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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31 채무공화국의 종언 / 2장. 세계공화국 / 3절. 유럽공화국의 출현

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물론 하버마스는 이 공화국의 위기를 알고 있다. 그리스 위기 때에, 그가 201111월에 보수계 신문에 발표한 에세이의 제목은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자!”였다. 유럽연합(EU)이 합의한 그리스 지원책을 받아들일지 여부의 국민투표 계획이 독일과 프랑스 총리의 공갈에 의해 철회되고, 파판드레우 총리가 퇴진으로 내몰린 사건을, 하버마스는 게재된 신문의 보수적 사주와 함께 민주주의의 투매(sacrifice sale)”로 간주한다. 지원 방안은 페스트와 콜레라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견딜 수 없는 선택지였으나, 바로 그렇기에 그리스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의 존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리스 국민은, 최소한 사후적으로라도, 개헌과 똑같은 주권의 상실을 허용할지 말지에 대해 투표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EU, IMF,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카의 지시를 따름으로써, 아일랜드에서도, 포르투갈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튼 이 주권 상실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이것을 쓴 시점의 하버마스에게는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으나, 2012년의 6,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행했다. 페스트냐 콜레라냐(재정긴축이냐 EU이탈이냐)를 선택해야 했다(전자를 선택했다). 아일랜드는 그리스와는 달리 민주주의의 존엄을 지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버마스도 확인하고 있듯이, 국민투표 이전에 진작에 이 주권 상실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미 주권은 상실되었기 때문에, 투표의 실질적 의미는 주권의 상실을 허용할지 여부가 아니었다. 바로 하버마스가 말하듯이 사후적으로 주권 상실을 아일랜드의 주권자가 인증한 것일 뿐이다. “페스트냐 콜레라냐의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의 존엄의 방법을 둘러싼 선택이었던 셈이다. 민주주의자 하버마스가 민주주의에 자신의 의지를 갖고 죽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그는 죽는 것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정치가 신뢰를 얻으려면, 단계화된 통합을 향한 신빙성 있는 제도 설계에 의한 것뿐이다.” , 유럽 헌법의 창설이다. “(‘민주주의 유럽)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효용에 대한, 널리 공공의 장소에서의 논쟁이 이미 시작되고 있어야 한다.” 국민국가 단위의 민주주의에는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하게 하고, EU라는 규모에서 똑같은 민주주의를 재생시키는, 그것이 하버마스에게서의 사실상의 정치노선에 다름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부터 이탈리아 전역을 조망하면서 그것을 꿈꿨듯이, 한나 아렌트가 미국 건국 혁명에서 그것을 찾아냈듯이, 하버마스도 자유의 창설 Constitutio Libertatis”을 유럽에 호소하려고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럽공화국, 사회민주주의의 차기 노선인 것처럼. 그러나 위기의 정체는, “진즉에 주권 상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아닐까? “페스트냐 콜레라냐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존엄은 이미 상실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바꿔 말한다면, “유럽공화국세계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이미 실재하고 있다(각 국민의 민주적 주권을 죽이고 있다)고 메르켈과 사르코지와 파판드레우가 연기한 그리스 비극은 알려주지 않았던가.

 

오늘날 중대한 갈등은 유로권 국가들과 은행 로비 사이의, 외부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이면협상의 장소로 이행하고 있다. 그것을 민주주의의 빛에 비춰진 아레나(arena)에로, 즉 피해자가 논의의 당사자로서 결정에 참가할 수 있는 장소에 다시 한 번 되돌아가게 했던 것, 설령 모두가 공포에 떨던 순간일 뿐이든, 되돌아가게 했던 것, 이 점이야말로 파판드레우 총리의 치적이다.

 

중대한 갈등을 억누르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공화국의 본성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유럽에서 이미 실재하고 있다. 그리스 위기 때에는, “민주주의의 빛에 비춰진 아레나에서 고전적으로 공화주의적인 정치가 거행[집행]된 것이다. “파판드레우의 방향전환, 즉 비극 제3막의 전환이 있으며, 이 비극의 진정한 냉소적인 의미가 드러났다.” 하버마스는 그 냉소적인 의미시장(market)한테는 민주주의의 정도가 적을수록 사정이 좋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성상의 차이가 또 다시 노정됐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 헌법이 창설됐더라도, 그리스 국민에게 해결책이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는 이렇게 시사하고 있다. 한순간의 카타르시스와 맞바꿔서, 비극은 잊히고 공화국이 지속하는 것이다. 이미 죽은 자의 사후적존엄사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비극이라기보다는 부조리극일 것이다. 하버마스보다 훨씬 더 자각적인 공화주의자는 이미 수년 전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좌익은 유럽 통합을 하나의 대체 신화로 했다(레지스 드브레). 그러나 드브레도 몰랐던 것은, 좌익이 그것을 신화라고 깨닫고, 하버마스가 미테랑에 이어서 그것을 다시 한 번 신화로서 활성화하려고 할 때, 공화국은 이미 비밀의 이면협상의 장소라는 모체 내에서 성장을 이룩해왔다는 것이다. 신화라고 생각했던 공화국이 천천히 무대에 등장하여 민주주의의 죽음을 드라마로 만든다. 이 드라마에 의해 공화국이 민주주의의-죽음의-아래에서 탄생한다. 이 공화국에는 헌법이 아직 없나? 그러나 드브레에 따르면 법치는 공화주의의 본질을 구성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사회적인 조정도 행했던 공화국에서는 공무원이 매우 중요해진 반면, 규칙이 지역적이고, 사적인 상인과 프로테스탄트로 이루어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률가의 역할이 매우 크다. 공화국을 만드는 것은 우선 무엇보다도 공화주의자이며, 그들의 의지이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무관심해도, 형식주의적으로, 즉 법적 문서의 차가운 객관성을 따라서 기능한다.” 이 정의를 따라 말하면, 막대한 EU 관료군이 존재하고, 민주주의에 정지를 요구할 정도로 공통 통화를 존속시키려고 하는 의지를 가진 정치가도 존재하는 유럽은 이미 충분히 공화국이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하버마스의 에세이를 게재한 신문사의 사주이자 독일 민족주의의 대사제로 꼽히는 인물은 금융위기를 지켜보면서 어쩐지 좌익이 옳은 것 같다고 점점 생각하게 됐다고 이 신문에 썼다고 한다. 리먼 쇼크 이후에는 뉴스위크지가 그 표지에서 우리는 오늘날 모두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선언했다. 재정긴축(=우익)이냐, 아니면 정부채무에 의한 복지국가의 견지(=좌익)냐라는 분기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채무에 관해서는 빌린 사람이 갚으면 된다는 불개입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시장주의를 우익으로, 재분배 기능을 가진 국가에 채무 부담에 대해서도 재분배시키려고 하는 입장을 좌익혹은 사회주의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자유주의의 관할지역이라고 하고 드브레가 민주주의의 지배 지역이라고 한 사적 개인의 세계가 오늘날에는 우익의 영역이며, ‘공공은 민주주의적(하버마스)이든 공화주의적(드브레)이든, ‘() 좌익이 점령했다. 채무가 중대 문제인 한에서, ‘우익나설 차례는 없으며, “모든 관여자를 공공공간 속에 참여시키려고 하는 좌익만이 이 일을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채무가 생산을 상회하며, 금융적 보험, 보험적 금융이 그 차액을 지탱하는 오늘날, 채무는 다른 누구보다도 금융기관의 중대사이며(파생상품에 의해 보험을 걸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좌익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상정원본(notional amount, 이론상의 금액)’이 아니라 현실의 원본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을 관여자로서 공공공간 속에 불러들이고, 그들에게 최종적인 부담을 합의하게 함으로써였다. 국민투표를 거치든 거치지 않든 (그것은 토의 절차의 How에 불과하다), 토의의 의제는 미리 정해져 있으며, 나머지는 합의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합의 내용의 절반은 이미 결정됐다. 새로운 공공공간 속에서 관여자로서 자격을 부여받은 자가 2급의 신()시민으로서 1급의 구()시민의 부담의 일부를 대신 떠맡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남겨진 의결 내용은 그것뿐이다. 그리스 위기에서, 아일랜드 국민투표에 있어서, 유럽 공화국이 정치의 무대에 올린 것은 비극의 오래 계속될 뿐인 이 후반부분일 것이다. 4막의 시작이다.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리스 비극에 제4막은 없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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