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그리스 이후의 사상사를 되돌아보면, 현재 진행 중인 혁명세계공화국의 출현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제창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 칸트적 규제이념(뒤따라가지 않을 이상이라고 바꿔 말해도 된다)이 아니라, 위기에서 출발해 발명되는 특수한 정체이념으로서의 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이념은, 민주정도 귀족정도 군주정도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세 정체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방식을 둘러싼 분류였다. 민중(데모스), 다중(멀티튜드)이 권력을 쥐는가, 귀족, 특권계급, 엘리트가 과두제 지배를 행하는가, 아니면 왕, 절대군주에 통치를 맡기는가. 자세한 것은 생략하지만, 폴리비오스 이후의 세 가지 정체론은 주권을 둘러싼 유형론인 동시에 순환론이기도 했다. 어떤 통치유형에도 고유한 결함이 있으며, 그 결함 때문에 장기간 지속되면 반드시 부패하여 스러지기에 세 정체는 순환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은 그 본원적 불안정성 내지 중우정치에 의해, 군주를 구세주로서 도래시킨다(최초의 군주정은 민주적 독재였다). 데모스나 멀티튜드[다중]의 비호자로 처신하는 군주의 정치는 특권적 소수자의 반발과 저항에 의해 실질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귀족정으로 이행한다. 그리고 정치에 귀족층의 등장은 그들과 피지배층 사이에 계급투쟁을 초래하며, 이 투쟁은 국가의 하부를 떠받치는 인민의 승리로 끝난다. 이리하여 사이클이 닫히며, 재개될 것이다. 세 정체론은 곧 정체에 고유한 부패를 둘러싼 이론, 이런 의미에서 정체위기론이며, 부패에 의한 위기의 영구순환을 결과로서 주장하는 것이었다. ‘부패가 반드시 도덕적 부패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일개 생명체로서의 정체가 품고 있는 구조적 한계나 결함을 정체론은 부패의 이름으로 가리켰다. 공화주의는 이 부패에 맞서는 지속 가능한 정체를 구상하는 곳에서 이론적으로 연원한다. 권력을 둘러싼 누구라는 물음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쥐더라도 국가를 무너뜨리지 않고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는 물음이 공화주의를 형성한다. 물론 그 대답에는 다양한 변이variation, 위상, 역사적 변화가 있지만, 공화주의를 공화주의답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체의 전권을 넘기는 주권을 주권자로서 출현시키는 대신에 그 누구에게도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는다는, 그리고 정치의 영역 전체에 외부로부터 선험적인 목적 그것으로 향함으로써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발상은 혼합정체론에서 이윽고 삼권분립론으로 계승되는 권력분산의 이론으로 성장하며, 후자의 발상은 정치에 이나 인간의 완성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지속적인 목적을 내장시켰다built-in. 목적론적 정치란, 정체지속 문제 혹은 그 욕망의 철학적 표현이다. 공화주의자는 권력의 누구가 아니라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국가주권론자이며, 세속에서 살아가는 형이상학자이다. 정체의 부패를 끊임없이 억누르고, 정체를 일개의 생명체로서 지속시키는 사상이 공화주의의 알파이다. 부패에 대한 저항, 지속에 대한 갈망이 공화주의를 키운 것이다.

오늘날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durabilité은 유행 이상의 공공적 문제로서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채무가 커져도 상환방법이 확립되어 있으면 괜찮다는 케인스주의적 사상의 슬로건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긴축 재정에 의해서도 시장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하는 신자유주의적 기대의 별명이며, “지속 가능한 복지사회란 어디까지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하는가(그러나 누가?)를 둘러싼 싸움판의 이름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일반이란 생태계와 에너지 문제이며, 지속 가능성이 공공의 것 res publica”의 핵심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세계 공화국 res publica”이 세계의 지속 문제 속에 실재하고 있다. 공화주의의 역사와 앞에서 본 오늘날의 혁명의 실태가 가르쳐주는 것은, 지속 가능성이란 어떤 정치를 배제하는, 숨은 사회계약이며, 그런 것으로서 다른 정치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배제되는 것은 물론 부패이며, 이로부터 생겨나는 정체의 죽음과 재생, 즉 일반적 의미에서의 혁명이며, 이 배제와 동시에, 구성원 사이의 계급투쟁은 공동체 내에서 사회문제라는 이름을 다시 부여받는다. 이 배제와 전환은 어디까지나 노력해야 할 목표일 뿐이다. 만약 그것이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면, 인간이 완성되는 완전한 정체가 있다는 얘기가 되며, 지속을 문제로서 제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화국은 순환론으로서의 세 정체론이 가리키는, 약자가 패배하고 손해를 보는 순수한 힘관계의 영역을, 자신의 존속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서, 적극적으로 내부에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절대적 강자(그 자에게 이기면 정체가 안정되는 인간 또는 세력)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행방에 우연성이 따라다니는 권력투쟁의 영역을 공화국은 스스로를 부패시키는 요인이라며 계속 배제하며, 그것을 자신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부패란 공화주의가 권력을 문제 삼는 정치에 부여하는 호칭에 다름 아니며, 공화주의적인 정치는 국내적으로는 이 부패와의 싸움으로서 수행될 것이다. 공공성 개념을 정치의 요체에 놓으려고 하는 정치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자는 계급투쟁그 자체를 적으로 삼는 것이다. 분쟁 없는 사회가 항상 공공의 것 = 공화국의 이상이면서, 그것이 달성되지 않는 것도 또한, 현실적인 일종의 이상을 구성한다. 공화국에 있어서 계급투쟁은 적이자 친구, 친구이자 적이다.

이때 진정한 공화주의자, 근대에서는 가령 마키아벨리는, 어떤 정책이 공화국의 이런 내재적 목표에 적합한가에 대해 충분히 자각적이었다. 공화국 내부로부터 분쟁을 없애고 공화국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영토 확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침략의 을 계속 주는 것으로써만 내부의 분배 문제가 계급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공화국의 지속은 공화국의 팽창, 성장에 달려 있다. ‘이나 인간의 완성이라는 정치의 궁극 목표, 정치의 형이상학적 사명은, 세속적으로는 공화국의 확대라는 전략 목표로 변환될 것이다. 대외적 긴장이야말로, 내부에서 부패를 키우는 정치적 우연성을 없애준다. 외부에서 유래하는 우연성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며, 공화국의 본질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마키아벨리가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탐지해낸 교훈이었다.

그렇게 하면, 오늘날의 혁명이 공화주의에 들이대는 난점도 동시에 불거진다. 오늘날의 지속 가능성은, 세계공화국에는 더 이상 침략 가능한 외부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 곳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등장 이후 1970년대까지는, 계속 늘어나는 공적 채무가 그 외부였을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이 외부를,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채무의 증대로 대체하려고 했다. 채무로부터 부를 끌어내는 전략을, 전후 세계는 공화주의의 요체로 삼아온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물리적인 영토가 국가의 진정한 영토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근대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프리드리히 2세 이후의 전략 전환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외부의 영토로부터 부를 끌어내는 전략의 유효성이 상실되고, 지속 가능성 문제가 순수하게, 즉 그 어떤 해결책도 동반하지 않고 부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공공성 문제인 것이다. 혹은 우리 눈앞에서 출현하고 있는 세계공화국이란 죽음의 문턱에 있는 공화주의의 모습이다. 구성원에 대한 을 그것으로부터 취해야 할 외부를 상실한 공화국은, 어떻게 지속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 ‘기대에 의해 채무의 영토적 외부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현실의 부로 전환하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상적 자본주의 노선조차도 효력을 잃을 때, 공화국은 구성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문제가 지속인 한에서, 실행 가능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대답은 분명하다. 공화국의 축소이다. ‘탈성장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것은 공화국에 있어서 부패요인의 성장 이외일 수 있을까? 정치를 다시 한 번, 정체론이 발견한 힘관계와 우연성의 영역에 맡기는 게 되지 않을까? 외부에 존재할 터인 영토채무의 최종 부담자나 상정 원본의 현실적 홀더holder나 보험금의 지급자 등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공화주의에는 계급투쟁이라는 부패원인을 제거하는 수단이 없을 것이다. 부담을 누군가에게 요구해야만 하며, 누군가라는 문제의 삭제에 공화국의 존립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성립시키는 사회계약에는 그것을 삭제하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대외 전쟁 때에는, 공화국은 모든 것을 갹출하라고 시민에게 요구할 수 있지만, 내전에 관한 규칙을 이 사회계약은 정할 수 없다. 내전을 정지하라, 이것이 계약의 본뜻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읽기


atプラス 15, 2013 2

 

 

 

 *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은 도서출판b에서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2년인가 3년 전에 관련 세미나와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번역했고, 회람을 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여기에 공개합니다. 아래 글에서 등장하는 쪽수는 모두 일본어판 쪽수이며, 국역본과 대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역본을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017년 3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하겠습니다.]  

 

 


<목차>


1. <대담> :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 가라타니 고진 & 고쿠분 고이치로

 


2. 중국에서의 철학의 기원 : 억압된 호적(胡適)의 노자기원설  미번역

| 나카지마 다카히로(中島隆博)

 


3. 이소노미아와 다원주의 : 엠페도클레스의 회귀 

| 사이토 다마키(斎藤環)

 


4. 이소노미아의 이름, 민주주의의 이름

| 오타케 고지(大竹弘二)

 


5.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으로 : 이소노미아의 관점에서

| 야기 유우지(八木雄二)

 


6. 고대그리스와 마주 보기 : 최신의 역사·철학사 연구의 성과로부터

| 노부토미 노부루(納富信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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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2/3)

      デモクラシーからイソノミアへ―自由―民主主義を乗り越える哲学

가라타니 고진 + 고쿠분 고이치로

(2012 12 6, 太田出版会議案にて)

 

이소노이마와 이동성

고쿠분 : 또 하나, 제가 철학의 기원을 읽으면서 줄곧 생각했던 것은 이동의 문제입니다. 가라타니 씨는 이소노미아의 근간에는 이동의 자유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거기서 정주혁명이라는 사고방식이 언급되고 있습니다.[주14] 지금까지는 농업 등 식량 생산 기술의 발전에 의해 정주가 가능해졌다고 여겨졌지만, 식량 생산을 할 수 없어도 정주는 가능합니다. 오히려 인류는 약 1만년 전, 기후 변동이라는 외적 요인 때문에 정주하도록 강제되고, 어쩔 수 없이 몇 백 만년이나 익숙해졌던 유동 생활을 버리고 정주생활을 시작하고, 그러던 중에 식량 생산 기술을 획득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저도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라는 책에서 마찬가지로 이 정주혁명을 언급했습니다.[주15] 저도 이 생각을 취했던 것입니다. 정주혁명의 사고방식은 우리들의 견해를 일신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14] [고쿠분] 西田正規, 人類史のなかの定住革命, 講談社学芸文庫를 참조

[주15]  [고쿠분] 国分功一郎, 退屈倫理学, 朝日出版社2장을 참조. 신판도 참조

   가라타니 씨는 이 정주혁명의 관점에서 이소노미아의 이념을 고찰하고 계십니다. 정주 이전에는 사물[물건]을 많이 소유할 수 없었기에, 사유재산이라는 생각이 거의 없고 빈부격차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자유롭기에 평등이라는 이소노미아의 원리는 정주혁명 이전의 수렵채집민이 지녔던 순수증여, 공동기탁()의 원리의 반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르셀 모스[주16]는 호혜성에 의해 증여를 특징지었지만, 사실 그것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있었던 유동적인 수렵채집민의 무리band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증여의 호혜성은 유동민이 정주한 후에야 비로소 처음 형성됐습니다.

[주16] [편집부] 1872-1950. 프랑스의 사회학자문화인류학자. 증여론에서는 미개사회 속에 있는 '증여'가 자본제 사회 속에 있는 '교환'과는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인류의 경제적 사태事象의 기초에 뒀다.

   저는 정주혁명에 대한 가라타니 씨의 해석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자유의 근간에 있는 것은 이동의 자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말했듯이, 18세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형벌이 고안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감옥이 형벌의 중심이 됩니다.[주17]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데에도 이동의 자유를 요구한 민중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주17] [고쿠분] 미셸 푸코는 18세기에 고안됐으면서도 채택되지 않았던 무수한 형벌의 방법을 감시와 처벌22유순해진 형벌에서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철학이 과거에 크게 논했던 자연상태와의 관계입니다. 자연상태 개념을 골똘히 생각한 것은 루소입니다만, 루소가 생각하는 자연상태란 인간이 궁극적인 자유 속에 있는 상태입니다(인간불평등기원론). 거기서는 확실히 사람의 물건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복종시킬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거지인 움막을 누군가가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빼앗긴 당사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이동의 자유가 있으면 지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궁극적인 자유의 상태입니다만, 그것을 보증하는 것은 실은 이동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루소는 자연상태에 관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아마 존재한 적이 없으며, 다분히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루소의 자연상태론은 이념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타라니 씨의 논의를 읽다가 깨달은 것은,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와 아주 비슷한 상태가 현실에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령 새로운 토지로 갈 수 있는 징표가 있고, 이동할 수 있는 프런티어가 충분히 남아 있는 경우에는 그런 상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정말로 놀랐습니다.

 

가라타니 : 알랭 테스타르(Alain Testart)라는 인류학자가 루소를 흉내내 신불평등기원론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그도 불평등의 원인을 정주에 의한 변화에서 찾습니다. 저는 201210월에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에서 정주혁명을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요, 제가 강연하기 2년 전에 마샬 살린스[주18]가 왔다고 해요. 그 기록이 대학에서 소책자로 출판됐습니다. 제 강연과 질의응답도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 탓도 있어서, 저는 살린스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주18] 1930~.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저서로 석기시대의 경제학역사의 섬들 

   살린스는 수렵채집사회에 관해, 그것이 풍요로운 사회임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은 획기적인 인식입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수렵채집사회가 정주적이냐 유동적이냐에 주의를 쏟지 않았습니다. 살린스는 풀링(pooling, 공동기탁)과 호혜성을 구별합니다. 그런데 전자가 유동적인 사회에 의해, 후자가 정주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맑스주의자이며, ‘생산양식에 집착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살린스는 가족제 생산양식domestic mode of production’이라는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제적 생산은 과소생산(underproduction)이 된다고 하는데요, 원래 호혜교환이 과소생산을 초래한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한편, 마르셀 모스는 호혜성을 태고부터 있는 원리라고 생각하므로, 역시 그것이 정주혁명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역사적인 시각이 됩니다.

   앞에서 고쿠분 씨가 지적하셨듯이, 호혜성(교환양식 A)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주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근친상간의 금지도 그 시점에서 시작됐습니다. 그것은 증여를 강제하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저는 정주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정주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니시다 마사키(西田正規) 씨입니다만, 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정주혁명이란, 정주 후의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호혜 시스템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동적인 사회와 정주한 사회의 구별은 중시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유동적인 수렵채집민 사회와 씨족적인 수렵채집민 사회의 차이는 경시됐습니다.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원시공산제도 그 차이를 무시하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유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씨족사회의 이미지로 생각되기 쉽습니다. , 평등하지만 자유가 없는 사회로서 말입니다. 그리스로 말하면, 스파르타적인 사회가 됩니다. 플라톤은 스파르타를 동경했던 것이 아닐까요? 아테네에서는 자유가 있으나 평등이 없습니다. 평등을 실현하려고 하면 자유가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롭기에 평등이라는 사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오니아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유는 근본적으로 이동성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고쿠분 : 그러네요. 자유의 조건으로서의 이동성이라는 것에서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칸트의 영구평화를 위하여의 논의입니다. 영구평화를 위하여6개의 예비조항과 3개의 확정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주19]  이 확정조항의 세 번째가 방문권의 얘기입니다. 3조항 : 세계시민법은 보편적인 우호를 가져오는 조건들에 의해 제한되지 않으면 안 된다[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주20] 이 조항은 굉장히 급진적입니다. ‘세계시민법같은 것이 실현됐다고 해도, 그 내용은 각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으며,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는다는 규칙만으로 좋다고 말하는 거예요. 요컨대 자유롭게 사람들이 서로 이동한다면, 세계는 저절로 진보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동은 저 나라에서는 이러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다니 이상하다라는 감정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인 우호라는 대목에는 라틴어의 ‘hospitalitas’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고, 환대라는 것이죠.[주21] 영구평화를 위하여의 결론은 환대입니다. 칸트가 평화의 문제를 이렇게 이동의 문제로부터 생각했던 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라타니 씨의 철학의 기원의 논의로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주19] [고쿠분] 예비조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항. “장래의 전쟁의 씨앗을 몰래 보유하여 체결된 평화조약은 결코 평화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조항. “독립해 있는 모든 국가(소국이든 대국이든, 이 경우 문제가 아니다)도 계승, 교환, 매수, 또는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가 이것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 조항. “상비군은 때와 더불어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넷째 조항. “국가의 대외분쟁에 관해서는, 그 어떤 국채도 발행되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조항.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나 통치에, 폭력을 통해 간섭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조항. “어떤 국가도 타국과의 전쟁에 있어서 장래의 평화시에서의 상호간의 신뢰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확정조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확정조항. “각 국가에서의 시민적 체제는, 공화제이어야만 한다.” 둘째 확정조항.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합제도에 기초를 둬야 한다.” 셋째 확정조항. “세계시민법은 보편적인 우호를 가져오는 조건들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주20] 임마누엘 칸트, 영구 평화론 : 하나의 철학적 기획 (개정판), 이한구 옮김, 서광사, 2008.

[주21] [고쿠분] 또한 영구평화를 위하여의 예비조항과 확정조항에는 각각 한 개씩의 라틴어 단어를 붙인 조항이 있다. 확정조항에서의 그것은 여기서 소개한 환대(Hospitalitas)’를 규정하는 셋째 조항이며, 예비조항에서의 그것은 상비군(miles perpetuus)’을 규정한 셋째 조항이다. 라틴어가 사용됐다는 것은, 그 단어를 절대로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상비군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군대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사력 자체의 폐기는 무리일지도 모르나, 상비군은 폐기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방문권이 인정된다면, ‘영구평화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현실적인 제안이 아닐까?

 

가라타니 : 환대의 문제는 데리다가 했기 때문에, 저는 그에 대해 쓰는 것을 그만뒀어요(웃음). 다만, 그것에 대해 조금 말하면, 사람은 유동하고 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환대가 성립하거든요. 정주하지 않으면, 사유(私有)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베이징의 칭화대학교 강의에서 얘기했더니, “알고 있습니다. 저는 빈번하게 이사를 하기 때문에, 소지품은 거의 다른 사람들에게 줍니다라고 말한 학생이 있더라구요(웃음).

   반면, 정주하는 것은 축적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축적한 것을 강제적으로 증여하라고 하지 않으면, 격차가 생기고, 권력자가 생겨버리게 됩니다. 유동하고 있을 때는, 원래 그런 것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동한다라는 조건 자체가 평등을 산출하는 것이죠. , 유동민에게서는 환대해야 한다는 규칙만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축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손님이든 누구든, 서로의 것을 나누는 일이 생겨납니다. 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주 혁명 이후에 나타나는 문제로, 그 이전에는 그것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에도 유목민에게는 그런 규칙[, ]이 있습니다만, 같은 것이 어민에게도 있습니다. 어민도 수렵채집민을 계승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민의 사회에서는 바다에서 조난된 사람들이 있다면, 돕기 위해 전력을 다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대로 보살펴주고, 안전한 곳에 도달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부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이는 어부의 철칙 같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물론 이들이 칸트를 읽었기 때문이 아닙니다(웃음). 반대로 말하면, 칸트적인 환대의 원리는 그가 제멋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시대의 원리가 고차원에서 회귀한 것이라고 간주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쿠분 : 이동이 있으면 지배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물건을 축적할 수 없으니까 사유(私有)가 생겨나지 않고, 타인을 지배하려고 생각해도 쉽게 달아나버립니다.

   이에 관해서는 맑스도 자본에서 재미있는 것을 썼습니다. 이것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에서도 인용한 것인데요, 맑스는 경제학자인 E. G. 웨이크필드라는 사람이 소개한 영국인인 필 씨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필 씨는 5만 파운드의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잉글랜드에서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스완강으로 가지고 가, 거기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동자를 거느리고 이주하자마자, 다들 곧바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것에 대해 맑스는 필 군은 그 밖에도 노동자 계급의 남녀와 아이들도 3천명을 동반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필 씨에게는 그를 위한 잠자리를 마련하거나 물을 긷거나 할 한 명의 하인도 없었다.’ 무엇이든 준비했으면서도 잉글랜드의 생산관계를 스완강으로 수출하는 것만은 잊었던 불행한 필 군!”[주22]

   가엾은 필 군’(웃음). 그건 그렇고, 이동 가능한 토지가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잉글랜드의 생산관계를 수출할 수 없습니다. 이로부터 봐도, 이동의 자유가 막혔을 때 지배가 생긴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주22] 칼 맑스, 자본3권 [カール・マルクス, 󰡔資本論󰡕 三巻向坂逸郎 訳岩波文庫一九六九年420]

 

가라타니 : 저는 미국의 타운십을 가능케 한 조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맑스가 자본의 어딘가에 썼다고 생각합니다만, 19세기 미국에서는 산업노동자가 없었기에 산업자본이 발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민은 대거 왔지만, 타인에게 사역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프론티어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산업자본주의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토지가 많았기에 대토지소유는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금지됐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토지에서 노동하기보다는 서부로 가서 자기의 토지에서 노동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18세기 미국 동부에서 타운십이 성립됩니다. 이것은 이소노미아적입니다.

   그러나 점차 토지가 부족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이동하려고 해도, 영국이 미국의 선주민과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서부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했습니다. 미국의 독립혁명은 칭송을 받고 있으나, 내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시기에는, 이미 타운십(이소노미아)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원래 선주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것으로는 타운십(이소노미아)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저는 신조(新潮)에서의 연재 원고에서는 도널드 A. 그린데(Jr.,Donald A. Grinde)와 브루스 E. 요한센(Bruce E. Johansen)미국건국과 이로코이 민주제[주23]라는 책을 인용해 썼습니다만, 미국의 타운십에 영향을 줬던 것은 북미의 선주민이 형성한 이로코이 연방입니다.[주24] 미국의 연방제는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지지만, 원래 몽테스키외 자신이 이로코이 연방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연방제는 직접·간접으로 북미의 선주민으로부터 배운 것이구요, 유럽의 이론으로부터 배웠다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주23] [옮긴이] Jr.,Donald A. Grinde & Bruce E. Johansen, Exemplar of Liberty: Native America and the Evolution of Democracy, American Indian Studies Center, UCLA, 1991. [ドナルド・A. グリンデ Jr. & ブルース・E. ジョハンセン, アメリカ建国とイロコイ民主制, みすず書房, 2006.]

[주24] [편집부] 뉴욕주 북부의 온타리오 호수 남쪽 연안과 캐나다에 걸쳐서 보유지를 영유하는, 6개의 미국 선주민족에 의해 구성된 부족국가집단. 17세기-18세기의 전반기에 성립됐다

    [옮긴이] Iroquois Confederacy, 이로코이 연맹으로 불린다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18세기의 북미와 더불어 예로 든 것은, 10~13세기의 아이슬란드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슬란드도 북미와 마찬가지로, 차례차례 이주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소노미아적 자치사회가 성립됐습니다. 제가 이 아이슬란드라는 장소의 이질성을 깨달았던 것은, 사실은 제 첫 책인 두려워하는 인간畏怖する人間(1971년 출판)에 수록된 서평, W. H. 오든(Auden)2의 세계라는 책의 서평을 썼을 무렵입니다.

   『2의 세계라는 책에서 오든은 아이슬란드 사가(Icelanders’ sagas)[주25]에는 보통의 유럽의 서사시와는 다른 특징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리얼리즘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리얼리즘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사가의 니얄(Njáls) 전설에서는 영웅을 묘사하는 데 이런 표현을 합니다.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밤색이며, 눈도 아름다웠다. 얼굴빛은 아주 파랗고,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하고 있었다. 매부리코에다, 뻐드렁니 때문에 입가는 보기 힘들었다. 그는 철두철미한 전사였다.”

[주25] [옮긴이] 아일랜드인이 자국어로 쓴 기록·이야기의 총칭. 사가는 이야기된 것이라는 뜻이다. 원래 바이킹족은 기록을 문자로 남기는 관습이 없었으며, 아이슬란드에서는 법률조차도 구전되고 낭송시인들의 기억에서 기억으로 계승됐다. 모든 사가는 원래 이런 구전이다

   보통의 서사시에서 영웅의 육체는 그 정신의 정확한 외화이며, 육체적으로 완벽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가에서는 영웅인 것과 흉한 것, 아름다운 것과 흉한 입가가 모순을 구성하지 않고 양립하고 있습니다. 근대의 리얼리즘이란 이른바, 그는 영웅이었으나 흉했다고 쓰는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사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을 오든이 지적했고, 당시 저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저는 아이슬란드 사가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오니아를 경유해 풀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이슬란드 사가 혹은 사회사 연구서를 읽어봐도, 이것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동시기의 유럽 혹은 북유럽에 비해, 아이슬란드 사회는 생산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압도적으로 낮았습니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은 것은, 모두 아이슬란드의 것만을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의 사례를 고립시켜 보면, 문제의 공통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를 보기 위해서는 이오니아를 보면 됩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사가는 이오니아에서 태어난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유사합니다. 호메로스에 의해 묘사된 영웅은 유럽 중세의 영웅무훈시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아이슬란드 사가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와 이오니아를 잇는 것은 뭐냐고 하면, 그것은 동시에 이동성에 의해 생겨난 자치사회이라는 것입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아이슬란드 사가는 이소노미아적인 사회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속>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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