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뱅주의와 시민사회

: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제 :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十九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研究の現状と課題

저자 :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

출처 : 社会思想史学会, 『社会思想史研究』, 31권, 2007, 108-117.

http://dspace.lib.niigata-u.ac.jp/dspace/bitstream/10191/6613/1/31_108-117.pdf






1. 들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사의 고전을 쓴 막심 르루아(Maxime Leroy, 1873-1957)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89년 이후의 모든 역사는 …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립으로 귀결된다.”[각주:1] 르루아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1789년의 원리, 즉 개인적 자유와 소유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 구성의 원리이며, “사회적인 것”이란 평등과 관련된 것이면서 개인의 불행을 집합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노동이나 분배와 관련된 1793년의 원리이다.[각주:2]

르루아가 지적하듯이, 19세기의 프랑스 역사는 1789년에 선언된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대혁명 시기에 제창됐던 ‘정치적’원리는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조건에 입각한 ‘사회적’인 질서 원리에 의해 항상 비판되며 수정을 겪었다. 양자의 상극과 조정이 반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기 이후의 사상사를 구성한다.

다만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논자마다 매우 다양하다. 크게 말해서, 1960년대까지 19세기 사상사를 해석하는 틀은 경제구조에 기인하는 계급대립에 의해 주어졌다. 생디칼리즘을 대표하는 이론가 르루아가 양자의 대립을 자유주의적 권력구성원리와 노동자의 사상·운동과의 대립으로 파악했던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런 해석 도식은 크게 변경된다. 역사학·정치사상사·철학 등의 분야들에서 지적인 쇄신이 일어나고, 오히려 일원적 통합원리(정치적인 것)와 다원성 원리(사회적인 것)의 긴장관계가 논자의 주된 관심 대상이 된다(다만, 나중에 다루는 르포르와 고셰는 양자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 혹은 일원적 통합원리와 다원성 원리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최근까지의 연구사를 재정리하고, 그 현황과 과제에 관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2. 일원적 통합원리에 대한 비판

1) 자코뱅주의의 유산

196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타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간주한 정통사학을 비판했던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 등이 혁명기의 정치적 담론에 주목한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했다.[각주:3] 퓌레에 따르면, 단일한 ‘인민’이라는 허구의 집합을 통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하는 문학자, 철학가의 담론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혁명의 급진화와 자코뱅 지배가 초래됐다. 19세기 이후의 사상적 과제는 ‘자코뱅주의’를 극복하고 ‘혁명을 끝내게 하는’것에 있었다고 간주된다.[각주:4]

퓌레의 연구는 정치사상사 분야에서 ‘정치문화’론이라 불려야 할 새로운 연구사조를 산출했다.[각주:5] 그것은 경제구조로부터의 정치적 담론의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동시대의 정치적 담론의 배치, 그 내재적 논리를 탐구하는 역사연구로의 길을 개척했다.[각주:6] 여기서는 퓌레의 문제관심을 계승하는 한 명으로서 뤼시앙 좀(Lucian Jaume, 1946~)의 연구를 다뤄보고 싶다.

좀은 퓌레의 담론분석 방법에 의거하면서, 대혁명에서 비롯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의 특징을 탐구한다. 『자코뱅파의 담론과 민주주의』(1989)에서는 혁명기의 클럽과 의회에서의 자코뱅파의 담론을 검토하고, 당(parti)에 의한 도덕적 혁명운동이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의 일체성을 산출하며, 주권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정치관의 성립을 지적했다.[각주:7] 이런 정치관은 나폴레옹 제정기의 집권론,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의 이성주권론으로 계승된다. 그는 이어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의 사조들을 검토하고, 거기서 일관된 특징을 ‘삭제된 개인’(individu effacé)라고 평했다.[각주:8] 대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는 세 개의 사조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항하고 개인의 내면적 자유의 불가침성과 입헌주의에 의한 권력억제를 주창한 스탈 부인, 콩스탕, 프레보스트-파라돌(Prevost-Paradol) 등의 사조이다. 둘째는 개인보다 ‘사회’를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의지[의사]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으로의 집권화에 의해 더 고차적인 자유가 실현된다고 파악한 르와이에-코라르, 레뮈제, 기조 등 독트리네르의 사조이다. 셋째는 개인적 자유에 대해 종교적 ‘진리’를 우위에 두고 신적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라므네, 몽타랑베르, 세기말의 자유주의 가톨릭 등의 사조이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사조가 프랑스 자유주의의 주류를 두고 다투며, 두 번째 사조가 1875년 이후에 체제원리가 되며, 자유주의와 양립하는 공화체제를 이끌게 됐다고 한다.[각주:9]

2)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

퓌레나 좀의 연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을 ‘자코뱅주의’적인 일원적 통합원리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1970년 이후의 정치철학에서는, 이런 사상적 전통을 근대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조가 있다. 이하에서는 클로드 르포르, 마르셀 고셰를 중심으로 그런 19세기론을 다뤄보고 싶다.[각주:10]

르포르(Claude Lefort, 1924~)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다. 1949년부터 60년까지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를 간행한 그는, 6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토크빌과 아렌트의 사유에 의해 촉발되고, 근대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정치인식의 문제성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권’의 역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개념의 분석이라는 두 가지 점에 집중해서 그의 연구를 일별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회가 ‘외부’에서 질서의 일체성을 보장하는 참조점(신, 자연, 왕의 신체)을 갖고 있었던 반면, 근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런 참조점들을 거부하고(가령 프랑스혁명에 의한 왕의 신체의 폐절), ‘내부’에서만 질서의 입각점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각주:11] 그 입각점은 ‘인간’(homme)이라 칭해지며, ‘인간의 권리’의 실현이 근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된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공통성을 추상화한 집합을 가리키는데, 외부의 지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언급[참조, 지시]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확정성을 갖는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권’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로서 확대를 거듭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권력도 ‘복지국가’(État-providence)로서 비대화를 계속했다.[각주:12]

여기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루고 싶다. 르포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특히 자코뱅주의와 20세기의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것은 모든 다원성이나 차이를 배제한 ‘일자-인민(Peuple-Un)’이라는 표상이 통치의 기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인민’은 개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며, 개인을 초월한 집합으로서 관념되며, ‘사회적 권력’이라고도 일컬어진다. 19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콩스탕이나 기조가 아니라 토크빌이야말로 이런 단일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제(專制)’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각주:13] ‘인권’은 이 ‘사회적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전제’를 억지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인간’관념은 개별 인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재시킨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전체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는 구별될 수 없다.[각주:14]

르포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국가권력의 행사)를 일상생활의 곳곳에 침투시키는 논리를 내재시킨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나누는 것은 권리·정치제도 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차원’, 즉 자유로운 언론에 의해 통치권력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제약하는 ‘공적 영역’의 존재뿐이다.[각주:15] 이 공적 영역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권리·정치제도나 공/사의 구분을 다시 묻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운동’뿐이라고 한다.

르포르가 탐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셰(Marcel Gauchet, 1946~)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적 조건’아래에서 더욱 탐구됐다.[각주:16] 고셰는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의 곤란의 출발점을 대혁명에 둔다. 기독교의 성립과 세속화는 개인이 세계의 의미를 자기 해석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는 것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혁명은 탈종교화와 왕의 부정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을 초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연대가 모든 외부성이나 내적 다원성을 갖지 않는 단일한 집합(‘사회’)으로 관념됨으로써, 개개인을 초월하는 ‘사회’에 의한 새로운 전제(專制)나 억압을 초래할 가능성도 일어났다.[각주:17] 고셰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입법부로의 중앙집권화, 자코뱅주의에서의 ‘단일한 집합체’관념의 성립에서 개인의 자율과 양립할 질서의 형성 실패의 요인을 찾아낸다. 혁명기의 시에예스에 의한 의회감시의 ‘제3의 권력’도입론, 콩스탕의 중립적 권력론, 대의제론 등은 ‘사회’의 관념에 기초한 일원적 통치상을 비판하고 다원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로 독해된다.[각주:18]

고셰에 의한 19세기 이후의 역사상을 일별해두자.[각주:19] 19세기 전반기에는 좌우 당파의 대립, 국왕·정부·의회의 분리, 대표제 등, 일정한 ‘다원성’원리의 도입이 꾀해진다. 제3공화정 시기의 양원제의 도입은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분업의 진전이나 계급대립에 의해 간과된 ‘사회’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희구가 현재화하고, ‘단일한 인류(Une humanité)’라는 종교적 관념이 부상한다.[각주:20] 이것은 민족·국민 등으로 모습을 바꿔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치를 석권한다. 고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정당이나 결사의 다원성, 대의제는 행정기구에 의한 리스크의 예측이나 불확실성의 제거·통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의 ‘지배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해지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문화적 획일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매몰·함몰에 의해 단일한 ‘사회’의 논리에 기초한 일원적 지배로 전화될 가능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고셰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외부’의 삭제라는 문제로 되돌아가, 탈종교화의 역사를 정치사상의 문제로서 연구하게 됐다.[각주:21]

3) 생명정치의 확산

1970년대의 지적 쇄신 속에서 생겨난 두 번째 사조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이후의 19세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조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각주:22] 푸코는 1977-78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18세기 이후의 통치권력의 성질변화를 주제로 삼는다.[각주:23] 그에 따르면, 상업과 도시의 발전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국가(내치)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통치의 효율화(économie)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치경제학(économie politique)의 내실은 18세기 후반기에 치안유지에서 ‘인구’의 학(學)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사람들의 생물학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을 ‘생명정치’(biopolitique)라고 칭하고, 이런 권력실천이 공중위생·인구정책·의료·식량정책으로서 전개됐다는 것, 그 담지자가 국가관료뿐 아니라 ‘사회적’영역에서의 병원·공장·교육기관·경제학자·위생학자 등으로 학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푸코에게 ‘시민사회’란 이런 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영역에 다름 아니며, ‘자유주의’란 새로운 통치의 방식을 정당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다.[각주:24] 푸코의 ‘생명정치’, ‘사회적인 것’, ‘자유주의’등의 개념은 이후 19세기 연구에서 비교·대조되는 틀이 되며, 빈곤문제나 감옥, 공중위생, 가족, 의료 등과 관련된 많은 역사연구를 산출했다.[각주:25]

위에서 다뤘던 두 개의 사조는 각각 상이한 관심에서,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의 일원적 통치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퓌레와 좀은 자코뱅주의의 유산이 19세기 이후에도 잔존하며, 영국식 자유주의나 입헌주의가 정착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르포르나 고셰는 ‘인간’이라는 자기언급적 개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단일한 집합체(‘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그리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이끌 위험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논했다. 푸코주의자는 18세기 이후의 개개인이 단일한 생물학적 집합(‘인구’)로 파악됨으로써 집합적 생명의 효율적 유지·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사회적’영역으로 확산되고 개개인의 생명의 관리·규율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각자는 이런 일원적 통치원리에 대항하는 다원적 질서구성원리의 추구 ― 퓌레와 좀에게서의 대의제와 경쟁적 정당제, 르포르와 고셰에게서의 운동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외부’의 탐구, 말년의 푸코에게서의 ‘자기에의 배려’에 기초한 고대 그리스의 주체상과 자기-타자관계 ― 를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이런 연구사조들과 교착되면서도,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거기서 긍정적인 발전사를 독해해내려는 것이 다음에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다.

3. 일원적 통치원리로의 회귀 : 로장발롱의 19세기론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1948~)은 중도노조인 CFDT의 고문이라는 사상사 연구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말에 푸코의 세미나에 출석했으며, 최초의 사상사 연구서인 『유토피아적 자본주의』를 출판했다. 80년대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소속되어 퓌레, 르포르, 고셰, 마넹 등과 교류하면서 역사연구·현대정치연구를 행했다.[각주:26] 90년대에 들어서자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3부작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정치사상사 연구의 제일인자가 된다.[각주:27] 2002년부터는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로장발롱의 19세기 연구상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기에 성립된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이 거듭 비판에 처해지면서도 수정되어 회귀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 발전사로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인식(‘일반성의 정치문화’라고 일컬어진다)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를 거의 답습하고 있다.[각주:28] 혁명기에는 전통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끄집어내어 동질적·추상적 개인으로 구성된 단일한 집합체(‘개인으로 구성된 사회sociétéd’individus’)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랑스의 특징은 헤겔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변증법이 상정되지 않고,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강조된 것이다. 개별 이익을 추상화하는 ‘대표’라는 메커니즘이 중시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에는 ‘특수이익’에서 ‘일반이익의 창출’이라는 비약이 상정된다. 양자를 매개하는 정치적 결사는 부정되고, 직업단체, 지역성, 남녀의 성차 등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 일반성을 체현하는 것은 ‘법’뿐이며, 대표자에 의한 입법행위가 신성시된다.

둘째로,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이런 정치인식은 거듭 비판에 처해졌다.[각주:29] 르 샤플리에법에서 볼 수 있는 중간단체의 부정은 개인의 원자화, 국가의 비대화,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19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7월 왕정기에 재생한다. 기조, 티에르 등의 자유주의자는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구별을 도입한다.[각주:30]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 집권화에 의해 전통적인 특권들(libertés)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liberté)가 실현된다. 자코뱅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확대와 자유의 실현은 상보적이라고 파악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으로는 언론·집회활동의 자유나 행정적 분권화가 허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다원성은 사회에 분산된 엘리트의 의견을 통치기구로 집약하고, 일원화하기 위한 매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적/사회적 영역의 구분과 상호보완으로 구성된 그들의 질서관은 제2제정기의 정치적 결사 금지와 직업적 결사 승인(1864년법)으로 계승되며, 제3공화정기의 ‘수정 자코뱅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셋째로, 제3공화정기에 자코뱅주의의 쇄신이 완수된다.[각주:31] 여기서 로장발롱이 중시하는 것은 유기체적 질서관을 따라 자코뱅주의적인 국가-개인의 이원적 질서관을 비판하고 중간단체 재건을 제창한 사회학자(Fouillée, Durkheim, Ferneuil, Duguit 등)의 사상이 아니라,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양극화(polarisation)’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화파 정치가(Waldeck-Rousseau, Léon Bourgeois, Paul-Boncour 등)의 질서관이다. 후자는 1884년법(직업조합 자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결사가 질서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승인한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통한 의사집약과 일반이익의 일원적 ‘대표’라는 시각을 유지한다. 정치적 결사는 1901년법까지 자유화되지 않으며, 이 법에서도 결사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제도적 제약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가 제창한 직능대표론이나 생디칼리스트가 주창한 생산자의 공화국론(M. Leroy), 코포라티즘론은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는 시도였다. 다른 한편, 공화파 정치가의 질서관에 따르면, ‘사회적’다원성은 ‘정치적’집권성과 명료하게 구별되며, 그 통제 아래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야말로 20세기의 프랑스 정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위와 같이 로장발롱에 따르면, 혁명기의 자코뱅주의는 몇 번이나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오늘날의 정치사상적 과제는 이제 자코뱅주의의 극복이나 토크빌적인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의 옹호가 아니다. ‘사회적’영역에서 중간단체가 다양한 발전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즉 ‘일반이익’이나 통합의 공통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라고 한다.[각주:32]

4. 마치며

지금까지 달음박질치듯이 30년 동안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뒤쫓았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과제를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서이다. 퓌레 이후의 19세기 사상사 연구는 담론사, 사회사, 심성사 등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고전적 사상가의 텍스트를 넘어선 폭넓은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 기존의 일본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사상가의 주요 텍스트를 ‘점’과 ‘점’으로 묶음으로써 사상사가 구성된 것이 적지 않았다. 향후에는 프랑스에서의 역사 연구의 진전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담론 상황을 ‘면’으로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대상의 확장이 요구된다.

둘째는 분석 틀에 관해서이다. 본고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이라는 도식을 사용해서 본 것처럼, 19세기에 정치사상의 대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자코뱅 주의의 영향,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회로의 권력의 확산, 사회 문제의 출현 등에 의해 분석 틀도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대립이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일원성과 다원성, 정치적 질서의 내부와 외부, 규율과 자율, 중간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역할 등, 논자에 따라서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로 ‘정치적인 것’자체가 논쟁적 개념이 되며, 그 개념 규정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과제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이런 문맥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깊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주도하는 로장발롱의 틀에 내포된 일정한 편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로장발롱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있던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고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런 관심의 전환의 배후에는 현대 프랑스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논의 상황이 있다. 즉, 한편으로는 전지구화, 유럽화에 의한 프랑스 국가의 자율성의 흔들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회적 분단(이민자·청년·배제문제 등)의 심각화와 대의제의 기능장애이며, 이런 것들로부터 귀결되는 ‘프랑스 모델’의 전환이라는 논의이다.[각주:33] 이런 문맥 속에서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과 대의제를 옹호하고 국민(naion)의 재구축을 호소하는 등, 현대정치에 대해 활발한 제언을 계속하고 있다.[각주:34]

그러나 위와 같은 실천적 관심을 배후에 지닌 19세기 연구는 대상에 본래 내포된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훼손하고 이것들을 정태적인 역사관으로 회수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하고 ‘정치적인 것’(일원적 통합원리)의 일관된 우위를 상정한다는 틀로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Constant, Madame de Stäel, C. Dunoyer), 중반기의 사회주의자,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등 ‘사회적인 것’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묻고자 한 사상가들의 상당수가 곁가지에 자리매김 된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상이 ‘자코뱅주의’와 대립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재구축을 모색하고, 사회주의에서 보수주의까지 폭넓은 사상 투쟁을 벌였다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의 지속성을 축으로 삼은 그의 역사관에 대해 복수(複數)의 ‘사회적인 것’의 경합 속에 새로운 질서 구성 원리를 찾아내려는 사상사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은 향후의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 본고는 제31회 사회사상사학회(2006년 10월 22일)의 섹션 「프랑스형 『시민사회』 모델의 가능성 : 피에르 로장발롱을 둘러싸고(フランス型『市民社会』モデルの可能性──P. ロザンヴアロンをめぐって」를 조직한 北垣徹(西南学院大学), 高村学人(立命館大学) 두 사람과의 공동토의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집필에 있어서는 아래의 연구조성의 일부를 활용했다. 平成十七─十八年度文部科学省科学研究費補助金(若手研究B), 平成十八年度新潟大学プロジェクト推進経費(若手研究者奨励研究費).


  1.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1, Paris, Gallimard, 1946, p.13. [본문으로]
  2.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2, Paris, Gallimard, 1950, pp.11-13 ; t. 3, 1954, pp.27-38. [본문으로]
  3.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1978. [본문으로]
  4.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au 19 siècle,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reation of modern political culture, 4 vol., New York, Pergamon Press, 1987-1994. [본문으로]
  6.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서는 다음의 것이 있다. Claude Nicolet, L’idée républicaine en France, 1789-1924, Paris, Gallimard, 1995는 ‘과학’, ‘사회’ 등 19세기의 주요 사상 개념의 배치 속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의 생성과정을 상술하고, 정치사적 서술에 머무는 다른 연구(가령 Pamela Pilbeam, Republicanis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1814-1871, Basingstoke, Macmillan, 1995)와 비교해서 출중하다. Sudhir Hazareesingh, From Subject to Citizen : the Second Empir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French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은 제2제정기의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가톨릭의 담론을 망라하여 검토하고, 그 연방·분권론에 자코뱅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할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생성을 찾아낸다. Laurent Mucchielli, La découverte du social : naissance de la sociologie en France (1870-1914), Paris, Découverte, 1998은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과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착에서부터 당시의 담론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7. 그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첫째, 제도로서의 대표가 부정되는 한편, 혁명운동에 의한 ‘인민’의 대표라는 관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도덕적 일체성에 기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인민’이 대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에 의해 ‘인민’이 창출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이 운동에서 당이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Lucien Jaume, Le discours jacobin et la démocratie, Paris, Fayard, 1989, pp.387-403). [본문으로]
  8. Lucien Jaume, L’individu effacé, ou le paradoxe du liberalisme français, Paris, Fayard, 1997. 또한 좀의 관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저작으로 Lucien Jaume, Echec au liberalisme : les jacobins et l’État, Paris, Kimé, 1990이 있다. [본문으로]
  9. Jaume, L’individu effacé, op.cit., pp.19-21, pp.59-117, pp.124-148, p.340 et s. 독트리네르의 사상이 제3공화정의 체제원리가 됐다는 이해는 후술하는 로장발롱의 기조론에서도 볼 수 있다. Pierre Rosanvallon,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p.358 et s. [본문으로]
  10. 그들을 포함해 최근의 프랑스 논의 상황을 정리한 문헌으로 宇野重規, 『フランス政治哲学』, 東京大学出版会, 2004가 있다. [본문으로]
  11.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94, pp.63-66. [본문으로]
  12.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p.32. [본문으로]
  13. Ibid., p.38. 르포르의 논의는 피에르 마넹(Pierre Manent, 1949~)의 다음의 논의에도 빚지고 있다. Pierre Manent, «Démocratie et totalitarisme : à propos de Claude Lefort», Commentaire, t. 16, 1981-1982, pp.574-583. [본문으로]
  14.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op.cit., pp.171 et s. [본문으로]
  15.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op.cit., p.55. [본문으로]
  16. 고셰의 지적 배경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인류학, 정신분석 등 다양하다. 르포르와의 관계에 관해 고셰는 1966-67년에 그의 강의에 참여하여 ‘선열한 충격을 받고’ 르포르와의 대화로부터 연구 테마를 찾아냈다고 회고했다(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Paris, Gallimard, 2003, p.29). 또한 난해한 고셰의 사상의 도입으로 다음이 편리하다. Marc-Olivier Padis, Marcel Gauchet : la genèse de la démocratie, Paris, Michalon, 1996. [본문으로]
  17. March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pp.1-26. [본문으로]
  18. M.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Paris, Gallimard, 1995. ; «Benjamin Constant : l’illusion lucide du libéralisme», dans Benjamin Constant, Ecrits politiques, Paris, Gallimard, 1997, pp.1-110. [본문으로]
  19.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op.cit., pp.27-35. [본문으로]
  20. M. Gauchet, La condition politique, Paris, Gallimard, 2005, p.371. [본문으로]
  21. M. Gauchet, La religion dans la démocratie, Paris, Gallimard, 1998. [본문으로]
  22. 田中拓道『貧困と共和国』人文書院、二〇〇六年、第四章 ; 同「フランス福祉国家論の思想的考察──『連帯』のアクチュアリテイ」『社会思想史研究』二人巻、二〇〇四年、53-68頁. [본문으로]
  23. Michel Foucault, Se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Paris, Gallimard/Seuil, 2004. [본문으로]
  24. Ibid., p.357. ;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Paris, Seuil/Gallimard, 2004. [본문으로]
  25. 대표적인 예로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Paris, Fayard, 1984 ; François Ewald, L’État-providence, Paris, Grasset, 1986 ; Giovanna Procacci, Gouverner la misère, Paris, Gallimard, 1995 ; Andrew R. Aisenberg, Contagion : Disease, Government, and the ‘Social Question’ in Nineteenth-Century Fra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푸코의 도식과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의 사상사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중요한 연구로는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26. Pierre Rosanvallon, Le libéralisme économique, Paris, Seuil, 1979. 그 내용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론과 근본적으로 겹친다. 18세기의 ‘시장의 발견’을 효율적인 통치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원리로서 위치짓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세미나의 요약에서 이 연구를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op.cit., p.326). [본문으로]
  27. P. Rosanvallon,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2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8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2000. [본문으로]
  28. P. Rosanvallon,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2004, pp.25-105. [본문으로]
  29. Ibid., pp.131-195. [본문으로]
  30. Ibid., pp.218-227. [본문으로]
  31. Ibid., pp.343-360. [본문으로]
  32. Ibid., p.434.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로장발롱이 편집한 La République des Idées 시리즈의 한 권인 La nouvelle critique sociale, Paris, Seuil, 2006. 혹은 P. Culpepper et al. dir., La France en mutation, 1980-2005, Paris, Presses de la Fo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2006. [본문으로]
  34. 로장발롱은 최근 저작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그 불신을 조장하고 키워왔던 기존의 정치사상 연구를 비판한다. P. Rosanvallon,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2006, pp.24 et s. 국민의 재구축에 관해 로장발롱의 「일본어판 서문」, 『연대의 새로운 철학』, 北垣徹訳)「日本ヒ語への序文」『連帯の新たなる哲学』勁草書房, 2006, v頁.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프랑스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 피에르 로장발롱의 프랑스 민주주의론

フランスの政治文化とデモクラシー

: P.ロザンヴァロンのフランス・デモクラシー

野末, 和夢

Citation 一橋社会科学, 7: 33-41

Issue Date 2015-05-21

 

* 로장발롱의 책 번역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를 식힐 겸 로장발롱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미리 포스팅한다. 관련된 문서나 책들도 연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 일본에서는 '통일성' 대신 '일체성'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이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약호

* 이 글에서 빈번하게 인용·참조하는 로장발롱의 문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약호, 쪽수의 순서로 표기한다.

∙ MG :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SC :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1.

PI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2.

∙ DI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3.

MPF :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coll. «Points Histoire », 2006.

CD :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08.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론을 대표하는 피에르 로장발롱(현재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에 의한 일련의 19세기 연구를 재구성하고, “프랑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을 추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통선거, 대표정, 인민주권을 각각 주제로 하는 3부작(이하 SC ; PI ; DI로 약칭)에서 주로 검토했다. 이 세 개의 역사상을 통합한 것이 2004년의 프랑스형 정치모델』이다. 이런 전체상을 밝힌 일본어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각주:1]

로장발롱의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계보를 잇고 있다.[각주:2] 첫째, 프랑스 혁명 및 현대사 연구의 조류이다. F. 퓌레로 대표되는 수정학파는, 정통사학과는 달리,[각주:3] 1793년의 자코뱅지배를 혁명의 ‘탈선[삐그덕댐]으로 파악하고, 19세기를 자코뱅주의의 초극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해석을 전개했다.[각주:4] 로장발롱은 퓌레의 관심을 계승하고, 정치사를 경제구조가 아니라 정치문화에 의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cf. MG:26 ; MPF:13).

둘째, 1970년 이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의 조류이다. C. 르포르나 M. 고셰로 대표되는 이 시기 이후의 논자들은, ‘정치(la politique)’와 구별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다시 물었다.[각주:5] 로장발롱은 그들의 연구를 계승하면서도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긴장이라는 시각을 도입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두 세기에 걸쳐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정초해온 자코뱅주의를 검토한다(2). 다음으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검토한다(3). 이 두 개념의 긴장관계가 민주주의의 사상사를 구성한다고 간주된다. 이상의 틀을 사용해, 대혁명 이래의 민주주의의 전체상을 제출한다(4). 마지막으로 그의 연구에 내재하는 사상적 특징을 지적한다(결론).

 

2. 근대정치적 사고양식으로서의 자코뱅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적인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자코뱅주의라고 명명하고, 그것을 일반성의 정치문화(culture politique de la généralité)”이라고도 바꿔 부른다(MPF:13). 그 특징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1) 사회적 일체성

첫째,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은 사회 형태(forme sociale)”로부터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혁명에서는 직업기능에서 유래하는 단체(corps)로 구성되는 사회에 매몰되어 온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해방하고, “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것이 희구되었다(MPF:13 ; PI:22).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는 개인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결정론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개인” = “시민(citoyen)”으로 정립된다(SC:113 ; PI:17).

이런 추상성은 대표=표상(représentation)”이라는 작용과 불가분하다. 각종 축제나 시에예스의 논의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듯이, “인민이나 국민이라는 집합은 대표=표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PI:47 et s.). 오히려 상징이나 픽션을 통해 표상됨으로써, 다양한 개인들은 유일한 집합으로 추상화된다(MPF:28). 대표정은 개인의 해방과 집합적 권력[=국민 주권] 사이의 모순을 송두리째 해소하는” “기술로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관통한다(DI:29, 189-190). 자코뱅주의의 전통에서 단일성(Un[일자])”, “일체성(unité[통일성])”, “전체성(totalité)”, “불가분성(indivisibilité)” 등의 추상적 어휘는, 프랑스 시민들이 국민이라는 집합으로서 대표=표상되기 위해 사용됐다(MPF:26-28).

이러한 프랑스적 정치관에서는, 특수이익과 동떨어진 곳에 일반이익이 설정되고, 그것을 추상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정치체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MPF:118). “추상화에 의해 개개인의 특수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고, 개인 일반이 공화국의 불편부당한(impartial)” 주권의 연원으로 간주됨으로써 평등이 담보된다(MPF:118-124). 따라서 투표권 보유자로서의 평등한시민은 국민적 일체성을 구성하는 간단한 로 환원되고, 사회의 실체는 이 배후로 숨었다(MPF:122 et s.). “수로서의 일반성이 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일반성의 가장 명백한 형태를 취한다”(CD:115).

 

2) 민주적 직접성

두 번째 특징은 무매개적 의사표시에 대한 희구이다. “중간단체(corps intermédiaires)”의 법적 부정이 의미하는 사정거리는, 종교단체나 직업단체의 해체에 한정되지 않고, 일체성을 가로막는 모든 매개적 제도나 상징의 부정도 포함한다. 1791930일의 포고령에서는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든 정치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표명됐다. 왜냐하면 매개적 제도를 통해서는, 시민들은 집합적인 이름 하에서자기 자신을 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MPF:59). 그러므로 피대표자의 다양성은 대표자에 의해 일반이익을 가진 집합으로서 직접 표상된다(MPF:72).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이 부정되는 것은, 그것이 영속하는 제도(institution)”로서 고정화되고, 대표정에 이중성(dualité)”을 도입하는 것(민주적 직접성의 훼손)으로 간주되는 한에서였다(PI:16 et s ; MPF:76-79).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나 다양성 등의 특수이익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cf. SC:135-147, 155-169 ; DI:219 et s.). 한편, 르 샤플리에가 주장했듯이, “공적인 것(le public)”은 국회의원의 활동으로 집약되며, 공적 영역은 통치제도로 환원된다(DI:232 et s ; MPF:71 ; cf. CD:113). 로베스피에르나 보나파르트는 통치제도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대항권력(contre-pouvoirs)”(e.g. 연설활동, 청원운동, 시위 등)간접적 권력” = 민주주의의 울타리 바깥이라며 배제하고, 민주적 직접성을 촉진시켰다(CD:87, 100-103, 114 ; MPF:71). 이러한 불가분성을 통한 정당성이 일반성을 형성하는 한 측면이 된다(CD:115).

중요한 것은 구체제 하의 전통적 구분(지연, 종파, 직군 등)일반성의 정신과 상반되는 특수성의 정신으로서 분극화(polarisation)”된다는 것이다(MPF:35-37). 헤겔이 체계화한 변증법적 관계와는 달리, 프랑스적 정치관에서 특수성과 일반성(보편성)의 관계는 서로 긴장하는 양극으로 구별되고, 일반성만이 단일하고 불가분한 공화국을 형성한다. 로장발롱은 혁명 이래 이용됐던 이런 구별을 분극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cf. MPF:37-54, 117-121).

 

3) 법의 신성시

세 번째 특징으로서, 법의 신성시를 꼽을 수 있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두 가지 유토피아를 따르는 정치문화의 형성에 기여한다. 우선 사법 엘리트는 법의 제정자라는 것 이상으로, “단일한 인민을 제정하는자로서 생각된다. 그에 따르면, 사법 엘리트는 정치적 일반화를 추진하는 자인 동시에 교사였다. 법에 대한 교육관은 많은 논자(e.g. Fénelon, Condorcet)들의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으며, 국민적 일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교육(instruction publique)의 이론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MPF:93 et s.).

다음으로 법은 정당성 있는 규범(norme légitime)인 동시에 정치적인 작동자(opérateur politique)”로 간주된다. 법을 개입시킴으로써, 모든 사람 및 행위는 개개의 특수성이라는 현실에서 분리된다. 일반성은 탈현실화(déréalisation)”라는 작업을 통해 구축된다(MPF:94-96). 이러한 법이나 권리에 내재하는 픽션으로서의 성질이 일반성의 형성에 관여한다(CD:115).

단적으로 정리하면, 구체제의 사회적 유대를 해체한 프랑스에서 픽션이 시민적 평등(égalité civile)”을 빚어내는 공민적 유대(lien civique)”로서 요구됐다(SC:88 et s.). 혁명 이후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는 추상화일반화”, 그리고 픽션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주의(formalisme)” = “정치적 유토피아로서 우선 묘사된다(SC:385).

 

 

3. 민주주의의 이중성 :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위와 같은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이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에 의해 공적인 것을 독점하는, “공적 영역에 대한 환원적인 시각이다(DI:333 et s.). “정치적인 것이란 구체적 제도나 당파 간 경쟁 등에 관련된다기보다는 일반이익·국민적 일체성의 표상과 창출 등 직접적인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련된 개념으로 여겨진다.[각주:6]

그러나 사회적인 것(le social)”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현실에 적합한 질서를 구축할 수 없었다고 하며, 항상 비판에 노출된다(MPF:47).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의해 배제·억압된 특수이익의 총칭을 의미하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실망의 역사, 또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의 역사속에서 개시된다.[각주:7] 그러므로 혁명 이래의 정치문화는 정치적인 것의 찬양과, “사회적인 것에 의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나 실망이라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cf. MPF:158 et s.). 아래에서는 그 비판의 논점을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한다.

 

1) ‘새로운 사회의 사상

첫째, 자코뱅주의적 수사가 사회의 해체(dissolution sociale)”를 이끈다고 하는 비판이다. 자유주의자(e.g. M. Staël, Constant), 보수주의자(e.g. Ballanche, Bonald), 사회학자(e.g. Saint-Simon, Comte), 사회가톨릭(e.g. Lamennais), 독트리네르(e.g. Royer-Collard, Guizot) 등은 각각의 방법으로 사회의 해체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MG:75). 중간단체를 배제한 자코뱅국가에서의 사회는 유대(lien) 없는 원자화된 사회에 불과하고, 공화국의 일체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공유한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결합의 결여(déficit de sociabilité)”를 보전하는 사상운동이 전개됐다(cf. MPF:160, 213-218).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중간단체의 재건이 필요해진다. 동업자조합의 재건은 이미 1800년 이후의 개별법령에 의해 모색됐다(MPF:132). 그리고 1820년대부터 어소시에이션의 설립과 분권론이 많은 논자(e.g. Rémusat, de Laborde, Leroux, Tocqueville)에 의해서 주장됐다(MPF:164 et s.). 로장발롱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의 키워드가 일체성이라면, “사회적인 것의 키워드는 어소시에이션이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과 국가를 중개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로서 갈망됐다(MPF:164, 236).

 

2) 대표정의 역설

둘째, 이 견해는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내재하는 모순, 즉 대표자(représentant)와 피대표자(représenté)와의 괴리를 메우는 것으로 얘기됐다. “대표란 구체적 환경 속에 매몰된 다양한 개인들을, 단일한 추상적 집합체로서 다시 얘기하고, 정치적 일체성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복수성을 단일성으로 환원하는 이 조작에는, 본질적으로 곤란이 내재해 있다(PI:53).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일정한 수의 개인 사이에 집합적 속성을 규정함으로써, 그 곤란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 “정치적인 것에서 배제된 대중을 계급이나 사회집단으로 포섭하고, 일반이익과는 상이한 이익을 대표=표상한다(SC:343, 369).

예컨대 시에예스에 의한 능동적 시민/수동적 시민의 기능적 구별은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에 의해, 제한선거제론으로서 계승됐다(PI:68 et s;SC:325). 1860년대에는 노동자에 의한 계급대표론(PI:100 et s.), 3공화정 중기에는 뒤르켐 등에 의한 (보통선거제를 대신한) 직능대표제가 주장됐다(PI:140, 175). 그것은 20세기 이후 산업민주주의론으로 계승된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인 것이 집합적 속성을 수반해 다시 얘기됐다는 것이다(cf. SC:383).[각주:8]

 

3) 이데올로기와 사실

셋째는, 이데올로기와 사실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다. 19세기 전반기부터 되풀이되는 실증”, “관찰”, “예견이라는, “사실을 객관화하는 과학관에 의해, 혁명기의 추상적 원리는 형이상학이라며 비판된다(SC:453 et s.). 3공화정기의 사회학자(e.g. Fouillée, Durkheim, Ferneuil)나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정치가(e.g. Gambetta, Ferry), 개인의 대표=표상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일원론(“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을 비판한다(PI:140 ; MPF:263-274.). 왜냐하면 사실의 관찰에 기초하면, 질서의 조화(harmonie)”는 중간단체의 유기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되풀이되어 비판을 받음으로써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일체[한 몸]”(MPF:71)인 공화국을 목표로 삼았지만,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이 정치적인 것해체가 아니라 그 수정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유토피아, 사회적 현실사이의 상호 긴장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그 자체로 달성되지 않는(inachevée)” 이념이기 때문이다(cf. DI:37). “사회적인 것에 의한 비판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항상 수정되고 재생·존속된다는 운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구성한다. “프랑스의 정치모델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극, 분극화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MPF:231).

 

4.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

이하에서는 자코뱅주의의 수정이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상을 검토한다.

 

1) 19세기 전반기와 자유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는 자코뱅주의가 수정(amendement)”되는 최초의 시기이다. , 1789년에서 비롯된 정치문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일반성이 재구성되는 시기이다(MPF:199 et s.). 그는 그것을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 속에서 찾아낸다.

흔히 자유주의자는 국가권력의 확대를 경계하고, 그 외부에서 개인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가를 가리킨다(e.g. Constant, Daunou, Tocqueville, Prévost-Paradol, Leroy-Beaulieu).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논자들은 통치의 문화를 구축할 수 없고, 프랑스에서는 이차적인 것에 그쳤다(MPF:223).

다른 한편, 기조, 티에르, 비탈-루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는, 사회의 다원성과 정치적 집권화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cf. MG:63 ; MPF:223). “정치적 자유는, 개인들의 독립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 능력에서 비롯된다”(MPF:226). 로장발롱에 따르면, 공화국에서의 개인의 자율은 집합체의 자율에 종속된다. 기조 등은 정치적 집권화에 의한 자유의 확보를 주장했다(MPF:203-212). 그들은 국가의 관리운영(administration)에 의해 정치적 집권화를 보완하는 기제를 시민사회에서 찾아내는 한편, 전근대적 특권의 재생을 기피하고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을 부정했다. 어소시에이션은 기조가 말했듯이 일반적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한에서만 허용된다(MPF:248 et s.).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을 분극화하는 이 조류에 의해 자코뱅주의를 수정하는 최초의 길이 열리게 된다(MPF:218, 225-231).

 

2) 2공화정과 제2제정

2월 혁명기 및 제2공화정기는 자코뱅주의적 전통이 명시적으로 부흥되는 시기로 여겨진다. 보통선거법의 도입은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을 반영했다. 그들은 정치에서 배제된 비시민(non-citoyen)”이라는 공화국의 일체성에 있어서의 위협으로서 당시 묘사됐다(SC:335-342). 그들을 시민으로서 포섭하는 것, “정치적인 것을 통해 국민적 일체성을 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가 된다(SC:381 et s.).

예를 들어 2월혁명기에는, 공화주의자 논자(e.g. Ledru-Rollin, Leroux, Blanc)에 의해 보통선거를 통한 인민의 일체성의 창출이나, 국가와 개인의 무매개적 결합이라는 관념이 부활한다(cf. SC:Ch.3). 개인들은 시민으로서,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사회로 결집(associer)”해야 한다(SC:381 et s.). 중간단체에 대한 의구심이 잔존하는 가운데, 1848년의 어소시에이션은 자코뱅주의적 유토피아를 계승하고, 국민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에 대한 어소시에/어소시에이션)을 스스로 표상하려고 했다.(SC:383-386 ; MPF:239). 2공화정 하에서는, 블랑키주의자에 의한 소요론, 급진적 공화주의자에 의한 직접 통치론이 제창되지만, 모두 자코뱅주의의 한 변형으로 간주된다(DI:139-167, 169-195).

다른 한편, 2제정기는 정치적인 것의 집권화와 사회적차원에서의 결사의 다양성이 구별되고, “분극화라는 특징이 다시 등장한다. 우선 나폴레옹 3세는 국민투표를 자신의 정치 모델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제도로 삼고, “인민의 일체성/단일성을 찬양한다(DI:201-217). 50년대까지의 그는 일반의지의 직접적 표상을 교란하는 정치적 자유(출판, 정치결사, 집회, 신앙 등)을 부정한다(“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그런데 60년대에 직업적 결사의 허용, 공제조합의 장려, 실업기금의 정비, 단결권과 집회권의 허가 등, 사회적 다원성이 일정 정도 인정된다. 자코뱅주의적인 후견국가상은 자유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받는다. 노동자의 결사나 집회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움직임은 후견국가상의 대안의 모색이며(MPF:249-254), “프랑스 사회사에 있어서의 대전환”(DI:221)으로 위치지어진다. 의회 내에서는 중간단체 부정론이 혁명의 잘못으로서, 계파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서(e.g. Gambetta, de Mun, Brousse, Jaurés) 규탄됐다. 그러나 정치적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의 승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회적 영역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은 정치적 영역의 격리에 의한 보전을 의도했다(DI:218 et s;MPF:260).

 

3) 3공화정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 시기의 사상적 대전환(grand tournant)”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존속했다. 3공화정의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 강화를 도모하는 엘리트 의회 정치와 민중의 정치 개입을 목표로 하는 사회”(의회의 외부”)의 이원론적 도식으로 파악되는, “한정된 민주주의(démocratie limitée)”이다(DI:249, 259). 󰡔프랑스형 정치모델󰡕에서는 이런 테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사회학자와 공화파 정치가 사이의 사상적 구별이며, 특히 후자에 의한 직업적 결사(생디카)와 정치적 결사(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의회 토론이다.

로장발롱에 중요한 것은 급진공화파의 정치가/엘리트(e.g. Waldeck-Rousseau, Bourgeois, Clemenceau, Paul-Boncour)의 사상이다(cf. SC:507 et s.). 애초에 특수이익의 표상에 의해 일반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기피되던 직업적 결사는, 그 조직률과 가입률의 상승도 있고, 서서히 노동자[전반]의 일반이익으로서, 그 유용성이 인정받게 됐다(MPF:283-293). 다만 급진공화파 주도로 성립된 1884321일의 직업조합법은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질서의 조절(régulation)” 양식을 의도했을 뿐이다. 그것은 A. 밀랑이 그러했듯이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얘기됐다(MPF:297-299).

어소시에이션 일반은, 20년 후의 1901년법에서 승인된다. 로장발롱은 이 기간의 의회 토론에 프랑스 모델의 핵심이 표현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 의회를 통해 일반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와 중간단체(직업조합, 대학, 상공회의소, 각종 협회·위원회 등)를 통해 다원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와의 구별이 되풀이되어 얘기됐다(MPF:351). 발덱-루소가 전형적이었듯이, 종교단체나 재정기반에 대한 법적 제약을 겪은 어소시에이션은, 출판이나 언론과 똑같은 시민이 지닌 행위(acte)”자유로서 인정받은 것에 불과하다(MPF:323, 334-337, 343 et s.). 급진공화파에 의해 정치적인 것이 의회를 통해 강조되는 한편, L. 뒤기가 역설한 직능대표제는 공화국이 무수한 작은 거점으로 해체하는 것을 우려되고, 강한 반대를 받았다(MPF:352-354). G. 클레망소가 주장했듯이 사회적인 것을 전제로 한 탈중앙집권화프랑스의 일체성과 합치하는 한에서만 인정받았다(MPF:375). 로장발롱에 의하면 위의 두 가지 영역의 분극화가 프랑스 모델의 본질인 분극화 민주주의(démocratie polarisée)”를 구성한다(MPF:359, 376 et s.). “사회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상()을 모색한 사회학자는 주변(périphérique)”에 머물렀다고 한다(cf. SC:498 et s.).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서 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논의에 의해 사회의 자율성이 승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적인 특권화는 수정을 겪을 뿐이었다. “분극화를 통한 일반성의 정치문화의 구원이 항상 이뤄졌다(MPF:356-359).

 

4) 20세기의 전개

분극화 민주주의의 틀은 20기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계승됐다. 의회를 통한 정치적 집권화가 유지된 한편, 엘리트 관료주도의 행정권력이 강화됐다. 후자는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서”, 사회의 다원성을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고 민주적 일반성을 보완하기 위한 존재라고 진단된다(cf. PI:238, 257, 262).[각주:9]

이런 정치모델은 전후 성장 속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지속됐다(cf. DI:42;PI:13 et s.). 다만 1970년대 이래, 3부문 등의 어소시에이션과 다양한 커뮤니티 등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중간단체의 흥성·융성은 전지구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의 프랑스 방식을 다시 묻도록 강제하고 있다(MPF:425-428). 그러나 로장발롱은 자코뱅주의가 과거의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기의 자코뱅주의적인 조직(organisation)’은 훨씬 수정되기는 했으나, 일반성의 정치문화[주권이나 일반이익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의] 사고양식으로서 계속 머물러 있다(MPF:432)

 

5. 결론

로장발롱은 분극화를 핵심 개념으로 함으로써, 민주주의 역사에 내재하는 아포리아의 해결을 시도했다. “사회적인 것쪽에서의 저항도 있으면서도,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소여를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통합을 형식적으로가능케 했다. “정치적인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SC:112).

우선 그의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의 특징은, 2세기 동안의 사상사에서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상극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풀이한 것에 있다. 양자의 대항·긴장관계가 내재함으로써, “미완이기를 계속하는 이념이 프랑스적 민주주의로서 설정[정립]됐다. 르포르나 고셰가 자코뱅주의적 전통을 전체주의”, “종교()”, “권력등에 이어진 것이라며 비판적으로 논한 것에 비해, “분극화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시각에 입각해 그 전통을 재평가한 것에 로장발롱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일반성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을 우위로 하는 해석 도식을 제시했으나,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과제를 국민(nation)”의 재통합/재창조라는 수준에 있어서 파악하는 그 자신의 현대 정치에 대한 관여(commitment)가 반영되어 있다(PI:416-432 ; DI:Conclusion).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시스템”, “문구일 뿐만 아니라, “일반의지의 체현자인 국민”=“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레짐이다(cf.DI:435 et s ; PI:469).

 

민주주의는 일반의지의 레짐이며, 일반의지는 오랜 시간 속에서 구축된다.[각주:10]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근본에는 사회가 일반의지에 근거한 단일한 것으로서 인식/표상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DI:390 et s.).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래, “일반의지”, “일반성의 형성은 수정을 동반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에 기초해 왔지만, “사회적인 것쪽은 그런 지속성·단일성은 없기 때문에 거부됐다. 따라서 일반성의 정치문화라는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전통의 재평가야말로 오늘날의 프랑스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역시 중요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로장발롱은, 오늘날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 배후에는 일반성()정의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MPF:434).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대항민주주의』 이래, 그는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 현대 민주주의론을 주축으로 유럽국가들과의 비교 정치사 속에서 현재 탐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연구 동향과 아울러 향후의 검토 과제로 하고 싶다.

査読審査201523日掲載決定

一橋大学大学院社会学研究科修士課程

  1. 2003년까지의 로장발롱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서 다음에 언급되는 문헌이 있다. 只野雅人, 「代表の概念に関する覚書(1)~(4・完)」, 『一橋法学』(1권 1호, 107-124頁, 2002년 3월 ; 1권 3호, 669-686頁, 2002년 11월 ; 2권 3호, 891-924頁, 2003년 11월 ; 3권 1호, 83-109쪽, 2004년 3월). [본문으로]
  2. 田中拓道,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19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史研究の現状と課題」, 『社会思想史研究』, 31호, 108-117頁(2007년 9월) 참조. [본문으로]
  3. Mathiez, Albert, La Révolution française(Tome 1-3), Paris, Denoël, 1985(réédition) (ねずまさし, 市原豊太 訳, 『フランス大革命』 총3권, 岩波書店, 1958-1960年) ; Albert, Soboul,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coll. « Tel », 1984. [본문으로]
  4. Furet, François, Penser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大津真作 訳, 『フランス革命を考える』, 岩波書店, 1989年) ;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au milieu du 19e siècle : Edgar Quinet et la question du Jacobinisme, 1865-1870,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Lefort, Claude,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81 ; Lefort, Essais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 Gauchet, Marcel,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Paris, Gallimard, 1985 ; Gauchet,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다음의 문헌도 참조.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Artous, Antoine, Démocratie, citoyenneté, emancipation : Marx, Lefort, Balibar, Rancière, Rosanvallon, Negri, Paris, Syllepse, 2010. [본문으로]
  6. Rosanvallon, P., Pour une histoire conceptuelle du politique, Paris, Seuil, 2003, p.14(富永茂樹 訳, 「政治的なものの近代・現代史―コレージュ・ド・フランス開講講義(上)」, 『みすず』, 499号, 2002年, 4頁). [본문으로]
  7. Ibid., p.43(邦訳(下), 500号, 2002年, 19頁). [본문으로]
  8. Cf. Rosanvallon, P., L’Etat en Franc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1990, Ch.2-3ème partie et Ch.3-2ème partie. [본문으로]
  9. Cf. Rosanvallon, P., La légitimité démocratique : Impartialité, réflexivité, proximité,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10, pp.12-14, 67-78, 85. [본문으로]
  10. Rosanvallon, P., « Penser le populisme », in Le Monde du 21 juillet 2011. 󰡔르몽드󰡕에는 요약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문은 다음의 URL을 참조(2014年 9月 27日閲覧)。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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