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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그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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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 | 신광현 옮김
 

우리 학술대회의 주제인 “새로운 전지구적 문명을 향하여: 민중과 민족ㆍ지역 운동들의 역할”은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과 그에 대립하는 용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나의 발표도 이 용어들을 묶어 보면서, ‘문명’(civilization)ㆍ‘문화’(culture)ㆍ‘시민사회’(civil society)와 ‘민족’(nation)ㆍ‘지역’(region)ㆍ‘민중’(people)의 개념에 초점을 맞춰볼 것이다. 이 용어들의 의미는 역사적 국면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이념적 색채를 띠면서 눈에 띄게 변해왔다. 이 용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치적인 손익이 달라져왔고, 각각의 용어를 둘러싸고 커다란 담론 싸움이 치러져왔다. 이러한 싸움의 승패가 싸움전에 미리 판가름 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이 점은 세기말을 맞이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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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처음에 나열한 ‘문명’과 ‘문화’의 개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유럽어에서 이 두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사뭇 다르다. ‘문화’라는 말은 시골 출신이다. 농부들이 사는 세상에서 태어난 이 말은 원래 자연에 있는 산림과 나무를 경작한다는 뜻인데, 이 말에는 아직도 이러한 의미가 남아 있다. 반면에 ‘문명’이라는 말은 도시 출신으로, 시골을 벗어난 시민들이 사는 세상【?태어난다. ‘문명’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쓰게 된 것은 이 용어를 주요 주제로 다루었던 계몽주의 때부터이고, ‘문화’라는 말을 요즘처럼 쓰게 된 것은 이보다 조금 뒤인 원(原)낭만주의 혹은 소위 반계몽주의 문헌에서부터이다. 19세기 동안에는 어원과 상관없이 이 두 용어가 종종 호환되기도 하면서 대체로 평화롭게 공존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들어와서 이 두 용어는 처음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을 찾아볼 수 있는 고전적인 문헌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18년 7월 독일에서 간행된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서구의 몰락』(The Decline of the West)이다. 그의 시각은 오늘의 시점에서 되짚어볼 만한 것이다.

슈펭글러의 목적은 모든 인간사회를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세계사의 형태학’(morphology of world history)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럽중심주의를 처음으로 비판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작금에 서구 유럽이 역사를 보는 틀은 위대한 문화들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우리 유럽인 주위의 궤도를 따라 돌게끔 만드는 것으로서, 이것의 가장 적절한 명칭은 역사의 천동설이다. 이 책이 내세우는 체계는 내가 역사 영역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으로 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체계는 서구의 문화가 인도ㆍ바빌론ㆍ중국ㆍ이집트ㆍ아랍ㆍ멕시코의 문화들에 비해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러한 문화들은 역동적인 존재가 만들어낸 독립된 세계이고 역사를 전체적으로 그린 그림에서 차지하는 면적에 있어 유럽문화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허한 허구에 불과한 단 하나뿐인 단선적인 역사 대신에, 나는 다수의 힘찬 문화들이 엮어내는 드라마를 본다. 이 드라마에서 문화 하나하나는 모(母)지역의 토양에서 원초적인 힘으로 솟아나고,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이 토양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각기 자신의 질료, 자신의 인간을 자기 자신의 형상으로 각인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 자기 자신의 열정, 자기 자신의 삶, 의지와 감정, 자기 자신의 죽음을 누린다. 정말로 여기에는 지성의 눈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색깔과 빛과 동작이 있다. 여기에서 문화ㆍ민족ㆍ언어ㆍ진리ㆍ신ㆍ풍경 들은 참나무와 소나무의 꽃과 가지와 잎새가 피어나고 시들듯이 그렇게 피어나고 시든다. 문화 하나하나는 새롭게 자기를 표현할 가능성을 지니며, 이 가능성은 돋아나고 무르익고 썩어 영영 사라진다.(…) 이 문화들은 생명의 정수가 고양된 것으로서 들판의 꽃들이 그렇듯 절묘한 무작위성 속에서 자라난다. 온갖 나무와 짐승이 그렇듯, 이 문화들은 뉴튼의 죽은 자연이 아니라, 괴테의 살아 있는 자연에 속한다.”

한편 슈펭글러는 문명을 문화와 대립되는 것 -- 좀더 정확히 말하면 문화가 죽어 경직된 것 -- 으로 이해했다. 문명은 “이러한 유기체적 양식의 경이로운 성장과 퇴화”가 사멸해가는 단계이다. 이 점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문명은 개화된 인간의 종(種)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표피적이고 인위적인 상태이다. 그것은 종말이다. 삶 뒤에 오는 죽음이고, 뻗어나가기를 멈추고 굳어진 상태이다. 지성에 경도된 시기이고, 어머니- 대지를 밀어내는, 돌로 만들어져 사방을 석화시키는 세상-도시이다.(…) 그것은 끝, 되돌릴 수도 없는데 내적 필연성으로 도달하고 또 도달하게 되는 끝이다.” 서구는 이러한 단계에 도달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몰락’ -- 독일어의 ‘Untergang’은 ‘쇠퇴’를 의미하는 영어의 ‘Decline’보다 훨씬 강도 있는 단어로서 ‘함몰’이나 ‘붕괴’의 뜻에 가깝다 -- 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펭글러가 보기에 한때 살아 있던 문화가 다 죽어가는 문명으로 전개되는 증후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중 첫째는 새로 대두한 서구의 제국주의였다. 슈펭글러가 쓰기를, “제국주의는 철두철미 문명이다. 이 끔찍한 형태가 지금 서구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이 찾아든 길이다. (…) 팽창주의는 파멸이다. 뭔가 악마적이고 악착같은 데가 있는 이것은 세상-도시의 단계에 접어든 말기의 인류를 붙잡아놓고 강제로 봉사하게 하며 바닥이 날 때까지 부려먹는다.”

산업주의 또한 출발은 멋지게 했지만 파멸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계- 산업의 속성은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가도 자기의 논리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와 기업가는 지금에 이르러 처음으로 그 괴력을 발휘하게 된 기계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된다. 서구의 산업은 다른 문화들의 오랜 전통을 바꿔놓았다. 경제생활의 물줄기는 석탄왕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와 원자재가 생산되는 지역을 향해 흐른다. 자연은 소진되고, 지구는 파우스트적 에너지의 역학에 희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의 문명에서 기계보다도 더한 괴력을 쓰는 것이 또하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거대한 힘을 가진 것은 이러한 지능적 세력을 덮쳐 공격하는 돈이다. 산업은 소지주처럼 땅에 묶여 있다. 산업은 터전이란 것이 있어야 하고, 그 자재는 땅에서 나와야 한다. 거대금융자본만이 전적으로 자유롭고, 아무 데도 묶여 있지 않다. 1789년 이후로 점점 더 거대해지는 산업이 신용거래에 의존할 필요가 생기는 것을 틈타서 은행과 증권거래소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발전하였고, 앞으로 이들만이 유일하게 힘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슈펭글러는 금융계의 승리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돈도 성공의 막바지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문명이 그 종국을 맞이하게 되는 마지막 결투, 즉 돈과 피 사이의 결투가 곧 벌어질 것이다. 씨저주의가 도래하면서 돈의 독재와 돈의 정치무기인 민주주의가 와해된다.(…) 돈은 피만이 쓰러뜨리고 없애버릴 수 있다.” 이러한 사태가 이 문화가 역사 속에서 맞이할 마지막 장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장면이 끝을 맺으면서 서구에서 역사가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문화가 탄생되기 전에는 역사가 없는데, 다시 이처럼 역사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문명이 한껏 성장하여 그 궁극적 형태를 띠게 되면서 그 안의 의미있는 존재가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진되어버린 직후부터이다”라고 슈펭글러는 썼다. 실제로 슈펭글러의 책이 예언해낸 것이 있다. 그는 파시즘의 대두를 처음으로 정확히 내다본 것이다.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씨저주의의 소리없이 단호한 발걸음”을 피할 수 없는 종말로 환영했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우리가 선택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강요되기도 한 이 방향은 좁은 테두리 안에 정해져 있다. 이 테두리 밖에서 삶은 살 가치를 잃는다. 우리가 가진 자유는 이것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저것을 할 것인가를 고를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를 자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는 필연이었고, 이 필연은 서구가 “존재(Being)의 부름에 조용히 봉사하며” 시야에서 사라질 때, 이러한 서구의 소멸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매듭지을 필연이었다.

접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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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슈펭글러가 자신의 체계를 잉태했던 지적 토양과는 전혀 다른 지적 토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세기말을 둘러싼 안개 속에서 기묘한 유사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주제가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의 주요한 논의거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프랜씨스 후꾸야마(Francis Fukuyama)가 이 주제를 제목으로 하여 쓴 책이 전세계적으로 부상한 것이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사의 종언이 서구의 몰락을 동반하는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소련권 공산주의의 붕괴에 따른 서구의 전면적인 승리의 논리적 결과로서 받아들여진다. 후꾸야마의 책은 레이건 집권시의 국무성 안에서 기안된 것이지만, 냉전에서의 미국의 승리를 위해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이 책이 초래할 수 있는 자만감이 가져올 위험을 경고하며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행정부에서 반란진압 전문가로 일했고 지금은 하버드 대학의 전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쌔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었다. 1년 후인 1993년 여름에 헌팅턴은 후꾸야마의 것에 맞서는, 시대 흐름에 대한 자신의 진단을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라는 전략적 제목을 달아 발표했다. 헌팅턴의 주장은, 냉전이 종식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사라짐에 따라 지구상에 이데올로기의 분쟁이 끝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적대적으로 서로 맞서는 과정으로서의 역사가 종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분쟁의 근본 원천은 최우선적으로는 이념적인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 인류의 주된 분열은 문화적인 것이 될 것이며, 가장 지배적인 분쟁의 원천도 문화적인 것이 될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 전지구의 정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헌팅턴은 자신이 쓰는 문명의 뜻이 “최상위에서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묶어주는 것이며, 인류를 다른 종과 구분지어주는 것에 버금가는 가장 폭넓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슈펭글러에 나타나는 이 말의 부정적 의미가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헌팅턴에게 문명은 상위문화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상위문화로 서구, 유교, 일본, 이슬람, 힌두, 슬라브 정교, 라틴아메리카와 (이게 정말 문명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므로, 다소 회의적으로 포함된) 아프리카 문화등 여덟 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문명들은 정치체제의 차이보다 훨씬 골이 깊고 오래가는 상반된 가치체계를 구현하고 있으므로 서로 충돌하게끔 되어 있다. 이 문명들을 구분짓는 것의 으뜸은 종교이다. 왜냐하면, 헌팅턴이 단언하는 바에 따르면, 종교가 “현대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일으키고 움직이는 중심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명들을 갈라놓는 가장 위험한 분기선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심각한 심연은 헌팅턴의 말로 “서구와 나머지” 사이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서구의 문명만이 진정으로 “개인주의ㆍ자유주의ㆍ의회주의ㆍ인권ㆍ평등ㆍ자유ㆍ법치ㆍ민주주의ㆍ자유시장”에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문명들은 서구가 이것들을 퍼뜨리려는 노력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문명이 단순히 믿음의 체계가 아니라 힘의 체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문명의 충돌은 머릿속의 관념에서 무기를 드는 행위로 진행되게끔 되어 있다. 헌팅턴의 말에 따르면, 서구는 지금 군사적ㆍ경제적ㆍ정치적 힘이 유례없는 절정에 와 있으며,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어느정도는 UN과 IMF의 깃발 아래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듯, “‘세계 공동체’라는 용어 자체가 미국과 서구의 다른 힘있는 국가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책 절차에 지구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그럴듯한 집합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서구는 바짝 긴장하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적대 문명들의 커져가는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가장 흉흉한 위험은 서구의 적이 되는 유교와 이슬람이 힘을 합치는 것일 텐데, 그 불길한 징조가 중국이 중동에서 반역적인 무기거래를 하는 데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국도 방어태세를 늦출 수 없는 입장이다. 다음 세기의 중엽에 접어들면 히스패닉계나 비백인 인구가 다수인종을 차지하게 될 속불편한 전망에 직면한 미국으로서도 이들을 기존 가치에 동화시키지 않으면 파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슈펭글러도 이해할 법한 말로 헌팅턴이 내리는 결론은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문명이 인류를 모으고 헤친다.(…) 신뢰와 가족, 혈연과 믿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찾고, 싸움을 마다 않고 목숨을 버리기까지 할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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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뒤인 1995년 여름에, 후꾸야마의 두번째 책인 『신뢰』(Trust)가 출판되었다. 이 책의 관심은 헌팅턴의 것과 눈에 띄게 중첩되어 후꾸야마가 책의 서두에서 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후꾸야마는 “헌팅턴이 이제부터는 문화적 차이가 더 부각될 것이고 모든 사회가 그 안의 문제를 다룰 때건 바깥세계를 다룰 때건 문화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본 것은 정확히 본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헌팅턴이 제도 면에서 역사의 종언이 왔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문명들 사이에 폭력적인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반면에, 후꾸야마는 문화적 차이가 오늘날의 사회를 의미있게 차별화하는 요인으로 남아 부상하게 되는 것 자체가 제도적 틀로서의 자유주의-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전면적인 승리를 거둔 덕이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공유하는 선진 산업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국가간에 힘을 겨루는 무대가 평화로운 경제적 경쟁 쪽으로 옮겨졌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조상에게 물려받은 도덕적 관습으로서의 문화가, 지역이나 더 큰 단위에 퍼진 문화보다는 한 민족에 고유한 문화가 핵심적으로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한 사회의 문화가 그 사회의 산업조직이 갖게 되는 양상과 그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르는 경제적 계약에서 발휘되는 신뢰의 수준을 정하는데, 바로 이것들이 그 사회의 종합적인 효율성과 경쟁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후꾸야마는 그가 기대고 있는 헤겔의 이론에 발맞추어 자본주의 경제하의 경제행위 주체를 가족상업(family business)ㆍ경영기업(managerial corporation)ㆍ국가사업(state enterprise)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이들 중 국가사업은 특성상 가장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고, 가족상업은 내재적 한계를 안고 있다. 경영기업이 헤겔의 이론에서 경제생활의 영역으로 설정된 시민사회에 가장 적합한 형태이다. 문화는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적용 범위가 넓은 비개인적인 신뢰에 의존하는 대단위 기업이 주가 되는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이보다 훨씬 낮은 신뢰 수준에서 소규모 가족회사와 거대한 국가산업의 저급한 조합을 보여주는 문화이다. 미국ㆍ일본ㆍ독일이 서로 다른 식이기는 하지만 전자의 경우로서 두드러지고, 이딸리아ㆍ프랑스ㆍ중국이 후자에 속하는 선도적 예이다. 후꾸야마는 이러한 각각의 나라에서 자연발생적인 사회적 친화성(즉 높은 신뢰)을 높이거나 아주 없애는 특정한 문화적 유산이 무엇인지를 찾아본다. 미국에서는 종파적 프로테스탄티즘이, 일본에서는 봉건적 결연이, 독일에서는 길드 전통이, 중국에서는 유교 윤리가 이러한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경우, 후꾸야마의 표현으로 파격적인 경우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은 미국ㆍ독일ㆍ일본의 성공을 보장해준 거대한 사기업의 형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은 가족통치가 특징이다. 이런 역설이 어떻게 가능할까? 후꾸야마는 그 대답을 박정희가 이끈 예외적으로 “목표가 뚜렷하고 능력이 있는” 국가에서 찾는다. 그는 박정희가 “잘못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규율 잡힌 엄격한 사생활을 영위했고 경제적으로 나라를 어느 쪽으로 끌고가야겠다는 뚜렷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가 가졌던 선견지명의 지도력 덕택에 -- 후꾸야마의 판단으로는 밑바탕이 신뢰의 범위를 혈연집단 밖으로 넓히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저(低)신뢰사회에 머물러 있는 데도 불구하고 -- 한국이 고(高)신뢰사회에 비견되는 경제 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가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은 한국과 같이 보기 드문 통제경제정책 국가를 흉내내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자본은 정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성될 수가 없다. 정부는 사회적 자본을 감소시키기는 해도 증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이 미국에는 특별한 어려움을 안겨다준다. 미국에는 나라 곳곳에 자발적인 회합이 많다는 사례가 보여주듯이 전통적으로 축적된 고신뢰가 있지만, 이것이 철저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소모적인 측면에 의해 심각할 지경으로 고갈되어왔다. 가족과 이웃과 정치질서에 대한 믿음이 와해되고 이것의 결과로 범죄ㆍ마약ㆍ소송ㆍ아노미와 같이 악명 높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데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권리에 대한 교활한 숭배”가 한몫을 해온 것이다. 연방정부는 이런 경향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아마도 미국의 사회적 친화력의 원천인 프로테스탄트로 되돌아가는 것이 신뢰의 끈을 다시 살리고 그럼으로써 번영의 샘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종파는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버려진 지역에서 새로운 노동윤리로 줄곧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같은 처방으로 북미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유대를 되살릴 수는 없을까? 후꾸야마는 자기 나라 국민에게 기독교 신앙을 좀더 너그럽게 보아줄 것을 조심스럽게 촉구하면서 그의 책을 끝낸다. 그는 동료 장로교인인 세계사가(世界史家)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인은 종교와 종교가 가져다줄 수 있는 사회적 이윤에 대해서 좀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 교육받은 사람 중에 많은 이가 특정한 종교 양식,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의 양식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고, 이들은 자신이 그런 교리를 넘어섰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인의 자발적 결합 기술을 증진시키는 면에서 종교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기대를 걸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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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이러한 생각들에서 문명과 문화가 담론적으로 재발견되는 것은 어떤 논리 때문일까? 양차대전 사이의 독일에 널리 퍼져 있던 화두이기도 했지만, 슈펭글러처럼 이 두 개념을 대립시켜놓고 보는 일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최근의 논의에서는 이 두 개념이 훨씬 잘 상통하는 것으로 쓰이게 되었다. 둘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지리적 범위에서 나올 뿐이다. 헌팅턴은 일본이 독자적인 문명을 가졌다고 보고 있으므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슈펭글러도 일본을 분류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그는 근대 일본사회를 서구문명의 일부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문명은 전형적으로 지역적인 것이다. 반면에 문화는 후꾸야마가 보기에 본질적으로 민족적인 것이다. 이 두 사상가가 보이는 또 다른 차이점은 시국 진단에서 나타난다. 헌팅턴은 슈펭글러가 서구의 장기적 미래에 대해 가졌던 불길한 예감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슈펭글러와 마찬가지로 문명이 원래 서로 이질적일 뿐 아니라 상호침투가 되지도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후꾸야마는 자본주의가 분명히 전지구적 승리를 거두었다고 확신하므로 훨씬 낙관적이어서, 사회에서 의식적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이 먹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화를 상대적으로 가변적인 것으로 취급하려 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헌팅턴과 후꾸야마가 함께하는 이론적 움직임이 있다. 그것은 이제 시장과 의회에 구현된 자유세계의 명분이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에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전략적 관심의 무대를 냉전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전장에서 탈냉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구획선으로서의 문화적 대치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쉬지 않고 작용하는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동질적인 정치경제의 지배를 수립하고 나서 이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직 남아 있는 문화적 이질성의 잔재로 자리를 옮겨서 이것을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끔 통합시키려 한다고 보아야 세상사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적 이질성은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군사적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는 경보장치로나(헌팅턴), 아니면 치열한 경제적 경쟁에 복무하는 기제로(후꾸야마) 자리매겨진다. 이러한 전지구적 작용 밑에는 급박한 국지적 불안이 두 사람 모두의 이론에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지배가 어느정도인지에 대해서는 헌팅턴과 후꾸야마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만, 자본주의 세계지배의 적수 없는 맹주로서의 미국의 패권이 (한편에 중국과 이슬람, 다른 편에 일본이라는) 외부의 적과 (범죄문제ㆍ인종문제ㆍ개인주의라는) 내부의 우환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바깥의 낯선 모습들에 맞설 수 있도록 미국은 새로운 사회통합이 필요하며, 이것은 문화의 영역에서만 다시 확보될 수 있다. 여기서 두 사상가 모두에게 문화 -- 혹은 문명 -- 는 전(前)자본주의적 과거에서 물려받은 믿음과 관습의 복합체로 이해된다. 이 시기에 전형적인 사회통합은 초월적 신앙으로 이루어지므로, 여기서 이들은 “모든 문화의 본질은 종교이다”라고 단언한 슈펭글러와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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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정치적 논의에서, 문명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은 얼마나 지배적인 논제가 되고 있는가? 다른 경로를 따라 부상해온 또다른 주제가 하나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개념의 기원은 물론 스코틀랜드 계몽운동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당시 애덤 퍼거슨(Adam Ferguson)과 그외 다른 사람들이 18세기에 새로운 상업적 경제가 도래한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이 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헤겔은 이 말을 부상하는 자본주의 시장과 그것을 조절하는 제도로 구성되는 ‘물질적 필요의 체제’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맑스에 와서는 사유재산과 계급적 불평등의 영역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영역은 시민사회 위에 헤겔적인 국가가 위치할 수 있는 내재적 비밀이었고, 이 개념의 독일어 표현인 ‘bu¨rgerliche Gesellschaft’가 시민사회이면서 동시에 부르조아사회를 지칭하는 모호함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실상을 잘 표현해준다. 20세기 초에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시민사회를 시장이라는 경제적 영역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범주를 벗어나는 여러 정치적ㆍ문화적 제도를 통하여 특정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한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이데올로기적 영역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용어의 의미를 더욱더 변형시켰다. 이 마지막 변용에서 시민사회의 개념은 혁명적 노동운동을 위한 지적 투쟁의 무기가 되도록 조정된 것이었다.

50년 후에 그 함의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쏘비에뜨 영향권에 있던 기간의 마지막 시기 동안 동구 유럽에서, 한때 맑스주의 진영을 이루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의 반체제적 지식인들은 당시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깃발로서 시민사회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와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산주의 국가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이것을 약화시키는 모든 정치적ㆍ종교적ㆍ경제적 힘들을 시민사회와 동일시했다. 이리하여 한때는 착취와 환상의 영역을 지칭하는 비판적인 개념이었던 말이 이제는 진실성과 자유의 영역을 일컫는 긍정적인 원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새로운 용법에 있어서 자본주의는 적이 아닌 암묵적인 지향점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이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말하지 않고, 다수의 속박받지 않는 사회구성원에게서 솟아나는 다양한 표현과 자발적인 연합이라는 좀더 고상한 이상들에 대해서 말해준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 형태를 취한 채, 이 말은 비판적 사회이론의 후예에게 다시 흘러들어왔고, 최근에 이 개념을 하버마스가 채택했다. 그는 한때 부르조아 사회(bu¨gerliche Gesellschaft)였던 것을 그 말의 모든 절충적함의를씻어내어이제는흠잡을데없는시민사회(Zivilgesell-schaft)로 만드는 의미심장한 수정을 가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민사회를 이론적으로 연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체코계 영국 사회학자인 어네스트 겔너(Ernest Gellner)에게서 나왔는데, 1994년에 출간된 그의 마지막 주요저서의 제목은 『자유의 조건 -- 시민사회와 그 경쟁자들』(Conditions of Liberty: Civil Society and its Rivals)이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서구가 쏘비에뜨연방에 대해 거둔 승리의 역사적 이유들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사유화된 상업경제에 토대를 두어 국가로부터 독립된 일군의 다양한 제도들로서 시민사회가 번성하고 있는 데서 찾는다. 쏘비에뜨 공산주의는 이런 복합체를 예외없이 완전히 억눌렀고, 그럼으로써 서구 시민사회가 확약해주는 더 높은 생산성과 정치적 자유에 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러한 견해는 현대세계의 풍경을 꽤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인 듯하다. 즉, 서구 유럽인의 조건들을 향유하고자 하는 동구 유럽의 결심에서 현대의 상황이 비롯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관점은 지역적 또는 민족적으로 계승된 문화들간의 차이점들에 기반을 두지 않고 현대세계를 보는 방법인 듯하다. 그러나 왜 겔너가 서구의 승리를 ‘시민사회’의 우월성으로써 설명하고, 서구 이데올로기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우월성으로 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여기에 대한 답은 많은 점을 드러내준다.

겔너는 민주주의를 시민사회와 대체할 용어로 쓰는 것을 명백히 거부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자유는 국가의 불간섭을 필요로 하지만 꼭 다수의 지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주의 모델은 제도나 문화가 결정하는 행위를 뒤따르기보다는 그것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민주주의는 시장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안정된 구조 내에서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은 선택들을 하는 데는 뛰어난 방식일지 몰라도, 민주주의가 가치체계들의 총체적 사회구조를 놓고 선택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인정해주는 것은 순환논리에 빠지거나 불합리에 빠지는 꼴이 된다.(…) 주요 사안들에 민주주의적 모델을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은 기술적인 이유가 아니라 논리적인 이유에서 그러하다. 주요 사안들이 이 방식으로는 처리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안들이 이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아직 선택을 할 자아나 정체성, 비전, 또는 가치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문화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달리 말하자면, 서구의 승리에 대한 제도적인 설명인 것처럼 출발한 것이 결국에는 서구의 우월성을 최종적으로 구별시켜주는 요소로서의 문화 쪽으로 다시 빠져든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입장이 너무나 분명히 함축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주의가 논리적으로 문화에 종속되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적 범주로서 받아들일 수 없고 그 대신에 시민사회를 채택해야 한다면 시민사회 자체의 구성이 결국은 문화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을 당장 확인시켜주는 것은 겔너 책의 “시민사회와 그 경쟁자들”이라는 부제에서 “경쟁자들”이라는 복수의 표현이다. 이것이 복수가 되는 것은 우선 그가 설명하고 있듯이 쏘비에뜨라는 적은 패배당했지만 시민사회의 또 다른 거대한 적, 즉 호전적인 이슬람은 살아남아서, 실질적으로는 어떤 면에서도 사회를 다원화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경제를 현대화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아직도 서구의 문화에 저항하는 또 다른 문화인 것이다. 게다가 회교 세계 그 너머로는 극동이 있는데, 여기에서 일본과 한국 같은 사회들의 경제적 성공은 겔너도 시인하듯이 개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서구사회의 척도가 되는 사회적 풍토”가 아니고 대신 “본래부터 보수적이고 집단적이고 전통적인 문화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좋든 싫든 경제적 비효율성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파멸의 천사가 언제나 자유의 편을 돕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 말과 함께 우리는 완전히 한바퀴를 돌아서 헌팅턴의 우려로 다시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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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적 정체성(正體性)을 문화로 보고, 경제적 효율성을 문화에서 찾고, 시민사회를 문화로 인식하는 등 문화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논의가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세계 안에서 떠오르는 데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법전화되어 있는 자유시장의 순수 원칙들은 문화적 차이를 역사적으로 의미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탈냉전세계의 강력한 대안적 전망으로 남아 있다. 이 관점에서는 오직 비용절감 경쟁이라는 보편적 해결책만이 중요한데, 이것의 강제하에 모든 사회는 평등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문명과 문화라는 새로운 비유들에 조응하는 근본적인 현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분명하다. 이 표현들은 18세기 이래 자리잡은 전세계적 힘의 분배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는 동아시아의 부상에 대한 반응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임박했을 뿐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세계사적인 규모의 변화는 서방의 이데올로기적 지진계들에 반영되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90년대의 문화적 전망들에 대한 반격이 정확히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논리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최근 이러한 논의의 전개에서,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럭먼(Paul Krugman)과 올윈 영(Alwyn Young)은 한국, 대만, 남부 중국, 심지어 일본의 기적에 대한 주장마저도 현저하게 깎아내리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동아시아 경제들의 성과라는 것은 무슨 특별한 문화적 이점을 반영하기는커녕 단지 큰 규모의 고정자본을 점점 늘어나는 고등교육 노동력에 쏟아부은 여파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효용성의 성장이 실질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성공사례는 한때는 미국에 대한 심각한 도전자라고 생각되었지만 종국에 가서는 미국과 비교할 때 가망없이 낙후한 것으로 탄로가 난 소련이 걸은 그 궤도를 따라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생산적인 일본 자본주의의 성과조차도 과장되었다고 한다. 크럭먼의 논문 제목인 ‘아시아의 기적이라는 신화’(The Myth of Asia’s Miracle)는 그의 표현대로 일련의 종이호랑이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성장이 “일차적으로 투자 주도”에 의한 것이고 거기에 효율성의 개선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계속된 고투자가 “이윤의 점진적 축소에 봉착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진부한 재래식 경제이론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로 그대로 말이다. 자유시장의 논리란 문화적 이점이나 경제정책을 통해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이고 에누리가 없으며, 조만간에 모든 사회들을 공통의 기준으로 평준화시킨다는 것이다.

크럭먼의 메시지는 좁게는 헤게모니를 잡은 세력을, 넓게는 단일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비관적인 형태의 시장보편주의도 있다. 이 어두운 견해를 가장 설득력있게 발전시킨 미국 사상가는 군사전략가인 에드워드 루트백(Edward Luttwak)이다. 그는 크럭먼이 내세운 자유무역론과는 상반되게 오늘날의 민족적 경쟁은 국가가 필요에 따라 재정보조와 보호정책을 써서라도 비교우위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지역 경제학’(geoeconomics)을 치밀하게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트백의 메시지는, 그가 “터보엔진을 단 자본주의”라고 지칭한 것의 공학적 역학이 모든 종류의 전통적ㆍ직업적ㆍ개인적 안정을 파괴하면서 사회변화와 변혁의 속도를 극도로 상승시켜서, 선진 산업국의 전인구에게 견디기 힘든 긴장을 겪게 한다는 것이다. “제로 성장일 때에도 구조적 변화는 매우 빠를 뿐 아니라, 경제가 성장할 때에는 그만큼 더 빨라진다. 차가 멈추어 있어도 엔진은 계속 돌면서 삶을 마멸시키고 인간관계를 가루로 만든다. 증기롤러의 속도를 최대한 낮춰놓아도 엔진은 페라리(Ferrari)에 비견될 매분회전수(rpm)에 이른다.” 전통적인 우파도 통상적인 좌파도 전례가 없는 이러한 역사적 소용돌이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거대한 정치적 공간이 “과거보다 좋은 상품을 내놓는 파시스트 정당”에게 열린다. 이들은 세계화를 차단하는 장벽을 세워 대다수가 화이트칼라가 된 대중의 안정을 증진시키는 데 골몰한다. 루트백은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철자를 몰라도 오늘날의 터보엔진을 단 자본주의가 낳는 파시스트적 성향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묘하게도, 수용적 태도가 빠져 있기는 하지만 슈펭글러의 결론이 지금의 세상에 다시 한번 찾아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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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우리가 검토한 시대 해석은 모두 우파나 중도파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여기에서는 하나의 탁월한 견해가 무대를 장악하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이론적인 대립의 장을 마련한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포스트모더니즘,또는후기자본주의의문화적논리』(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는 현 시점에 나도는 몇몇 문제틀을 받아들이면서도, 이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 속에서 그러한 문제틀들을 결합시킨다. 제임슨은 80년대 중반에 이미 현재의 보수주의적인 주제들이 취할 방향을 예견하고 이 시기가 “쇠퇴하는 역사감각”과 “새로운 공간감각”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우파의 어떤 사상가보다도 일관되고 설득력있게 문화가 시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 제공처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저작에서 문화는 문명적 다양함의 시금석도 아니요, 생산효율성의 분류기호도 아니다. 문화는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 즉 사상 처음으로 진정 전지구적인 것이 된 자본주의가 현상적(現象的)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의복으로서, 경제 자체와 외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문화적’이라는 것은 ‘지구적’이라는 것과 대립되는 위치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가장 극적인 표현이 된다. 반면에 경제적인 것은 생산단계에서 여러 문화적 동기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의 최전방과 소비의 전영역에 걸쳐 균일한 문화적 원형질이 배어 있는 것이다. 그 원형질의 이름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위에서 우리는 우리가 출발점으로 잡은 유명한 개념들이 그것들의 의미 규정을 둘러싼 담론 투쟁 과정에서 거듭하여 예기치 못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전복되는 것을 보았다. 한때 진보적인 계몽주의 사상의 자랑스러운 깃발이던 문명의 개념은 독일 보수주의의 손아귀 속에서 퇴폐의 낙인이 되었으며, 고전적 맑스주의에게는 비판적인 용어이던 시민사회는 현대 자유주의의 어휘에서 매력적으로 눈길을 끄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우파로의 방향선회였다. 그러나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에 대해 쟁취한 지배권은 이와는 반대되는 성취를 이룬 것이다. 원래는 현상유지적이거나 탈정치적이고 틀림없이 기존질서와 결탁하고 있던 개념을 혁명적 좌파의 대의를 향한 이론적 통찰과 활력을 경이롭게 발휘해서 빼앗아온 것이다. 이것은 모든 역사적 역경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담론상의 승리였다. 1815년의 왕정복고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의기양양하게 최고수위에 달한 반동의 파고 아래 좌파의 낯익은 좌표들이 모두 잠겨버린 것처럼 보이는 반혁명적 헤게모니의 시기에 말이다. 이러한 승리가 쟁취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 책이 제시한 현대세계에 대한 ‘인식 지도 그리기’(cognitive mapping)가 이제는 완전히 상품화된 문화적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깊은 삶의 체험을 그만큼 인상적으로, 서정적이면서도 신랄하게 포착하였기 때문이다.

제임슨의 설명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티(탈근대성)는 지구 전체나 그 역사를 다 차지하지는 않는 다국적 자본의 세계공간으로서, 전지구적이면서도 동시에 국지적인 질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총체적인 체계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양식’이고, 따라서 아직 남아 있는 양식과 새로 부상하는 양식이 혼재하는 것을 허용한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세계가 아직도 서로 크게 다른 지역들로 나뉘어 있고 발전단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찌 그렇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제임슨은 또, 현재로서는 다국적 자본의 헤게모니에 맞설 능력을 지닌 새로운 노동자집단이 국제적인 규모로 형성된 바가 없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가 발전된 지역에서, “우리는 여전히 깊은 골 밑에 있으며 얼마나 오래 거기에 있어야 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혁신과 정치적 저항이, 종종 탈근대적ㆍ근대적ㆍ전통적인 주제들을 한데 아울러 엮으면서 중심부를 벗어난 지역에서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억할 만한 예로서, 제임슨은 지난 반세기 중 세계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민족영화를 만든 곳이 타이완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변화되는 불균등을 겪고 있고 불균등한 발전을 이룬 지역에서 자본주의를 막 경험하고 뿜어내는 감동적인 표현들이, 쇠약해진 중심이 아직까지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내용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힘있으며, 더 말해주는 바가 많고 특히 더욱 징후적이고 의미심장한 것은, 후기자본주의에서는 중심조차도 주변화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티로 인해 자본주의적 공간이 엄청나게 확장되었다는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탈식민화와 민족해방운동의 거대한 물결이 지나간 후로 세계 여러 민족들의 새로운 자기의식”이 정치적으로 도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명과 문화에 대한 보수적 이론가들의 예감은 여기에, 즉 “이렇듯 민중과 민족들이 자리잡은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인구학적 사실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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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제임슨이 묘사한 전지구적 질서 내에서 민중과 민족, 그리고 여러 지역들이 갖는 역할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문화가 자본의 전지구적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의 밑천을 얼마만큼이나 제공해줄 수 있을까? 그러한 문화는 다국적 소비의 상업적 문화보다 그 특성상 더 민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화가 그 지역의 문명과 맺는 관계, 또 이 문화의 유산이 모더니티나 포스트모더니티와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이것은 이 학술대회 전반의 문제제기이며, 나보다는 다른 연사들이 설명해주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문제들에 대해 매우 간략하게 몇가지만 언급하면서 발표를 맺고자 한다.

민족문화라는 개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섞여 있게 마련이다. 그 두 요소란 어떤 주어진 사회에서 고급예술과 사상의 집성체라고 이해되는 문화와 그 사회의 일상적 관습과 관행적 습관 및 풍습의 체계라고 이해되는 문화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바, 문화라는 용어의 이중적 -- 하나는 미학적, 하나는 인류학적인 -- 용법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맑스주의자들은 항상 민족문화는 그것이 약어변환하는(transcode) 사회가 계급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피해가거나 초월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한 문화는 계급을 초월한 공동의 가치체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레닌이 정확히 지적했다시피, 민족문화는 어떤 주어진 사회의 모든 사회적 계급의 생활경험을 반영하기는 하되 --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민족적이랄 수 없을 테니까 -- 불평등하게, 즉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지배계급의 지배 아래에서만 반영한다. 이 지배계급이 권력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문화적 매체 전체에 확실히 이들의 것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말해서, 민족문화의 주된 예술적ㆍ지적 성취를 낳는 것은 착취를 하는 계급이며, 이는 그들이 분업체계 내에서 여가와 학문에 다가갈 수 있는 특권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상적인 생활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수의 관습과 관행을 낳는 것은 노동계급이다. 물론 이것은 대략적으로만 나누어 말한 것이다. 예컨대, 시와 음악은 근원은 물론이거니와 그 재생의 힘까지도 민요에서 끌어온다. 회화와 조소도 언제나 수공예의 세계에 가까운, 손을 쓰는 예술로 남아 있다. 종교적 교의 또한 민중의 전설과 분리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마치 그 역으로 국가의 폭력이나 엘리뜨세력이 피지배계층에 간섭하여, 지배계층의 지배를 반영하는 온갖 종류의 습관적인 일상이나 거친 행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과 같다.

하나의 민족문화 내에 이러한 요소들이 특수하게 혼합되어 있는 양상은, 문제가 되는 그 사회의 계급투쟁에서 구체화된 세력균형의 양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어떤 민족문화가 그 민족의 역사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른 문화들보다 더 반동적일 수도, 혹은 그와 반대로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자기 자신의 나라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우리들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람시가 이딸리아와 프랑스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문화적 유산은 프랑스가 지니는 전통, 그가 “국민적ㆍ민중적” 전통이라고 부른 것을 못 가졌다고 비판한 것은 이러한 작업의 유명한 예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이딸리아에는 문화의 두 층위 간에 구조적인 간극이 있어서 이것이 각각을 약화시켜, 한편에는 야만적이고 미신에 사로잡힌 민속문화와 다른 한편에는 그것과 단절되어 있는 창백하고 뿌리 없는 지식인문화만을 남겨놓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자꼬뱅주의가 그 시대의 가장 발전된 정치적ㆍ철학적 사상을 가장 활기 있는 민중적 열정 및 관심과 한데 엮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가 보여주다시피, 오늘날의 민중운동들이 그들의 민족문화 중에서도 피지배계층의 경험에서 나온 요소를 전유하는 데 항상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소들은 너무나 많은 패배의 경험으로 점철되어 있거나 너무 오랫동안 수동적인 인내의 기록이 되어왔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 때맞추어 기운차게 동원되기에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민중적 정서가 세속성이라는 것에 사로잡힘으로 해서 상처받았음을 경고하는 트로쯔끼의 주장이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된다. 땅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군인이나 학자들의 전통을 그들 계급적 출처로부터 구출해서 민중적 대의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거의 언제나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계급들에게 부속된 기술이나 가치였고 그것들은 쇠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여러 명령들과 갈등관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 안에는 종종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아’ 마음껏 발휘되기를 원하는 반자본주의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맑스주의의 전통은 땅과 연결된 과거의 잔유물과만 연대를 맺고자 하는 속물적 민중주의와는 그 어떤 거래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충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혼합물로부터 최상의 민족문화를 추출해내어 깨끗한 그릇에 옮겨 담아 전지구적 자본과 그것의 지역적인 대리인에 대항하는 투쟁에 힘을 주는 활력제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문화가 지역주의나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다시 장악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이러한 위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독제는 지역 연대이다. 그 어떤 민족문화도, 인공위성을 사용하는 통신수단을 갖춘 다국적 자본의 세력에 성공적으로 저항하는 데에 필수적인 자원들을 자체 내에 모두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또 그 어떤 민중운동도 모자라는 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세계 전역에 걸쳐 모든 문화에서 끌어올 수 있는 국제적인 자원들 전부를 제것으로 삼을 능력은 없다. 가까이에서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문화들 속에서 투쟁을 지탱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던 그 지역 문화유산의 전항목에 대한 적극적인 의식이야말로 실현가능하면서도 유익한 일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전통적으로 이런 생산적인 형태의 국제주의가 가장 풍부한 대륙이었다. 아직까지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지만, 유럽연합도 적어도 이같은 국제주의를 위한 하나의 틀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동아시아는 라틴아메리카보다는 서유럽에 훨씬 더 가깝다. 이 지역은 외부의 침략은 물론이고 서로를 파괴하는 야만적인 전쟁과 정복에 대한 생생한 기억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유대가 각별히 깊은 지역에서 함께 교류하고 작업할 기회는 그 어떤 진보적인 정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논의를 시작할 때 언급한 개념, 즉 ‘문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문명에게 그 고귀한 원래의 의미를 찾아주도록 하자. 오늘날 문명이라는 말이 뜻하게 된 두 가지 의미 중 그 어느 하나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에게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문화적 독트린이 제시하는 바, 얼치기 식의 종교적 통합이나 가상적인 투쟁 따위는 필요치 않다. 그리고 단일한 자본의 문명이 세계를 에워싸고 삼켜버렸다는 경제적인 주장도 단순화와 수사의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제쳐놓을 수 있다. 이러한 개념 정의들의 이면에는 여태껏 흔히 있었던 오만함이 숨어 있다. 그러한 태도는 아시아인인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상기시킨다. 그는 어떤 유럽인에게서 서양문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생각으로야 좋지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구문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할 때 가져야 할 정신이다. 계몽주의에서 문명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의 원래 의미를 보면, 이 개념에는 물질적인 삶과 문화적인 삶이 함께 포함되며, 또 그것들이 인간애와 사회성의 세계로 변형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이러한 이상은 오늘날에도 그 현실성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항상 야만이라는 말로 표현된 그 반대 개념 역시 그 현실성은 여전하다. 1차대전중에 로자 룩쎔부르크(Rosa Luxemburg)는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하는 양자택일을 제시한 적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슬로건을 다음과 같이 바꿔서 되풀이할 수 있겠다. 즉 우리의 딜레마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문명이냐 아니면 복수(復數)의 자본주의 문명이냐가 아니라, 자본주의냐 아니면 문명이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문명이라는 것은 이제껏 인류가 본 적이 없던 다양함과 평등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申光鉉 옮김〕
 
* 이 글의 원제는 “Civilization and its Contents.”
(주) 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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