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이후의 정치 내재성과 초월 재고 (2/2)

Peter Hallward, “Politics after Deleuze: Immanence and Transcendence Revisited”

 

2.

제가 고찰하고 싶은 마지막 두 번째 점은 첫 번째 점에서 곧바로 나옵니다. 들뢰즈의 비주의주의에 정치적인 억양을 붙이기 위한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비주의주의에 의해 촉진되는 리얼리티와 직접 융합되거나 리얼리티로의 침례가 그 자체로 뭔가 전복적이고 해방적이며 혁명적이기도 하다고 논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침례는 정의상 매개의 형태들을 전복하기는 합니다. 그런 심리적·사회적·제도적·기술적인 매개는 활동가가 리얼리티로부터 일정한 전략적 거리를 두도록 허락하며, 수단과 목적을 (융합시키지 않고) 숙고하여 통합하려고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상황의 양상들에 관여하는 것을 허용합니다만, [아무튼] 그러한 매개를 전복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 해방적이기도 한 이 전복의 자격은 말하자면, 그것이 설득적인 것은, 들뢰즈가 활동가를 기각하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때뿐이며, 또 의지적 행위를 촉진하는 조건들 그 자체가 억압적이라고 인정하고, 리얼리티가 어떤 의미에서 본래적으로 창조적이고 생기 있다고 하는 들뢰즈의 기본 주장을 인정할 때뿐입니다. 이것은 다른 곳에서 자세하게 다룬 논점이므로, 나머지 시간에는 들뢰즈가 형이상학을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에 투입함으로써 무엇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을지를 간단하게 소묘할 작정입니다.

내재성은 내부에 머물다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창조자-신에 대한 일체의 초월적인 구상을 배제하고 존재의 내재적인 구상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들뢰즈는 둔스 스코투스와 스피노자를 그대로 좇고 있습니다. 그때 신은 존재를 넘어 서서 외부로부터 존재에 개입하는 활동이 아니라, 고스란히 존재에 내재적이며, 자연 전체와는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리하여 내재적 존재론은, 신 없는 자연의 무신론적 주장이라고 독해되거나, 반대로 (그리고 이쪽이 스피노자 자신의 지복으로의 경도에 적합합니다만) 범신론의 한 형태라고, 전체적으로 신격화되고 영화霊化[정신화]”된 자연의 긍정이라고 독해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를 철학이 화신(化身)한 인간으로서 포용하는 들뢰즈의 관점에서 본다면, 스피노자주의란 유보없이 내재성과 범신론의 위험’”을 포용하는 것입니다(EP, 333; cf. 67). 여기서의 출발점은 자기-원인과 자기-필연화로서의 신의 절대적인 자기-충족입니다. 스피노자는 씁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 안에 존재하고, 신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인식될 수 없는 신의 지고한 힘, 혹은 무한한 자연으로부터, 무한하게 많은 사물이 무한하게 많은 양태로, 모든 사물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며, 게다가 삼각형의 자연 본성으로부터,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개의 직각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 나오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것과 동일한 필연성으로, 모든 사물이 항상 나오는 것이다.[각주:1]

 

들뢰즈가 주석하듯이, 모든 유한한 존재자는 이런 자기-원인의 위력(force)을 결여하고 있으며, “자기의 힘에 의해 실재시키지 못하고, 자기의 힘에 의해 유지[보존]되지 못하고, 그 실재와 유지를, 자기를 유지하고 자기에 의해 실재할 수 있는 존재자에 의존하고 있다. 이리하여 유한한 존재자가 그것에 의해 실재하고 유지되고 활동하는 바의 힘은, 신 그 자체의 힘이다”(EP, 89-90). 이리하여 실재하는 모든 것은, 실재하고 활동하는 유일한 무제한적 힘을 표출하는 다각형의 면切子面, 크건 작건 활동적이고 크건 작건 힘을 가진 다각형의 면切子面이다. 우리 같은 유한한 존재자를 결정하는 원인으로서의 힘은 그 결과가 그 힘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내재적이다. 이때, 물론 그 힘의 안이란, 다른 별개의 것의 안이기도 하지만, 역시 [후자도] 그 힘 안에 존재하고 머문다.” 그것은 신의 양태 또는 피조물이 신의 내부에 머무는 방법에 의해서이다(EP, 172). 그런 내재성은, 자기에만 내재적이며, 따라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전부이자 하나인 것을 흡수하고, 그것이 내재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남겨두지 않는다”(WP, 45). 그때, 임의의 주어진 양태를 이해하는 것은, 그 양태가, 존재자 전반의 무한한 전체성또는 무제한의 하나-전부를 만들어내는 원인의 위력의 기구의 일부인 그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WP, 35, 38; cf. DR, 37). 위와 같은 내재적인 방향성으로부터, 들뢰즈 자신의 존재론의 시차적(示差的)인 특징의 대부분이 일의성, 직접성, 표상[재현]의 거부, 주관-대상 관계의 거부 등이 곧바로 나옵니다.

잠시 들뢰즈는 옆에다 두고, 위와 같은 입장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일정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전적으로 별개의 이론적 맥락에서의 전개를 상기해봅시다. , 아도르노에게서 비롯됐다고 간주되고, 맑스 경제학의 독해를 통해 모이셰 포스턴에 의해 더욱 전개된 비판이론입니다. 아도르노가 내재적 비판의 방법을 옹호했을 때, 그의 염두에 있던 것은, 그 대상의 내부에 머무는비판이었습니다. 동일화 사고의 억압적 귀결에 대한 비판은, 동일성과 그 개념화의 자원을 그 자체에 반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정적으로라고 해도 다른 삶의 방식을 암시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손상된 삶이 견뎌내고 있는 고뇌에 대해 반성하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아도르노의 논의에 의한다면, “만일 우리가 하이데거의 존재의 철학 자체의 구조를 떠맡지 않고, 그 위력을 그 자체로 향하게 하지 않고, 그 바깥쪽으로부터 전반적으로 거부해버린다면”, 하이데거의 존재의 철학에 대한 비판은, 그 대상에 대해 아무런 힘도 갖지 않습니다.[각주:2]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내재적 비판은, 맨 처음에 그 대상의 자기-충족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자연의 모든 것과 인간 경험의 모든 것의 양상을 상품화의 그립으로 에워쌉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 후에,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흔들림(play)을 추적하는 것을 시도해 보고, 내적 모순이 언젠가 뭔가 다른 것으로 통하는 문을 열지도 모른다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 문을 열 것인가라는 물음, 어떻게 문을 열 것인가라는 물음은, 아도르노의 관심사의 목록의 상위에는 놓이지 않습니다. 그런 물음들은,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에 대한 포스턴의 획기적인 연구에도 표면화되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포스턴의 연구는, 내재적 비판의 범례로서 크게 칭찬 받았습니다만, 포스트-자본주의 사회의 추상적 가능성을 다소간 고집하는 방향에서, 아도르노의 비관적인 사회 분석을 수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포스턴에 따른다면, 맑스의 자본 분석에 힘이 부여되는 것은, “그 관점이 고찰되는 구조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발생시키는 내재적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각주:3] 포스턴은 가치형태가 발생시키는 강제와 가치형태가 명령하는 추상적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회의 가능성을 되풀이하여 언급합니다만, 그의 책은, 이 가능성을 리얼리티로 바꾸는 활동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이 활동가는 프롤레타리아트 그 자체가 아닐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의 대상이자 부속물이며”, 그런 한에서, “이 계급역사의 <주체>”나 자본에 대한 자기-해방적인 적대자가 아니며,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역사적 과제는, 그 강화나 자기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폐기입니다.[각주:4] 아무런 변명도 이뤄지지 않은 채, 그 성과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역사적 역동으로서, “사회적 활동가의 배후에서, 그들의 의지로부터 독립하여 작동하는 위력이 구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분석이라는 것입니다.[각주:5]

어느 정도 맑스 자신은 비주의주의적인 선을 따라 읽을 만한가라는 복잡한 문제는 옆에 두었는데요,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한 자본주의의 반성적 고찰은, “비판적이라는 것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비주의주의적으로 읽어도 마땅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합니다만, 안티 오이디푸스의 진단으로는, 자본주의 과정이란 상품화의 항상적-가속적인 기구에 의해, 사회적 실재의 모든 다각형의 면탈코드화되고, 전의 복잡한 사회관계가, “탈코드화된 흐름의 결합을 통해 구성된 단일한 내재성의 장으로, “모든 초월성의 부정으로 평탄화되는 과정입니다. 점차 그 탈코드화가 다른 노예에게 명령하는 노예만”(AO, 254)을 남기는 비할 데 없는 노예제를 제도화한다고 하더라도, 이 지옥의 복종의 논리를 유지하는 경계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가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스키조프레닉[분열증자]”이라고 부르는 바의 범례적인 비-활동가입니다. 드뢰즈와 가타리의 스키조자본주의의 극한을 탐구하거나 구현합니다. “스키조는 자본주의의 내적인 경향성의 실현이며,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물, 자본주의의 프롤레타리아트, 자본주의의 살육의 천사이다”(AO, 35; cf. 255). 자본주의와 분열증2권에서 마찬가지의 기능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귀속됩니다만, 그것은 소수자-되기로의 도관(導管)으로서, 혹은 서양사회에서의 노마드의 후계자”(TP, 558 n.61), 철저하게 탈영토화된 후계자로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도움이 되는 한에서일 뿐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채워지는 제도에서도, 탈영토화와 분자화의 선이 새로운 성격과 새로운 종류의 혁명적 잠재력을 얻을여지가 있다고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언하는 것은 다분히 정당합니다.[각주:6] 그렇지만 쉽게 엿볼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 해방적이고 혁명적인 것으로서 등장하는 것은, 그런 탈영토화의 운동뿐이며, 특히 자본주의 자체가 구동하는 형태의 절대적인 탈영토화입니다. 자본주의적 착취를 숙고를 갖고서 단절하고 자본주의의 부불 노동의 명령에 승리하는 과제를 스스로 설정하는 활동가에게 요구되는 형태의 힘이나 역량을 고찰하기보다는, 들뢰즈와 가타리는, 도주라는 의심스러운 대가를 우리에게 남기는 것입니다. 이 도주선은,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임의의 역사적·정치적 과정과 더불어 작용한다기보다는, 절대적이고 매개 없는 자기-원인적인 필연성(causa-sui)과 공통되는 시공간을 따라 작용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특정한 정치적 역량을 대신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가 노마드적인 전쟁기계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유혹합니다. 전쟁기계는 절대적인 속도로 작용할 것이며, 그것은 속도와 동의어로 간주됨으로써, “순수하고 계량 불가능한 다양성 , 찰나의 침입, 변신의 힘의 침입”(TP, 386, 352)으로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자본주의의 역동의 극한[한계]”에 관해 들뢰즈와 가타리가 조립하는 것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 모든 현실적인 역량의 탈조직화나 용해를 넘어서 살아남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활동가는, 오로지 잠재적이고 초-역사적인 활동가이며, 노마드적 또는 분열증적 주체, 현실성 자체의 종언에 상응하는 주체인 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의 한계를 넘어서, 분열증은 역사의 종언입니다(AO, 130). “탈영토화의 가장 먼 한계에 손을 대려고 노력함으로써, 들뢰즈와 가타리의 아직 보지 못한 분열증자는 자본주의의 바로 한계를 찾아낸다. 분열증자는 자본주의의 내적 경향성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조건에서, 분열증자는 리얼리티의 생성변화그 자체를 구현[受肉]한다(AO, 35)는 셈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우리는 멀리 있습니다. 자유와 정치에 대해서 더욱 명백한 관심을 품은 철학자들, 예를 들어 사르트르, 파농, 시몬느 드 보봐르가 제안한 내재성과 초월성을 정면에서 대조시키는 설정으로부터는 멀리 있습니다. 이들 사상가들에게 인간의 자유의 실천적인 기초는, 주어진 상황을 초월하는 상대적인 역량과, 자기의 선택에서 유래하는 적극적인 목적으로 자기를 기투하는 상대적인 역량에 존재합니다.[각주:7] 그런 초월성을 빼앗기는 것, 보봐르의 표현으로는 자기의 내재성 안에 응고되는 것, 자기 자신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자기의 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때, 전제(專制)사람을 그 사실성의 내재성으로 가둬버리는힘으로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사람은 이제 사물들의 한복판의 하나의 사물 이상의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다른 사물의 집합으로부터 공제[뺄셈]된다고 하더라도, 그 부재의 어떤 흔적도 지상에 남기지 않고 공제[뺄셈]될 수 있다.”[각주:8] (이것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생성 일반의 우주적인 공식이라고 한 지각할 수 없는 것으로-되기에 대해 좋은 근사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시몬느 드 보봐르가 사르트르와 파농과 똑같이, 또한 이 점에서는 라르드로(Lardreau)와 똑같이, 어떤 자유의 옹호이든, 복종으로부터 해방으로 이끌어갈 어떤 집단적 동원이든, 적어도 최소한의 초월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초월성은 사르트르의 표현으로는, “우리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활용하는 것을 우리에게 허용하는 것입니다.[각주:9] 보봐르가 논하듯이,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로부터 자기를 찢어내고”, “구체적인 목적과 특정한 기획의 실현을 향해 자기를 기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는 자유라고 주장할수 없습니다. 물질적 원인과 내재적 필연성의 흐름을 중단하는 역량이 없으면, 지각과 재-활동[-] 사이에 아무런 거리감이 없다면, 생리의 수준에서도 사회의 수준에서도 활동을 자극으로부터 분리하고 그리하여 숙고적인 의지 작용이 자동적 또는 기계적인 반사보다 우세하도록 촉구하는 거리가 없다면, 자유는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그런 간극을 기초로서 자기를 구성할 수 있는 활동가만이, 자유로운 자기-결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들뢰즈 철학에는 그런 활동가의 장소가 없는 것입니다.

 

  1. Spinoza, Ethics IP 15, IP 17 S1. [본문으로]
  2. Adorno, Negative Dialectics(Routledge), 97. [본문으로]
  3. Moishe Postone,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255. [본문으로]
  4. Postone, Time, 276n 41. “요컨대 맑스에 의한 자본의 궤도 분석은, 사회주의 사회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의 <주체>로서 자기 실현할 가능성을 어떤 방식으로도 가리키지 않는다”(357). [본문으로]
  5. Postone, Time, 215n 109, 295, 390. 그리고 들뢰즈 : “운동은 항상 사고하는 자의 배후에서 일어나거나, 사고하는 자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 일어난다.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이미 달성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Dialogues II, 1). [본문으로]
  6. WP, 93; cf. TP, 345; DI, 270. [본문으로]
  7.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Simone de Beauvoir, Ethics of Ambiguity (Citadel Press, 1948), 25-27; cf. Hallward, “Fanon and Political Will”, Cosmos and History 7:1 (2011), 104-127. [본문으로]
  8. Beauvoir, Ethics of Ambiguity, 102, 100. [본문으로]
  9. Sartre, Situations vol. 9, 101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 cf. ;cf. Lardreau, L’Exercice différé de la philosophie, 52. 반대방향으로 지나가는 리스크도 있으며, 로트레아몽과 플라톤을 따르는 바디우처럼, 사고할 수 있는 활동가에 관해 사고의 절대적 초월성을 고집하는 리스크도 있다. 바디우에게서 수학이 “참인” 사고의 범례적 사례인 것은, 수학이 가장 명백하게 주체로부터의 “권외(圈外)”의 거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어떤 “진리의 초-인간적인 도래”도 그것을 떠받치는 주체를 “유도”하고 “구성”해야 한다. “수학적 영원성”의 “얼음같이 차가운 반인간주의”는 수학에 의해 부과되는 “개조”의 연성과 “지성의 소원화”에 복종하는 규율훈련된 사유자에게만 이해 가능하다(Badiou, “Mathematics and philosophy”, Theoretical Writings, 10-14; cf. Badiou, Logics of Worlds, 173-174). 이렇게 전담함으로써 바디우는, 들뢰즈나 알튀세르나 푸코의 손에서 배제된 주체의 범주를 회복할 수 있지만, 한쪽에서의, 바디우에 있어서의 진리의 유발 효과로서의 주체의 이론과, 다른 쪽에서의, 활동가와 그 역량에 대한 주의주의적 구상 사이에는, 여전히 큰 거리가 있다(cf. Hallward, “Sujet, décision et volonté dans la philosophie d’Alain Badiou”, in Autour d’Alain Badiou [Paris: Germina, 2011], 303-331).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2부 2장. 

인간과 동물의 문턱

조르조 아감벤에게서의 생명 개념 

히가키 타츠(槍垣立哉)

들어가며

생명정치의 장래를 향해 무엇을 써야 할까? 후기 푸코로 거슬러 올라가는 관리[통제]사회의 문제들, 즉 개인의 자유의지가 이미 문제거리조차도 안 되는 비참한 삶을 톺아내고, 거기서 희미하게 뭔가의 전망을 찾아내야 할까? 들뢰즈=가타리가 물론 어둠을 간직하면서도 보다 분명하게 미래의 생명을 그려냈듯이, 현재의 인간이나 그 사회의 해체를 함의하기도 하는 생명의 밝음을 부각시켜야 할까? 생명정치학의 개념이, 항상 이런 양면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원래 미래가 어두운 것인가, 밝은 것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하다. 미래를 살아가는 것은 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다. 미래에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아니다. 미래라고 하면서 뭔가가 말해질 때, 나나 우리는 그것을 가치 판단할 능력을 전혀 가질 수 없다.

그런 물음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좋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몽상 같은 철학자의 말은 생명정치학이 현실적인 정치의 물음과 연관되는 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그 자연사적 깊이를 지닌 시계(視界)에서 재파악하는 것, 말하자면 법, 제도, 윤리, 말 등을 고작 2000년부터 3000년 정도로만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뿐인 근원을 훨씬 뛰어넘어, 더욱 멀리 생명 자체에 뿌리를 내려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생명정치학의 독자성 그 자체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이런 방향성에서 생명정치학의 광대함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상가가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이다. 아감벤이 세계적 사상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20세기도 끝나갈 무렵이다.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1998)호모 사케르 :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1995)이라는, 푸코의 생명정치학을 이어받아 쓴 작품군과, 거기서 제시된 벌거벗은 생명(la nuda vita)’이라는 개념은,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감벤의 저작의 전모가 알려짐에 따라, 그와 생명정치학 자체의 관련이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여러 가지 논점에서 분명해졌다(일본에서는 우에무라 타다오(上村忠男), 오카다 아츠시(岡田温司), 다카쿠와 가즈미(高桑和巳) 등에 의한 이탈리아어로부터의 빼어난 번역과 해설이 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탈리아라는, 철학지리학에서는 변방적인 사상가의 논의가, 프랑스 및 미국과 거의 동시에 일본에 영향을 주었던 속도성에서도, 위의 번역자들의 작업은 돋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거기서 감안되어야 할 것은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호모 사케르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그의 고전적 소양의 광대함과, 종교나 법에 관련된 지식의 풍성함이다. , 하이데거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도 벤야민을 애호하고(시대를 공유하는 이 두 사람의 사유는, 상식적으로는 거의 양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기독교 역사도 곱씹으면서, 현재적인 정치의 논의에도 깊이 헤집고 들어가는, 그 독특한 사유법 자체이다(벤야민이 말하는 이질적인 것과의 접합이야말로 그의 모토인 듯하다).

확실히 오카다 아츠시가 아감벤의 종교신학을 강조하듯이,[각주:1] 특히 금세기에 양산된 작품군(세속화 예찬(2005), 왕국과 영광(2007), 벌거벗음(2010))은 생명정치라기보다는 종교성과의 연관이 매우 깊다. 그 때문에 아감벤을 생명정치학의 개념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철학의 영역에 한정해도, 푸코나 들뢰즈를 언급하는 논의는 어느 일정한 시기에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아감벤의 논의를 생명정치학의 관점에서 독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선 그가 주장하는 벌거벗은 생명이나 잠재력(potenza)’이라는 개념이 설령 우연의 결과일지라도 푸코나 들뢰즈가 논하는 유사 개념에 매우 접근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서 (그것도 벤야민의 텍스트를 읽는 한 상당히 미묘한 논맥에서) 끌어낸 용어이다. 그래도 아감벤의 독창성은 벌거벗은이라는 개념을, 생물적 신체가 정치적 과제이게 되는 푸코의 논의와 관련시키고 벤야민적 논맥으로부터는 벗어난 의미를 끄집어냈던 것에 있다. ‘잠재력에 관해 말하면, 아감벤의 고찰의 원천은, 일관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뒤나미스 분석에 있다. 그러나 이것도 잠재성(virtualité)을 논하는 들뢰즈와, 스피노자를 매개로 맺어지고 생명을 그러내는 주요한 위상에 놓인다. 양자 모두와 더불어, ‘생명신체를 사고하는 키워드 자체로서, 아감벤에 의해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감벤은 푸코와도 들뢰즈와도 다른 생명정치학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법이나 말에 강하게 천착하는 데에서도 간파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지만, 아감벤은 생명정치학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법과 언어를 중시한 논의를 펼친다. 그것은 푸코가 기본적으로 정신분석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 혹은 들뢰즈(들뢰즈=가타리)가 시니피앙 중심주의적 언어론에 대한 반발로부터 생명 개념과 그 질료성에 시선을 돌렸던 것과는 명확하게 대조적인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아감벤은 푸코 등이 비판했던 정신분석이나 법이라는 초월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생명에 파묻혀 있는 법이나 언어, 달리 말하면 생명을 반사하고 생명으로부터 반사되는 법이나 언어의 위상을 솜씨 좋게 세세하게 집어냄으로써, 생명정치학의 개념을 더욱 전개시키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아렌트와 푸코 쌍방의 부족분을 연결시키는 호모 사케르의 서두 부분 등에서[각주:2]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아감벤은 법과 언어의 경시 때문에 푸코도 (나아가 들뢰즈도) 비판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비판했던 대상의 의표를 찌르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생명정치학 속에서 꺼내진 언어와 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과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가이다.

아감벤은 매우 견실한 지식으로 뒷받침된 역사학자로서 행동하면서도, 거기서의 종교의 파악 방식은, 앞서 말했듯이 시공을 종횡무진 횡단하고, 현대의 첨단적인 장면과 고대세계를 결부시킨다. 그의 자세는 역사를 논하면서도 역사 자체를 원리로 삼지 않는, 말하자면 근원을 논하면서도 근원자체를 허공에 매다는[중지시키는] 감각으로 넘쳐난다. 이는 오히려 푸코가 고대를 다룬[문제 삼은] 그 방식에, 혹은 레비스트로스가 신화를 분석하는 그 방법에, 나아가 들뢰즈(와 가타리)가 생태계적인 자연사를 그려내는 그 시각에 매우 가까운 것이 아닐까? ‘중지하다[허공에 매달다]라는 말이 아감벤의 핵심어의 하나이듯이, 거기에는 근원을 탐구하면서 근원을 탈근거화하는 지식의 방식이 모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행동 방식 자체가 생명정치학의 시도와 강하게 겹쳐진다.[각주:3]

이렇게 제시되는 아감벤의 독자적인 영역이란 바로 애매함이며 회색지대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아감벤은 생명에 독자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방식을 항상 언어와 연관시키고, 벌거벗은 질료성이 법이나 제도의 막간[틈새]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밝힌다. 이와 같은 이중의 방법에 의한 중간성이나 문턱의 존재가, 앞의 중지라는 방법론과 포개져 있다.

그러면 여기서 아감벤에게 생명 그 자체란 어떤 개념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바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이다.

아감벤에게서의 이 주제에 관해서는 열림(2002)이라는 저작, 특히 거기서 다뤄지는 하이데거의 동물론이 중요하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이라는 주제가 겨냥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동물론은 절대적 내재성(사유의 역량, 2005년 수록)이라는 들뢰즈와 푸코의 관계를 논한 텍스트의 귀결이, 하이데거와도 맞물린 이 주제에 의해 도출됐다는 것과도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 아감벤은 들뢰즈의 생명 개념과 푸코의 생명 개념을 대립시키면서 생명론이 향하는 곳을 탐색한다. 그런데 약간 희화화되어 그려진 최후의 생명론의 계보도에서, 푸코와 들뢰즈는 대립되기는커녕 내재성의 라인에 똑같이 배분되고, 다른 쪽의 초월의 라인에 데리다나 레비나스 등을 적은 뒤, 굳이 하이데거를 그 중간 영역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매우 기묘한 것이기도 하다. 생명을 논할 때, 그 중간적인 위상에 있어서도, 하이데거를 내재의 방향에 위치시키는 것은 꽤 모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해석학적 존재론과 존재의 언어를 논하는 자로서, 흔히 어디까지나 초월의 라인에 위치시켜야 할 사상가로 간주될 것이다. 아감벤은 하이데거의 어디에서 내재적 생명론에 대한 공헌을 보는 것일까?

더 나아가 이런 도식을 그려내는 아감벤은 자신의 시도를 어디에 위치시키는 것일까? 이것들을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 푸코와도 들뢰즈와도 관련된 동물이라는 주제가 아닐까? 그것이 생명정치학의 사고에 있어서 새로운 문턱으로서 두드러지는 것이 아닐까?


아감벤에게서의 생명

논고 절대적 내재성은 푸코와 들뢰즈 둘 다의 생전의 마지막 텍스트가 각각 생명을 둘러싼 것이었음을 속시원하게 지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양자에게 생명을 논하는 것은 유언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텍스트란. 푸코의 경우 생명 : 경험과 과학[각주:4]이라는 캉길렘을 다룬 비교적 긴 논고이며, 들뢰즈의 경우 내재성 : 하나의 삶 …」(1995)[각주:5]이라는 아주 짧은 문서이다. 아감벤의 논의는 들뢰즈의 글 제목과 스타일 등에 대한 주석으로 시작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솔직히, 푸코와 들뢰즈에 대한 아감벤의 사유의 위상이 제시된다.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두 사람과의 대비에서 서술하는 것이다.

이 텍스트를 검토하기 전에, 아감벤에게 벌거벗은 생명이 무엇이었는지를 잠시 다시 살펴보자.

호모 사케르의 서두에서 아감벤은 비오스조에라는, 이제는 주지의 바가 된 말을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에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동물이든 인간이든 신이든)에 공통된,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표현했다. 그에 반해 비오스는 각각의 개체나 집단에 특유한 살아가는 형식, 삶의 방식을 가리켰다.”[각주:6]

여기서 조에로서 말해지고 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한, 살아 있다는 사실과 관련된 잠재적인 힘이다. 그리고 후자인 비오스란 이른바 정치적인 삶,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폴리스적인 삶을 모델로 한 것이다.

조에비오스라는 생명에 관련된 말하기 방식을, 현대정치와 관련시켜 얘기하는 아감벤의 주장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벌거벗은 생명과도 강하게 관련되는 조에가 그대로 정치의 주제로 간주되는 것, 혹은 말을 사용하여 행하는 폴리스적 사태에, 다만 살아 있을 뿐인 생명성인 조에가 침입해 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18세기 이후의 근대사회의 성립에 있어서, 푸코가 생명정치학으로 논했던 것과 겹쳐진다.


폴리스의 영역에 조에가 진입한 것, 즉 벌거벗은 생명 자체가 정치화됐다는 것은 근대의 결정적 사건을 이루며, 고전적 사유의 정치적-철학적 범주가 근원적으로 변용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각주:7]


이것에 덧붙여 중요한 것은, 이런 범주의 변용은 모종의 회색지대를 산출한다는 것이다. 거기서는 삶과 죽음, 공과 사, 우파와 좌파, 절대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대립 도식으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정치적 장면이 형성된다.[각주:8]

, 생명정치학과 벌거벗은 생명의 정치화는 겹쳐 있지만, 근대에 특징적으로 현현한 독자적인 방식에 있어서, 근대를 지배했던 기존의 정치적 범주가, 모두 회색지대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다.

아감벤이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서 살아 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신체, 혹은 생물학적 인체 실험을 겪은 생체를 예로 든다는 것, 더 나아가 호모 사케르에서도 국가라는 법의 규제로부터 벗어난 난민, 삶과 죽음 자체를 규정할 수 없는 뇌사자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이런 논의들이 근대 후기라는 시대성과 강하게 관련된 것으로 읽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감벤이 푸코와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이런 회색지대가 현재화하는 것이 근대 후기였다고 해도, ‘조에비오스와 얽혀 있는 착종된 사정 자체는 정치적인 것이 출현하는 원리로서 당초부터 숨어 있었다고 하는 점에 있다.

그것은 호모 사케르의 모델 자체가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방식으로 그것에 포함되는 신체를 다루는 로마 시대의 처벌에 있는 것으로부터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모 사케르란 신성화된 사람들이지만, 그 신체는 살해 가능하지만, ‘희생물로 될 수 없다는 양의성을 갖추고 있다. 흔히 이 두 개의 특징은 병치될 수 없다. (뭔가의 형벌을 받은) 살해 가능한 신체(법으로부터의 폐기)는 손쉽게 희생화되지만(종교로의 포함), 여기서는 살해 가능성은 희생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거기에는 살해 가능성과 희생화 불가능성의 교점에 있어서, “인간의 법으로부터도 신의 법으로부터도 배제된 신체가 출현하게 된다. 이 신체가 벌거벗은 생명의 원상原像인 것이다.[각주:9]

그래서 이것은 법에 있어서 모든 의미에서의 예외이기도 하다. ‘은 신성화되지 않지만 죽여도 좋다는 의미에서, 스스로가 포함할 수 없는 것을 배제된 것으로서 포함해버린다. 그리고 주권이란 칼 슈미트가 말했듯이 예외상태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자라고 한다면, 이런 신체를 다루는 것 자체가 법을 주권적인 법으로 만드는 원리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배제하는 것은 배제로서 포함하는 것, 이것이 법을 성립시키는 원점에 있다.

배제와 포함이 서로를 맞아들이는 이런 사정이 바로 아우슈비츠로 나타나는 비참한 신체의 전형이라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다. 그것은 법의 원리이면서도, 현실적인 무엇인가로서 출현하는 것이다.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은 이리하여 우리와 관계가 있는 것이 되며 시민의 생물학적 생명과 일치하고자 한다[각주:10]는 시대 진단이 거기에 포개지게 된다.

여기서 우선 논의되는 것은 법이 초월적인 기관을 경유하지 않고, 생명 자체를 포함한다는 사정이다. 바타유적 살해가 초월화된 신성성을 묻는다면, 이것과는 정반대의 관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여기서 법은 시니피앙이 아니며, 또한 명령하는 것일 수도 없다. 법은 법이 포함할 수 없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포함한다. 거꾸로 말하면, 법 자신이,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예외상태에서의 규정 불가능성을 들이대는 것으로부터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런 한에서 아감벤에게서의 벌거벗은 생명은 그 벌거벗은이라는 방식에 있어서, 규정 자체를 가능케 하는 규정 불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이 법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다.[각주:11]

거기에는 조에비오스의 연관에 관해서도, 단순하지 않는 사태가 출현하게 된다. 살아 있는 신체란, 물론 조에인 동시에 비오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해당 신체의 특정한 동물적, 식물적 기능이 조에이며, 특정한 인간적 기능이 비오스라는 것이 아니다. ‘비오스비오스인 한에서 항상 조에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비오스에 있어서 조에란 어디에도 없는 것이며 또한 어디에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말과 신체, 로고스와 물질, 이것들도 마찬가지의 배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들 중에서 후자는 전자에 의해 배제됨으로써 포함되는 바로 그것이다. ‘예외상태라는 외부를 보여줌으로써 질서를 규정하는 것, 이것이 양자의 관계성이다.

벌거벗은 생명예외상태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들은 아감벤의 발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중관계를 이루는 것인 비오스조에는 마치 단순히 이층화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도 배제와 포함을 둘러싸고 서로 얽혀 있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감벤에게서 생명은 법이나 언어가 규정할 수 없는 예외성인데, 동시에 그것에 의해 법이나 언어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도 그려진다. 생명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식물적 생명이나 동물적 생명이라기보다도 언어화할 수 없는 것에 의해 언어를 떠받치는 무엇인가로서 제시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감벤은 푸코나 들뢰즈가 법적, 언어적 위상의 초월성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생명의 위상을 끄집어낸 것과는 대조적인 위치에 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법과 언어를 시니피앙적 초월로서가 아니라, 생명과의 역접적 관계에서 끌어내게 된다.


들뢰즈 및 푸코 비판

그러면 여기서 절대적 내재성의 논의로 돌아가보자. 이 글에서 아감벤은 푸코와 들뢰즈의 생애 마지막 텍스트가 모두 생명을 다뤘다는 기묘한 부합을 강조하면서, 두 사람이 논하는 내용을 다양하게 검토한다.

대부분이 들뢰즈를 향한 이 논고의 처음 소소한 부분에서 아감벤은 푸코를 언급한다. 그 소재가 되는 푸코의 캉길렘론은 푸코의 최후기의 다양한 사유, 즉 프랑스 철학에서의 인식론과 영성주의(spiritualism)라는 두 개의 계보의 구분이나, 계몽의 논의의 재검토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흥미롭다. 하지만 아감벤은 특히 푸코의 서술의 마지막에 눈길을 돌린다. 거기서는 생명의 중심에는 잘못[착오]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써져 있지 때문이다.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코드와 해독의 작동[기능]은 우연히 주어져 있다. 그것은 질병이나 결함이나 기형이 되기 이전의, 정보 시스템의 변조나 잘못 취함[오용]같은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명이란 잘못할 수 있는 것이다.[각주:12]


그리고 그 후에 푸코는 이런 캉길렘의 생명에 관한 견해를, 시대적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니체의 그것과 결부시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리는 생명의 기나긴 연대기에 있어서 가장 새로운 잘못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참과 거짓의 분할이나 진리에 부여된 가치는 생명이 발명했던 가장 특이한 삶의 방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3]


아감벤은 생명과 오류라는 주제는 푸코가 성의 역사1권 이후에서 보여줬던 논의의 흔들림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한다(그것은 들뢰즈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감벤은 또한 푸코의 이런 생명에 대한 사유는 새로운 경험과도 같은 무엇인가, 생명이라는 지면에 뿌리내린 별도의 주체성을 향하기 위한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거기서는 그저 생명과 생명의 일탈과만 상관관계를 가진 인식[각주:14]이 진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들뢰즈가 푸코(1986)에서 지식과도 권력과도 구분되는 3의 축으로 간주했던 것과 결부되어 있다고 아감벤은 지적한다. 이리하여 아감벤은 푸코의 최후기의 시도를 들뢰즈의 그것과 교차시킨다. 들뢰즈가 그려내는 생명의 권역으로부터, 새로운 주체의 모습을 (바로 최후기의 푸코가 행했듯이)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생명정치의 향후 과제라고 아감벤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 자신 아감벤의 고찰과 깊이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감벤은 들뢰즈의 생명 개념에 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것을 감안한 다음, 푸코적인 주체의 논의를 구성해가는 라인은 어떻게 그어짓는다는 것일까?

아감벤은 들뢰즈 최후의 텍스트 내재성 ; 하나의 삶 …」의 표제에 있는 콜론에 강하게 집착한다. 여기서 중간에 배치된 콜론은 단순한 동일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내재성, ‘거리도 동일성도 아닌 일종의 통과, 아무런 공간적 변동도 없는 이행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내재성과 생명은 각각이 다른 것에 열려 있으면서, 생명은 생명에 내재한다는 형태로 그것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이 내재성이라기보다는 내재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논의는, 바로 들뢰즈의 내재성과 아감벤이 잠재력으로 말하는 것을 결부시킨다.

여기서 아감벤이 증거로 삼는 것은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의 들뢰즈이다. 이 저작에서의 내재성또는 내재평면(plan d’immanence)’의 논의야말로 여기서의 포인트가 된다. 이 텍스트에서 들뢰즈는 내재성이란 그저 자신에 대해 내재하는것뿐이며, “무엇에 대해 내재하는것이 아니라고 논한다(사르트르의 자아의 초월성에 대한 의미의 논리에서의 높은 평가를 여기서 참조하고 있다).[각주:15]내재성이란 의식에의 내재성도 자아로의 내재성도 아니다. 그것은 내재하는 것에의 내재인 것이며, 바로 자기 완결적인 운동성이다.

  

후기 들뢰즈의 텍스트를 여기서 끄집어내는 것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아감벤이, 여기서의 내재평면을 바로 (현실화한 생명체를 상정하는 베르크손적인 잠재성이 아니라) 스피노자적인 일의성으로 끌어당겨, 거기서 내재 그 자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재원리란, 존재의 초월을 모두 배제하는 일의성의 존재론을 일반화하는 것에 다름없다. 하지만 일의성을 절대화하면, 존재의 모든 점에서 존재 자체와 동등한 것이 되며, 관성과 부동성이 존재 위에 짓눌러오는 것 아닐까? 그런데 스피노자가 말하는 내재적 원인이라는 사유는, 행위자 자신에 대해서는 행위자 자체의 수동성이라는 것이며, 이 사유에 의해 존재는 그 의심에서 해방된다.[각주:16]


내재성은 바로 초월을 거부하면서 내재성자신이 내재하는 운동으로서 작동하는 가운데 있다고 간주된다. ‘내재성이 그 자체로, 초월이 아니라 작동을 갖는다는 것, 이것에 아감벤은 들뢰즈가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의 원상을 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감벤은 전면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며, 다양한 반론을 가한다. 그것은 아감벤과 들뢰즈의 사유가 닿을락말락할 정도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그 비판 중 하나는 들뢰즈가 이 텍스트에서 디킨스의 소설을 다루는 장면과 관련된 것이다. 그곳에서는 죽음에 처한 어떤 악당이 묘사된다. 죽어가고 있는 그에 대해, 주위의 누구나 상냥함을 드러낸다. 그에게 발견되는 것은 바로 벌거벗은 생명과 비슷한, 순수한 내재로서의 신체이다. 그런데 병에서 회복되면서, 악당은 단순한 생명이기를 그치고 다시 악당이 되며, 나쁜 짓과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도 다시 그에게서 멀어진다.

여기서 묘사되는 비인칭의 삶[생명]’은 바로 순수한 생명의 모습에 가깝다. 삶과 죽음의 협간에 있는 이런 중간지대의 묘사에 아감벤은 공명한다. 하지만 들뢰즈는 죽음에 가까운 이 장면에서, 삶을 개체 속에 가둬버리는 것을 거부한다. 들뢰즈는 또한 거의 분간되지 않는 아기의 웃음이라는 비인칭성도 언급한다. 비인칭적인 아기의 웃음은 아기가 개체화되면(, 거기에 개성이 출현하면) 사라지는 것, 개체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죽어가는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벌거벗은 존재방식과 평행적인, 원초적인 생명의 형상이며, 아감벤이 진술하는 중간영역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감벤은 이렇게 논한다. , 여기서 제시되는 벌거벗은 생명이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영양섭취의 생명이라고 부른 것, 혹은 비샤가 우리에 갇힌 동물이라고 지목한 것, 즉 생명적 신체가 지닌 동물적인 혹은 식물적인 기능 방식에 매우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여기서 질문되고 있는 것은 일면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불분명함 아니냐고. 그 때문에 이들의 논의는, 정말로는 (들뢰즈 자신이 하고 있지는 않은) 이런 방향에서 생각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이렇게 읽을 수 있는 서술이란, 내재를 생명이라는 영역으로 비켜 놓는 것에 관해서, 매우 위험한 토지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아감벤은 말한다.

아감벤은 여기서 들뢰즈와 푸코의 차이도 선명해진다고 한다. 들뢰즈는 푸코가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에서 묘사한 권력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했다. 그러나 푸코가 생물학적인 실존이 정치 속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명정치로서 파악한 반면, 들뢰즈는 푸코에서 이런 생명 자체란 무엇인가, 권력과의 관련에서의 그 의의는 무엇인가를 캐묻지 않고, “생명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 되는바로 그것이라고 단적으로 정리해버린다. 하지만 그래서는 생명정치적인 갈등의 양의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되지 않지 않을까?[각주:17]

아감벤은 들뢰즈가 거론하는 내재의 생명에 실제로는 생물학적 요소가 거의 없다고 논한다(이것도 푸코에게서의 생명의 구체성과 대비를 이루는 사태이다). 최종적으로는 스피노자적인 내재의 지복에 이르는 들뢰즈의 에 있어서, ‘하나의 삶이란 절대적으로 무매개적이면서, 모든 생명에 깃든 무엇인가로서, ‘인식 없는 순전한 관조가 되고 만다. 그것은 들뢰즈 자신이 생기론에 두 가지 길을 찾아내려고 하면서도, 그 한쪽인 행동하는 이데아가 아니라 [다른 한쪽인] 순전한 내적 감각을 선택하는 것과도 포개져 있다. 들뢰즈가 논하는 것은 인식의 모든 대상주체의 저편에 있어서의 순전한 관조이며, 행동하지 않고 보존하는 순수한 잠재력이 아닐까.[각주:18]

이에 반해 아감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생명, 생명이 깃든 불분명성의 지대에서가 아니라, 내재 자체의 위상에 가둬두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 거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영양섭취의 생명과 반대의 것 밖에만 발견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혹은 비샤적)인 생명이란 식물적인 생명/관계의 생명, 바깥의 동물/안의 동물, 식물/인간, 조에/비오스, 벌거벗은 생명/정치적인 삶이란느 다양한 구분선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그리고 생명에 의거하는 푸코도, 아감벤과 간극이 있기는 하지만, 이 구분을 전제로 생명과 정치의 관계를 사고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들뢰즈의 생명이 절대적 내재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계층성이나 분리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그것이 일의성이 지닌 의미이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생명 논의는, 스피노자적인 지복으로서의, ‘내재속의 운동에 머물러 버린다.[각주:19] 이것은 생명에 대한 취급방식으로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푸코가 말하는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에, 어떤 길을 제시하는 것일까?

아감벤은 바로 중간지대의 사상가로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논의를 수습하려 한다.


푸코의 사유와 들뢰즈의 사유가 둘 다 극단적인 유언으로서 남긴 생명이라는 개념은, 도래하는 철학의 테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우리는 서두에서 단언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런 단언을 할 수 있는가는 이제 분명하다. 이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생명권력과 주체화 과정에 관한 최후의 푸코의 얼핏 보면 음울한 고찰과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적 내재지복으로서의 하나의 삶에 관한 들뢰즈의 얼핏 보면 명랑한 고찰, 이 두 개의 고찰을 함께 읽어보는 것이다.[각주:20]


함께 읽어본다는 것은 물론 양자를 평균화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양측을 양측의 걸림돌로서 읽는 것, 양측을 양측에 대항시켜 읽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가 논하는 비인칭성의 일의성에는, 아감벤은 그 위상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명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푸코의 주체화에 관해서도 최후기의 그것에 아슬아슬할 정도로까지 찬성하면서도 배제와 포함에 관한 논의의 부재를 계속 묻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일련의 고찰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서 아감벤은 앞서 말한 도식을 별다른 설명도 없이 제시한다. 일련의 논의가 푸코와 들뢰즈의 생명에 관한 개념의 애매함을 논의한 반면, 마지막에 놓인 이 도식에서는, 한편으로 푸코와 들뢰즈가 동거하는 내재의 선이 그려지고(그것은 스피노자와 니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에 대립시키듯이,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초월의 선(후설이나 칸트로 거슬러 올라간다)이 설정된다(앞의 153쪽의 그림을 참조).

들뢰즈와 푸코의 유사성과 대비에 의해 전개되는 논의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점은 여기서 따지지 말자. 이것 이상으로 문제인 것은, 이 양자의 선의 중간에 하이데거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이상으로, 마치 하이데거를 축으로 초월과 내재라는 두 개의 선이 배치 가능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하지만 생명의 철학의 탐구의 마지막에, 왜 하이데거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갑자기 도입되게 되는 것일까?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도식에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의 사유 자체는 어디에 놓이는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답변은 아마 한 가지밖에 없다. 아감벤은 항상 자신의 사유를 중간지대로 설정하려 한다는 것이리라. 그런 한에서, 여기서 아감벤은 자신과 하이데거를, 생명의 사유에 있어서 분명하게 포개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감벤과 하이데거의 관련 : 동물과 인간

하이데거는, 여기서 이른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생명의 문제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끌어내지고 있다. 아감벤은 법이나 초월을 자명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라는 주제로 끌어들이고 생명을 논하는 한, 중간지대에 자신의 입장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감벤이 본래 자신을 두어야 할 위치에, 하이데거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렇지만 하이데거는 바로 해석학적 현상학으로서 존재론을 구상하고, 언어에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한 점에서 초월의 선을 대표하는 철학자가 아닐까? 하이데거의 어디에서 생명의 논의가 발견되는 것일까?

절대적 내재의 텍스트에서 하이데거의 이름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들뢰즈의 내재와 사르트르의 논의의 가까움을 논하는 부분에서, 아감벤은 하이데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렇게 들뢰즈는 의식이 가졌던 가치들을 정산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철학자의 몸짓을 계속하는 것이 된다. 그 철학자의 작업을 들뢰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나, 20세기 현상학의 대표자 속에서는, 이 철학자가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들뢰즈에게 가장 가깝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철학자란 하이데거, 그 멋들어진 알프레드 자리론에 등장하는 파타퓌직한 하이데거이다.[각주:21]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파타퓌직으로서의 하이데거(들뢰즈, 하이데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구자 알프레드 자리, 비평과 임상 수록)를 토대로 했다고 해도, 생명론적인 위상에는 아직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각주:22]

오히려 아감벤 자신의 하이데거론인 열림이 여기서의 논의와 더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아감벤의 저작 열림으로 넘어가자. 이 책에서 아감벤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동물성을 둘러싸고 하이데거의 생명론이라는 문제계를 추적한다.

말할 것도 없으나, 존재와 시간(1927)에서의 하이데거는 생물학이나 생명의 철학에 대해 매우 엄격한 견해를 제시했다. 거기서는 자신의 존재론을, 당시 융성을 뽐냈던 생명의 철학으로부터 구분하는 것이나, 현존재의 논의가 생물학적인 생명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적고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의 하이데거도, ‘세계세계성의 개념에 이르는 직전에서라고는 하지만, ‘환경세계(Umwelt)’라는 윅스퀼의 술어에 중요한 지위를 부여한다. 윅스퀼의 환경세계론, 하이데거의 도구 존재로서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커다란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 테마를 생각할 때, 존재와 시간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하이데거의 1929-30년의 강의록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각주:23]이다. 이 방대한 강의록에서는, 그 전반부에서 권태(Langeweile)’라는 (‘불안과는 다른) 정동성이 논의되고, 또한 후반부에서는 윅스퀼을 축으로 한 생물학적 논의가 주제화되며, 동물성을 둘러싸고도 상당한 서술이 이뤄진다. 거기서는 동물적인 생명은, “세계가 가난하다(Weltarmut)”고 규정되며, 돌이 세계를 갖지 않는 것(Weltlos)이나 인간이 세계(Welt)를 살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묘사된다.

이 하이데거의 강의록 자체가 수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시간성을 노정시키는 근원적인 정서로서, 존재와 시간에서는 불안에 할당되었던 역할이, ‘깊은 권태[지루함]’로 대체된다(‘깊은 권태는 특정한 지루한 대상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불안과 겹칠 것이다). 거기서는 불안이 죽음에의 선취로 현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것과는 달리, 순간과 시간의 오랫동안(Langweile)의 관계가 논의되는 것이다.[각주:24] 심지어 이 깊은 권태(die tiefe Langweile)’의 논의가 전단계가 되어, 동물적 생명을 다루는 후반부로 향할 때, 현존재가 동물과 다른 것으로서 규정되게 된다. 이른바 하이데거 자신이 2년 전에 간행된 미완의 저서 존재와 시간, 다른 종류의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것이다.

아감벤은 하이데거의 이 텍스트를 소재로 삼아, 열림의 논의를 밀고 나간다. 아감벤이 주목하는 것은, 특히 인간이 시간을 살아가는 형태로서의 깊은 권태라는 정동성과, 동물이 환경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가난함사이의, 역설적인 결합 자체이다. 이 두 가지는 유사하지만, 인간(현존재)의 본질과 동물의 본질로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감벤은 하이데거의 논의에 있어서의 이 두 개의 착종된 관계에, 앞의 도식에서 초월과 내재의 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내고 있다.

아감벤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하이데거에게서 초미의 과제는 동물의 세계의 가난함(Weltlos)’, 인간이 세계를 형성하다(weltbildend)’의 관계를 통해서, 현존재 세계--존재 라는 근본 구조 자체를 동물에 대해 위치짓게 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등장과 더불어, 생물 속에 나타나는 개시의 근원과 의미를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각주:25]


그렇지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예를 들어 이성적 동물이라는 방식으로, 동물적 생명에 무엇인가가 부가되도록 묘사하는 것은, 바로 존재와 시간에서의 하이데거가 계속 거부했던 것이었다. 여기서도 생물학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만, 그런 거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여기서는 오히려 존재와 시간에서는 몇 줄로 처리되고 말았던 생물학과의 대결재부상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각주:26] 동물과 인간의 연관을 차이에 있어서 파악하는 것이, 현존재의 규정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럴까?

아감벤은 하이데거가 동물은 환경세계를 억지해제(das Enthemmende)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것은 동물이 각각의 환경세계에서 고리를 이루면서도, 이로부터 열려져 있는 존재방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억지해제에 있어서는 동물이 그것에 에워싸여 있는 고리로부터 열려 있다.”[각주:27] 하지만 그런 동물의 존재방식은 또한 사로잡혀 있다=방심(Benommenheit)”고 말해진다. “사로잡힘=방심도 또한 환경세계 속에서, 열려지고 있으면서도, 몽롱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존재 자체로의 열림(Offenbarheit)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로잡힘=방심에 있어서, 동물은 어떤 지각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꿀벌이 꿀을 빨고 있을 때에는, 오로지 그 대상 자체에 사로잡혀 있다[푹 잠겨 있다]. 거기서 자신의 신체가 절단돼도, 꿀벌은 꿀을 계속 빨고 있다.[각주:28] 이것은 주어진 환경성의 규정에 대한 사로잡힘=방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동물의 행동거지는 억지해제로서, 열림에 대한 양의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그것은 하이데거의 다음의 문장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방심 속에서는 존재자는 열려 있는(offenbar) 것이 아니며, 개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때문에, 닫혀져 있는 것도 아니다.”[각주:29]

동물은 존재자에게 열려있지만, 그런 존재자는 존재로서 노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매우 양의적인 사태가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이 환경세계 속에서 억지해제고리를 이루며 살고 있기 때문에 열림의 방향성을 갖는 것과, 그것이 사로잡힘=방심하고 있는 것 사이의 양의성은, 하이데거가 이 강의록의 전반부에서 논한 깊은 권태의 논의로 결부된다. 하이데거 자신이 동물의 사로잡힘=방심, 인간이 지닌 깊은 권태이라는 테마를, 그대로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이르러서 하이데거는 강의의 1부에서 다뤘던 깊은 권태에 관한 논술을 불러일으키며, 동물의 방심과 깊은 권태라고 불렸던 근본적인 정서를 뜻밖의 형태로 공명시킬 수 있다.[각주:30]


깊은 권태란 하이데거에게서 인간적인 것이 동물적인 것으로 연결되는 장면 자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 방식은 어떤 것일까?


하이데거의 깊은 권태

이로부터 아감벤의 논의는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에서의 깊은 권태를 주제로 하는 것으로 향한다. 그것은 동물의 사로잡힘=방심과 매우 유사하지만, “사로잡힘=방심이 세계에 열려 있으면서도 스스로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인 반면, ‘깊은 권태는 바로 인간이 시간을 살아가는 것의 근본에 있는 정동성이며, 그 때문에 닫혀 있으면서도 그 한가운데서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그 방향성을 정반대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깊은 권태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말해진다. 우선 거기서는, 현존재가 거절되고 있는 존재자에게 건네지고[넘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계기는, 동물성이 지닌 억지해제고리’, 즉 닫혀 있으면서도 열려 있다는 존재방식과 흡사하다. 현존재는 보통은 존재자의 존재에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권태라는 존재방식 속에서, 그 닫힘 자체에 있어서, 인간은 존재자에게 건네지고 있다(ausfeliefert)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깊은 권태의 특징은, “허공에 매달린 채로 있다[중지된 채로 유지된다](Hingehaltenheit)”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허공에 매달린 채로 있다[중지된 채로 유지된다]”는 것은 거기서 비활성인 채로 체류하는 것(brachliegende)이기도 하다고 얘기된다. 그것은 손에 넣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경작지를 의미하는 농경용어이기도 하다.

이것은 가능성을 가지면서 어떤 가능성도 현재화시키지 못하는 것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눈앞에 두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은 아감벤이 잠재력에 의해 말했던 것과 강하게 겹친다. ‘깊은 권태특정한 구체적 가능성 전부를 중지시키고, 탈취하는 가운데, 근원적인 가능성(즉 잠재력)이 그 가치를 드러내는 체험[각주:31]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권태론은 특히 불안과의 연관에서 많은 논의해야 할 테마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아감벤의 논의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아감벤은 여기서의 논의에, 자신의 잠재력과 매우 가까운 어떤 것을 보고 있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들뢰즈의 잠재성이나 내재라는 사고와의, 강한 결부를 시사하는 것이다. 거부함으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거꾸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능성을 계속 갖는 것. 그것은 아감벤도 들뢰즈도 논의하는 바틀비(허만 멜빌),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안 하는 게 좋습니다=안 하는 걸 좋아합니다](I would prefer noto to)라는 말과도 결부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모종의 무능력을 축으로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각주:32]

그러면 이런 깊은 권태는 동물성과 연관될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것이다. 이것은 현상적으로는, 동물이 환경세계속에서 사로잡힘=방심하는 것과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틀비적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능력은, 들뢰즈라면 곧바로 bêtise=어리석음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며, 동물적인 무력함에 연관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감벤은 동물의 방심과 인간의 깊은 권태를 아슬아슬하게 접근시키면서 이것들을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방심에 있어서 동물은 억지해제하는 것과 직접 관계를 맺으며, 억지해제하는 것 속에 노출되고 마비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그런 것으로서 들통나게 하는 것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바로 특정한 억지해제 영역과의 관계를 중지하고 비활성적인 것으로 하는 것을 동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깊은 권태는 세계가 가난하기 때문에 세계로, 동물환경으로부터 인간세계로 이행이 실현시키는 형이상학적인 조작인 것처럼 생각된다.[각주:33]


그래서 인간이란 동물성의 억지해제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동물에게는 결코 할 수 없는 권태를 살아감으로써, 시간성의 무한의 가능성에, 그 비활성의 존재방식에 그칠 수 있는 존재자로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세계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아감벤의 고찰의 귀결은, 이런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중립적으로 화해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이뤄지는 것은 오히려 반대로, 이런 사정을 그대로 중지의 중지에 두는 것이다.


타원의 두 개의 초점

그러면 이런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 관한 논의는, 절대적 내재성에서의 아감벤에 의한 들뢰즈나 푸코의 독해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일까?

거기에서 하이데거가 맡는 역할은 명확하다. 하이데거가 생명의 사유의 계보 안에서 초월과 내재의 중간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의 의미는 열림에서 깊은 권태를 둘러싸고 제시된 매우 들뢰즈적인 내재성의 모습을 전제로 할 때에야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게다가 아감벤은 이렇게 파악되는 하이데거의 이중성, 즉 동물성에 있어서의 열림이면서도 돌파는 하지 않는 사로잡힘=방심, 인간에 있어서의 무능력으로서의 가능성인 깊은 권태, 대립하면서도 접하는 지점으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묘사되는 타원 속에서, 들뢰즈와는 달리, 동물과 인간에 관해 생명 속에서의 본질적인 구분선을 탐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아감벤이 (들뢰즈적인 삶의 일의성에 반하여) 요청하는 벌거벗은 생명의 탐구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감벤이 해석하는 들뢰즈적인 내재가 갖추고 있는 불만이, 여기서 동물/인간의 분할선을 둘러싼 방식에서 다시 설정되고, 생명정치학적인 장면으로서 재파악된다.

여기서 아감벤은, 정당한 독해인지는 제쳐놓더라도, 하이데거의 생물론에서 배제와 포함을 둘러싼 자신의 논의와 가까운 것을 보고 있다. 그것은 내재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간적 초월의 편으로도, 다른 방향으로도 자리매김 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벌거벗은 생명은 동물성과 아주 가깝더라도, 하이데거의 권태쪽에 강하게 겹쳐진다. 무위가 지닌 가능성이 여기서는 논의의 요점이 된다.

포함과 배제를 둘러싼 아감벤의 사고는, “벌거벗은 생명을 생물학적인 논의로서 파악하는 것은 아니나, 하지만 거기서 생물성과 인간성을 역접적 연관 속에서 억누르려 하는 한, 하이데거의 시도와 아주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나 법이라는 영역을 인정하면서, 중지에 있어서 깊은 권태를 노출시킨다는 전술은, 아감벤적인 양의성에 그대로 겹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거기서 하이데거는 본래는 삶의 계보학의 중간이라기보다도 어디까지나 초월과 내재를 분할하는 선의 초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묘사되어야 할 인물이 아닐까? 그리고 아감벤은 하이데거와 똑같은 타원 내부에서 동거하면서도, 들뢰즈적인 내재에 가깝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에 대해 약간 내재에 기우는 곳에 놓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이라는 테마이다. 동물성을 고찰함으로써 가능해지는, 생명 속에서의 인간과 이것 이외의 존재자 사이의 분할선이다. 거기서는 동물과 인간이, 둘 다 생명이면서도, 배제와 포함을 반복하는 그 접점이 제시된다. 생명정치학의 논의가 인간의 동물화와 동시에 동물의 인간화(권리부여)와도 교차되면서 말해지는 의의도 여기에 있다.[각주:34] 인간과 동물을 둘러싼 타원, 하이데거와 아감벤이 동거하면서 두 개의 초점을 그리는 타원, 여기에 생명정치학의, 혹은 생명의 철학의 새로운 형상을 보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감벤의 들뢰즈 독해가 끄집어내는, 최대의 논점이 아닐까?


  1. 생명정치학의 측면에서는 얘기되지 않은 아감벤의 저술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岡田温司, 『アガンベン読解』, 平凡社, 2011을 참조. [본문으로]
  2. Cf. Giorgio Agamben, Homo sacer : il potere sovrano e la nuda vita, Einaudi, 1995, pp.6ff. [본문으로]
  3. 푸코의 ‘고고학’ 및 ‘계보학’의 서술이 일관되게 단선적인 시간 배치에 의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중지’라는 관점은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해」에서의 ‘중지상태의 변증법’에, 혹은 들뢰즈=가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논한 ‘부감俯瞰’이라는 관점 없는 관점과 매우 가깝다는 것 등을 고려해야 한다. 생명을 논하는 생명정치란 이런 “현실적인actual 관점”의 포기에 의해 바로 현실성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본문으로]
  4. Michel Foucault, «La vie: l’expérience et la science», in Dits et écrits, 1954-1988. tome IV, Gallimard. 1994. pp.763-776. [본문으로]
  5. Gilles Deleuze, «L’immanence: une vie …», in Deux régimes de fous : textes et entretiens, 1975—1995, Minuit 2003, pp.359-363. [본문으로]
  6. Agamben, Homo sacer, p.3. [본문으로]
  7. ibid., pp.6—7. [본문으로]
  8. ibid., p.7. [본문으로]
  9. 『호모 사케르』 2부를 참조. [본문으로]
  10. Ibid., p.127. [본문으로]
  11. 그러나 동시에 바타이유의 사유가 현대적 정치학 속에서 반복해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을 봐도, 이런 초월을 목표로 할 뿐만 아닌 방향성, 즉 바타이유 자신이 “저열한 유물론”이라고 부른 영역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이기를 계속한다. [본문으로]
  12. Foucault, «La vie», p.774. [본문으로]
  13. ibid: p. 775. [본문으로]
  14. Giorgio Agamben, La potenza del pensiero: saggi e conferenze, Neri Pozza, 2005, p.386. [본문으로]
  15. Gilles Deleuze et Félix Guattari, Qu’est-ce que la philosophie?, Minuit 1991, pp.49-50. [본문으로]
  16. Agamben, La potenza del pensiero, p.393. [본문으로]
  17. ibid., pp.401ff. [본문으로]
  18. ibid., p.404. [본문으로]
  19. 그렇지만 이것에 이어진 「산보하다(pasearse)」라는 절에서, 이런 스피노자적 내재 자체에 있어서의 운동성에, 아감벤이 모종의 찬성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순수한 관조에 상응하는 ‘산보’에, 아감벤이 벤야민적인 산책자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을리도 없다. 이 점은 아감벤 자신의 ‘애매함’을 잘 드러낸다. [본문으로]
  20. ibid., p.410. [본문으로]
  21. ibid.. p.392. [본문으로]
  22. 오히려 이 논고에서는 알프레드 자리를 끌어들여 기묘한 언어 사용으로서의 하이데거가 찬양된다. 하이데거에 관해서는 물론 『차이와 반복』에서의 각주(Gilles Deleuze, Différence et répétition, PUF, 1968, p.188) 등의 검토 재료가 있는데, 이 양자에서의 ‘생명’을 둘러싼 관계성은 아감벤에 의한 매개를 거치지 않으면 역시 사고하는 데 어렵다고 생각된다. [본문으로]
  23. Martin Heidegger, 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 Welt, Endlichkeit, Einsamkeit, in Gesamtausgabe, Bd. 29/30, Vittorio Klostermann, 1983. [본문으로]
  24. 본 논고에는 직접 관련되지 않으나, 이 강의록에서의 시간론은 하이데거의 문맥에서도, 또한 그것 이외의 맥락에서도 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특히 『존재와 시간』에서 논의되는데, 그 존재방식이 면밀하게는 기술되지 않은 “순간=찰나(Augen-blick)”이라는 주제가 “깊은 권태”라는 “시간의 사이가 길어지는 것”의 논의에 관련되어 재파악되고, 그것이 “순간의 첨단이 도망쳐 들어오는” 것으로 그려지는 점(33, 34절 등)은 시간과 순간, 현재의 본래성과 비본래성이라는 테마를 고찰할 때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
  25. Giorgio Agamben, L’aperto: l’uomo e l’animale, Bollati Boringhieri. 2002, p.53. [본문으로]
  26. ibid., p.53. [본문으로]
  27. Heidegger, Die Grundbegriffe der Metaphysik, S.370-371. [본문으로]
  28. ibid., S.352. [본문으로]
  29. ibid., S.361. [본문으로]
  30. Agamben, L’aperto, pp.64-65. [본문으로]
  31. ibid., p. 70. [본문으로]
  32. 들뢰즈의 논의란 『비판과 임상』에 수록되어 있는 「바틀비 또는 상투어」이다. 아감벤은 이 책의 이탈리아어 번역본에 긴 해설을 붙여서 한 권의 책으로 냈다(Gilles Deleuze et Giorgio Agamben, Bartleby: la formula della creazione, Quodlibet, 1998). [본문으로]
  33. Agamben, L’aperto, pp.70-71. [본문으로]
  34. 인간의 동물화와 함께 동물의 인간화라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발생하고, 거기서 ― 바로 아감벤식으로 말하면 ― 인간과 동물의 동일성과 차이의 문제가 다시 물어지고 있다는 것은, 삶을 다루는 여러 가지 논의의 구체성에 있어서 ― 동물윤리, 환경문제, 생물다양성 등 ― 이것들을 재차 형이상학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리라. 이 점에 대해서는 小泉義之, 「人間の消失、動物の消失」, 『現代思想』, 2009년 7월호. ; 市野川容孝, 「動物の人間化、人間の動物化──バイオポリティクスの一断面」, 『現代思想』, 2009년 7월호를 참조. 두 논문 모두 양자의 구분이 애매해지는 교차점을 묘사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해설

클로드 르포르의 낡음과 새로움

解説 クロード・ルフォールのさとしさ

토나키 요테츠(渡名喜庸哲)

 

* 아래에 번역한 것은 클로드 르포르의 책 <민주주의의 발명>의 일역자 토나키 요테츠가 이 번역서에 붙인 해설이다. 평이한 내용도 있고 정보도 있기에 번역해둔다. 이 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여기에 번역한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다.

낡았다고 한 것은 단순히 이미 최초로 출판된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금세 읽을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직 소련이 세계에 대해 패권 중 하나를 쥐고, 동유럽의 민주화의 다양한 운동들을 억압했던 시대의 사건이다. 냉전 붕괴 이후, 이런 틀 자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낡고, 게다가 읽기 쉽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문체로 써진 책을 굳이 번역한 까닭은, 르포르가 지닌 뻣뻣하고 느릿한 충격을 전하는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이라는 시대에도 명확하게 손에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이, 이 책은 이후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한 가지 조류를 창시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런 영향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한쪽의 전체주의라는 말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학문적 검토를 받지 못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체제라면 어느 체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제멋대로 사용하기 좋은 형용사나 비판을 위한 욕설로 격하되고, 다른 한편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다수결이나 숫자 세기의 표대결 게임과 동의어인 양 회자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 과정(르포르라면 권력자본지식이 융합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민주주의전체주의에 대해 지금도 색이 바래지지 않은 근원적인 고찰이 르포르에게는 있을 터이다.

얼핏 보면, 소련형 혹은 프랑스형 공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는 르포르의 손놀림은 자유주의’, 더 나아가 보수주의에 의한 공산주의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을 비판하는 형태로, 르포르 나름의 전체주의 비판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르포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보이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반공서’로 읽는 것은 완전한 오독이다. 맑스를 공부하면서도 이른바 맑스주의와는 선을 긋는 르포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이나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됐을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사회에서조차도 왜 똑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조직화된 지배양식이 발견되는가, 그리고 좌파를 자칭해온 지식인들은 왜 이것을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쫓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르포르가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자유주의라는 구도 자체가 더 이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 포스트공산주의’(iv)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전체주의공산주의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체주의민주주의의 둘 다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의 모습을 한계까지 추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그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당분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로 그렇게 부르기에 알맞은가? 원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을 계속 제기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르포르의 딱딱하고 둔탁한 충격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과 경력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La Brèche, avec Edgar Morin et Jean-Marc Coudray, Paris, Fayard, 1968/2008〔『学生コミューン西川一郎訳合同出版一九六九年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 Genève, Droz, 1971/Paris, Gallimard, 1979〔『官僚制批判諸要素未邦訳

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Paris, Gallimard, 1972〔『マキァヴェッリ作品研究未邦訳

Un homme en trop. Essai sur « L’Archipel du Goulag », Paris, Seuil, 1975〔『余分人間──『収容所群島をめぐる考察宇京頼三訳未来社一九九一年

Sur une colonne absente. Écrits autour de Merleau-Ponty, Paris, Gallimard, 1978.〔『不在──メルロ= ポンティをめぐって未邦訳

Les Formes de l’histoire, Paris, Gallimard, 1978〔『歴史諸形象未邦訳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Paris, Fayard, 1981/1994.本書

Essais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le), Paris, Seuil, 1986.〔『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世紀)』未邦訳〕 ->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Écrire à l’épreuve du politique, Paris, Calmann-Lévy, 1992/Paris, Pocket, 1995〔『エクリール──政治的なるものにえて宇京頼三訳法政大学出版局一九九五年

La Complication ── retour sur le communisme, Paris, Fayard, 1999.〔『錯綜──共産主義への回帰未邦訳

Le Temps présent. Écrits 1945-2005, Paris, Belin, 2007.〔『現在── 一九四五年〇〇五年未邦訳

lefort Les Formes de l’histo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efort Les Formes de l’histo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밖에도 많은 논문을 집필했다.[각주:1] 또한 서문가序文家로서의 모습도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의 프랑스어 번역(Flammarion, 1985), 에드가르 키네의 『혁명(Belin, 1987), 단테의 『제정론(帝政論)의 프랑스어 번역(Belin, 1993)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필두로 하는 많은 저작에 서문을 붙였다.

 

클로드 르포드는 192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파리의 카르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만난다. 메를로-퐁티의 영향으로 맑스에 눈을 뜬 르포르이지만, 서서히 트로츠키주의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설에 포함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부감을 깨닫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해 위화감을 품는다. 전후 유네스코에서 근무한 후, 194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전후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한 르포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라는 그룹을 설립하고,[각주:2] 동명의 잡지에서 이미 동구권의 관료주의적 지배양식에 대해 호된 비판을 던졌다. 50년대에 작성된 논문 중 주요한 것은, 이후 관료제 비판의 요소들역사의 형상들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에서도 훨씬 더 지배억압의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스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주류파가 자치또는 자율을 지향한 하나의 혁명정당으로서의 활동의 방향성을 탐색한 반면, 르포르는 그 어떤 조직화도 경직화하고 억압장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도저히 감추지 못했고, 1958년에 갈라선다. 맑스주의적인 문제계를 르포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의 5장에서의 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Merleau-Ponty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메를로-퐁티(Merleau-Ponty)

cornelius castoriadi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Ã‰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efort Les Formes de l’histo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러는 사이, 르포르는 두 개의 중요한 논쟁을 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논집 인류학과 사회학(1950)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붙였는데, 이것에 대해 르포르는 51년에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논문 교환과 인간 사이의 투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특히 상징의 지위를 둘러싸고) 반론을 가했다.[각주:3] 다른 한편, 르포르는 실존주의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사르트르의 52년의 논고 공산주의자와 평화에 대해 『레 탕 모데른느195389호에 맑스와 사르트르를 발표하고, 사르트르가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을 동일시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고, 이 때문에 『레 탕 모데른느』와도 멀어지게 된다.[각주:4]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의 이별은 르포르에게 정치활동보다 대학에서 연구자·교육자로서 집필을 통한 정치철학의 이론화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5년부터 71년에는 칸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다. 거기서의 제자들로는 알랭 카이예, 마르셀 고셰, -피에르 르고프 등이 있다.

이른바 <685> 때에는, 옛 친구 에드가 모랭 및 카스토리아디스와 함께 곧바로 반응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공저 685: 균열(일역본 제목은 학생코뮌)을 같은 해에 저술했다(이 책의 장-마르크 크드레이는 카스토리아디스의 가명이다). 혁명의 주체를 학생운동에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급에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쳐놓고, 르포르는 학생반란에, 단지 대학 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대학으로 구현된 근대 산업사회 전반에 대한 재물음을 보고 있다. 동유럽의 민주화에 대해 논한 이 책에도 밑바탕에 깔린 관점일 것이다.

edgar mor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raymond ar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71년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논문을 레이몽 아롱에게 제출하고,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을 거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애드가 모랭과 함께 사회학·인류학·정치학의 영역횡단적 연구소”(현재의 에드가 모랭 연구소)를 지휘하고, 나중에 피에르 로장발롱과 함께 레이몽 아롱 정치학 연구소를 세운다. 1989년에 이 연구원을 퇴직한 후에도 정력적으로 집필을 계속했다.

passé / présent lefro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70년대 이후의 르포르의 과제는, 1950년대부터의 관료제 비판의 작업에 의거하여, 후술하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출판을 필두로 하는 동시대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여분의 인간을 참조) 마키아벨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철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전체주의개념을 정밀화하고, 거꾸로 그것과 대쌍이 되는 형태로 민주주의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민주주의의 발명은 그런 일련의 작업의 성과에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조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르포르에게 그때마다의 친구들과 더불어 발간하고, 열띤 논고를 모은 몇 호의 잡지를 간행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잡지로 이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친구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과 새로운 잡지를 세운다는 단속적인 학술잡지를 통한 논의의 장이야말로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레 탕 모데른느이후에도, 68년에는, 현재는 현상학자로서 알려진 마르크 리실(이 책의 7장 참조) 등 브뤼셀자유대학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잡지 텍스처에 마르셀 고셰와 함께 참여하여 이 잡지의 편집에도 종사한다. 게다가 77년부터는 고셰와 더불어, ‘유토피아개념에 대한 사회사상사로 나중에 유명해진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등과 리브르를 창간한다(이 책의 1, 9장의 초출은 이 잡지이다). 이 잡지는 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부언하면, 리브르의 면면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함께 시도한 것이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재독해이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읽히는 자발적 복종론의 파이요 사의 문고판에는 당시에 쓴 고셰와 아방수르가 연명한 서문과 클라스트르의 라 보에티론에 덧붙여, 르포르의 <일자>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도 보이는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는 사상의 실마리를 라 보에티한테서 찾고 있는 것이다.[각주:5] 그 후 80년대에는 아방수르, 피에르 파셰, 니콜 로로 등과 새로운 잡지 과거/현재(Passé/Présent)를 창간하고, ‘개인이나 테러등을 테마로 특집을 짰다.

E. de la Boéti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에티엔 드 라 보에티

Miguel Abensou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80년대에는 민주주의론, 혁명론에 덧붙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논고 등을 보탠 논집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19세기-20세기)을 저술했다. 이것은 본서와 나란히 르포르 정치철학의 이론적 고찰이 정리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서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면서 시사되고 있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중세적인 신학적 정치관의 현대적 잔존을 문제 삼는 중요 논문 신학-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은 특필할 만하다.

이 시기의 르포르의 활동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이론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1988년의 이른바 라쉬디[루시디]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만 라쉬디[루시디] 옹호위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 라쉬디[루시디]론은 1992년 간행된 에크리르에 수록되어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론이나 다른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사드, 토크빌, 기조 등에 관한 논고도 수록되어 있고, 르포르의 사상적 영향관계나 동시대적 관심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999년 간행된 착종은 부제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했지만, 물론 그때까지의 신랄한 공산주의 비판을 거친 말년의 변절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다시금 공산주의의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계획 하에서 이와 관련된 논고가 정리되어 있다. 2007년의 현재 : 1945-2005은 그때까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을 중심으로 모은 선집(anthology)이다.

최후의 르포르는 췌장암을 앓았다. 파리 좌안 7구의 벡(Beck)가에 있는 5층짜리 자택에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르내리기를 하고, 뤽상브르 공원에 나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전부터 친한 벗인 에드가 모랭이 뻔질나게 병문안을 한 보람도 없이, 201010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의 장례식 때, 모랭은 르포르의 죽음을 앞에 둔 스토아학파 같은 고귀함을 증언하고, 그를 “그 어떤 진보주의적 환상에도 양보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사상가, 그리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사상가를 그리워했다.[각주:6]

 

클로드 르포르를 어떻게 위치시킬까?

우노 시게키(宇野重規)는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조류들을 개괄하는 저서 정치철학으로에서, 거기에는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레이몽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또는 반-맑스주의적 흐름이다. 둘째는 알튀세르 이후의 맑스주의적 사상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비판이나 주체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및 클로드 르포르 등처럼 맑스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맑스주의 비판을 거쳐 전체주의 비판에 이르는 조류라고 한다. 우노의 정리에 따르면, 그 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은 알튀세르의 흐름에 속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뤽 낭시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포함한 그룹, ‘68년 사상을 비판하는 소르본 계열의 알랭 르노나 뤽-페리 등의 그룹, 그리고 아롱 및 르포르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을 중심으로 한 그룹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각주:7]

이처럼 르포르는 80년대 이후 복권이 외쳐지는 프랑스 정치철학의 하나의 원류를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르포르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절친인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서는 주요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한 에구치 칸(江口幹) 씨가 쓴 평전이 있으나,[각주:8] 르포르에 대한 연구 논문은 매우 적다.[각주:9] 르포르가 경원시됐던 것은 그의 난해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른바 정통파 맑스주의 사상은 물론, 실존주의에도, 구조주의에도 과감하게 논쟁을 걸고, 유행하고 있는 학파로의 귀속을 항상 거부했다는 독자적인 입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금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치철학복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돌이켜보면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1981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꽤 커다란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미 50년대부터 스탈린비판과 폴란드의 폭동(이 책의 10) 및 헝가리 봉기(이 책의 8, 9) 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68),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 등의 사건, 게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 50년대 말부터 집필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73년의 프랑스어 번역이 처음이었다 에 의해 소련 및 공산당을 근거의 하나로 삼았던 정당 및 사상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뚜렷한 조짐은 이 책의 11장에서 논하는 폴란드의 민주화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치의 겉 무대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의 구호와 더불어 소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프랑스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은 좌파연합을 실현시켰다(이 책의 4장 참조).

좌파연합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81년의 미테랑 사회당 정권을 실현시켰지만, 아무튼 그것이 다양한 모순이나 균열을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미테랑 정권이 사회주의적 기업 국유화 노선으로부터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대전환을 보였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상 면에서는 알튀세르의 맑스주의의 주축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다양한 사상 조류가 생겨난다. 대체로 <685> 이후, <>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혁명이론에 무게를 둔 사상으로부터, <좌익 급진주의>라고 불리는 극좌파조직이나, 3세계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이 활짝 꽃피게 된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얘기되는 앙드레 글뤽스만, 베르나르-앙리 레비 등 신철학(누벨 필로조피)”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에 의한, 미디어용 전체주의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더욱 광범위한 사상의 변동이 프랑스를 덮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치의 이름으로 경시됐던 종교윤리가 복권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일반적으로 인지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며, 유대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쪽에서도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가 회자됐다. 그리고 정치철학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해진 것도 역설적으로 이 시기이다. 그때까지 정치철학이라고 하면, 생산관계를 도외시한 부르주아 이론이라고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퇴조에 의해,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정치철학에 본격적인 주목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기에, 공산주의는 물론 실존주의로도 구조주의로도, 더 나아가 자유주의로도 공화주의로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바로 난간[그 무엇에도 기댈 곳] 없는 사고를 실천한 르포르는, 1983년의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정치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고,[각주:10]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이 부흥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각주:11] 르포르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많다. 맑스를 근본으로, 박사논문의 주제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보에티, 미슐레, 토크빌 등 과거의 사상가, 게다가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레이몽 아롱,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같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흔한 정치철학사또는 정치사상사로는 귀착하지 않는다. 제도로서의 정치(la politique)’와 그 배후에서 그 구체적인 현상형태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구별하고, 후자의 모습을 철학적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는 스승 메를로-퐁티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인 것의 현상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자세를 바탕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통저(通底)하는 현대의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특히 관료제와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도려내는 것,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자명시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이른바 이런 비판적 사회철학이야말로 르포르가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자세 때문에 르포르는 그 어떤 유파도 구성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은 폭넓다.

앞서 인용한 우노(宇野)가 서술하는 것처럼, 르포르 자신이 소속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레이몽 아롱 연구소의 정치철학자에 대한 영향은 물론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칸대학 시절의 제자인 마르셀 고셰에 의한, “근대의 탄생을 정치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관계로 파악하는 최초의 주저 세계의 탈마술화세[네] 권짜리 대작민주주의의 도래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신학정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르포르의 관점을 확대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각주:12]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피에르 마냉이나 필립 레노 등에 의한, 특히 토크빌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재평가나, 피에르 로장발롱의 대표제개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사의 시도도 크게 말하면 똑같은 조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만 르포르의 영향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상사나 사상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종교 등등 다양한 사회과학의 영역을 횡단하는 비판적 사회철학이라는 관점이야말로 르포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고셰와 마찬가지로 칸대학에서 르포르에게 배운 알랭 카이예와 장-피에르 르고프의 사회학적 경향을 지닌 정치철학의 시도를 언급해야 한다. 특히 르포르로부터의 영향을 자인하는 카이예는 모스의 증여개념을 기축으로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등의 사회과학 전체를 내다보는 영역 횡단적인 관점 하에서 연구 그룹 “MAUSS(사회과학에서의 반공리주의 운동)”을 수립하고, 동명의 잡지를 무대로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경제주의나 의회제 민주주의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공리주의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독파한 카이예의 자세는 바로 르포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3] 또한 르고프는 <685>의 사상의 비판적 총괄에서 출발하고, 르포르가 논하는 시대보다도 나중인 미테랑의 현대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프랑스의 정치적·사상적 변동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르포르 및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이론적 전거로 삼고, 매니지먼트적 사상이 기업이나 교육에 침투하는 온화한 야만이나 포스트전체주의시대에서의 전체주의그 자체의 변용된 모습을 그러내는 르고프의 작업 또한 르포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각주:14]

위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관계와는 별개로, 80년대 이후 프랑스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사상적 고찰과 르포르 사이의 공명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동시대부터, 특히 권력론이나 근대의 파악방식을 놓고 푸코와의 관계가 논해졌으며, 혹은 르포르가 말하는 근원적인 분열내지 항쟁, 리오타르에 있어서의 쟁론(le différand)’ 개념과의 가까움에 대해 주목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리오타르도 또한 과거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멤버였다. 혹은 정신분석과의 관계도 없지 않다. 이 책의 5장은 정신분석가 르네 마조르를 중심으로 한 잡지 Constellations의 연구회에 초청됐을 때 발표된 것이다. 혹은 르포르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이라는 생각의 원류로서,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라캉을 찾아내며, 르포르가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인 것실재적인 것을 정치사상에 응용했다고 파악하고, 게다가 이로부터 최근의 급진민주주의에 이르는 논리를 보는 해석도 제시되고 있다.[각주:15] 정신분석가이기도 했던 카스토리아디스의 상상적인 것과의 관계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참고로 세포국가를 주제로 하는 Constellations의 같은 호에는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적 패닉도 게재되어 있다.[각주:16] 또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 원래는 이 두 사람이 주최한 81년부터 82년에 걸친 정치적인 것의 후퇴를 주제로 한 연구회에서의 발표가 바탕이 됐다.[각주:17]

Constellations banner

Claude Lefort. Thinker of the Politica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Le retrait du poli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nancy the retreat of the politica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다가 나중에 보듯이, 르포르의 정치철학의 근본에는 정치적인 것의 장소를 인민이나 군중같은 얼마간의 주체내지 실체에 의해 차지될 리가 없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소”, “공허의 장소로서 파악하고, 거기에서의 사회/권력의 분할, 혹은 실재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근원적인 항쟁을 통해서 사회라는 것이 구현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점에서 현대의 프랑스 사상에 공통되는 포스트정초주의의 흐름에 르포르를 위치시키고, 낭시, 알랭 바디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과 관련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각주:18] 다만 민주주의의 주체장소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예를 들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프랑스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사상가들과는 가까울 뿐만 아니라 거리도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가령 랑시에르는 주저 불화에서 이런 르포르에 있어서의 이런 미규정적인 장소로서의 인민내지 데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을 쟁점으로 했던 것이다.[각주:19]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실상형상화작품화’(, 제도화)로 회수되지 않는, ‘무한프락시스를 보고 있는 낭시의 생각은 오히려 르포르와의 가까움을 보여줄 것이다.[각주:20]

르포르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어권은 물론이고,[각주:21] 영어권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번역 소개나 독해가 진행되고 있다. 1인자로는 르포르 저작의 영어번역에 붙인 해설 등으로 그 사상의 보급에 진력한 딕 하워드가 있다. 또한 버나드 플린의 클로드 르포르의 철학은 프랑스어로 번역될 정도로 빼어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각주:22] 뉴스쿨포소셜리서치는 르포르의 사후 곧바로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공적을 칭송하고 있다.[각주:23] 프랑스에서는 20123월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166월에는 과거 르포르가 가르친 칸 근교의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에서 르포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expérience démocra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Flynn, The Philosophy of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민주주의의 발명에 대해

이 책에는 원래 독립적 형태로 각종 매체에서 공표된 11장이 2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초출은 원주를 참조). 그래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초판에 대한 서문말미에서 말하듯이, 전체는 하나의 논의로 관통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논의이다. 거기에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발명은 동쪽에서 온 온갖 이의제기, 온갖 반항이라고 간주되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369). 1부와 제2부의 표제를 각각 따오면, 전자가 전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전체주의 개념의 이론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이론편이며, 후자는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반소련적·반전체주의적 봉기를 이런 민주주의의 발명새로운 조짐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각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첫머리에서 옮긴이의 요약을 붙여두었기에 자세한 것은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주 간단하게 전체의 흐름만 확인해두면, 1장과 2장이 가장 이론적인 장으로, 전자에서는 인권개념을 축으로 근대의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고, 후자에서는 바로 전체주의의 논리가 정면에서 논해지고 있다. 3장은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스탈린주의와의 관계, 4장은 70년대의 프랑스 공산당·사회당의 좌파연합, 5장에서는 르포르 자신이 과거 맑스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빼져나갔는가라는 구체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각 장의 후반부에서 전체주의의 개념 그 자체의 이론화가 시도되고 있으며, 서로 공명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6장에서 (주로 소비에트에서의) 반체제파의 문제, 7장에서 혁명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결하게 논의된 후, 7장부터 9장에 걸쳐서 1956년의 헝가리 봉기(동란), 10장에서는 같은 해의 폴란드의 이른바 포즈난 폭동이라는, 스탈린 비판 이후의 반소련의 민중봉기가 다뤄진다. 11장은 같은 폴란드에서 80년대부터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르포르의 기본 테제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가, 그 개략을 확인해두자.

르포르는 다양한 표현으로 전체주의를 특징짓고자 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은 <하나인 인민(Peuple-Un)>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첫째로, 르포르가 논적으로 삼은 기존의 공산주의 사상과의 관계에서도, 둘째로 르포르의 또 다른 열쇠 개념인 분할의 철폐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선 곳곳에서 이뤄지는 르포르에 의한 기존 공산주의 비판의 요점은, 공산당부터 트로츠키주의자, 좌익급진주의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전체주의라는 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히 파시즘과 나치즘에는 비판을 향했지만, 싸워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이라고 하며,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를 보려고 하는 비판은 자본주의에 이로울 뿐이라고 기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포르에 따르면, 그들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은 사실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가를 인민의 의지와 권력에 종속하는 하나의 국가로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 아래에서 국가가 사회와 일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바로 이 발상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상이한 차원의 구별을 철폐했지만, ‘권력의 특이성을 깨닫지 못하고, 관료제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그 특질을 분명히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르포르에 따르면, 바로 이 점이야말로 전체주의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민사회의 분할이 철폐되고, 하나의 신체를 이루듯이, 인민=프롤레타리아트로 융합한다는 생각이다. 5장의 제목이 적절하게 말하듯이, “신체의 일체성이야말로 문제이다(143). 이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2장 및 3장에서 인용되는 스탈린에 대한 트로츠키의 말이다(52, 99). 거기에서는 짐은 국가이다라고 말하는 루이 14세에게 나는 사회이다라고 말한 스탈린이 대치되어 있는데, 루이 14세의 시대는 아무리 절대왕정이었다고 해도, ‘사회의 부분이 그 외부에 남겨져 있었던 반면에, 스탈린의 전체주의에서는 <>을 매개로 하여 국가도 사회도 인민도 모든 것이 하나의 신체혹은 조직을 이루게 해서, <일자>로 환원된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파는 이런 사회의 외부에 추방해야 할 <타자>, 신체의 건전한 일체성을 위협하는 기생자라고 지목된다. <하나인 인민>인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내부에 분할이나 항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다양한 분할이 철폐된 <하나인 인민>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추상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에서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할의 철폐란, 구체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생산, 교육, 과학연구, 사법, 문화 등 본래 독립적이어야 할 시민사회의 각 영역에 침입한다는 사태를 동반하고 있다. 이런 영역들은, 비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독립된 가치를 지니며, 그 나름대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에서는,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법적 차원, 문화적 차원, 미적 차원, 과학적 차원, 교육적 차원 등의 분할까지도 철폐되고(르포르가 곳곳에서 말하는 <권력>, <>, <지식>이라는 것은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심급을 가리킨다), 법적으로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가, 학문적으로 무엇이 참인가, 교육기관에서 무엇이 가르쳐져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판단되는가 등등이 <하나인 인민>의 논리에 기초하여 결정되어 버린다 각각의 영역에 더 이상 독립된 판단을 내리는 심급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르포르는 이런 융합을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관료조직의 작동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기업적 논리가 침투하고, 관료 조직이 금융계나 산업계로부터의 압력에 종속한다는 구조도 물론 시야에 넣고 있다는 것도 부언해두자. <권력>, <>, <지식>에는 물론 <자본>도 보태진다.

이처럼 르포르는 전체주의에서의 표상이나 상징의 작용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소비에트적인 지배양식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거기로부터 이론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상징의 차원과 현실/실재의 차원을 구별한 뒤, 그 양자를 오가는 형태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려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얘기되듯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실/실재에 사회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것을 악마화해 버리는 그 전능함을 천진난만하게 상정하는 것의 단적인 물구나무 세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르포르에게 전체주의에 의한 상징적인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실재에 있어서는 다양한 분열이나 항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균열’(221, 319)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균열을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민주주의의 발명조짐을 읽어내는 작업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대중봉기를 논하는 2부의 주제이다.

이런 현실[실재]적인 균열에 기초하여, 르포르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가? 르포르에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까지 봤던 전체주의 사회의 물구나무 세우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와 사회, 사회 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권력>, <>, <지식> 등등의 각 차원도 분리해야 하는 사회이다. ,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민에게 <권력>의 원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외재적인 <>에 제약되어야 하며, <지식>도 독립된 장소를 갖고 이어야 한다고 간주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인민(peuple)’ 그 자체가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고 일체화를 거부하고, 내부에 균열이나 항쟁을 들여온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르포르가 이따금 이의제기권리요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각의 인민은 스스로의 권리에 기초하여, 혹은 현실/실재로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을 향해, ‘인민그 자체가 쥐고 있다고 하는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 보면, ‘인민은 항상 완전한 일체를 달성하는 것이 없으며, 말하자면, “인민의 동일성은 끊임없이 물음에 부쳐진다”(150). 민주주의 사회가 내부인 이타성의 시련을 겪는다고 얘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129).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사회와 사회 그 자체의 분리로부터 새로운 사회가 끊임없이 산출되는 것이다.

참고로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조짐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민중봉기에서 찾아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그런 예외적인 사태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르포르가 보통선거의 상징적 의미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 보통선거는 인민의 의지의 발현이며 새로운 사회조직의 정초인 동시에, 일체적인 것이라고 상정된 인민이 개별적인 수로 세어질 수 있는 단위로 변환되고”, 사회의 해체가 모방되는 계기라는 것이다(122-123). “수가 일체성을 해체하고, 동일성을 무화한다고도 얘기된다(149). 여기에 있는 것은 보통선거를 통한 이의제기라는 현실주의적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통선거를 통해 바로 사회라는 장소가 결코 일체화할 수 없는 항쟁의 장소로서 드러난다는 그 상징적인 작용이 문제인 것이다. 르포르가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를 굳이 원용한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속표지에 그려진 괴수 리바이어던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군중이, 개개의 다수의 군중으로서 가시화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각주:24]

헌데, 그렇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인민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는 권력이란 어떤 장소를 갖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그것은 인민이 스스로를 물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산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다”(57).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은 공허한 장소(lieu vide)”, “정의상 점유할 수 없는 상징적인 장소이다(91). 참고로 르포르는 권력, 인민이 자율 혹은 자주관리를 위해 기피해야 할 것으로도, 똑같은 목적을 위해 탈취해야 할 것으로도 파악하지 않는다. 르포르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곳곳에서 얘기되듯이, 사회 공간을 질서화하고,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상화또는 제도화하는 차원이다. ‘권력이 어떤 방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형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나인 인민>에 있어서의 <권력>, <>, <지식>의 융합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해, “공허한 장소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민의 내적 항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대치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단순한 이항대립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항쟁적 민주주의의 실천으로의 유혹이 르포르의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니며, 20세기의 정치경험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에 기초한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권력의 장소를 둘러싼, 정치사상사적인 이해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적해둔다.

문제는 1장이 다루고 있듯이, 근대 민주주의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점에 있다. 르포르는 이것을 중세 봉건제로부터의 해방으로서 파악하는 것도,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주체화의 전단계로서의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의 신학정치적인 정치체로부터의 모종의 연장선상에서 근대민주주의의 도래를 파악하고, 그 위에서 양자의 차이를 봄으로써, 더욱이 이로부터의 전체주의로의 변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5장에서 상술되듯이, 이 논의는,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가지 신체론에 근거하고 있다.[각주:25] 근대 이전까지는, 주권자로서의 왕은,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구체저인 신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징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로 이어지는 초월적 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인 신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 구상화된 외재적·초월적 질서야말로, 하나의 국가의 일체성을 떠받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의의가, 왕의 신체가 파괴된다, 혹은 지금까지 초월적인 질서와 세속적인 질서를 연결했던 머리가 잘려짐으로써, 그때까지 하나의 신체를 이루었던 국가가 탈신체화(désincorporation)’한 점에서 본다(24, 149). 이런 외재적·초월적 질서 간단하게 말하면 <>의 질서 야말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이며, <권력>, <>, <지식> 등 다양한 심급을 묶었지만, 이 연결이 해소되고, 각각의 심급이 독립해가는 과정이 탈착종화(désintrication)”이다(25). 근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이런 탈신체화·탈착종화야말로, 앞에서 본 권력공허한 장소를 낳게 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권력>의 원천 내지 근거를 지금까지처럼 외재적·초월적인 질서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란 권력, , 지식이 근본적인 미규정성에 노출된 사회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자신 속에 양의성또는 모순을 본질적으로 품고 있다. 권력의 장소는 이제 외재적 원천을 갖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닌”, “공허한 장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은 인민자신 속에서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공허한 장소에, 현실적인 실체라고 상정된 대문자 <인민>삽입되고, 바로 그것이 권력의 주체라고 간주되자마자, 그 사회는 <하나인 인민>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를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내부인 타자를 대문자의 <타자>화하고, 이것을 외부의 혹은 기생자로서 배제할 것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의 이유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는 동시에, 그 이행을 방해하기 위한 이의제기, 권리요구 등 내적 항쟁의 실천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정당성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인 신체>로서 응고되고, 전체주의로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항상 내적 항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수화시키고, 스스로를 재창출=재발명(réinventer)필요가 있는 것이다(369).

 

위와 같이, 약간은 고풍스러운 대상을 다루고, 복잡한 논리에 입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시도가 어떤 것인지, 그 현실[실재]적 및 상징적 작용을 철저하게 캐묻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 민주주의라는 것의 윤곽을 밝히려고 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판 간행 당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도, 전제하고 있는 지적 틀도, 현재에서 보면 오래됐음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우 30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망각하기에는 충분히 길지만,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에는 적당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눈앞에 있던 것은 과연 민주주의였는가? 만일 민주주의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면, ‘전체주의는 형태를 바꿔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을 생각하기 위해 약간 관점을 과거로 물리는 것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결코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1. 일본어로 번역된 주된 논문으로는 다음이 있다. 「民主主義という問題」(本郷均 訳, 『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二〇世紀)』 수록), 「人権と政治」(松浦寿夫 訳, 『現代思想』, 17巻 12号, 1989年 ; 18巻 4号, 1990年(이 책에 수록), 「デモクラシーの社会学のために」(竹本研史 訳, 『アナール 一九二九―二〇一〇』, 第3巻, 藤原書店, 2013年). [본문으로]
  2. 그 중 카스토리아디스의 논문을 모은 것은 이미 일본어 번역이 있다. 『社会主義か野蛮か』(江口幹 訳, 法政大学出版局, 1990年). [본문으로]
  3. C. Lefort, « L’échange et la lutte des hommes », Les Temps modernes, nº64, 1951.(『歴史の諸形象』 수록). [본문으로]
  4. 일련의 논쟁은 다음의 일본어 번역에서 읽을 수 있다. サルトル, ルフォール, 『マルクス主義論争』, 白井健三郎 訳, ダヴィッド社, 1955年. [본문으로]
  5. E. de la Boétie, Le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Paris, Payot, 1976. [본문으로]
  6. E. Morin, « Claude Lefort(1924 -2010). Avec Lefort », Hermès, La revue, no. 59, 2011. [본문으로]
  7.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48頁 이하. [본문으로]
  8. 江口幹, 『疎外から自治へ──評伝カストリアディス』, 筑摩書房, 1988年.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르포르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으나, 특히 エンツォ・トラヴェルソ의 훌륭한 책인 『全体主義』(平凡社新書, 2010年)의 관련된 부분은 유익하다. 또한 佐々木允臣 씨가 법학(특히 인권론) 분야로부터 일관되게 르포르를 논하는 것은 특필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佐々木允臣, 『自律的社会と人権』, 文理閣, 1998年을 참조. 이 밖에도 松葉祥一, 「民主主義の両義性──クロード・ルフォールと「政治哲学」の可能性」(『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 및 宇野重規, 「メルロ=ポンティ/ルフォール 身体論から政治哲学へ」(『現代思想』, 36巻 16号, 2008年)도 참조. [본문으로]
  10. 「民主主義という問題」, 일역본 앞의 논문, 40頁. [본문으로]
  11. 프랑스의 학술지 『정치와 사회』의 2003년의 “프랑스에서의 정치철학의 회귀”를 주제로 한 특집호에서 편집자들은 르포르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G. Labelle et D. Tanguay(eds), « Le retour de la philosophie politique en France », Politique et société vol. 22, no. 3, 2003. [본문으로]
  12. M. Gauchet,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Gallimard, Paris, 1985 ;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 Gallimard, t. 1 , t. 2, 2007, t. 3, 2010. 이하도 참조. マルセル・ゴーシェ, 『民主主義と宗教』, 伊達聖伸・藤田尚志 訳, トランスビュー, 2010年. [본문으로]
  13. アラン・カイエ, 『功利的理性批判──民主主義・贈与・共同体』(藤岡俊博 訳, 以文社, 2011年)을 참조. [본문으로]
  14. ジャン=ピエール・ルゴフ, 『ポスト全体主義の民主主義』(渡名喜庸哲・中村督 訳, 青灯社, 2011年)을 참조. 또 최근에는 남프랑스의 한 마을로부터의 정점 관측에 의해, 20세기의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형을 묘사하고 있다. 『プロヴァンスの村の終焉』(伊藤直 訳, 青灯社, 2015年)을 참조. [본문으로]
  15. W. Breckman, Adventures of the symbolic : post-Marxism and radical democrac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본문으로]
  16.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フィリップ・ラクー=ラバルト, 「政治的パニック」, 柿並良佑 訳, 『思想』, 岩波書店, 1065号, 2013年. [본문으로]
  17. P. Lacoue-Labarthe, J.-L. Nancy(dir.), Le retrait du politique, Galilée, 1983. [본문으로]
  18. O. Marchart, Political Difference in Nancy, Lefort, Badiou and Laclau,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7. [본문으로]
  19.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 『不和あるいは了解なき了解──政治の哲学は可能か』, 松葉祥一 dhl 訳, インスクリプト, 2005年, 167頁. [본문으로]
  20.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民主主義の実相」, 『フクシマの後で』, 渡名喜庸哲 訳, 以文社, 2012年. [본문으로]
  21. 특히 다음이 중요하다. C. Habib et C. Mouchard,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 Éditions Esprit, 1993 ; H. Poltier,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 Genève, Labors et Fides, 1998 ; N. Poirier(éd.), 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éxpérience démocratique, Le Bord de l’eau, 2015. [본문으로]
  22. B. Flynn, The Philosophy of Claude Lefort,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5. [본문으로]
  23. 그 기록은 우선 정치철학계의 학술지에 게재되고(Constellations, vol. 19, no. 1, 2012), 더 나아가 다음의 증보판으로 출간됐다. M. Plot(ed.), Claude Lefort. Thinker of the Political, Palgrave Macmillan, 2013. [본문으로]
  2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ジョルジョ・アガンベン, 『スタシス──政治的パラダイムとしての内戦』(高桑和巳 訳, 青土社, 2016年)을 참조. [본문으로]
  25. エルンスト・カントーロヴィチ, 『王の二つの身体』, 小林公 訳, ちくま学芸文庫, 2003年.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