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클로드 르포르의 낡음과 새로움

解説 クロード・ルフォールのさとしさ

토나키 요테츠(渡名喜庸哲)

 

* 아래에 번역한 것은 클로드 르포르의 책 <민주주의의 발명>의 일역자 토나키 요테츠가 이 번역서에 붙인 해설이다. 평이한 내용도 있고 정보도 있기에 번역해둔다. 이 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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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번역한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다.

낡았다고 한 것은 단순히 이미 최초로 출판된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금세 읽을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직 소련이 세계에 대해 패권 중 하나를 쥐고, 동유럽의 민주화의 다양한 운동들을 억압했던 시대의 사건이다. 냉전 붕괴 이후, 이런 틀 자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낡고, 게다가 읽기 쉽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문체로 써진 책을 굳이 번역한 까닭은, 르포르가 지닌 뻣뻣하고 느릿한 충격을 전하는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이라는 시대에도 명확하게 손에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이, 이 책은 이후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한 가지 조류를 창시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런 영향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한쪽의 전체주의라는 말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학문적 검토를 받지 못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체제라면 어느 체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제멋대로 사용하기 좋은 형용사나 비판을 위한 욕설로 격하되고, 다른 한편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다수결이나 숫자 세기의 표대결 게임과 동의어인 양 회자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 과정(르포르라면 권력자본지식이 융합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민주주의전체주의에 대해 지금도 색이 바래지지 않은 근원적인 고찰이 르포르에게는 있을 터이다.

얼핏 보면, 소련형 혹은 프랑스형 공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는 르포르의 손놀림은 자유주의’, 더 나아가 보수주의에 의한 공산주의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을 비판하는 형태로, 르포르 나름의 전체주의 비판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르포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보이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반공서’로 읽는 것은 완전한 오독이다. 맑스를 공부하면서도 이른바 맑스주의와는 선을 긋는 르포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이나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됐을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사회에서조차도 왜 똑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조직화된 지배양식이 발견되는가, 그리고 좌파를 자칭해온 지식인들은 왜 이것을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쫓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르포르가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자유주의라는 구도 자체가 더 이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 포스트공산주의’(iv)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전체주의공산주의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체주의민주주의의 둘 다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의 모습을 한계까지 추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그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당분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로 그렇게 부르기에 알맞은가? 원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을 계속 제기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르포르의 딱딱하고 둔탁한 충격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과 경력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La Brèche, avec Edgar Morin et Jean-Marc Coudray, Paris, Fayard, 1968/2008〔『学生コミューン西川一郎訳合同出版一九六九年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 Genève, Droz, 1971/Paris, Gallimard, 1979〔『官僚制批判諸要素未邦訳

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Paris, Gallimard, 1972〔『マキァヴェッリ作品研究未邦訳

Un homme en trop. Essai sur « L’Archipel du Goulag », Paris, Seuil, 1975〔『余分人間──『収容所群島をめぐる考察宇京頼三訳未来社一九九一年

Sur une colonne absente. Écrits autour de Merleau-Ponty, Paris, Gallimard, 1978.〔『不在──メルロ= ポンティをめぐって未邦訳

Les Formes de l’histoire, Paris, Gallimard, 1978〔『歴史諸形象未邦訳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Paris, Fayard, 1981/1994.本書

Essais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le), Paris, Seuil, 1986.〔『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世紀)』未邦訳〕 ->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Écrire à l’épreuve du politique, Paris, Calmann-Lévy, 1992/Paris, Pocket, 1995〔『エクリール──政治的なるものにえて宇京頼三訳法政大学出版局一九九五年

La Complication ── retour sur le communisme, Paris, Fayard, 1999.〔『錯綜──共産主義への回帰未邦訳

Le Temps présent. Écrits 1945-2005, Paris, Belin, 2007.〔『現在── 一九四五年〇〇五年未邦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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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많은 논문을 집필했다.[각주:1] 또한 서문가序文家로서의 모습도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의 프랑스어 번역(Flammarion, 1985), 에드가르 키네의 『혁명(Belin, 1987), 단테의 『제정론(帝政論)의 프랑스어 번역(Belin, 1993)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필두로 하는 많은 저작에 서문을 붙였다.

 

클로드 르포드는 192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파리의 카르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만난다. 메를로-퐁티의 영향으로 맑스에 눈을 뜬 르포르이지만, 서서히 트로츠키주의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설에 포함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부감을 깨닫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해 위화감을 품는다. 전후 유네스코에서 근무한 후, 194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전후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한 르포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라는 그룹을 설립하고,[각주:2] 동명의 잡지에서 이미 동구권의 관료주의적 지배양식에 대해 호된 비판을 던졌다. 50년대에 작성된 논문 중 주요한 것은, 이후 관료제 비판의 요소들역사의 형상들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에서도 훨씬 더 지배억압의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스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주류파가 자치또는 자율을 지향한 하나의 혁명정당으로서의 활동의 방향성을 탐색한 반면, 르포르는 그 어떤 조직화도 경직화하고 억압장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도저히 감추지 못했고, 1958년에 갈라선다. 맑스주의적인 문제계를 르포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의 5장에서의 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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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Merleau-Po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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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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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르포르는 두 개의 중요한 논쟁을 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논집 인류학과 사회학(1950)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붙였는데, 이것에 대해 르포르는 51년에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논문 교환과 인간 사이의 투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특히 상징의 지위를 둘러싸고) 반론을 가했다.[각주:3] 다른 한편, 르포르는 실존주의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사르트르의 52년의 논고 공산주의자와 평화에 대해 『레 탕 모데른느195389호에 맑스와 사르트르를 발표하고, 사르트르가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을 동일시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고, 이 때문에 『레 탕 모데른느』와도 멀어지게 된다.[각주:4]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의 이별은 르포르에게 정치활동보다 대학에서 연구자·교육자로서 집필을 통한 정치철학의 이론화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5년부터 71년에는 칸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다. 거기서의 제자들로는 알랭 카이예, 마르셀 고셰, -피에르 르고프 등이 있다.

이른바 <685> 때에는, 옛 친구 에드가 모랭 및 카스토리아디스와 함께 곧바로 반응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공저 685: 균열(일역본 제목은 학생코뮌)을 같은 해에 저술했다(이 책의 장-마르크 크드레이는 카스토리아디스의 가명이다). 혁명의 주체를 학생운동에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급에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쳐놓고, 르포르는 학생반란에, 단지 대학 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대학으로 구현된 근대 산업사회 전반에 대한 재물음을 보고 있다. 동유럽의 민주화에 대해 논한 이 책에도 밑바탕에 깔린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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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논문을 레이몽 아롱에게 제출하고,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을 거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애드가 모랭과 함께 사회학·인류학·정치학의 영역횡단적 연구소”(현재의 에드가 모랭 연구소)를 지휘하고, 나중에 피에르 로장발롱과 함께 레이몽 아롱 정치학 연구소를 세운다. 1989년에 이 연구원을 퇴직한 후에도 정력적으로 집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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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의 르포르의 과제는, 1950년대부터의 관료제 비판의 작업에 의거하여, 후술하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출판을 필두로 하는 동시대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여분의 인간을 참조) 마키아벨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철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전체주의개념을 정밀화하고, 거꾸로 그것과 대쌍이 되는 형태로 민주주의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민주주의의 발명은 그런 일련의 작업의 성과에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조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르포르에게 그때마다의 친구들과 더불어 발간하고, 열띤 논고를 모은 몇 호의 잡지를 간행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잡지로 이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친구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과 새로운 잡지를 세운다는 단속적인 학술잡지를 통한 논의의 장이야말로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레 탕 모데른느이후에도, 68년에는, 현재는 현상학자로서 알려진 마르크 리실(이 책의 7장 참조) 등 브뤼셀자유대학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잡지 텍스처에 마르셀 고셰와 함께 참여하여 이 잡지의 편집에도 종사한다. 게다가 77년부터는 고셰와 더불어, ‘유토피아개념에 대한 사회사상사로 나중에 유명해진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등과 리브르를 창간한다(이 책의 1, 9장의 초출은 이 잡지이다). 이 잡지는 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부언하면, 리브르의 면면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함께 시도한 것이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재독해이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읽히는 자발적 복종론의 파이요 사의 문고판에는 당시에 쓴 고셰와 아방수르가 연명한 서문과 클라스트르의 라 보에티론에 덧붙여, 르포르의 <일자>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도 보이는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는 사상의 실마리를 라 보에티한테서 찾고 있는 것이다.[각주:5] 그 후 80년대에는 아방수르, 피에르 파셰, 니콜 로로 등과 새로운 잡지 과거/현재(Passé/Présent)를 창간하고, ‘개인이나 테러등을 테마로 특집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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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드 라 보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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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80년대에는 민주주의론, 혁명론에 덧붙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논고 등을 보탠 논집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19세기-20세기)을 저술했다. 이것은 본서와 나란히 르포르 정치철학의 이론적 고찰이 정리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서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면서 시사되고 있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중세적인 신학적 정치관의 현대적 잔존을 문제 삼는 중요 논문 신학-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은 특필할 만하다.

이 시기의 르포르의 활동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이론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1988년의 이른바 라쉬디[루시디]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만 라쉬디[루시디] 옹호위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 라쉬디[루시디]론은 1992년 간행된 에크리르에 수록되어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론이나 다른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사드, 토크빌, 기조 등에 관한 논고도 수록되어 있고, 르포르의 사상적 영향관계나 동시대적 관심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999년 간행된 착종은 부제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했지만, 물론 그때까지의 신랄한 공산주의 비판을 거친 말년의 변절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다시금 공산주의의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계획 하에서 이와 관련된 논고가 정리되어 있다. 2007년의 현재 : 1945-2005은 그때까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을 중심으로 모은 선집(anthology)이다.

최후의 르포르는 췌장암을 앓았다. 파리 좌안 7구의 벡(Beck)가에 있는 5층짜리 자택에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르내리기를 하고, 뤽상브르 공원에 나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전부터 친한 벗인 에드가 모랭이 뻔질나게 병문안을 한 보람도 없이, 201010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의 장례식 때, 모랭은 르포르의 죽음을 앞에 둔 스토아학파 같은 고귀함을 증언하고, 그를 “그 어떤 진보주의적 환상에도 양보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사상가, 그리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사상가를 그리워했다.[각주:6]

 

클로드 르포르를 어떻게 위치시킬까?

우노 시게키(宇野重規)는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조류들을 개괄하는 저서 정치철학으로에서, 거기에는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레이몽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또는 반-맑스주의적 흐름이다. 둘째는 알튀세르 이후의 맑스주의적 사상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비판이나 주체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및 클로드 르포르 등처럼 맑스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맑스주의 비판을 거쳐 전체주의 비판에 이르는 조류라고 한다. 우노의 정리에 따르면, 그 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은 알튀세르의 흐름에 속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뤽 낭시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포함한 그룹, ‘68년 사상을 비판하는 소르본 계열의 알랭 르노나 뤽-페리 등의 그룹, 그리고 아롱 및 르포르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을 중심으로 한 그룹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각주:7]

이처럼 르포르는 80년대 이후 복권이 외쳐지는 프랑스 정치철학의 하나의 원류를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르포르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절친인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서는 주요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한 에구치 칸(江口幹) 씨가 쓴 평전이 있으나,[각주:8] 르포르에 대한 연구 논문은 매우 적다.[각주:9] 르포르가 경원시됐던 것은 그의 난해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른바 정통파 맑스주의 사상은 물론, 실존주의에도, 구조주의에도 과감하게 논쟁을 걸고, 유행하고 있는 학파로의 귀속을 항상 거부했다는 독자적인 입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금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치철학복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돌이켜보면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1981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꽤 커다란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미 50년대부터 스탈린비판과 폴란드의 폭동(이 책의 10) 및 헝가리 봉기(이 책의 8, 9) 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68),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 등의 사건, 게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 50년대 말부터 집필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73년의 프랑스어 번역이 처음이었다 에 의해 소련 및 공산당을 근거의 하나로 삼았던 정당 및 사상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뚜렷한 조짐은 이 책의 11장에서 논하는 폴란드의 민주화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치의 겉 무대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의 구호와 더불어 소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프랑스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은 좌파연합을 실현시켰다(이 책의 4장 참조).

좌파연합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81년의 미테랑 사회당 정권을 실현시켰지만, 아무튼 그것이 다양한 모순이나 균열을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미테랑 정권이 사회주의적 기업 국유화 노선으로부터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대전환을 보였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상 면에서는 알튀세르의 맑스주의의 주축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다양한 사상 조류가 생겨난다. 대체로 <685> 이후, <>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혁명이론에 무게를 둔 사상으로부터, <좌익 급진주의>라고 불리는 극좌파조직이나, 3세계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이 활짝 꽃피게 된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얘기되는 앙드레 글뤽스만, 베르나르-앙리 레비 등 신철학(누벨 필로조피)”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에 의한, 미디어용 전체주의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더욱 광범위한 사상의 변동이 프랑스를 덮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치의 이름으로 경시됐던 종교윤리가 복권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일반적으로 인지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며, 유대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쪽에서도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가 회자됐다. 그리고 정치철학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해진 것도 역설적으로 이 시기이다. 그때까지 정치철학이라고 하면, 생산관계를 도외시한 부르주아 이론이라고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퇴조에 의해,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정치철학에 본격적인 주목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기에, 공산주의는 물론 실존주의로도 구조주의로도, 더 나아가 자유주의로도 공화주의로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바로 난간[그 무엇에도 기댈 곳] 없는 사고를 실천한 르포르는, 1983년의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정치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고,[각주:10]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이 부흥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각주:11] 르포르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많다. 맑스를 근본으로, 박사논문의 주제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보에티, 미슐레, 토크빌 등 과거의 사상가, 게다가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레이몽 아롱,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같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흔한 정치철학사또는 정치사상사로는 귀착하지 않는다. 제도로서의 정치(la politique)’와 그 배후에서 그 구체적인 현상형태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구별하고, 후자의 모습을 철학적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는 스승 메를로-퐁티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인 것의 현상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자세를 바탕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통저(通底)하는 현대의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특히 관료제와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도려내는 것,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자명시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이른바 이런 비판적 사회철학이야말로 르포르가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자세 때문에 르포르는 그 어떤 유파도 구성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은 폭넓다.

앞서 인용한 우노(宇野)가 서술하는 것처럼, 르포르 자신이 소속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레이몽 아롱 연구소의 정치철학자에 대한 영향은 물론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칸대학 시절의 제자인 마르셀 고셰에 의한, “근대의 탄생을 정치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관계로 파악하는 최초의 주저 세계의 탈마술화세[네] 권짜리 대작민주주의의 도래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신학정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르포르의 관점을 확대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각주:12]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피에르 마냉이나 필립 레노 등에 의한, 특히 토크빌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재평가나, 피에르 로장발롱의 대표제개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사의 시도도 크게 말하면 똑같은 조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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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르포르의 영향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상사나 사상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종교 등등 다양한 사회과학의 영역을 횡단하는 비판적 사회철학이라는 관점이야말로 르포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고셰와 마찬가지로 칸대학에서 르포르에게 배운 알랭 카이예와 장-피에르 르고프의 사회학적 경향을 지닌 정치철학의 시도를 언급해야 한다. 특히 르포르로부터의 영향을 자인하는 카이예는 모스의 증여개념을 기축으로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등의 사회과학 전체를 내다보는 영역 횡단적인 관점 하에서 연구 그룹 “MAUSS(사회과학에서의 반공리주의 운동)”을 수립하고, 동명의 잡지를 무대로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경제주의나 의회제 민주주의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공리주의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독파한 카이예의 자세는 바로 르포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3] 또한 르고프는 <685>의 사상의 비판적 총괄에서 출발하고, 르포르가 논하는 시대보다도 나중인 미테랑의 현대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프랑스의 정치적·사상적 변동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르포르 및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이론적 전거로 삼고, 매니지먼트적 사상이 기업이나 교육에 침투하는 온화한 야만이나 포스트전체주의시대에서의 전체주의그 자체의 변용된 모습을 그러내는 르고프의 작업 또한 르포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각주:14]

위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관계와는 별개로, 80년대 이후 프랑스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사상적 고찰과 르포르 사이의 공명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동시대부터, 특히 권력론이나 근대의 파악방식을 놓고 푸코와의 관계가 논해졌으며, 혹은 르포르가 말하는 근원적인 분열내지 항쟁, 리오타르에 있어서의 쟁론(le différand)’ 개념과의 가까움에 대해 주목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리오타르도 또한 과거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멤버였다. 혹은 정신분석과의 관계도 없지 않다. 이 책의 5장은 정신분석가 르네 마조르를 중심으로 한 잡지 Constellations의 연구회에 초청됐을 때 발표된 것이다. 혹은 르포르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이라는 생각의 원류로서,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라캉을 찾아내며, 르포르가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인 것실재적인 것을 정치사상에 응용했다고 파악하고, 게다가 이로부터 최근의 급진민주주의에 이르는 논리를 보는 해석도 제시되고 있다.[각주:15] 정신분석가이기도 했던 카스토리아디스의 상상적인 것과의 관계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참고로 세포국가를 주제로 하는 Constellations의 같은 호에는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적 패닉도 게재되어 있다.[각주:16] 또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 원래는 이 두 사람이 주최한 81년부터 82년에 걸친 정치적인 것의 후퇴를 주제로 한 연구회에서의 발표가 바탕이 됐다.[각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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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retrait du poli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nancy the retreat of the politica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다가 나중에 보듯이, 르포르의 정치철학의 근본에는 정치적인 것의 장소를 인민이나 군중같은 얼마간의 주체내지 실체에 의해 차지될 리가 없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소”, “공허의 장소로서 파악하고, 거기에서의 사회/권력의 분할, 혹은 실재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근원적인 항쟁을 통해서 사회라는 것이 구현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점에서 현대의 프랑스 사상에 공통되는 포스트정초주의의 흐름에 르포르를 위치시키고, 낭시, 알랭 바디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과 관련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각주:18] 다만 민주주의의 주체장소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예를 들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프랑스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사상가들과는 가까울 뿐만 아니라 거리도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가령 랑시에르는 주저 불화에서 이런 르포르에 있어서의 이런 미규정적인 장소로서의 인민내지 데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을 쟁점으로 했던 것이다.[각주:19]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실상형상화작품화’(, 제도화)로 회수되지 않는, ‘무한프락시스를 보고 있는 낭시의 생각은 오히려 르포르와의 가까움을 보여줄 것이다.[각주:20]

르포르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어권은 물론이고,[각주:21] 영어권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번역 소개나 독해가 진행되고 있다. 1인자로는 르포르 저작의 영어번역에 붙인 해설 등으로 그 사상의 보급에 진력한 딕 하워드가 있다. 또한 버나드 플린의 클로드 르포르의 철학은 프랑스어로 번역될 정도로 빼어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각주:22] 뉴스쿨포소셜리서치는 르포르의 사후 곧바로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공적을 칭송하고 있다.[각주:23] 프랑스에서는 20123월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166월에는 과거 르포르가 가르친 칸 근교의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에서 르포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expérience démocra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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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명에 대해

이 책에는 원래 독립적 형태로 각종 매체에서 공표된 11장이 2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초출은 원주를 참조). 그래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초판에 대한 서문말미에서 말하듯이, 전체는 하나의 논의로 관통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논의이다. 거기에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발명은 동쪽에서 온 온갖 이의제기, 온갖 반항이라고 간주되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369). 1부와 제2부의 표제를 각각 따오면, 전자가 전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전체주의 개념의 이론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이론편이며, 후자는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반소련적·반전체주의적 봉기를 이런 민주주의의 발명새로운 조짐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각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첫머리에서 옮긴이의 요약을 붙여두었기에 자세한 것은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주 간단하게 전체의 흐름만 확인해두면, 1장과 2장이 가장 이론적인 장으로, 전자에서는 인권개념을 축으로 근대의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고, 후자에서는 바로 전체주의의 논리가 정면에서 논해지고 있다. 3장은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스탈린주의와의 관계, 4장은 70년대의 프랑스 공산당·사회당의 좌파연합, 5장에서는 르포르 자신이 과거 맑스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빼져나갔는가라는 구체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각 장의 후반부에서 전체주의의 개념 그 자체의 이론화가 시도되고 있으며, 서로 공명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6장에서 (주로 소비에트에서의) 반체제파의 문제, 7장에서 혁명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결하게 논의된 후, 7장부터 9장에 걸쳐서 1956년의 헝가리 봉기(동란), 10장에서는 같은 해의 폴란드의 이른바 포즈난 폭동이라는, 스탈린 비판 이후의 반소련의 민중봉기가 다뤄진다. 11장은 같은 폴란드에서 80년대부터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르포르의 기본 테제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가, 그 개략을 확인해두자.

르포르는 다양한 표현으로 전체주의를 특징짓고자 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은 <하나인 인민(Peuple-Un)>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첫째로, 르포르가 논적으로 삼은 기존의 공산주의 사상과의 관계에서도, 둘째로 르포르의 또 다른 열쇠 개념인 분할의 철폐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선 곳곳에서 이뤄지는 르포르에 의한 기존 공산주의 비판의 요점은, 공산당부터 트로츠키주의자, 좌익급진주의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전체주의라는 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히 파시즘과 나치즘에는 비판을 향했지만, 싸워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이라고 하며,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를 보려고 하는 비판은 자본주의에 이로울 뿐이라고 기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포르에 따르면, 그들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은 사실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가를 인민의 의지와 권력에 종속하는 하나의 국가로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 아래에서 국가가 사회와 일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바로 이 발상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상이한 차원의 구별을 철폐했지만, ‘권력의 특이성을 깨닫지 못하고, 관료제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그 특질을 분명히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르포르에 따르면, 바로 이 점이야말로 전체주의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민사회의 분할이 철폐되고, 하나의 신체를 이루듯이, 인민=프롤레타리아트로 융합한다는 생각이다. 5장의 제목이 적절하게 말하듯이, “신체의 일체성이야말로 문제이다(143). 이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2장 및 3장에서 인용되는 스탈린에 대한 트로츠키의 말이다(52, 99). 거기에서는 짐은 국가이다라고 말하는 루이 14세에게 나는 사회이다라고 말한 스탈린이 대치되어 있는데, 루이 14세의 시대는 아무리 절대왕정이었다고 해도, ‘사회의 부분이 그 외부에 남겨져 있었던 반면에, 스탈린의 전체주의에서는 <>을 매개로 하여 국가도 사회도 인민도 모든 것이 하나의 신체혹은 조직을 이루게 해서, <일자>로 환원된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파는 이런 사회의 외부에 추방해야 할 <타자>, 신체의 건전한 일체성을 위협하는 기생자라고 지목된다. <하나인 인민>인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내부에 분할이나 항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다양한 분할이 철폐된 <하나인 인민>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추상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에서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할의 철폐란, 구체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생산, 교육, 과학연구, 사법, 문화 등 본래 독립적이어야 할 시민사회의 각 영역에 침입한다는 사태를 동반하고 있다. 이런 영역들은, 비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독립된 가치를 지니며, 그 나름대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에서는,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법적 차원, 문화적 차원, 미적 차원, 과학적 차원, 교육적 차원 등의 분할까지도 철폐되고(르포르가 곳곳에서 말하는 <권력>, <>, <지식>이라는 것은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심급을 가리킨다), 법적으로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가, 학문적으로 무엇이 참인가, 교육기관에서 무엇이 가르쳐져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판단되는가 등등이 <하나인 인민>의 논리에 기초하여 결정되어 버린다 각각의 영역에 더 이상 독립된 판단을 내리는 심급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르포르는 이런 융합을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관료조직의 작동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기업적 논리가 침투하고, 관료 조직이 금융계나 산업계로부터의 압력에 종속한다는 구조도 물론 시야에 넣고 있다는 것도 부언해두자. <권력>, <>, <지식>에는 물론 <자본>도 보태진다.

이처럼 르포르는 전체주의에서의 표상이나 상징의 작용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소비에트적인 지배양식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거기로부터 이론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상징의 차원과 현실/실재의 차원을 구별한 뒤, 그 양자를 오가는 형태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려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얘기되듯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실/실재에 사회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것을 악마화해 버리는 그 전능함을 천진난만하게 상정하는 것의 단적인 물구나무 세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르포르에게 전체주의에 의한 상징적인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실재에 있어서는 다양한 분열이나 항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균열’(221, 319)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균열을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민주주의의 발명조짐을 읽어내는 작업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대중봉기를 논하는 2부의 주제이다.

이런 현실[실재]적인 균열에 기초하여, 르포르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가? 르포르에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까지 봤던 전체주의 사회의 물구나무 세우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와 사회, 사회 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권력>, <>, <지식> 등등의 각 차원도 분리해야 하는 사회이다. ,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민에게 <권력>의 원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외재적인 <>에 제약되어야 하며, <지식>도 독립된 장소를 갖고 이어야 한다고 간주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인민(peuple)’ 그 자체가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고 일체화를 거부하고, 내부에 균열이나 항쟁을 들여온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르포르가 이따금 이의제기권리요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각의 인민은 스스로의 권리에 기초하여, 혹은 현실/실재로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을 향해, ‘인민그 자체가 쥐고 있다고 하는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 보면, ‘인민은 항상 완전한 일체를 달성하는 것이 없으며, 말하자면, “인민의 동일성은 끊임없이 물음에 부쳐진다”(150). 민주주의 사회가 내부인 이타성의 시련을 겪는다고 얘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129).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사회와 사회 그 자체의 분리로부터 새로운 사회가 끊임없이 산출되는 것이다.

참고로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조짐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민중봉기에서 찾아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그런 예외적인 사태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르포르가 보통선거의 상징적 의미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 보통선거는 인민의 의지의 발현이며 새로운 사회조직의 정초인 동시에, 일체적인 것이라고 상정된 인민이 개별적인 수로 세어질 수 있는 단위로 변환되고”, 사회의 해체가 모방되는 계기라는 것이다(122-123). “수가 일체성을 해체하고, 동일성을 무화한다고도 얘기된다(149). 여기에 있는 것은 보통선거를 통한 이의제기라는 현실주의적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통선거를 통해 바로 사회라는 장소가 결코 일체화할 수 없는 항쟁의 장소로서 드러난다는 그 상징적인 작용이 문제인 것이다. 르포르가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를 굳이 원용한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속표지에 그려진 괴수 리바이어던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군중이, 개개의 다수의 군중으로서 가시화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각주:24]

헌데, 그렇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인민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는 권력이란 어떤 장소를 갖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그것은 인민이 스스로를 물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산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다”(57).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은 공허한 장소(lieu vide)”, “정의상 점유할 수 없는 상징적인 장소이다(91). 참고로 르포르는 권력, 인민이 자율 혹은 자주관리를 위해 기피해야 할 것으로도, 똑같은 목적을 위해 탈취해야 할 것으로도 파악하지 않는다. 르포르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곳곳에서 얘기되듯이, 사회 공간을 질서화하고,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상화또는 제도화하는 차원이다. ‘권력이 어떤 방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형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나인 인민>에 있어서의 <권력>, <>, <지식>의 융합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해, “공허한 장소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민의 내적 항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대치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단순한 이항대립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항쟁적 민주주의의 실천으로의 유혹이 르포르의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니며, 20세기의 정치경험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에 기초한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권력의 장소를 둘러싼, 정치사상사적인 이해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적해둔다.

문제는 1장이 다루고 있듯이, 근대 민주주의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점에 있다. 르포르는 이것을 중세 봉건제로부터의 해방으로서 파악하는 것도,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주체화의 전단계로서의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의 신학정치적인 정치체로부터의 모종의 연장선상에서 근대민주주의의 도래를 파악하고, 그 위에서 양자의 차이를 봄으로써, 더욱이 이로부터의 전체주의로의 변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5장에서 상술되듯이, 이 논의는,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가지 신체론에 근거하고 있다.[각주:25] 근대 이전까지는, 주권자로서의 왕은,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구체저인 신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징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로 이어지는 초월적 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인 신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 구상화된 외재적·초월적 질서야말로, 하나의 국가의 일체성을 떠받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의의가, 왕의 신체가 파괴된다, 혹은 지금까지 초월적인 질서와 세속적인 질서를 연결했던 머리가 잘려짐으로써, 그때까지 하나의 신체를 이루었던 국가가 탈신체화(désincorporation)’한 점에서 본다(24, 149). 이런 외재적·초월적 질서 간단하게 말하면 <>의 질서 야말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이며, <권력>, <>, <지식> 등 다양한 심급을 묶었지만, 이 연결이 해소되고, 각각의 심급이 독립해가는 과정이 탈착종화(désintrication)”이다(25). 근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이런 탈신체화·탈착종화야말로, 앞에서 본 권력공허한 장소를 낳게 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권력>의 원천 내지 근거를 지금까지처럼 외재적·초월적인 질서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란 권력, , 지식이 근본적인 미규정성에 노출된 사회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자신 속에 양의성또는 모순을 본질적으로 품고 있다. 권력의 장소는 이제 외재적 원천을 갖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닌”, “공허한 장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은 인민자신 속에서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공허한 장소에, 현실적인 실체라고 상정된 대문자 <인민>삽입되고, 바로 그것이 권력의 주체라고 간주되자마자, 그 사회는 <하나인 인민>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를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내부인 타자를 대문자의 <타자>화하고, 이것을 외부의 혹은 기생자로서 배제할 것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의 이유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는 동시에, 그 이행을 방해하기 위한 이의제기, 권리요구 등 내적 항쟁의 실천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정당성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인 신체>로서 응고되고, 전체주의로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항상 내적 항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수화시키고, 스스로를 재창출=재발명(réinventer)필요가 있는 것이다(369).

 

위와 같이, 약간은 고풍스러운 대상을 다루고, 복잡한 논리에 입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시도가 어떤 것인지, 그 현실[실재]적 및 상징적 작용을 철저하게 캐묻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 민주주의라는 것의 윤곽을 밝히려고 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판 간행 당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도, 전제하고 있는 지적 틀도, 현재에서 보면 오래됐음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우 30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망각하기에는 충분히 길지만,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에는 적당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눈앞에 있던 것은 과연 민주주의였는가? 만일 민주주의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면, ‘전체주의는 형태를 바꿔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을 생각하기 위해 약간 관점을 과거로 물리는 것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결코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1. 일본어로 번역된 주된 논문으로는 다음이 있다. 「民主主義という問題」(本郷均 訳, 『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二〇世紀)』 수록), 「人権と政治」(松浦寿夫 訳, 『現代思想』, 17巻 12号, 1989年 ; 18巻 4号, 1990年(이 책에 수록), 「デモクラシーの社会学のために」(竹本研史 訳, 『アナール 一九二九―二〇一〇』, 第3巻, 藤原書店, 2013年). [본문으로]
  2. 그 중 카스토리아디스의 논문을 모은 것은 이미 일본어 번역이 있다. 『社会主義か野蛮か』(江口幹 訳, 法政大学出版局, 1990年). [본문으로]
  3. C. Lefort, « L’échange et la lutte des hommes », Les Temps modernes, nº64, 1951.(『歴史の諸形象』 수록). [본문으로]
  4. 일련의 논쟁은 다음의 일본어 번역에서 읽을 수 있다. サルトル, ルフォール, 『マルクス主義論争』, 白井健三郎 訳, ダヴィッド社, 1955年. [본문으로]
  5. E. de la Boétie, Le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Paris, Payot, 1976. [본문으로]
  6. E. Morin, « Claude Lefort(1924 -2010). Avec Lefort », Hermès, La revue, no. 59, 2011. [본문으로]
  7.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48頁 이하. [본문으로]
  8. 江口幹, 『疎外から自治へ──評伝カストリアディス』, 筑摩書房, 1988年.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르포르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으나, 특히 エンツォ・トラヴェルソ의 훌륭한 책인 『全体主義』(平凡社新書, 2010年)의 관련된 부분은 유익하다. 또한 佐々木允臣 씨가 법학(특히 인권론) 분야로부터 일관되게 르포르를 논하는 것은 특필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佐々木允臣, 『自律的社会と人権』, 文理閣, 1998年을 참조. 이 밖에도 松葉祥一, 「民主主義の両義性──クロード・ルフォールと「政治哲学」の可能性」(『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 및 宇野重規, 「メルロ=ポンティ/ルフォール 身体論から政治哲学へ」(『現代思想』, 36巻 16号, 2008年)도 참조. [본문으로]
  10. 「民主主義という問題」, 일역본 앞의 논문, 40頁. [본문으로]
  11. 프랑스의 학술지 『정치와 사회』의 2003년의 “프랑스에서의 정치철학의 회귀”를 주제로 한 특집호에서 편집자들은 르포르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G. Labelle et D. Tanguay(eds), « Le retour de la philosophie politique en France », Politique et société vol. 22, no. 3, 2003. [본문으로]
  12. M. Gauchet,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Gallimard, Paris, 1985 ;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 Gallimard, t. 1 , t. 2, 2007, t. 3, 2010. 이하도 참조. マルセル・ゴーシェ, 『民主主義と宗教』, 伊達聖伸・藤田尚志 訳, トランスビュー, 2010年. [본문으로]
  13. アラン・カイエ, 『功利的理性批判──民主主義・贈与・共同体』(藤岡俊博 訳, 以文社, 2011年)을 참조. [본문으로]
  14. ジャン=ピエール・ルゴフ, 『ポスト全体主義の民主主義』(渡名喜庸哲・中村督 訳, 青灯社, 2011年)을 참조. 또 최근에는 남프랑스의 한 마을로부터의 정점 관측에 의해, 20세기의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형을 묘사하고 있다. 『プロヴァンスの村の終焉』(伊藤直 訳, 青灯社, 2015年)을 참조. [본문으로]
  15. W. Breckman, Adventures of the symbolic : post-Marxism and radical democrac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본문으로]
  16.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フィリップ・ラクー=ラバルト, 「政治的パニック」, 柿並良佑 訳, 『思想』, 岩波書店, 1065号, 2013年. [본문으로]
  17. P. Lacoue-Labarthe, J.-L. Nancy(dir.), Le retrait du politique, Galilée, 1983. [본문으로]
  18. O. Marchart, Political Difference in Nancy, Lefort, Badiou and Laclau,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7. [본문으로]
  19.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 『不和あるいは了解なき了解──政治の哲学は可能か』, 松葉祥一 dhl 訳, インスクリプト, 2005年, 167頁. [본문으로]
  20.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民主主義の実相」, 『フクシマの後で』, 渡名喜庸哲 訳, 以文社, 2012年. [본문으로]
  21. 특히 다음이 중요하다. C. Habib et C. Mouchard,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 Éditions Esprit, 1993 ; H. Poltier,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 Genève, Labors et Fides, 1998 ; N. Poirier(éd.), 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éxpérience démocratique, Le Bord de l’eau, 2015. [본문으로]
  22. B. Flynn, The Philosophy of Claude Lefort,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5. [본문으로]
  23. 그 기록은 우선 정치철학계의 학술지에 게재되고(Constellations, vol. 19, no. 1, 2012), 더 나아가 다음의 증보판으로 출간됐다. M. Plot(ed.), Claude Lefort. Thinker of the Political, Palgrave Macmillan, 2013. [본문으로]
  2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ジョルジョ・アガンベン, 『スタシス──政治的パラダイムとしての内戦』(高桑和巳 訳, 青土社, 2016年)을 참조. [본문으로]
  25. エルンスト・カントーロヴィチ, 『王の二つの身体』, 小林公 訳, ちくま学芸文庫, 2003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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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3/3)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III. 생명권력론과 근대

근대의 외부는 있는가

히가키 : 아까 이치노카와 씨가 왜 푸코는 생명정치를 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말하려 했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근대의 문제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생명권력의 외부는 없잖아요. 그때 자유인격이나 주체같은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우리는 아직 근대가 아닌가, 다시 근대가 아닌가, 아니면 근대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투르는 우리는 아직 근대인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카스가 :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죠.

히가키 : 근대와 비근대를 나누지만, 이것들을 나누는 인간은 모두 근대입니다.

카스가 : 그래서 과학(science)의 힘은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에 의한 지식은 계속 증식하면서 진리가 사회를 바꿔갑니다.

이치노카와 : 그 과학의 힘을 에워싸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생명정치일지도 모릅니다.

카스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아니, 그것은 미묘하고, 과학의 힘을 해방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카스가 : 섹슈얼리티나 퀴어 등은 바로 신화적 사고와 관련된 것이죠.

히가키 : 레비스트로스의 세계군요.

카스가 : 바로 그렇습니다. 서로 죽이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기도 하고, 너무 성행위를 많이 하고 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벌어집니다. 그런 원초적인 사고에는 섹슈얼리티나 퀴어적인 것이 표면화하는가? 레비스트로스는 거기에도 논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문제는 그 전입니다. 야생의 과학이라는 것을 다시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빼고 생명권력을 생각할 수는 없겠죠. 이 문제를 저는 아직 뚜렷하게 다루진 않았으나, 한 가지만 말한다면, 서두에서 히가키 씨가 말했듯이, 푸코가 말하는 생명권력은 개인을 향하는 해부-정치학과 인구나 종에 정위된 생명정치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섹슈얼리티는 이 두 가지 극을 가교하는 것입니다. , 개체는 언젠가 죽지만 생식으로 이어지는 섹슈얼리티를 통해 종으로서 계속 살아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푸코가 말하는 섹슈얼리티의 장치는, 생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잡다한 성적 욕망, 프로이트를 좇아 말한다면, 다형도착을 발견하거나 증식시키거나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또한 일종의 생산입니다. 생식을 통해 개체와 종은 서로 결부되지만, 그런 식으로는 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탈선하는 다양한 욕망 또한 섹슈얼리티의 장치에 의해 산출됩니다. 그것들을 일탈이나 병리라며 관리하거나 배제하거는 움직임이 섹슈얼리티 장치의 내부에서, 예를 들어 정신의학으로서 형성됐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아닙니다. 권력을 단순히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푸코의 지적을 여기서 떠올릴 필요가 있으며, 아까의 히르쉬펠트의 성과학이 일례입니다만, 그것은 틀림없이 섹슈얼리티의 장치 중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독일제국형법 175조의 철폐를 향한 길을 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단순히 해방’이라고 일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푸코는 비판했지만, 거기에 저항의 계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을 간과하면 푸코가 말하는 억압의 가설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혹은 그저 냉소주의가 될 뿐입니다. 생명권력이나 섹슈얼리티의 장치는 175조를 산출하는 것인 동시에, 히르쉬펠트의 성과학을 산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는 없습니다.

히가키 :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이 이라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잘 알고 있으나, 푸코는 고대로 옮겨갔습니다. 푸코는 그것들을 연결하는 선을 탐색하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치노카와 : 확실히 성의 역사2권과 3권에서는 주체(개인)의 문제에 화제가 집중되어 있으며, 종으로서의 신체나 인구에 정위된 생명정치의 문제는 어디로 갔어, 이런 생각이 들지만, 섹슈얼리티를 두 개의 극 사이에 둔다고 하는 1권의 문제설정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저는 푸코는 자세히 모르지만, ‘해부-정치학은 일단 빼버리려는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히가키 : 그런 것 같습니다. 

이치노카와 : ‘해부정치학에 관해서는 감시와 처벌에서 썼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성의 역사2권과 3권에서는 감시와 처벌과는 다른 형태로 주체(개인)의 문제가 재사고됩니다.

 

근대라는 인식틀들

이치노카와 : 미안합니다. 제가 화두를 탈선시킨 탓에 섹슈얼리티 문제로 조금 파고들어간 꼴이 됐네요. 히가키 씨가 제기한 근대라는 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말한다면,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근대, 정확하게는 서양 근대는, 역사와 시간의 인식틀 자체를 바꾼 것으로, 그렇게 하면, 근대가 끝났는지 여부는, 그 근대가 수립한 역사와 시간의 인식틀 자체가 끝났는가 아닌가라는 형태로 논의해야겠네요. ‘포스트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빼어나게 근대적인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죠.

히가키 : 그렇죠.

이치노카와 : 라인하르트 코젤렉(1923-2006) 등의 개념사 연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만(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r Zeiten, Suhrkamp, 1979, S.300ff), ‘modernus’라는 라틴어의 형용사는 이미 중세에 존재했습니다. 5세기 말경부터 존재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antiquus’(옛날의)와 대비되는 말로, 단순히 지금(오늘)’이라는 거죠.

Vergangene Zukunft 

히가키 : ‘현대라는 의미로 이해되더라도, 단순히 지금’이라는 의미죠.

이치노카와 : 우리는 지금부터 수백 년 전의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에서 시작해 근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중세의 ‘modernus’에서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세의 ‘modernus’에 따른다면, 우리에게서의 ‘modernus’2012[2016]인 것이며, 1512년이나 1612년일 수 없어요. 중세의 ‘modernus’ 개념이 우리를 훨씬 현재에 가깝게 하며, 반대로 근대적인 ‘modern’이나 ‘modernity’가 우리를 훨씬 현재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수백 년 전의 과거로 향하게 한다는 기묘한 전도가 있네요.

   또 한 가지. ‘Renaissance’(르네상스)‘Reformation’(종교개혁), 이것들은 ‘Re-’라는 문자에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본래 원점으로 회귀하는 운동, 일종의 반복인 것이지, 옛날의 것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운동이 원래 아니었습니다. 그 원점(고대)과 지금(modernus) 사이에 가로놓인 기간이 중세’(‘media tempestas’ )라고 부르기 시작하기도,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걸쳐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우리로 이어지는 새 시대의 개막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위치시킵니다. 그것들을 당시 추진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중세보다 더 옛날의) 과거에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쪽으로, 즉 그들한테는 미래에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전도가 있습니다.

   하나 더. 아렌트가 혁명에 대해서(1963)에서 지적했듯이, ‘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원래 천체의 회전 운동을 의미하며, 17세기의 영국에서 이 말은 크롬웰이 최초의 혁명적 독재를 수립한 때가 아니라, 1660년에 왕정이 복고됐을 때 사용됐습니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을 중시하는 시간의식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아직 그랬으며, 루소도 사회계약론(1762)에서 대의제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표자라는 생각은 최근의(moderne)것이다. 그것은 봉건정치에, 즉 인간이 타락하고, 인간이라는 이름이 치욕 속에 있었던, 그 부정의하고 어리석은 정치에서 유래한다. 고대의(ancien) 공화국에서 인민은 결코 대표자를 갖지 않았다”(315). 루소는 여기서도 ‘moderne’이라는 말을 중세의 ‘modernus’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마찬가지로, 이상으로 삼아야 할 것을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찾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또한 현재보다 미래가 뛰어나다는 진보의 이념이 확립되고, 동시에 ‘moderne’라는 말이 근대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르네상스 및 종교개혁이라는 과거는 소급적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1800년경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것을 코젤렉은 집합 단수형으로서의 역사의 탄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달리 말하면 세계사의 탄생이며, ‘문명()’라는 도식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훌륭히 체현하는 것이 콩도르세의 인간정신 진보사(1793-94)이죠. 콩트의 사회학도 1800년 무렵에 확립됐습니다. 그런 근대적인 시간의식역사의식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버려서 얘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근대적인 시간의식, 역사의식은, 그런 의식들에 의해 소급적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무렵이 아니라, 훨씬 뒤인 1800년 무렵이 되어야 처음으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히가키 : 푸코는 말년에 칸트의 계몽에 대해 썼는데요, 칸트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유년시대가 끝나고 비로소 처음으로 성숙한 근대에 이르렀다는 식의 매우 근대주의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푸코는 부정하기는커녕,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푸코는 인간은 소멸한다고 말했지만, 소멸하는 축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것에 계속 천착한 것이며, 푸코는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거든요.

이치노카와 : 사회학에서도, 예를 들면 미타 무네스케(見田宗介, 真木悠介) 선생이, 인류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시간의 비교사회학(이와나미쇼텐, 1981)에서 근대적 시간의식과는 상이한 시간의식을 열고자 했습니다만, 근대와는 상이한 시간의식이 거기서 재발견되고, 근대적인 시간의식이 상대화됐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시간의식이나 역사의식 자체는 그렇게 간단하게 깨지지 않으며, 미타 선생 자신이 근대적인 시간의식역사의식의 안쪽으로부터 이 책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서양 근대 이외의 것을 보는 시선 자체가 서양 근대의 틀에 내속해 있는 듯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듯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제게 근대라는 것은 그다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

히가키 : 인류학에서는 그렇겠네요.

이치노카와 : 히가키 씨는 아직 근대가 아닌가, 또 다시 근대가 아닌가, 아니면 근대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만, 제 대답은 지금으로서는 마지막 것에 가장 가깝습니다. 정확하게는 아직 근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만.

히가키 : 제 대답도 그렇습니다. 푸코-들뢰즈주의라고 오해되는 것은 그것입니다. , ‘내재입니다. 내부밖에는 있을 수 없으며, 내부로부터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외부를 요구하니까, 이상한 독해 방식이 됩니다. 특히, 들뢰즈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들뢰즈가 후기에 썼던 것은 영화(1983, 1985)이죠. 영화나 영상은 근대의 으뜸가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영화나 영상에 의해 처음으로 생명의 자연에 접하는, 우리는 진화적 신체에 의해 보는 것이 아닌 생생한 세계를 근대적 테크놀로지를 개입시킴으로써 처음 봤다고 들뢰즈는 쓰고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그렇군요.

히가키 : 그것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외부라고 하면 초월이 되어버립니다. 들뢰즈는 철저하게 내재적입니다.

카스가 : 그것은 알겠지만, 세간의 일반인들은 대부분 외재적입니다.

히가키 : 그건 그렇습니다만 .

카스가 : 인간을 주제로 삼는다면, 그것은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요? 외재랄까, 초월에 예탁하는 것이 끝없이, 겹겹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는 내재에 투철한 쪽이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러면 결국, 갇혀버린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경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히가키 : 철학자에게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론으로(웃음). 철학자는 원래 경험이 부족한 인종이니까요. 현장(field)이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치노카와 : 그건 사회학도 마찬가지이고, 인류학을 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카스가 : 그 대신 [인류학은] 제대로 된 것을 말하지 못한다구요. 그야말로 들뢰즈적 사고로 완결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며

마지막으로 오늘의 논의를 거친 뒤의 감상이나 포부 등을 듣고 싶습니다.

히가키 : 철학에는 경험이 부족한 건가라고.

이치노카와 : 그것은 사회학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사회조사를 많이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는 안 되겠죠. 푸코도 벤야민도 아감벤도, 어떤 경험을 배경으로 삼아 읽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과학자가 생각하고 있는 정도로 깊이 있는 것은 아니며, 연구대상도 포함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푸코나 아감벤의 독해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카스가 씨의 외재에 관한 얘기를 듣고서,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벤야민의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그 말도, 저는 아직 근대의 내부에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 아직 인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스가 씨가 벤야민의 어디에 매료되고 있는지도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카스가 : 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 ‘수평적 반향이라는 것이 두 분과 제 자신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내재적인 논리 전개는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아까 얘기한 스트라썬의 감성도 결국 거기서 유래합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사고양식으로는 세 명 모두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뭐랄까 이 반향을 소중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히가키 : 공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죠.

카스가 : ‘생명권력이라는 게 이론적으로도 세 사람을 결부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그렇군요. 20년 전, 30년 전에도 후기 푸코를 읽다라는 테마로 특집을 짰다면, 벤야민이나 레비-스트로스를 결부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비베이로스  카스트로처럼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에 연결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영역의 확장이 진행되고 있고, 그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 점점 크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인 이치노카와 씨가 구축주의를 매우 싫어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끌어낸 것도 아주 컸습니다(웃음).

이치노카와 : 저는 전부터 줄곧 공언했습니다만(웃음).

히가키 : 철학에서도 자연주의로의 회귀가 보이지만, ‘다자연(多自然)’이라고 말하면 소박한 실재론으로 돌아가버리는 부분이 있고, 물론 이에 대한 의구심은 있습니다. 다만, 큰 흐름으로서 말하면, ‘자연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것이 큰 주제가 됩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결론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도 자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치노카와 : 그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 자신은 못할 수도 있지만.

히가키 : 거대이론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커다란 의미에서의 이론은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역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생명권력생명정치같은 개념을 계속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학에도 요구하고 싶은 것으로, 제가 젊었을 때는 야마구치 마사오(山口昌男)처럼 제 자신이 트릭스터(trickster; 신화나 이야기 속에서 신이나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자를 가리킨다)가 되어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움직임은 정말로 적죠.

카스가 : 학문으로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재의 시대라고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설프게 학문이 됐으니까 수재만 되어 버렸습니다.

히가키 : 온통 수재만이 있는 가운데 다양한 영역을 연결해나가기 위해서도 생명권력생명정치같은 개념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특집이 그 계기가 된다면 좋겠네요.

(2012918, 이와나미쇼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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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목차

사상의 말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2/3)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II. 생명권력론의 최전선

아감벤을 어떻게 생각할까

* 지금 아감벤의 이름이 나왔는데요, ‘생명권력론의 최전선을 생각할 경우에는, 특히 2000년대 이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아감벤의 논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감벤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上村忠男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르조 아감벤


히가키 : 아감벤 같은 존재가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은 솔직히 말해서 의외였습니다. 확실히 이탈리아에는 네그리 같은 사람이 있지만, [네그리는] 들뢰즈나 가타리의 동료였으며 프랑스의 현대사상이나 좌익사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도 잔니 바티모(1936년 생)약한 사고(1983)가 번역되었듯이, 우에무라 타다오(上村忠男) 씨나 오카다 아츠시(岡田溫司) 씨의 정력적인 소개도 있지만, 철학 영역에서 이탈리아가 이 정도로 주목을 받은 것은 처음인 듯 싶습니다.

上村忠男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hoto

우에무라 타다오(@tadao_uemura)                    오카다 아츠시

이치노카와 : 왜 아감벤이 부상한 걸까요?

히가키 :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1998)이 잘 팔렸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일본만의 현상일까 생각해보니, 파리의 서점에도 아감벤코너에 책이 산처럼 쌓여 있더군요. 시기적으로도 그렇게 일본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을 거예요.

카스가 : 난민 문제를 포함해 현지 조사를 하는 사람들도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히가키 : 그렇군요. 다만, 아감벤은 어떻게 해석할지가 어려워요.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1929)나 한스 요나스(1903-93)에게 [공격과 비판의] 칼날을 향하고 있습니다. 후안무치한 일을 저지른 독일인 무리들은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다니 놀랍네, 이런 식의 격렬한 독일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해서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감벤이 처음 주목받은 것은 호모 사케르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푸코의 논의를 넘어서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드는 사람인가 싶더니, 실상은 다른 것 같아요(웃음). 졸업논문에서는 시몬 베유(1909-43)를 다루고, 1960년대가 되면 하이데거의 강의에 참석하고 이탈리아어판 벤야민 전집』을 감수했습니다. 2000년대가 되면 로마세계의 종교론에 생명정치의 문제를 접목시키고, 기독교 세계로부터 뭔가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는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형태로 세계의 주요 장면에 나온 이탈리아인은 꽤 드물 겁니다. 특히 철학의 영역은 고대그리스, 중세를 별도로 치면, 영미계와 프랑스계와 독일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강좌에 대한 인사를 보더라도 확연합니다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제국주의이죠. 그런 상황을 아감벤 같은 존재가 교란시킨다는 것은 매우 큽니다.

카스가 : 과연 그렇죠.

히가키 : 제 선생이었던 사카베 메구미(坂部恵) 씨가 말년에 일본철학회에서, 전지구화 등을 얘기하면서도 왜 일본의 철학과에서는 영미계와 프랑스계와 독일계라는 세 가지에서 선택을 하게 만들까, 이런 시시한 짓은 이제 그만두는 편이 좋다, 논문은 어느 나라 말로 써도 좋고, 베트남 철학이어도 좋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두에서도 조금 언급했습니다만, 이것을 아감벤은 실현해버렸습니다. 이것은 향후 철학자의 모델이 되며, 아마 지금부터 앞으로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부터도 아감벤 같은 역할을 맡는 철학자가 나오겠죠.

   그리고 오늘의 화두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아감벤이 생명정치와 종교를 강하게 연관시켰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푸코는 사목권력(pouvoir pastora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아주 큰 문제이고, 요컨대 유럽의 권력은 유대-기독교적 권력이라고 합니다. 이 개념은 푸코가 1978년에 두 번째 일본방문을 했을 때의 강연에서 다뤄지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하지만, 실제의 푸코는 그 후 거의 전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아감벤은 진지하게 씨름하고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제가 아감벤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다자키 히데아키(田崎英明) 씨한테서였습니다. ‘벌거벗은 생명개념도 다자키 히데아키 씨에게 배웠다고 기억합니다. 이후 번역으로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 목적 없는 수단, 호모 사케르를 읽었고, 서평도 두개 정도 썼습니다만, 아감벤은 사회학자가 사용하기는 매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오오츠 마사키(大津真幸) 씨 등을 제외하면, 사회학에서 아감벤에 의거해서 뭔가를 말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라면 근대가 문제였고, 그것에 걸터앉아 사회학에서 뭔가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만, 앞에서도 얘기가 있었듯이, 아감벤은 로마에서 시작하기에, 결국은 19세기 이후에 생겨났을 뿐인 사회학적 상상력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푸코의 경우도, 어떻게 생각되든 국민국가, 에티엔 발리바르(1942)가 말한 바의 국민적이고 사회적인 국가”(복지국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히가키 :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이치노카와 :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2002년에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고, 이후에도 다른 저작들이 속속들이 번역되고 있습니다만, [독일이]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일에서는 아우슈비츠의 문제를 말하는 이상, 아감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감벤의 나치즘 해석 방식에는 저조차도 실증적 수준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대목이 꽤 있으며, 조금 허풍을 떨고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히가키 : 확실히 철학자 특유의 허풍을 떨고 논리가 성긴 대목이 있습니다(웃음).

이치노카와 : 그리고 칼 슈미트를 그렇게 원용하고 있는 것도, 독일에서는 좀처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버마스가 전형입니다만, 슈미트에 맞서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스가 : 저는 최근 피지에서 일종의 노인 홈(home) 같은 특이한 시설에서 조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말이 편리해서 몇 번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이치노카와 씨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한 가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할까, 인류학자에게는 지금 한 가지의 리얼리티가 없네요. 예쁜 허구를 만들고 있지만, 환기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권자를 권력에 외부는 없다고 선언하는 인간으로 제시한 것은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는 외부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감벤은 사이라고 함으로써 외부를 보여주고, 필연적으로 법치국가의 역설을 제시합니다. 인간들의 편에서 보면, 역설이 있습니다만, 신이 주권자라면 그런 역설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감벤의 외부에는 처음부터 인간이 들어 있으며, 인간화된 외부를 초월적인 것으로서 말합니다. 그런 사이밖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것은 이것으로 알기 쉽습니다만, 그것이 아감벤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가키 : 굳이 아감벤을 추켜세운다면, 주권권력의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이 컸습니다. 푸코는 이제 주권권력은 없어진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을 말했지만, 실제로 주권국가는 있으며, 전구화되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없어질지 여부는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권권력을 다시 다룬 것은 역시 크다=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사이인 것이죠. 삶과의 역설로 주권권력을 내고, 동물과의 역설로 인간을 냅니다. 그 제기방식이 멋지지만, 실증연구로서는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문학적 비유에 불과한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이야기만 하더라도 나치즘에 대한 실증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종교 얘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는 종교 얘기로서의 리얼리티가 있고, 나치즘도 1000, 2000년도 지난 후에는 종교 얘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스가 : 종교 얘기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히가키 : 그런 점은 아감벤에게 일관되게 보인다고 생각해요.

이치노카와 : 일본에서도 예를 들어 홈리스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할 때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말에는 강한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예를 들어 사회학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증적으로 파고들어갈수록,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인류학의 현장에서도,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대로 취급받는다면 벌거벗은 생명이란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확실히 의미가 있으며 비오스가 있다는 게 됩니다.

이치노카와 : 제 감각도 그것에 가깝습니다.

 

벌거벗은 생명과 벤야민

히가키 :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nuda vita)”이라는 개념을 발터 벤야민(1892-1940)폭력 비판을 위하여에 있는 단순한 생명(das blosse Leben)”이라는 표현에서 빌려 왔다죠?

이치노카와 : 그렇습니다.

히가키 : 그런데 벤야민은 단순한 생명에 관해 부정적으로 쓰고 있고, 그것을 중요한 개념으로 채용한 아감벤의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더 말하면, 이 저작에서 취급되고 있는 신적 폭력자체, 상식적으로 읽으면, 그것에 의해 벤야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모르겠고,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어요. 적어도 일본에서 신적 폭력은 아나키스틱한 폭력으로 이해되고, 그렇기에 1960=70년대의 일본에서는 국가의 철폐 등을 향한 논의로서, 좌파적 맥락에서도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치노카와 씨의 독해는 다르던데요?

이치노카와 : 다릅니다.

히가키 : 우선 폭력 비판을 위하여」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추도문이라고 보시는군요.

이치노카와 : 그 점에 관해서는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벤야민은, 물론 로자 룩셈부크르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가 게르숌 숄렘(1897-1982)에게 보낸 편지(19201229)에 비춰봐도,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 때의 벤야민의 염두에 없었다는 것은 절대로 없어요.

히가키 : 또 하나는 신적 폭력에 대해서, 이치노카와 씨는 자크 데리다(1930-2004)를 비판하면서, 이는 의회제 민주주의를 구하는 폭력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이치노카와 : 굳이 말한다면 그렇습니다.

히가키 : 이것은 꽤나 아슬아슬한 독해 아닙니까?

이치노카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줄타기 곡예를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줄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겠지만(웃음).

히가키 : 일반적으로 신적 폭력은 메시아적 폭력, 즉 세계를 모조리 망가뜨린다고 일컬어지는 폭력이라고 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화적 폭력은 피 냄새를 풍기는 폭력이기는 하지만, 신적 폭력은 피 냄새가 나지 않는 폭력이라고 얘기됩니다. 그리고 단순한 생명은 서양근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논의에 지나지 않지만, 신적 폭력은 모든 생명에 있어서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벤야민은 조르주 소렐(1847-1922)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보통 소렐은 아나키즘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치노카와 씨는 소렐과 달리,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이 의회제 민주주의를 잇는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이치노카와 :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자 룩셈부르크도 비판한 유일-의회주의(-議会主義)”를 제창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건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더러 말하라 한다면, 소렐이 폭력론(1908)에서 자신의 생디칼리즘을 분명히 신화(mythe)’라고 표현하고 있고, 다른 한편, 벤야민은 신화적(mysthisch)’이 아니라, 일부러 이것과 구별해서 신적(göttlich)’이라고 말하고 있기에, 그것을 무시하고 벤야민과 소렐의 생각을 그대로 같다고 풀이하는 것은 소박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히가키 : 다만 역사의 개념에 대해서를 읽으면, 우리가 살아온 역사 등은 지구의 역사로부터 보면 단 몇 초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간의 막대기가 균형을 이뤄 현재시(Jetztzeit)”가 되며, 모든 시간이 수평이 되는 곳에서, 모든 과거의 것이 일어나서 구제된다. 이것은 엄청나게 종교적이고 메시아적인 비전입니다. 이것과 신적 폭력이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그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첫째로, 벤야민이 Zur Kritik der Gewalt(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논하는 ‘Gewalt’라는 독일어에는, 예를 들어 ‘Gewaltenteilung’삼권 분립을 의미하듯이, “정당성을 갖춘 권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벤야민은 ‘Gewalt’라는 말에 폭력뿐 아니라, ‘정당성을 갖춘 권력’, 라틴어로는 ‘potestas’라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의 아렌트 얘기에서 히가키 씨는, 철학은 권력도 자연력도 똑같이 으로 이해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때의 potestas’가 아니라 ‘potentia’(독일어로 말하면 ‘Macht’), 즉 정당성 같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인간적인 노모스의 옷을 입은 것을 모조리 벌거벗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potestas’ 대신 ‘potentia’가 전경화됐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만, 아무튼 벤야민의 주제는 ‘Macht’(‘potentia’)가 아니라 ‘Gewalt’ (‘potestas’)입니다. 이로부터 두 번째로,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gouvernementalitaté)’과 결부시켜 말한다면, ‘Gewalt’의 원형 동사인 ‘walten’통치하다라는 의미라는 것. 셋째로, 벤야민은 이 논고에서 ‘Gewalt’의 폐절을 역설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벤야민은 ‘göttliche Gewalt’(‘신적 폭력혹은 통치’)를 긍정하고 있으며, 이 논고는 ‘waltende Gewalt’(통치하는 통치)라는, 어떤 의미에서 동어반복적인 것의 희구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논고의 마지막 단락에는 ‘Entsetzung des Rechts samt den Gewalten’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Entsetzung’은 지금까지 폐절이나 비정립’, ‘탈정립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Entsetzung’이 법을 정립하는(rechtssetzend) 폭력과의 대비에서 나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entsetzen’이라는 독일어는 놀라게 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솔직하게 생각하면, 갇혀 있거나 파묻혀 있거나 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뭔가를 거기에서 빼내거나 풀어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군사용어에서는 적에게 포위된 아군을 구출할 때 ‘entsetzen’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문제의 말은 “Gewalt를 포함한 Recht(법적 권리)의 구출이라는 의미로도 될 수 있습니다.

히가키 : 다른 곳으로 낸다는 것이죠.

이치노카와 : 그렇습니다. 아감벤의 해석에는 부정신학적인 대목이 있는데, ‘Recht’(법적 권리)‘Gerechtigkeit’(정의), 희망도 갖지 않는 듯이 논의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벤야민의 생각은 더 밝다고나 할까,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벤야민이 이 논문의 주석 10에서 언급하는 쿠르트 힐러(1885-1972)와 대비시키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쿠르트 힐러는 이 주석에서 언급되는 ()-카인(1919)이라는 소론에서, ‘행복(Glück)’이나 정의(Gerechtigkeit)’보다 고귀한 것이 있다, 그것은 (Dasein)자체다,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나 정의의 실현이라는 이름 아래서 생존[실존]을 부정하는 폭력이나 테러리즘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힐러의 주장입니다만, 이것은 뒤집어보면 행복이나 정의에 관한 허무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힐러의 이런 생각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이 논고를 썼습니다. ‘단순한 생명이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또 하나, 이것은 아감벤이 빠뜨린 채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는 단순한(bloss)’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두 번, 상이한 형태로 나옵니다. 하나는 힐러의 생각을 비판하는 형태로 나오는 단순한 생명(das blosse Leben)’으로, 아감벤이 주목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 몇 줄 뒤에 정의를 갖춘 인간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das blosse Nochnichtsein)’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의보다도 단순한 생명이 고귀한 거야, 정의란 무엇인가를 첫 번째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야, 라는 힐러의 비관주의에 대해, 벤야민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정의는 와야 할 것으로서 확실하게 있다고, 정의는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벤야민은 이 두 번째의 ‘bloss’절대로(unbedingt)’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벤야민은 정의가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로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가키 : ‘bloss’가 두 번 나온다는 거네요. 정말로.

이치노카와 : 아감벤은 그 중 하나에만 주목하고 있을 뿐입니다. 벤야민은 이 논고를 19211월에 탈고했습니다. 2010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보면, 그것은 1989년 이후에 붕괴하는 것의 시작, 끝의 시작이라고 아무래도 보이지만, 벤야민뿐 아니라 1921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시작의 시작으로 보였던 것 같네요. 위대한 가능성을 감춘 무엇인가가 지금 막 시작됐다고나 할까.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겁을 먹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만. 그런 감각 속에서 벤야민은 ‘Gerechtigkeit’(정의)‘Gewalt’(통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며, ‘정의라는 이념을 벤야민은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그때 정의를 믿었다는 것은 ‘waltende Gewalt’가 지시하는 것은 도래할 공산주의였다는 것입니까?

이치노카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좌절된 독일혁명의 저편에 있어서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인 공산주의. 이와 똑같은 것을 2010년대의 우리가 일본에서 생각해도 좋다고 봅니다. 현존한 사회주의와 결별하면서 말입니다.

카스가 : 저는 오늘을 위해 벤야민을 다시 읽어보고 꽤 흥분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감벤은 주권자를 거론하더라도, 결국은 인간화한 것입니다만, 벤야민은 인간을 다시 한 번, 신 쪽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근대란 인간이 초월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며, 이에 대해 푸코는 시점(視點)을 분산시켰습니다. 그러나 벤야민에 따르면, 초월자의 관점은 인간에게는 다다르지 않는 것이며, 폭력 비판을 위하여는 인간에게 더 신성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도 손에 넣지 못했던 비근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치노카와 : 맞아요. 신적 폭력은 인간의 눈에는 감춰져 있다고 벤야민은 말하더군요.

카스가 : 인간적 허무주의. 인간으로서 읽기 때문에, 더욱 허무주의가 된다는 하이퍼-세계.

이치노카와 : 제 해석도 아직 너무 인간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쓸 무렵, 벤야민은 이미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와 친했습니다.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1918)도 출판된 직후에 읽었고, 당시의 편지를 보더라도, 벤야민이 이 책에 상당히 촉발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의 생각은 소렐의 그것과 동일시할 수 없듯이, 블로흐의 그것과도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유토피아’, 그리고 블로흐의 나중의 주제인 희망같은 것과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연결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말한다면, 블로흐를 통해서 저는 벤야민과 루디 두츠케(Alfred Willi Rudi Dutschke, 1940-79)를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츠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늘날의 독일의 녹색당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 노선(line)은 일본에서는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힘을 가질 수 없었고, 일본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는 한 요인도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인 것에 대한 강한 신념이, 적어도 폭력 비판을 위하여의 벤야민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이 아감벤에게서는 사라집니다. 아마 이 두 번째의 ‘bloss’를 빠뜨리고 읽기 때문입니다.

히가키 :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비오스조에

히가키 : 아감벤이라고 하면, 또 하나, ‘비오스조에의 구별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최근의 뇌신경계적 자기라든가, DNA 수준에서의 사체에 있어서의 생명의 파악 같은 얘기를 보면, 비오스로서의 나의 이 신체로는 다뤄질 수 없습니다. 나의 면역계, 나의 뇌신경계의 움직임, 나의 세포 속의 DNA라는 것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조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치노카와 : 확실히, 개체로서의 비오스라는 리얼리티는 약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카스가 : 조에의 일부이기 때문에.

히가키 : 그래요. 다만, 난민이라든가, 양로원 등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단순히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장면에서 얘기되는 조에와, 나의 뇌신경계를 나는 어찌할 수가 없으나, 그것이 무엇인가를 산출하고 있다는 장면에서 얘기되는 조에, 이렇게 둘 다가 있으며, 논의가 분분합니다.

카스가 : 후자의 논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수상쩍은 얘기라고나 할까, SF적인 이야기도 많잖아요. 극히 일부만을 다루고 페티쉬해버립니다. 예를 들어, 심해에 있는 혐기성 미생물 등은 유전자의 구조가 점점 바뀌고 있는데요, 그것만을 갖고 생명을 말해버립니다.

히가키 : 철학에서도 한때, 뇌신경 윤리가 유행했지만, 이런 뇌파가 생기면 이런 이미지가 나타난다는 식의 단순한 것을 사용해 프라이버시에 관해 논의하는 정도일 뿐, 그 다음부터는 더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술이 진전되어 정교하고 치밀해졌을 때 어떻게 될지는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카스가 : 다만 정말로 급진적인 것은 나오지 않았네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하나의 신체라든가, 두 개의 신체를 지닌 하나의 머리 같은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고 해도, 그런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죠. 비교적 상상하기 쉬운, 조금 괴이한 테크놀로지만이 나옵니다.

이치노카와 : 개체로서의 비오스의 윤곽을 무너뜨리는 얘기입니다만, 게놈연구 등은 오히려 사적 소유의 논리로 진행되고 있지요. 지적 재산권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생명이 조에로서 보이는 장면이 늘고 있지만, 경제와 사회의 논리로부터 보면, 이전보다 더 사적 소유의 틀이 강해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히가키 : 거꾸로 강해지고 있군요. 이것은 나의 유전자이다, 라고 말이죠.

이치노카와 : 혹은 내가 발견한 유전자라는 식이죠. 지적 재산권이라는 의미에서의 사적 소유의 논리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카스가 : 마릴린 스트라썬(Marilyn Strathern, 1941~)도 쓰고 있습니다만, 간염 항체를 만들 때, 그 소유권은 최초로 세포를 제공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논의가 이뤄집니다.

Marilyn Strather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마릴린 스트라썬

이치노카와 : 개체로서의 생명은 끝나더라도, 사적 소유의 논리는 계속 살아 있습니다. 계속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해지고 있잖아요.

히가키 : 정말 그렇군요. 근대를 넘어서는 것이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근대의 논리 밖에는 없습니다.

카스가 : 그때 생명권력은 강력한 것으로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결국 자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생명권력론에 있어서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점을 분명히 전면화하는 것은 네그리로, 거기서는 아감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생명권력론의 장점은 인간이 생물학적인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과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 이 두 가지를 함께 파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특집에 기고한 논문에도 썼지만, 우리의 사유는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혹은 법칙과 가치라는 두 가지의 것을 조합시킴으로써 작동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생명권력론에서 제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명권력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라는 논의는 많은데, 왜 이렇게 간단하게 생명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우리 내부에 그런 사유의 이분화 기계가 제대로 들어 있는데도, 그것을 묻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묻고자 하는 것이 서두에서 이름이 나온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반자연주의를 존재론으로서 가져왔다는 곳에서, 인식론으로서 가질 수 있다면 단순히 다문화주의의 하나가 되어버리지만, 존재론으로서 가지고 옴으로써 우리의 사유양식 자체를 다시 묻는 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의 최전선

사회학에서의 생명권력론의 최전선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되고 있나요?

 

이치노카와 : 저한테 사회학을 대표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는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을 모방한 역사연구는 아닐 겁니다. 이것은 실제로 늘고 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겁니다. 실제로 의료나 복지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연구는 늘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저보다 훨씬 훌륭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역사연구는 생명권력이라든가 생명정치라고는 말할 필요가 없네요. 제 자신이, 요네모토 씨 등과 우생학과 인간사회 : 생명과학의 세기는 어디로 향하는가(優生学人間社会──生命科学世紀はどこへかうのか)(講談社現代新書, 2000)를 썼을 때에는,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개념을 쓰지 않고도 역사는 쓸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연구들에 의해 묘사되는 사실 자체가 생명권력생명정치라는 개념의 외연을 자동적으로 점차 메워준다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내포가 공허하고, 그 공허한 그릇이 실증적 역사연구에 의해 메워진다고 생각합니다.

優生学と人間社会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른 하나는 요네모토 쇼우헤이 씨 식의 바이오폴리틱스연구로, 저는 이것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이런 연구는 향후에도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도 감안한 가유카와 준지(粥川準二) 씨의 바이오화하는 사회 : ‘핵시대의 생명과 신체(バイオする社会──「核時代生命身体)(青土社, 2012) 같은 작업입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바이오폴리틱스(Biopolotik)’라는 말을 제목으로 내걸고 출판되고 있는 책이나 논문은, 물론 푸코나 아감벤을 논한 것도 절반 정도가 있습니다만, 나머지 절반은 요네모토 씨 식의 바이오폴리틱스’, 즉 생명과학의 문제들에 관해 어떤 정치적 결정을 할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착상 전 진단, 배아연구, ES세포연구 등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인정한다면 어떤 조건에서 인정할 것이냐 등의 얘기입니다. 2001년에 독일에서는 주로 생명과학에 관한 국민윤리평의회(Nationaler Ethikrat)라는 것이 설립되고, 2008년에 독일윤리평의회(Deutscher Ethikrat)로 개칭됐는데, 이런 식으로 바이오폴리틱스가 이른바 제도화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독일에서는 특히 생명의 시작에 관한 것에 얘기가 집중되고 있네요. 일본에서 문제가 되는 뇌사를 비롯한 생명의 끝에 관한 것은 그다지 열띠게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バイオ化する社会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히가키 : 그건 기독교의 맥락과도 관계되어 있습니까?

이치노카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끝에 관한 얘기보다도, 예를 들어 배아(체외수정란)를 실험에 사용해도 좋은가 같은 것이 아주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히가키 : 위화감이 드는군요.

이치노카와 : 일본의 우리라면 그렇게까지 진지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좋은가라는 문제를 포함해서, 이것들에 관한 논의에는 기독교적인 것이 상당히 농밀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프랑스 같은 라이시테(정교분리)의 원리로는 움직이지 않으며, 예를 들어 기독교민주동맹이라고 당당히 이름을 내걸고 있기에, 바이오폴리틱스를 포함해 정치 일반에 종교(기독교)가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생명윤리의 문제들에 관해서, 나치라는 과거가 있기에, 타국보다도 신중하고 엄격한 대응이 이뤄진다고 자주 듣곤 합니다. 확실히 그런 부분도 있지만, 나치라는 지나가지 않는 과거는 사실상 표면적인 것이며, 그 이면에는 기독교 도덕이 무의식에 가까운 형태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히가키 : 반대로 일본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발상이 있는데, 어째서 뇌사의 얘기가 되면, 그렇게까지 죽음의 기준이 문제가 되는가?

이치노카와 :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확실한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만, “일본()에는 정신을 신체보다 우월하게 하는 서양근대의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과는 다른 독자적인 신체관생명관이 있었다고 운운하는,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비교문화론에는 별 근거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柳田園男장례제도 연혁 사료(葬制沿革史料)(1934) 등에서 써서 남긴 넋을 부름[魂呼ばい]”, 즉 죽기 직전의 사람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혼이 육체로부터 떠나는 것을 불러 세운다는 풍습은 심신이원론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서양 근대의학은 정신을 신체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것 등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까 나온 비샤의 텍스트를 읽으면,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비샤는 정신에 상당하는 동물적 생명보다도 신체에 상당하는 유기적 생명을 중시하며, 후자가 소멸할 때까지는 의학적으로 봐서 사람이 죽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신체/생명참조). 서양 근대의학이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의거하고 있다면, 비샤는 정반대의 것을 말해야 할 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비샤는 분명히 오늘날의 뇌사와는 다릅니다만, “뇌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미 제시하고 있고, “뇌의 죽음을 갖고서 사람의 죽음으로 하는 것은 너무 이른다고도 말하는 겁니다.

  이로부터 또 하나, 일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라는 신체, 가족이라는 경계의 강함입니다. ‘身内[친척]이라는 일본어가 상징적입니다만, 자신의 身内[친척]의 장기를 身内[친척]도 아무것도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한 강한 저항감이 있으며, 그것이 뇌사상태의 사람으로부터의 장기적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 많은 사람들은 身内[친척]이 제공자가 되는 생체장기이식, 특히 생체간이식은 일본에서 구미국가들보다 훨씬 많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구 비율로 보면, 생체간이식은 일본보다도 한국에서 많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생체간이식에 대한 저항감이 약하지만, 히포크라테스에게서 유래한 해를 끼치지 말라(non nocere)”를 의료윤리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구미에서는, 아주 건강한 사람의 신체에 메스를 집어넣고, 게다가 간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에 의사들이 강한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장기기증자에 대해서는 해를 입힌다는 것 이외의 것이 없으니까. 일본에서는 가족이라는 경계의 내부에서 장기가 이동하는 생체간이식에 대해 저항감이 약하고,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장기가 이동하는 뇌사상태의 사람으로부터의 장기이식에 대해서는 거꾸로 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나의 이 가설은, 2009년의 장기이식법개정 때에 도입된 친족 우선 제공으로 부분적으로 뒷받침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규정이 있는 것은, 현재의 일본과 일본의 것과는 다르지만 한국 정도입니다.

  푸코의 텍스트에 적혀 있는 우아한 철학적 논의는 아니지만, 이런 것도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의 한 측면으로서, 적어도 사회학적으로는 생각하면 좋다고, 아니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테이와 신야(立岩真也) 씨가 그동안 주도해 왔던 생존학이나, 다테이와 씨나 제가 거의 10년 정도 관계해온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장애학에서는 “disability”라는 말을 가능성 박탈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 물리적신체적 상태를 이유로 다양한 가능성을 빼앗기고 있는 사회의 구조나 짜임새를 문제 삼으면서, 장애학은 그 개혁을 요구합니다. 푸코가 말하는 죽음 속으로의 폐기라는 것은 이 가능성 박탈의 극한 형태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박탈의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은 삶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증식시킨다는 것이기도 하며, 그래서 생명권력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저항은 권력에 대해 외부에 위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푸코는 말했습니다만(지식의 의지), 그것은 장애학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나 제가 말한 바의 사회적인 것은 확실히 생명권력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을 안이하게 파괴할 수는 없으며, 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관련시켜 더 말하면, 푸코가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다룬 ()자유주의는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왜 푸코는 생명정치를 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말하려고 했는가?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는 생명권력의 한복판에서 저항이라는 주름을 다양하게 산출해내는 것인가? 아니면 저항을 빼뜨리고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를 더욱 매끈하게 확장하고 비대화시켜가는 것인가? 푸코가 정말로 무엇을 생각했는가, 내게는 아직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류학의 최전선

이치노카와 : 인류학에서 생명권력론의 최전선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되나요?

카스가 : 하나는 모든 것에 행위자(agency)를 배분해간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은 라투르에게도 통하며,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도 스트라썬도 그렇습니다만, 들뢰즈에 겹쳐지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라썬은 영국 경험주의에서 출발해, 동일성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은 곳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프랑스의 사상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녀는 우선 경험주의자로부터의 반론에 대해 자신 나름대로 방어벽을 치면서, 안쪽으로 생성하는 간극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눈으로부터의 간극이, 자신이 알려고 하는 대상과 반향하며, “lateral reflection”(수평적 반향)을 초래하며 타자로 연결되어 간다. 이것은 매우 들뢰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명정치생명권력을 생각해보면, 이치노카와 씨가 말한 게놈의 사적 소유의 얘기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과 물건을 나눠서 소유자로서의 주체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방식이 얼마나 특수한지를 잘 알게 됩니다. 증여론이 좋은 예인데요, 인격이라는 것은 물건에 나타나며, 얼마든지 분할되며, 멜라네시아에서는 누군가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먹으면 인격이 사라진다. 그런 인간의 존재방식에 주목하여 분석의 수법을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까지의 과학기술론의 일부를 빼면 그다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아나키스트 인류학을 위한 단장(アナーキスト人類学のための断章)(2004)을 쓴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처럼, 증여론이 점점 짓눌러지고, 근대에 대한 전근대적인 것을 이항대립적으로 나오게 되는 논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 전근대적인 것이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피지에서는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 부활에 대해 얘기하는데요, 피지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관념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까 얘기가 나온 아폴로시 나와이도 그렇습니다만, 불사성이랄까, 아무리 저주받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느냐 하면, 그것은 있으며, 그러나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생기가 사라졌다고 함으로써, 병을 포함해, 쓸 수 있는 것이 못쓰게 되는 사태를 똑같이 생기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런 생명의 시각을 감안하면, 생명권력의 외부에는 실로 다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