[혁신]을 게을리 하는 저해요인도 된다. 시장에 독점 경향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동안 소규모 가족 경영을 건전하게 유지시켰던 문화가 가족회사에 의한 독점을 향한 욕망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싹을 제도질서(ordo)’를 구사하여 먹어치워야 한다. 게다가 비용 대비 효과라는 시장의 잣대를 사회생활이나 행정의 모든 국면에 적용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재량적(=비시장 메커니즘적)인 개입과 규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도태되어야 할 것을 도태시키지 않고 껴안은 부패를 시장에 들여올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불평등하며, 실업자는 고용에서 고용으로 이동 중인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고 간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즉, ‘경제학이 아닌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들은 이미 해명되었으며, 이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시장은 인적물적 자원 배분에 관해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신자유주의자들은 알고 있다. 즉 자신들의 연구는 포스트경제학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장속도가 시들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성장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제의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딘가에 악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그것 자체가 정의의 전쟁으로서 수행된다. 사회의 개입적 시장화가 을 위해 실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강제에 덧붙여, ‘을 향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구사한 것이어야 한다. ‘경제정책인 한에서는 말이다. 희소재를 사회 속에 투입하면 좋다. 사회 속에서 희소성을 산출하면 좋다. 교육도 희소해져서 효과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공교육을 그만두면 좋다 , 무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존의 공공재를 파괴하면 좋다. 세금조차 들지 않는 경제특구를 공공의 토지에 끼어들게 하면 좋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을 본받아라. 아무튼, 신자유주의자의 임무는 전쟁과 동질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넘어선 곳에서부터 그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일종의 혁명이 된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평등의 실현 다만 공공재가 누구에게나 희소해진다고 하는 평등 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본서가 주제로 삼은 현대의 채무는 이 폭력혁명의 결말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다음에 찾아온 신자유주의의 실패의 결말이다. 그것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의 저명 저널에서조차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선언하게 됐다. 공공성의 사회민주주의가 실패를 복원하는 데 최적의 사고방식으로 호출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인 인적 자본론은, 스탈린이 이를 선구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앞 절)을 차치하더라도, 문화좌익을 집어삼킨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사고방식과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희소성과 싸우는 인간의 힘을 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에 의해 높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유행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론을 완전히 선취하고 있지 않은가? 함께, “열심히 하면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개발의 노력과 빚 상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동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정의의 프런티어의 확장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좌파 철학자(마사 너스바움)세계개발경제연구소의 조언자를 맡아, 아마티아 센과 함께 제3세계민중의 가능력可能力 capability’ 채무 상환의 가능력은 포함시키지 않는가? 증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현대이다. 역사적으로 잊어서 안 되는 것은, 푸코는 지적하지 않았으나,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이, 스탈린주의보다 오래됐기 때문에 스탈린 이후에도 소프트-스탈린주의로 살아남은 생산협동조합의 사회주의에서도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출연 자본액에 의해 투표권을 배정하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노동자본인적 자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라고 간주하는 11표제의 생산협동조합에서,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생산의 존재방식을 탐색해온 사회주의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실상 가입시키고 있는 것은, 누구나 평등하게 생산이 아닌 채무를 짊어지는 인적 자본의 협동조합이다. ‘평등에서 기인하는 불공평감이 생산협동조합을 실패하게끔 해온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소프트-스탈린주의는 소프트(=‘금전의 평등과 친화적)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사실상의 채무 노예에게 여전히 열심히 해라고 역설하는 사회-임파워먼드empowerment/정의-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드hard) 스탈린주의의 역습인 걸까?

생명권력’(푸코)의 작용형태가 변했다고 봐야 할 수도 있다. 과거의 질서자유주의는,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는, 취약한 이상적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을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키우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촉구했다고 했다. 그것은 자본 일반의 생산력, 성장을 초래하는 [] 힘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시장적 관계를 확장하고, 시장 규모를 성장시키고, 자본의 힘을 인간 속에 내장[탑재]시키려고 했다.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70년대 푸코의 기본 테제로부터 봐도,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상정하는 양의 힘에 그가 주목한 것은 틀림없을 테다. 하지만 오늘날의 생명권력은 채무라는 음의 힘에 의해 생산이 아닌 수탈(수입의 무상이동)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희소성의 생산은 결여의 생산 즉 문자 그대로 음의 생산이며, 그것을 산출하는, 사적 소유권에의 공공재의 증여, 하나의 렌트로부터 다른 렌트로 (인적 자본으로부터 화폐 자본으로) 수입을 이동시키는 권력 장치로서 기능한다. ‘생명권력이 단순히 사회적담론적추상적인 권력이기를 멈추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 속에 내장[탑재]됐다고 말해도 좋다. ‘추상기계’(푸코)로서의 권력이 하나의 신체를 가진 것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 권력은 억압하지 않지만,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가치를 끌어당기는 진공지대이다. 그것은 가치를 우선 희소한 것, 결여된 것, 마이너스의 것으로서 사회의 중심에 두고,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의 근대가 행복의 원천으로 바꾼 노동labor, 다시 한 번 죄에 대한 보답’, 고역으로서의 labor로 바꾸는 것이다. 빚을 진 죄, 채무를 방치한 죄.

 

*

우리는 제안해야 할 대안이 공공재의 탈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긴축에 반대하고, ‘성장을 위한 투자라면서 채무를 옹호하는 네오(?) 케인지안 노선이 아니다. 채무의 옹호란, 얼마나 개인들에게 평등하게 부담을 배정하느냐라는 문제일 뿐이며, 바로 인적 자본의 논리일 뿐이다. 긴축이란,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 개인이 부채를 짊어진다는 정책일 뿐이다. 우리가 본 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와 케인스주의적인 큰 정부의 차이가 사실상 소멸했다는 사태이다. 경제성장이 멈췄을 때, 양자의 차이는 채권채무관계를 청산하는 타이밍의 차이일 뿐이다. 방금이거나, 조금 뒤이거나. 반면 긴축과 채무 둘 다로부터 공공재를 탈환한다는 것은, “위기의 타겟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라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관리된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다. 신용공간의 강제적 축소, 희소성의 인위적인 자연사이다. 국내적으로는, 채권을 순차적으로 종잇조각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주택의 압류 같은 채권회수를 금지할 시장가치 제로로 공공재산화할 뿐이며, 렌트의 횡령은 억제될 것이다. 그것에 의한 은행의 도산에는, 예금보호만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IMF를 대신해 채무국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자본 수지에 의한 환율을 중지하고, 채무국을 버리지 않는 보증이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현재 문제가 되는 채무총액은 IMF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액수를 훌쩍 뛰어넘으며, 적자국의 책임과 흑자국의 책임을 균형 있게 만드는 케인스의 플랜(국제청산동맹)을 재차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필요가 있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지불되지 못한 채무를, 우선 순위를 매겨서 지불하는 것이지 않아도 되는 계획권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민간보험으로부터 국영으로 역행하는 사회주의? 그렇다. 시장가치 제로로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 국영이라면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다. 누군가를 부담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사회주의이다. 국영화에 의해 이윤 인센티브를 잃은 기술혁신은 급속히 후퇴한다? 환상일 것이다. 인센티브를 가진 주체를 자본에서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뿐이다.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일한 보수를 렌트로 받는 것을 막는 사회주의이다. 어떤 불로소득도 부정의하다고 간주하는 사회주의이다. 도대체 어떤? 계획책정하기 시작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다. ‘계획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권력이다. 권력의 구성이 없으면, 어떤 공공의 것=공화국도 위기를 질질 끌 뿐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황인식이다. 이것은 민영화보다 공영을 옹호하고, 사적 소유권을 공적으로 제한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와 확실히 비슷하다. 공립학교는 분명히 지켜져야 할 공공재이다. 그러나 공적으로 소유되어야 할 것은 더 이상 스톡이 아니다. 미래의 부의 원천, ‘성장의 모태로서의 자산이 아니다. 그런 것의 실체는 이미 상실되고 있으며, 파산관리의 소비에트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채무의 원천으로 반전되는 스톡에 대한 렌트 청구권을 정지시키는 권력만이, ‘소유하는 것에 값한다. ‘스톡을 국가에 의해서조차 소유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소임을 이 권력은 담당한다.

사적 소유권의 대표자로서의 또는 주권권력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사유재산을 지키고, 더 나아가 준다 타국으로부터 빼앗아 는 것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공권력으로 스톡의 해체를 할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일찍이 이 해체를 행할 것이었다. ‘자본으로부터 ()’성을 우선 빼앗고, 그 이후 자본그 자체의 해체로 향하는 것을 이 노선은 표방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본 것 그대로, 노동의 전반적 스톡화, ‘국가노예제의 오늘과 내일을 일그러지게[비뚤어지게] 예시했을 뿐이었다. 생산이 아닌 스톡, 그것이 낳는 채무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에트는 아직 생각된 적도, 따라서 시도된 적도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99퍼센트의 반란이나 EU 내의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긴축반대의 소요가 이런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시도를 일정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가를 문제 삼은 것이다. 리먼 쇼크의 파도가 빈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융조치로는 빈부의 차이를 축소하기는커녕 확대시킬 뿐이며, 가맹국들 모두에게 성장을 가져올 것인 공통 통화로는 채무의 짓누르기를 가속화할 뿐이라는 막다른 골목의 단적인 표현이,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란이었다. 원래 정치의 루틴(routine)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반란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란은 발생한다. 문제의 심각성 이상으로, 해결의 부재가 반란을 발생시킨다. 반란은 항상 정치에 맞서는 정치이다. 물론 정치 과제를 제출할 수 없는 한, 반란을 기다리는 것은 패배이다. 그러나 월가 점거에, ‘정치 일정에 올릴 수 있는 과제나 승패의 지표 따위는 있을 리 없고, 시위에 의한 정치가의 퇴진요구가 과제를 둘러싼 가능한 옵션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오늘날의 반란은, ‘정치에 대한 구체적 요구가 될 수 없는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다. 어떤 내용을 갖고 있든, ‘정치가 그 욕망의 실현에 길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에, 반란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정치이다. 거기에서는 해결의 부재가 해결에 대한 욕망을 증대시킨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일어난 반란의 연속도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반란이 정치화의 여정에 오르자마자, 다음번 반란의 싹이 자라는 것이다. 이 반란을 지탱하는 욕망에 있어서, ‘정치튀김을 온통 가리고 있는 토핑에 다름 아니다. 혹은 오히려, 이 반란은 자신의 패배를 통해서, 문제를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수조차 없는 정치의 패배 라는 현재의 상황 를 무의식적으로 연출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원래 정치적 승리를 바라지 않음으로써, ‘정치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보이도록 한다고 말이다.

아무튼 긴축이냐 성장이냐, 성장을 위한 긴축이냐 성장에 의한 긴축의 회피이냐 같은 논의가 계속될수록, 이런 반란은 일종의 사고(事故)’로서 되풀이될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 그것은, 요구가 불명료하거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들을 귀 따위는 갖고 있을 리가 없는 사고에 지나지 않으며, ‘사고로서 처리될수록, 반란에 대한 문턱은 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는 일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보험적 발상으로 대비하는 것을, 금융자본주의는 권장하지 않았는가. 리먼 쇼크는 사고조차 벌이가 된다[이문이 남는다]고 실증한 게 아닌가. ‘사고로서의 처리도 또한 파산관리의 수법임에는 틀림없고,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누구에게 그것을 맡길 것인가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화주의의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라고 하는 답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부나 재원을 요구함으로써, 내부에서의 이해대립을 균형시키고, 계급투쟁을 억제하려고 했다. 오늘날에도 또한, ‘바깥이란 아시아이다, 아프리카이다 등이라고 선전하고 있다(‘성장력을 수중에 넣어라!). 바깥도 또한 금융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에 불과하다(그들에게 투자하라, 돈을 빌려주라)고 하는 것의 반면(半面)에는 더 파고들지 말고. ‘바깥에 대한 기대에 관한 한, 여기서도 선구는, 신자유주의와의 차이를 스스로 소멸시킨 중국의 스탈린주의이다. 아프리카 진출이다. 그러나 그 중국에서조차도, ‘바깥으로의 확장은 에서의 반란의 발생과 보조를 맞출 때에만 가능해진다. 아무튼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의 대항 모델로서는, 아직 사고(事故)’만 존재할 뿐이다. 보험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곳까지 사고를 확대하려고 하는 무의식의 노선만을 대항정치는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그것이 계속되는가, 바꿔 말하면, 지속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는 공화국이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는가는, ‘참을성 겨루기의 영역에 있는 문제일까? 비록 사실로서는 그렇더라도, 무의식의 의식화를 시도해도 나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채무공화국은 끝나가고 있다. 어떻게 살 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말로, 또한 현실적으로 끝나게 할 것인가를 논의의 일정에 올려야 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얘기를 현대로 되돌리자.

오늘날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GDP70%에서 80%“3차 산업이 생산한다. 서비스의 대가, 인적 자본의 렌트 그대로 부가가치로 승인되고 있는 셈이다. 서비스의 부가가치생산비그런 것은 주관적’(따라서 정치적’)으로만 결정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봤다(31) ― 가 무엇인지를 괘념치 않고, 서비스의 대가=렌트가 가치의 생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비스의 제공은 당당하게 그 대가로서, 화폐를 매개로 사물[물건]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런 현황에 대해, 20%에서 30%의 가치밖에 대표하지 않는 사물[물건]을 모두가 함께 나누고 있다고 말하면, 그만큼 사물[물건]의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내는 방향도 강하겠지만, 우리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물건[사물]을 배분하는 구조가 생산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배분의 구조로서의 렌트는 태초부터 물건[사물]빼앗는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역사적, 이론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다(32). 그 지점에서 봤을 때, GDP70%에서 80%를 웃도는 ‘3차 산업은 어디까지나 빼앗는구조가 발달한 결과로 간주되어야 한다. 생산된 모든 물건[사물]70%에서 80%를 이것을 생산하지 않은 인간이 빼앗고있는 것이다.

앞 절에서의 논의를 감안하면, 물건[사물]가격과 관련시켜 얘기할 때의 서비스의 가격은 은유일 수밖에 없다. ‘생산비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과 마찬가지로, 최종적으로는 일군의 상품으로 표시되는 생명의 생산비’(=유지비)? 그렇게 생각하고 쉽게 납득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조금만 멈춰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상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생명의 생산비는 생명밖에는 생산하지 못하고(그래서 임금이라는 특수 범주로 처리된다), 상품으로서의 서비스 그 자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급 서비스의 생산에는 높은 비용이 들 것이라는 상식에 의존하여, 가격으로 비용을 결정하려고 해도, 사물의 영역에서의 가격=생산비를 원용하면서 사실은 그것을 무시하고(물건의 경우의 ‘=’는 생산비 쪽에 가격을 정의-결정시킨다), 서비스의 가격을 동어반복적으로 말하는 것밖에 안 된다. ‘가격의 높음/낮음을 가져오는 요인, 서비스의 상대가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가져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임금이라고 간주하려면 동종의 물질적 노동(물건의 생산)을 참조하게 되겠지만, ‘동종참조한다는 것은 바로 은유의 조작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서비스의 가격은 오히려 산업자본가의 이윤에 상당하는가? 그러나 그 경우에는 무엇이 밑천으로서 선불되었는가? 서비스의 가격을 생명의 생산비자본으로서의 인간이 보탠 부가가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임금의 경우보다 더 은유적인 조작이다. 타인을 고용하지 않고, 자신에게 자본투자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구매력빌려주다/지불하다라는 것은, 소비를 삼가는 것의 은유일 뿐이며, 경제학적으로는 투자도 뭣도 아니다. 서비스의 가격은 자기투자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인이 보면, 단순한 참을성을 투자로 인정한다는 강변일 뿐이리라.

아무튼 GDP에서 3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화폐적 조작에 의한 은유의 확대 비율이며, ‘생산/교환’-‘임금/이윤강탈’-‘렌트의 병존 비율이며, 자율적인 영역으로서의 경제의 축소 비율이다. 그래도 어쨌든 오늘날에는 실현된 렌트는 부가가치이다. 정당한 보수든 아니든, 렌트는 가치생산의 결과인 것처럼 실제로 보인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근본적으로 부당한지 여부는 옆으로 치워두고, 렌트를 가치에 포함시켜 셈하는 현실적 효과나 결과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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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는 어디까지나 스톡(자산)에 대한 보수이다. 렌트가 실현될 때, 그것은 스톡이 가치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미에 관한 한,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스톡이 가치를 낳는다고는 할 수 없고 축장 비용이 드는 잠든자산은 얼마든지 있다 자산 가치의 평가이익을 확정하는 것이 아님은 주식 소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실제로 팔릴때까지, 주식이라는 자산은 갖고 있는 것 자체에 위험이 수반된다. 렌트가 불어남에 따라 스톡도 비례적으로 평가액을 늘리는 것은 틀림없으나, 스톡의 증대란 무엇을 현실적으로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광산이 갑자기 발견됐다고 하자. 거의 가치가 없는 땅에 갑자기 가격(발굴권료)이 붙고, 스톡이 출현한다. 땅이 팔리면, 그 대금은 부가가치로서 실현되지만, 10년 후에 광산이 이익을 내기 시작할 때까지, 토지대금과 투입된 개발비용은 광산(발굴권)을 산 사람의 구매력을 희생하고 계속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낳을 때까지는 이런 금액들은 순전한 투자’(선불)이며, 같은 금액이 생산 가능 부가가치액으로부터 자동적으로 계속 차감[공제]된다. 스톡은 형성되자마자 곧바로 렌트를 낳는다고는 할 수 없고, 그 경우에 렌트는 선행 투자 자금의 회수로서 취득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통신 회선의 사용료로 지불하는 금액은, 회선의 부설에 필요한 비용을 우리가 사후적으로 상환하면서 지불하는 임대료(rental fee)일 것이다. 벤처 사업에 투자되는 금액도, 아직 렌트를 실현하지 못한 땅값같은 것이다.

케인스 경제학이 가르치는 바로는 투자=저축이다. 어느 정도의 투자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구매력사용하지 않음이 제약으로서 부과되고 있다. 현재의 구매력대여되어투자 자금이 된다. 설령 투자액이 저축액을 끌어당겨증대시키는 효과 케인스가 바라던 것이다 가 관찰되더라도, 이것은 쓰지 않고 대출된 금액이 늘어난다는 결과를 반드시 동반한다. 사회적으로는, 투자액만큼의 부채를 어디서 누군가가 지고 있을 것이다.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있어서도, 초기 투자된 자본부채와 똑같은 쪽에 기입되는 자본 제공자로부터 조달된=‘빌린돈으로서 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투자란 스톡 형성을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과거 폭력이나 제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스톡은 그 흔적을 비용으로서의 투자에 남기고 있는 것이다. 발권 은행이라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비용없이 창출할 수 있었던 가치를 자본이 반드시 똑같이 낳을 수는 없다는 표시가 투자이다. 사후적으로 취득되는 실물 자산(앞 절 참조)은 기업이 투자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톡이었지만, 발권 은행 이외로부터 화폐를 조달하여 스톡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희생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는 투자가 된다. 기업은 화폐 순환 내에서의 위치로부터 거의 자동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대신 구매력에 그것을 요구하고, 반란 리스크를 대신해 채무를 지는 것이다.

이때 인적 자본이나 토지, 때때로 흘러드는 투자자금도, 이것이 미래에 올릴 렌트를 기대하여 대출받는 돈으로서, ‘채무를 낳는다. 그러나 이 채무는 설비 투자와는 달리, 대부분 실물경제속에 수요로서 들여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 외적인 존재였던 영역(접속이 공짜였던 공유재산)을 사유재산화함으로써 렌트를 발생시키려고 하는 투자, ‘실물경제에 자금을 들이붓는 경로가 매우 가늘다. 그린 뉴딜의 실패는, 그 점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지적인 분야(신산업의 육성)에 아무리 자금을 투입해 봤자, 직접 수요 창출 효과는 뻔하다. ‘성과를 거두기 위한 투입자금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할 정도이다. 그것을 회수하려고 한다면, 렌트는 기세가 높으며(의료비나 약품가격을 상기하라),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과 불황의 동시 진행과 똑같은 사태에 돌입한다(비싸서 팔리지 않는다). 게다가 교육투자를 생각하면 좋다. 장학금에 기대되는 효과는 인적 자본의 가치 증대이지만, 얼마나 증대할지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르며, 그 증가분은 실제로는 완전히 우연이며, 유효 수요 효과에서의 제곱수 같은 파라미터를 거기에 도입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광산은 물적이지만, 발굴권료는 그렇지 않으며, 가치를 가로챈 지대에 불과하다. 발굴권료 수입을 설비투자에 돌려 봤자, 렌트화된 발굴권료는 그 물적 투자에 의한 수요 창출 효과를 빼앗아간다.

렌트를 낳는 것에 대한 투자, 평가가 클수록 그것이 채무라는 것에서 생기는 다양한 이자부담까지 키우며, 렌트가 실현될 때까지의 지출을 추가 비용, 추가 채무로서 증대시키는 것이다. 스톡형성 - 렌트 취득에 필요한 비용은 추가 수요를 낳는 산업적 투자의 경우보다 사회 전체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크다. 렌트 수입을 얻고자 하는 자의 투자를 사회가 내핍에 의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과거의 참주가 품었던 불안, 즉 언제 죽임을 당할 것인가라는 불안 권력의 우연성에서 유래하는 구매력의 감소라는 형태의 비용으로 치환하여 부담해야 한다. 설령 투자수요라고 불려도, 거의 추가 비용이 드는 단순한 소비수요이다. 사태를 타개하려면, 승수 효과분에 해당되는 수요바깥으로부터 들여올 수밖에 없으나, “바깥으로부터의 수요투자수요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유효수요 창출 효과를 수반하지 않는 투자=저축제약의 확대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구매력이 점점 삭감되고, 채무가 부풀어간다.

이 악순환에 감히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현대의 투자이다. 기대에 의해 기대를 부풀리게 하고, 빌리면 빌릴수록 이문이 남는다는 망상에 뒷받침되어, 스톡은 언제부턴가 채무스톡으로 반전된다. 스톡은 가치를 낳는 으로부터 가치를 흡수하는 것으로 바뀐다. 스톡이 형성되고, 렌트라는 제도 또는 장치를 통해 가치가 포획되기 전에, 스톡 형성 그 자체가 채무를 통해 가치를 흡수한다는 사태가 출현한다. 보수인 렌트로부터 비용인 채무로 스톡의 효과가 이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스톡이란 활동으로부터의 가치의 포획-흡수 장치였기 때문에, 이 귀결은 신기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포획-흡수생산이라고 바꿔 말한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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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의 대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종종 국가가 마치 그 결함을 메우듯이, 객관을 대행하듯이 개입한다. 다양한 서비스 노동이 국가적인 전문직 자격에 의해 직접 생산되며, 효과의 견적을 내기가 힘든 연구 개발에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 대학연구자의 급여는 국가에 의한 그런 대항적 견적[어림]의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가족이 부담하던 간병을 사회화하는 제도들은, 무상[공짜]이었던 감정노동에 서비스노동의 절대지대’(최저액)를 할당하는 양상을 띤다(아직도 상당 정도로 무상으로 맡고 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이런 영역에서의 국가적 활동 전체를 투자의 논리나 표상이 뒤덮는 정도는 날로 강해지며, 투자객관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전문가의 주관 대신 토의민주주의적인 합의 간주관적인 객관성가 도입된다(‘사업 심사[사업의 우선 순위 매기기]을 보라). 그러나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라는 도입의 기치만큼, 국가에 의한 서비스-지적 생산-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순수 채무라는 것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국민으로부터 빌린금전인 것이다. 물론 국가를 통해 국민이 자기 자신과 대차관계[빌려주고 빌리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미 봤듯이, 자신에 대한 투자를 투자라고 부르는 것은 강변일 뿐이다. 게다가 국민의 구매력을 빌리는국가는 고대 코린토 국가가 빈민에게 화폐나 토지와 교환하여 부역 노동을 요구했듯이, 사물(의 구매력)과 서비스의 교환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도 국가가 그 사물[물건]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도 어디까지나 똑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국가는 국민에게 사물을 서비스와 맞바꾸라고 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맞바꾸기의 조작 때마다, 화폐적으로는 채무가 국민의 대차대조표에 보태진다.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세금은, 국가를 통한 국민에 의한 자기 자신에의 강제 투자이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 노선은 토목공사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투자와 채무의 할당처를 이동시키는 정책이다. ‘빌린구매력을 서비스 부문에 투입하여 복지를 사회화하고, 서비스 노동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의해, 그것을 되돌려주려고 한다. 인적 자본의 논리를 국민이라는 사람에게, 국가를 통해 적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에 다름없다. ‘민영화를 뼈대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인적 자본론과의 차이는, “국가를 통한다는 점과, ‘사람국민이라는 전체 인격으로 바뀐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큰 차이는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보듯이(다음 절), 개인을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푸코) 자신에 대한 투자에 의해 자본으로서의 자기의 가치를 증대시키려고 하는 인간 으로 키우려고 하는 신자유주의는, 교육의 임무를 국가에 맡기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인적 자본으로서의 서비스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사람의 자기투자-채무상환과정 속에 있으며, 그들은 국가에 의한 채무 노예화의 궤도에 올라타 있다. ‘국민이라는 집단이, 거대한 노동 스톡으로 바뀌며, 그 렌트가 국가에 세금으로서 수납되고, 새로운 노동 스톡화에 이용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불되는 임금은 임금이라는 이름의 채무 전가 나라가 국민에게서 빌린것을 다른 국민에게 지불하는이다. 서비스료=렌트가 지불되는형식에 의해, 노동에 의해 변제해야 할 채무가 창출된다. 현재의 서비스 노동에 임금지불됨으로써, 그것은 국민경제를 경유하여 채무화되며, 다음의 서비스 노동을 의무화한다. 산업자본가는 임금을 선지급함으로써 생산물의 소유권을 손에 넣지만, 여기서는 국가가 개인에 의한 자신을 위한 투자를 개인에 앞서서 대행함으로써, 비용으로서 개인에게 노동을 요구한다. ‘투자비용은 노동에 의해 구입되어야 한다. ‘투자=저축의 현대판이다 나라는 여러분께 이것만을 빌려줬다, 갚으세요.” ‘투자라는 매개 표상을 벗겨내고 사실을 직시한다면, ‘채무속박[멍에]의 맞은편으로부터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얼굴을 내보인다. 산업자본이 사라지고, ‘노동자와 그들을 배치하고 움직이는 간부만이 있는 세계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귀중한 자본 중에서도 가장 귀중하고 가장 결정적인 것, 그것은 인간이며, 간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것을 이해해야 한다. 공업, 농업, 교통부문, 군대에 많은 우수한 간부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무적이다”(193554, 적군대학교 졸업식에서의 연설).

오늘날의 경제에서는, 이윤과 임금의 상당 비율이 렌트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가를 딱 잘라 나눠서 보여주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GDP 내 제3차산업의 비율은 그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부분을 증대시킴으로써, 채무가 생산을 상회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다. 이 형태의 채무에 상한은 없기 때문이다. 전원이 채무 노예가 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를 그대로 스탈린주의 국가로 변질시키고, 노예로서 일하는 기간을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상속시킨다면 좋을 뿐이다. 김일성처럼 대를 이은 혁명”? 채무의 상환 능력에 따라일하는 사회주의에 있어서는, “노동에 따라지불액이 얼마가 되는가는, 국가가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하면 된다. 투자액의 산정 기준이 되는 스톡 국민이라는 노동 스톡 전체의 평가액을 우리나라는 무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에 의해 결정하는 것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투자비용의 공유로서 실현된다.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최종 부담을 맡길 것인지 미정인 채로 누적된 채무가, ‘국민경제를 이음매없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시킨다. 소련 붕괴는 현재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의 기나긴 길이었음을 밝혔으나, 그 자본주의가, 지금은 안쪽으로부터 스탈린식 사회주의로의 변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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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궤도이며 경향이다. 실제로 임금의 렌트화는 고용관계에 중대한 변경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직무가 정해져 있지 않은 멤버십 계약으로서의 일본형 노동계약(이른바 정규직)은 이미, 노동시간을 가치척도로 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논리 안에다 인적 자본의 논리를 억지로 밀어 넣는 고용형태였다. 산업자본이 내부적으로 사람한테 투자하고, 그 효과 즉 렌트를,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에 미리 회수하려는 렌트 청구권을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형태이다. 반대로 직무를 한정하여 고용되는 (job) 노동계약은 어떻게든 산업자본의 논리에 적합하면, 즉 단순노동의 시간에 대해 임금이 지불되면, 간단하게 서비스 제공에 대한 렌트 지불 계약으로 변경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에게 렌트를 지불하는 것의 답례로 생산물의 소유권을 취득하며, 그것을 파는것도 빌려주는것도 자유이다. 인적 자본에 대한 렌트에는 기준이 없다고 했던, 이미 봤던 점이 여기서 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동일노동 노동임금의 원칙을 지키면서 임금을 얼마라도 낮추는 것이 가능해지며(흔한 서비스에 값싼 렌탈료만 붙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거꾸로 성과의 근거가 모호한 관리자에게 터무니없는[비싼] 보수를 지불하는 것도 정당화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물적 재화의 생산성이 오르고 잉여가치율(착취율)이 증대할수록, 그 재화를 생산하는 인적 자본에 대한 평가는 내려갈 것이다. 물적 수준에서 계산된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할 때에는, 인적 자본이 받는[수취하는] 렌트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인적이든 물적이든, 자본은 자본이며, 노동자는 자본의 구성요소, 화폐자본에 통합된 인적 자본으로서, 자본가와 동등한 같은 비율로 오르고 같은 비율로 내리는 보수밖에 받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또 일반적으로 이윤율을 넘는 이자율은 실현되지 않으며, 저하되는 기업(=산업자본) 이윤율, 총체로서 이자를 낳은 자본으로 간주되는 자본의 수익률에 하향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리하여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으로 합리적이라고 간주되는 비용서비스의 대가로서 합리적인 금액”, 노동이 생산할 터인 렌트로 고쳐 읽을 수 있으며, 기업 이윤과 함께 저하된다. 임금이 독립변수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좁은 의미의 서비스 산업은 서비스 공급자를 문자 그대로 에워싸고’, 렌트 청구권을 착취하려고 하지만, 거기서의 착취율은 원래 임금으로서 지불되는 렌트의 압축에 의해서만 오를 뿐이다.

그 결과 현대에서는, 과거의 농민이 땅에서 추방되어 산업프롤레타리아트가 됐듯이, 노동자가 노동가치의 세계에서 인적 자본의 세계로 내몰리게 되며, 그 렌트/‘구매력누군가가 횡령한다는 형태의 본원적 축적이 진행된다. 물건을 생산하는 산업세계로부터, 한편으로 지금은 자본이라고 고쳐 불리는 노동자의 일군이, 다른 한편으로 18세기와 마찬가지로 화폐, 분리되면서 쫓겨나고, 새로운 마주침을 지닌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본원적 축적에서 불행한 것은 분리된 화폐가 자본으로서 새로운 생산체계에 들어서기 위해 다시금 노동자와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이미 (인적) 자본으로서, (화폐) 자본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폐는 순수 구매력으로서 생산 바깥으로 흘러넘칠 뿐이다. 노동자와 만나지 않고, 그저 축적되고 사용될 뿐이다. 자본 수익률이 좀체 높아지지 않더라도, ‘부자가 계속 산출되고 있다. 노동자에게 눈을 돌리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더 이상 본질적인 쟁점이 될 수 없으며, 가치척도의 흔들림과 위기 속에서 노동수입의 전반적 하락이 계속될 뿐이다. 비정규 노동과 정규 노동의 격차 시정을 요구하는 슬로건으로서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기본소득 주장과 마찬가지로, 모든 임금이 자본과 더불어 렌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생활 향상을 위한 발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저 임금, 최저 생활수준을 둘러싼 논의로 회수되고, 자본가와 함께 성장을 갈망하도록 유도될 것이다.

임금의 렌트화는 노동자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금융자본주의화한다. 임금 자체가 그의 서비스에 대한 렌트인 데다가, 노동자는 임금의 일부를 사회보장비로서 출연[갹출]당하게 되며, 그 기대 렌트에 의해 생애를 설계한다. 인적 자본인 노동자는 벌어들인 렌트를 더 투자하도록 강요당한다. 그 투자는 채권시장에 흘러들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과거라면 산업(물적 생산)에 흘러들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두 번째의 본원적 축적과정에 흡수될 것이다. 공유지를 사유지화하고 또 이렇게 사유지화함으로써 음[]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노동자의 미래 구매력은 불가피하게 말려들어간다. 인적 자본의 투자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적 자본이며, 이 투자 과정에서도 저축=투자의 등식은 여전히 타당하며, 양쪽의 가치가 똑같은 렌트 시장 내부를 반사적으로 순환하며, 물적 생산과정으로는 거의 나아가지 않는다. 노동자 전체의 구매력은 확실하게 줄어들 것이다. 개개인의 기대 렌트를 쌓아올림으로써, 실현되지 못한 채 채무로 남아 있는 금액도 증대하며, 언젠가는 증세 또는 사회보장비 삭감에 의해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이미 서비스의 제공에 의해 실물 변제되는 노동자로부터 화폐적 구매력을 가로챈다. 노동자계급은, 지불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보험조합에 강제 가입되는 것이다. 이 보험이 파탄했을 때, 두 번째의 사회주의화는 완수될 것이다. 벌거벗은 모습을 노출할 것이다.

이것은 국가를 포함한 보험업자가 노동자를 속인다는 것에서보다는 축적 체제 자체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임금이 서비스에 대한 렌트, 능력의 임대료가 된 시점에서, 인간과 화폐 자본은 둘 다 희소성 때문에 [돈을] 벌어들이는, 기본적으로 동질적인 이자를 낳는 자본이 되며, 자본축적은 더 높은 수익이 전망되는 토지와 낮은 수익만 전망될 뿐인 토지사이의 차액지대를 수중에 넣고 축적해가는 방법으로 일반화된다. 단순노동에 대한 임금은 이른바 절대지대로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지대와의 차액을 확대하기 위해, 하강압력을 항상적으로 받게 된다. 초기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절대적 잉여가치를 더 많이 취득하기 위해 임금을 내리려고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산업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저항에 직면하고, 이윽고 이런 임금 인하 경쟁을 포기하고, 기술혁신에 의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취득경쟁으로 축적방법을 전환했다. 모든 것이 이자를 낳는 자본인 세계에서 이러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상당하는 메커니즘은 작동할 수 있을까? 그런 메커니즘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자는 오늘날 희소성과 기대의 상관값이다. 다양한 희소성이 미래에 오를 것이라고 추정되는 수익의 기댓값이다. 역사적으로는 스톡의 소유로부터 곧바로 얻을 수 있는 이문[돈벌이]로서 출현한 이자는, 스톡의 일반화에 의해 빌려주는것에 대한 보수가 된 후, ‘이자를 낳는 자본이 전반화되는 가운데, 사적으로 소유되는 재화의 희소성 자체가 산출하는 이자로서 인지된다. 이때 기술혁신은, 그 자체로는 재화의 희소성을 감소시키며, 기댓값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업은 부단한 이노베이션을 강요당했다. 새로운 희소가치를 산출하는 것을 스스로 지상명제로 삼았다. 그러나 이자를 낳는 자본한테는 원래 토지를 더 희소하게 하는 것밖에는 수익 기댓값을 크게 하는 방법이 없다. 수익은 생산때문에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산업자본이윤이라도, ‘이자를 낳는 자본메타자본으로서 군림하게 되면, 수익은 더 이상 생산때문이 아니라 희소성 때문에 오르는 것이다.

수익 기댓값을 크게 하기 위해 오늘날 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저작권이나 특허 같은 국가적 방법이라는 것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전비용이 제로이고 본질적으로 희소성을 갖지 않는 지식에 대해 문자 그대로 에워싸기[인클로저]’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과 시장에 내재적인 방법이 아니다. 내재적인 방법으로서는 지불 렌트를 낮출 수밖에 없다. 더 싼 이자자본을 빌려줄 곳을 찾는 수밖에 없다. 내부적인 기술혁신보다도 아웃소싱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절대지대를 내릴 것인지, 자본 전체로서는 그것이 항상적인 과제가 된다. 종종 현대의 우량기업 모델이라며 극구 칭찬받는 유니클로를 상기하면 좋다. 본사의 정규채용 사원의 숫자를 극력 억제하고, 생산을 모두 인건비가 싼 해외로 아웃소싱하며, ‘값싸게만들어낸다. 포드주의 시대의 대량생산·대량판매와는 달리, 거기에서는 생산의 외부화가 기술이다. 상대적 잉여가치를 높이는 생산기술이 아니라, 저렴한 렌트를 시장으로부터 조달하는 기술이다. 상품 자체의 희소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서만 자본이 현대적인 잉여가치 생산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절호의 예일 것이다. 말하자면, 지불해야 할 절대지대를 낮추는 방법이, 오늘날에는 특수한 상대적 잉여가치생산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대성은 더 이상 기업 내부로부터는 생겨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보면, 그것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일 뿐이다. , 노동자의 빈궁화에 의한 축적의 강행. 자본은 더 값싼 노동력을 해외에서 찾을 뿐 아니라, 자국에서도, 인적 자본이라는 토지절대지대를 낮춰야만 한다.

이리하여 이윤이 저하하면 노동 렌트(임금)는 내리고, 노동 렌트가 내려가면 그 수탈에 의해 가능해지는 화폐 렌트로서의 이윤도 내린다는 악순환이 내장되며, 희소성에 대한 의존을 가속도적으로 깊게 하는 축적 체제가 성립한다. 이 축적 체제를 전제로, 그 속에서 고용과 임금을 얼마간이라도 지키려고 한다면, 모든 기업과 노동자를 강제 가입시키는 산업보국회 유형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일정에 올라올지도 모른다. 국가 통제에 의해 비정규 잡(job) 유형의 노동계약을 안정화시키려고 하는 방향성이다. 렌트에 의한 축적체제 그 자체에 손을 대지 않으면, 산업자본주의적 원칙의 잔재로서의 이윤=이자라는 등식은, 화폐 렌트와 함께 노동 렌트를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기업과 노동자 둘 다로부터 일종의 파시즘에 의한 조정을 요구하는 욕구가 높아져도 이상하지 않다. 채무의 민주적 배분을 도모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렌트를 지키는 파시즘이 하나의 국가 속에서 공존하는 미래를 현실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아마 그것이 포스트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공화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노동의 배분-관리국가로서의 새로운 스탈린 체제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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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 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 나가하라 유타카


2013930일 초판발행



목차

1. 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 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 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 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 이치다 요시히코

 

*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포스트 '68년'과 일본의 좌파운동: 제국과 독점된 다수성(多數性)
http://revoldaw.textcube.com/205
나가하라 유타카(長原 豊)*1)동경대학교 法政大學 經濟學部敎授
(經濟史 전공)**2)

번역: 문아영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진보평론

"근대란 영원한 미완의 영속혁명의 역사이다"(Hardt and Negri 1994).
"제국은 우리들의 눈앞에서 계속 물질화되고 있다"(Hardt and Negri 2000).
"세계 무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운동의 보편적 형상으로 생성된다"(Hardt and Negri 2000).


1. 긍정적 말더듬기와 저항하는 잔여(잔유)
"언어체계에 방언을 허락해주자"(Deleuze 1993).
나에게 주어진 원래의 논문제목은 '포스트모던과 일본의 좌파운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시론에 '포스트 '68년'과 일본의 좌파운동'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부제를 '제국과 독점된 다수성'으로 했다. 이 논문의 제목은 이 논고가 논리적인 글쓰기보다는 오히려 운동(에)의 전망 혹은 우리 미래의 구상 - 아직 도래하지 않은/도래해야 할 것 l'a/a-venir -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이 글의 기조가 보여줄 것이지만, 그 중점은 표기된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소개하듯이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구상하듯이 논한다는 점에 놓여있다.1)

따라서 나에게 '포스트모던'이란 용어는 모호하고 막연한 그러한 사상조류를 지칭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거기에는 세계 동시성을 가진 '68년 혁명'과 그 이후(post)라는 역사성이 새겨져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걸친 학생운동·노동운동·시민운동 등의 사회운동의 앙양(昻揚)과 그 패배라는 고유한 시간을 기점으로 삼아서, 80년대의 대처리즘(Thatcherism)-레이건의 경제 정책(Reaganomix)-나카소네 정치로 대표되는 세계 동시적인 신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한 반혁명의 단서를 제공하는 제도화, 이어서 90년대의 그 사회 제도적인 완성과 그러한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된 세계화(globalization)의 석권이라고 하는 일련의 세계 동시적인 사회변화의 총체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논쟁의 무의미함'은 이제 명백하다. 우리들은 '꼼짝도 못할 정도로 이 시대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이다(Hardt and Negri 1994). 그래서, '포스트모던'적인 것은 이미 승낙과 거절이라는 차원의 문제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맑스적인 의미에서의 현장분석 -- 현장비판(현장변혁)으로서의 분석 --의 대상인 것이다.

접어두기..

그러나 그렇게 역사적 제한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런 논제에 대해 많은 것을 구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글은 시론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2) 그렇지만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을 얼버무리고 일반적으로 부연하자면, 이 논제 그 자체에 이미 의미를 부여하고서, 또 이미 주어진 그런 의미를 구성하는 역사적 문맥을 반조적으로 대동(帶同)할 위험이 있는 각각의 '말' -- 여기서는 '포스트모던' '일본' '좌파' '운동' 등 --이 1952년 출생인 나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나'를 즉시 멈추어 세우고, 또 그러한 역사적 '나'에게 '말더듬기(stutter)[단어/말을 어떤 고정된 의미로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며 이로부터 새로운 개념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역주)]'를 부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즉 '포스트모던' '일본' '좌파' '운동'같은 '말'은 역사적 물질성을 가지는 기술(記述)신체로서의 이 나를 계속 동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는 역사적으로 물질적인 이 '말더듬기'를 생산적으로 긍정한다. 이 긍정은, 이 글이 의거하고 있는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에 의해 제기된 '새로운 사회계급으로서의 다수성(군집: multitude)'의 비판적인 긍정이기도 하다.3) 그 때문에 나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를 따르면서, 그러나 맑스 -- 맑스주의가 아니라 -- 에게 인도된 '개념의 창조'라는 경로를 선택한다. 이 글에서 제시되는 '개념'은, 진정 '도래해야할 사건의 윤곽, 형상, 배치'이지 그것을 소개하는 정리가 아니다(Deleuze and Guattari 1991; Scherer 1996).
그러한 작업은 1989 ~ 1991년에 있었던 소위 사회주의의 최종적 붕괴를 기점으로 삼아 무더기로 나타났으며 헤겔 식으로 왜곡된 맑스주의에 대한 수정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얄궂게도 정말 그 자체가 코제브(Kojeve) 식의 헤겔에 의거한 '비판'(예를 들면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으로 대표되는 『역사의 종언』)을 임시 변통적인 '문체'로 회피하려고 하는 일 따위는 아니다(Derrida 1993).4)

물론 나에게도 헤겔 식의 맑스주의는 비판해야만 하는 최대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예컨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악명높은 환원론(reductionism), 경제주의 및 정치주의 등에 존재할 법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경제과정에 대한 맑스적 분석에서 재빨리 빠져나감으로써 완수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이런 전략적인 환원론은 일단은 스피박(Gayatri C. Spivak)과 같은 탈구조주의 페미니스트이 주장해 온 소위 '전략적 본질주의'를 경유하면서(Spivak 1999), 수행적(performative)으로 실천된다(Butler 1990). 그러한 이론적 실천은 실천주체에게 복합상황(conjuncture)과의 부단히 교섭(pourparlers)할 것을 요청하고,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계속되는 과정(processus)일 수밖에 없는 불확정적인 실천주체를 형성하는데 지나지 않는다(Deleuze 1990). 또한 따라서 그런 교섭의 과정은 이하와 같은 텍스트적인 질문을 감행하라고 반시대적으로 강요하면서도, 사실확인적인 기술을 회피하는 복잡한 경로를 더듬어 가게 될 것이다.

나는 반시대적이며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그러한 시대에서 '일본'을 어떤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 곧 개념적으로 파악하는가(begriff-en)? 또 그러한 창조로서의 개념으로 파악된 일본의 '좌파'란 무엇인가? 덧붙여 그러한 좌파에 의한 '운동'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는 뒤에 논하는 것처럼 '근대'로서의 자본-주의가, 스스로에게는 불순한 외부장치(dispositif) 이면서도 역사적으로는 요청된 것이나 다름없는 국민 국가적인 닫힌 영역이라는 고안물을 걸치고 재등장하는 '원국가(Urstaat)'에 의거함으로써 '국(가)어'로서 재영토화되고, 그 균형체계를 보증하는 언어체계가 목적론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그러한 '말'이(Deleuze and Guattari 1972; Deleuze 1993)5) 각각의 시니피에를 단독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애초부터 가능한 것인가? 혹은 바꿔 말하면, 그렇게 질서화되기 쉬운 권력성을 가진 시니피에를 지향하면서 의미작용(시니피앙)하고, 그러한 의미작용에 의해 자신이 응고되기 때문에 타자에 대해서도 억압적으로 기능하는 주체-복속(assujesttissment)에서 배제 당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말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가능한 일인가? 또 현재에서 그런 '말'을 얼버무려 전략적으로 조합하여 말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닫혀 있는, 혹은 타인에게 배제된 '역사적 '나''라는 존재가,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그 자체로 역사적인 물질성을 가진 언어간의 엄격한 상극이 개시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역사를 배경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변경될 예정 -- 정말 미세한 사건으로서의 해후(clinamen) 혹은 요행(alea jacta est)(Althusser 1994) -- 인 이 시론에서6) 어떤 식으로 '가정될' 필요가 있는가?7)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나'에 의한 이 질문은, '말더듬기'로 표상되는 신체적 '나'의 물질적 역사성에 의해 간신히 허용되는 나를 구상하는 것 이외에는 성립될 수 없다. 이렇게 나는 더듬기·기침·흔들거림·콜록거림·멈칫거림·진동하는 일의 긍정을 기술하는 '문체'에 의해(Olkowski 1998), 글쓰기가 행사해 버리는 이 폭력을 간신히 막아내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뒤에 서술하는 '제국'에 의한 '생정치(biopolitics)'의 전개에 대항하는 노동의 '생정치'를 구상하기 위해서이다.

더 개인적으로 말해보자. 1952년은 패전에 의한 점령으로부터 일본이 '독립'한 해이며, 유구(琉球: 오키나와의 옛이름: 역주) 중앙정부 발족, 메이데이 사건 발발, 파괴활동 방지법 성립, 한국전쟁 2주년 기념집회에 대한 탄압(수이타(吹田) 사건), 안보대(자위대) 발족의 해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수에즈 운하 붕괴, 쿠바에서 바티스타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던 해, COMECON 성립과 본(Bon) 협정이 조인된 해이기도 하다. 그 다음 해는 조선전쟁 휴전협정이 조인되었으며, 일본공산당 '51년 강령'에 기초한 무장투쟁과 '국민 개창 운동'이 교착하고, 55년의 일본 공산당 '제 6회 전국협의회'로 상징되는 '평화' 노선으로의 전환이 개시되어 일본공산당이 막스 베버(Max Weber)적 의미에서 아마 국민 정당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는 단서가 되는 그러한 해이다.8)

패전과 소위 '55년 체제'의 틈(전쟁 위기) -- 그러나 '일본'의 '전후'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간 -- 사이에서 태어나서, 소위 '조선 특수'를 발판으로 삼아 구동되었던 '고도경제성장기'와 그것을 유지한 전쟁체제의 바탕 하에서, 전후 '민주주의' 교육과 미국 문화에 의해 통째로 길러진 나는, 정말 이 전후 '일본'을 살아가며, 이제 이 문장을 쓰는 특권을 긴장감을 가지고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 자신에 의해 그렇게 조급하게 상기된 역사 과정에 있는 내가, 세계관으로서의 맑스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현재의 나 자신에게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말더듬기'를 부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고유한 '말더듬기'야말로, 나에게 70년대 이후의 일본에서 '좌파'의 '운동'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며, 나를 영원한 미완의 현상(따라서 영원한 미완의 과거)으로 나아가게 한다.

바로 그 때문에 또한 이 '말더듬기'는 들뢰즈식 의미에서의 긍정적 신체-탈주선 (ligne de fuite)이라는 노마드적 경쾌함으로 열려짐과 동시에, 그 의미는 '돌출부/그루터기/잔여/수표 장부의 부본(stub)'과 관련되며, '펜촉이 둥글고 짜리 몽땅한 펜(stub)'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계속 날카롭게 꿰뚫는(stabbing) '첨필(尖筆) - 문체(stylo/eperon)' 혹은 '잔유 restance(rest/resistance)'를 나에게 초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Derrida 1972; Derrida 1978)9). 그렇다면 저항하는 잔여로서의 잔유의 방향으로 이끄는 이 '말더듬' 없이, 독자와의 긍정적인 해후를 추구하면서 어떠한 (과거와 미래가 교착하는 현재로서의) 역사를 가볍게 말하고 구상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 들뢰즈/가타리적 담론(생성의 철학)과 데리다적인 담론(탈구축)을 맑스적 담론(변혁의 철학)의 영역을 통합하여 파악하고자 하는 내 고유의 '문체'는 그런 점에서 엄밀하게 규정당하고 있다.

이리하여 맑스에 대한 지식의 축적에 바탕을 둔 '일본'에서의 맑스주의 연구에 대한 어떤 정리된 정밀하고 아카데믹한 논술도, 또 탈식민주의 연구들에 의해 촉발된 '일본'에서의 맑스주의적인 식민지주의 연구에 대한 '올바른' 담론배치도, 그것들이 지식에 머물고(따라서 지식이 '합리적'으로 배제한 광기의 정의를 무시하고)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권력성을 대동하는 한, 즉 실천으로 열리지 않는 한, 나에게는 단순한 학문적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래에 대한 약속(engagement)과 현재 상기되는 과거라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radical) 잔유에 대한 약속과의 해후=교섭의 토포스(topos) 그 자체인 '지금-여기 now-here/no-where',10) 즉 이 신체적 '내'가 결여되어 있다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항상 이미 우리들을 '꾸미기' 위한 '문체' -- 우리들 고유의 정치 -- 가 문제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문체'에 구애되면서, 그러한 '문체'의 횡단적인 공유(partage), 특히 거리에서의 공유를 꿈꾼다. 물론 나는 그런 '문체'를 전과 다름없이 맑스 이외의 것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법칙성으로서의 목적에 의해 소급되어 전제되는, 문법으로 굳어진 헤겔적인 맑스 따위가 아니다(Warminski 1998). 그것은 경제적 계급들이라는 '문체'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 민족, 인종 등의 무수한 아젠다(agenda)를 축으로 끊임없이 다양하게 현실화(actualisation)되는 운동에 다양한 '문체'를 부여하는(Bulter et al. 2000), 들뢰즈/가타리 나아가서는 네그리적인 맑스의 다수성이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에 의한 기쁨에 넘치는 운동을 비판적으로 발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렇게 반란을 일으키는 '문체'이어야 한다. 그것은 진정 자본의 명령, 즉 '제국'을 위협하는 '새로운 야만인, 새로운 반란적 노예'의 움직임의 발견이어야 하는 것이다(Hardt and Negri 2000). 이렇게 '문체'의 횡단적 공유란 '제국'을 위협하는 '새로운 야만인, 새로운 반란적 노예'인 다수성(으로)의 '생성(devien/becoming)'이다. 여기서는 '계급'을 일컫는 '문체' 그 자체가 나중에 언급되는 것처럼, '68년 혁명'을 기점으로 한 '담론 혁명'에 의해 좋든 싫든 간에 크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高橋 1999), 이제 우리들은 이 '담론혁명'을 간단하게 부인(disavow)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담론혁명' 이후의 이 새로운 계급은 어떻게 구상할 수 있는가? 혹은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된 의미에서의 개념으로서 어떻게 가설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가?

2. 맑스주의의 포스트모던적 문체

"문체는 많은 침묵과 소용돌이를 창출하는 작업을 요청한다"(Deleuze 1990).

고교시절에 우메모토 카츠미(梅本克己 1912-1974)의 맑스를 싸르트르와 함께 독특한 소외론으로 읽었다. 일본의 독립파 맑스 경제학자인 우노 코조(宇野弘藏 1897-1977)의 맑스 『자본론』을 논리학으로서 독해하여 사회과학의 본격적인 훈련을 받고, 더욱이 히로마쯔 와타루(廣松涉 1933-1994)의 물상화론(reification)이나 루이 알뛰세에게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역사 연구자인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 1968)이나 쟈크 랑씨에르(Jacques Rancere, 1981)를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나, 그러나 자크 데리다나 루이스 이리가라이, 들뢰즈/가타리 그리고 네그리 등을 비판적으로 독해함으로써 우노(宇野)의 맑스 독해를 방법적으로 해방시키려고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비정통파이면서 어디까지나 계속 맑스주의자임을 고집하고 있는 이 나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우회로를 찾아보려고 해도, 이 논제를 구성하는 각각의 '말'을 앞에서 말한 의미에서의 나의 '문체'에 따라, 즉 '새로운 계급'론으로서 문제삼지 않으면 안된다. 확실히 그 이외의 방법, 예를 들면 70년대 이후의 일본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를 편년사적이면서 사물적으로 기술하고, 거기서 소위 좌파운동의 변천과 패배를 논술하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하며, 아마도 그 쪽이 쉽게 이해될 것은 명백할 것이다11). 그러나 그런 방법에 이 현재의 패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따라서 이렇게 의심하는 나는 다음과 같이 감히 스스로에게 반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반(反)탈구축적인 질문, 즉 '~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출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과학'의 이름에 기대하여 마지 않는 '~이다'라는 목적론적 규정에 의해 운동론을 제외시키는 사실확인적 행위를 전략적으로 거절하면서.

반복해 보자. 첫째로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근대'란 무엇인가를 나타내야 한다. 이어서 둘째로 그런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관계적 규정을 바탕으로, 역사로서의 현재인 이 '일본'이 개념화되어야 한다. 그런 위에서 세 번째로 그러한 일본의 정치공간에서 '좌파'가 현재 -- '제국과 다수성과의 존재론적 적대 (ontological antagonism)' -- 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고(따라서 결코 당위(Sollen)로서가 아니라 존재(Sein)로서, 또 우파와의 한 판 대결에서의 좌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좌파인 진짜 좌파를 추구하며), 나아가 네 번째로 여기서 처음에 '~란 무엇인가?'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적인 질문과 떨어져서, 그러한 '좌파'에 의한 '운동'을 어떻게 구상적으로 가설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고정된 어떤 것의 달성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 혹은 계속 영원한 과정으로서의 '운동'으로(長原, 1998a).

1)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단절점: '68년 혁명'
'근대'란 무엇인가? 그러한 질문에 대해 나는, 그것은 자본(의 축적운동)이며, 그런 한에서 또 그런 한에서만 '시민사회'이다라고 단순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이 자본은, 자본-주의라는 사회 정치적인 역사의 구체적 시스템 -- 이 시스템에는 사회제도로서의 시장도 포함된다(Kotz et al. 1994) --을 자신의 축적운동의 주위에 부단히 배치함으로써 간신히 사회체(Socius)를 특별한 종류의 역사로 조직할 수 있는 조직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이란, 그 운동을 사회체에 있어서는 부분적이고 외부적인 운동체로서, 역사적으로 개시되지 않을 수 없었던 운동체 혹은 기계이다. 따라서 자본은 스스로의 내부적 완결과 그 전체성을 계속 욕망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은 '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이라는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운동을 꿈꾸면서도(Sraffa 1960), 현실적으로는 자기의 외부(혹은 자기가 부단히 창출하는 외부)에 부단히 보철(prosthesis)을 필요로 하는 운동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자본은 외부로서의 내부인 그러한 보철 혹은 망령(시대정신 Geist)에 부단히 의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불완전한 '완결'체인 것이다(Derrida 1993). 이리하여 자본에 의한 이런 외부의 처리 -- 포섭 subsumption/envelopment 의 형태 -- 방법만이, '포스트모던'과 세계화의 관계와 관련하여, 혹은 맑스 경제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노동(심층부 Tiefe)과 화폐(표층 Hulle)의 관계와 관련하여 이후에 문제시될 것이다(Nagahara 2001a; Nagahara 2001b).

그러나 이런 논의를 전개할 때, 다음의 문제가 먼저 처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자본을 개념적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또 다시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자본이란 자기 증식하는 가치의 운동체(기계)이다라고 개념적으로 회답한다. 즉 자본이란 자본이 역사적으로 만든 세계를 상징하는 중상주의 단계(소위 '자본의 본원적 축적기(ursprungliche Akkumulation)' 혹은 자본의 폭력적 '기원')의 상인자본(Handelskapital) 형식(G1 - W - G2 [G1 - G2 = ??G??0]) 이든, 그 환원성에 있어 고유의 완결을 달성하고 스스로의 '기원'에 있어서의 폭력을 '시민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의 평화와 계약적으로 교환한다는 가설로 은폐하는 산업자본(Industriellekapital) 형식(Gi - W1 (Pm + A) ... P ... W2 -- G2 [G1 - G2 = ??G??0]) 이든,12) 어느 쪽이든 간에 논리적으로는 'G1 - G2 (= ??G??0)'이라는 형식에 있어서 일관되어 있고, 더욱이 그러한 차이 -- 공간적 차이이든 시간적 차이이든 -- 의 증대를 반복적으로 추구하는 (불가능한) 완결적인 운동체(차이의/와의 반복)이며,13) 그런 의미에서 개념적으로는 순수하게 '공리'적인 운동체(axiomatique)이다(Deleuze and Guattari 1972).

그러나 거기서 가장 중대한 획기적인 선회축(旋回軸)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적 공유의 모순 등의 유물사관의 도그마를 비판하기 위해 우노 코조가 반복하여 강조했던 바와 같이, 상품에 의한 상품의 생산에 의해서는 재생산(reproduction) 되지 않고, 자본에 있어서는 외부인 헤테로 섹슈얼한 생식 행동 (reproduction(!))과 근대적으로 강제된 틀인 가족제도 -- coerced heterosexuality and patriarchy --에 의해서만 재생산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본래적으로는 상품일 수 없는14), 노동력의 상품화(로서의 착취(exploitation)의 은폐)와 그런 기구를 제도화시킨 외부에 의해 지탱되는 포획(expropriation) 기구로서의 산업예비군의 존재(자본의 축적운동에 있어 불가결한 내부화를 갖는 -- 빈 자리를 갖는(disponible) -- 외부로서 구조화된 실업자!) 속에 존재하고 있다(Uno 1980; Itoh 1988; Rubin 1975; Kotz et al. 1974; 長野2001 봄).15) 즉 이 반복에 있어서의 차이(혹은 차연 differance)의 추구운동은, 외부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제도적으로 부인하거나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Derrida 1992).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개념적인 의미의 자본이란 노동력의 상품화(그리고 그 표면에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이것도 역시 상품에 의해서는 생산되지 않는 토지의 상품화 과정)16)라는 가짜 상품의 사회제도적인 형성(그 완성형태는 경기순환에 의해 이미 용이하게 파괴되지 않을 정도까지 장치화되고 확대된 고정자본 -- 혹은 맑스의 '죽은 과거의 노동 vergangner Arbeit' --을 상품화하고 유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자본=가짜자본(fictitious capital) 이다)에 의해 궁극적인 탈영토화를 완성시키고자하는 공리적인 운동기구를 스스로의 이념 혹은 꿈으로서 가지고 있는 기계이다.

자본은 인터내셔널이라는 것을 주체의 실천으로 이겨내어 움켜쥐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비교하면 본연적으로 '인터내셔널'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에 의한 본래 '인터내셔널'한 전개를 기초로 해서 존재(론)적으로 인터내셔널한 전복주체로 생성될 수 있다고 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자본은 외부를 집어삼킴으로써 '일자(一者) - 전체 (Un-Tout)'가 되기를 부단히 욕망하면서(Deleuze and Guattari 1991), 그러나 집어삼켜야 할 외부를 잃자마자 그 운동을 정지시키지 않을 수 없는(Dean and Massumi 1991), 영원히 미완이며 불완전한 운동(개념) 이기도 하다. 이것이 나의 세계화에 대한 개념적 정의이다.

그러나 본래 '인터내셔널'인 이러한 자본이 현실적으로는 국민국가라는 영토성에 스스로를 구속시킴으로서만 성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자본이 내셔널한 영토성에 의해 분단된 인터/내셔널한 존재로서만 성립하며,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자본이 아니라 자본-주의로서만 스스로의 축적운동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자본이 이윤의 사적 공유를 법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민법 - 소유권법으로 대표되는 근대법체계=국민국가(근대자본-주의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長野 1997; Nagahara 2001a). 이러한 이유로 앞에서 나는 '근대'란 자본이며, 그런 의미에서 '시민사회'라고 단순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공리계를 개념적으로 구성하는 추상적 또는 형식으로서의 자본의 차원에 있어서의 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거기서의 '시민사회'도 또한 사적 소유자의 교환관계를 형식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17) 즉 이 '시민사회'에는 어떠한 구체성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18) 또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자기에 있어서의 외부의 포섭수단을 고안하는데 부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체하는 시민사회란 자본에게는 진정한 외부이며, 그 고유한 해체가 끊임없는 역사적 과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역사란 자본에 의한 그 외부의 포섭(과 그 수단의 사회적 고안)의 역사였다. 따라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대'란 국민국가 -- 현실에는 민족이라는 근대적 '가설'을 수반한 -- 라는 영토성에 의해 재영토화되고,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공리 기계로서는 국가에 의해 보완되지 않는 한 사회체를 조직할 수 없는 불완전한 자본, 따라서 자본 그 자체로서는 그러한 스스로의 역사적 제약을 해체하는 욕동(pulsion/Trieb)과 계속 충돌하는 그런 자본(에 있어서의 결여로서의 욕망)이 자본-주의라는 고유의 정치성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며, 여기서 시민사회는 자신이 놓여진 구체적 현실에 대해 역사적으로 양보하면서 운동하는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근대란 그러한 시민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욕망의 표현인 '결여로서의 욕망'이라는 욕망의 궤멸형태로서의 정체성이라는 억압적 허망함을 강제하는 공간이다(Deleuze and Guattari 1972; Butler 1990).19) 또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불완전성을 자신의 논리(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운동)로 넘어서는 것이 자본에 있어서의 영원한 과제가 된 것이다. 또 한층 더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민족-국적(nationalite)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자본(만)에 의한 내재성의 평면(le plan d'immanence)의 완성을 향한 불가능한 운동 - 세계화 - 이 이후에 보게 되는 바와 같이 '포스트모던'의 불가결한 한 측면을 구성하게 된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의해 간신히 은폐되어 왔던 자본과 국가의 긴장을, 자본에 의한 생산(노동)의 실질적 포섭을 모아서 사회를 집어삼킴으로써 국가와의 통합을 달성함으로서만 가능할 것이다. 세계화는 내셔널한 것을 강렬하게 궤멸시키면서도, 동시에 똑같은 강도로 내셔널한 것을 환기하는 폭주(輻輳)했던 과정을 더듬어 가는 일이 될 것이다. 이리하여 밑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세계화는 '포스트모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면서 그 틈에 내셔널한 것의 망령을 환기시키게 된다. 그런 상황전체를 나는 '포스트모던' 상황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성급하게 말하자면, 자본 그리고 나중에 보게되는 것처럼 자본과 일체가 된 국가 -- 물론 기존의 소위 '국가독점 자본주의론(State Monopoly Capitalism)'(Jessop 1982; Jessop 1990; Holloway and Picciotto 1978)에서의 일체화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그것 -- 로 노동이 최종적으로 포섭되는 '포스트모던'과, 자본 그 자체의 상품화(고정자본으로서의 금융자본)에 의한 자본의 국민 국가적인 폐쇄화(자본-주의)로부터의 고유한 탈출로서의 세계화가 70년대 이후 30년 간의 세월을 소비하면서 준비되어 온 것이다(Nagahara 2001a).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소위 사회주의적인 것의 붕괴, 즉 냉전체제의 종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포스트모던'이란 '68년 혁명'과 '89/91년'에 의해 분명해 진다. 또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나중에 보게 되는 바와 같이, 하트/네그리에게 비판적으로 의거해서 그런 상황 총체를 '제국'이라 부르고, 종래의 레닌적인 제국주의와 '제국'을 차별화하는 것이다(Hardt and Negri 2000).

그런데 맑스는 그런 노동력의 상품화(와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본원적 축적에 의한 수탈)20) 그리고 그 생산과정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 가치의 생산이라는 생산과정에서의 착취의 형태변화에 따라 두 단계 혹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21) 그런 이해에 대해서는 『자본론』만이 아니라 본래 『자본론』에 삽입될 예정이었던 맑스의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Marx 1933)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 두 단계-형태란 외부의 '포섭'이 경유하는 두 단계-형태로서 '노동 자본의 토대에 대한 형식적 포섭'과 '노동 자본의 토대에 대한 실질적 포섭'을 각각 지칭하는 것이다. 네그리는 이 두 단계-형태를 한층 더 현상분석에 고유하게 적용하고, 전자를 '근대' 그리고 후자를 '포스트모던'의 지표로 한 뒤, 이어서 전자의 노동자 군집을 산업자본형식 혹은 포디즘 시기에 테일러주의(Taylorism)적으로 규율화되는 '대중적 노동자(mass workers)', 후자의 그것을 포스트 포디즘 시기의 소위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혹은 포스트 포디즘 시기에 포스트 테일러주의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적 노동자(social workers)'로 각각 다시 위치지우고 있다(Negri 1991; Hardt and Negri 1994; Negri 1996; 長野 2000). 먼저 네그리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설명을 하고 있다. 길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인용하고자 한다.
"형식적 포섭이라는 제 1국면은 자본이 노동과정의 지휘자 혹은 관리자로서 개입하는 형식으로서, 노동과정은 자본의 토대에 포섭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내부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이런 배치에서 자본은 노동을 그것이 보여지는 그대로의 형식으로 포섭한다. 자본은 종래의 생산양식에서는 …… 자본주의의 외부에서 발전한 현존하는 노동과정의 표면에서 노동을 지배한다. 즉 노동과정은 자본의 영역 외부에서 생겨나며, 그 후에 자본의 내부로 '이입된 외부의 힘'으로서 자본의 명령에 복종한다……. 그러나 자본은 생산의 사회화나 과학적·기술적 혁신을 통해 다양한 생산의 담당자가 놓인 상황을 계속 변용하며, 새로운 노동과정을 창조하고, 종래의 노동과정을 파괴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므로 노동의 포섭이 '실질적'이라고 하는 것은, 노동과정 그 자체가 자본 내부에서 산출되고, 그러므로 노동이 외적 힘이 아니라 자본 그 자체에 고유한 내적인 힘으로서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Hardt and Negri 1994).
이렇게 자본은 노동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자본에게는 존재적으로 불가결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내부에 있어서 그 조직형태를 다양하게 변경하면서도 자본에 대해 부단히 적대하는 노동(계급투쟁의 역사)을 그런 노동에 의한 자본으로의 존재적 적대를 지레로 삼고, 또 그런 적대의 형태들을 학습함으로써만 자기의 생산력 상승을 경기 순환(불황기에서의 합리화)에 따라 달성할 수 있는 자본(합리화의 역사)과의 관계, 즉 맑스의 소위 '자본-임노동' 관계의 존재론적인 재독해로서의 '포섭-적대' 관계에 의해서만 사회체의 자본주의적인 조직화를 수행할 수 있다(長野 2000). 나는 이러한 이해를 네그리의 '노동의 존재론'으로서의 전복주체론(subversive subject) 혹은 단적으로 '노동의 내재론(immanetisme)'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렇다면 맑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러한 '포스트모던'의 해석에서 그 사회적인 구체적 위상을 어떻게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2)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
네그리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노동(력)의 자본의 토대로의 포섭에서 두 단계-형태에 따른 시기 구분인 '근대'에서 '포스트모던'으로의 이행의 시점을 '68년 혁명'에서 찾고 있다. 또 푸코를 의식하면서, 거기서의 변용의 핵심을 '자본은 이미 외부를 갖지 않는다'고도 묘사하고 있다.22) 그것은 모든 생산과정이 '자본 자체의 내부에서 발생'하고, 그 결과 '사회 전체' 혹은 '세계'의 생산-재생산이 '자본의 내부'에 실질적으로 포섭된 사태를 지시하고 있다. 네그리는 그런 사태를 자본-주의에 의한 지배와 착취가 '공장의 벽에서 흘러나와 모든 사회 관계로 침윤'하는 데서 성립하는 '공장-사회(factory-society)'라고 부연한 뒤, 나아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실질적 포섭의 토대에서 노동은……이미 자본주의적인 사회 조직화를 규정하고 유지하는 지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기 발로 전진하는 기계, 자본주의적인 자율기계(automaton)인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이 이미지는 자본의 장년(長年)의 꿈의 실현 -- 노동에서 분리된 것으로서의 자기를 제시한다"(Hardt and Negri 1994).
'공장의 문 앞에서 민주주의는 멈추어 선다!'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던 맑스는 『자본론』 제 1권의 '기계와 대공업'의 기술을 일관되게 군사용어로 기술하고(산업예비군=예비역을 상기하라!), 또 거기서 푸리에(Fourier)를 인용하여, 공장을 '완화된 (구미에 맞는) 형벌장(강제 노동) (gemilderte Bagnos(bagne))'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런 공장이 '모든 사회관계로 침윤'되었다고 하는 이 이해의 함의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네그리는 국가-형태의 법학적(포스트모던 법)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을 '국가에 의한 사회의 실질적 포섭'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관계라고 특징지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의미는 명백하다. 그것은, 종래 자본의 외부에서 '국가로 귀착하는 사회적 변증법을 여는 매개의 공공 공간'이었던 시민사회, 즉 '형식적 포섭의 공간'이며 국가가 그 규칙들에 대해 '외적인 사회적 적대를 매개, 규율, 회복하는 장소'였던 외부로서의 시민사회가 그 '중요성을 상실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포스트모던'의 특징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쇠퇴'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창없는 감옥 혹은 공장 감독관없는 노동감시이며(Hardt 1995), 일반적으로는 자본에 의한 감시없는 노동이고, 그러나 역설적으로는 생산현장에서의 쟁의에는 자본으로서의 국가가 직접 대치하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서 반해고투쟁에 대한 국가의 개입 형식을 상기하라.23) 이러한 '포스트모던'상황은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이미 시민사회는 정치적인 것의 형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회적인 것의 절멸과 정치적인 것의 전체화에 결과한다. 이렇게 포스트 모더니티란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사멸, 혹은 회유된 정치형태로의 시민사회의 변용이다."(Hardt and Negri 1994)
이리하여, 코뮤니스트가 계속 추구하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성공할 수 없었던, 혹은 비참한 형태로만 성공했던 '국가의 사멸'은 '포스트모던'에서의 자본주의에 의해 전도된 형태의 토대에서 달성된다. 거기서의 국가에 의한 '규칙'이란, 이미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판옵티시즘(panopticism)적인 '규율장치'가 아니라, 들뢰즈적인 의미에서의 '통제 네트워크를 통한 지배/제어'이다. 또 그러한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현대적 추이'는 맑스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과 정확히 조응하는 것이다. 또 거기서의 '포스트모던 국가'는 이런 사회적 생산(공장-사회의 성립)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 평면 전체(super flat)에서의 '명령에 의한 상품생산'으로 개념화된다. 이 명령은 '완화되고 구미에 맞는' 군사적 명령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감시 카메라·휴대전화·인터넷 등의 소위 'IT혁명'에 의해 사회에 전면화되는 감시와 명령에 기인한다.

3) 포섭과 잠재력(Potentia)으로서의 실천 주체: 생정치(biopolitics)
네그리와 하트는 흥미있는 신작 『제국』에서, 맑스와 푸코 및 들뢰즈/가타리와의 결합적 이해에 의한 '포스트모던' 규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사회형태의 이행을 '포스트모던'의 지표로 삼는 점에서 일관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보다 중대한 관점의 이행이 발견될 것이다. 그 첫 번째 점은 앞에서 말했던 '명령에 의한 상품생산'을 가지고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 혹은 포스트 포디즘적인 자본주의 --를 특징지운다는 관점을 보다 심화시킨, 다음과 같은 이해이다.
"관리사회는 규율사회와는 대조적으로 명령의 메커니즘이 종래와 비교하여 현격하게 '민주적'이 되고, 사회적 영역에 내재적이 되며, 시민의 두뇌와 신체 전체에 배분되는(근대성의 위기를 밀고 나아가서 포스트모던으로 전개하는) 사회이다"(Hardt and Negri 2000).
여기서는 자본에 의한 명령이 '민주적'이 되었다고 쓰여져 있다. 그것은 앞에서 내가 지적했던 자본에 의한 '시민사회'의 병참화와 사회전체에서 '완화되고 구미에 맞는' 군사적 명령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함의는 다음의 발언에 의해 곧 이해된다. 즉 '포스트모던'의 형성을 의미하는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절차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힘들의 실천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하는 관점의 강조이다.

앞에서 나는 네그리의 '노동의 존재론'으로서의 전복주체론에 대해 논했다. 그러나 자본이, 자본으로 부단히 포섭되면서도 그런 포섭과정에서 적대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결집해 가는 노동을 '규율'화 하고, 이어서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즉 '포섭'과정이 자본에 있어서는 동시에 생산력의 상승과정이어야만 했던 이상, 그런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 혹은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행에서는 존재로서의 노동자가 노동과정에 '주체'적으로 참가하도록 조직하는 것이 생산력 상승을 추구하는 자본에게 불가결하며, 따라서 자본은 그러한 '관리'를 노골적인 억압이 아니라 '민주적'인 조직화에 의해 수행하고 '살아있는 노동'을 '주체'적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는, '포섭-적대적 존재'에 있어서의 사회적 변증법의 작동이 거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점이 신체로서의 '생'의 포섭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노동(자)의 '두뇌와 신체'는 주체적으로 동원된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수동상태를 능동적으로 욕망하는 노동자의 존재 양태이며, 그것을 가지고 지젝(Slavoj Zizek)은 '상호 능동성(interactivity)과 상호 수동성(interpassivity)'의 교착으로서의 '포스트모던'이라고 파악한 것이다(Zizek 1998). 그렇다면, 하트와 네그리가 '민주적-명령'이라고 했던 형용 모순의 심화를 '근대성의 위기'의 심화 혹은 '포스트모던'의 지표로 파악하는 것은 그들의 이해의 일관성있는 심화를 의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파시즘이나 식민지 지배에 의한 잔혹한 폭력의 행사도 설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와 가타리는 '파시즘 '국가'가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정치적인 재영토화에 대한 매우 환상적인 기획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기술하고, 나아가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에 의거하여 '대중은 속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중은 그 때 각각의 상황에서 파시즘을 욕망하고 있었다'고 소리높여 주장했던 것이다(Deleuze and Guattari 1972).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이 일본 제국주의, 곧 천황제와 '황군(皇軍)'병사의 만행을 일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공통 인식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그런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 --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행 --의 핵심이 노동자의 '두뇌와 신체 전체' 혹은 더 단적으로 '생(bios)의 문제' 혹은 '생 그 자체의 생산과 재생산'을 감추려고 애쓰는 '새로운 권력 패러다임의 생정치적인(biopolitical)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에 의해 포섭되고, 사회전체에서는 내부화된 존재인 채로 절대적인 노동이라는 사회적 변증법을 전복 주체론 혹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힘들의 실천'으로서, 어떻게 정말로 반전하듯이 구상하고 가정하는가가 우리들에게 긴급한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이 글의 첫 부분에서 내가 '말더듬기'로 파악되고, '나'라는 역사적 신체에 구애되며,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이러한 제국에 의한 '생정치(biopolitics)'의 전복의 문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4) 세계화: 제국주의와 제국
위에서 제기한 문제는 마지막 장에서 간단하게 취급하는 것으로 하겠다. 여기서는 또 하나의 논점을 보아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네그리와 하트가 전개한 세계화와 '포스트모던'의 관계이다. 거기에는 커다란 심화가 발견된다. 네그리와 하트는 90년대 고유의 자본의 국민 국가적인 폐쇄화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세계화를 지금까지 보아온 '포섭론'과 결합시키기 위해, '자본에 의한 사회의 포섭은 세계시장의 구축에 의해 완성될 경향을 갖는' 것을 새롭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의 논의는 이하의 점에 모두 열거되어 있다.
"확실히 세계시장 없는 실질적 포섭의 과정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질적 포섭의 과정없는 세계시장의 완전한 실현을 있을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세계시장의 실현과 일반 균형 혹은 적어도 세계규모에서의 이윤율의 관리는 금융적인 혹은 화폐적인 요소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인 노동 관계들의 변용을 통해 일어나야만 한다. 규율은 이 변용의 중심적 메커니즘이다. 새로운 사회적 현실이 자본의 발전과 인구의 프롤레타리아화 양쪽을 단일한 과정으로 통합함으로써 형성될 때, 명령의 정치적 형태는 스스로 이런 과정에 적합한 방법과 규모로 형태가 변용되고 접합된다. 이것이 규율체제의 세계적인 유사 국가이다"(Hardt and Negri 2000).
여기서는 맑스 『경제학비판요강(Grundrisse)』의 심층=노동(Tiefe)과 표층=자본(Hulle)라는 변증법적으로 배치된 대립 개념 혹은 그러한 심층과 표층의 상호 침투로서의 자본-주의의 역사의 논리적 기술이라는 논의를 배경으로 하여(Nagahara 2001a), 월스트리트가(街)·카부토 거리(동경의 증권시장[역주])·도시 등에서 24시간 끊기지 않고 매매되는 자본 등으로 상징되는24), 고정자본-표층(세계적인 자본시장에서 금융적으로 순환하는 화폐나 주식자본)에 의한 단순한 세계적 화폐시장의 단일한 실현, 즉 스피박의 소위 금융화(financialization)로서의 세계화라는 측면만이 아니라(Spivak 1999), 그들이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라는 '사회적인 노동 관계들의 변용'에 바탕을 두고 실질적으로 완성되는 세계시장에 의해 처음으로, 세계시장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 규모적인 평균 이윤율의 균형이 달성되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서는 세계화(세계시장의 표층적 실현)가 지금까지 경쟁적으로 구성되어 있던 국민경제(국민국가)의 주권을 다른 주권(제국)으로 대체하고, 국민으로 여겨져온 노동(자)이 그런 국민 주권적인 닫힌 영역에서 해제되어 스스로가 '주체'적이고 '민주'적으로 동원될 것을 수락하면서도 적대하는 노동자의 세계적 유동(nomad)으로서의 세계화의 완성형태가 예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종류의 극단론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소위 그들의 '제국'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편에는 새로운 노동 이동에 의한 세계적 규모의 자본에 의해 노동이 실질적으로 포섭되는 것 --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세계도시에서의 이민자층의 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Sassen 1991; Sassen 1996) -- 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제국론'은 종래의 레닌적인 제국주의론과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종래의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이 '그것들 전부를 중층 결정하는 단일권력이라고 하는 이념으로 대체되고, 단일한 방법으로 구조화되며, 탈식민적이고 탈제국주의적인 권리-법(right)이라는 공통의 개념의 토대에서 처리'되는 점이 강조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이다. 물론 나는 이런 그들의 이해가, 이미 카우츠키(Kautsky)나 부하린(Bukharin) 등에 의해 주장된 소위 '초제국주의'적 균형 --그것은 역사적으로는 부하린적 극우주의나 베른슈타인(Bernstein)적인 진화론적 사회민주주의에서 결실을 보았다 --이나 전후에 있어서 소위 '국제가치론'으로 접근하는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Brewer 1980; Emmanuel et al.: 1971). 동시에 그런 '초제국주의'적 균형이나 국제가치론으로의 비판 등에 의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논점 -- 국민국가의 주권론적 위치를 바꾸는 것 -- 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 여기서는 중요하다.

하트와 네그리는 로마 제국(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한 '전제 Despot' 장치 혹은 '원국가')을 그리면서, 소위 그들의 제국이 '역사적 시간을 소진하고 애써 감추려 하며, 역사를 주조하고-중단하며, 과거와 미래를 스스로 자신의 윤리적 질서로 소환'함으로써, 그 세계 '질서를 영원, 영겁, 필연의 것으로서 제시'한다고 하면서, 나아가 그러한 제국이 '자기 자신의 힘을 그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권리-법과 평화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 제시하는 능력을 근거로 형성'되는 것을 강조한다(나는 이 글을 미국이 영국과 함께 다시 이라크를 공폭하고, 그것을 세계의 치안을 지키는 경찰행위라고 정당화하고 정통화하고 있는 2월 18일에 쓰고 있다)(Dean and Massumi 1992). 즉 우리들이 상기하여 미래를 향해 내던져야만 하는 긍정으로서의 역사가 자본에 의해 자리를 빼앗기고, 치안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요동치는 과거에서부터 이제 곧,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사는 치안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에 의한 국민국가주권의 단순한 후퇴가 주장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주권이 새로운 형태를 띄고, 지배의 단일 논리의 토대에서 일체화된 일련의 국민적이고 초국민적(supernational)인 조직에 의해 구성되는' 사태, 주권의 세계적인 형태가 제국으로 이해된 후에 거기서의 경찰 행위(policing)에 대한 세계적인 동의의 형성 형식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미국 그 자체가 제국으로 취급되고 있지는 않다(Hardt and Negri 2000).

이러한 제국은 단순히 '68년 혁명'만을 기점으로 해서 성립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68년 혁명'을 기점으로 하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의 심화(반혁명)가 '포스트모던'으로서 사회적으로 성립하고, '89/91년'의 냉전체제의 최종적 붕괴를 계기로 하는 '세계화'에 의해 완성된다고 하는 시간의 흐름, 즉 약 20년이 문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68년 혁명'과 '89/91년'을 기점으로 하는 '포스트모던'과 '세계화'의 세계규모에서의 제도화인 제국체제가 일본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상을 바탕으로 일어났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로서는 그 자체로 거대한 협동작업이 필요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 해명을 낱낱의 조항으로 나누어 정리하는 차원에서 휘갈겨 쓰듯이 제시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25)

3. '포스트모던' 일본의 '좌파'

경제학자 코즈키 코보(高衫公望)는 70년대 이후의 경제사상을 '1970년대에는 IMF-브래튼우즈 체제(고정 상장제) 붕괴, 오일 쇼크, 스태그플레이션, 제 3차 산업인구의 증대와 농촌인구의 감소에 의한 탈공업 사회화, 정보화 사회 현상 등으로 보았다. 1980년대는 대처·레이건 정권에 의한 신자유주의 공세, 레이거노믹스에 의한 미국 '쌍둥이 적자'와 일미무역 불균형, 그 바탕에서의 일본기업의 약진, 일본경제의 거품화, 아시아경제의 대두, 동구혁명, 1990년대는 미국 경제의 '뉴 이코노미'적인 부활, EU·미국·아시아의 지역 경제 통합, 일본의 버블 붕괴와 헤이세이(平成) 불황에 의한 '오른쪽 어깨 상승의 신화'의 종언, 아시아 경제위기와 부활, 지구 환경 문제의 심각화, 본격적인 정보화 사회의 도래, 즉 IT 혁명에 의한 제 3의 세계화의 태동'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뒤, 맑스의 정치경제학에 의한 그런 사건들의 해석이 시대에 뒤쳐지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高衫 2001; 野口 외 편 2000). 타당한 비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청되고 있는 것은 그런 경제 사건에 대한 해석의 변혁을 향한 복귀이며, 그것을 위한 통일적 논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계급론'을 말할 '문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너무나 자극적인 작품 『천의 고원(Mille plateux)』에서, 현대에서 노동의 '두 방향으로의 작열'을 지적했다. 이 두 방향은 '이미 노동을 경유하지도 않는 강도화(强度化)된 잉여 노동'과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이 된 외연적 노동'이지만, 그것은 '고용의 공리를 방기하는 전체주의적 경향과 신분을 다양화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이 결합하는 장이기도 하며, 거기서는 항상 '계급의 분단'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Deleuze and Guattari 1980). 그것은 한편으로는 노동이 국가와 일체화된 사회체 전체에서 실질적으로 포섭되고, 공장-사회 전체에서 노동이 착취되는 방향과, 다른 한편으로 소위 정규고용에서 이탈하는 불안정하고 임시적인 노동의 수탈과의 뒤섞임이 전체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의해 정치적으로 대리-표상(계급분단)하게 된다(Zizek 1998). 그리고 70년대 이후의 일본에서 그런 사태가 대략 실현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68년 혁명'과 '89/91년'이라는 두 개의 기점을 특징지우면서 실현되고, 90년대 이후에서 나타난 두 가지의 속어, 즉 '프리터'(영어의 free와 독일어의 Arbeiter(노동자)를 합친 조어)와 '리스트라'('restructure'의 일본어식 조어로 해고를 의미한다)에 집약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용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회전체의 불안정한 다취업(多就業) 형태에 놓인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재의 '일본'에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의 사회적 표현이다. 또 이것이 '일본'을 어떻게 개념으로서 파악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68년 혁명'과 그에 대한 반혁명으로서 '89/91년'의 냉전체제의 종언과 제국-세계화의 제패, 그것은 어떤 30년 간이었는가? 간단한 메모를 제시해 두려고 한다.

정말로 70년대는 노동 혹은 반란 패배의 10년이었다. 세계적인 동시성을 가진 '일본'에서 60년대 말기부터 70년대 초기에 걸친 학생·시민·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의 앙양은 대중적인 학생운동에 관해서 말하면, 69년의 '전국 전공투 연합'의 결성으로 패배과정에 들어섰다. 그 이후,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학생운동의 앙양은 보여지지 않는다. 학원은 다양한 형태를 띈 운동이 시도되면서도, 이제는 어지간히 평화롭다.

다른 한편, 노동자 운동에 대해 말하자면,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반일공계(反日共系)의 신좌익 당파들에 의한 청년 노동자의 조직화(반전 청년위원회 등)도 70년대에 들어서서 통합의 방향이 아니라 개별 당파로의 분열·항쟁, 그리고 권력에 의한 탄압에 의해 약화되었다. 더욱이 중요한 대규모 노동조합을 주체로 하는 소위 노동자 본대(本隊)에 대해 말하자면, 60년대 초의 에너지 혁명에 의해 탄광 노동자 등의 전투적 노동조합(三井三池 투쟁!)이 최종적으로 해체된 후, 전후 노동운동을 이끌어왔던 공공기업체등노동조합협의회(공노협)이나 정부기관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관공노, 그리고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 등의 공공부문의 노동자에 의한 노동운동도, 73년부터 75년에 걸친 파업권 확립 파업 등을 중심으로 한 투쟁에서의 패배를 마지막으로 현저하게 후퇴했다.

그러한 일련의 패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 중 첫 번째는, 신좌익 당파들에 의한 대중운동이 70년대 초에 몇 개의 '비극적 사건'에 의해 정치방침·조직론·운동론 등 밑으로부터 혼란에 빠진 점이다.26) 또 두 번째의 변화는 전후 '일본'에서 임금결정 시스템을 지배해 왔던 '춘투(春鬪) 시스템'이 실질적인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다. 전시(戰時)의 임금통제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이 춘투 시스템은 1946년에 창설된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등으로 상징되고, 자유민주당에 의해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총자본'과 1950년 창립된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를 운동주체로 하며, 일본사회당에 의해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총노동'이라는 대립 축으로 국가가 협조주의적으로 개입하고, 그 해마다 임금 베이스를 확립하는 사회시스템, 소위 전후 '일본'형 조합주의였으나 그런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종언되었던 것이 70년대의 중대한 사건이다(長原 1989).

또 그런 점에 관련하여 중요한 사건은 춘투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쌀가격' 결정 시스템이 70년대 초부터 기능하지 않게 되고, 값싼 도시 노동력의 공급원으로 위치지워져 왔던 농업부문이 그런 의미에서의 구제 대상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건을 소위 '55년 체제'의 해체와 그에 의한 전후형 좌익 정당의 해체,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등장, 즉 농민정치의 해체와 도시주민을 기초로 한 정치로의 전환이 준비된 과정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실제로 일본 자본주의가 1965년의 소위 '전환점'을 기점으로 '노동력 부족' 경제로 이행하고, 종래 '고도경제성장'을 유지해 왔던 농촌을 공급원으로 하는 값싼 노동력에 의한 생산력의 상승(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노동력의 형식적 포섭)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에 의한 생산력 상승의 사회적 구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노동력의 실질적 포섭)이 목표가 되었다는 사실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새로운 수준에서의 '포섭'을 지렛대로 삼은 '포스트모던'형의 사회재편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애초부터 한 편으로는 종래의 일본적인 케인즈형 재정정책과 자유민주당형 농촌정치와의 결합(보조금행정=토건(土建) 국가!)이라는 방향성과,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기술혁신에 의한 노동 자본의 토대로의 실질적인 '포섭' 노선과의 뒤섞임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좋다. 1969년에 결정된 '신전국총합개발계획'이나 그 자민당 버전이었던 타나카 카쿠에이(田中角榮)의 '일본열도개조론'(1972년)으로 상징되는 고정자본(과잉유동성)에 의한 사회재편과 1974년에 산업구조심의회에 의해 제출된 '산업구조의 지적 집약형으로의 전환'이라는 제언이, 전자가 80년대의 거품 경제에 직결되며 또 그것이 90년대에는 세계화(세계자본시장에서의 유통)로 이어져 가는데 비해서, 후자는 80년대 노동(운동)의 70년대에서의 결정적 패배의 제도화를 계기로 한 자본으로의 실질적 '포섭'과 특히 90년대 후반에 운운되었던 소위 'IT 혁명론'으로 계속되게 된다(長原+港千尋, 2001).

그러한 과정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가장 상징적인 정치 노선이, 소위 '임조(臨調)'노선이다. 이 정치노선은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내각시대에 조직된 경단련(經團連) 회장 도코 토시오(土光敏夫)를 장(長)으로 하는 '임시 행정 조사회'(1981년)를 대처리즘-레이거노믹스에 호응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1982년에 총리대신 취임)가 '작은 정부'를 내걸고 추진했던 점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국철에서 볼 수 있는 공공사업체의 분할·민영화 등의 시장원리주의로 노동을 되돌려 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그것은 개조개혁론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정말로 오늘날의 소위 신자유주의로의 길을 쓸어내어 깨끗이 하는 것이며, 거기서의 '작은 정부'란 앞에서 썼던 것처럼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현대적 추이'에서 자본에 의한 '국가의 사멸'과 '공장-사회'의 전면화에 의한 사회 전체의 자본에 의한 '포섭'을 근거로 삼은 '작은' 정부, 그러므로 실질적으로는 사회전체가 국가를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거품 경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수한 90년대 일본자본주의의 장기화되는 불황과 퇴적되는 실업자, 또 '프리터'로 지칭되는 불안정 다취업 형태로 노동하면서 '본업'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실업상황에 있는 젊은 노동자의 사회전체에 의한 '포섭'이라는 사태나, 규제완화 혹은 세계화라는 명목 하에서 행사되고 있는 '리스트라'라는 사태로 귀결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80년대 중반부터 젊은 노동력의 재편성을 목표로 한 '임시교육심의회' 노선도 '임조' 정치에 연동하게 된다. 이렇게 현재 실업률은 4.8%에 달하고, 젊은 노동력과 고령 노동력에서는 실업률이 더 높은 상태이다(長原 2001 봄).

또 그러한 상황은 한편으로 80년대 초부터의 일본사회당의 변질 과정, 즉 '일본에서의 사회주의로의 길'의 재검토 개시(1981년)나 총평의 해체와 '전일본민간노동조합연합회'(연합)의 성립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민주당)의 대두, 다른 한편으로 소위 일본적 '노사'관계의 내실을 구성해 온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의 최종적 부정을 내세운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일경련)의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1995년)에서 볼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노무관리인 자기임금론과 'employability'론의 호응관계가 성립된다(Boyer and Yamada 2000).

이렇게 볼 때, '1989년의 사태는 1968년의 의미의 실현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코바야시 슌이치(高橋順一)의 지적은 정말로 옳다. 나는 그러한 지적을 '68년 혁명' 이후의 노동력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 '89/91년'에 의한 냉전체제의 종언과 그 세계화로서의 완성이라고 맑스 정치경제학적으로 파악할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근원적인 변용을 강요당했던 것은 담론의 배치를 통해 구성되어 온 근대의 역사성의 틀 그 자체'이며, 그런 의미에서 '담론 혁명'이었다고 하는 지적은 옳은 것이다(高橋 1999). 그렇다면, 그런 틀의 변경에 있어서는 '계급' 개념이라 하더라도 종래의 의미로 사용될 수는 없다(Laclau 1977; Laclau and Mouffe 1985).

이리하여 정말로 '새로운 계급론'을 이야기하기 위한 '문체'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전략적인 토대 환원론 혹은 경제주의=정치주의에 결별을 고하는 지점은 진정 이런 '담론 혁명'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노동이 자본에 의해 사회전체에서 실질적으로 포섭된 현상에서의 '포스트모던 프롤레타리아'의 발견이어야 한다(平井 2001 봄). 그것은 또한 '제국'에 저항하는 맑스의 소위 '살아있는 노동(lebendige Arbeit)', 곧 '자본주의적인 노동조직과는 독립적으로 조직되는' 이 '살아있는 노동'(Hardt and Negri 1994)의 기쁨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계급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구상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자본의 탈영토화에 저항하여 탈영토화하는 살아있는 노동 혹은 노마드적인 다수성의 등장이다. 간단하게 구상하고 가설을 만들어 보자.

4. 영원한 '운동': 새로운 '대지'를 그리며 전쟁기계를 구성하는 '연결'
"권력 옆에는 항상 힘이 존재한다. 지배 옆에는 항상 불복종이 있다"(Negri 1998).
"죽어있는 노동에 대해 살아있는 노동을, 그리고 구성된 권력에 대해 구성적 노동을 대치하자"(Negri 1997).
이같은 묘비문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러나 '단독 주체의 노마드적 운동, 탈영토화하는 욕망의 흐름, 내재적인 일관성의 평면들에 있어서 정치적 집합(assemblage)'의 등장을 상상하고 만들어 내는(Deleuze and Guattari 1980), 다음 두 문장이 반드시 인용되어야 한다.
"이 구성하는 힘은 국가기계에 의한 포박을 위해 도랑이 붙어있는 공간, 영토화된 장치를 결코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구성된 세계를 쉴 틈 없이 뒤흔들고, 자기자신의 자유로운 활동, 구성적 힘의 창조성이나 쇄신과 함께 작동한다. 주체적 집합(assemblage)은 스스로의 사회적 조직화의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아래로부터의 단독적 커뮤니티를"(Hardt and Negri 1994).
"권력의 패러독스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생(生)의 모든 요소를 자기 내부로 통합하고 둘러싸(따라서 다른 사회적 힘들을 효과적으로 매개하는 능력을 상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동시에 새로운 문맥, 새로운 최대한의 복합성과 억압할 수 없는 개체화(sigularization)라는 환경을 백일 하에 폭로한다는 패러독스이다"(Hardt and Negri 2000).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제는 새로운 포스트모던 프롤레타리아가 '가변자본'으로서 자본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자율적인 담당자로서 포섭되는 기계와 기술의 새로운 사용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며(Hardt and Negri 2000), 그것을 위해 '한편으로 사회적 지식 이해의 다양한 차원과 결합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장치의 파괴력을 중성화하는 기능적 다중심적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다(Guattari and Negri 1985). 일본의 젊은 네그리학파는 그런 행동을, 진정 일본 역사와 현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이것이 포스트 '68년'에 있어서, 그리고 포스트 냉전시대에 있어서, 즉 제국의 토대 하에서의 일본 좌파=다수성(multitudes)을 상징하는 발언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사회계급의 태동이 느껴진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얻어맞은 자만을 사랑한다. 화폐의 뒷면에 새겨진 일반적 등가성의 보완물로서의 스펙터클=가부장제는 사람들의 사랑과 승인을 허락하는 또 하나의 중심적 등가성을 제공한다. 천황제는 천황제에 살인당한 자만을 사랑한다. 천황제는 죽음과 사랑이 교환가능한 것 같은 비뚤어진 규칙을 상품경제의 기초에 두고,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삼았던 것이다"(失部, 山の手 2001).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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