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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 http://www.kojinkaratani.com/criticalspace/old/special/asada/011001.html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의 최신판 번역(이문사)가 지난 6월에 재차 간행되었다.[주 1] 이것은 낭시의 사유의 핵심 부분이 분명히 드러난 책으로 지금도 주목받을만 하다. 
낭시의 공동체론의 열쇠가 되는 것은 <소리의 분유>(원저는 1982년 간행, 일본어판 제목은 <소리의 분할>(이문사)에서 최초로 제기되고 <무위의 공동체>에서 일반화된 '분유(분할=공유), partage'라는 말이다. 인간은 뿔뿔이 흩어져 분할되어 있으나 그렇게 분할되어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부재의 공동체/공동체의 부재를 가지고 실질적인 공동체를 대신하는, 공동체의 부정신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것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죽음을 생각할 때, 이 문제가 가장 첨예한 형태로 보여지게 된다. 이 책에 대한 오사와 마사키(大澤真幸)의 간결한 서평(<요미우리 신문> 9월 30일자)을 인용해 보자. "죽음은 사람을 절대적으로 분리한다." 실제로, 나의 죽음은 나 이외의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죽음은 <내>가 독자적인 힘으로 행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죽음은 행위불가능 상태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주체로서의 '나'는 도중에 소멸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나'에게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사건으로서 완결시키는 것은 죽음을 보고 알아차리는 타자이다." 물론, 그 '타자'에게 있어서 '나'의 죽음은 타자의 죽음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본래적인 의미에서 타자의 죽음을 체험하지 않는다."(하이데거) 그러나 -- 다시 한 번 오사와 마사키의 서평으로 돌아가면 -- "죽음에 있어서 서로 어쩔 수 없이 분리되어 있다는 <한계>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분유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낭시가 생각하는 "무위의 공동체"의 근거이다. 
물론, 이 "무위의 공동체"는 깨지기 쉬우며, 항상 "영위의 공동체"로 실체화될 위험을 품고 있다. 타자의 죽음을 우리의 것으로서, 그 위에서 공동체를 창설, 강화하고, 그 이름 하에서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타자를 공격하는, 그러한 공격에 즈음하여 공동체의 구성원의 자기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 이 실체화 과정의 전형이다. 낭시는 그러한 실체화를 철저하게 배격한다. "공동체는 제반 주체들 사이에서 불사(不死)의, 또는 죽음을 넘어선, 어떤 고차적인 삶의 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 공동체는 작품[oeuvre]도 아니며, 죽음의 작업[oeuvre]을 맡는 것도 아니다. 공동체는 그 죽은 자들을 어떤 실체나 주체[…]로 변용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 죽음의 작업을 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공동체>로서 각인되어 있으며, 맡겨져 있는 것이다."[주 2] 이처럼 "무위의 공동체"란 ―― 
표면적 의미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원래 나는 부정적인 것 그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 '작품/작업(으로서)의 공동체'에 대한 철저한 저항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죽음이 아니다. <무위의 공동체>가 바타이유론이며, "바타이유에게 있어서 공동체란 무엇보다도 우선, 그리고 최종적으로, 연인들의 공동체였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사랑의 문제가 말해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연인들은 공동체의 한계 위에서, 특이 존재 상호의 드러냄과 이 드러냄의 상호 충돌을 드러낸다. 그것이 공-출현, 이행, 그리고 분유이다."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에서 낭시가 라캉에 도전했던 것이 최근의 책 <성관계의 '있음'>[주 3]에 다름 아니다. 
라캉의 이론이 강한 부정신학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것은 일찍이 지적되어 왔으며, "성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주 유명한 테제는 그 전형일 것이다. 낭시는 이 라캉의 테제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손을 써서 실질적으로 "성관계는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등한 곳으로까지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성관계는 존재하더라도, 성관계는 사물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낭시는 성관계에 있어서 주체를 일정한 형태로 실체화하는 것, 그러한 두 가지 주체의 종합으로서의 성관계를 실체화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성관계에 있어서 사람들은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능동/수동 등의 틈새에서 흔들리면서 똑같이 흔들리는 상대와 관계한다. 그러한 다양성 때문에 "성관계라는 것"(<le> rapport sexuel)을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기 차이화하는 과정끼리의 상호 차이화하는 관계가 있다. 그것과 동시에, 낭시는 라캉의 "향락은 불가능하다"는 다른 하나의 테제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낭시에 따르면, 향유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더라도, 그것은 융합의 환상이 막다른 골목이라고 확증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막다른 골목 자체가 확실히 욕망-쾌락의 무한성 ―― 자기/상호차이화하는 성의 무한성으로서의 ―― 에 길을 열어둔다는 의미에서이다. 여기에서 낭시가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욕망을 라캉적인 '결여의 존재론'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한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에로스는 페니아(결핍)의 자식인 동시에 포로스(술책이 풍부한 자)의 자식이기도 하며, 욕망은 그러한 이중성을 띠고 있다. "욕망이 결여되어 있다면, 무를 결여한다(아무것도 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주 4] 
이 요약은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낭시의 논의 자체가 그야말로 도식적이며, 여전히 형식적인 프로그램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만 한다. 그것은 라캉으로부터 출발하여 다른 길로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면서도 라캉의 강력한 논리를 무너뜨리는 곳으로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낭시가 스스로 전개해 왔던 '분유'의 논리를 성의 영역에서 전개하고자 하는, 그러한 선언문으로서 주목할만 할 것이다. 그리고 '분유'의 논리를 자칫하면 부정신학적인 색채를 띤 추상론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성관계의 '있음'"이라는 제목이 달리 이 작은 책은 다음에 전개해야 할 것으로서 "성적인 것은 관계의 '있음'이다"라는 테제를 제시하며 끝나고 있다. 
사실, 낭시는 1991년에 걸프 전쟁이 시작되었을 무렵,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걸프전쟁이 끝나기 전에, <전쟁, 법, 주권 ―― 테크네>[주 5]라는 중요한 논문을 썼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체험을 기록한 <침입자>(원판은 2000년)에서 금욕적이고 간결한 필치를 가지고 쓰여져 있듯이, 낭시의 일순간의 생애는 바깥으로부터 이식된 죽은 타자의 심장이라는 '침입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긴장과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낭시의 그 이후의 왕성한 집필활동은 경탄할만하다. 특히 올해에 들어서도 충실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론[주 6]을 시작으로 수많은 서적이 출판되고, 또한 예고되어 있다. 그 작업을 분유하는 것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건을 산출할 것인가. 우리에게 이것이 추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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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1983년의 잡지논문 <무위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같은 제목의 일본어 번역서(西谷修訳)가 1985년에 아사히출판사(朝日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 그 이후 프랑스에서 몇 개의 논문을 덧붙인 같은 제목의 책이 1986년에 간행되고 1990년과 1999년에 증보판이 간행되었다. 이번의 번역서는 1999년판이다.
주 2. 최근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원리주의자의 자살 테러를 본 우리는 이러한 경구를 다시 음미하며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 3. L'<il y a> du rapport sexuel, Galilee, 2001.
주 4. 쥬네 등의 작품을 패러다임으로서, 동성애에 있어서의 차이를 지닌 것의 상보적 결합에 대해, 동성애에 있어서의 '동일한 것'의 반복 ―― 때로는 불모의 빛을 띠는 ―― 을 강조해 온 레오 베르사니(Leo Bersani)가 최근, 역시 플라톤의 <향연>으로 돌아가 욕망을 '결여의 존재론'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한 것이 떠올려진다. "Sociality and Sexuality", Critical Inquiry, Summer 2000. 덧붙이자면, 낭시의 책은 반(反)-밀레르계의 Ecole lacanienne de psychanalyse가 2001년 5월 6일에 열린 라캉 탄생 백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한 강연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이 그룹의 잡지 L'unebevue는 2000년 봄 제15호의 <퀴어> 특집호에 베르사니의 논문을 번역하여 수록했다는 점을 덧붙여 두겠다.
주 5. Les Temps modernes, no.539, juin 1991에 게재되고, Etre singulier pluriel, Galilee, 1996에 수록되었다.
주 6. L'Evidence du film, Yves Gevaert Editeur, 2001. 또한, 작년에 자크 데리다가 장대한 Le toucher, Jean-Luc Nancy, Galilee, 2000라는 낭시론을 간행했다는 것도 덧붙여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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