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홀워드가 2015년 3월 15일부터 일본을 방문해서 두 번의 강연을 벌였다고 한다. 간단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 http://www2.gensha.hit-u.ac.jp/TransA/lecture20150315.html

* 이 두 번에 걸친 강연 내용이 최근 일본에서 발간된 잡지 『다양체』에 수록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목차를 볼 수 있다. 이것들을 독서의 습관으로 틈틈이 옮겨적을 예정이다. 우선 두 번째 강연에 해당되는 <들뢰즈 이후의 정치>부터 옮긴다. 일본에서 이 강연의 제목은 「ジル・ドゥルーズと政治(”Politics after Deleuze: Immanence and Transcendence Revisited”)」였으나, 아래의 잡지에는 다음의 제목으로 수록됐다. ドゥルーズ流の政治/ドゥルーズ後の政治|ピーター・ホルワード|小泉義之訳. 일본과 한국에서는 번역어, 문장 구사 등이 다르기 때문에 홀워드의 원문을 구해서 대조해야겠으나, 지금으로서는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 구태여 따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 아래의 본문을 보면 나오는 주라비슈빌리[주라비크빌리]의 글은 정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 게재하다가 중단한 이치다 요시히코의 <혁명론>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를 홀워드와 교차하면서 읽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

들뢰즈 이후의 정치 : 내재성과 초월 재고 (1/2)

Peter Hallward, “Politics after Deleuze: Immanence and Transcendence Revisited”

 

최근 25년 동안, 아무래도 질 들뢰즈는 넓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대륙철학이나 프렌치 씨어리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들뢰즈 저작의 양상들을 둘러싸고, 이채로운 수의 책과 논문이 넘쳐나는 것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들뢰즈에 관한 전문연구서와 들뢰즈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책을 도서관의 빠른 검색으로 검색해보면, 이제 1200건 아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에딘버러대학에서 나오고 있는 시리즈 Deleuze Connections, 들뢰즈와 디자인, 들뢰즈와 건축, 들뢰즈와 교육, 들뢰즈와 인종, 들뢰즈와 공간, 들뢰즈와 그 밖에도 머리에 떠오르는 한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25권을 채웠고,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입니다.[각주:1]

* 각주1에 달려 있는 주소는 다음으로 변경되었다. https://edinburghuniversitypress.com/series-deleuze-connections.html

이 일련의 제목이 반영하고 있듯이 들뢰즈에 대한 관심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하지만, 그곳은 차치하더라도, 유럽과 앵글로색슨의 근처에서도 많은 독자가 들뢰즈에게 매료되어 온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정치사상가로서의 그 중요성임을 보여주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파리나 런던의 대학에서 현대유럽철학이나 비평이론의 어떤 연구과정을 전공하려고 해도, 어김없이 들뢰즈와 공저자인 펠릭스 가타리에 관련된 정치적 모티프의 한 쌍과 다소간 직접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제가 만나온 이론 지향의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이라고는 하지 않더라도, 그 상당수에게는 미시정치, 탈영토화, 노마돌로지, 도주선, 전쟁-기계, 소수자로의 생성변화[소수자-되기], 자연스레 입에서 나오는 정치적 어휘의 대부분을 이제 뒤덮고 있는 몇 안 되는 용어의 고작 몇 개의 예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많은 것에 대해 논합니다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치하는 바로는, 들뢰즈는, 정치활동의 현대적 형태와 그들이 직면한 속박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참조처이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둘러싸고 금세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들뢰즈 자신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명시하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그것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 평등, 자유, 해방 등과 같은 주요한 정치적 개념은 그의 고려 바깥에 있으며, 자본주의와 분열증[안티 오이디푸스천 개의 고원]에서 제출된 국가 비판을 별도로 하면, 별의별 정치제도, 통치의 기구, 입법대표정부의 기구에 대해 그는 그 이상의 논의를 거의 제시하지 않습니다. 거대 신문용으로 작성된 몇 개의 논설(유명한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관한 것입니다)을 빼면, 들뢰즈가 정치의 경위나 혁명에의 동원에 대해 일부러 자세하게 논의하는 것은 역시 드뭅니다. 들뢰즈나 들뢰지안이 정치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역시 전적으로 불분명하며, 현재 이용 가능한 들뢰즈 사전의 종류가 한결같이 소수자 정치”, “미시정치”, “혁명의 논의를 등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토픽에 대해 특별한 항목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각주:2]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제 자신의 정의를 부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오랫동안 전통에 맞춰서, “정치란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의 다음과 같은 집단적 차원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제안하겠습니다. , 1.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자연적인 조직이나 상호행위(예를 들어 친족, 민족, 지리, 언어에 기초를 둔 형태들)로 환원할 수 없는 집단적 차원이며, 2. 다른 것과 구별하여 정치적집단성이나 공민적집단성을 구성하는 참가자들은, 평등과 포함을 기초로 상호관계를 맺으며, 다른 생활영역으로부터 따온 계층성을 기초로 하여 (예를 들어 군사명령을 기초로 하거나, 가정경제종교 권위를 기초로 하여) 상호 관계를 맺는 일은 없다는 것을 원리 원칙으로서 전제로 하는 집단적 차원입니다.[각주:3] 더 한정해서 강조해 둡니다만, 데모크라시의 정치는 보통의 인민의 힘에, 즉 그 어떤 형태의 특권단체나 지배계급과도 싸워 이기는 인민 일반의 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논했는데요, 민주주의와 여러 가지 형태의 과두제나 재산제(plutocracy)(그 대부분은 ‘(다른) 민주주의라고 자칭합니다)를 가장 간편하고 명백하게 구별하는 방식은, 루소(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 등의 자코뱅파가 감복해서 계속 인용하는)가 주권의 기초를 인민의 의지에 둘 때의 논리, 일반의지 혹은 인민의지[의 논리]에 입각하면서, 인민주권의 우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각주:4] 이러한 집단의 실재의 기초는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에게 짐을 지우는 그 역량, 그렇게 해서 적대적이고 타율적인 결정의 형태들에 (단지 저항한다기보다는) 승리하는 그 역량에 직접적으로 놓여져야 합니다. 거꾸로, 이 일반 역량의 기초는, 서로 강화하는 집단적인 능력들과 역량들, 특히 집회·교육·정보·토의(deliberation)·조직화·결의·실행의 역량들에 놓입니다.

* 각주 4에 붙은 주소는 여기를 클릭. https://www.radicalphilosophyarchive.com/wp-content/files_mf/rp155_article1_willofthepeople_hallward.pdf

정치에 대한 위와 같은 노골적으로 주의주의적인 구상은 들뢰즈와의 정면충돌을 야기하는데요, 오늘 여기에서는, 바로 이 충돌을 저는 정밀조사하고 싶습니다. 들뢰즈의 저작에 인민이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출현하더라도, “도래할 인민[민중]”이라는 순수하게 잠재적인 형상으로서 출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영적인 자동기계를 집단적 형태로 개조했던 것은 아닐까요?[각주:5] 무의식, 욕망의 기계적이고 사실은 자동기계적인 성질, 경험의 분자적 혹은 하위-개체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철학은 정치적 의지와 의지적 활동으로부터 가장 먼 것은 아닐까요? 저는 들뢰즈의 최초의 가장 열심인 독자의 한 명이었던 프랑수아 주라비슈빌리에게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그가 1996년의 중요한 논고에서 엄밀하게 강조했던 것처럼, 정치적 좌파는 일반적으로 주의주의를 참조축으로 하여 자기를 정의하지, “들뢰즈는 상상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주의주의적이지 않은 철학을 전개했다. 항상 들뢰즈는 진정한 사고와 생성하는 모든 근본적으로 의지적인 성격을 주장했다. 그리고 어떤 계획에 입각해 세계를 바꾼다거나,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를 바꾼다는 등의 일처럼 그에게는 인연이 먼 것은 없었던[각주:6] 것입니다.

들뢰즈적인 정치가 있다면, 물론 그것은 비주의주의적이라고 기술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널리 유럽철학에서 좌파현대정치분석으로서 통용되고 있는 것의 실로 상당수가 일반적으로 이런 의미에서 바로 들뢰즈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권과 그 동족어에 대한 유행의 산만한 비판을, 특히 그것이 무엇이든 지도 주체나 주권적 주체”(그런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괴물적인 혼란입니다!)에 대한 거절을 보세요. 자크 데리다에 의한, 무조건적인 윤리적 책임을, 적극적 자유의 그 어떤 구상으로부터도, “, 지배, 폭력으로서 규정되는 자유, 나아가 기능으로서, ‘나는 할 수 있다의 가능성으로서 규정되는 자유로부터도 분리하려고 하는 미수에 그친 기획을 계승하는 유산을 생각해 보세요.[각주:7] 조르조 아감벤을, 그리고 또한, 대륙-철학계에서는 최근 들어 일정한 견인력을 갖춘, 티쿤(Tiqqun), 보이지 않는 위원회(the invisible committee), 공산주의이론(Théorie communiste) , 다양한 공산화가속주의의 주장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들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이것들에 공유되고 있는 것은, 활동가와 그 현실적 정치 역량을 합병하는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아감벤에 의한 비판, 숙려[토의](deliberate) 단계와 스텝step을 밟아나가도록 틀이 부여될 수도 있는 활동의 전략적차원 모두에 대한 아감벤의 거절입니다. 모든 구성적권력[]의 거절에 의해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라면, 중지[허공에 매달림]와 외톨이로 틀어박히기라는 위로, 그저 결핍시키는힘에 의해 약속되는 저 순수한 비-잠재성의 림보뿐입니다.[각주:8]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그것은 20년 이상 전에 처음으로 학위논문의 1개 장에서 소묘했던 것인데요, 들뢰즈에 대한 저의 비판적 결론의 입장에 계속 서 있는 것입니다. 푸코가 21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건넨 것은 유명하지만, 그 정치적 의의에 관한 한, 그것은 금세기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기간이 계속된 것은 (혹은 시각에 따라서는 아직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 이름에 값하는 모든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인민의 의지, 그것에 대항하는 어떤 저항에도 불구하고, 우세한 것이어야 한다는 신-자코뱅적 주장으로부터, 정치적 사고가 철수하고 있는 동안뿐입니다. 달리 말하면, 들뢰즈가 정치적 사고에 있어서 중심적인 참조점으로서 부상한 것은, 어떤 기간, 대략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승리의 기간, 1970년대 초기에 시작되고 일련의 현저한 인민의 패배를 특징으로 하며, 19세기와 비교하고 싶어지는 불평등·항복·복종의 형태의 부활을 결과로 하는 기간에, 들뢰즈가 퇴각의 입장을 위해 부족함이 없는 철학적 견해를 제출한 한에서인 것입니다.

주의주의적정치구상과 비주의주의적정치구상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부딪칩니다. 한편으로, 정치활동가에 대한 구상, /녀의 의지적 활동의 역량에 관해서,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와 활동가가 살아가는 상황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해방식에 관해서입니다. 아래에서는 이런 두 가지 점을 순서대로 쫓습니다.

 

1. 루소와 로베스피에르에서부터 레닌과 그람시를 거쳐 프란츠 파농과 체 게바라에 이르는, 넓게 -자코뱅적인 전통은, 정치적 의지의 행사를 목표·의도·동기 등의 고전적인 심리적요인과 연합시키는 것을 늘상 해왔습니다만, 이와 동시에 의지의 실행과 행사를 단순한 소망과 변덕의 표현이 목적에 동의하는 자는 그 수단을 거부할 수 없다”(루소)라는 클리셰, 달리 말하면, “목적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자는 누구든 그 수단도 의지해야 한다”(그람시)라는 클리셰에 입각하고 있더라도, 단순한 소망이나 변덕의 표현과는 구별하고 있습니다.[각주:9] 루소 이후, 의지(vouloir)(pouvoir)은 서로 맞바꿀 수 있으며, 목적을 의지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획득하고 사용하는 활동가의 역량에 의해 매개되는 것입니다. 활동가의 역량이 높아질수록, 활동가가 교육되고 의식적이고 유덕해지고 단련될수록 그 활동의 영역이나 그 의지의 권역은 점점 더 일반적이게 되고 원대해지는 것입니다.

활동가[배우]에 대한 들뢰즈의 구상 일반에서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활동을 위한 본래적 역량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것, 즉 자신의 기획과 사업을 숙고하고 의식적으로 정식화하고 개시하기 위한 역량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들뢰즈가 전투의 사건을 고찰할 때, 그의 관심은,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하느냐에도, 군사적인 전략의 방식이나 이유에도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의 관심은, 활동가로서의 병사, 상황에 응답하여 결정을 내리고 개별 목표를 추구하는 개인에게도 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잠재적 사건 그 자체로서의 전투의 무차별적이고 익명적인 성질에, 활동이나 퇴각의 역량의 모든 것을 상실하고 포기한 자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성질에, 들뢰즈의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진정한 활동가, “더 이상 용감도 비겁도 아니고, 더 이상 승자도 아니고 패자도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 <사건>이 현전하는 그 장소에서, 그렇기에 그 가공할 정도의 비정함에 참여하는 치명상을 입은 병사”(LS, 100~101)인 것입니다. 전투의 위쪽으로, 전투를 넘어서, 전투를 통과하여 존재하는 자만이, 전투를 사건 또는 본질로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유로, 사무엘 베케트의 범례적인 등장인물이 사물의 잠재적 리얼리티에 대해 적격이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소진하고, 그저 가능적일 뿐인 것의 영역을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소진한 인물만이 가능적인 것을 소진할 수 있다. 모든 욕구need, 선호, 도달목표, 의의를 체념해버렸기 때문이다. 소진한 인물만이 충분히 이해관심을 떠나고 있다.” 소진한 인물만이 재차 올라가 돌아가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CC, 154-155). 그 조건 하에서 그/녀는, /녀가 그 일부인 리얼리티를 진정으로 수 있다. 소진한 인물은, 그들을 흡수하는 환경에 일체의 주도권을 버리고 맡겨버린다. “거친 대해를 떠다니는 코르크처럼,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는 경계 속에 존재한다”(CC, 26).

들뢰즈가 물색한 다수의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취하든, 숙고적이고 목적론적인 자유는 그저 반응적이고 제한적인 편견이라며 기각되고, “더 심층의 형태의 강제, 자동조작, 용해가 지지되고 있습니다. 주체 자신의 결정이 진정한 귀결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견지, 요컨대 전략의 견지는, 들뢰즈의 사고의 구상과는 철저하게 무관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 관한 그의 두 권의 책의 궤적을 아주 간단하게 대층 그려보면, 등장인물이 지각과 활동을 조절하는 역량을 계속 갖고 있는 (전쟁-전의) 상황으로부터, 감각-운동역량을 탈취당해 무엇인가에 홀려 있는 모양의 사람이 반응하지 못하고, 반응을 의지하지도 않는상황으로의 이행에 있게 됩니다. “감각-운동의 결합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구상공간은, 긴장과 그 해소에 따라서, 목표, 장벽, 수단, 우회에 따라서 조직화되기를 멈춘다.” 활동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각은, 압도적이고 환각적이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게 된다. 이러한 결정(結晶)을 통하는 듯한 직관을 통해서, 인물은 수동적인 보는 자가 되며, 무엇이든 현재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할지도 모르는 것에는 무관심해지며, 반사적 반응에 대해서조차 무감응해진다. “그토록 그 인물에게 있어서는, 정확하게는 무엇이 상황 속에 있는 것인가를 보는욕구need가 크다는 것이다”(C2, 126-128). 이런 통찰의 비용은 전적으로 명명백백합니다. 그것이 요청하는 것은, 활동가의 카타스트로피적인 마비이며, 유기체의 문자 그대로의 분해, 혹은 이것에 준하는 분해입니다. 전투를 지각하면서 죽어가는 병사를 철저하게 넘어서 사납게 날뛰는 전투처럼, 이제 사건은, 사건을 선동하고 사건에 반응하는 인격에 관계없이, “부동성, 석화작용, 반복”(C1, 207; C2, 103)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구도가, 들뢰즈가 문학을 참조할 때 특권적으로 끄집어내는 많은 점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 베케트의 소진시키는 자동기계, 카프카의 절대적인 분자적 탈영토화”(K, 58), 나아가 멜빌의 바틀비이며, 그 비타협적인 나는 하지 않고 싶은데요, 변함없이, “말과 활동을 절단하고, 더욱이 사물, 이유, 목표에의 지시를 언어로부터 분리한다는 것입니다.[각주:10] 이 점을 조금 자세하게 예를 들어 풀이하기 위해(또 다시 들뢰즈의 저작=신체corpus에 이어서는 통상적인 정치적 맥락이 그 관계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들뢰즈의 프루스트 독해를 간단하게 고찰해봅시다. 들뢰즈가 프루스트와 기호1972년판의 짧은 서문에서 요약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프루스트의 작품 전체가, 비의지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을 움직이는 기호의 경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PS, vii)는 것입니다. 프루스트의 화자가 학습하는 것은, “진리는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누설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의지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비의지적이다. 다시 얻어진 <시간>의 최대 테마는, 진리의 탐구는 비의지적인 것에 특징적인 모험이라는 것이다. 사유를 강제하고 사유에 폭력을 가하는 무엇인가가 없다면, 사유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얻어진 <시간>의 라이프모티프는 단어 강제력이다. 우리에게 보도록 강제하는 인상, 우리에게 해석하도록 강제하는 조우등등(PS, 61).

일반적으로, 들뢰즈가 논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의 지각, 기억, 상상, 지성, 사고 같은 능력들은, “의지적으로 행사되는 한에서는 우발적으로만 행사될 뿐이며,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는 것을, 그저 똑같이 우리는 기억하고 상상하고 인식하고, 그 반대도 그렇다.” 이것과 대비적으로,

 

어떤 능력이 그 비의지적인 형태를 걸칠 때마다, 그 능력은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곳에 도달하고, 초월적인 행사로까지 상승하고, 다른 것으로 치환 가능한 그 힘과 자신의 필연성을 이해한다. 능력은 교환 가능하기를 멈춘다. 비의지적인 행사는, 각 능력의 초월적인 한계이며 그 사명이다. 의지적인 사고를 대신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사고하도록 강제하며, 모든 것이 사고하기를 강제당한다. (PS, 62-63).

 

그때, 비의지적인 사고란, 필연성의 완전한 강제력과의 조우입니다. 혹은 오히려, 조우의 우발성을 필연성의 무심한 운명과 제휴시키는 경험입니다. 여기에서, 비의지적인 기억에 대한 프루스트의 유명한 몰두가 어떻게 되는가 하면, 활동가의 진행성 마비와 활동가의 세속적 기획과 낭만적인 기획 모두의 용해를 다시 요구하는 듯한 그런 내러티브의 도정, 그 최초의 열약(劣弱)한 단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자의 감각-운동 시스템은 소모시키고, 활동과 반응에 있어서의 그저 현실적인시간성에 대해 무관심한, 순수하게 수동적인 관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그가 학습하는 것은 말하자면, “순수상태의 시간에 입력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증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기관없는 신체이며 미소한 기호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관찰되지 않으며”, 그가 조우하는 다양한 인물을, “그 자신의 망상의 똑같은 수의 마리오네트에, 그의 기관없는 신체의 똑같은 수의 강도적인 힘에, 그 자신의 광기의 똑같의 수의 프로파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각주:11]

프루스트의 화자가 따라가는 궤적과 영화론이 끄는 궤적은, 대체로 비슷한 호[孤]를 그리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또한, 들뢰즈의 작품 전체를 통해 상이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 지도에 배치되는 것은, 활동가의 진행성의 무-능력화, -현실화, 대항-현실화, 활동가의 용해이며,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그런 리얼리티의 절대적 필연성과 충족성 안에서의 직접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침례[전신을 물에 담그는 세례](immersion) 때문입니다. 현실성에 대한 우리의 일상경험이 활동에 대한 관심에 의해 뒷받침되고, 감각-운동 메커니즘을 통해 감각과 활동을 결부시키는 신체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면, 진정한 통찰을 위해서는 그런 관심의 정지와 그 메커니즘의 탈구가 요청될 겁니다. 현실적인 것은 유기체의 기능[함수]이라고 한다면, 잠재적인 것은 전반적인 탈-유기체화로 이끌 겁니다. , 글자 그대로 탈조직화된 신체, 그 생물로서의 통합성과 정합성을 박탈당한 신체, 들뢰즈와 가타리가 아르토를 좇아 부르는 바의 저 유명한 기관 없는 신체를 설정하도록 이끌 겁니다. 그런 신체는, 조우하는 사건에 의해 강제되는 것을, 이해, 목표, 계획의 매개 없이 즉석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가능한 미래로 향하는 모든 기획은, 존재하는 것, 존재할 터인 것의 내재적인 필연성 속에서 무너집니다. 이것이 운명애입니다.

프랑수아 주라비슈빌리는 이 비주의주의적궤적을 아주 잘 요약했습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그 궤적은, “가능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이 동일한 지점에, 의지가 허위 문제이게 될 뿐인 지점, 허위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의지가 사건의 자기-긍정으로서 사건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지점에 도달하는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기묘하고도 철저하게 스피노자적인 세계의 지각에 도달하고, “산소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었음을 마지막에 이해하게 되며, 산소 없이 호흡하려고 하는 지점에 손을 대는[노력을 기울이는][각주:12] 것입니다. 이렇게 제언해도 크게 과장이 되지는 않을 테죠. , 들뢰즈에게서는, 활동을 가능케 하는 활동가의 기운을 돋우는 것은 모두, 그대로, 우리가 그로부터 도주하려고 해야 할 억압이며, 동시에, 동일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우리를 바로 그 자유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우리가 필연성의 유일한 흐름의 지각할 수 없는양태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는 도주선을 물색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들뢰즈가 고찰하는 다양한 생성변화 혹은 되기”(예를 들어 여자-되기, 동물-되기, 노마드-되기)의 상대적인 가치가 어찌 될 것이냐 한다면, 그 가치는, 되기가 탈영토화한 형태 없는 질료를 위해활동하는 정도에 따라서, 또한, “지각할 수 없는 것은, 되기의 내재적인 목적이며, 그 우주의 공식이다라는 무자비한 텔로스에 입각하면서 활동하는 그 정도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입니다.[각주:13]

주라비슈빌리 같은 독자가 들뢰즈의 방향성에 있어서의 가차 없는 스피노자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가 들뢰즈의 이 방향성에 막연한 혁명적억양을 불어넣고자 하는 꽤 어설픈 시도는, 천박한 속임수가 되기 십상이고, 어떤 종류의 정치활동에도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실천적 곤란들에 대해 결단코 무관심해지기 십상입니다. 들뢰즈의 형이상학에 대해서 마찬가지의 스피노자주의적 이해에서 출발하면서도, -마오이스트의 철학자 기 라르드로는, 들뢰즈의 다른 독자에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impact)도 주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는 소책자에서, 들뢰즈의 형이상학의 정치적 함의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스토아학파로서, 그리하여 평화주의와 영적 달관[諦観]의 처방전으로 특징지어집니다.[각주:14]

  1. Harvard University Library system, HOLLIS search, 9 March 2015. ‘Deleuze Connections’, ed. Ian Buchanan, University of Edinburgh Press, http://www.euppublishing.com/series/delco [본문으로]
  2. Cf. Adrian Parr, ed. The Deleuze Dictionary (2010); Eugene Young, ed., The Deleuze and Guattari Dictionary(2013) ; François Zourabichvili, Le Vocabulaire de Deleuze (2003). [본문으로]
  3. 표준이 되는 참고문헌은 Aristotle의 Politics이다. [본문으로]
  4. Cf. Hallward, The Will of the People: Notes Towards a Dialectical Voluntarism, Radical Philosophy 155(May 2009), 17-29. online at https://www.radicalphilosophyarchive.com/wp-content/files_mf/rp155_article1_willofthepeople_hallward.pdf [본문으로]
  5. Cf. C2, 263 ; EP,131, 158, 160. [본문으로]
  6. François Zourabichvili, “Deleuze et le possible (de l’involontarisme en politique)”, in Eric Alliez et al, eds., Gilles Deleuze : Une vie philosophique (1996), 335. [본문으로]
  7. Derrida, Rouges[2002],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40. [본문으로]
  8. cf Agamben, “From the State of Control to a Praxis of Destituent power”, Athens, 16 November 2013 ; cf. Agamben, “From Limbo”, The Coming Community(1993) [본문으로]
  9. Rousseau, Discours sur l’économie politique, Œuvres complètes, vol. 3(Pléiade), 263; Gramsci, Worker’s Democracy (1919), Pre-prison Writings, 99; cf. Trotsky, Terrorism and Communism(1921), Verso ed., 25. [본문으로]
  10. CC, 73-74. 주라비슈빌리의 비주의주의적 독해에 있어서, 바틀비가 “들뢰즈적 정치의 상징적 인물”로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Zourabichvili, “Deleuze et le possible”, 349). Cf. Agamben, Bartleby, or on Contingency, in Potentialities (1999). [본문으로]
  11. PS, 117-118; AO, 69; PS, 181-182; cf. RF, 30-31, 38-39; NP, 103-110; DR, 147. [본문으로]
  12. Zouravichvili, “Deleuze et le possible”, 356-357. [본문으로]
  13. K, 13; TP, 279; Cf. DC, 45; C2, 190. [본문으로]
  14. Guy Lardreau, L’Exercice différé de la philosophie: à l’occasion de Deleuze(Verdier, 1999), 51. 특히 어떻게 최선의 방식으로 필연성에 적응하는가, 어떻게 “흐름을 타는”가, 혹은 상황의 내재적 “생성”에 따라서 자기를 방향짓는가를 탐구하는 사상가(스토아학파, 스피노자, 흄, 베르크손 …)에 이끌려서, 라르드로는 이렇게 논한다. “푸코와는 달리 … 이성의 존엄[을 지킬] 만한 것에 대항하여 들뢰즈가 떨쳐 일어난 것은 한 번도 없었다”(ED, 45; cf. 72). 물론 라르드로 자신은 중립적인 독자가 아니라, 과거, 이른바 “신철학” 논쟁 무렵, 드물게도 들뢰즈 자신이 비난을 폭발시켰을 때의 표적 중 한 명이었다. 다음을 보라. Deleuze, “A propos des nouveaux philosophes et d’un problème plus général”(1977), in RF; Guy Lardreau and Christian Jambet, Une derniere fois, contre «la nouvelle philosohie», La Nef 66(January 1978), 35-40.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프랑스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 피에르 로장발롱의 프랑스 민주주의론

フランスの政治文化とデモクラシー

: P.ロザンヴァロンのフランス・デモクラシー

野末, 和夢

Citation 一橋社会科学, 7: 33-41

Issue Date 2015-05-21

 

* 로장발롱의 책 번역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를 식힐 겸 로장발롱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미리 포스팅한다. 관련된 문서나 책들도 연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 일본에서는 '통일성' 대신 '일체성'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이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약호

* 이 글에서 빈번하게 인용·참조하는 로장발롱의 문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약호, 쪽수의 순서로 표기한다.

∙ MG :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SC :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1.

PI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2.

∙ DI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3.

MPF :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coll. «Points Histoire », 2006.

CD :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08.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론을 대표하는 피에르 로장발롱(현재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에 의한 일련의 19세기 연구를 재구성하고, “프랑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을 추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통선거, 대표정, 인민주권을 각각 주제로 하는 3부작(이하 SC ; PI ; DI로 약칭)에서 주로 검토했다. 이 세 개의 역사상을 통합한 것이 2004년의 프랑스형 정치모델』이다. 이런 전체상을 밝힌 일본어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각주:1]

로장발롱의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계보를 잇고 있다.[각주:2] 첫째, 프랑스 혁명 및 현대사 연구의 조류이다. F. 퓌레로 대표되는 수정학파는, 정통사학과는 달리,[각주:3] 1793년의 자코뱅지배를 혁명의 ‘탈선[삐그덕댐]으로 파악하고, 19세기를 자코뱅주의의 초극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해석을 전개했다.[각주:4] 로장발롱은 퓌레의 관심을 계승하고, 정치사를 경제구조가 아니라 정치문화에 의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cf. MG:26 ; MPF:13).

둘째, 1970년 이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의 조류이다. C. 르포르나 M. 고셰로 대표되는 이 시기 이후의 논자들은, ‘정치(la politique)’와 구별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다시 물었다.[각주:5] 로장발롱은 그들의 연구를 계승하면서도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긴장이라는 시각을 도입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두 세기에 걸쳐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정초해온 자코뱅주의를 검토한다(2). 다음으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검토한다(3). 이 두 개념의 긴장관계가 민주주의의 사상사를 구성한다고 간주된다. 이상의 틀을 사용해, 대혁명 이래의 민주주의의 전체상을 제출한다(4). 마지막으로 그의 연구에 내재하는 사상적 특징을 지적한다(결론).

 

2. 근대정치적 사고양식으로서의 자코뱅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적인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자코뱅주의라고 명명하고, 그것을 일반성의 정치문화(culture politique de la généralité)”이라고도 바꿔 부른다(MPF:13). 그 특징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1) 사회적 일체성

첫째,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은 사회 형태(forme sociale)”로부터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혁명에서는 직업기능에서 유래하는 단체(corps)로 구성되는 사회에 매몰되어 온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해방하고, “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것이 희구되었다(MPF:13 ; PI:22).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는 개인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결정론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개인” = “시민(citoyen)”으로 정립된다(SC:113 ; PI:17).

이런 추상성은 대표=표상(représentation)”이라는 작용과 불가분하다. 각종 축제나 시에예스의 논의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듯이, “인민이나 국민이라는 집합은 대표=표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PI:47 et s.). 오히려 상징이나 픽션을 통해 표상됨으로써, 다양한 개인들은 유일한 집합으로 추상화된다(MPF:28). 대표정은 개인의 해방과 집합적 권력[=국민 주권] 사이의 모순을 송두리째 해소하는” “기술로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관통한다(DI:29, 189-190). 자코뱅주의의 전통에서 단일성(Un[일자])”, “일체성(unité[통일성])”, “전체성(totalité)”, “불가분성(indivisibilité)” 등의 추상적 어휘는, 프랑스 시민들이 국민이라는 집합으로서 대표=표상되기 위해 사용됐다(MPF:26-28).

이러한 프랑스적 정치관에서는, 특수이익과 동떨어진 곳에 일반이익이 설정되고, 그것을 추상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정치체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MPF:118). “추상화에 의해 개개인의 특수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고, 개인 일반이 공화국의 불편부당한(impartial)” 주권의 연원으로 간주됨으로써 평등이 담보된다(MPF:118-124). 따라서 투표권 보유자로서의 평등한시민은 국민적 일체성을 구성하는 간단한 로 환원되고, 사회의 실체는 이 배후로 숨었다(MPF:122 et s.). “수로서의 일반성이 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일반성의 가장 명백한 형태를 취한다”(CD:115).

 

2) 민주적 직접성

두 번째 특징은 무매개적 의사표시에 대한 희구이다. “중간단체(corps intermédiaires)”의 법적 부정이 의미하는 사정거리는, 종교단체나 직업단체의 해체에 한정되지 않고, 일체성을 가로막는 모든 매개적 제도나 상징의 부정도 포함한다. 1791930일의 포고령에서는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든 정치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표명됐다. 왜냐하면 매개적 제도를 통해서는, 시민들은 집합적인 이름 하에서자기 자신을 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MPF:59). 그러므로 피대표자의 다양성은 대표자에 의해 일반이익을 가진 집합으로서 직접 표상된다(MPF:72).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이 부정되는 것은, 그것이 영속하는 제도(institution)”로서 고정화되고, 대표정에 이중성(dualité)”을 도입하는 것(민주적 직접성의 훼손)으로 간주되는 한에서였다(PI:16 et s ; MPF:76-79).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나 다양성 등의 특수이익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cf. SC:135-147, 155-169 ; DI:219 et s.). 한편, 르 샤플리에가 주장했듯이, “공적인 것(le public)”은 국회의원의 활동으로 집약되며, 공적 영역은 통치제도로 환원된다(DI:232 et s ; MPF:71 ; cf. CD:113). 로베스피에르나 보나파르트는 통치제도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대항권력(contre-pouvoirs)”(e.g. 연설활동, 청원운동, 시위 등)간접적 권력” = 민주주의의 울타리 바깥이라며 배제하고, 민주적 직접성을 촉진시켰다(CD:87, 100-103, 114 ; MPF:71). 이러한 불가분성을 통한 정당성이 일반성을 형성하는 한 측면이 된다(CD:115).

중요한 것은 구체제 하의 전통적 구분(지연, 종파, 직군 등)일반성의 정신과 상반되는 특수성의 정신으로서 분극화(polarisation)”된다는 것이다(MPF:35-37). 헤겔이 체계화한 변증법적 관계와는 달리, 프랑스적 정치관에서 특수성과 일반성(보편성)의 관계는 서로 긴장하는 양극으로 구별되고, 일반성만이 단일하고 불가분한 공화국을 형성한다. 로장발롱은 혁명 이래 이용됐던 이런 구별을 분극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cf. MPF:37-54, 117-121).

 

3) 법의 신성시

세 번째 특징으로서, 법의 신성시를 꼽을 수 있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두 가지 유토피아를 따르는 정치문화의 형성에 기여한다. 우선 사법 엘리트는 법의 제정자라는 것 이상으로, “단일한 인민을 제정하는자로서 생각된다. 그에 따르면, 사법 엘리트는 정치적 일반화를 추진하는 자인 동시에 교사였다. 법에 대한 교육관은 많은 논자(e.g. Fénelon, Condorcet)들의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으며, 국민적 일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교육(instruction publique)의 이론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MPF:93 et s.).

다음으로 법은 정당성 있는 규범(norme légitime)인 동시에 정치적인 작동자(opérateur politique)”로 간주된다. 법을 개입시킴으로써, 모든 사람 및 행위는 개개의 특수성이라는 현실에서 분리된다. 일반성은 탈현실화(déréalisation)”라는 작업을 통해 구축된다(MPF:94-96). 이러한 법이나 권리에 내재하는 픽션으로서의 성질이 일반성의 형성에 관여한다(CD:115).

단적으로 정리하면, 구체제의 사회적 유대를 해체한 프랑스에서 픽션이 시민적 평등(égalité civile)”을 빚어내는 공민적 유대(lien civique)”로서 요구됐다(SC:88 et s.). 혁명 이후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는 추상화일반화”, 그리고 픽션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주의(formalisme)” = “정치적 유토피아로서 우선 묘사된다(SC:385).

 

 

3. 민주주의의 이중성 :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위와 같은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이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에 의해 공적인 것을 독점하는, “공적 영역에 대한 환원적인 시각이다(DI:333 et s.). “정치적인 것이란 구체적 제도나 당파 간 경쟁 등에 관련된다기보다는 일반이익·국민적 일체성의 표상과 창출 등 직접적인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련된 개념으로 여겨진다.[각주:6]

그러나 사회적인 것(le social)”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현실에 적합한 질서를 구축할 수 없었다고 하며, 항상 비판에 노출된다(MPF:47).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의해 배제·억압된 특수이익의 총칭을 의미하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실망의 역사, 또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의 역사속에서 개시된다.[각주:7] 그러므로 혁명 이래의 정치문화는 정치적인 것의 찬양과, “사회적인 것에 의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나 실망이라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cf. MPF:158 et s.). 아래에서는 그 비판의 논점을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한다.

 

1) ‘새로운 사회의 사상

첫째, 자코뱅주의적 수사가 사회의 해체(dissolution sociale)”를 이끈다고 하는 비판이다. 자유주의자(e.g. M. Staël, Constant), 보수주의자(e.g. Ballanche, Bonald), 사회학자(e.g. Saint-Simon, Comte), 사회가톨릭(e.g. Lamennais), 독트리네르(e.g. Royer-Collard, Guizot) 등은 각각의 방법으로 사회의 해체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MG:75). 중간단체를 배제한 자코뱅국가에서의 사회는 유대(lien) 없는 원자화된 사회에 불과하고, 공화국의 일체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공유한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결합의 결여(déficit de sociabilité)”를 보전하는 사상운동이 전개됐다(cf. MPF:160, 213-218).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중간단체의 재건이 필요해진다. 동업자조합의 재건은 이미 1800년 이후의 개별법령에 의해 모색됐다(MPF:132). 그리고 1820년대부터 어소시에이션의 설립과 분권론이 많은 논자(e.g. Rémusat, de Laborde, Leroux, Tocqueville)에 의해서 주장됐다(MPF:164 et s.). 로장발롱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의 키워드가 일체성이라면, “사회적인 것의 키워드는 어소시에이션이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과 국가를 중개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로서 갈망됐다(MPF:164, 236).

 

2) 대표정의 역설

둘째, 이 견해는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내재하는 모순, 즉 대표자(représentant)와 피대표자(représenté)와의 괴리를 메우는 것으로 얘기됐다. “대표란 구체적 환경 속에 매몰된 다양한 개인들을, 단일한 추상적 집합체로서 다시 얘기하고, 정치적 일체성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복수성을 단일성으로 환원하는 이 조작에는, 본질적으로 곤란이 내재해 있다(PI:53).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일정한 수의 개인 사이에 집합적 속성을 규정함으로써, 그 곤란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 “정치적인 것에서 배제된 대중을 계급이나 사회집단으로 포섭하고, 일반이익과는 상이한 이익을 대표=표상한다(SC:343, 369).

예컨대 시에예스에 의한 능동적 시민/수동적 시민의 기능적 구별은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에 의해, 제한선거제론으로서 계승됐다(PI:68 et s;SC:325). 1860년대에는 노동자에 의한 계급대표론(PI:100 et s.), 3공화정 중기에는 뒤르켐 등에 의한 (보통선거제를 대신한) 직능대표제가 주장됐다(PI:140, 175). 그것은 20세기 이후 산업민주주의론으로 계승된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인 것이 집합적 속성을 수반해 다시 얘기됐다는 것이다(cf. SC:383).[각주:8]

 

3) 이데올로기와 사실

셋째는, 이데올로기와 사실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다. 19세기 전반기부터 되풀이되는 실증”, “관찰”, “예견이라는, “사실을 객관화하는 과학관에 의해, 혁명기의 추상적 원리는 형이상학이라며 비판된다(SC:453 et s.). 3공화정기의 사회학자(e.g. Fouillée, Durkheim, Ferneuil)나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정치가(e.g. Gambetta, Ferry), 개인의 대표=표상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일원론(“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을 비판한다(PI:140 ; MPF:263-274.). 왜냐하면 사실의 관찰에 기초하면, 질서의 조화(harmonie)”는 중간단체의 유기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되풀이되어 비판을 받음으로써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일체[한 몸]”(MPF:71)인 공화국을 목표로 삼았지만,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이 정치적인 것해체가 아니라 그 수정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유토피아, 사회적 현실사이의 상호 긴장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그 자체로 달성되지 않는(inachevée)” 이념이기 때문이다(cf. DI:37). “사회적인 것에 의한 비판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항상 수정되고 재생·존속된다는 운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구성한다. “프랑스의 정치모델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극, 분극화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MPF:231).

 

4.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

이하에서는 자코뱅주의의 수정이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상을 검토한다.

 

1) 19세기 전반기와 자유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는 자코뱅주의가 수정(amendement)”되는 최초의 시기이다. , 1789년에서 비롯된 정치문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일반성이 재구성되는 시기이다(MPF:199 et s.). 그는 그것을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 속에서 찾아낸다.

흔히 자유주의자는 국가권력의 확대를 경계하고, 그 외부에서 개인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가를 가리킨다(e.g. Constant, Daunou, Tocqueville, Prévost-Paradol, Leroy-Beaulieu).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논자들은 통치의 문화를 구축할 수 없고, 프랑스에서는 이차적인 것에 그쳤다(MPF:223).

다른 한편, 기조, 티에르, 비탈-루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는, 사회의 다원성과 정치적 집권화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cf. MG:63 ; MPF:223). “정치적 자유는, 개인들의 독립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 능력에서 비롯된다”(MPF:226). 로장발롱에 따르면, 공화국에서의 개인의 자율은 집합체의 자율에 종속된다. 기조 등은 정치적 집권화에 의한 자유의 확보를 주장했다(MPF:203-212). 그들은 국가의 관리운영(administration)에 의해 정치적 집권화를 보완하는 기제를 시민사회에서 찾아내는 한편, 전근대적 특권의 재생을 기피하고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을 부정했다. 어소시에이션은 기조가 말했듯이 일반적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한에서만 허용된다(MPF:248 et s.).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을 분극화하는 이 조류에 의해 자코뱅주의를 수정하는 최초의 길이 열리게 된다(MPF:218, 225-231).

 

2) 2공화정과 제2제정

2월 혁명기 및 제2공화정기는 자코뱅주의적 전통이 명시적으로 부흥되는 시기로 여겨진다. 보통선거법의 도입은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을 반영했다. 그들은 정치에서 배제된 비시민(non-citoyen)”이라는 공화국의 일체성에 있어서의 위협으로서 당시 묘사됐다(SC:335-342). 그들을 시민으로서 포섭하는 것, “정치적인 것을 통해 국민적 일체성을 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가 된다(SC:381 et s.).

예를 들어 2월혁명기에는, 공화주의자 논자(e.g. Ledru-Rollin, Leroux, Blanc)에 의해 보통선거를 통한 인민의 일체성의 창출이나, 국가와 개인의 무매개적 결합이라는 관념이 부활한다(cf. SC:Ch.3). 개인들은 시민으로서,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사회로 결집(associer)”해야 한다(SC:381 et s.). 중간단체에 대한 의구심이 잔존하는 가운데, 1848년의 어소시에이션은 자코뱅주의적 유토피아를 계승하고, 국민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에 대한 어소시에/어소시에이션)을 스스로 표상하려고 했다.(SC:383-386 ; MPF:239). 2공화정 하에서는, 블랑키주의자에 의한 소요론, 급진적 공화주의자에 의한 직접 통치론이 제창되지만, 모두 자코뱅주의의 한 변형으로 간주된다(DI:139-167, 169-195).

다른 한편, 2제정기는 정치적인 것의 집권화와 사회적차원에서의 결사의 다양성이 구별되고, “분극화라는 특징이 다시 등장한다. 우선 나폴레옹 3세는 국민투표를 자신의 정치 모델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제도로 삼고, “인민의 일체성/단일성을 찬양한다(DI:201-217). 50년대까지의 그는 일반의지의 직접적 표상을 교란하는 정치적 자유(출판, 정치결사, 집회, 신앙 등)을 부정한다(“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그런데 60년대에 직업적 결사의 허용, 공제조합의 장려, 실업기금의 정비, 단결권과 집회권의 허가 등, 사회적 다원성이 일정 정도 인정된다. 자코뱅주의적인 후견국가상은 자유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받는다. 노동자의 결사나 집회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움직임은 후견국가상의 대안의 모색이며(MPF:249-254), “프랑스 사회사에 있어서의 대전환”(DI:221)으로 위치지어진다. 의회 내에서는 중간단체 부정론이 혁명의 잘못으로서, 계파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서(e.g. Gambetta, de Mun, Brousse, Jaurés) 규탄됐다. 그러나 정치적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의 승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회적 영역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은 정치적 영역의 격리에 의한 보전을 의도했다(DI:218 et s;MPF:260).

 

3) 3공화정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 시기의 사상적 대전환(grand tournant)”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존속했다. 3공화정의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 강화를 도모하는 엘리트 의회 정치와 민중의 정치 개입을 목표로 하는 사회”(의회의 외부”)의 이원론적 도식으로 파악되는, “한정된 민주주의(démocratie limitée)”이다(DI:249, 259). 󰡔프랑스형 정치모델󰡕에서는 이런 테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사회학자와 공화파 정치가 사이의 사상적 구별이며, 특히 후자에 의한 직업적 결사(생디카)와 정치적 결사(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의회 토론이다.

로장발롱에 중요한 것은 급진공화파의 정치가/엘리트(e.g. Waldeck-Rousseau, Bourgeois, Clemenceau, Paul-Boncour)의 사상이다(cf. SC:507 et s.). 애초에 특수이익의 표상에 의해 일반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기피되던 직업적 결사는, 그 조직률과 가입률의 상승도 있고, 서서히 노동자[전반]의 일반이익으로서, 그 유용성이 인정받게 됐다(MPF:283-293). 다만 급진공화파 주도로 성립된 1884321일의 직업조합법은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질서의 조절(régulation)” 양식을 의도했을 뿐이다. 그것은 A. 밀랑이 그러했듯이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얘기됐다(MPF:297-299).

어소시에이션 일반은, 20년 후의 1901년법에서 승인된다. 로장발롱은 이 기간의 의회 토론에 프랑스 모델의 핵심이 표현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 의회를 통해 일반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와 중간단체(직업조합, 대학, 상공회의소, 각종 협회·위원회 등)를 통해 다원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와의 구별이 되풀이되어 얘기됐다(MPF:351). 발덱-루소가 전형적이었듯이, 종교단체나 재정기반에 대한 법적 제약을 겪은 어소시에이션은, 출판이나 언론과 똑같은 시민이 지닌 행위(acte)”자유로서 인정받은 것에 불과하다(MPF:323, 334-337, 343 et s.). 급진공화파에 의해 정치적인 것이 의회를 통해 강조되는 한편, L. 뒤기가 역설한 직능대표제는 공화국이 무수한 작은 거점으로 해체하는 것을 우려되고, 강한 반대를 받았다(MPF:352-354). G. 클레망소가 주장했듯이 사회적인 것을 전제로 한 탈중앙집권화프랑스의 일체성과 합치하는 한에서만 인정받았다(MPF:375). 로장발롱에 의하면 위의 두 가지 영역의 분극화가 프랑스 모델의 본질인 분극화 민주주의(démocratie polarisée)”를 구성한다(MPF:359, 376 et s.). “사회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상()을 모색한 사회학자는 주변(périphérique)”에 머물렀다고 한다(cf. SC:498 et s.).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서 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논의에 의해 사회의 자율성이 승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적인 특권화는 수정을 겪을 뿐이었다. “분극화를 통한 일반성의 정치문화의 구원이 항상 이뤄졌다(MPF:356-359).

 

4) 20세기의 전개

분극화 민주주의의 틀은 20기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계승됐다. 의회를 통한 정치적 집권화가 유지된 한편, 엘리트 관료주도의 행정권력이 강화됐다. 후자는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서”, 사회의 다원성을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고 민주적 일반성을 보완하기 위한 존재라고 진단된다(cf. PI:238, 257, 262).[각주:9]

이런 정치모델은 전후 성장 속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지속됐다(cf. DI:42;PI:13 et s.). 다만 1970년대 이래, 3부문 등의 어소시에이션과 다양한 커뮤니티 등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중간단체의 흥성·융성은 전지구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의 프랑스 방식을 다시 묻도록 강제하고 있다(MPF:425-428). 그러나 로장발롱은 자코뱅주의가 과거의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기의 자코뱅주의적인 조직(organisation)’은 훨씬 수정되기는 했으나, 일반성의 정치문화[주권이나 일반이익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의] 사고양식으로서 계속 머물러 있다(MPF:432)

 

5. 결론

로장발롱은 분극화를 핵심 개념으로 함으로써, 민주주의 역사에 내재하는 아포리아의 해결을 시도했다. “사회적인 것쪽에서의 저항도 있으면서도,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소여를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통합을 형식적으로가능케 했다. “정치적인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SC:112).

우선 그의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의 특징은, 2세기 동안의 사상사에서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상극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풀이한 것에 있다. 양자의 대항·긴장관계가 내재함으로써, “미완이기를 계속하는 이념이 프랑스적 민주주의로서 설정[정립]됐다. 르포르나 고셰가 자코뱅주의적 전통을 전체주의”, “종교()”, “권력등에 이어진 것이라며 비판적으로 논한 것에 비해, “분극화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시각에 입각해 그 전통을 재평가한 것에 로장발롱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일반성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을 우위로 하는 해석 도식을 제시했으나,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과제를 국민(nation)”의 재통합/재창조라는 수준에 있어서 파악하는 그 자신의 현대 정치에 대한 관여(commitment)가 반영되어 있다(PI:416-432 ; DI:Conclusion).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시스템”, “문구일 뿐만 아니라, “일반의지의 체현자인 국민”=“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레짐이다(cf.DI:435 et s ; PI:469).

 

민주주의는 일반의지의 레짐이며, 일반의지는 오랜 시간 속에서 구축된다.[각주:10]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근본에는 사회가 일반의지에 근거한 단일한 것으로서 인식/표상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DI:390 et s.).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래, “일반의지”, “일반성의 형성은 수정을 동반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에 기초해 왔지만, “사회적인 것쪽은 그런 지속성·단일성은 없기 때문에 거부됐다. 따라서 일반성의 정치문화라는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전통의 재평가야말로 오늘날의 프랑스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역시 중요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로장발롱은, 오늘날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 배후에는 일반성()정의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MPF:434).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대항민주주의』 이래, 그는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 현대 민주주의론을 주축으로 유럽국가들과의 비교 정치사 속에서 현재 탐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연구 동향과 아울러 향후의 검토 과제로 하고 싶다.

査読審査201523日掲載決定

一橋大学大学院社会学研究科修士課程

  1. 2003년까지의 로장발롱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서 다음에 언급되는 문헌이 있다. 只野雅人, 「代表の概念に関する覚書(1)~(4・完)」, 『一橋法学』(1권 1호, 107-124頁, 2002년 3월 ; 1권 3호, 669-686頁, 2002년 11월 ; 2권 3호, 891-924頁, 2003년 11월 ; 3권 1호, 83-109쪽, 2004년 3월). [본문으로]
  2. 田中拓道,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19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史研究の現状と課題」, 『社会思想史研究』, 31호, 108-117頁(2007년 9월) 참조. [본문으로]
  3. Mathiez, Albert, La Révolution française(Tome 1-3), Paris, Denoël, 1985(réédition) (ねずまさし, 市原豊太 訳, 『フランス大革命』 총3권, 岩波書店, 1958-1960年) ; Albert, Soboul,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coll. « Tel », 1984. [본문으로]
  4. Furet, François, Penser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大津真作 訳, 『フランス革命を考える』, 岩波書店, 1989年) ;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au milieu du 19e siècle : Edgar Quinet et la question du Jacobinisme, 1865-1870,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Lefort, Claude,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81 ; Lefort, Essais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 Gauchet, Marcel,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Paris, Gallimard, 1985 ; Gauchet,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다음의 문헌도 참조.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Artous, Antoine, Démocratie, citoyenneté, emancipation : Marx, Lefort, Balibar, Rancière, Rosanvallon, Negri, Paris, Syllepse, 2010. [본문으로]
  6. Rosanvallon, P., Pour une histoire conceptuelle du politique, Paris, Seuil, 2003, p.14(富永茂樹 訳, 「政治的なものの近代・現代史―コレージュ・ド・フランス開講講義(上)」, 『みすず』, 499号, 2002年, 4頁). [본문으로]
  7. Ibid., p.43(邦訳(下), 500号, 2002年, 19頁). [본문으로]
  8. Cf. Rosanvallon, P., L’Etat en Franc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1990, Ch.2-3ème partie et Ch.3-2ème partie. [본문으로]
  9. Cf. Rosanvallon, P., La légitimité démocratique : Impartialité, réflexivité, proximité,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10, pp.12-14, 67-78, 85. [본문으로]
  10. Rosanvallon, P., « Penser le populisme », in Le Monde du 21 juillet 2011. 󰡔르몽드󰡕에는 요약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문은 다음의 URL을 참조(2014年 9月 27日閲覧)。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