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 인간과 동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4.13 조르조 아감벤, <열림> 3장, 스놉[속물]
  2. 2017.04.12 조르조 아감벤, <열림> 목차 및 1장, "동물인 Teromorfo"

열린 :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3. 스놉

 

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다.

알렉상드르 코제브

 

 

코제브는 제자이자 라이벌인 바타이유가 죽은 지 6년이 된 1968, 헤겔철학입문2판 출판을 기회로 삼아 인간의 동물되기man’s becoming animal라는 문제로 되돌아갔다. 더욱이 이 두 번째의 재검토는 1판의 각주에 또 다시 각주를 덧붙이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만일 헤겔철학입문이라는 텍스트가 본질적으로 레이몽 크노Queneau가 수집한 노트들로 구성됐다고 한다면, 이 책에서 각주는 분명히 코제브가 자기 손으로 집필한 유일한 부분일 것이다). 코제브는 첫 번째 각주가 애매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의 종언에서 본래적 의미에서의properly so called인간이 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고 받아들인다면, ‘나머지 모든 것’(예술, 사랑, 놀이)이 무한정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정합성이 없다.

 

만일 «인간»이 또 다시 동물이 된다면, 인간의 예술, 사랑, 놀이도 또 다시 순수하게 자연적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역사»의 종언 이후 마치 새가 둥지를 틀고 거미가 그물을 짜듯이 인간도 건물과 예술작품을 구축할 것이라고 인정되어야만 할 것이며, 또한 개구리와 매미의 방식을 쫒아 음악회를 열 것이고, 새끼 동물들이 노는 것처럼 놀 것이며, 성숙한 짐승처럼 사랑[성교]을 탐닉할 것이라고 인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모든 것이 “«인간»행복하게 만든다고는 말할 수 없다. (풍요와 완벽한 안전을 누리며 살아갈) 호모 사피엔스 종이라는 포스트 역사[역사 이후]의 동물들은 예술적이고 에로틱하며 놀기 좋아하는 행태의 결과에 만족할 것이라고, 그리고 정의상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행태에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유한[본래적인proper] 의미에서 인간의 결정적인[명확한] 절멸definitive annihilation은 인간 언어의 사라짐[소멸], 그리고 꿀벌의 언어에 견줄 수 있는 음성신호나 동작신호로 인간의 언어가 대체됨을 수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경우에 코제브는 철학 즉 지혜의 사랑 만이 아니라 그 어떤 종류의 지혜의 가능성 자체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코제브의] 각주는 역사의 종언과 세계의 현재 상태에 관해 일련의 테제를 분절하는데, 이 테제에서는 절대적인[흔들림 없는] 진지함, 그리고 이와 동일한 정도의 절대적인 아이러니를 구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판의 각주(1946)를 쓴 직후에 곧바로 이 저자가 헤겔-맑스주의적 역사의 종언을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어떤 것으로 이해했음을 배운다. 예나전투(1806) 이후, 인류의 전위는 인간의 역사적 진화의 종언에 실질적으로virtually 도달했다. 그 후에 일어난 모든 것 양차 세계대전, 나치즘, 러시아의 소비에트화를 포함하여 은 가장 선진화된 유럽 나라들의 입장에 세계의 나머지 부분들더러 발맞추어 나가게끔 가속화했던 과정a process of accelerated alignment에 다름 아니었다[아니라는 점을 대표했다]. 하지만 (코제브가 프랑스 정부의 고위인사가 되었던 때인) 1948년부터 1958년 사이에, 미국 여행과 소련 여행을 거듭하면서 그는 이제 포스트 역사의 조건[상황]에 도달하는 길에서 소련인과 중국인은 아직 가난하지만 급속도로 풍요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인인반면에, 미국은 맑스주의적 공산주의의 최종단계에 이미 도달했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이 확신으로 인해 그는 이렇게 결론짓게 됐다.

미국식 생활방식역사 이후의 시대에 특유한고유한 생활유형이며, «세계»에 있어서 미국의 현전은 모든 인류의 미래에 걸친 영원한 현재[‘영원한 현재인 미래]를 예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성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으로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확실성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1956년에 간 일본 여행은 [그가 품고 있었던] 전망perspective을 더욱 변화시켰다. 일본에서 코제브는 자신의 눈으로, 비록 포스트 역사[]이라는 조건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를 그치지 않았던 어떤 사회[일본]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포스트역사의일본문명은 미국식 생활양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일본에는 더 이상 유럽적혹은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수 형태에서의 속물들(스노비즘)자연적이거나 동물적인소여(주어진 바)를 부정하는 규율을 창출했다. 이것은 효과라는 면에 있어서 일본이나 다른 곳에서 역사적행동을 통해 생겨났던 것, 즉 전쟁과 혁명적 투쟁 또는 강제노동에서 생겨났던 것을 훨씬 능가했다. 확실히 노가쿠(能樂)나 다도(茶道)나 꽃꽂이(華道) 등과 같은 일본 특유의 스노비즘의 정점(이에 필적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은 귀족과 부유층의 배타적 전유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완전히 형식화된 가치에 기초하여, 역사적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내용을 모두 상실한 가치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극단적(궁극적)으로 보면 모든 일본인은 순수한 스노비즘에 의해 원리적으로는 완전히 아무 대가도 없는자살을 행할 수 있다(사무라이의 고전적 칼épéee은 비행기나 어뢰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자살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내용을 가진 역사적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수행되는 투쟁 속에서 무릅쓰게 되는 생명의 위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일본과 서구 세계 사이에서 최근 시작된 상호교류는 결국 일본인의 재야만인화(일본인을 야만인으로 다시 간주하는 것)가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포함하여) 서구인들의 일본인화로 귀착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그 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화된포스트-역사적 시대는 분명히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인간적인 것의 자연스런뒷받침 역할을 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라는 동물들이 있는 한, “고유하게 그렇게 불리는 인간의 경정적인 무화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의 주석에서 말했듯이, “자연이나 주어진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동물살아 있는 존재이되 결코 인간적이지는 않다.

코제브가 포스트 역사[역사 이후]의 조건을 기술하려 시도할 때마다 매번 바타이유는 웃음거리가 된[다른 이들의 웃음거리를 산] 어조 때문에 자기 스승을 비난하곤 했는데, 이 각주에서는 [코제브의] 이런 어조가 정점에 도달한다. 여기서는 미국식 생활양식이 동물적인 생명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며[등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식 스노비즘snobbery이라는 형태로 인간이 역사에 실존하는 것 자체가 더 세련된 (설령 어쩌면 패러디적일지라도) 판본의 사용 없는[아무 쓸모없는] 부정성과 닮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용 없는[아무 쓸모없는] 부정성을 바타이유는 확실히 더 천진난만한ingenuous 방식으로 정의하려고 애썼는데, 코제브의 눈에는 나쁜 취향으로 비춰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이 포스트 역사적 형상이 지닌 이론적 함축에 관해 성찰해 보자. 무엇보다 우선, 역사라는 드라마에서 인류의 생존은 역사와 그 종언 사이에서 메시아의 천년왕국을 상기시키는 초역사ultrahistory라는 언저리를 도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전통에서도 천년왕국은 메시아의 최후의 사건과 영원한 생명 사이에서 수립될 것이라고 얘기된다(메시아적이고 종말론적인 테마들로 가득 채워진 솔로비예프Solov’yev의 철학에 자신의 첫 번째 작성을 헌사한 어떤 철학자[코제브]에게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 초역사라는 언저리ultrahistorical fringe에서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다[인간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뒷받침[지렛대support]으로서 기능해야만 하는 호모 사피엔스종이라는 동물의 생존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코제브의 헤겔 독해에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종이 아니며, 또한 확실하게 주어진given once and for all 실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은 인간학적인[인간화된]anthropophorous’ 동물성과 이 동물성으로부터 신체를 취하는 인간성을 매번 적어도 잠재적으로virtually 분리하는 내적 휴지기[중간지대, caesurae]에 의해 항상 이미 절단되어 있는 변증법적 긴장의 장이다. 인간은 이 긴장에서만 역사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 인간은 자신을 뒷받침하는 인간학적 동물을 초월하고 변형하는 정도에서만 인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비록 부정의 행위action를 통해서긴 하지만, 자기 자신의 동물성을 지배하고 결국에는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바로 이런 의미에서 코제브는 인간은 동물의 치명적인 질병이다고 쓸 수 있었다).

그렇지만 포스트역사에서 인간의 동물성은 무엇이 되는가? 일본식 스놉과 그의 동물적 신체 사이에는, 그리고 일본식 스놉[의 신체]과 바타이유가 힐끗 본 무두(無頭)의 생명체creature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지만 코제브는 인간과 인간학적 동물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부정과 죽음의 측면을 특권시하며, 근대성에서 인간(또는 코제브에게는 «국가»)이 자신의 고유한 동물적인 생명을 배려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간과하고, 이와 반대로 푸코가 생명권력이라고 불렀던 것, 즉 자연적 생명이 관건이 되는 과정을 간과하는 듯이 보인다. 어쩌면 인간학적 동물의 신체(노예의 신체)는 관념론이 사유에 유산처럼 남긴 해결되지 못한 나머지remnant이며, 우리 시대의 철학의 아포리아는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에 환원할 수 없이 그어져 있고 이 둘 사이에서 분할되어 있는 이 신체의 아포리아와 일치한다.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열린 :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1. 동물인 Teromorfo

2. 무두인 Acefalo

3. 스놉 Snob

4. 분리접속의 미스터리 Mysterium disiunctionis

5. 지복자들의 생리학 Fisiologia dei beati

6. 경험적 인식 Cognitio experimentalis

7. 분류학 Tassonomie

8. 서열 없음 Senza rango

9. 인간학 기계 Macchina antropologica

10. 환세계 Umwelt

11. 진드기 Zecca

12. 세계의 빈곤 Povertà di mondo

13. 열린 L’aperto

14. 깊은 권태 Noia profonda

15. 세계와 대지 Mondo e terra

16. 동물화 Animalizzazione

17. 인간발생[인류창생] Antropogenesi

18. 사이 Tra

19. 무위 Désoeuvrement

20. 존재의 바깥에서 Fuori dall’essere

 



만일 동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본성은 훨씬 더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조르주 루이 뷔퐁

S’il n’existoit point d’animaux, la nature de l’homme serait encore plus incompréhensible.

Georges-Louis Buffon

 

그렇지만 경험적 인식을 동물의 본성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도 동물을 필수적이다[그렇지만 경험적 인식이 동물들의 본성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동물은 불가결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Indigebant tamen eis, ad experimentalem cognitionem sumendam de naturis eorum.

Thomas Aquinas




1. 동물인 Theriomorphous

 

그 날의 마지막 세 시간 동안, 신이 앉으시어 리바이어던과 노시면서 가로되, “, 리바이어던과 놀기 위해 만들었느니.”

Nelle ultime tre ore del giorno, Dio siede e gioca col Leviatano, com'èscritto: « tu hai fatto il Leviatano, per giocare con esso » .

Talmud, Avodah Zarah


[탈무드] 탈무드는 일반적으로는 학습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유대교의 종교 경전이며, 규전율법의 주석과 응용에 의한 연구를 총칭한다. 유대교에 따르면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신에게서 받은 계율(토라)에는 문자로 기록된 성문율법과 구두로 전수된 구전율법, 이 두 가지가 있다. 기원후 200년 무렵 유대교의 구전율법을 편찬한 법규집인 미쉬나가 성립했고, 미쉬나를 핵심으로 하면서 이후 학습과 논의를 거쳐 편찬한 것이 탈무드. 팔레스타인 판본과 바빌로니아 판본, 이렇게 두 개가 있다. 그리고 이 탈무드중에서도 전설, 미담, 주술, 교훈 등에 관련된 이야기식 부분을 하다가라고 부르며,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개별 종교적 행동규범을 할라하라고 부른다

[Avodah Zarah]  히브리어로, ‘foreign worship’, ‘우상숭배idolatry’낯선 것을 숭배함strange worship’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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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암브로시아 도서관에는 희귀한 세밀화를 수록한 13세기의 히브리어 성서가 한 권 보관되어 있다. 세 번째 사본(codex)의 마지막 두 쪽 전체에 그려져 있는 것은 신비적이고 메시아적인 영감으로 충만한 정경(scenes)이다. 그 중에서 135v 쪽에 있는 그림은 [하늘의] 마차(chariot)는 등장하지 않지만 에제키엘의 환상(vision of Ezekiel)을 묘사한다. [] 중앙에는 일곱 개의 하늘(heavens), , , 별들이 그려져 있으며, [이것을 에워싸듯이] 네 귀퉁이에는 파란 색을 배경으로 네 마리의 종말론적 동물들, 즉 닭, 독수리, , 사자가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쪽(136r)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위쪽에는 세 마리의 태곳적 동물들이 놓여 있다. (날개달린 그리핀[griffin: 그리스 신화에서 몸통은 사자, 머리와 날개는 독수리인 괴물]의 모습을 한) 새인 지즈(Ziz), []인 베헤모스(Behemoth), 그리고 바다에 잠긴 채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는 거대한 물고기인 리바이어던이다. 여기서 특히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사본의 결말이라는[사본을 닫는다는] 의미에서도, 인류의 역사에 대한 결말을 이룬다는 의미에서도 마지막인 정경이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의인들(the righteous)의 메시아적 연회[잔치]를 재현한다[잔치가 그려져 있다]. 두 연주자의 음악 덕분에 분위기가 고조된[활기를 띤] 낙원의 나무 그늘 아래서 머리에 관을 쓴 의인들은 진수성찬이 늘어져 있는 식탁 앞에 앉아 있다. 메시아의 날들에[세상에] 토라의 계율을 평생토록 준수한 의인들은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에 대한 도살이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적절하게 이뤄진 것인지 아닌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 이것들의 살로 성찬을 즐길 것이라는 관념은 랍비의 전통에 너무도 친숙한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아직 언급하지 않았던 한 가지 세부사항이다[오늘날까지도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에 있다]. 세밀화가는 관을 쓴 의인들을 인간의 얼굴[모습]이 아니라 전혀 실수 없이[아무런 착오도 없이] 동물의 머리를 지닌 모습으로 재현했다[그려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세 개의 형상[의인들] 속에서 종말론적인 동물들 독수리의 사나운 부리, 소의 검붉은 머리, 사자의 머리 을 승인할 뿐만 아니라 그림 속의 나머지 두 의인들도 당나귀의 기괴한 특징과 표범의 윤곽[옆얼굴, profile]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두 악사도 동물 머리를 하고 있다. 특히 오른쪽에 있어서 더 쉽게 식별되는 악사는 계시를 받은 듯한 원숭이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일종의 비올라[현악기]를 켜고 있다.

[에제키엘의 환상에제키엘서의 서두에 기록된 예언자 에제키엘의 종말론적 견신(見神) 체험으로, 미쉬나(생활을 규율하는 제의, 윤리에 관한 법규집)에서는 천지창조의 비밀과 나란히, 성서에서 유래한 두 개의 신비 중 하나로 간주된다. ‘하늘의 마차는 히브리어로 전차(戰車)’라는 뜻을 지닌 메르카바로, 일반적으로는 신의 옥좌를 지칭한다고 여겨진다.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카발라(‘전승이라는 뜻)의 실천이란 명상을 통해 에제키엘의 환상을 추체험하고 하늘의 옥좌를 응시함으로써 신의 메르카바로의 참여를 맡게 된다고 간주된다. 또한 단테의 신곡정화(淨火)29100-111행에서도 개선(凱旋)하는 차로 등장한다

[지즈지즈는 천공[하늘]의 힘을 상징하는 거대한 새로, 육지의 베헤모스, 바다의 리바이어던에 대응한 것으로 간주된다. 베헤모스는 비히모스라고도 불리며, 욥기(4015-24)에 묘사되어 있으며, 신이 창조한 거수(巨獸), 보통은 하마라고 풀이되며,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신에 의한 창조의 신비와 자연계의 불가사의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리바이어던은 원래 창조주 야훼에게 패배당한 종말론적·()우주적 힘을 명명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지고의 힘을 가진 바다의 괴물로 여겨진다. 이런 이름에 몸을 서리다/말다라는 함의가 있다는 것으로, 홉스는 이 거수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절대적 주권으로서의 국가권력에 견준다

[토라계시, 교육, 율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원래는 제의, 법률, 윤리 등의 문제들에 관해 사제가 구두로 전한 교시였지만, 이것들의 집성으로서 구약성서 속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최고의 부분을 형성하는 모세5(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구약성서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유대교는 이 토라에 기초하여 미쉬나, 게마라(미쉬나에 관해 율법학자가 행한 논의의 기록), 탈무드(두 가지의 집성), 미드라쉬(강해집) , 상세한 법체계를 만들어냈다

[적절하게 이뤄진원어는 kosher. 히브리어로 올바른을 의미하는 kāshēr에서 유래한다. 유대교의 율법을 따라 음식(특히 고기)이 올바른 규칙에 따라 요리되는 것. 레위기11장 및 신명기143-21절에서는 먹어도 좋은 깨끗한 동물과 먹어서는 안 되는 (건드려서도 안 되는) 더러운 동물이 상세하게 구별되어 있다


완전한(concluded) 인간성의 대표자들이[완전한 인간성을 체현한 의인들의 머리가] 왜 동물 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을까[왜 동물로 그려져 있을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던 학자들[연구자들]은 아직까지 납득할 수 있는(convincing) 설명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주제에 관해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면서[폭넓은 시야에서 접근하고] 바르부르크학파의 방법을 유대교의 자료에도 응용하려고 시도한 소피아 아메이제노바(Zofia Ameisenowa)에 따르면, 동물의 특징[얼굴]을 한 의인들의 이미지는 그노시스의 교의를 경유함으로써 동물들의 모습을 한 장로의 표상이라는 그노시스적-점성술적 테마로 묶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노시스적인 교리에 따르면 의인들(또는 오히려 영적인 것)의 신체는 사후에 하늘[]을 뛰어넘어 더 올라감으로써 별로 모습을 바꾸고, 각각의 하늘을 지배하는 능천사와 일체가 된다고 간주된다(Zofia Ameisenowa, “Animal-Headed Gods, Evangelists, Saints and Righteous Men,” Journal of the Warburg and Courtauld Institutes 12(1949) : 21-45).

하지만 랍비의 전통에 따르면 해당 의인들은 결코 죽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의 나머지remnant(resto, 또한 남은 부분rest’, ‘잔여remainder’)를 대표하는 사람들, 즉 메시아가 도래할 때에는 아직 살아 있는 의인들이다. 예를 들어 바룩묵시록(Apocalypse of Baruch) 294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베헤모스는 그 대지에서 등장할 것이고 리바이어던은 바다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천지창조의 5일째에 내가 형체를 만들고, 그 시간까지 지켜왔던 두 마리 괴물은 살아남은 자들 모두를 위한 영양분이 될 것이니And Behemoth will appear from its land, and the Leviathan will rise from the sea: the two monsters which I formed on the fifth day of creation and which I have kept until that time shall be nourishment for all who are left.” 덧붙여, 그노시스파의 아르콘이나 점성술의 장로들이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모티프는 연구자들에게 완전히 자명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에는 얼마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마니교의 경전에서는 아르콘들은 동물계의 구분들(두 발 동물, 네 발 동물, 조류, 어류, 파충류)의 하나하나에 각각 대응하는 동시에, 인체의 다섯 가지 성질’(, 신경, 혈관, , 피부)에도 대응한다. , 동물들의 머리를 한 아르콘의 모습은 동물의 대우주(macrocomos)와 소우주(microcomos) 사이의 은밀한 근접성을 뚜렷하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Peuch, 105). 다른 한편, 탈무드에서는 의인들의 메시아적인 잔치의 식사로서 리바이어던이 언급되어 있는 한 구절은 일련의 하가다(Aggadoth)’에 관해서 등장하는데, 그 하가다는 동물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관계에 관해서 어떤 이질적인 배분(economia)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메시아의 왕국에서는 동물적 본성도 변형될 것이라는 관념은 (이반 카라마조프도 좋아했던) 이사야서116절의 메시아적인 예언에서 [이미] 암시되어 있다. 거기서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볼 수 있다. “늑대는 양과 함께 살고 / 표범은 산양 곁에서 잠을 잘 것이다 / 소와 새끼 사자가 함께 풀을 뜯고 / 목동 혼자만이 이 동물을 이끄니. ;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the wolf shall live with the sheep, / and the leopard lie down with the kid; / the calf and the young lion shall grow up together, / and a little child shall lead them.

[바룩묵시록]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제자 바룩의 이름으로 된 위경(僞經). 여러 사람이 그의 이름을 빌려 글을 썼는데 바룩서()(외경)와 구별하기 위하여 2 바룩서(시리아어판) 3 바룩서(그리스어판)라고도 한다. 원본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쓰여진 듯하며, 내용은 시리아어역 바룩묵시록의 하나인 4 에즈라서(에즈드라 제2)와 같은 시대의 것으로, 여기에 나타난 몹시 비관적인 역사관과는 대조적으로 종말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어역 사본(寫本)과 그리스어로부터 중역(重譯)한 시리아어역 사본이 남아 있는데, 전자는 100130년경에 현재의 형태로 꾸며진 듯하다. 후자는 같은 체의 그리스어역인데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묵시록은 4 에즈라서, 요한 묵시록과 함께 1세기 말의 3대 묵시록으로 일컬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룩묵시록 [Apocalypse of Baruch, 默示錄] (두산백과)

[아르콘지배자, 통치자라는 뜻. 그노시스파 신학에서는 하급세계의 가짜 신의 별명으로, 저차(低次)의 아이온. 우주를 창조한 것은 아르콘이라고 간주되며, “첫번째 아르콘, 프로토아르콘이라고 할 때에는 우주창조자로서의 가짜 신을 전제한다. 천국과 명계와 국가를 지배하는 천사이며, 아이온이나 대천사와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다. ‘아이온을 참고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생존자에게 동물의 머리를 배정함으로써 암브로시아 사본의 세밀화가가 의미하고자 했던 것이 최후의 심판일,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운 형태로 화해하고 인간 자체가 그 동물적인 본성과의 화해를 성취할 것이라고 본 점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꼭 있을 수 없는 얘기인 것은 아니다.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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