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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5국가에 의한 통치 독일의 내치[폴리차이] 모델

2. 독일의 모델 : 중상주의 유형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외교와 내치[폴리차이]의 관계

국가이성의 시대는 유럽의 균형의 시대이며, 항상적인 외교와 상설 군대에 의해 다양한 국가들이 대립하고 경합하는 시대였다. 이는 대외적 경합을 목표로 하는 기술이다. 이에 대해서 국내에서의 국력을 증강하는 기술이 있으며, 이미 말했듯이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폴리스, 독일에서는 내치[폴리차이]로 불린 것이었다. 이 기술이 가장 커진 것은 독일에서였다. 5장부터 7장까지 군주권력의 국가이성의 시대부터, 규율권력의 시대, 그리고 생명권력의 시대로 이르는 유럽의 정치적 이성에 대해서, 독일, 영국, 프랑스의 세 가지 모델을 검토하면서 각각의 방식을 비교하고 싶다.

독일에서 내치의 학은 관방학으로서 치밀하게 구축됐다. 푸코는 독일에서 이 학이 발달한 이유로,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많은 작은 영방국가가 탄생하고 각국이 독립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봉건적 구조와도 거대 국가와도 다른 국가적 실험에 있어서 특권적인 공간이 됐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는 프랑스와는 달리 국가행정의 스태프[인력]가 부재하며, 이 때문에 대학에서 인력[스태프]을 조달하게 되어, 대학에서 관방학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경제면에서는 그다지 활동할 수 없던 부르주아지가 끊임없이 [이웃 국가와의] 항쟁에 직면했던 군주의 편에 서서, 국가의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인재, 능력, 부 등을 제공했다.” 이 관방학은 독일의 특산품으로서 유럽의 각지에 전해졌다.

내치는 좋은 통치의 기술이며, 신민의 복지를 개선하는 기술로서, 사목의 기술과 공통된 곳이 있다. 작동되는 대상이 영토로서의 국토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 그리고 목적으로 하는 바가 국민의 복지라는 것은, 사목의 기술과 내치의 기술에 공통된 바임은 이미 확인했던 대로이다. 독일의 관방학의 이론적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폰 유스티는 국가의 자산은 영방 내에 존재하고, 가신에 속하든, 국가가 직접 소유하든, 모든 종류의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질 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에 속하는 사람의 모든 능력과 숙달로부터도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 자체도 시각에 따라서는 국가의 자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내치는 국내 질서와 국력 증강 사이에 동적인,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계산과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내치가 신민의 복지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고 외치면서, 실은 국가의 장려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이라는 것이다. 당시부터 내치에 대해 국가 전체의 장려함과 전체 시민의 행복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의 총체라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유럽의 세력균형에서의 외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국의 장려함을 과시하는 것은 해부학에 열중하는 관찰자들에게 자국의 힘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푸코는 내치와 세력균형의 관계를 국력, 타국을 주시하는 권리, 통계학, 통상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우선 세력균형은 발전하고 있는 국가의 힘의 균형을 취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에서 내치와 깊은 관계에 있다. 내치는 좋은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시키고 더욱이 유럽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세력균형의 상태 아래서, 영구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한 칸트는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칸트는 유럽의 현상황이 사회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인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며,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법의 이념은 서로 독립된 국가가 인접하면서도 분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이미 전쟁상태이다.”

그러나 이 전쟁상태는 전쟁의 폐절로 향하는 싹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두 개의 경향에 있어서이다. 하나는 어떤 국가도 타국을 정복하고 스스로 제국 아래로 통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타민족을 미워하는 경향을 낳는데, 한편으로는 자국의 문화를 향상시키고, 타국을 이해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 이 평화는 자유의 무덤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힘을 서로 경합하게 하고, 그 균형을 취함으로써 생겨나고 확보되는 것이다.” 칸트는 좋은 국가체제야말로 민족의 좋은 도덕성을 기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차이 속에 서로 동떨어져 있는 국가가 국내에서 좋은 국가체제를 구축하고, 서로 힘을 균형시킴으로써, 평화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력균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국가들에 패하지 않을 정도의 외교능력과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국가가 국력을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의 국가가 타국보다 국력의 증강에서 뒤떨어지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의 국력의 증강을 주시하는 권리를 소유하는 것처럼 된다. 그리고 타국의 국력을 주시[감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 것은, 하나의 국가의 인구군대천연자연생산통상통화유통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통계학이 성립된 것이다.

칸트는 이 타국을 주시[감시]하는 권리에 대해 국력의 증강이라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법적인 체제의 확립과 자국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지적한다. 만약 국내에 법률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서로 이웃해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민족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민족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이웃 국가가 국제적인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것, “거기서 스스로의 권리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을 다른 민족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요구해야 한다.”

또한 통상관계에 대해서는, 이 시대는 중상주의의 시대, 즉 통상의 시대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푸코의 간략한 요약에 따르면, 중상주의는 각국에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첫째로 각국이 되도록 많은 인구를 가지려고 할 것, 둘째로 그 인구 전체가 노동에 대해 있을 것, 셋째로 그 인구에 주어지는 임금이 최대한 낮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품의 원가가 최대한 낮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으며, 군주가 소유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이처럼 통화의 수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만큼 국내의 국력의 충실이라는 내치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칸트는 이 시대에 각국이 밀접한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전쟁을 방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지적한다. 각국은 서로의 이기심을 통해서민족들과 결합한다. 이것이 상업의 정신이며, “세계의 어디에서도,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다가오면, 국가들은 마치 영속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양 중재에 의해 전쟁을 방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치의 실무

그렇다면 이 내치라는 학과 기술은 어떻게 적용될까? 푸코는 들라마르의 『내치』으로부터, 내치가 국가의 내부에서 관리해야 할 것을 11개 항목을 꼽고 있다. 종교, 도덕성, 건강, 물품의 공급, 도로토목공공건축물, 공안(公安), 자유학예, 상업, 작업장, 하인과 육체노동자, 빈민이다.

이것으로는 국가의 내정의 거의 모든 분야를 꿰찬다. 내치가 종교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진리로서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내치는 사목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신민의 혼의 건강을 배려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건강과 식량의 공급에 신경을 씀으로써, 내치삶을 보호한다.” 내치는 생명을 배려하는 것이다. 도로토목공공건축물, 상업, 작업장, 육체노동자, 빈민, 공안[치안]을 배려함으로써내치생활의 쾌적함, 정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학예를 배려함으로써 인생의 기쁨 그 자체”에 신경을 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고, 더 한층 잘 사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내치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다내치가 현재의 경찰처럼, 사회의 복지와 행복의 촉진의 배려가 아니라, 장래의 악의 방지의 배려를 목표로 하게 된 것은, 1770년대 이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푸코는 튀르케 드 마이엘느귀족민주주의적 군주제라는 내치론을 인용하면서, 내치의 활동 분야를 크게 넷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분야는 아이와 젊은이의 교육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은 경건한 신앙을 갖고, 무기 취급에 익숙해지며, 직업을 습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은 25세가 되면 내치 사무국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는지를 보고하도록 요구된다. 보고를 거부하는 자는 “건달로, 명예를 결여한 인민의 쓰레기로 간주된다.

두 번째 분야는 빈민을 대상으로 한다. 건강한 빈민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병자나 장애자에게는 수당을 준다. 더욱이 공중위생을 배려하고, 일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대준다. 세 번째 분야는 상인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을 규제하고 조성한다. 네 번째 분야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고, 상속을 기록하고, 도로하천공공건축물삼림을 주시[감시]한다.

이 네 가지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국력의 구성요소로서의 인간의 활동이다. 우선 인간의 수를 대상으로 한다. 17세기에 국력은 주민의 수와 비례한다고 여겨지게 됐지만내치학에서는 단순히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은 영토에서도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어서 생활필수품을 규제한다. 주민의 수가 많더라도, 먹일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것은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농업정책이며, 생산된 곡물의 질을 유지하고 비축하고 공급하는 곡물 내정(內政)이다. 더욱이 건강을 배려한다. 역병의 방지는 물론이고, “만인의 일상적인 건강이 중시된다. 도시에서는 공기, 환기, 통풍이 중시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일대 정책이 전개되는 것이다. 더 건강한 인간들의 활동을 감시[주시]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활동에서 생겨나는 상품이나 생산물의 유통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든 것을 배려하는 내치의 학이 사목적 시선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근대국가의 거의 가부장적인 배려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도 확실할 것이다. “내치의 목적은 시민이 전체적으로도 개별적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에 관련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저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라, “더 잘 사는 것, 공존하는 것, 교류하는 것이 실제로 국력의 증대로서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이 도입되기 때문에 이런 내치의 학은 이윽고 생명령을 잃어가지만, 제국이 존속한 오스트리아에서는 1840년대까지 이 학에 의한 국가과학의 강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적어도 18세기 전체를 통해 내치의 학은 독일인의 <신성로마제국>에서의 유일한 지배적 재정론(財政論)이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국가의 의학

내치학은 유럽의 국가들에 전파됐으나, 독일에서 집대성되고, 실제로 활용됐다. 내치학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는지를 18세기 독일의 의학의 방식과 프랑스나 영국의 의학의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검토해보자. 독일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로 의료가 전개됐다. 1764년에는 프로이센에서 의료행정(메디치니셰 폴리차이)”이라고 불리는 것이 탄생했다. 이것은 대학에서 배운 의사에게만 의료면허증을 수여함으로써 국내의 의료 상담자의 실천과 지식을 규범화하고, 각지의 의사나 의료기관으로부터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출산율과 사망률의 단순한 통계표가 이미 작성되고 있었으나, 전염병이나 풍토병의 관찰 등에 의한 훨씬 완전힌 발병률의 관찰 시스템”은 독일에서 확립됐다.

또한 중앙에는 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관공서가 설립되고, 그 아래에 계층구조적으로 지역의 의사를 배속했다. 이리하여 모든 의사는 국가에 의해 면허를 수여받고, 행정적 지도 아래서 의료에 종사하고, 의학적 정보를 중앙에 집중시키는 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극한까지 국가화된 의학의 시스템이 됐다.

이 의학이 중시한 것은 국력의 토대가 되는 국민의 신체와 생명이었다. “공적인 위생 행정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자의 신체가 아니라 개인 그 자체의 신체이며, 이런 개인들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했다는 것이며, 프로이센은 중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근 국가와 경합하기 위해서도, 국내의 주민의 건강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뒤에 평화가 회복되자, 이 국가의 의학의 이념은 공동화된다. 독일에서도 공업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이 가부장적인 시스템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절대주의와 중상주의를 엄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전환되어 갔다. 공업화의 시대에는 새로운 의학이 요구됐던 것이며, 프랑스와 영국이 그 임무를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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