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전쟁으로서의 경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8.03.29 채무공화국의 종언 1장. 경제를 둘러싼 현재

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대략 2년에 2%의 인플레이션을 달성하는 것이 일본은행의 정책목표가 됐다. 20131월의 일이다. 이 책을 쓰는 20137월 현재, 시장의 반응은 더 좋다.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새 정책의 도입 전과 비교해 주가가 올랐고, 엔화가치는 떨어졌다. 장기금리의 행방이 불안스럽다고는 하나, 물가안정목표제와 더 한층의 양적 완화 대책은, 산뜻하게 출발선을 끊고 있다. 지진으로부터의 부흥도 에너지의 문제도 밀쳐내어 정권을 교체시키고, 중의원과 참의원 양자의 갈등까지 해소시킨 경제문제는 오늘날 하부구조로부터의 축복을 받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뭐가 나쁘고, 인플레이션이 왜 필요하고 어디까지 좋은 것인가라는 원론적인 얘기는 잠시 옆으로 치워두자. 일본에서의 경제의 정치적 각성과 월가나 중동에서의 겉보기에는 돌발적인 반란의 발생 등이 깊은 곳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지금은 따지지 말자. 아무튼 경제가 정치의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그 정치 쪽은 경제를 지금 어떻게 다루는가, 경제정책은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가에 일단은 주목해보자. 이 심층, 바로 하부구조로 내려가는 것은 그 후에도 늦지 않다.

“2년에 2%의 인플레이션이라는 목표가 발표됐을 때, ‘이코노미스트들의 기탄없는 논쟁을 나름대로 쫓아온 사람들 중에는, 1998년의 크루그먼의 유명한 제언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탄식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뭐야, 4%를 매년 15년 계속한다는 것 아닌가, 2년에 2%라는 초라한숫자로 좋다는 것인가? 제언은 중앙은행이 무책임하다는 것을 확신시키도록 약속을 한다고 주장했다. 무책임한 약속“4%15년 간이다. 만일 그것이 실현된다면 15년 후에 물가는 약 80%(=1.0415) 상승하기 때문에,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숫자이다. 급여생활자들의 평균 수입이 15년 후에 80% 늘어나는 G8 구성국가 따위는 상상하기 힘들며, 바로 무책임하다. 그러나 그런 숫자여야만 하는 이유는, 2년에 2%라는 온건한 숫자로는 디플레이션 탈출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실업률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도로 내리려면 2%로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책임을 떠맡는 듯한 온건한 목표는, 바로 온건하기 때문에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온갖 정책이 바닥난 듯한 심각한 디플레이션 크루그먼의 진단으로는 유동성의 덫에 빠진 상황(후술) 에서 탈출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미래의 경기가 확실하게 과열된다는 예측이며, ‘적당하고 합당한reasonable 약속은, 과열도 기다리지 않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으로부터의 탈출에 필수적인 임팩트를 쳐내고 약속의 이행을 불가능하게 한다. 때문에 책임을 현실적으로 맡기 위해서는 거꾸로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라는 셈이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면, 억지로 높게 밖으로 빼라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매우 명석하다고 평가받으며, 조예가 깊고, 인텔리가 좋아하는 역설을 주장하는 크루그먼의 제언은, 이것도 동시에 지적되듯이, 실행 불가능하다. 중앙은행의 단호한 약속이 주효해서, 예를 들어 5년 후에 디플레이션에서 탈각했다고 해보자. 그렇게 하면 어떤 전직 일본은행 직원은 말한다 중앙은행은 여론의 강한 비난을 견디며 무책임한인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를 잃게 된다. 그것은 너무도 분명하기에, 이런 언질(commitment)*은 원래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 정책은 확실하게 실패한다.”[주*] 경제학적으로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최적의 행동이 변화한다는 시간 정합성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금융정책은 오히려 처음부터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실제로 탄생 직후의 아베정권에 대한 크루그먼의 평가는 대개 허튼 소리 같다고 말한 것처럼 들린다. “아베는 재정지출에 관해 상식이 없고, 모두 잘못된 이유로 중앙은행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그는 실제로 재정적이고 화폐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다른 모든 선진국 정부가 매우 진지한(very serious)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꼼짝달싹 못하고 있을 때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완전히 긍정적positive이다.”[주**]매우 진지한 경제학의 교과서에는 정말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뭔가가 나쁘다고 읽을 수 있는 심정이 토로되어 있다. “진지한 경제학 연구로부터 축적되어 온 학문적 신조에서 보면, ‘2000년에 한 번의 금융위기에는 미증유의 규모의 거시 경제정책을!’이라는 수사학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숨김없는 심정인 것이다.”[주***]노벨상을 받은 크루그먼은 진지한 경제학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방언을 하는 작자로 변질된 것일까? 오히려 올바른 경제정책은 올바르지 않다고, 올바르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그것이 오늘날의 경제()적 올바름이라고 경제()의 현황에 관해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닐까?

コミットメント(commitment)는 영어에서 왔으며, ‘상관’, ‘맡김’, ‘위탁’, ‘위임’, ‘언질을 해줌’, ‘공약’, ‘맹약’, ‘약속등을 의미.

[주*] 翁邦雄, ポスト・マネタリズムの金融政策, 日本経済新聞出版社, 2011, 225-226.

[주**] 뉴욕타임스의 인터넷판에 있는 크루그먼의 블로그에 게재(2013112일자). https://krugman.blogs.nytimes.com/2013/01/11/is-japan-the-country-of-the-future-again/

[주***] 齊藤誠他, マクロ経済学, 有斐閣, 2010, ii-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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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있어서의 경제는 마치 장군에게 있어서의 전쟁과도 같다. 이기느냐 지느냐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이길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진지한 참모는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싸우라고도 싸우지 말라고도 말할 수 없이, 항상 승패는 반반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책임을 지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 새로운 일본은행 부총재가 학자 시절에 일본은행 식의 이론으로 도마 위에 올렸던 경향에 다름없다. “전례주의(前例主義)에 따라 핑계를 만들어내고, 내부로부터 불평이 나오지 않도록 조직을 잘 정비하고, 조직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능력”,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행 식의 이론의 구조 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단순히 조직의 이익에 집착해 시장에 화폐를 추가 공급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장으로부터 더 국채를 사라!, 인플레이션 타겟을 도입하라! 이것에 대해 머니 전쟁의 실무파 참모 전 일본은행 직원을 다시 한 번 등장시켜보자 는 마치 전쟁은 장군에게 맡기기에는 너무도 중대하다고 말한 크루그먼 같다. “원리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그 사회 속에서 실제로 가능한가·바람직한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가 된다.” 국채 구입 오퍼에 의한 양적 완화를 지나치게 하면 중앙은행의 재정기반을 파괴하고(=대차대조표를 상하게 하고’) 악성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것, 이것이 금융경제론의 견해가 아닌가! 그것에 대해 장군이 된 학자는 학자 시절부터 바로 장군인 체하며 대답했다. 인플레이션이 되면, “금융 긴축은 전투이다 그렇게 되면 싸우면 된다!

오늘날의 경제는 심리 전쟁이다. “~인 것처럼[심리 전쟁인 것 같다]”이 아니라, 심리 전쟁이다. 당사자들이 전쟁 수사학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럴 뿐인 게 아니라, 처방전의 기초/베이스가 되는 과학, 대상의 핵심이나 요체를 이루는 것은, ‘強気/弱気의 예측, 당사자의 책임감, 사람들로부터의 신뢰감등등의 모럴(도덕=심리)적 요인이라고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움직이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상대를 앞에 두고는, 비유가 아니라, 온건하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거나, 무모하고도 단호한 태도로 임할 수밖에 없는, 이런 옵션의 유효성도 또한 모랄적 요인에 좌우되는 것이다. 모랄적 요인은 정량화하기 힘들기에, 개입하면 개입의 전제조건을 변화시킨다. 그것도 자주 개입의 효과를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학이라는 정책과학의 대상은 끊임없이 정체불명의 불평을 터뜨리고 있는 섬세하고 연약한 반-병자(半病人)이며, 접근법으로서는 기본적으로, 엉덩이를 두드리고 격려하거나 (인삼을 눈앞에 매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참고 계속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달래면서, 인지행동 요법적으로 환경변화를 유도하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 뺨을 때리거나 쓰다듬거나. “사회의 심리학화가 아니라 사회과학의 심리학화이다.

그 때문에 대상의 자기치유력에 기대를 걸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편이 좋다는 입장도 출현한다. 실제로 앞의 클레소망의 잠언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밀튼 프리드먼은, 이렇게 계속했던 것이다. “통화는 중앙은행에 맡기기에는 너무 중대하다.”[주*] 중앙은행 지폐 등 발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 통화발행도 민간에 맡기는 편이 좋다 등의 주지의 자유주의 원리주의이다. 그의 신념을 패러프레이즈하면, 쓸데없는 것을 했으니 경제는 정체불명의 불평 터뜨리기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정치가 돈에 손대지 마라. 이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18세기 이후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입장과 확실히 비슷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고전파경제학이 대상으로 삼은 시장은, 상품에는 상대가격밖에 없는 (화폐는 그것을 표시하는 척도에 불과하다) 세계인 반면,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상품의 전반적 가격수준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도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밀튼 프리드먼의 테제는, 인플레이션은 본래의 시장(=고전파 이후의 정통 경제학이 대상으로 삼은 순수상품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터인 경제적 현상이라는 한탄처럼 지금은 들린다. 상품과 화폐가 뒤섞인 시장에는 더 이상 객관법칙이 없다는 경제학자의 체념처럼. 그렇게 체념한 인간에게 시장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닌데, 까탈스럽다. 현대의 시장은 그에게 속삭인다. 이곳은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는 다루지 못한다.

[주*] ミルトン・フリードマン, 資本主義自由』、日経BP, 2008, 112[밀턴 프리드만, 󰡔자본주의와 자유󰡕, 심준보·변동열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

그 까다로운 환자=의 비위를 상하지 않도록 온갖 술수를 부리는 것이 현대 경제정책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크루그먼을 필두로 하는 리플레이션(reflation) 논자들은 달콤한 거짓말과 진군나팔에 기대를 걸고, 관료학자는 평소대로 은근한 무례와 저자세를 권장한다. 화려하게 와서 허를 찌르거나, 아니면 수수하게 조금씩 하든가. 아무튼, 숫자와 진술statement의 조합이 무기이자 약이다. 누구에게나 당연하듯이,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침식하고 있다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것, 그리고 심리전에서의 말[]의 진행방식 중 하나이다. 지금 빨리 금(gold)을 사두자.

그러나 작전 옵션의 물음에 대한 차이는 없다. 그 점은 구로다 일본은행 새 총재가 말하는 상이한 차원의 금융완화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완화가 상이한 차원인 근거는 머니터리 베이스[주*]2배로 증가시키는것이라고 한다. 정책목표를 금리(익일 무담보 콜금리[주**])에서 머니터리 베이스’(정의는 차치하고 우선은 화폐량이다)로 옮겨가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질 제로 금리 방침은 여태까지와 다를 바 없고, 또한 국채 매입에 의해 머니터리 베이스인 양을 증가시키는 것은 1990년대부터 행해졌으며, ‘상이한 차원이 질적 방향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시라카와(白川) 총재 시절인 201010월에 도입된 포괄적 금융완화 정책은 이미, 실질 제로 금리의 유지, 물가 안정에 관한 시간축의 명확화(유연한 인플레이션 목표), 국채매입(양적 완화)의 세 가지 점을 기둥으로 하고 있으며, 새 총재의 방침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상이한 차원이라고 불러도 좋은 그것은, 90년대의 10년 동안 약 1.7배 불어난 머니터리 베이스2년에 두 배로 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만의 ‘4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15년 동안에도 비슷한, 엄청난 화폐 공급량 증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머니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이한 차원‘2년에 2의 숫자 그 자체에는 없다고 알고 있었다. 이 숫자를 상이한 차원답게 하는 것은, ‘머니터리 베이스를 증가시켜도 머니 서플라이(money supply)’(현재의 일본은행 공식용어로는 머니스톡’)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은 90년대의 경험인 것이다. ‘머니터리 베이스란 정확하게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상의 숫자(‘통화성 부재’)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늘어도 시장에 나도는 화폐량(이것이 머니 서플라이 = 머니 스톡이다)이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은 아닌 것에, 90년대의 일본경제는 시달렸다. 중앙은행으로부터 민간은행으로 화폐가 공급되더라도, ‘은행의 바깥, 심지어 금융업계의 바깥으로 화폐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디플레이션의 구조적 실천이라고 시장관계자는 알았다. ‘머니터리 베이스와 물가, ‘머니터리 베이스GDP의 관계가 되자마자, 더 희박해졌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은 심각했다. 그런 실증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양적 완화 정책의 무효성을 주장하는 이론적 논문도 다수 써졌다. 학자시절의 이와타 기쿠오(岩田規久男)의 현재 일본은행 부총재와, 현재는 학자이고 당시는 일본은행가였던 오키나 구니오(翁邦雄) 실무파 참모로서 우리가 등장하기를 바랐던 인물이다 , ‘머니터리 베이스머니 서플라이의 관계를 둘러싼 90년대 초반에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오키나-이와타 논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와타는 양자의 안정된 관계를 주장하고, 오키나는 부인했다).

[주*] 머니터리 베이스. monetary base, 현금통화와 민간금융기관의 법정준비금의 합계.

[주**] 익일 무담보 콜금리. 일본어로는 無担保コール翌日物’, 또는 無担保コールO/N이며, 영어로는 ‘Uncollateralized Overnight Call Rate’이다. 일본의 금융기관이 1년 이하의 이른바 단기자금의 거래(대차)를 행하는 콜(call) 시장에서, 무담보로 빌리고 약정한 다음날에 상환할 때의 금리를 가리킨다. 단기금융시장의 금리 중 하나. 일본의 금융정책에서, 지금까지는 일본은행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융통할 때의 금리인 재할인율利率である公定歩合이 정책금리로서 중시됐으나, 199410월의 금리자유화 이후에는 은행의 자금조달은 단기금융시장을 통하는 것이 주를 이루면서, 이 금리 조작에 의한 시장개입이 행해지게 되며, 20134월까지는 콜금리公定歩合 대신 무담보 콜 익일 금리가 일본의 정책금리의 역할을 맡게 됐다. 또한 비율 그 자체는 제로는 아닌 경우더라도,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경우는 거래를 중개하는 단기자금 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빼면[차감하면] 실질적인 금리가 거의 제로가 된다(비율 자체는 제로가 안 된다). 

상이한 차원인 것은, “2년에 두 배이면 최근 20년의 역사를 역전逆転할 수 있다고 하는 신념이다. 특히 신기한 이론적실증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미증유의 규모로 행하면 상이한 차원에 돌입할 수 있다고 하는 신념자체가 상이한 차원이다. 거기에 내기에 거는 자세가 상이한 차원이다. 물론 사들이는[매입하는] 국채의 규모만을 갖고서 상이한 차원을 격하게 말할 정도로, 일본은행 총재는 시장관계자를 얕보지 않는다. 사들이는 국채의 종류를 지금까지의 단기 국채뿐이었던 것에서 기간 40년의 초장기국채로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40년 후의 일본정부의 부채상환능력을 신용하고, 정부와 운명을 같이 할 생각으로 사는[매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래서 유동성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라고 경제학자나 투자가 무엇이 이문이 남을것인가, ‘리스크가 적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는 물을 것이다. 공적 채무의 총액이 이미 GDP2배에 달하고 있는 우리나라(그런 나라는 달리 없다) 정부가 40년 후에 상황능력을 갖느냐 아니냐라는 근본 문제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로금리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 은 은행권(銀行券)과 채권 사이에 보유득실에 있어서 차이가 없어진다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이자가 붙지 않는 채권 따위를 누가 살까? 금리가 발생하지 않을 때, 누가 현금의 유동성손에서 놓고 자신의 자산을 빌려주려고 할까? 일본은행이 에게서 채권을 사들인다면, 리스크가 없기에 는 채권투자를 해도 좋지만, 무이자이고 일본은행이 현금화하는 채권 등 현금과 똑같은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대로는 사용할 수 없는 채권보다 현금 쪽이 더 좋지 아니 할까? 이런 모양새로는 언젠가는 채권 가격이 내리고 이자율은 오를 게 틀림없으니까, 그때까지 자산은 현금으로 갖고 있자 . “존불Johnbull(=영국인)은 대부분의 것은 참아내지만, 2퍼센트의 이자는 참을 수가 없다”(케인스).[주*] 이자가 너무 내리면 화폐의 자산 수요가 무한대가 되며, 사용하지 않는현금이 쌓이게 되는 한편으로, 또한 누구도 기업의 생산활동에 자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경기를 자극하려고 해서 이자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유동성의 덫에 빠져들면,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것에 의한 양적 완화는 이제 환전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으로부터 채권이 모습을 감추게 됨에 따라, 이것과 교대해 중앙은행 내 민간은행 예금이 늘고 머니터리 베이스는 커지지만, 베이스를 포함한 머니스톡[통화량]은 내용이 (이자가 현재는 실질적인 제로의) ‘채권으로부터 (원래 이자가 제로의) ‘지폐로 대체되었을 뿐이며, 결과는 천엔짜리 지폐를 회수하고 만엔짜리 지폐를 배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주*] 원래는 19세기의 격언인 것 같다. 그것을 월터 배젓(Walter Bagehot, 19세기 영국의 경제평론가)가 인용하고, 이후 이를 케인스가 인용하고, 오늘날 유동성의 /함정에 관련해서 유명하게 됐다. ジョンメイナードケインズ, 雇用利子おょび貨幣一般理論(, 間宮陽介訳, 岩波文庫, 下巻, 2008, 81[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조순 옮김, 비봉출판사, 2007]. 

물론 장기 국채의 금리는 제로가 아니다. 그것 이상으로, 채권과 현금의 차이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들인[매입하는] 국채의 상환 기간을 늘리면, 그것들의 시장 가격도 올라서 이자율은 갈수록 떨어지며, 장기 국채의 장기라는 의미 이자가 높은 것 를 줄여버린다. 장기 이자율의 그런 저하는, 양적 완화가 목표로 하는 경기 자극/부양 효과이기도 할 것이다. 미온적인 일본은행의 새 직원의 눈에 비친 양적 완화를 오래 계속한 결과, 국채 이율[수익률]15년짜리도 이미 1퍼센트 정도이다. 5년 만기의 정기 예금 3회분과 같다. 그리고 정기 예금은 언제든 해약 가능하며 그것을 담보로 현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머니스톡에 포함시켜 셈해도 상관없다(그런 통계를 취하는 방식도 있다). 15년짜리 국채는 이미 현금유동성 스톡과 똑같다고 말할 수 있으며, ‘상이한 차원의 양적 완화는 상이한 차원의 정도에 대응해 미래라는 상이한 시간을 소멸시킨다. 그것은 다양한 채권을 점차 현금에 접근시키고, 스톡을 사용할=빌려줄의욕을 투자가에게 잃게 할 것이다. 이러한 함정[]’이 있기 때문에, 앞의 98년의 논문에서도, 크루그먼은 양적 완화를 무효라고 결론지었다. 잔재주를 부리는 금융정책에는 얼른 발을 빼고, 정부가 직접 시장에 수요를 들여오는 재정정책으로 향하라고 케인지언답게 권하기도 했다. 이것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원래 재원은 어떻게 할까? 국채를 추가 발행하고 그것을 더욱이 일본은행이 사게 된다면, 이 재정정책은 이미 금융정책이 아닐까?), ‘상이한 차원의 금융정책 그 자체는, 실행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상이한 차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새 정책의 도입 이후 약 6개월 동안 시장은 그것을 깨닫고, 장기 금리는 답보 상태에 있다. 현재의 상이한 차원은 내일의 평범함과 교환해서만 손에 들어올 수 있다. 신생 일본은행은 이윽고 자동적결과적으로 전례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바로 미래는 없다(No Future)” 정책이다.

그것을 예측한 것일까, 아베노믹스의 등장에 의해 정치적으로는 졌을일본은행 실무파 참모는, 시치미를 뚝 떼고 혹은 쓰라린 마음을 억지로 눌러잡고서 정부와 일본은행의 일련탁생[잘잘못에도 불구하고 행동운명을 같이 함]에 응원을 보낸다. “세부적으로는 다소 의견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정부와 일본 은행이 진심으로 협조하려고 하고 있다고 내외에 인식되는 것이 일본에게 특히 중요하다.”[주*]한 덩어리가 되어 미개척 지대로 돌입하자. 방침의 차이 등, 이 전쟁에 있어서는 어차피 기분의 차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예전에도 지금에도 방만한 경영[제아무리 예산을 써도 정부가 뒷받침하겠거니 하는 안이한 사고방식; 국가를 등에 없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 기관이나 단체]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까

[주*] 日銀金融政策のこれからの課題とはなにか, 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http://diamond.jp), 2013118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금융정책의 역사에는 시체가 겹겹이 쌓여 있다. 금리 다음에는 머니 서플라이[통화공급], 통화공급 다음에는 머니터리 베이스[주*]가 정책 지표로서 등장했지만, 모두 썩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다음은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가 됐다. 물가안정목표제라 해도, “대체로 ×년에 × 퍼센트를 목표로 한다는 옛 일본은행 식의 유연노선으로는 효력이 없으며, “×년에 × 퍼센트를 달성한다엄격한 커미트먼트commitment(약속·결의 최근 몇 개월 동안 이 말을 정말 많이 봤을 것이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순조로운 출발은 이른바 목표치약속·결의의 차이 바로 미치게 될 심리적 효과의 차이 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데, 경제학자 사이에서는 아베정권 탄생 이전부터 이런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인플레이션 타겟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IT라는 애칭으로 알려졌던 이 금융 체제(regime)20089[리만쇼크가 일어났을 때]에 사망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IT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IT가 중앙은행의 기치로서 우수한 것, 그리고 그 대신 금융정책의 명목 앵커가 좋은(the preferred anchor) 후보가 발견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앵커(anchor)’이다. 거기에 정책 지표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배를 안전하게 조타하려는 도구이다. 이 경제학자는 물가안정목표제를 대신해 명목 GDP를 다음의 으로 권장하는 것이지만, 배의 항해란 이 경우 경제성장이며, 성장은 우선 명목 GDP로 측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즉 목적지와 정박지, 기항지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은 들이 도구로서 봉사해온 목표 자체를 도구로 해 왔다고 말이다. 어떤 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권유이다.

[주*] 머니터리 베이스. 현금통화와 민간금융기관의 법정 준비금의 합계 또는 넓은 의미로는 통화정책. 

[주**] 앵커는 말 그대로 이지만, 대체로 기준 지표또는 목표 지표정도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명목 GDP를 올릴 뿐이라면 얘기는 간단하다. 소비세를 올리고, 그러나 그것이 세제중립’(=세금이 소비성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되도록 소득세를 같은 액수만큼 낮추면 된다. 확실히 그저 명목상으로만 총생산은 증가할 것이다. ‘앵커의 도입이란, 거기에 의식을 집중시키고, 다른 지표에는 신경 쓰지 않는 정책이기 때문에, 명목 GDP앵커로 하면 소비 증세 + 소득 감세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말할 것도 없이, 저소득층의 세금부담이 늘어난다. 이리하여 우리는 실무파 참모의 탄식으로 돌려보내진다. “원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그것이 그 사회 속에서 실제로 가능한가바람직한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가 된다.”

요컨대 속수무책이다. 경기라는 인상파식 총량 숫자만을 상대하고, 그 내용에 파고드는 것을 금욕하는 무서워서 할 수 없는 정책설계자에게 의 화살은 축난다. 뒤집어보면, 금융정책을 첫 번째 화살로 하는 아베노믹스는 소망을 실현할 수단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욕망을 막연하게, 그러나 강하게 표명하는 것을 소망 실현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그것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정책에 합리성을 요구하는 매우 진지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아베를 역설적이게도 칭찬한 크루그먼이 진지하게 실험이라고 평하는 이유이다. 심리 전쟁인 경제에서는 사람들의 예측, 예감, 기대 등등이 본질적이기 때문에, 소망이 자기 실현했다고 해도 조금도 신기하지 않다. 어차피 실패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좌익적예언은 실제로 심리 전쟁으로 변하는 시장의 동향을 앞에 두고서는 패배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심리 전쟁은 심리의 전쟁에 불과하다. ‘신체의 조성에 눈을 가리고, 그것에 손을 대지 않고서 신체활력 있게하려고 한다는 뻔뻔한 전제에 서 있는 싸움일 뿐이다. 병든 신체부위인 가난한 자에게는, ‘건강함흘러넘침을 기다리라고 명령하는 트리클다운(trickle-down)이라고 불린다 합의 위에 성립되는 싸움이다. 그러나 맑스가 물질적 생활조건이라고 부르는 사회의 신체적 차원에는 손을 대지 않은 전쟁은, 몰래 다른 전쟁을 수행하는 것 아닌가? 리먼 쇼크 이후, 금융업계에 쏟아부어지고 외부로 나가지 못한 공적 자금은, 적어도 월가 금융맨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지 않았는가? ‘1퍼센트‘99퍼센트차이를 일부러 드러내 보이는 것 아닐까? “유동성의 [함정]에 빠져 있는 동안에 양적으로 완화된 자금은, 일본에서도 격차 확대라는 질적 효과를 낳았다. 심리 전쟁에서의 속수무책, 이 다른 전쟁에서는 속수무책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유효하게 기능했던 것이다. 부를 소수에게 이전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심리신체간극이나 대립은,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오래된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확실히 그것은 여전히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20여년의 역사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분배를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그 대립이 성장의 원동력이 된 고도경제성장 시대와는 매우 질적으로 상이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지금도 또한, 정부가 시장에 직접 수요를 들여오는 케인스적인 유효수요정책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정책을 첫 번째 화살로 쏘았을 것이다. 경제() 경제를 둘러싼 지식과 경제 메커니즘 둘 다 는 확실하게 그 방식을 바꾸고 있다. 두 번째의 화살(재정정책)과 세 번째의 화살(성장전략)을 쏨으로써 고질적인 문제에 다시 한 번 씨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 그렇게 보임으로써 이미 기존과는 상이한 방식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장이 ()분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거꾸로, 비화해적으로 한다 성장할수록 격차가 확대한다 고 하는 것이,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최근 20년 혹은 30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성장과 동의어인 듯한, 성장하면 흘러넘침(trickle-down)’이 반드시 사회의 저변에까지 골고루 미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질적 전환이 없었다고 믿으려고 하는 점에서 상이한 차원이다. 그저 단지 간극되어[어긋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능과 의미를 갖는 간극이라는 것을 자각적으로 혹은 무자각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보이고 있을 터인 것을 보지 않는 이 부정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성장으로부터 내릴[성장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처럼 말하는 탈성장내지 에콜로지노선은, 가난함이 확대 재생산되는 현황을 추인하기는커녕 보완하는 것일 뿐이리라. ‘흘러넘침이 없어도 참으라고 호소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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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신체간극신체적으로 기능한다는 사태는, 새롭다기보다는 경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원리 혹은 시작에 있어서 매우 친숙한 문제였을 것이다. 화폐와 상품의 관계에 유비적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성장을 동일시하는 심리의 바닥에는 화폐가 있다. 화폐로 측정되는 총량으로서는 인플레이션과 성장 사이에 차이는 없으며 (GDP 디플레이터[주*] 등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명목 GDP 앵커론이며 현재의 일본은행 물가안정목표제[주**]론이다), 이 무차이가 아베노믹스에 대한 심리적 기대를 떠받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신체의 실체는 상품이다. 맑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원기原基라고 부른, 사물과 인간에 동일한 존재 성격을 주고 하나의 경제를 결정짓는 존재이다. 상품들의 가치를 표시하는 일반적 등가물에 지나지 않을 화폐가 상품들에 대해 특수한 상품으로서 현실적인 힘을 휘두르는 현상을 맑스는 페티시즘[물신주의]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인간의 머리의 산물이, 그것 자신의 생명을 부여받고 그것들 자신의 사이에서도 인간과의 사이에서도 관계를 맺는 독립적인 모습으로 보인다”(강조는 인용자). 그렇게 보이는것일 뿐이지만, ‘보이는것 이상의 현실적인 관계를 화폐는 상품과의 사이에서 맺는다. 물신주의를 논한 자본의 해당 대목에서, 맑스는 그것을 인플레이션 현상과는 연결시키지 않지만, 상품들의 전반적 가격 상승은, 화폐 가치의 하락이라는 점에 있어서, “음의 물신주의이라고도 해야 할 현상이며, “양의 물신주의인 화폐 숭배와 똑같이 특수한 힘을 현실적으로 휘두르게 된다. 요체는 임금이 오르지 않는 봉급생활자에게는 증세와 마찬가지로, 임금이 낮아진 것과 똑같다. 모두가 화폐를 더 많이 원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양의 물신주의와 마찬가지로, 뭐랄까 그것 자체이다. 그리고 표시 가격이라는 겉보기의 변화는, 변화의 속도가 고르며 그 정도가 일률적이지 않는 한, 확실하게 부의 분배 상태를 변화시킨다.

[주*] 디플레이터. deflator, 국민 소득 통계의 명목값을 실질값으로 환산할 때에 쓰이는 국민 경제 계산상의 물가 지수가격 수정 인자[요인]

[주**]  인플레이션 타게팅(inflation targeting, 일본에서는 인플레타게트’, 혹은 더 줄여서 인타게라고 한다)이란 물가상승율(인플레이션율)에 대해 정부·중앙은행이 일정한 범위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들어가도록 금융정책을 행하는 것. 대부분의 경우, 인플레이션율이 너무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고, 목표치까지 낮추도록 유도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유사한 정책으로서는 물가수준목표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1년의 일반적 물가수준을 기준으로, 거기에서 정해진 상승률만큼을 더한 것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며, 물가수준이 목표 미달성의 경우는 미달성율 + 정해진 상승률을 합쳐서, 어디까지나 정해진 물가지수까지 올리는 것이다. 차이는 과거의 잘못을 상쇄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란 중앙은행이 명시적인 중간목표 없이 일정기간 동안 달성해야 할 물가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추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물가목표제도하에서 중앙은행은 통화량, 금리, 환율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미래의 인플레이션을 예측하고 실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 수렴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며 이후 그 성과를 평가하고 시장의 기대와 반응을 반영하면서 정책방향을 수정해 나간다.]

그러나 맑스도, 이런 효과를 발휘하는 일반적 등가물의 발생과 생성을 사실에 귀속시키는 것밖에는 하지 않았다. 어떤 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 하면 좋을까? “우리의 상품 소지자들은 당혹한 나머지, 파우스트처럼 생각에 잠긴다. 태초에 행위(deed)가 있으리니.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는 데까지 이미 나아갔던 것이다. 단지 사회적 행위만이, 어떤 일정한 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우연이다In their difficulties our commodity-owners think like Faust: 'In the beginning was the deed.'* They have therefore already acted before thinking. But only the action of society can turn a particular commodity into the universal equivalent. .” 우연이기 때문에, 즉 근거가 없기 때문에, ‘에게서 그 근거를 찾고 사물을 물신으로 한다는 논리는 확실히 일정한 매력을 갖고 있다. 우연을 필연의 근거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으로 여겨지고 있는 사태의 가면을 벗기는 데에는 유효하다. 그러나 우연=필연설은, 노름꾼이 주사위의 숫자에 농락당하는 사태를 전혀 바꾸지 못할 것이다. 나온 숫자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승패에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우연=필연설은 우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우연의 결과, 여기에 이미 도래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 주장은, 물신주의에 빠진 인간이 말하는 것과 어디가 다른 걸까? 물신은 환상이라고 해도 역시 물신이라고 역설하기 때문에. 헤겔을 전도한 포이어바흐는 헤겔과 다를 게 없다고 갈파한 맑스가, 왜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우리의 문맥으로 돌아가서 말하면, 물신주의론은 심리전쟁으로서의 경제를 최종적으로, 이면에서부터 긍정하는 것이다. 화폐의 작동을 고발하고 실물경제를 침식하자! 화폐가 없는 세계에 대한 몽상을 말하거나 에콜로지스트처럼 화폐가 있는 한 침식은 어쩔 수 없이, 혹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교대하는 파도는 자연현상이라고 확인하는 이상의 것을, “우연=필연의 논리는 스스로 막고 있다. 이 논리를 취해, 경제는 물신에 의해 매개되고 우연성이 맹위를 떨치는 기상(氣象)이다. 폭풍우를 받아들이거나 물신을 버릴 수밖에 없다. 이 양자택일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을 때, 물신주의론은 절대가치(불변의 가치척도)를 요구하는 데이비드 리카도와, 가치는 상대적일 뿐이라고 주장한 사무엘 베일리(Samuel Bailey)의 싸움 속에 갇혀 있다. 그리고 주장하게 된다. 누머럴(numeral, 가치척도재), 아무튼 있다.’ 그것을 인정하든, 상품경제로부터 도주하든.

고발의 영역은 넘지 않는 맑스주의보다는 머니터리스트monetarist(화폐주의자) 밀튼 프리드만이 더 유물론적이다. 그는 적어도, 상품화폐로서의 일반적 등가물과, 국가가 유통시키는 통화 금속화폐이건 지폐이건 사이에 질적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통화 발행권을 쥐고 있는 한, 비록 입법부가 설치되었더라도, 승인 없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 . 고대의 국왕은 금화의 가장자리를 긁어내는 방법을 썼다. 현대에서는 지폐를 인쇄한다거나, 심지어 장부를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하는 고도의 수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아무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화를 장악하면 세금의 징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프리드먼에게는 누머럴(numeral)있다는 것과 그것을 국가가 정한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그에게 일반적 등가물 그 자체는 사실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국가에 의한 통화 발행은 세금을 징수한다는 별개의, 즉 경제적 자연과는 무관한 동기에 의해 시작됐다. 이것은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어떤 사회를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화를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레닌의 통찰에 가깝다. 맑스에게 배워서 상품 세계로부터의 일반적 등가물의 배제를 당연하고 필연의 논리=사실로서 얘기하며, 게다가 그 일반적 등가물과 금의 결합을 역사적 사실로서 얘기하는 한, 이 별개의 문제는 사실 과정 속에 파묻히고, ‘이론으로부터는 모습을 감춰버린다. 맑스에게는 국가론이 없다는 자주 회자됐던 비판도, 똑같은 아픈 지점을 찔렀을 수도 있다. 프리드먼은 적어도, 화폐의 기능적 발생에 맑스주의를 묶어둔 가치형태론과는 다른 논리를 들여오려고 한다. 국가에 의한 통화 발행에 상품 세계와 같은 내적인 필연성이 없다면, 중앙은행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곳까지는, ‘별개의논리로부터 실천적 귀결을 이끌어냈다. 맑스주의가 두뇌심리’, 더 나아가 상품 소지자의 자연 본능의 문제로 삼아버린 화폐에, 어디까지나 사물-도구의 성격 환상을 경유하지 않고 착취에 도움이 된다! 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화폐의 못된 장난질’(그의 책의 제목이다)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상품 세계를 최대한 순수상태에,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만들어내는 이상상태에 접근시키려고 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도, 통화를 도구로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것이 화폐주의(머니터리즘)이며, 프리드먼은 따라서, 한편으로는 맑스를 넘어선 맑스주의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맑스 이전의 고전파 경제학자이다. 화폐의 수수께끼에 신음하는 위와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그 고찰을, 국가를 결여해도 자립적이고 자율적일 수 있는 사물들의 세계에 봉사하게 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여분의 세금을 징수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도 착취는 없다. 프리드먼이여, 그대는 유물론자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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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편으로는, 경제학이 아무런 쓸모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수리적인 처리를 받아들이는 객관세계를 가설해온 이 과학심리의 벽에 봉착하거나, 구령과 마음가짐을 걱정하는心構えをじる 칸트적 인간학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확실히 실천적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실천이나, 골상학이나 양생술이나 점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런 신체(=경제)를 한 사람은, 이런 성격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건강법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런 수작을 믿어야 할 것이다. 케인스의 시대는 지금 어디서, 경제학은 경제의 현황에 추월당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매우 낡은 원리적 문제의 회귀이다. 어디에서도 상품으로서의 성질이 없는 데도 화폐로서 기능하고 있던 야프섬의 거석 통화(전자머니처럼 순수한 기호화폐)[주*], 포로수용소처럼 갇혀 있고 화폐가 없는 공간이어도 죄수들이 물물교환 속에서부터 산출한 담배화폐(순수한 일반적 등가물)[주**] 사이에 가로놓인 단층이, 금융 테크놀로지와 통화물가생산사이의 이음매 없으나(seamless) 항상 분열증적 경향의 관계 위로 회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화폐이기 때문에 경제학이 사실상 취급을 포기해온 화폐 기능의 차이가, 다시금 자기 주장을 시작하고, 분배의 상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래와 결제의 시간차를 이용해 화폐로부터 파생된 화폐(어음종류) 화폐 기능의 차이와 관련된 낡은 기술이다 를 어디까지 머니 서플라이로 세어도 좋은지는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 파생에 불가결한 신용의 힘을 갖는가 여부가 빈부 격차를 불가피하게 확대시키는 것이다.

[주*] 경제학자 사이에서는 프리드먼이 앞의 책, 화폐의 못된 장난』[ミルトン・フドマン, 貨幣悪戯, 斎藤精一郎 訳, 三田出版会, 一九九三年]의 서두에서 논해서 유명해졌다

[주**] 연합군의 병사로 독일군의 포로가 된 경제학자 래드포드가 전후에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보고해 유명해졌다. 표준적인 거시경제학 교과서인 맨큐의 거시경제학도 칼럼에서 이것을 다뤘다

새로움과 낡음이 교차-교착하는 이러한 지점에, 본서는 앵커를 내리고 싶다. 거기를 눈여겨봄으로써 경제와 정치의 항로를 재검토하고 싶다. “심리의 벽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의 제약인 것일까? 성장의 희망에 미래를 맡기는 것밖에는 처방이 없을까? 그러나 전략 따위는 없더라도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 경제요소는 있다. 채무이다. GDP의 두 배라는 일본의 공적 채무 잔고는, 채무 잔고 대 GDP 비율 60퍼센트 이내라는 EU기준(그리스는 이 비율이 113퍼센트로 파탄 났다)에 비춰서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인플레이션이 상환 의무를 다소 덜어줬다고 해도, 그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이고, [오줌]조차도 의 가치=구매력 저하로부터 염출되는[쥐어짜내진] 것이기 때문에, 증세에 의해 갚는 것과 같다. ‘심리의 벽은, 이로부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고 싶다는 심리에 의해서도 강고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성장(세수 증가)과 인플레이션(채무 감소)은 이런 심리에 있어서, 아무튼 조금이라도 길고 많이 섭취하고 싶은 중독성 약물이다. 그 동안 병을 그저 잊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게다가 공적 채무를 얼마나 상환할 것인가는 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둘러싼 원리적 문제로 국민을 다시 데려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채무는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빌린 돈은 어디에서 사라지고, 누가 사용했는가? 화폐의 기능은 빚을 늘리는 데에 있었을까? 그렇다면 국가는 가짜 돈을 뿌린 것이나 같다. 어떤 재화의 대금은 아직 지불받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빚을 국민은 진짜 돈으로 갚아야만 하는 걸까? 빌린 기억이 없는 돈의 상환 의무를 짊어지게 하는 것은 순전히 착취이다. 경제를 무대로, 다시 한 번 계급투쟁을 가동시킬 때이다




3. 금융-채무혁명

세계 유수의 투자신탁·고문회사 모던 스탠리 인베스트먼트 메니지먼트 작년(2012) 7, 이런 서두로 시작되는 리포트를 발간했다.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정치나 과학의 세계뿐만이 아닙니다. 금융시장에도 혁명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리먼쇼크와 그리스 위기 후인데도, 거대금융자본이 위기가 아니라 혁명을 얘기하고 있다. 고객에게 혁명의 강력한 추진자, 선도자를 자처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무엇이 혁명인가이다. 물론 세계적 기업이 민중의 위기는 혁명적 돈벌이의 기회이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할리는 없다. 또한 순식간에 손실의 무한 배증(倍增) 장치로 반전된다는 것이 수도 없이 폭로된, 리스크 과학으로서의 금융공학의 얘기도 아니다. 서브프라임론의 위기 후에 이제 와서 금융공학에 의한 혁명을 얘기해 봤자 투자에 높은 관심을 가진 고객의 흥과 의욕을 깰 뿐이리라. 더욱이 미즈노 가즈오(水野和夫)가 말하는 이자율 혁명과도 무관하다. 경제적·정치적 헤게모니의 대이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400년만의!) 초저이자율 상태가 그들에게 특히 문제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환경의 하나로는 인식되고 있다). 혹은 경제학자가 문제 삼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관계에 있어서의 구조적 변화도 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업자본의 현황을 깊게 반영할 터인 금융시장=주식시장조차, ‘리포트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금융시장의 현장에 서 있는 거대자본에게는 2012년 현재, 뭐가 혁명일까? 금융이 사람들의 사적, 공적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 영향력이 막대한 당사자인 그들이 사태를 포괄적으로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실에는,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을 것이다. 끌어들이는 쪽에 있어서도 되물리기 불가능한 사태의 핵심 부분은,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는 대답은, 그러나 단순하고 명확하다. 리포트의 제목이기도 한 세계의 채권 시장의 진화이다. “25년 전, 채권투자는 꽤 지루하고 수동적인(passive) 접근법으로 인식됐습니다. 채권 포트폴리오의 능동적인(active) 운용은 분명히 25년 전에도 행해졌지만, 그다지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혁명이라고 부를 값어치가 있는 객관적인 근거는 어디까지나 숫자로 제시되고 있다. 1989년 제44분기에 세계 채권시장의 총액(발행되고 있는 채권의 시가총액, 즉 민간과 공적 기관을 합친 세계의 채권화된 채무총액)은 대략 15조 달러였던 반면, 2011년도 제24분기에서 그것은 대략 100조 달러로 불어난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거의 동시기에서의 실질 GDP는 약 20조 달러에서 70조 달러로 추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동안에 세계의 채권시장은 규모에 있어서 생산시장을 따라잡고 추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최근 25년 동안 생산하는것보다 많이 빌릴수 있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미래의 부를 까먹으면서 살게 됐다. 그런 일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자명한 것은, 이것이 영원히 지속 가능sustainable(영어)/durable(프랑스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질적으로 현재 없는(‘서비스를 포함해도 상관없다)은 단적으로 소비 불가능하며, 이 겉보기의 도착, 역설은 사실상 의제擬制이며, 현실에서는, 부의 현시점에서의 불평등, 부정의한 이동(‘생산하고 있는자로부터 생산하지 않는자로의), 채권채무 관계를 매개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점에서 맑스가 분석한 착취와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생산하고 있는자로부터 생산하지 않는자로의 부의 이동이며, 이 이동은 평등한 계약관계’(등가교환)이라는 의제擬制를 통해서 이뤄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산과정 속, 정확하게는 생산과정에 수반되어 생기는 이동이었다. 착취가 가능한 것은 생산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자본가뿐이었다. 아무리 상품은 팔리지 않으면 안 된다즉 일단 생산과정의 바깥으로 나가서 유통과정을 경유하지 않으면 잉여가치의 착취는 실현되지 않는다 고는 하지만, 생산과정에서 상품에 체화된 가치만 사후적으로도 착취할 수 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본 착취는, 총생산의 분배라는 형식을 제약으로서 부과 받게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거시에서 생기고 있는 사태는, 이 제약을 단적으로 초과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만든위와 같은 가치를 누군가가 빌릴가능성 따위는 등가교환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담보 가치 이상으로 빌리는 것을, 오늘날의 세계는 전체적으로 승인하고 있는 셈이다. 등가교환 원칙이 일단 지배하는 생산과정의 완전한 바깥으로부터, 부의 횡령[가로채기]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 바깥, 세계는 전체적으로 최근 25년에 갖게 된 것이다. 생산과정의 외부로부터 생산의 과실을 빼앗는 탈법적인 회로, 빌린 가치를 갚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구조가 지구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가치 법칙의 실질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닐까? 혹은 오늘날 지배적인 가치법칙은, 산업자본주의 시대까지의 그것을 마이너한 위치로 몰아넣어 버린 것 아닐까?

원래의 착취 개념 노동가치설에 기초한 에 문제가 없었는가 여부는 여기서는 따지지 않기로 하자(나중에 3장에서 검토한다). 비록 의제擬制였다고 해도,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되는 가치의 등가교환이라는 원칙은, 2배로 일하면 2배의 임금을 요구할 사회적 근거가 되며, 또한 고용하는 노동자의 수를 줄이고 생산 비용을 낮추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올리는) 동기를 낳았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사회의 일정 부분은 노동가치설에 의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 원칙은, 노동이 만들어내는 가치의 총계를, 사회가 전체적으로 소비 가능한 가치의 절대적 한계로 삼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등가교환의 세계에서의 채무란, 교환에 선행하여 소비된 (그러나 미래에 똑같은 금액이 지불될 예정인) 가치이기 때문에, 노동가치 원칙은 똑같은 총계를 채무의 절대적 한계로서도 부과하고 있다. 이 총계 이상으로 빌리는것은, 노동가치설에 비춰보면 있을 수 없다. 모건 스탠리 회사가 솔직하게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태를, 산업자본주의로부터의 파생으로서, 즉 이 자본주의의 연장선상에 놓고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는,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신앙 고백 이상의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도에 부과되는 것은, 이미 소비되어 잿더미로 돌아간 생산물이 아직 양[]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덤 아래에 잠 든 시체는 아직 살아서 노동하고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비가 활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러나 모건 스탠리사에게 혁명도 또한 파생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노동이 생산하는 가치로부터의 파생이 아니라, 채무 그 자체로부터의 파생(derivative, 금융파생상품)이다. 앞의 인용에 곧바로 이어서 보고서는 얘기한다. “컨벡시티[주*], キュデュレション[주**], 옵션 조정 후 스프레드(OAS)[주***], 블랙-숄즈[주****] 등의 용어나 개념이 널리 사용되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 지나서부터였습니다. 설령 화제에 오르더라도, 학술 용어로 사용됐을 뿐이며, 실천적인 채권운용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파생상품(derivative)의 대두, 파생상품트레이더(trader)나 투자가에게 수용되는 투자수단이 된 곳에서 이 회사는 혁명의 추진력을 보고 있다. 그것 자체는 오늘날에는 상식이라고 말해도 좋은 시각이며, 실천가의 혜안도 그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만 숫자의 힘은 역시 압도적이다. 채권의 파생상품으로는 국채선물, 금리스와프,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주*****]의 세 가지를 주로 분석하는데, 이것들은 결국 보험에 다름없으며(선물은 채권가격 변동에, 금리 스와프는 금리 변동에, CDS는 채무 불이행에 대한 보험’), 이런 보험시장의 총액, 파생상품의 기본이 되는 상정원본[notional amount, 이론상의 금액]의 총액은 현재 600조 달러 정도에 이른다. 100조 달러의 채무를 6배로 어림잡음으로써 리스크 회피를 꾀하는 것이다. 현실적 손실의 6배까지 커버한다고 약속하는 안전장치가, 만든 것 이상으로 빌리는 노동가치설적으로 말하면,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하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보험은 인수인의 지불능력 총계를 넘어서 가입하게 되더라도, 지불이 똑같은 시기에 집중되지 않는 한, 즉 조금씩 지불하는 것이라면, 지속 가능하다(보험의 지속이란 보험금 지불의 지속이다). 개별 인수인은 자신이 아무것도 빌리지 않고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더라도, ‘사고가 일어나면, 그저 약속에만 바탕을 두고 자신이 소유하는 재화를 출연[거출]해야 한다. 여기에는 분명히 착취와는 이질적인 부의 횡령[가로채기] 원리가 있다. 보험은 가입자 전체의 안전을 위해 부분에게, 혹은 거꾸로 부분의 안전을 위해서 전체에게, 서로의 약속에만 기초하여, 가치의 양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주*] 컨벡시티. 영어표기는 convexity. 금리가 일정한 비율로 변동한 경우, 채권가격이 어느 정도 변화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duration이며, 직선으로 표시된다. 금리가 상승하면, duration은 그것에 따라서 채권가격도 그만큼 하락하게 된다. 금리가 하락하면 duration은 그것에 따라서 채권가격도 그만큼 상승한다. 그러나 실제의 채권가격은 거기까지 상승하거나, 하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실제와의 오차가 생긴다. 이런 duration의 결점을 메우고, 금리의 변동과 채권가격의 관계를, 가능한 한 실제의 것에 가깝게 하기 위해 곡선으로 나타낸 것이 convexity이다. convex는 볼록상태이지만 convexityduration의 직선에 대해 볼록 곡선이 된다

[주**] 큐레이트 듀레이션. 관련 용어를 찾지 못함. 

[주***] 옵션 조정 후 스프레드. Option Adjusted Spread. OAS라고도 하는 옵션 조정 스프레드는 시장에 내재된 옵션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이다. 옵션이 포함된 보안의 가격과 옵션이 없는 동일한 보안의 가격 간의 차이이다. 옵션 조정 스프레드는 거래자와 투자자가 옵션이 포함된 유사한 증권 간의 가격 차이를 측정 할 수 있는 벤치마킹 방법으로 간주된다. 옵션 조정 스프레드는 선불 옵션과 같은 모기지 보유자에게 옵션이 포함된 모기지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선불 옵션을 사용하면 차용인은 만기가 되기 전에 모기지 전체 금액을 지불 할 권리를 가지게 되어 융자 기관이 모기지 기간 동안 받게 될 이자 금액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차용자에게는 이전에 전체 대출 잔액을 선결제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이 선불 옵션이 있는 모기지와 그렇지 않은 모기지 사이의 가격 차이는 옵션 조정 스프레드로 간주된다. 옵션 조정 스프레드는 보통 평균 모기지 이자율, 국채 금리, 스왑 레이트 또는 런던 인터 뱅크 제안 금리(LIBOR)일 수 있는 벤치 마크에서 계산된다. 옵션 조정 스프레드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생 상품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생 상품 및 옵션은 종종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는 두 가지 용어이지만, 옵션은 실제로 파생 유형이다. 파생 상품은 시장의 다른 자산이나 증권으로부터 가치를 창출하는 금융 상품이다. 예를 들어, 특정 주식에 대한 콜 옵션은 미래에 특정 가격으로 주식을 살 권리이다. 그것은 주식 그 자체인 기초 자산에서 그 가치를 도출한다. 이것이 옵션이 파생 상품의 우산 아래 놓이는 이유이다. 보다 실용적이고 유용한 용어로 옵션 조정 스프레드는 옵션 가격의 프록시로 사용된다. 시장 가격은 공급 및 수요를 포함한 여러 요인에 기반한다. 따라서 특히 다른 보안에 포함된 경우 옵션의 정확한 가격을 결정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옵션 조정 스프레드가 높을수록 시큐리티 수익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옵션 조정 스프레드가 높을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주****] 블랙-숄즈(BlackScholes) 방정식(equation)을 가리키는 듯. 이것은 파생상품의 가격설정에서 나타나는 편미분방정식(및 그 경계값 문제)이다. 블랙-숄즈(BlackScholes model) 혹은 블랙-숄즈-머튼 모형은 파생 투자 기법을 포함한 금융 시장의 수학적 모형이다. 옵션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이용된다.

[주*****] 신용파산스왑(Credit Default Swap)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오늘날 채권의 최종적 구입자는 투자가라는 특별한 족속이 아니라 거의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다. 이때 채무에 대한 다양한 보험에 대해, 가입자 전체와 부분, 손실을 낸 자와 메우는 자를 구별하는 것은 유물론적으로도 보험적으로도 어딘가 공허하다. 채권의 종류가 국채로 대표되는 공적인 것이든, 서브 프라임 문제로 각광을 받은 모기지 담보 증권이든, 이것들을 직접 산 기관 투자가의 자금이 되는 것은, 빈부의 격차를 불문하는 사람들의 미래의 구매력인 것이다. 채권이 국내에서 소화되든 외국인이 사게 하든, 그 점은 흔들림이 없다. 이 채무에 대한 보험(상정원본, notional amount)은 인류의 잠재적인 <공통>이다. 케인스주의는 설령 미래의 구매력을 현재 사용하고 있더라도 소비가 성장을 초래하는 한 채무는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도, 정부 채무가 가져다주는 성장 효과는 1970년대에 완전히 급속히 떨어졌다. 또한 서브 프라임 위기는, 신용거래[loan, 대부]에 의해 수입 이상의 소비를 개인에게 장려하는 민영화된 케인스주의”(콜린 크로우치[주*])조차, 2000년 이후의 몇 년 동안만 계속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폭로했다.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3장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음의 점만을 확인해두고 싶다. 공적 채무를 중시하는 케인스주의도, 민간 채무에 성장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신자유주의도, 둘 다 보험’(채무 보험) 사상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담보로 잡히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이너스의 잠재적인 <공통>을 창출하고, 시장 참가자 모두가 운명을 같이 하게끔 하는 보험장치였다. 그리고 그것은, 생산과정 내에 근거를 둔 착취와는 다른 가치의 무상 이전을 모두에게 미리 약속시키는 사회계약’(보험조합 결성계약)이었다. 약속의 이행은 생산 증가가 채무 증가를 상회하는 동안은 큰 파탄 없이 진행된다. 상회하고 있다는 기대가,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을 늘리고 보험을 더 안전한 것으로도 한다. 그러나 최근 25년 동안 생산과 채무의 관계는 역전되고, 우리는 이제, ‘기대없이, ‘지불한다는 약속의 이행만을 매일 하고 있다. 의식 위에서는 투자를 하고 있을 셈으로. 바로 그것이 모건 스탠리사가 말하는 혁명의 실태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채무자와 채권자를 분리시키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가입자로 하는 채무보험은, 누군가에게 손실을 최종적으로 부담하게 할 것인가를 보험 시스템 안에서는 결정할 수 없다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것을 미리 결정하지 않고, 가입자 모두의 미래를 이 비결정에 의해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보험 계약은 신장을 거듭해온 것이다. 사회계약의 지속 가능성은, 손실의 최종 부담자를 찾는 과정을 계약의 바깥으로 방출함으로써 나중에 상담하자고 함으로써 보장받았다. 달리 말하면, 사회계약은 최종 부담자 찾기를 정치문제로 삼는다는 계약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리먼 쇼크 때 깨달았다. 파탄난 금융기관의 구제에 정치가 나서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우리가 서로에게 드는 보험에는 면책 조항대신 정치 조항이 들어 있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주*] Colin Crouch, «Privatised Keynesianism: An Unacknowledged Policy Regime», The British Journal of Politic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vol. 11, Issue 3, 2009.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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