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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6. 생명권력 : 프랑스의 중상주의 모델

1. 생명권력의 등장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중농주의의 새로움 

국가이성의 개념이 가장 활용된 것은 17세기부터 18세기의 프랑스에서였다. 그 상징은 재상 리슐리외와 루이 14세이다. 루이 13세를 모시던 리슐리외는 1624년에 권력을 잡고 프랑스 절대왕정의 확립에 기여했다. 리슐리외는 국가이성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사적인 이익보다 우선시하기 위해, 군주도 신하도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루이 14세는 국가이성을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첫 번째 법이지만, 통치하지 않는 자에게는 가장 어두컴컴하고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고, “아무리 자의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주권자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 14세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쳤다. 혁명 전의 이 태양왕 시대의 중요한 난제 중 하나가 식량부족으로 인한 평민 반란의 가능성이었다. “식량난은 도시 환경에서 출현하고, 그리고 그 직후에 반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된 것이 식량난의 문제였다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명한 말로 상징된다.

이에 대해 정부가 의거한 것은 법과 규율에 의한 중상주의적 시스템이었다. 곡물의 가격을 제한하고, [곡물을] 비축하는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농민은 수확한 곡물을 비축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정된 가격에 곧바로 매각하도록 의무가 부과되었다. 더욱이 최저량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의무로 여겨지고, 특정한 작물의 재배는 금지됐다. “처음의 수확에서부터 이미 대대적인 감시 시스템이 구축되고, 재고의 통제가 가능해지며, 국가 간 유통이나 지방 유통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파탄 났다. 그 이유는 첫째로 농민의 파산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풍년이 든 해에 농민들은 염가로 곡물을 매각하도록 강제되어 생산 비용을 회수할 수 없었다. 농민이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이듬해에 뿌릴 씨는 필연적으로 적어진다. 그러면 기후 악화 등의 작은 원인으로도 식량난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에 대처하기 위해 1764년까지, 중농주의의 원칙 아래서 곡물 통상과 곡물 유통의 자유의 원칙이 채용된다. 그런데 1764년에는 귀엔느(Guyenne)에서 흉작이 일어나고, 완전한 자유를 유지했기 때문에 곡물 가격이 천문학적인 속도로 상승”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그래도 중농주의자들은 이 자유화를 옹호했다. 중농주의자들은 우선 [중상주의의] 법과 규율의 시스템에서는 으로 간주된 곡물의 부족과 가격의 인상을 도덕적인 사태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현상으로서 파악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식량난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곡물 가격의 변동이라는 자연의 현상을 방해하지 않고 조금씩 보정하고 제동을 걸고 최종적으로는 제한하고 최종단계에서 취소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는 어떻게 하는가? 우선 곡물의 가격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인가하고 우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완전히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 수단에 의해 가격의 상승을 꾀하는 것도 허용된다. 예를 들어 수출을 장려금으로 조성하거나, 수입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풍작인 해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진다. 그러면 경작지가 확대된다. 농민은 전년도의 수확으로부터 충분한 이익을 확보했기 때문에 경작지를 확대하고 경작을 늘릴 수 있다. 그렇다면 기상 조건이 조금쯤 나쁘더라도 식량난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전보다 다량의 곡물이 시장에 공급되기 때문에, 이듬해는 가격이 떨어진다.

혹은 이듬해에 흉작이 예상된다면, 곧바로 가격이 상승한다. 하지만 이 가격상승은 방치해둘 수 있다. 그것은 국내의 통상도 외국의 무역도 자유롭기 때문에 풍작인 지역이나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증대하며, 가격을 인하할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가격을 내려서라도 판매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중농주의의 자유화 정책의 특징은 단순히 시장에서의 곡물의 양과 가격의 관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에 의한 경작의 때와 매각의 때의 계산, 수입 상인의 계산, 소비자의 계산까지 고려해서 사람들을 순수하게 이익을 획득하려고 하는 주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다루는 데 있다. 이 정책은 생산의 계기를 통합하고 세계시장을 통합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민생산자소비자의 경제적인 행동을 통합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체의 등장 : 주민·인구

푸코는 중농주의가 채용한 이 수단의 전체를 안전장치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안전이라고 불리는 것은 외부로부터 규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전체에 있어서 작동하는 내적인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주권은 영토의 경계 내에서 행사되고 규율은 개개인의 신체에 행사됐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전은 주민 전체에 행사되는 것이다.

이 장치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주민인구라는 총체이며, 이것이 전체로서 정치적 주체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주민인구는 그 이전의 수세기 동안의 법사상정치사상에 있어서는 완전히 이질적인 새로운 집단적 주체이며, 이 새로운 주체가 여기에 등장한 것이다. 이 주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술은 규율을 가하고 조작해야 할 주체를 향한 기술과는 명확히 다른 수준에 있다.

중농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생명권력이다. 이것은 개인들의 행동의 극히 세부까지 통치를 행했던규율권력과는 꽤 성질이 다른 것이다. 생명권력은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주민인구라는 새로운 정치적 인물에 작동을 거는 것이다. 푸코는 이 정치적인 인물이 18세기에 놀라운 등장을 이루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인구라는 요소를 처음으로 주목힌 것은 아니다. 중상주의 시대의 영국에서 인구를 주목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잉글랜드의 존 그라운트의 대위 존 그라운트에 의한 런던시의 정치, 종교, 상업, 발달, 공기, 질병 등에 주로 관련하여 이루어진 자연적 및 정치적 관찰들(1661)을 단서로 할 것이다. 이 관찰은 페스트에 의한 런던의 인구 감소와 재증가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1603년과 1625년 페스트의 해에는, 거의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사망했으나, “페스트에 의해 생긴 런던시의 인구의 균열은 보통 2년 동안 채워진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런 그라운트의 관찰에 이어서 윌리엄 페티는 1681년에 더블린의 사망표에 관한 관찰들을 발표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질병에 의한 사망률에 주목했다. 같은 해의 정치산술은 런던과 파리 등의 도시와 인구를 비교하면서, 국가에 있어서 인구가 지닌 중요성을 강조했다. 4장에서는 잉글랜드 국왕의 인민 및 영토들은 그 부 및 힘에 관해서, 프랑스의 그것들과 자연적으로 거의 같은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27만 명이나 되는 프랑스의 성직자가 얼마나 국부를 줄이고 선원과 해병이 얼마나 잉글랜드의 국부를 늘리는가를 대비하면서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라운트와 페티의 사망표는 역병에 의한 도시인구의 증감을 고찰하는 것임에 틀림없었지만, 정치산술은 중상주의적 관점에서, “국가권력의 근육과 신경을 감독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서, 그 후의 본보기가 됐다. 17세기에는 인구를 국가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힘의 원천으로 간주하게 됐다. 중상주의에서는 인구를 이른바 국력과 국부의 근간으로 간주하고, 이 인구가 적절한 방식, 장소, 목적으로 작동하는[일하는] 것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상주의에서는 인구주민을 주권자의 신하로 간주한 것이며, 이것에 규제를 가함으로써, 국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법권리의 주체, 법에 복종하는 신민, 통제적 틀을 부여받을 수 있는 신민으로서 거기에 있던 것이다.

이에 대해 18세기의 중농주의로부터는, 인구에 대한 시선이 중상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인구는 그것만으로는 국력이 되지 않는다. “주민이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생산하고, 식료품에 국외의 매수자가 지불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가격을 지불하는 경우에 한해서 국부를 만들어낸다.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를 하고, 수출가격보다 더 싸게 식량을 구입한 것으로는 국력이 감퇴한다. 그러나 농업수입을 증대시키면 그것은 풍요가 되며, 자연스럽게 인구를 증대시킨다.

우선 토지의 산물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인구 자체를 늘리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중농주의는 생각한다. “케네나 그 제자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인간은 대지와 부를 잇는 본질적인 매개이다. 인구가 증대하면, “산업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고, 그것이 원가를 낮추고, 생산과 상업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하로서 주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노동하게 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중농주의에서 이 인구는 자연에 맡겨야 할 것으로서 등장한다. 인구가 자연성으로서, “법에 의지한 주권자의 의지에 맡기는 것에 대해, 이른바 <두께>로서, 본성적인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곳에, 중상주의의 인구 개념과 큰 차이가 있다고 푸코는 생각한다.

 

인구의 자연성

푸코에 따르면 인구의 이런 자연성은 세 개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첫째로, 인구는 주권자가 조작할 수 있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동하는 것이며, 어떤 불투명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풍토에 의해서, 통상의 크기나 부의 크기에 의해서, 사람들의 습관에 의해서, 도덕적인 가치나 종교적 가치에 의해서, 식량의 상태에 의해서 변동한다. 이런 변수들은 서로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법에 의해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권자는 법을 정해서 신민을 지배할 수 있으며, 신민은 법을 거부함으로써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에 의해 인구를 원하는 대로 지배할 수는 없으며, 주민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인구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주권자에 대해 인구는 어떤 불투명한 <두께>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는 이런 자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정책에 의해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정책에서는, 국내를 순환하는 통화의 흐름을 제어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고 수입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통화가 원활하게 또한 구석구석까지 흐르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증가하면 노동의 가능성이 커지며, 부가 커지며, 인구도 증대한다. 수입이 증가하면 국내의 노동을 빼앗기지만, 식량이 증가함으로써 인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구에는 이런 자연성이 있기 때문에, 중상주의에서 생각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 필요해진다. 신민을 복종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에 작동을 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인구를 증가시키는 기술이 요구된 것이다.

둘째로, 인구의 자연성은, 사람들의 욕망의 자연성에 의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익이 있는 곳에 모인다. “인간은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곳,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 자연의 노동근면에 의해 손에 넣을 수 있는 부를 확실하게 제 것으로서 소유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모이며, 증식하는 것이며, 이것을 막아서는 안 되며, 막을 수도 없다.

이 중농주의의 욕망 개념은 중요하다.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부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놀이에 의해 집단적 이익이 생긴다는 것이 인구의 자연성의 커다란 특징이다. 그래서 욕망을 잘 불러일으키고, 잘 이용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에 의해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며, 규율사회처럼 사람들의 욕망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이 자유주의로 통하는 욕망의 사상은, 17세기까지의 통치나 주권의 행사에 관한 과거의 윤리적법적인 구상과는 정반대의 극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권자는 개인의 욕망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런데 18세기의 이 욕망의 사상은 이것은 완전히 역전시켜 버린다. 이제 문제는 이 욕망에 어떻게 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이다. 푸코는 이 욕망의 긍정의 이론, “자기애욕망을 자극하고 우대하고”, 그것이 생기는 효과를 활용한다는 사고방식을 공리주의 철학의 원형이라고 부르고 높이 평가한다.

세 번째 차원으로, 인구의 자연성은 기묘할 정도의 규칙성을 나타낸다는 것이 지적된다. 이미 런던의 사망표를 관찰한 그라운트는 런던의 인구에서 보이는 균일성을 지적했다. “남아의 출생은 항상 여아의 그것을 웃돈다. 더욱이 지금 거론한 자료에 따르면, 14 13의 비율이다.” 양성의 비율이 수적으로 거의 균형을 이룬 것은, 이 관찰에서 처음 확인됐다고 한다. “인구의 자연성은 현상들의 항상성에서 나타났다.”

이런 인구의 자연성이 확인된 것은 통치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된다. “권력의 기술들의 영역에 하나의 자연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류라는 이념적인 ()” 개념 아래서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나란히 인간이라는 ()” 개념으로 생각되게 됐다. “인간이 모든 생물의 종의 규정이라는 영역 속에 하나의 종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통치가 생물학의 영역과 깊은 관계를 갖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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