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읽기


atプラス 15, 2013년 2

 

 

 

 *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은 도서출판b에서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2년인가 3년 전에 관련 세미나와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번역했고, 회람을 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여기에 공개합니다. 아래 글에서 등장하는 쪽수는 모두 일본어판 쪽수이며, 국역본과 대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역본을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017년 3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하겠습니다.]  

 

 


<목차>


1. <대담> :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가라타니 고진 고쿠분 고이치로

 


2. 중국에서의 철학의 기원 억압된 호적(胡適)의 노자기원설 ⇒ 미번역

나카지마 다카히로(中島隆博)

 


3. 이소노미아와 다원주의 엠페도클레스의 회귀 

사이토 다마키(斎藤環)

 


4. 이소노미아의 이름민주주의의 이름

오타케 고지(大竹弘二)

 


5.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으로 이소노미아의 관점에서

야기 유우지(八木雄二)

 


6. 고대그리스와 마주 보기 최신의 역사·철학사 연구의 성과로부터

노부토미 노부루(納富信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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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소노미아와 다원주의 : 엠페도클레스의 회귀

사이토 다마키(斎藤環)

 

들어가며

 대작 세계사의 구조에 비하면 본서는 아주 작지만, 내용의 응축 정도에는 압도된다. 요약을 할라치면 전문을 인용하게 돼 버릴 정도다. 다만, 본서를 읽어나가는 전제로서, 가라타니의 전작인 세계사의 구조를 이해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본서에도 저자 자신에 의한 해설이 있지만). 그래서 우선 최소한의 복습을 해두자.

 가라타니는 국가나 네이션 등의 상부구조에 대해, 하부구조로서의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 주목한다. 교환양식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교환양식 A : 증여와 답례라는 호혜교환. 미개사회에서 우위.

교환양식 B : 수탈과 재분배, 또는 복종과 안도(安堵, 소유지나 구영토의 소유권을 인정받음). 국가사회에서 지배적.

교환양식 C : 상품교환. 근대 자본제 사회에서 지배적.

교환양식 D : A의 고차원에서의 회복. 도래할 미래에서 지배적.


 어떤 사회에서든, 네 가지 교환양식의 조합을 볼 수 있으나, 어떤 교환양식이 우위가 되느냐에 따라 사회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어서 세계시스템의 역사가 네 단계로 나뉜다.

미니세계시스템 : 교환양식 A에 의해 형성된다.

세계=제국 : 교환양식 B에 의해 형성된다.

세계=경제 : 교환양식 C에 의해 형성된다. 여기서 자본=네이션=국가가 일반적이게 된다.

④ ③을 넘어선 새로운 시스템 : ‘세계동시혁명아래서, 교환양식 D에 의해 형성된다. 칸트는 이것을 세계공화국이라 불렀다.


 나는 세계사의 구조의 서평(atプラス6)에서, 가라타니가 자주 보로메오의 고리를 언급하면서 라캉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에 주목하고, 굳이 라캉적 독해를 시도했다. 결론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라캉 용어와의 대조관계를 생각한다면, ‘네이션상상계, ‘국가상징계, ‘자본실재계[일본에서는 대체로 현실계라고 번역한다]에 해당된다. 여기서 실재계-상징계-상상계자본-네이션-국가라는 하나의 보로메오의 고리가 대조관계에 놓인다. 라캉적으로는 보로메오의 고리를 꽉 매는 네 번째의 찌그러진 고리가 요청되는데, 바로 이것이 증상(생톰*)=전쟁이다. 칸트도 말했듯이, 당분간은 전쟁이라는 자연의 간지[狡知]’가 국가들의 연방을 강고하게 해 왔다. ‘신경증의 증상이, 어떤 차원에서 주체를 정신 차리게 하고, 광기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갖듯이, ‘전쟁에도 국가나 국민을 정신 차리게 하고, 광기를 절단하는 기능을 갖는다.

 가라타니는 교환양식 D(어소시에이셔니즘)”가 억압된 교환양식 A”의 고차원에서의 회귀라고 하며, 의식적으로 되돌아오게 하는[다시 불러내는] 변화가 아니라, 변혁을 목표로 한 운동 속에, ‘억압/회귀로서 생각지도 않게 출현한다고 한다.

 “교환양식 A”억압/회귀로서 반복되는 이유는, 호혜성[互酬性] 안에 잠복해 있는 «증여의 외상성» 때문이다. 호혜성의 반복 회귀는 죽음충동에 기초하여 이뤄진다. 그 때문에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증여의 힘을 끄집어내는 것에는 정합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로메오의 고리를 깨뜨리지[부수지] 않고, ‘네번째 고리로서의 증상=전쟁, 같은 유래를 지닌 증상=증여로 치환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가 말하는 증여란 병의 자발적 포기”, 헌법9의 완전한 실행에 해당된다. 그것은 이른바 «전쟁이라는 광기» 대신 «증여라는 광기»의 옹호에 다름 아니다. 이 광기에는 감염성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향락이 있기 때문이다. 향락(주이상스)은 인간에게 있어서 파괴적인 동시에, 인간의 행동의 최종 목적이기도 하다. 라캉이 이끄는[안내하는] 윤리적 공준, 욕망에 있어서 양보하지 않는 것은, 쾌락 원리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향락으로서의 평화에 대한 욕망으로 접속된다. 세계동시혁명은, 이런 윤리적 광기의 전이 혹은 반복 회귀에 의해 달성돼야 한다. 그것은 욕구냐 욕망이냐, 쾌락이냐 향락이냐, 제정신을 취하느냐 윤리를 취하느냐라는 궁극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이상이 내 나름의 세계사의 구조의 정신분석적 각색이다. 조금 주석을 달아둔다면, 가라타니 자신은 제 이론에 «향락»은 없어요라고 분명히 말한다(담화). 그런 의미에서는 향락으로서의 평화라는 해석이 어디까지 적절할지는 유보가 붙지만, 본고에서는 이런 이해에 기초하여 독해를 진행하고 싶다.

 

이소노미아와 교환양식 D

철학의 기원에서의 테마는 이소노미아=이오니아의 정치와 사상이다. 본서의 서두에서 가라타니는 이렇게 말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에제키엘로 대표되는 예언자가 바빌론의 포로 안에서 나타나고, 이오니아에는 현인 탈레스가 나타나고, 인도에는 붓다와 마하비라(자이나교의 시조), 그리고 중국에는 노자와 장자가 나타났다. 이런 동시대적인 평행성은 놀라온 것이다”(철학의 기원, 3).

 가라타니는 이들 사상가의 출현을, 인류사에 있어서의 교환양식 D’의 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오니아에서의 철학의 기원을 검증하려는 것은 이 관점에서이다.

 그러면 왜 이소노미아에서는 종교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교환양식 D가 실현되었을까?

 과거에는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은 자연과학의 선구로 평가됐으나 사상으로는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테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 의해 형성된 편견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아테네의 사상은 그 모든 것이 이오니아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테네인은 이오니아의 사상이나 정치의 영향을 받으면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억압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원은 아테네에 있다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에서조차, 근대의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문제가 모두 노출됐다. 가령 자유평등의 상극. 자유를 지향하면 불평등이, 평등을 사고하면 자유가 훼손된다는 모순. 이 딜레마는 원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사회민주주의라는 양극 사이에서 진동한다[동요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의 최종형태이며, 처칠이 말하듯이, 최악의 정치형태이지만 다른 어떤 정치형태보다 낫다고 간주돼 왔다. 가라타니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최후의 형태 따위가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길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열쇠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27). 다만 그것은 아테네가 아니라 이오니아라고 한다. 거기서는 자유이기 때문에 평등이 실현되고 있었다.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이소노미아의 성공하지 못한 재건 기획이다.

 이소노미아(무지배)가 이오니아 도시들에서 시작됐던 이유는 식민지인들이 그때까지의 씨족·부족적 전통을 일단 단절하고, 그때까지의 구속이나 특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맹약 공동체를 창설했기 때문”(25)이라고 간주된다. 이 점에서 과거의 씨족적 전통을 멈춰 세우고 계급대립이 남은 아테네나 스파르타와는 다르다. 이오니아에서는 화폐경제가 발달했으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도 평등했다.

 이것 외에도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예를 들어 이오니아에서는 독립자영농민이 주를 이루며, 대토지소유자는 없었다. 사역 가능한 타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지를 갖지 못한 자는 타인의 토지에서 일하기보다는 다른 토지로 이동했다. 그래서 노예제도 생겨나지 않았다.

 상공업이나 교역이 발전한 이오니아에서는 심각한 계급격차가 생겨나지 않았다. 국가가 교역을 독점하지 않고, 사적 교역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교역의 이윤은 평준화된다.

, 이런 것이다. 이소노미아는 사람들의 유동성을 전제로 성립하며, 상공업의 발전이 새로운 유동성을 초래한 것이다. 상공업의 발전, 즉 교환양식 C의 단계는, 활발한 유동성과 더불어 교환양식 D의 회복에도 기여한 것이다. 여기서 자유와 평등이 고차원에서 일치하게 된다.

 

이중세계 비판

 본서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중세계비판이다. 가령 피타고라스는 감각에 의한 앎은 가상이며, 참된 인식은 감각을 넘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앎과 비-앎이 구별된다. 참된 세계와 가상의 세계라는 이중세계의 설정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쉽게 연상시킨다.

 사정이 다소 복잡한 것은, 피타고라스가 이중세계를 부정하는 이소노미아의 사상을 거쳐 간 경력을 가진 점이다. 이소노미아는 특별한 지위나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질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의 구분을 부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세계에서는 당연하게도, 참된 인식력을 독점하는 철학자라는 입장도 인정되지 않고, 그래서 가상과 참된 세계라는 구분도 무효가 된다.

 그래서 피타고라스가 이소노미아를 거쳐 왔다는 것은, 그가 말하는 이중세계가 아시아적인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수학의 실천을 중시한 피타고라스는, 사물[]의 실재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성(, 수학)의 존재를 구분했다. 그리고 후자의 관계성이야말로 진정한 실재라고 봤던 것이다. 이것은 윤회전생이나 혼의 불멸 같은 이중세계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물의 시원을 수()로 본다는 것은,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태도를 따르면서도, 그것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관계가 실재이며, 그것을 시원에서 찾는 것은, 관념적 실재를 참된 실재라고 하는 것이다. 헤겔과는 달리 가라타니는, 이데아론이 피타고라스보다 앞선 사고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를 실재로 하는 생각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한다. 더욱이 현대의 소립자론에서는 근원적인 물질은 수학적으로만 존재한다고 간주된다. 그렇다면 피타고라스의 이중세계론으로부터 이데아론이 도출되는 것은 필연일까?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피타고라스의 첨단적인 비판자로서 이름을 꼽고 있는 것은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시원물질로서 을 찾아냈다. 만물의 일자[]’성은 불의 운동성에 있어서 실현된다. 즉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가 버렸던 운동하는 물질이라는 사고방식을 회복하고,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회복을 시도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 파르메니데스는, 간접 증명의 수법에 의해 운동하는 물질의 주장을 시도했다. 무슨 말인가? 그의 제자인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이 있다.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의 공간을 무한하게 분할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따라잡기가 쉽다. 이 역설은, 운동으로부터 분리된 물질의 존재라는 가정이 오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간접 증명에 의해,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인 유[온전한 일자, 유일자]’의 올바름이 증명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런 간접 증명의 수법도 이오니아 자연철학에 원래 존재했다고 한다.

 파르메니데스가 물리치고 싶었던 것은 이성에 의해 산출된 가상이었다. , 피타고라스가 생각한 참된 세계이다. 이 가상을 정정하려면, 사유가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법밖에 없다. 이 방법은 칸트로 통한다.

 흔해빠진 오류로서 칸트의 현상과 물자체라는 구별이 피타고라스의 이중세계론의 표절[재탕] 아니냐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가 표적으로 삼았던 것은 오히려 참된 세계라는 가상 쪽이다.

 

 혹은 여기서 라캉의 3계론(三界論)을 연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라캉의 3계론도 이중세계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어쩌면 라캉이라면, “참된 세계라는 이미지를 상상적인 것이라며 물리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주장하는 실재계란 대충 진위라는 판단이 무효화되는 영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갈마(Agalma)의 위치

 라캉은 논문 주체의 불균등에서 본 전이(主体不均衡からみた転移)(세미나8)에서 플라톤을 인용하여 전이를 해설하고 있다.

 아가톤, 아리스토파네스, 소크라테스 등이 에로스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주연(酒宴), 만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난입한다. 알키비아데스는 일찍이 멋진 미소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연모하다 여러 가지 속임수를 다했으나, 소크라테스는 그의 유혹을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이 왜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의 사람됨의 멋들어짐을 극찬한다. 그의 덕은 누구보다 뛰어나고, 그의 말은 사람들을 황홀하게 한다. 전쟁터에서의 소크라테스의 행동거지도 훌륭하다 등등.

 이제부터는 라캉의 해석이다.

 라캉에 따르면,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연정이 전이성임을 본인에게 알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알키비아데스가 추구했던 빛나는 대상 라캉은 그것을 아갈마라고 부른다 은 사실은 소크라테스 안에는 없다. 알키비아데스는 사실은 시인인 꽃미남 아가톤을 사랑했으며, 아가톤을 칭송하는 소크라테스의 말 속에서, 자신의 이상상(아갈마)을 찾아낸 것이다.

 아갈마에의 욕망을 고백하는 것은 사실상 욕망의 주체인 알키비아데스 자신의 주체가 품고 있는 분열의 소재(所在)를 밝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 이 에피소드에서 알키비아데스의 욕망은 소크라테스 자신에게는 향해지지 않는다. 알키비아데스가 찾았던 것,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앎에의 욕망자체이다. ,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욕망을 욕망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전이현상의 한 가지 본질이 있다.

 이 에피소드를 가라타니가 지적하는 소크라테스의 수수께끼와 연결시켜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본서에서의 알키비아데스는 전형적인 데마고그이자 제국주의적이 된 아테네 사회의 타락의 상징으로서 위치지어진다. 공인이 아니라 사인으로서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소크라테스의 자세로부터는, 아테네의 배신자이기도 한 알키비아데스의 구애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왜냐하면 그는 데마고그, 즉 공인으로서 부정의를 저지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동기수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라캉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 경우, “아갈마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여기서 앎에의 욕망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아갈마는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가령 플라톤의 이데아같은 것과는 어떻게 따를까?

 전이 현상의 해석은, 어떤 의미, 정신분석의 근간과 관련된 영역인 만큼, 이 질문이 지닌 의미는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이 알키비아데스의 욕망인지 아닌지는 제쳐두더라도, ‘아갈마는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반응이나 질량을 동반한 물질 같은 존재와는 다르다. 그것은 가령 시니피앙, 혹은 관계가 존재한다면 동등한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주의하자. 여기서 내가 말하는 관계, 물질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개인 대 개인의 전이관계이다.

 그래서 재차 강조돼야 할 것은 소크라테스에게서의 앎에의 욕망의 역동성이다. 항상 계속해서 사유하는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아갈마도 정물과도 같은 실체일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파르메니데스가 시원물질로서 꼽은 불꽃 같은 존재이다.

 라캉의 생각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이런 전이가 가능해지는 것은,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가, 둘 모두 상징계의 네트워크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둘 다 시니피앙이라는 매질 속의 존재이며, 그 속에서 정보가 아닌 욕망의 전달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아갈마의 전달 또한 물체를 주고받는 이미지일 수는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욕망의 역동성이 발진(発振)하는 파동에, 문자 그대로 공명·공진하는 형태로, 전이가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 나는 아갈마와 다이몬의 평행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종의 환청으로서, 소크라테스의 행동을 말리려고 하는 «다이몬의 목소리». 알키비아데스와의 관계를 거부한다는 판단에 있어서도, 다이몬의 목소리가 영향을 줬다고 한다면, 양자는 소크라테스의 행동 원리에 있어서, 액셀과 브레이크 같은 기능을 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원주의 쪽으로

 헌데, 본서에서 내가 특히 흥미 깊게 느꼈던 것은 엠페도클레스의 다원론이다.

 그는 만물의 근원으로 네 종류의 뿌리를 생각했다. , “, 공기, , 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이오니아 자연철학에 빚지고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하나의 시원물질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던 이오니아파와는 다르며, 네 개의 뿌리가 독립적이며 대등하다고 했다. 다만 하나의 시원 물질로 세계의 다양성을 환원해 버리려 하는 발상은, 공허로부터의 세계의 생성이라는 피타고라스적 이중세계의 발상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보다도 작은 원자를 상정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자론으로 향하지 않았다. 왜일까? 물질은 분자 수준, 원자 수준에서 각각 다른 성질을 지닌다. 이 특징은 생체가 되면 더욱 현저하다. 뇌내물질, 신경세포, 신경조직, 대뇌나 소뇌 같은 장기의 각각의 수준에서 활동원리는 완전히 다르다.

 사회철학의 영역에서도, 개인을 중시하는 원자론, 전체를 중시하는 전체론 혹은 개체와 전체의 변증법을 중시하는 헤겔 등,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가라타니는 이것들에 대해, 네 가지 교환양식의 결합과 분리에 있어서 사회사를 본다고 하는, 바로 다원적 시각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놀랐던 것은 바로 나의 본업인 정신의학에서도, 이런 다원주의적 시각이 제창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정신의학에서는 아직도 뇌와 마음이라는 이중세계론이 주류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뇌와 마음을 대비시킨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가상이라고 간주되고, 물질로서의 뇌가 참된 세계라고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아직도 정신의학에서는 복수의 이론적 패러다임이 서로 대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뿌리 깊은 대립은, 생물학주의와 심리주의 사이에 있다고 간주된다. 둘 다 하나의 입장에서, 정신장애가 수립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타프츠의료센터(タフツ医療センター)의 정신과의사인 나시아 가미ナシア・ガミー는 야스퍼스의 재평가를 통해 정신의학에서의 다원주의를 주장한다(현대정신의학원론, みすず書房). 다원주의의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정신의학자는 생물학과 심리학의 결합방법으로서, 과거에는 세 가지의 사고방식을 해 왔다고 한다. 각각 교조주의’, ‘절충주의’, ‘통합주의이다.

 교조주의는, 가장 단순한 환원론이다. 심리학이나 생물학의 단독적인 올바름만을 확신하고, 정신장애는 모조리 생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입장에 대한 고집이 이것에 해당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줄어드는 것 같다.

 가미가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절충주의이다.

 근래에는 bio-psycho-social 모델로서, 많은 정신과의사가 이런 사고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언뜻 보면 가장 온건하고 무난하게 보이는 이 입장은 어떤 이론과도 중첩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도입하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니지만 유용성이 낮은 것이 되기 쉽다.

 통합주의에 있어서도 심적 사태를 뇌의 거시적 수준의 구조기능적 병태에 대응시키려고 하지만, 세포 내 분자 기구와 뇌의 거시적 수준의 구조적 혹은 기능적 관계는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과 뇌의 관계가 너무 희박해지지 않도록, 수준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관련이 깊은 곳을 추적하면서, 마음과 뇌의 관계를 가급적 통합적으로 기술하려는 입장이다.

 가미가 주장하는 다원주의는 이상의 모든 것과도 다르다. 다원주의자는 개별 문제의 탐구에 있어서 복수의 방법 중에서 가장 훌륭한 방법을 선택한다. 방법의 조합이 아니라, 그때마다 단일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울증의 병태 이해치료 방침 선택에는 생물학적정신약리학적 수법이 심리사회적인 접근법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퍼스널리티 장애의 경우는 심리학적 접근법이 생물학적 접근법보다 뛰어나다. 모든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생물심리사회의 모든 측면이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하는 절충주의적 주장과는 크게 다른 입장이다.

 다원주의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지만, 나 자신은 최초의 저작 문맥병(文脈病)(青土社) 이후, 이런 입장을 고수했다. 그것은 인간의 주체에 관해 “PS : 정신분석적 주체“OS : 기질적 주체라는 두 개의 측면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실체가 없다. 이른바 위상학적인 구분이지 서술을 할 때에는 상호배제적, 접붙이기식의 채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입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사회적 은둔자문제 등에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생물학적 측면(발달 장애 등), 심리적 측면(정신요법에서), 혹은 사회학적 측면(사회적 배제의 맥락에서)이 있으며, 이것들은 안이한 통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중성의 극복을 위해 다원주의가 필요해질 수 있다는 것. 여기서 엠페도클레스의 회귀를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만일 이런 추론이 맞다면, 정신의학도 이오니아적인 것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면, 가미도 가라타니와 마찬가지로, 다윈의 사상을 중시하고 있는데, 이 일치도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본고의 맺음말을 대신해, 소크라테스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해둔다.

 가라타니가 묘사하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묘사한 인물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는 철인왕도 아니고 이데아론의 체현자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원론의 실천자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죽음에 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무가 되는가, 혼이 이동하는가, 어느 쪽이든 내기를 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혼의 불멸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 죽음에 임해서는 법의 논리를 따른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가장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또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할 때 전대미문, 혹은 전무후무한 수법을 썼다. 그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고, 대신 시민 개개인과 문답을 했다. 그의 대화 세션이 그의 사상이었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수마다 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른바 궁극의 다원주의이다.

 소크라테스의 다원주의에서 이소노미아의 이상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이소아노미아의 또 다른 측면, ‘자유와 평등의 일치와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개인과 개인의 연결은 개인, 양자관계, 가족, 커뮤니티, 네이션, 국가와 같은 단계를 거쳐 확장되고 있다. 다원주의자라면, 연결의 규모나 복잡성의 계층마다 상이한 위상의 가치와 진리를 발견할 것이다.

 반대로 이중세계론자는 모든 단계를 가상으로 간주하고 진정한 세계를 고집하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일관성 있는 정의를 부여하기 어려워진다. 가족의 이해관계와 커뮤니티의 이해관계의 대립 같은 모순을 진정한 세계는 해소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원주의에서는 모든 계층에 있어서 추구되어야 할 가치관이 자유일 것이다. 각 계층에서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평등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면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다원주의와 이소노미아의 이상을 연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는 플라톤의 저작을 믿지 않는 것이 확실한 이상,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것은 이소노미아의 원리와 세부 사항에 대해서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답답함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적어도 본서 철학의 기원에는 수많은 조각[piece, 단편]이 파묻혀 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수수께끼의 중간에서 보일랑 말랑하기 때문에 이소노미아는 훨씬 더 리얼한 질문으로서 우리 앞에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이토 타마키(斎藤環)

1961년 생. 정신과 의사, 평론가. 저작에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戦闘美少女精神分析)(ちくま文庫), 관계하는 여 소유하는 남(関係する女 所有する)(講談社現代新書), 은둔형 외톨이는 왜 다스리는? : 정신분석적 접근법(ひきこもりはなぜのか?──精神分析的アプローチ(ちくま文庫), 세계가 토요일 밤의 꿈이라면 : 양키와 정신분석(世界土曜なら──ヤンキーと精神分析)(角川書店), 원자력발전 의존의 정신구조 : 일본인은 왜 원자력을 좋아하는(原発依存精神構造──日本人はなぜ原子力なのか)(新潮社)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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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Lacan eBooks

2. January 2009, 1:10 am

Books:

”Television”
http://www.mediafire.com/?emnizzwetni
”Seminar 3 – The Psychoses”
http://www.mediafire.com/?jqoelkzzm2t
”Seminar 7 –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http://www.mediafire.com/?dinfyjyqj2k
”Écrits – The First Complete Edition in English”
http://www.mediafire.com/?jwtd3ojdemm
“The 4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 Incomplete
http://www.mediafire.com/?mdjzg3njtkn

Articles:

Desire And The Interpretation Of Desire In Ham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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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Ideal and Ideal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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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ing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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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to the Names-of-the-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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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t with 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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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and truth; On the Baroque
http://www.mediafire.com/?d2nwtjddwox
Le Sint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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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ical Time and the Assertion of Anticipated Certainty – A New Sophism
http://www.mediafire.com/?jh1y1myydnm
On Jouissance; To Jako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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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s to Students of Philosophy Concerning the Object of Psycho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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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s of String; The Rat in the M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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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An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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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gency Of The Letter In The Unconscious or Reason Since Fr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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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eam of Irma’s In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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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nction of the Written; Love and the Signifier; Aristotle and Freud – the Other Satisfaction
http://www.mediafire.com/?dznyez0tlzk
The Mirror Stage as Formative Function of the I as Revealed in Psychoanalytic Experience
http://www.mediafire.com/?ytd2mdmjyyk
The Object Of Psycho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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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ther Is Missing
http://www.mediafire.com/?mqitnzwkzz2
The Problem of Subli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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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loined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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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lendor of Anti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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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pic Of The Imag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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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lf, The W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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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Speech Where is Language; Psychoanalysis and Cybernetics, or on the Nature of Language; A, m, a, S
http://www.mediafire.com/?kwzmynkhidn

On Lacan:

”Lacan: The Silent Partners” Slavoj Žiž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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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ing Awry –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  Slavoj Žižek
http://www.mediafire.com/?dzzikzqhrrg
”After Lacan – Clinical Practice and the Subject of the Unconscious” Willy Apollon, Danielle Bergeron, Lucie Cantin, Robert Hughes, Kareen Ror M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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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an’s Misuse of Psychology – Evidence, Rhetoric and the Mirror Stage” Billig,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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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bject and the Symbolic Order” Chaitin, Gilbert 
http://www.mediafire.com/?mmxwnmmiydk
“Subjectivity and Otherness – A Philosophical Reading of Lacan” Chiesa, Lorenzo
http://www.mediafire.com/?4n4gdmdmtcn
“Literally Speaking, or, The Literal Sense from Augustine to Lacan“ Cummings, B.
http://www.mediafire.com/?okzkyfnm2on
“Lacan and Deconstruction“ Davis, Tom
http://www.mediafire.com/?g4jz2bnuizk
“An Introductory Dictionary of Lacanian Psychoanalysis“ Evans, Dylan
http://www.mediafire.com/?mjznmzwownz
“From Lacan to Darwin“ Evans, Dylan
http://www.mediafire.com/?yz3tgiymum0
“The Lacanian Subject – Between Language and Jouissance“ Fink, Bruce
http://www.mediafire.com/?mrxdkhgjlnj
“Lacan and Science“ Glynos, Jason & Stavrakakis, Yannis 
http://www.mediafire.com/?ou2qrrmyz0k
“Jacques Lacan – A Feminist Introduction“ Grosz, Elizabeth
http://www.mediafire.com/?wrmnywwmmkc
“Levinas and Lacan – The Missed Encounter“ Harasym, Sarah
http://www.mediafire.com/?ztz0n3zmjzy
“The Trouble(s) with Lacan“ Holland, N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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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Lacan – Routledge Critical Thinkers“ Homer, Sean
http://www.mediafire.com/?2ejwmjfgemo
“Derrida or Lacan – The Revolutionary’s Choice“ Hurst, Andrea
http://www.mediafire.com/?tzykygwmlm0
“Imaginary And Symbolic In Lacan“ Jameson, Fred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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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gel, Kojeve and Lacan – The Metamorphoses of Dialectics“ Kaloianov, Rados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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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plus – Spinoza, Lacan“ Kordela, Ka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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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ing Lacan“ Leader, Darian & Groves, J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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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rida and Lacan – Another Writing“ Lewis, Michael
http://www.mediafire.com/?nw5nmttzeqe
“Lacan and Psychoanalysis” M., Sarup Sage 1990 pp 6-33
http://www.mediafire.com/?nwjajgejmqz
“The Real Gaze – Film Theory After Lacan“ McGowan, To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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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tle Of The Letter – A Reading Of Lacan“ Nancy, Jean-Luc & Labarthe, Philippe
http://www.mediafire.com/?ujwjx5iy3nu
“Jacques Lacan and the Freudian Practice of Psychoanalysis“ Nobus, Dany
http://www.mediafire.com/?mtaxmqzzybd
“Lacanian Discourse Analysis in Psychology – Seven Theoretical Elements“ Parker, Ian
http://www.shrani.si/f/N/10c/1j91ca5a/parker-ian-lacanian-disc.pdf
“The Cambridge Companion to Lacan“ Rabaté, Jean-Mi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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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an and the Political“ Stavrakakis, Yan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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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ter Lacan – An Introduction“ Voruz, Véronique & Wolf, Bogdan
http://www.mediafire.com/?xjzzzvin5ym
“Return To Freud Jacques Lacan’s Dislocation Of Psychoanalysis“ Weber, 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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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Look at Lacan and Literary Criticism“ Wright, Elizab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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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세계 경제는 노동의 본질이 급진적으로 변하는 한가운데에 놓여 있으며, 이는 미래 사회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다. 산업화시기에 대규모의 인간 노동력은 기계와 더불어 기본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였다. 접속의 시대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로봇, 나노 테크놀로지, 생명 공학 등과 같은 형태의 지능적 기계들이 농업,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에서 사람의 노동력을 점차 대신하고 있다. 농장, 공장 및 다수의 화이트칼라 서비스 산업 부문은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어 가고 있다. 21세기에는 반복적인 단순 업무에서부터 고도로 개념적인 전문 업무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값싸고 보다 효율적인 기계에 의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값싼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이들을 대체하는 온라인 기술만큼 저렴하지는 않을 것이다. 21세기 중반까지 상거래 부문에서는 현재 고용된 인력의 일부만을 운용하여 제품과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과 가용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마도 2050년쯤이면 전통적인 산업 부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전체 성인 인구의 5퍼센트 정도밖에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가 거의 필요치 않는 농장, 공장 및 사무실이 일반화될 것이다.
물론 다가올 시기에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제품과 서비스가 나타날 것이며, 새로운 직업적 능력, 특히 보다 정교화된 지식 분야의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노동 부문은 엘리트 지향적이고 그 수에 있어서도 제한적이다. 우리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회사 정문과 서비스센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20세기의 일상적인 장면을 결코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직업들 역시 기술적 대체 앞에서는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 정교한 진단 기술은 이전까지만 해도 의사, 간호사, 기술자들이 실험실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대체하고 있다. CAD(Computer Aided Design)는 많은 제도사와 기술자들을 없애버렸다. 예전에는 회계사들이 했던 전형적인 업무의 대부분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 이루어진다. 매우 유능한 전문가들이 아직까지는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전문가들은 지적 기술이 보다 적합하고, 빠르고, 저렴한 대안으로 판명됨에 따라 도태될 것이다. 미래의 노동력은 점차 소규모 대행업자처럼 될 것이다.
산업화 사회는 노예 노동의 종말을 이끌었다. 접속의 시대는 대량 임금 노동을 끝낼 것이다. 이는 지적 기술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어감에 따라 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다음 세대가 고생스러운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인류는 두 번째 르네상스 시대로 진입하게 되거나 또는 엄청난 사회적 분열과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점진적으로 자동화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쓰임이 적거나 아니면 전혀 쓸모가 없는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용의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 선택안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각각의 대안은 사람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노동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거나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역할과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안을 탐색해야 한다.

블루칼라의 종말
미국 최초의 위대한 노동운동가인 곰퍼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노동자를 위한 그의 평생의 노력을 형성하는 데 있어 심대한 영향을 미친 어린 시절의 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나의 어린 시절에 있어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기계가 발명되어 견직물 직공의 기술을 대체해 버리고 그들의 일자리마저 빼앗아 갔을 때 그들에게 닥친 커다란 어려움이었다. 자신의 일을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불행과 공포가 마을을 온통 죽음의 무거운 공기로 감싸 안았다. 좁은 거리엔 일자리 없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산업혁명의 시작부터, 기계 및 무생명의 에너지가 생산을 촉진하고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기계들은 인간의 손길이 필요 없었고 많은 상품을 거의 자동적으로 만들어냈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재료를 기계에 넣고 기계가 제품을 만들고 포장하게 하는 것이었다.
1881년 제임스 본색은 인간의 노동 없이 담배를 자동으로 마는 담배 기계를 특허냈다. 그 담배 기계는 순환식 테이프 위에 있는 담배를 잡아내어, 둥근 모양으로 압축시키고 테이프와 종이로 감아 담배 모양을 만들고 종이에 풀칠을 한 다음 긴 담배 막대를 적절한 담대 길이로 자르는 덮개 튜브로 옮겨 놓는다. 1880년대 말 경, 연속 공정의 기계가 매일 12만 개의 담배를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숙련공은 하루 기껏해야 3000개의 담배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기계는 너무나 생산적이어서 30대도 안 되는 기계가 소수의 노동자만을 이용해 1885년 전국의 담배 수요를 충당할 수 있었다.
연속 공정 기술로 제조업은 새롭고 급진적인 접근법을 도입하게 되었다. 인력 요소를 거의 투입하지 않고 또는 전혀 투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동화에 의한 기계적 생산 방식은 더 이상 이상주의적인 꿈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정보와 통신 기술로 훨씬 더 정교한 연속 공정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실상 모든 주요 제조 활동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기계에 의해 서서히 대체되어 왔다.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은 경제적 격변기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기술의 도입으로 점점 밀려나버린다. 다가오는 21세기 중엽쯤이면 블루칼라는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는, 제3차 산업혁명과 보다 높은 기술 능률을 향한 끊임없는 행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최후의 서비스 노동자
40년 이상이나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의 일자리 손실을 흡수해왔다.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경제학자와 기업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추세가 계속되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의 희망은, 새로운 정보 기술이 서비스 산업 자체에 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서비스 관련 전 산업에 걸쳐 인력을 대체함에 따라 희미해지고 있다.
AT&T는 6000명 이상의 장거리 교환수를 컴퓨터화된 음성 식별 기술로 대체 중이라고 발표했다. 장거리 교환수의 1/3을 없애는 것 이외에도 이 회사는 11개 주의 31개 사무소를 폐쇄하고 400명의 관리직을 줄였다고 발표했다. 뉴저지에 있는 AT&T의 벨 연구소에 의해 새로이 개발된 신형 로봇 기술은 핵심 단어를 구별하여 통화자의 요청에 답변할 수 있다.
새로운 실리콘 교환수는 AT&T가 최근 들어 40퍼센트나 적은 인력으로 50퍼센트 이상이 증가한 통화를 처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1950년 과 1980년대 초 사이에 AT&T는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을 도입하여 서비스 산업을 주도해왔다. 이 기간 중에 회사는 전국적으로 14만 명 이상의 교환수를 없애버렸다. 남아 있는 교환수의 상당 수도 1990년대 말경이면 해고 통지서를 받을 운명이다.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 디지털 교환 시스템, 디지털 전송, 위성 통신 및 사무 자동화를 포함한 최근의 기술 혁신은 연간 약 5.9퍼센트의 생산성 향상을 유지해 통신 산업이 새로운 첨단 기술 경제의 중요한 속도 조절자 중 하나가 되게끔 하였다. 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으로 전화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1981년과 1988년 사이에 고용이 17만 9800명이 줄어들었다.
실업자 중의 많은 사람들이 최근의 기술 혁신의 결과로 해고된 설치공 및 수리공이었다. 이미 조립된 모듈식 장비의 도입으로 수리가 한결 편해졌고 유지 관리도 덜 필요하게 되었다. 플러그 내장형 전화기는 설치를 위해 항시 방문해야 하는 필요성을 없앴다. 신속한 접속 기능을 가진 매설된 전화선은 수리의 필요성을 줄이고 신속한 수리가 가능하게 했다. 첨단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디지털 교환 시스템은 전화의 서비스 양을 대폭 늘리는 한편 단위당 소요 노동력을 현격히 줄였다. 이는 중앙 사무실에 보다 적은 수의 설치공 및 수리공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미한다. 중앙의 수리 사무실에 있는 근로자 수는 2000년 경이면 20퍼센트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기 형성 단계이기는 하지만 제3차 산업혁명은 농업,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밀쳐 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 세계적 노동력 감소와 함께 첨단 기술을 따라 세계 경제 시스템을 혁신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아직까지, 현재의 리엔지니어링과 자동화의 물결은 다가올 시대에 있어 생산성을 가속화하는 한편 더욱 더 많은 수의 노동자가 세계 경제에 있어 불필요하고 관련이 없게끔 만드는 기술 혁신의 바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미래에 있어 첨단의 계산기와 로봇 공학, 지구를 감싸안은 통합 전자 네트워크가 더욱 더 많은 경제적 과정에 적용되어 만들고, 움직이고, 팔고, 서비스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인간이 참여할 여지를 더욱 더 적게 만들고 있다.

첨단 기술의 승자와 패자
사실상 모든 기업의 지도자와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제3차 산업혁명의 극적인 기술 진보가 확산효과(Trickle-down Effect)를 지녀 제품의 원가를 싸게 하고 소비자의 수요 증대를 촉진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냄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보수를 주는 새로운 하이테크 직업 및 산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찾기가 힘든 많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기술의 확산 개념이란 어떠한 위안도 주지 못한다.
주주들은 신기술과 생산성 향상으로 커다란 이익을 보았지만 그 혜택이 보통의 노동자들에게 흘러들어 가지 못했다. 1980년대에 제조업 부문의 시간당 임금액은 7.78달러에서 7.69달러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 말에는 미국 노동력의 거의 10퍼센트가 풀타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 반실업 상태에 있거나 시간제 노동을 하고 있었다.
1989년과 1993년 사이에 18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제조 부문에서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동화의 희생물로, 미국의 고용주 및 외국 회사에 의해 해고되었다. 외국 기업의 고도로 자동화된 공장과 보다 값싼 운영비로 인해 미국의 기업은 업무를 축소하고 노동자를 해고해야만 했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가운데 1/3만이 서비스 부문에서 그것도 20퍼센트나 삭감된 임금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더욱 더 많은 통계가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노동력이 감퇴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노동력과 경쟁해야 하는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깝게 경제적 생존의 한계 지대로 밀려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1979년 미국의 주당 평균 임금은 387달러였다. 1989년에는 그 임금이 335달러로 떨어졌다. 1973년과 1993년간의 20년 동안 미국의 블루칼라 종업원은 15퍼센트의 구매력을 상실했다.
많은 노동자에게 있어 린 생산은 비참한 환경으로 몰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4년의 보고서에서 조사 통계국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비 수준인 연간 1만 3000달러를 벌지 못하는 사람이 1979년과 1992년 사이에 50퍼센트가 증가했다고 한다. 조사 통계국이 놀라운 것으로 부른 이 보고서는 미국 노동력의 몰락에 대한 또 다른 극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경제학자들은 그와 같은 몰락을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와 세계 경제의 국제화에 그 탓을 돌린다. 미국 노동자로부터 빼앗은 부를 기업의 경영자나 주주들에게 강제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보수적 경제학자인 번스와 같은 이는 “1980년대에는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강압된 복종심을 주입시키기 위해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이용되는 한편 미국의 기업 엘리트들은 호화롭게 살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가기만 했던” 살찐 고양이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수백만의 도시 및 농촌의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생하고 점점 더 많은 교외의 중산층 임금 소득자들의 리엔지니어링의 상처와 기술 대체의 충격을 느끼고 있을 때, 소수의 엘리트 미국 지식 노동자와 기업가 및 회사의 경영자들은 첨단의 새로운 국제 경쟁의 혜택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그들은 그들 주위의 사회적 혼란에서 멀리 떨어져서 풍족한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이 발견한 놀랄만한 새로운 환경은 라이시 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똑같은 경제생활을 영위하지 않는 동일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새로운 사회계약
고정된 지형과 공간적 근거를 갖고 있는 민족국가는 너무 둔해서 세계 시장의 재빠른 속도를 주도하거나 그에 대응할 수 없다. 반면에 세계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공간적이라기보다는 시간적인 제도이다. 세계 기업들은 특정 사회나 특정 공간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세계 기업들은 새로운 준정치적 제도로서 정보와 통신의 통제에 입각하여 사람들과 공간에 대해서 거대한 권력을 행사한다. 유연성과 이동성을 자랑하는 세계 기업은 모든 나라의 통상기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산 거점과 시장을 재빠르고 손쉽게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전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간의 변화하는 관계는 새로운 국제 무역 협정들을 보면 점점 더 명확해진다. 이 협정들은 점점 더 많은 권력들을 민족국가로부터 세계 기업들로 이전시키고 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마스트리트 협정(Maastricht Accord)은 지구촌에 있어서 권력 패턴의 변화 지표들이다. 이러한 무역 협정 하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자유로운 무역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민족국가의 통치권과 관련된 수백 개의 법률들이 무효화된다. 따라서 10여 개의 국가에서 유권자들의 격렬한 공식적인 항의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역 협정으로 인해서 애써 획득해 놓은 노동, 환경, 건강 등과 관련된 법률들이 일거에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민족국가의 지역 정치적 역할이 감소되는 것과 동시에 고용주로서의 국가의 역할도 감소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기 부채의 누적과 증대하는 재정 적자로 인하여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구매력을 촉진시키기 위한 야심적인 공공 지출에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세계의 모든 산업 국가에서 중앙 정부는 ‘시장의 보증자’라는 전통적인 과업 수행을 점점 꺼려하고 있다. 동시에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으며 자국 시민들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감소하고 있다.
노동자 대중과 중앙 정부의 시장에서의 역할 감소는 사회 계약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강요할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산업 시대를 통틀어 시장 관계가 전통적 관계를 대체했고 인간의 가치는 거의 전적으로 상업적 관점에서 측정되었다. 그러나 ‘시간 판매’의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확립된 상업적 관계의 총체적 연결망도 위협받게 된다. 시장 보증자로서 중앙 정부의 역할이 감소하기 때문에 정부 제도들도 시민 생활에 의미 있게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사명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구촌 모든 국가들의 긴급한 과제는 정치 기구들을 엄격한 시장 중심적 지향으로부터 탈피시키는 것이다.
일상사에 있어서 시장 부문과 정부가 아주 작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를 상상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혹스러운 것이다. 두 제도는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100년 전만 해도 사회생활에 있어서 그 역할은 몹시 제한되어 있었다. 결국 기업과 민족국가는 산업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금세기를 통틀어 기업과 민족국가는 이전에 수천 개의 지역 공동체가 협력해서 수행해오던 기능과 역할을 대체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를 보장해 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시민들은 세계 시장의 물리력과 미약하고 무능한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항할 활기 있는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향후 수십 년 이내에 시장과 정부의 역할 축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취업자들은 노동 시간 단축과 함께 보다 많은 레저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이를 대중오락과 소비 생활에 투자할 것이다. 반면에 증가하는 실업자들과 잠재적 실업자들은 하층 계급 속으로 마주비하게 내던져지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비공식 경제에 의존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임시직에 종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둑질과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사회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지만 건강한 육체를 지닌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서 마약과 매춘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묵살할 것이다. 정부의 투자 우선순위는 북지와 일자리 창조가 아니라 경찰력 강화와 감옥 건설이 될 것이다.
많은 산업 국가들이 처해 있는 이 경로가 불가피한 것일 수는 없다. 제3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적 희생의 충격을 완충시키는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취업자들의 노동 시간이 단축되고 실업자들의 유휴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서 사적 부문 및 공적 부문 바깥에서 수백만 명의 미사용 노동력을 건설적으로 이용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들의 재능과 에너지는 수천 개의 지역 공동체의 재건과 시장 및 공공 부문과는 독립적으로 번창하는 제3의 힘을 창출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제 3부문
미국 정치에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제3의 힘의 토대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에만 협소하게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미국인의 생활에는 제3부문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형성기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으며 지금은 21세기의 사회 계약 재형성에 도움을 줄 명백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제3부문은 독립적 또는 자원적 부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부문은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서비스를 타인에게 판매하는 데 근거한 인위적인 시장 관계를 대체하는 영역이다. 한때는 국가 수립에 핵심적이었던 이 부문은 최근에는 시장과 정부의 지배에 의해서 계속 침식당해 왔고 공공 생활의 주변부로 전락해 왔다. 최소한 이용 가능한 노동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두 부문의 중요성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제3부문의 부흥 및 변형 가능성과 이것을 활기찬 탈시장 시대의 창조를 위한 견인차로 이용할 가능성을 신중하게 탐색해야 한다.
제3부문은 이미 사회에 널리 침투해있다. 공동체 활동은 사회 서비스, 건강, 교육과 연구, 예술, 종교, 변호 활동 등 전 범위에서 수행되고 있다. 공동체 서비스 조직은 고령자, 장애자, 정신병자, 불우 아동, 무주택자와 빈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자원 봉사자들이 낡은 아파트를 보수하고 저소득층용 새 주택을 세우고 있다. 수만 명의 미국인 자원 봉사자들이 공공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를 포함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수천 명이 양부모로 봉사하거나 혹은 고아원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 가출 소년 또는 고민이 있는 소년들에 대한 카운슬링의 제공이나 문맹 퇴치 운동을 위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주간 혹은 방과 후 탁아 센터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급식도 제공한다. 점점 많은 미국인들이 위기 센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강도 및 강간 피해자와 부인 및 아동 학대의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공공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필요한 의류품을 제공하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알코올 혹은 약물 중독자의 갱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 경영자 등 전문가들이 자발적 조직에 지원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의 자원 재생 활동, 에너지 절약 활동, 반공해 운동, 동물 보호 등 환경 보호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불만 처리와 대중의 인식과 법률 개선을 위한 조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경제 활동 행위의 구성을 GNP 구성으로 보면 기업 부문이 80퍼센트, 정부 부문이 14퍼센트임에 비하여 제3부문이 6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제3부문은 총 고용의 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부문의 피고용자는 건설, 전기, 수송 또는 섬유나 의류 산업보다 더 많다. 제3부문의 자산은 현재 연방 정부의 약 1/2에 해당된다. 1980년대 초반 예일 대학교의 경제학자 루드니에 의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자발적 조직들의 지출이 7개국만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GNP보다 더 많다고 한다. 비록 제3부문이 총고용과 총수익 면에서 정부 부문의 절반밖에 안되지만 최근에 정부나 사적 부문보다 2배나 더 급속하게 성장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공동체 서비스는 전통적 형태의 노동에 대한 혁명적인 대안이다. 노예, 농노, 임금 노동자와 달리 강제성도 없고 금전적인 관계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도움 행위이자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로서 스스로 원해서 하는 행위이며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경제에서의 선물 주기와 유사하다. 공동체 서비스는 세상만사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오며 개인의 부채 의식에 의해서 동기화된다. 이것이 종종 수혜자와 후원자 간의 경제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교환이다. 이 점이 공동체 서비스와 물질적 내지 금전적 교환이자 경제적 손익이 사회적 결과보다 우선시되는 시장 행위와의 차이이다.
자발적 조직들은 다른 나라들에도 존재하고 있고 중대한 사회적 힘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만큼 잘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미국인들은 자발적 조직들을 개인적 관계가 풍요롭게 되고 지위가 성취될 수 있는 피난처로 생각해왔고 따라서 공동체 의식이 창출될 수 있었다. 제 3부문은 다양한 이해를 지닌 미국인들을 응집력 있는 사회적 일체감으로 결집시켜 주는 결속력이자 사회적 접착제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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