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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읽기




Ghostly Demarcations: A Symposium on Jacques Derrida's Specters of Marx (Radical Thinkers)

1.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진태원씨의 번역으로 EJ북스에서 새롭게 출판된지도 벌써 1년이나 넘게 흘렀다. 1993년에 처음 출간되었지만 내가 실제로 이 책의 일부를 접했던 것은 ≪뉴레프트리뷰≫에 수록된 영어 발췌본(1994년)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1996년에는 당시 아직 학교를 뛰쳐나오지 못했던 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만들었던 잡지 ≪자유정신≫의 창간준비호에 이 영어본을 대본으로 번역해서 수록했던 적이 있다. 물론 번역을 마무리하여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인 1996년에 양운덕 선생의 번역으로 한뜻출판사에서 출판되어 버려 조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양운덕 선생은 아마 그때 고려대에서 방학이면 프랑스철학 특강을 했던 적이 있어서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다. 특히 그때 부르디외와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 처음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나중에 한번 꼭 이들을 탐독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어쨌든, 일단 원고를 넘긴 후에 선생의 책을 사서 보았는데, 번역에 유감을 품었었다. 물론 내 번역이 좋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내가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의문들이 속시원히 해명되지 못했던 것 등등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건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프랑스어 대본을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뉴레프트리뷰≫에 수록된 관련 글들을 같은 잡지에 번역하면서 나름대로 이 책에 대한 이해는 있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중에 벤야민을 비롯하여 텍스트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은 거대한 착각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침묵이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은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후에 프랑스 출장을 가서 이 책을 사왔고 미국 출장을 가서는 영어본을 사오기도 했지만, 이 책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주어버렸고 실제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진태원씨의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이 책의 불어판 서문을 어떤 분과 잠시 읽기도 했었고, 새 번역본이 나온 후에는 두 명이 이 책을 사주었다. 하지만, 역시 읽지 않은 채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며칠 전 한권이 마땅한 주인에게 돌아갔다. 좋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지금으로 따지면 이 책은 거의 15년이 지난 후에나 제대로 번역된 것이나 다름없다. 역자가 말하듯이 데리다의 가장 중요한 책은 아닐지언정 데리다의 책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었던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논란은 모두 외국의 논란이지 한국에서의 논란은 아닌 것 같다. 따라서 오늘날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러한 논란들을 모두 섭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바로 지금의 이 공간과 이 시점에서 읽는 것이어야 할 터이다. 주지하듯이, 이 책은 맑스를 논하는 책이라기보다는 데리다의 정치적 몸짓이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전면화된 책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정세적 국면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세적 국면을 감안해야 할 터이다. 물론 원래 강연 기록물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데리다의 정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책 다음에 출판된 ≪마르크스의 아들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3. 이 책에는 데리다의 몇 가지 기본 개념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우선 ‘유산상속’ 개념을 다뤄보자. 데리다가 말하는 ‘유산상속’은 주어진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산을 ‘여과하고 선별하며 차이화하고 재구조화’하는 것이며, 데리다의 개념인 ‘탈구축/해체’ 그 자체이다. 데리다는 유산상속이란 형태를 바꾸는 작용을 하는 필터라고 쓰고 있기도 하며, ‘비판적 상속’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여과하고 선별하는 조작은 현재가 과거를 다시 만든다는, 프로이트가 1890년대부터 생각해 왔고 라캉이 전개했던 ‘사후성’ 개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1990년대에 붕괴 직전의 소련을 방문한 데리다의 소련 기행문 ≪자크 데리다의 모스크바≫(1996)에서도 논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합리적인 이야기’라는 개념이 제시되는데, ‘여과하고 필터로 걸러내다’(cribler, filtrer)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이 모스크바 기행문에서도 1990년대의 데리다의 사유방법이 명백히 출현한다. 즉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자크 데리다의 모스크바 기행≫에는 공통의 방법이 있다. ‘사후성’이란 어떤 것을 ‘사후에, 나중에’ 구성하는 조작이다. 프랑스어로 사후성은 apres-coup이다. “가정이 사실을 만든다”는 사고방식, 이것이 일종의 사후성이다. 사후성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철학자 퍼스의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친 김에 하는 말이지만 퍼스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가설연역법’(abduction)이라는 퍼스의 중심 개념도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것 같다.)

존재로서의 유산상속. 유산은 그대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탈구축되며 변형된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우리의 존재가 첫 번째의 상속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때의 상속에는 중요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상속한다는 것인데, 그 상속은 이미 말했듯이 ‘여과한다는 것’, ‘필터로 걸러내는 것’을 필요로 하는 ‘비판적 상속’이다. 데리다의 기본적 인식에서는 우리가 마르크스의 유산을 각인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성스럽다와 성스럽지 않다를, 알든지 알지 못하든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오늘날 어느 정도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의 상속인이라고 데리다는 단언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데리다의 ‘사랑’을 감지할 수 있는 인상적인 말이다. 그리고 그 유산 중의 하나는 ‘세계를 변혁하다’는 사상이다. ‘도래해야 할 미래’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존재와 유산상속은 등치되고 있다. 2007년에 미국에서 간행된 데리다 논집 Mitchel, Davidson ed., The late Derrida, The Univeristy of Chicago Press, 2007(이하 LD)에 수록된 논문에서 로돌프 가셰(Rodolph Gache)는 “데리다는 존재가 유산상속의 의미라고 지적했다”(LD. 73)고 쓴다. 여기에 있는 “To be is to inherit.”(‘있다’는 것은 유산을 상속받는 것이다)라는 사고의 중요성을 가셰는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존재는 상속인데, 그것은 반드시 비판적 상속이어야만 하며, 이로부터 ‘책임’이 생겨난다.

언어수행론의 개입.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주목하고 싶은 또 다른 것은, 데리다가 오스틴의 언어이론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오스틴(1911~1960)의 언어수행론(발화행위이론, speech act theory)은 언어의 기능을 ‘기술적, 사실확인적’(constative)인 것과 ‘언어수행적’(performative)인 것으로 분류한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담론/언설이 언어수행적이라고 하며, 그 전형적인 것이 바로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의 유명한 한 구절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이 테제야말로 확실히 ‘언어수행적’이라고 간주하는 데리다는 ‘해석하는 바로 그 대상을 변화시키는 해석’이야말로 진정한 해석이라고 한다. 그것을 논한 데리다의 언어가 바로 ‘논하고 있는 바로 그 대상을 변혁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4. 앞으로 데리다의 유령론이 마르크스에 대한 여러 가지 상(像)과 어떤 관계에 있고, 데리다의 유령론은 그 중에서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때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 책이 종교 비판과 기술 물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데리다가 맑스에게서 발견한 유령은 자유민주주의의 전지구화, 그리고 현대세계를 포괄하고 있는 ‘종교적인 것의 회귀’라는 현상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매개하는 미디어-테크놀로지의 전개는 시선을 구조화하는 비가시적인 것의 유령적 작용에 입각해서 분석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에 관한 쟁점 중의 하나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다. 정의의 약속으로서 혁명적 사건을 지시하는 “메시아적인 것”에 호소하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이 지점에 대해 조금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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