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 굳이 번역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지만, 일련의 작업을 위한 참고 문헌 목록에 들어 있어서 입문용을 겸해서 번역, 공유한다. (2018년 3월 27일)


대중의 정념의 향방

안토니오 네그리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

 

오오타 유스케(太田悠介)

현대사상, 20137월호. <大衆情念のゆくえ: アンネグリとエティエンヌバリバルのスピノザ,>



서론

제국, 다중에 이어 공통체가 간행됨으로써 안토니오 네그리(1933-)와 마이클 하트(1960-)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전개한 논의의 전모가 드러났다. 현대세계 분석과 도발적 예언이 교착하는 이 3부작은, 많은 시사와 논점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논의가 집중된 것이 다중(multitude)’ 개념임에 틀림없다[주1]. 네그리/하트의 뜻을 받들어서 군중=다수성으로 때로 번역된다는 것이 드러내듯이, 이 개념은 동일성에 의거하지 않는 집단의 존재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주1]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Daniel Bensaïd. Résistances. Essai de taupologie générale, Paris, Fayard, 2001, pp.191-212 ; Ernesto Laclau, La Raison populiste, traduit de l’anglais par Jean-Pierre Ricard, Paris, Seuil, 2005, pp.278-283.

네그리/하트에 따르면, 다중은 스피노자에게서 유래한다고 한다. 네그리/하트에게 <제국>이란 지배적인 주권국가군, 그 주권국가의 정당성을 우회하는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등의 초국가적인 정치적·경제적 제도, 나아가 이것들을 보완하는 메가뱅크나 국제인도주의조직이 한 몸이 되어 구성하는, 특정한 극을 갖지 않는 네트워크적 권력이다. 반면 다중은 <제국>과 마찬가지의 유동성을 갖고서 이것에 대항하는 주체로서, 극히 긍정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저작군에 이 개념들을 다시 놓는다면, 이 긍정성이 반드시 자명한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어휘의 차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 점이 밝혀진다. 다중이라는 단어는 [스피노자의] 미완의 정치론(1677)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이것보다 2배 이상의 분량인 신학정치론(1670)에서는 불과 세 번, 주저인 윤리학(1677)에 이르러서는 많은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로서 한 번 등장할 뿐이다[주2]. 이 간단명료한 사실이 나타내는 것은, 다중을 축으로 <제국> 3부작을 쓴다는 네그리/하트의 수법 그 자체에, 이미 두 사람에 의한 스피노자 해석, 다중 해석의 일정한 방향성이 기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네그리/하트가 사용하는 다중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의 위험성이 있다.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신학정치론의 다중이라는 단어가, 어느 대목에서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다중은 미신에 사로잡히기 쉽고[주3],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질은 감정에 좌우되며[주4], 때로는 흉폭해져서 국가를 위협한다고 간주됐다[주5]. 이런 서술을 감안한다면, 네그리/하트의 해석에 반하여, 다중의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스피노자로 돌아간다면, 다중의 부정성이 확실해진다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중의 양의성이라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주2] Emilia Gancotti Boscherini, Lexicon spinozanum, t.2, La Haye, Martinus Nijhoff, 1970, pp.728-729.

[주3] Baruch de Spinoza, Traité théologico-politique, traduit et annoté par Charles Appuhn, Paris, Flammarion, 1965, p.21(畠中尚志 訳, 神学政治論───聖書批判言論自由, 岩波書店, 1944, 上巻, 43).

[주4]  Ibid., p.279(同書, 下巻, 194).

[주5]  Ibid., p.307(同書, 下巻, 241). 

이런 전제를 토대로, 본고에서는 네그리의 단독 저서 야생의 아노말리(1981)를 소재로 하여, 그 다중론을 검토한다. 야생의 아노말리는 동시기에 간행된 맑스를 넘어선 맑스(1979)와 나란히 네그리의 주저이며, 나중의 하트와의 공동작업에 대해, 이른바 이론적인 뼈대에 해당한다. 야생의 아노말리에서는 네그리/하트의 다중론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을 듯하며, 그래서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다중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오늘날의 네그리/하트의 논의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네그리의 다중론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 본고에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1942-)대중(masses)”론과의 비교를 시도한다. 발리바르는 네그리의 단독저서 구성적 권력(1997)의 불역자를 맡는 등, 프랑스에서 네그리의 소개자 중 한 명이다. 또한 네그리와 발리바르 둘 다 맑스주의를 사상적인 배경으로 갖고 있으면서, 1980년대에 스피노자 독해에 착수했다는 공통적인 문제관심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발리바르와 네그리 사이에는 사실상 스피노자 해석을 둘러싼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상적인 차이가 두 사람 각각의 여정에 깊은 영향을 주면서, 현대세계를 둘러싼 두 개의 상이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고는 이렇게 네그리와 발리바르에 의한 스피노자의 사상의 수용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이 점의 해명에 있어서는 두 사람을 1980년대에 스피노자로 향하게 했던 유럽의 사회상황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사상과 역사의 두 측면으로부터 문제를 개시하도록 힘쓰고 싶다.

 

1. 네그리의 다중론

1)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례성과 스피노자의 이례성

야생의 아노말리1982년에 간행된 불역본에 수록된 질 들뢰즈, 피에르 마슈레, 알렉상드르 마트롱, 이렇게 세 명이 각각 쓴 서문과 더불어, 196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졌던 스피노자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스피노자 재독해의 기운을 대표하는 한 권으로 오늘날 알려져 있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해석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많은 난점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이 여전히 독자를 매료시킨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우선, 17세기의 스피노자가 그 시대로 환원되지 않는 이례성(anomalie)”을 갖추고 있었다는 테제가 내뿜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주6]

[주6]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浅野俊哉上野修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浅野俊哉, スピノザ───共同性のポリティクス, 洛北出版, 2006. 浅野俊哉, 「「絶対民主主義Civitas条件───ネグリのスピノザ解釈をめぐって, 思想, 1024, 20098월호, 117-142. 上野修, アントニオ・ネグリのスピノザ, 現代思想, 263, 1998년 3월호, 166-174. 上野修, 精神論証そのもの───デカルト, ホッブズ, スピノザ, 学樹書院, 1999. 본고는 이처럼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에 관한 선행연구에 옥상옥을 놓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주안점은 이런 선행연구의 축적을 토대로 하면서,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차이를 밝히는 데 있다

야만적 별종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 이례성은 첫째, 17세기 네덜란드가 차지했던 특이한 위치에서 유래한다. 스피노자가 평생을 보낸 당시의 네덜란드는 절대왕정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후, 생산·무역·금융의 중심으로서 세계사적인 패권국가의 지위를 손에 넣었던 시기에 해당된다. 세계시장을 수중에 거둔 해운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상인층이 힘을 쥐고, 정부의 개입은 자유경쟁의 방해가 된다는 그들의 의향이, 암스테르담을 중핵으로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분권화된 무역시장 사이의 완만한 결합으로 구체화됐다[주7]. 그리고 이런 상인층들 사이에서 공유됐던 관용적인 분위기가 철학하기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토양을 형성했던 것이다[주8].

[주7]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II. Mercantilism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European World-Economy, 1600-1750, New York. Academic Press Inc. 1980, pp.36-71(川北稔 訳近代世界システム 1600-1750───重商主義ヨーロッパ世界経済凝集名古屋大学出版会, 1993, 43-89).

[주8] Pierre-François Moreau, Spinoza et spinozisme, Paris, PUF, 2003. pp.12-19(松田克進樋口義郎 訳スピノザ入門白水社, 2008, 19-27).

네그리는 당시의 네덜란드에서는 정치권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고, 경제관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가한다[주9]. 이 점은, 네그리에 의한 영유화領有化[전유, appropriation]’라는 개념의 독특한 이해에서 유래한다(AS: 59). 사실 네그리는 이 영유화[전유]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혹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이전의 위상을 문제 삼았다(AS: 304-305). 그것은 들뢰즈가 지적했듯이, 구체적인 개개의 힘의 집합을 그것 이외의 것으로 대체하거나, 그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힘들의 성질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역학적인 합성”(AS: 10)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이 힘들의 수와 양이 증대할수록, 그 총합은 더욱 커진다.

[주9]  Antonio Negri, L’Anomalie sauvage. Puissance et pouvoir chez Spinoza, traduit de l’italien par François Matheron et préfacé par Gille Deleuze, Pierre Macherey et Alexandre Matheron, Paris, PUF. 1982 (édition italienne, Milano, Feltrineili, 1981). p.76(杉村昌昭信友健志 訳野生のアノマリー ───スピノザにおける力能権力作品社, 2008이하이 책에서 인용할 때에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AS라는 약호와 함께 원서의 쪽수만 본문 속에 표기한다

그러나 이런 힘들의 자연적 총합의 증대라는 스피노자의 비전(vision)이야말로, 홉스-루소-헤겔이라는, 네그리가 부르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계보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AS: 226-227). 우선 정치에 있어서는 각자가 지닌 자연권이 포기되고, 사회상태로 이행함으로써, 권력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 힘들은 상호 결합함으로써 산술적으로 자기 성장하는 길을 차단하고, 권력이라는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제약에 의한 매개를 거쳐야 한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사회에 있어서는 힘들의 발전은 각자의 자기중심적인 이익의 추구로 환원되고, 이익의 추구를 둘러싼 충돌이 생긴 경우에는, 국가가 그 외부로부터 개입하여 이것을 시정한다고 간주된다(AS: 224). 그리고 네그리가 가장 문제시하는 것은, 힘들의 증대를 이 국가와 시민사회로 분리하여 조직화한다는 전제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생산력생산관계의 질서에 의해 영유화[전유]하는 짓거리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생산관계에 대한 생산력의 우위를 원리로 삼았다고 네그리는 생각한다(AS: 225). 네그리가 말하기를, 스피노자에게 시민사회와 정치국가는 완전히 서로 뒤얽혀 있다”(AS: 305). 이처럼 네그리는 스피노자를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정하는 사상가로서 파악함으로써,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직접 대치하는 일원적인 세계를 묘사해낸다[주10]. 이리하여 힘들의 자생적인 자기 성장에 의거하는 스피노자는, 힘들의 영유화[전유]에 의해 이 가능성을 닫아버린 이후의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항상 이형(異形)의 존재로 비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이 네그리에 의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례성, 그리고 그 시대가 길러온 스피노자의 이례성이다.

[주10]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여전히 헤겔적인 변증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서 다음을 참조. Pierre Macherey, Avec Spinoza, Études sur la doctrine et l’histoire du spinozisme, Paris, PUF, 1992, pp.24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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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의 이 스피노자 해석에서 핵심은 스피노자의 죽음에 의해 미완으로 남겨진 정치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민주제 개념의 독해이다. 네그리가 정식화한 생산양식의 영유화[전유]에 대한 생산력의 자기 성장이라는 관념은 정치론에서 사회계약론의 포기와 분명히 일치한다(AS: 298). 사회계약에 의한 자연상태로부터 사회상태로의 이행과 국가의 설립은 한 번 체결되면 다시 물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취소할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다[주11]. 그래서 통치자의 권리란 다중의 집합적인 힘 그 자체일 뿐이다. 그 결과, 통치자가 한 명의 군주제, 약간의 통치자로 구성되는 귀족제, 모두가 통치자인 민주제라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고 생각된 범주도,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각각 상이한 종류의 통치형태를 가진 정치사회에서 다중이 스스로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공통의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네그리는 이렇게 정치론을 독해해간다.

[주11] 홉스와의 쟁점에 관한 스피노자의 다음 설명을 참조. “국가론에 관해서 저와 홉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그 차이는 다음의 점에 있습니다. , 저는 자연권을 항상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어떤 도시의 정부도 힘에 있어서 시민보다 나은 정도에 상당할 뿐인 권리밖에 시민에 대해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이것이 상도常道이기 때문입니다.” Baruch de Spinoza, «Lettre L. Spinoza à Jarig Jelles (2 juin 1674)», dans Traité politique. Lettres, traduit et annoté par Charles Appuhn, Paris, Flammarion, 1966. pp.283-284(畠中尚志 訳, 書簡五(一六七四年六月二日忖のイエレス宛書簡), スピノザ往復書簡集, 岩波書店, 1958, 237-238). 

정치론은 이 책의 편집자가 스피노자 사후에 덧붙인 이하 누락(Reliqua desiderantur)”이라는 말로 중단된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이 책의 전반부에서 국가의 원리를 제시한 후,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라는 정치사회의 구체적인 검토로 옮김으로써 현실의 장애에 부닥쳤다는 해석을 촉구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것을 정치론의 실패라고는 판단하지 않고, 다중의 힘들을 영유화[전유]하는 것 없이, 이것을 합성한다는 스피노자의 비전이 남겨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주12]. 야생의 아노말리의 거의 결론부에 해당되는 구절에서 네그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12] Antonio Negri, «Reliqua desiderantur. Congruetta per una definizione del concetto di democrazia nell’ultimo Spinoza», Studia Spinozana, vol.1, pp.143-182(小林満丹生谷貴志 訳, 以下───スピノザ最晩年民主制政体概念定義推察する, 現代思想1510, 1987, 124-150). 

 

정치론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 정치적 실패가 곧 세계의 승리, ‘다중의 승리, 인간의 승리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지금 구축의 기획은 정체되어 있으나, 그것은 그 기획에 의해 전개된 역능에 정확하게 호응한다. 정치철학은 마키아벨리의 경험에 의해 예고되고 이후 처음으로 대중의 이론이 된 것이다. 그것은 르네상스에 출현한 위기가 갖고 있던, 비종교적-민주주의적 의의를 계승한다. 여기서 대중이라는 차원이, 혁명이라는 역사적 문제로 된다. 기획은 거기에 현전하며, 긴장감을 멈추고, 사명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AS: 317-318)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으로부터 민주제라는 제도가 안고 있는 논리적 불가능성을 연역한다. 민주제는 제도로서 구성된 시점에서, 다중의 목소리와는 간극을 낳는다. 그래서 이 제도를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 그 결과, 민주제는 제도조차도 아닌 운동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네그리는 스피노자를 통해서 이 민주제의 이론화 불가능성을 포착함으로써, 이것을 현실의 운동체의 가능성으로서 되파악한다. 네그리는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남긴 기획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네그리가 어떤 구체적인 국면에서 이 스피노자의 기획을 받아들이는가를 아는 것이다.

 

2) 다중의 생명정치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친 네그리의 발자취는 노동자주의(operaismo)’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맑스주의의 특이한 흐름 속에 있었다. 네그리는 1961년에 라니에로 판치에리가 창간한 잡지 붉은 노트(Quaderni rossi), 이 잡지의 분열을 거쳐 마리오 트론티, 마시모 차카리 등이 새롭게 1964년에 창간한 노동자계급(Classe operaia)에 참여한 후, 1970년대에는 특정한 조직에 수렴되지 않는 더 유연한 운동형태인 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엔리코 베를링게르가 이끄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현실노선을 내건 유로 코뮤니즘하에서 여당인 기독교 민주당과 1973년에 역사적 타협에 이르고, 세력을 잃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산당의 외부에 발판을 둔 노동자주의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는 독자적인 실험적 장을 형성했다.

노동자주의는 토리노에 피아트사가 건설한 대규모 미라피오리 공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근대화가 이탈리아에 도래했다는 것을 중시하고, 이것을 이론의 기반으로 삼는다. 북부 이탈리아에 남부로부터 대량의 노동자가 유입되고, 장인의 숙련을 요하던 일이 공장노동자로 대체되는 산업구조의 변화이다. 트론티가 자서전적 작품에서 되돌아보듯이, 그것은 노동과정에 있어서의 테일러주의,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포드주의[주13]의 개시를 의미하며, ‘노동자주의는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 대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대중노동자가 사회에서 중심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게 된다[주14].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해 공장의 논리가 사회 전체를 포섭하고 있으며, 그 결과 거꾸로 공장의 자주관리노동의 거부가 사회 전체에 파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13] Mario Tronti, Nous opéraistes. Le ‘roman de formation’ des années soixante en Italie, traduit de l’italien pjar Michel Valensi, Paris/Lausanne Éditions de l’éclat et Éditions d’en bas, 2013, p.53.

[주14] Maria Turchetto, «De “l’ouvrier masses” à l’entrepreneurialité commune. La trajectoire déconcertante de l’opéraisme italien», traduit de l’italien par Michel Buée, dans Jacques Bidet et Eustache Kouvélakis (dir.)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Paris, PUF, 2001, pp.296-301.

tronti-nous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대규모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의사결정이 사회 전체의 추세를 결정한다는 이 주장을 1970년대의 네그리는 3차산업의 확대로 연결시킨다. 1973년의 오일쇼크 이후, 표면화되는 자본의 논리 하에서의 산업구조의 재편을 시야에 넣으면서, 네그리는 생산 및 노동자의 정의를 단숨에 확대한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공장처럼 부를 가져오는 것이며, 공장노동자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주체가 그 부의 생산자라고 간주된다[주15]. 다양한 주체의 힘들이 결합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증대시킨다는 이 네그리의 전략은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스피노자론과 확실히 잘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스피노자로부터 도출한 생산력 개념을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시켜가는 네그리가 이탈리아 외에서도 독자를 획득했다는 것은, 그 후의 네그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15] Ibid., pp.301-304. 

그러나 사회 전체를 생산의 장이라고 보는 네그리의 입장은 생산이나 노동자의 저변을 크게 확대한 반면, 네그리가 생각하는 생산력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는 불투명하다. 이 점은 예를 들어 피에르 마슈레에 의해 지적된다.

 

어떻게 해서 다중의 육체는, 분명히 구체적인 것이 되는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 결정 심급의 개입이 필요하다. 다중의 리좀 구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것 자체, 집단적이며, 또한 수평적인 동일 평면 위에 전개하도록 명령하는 내적인 사명을 지키고, 모든 수직적인 배치형태를 거부하는 심급의 개입이 필요하다[주16].

[주16] ピエールマシュレ(桑田光平 ), マルチチュードの未来, 現代思想, 3312, 2005, 82. [* 이 텍스트는 2004년 11월 19일에 릴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시테필로>에서 발표된 것이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의 불역본은 La Decouverte사에서 같은 해 9월에 판단됐으며, 마슈레의 이 텍스트는 불역판의 간행에 즈음해 이 저작에 대해 평론으로 발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네그리의 답변이 Réponse à Pierre Macherey로 발표된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아직 추정이다.]

이 질문에 대한 네그리의 응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공통체에서 네그리/하트는 이 물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대답은 생명정치가 심화함으로써 다중의 생명 그 자체가 이미 정치라는 것이었다[주17]. 농촌적인 이탈리아로부터, 자본에 의해 생명이 완전히 포섭되는 단계로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이 포섭에 대해 생명을 탈환하는 것[주18]이 정치 그 자체였던 1970년대 이후의 네그리 자신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생명이 정치라는 이 언명은 확실한 절실함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하지만 다중의 정치가, 때로 네그리가 상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다음 절 이하에서 검토의 대상이 되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이다.

[주17] Michael Hardt et Antonio Negri, Commonwealth, traduit de l’anglais par Elsa Boyer, Paris, Stock. 2012. pp.236-242(幾島幸子古賀祥子 訳, 水嶋一憲 監訳, コモンウェルス───<帝国>える革命論, NHKブックス, 2012, 上巻, 276-283). 

[주18] Antonio Negri, Du retour. Abécédaire biopolitique. Entretiens avec Anne Dufournantelle, Paris, Calmann-Lévy, pp.35-36. 

 

 

2. 발리바르의 대중론

발리바르는 주저 대중의/에 대한 공포(1997)에서 네그리의 야생의 아노말리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스피노자론의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다중에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다중이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가가 고찰의 주제라고 한다. 발리바르는 다중이라는 단어의 일의성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대신해 대중(masse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주19]. 이 대중이라는 단어에 있어서는, 수량적인 크기에 덧붙여, 대중이 지닌 감정적인 측면에 빛이 내리 쪼인다.

[주19] Étienne Balibar, «Spinoza, l’anti-rwell», dans La Cra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s avant et après Marx, Paris, Galilée, 1997, p.58-60(水嶋一憲 訳, スビノザ大衆恐怖, 現代思想, 1510, 1987, 152-153).


 


1) 대중의 공포의 향배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에서도 정치론의 민주제 독해에 초점이 맞춰진다. 네그리는 생산관계에 의한 생산력의 영유화에 대해, 생산력의 자생적인 발전에 의한 개화를 거기서 읽어 들였다. 그러나 이 도식에서 경시되는 것은 스피노자가 정념[정서]’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사상가라는 점이다[주20].

[주20]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I, §5, p.13(畠中尚志 訳, 国家論. 岩波書店, 1940, 15, 14-15). 

자연권을 보유한 채로 사회상태로 이행하는 대중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정치체제의 구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본성에 정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중의 집합적 힘이 해체되어 버리면, 통치자의 권력도 즉각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치자는 규범에 인간을 맞추어서는 안 되며, 이것과는 반대로, 연민, 질투, 명예욕, 지배욕 같은 인간의 정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설계해야 한다. 이 정념의 공유를 확대하고, 이것을 국가의 강화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마트롱이 지적하듯이, 대중에 의해 공유된 정념은 이미 국가의 싹[주21]이다. 문제는 그 정념을 어떤 방향으로 회로화하느냐는 점이다. 발리바르의 정치론독해도 이런 스피노자의 정념을 둘러싼 논의 속에 있다.

[주21] Alexandre Matheron, Études sur Spinoza et les philosophies de l’age classique, Lyon, ENS Êditions, 2011. p.233.

발리바르가 그 중에서도 주목하는 것은 공포(crainte)’, 특히 대중의 공포(crainte des masses)’의 존재이다. 발리바르는 정치론을 이 공포라는 관점에서 독해해간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의 세 정체 중에서, 군주제와 귀족제는 대중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주권자인 대중의 의향을 수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군주제는 고문관을 둠으로써[주22], 또한 귀족제는 의회를 설치함으로써[주23], 비주권자인 대중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 발리바르는 여기에 체제로서는 민주제를 채용할 수 없는 군주와 귀족이 각각의 방식으로 거듭하는, ‘민주화의 노력을 알아차린다[주24].

[주22]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6, §15, p.45(邦訳, 615, 71). 

[주23] Ibid., chap. 8. §11, pp.76-77(邦訳, 811, 127). 

[주24] Étienne Balibar, Spinoza et la politique, Paris, PUF, 1985, p.90(水嶋一憲 訳, スビノザと政治, 水声社, 2011, 133). 

군주제에서도 귀족제에서도, 대중은 국가를 파괴하는 힘을 항상 유지하면서, 주권자인 군주나 귀족한테 압력을 가한다. 발리바르는 이로부터, 대중이 주권자에게 불어넣는 공포가 군주제와 귀족제의 존망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달리 말하면, 주권자가 대중한테 느끼는 공포가 두 체제의 결정적인 구동인이다. 이 대중의 공포에 주목한 결과, 발리바르의 민주제 정의는 네그리와 저절로 달라진다.

스피노자는 귀족제의 안정을 위한 요건으로서, 대중의 절대수에 비례하여 귀족의 절대수를 늘리는 것을 권장했다[주25]. 그래서 귀족의 절대수를 더욱 늘려서 모두를 주권자(귀족)로 삼는다면, 정체는 민주제로 이행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확대된 귀족제로서의 민주제의 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에 따르면, 거기서 새로운 문제가 일어난다.

[주25]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8 §13, p.78(813, 129-130). 

 

대중은 본성적으로 권력의 보유자에게서 무서운’(정치론84)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권력은 실제로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근거로 한계(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대중이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을까?[주26]

[주26] Étienne Balibar, «Spinoza, l’anti-Orwell», op. cit., p.80(邦訳, 161). 

대중이 주권자에게 불어넣는 공포는 대중 스스로가 주권자가 될 때, 스스로에게 되튀어오는 것 아닐까? 군주제와 귀족제에서는 대중의 공포가 민주화를 추진함으로써 긍정적으로 작용한 반면, 민주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중과 주권자가 일치함으로써, 대중 사이에서 공포가 상호적으로 증폭하며 만연한다. 이처럼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독해를 추적하면, 스피노자의 미완의 민주제로부터, 대중의 공포라는 논점이 도출된다.

모든 외적인 심급이나 억제가 없는 상태에서, 대중의 내재적인 의사결정이 절대적인 운동체로서의 민주제는, 이론상으로는 한없이 전체주의 운동에 접근한다. 발리바르가 대중과의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것은 이 점에서이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뒤따라가는 한, 스피노자는 대중의 힘이 향하는 방향, 즉 대중의 정념의 향배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발리바르는 정치론독해로부터, 대중의 양의성을 도출한다. 스피노자의 미완의 민주제를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연장해감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이 대중의 양의성을 독파했다는 것, 이것이 발리바르의 정치론독해의 요체이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주장하는 대중의 양의성은 대중의 운동이 항상 전체주의 운동으로 귀착한다는 결정론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이 대중의 정념의 향방이라는 문제를 열린 채로 남겨둔 이상, 이 물음을 더욱 더 검토하기 위해서는, 발리바르가 이 물음을 어떻게 떠맡았는가를, 그 도정에 비추어 이해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서구맑스주의에서 대중의 초점화로

발리바르에게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주제가 부상하게 된 배경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는, 대중의 개념과 프롤레타리아트(prolétariat)’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모리스 메를로 퐁티(1908-1961)변증법의 모험(1955)에서 사용한 서구맑스주의라는 인식틀을 실마리로 삼아 이 관계성을 검토한다.

메를로 퐁티는 죄르쥐 루카치(1885-1971)역사와 계급의식(1923)을 서구맑스주의의 시발점에 둔다.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자신의 선으로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원한 힘으로서 인간 앞에 출현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체객체로 분열된 상태로서 묘사된다. 이에 반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여 인간의 소외상태를 폐기함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 종합을 이룬다고 여겨졌다. 메를로 퐁티는 이런 루카치의 변증법을 주체가 개입하는 변증법이라고 하며,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화한 유물론에 대항하는 시도로 평가한 것이다[주27]. 그래서 서구맑스주의란 서구와 소비에트의 지리적인 거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주체를 둘러싼 분기라는 의미론적 쟁점을 포함했다.

[주27] Maurice Merleau-Ponty, 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Paris, Gallimard, 1955. p.49(滝浦静雄木田元田島節夫市川浩 訳, 弁証法冒険, みすず書房, 1972, 47). 

그러나 그 후의 서구맑스주의는, 메를로 퐁티가 아마 예상했던 것 이상의 속도로 다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주체일 터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중이 분리한다는 사태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의 루카치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허위의식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의식을 획득함으로써 이것을 지양한다는 것이 상정됐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는 오히려 그런 계급의식의 획득에 이르지 못한 대중이야말로 상태(常態)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이 사태는 소비사회에 매몰된 얼굴을 보이지 않는 대중이나, 공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사적 권리의 유지에 전념하는 소리 없는 대중으로서 묘사되는 경향이 있었다[주28]. 달리 말하면, 그것은 메를로 퐁티가 전제했던 주체의 윤곽이 점차 불분명해지는 과정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주28] Jean Baudrillard, À l’ombre des majorités silencieuses ou la fin du social, Fontenay-Sous-Bois, Cahiers d’Utopie, 1978 ; Marc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1965년의 초기작 『『자본을 읽자이후, 발리바르의 작업은, 이 주체의 불분명화의 흐름 속에서, 주체를 어떻게 재정의하느냐를 관건으로 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리바르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프랑스 공산당을 주된 활동의 장소로 삼았다. “유로코뮤니즘의 조류는 이탈리아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도 찾아왔고, 프랑스 공산당은 1976년에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한다. 하지만 이 노선은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산당의 독자적인 색깔의 상실과 기성 정당이 되는 것으로 이어지며, 그 후의 장기적 하락의 한 가지 원인이 됐다. 발리바르는 1981년에 공산당에서 제명 처분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된 것은, 프랑스 공산당의 이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주29]. 발리바르의 1980년대의 작업을 떠받쳤던 공산당의 후퇴에 의해, 적대적인 힘을 표현하는 회로가 계급투쟁으로부터 인종을 둘러싼 투쟁으로 이행한 것 아니냐라는 위기감이다[주30]. 여기에 발리바르가 스피노자론으로부터 끌어낸 대중의 양의성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주29] Étienne Balibar,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Paris, La Découverte, 1992, pp.19-95. 

[주30] Étienne Balibar et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 les identités ambiguës, Paris. La Découverte. 1988, pp.207-246((新装版) 人種国民階級───らぐアイデンティティ, 若森彰孝 他 訳大村書店, 1997, 27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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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발리바르는 이민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대중의 실상으로 파악한다. 이민노동자의 운동을 국경 횡단적인 시민권의 기초에 놓을 때, 대중은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주31]. 이것은 메를로 퐁티가 생각한 주체의 자명성의 해체의 적극적인 측면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을 이민노동자로서 읽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자(majority)로서의 프랑스인으로 파악할 때에는, 대중은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이 후자의 의미의 대중에 있어서는, 그 정념은 다수자의 이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로 표면화된다. 발리바르는 그 스피노자론에 있어서 대중의 힘과 정념이 결정화하는 양태를 문제로 삼았는데, 1980년대에 현실로 나타난 이 대중의 양의성은 그 스피노자론의 표적과 정학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주31] Étienne Balibar, Droit de cité, Paris. PUF, 2002(松葉祥一 訳, 市民権哲学───民主主義における文化政治, 靑土社, 2000).


 

3. ‘신권정치의 대두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이라는 네그리와 똑같은 대상을 다루고,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네그리에게는 부재한 논점을 연역했다. 네그리에게 이 논점이 부재하다는 것은, 생산관계와 생산력, 권력과 반권력, 혹은 군주제/귀족제와 민주제 같은 대립축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는 네그리의 수법에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발리바르의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관점을 연장해가면, 네그리에 있어서는 비가시적인 어떤 문제계가 부상하게 된다. 이번 절에서는, 프랑스에서 스카프 문제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현상에 대한 발리바르의 개입을 고찰함으로써 이 문제계의 소재를 시사하고 싶다.

스카프 문제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9년에 파리근교 클레이유의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시작됐다. 이슬람교도인 세 명의 여학생이 교실에서 스카프를 벗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은 사건이다. 공화주의자, 자유주의자, 인권단체, 종교적 공동체의 대표자, 페미니스트 등이 각각의 입장에서 이 사건에 관해 발언하고, 자주 논의는 소녀들을 젖혀두고 이루어졌다[주32]. 그 후, 2004년에 여봐란 듯한종교적 표장(標章)을 공립학교 내에서 몸에 부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사건은 일단 결말을 봤다.

[주32] 스카프를 착용한 소녀의 다양한 배경과 동기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작에 자세하다. 宮島喬, 移民社会フランスの危機, 岩波書店, 2006

발리바르는 세기(2012)에서 스카프 문제를 언급하고, 여태까지의 스피노자를 둘러싼 사색을 바탕으로 세속화된 세속주의(sécularisme sécularisé)”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주33]. 본고의 관심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개념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모범을 취하는 것이다. “스카프 문제에서 공화주의자, 나아가 자유주의자가 원용하는 것은 라이시테라고 불리는 세속주의 또는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공립학교를 포함한 공적 공간에 종교를 들여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그것은 개인의 속내에 담아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원칙의 근본에 있다. 이 지배적인 입장에서 보면, 스카프를 착용하는 여학생은 종교적 신조를 공적 공간에 들여오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권위로부터 오랜 역사를 걸쳐 쟁취한 라이시테의 성과를 위협하는,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신권정치의 재래로 간주되기도 한다.

[주33] Étienne Balibar,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Paris, Galilée, 2012, pp.91-104. 

그러나 발리바르가 세속화된 세속주의의 개념에 의해 시사하는 것은, 스카프의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국가야말로, 사실은 숨어 있는 신권정치의 실천자라는 것이다[주34]. 공적 공간으로부터 각종 종교를 철퇴시키는 국가는, 복수의 종교를 병렬적으로 취급하며, 심지어 사적인 선택의 문제로 변환하는 것을 통해서, 이것들을 최종적으로 총괄하는 수호자로서 나타난다. 공적 공간에서의 다원성의 확보의 권한을 국가가 계속 장악하기 위해서, 국가는 라이시테로 대표되는 무신론적 시민종교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라이시테란 그 때문에 종교로부터의 이탈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국가에 의한 정치와 종교 혹은 공과 사의 분할의 요체이다. 스카프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그 행위 자체에 의해, 뜻하지 않게 국가를 지탱하는 이 시민종교의 존재를 폭로해 보여준다. 발리바르가 더욱 더 세속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국가의 시민종교이다.

[주34] 이번 절 이하의 서술에 관해서는 아래의 저서로부터 시사점을 얻었다. 柴田奇子, リベラル-デモクラシーと神権政治───スピノザからレオ・シュトラゥスまで, 東京大学出版会, 2009. 특히 8ポスト形而上学における政治的無神論」───マルクス宗教一般再檢討를 참조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철학(이성)과 종교(계시)의 영역의 분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의 정교분리의 양식과는 다른 방식에서였다. 스피노자는, 대중이 믿고 있는 각각의 종교를, 이성이 진리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게다가 라이시테같은 무신론적 종교의 대체물을 강제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바르에 의한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주장이 살아 있는 것은, 여기에 있어서이다. ‘스카프의 금지를 다수자로서의 프랑스인이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국가의 시민종교에 대한 더 많은 의존을 가져다준다. 여기에서 대중을 좌우하는 정념의 불확실성의 한 가지 표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국가의 시민종교에 억압됨으로써, 무슬림은 더욱 더 정체성=동일성에 대한 집착의 경향을 강화한다[주35]. 발리바르는 이 순환을 피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이름을 들면서 세속주의의 세속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35] 일부 무슬림이 본질화하는 이 정체성이, 해당 주체를 압도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은, 페티 벤슬라마이다. 그의 작업은 이슬람이라는 상이한 대상을 다루면서, 바로 스피노자를 상기시키는 이단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Fethi Benslama, Déclaration d’insoumission, À l’usage des musulmans et de ceux qui ne le sont pas, Paris, Flammarion, 2005. 

 

매개(혹은 매개자) 역할을 여기서 맡을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 혹은 일종의 담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똑같은 성질을 가진 다른 선택지로서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환언하면, 그것은 새로운 종교로서조차도 종교의 시스템 속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며, 아마 유일한 예외는, 일종의 전면적인 이단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현재까지의 사상사(예를 들어 스피노자)에 있어서 때때로 얼굴을 내미는 어떤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에 따르면, 상이한 종교의 담론의 마주침을 간접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 혹은 공적 공간에 있어서 자유로운 대화를 함께 발전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 똑같은 공간에, -종교적인a-religieux(그러나 반드시 -종교적anti-religieux는 아닌) 추가적인 어떤 요소를 도입 혹은 개입시키는 것이다[주36].

 [주36] Étienne Balibar,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op. cit., p.100. 

발리바르는 여기서, 상이한 종교를 믿는 자들의 마주침을 성립시키는 장을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이 장은 국가라는 무신론적 시민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 사이에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대중의 정념을 투자[備給]하는 국가의 세속주의를 포함한 종교 일반에 대해, 거리를 취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장의 탐구이다. 발리바르는 이처럼 정치론에 내재하고 대중의 양의성을 이끈 결과로서, 오늘날에는 신학정치론신권정치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네그리의 다중으로 돌아가, 그 문제점을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독해는 정치론에서 스피노자의 핵으로서의 다중을 찾아내고, 이것을 전면적으로 전개하는 점에 그 강점이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인데, 스피노자는 정치론의 저자인 동시에, 신학정치론의 저자이기도 했다. 발리바르가 시사하듯이 정치론의 대중(=다중)론과 신학정치론의 신권정치 비판은, 상이한 의도 하에서 작성되고, 두 저작의 한쪽을 다른 쪽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차이는, 특히 신학정치론에 있어서, 종교에 의해 충동질된 대중의 정념에 대한 스피노자의 거리로서 나타났다. 네그리의 다중에는 확실히 종교의 문제는 표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그리가 이 다중의 다양성을 묶는 공통점을 끄집어내려고 했을 때, 그것이 의사적인 시민종교가 되지 않는 보증은 어디에 있을까? 이 가능성은 오늘날의 네그리/하트의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사색에 있어서도, 지워지지 않고 의연하게 뒤따르고 있는 그림자인 것이다.

 

결어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대비는, 사상의 형성 및 이것과 깊게 결부된 사회상황을 동시에 고찰함으로써 처음으로 그 의의가 분명히 밝혀진다는 의미에서, 뛰어나게 사상사적인 과제였다.

우선, 두 사람 사이에는 스피노자의 요구 정치론을 둘러싼 해석상의 쟁점이 존재했다. 네그리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극이라는 관점에 서서, 이 저작의 미완성 부분을 추측함으로써, 다중에 의한 힘의 합성이 열어젖힌 미래라는 이야기를 거기서 읽어냈다. 반면 발리바르에 있어서는, 네그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른바 생산력의 성질이 문제인 것이며, 혹은 또한, 네그리가 선험적으로 선하다고 간주하고 있는 듯한 대중(=다중)을 충동시키는 정념이 문제였다.

다음으로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이런 사상적 차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두 사람의 여정을 검토했다. 1970년대의 유로코뮤니즘의 흐름 속에서, 공산당이 영향력을 잃어가는 똑같은 시대 배경에서 출발하고, 두 사람은 각각의 길로 분기했다. 네그리는 생명정치 개념을 부연함으로써 3차산업의 확대에 역점을 두고, 오늘날의 비물질적 노동의 전개를 시야에 넣었다. 발리바르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중의 정념의 결정화가 자의성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과정은, 네그리에 있어서는 다중의 전면적 긍정, 발리바르에 있어서는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각각의 스피노자론에 대응한다.

역사를 풀어헤친다, 대중의 양의성에 주목하는 발리바르는 파시즘 시기에서의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중(빌헬름 라이히)이나, 19세기의 길거리를 떠돌면서 소란을 일으켰다고 간주되는 위험한군집(귀스타프 르 봉) 같은 대중론의 계보와 부분적으로 관심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중을 이렇게 결정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대중의 정념의 향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로화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대조로부터, 하나의 방향성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네그리는 정치론신학정치론을 종속시키기 위해, 신학정치론고유의 신권정치의 비판이라는 물음을 비가시화하고 있다. 이 점은 네그리가 하트와의 공동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서, 발리바르는 정치론에서 대중의 양의성을 이끌어냄으로써, 근래에는 정치론신학정치론의 논의의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재차 중시하고 있다. 이 점을 본고의 끝에서 국가의 라이시테를 포함한 종교 일반의 비판으로서 검토했다. 그리고 네그리/하트의 공통적인 것이 사이비적인 시민종교와 어떻게 차이화되는가라는 논점이, 네그리/하트에 있어서의 향휴의 과제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사했다.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으며, 각각 정치론신학정치론이라는 스피노자의 두 개의 측면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이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의 부족을 지적하고, 이것을 결과적으로 보완한다는 의미에서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최종적으로는, 네그리/하트가 오늘날 전개하는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논의에 비판적으로 합류해가는 것이다.

 

* 본고는 일본학술진흥회 신진연구자 인터내셔널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의한 연구 성과의 일부이다. 여기에 적어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또한 프랑스에서의 재외 연구 중에 본고를 집필했다는 경위 때문에, 번역서가 있는 문헌에 관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번역서의 저본이 아닌 불역본을 참조해 새롭게 번역한 것이 있었다는 것도 모두 일러둔다. 번역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바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위기의 유럽

이민, 난민, 계급구성, -식민지적 자본주의


** <말과 활> 11호(2016 가을 혁신호)에 수록된 대담의 <전문>을 공개한다. 

 

 이 글의 원제는 危機のヨーロッパ 移民難民階級構成ポストコロニアル資本主義산드로 메차드라(Sandro Mezzadra)와 기타가와 신야(北川眞也)의 2016년 2월 15일자 인터뷰이다일본의 진분쇼잉(人文書院)』 등의 허락을 받아 번역 게재한다.

산드로 메차드라는 볼로냐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웨스턴시드니대학교 문화사회학연구소의 연구원(adjunct fellow)이다지난 10여 년 동안 그는 특히 전지구화이민시민권-식민이론비평 등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인 작업을 해 왔다그는 포스트오페라이스모’ 논쟁의 적극적 참여자이며 «유로노마드프로젝트(Euronomade project)»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주요 저서로는 다음이 있다도주의 권리(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ombre corte, 2006) ; -식민지적 조건 전지구적 현재에 있어서 역사와 정치(La condizione postcoloniale. Storia e politica nel presente globale)(ombre corte, 2008) ; 맑스적 작업장에서 주체와 그 생산(Nei cantieri marxiani. Il soggetto e la sua produzione)(Manifestolibri, 2014). 브렛 넬슨(Brett Neilson)과 방법으로서의 경계선혹은 노동의 증식(Border as Method, or, the Multiplication of Labor)(Duke University Press, 2013)을 공저했다.

기타가와 신야는 1979년 오사카부에서 태어났다간사이가쿠잉대학대학원(関西学院大学大学院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지리학 박사이다현재 미에대학(三重大学인문학부 조교수번역서로는 프랑코 베라르디(비포)의 NO FUTURE :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 운동사(ノー・フューチャー イタリア・アウトノミア運動史)(廣瀬純과 공역洛北出版, 2010). 논문으로 이동=운동=존재로서의 이민 유럽의 입구로서의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의 수용소(移動運動存在としての移民ヨーロッパの入口としてのイタリア・ランペドゥーザ収容所)(VOL』 4, 2010), 유럽지중해를 흔들고 있는 후-식민지적 경계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서의 이민의 감금의 형태들(ヨーロッパ・地中海くポストコロニアルな境界 イタリア・ランペドゥーザにおける移民諸形態)(境界研究』 3, 2012), 대도시를 지금 여기서 멈춰세워라 밀라노 교외에서의 사회적 장소에 대한 욕구(大都市をいまここでスクウォットせよ ミラノ郊外における社会的場所への欲求)(社会文化研究』 17, 2015), 이민의 무덤이 된 지중해 유럽에 요구되는 응답책임(移民墓場地中海ヨーロッパにめられる応答責任)(竹中克行 編전지구화 시대의 문화의 경계 다양성을 관리하는 유럽의 도전(グローバル化時代文化境界 多様性をマネジメントするヨーロッパの挑戦)(昭和堂, 2015등이 있다.


 

기타가와 신야(北川眞也, 이하 기타가와’) : 오늘은 이민자들의 이동이나 운동을 통해, 나아가 -식민(postcolonial)’이라는 관점에 입각하면서, 유럽의 현황에 관해 듣겠습니다. 이때 당신의 연구 내용이나 입장을 언급하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맨 먼저 시민권(citizenship)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유럽에 관해 생각할 때, 이 패러다임이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지, 제게는 다소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유럽의 경계지대든, 대도시든, 거기서 이민자들에게 다양하게 행사되는 폭력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사태를 고려한다면, 국민국가의 시민권, 나아가 과거에 자주 논의된 유럽 시민권에 관해 여전히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시민권 개념을 아주 중시하면서 이론적정치적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96년에 상파피에들의 투쟁이 일어났습니다.[주1] 이후 이민 관련 운동에서는 운동으로서의 시민권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수많은 논의나 연구,[주2]그리고 수많은 실천이 전개됐습니다(합법화정규화에 관한 투쟁, 이민자 구금 센터에 반대하는 투쟁, 이민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이 구금 공간 내부에서의 투쟁을 의미했습니다. 나아가 이민자들의 파업. 또한 교외[방리유]의 폭동, 매일매일 이민자들의 국경넘기 운동도 그렇죠).

[주1] 상파피에(sans papier)란 체류허가증이 없는 이민자들을 가리킨다. 시민에게 부여된 권리를 갖지 못한 채 항상 강제 송환의 가능성에 노출된 이민자들. 이들은 1996년 파리에서 체류의 정규화를 요구하면서 처음에는 상탕브로와교회, 마지막에는 상베르나르교회를 점거했다. 크게 주목 받은 이 사건은 상파피에라는 존재를 명시하여 프랑스사회에 인지시켰다

[주2] Sandro Mezzadra, 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 Ombre Corte, 2002, 특히 3, 8

    거기에서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은, 대충 말하면, 이런 운동이 기존의 제도로서의 시민권에 도전하고 긴장을 부과하며, 이를 더 평등주의적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도식이었습니다. 특히 국적으로부터 시민권을 떼어낼 가능성이 바로 유럽 시민권이라는 틀 아래에서 최소한 다양하게 기대되고 검토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민 운동의 결과, ‘유럽 시민권에서는 제도적 수준에서도 이민자들이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운동으로서의 시민권에 관해 생각하는 가운데, 유럽 시민권의 가능성이 나름대로 느껴졌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최근 일인데, 당신은 2013년의 정세에 준거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시민권 개념에 관해 이뤄진 작업은 유럽에서 비판적 사고와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을 여전히 구성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시민권의 제도적 틀 자체의 심대한 변형을 배경으로 삼아 이 작업이 시험에 부쳐질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주3]

[주3]  Sandro Mezzadra, Seizing Europe. Crisis management, constitutional transformations, constituent movements, 2013, http://www.euronomade.info/?p=462

지금도 수많은 난민들, 이민자들이 도주의 권리를 행사 유럽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고 들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서의 시민권(구성하는 권력, 제헌권력)과 제도로서의 시민권(구성된 권력, 제정권력)의 관계가 전혀 기능하지 않는 듯 보이는 현재,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삶과 투쟁에 관해 여전히 시민권 개념에 의거하여 사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유럽 시민권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드로 메차드라 : 글쎄요, 너무 단순하지만 상당히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죠. 그것은 약 3년 전에 쓴, [당신이 방금 언급한] 텍스트 유럽을 붙잡다[장악하다]에서 어떤 식으로든 논의되고 있습니다. 유럽 시민권이 오늘날 심각한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90년대 전반기의 상황과 매우 다릅니다. 당시에는 역사적 계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 거기에서는 유럽에서 후-국민적(post-national) 시민권의 구성이 그 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기준점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몇몇 중요한 사회운동, 특히 이민자들의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확실히 이민자들은 법학자가 말하는 두 급()의 시민권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한 유럽 시민권과 마주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시민권에 가입하려면 EU회원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시민권이 전개되는 후-국민적 지평의 존재란 바로 이민자들의 운동에 어떤 긍정적인 것에 상당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민자들은 국가 수준에서는 엄격한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니까요. 분명히 계속되는 세월 동안, 연방주의자들이 말하는 유럽 시민권이라는 개념의 내부에 암암리에 내포된 잠재성(virtualità) 새로운 전개를 보이지 못했어요. 그러나 몇 년 동안 이민자들의 운동, 적어도 몇몇 이민자들의 운동은 유럽 시민권이라는 차원을 긍정적인 기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00대 중반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유럽헌법조약 국민투표[주4]와 함께 이미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죠. 이것들은 EU의 형식적 구성의 형성(costituzionalizzazione formale) 과정을 동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전지구적 경제 위기가 채무 위기라는 형태로 유럽에 도착했을 때 특히 근원적으로 변화했다고 봅니다. , 2010년 무렵의 일입니다. 이때 유럽 통합 과정의 모종의 방향전환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분명히 금융에 기초를 둔명령의 몇 가지 계기가 유럽통합과정에 대해 결정화(結晶化)되고 고정화되는 상황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분명해진 것이 점차 판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유럽통합과정의 위기가 유럽 시민권의 위기에도 상당한다는 것입니다.

[주4]  2005529일 프랑스에서, 같은 해 6월 네덜란드에서 유럽헌법조약의 비준에 관한 국민투표가 이루어졌는데, 두 나라에서 모두 부결됐다.

현재 우리는 이 위기가 훨씬 더 심각해진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는데요, 2015년에 대해 고찰해 봅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다수의 위기들 사이 연쇄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특히 그리스 위기와 이민 위기로 정의된 그것과의 사이에서입니다.

간단하게 분석해봅시다. 그리스 위기는 다시 한 번 긴축정책을 계속한다는 위로부터의 권위적인 강요를 초래했습니다. 그 경향에 있어서 이들 정책은 사회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민권과 그 내용을 텅 비게 하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위기가 유럽의 성립(establishment)에 있어서 해결된 바로 그 방식을 통해, 바로 긴축정책이라는 규범, 금융재정의 엄정함에 기초하여, 유럽통합과정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창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일어난 것은 이른바 이민 위기입니다. 즉 대량의 이민운동, 전쟁이 전개되는 지역으로부터의 대량의 도망운동, 시리아만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시리아로부터의 도망운동이 유럽공간을 전체적으로 격렬하게 급습했니다. 그들은 20년 전부터 “EU의 역외 경계의 통제 체제(regime)”로 정의되고 있는 것을 위기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리하면, 우리는 긴축정책의 지속에 의해 규정된 조건들로부터는 통합 과정을 정치적으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 곧바로 실증된 상황에 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의 앙겔라 메르켈의 역할을 생각해보세요. 아주 분명한데요, 이 상황에서 메르켈은 일이 유럽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위기에 대한 독일의 입장을 특징짓는 그것과는 부분적으로 다른 몸짓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민자, 특히 시리아로부터의 대량의 도망에 대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주5]에 기초하여, 유럽에서 독일의 지도적 역할을 일정하게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5]  201593, 시리아에서 벗어나는 도중에 사망한, 터키의 해안가에 누워 있는 세 살짜리 유아의 시신 사진이 크게 보도됐다. 다음날 메르켈은 국경을 개방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메르켈, 또 독일정부의 일부 인물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다음의 것을 확실하게 강조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기, 경제위기가 출현하면서 경계[국경선]를 통제하는 유럽의 여러 정책, 이민통제가 근래에는 더욱 제한적이고 훨씬 닫힌 특징을 띠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사항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이민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메르켈은 한편으로는 유럽에서 독일의 지도적 역할을 주장하고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는 다른 기반에 토대를 두고 독일의 이민정책, 더 일반적으로는 유럽의 이민정책을 제출하는 시도를 결합시키기 위한 기회를 포착하려 한 것은 아닐까요?

 다만 그리스 위기가 한창일 때 독일이 주장한 입장에 근거하여 이뤄진 이 모든 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메르켈의 이니셔티브는 유럽 수준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매우 간단하고 신속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긴축정책, 금융재정의 엄정함을 기반으로 해서는, 또한 기본적으로는 유로라는 통화를 기반으로 해서는 유럽 공간을 정치공간으로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15년 여름 이후, 우리는 유럽통합과정 자체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지리적인 수준에서도 언표되고 있습니다. 유럽통합은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 이후 25동안 독특한 방식을 하고 항상 가변적인 지리(地理)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다양한 공간적 좌표 사이의 교차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로의 유럽은 솅겐(Schengen)의 유럽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물류의 유럽 통합 공간도 존재합니다. 아직도 다른 지리가 존재할 것이고, 아마 이 지리에 대한 언급은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25년 동안 유럽 통합의 특수성이란, 엘리트들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만, 이런 다양한 유럽사이의 접합부, 교차점에서 교묘하고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일종의 역량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그것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 위기의 주변에서는 유럽의 북과 남의 골이 극적인 형태로 깊어졌습니다. 이른바 이민위기에 관해서는 유럽의 동과 서의 골이 비극적인 형태, 새로운 형태로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유럽과 영국의 관계가 지닌 역사적 곤란,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이 곤란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유럽 통합 과정의 전체 위기, 무엇보다 마비를 일으킬 것입니다. 이 마비, 위기는 상당수 유럽 엘리트들에게도 성가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 위기, 마비의 표시 아래에서 유럽에서 생기는 것은 정치의 재국민국가화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죠. 국민국가가 EU의 물질적 구성(costituzione materiale)[주6]의 내부에서, 난폭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국가가 재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신구의 우익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의 온건한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성장은 크게 불안을 야기합니다.

[주6]  물질적 구성(costituzione materiale)’이란 법이나 규범에 기초한 형식적 구성(costituzione formale)’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혹은 간접적으로만 승인되는, 사회적 계급들의 갈등이 갖는 헌법-구성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사이의 균형을 확립한다. 그것은 법권리와 운동의 관계가 우연적인 것이라는 점도 나타낸다

 그래서 다음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의 재국민국가화가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것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기획, EU라는 기획을 위기에 빠뜨리고 바로 국가 수준에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간을 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연결의 등장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국가가 중심적 역할을 맡으려고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구성체의 기본적 요소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저는 국민국가가 주역으로서 재차 등장한다면, 그것은 그저 신구의 우익을 위한 공간을 여는 것일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세계의 이 장소, 즉 유럽의 새로운 좌파에게 급진적이고 저항력 있는 변혁을 위한 정치 전략은 아직도 유럽이라는 전략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공간을 움켜쥔다(장악한다, seize)는 전략입니다.

 

기타가와 : 한편으로는 유럽에 도착하더라도,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처음 발을 내디딘 유럽 국가에 보호신청을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는 더블린조약에 항거하는 이민자들, 난민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도착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이민자들, 난민들은 재국민국가화의 현황을 감안하면, 그것에 항거하고, 유럽공간을 움켜쥐려고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으로 설령 유럽에서 재국민국가화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국민과 시민이 통합되어야 할 공간이 충분하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 재국민국가화가 과거의 국민국가, 이른바 국민사회국가로 이끌려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수한 투쟁을 통해, 또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를 통해 갈등을 매개하고 그것을 국민사회국가로 포섭하는 물질적인 구조는 분쇄됐습니다. 당신이 논하고 있습니다만, 유럽에서 국민사회국가는 자유로운임노동자-남성-백인을 시민의 중심적형상으로 삼아 왔습니다.[주7]국민사회국가는 생산의 중심적형상이기도 한 그들을 어떤 형태로 정치적 대표제의 제도적 회로에 포섭함으로써 갈등, 계급투쟁을 중성화하고, 복지의 확대를 통해 자본축적을 유지해온 것입니다.

[주7]Sandro Mezzadra, S.2002. Soggettività e modelli di cittadinanza. In N.Montagna, a cura di, Controimpero:per un lessico dei movimenti globali, Roma:Manifestolibri, pp.81-100.

그러나 이런 주체 위치는 다양한 운동을 통해 거부되었으며, 현대의 전지구적 자본에 있어서도 더 이상 [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이렇다면, 사회통합의 공간, 이른바 시민권의 공간 자체가 기능 장애에 빠집니다. 이민자들을 통합하는 것은 물론, 원래 국민이나 시민을 통합하고 이들을 나름대로 보호하는 동시에 관리해온 공간 자체가 물질적으로 극복 혹은 크게 개편되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통합되는 공간 자체의 이러한 과정을 감안하면, 현재 유럽의 물질적 구성의 한복판에서 이런 재국민국가화는 대체로 어려우며, 새로운 반동적 폭력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됩니다.

 

메차드라 :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유럽에서 정치의 재국민국가화는 시민권의 재국민국가화를 이끌 것입니다. 현재의 조건들, 당신이 지금 언급한 과정들에 의해 특징지어진 조건에 있어서는, 그것은 그저 사회의 위계화의 과정들, 노동의 불안정화(프레카리아트화)의 과정들, 사회적 분단의 과정들, 결국에는 유럽에서의 여러 국민사회의 인종주의를 토대로 한 위계화의 과정들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민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유럽에서 정치의 재국민국가화라는 관점은 확실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큰 불안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관점이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프랑스의 국민전선,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독일의 독일을 위한 선택 같은 정치세력(다른 것도 여기에 보탤 수 있겠죠)의 말본새[레토릭]를 본다면, 적어도 항상 이런 정치세력들의 목적은 이들이 활동하는 나라에서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태가 이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린 르펜, 살비니 같은 정치인들[주8]도 우리네 도시의 이민자들의 존재감이 구조 수준의 요소라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시의 내부에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으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의 이른바 후-식민지적 특징이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구조 수준의 요소를 체현하는 것입니다.

[주8] 마리 르펜은 프랑스 국민전선의 당수. 마테오 살비니는 이탈리아 북부동맹의 서기장.

사태가 이렇다면, 그러면 전망은 어떨까요? 전망은 이른바 시민권의 편성 전체의 한복판에서 이민자들을 종속시키는 여러 가지 과정의 여러 가지 요소가 더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망은 이민자들의 대량추방이 아닙니다. 전망은 오히려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시민권,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유럽 시민권의 내부로 그들이 포섭될 때, 가혹하고 폭력적인 종속이라는 특징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기타가와 : 이것과 관련됩니다만, 당신은 유럽과 이민노동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차적 포섭(inclusione differenziale[차이적 포함])이라는 개념[주9]을 이용했습니다. 그것은 통합이 더 이상 우선시되지 않는 현재의 유럽의 이민, 난민에 대한 통치성을 생각할 때, 당신이 매우 중시했던 개념이라고 이해합니다. 유럽은 이민을 모두 추방하고 싶지는 않아 합니다. 다양한 차이를 시간적공간적 경계에 구겨 넣으면서 이민자들의 노동만을 포섭[포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9] 예를 들어,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302.

그러나 당신은 20156월 히로세 준(廣瀬純)과 한 인터뷰[주10]에서, 바로 현재의 유럽에서는 이 시차적 포섭조차 기능 장애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요? 이것은 유럽의 정치적 구성에 대해 아주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민자들, 난민들이 계속하고 있는 대량 운동을 눈앞에서 보노라면, 인상적입니다만, 비정규적이면서 일시적인 형태라고 해도,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 포섭되는 것 같다고는 좀체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유럽 시민권의 틀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산업예비군만도 못하는, 과거의 제3세계에서 현저한 과잉인류[주11]가 유럽 내부에서 급습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주10] 히로세 준 편저, 廣瀬純 編著, 資本専制, 奴隷叛乱 : 南欧先鋭思想家8くヨーロッパ情勢徹底分析, 航思社, 2015, 18-19.

[주11] 풍요로운 국가로의 대규모 이주를 막는 첨단 국경선의 강제가 문자 그대로 거대한 벽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슬럼만이 금세기의 과잉 인류를 수용한다는 문제 해결을 도맡아 왔다. 안전하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토지의 최전선의 도처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도시의 틈새로 신참자는 주변 중의 주변목숨을 걸수밖에 없는 존재조건에 직면하고 있다.” Mike Davis, Planets of Slums, Verso, 2006.

 

메차드라 : 글쎄요. 시차적 포섭이라는 개념은 최근 제가 가다듬어온 개념입니다. 특히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한 오스트리아의 브렛 넬슨과 함께 한 작업에서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개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나 넬슨은 이 개념에 대해 어떤 종류의 저작권도 요구하지 않습니다(웃음). 이 개념은 널리 유통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또한 유럽뿐 아니라 이민이나 경계에 관한 작업에 씨름하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퍼졌습니다. 게다가 이 개념의 계보는 페미니즘, 인종주의의 비판적 연구에 속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길게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만.

그건 그렇고, 유럽에서 이 개념의 사용은 이른바 EU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regime)의 변형에 관한 논의의 내부에서 특히 중요했습니다. 최근 20, 25년 사이에, 많은 성공을 거둔 표현,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새 유럽(Fortezza Europa)”이라는 겁니다. 모종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가 초래하는 여러 가지 효과와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저도, 우리도 이것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만,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류언론에도 널리 보급된 이 개념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지 않을까? 혹은 이 개념은 필연적으로 유럽의 경계들을 통제하는 이민정책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만, 그것은 이민자들을 유럽공간의 완전한 외부에 담아 두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위상이 커지고 있는 모양과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유럽은 이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우리의 확신도 있고, EU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가 기능하는 방식을 기술하려면 시차적 포섭 같은 개념이 더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시차적 포섭이라는 개념은, 이미지라는 점에 있어서도 벽이나 요새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댐과 필터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언급합니다. 우리가 경계와 이민을 통제하는 유럽의 정책들의 이런 선별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입니다.

또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이런 정책들이 한편으로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인 효과들, 그것은 바로 요새 유럽의 이미지에 의해 부각되었던 효과들입니다만, EU의 역외경계에서 무수한 사망자를 산출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다른 한편, 이것은 새로운 측면입니다만, 시차적 포섭에 대해 논하는 것은 경계라는 장치가 그 총체에 있어서는 어떻게 EU의 개별 가맹국의 내부에서도 작동하는지, 시민권의 공간을 계층화하는 위계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몇 달 전에, 시차적 포섭이라는 이 범주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 같지 않다고 제가 말했다면, 저는 다름 아닌 앙겔라 메르켈의 태도에 대해 아까 말한 의미에서 그것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4-5년 새, 경계 통제의 정책들에 근원적 경직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최근 몇 달 사이에 보여졌듯이, 모든 선별적 통제의 가능성에 비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민자들의 이동에 직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유럽의 무슬림 이민자들의 일부에 급진화의 과정들이 엄습해 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련의 [테러] 공격이 있고, 그 후 이것들은 EU의 역외경계의 관리 운영에 있어서 안전에 대한 불안을 현저하게 부각시키게 됐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주 밝혔던 것은 유럽에서 경계 통제 체제가 최근의 이른바 다양한 우려, 다양한 논리를 조합시켜왔다는 것입니다. 경계 통제가 어떻게 기능해 왔는지를 고찰한다면, 우리는 이 안전에 대한 우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민의 경제적 유용성에 대한 우려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이른바 이민관리의 이론과 실천으로 번역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논리, 예를 들어 인권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논리가 단순히 이데올로기와 수사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지만, 물질적 수준에서 유럽의 경계 통제 체제의 하나의 구성적인 요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다양한 논리들 사이의 이른바 균형, 이런 다양한 논리들의 효과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최근 몇 개월, 아니 몇 년일까요, 이 안전의 물음이 경계에서 활동하는 제반 행위자들과 발맞춰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것과 동시에, 많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 아래서는 훨씬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민정책을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향하게끔 하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덧붙일 수 있는데, 이런 요인들 사이의 조합이 시차적 포섭의 이런 장치들의 동결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엘리트, 유럽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전에는, 시차적 포섭은 아무튼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관점이 아닙니다. 저는 이 시차적 포섭의 장치들에 대해 근원적인 비판을 전개하려 해왔으며, 시차적 포섭의 장치들에 맞서는 이민자들의 운동과 투쟁을 분명히 하려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장치들의 효력, 이것은 기술적인 의미에 있어서입니다만, 이 효력이 기능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에는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많은 정부들, 경제, 특히 노동, 복지에 씨름하는 정부부처 중에는 이 위기에 대한 확실한 의식, 이것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는 모종의 의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 말합니다만, 유럽은 이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타가와 : 그렇군요. ‘테러와 안전화(securitization)의 나선운동이 강화되고, 솅겐 공간의 재검토가 논의되고, 이민자들의 이동에 대한 벽의 이미지가 훨씬 강조되는 가운데에서도, 유럽의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이민 운동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은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민자들의 이동이나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유럽의 운동에서는 당신도 깊이 관여했던 것인데,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 이민의 자율성(autonomia delle migrazioni)이라는 아이디어가 가다듬어지게 됐습니다.[주12] 이민자들의 이동은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나, 경계 통제 체제의 합리성으로는 절대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과잉적 요소가 있으며, 그것에 의해 모종의 예상 밖의 이동, ‘난류로서의 이동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자율적인 이동을 가능케 하는 이민자들의 욕망과 기대, 국경 넘기의 전략과 전술, 결국 주체 형성 과정을 주시하는 시각이었습니다.

[주12]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8.

이민의 자율성은 이민자들의 이동을, 현실을 바꾸는 사회적 힘들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이민자들의 이동이 자율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면, 이런 경계 통제 체제는 오히려 이 자율적인 이동을 추종하는 형태로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이동이 유럽의 경계 통제 체제를 어떤 의미에서는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의 이동을 더 역사적지리적으로 맥락화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주의 권리4장에도 썼습니다만,[주13] 당신은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이동을 제3세계의 반식민지투쟁과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양자가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현대세계의 정치적 배치의 전지구적 변동, 심지어 운동이라는 것의 이미지를 부풀리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테제인 것 같습니다.

[주13]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115-116.

그것은 첫째, 이민자들의 이동 자체의 정치성을 금세 환기시키고, 그것에 대해 사고하라고 강제합니다. 또한 유럽의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 통제 체제의 식민지성, 혹은 유럽 공간 자체의 불가피한 식민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 유럽의 식민지성이라는 것은 유럽 내부에서, 프란츠 파농의 이런 폭력, 또한 폭력의 물음이 지닌 현대성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주14]

[주14] 北川眞也, -식민지 유럽에 시민은 한 명도 없다(ポストコロニアル・ヨーロッパに市民はひとりもいない), 現代思想, 43-20, 2015, 70-80

이것은 현대의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의 이동을 생각하면, 더 중요해지고 있는 테제라고 봅니다만, 어느 정도 과감한 내용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테제에 대해 조금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메차드라 : 그렇군요. 당연히 이런 종류의 주장에는 어떤 도발적인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고찰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열겠다는 의도죠. 새로운 고찰을 위한 공간을 열 때는 일방적으로 소정의 주장을 강조하는 것도 역시 필요합니다.

전체적으로 유럽에서 우리가 이제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이민자들의 이동은 후-식민지적인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 그 장() 혹은 다른 곳에서 제가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종주국과 식민지 사이의 일종의 메타 경계의 존재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이 이동이 역사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 질서의 파괴는 무엇보다 먼저 수많은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야기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의 이민자들의 이동은 반식민지 운동의 여러 행위와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지리를 묘사하고 있다고 말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민자들의 이동이 그것 자체로,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봐서, 주체성의 수준에서 반식민지 운동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몇몇 기본적인 차이점, 이민자들의 이동과 반식민지 운동 사이의 근본적인 비연속성을 뭔가 밝힐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결론과도 같은 유명한 텍스트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의 반식민지 운동의 훌륭한 선언문입니다. 거기서 파농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지여, 형제여, 이 유럽을 뒤로 합시다. 이슬람, 세계의 거리에서 인간을 살육하면서 인간에 관해 말하는 이 유럽을 등등.[주15] 이 텍스트는 꽤 강력합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 반식민지 투쟁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그 당시까지 유럽을 특징짓던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형태들을 구축한다는 반식민지 투쟁의 결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주15] 해당 대목은 다음이다. “유럽의 모든 거리에서, 세계 도처에서, 인간을 만날 때마다 유럽은 인간을 살육하면서, 더욱이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유럽과 결별하자.” フランツ・ファノン鈴木道彦浦野衣子訳)『われたるみすず書房1969181.

반식민지 투쟁에서 탄생한 정치체제의 역사가 프란츠 파농 같은 사상가활동가에 의해 이미지화된 것에서 보면, 약간 다른 방향성을 가진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력한 계기, 반식민지주의의 정치적 상상력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이 상상력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파기함으로써 그때까지 유럽에서 계승되어 온 것과 비교해서, 근원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경험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유럽을 떠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식민지 지배하에 놓인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무수한 약탈당한 인간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유럽을 뒤로 한 채 떠난다기보다는 오히려 유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말의 일인데요, 난민들, 이민자들에 의해 조직된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멋진 행진을 담은 영상을 보셨습니까? 행진의 선두에는 아마도 시리아에서 온 듯한 이민자 남자가 있는데, 그는 EU의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주16] 

[주16] 이 행진은 아마 201594일에 일어난 것 같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부터 오스트리아의 국경, 심지어 빈을 목표로 이민자들, 난민들이 고속도로를 걸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즉 파농 같은 매우 중요한 반식민지주의의 이론가에 의해 적어도 상상되고 기술된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민자들의 이동에 매우 견고한 후-식민지적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유럽에 관해 말하면, 그들의 후-식민지적 규정을 통해 유럽과 그 밖의 공간들,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준비할 긴급성이 끊임없이 다시 제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특히 제2차 대전 후의 다양한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강력하게 던져진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이민자들의 이동은 특히 역시 시리아의 상황, 그러나 또한 더 일반적으로는, 예를 들어 마리 같은 아프리카의 여러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략 노골적이고 심플한 힘으로, 이 문제를 다시 던지는 운동에 다름없습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이것은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유럽 속에, 유럽으로 던져진 본질적인 문제였어요.

 

기타가와 : 이로부터 많은 것을 재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식민지 운동이 비록 국가 공간의 주권으로 회수되어 버렸다고 해도, 이 투쟁을 가능케 한 해방의 욕구, 그리고 이민자들의 이동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평등에 대한 욕구는 역시 재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차드라 : 그렇죠. 물론 거기에는 직선적인 연속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들, 역사적 운동, 시대의 전환의 이른바 배치는 있습니다. 그 안쪽에서는 다양한 요소의 연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타가와 : 말씀하고 계신 것은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운동이, 설령 어떻게 형언되더라도, 유럽과 그 외부의 지역들을 무매개적으로 접속하고, EU와 그 외부의 국가들(예를 들어 터키) 사이의 관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유럽은 확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민자, 난민들의 이동이 EU를 인구학적 의미에서도 확대시켰고, 그것이 EU회원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최근의 글[주17]이 생각났습니다.

[주17] Étienne Balibar, Europe and the refugees:a demographic enlargement, 2015, https://www.opendemocracy.net/can-europe-make-it/etienne-balibar/europe-and-refugees-demographic-enlargement

그런데 이제 당신이 말하는 지구 규모의 역사적지리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경계를 넘어서는 이민자들의 이동은 그들의 주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또한, 현대라는 맥락에서 역시 얼마간의 정치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저는 자크 랑시에르의 어떤 인터뷰[주18]를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이른바 환승이민자, 예를 들어 칼레(Calais), 또한 아마 벤티밀리아(Ventimiglia), 람페두사 섬(Isola di Lampedusa), 레스보스(Lesvos) [주19]에 있는 유형의 주체는 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정치를 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의 여러 도시들에서 생활노동하고 있으나 체류 허가증이 없는 불법이민혹은 비정규 이민, 이른바 상파피에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이민자들에게는 몫 없는 자의 몫을 요구하는 정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18] 정글[프랑스 카레에 있다. 영국으로 가고자 하는 이민자들이 일시적으로 집단 거주하는 야외 점거 공간]의 사람들은 통과하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과의 관계만 해도 앞길을 막고 있는 철조망을 앞에 두고도, 전체 상황 속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주체로서 거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체류 허가증을 취득할 수 없는 채 5년이나 10년 정도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과는 다른 셈이죠. 이쪽은 바로 정치적 상황입니다.”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市田良彦上尾正道信友建志箱田徹訳)『平等方法航思社2014295-296

[주19] 벤티밀리아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에 있는 이탈리아의 도시이다. 20156,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이의 국경 심사를 부활시킴으로써 경계를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벤티밀리아 해안의 바위섬에 캠프를 차리게 됐다. 람페두사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튀니지에 가까운 지중해의 작은 섬이다. 최근 2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탄 배가 도착하는 장소로 자리잡았다. 레스보스는 터키의 코앞에 있는 그리스의 섬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오는 이민자, 난민들의 배가 도착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신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이민자들의 정치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민자들, 방금 화제가 된 EU의 깃발을 흔드는 이민자들, 벤티밀리아 등의 유럽의 다양한 경계에 있는 이민자들은 바로 환승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죠.

당신은 정치에 관한 랑시에르의 사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부족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가령 자본주의, 이민, 사회투쟁 : 이민의 자율성 이론을 위한 메모[주20]라는 2004년의 텍스트에서 당신은 코뮤니즘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코뮤니즘은 랑시에르의 논의, 이렇게 말해도 좋으면, 급진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네요.

[주20] Sandro Mezzadra, Capitalismo, migrazione e lotte sociali:appunti per una teoria dell’autonomia delle migrazioni. In S.Mezzadra, a cura di, I confini della libertà : per un’analisi politica delle migrazioni contemporanee, Roma: DeriveApprodi, pp.7-19[サンドロ・メッツァードラ北川眞也訳)「社会運動として移民をイメージせよ: 移民自律性思考するための理論ノート, 空間社会地理思想12, 2008, 73-85].

저는 일전에 교토에서 도주의 권리에 대해 발표했을 때,[주21] 히로세 준 등과 이 점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이 정치의 사고, 특히 히로세 준이 거듭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랑시에르, 라클라우와 무페, 바디우는 1968년 이후 기본적으로 계속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동시대를 살아온 이탈리아 오페라이스타들은 계급구성(composizione di classe),[주22] 또한 자본주의의 변형을 고찰하면서, 논의와 투쟁을 반복하면서, 항상 아이디어나 이론을 변경했습니다. 오페라이스타들은 역사적 정세 하에서, 역사 하에서 사고하고 조사합니다. 그런 연유에서, 정치를 사고하는 데 있어서 새삼스레 계급구성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 이민자들의 정치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주21] 2016129, 계급 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히로세 준(廣瀬純), 하코다 테츠(箱田徹), 우에오 마사미치(上尾真道)와 했다. 행사는 히로세 준의 편저한 자본의 전제, 노예의 반란(資本専制, 奴隷叛乱)도주의 권리(逃走権利)의 출판을 기념해 열렸다. 자본의 전제, 노예의 반란에는 메차드라의 인터뷰와 텍스트 브뤼셀의 일방적 명령과 시리자의 딜레마(에티엔 발리바르, 프리다 오트 볼프와 공저)가 수록되어 있다

[주22] 계급구성(composizione di classe)은 오페라이스모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 그것은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의 노동자계급이 내재화하는 행동이나 규범의 조직체이다. 계급구성은 노동의 기술적 구조, 계급의 욕구나 욕망의 패턴, 정치적사회적 활동이 생길 때의 제도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자의 효과적인 조직화와 활동을 산출하려면 계급구성을 경험적 연구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이 개념은 계급의 기술적 구성(composizione tecnica di classe)과 정치적 구성(composizione politica di classe)으로 구별되어 왔다. 기술적 구성은 노동력으로 이해된 노동자 계급. 자본주의의 분업, 생산의 기술적 조직, 기술과 산 노동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정해진다. 정치적 구성은 노동자 계급의 주체 형성의 차원. 문화, 사고 양식, 욕구, 욕망 등에 관련되며, 의식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그것은 무엇보다 투쟁으로 향하는 주체 형성 과정에 관계한다.

 

메차드라 : 커다란 질문입니다. 꽤 복잡한 질문이네요. 일단 환승의 주체에 대한 질문부터 대답하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그래요, 우리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장소인 독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합시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독일에는 많은 수의 난민들, 이민자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환승하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도래는, 정치적 논의와 대립의 조건들을 완전히 변용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소간 급진적인 우익 세력이 성장해 온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특히 독일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열은 단지 우익이 새로 형성됐을 뿐 아니라, 수십 만 명의 독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개된, 난민들, 이민자들에 대한 남다른 연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서도 야기됐습니다. 단순한 실용적물질적 연대는 난민들, 이민자들에 대해서라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니셔티브는 이러한 연대를 훌쩍 뛰어넘는 질문을 곧바로 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베를린 같은 도시에서 오늘날 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단순한 일격 이상의 것입니다. 난민들, 이민자들의 대량운동, 당연히 독자적인 규정성을 가진 조건에 있는 것인데, 매우 일반적인 얘기를 한다면 이 운동이 경향에 있어서는 소정의 사회 내부에서 권력관계가 조직되는 방식에 의문을 던졌기 때문에, 긴장을 주었기 때문에 다름 아닙니다. 이 운동은 랑시에르에 의해 정의된, 치안이라는 독자적인 체제 내부에서의 몫의 고려/계산의 배분에 의문을 던지는 것 아닌가요.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운동의 전통적인 정의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운동에 대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야말로 그 근저에서는 사회운동으로서, 하나의 구체적인 사회, 이 경우라면, 독일사회처럼 매우 중요하고, 얼핏 보면 매우 안정되게 보이는 사회의 한복판에서, 권력관계들이 조직되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제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점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독자적인 사항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본질적으로 정치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복잡하게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정치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의 경계들을 의문에 부치도록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나 다름 아닙니다.

   제게는 이것이 매우 인상 깊으며, 몇 개월에 걸쳐 논문이나 책, 또 다른 사람과 공개한 논문에서 누차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언급한 바디우, 라클라우와 무페, 또한 랑시에르의 입장의 배후에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순수성(purezza della politica)이라는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지금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슬라보예 지젝이 이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 정치의 순수성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그 자체로 정치운동으로서 분명히 특징지어지는 운동의 형성으로 통하는 조건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입니다. 반복해서 말합시다. 이런 입장에 의해 사고 가능한 지평의 외부에 위치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적인 것으로서 모습을 보이는 운동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다양한 실천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관계들의 물질성의 한복판에 정치운동이 뿌리를 내렸고, 정치의 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정치적 본성의 내부에서는 대체로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푸코식 표현을 쓰고 싶다면, 그것은 주체성의 생산에 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죠. 제게 이것은 기본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주23]

[주23] 이 정치의 순수성 비판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이하의 논문을 참조. Sandro Chignola e Sandro Mezzadra, Fuori dalla pura politica.Laboratori globali della soggettività, 2012, http://www.uninomade.org/fuori-dalla-pura-politica

   또한 방금 당신이 언급했듯이 코뮤니즘의 물음, 제게 계속해서 매우 중요한 공산주의의 물음이 있습니다. 코뮤니즘은 바디우가 말한 의미에서의 관념으로 감축되어 버릴 수는 없으며, 그저 사건의 시간적 지평에 있어서만 생각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중국의 문화혁명, 19685, 파리코뮌에 관한 바디우의 저작의 풍부한 시사가 담긴 테마가 있습니다만.

  코뮤니즘의 문제란 착취당하고 지배당한 주체성의 운동들의 근원적인 과잉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제도 수준에서의 정치의 주어진 틀과 비교한 과잉성이나 다름없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말해봅시다. 이 틀의 내부에서 장소를 갖지 않는 것, 그것은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의 사고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이것은 이민에 대해서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이민은 변증법”, 승인과 과잉성 사이의 변증법을 필수작인 정치문제로서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습니다. , 일련의 다양한 운동이나 주체적 행동의 한복판에서 표현되는 온갖 요구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제도적 시스템 내부에서 승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법권리의 관점에서도, 시민권 개념의 변형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승인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 아니며, 이 승인 요구의 주변에서 표현되는 민주주의운동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거꾸로입니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민은 이 승인의 변증법에 비해 항상 과잉인 채로 머물러 있는 요소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승인의 변증법”, 그리고 과잉성의 다양한 요소에 내기를 거는 것을 통해 코뮤니즘의 물음을, 이민자가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코뮤니즘의 물음은 아마 각각의 이민자들이 품고 있는 기대의 지평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민자들의 요구들에 대해, 이 물음을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물론 거의 의미 없습니다. 다만 그 한편으로, 이민자들의 요구들, 일상의 대립에서 동떨어진 이론적 성찰의 관점에서 보면, 이민자들의 운동은 코뮤니즘의 물음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재검토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타가와 : 과잉성, 그리고 코뮤니즘의 물음은 역시 너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물음인 동시에 이민, 정확하게는 이민노동, 이민노동의 정치, 즉 계급투쟁이라는 테마에 관해 사고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당신도 주장하듯이 이제 계급구성 속의 얼마간의 주체에서 정치적 중심성을 찾아내는 것은 유용한 작업이 아니며, 아마 그것은 불가능하겠죠. 도주의 권리에서도 그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당신이 이민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도, 계급구성에 있어서의 중심성이라기보다는 오늘날 노동의 모범성으로서의 이민노동, 혹은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은 그 주역 속에 이민자들을 넣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네요.

   그러나 다분히 낡은 얘기라 미안합니다만, 잡지 데리베 아프로디(Derive Approdi)2002년에 발표된 마리오 피치니니와 함께 쓴 짧은 논문에서 당신은 이민노동의 정치적 중심성을 언급했었죠? 다만 지금은 이런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도, 당신의 최근 작업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역시 이민노동이 흥미롭습니다. 도발적으로 말하면, 경향으로서는 유럽 시민도 또핱 이민자처럼 되어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까요? 결국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람들은 다양하게 이동하고 있으며, 다시 이민자가 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 등은 이제 EU의 식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전지구적 공간뿐 아니라, 유럽 공간의 한복판에서 -식민지적 자본주의(capitalismo postcoloniale)”의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경우는 물론이고, 이민노동이 놓인 위치, 계급적 위치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메차드라 : 브렛 넬슨과 공저한 책에서 후-식민지적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에 관해 약간 기술했습니다. 아무튼 질문은 복잡하고, 다양한 영역에 관한 사고를 요하네요.

   예를 들어 당신은 피치니니와 함께 쓴 글을 언급했습니다. 지금부터 대략 15년 전에 쓴 글 같네요. 당시는 한편으로 이민노동의 운동, 투쟁, 요구에 대해 정치적으로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 제게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 내부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가 지닌 중요한 특징은 여전히 계급구성 내부에서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1990년대에 비물질적노동, 인지노동, 일반지성과 관련해 부각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거기에 참여했습니다만, 이 논의는 물론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에 의해 노동구성, 계급구성의 내부에서 생겨난 중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니까. 그것은 자본주의가 기능하는 양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포드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탈리아, 또한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이탈리아인 망명자들이 있던 프랑스에서 전개되었습니다. 90년대 초까지 저도 관여한 상투어(Luogo Comune), 프랑스의 전미래(Futur Antérieur)같은 잡지에서 말이죠.

   이민이라는 물음에 관해서, 제가 90년대 초부터 하고 있는 정치적 작업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논의의 내부에서 모종의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한다는 것이 문제 아니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짧게 설명한다면, 제가 후-식민지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후-식민지 연구자에 의해 이 역사적 시간의 직선성이라는 관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의 직선성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한다는 오페라이스모의 자세의 배후에 존재합니다.

   아무튼 이민은 90년대 초 이탈리아의 도시들의 생활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킨 운동들의 중요성에 저를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민에 관한 제 작업은 다분히 이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아시다시피, 이탈리아는 이민으로의 이행을 80년대, 90년대에 매우 빠른 속도로 겪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를 이민을 떠나는 나라에서 이민이 들어오는 나라로 이르게 한 이행입니다. 저는 제노바에서 자랐는데, 80년대에는 도시였습니다. 90년대 들어 어느 시점에 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관점은 시골 근성이 팽배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우리의 논의,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에서는, 이 측면이 완전히 외부에 위치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덧붙여서, 이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는 80년대 말에야 되찾아졌습니다. , 많은 동료가 감옥에 있거나 망명해 있었기 때문에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겨웠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되살아난 뒤에야 이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민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아니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전체의 경험이기도 한데요, 저도 관여되어 있는 이런 담론 속에서는 이에 대해 그 어떤 종류의 고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말을 하거나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토록 중대한 사항에 대해 고찰하기 위한 공간이 [이론이나 입장, 노선 안에] 없다면, 그것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거죠.

   이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만일 계급구성, 노동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민을 고찰한다면, 이민은 바로 인지노동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노동형태를 우리더러 고찰하게 만드는 것임이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지노동에 종사하는 이민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며, 이민자의 인지노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이민은 인지노동, 비물질적 노동 등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일련의 노동형태들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의 물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노동은 바로 인지적 능력을 꽤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름 아닌 비물질적 노동이라고 정의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돌봄노동, 이민자들의 돌봄노동은 다양한 행위주체성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긴장에 처하게 하고, 의문에 처하게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 사항에 대해 우리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논의는, 이미 90년대 말에 크리스티나 모리니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 논의에 대해 중요한 것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말하면, 이민은 저를 다음의 것에 대치하게끔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민의 자율성, 이로부터 꽤 지난 후에, 특히 브렛 닐슨과의 작업에서 제가 정의하려고 한 몇 가지는 정식화된 것인데, ‘노동의 이질화와 다양체화’(eterogeneizzazione e moltiplicazione del lavoro)에 대해서입니다. 제게 이것은 이민의 한복판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자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동관계들의 전체를 표준형(standard)의 주위에서, 표준형에 기초한 관계의 주위에서 조직된 것으로 표상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 이것은 이제 그다지 규범이 아닙니다. 포드주의의 노동자, 포드주의의 공장노동자, 그리고 포드주의의 남성. 이것은 계약법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동관계를 조직하기 위한 표준형의 틀입니다. 이것의 주위에서 그 다양한 제도, 규칙 등과 더불어 제반 노동시장의 총체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표준형에 관해 전혀 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분석적 관점에서도, 정치적 관점에서도, 노동세계의 한복판에서 차이의 증식에 대해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른바 노동구성의 주체성의 규정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렇고, 계약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노동관계들의 조직화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근대자본주의의 역사를 검토한다면, 그 시작부터 유럽뿐 아니라 전지구적 역사로서 그것을 검토한다면, 이 상황은 식민지 세계, 식민지 자본주의(capitalismo coloniale)를 오랫동안 특징지었던 그것에 다름 아닙니다. 제게는 오늘날 어느 정도는 세계 도처에서, 식민지 자본주의의 이런 경험의 모종의 뒤통수 때리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관계들의 이런 이질성을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파농도 인용했죠. 주식, 금융은 강제노동 등의 조건들과 공존한다. 산업임금노동은 비공식적 노동 등의 다수의 형태와 공존한다. 거듭 말합니다만, 물론 오늘날에는 이것은 다른 조건들 아래서 생기고 있습니다.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해 논함으로써 이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정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후-식민지 자본주의에서, 제게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요소로서 금융이 작동하는 장소, 금융자본의 장소가 있습니다. 많은 동료들, 특히 친애하는 크리스티안 마라찌가 이 점에 대해 작업을 했습니다. 이들은 제게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작업은 이 금융화 과정의 새로운 성질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바로 문제는 이것들의 이노베이션의 관점에서, 즉 오늘날의 사회적 협동, 생산적 협동이 조직되고 명령을 받고 착취되는 방식의 관점에서, 금융화의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거듭 말합니다만, 이 요소가 이질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덧붙이겠습니다. 이민은 기본이 되는 렌즈입니다. 이민은 계급구성을 변형시키는, 또한 착취의 조건들을 변형시키는 데 있어서의 기본적 힘일 뿐만이 아닙니다. 이민은 당신이 앞서 잘 설명해준 것처럼 이민자들에게 독자적인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행동, 동태, 경험, 새로운 이동성의 경험을 미리 독해한다는 것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노동의 프레카리아화의 형태를, ‘토착의 노동에 대해 뭔가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언급했듯이, 유럽 내부의 이민 문제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무시하기 아주 어려운 현실입니다. 베를린에서 어딘가로 먹으러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타가와 : -식민지 자본주의의 이런 특징은 이른바 본원적 축적의 현대성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논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자본주의의 비판적 분석에서는 본원적 축적의 현대성이 꽤 주장됐습니다. 예컨대 이에 관해서는 약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개념을 이용해 데이비드 하비도 매우 중요한 논의를 했습니다.

   당신도 언급했듯이, 하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표준형’, 즉 한쪽의 확대재생산과 다른 쪽의 약탈에 의한 축적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시작될 때부터의 식민지성이라는 앞의 논의를 감안하면, 이 둘의 구별은 전자의 중심성을 적어도 이론적 전제로서 보존한 다음에 이뤄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약탈은 식민지 또는 구식민지에서는 항상계속해서 자본주의의 주요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요즘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더라도, 거기에서는 본원적 축적의 폭력에 의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더라도, ‘표준형의 세계로 나아갈 문이 닫힌 채 약탈당하는 사람들, 생존유지를 위해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 이동하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경우에 따라서는 유럽으로)이 대거 있는 것입니다.

   하비가 말하는 확대재생산약탈에 의한 축적유기적 연결’, 또는 변증법적 관계라는 틀에서는 당신이 논하는 표준형을 무표화하는 생산양식의 이질화와 다수화라는 추세, 심지어 중심성없는 노동의 이질화와 다수화라는 추세를 충분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계급투쟁의 이질화와 다수화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메차드라 : 생각건대, 데이비드 하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약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명명한 형태가 오늘날 갖고 있는 중요성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공적이나 활동을 의문시할 필요는 없죠.

   그러나 최근 들어, 하비의 입장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남미의 맥락에서 제가 작업을 하면서 항상 논의해온 것은 약탈과 착취 사이의 구별이 대립, 이항대립으로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것에는 착취의 새로운 성질을 우리가 놓쳐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 오늘날의 자본의 축적과 가치증식의 체제(regime)를 규정할 때, 착취와 약탈이 조합되는 방식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채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남미, 또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채굴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두고 오늘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는 원주민의 공동체에 대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초래합니다.

   남미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채굴활동의 이런 강화가 이 지역에서의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암호, 상징으로서 채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테제에 관한 경험적 논증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채굴활동의 강화에 맞서는 수많은 매우 중요한 사회투쟁이 부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투쟁들에는 그저 광물의 채굴활동뿐 아니라, 예를 들어 콩의 재배처럼 농업을 급습해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채굴활동에 저항하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특히 친구이자 동지인 아르헨티나 사람인 베로니카 가고와 함께 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려 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이론적 입장은, 간략하게 말한다면, 신채굴주의(新採掘主義, neo-estrattivismo)라는 정식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지나치게 치우친 방식으로, 글자 그대로 채굴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한 비판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며, 시골과 도시 사이의 대립을 재생산하는 것 아닌가. 이런 대립은 이론적으로도 이견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정치적으로는 그저 불안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채굴의 범주는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문자 그대로 채굴활동과는 관계없는 형태로도,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한 뭔가를 밝혀주는 것인가 아닌가. 저는 특히 베로니카와의 작업에서 그것을 탐구하려고 해 왔습니다. 브렛과 지속하고 있는 작업도 그렇습니다. 그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만 채굴이라는 범주를 독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금융이 사회적 협동과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해보려 한 것입니다.

 

기타가와 : 그것이 채굴주의라기보다 당신이 말하는 신채굴주의라는 것이죠?

 

메차드라 : 그렇습니다. 채굴주의라는 정식은 남미로부터 널리 보급된 것이죠. 이제는 신채굴주의에 대해 더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채굴주의는 16세기 이후, 항상 남미의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이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신채굴주의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금융에 관해 다뤄 봅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 큰 질문이네요(웃음). 여기서 충분한 말, 해답을 줄 수는 없겠죠. 그러나 맑스의 자본3권에서 매우 시사적인 지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맑스 시대의 금융은 오늘날의 금융과는 거의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그의 이론을 금융파생상품, 신용파산스왑, 극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 등에 적용하기 위해 끄집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맑스는 매우 일반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금융자본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 미래에서 생산되어야만 하는 부에 대한 막대한 유가증권, 청구권의 축적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날 유가증권을 갖고 있다면, 제 이윤은 어디서 파생될까요? 그것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에서 파생됩니다. 그것은 곧 나의 유가증권을 통해서, 나는 미래에서 전개되어야만 하는 생산과정을 저당잡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유가증권을 통해 위대한 자본가, 주주로서의 저는 지금, 미래에 대한 일종의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생산과정에 대한 명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빚을 안고 있는 빈곤한 노동자, 빚을 갚을 의무를 지고 있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빚은 미래의 생산에 대해 제가 보유하고 있는 권리와의 상호 거래의 재료가 되는 겁니다. 결국 이 채무, 의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갚기 위해서 미래에 일해야만 한다는 의무에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저를 거대한 금융자본가라고 합시다. 당신은 주택계약 때문에 빚을 진, 제게 채무가 있는 가난뱅이라고 칩시다. 내일 당신이 무엇을 할지, 저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스스로 일하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든, 운동복 매장에서 일하든, 길거리에서 헤로인을 팔든 광고대리점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든, 제게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은 확실히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회적 협동의 편성에 진입하게 됩니다. 모레가 되면, 저는 바로 그로부터 가치를 추출합니다. 당신의 노동을 조직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산업자본가와 맺은 관계와의 근본적 차이이죠. 산업자본가는 노동을 조직했고, 이로부터 가치를 추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노동의 협동은 산업자본가가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금융자본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가 그로부터 가치를 끌어내는 사회적 협동의 외부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금융자본가는 이 사회적 협동으로부터 가치를 채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은유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광산에서 대지로부터 귀중한 광물을 채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인 거죠.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보면, 조금 멈춰 서서 고찰해야 할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제가 얘기한, 이렇게 단순하고 단순화되고 대체로 진부한 예로부터, 다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현대자본주의의 모든 편성의 한복판에 있는 금융자본의 우위성에 노동의 이질화의 과정들이 얼마나 호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당신은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고, 다른 사람은 광고대리점에서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빈민굴에서 마약 밀매업을 하는 등등의 상황이 있기 때문이죠. 동질화, 즉 이런 종류의 관계에 건설적인 방식으로 계속 대응하는 동질화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말한다면, 저도 그렇습니다만, 다음의 사항을 재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이고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간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노동과 자본의 관계의 정치적 주체화에 관한 조건들을 재고하는 것, 더 단순한 용어로 말한다면 오늘날의 계급투쟁의 장소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공장에 일하러 간다면, 거기에는 독자적인 적대성의 원천이 되는 공장 고용주와의 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와의 관계, 금융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유형의 적대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금융자본에 적대하는 조직의 정치적 가능성을 사고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시다시피, 이민자들 안에도 이런 유형의 논리가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입니다. 이것들은 종종 사전계약의 조건들, 즉 이민자들이 빚을 갚아야 할 조건들을 제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논리는 이민자에 의한 송금의 유통을 통해서도 침투하고 있죠. 그것은 이민 경험의 금융화와 대응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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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text of "Sandro Mezzadra 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알튀세르 사상의 현행성

アルチュセール思想のアクチュアリティ

再生産についてイデオロギーと国家のイデオロギー諸装置をめぐって

 

니시카와 나가오(西川長夫)오나카 가즈야(大中一彌)

곤노 히카루(今野晃)야마카 아유무(山家歩)

[사회] 이부키 히로카즈(伊吹浩一)

정황200589월호

 

알튀세르 사상의 액추얼리티.pdf


이부키 : 저번에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해 :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이 출판되었는데요, 오늘은 니시카와 나가오(西川長夫) 선생을 비롯해 저도 포함한 번역자 모두가 모였기에, 이 책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논의하고 싶습니다.

알튀세르는 꽤 예전에 니시카와 선생이 번역한 이데올로기의 국가와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논문이 있었습니다. 당초 이 이데올로기론은 2권으로 구성될 대작으로 계획되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 계획은 끝가지 완수되지 못하고, 1권만이 초고로 작성됐습니다. 게다가 초고 단계에서 단념되고, 포인트가 될 만한 것만을 엮어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이 그 논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고라고는 하지만, 그 완성도는 매우 높다. 그래서 최근 알튀세르의 유고가 본국인 프랑스에서 차례대로 간행되고 있는데요, 이 책도 그런 가운데 무려 10년 전 프랑스에서 출판됐다. 그것에 발맞춰서 우리나라에서도 차례대로 번역이 출판되고 있으며, 그리고 이번에 이 책이 간행됐습니다. 책의 띠에도 적혀 있듯이, 바로 여기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전모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알튀세르 사상의 중요성은 새삼 물을 것도 없고, 확실히 그 영향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특히 이데올로기론이 가장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지금도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그 영향이 너무도 넓고 다방면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을 겪지만, 뭐랄까 사정이 좋은 이번의 번역자분들은 각자 전문 영역이 다르고, 각각의 전문영역에서, 또한 독자적인 방향성에서 알튀세르 사상에 씨름하고 계십니다. 각자가 거기서 얻은 것을 여기에 제시해주는 것만으로도 알튀세르 사상이 지닌 넓이와 심도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우리나라에서 알튀세르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서, 그 주춧돌을 놓으신 니시카와 선생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이번에 함께 이 작업을 해주시는 와중에, 다양한 것을 가르쳐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자해설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니시카와 선생의 알튀세르에 대한 남다른 생각.’ 번역 작업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 생각에 계속 압도되었습니다만, 이 생각, 열정이야말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내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하며, 우리도 그것에 충동질되어 왔다고 할까, 질질 끌려왔다(웃음).

그러나 니시카와 선생은 현재는 국민국가론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횡단적으로 활약하고 계시며, 그 방면의 작업이 전면에 나서고 있기에, 제 주변의 젊은 연구자들 가운데는 니시카와 나가오와 알튀세르를 결부시키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래도 유심히 쳐다보면, 니시카와 선생의 국민국가론 등등의 작업과 알튀세르의 사상, 특히 이데올로기론과의 관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목요연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런 셈이어서 오늘의 좌담회는 알튀세르 사상을 둘러싼 것과, 그것의 한 가지 발전형태인 니시카와 선생의 작업을 둘러싼 것을 교차시키면서 진행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처음으로, 니시카와 선생의 역자해설을 보시고 역자 분들 각각의 의견이나 문제의식을 말씀해주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오나카 : 알튀세르의 사후 출판된 92마가쟁 리테레르의 알튀세르 특집호에는 부땅의 전기와 나바로와의 대화에 나온, 지금 보면 그다지 새로운 정보는 아닙니다만, 지금도 새로운 정보가 있고, 그것은 이븐 뒤르가 쓴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알튀세르의 제자들이 집안싸움을 벌일 때 중개자 역할을 맡은 사람이며, 서클로서의 알튀세리앙을 그려낼 경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알튀세르, 즉 구조주의 운동의 일익을 역사적으로 담당한 알튀세르라는 상이 형성된 60년대 중반 무렵에, 지금 보면 잡다하고 이종혼교적인 집단이, 하나의 지적인 운동을 어떻게 만들어나갔느냐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는 우리는 그 후 알튀세르가 어떤 인생 여정을 거쳤는지를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에 대해 비극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이 특집호의 표지도 그런 아주 어두운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만, 뒤르는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너무도 진지하며, 그리고 유희적 ludique’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알튀세르 주변에 모여서, 공산당의 그럴싸한 제도에 도전하고, 업신여기며, 이론적인 도취감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스피노자주의가 큰 역할을 한 것과 동시에, 어쩐지 니체주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유희적측면입니다. 서클로서의 알튀세리앙이 성립됐을 때에는, 정치적으로는 상승 국면에 있으며, 고등사범학교라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새로운 과학들을 위한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번의 번역작업의 멤버도 각각이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번역작업을 되돌아보고, 확실히 매우 힘든 작업이었습니다만(웃음),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제 출발점은 풀란차스인데요. 그런 곳에서 바라본 알튀세르의 미묘한 위치의 문제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국가론 르네상스라는 것도 있고, 이것은 오로지 맑스주의 정치학 안에서의 얘기였습니다. 다구치 후쿠지(田口富久治) 선생과의 어떤 토론에서 니시카와 선생은 아오키쇼텐(青木書店)이 내고 있는 역사학 연구회의 논문집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국가론 르네상스를 외치던 쪽의 일종의 자기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냉전이 종식되는 가운데, 어째서 국가론 르네상스가 한 시기에 무르익었는데도 잘 안 되어가고, 다른 한편에서 국민국가 비판이 민족주의 분석의 맥락에서 번성했는가를 자문하고 있습니다. 니시카와 선생이 다구치 선생과의 대담에서 이런 문장을 뺀 의도는 떠나서(웃음), 알튀세르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이용 가능한 것입니다. 국가론 르네상스와 국민국가론, 어느 한 쪽을 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두 쪽은 서로 겹치면서도 역시 미묘하게 틀어져 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니시카와 선생과 정해진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프랑스어 등 번역상의 언어 문제에다 알튀세르나 그의 시대의 지적 역사적 정황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동안에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자연스럽게 니시카와 나가오 스터디쪽으로 저절로 나아갔습니다(웃음).

그 중에서 몇 가지 궁금한 문제가 있습니다. 니시카와 선생은 세 가지 혁명을 살고 있다는 특권적인, 우리 세대에는 있을 수 없는 체험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전후의 불탄 자리[焼跡]의 체험. 당신 자신이 군화를 신고 소년시절을 보냈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685월의 파리. 세 번째는 조금 더 간접적입니다만, 냉전에 종식을 가져온 동유럽혁명. 각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역시 불탄 자리의 체험이 중요한 것 아닌가. 전후의 문제인 동시에, 전중의 체험과의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생의 국민국가론 속에서 비국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때의 체험에 뿌리를 뒀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정치학의 입자에서 보면, 국민국가 비판을 비국민이라는 것에 의거해서 전개하고 또한 마지막에 갑자기 자신의 불면증 얘기로 끝나버린다 라는 이론 전개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 것입니다(웃음). 아마 그것은 정치에 대한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정치학은 아니다라고 할까요. 저는 거기서 갈림길에 서게 되어 곤란해졌습니다.

저는 방송대학에서 비상근 강사를 하고 있는데요, 비교정치학 교과서(개정판 비교정치학(04)에 키첼트(Herbert Kitchelt)라는 정치학자가 들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론 연구를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68년 이후 변용한 선진국에서의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라고 할 때, 2차 산업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과는 다른 좌파라는 것이 등장한다. 키첼트는 그것을 리버테리안적 좌파의 정치라고 한다. , 환경이나 젠더 같은 68년에서 나오느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치를, (당과 같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을 기초에 있어서 실현하려고 하는 정치입니다. ‘비국민이라는 것을 특권적인 관점으로서 설정하는 논의는, 정치학에서는, 이런 정치로 분류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 고학력으로, 지적인 일에 종사하며, 공공 부문과 대학 등의 비교적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곳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입장을 취하기 쉽고, 반면 권위주의적이고 우파적 정치로 가는 사람들이란, 현대에서는 오히려 블루칼라 노동자, 혹은 상점주 등의 고전적 소부르주아가 아니냐고 말이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알튀세르의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주체의 입장성의 문제가 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니시카와 선생의 어휘라고, ‘비국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발리바르의 경우, 그것이 국가/비국가’(État/Non-État), 즉 공산당의 문제가 됩니다. 알튀세르는 공산당이, 국가장치의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바깥에 있기도 하다는 것을 말합니다만, 그것에 대해 발리바르는 의문을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이 알튀세르와 헤어지는 것은 이 문제에서라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비국민이든, 공산당이든, 혹은 히로마츠(廣松) 선생이라면 학지적(学知的) 주체이든, 변혁의 주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입니다. 국민국가론 쪽에서의 알튀세르 이론의 이용의 문제와, 변혁의 주체의 문제는, 아마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곤노 : 오나카 씨가 낸 국가론과의 관계인데요, 사회학의 맥락에서 말하면,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개념은, 예를 들어 미디어 분석 등 다양한 분석을 행할 때 매우 쓰기 좋은 도구였습니다만, 지금까지 이 개념을 쓰고, 앞으로도 계속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초고 속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함이 심화되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때 여기에서의 접속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마 알튀세르 자신이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개념을 통해 변혁의 주체가 그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설령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거기에서의 길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겠느냐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부키 : 그러면 다음으로 야마카 씨, 부탁드립니다. 다른 번역자가 알튀세르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야마카는 푸코죠. 그런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야마카 : 알튀세르를 놓고서는, 알튀세르를 하나의 실마리로 삼은 나가하라 유타카(長原豊)씨의 맑스 재독해 작업이나 이부키 씨의 라캉-알튀세르에 대한 논의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으며, 알튀세르 그 자체에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푸코적 입장에서 정신의학적 권력이나 통치를 문제로 삼고 있는 현재의 제 연구에는 반드시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번에 이 작업에 가담했느냐 하면, 알튀세르는 현재에는 이미 역사상의 등장인물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만, 학부시절에 선생의 보나파르티즘론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던 제게는 니시카와 선생도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웃음). 확실히 주변 친구들도, 대단한 공을 들여 알튀세르를 번역해서 네게 도대체 어떤 장점이 있느냐, 푸코로 네 연구를 전개시키는 쪽이 좋지 않겠냐고 자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번의 알튀세르 작업을 맡은 또 하나의 이유는, 니시하라 카즈히사(西原和久) 선생도 자기와 사회(新泉社)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 푸코에 대한 언급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권력론으로부터 그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푸코가 이용된다는 나쁜 풍습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정황이 바뀌고 있습니다만, 그런 풍습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도 이번에 다시 한 번 푸코와 알튀세르의 관계를 제 나름대로 제대로 생각하고 싶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니시카와 나가오 스터디로 얘기를 되돌립니다만, 알튀세르와 니시카와 선생의 국민국가론은 어떤 관계에 있느냐라는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나파르티즘론과의 관계로 말하면,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의 문제 등에 대해, 그람시-알튀세르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계시는가.

그리고 (번역 이후의 과제로서는) 선생이 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소개된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정황의 변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도 우파적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으며, 또한, 전시상태 아래이기도 합니다만, 이 고약한 일본의 정황 속에서 알튀세르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부키 : 사회자의 입장을 떠나서 얘기하겠습니다만, 한 점만. 역자해설에서 선생님도 번역어의 문제에 관해 언급하셨습니다만, 알튀세르는 이 이데올로기론을 맑스-레닌주의의 맥락 속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알튀세르 연구는 종종 알튀세르를 맑스주의와 떼어내어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데올로기론에서 현저했다. 확실히 그것을 자초한 원인이 알튀세르 자신에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책 전체를 읽어보시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론을 맑스주의의 내부에서 생각하고, 이로부터 도출한 것임을 일목요연하게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예전의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에서는 맑스주의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을 알튀세르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받는다. , 레닌은 국가를 억압장치로 생각했으나, 그러나 그것으로는 국가라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새롭게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개념을 덧붙인다고 말하는 것처럼 읽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런 게 아니라, 이 초고에서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것이야말로 레닌은 이미 알았으며,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혁명 이후의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생각했을 때, 이 이데올로기 장치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한다는 문제가 레닌에게 끊임없이 따라다녔다고 지겹도록 장황하게 썼습니다. 그런 곳에서부터 알튀세르는 아이디어를 얻어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들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절대로 강조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포인트입니다. 물론, 알튀세르가 현대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며, 알튀세르 자신도 그의 사상도 당시의 지적인 네트워크 속에 존재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면도 봐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셈이어서 여러분에게 문제의식을 말씀해주신 건데요, 이것을 다시 니시카와 선생께 돌려주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닫힌 지식의 공동체

니시카와 : 오나카 씨로부터 서클로서의 알튀세리앙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진지한 동시에 유희적인 일면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정신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 위화감도 있습니다.

역자해설에도 조금 썼는데요, 일본에 소개되는 프랑스의 철학자들의 거의 모두가 에콜 노르말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지식의 중앙집권이라고 하는 것을 해설에도 썼는데요, 이것은 장난으로 쓴 면도 있지만(웃음), 그런 제도 속에서 한패거리의 악당처럼 되고 있는 것에 대한 위화감 때문에 그렇게 쓴 면도 있습니다. 제가 알튀세르와 만났을 때, 너무 사교적sociable이어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상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그러나 실제로 만난 것은 에콜 노르말의 한 교실이며, 그는 거기에 계속 눌러앉아 있었던 거죠. 특권적인 제도에 의해 보호되고, 제도 아래로 몰려드는 그룹의 강함과 약함, 혹은 추잡함이라고나 할까요, 그것도 있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전부 노르말리앙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상한 것이며, 이 비정상성을 좀 더 생각해봐도 좋은 게 아닌가. 알튀세르뿐 아니라, 푸코의 전기 등을 읽어봐도 그건 매우 작은 서클 얘기가 되고 있다. 지적인 생산이 그런 형태로 행해진 것이며, 그것은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제도이며, 그 언저리를 조금 생각해 보고 싶다는 것이 있습니다.

오나카 씨가 거론하신 마가쟁 리테레르기사를 방금 읽어주셨는데요, 68년 이후는 그 서클이 사라졌다는 것도 적혀 있네요. 이 책은 그 단계에서 써진 것이죠. 그래서 대화적인지 아닌지, 오히려 대화가 끝난 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오나카 : 발리바르도 부론(付論)의 각주에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68년을 거침으로써 각각의 정치적 경향이 첨예화되어 깨져버리고, 그래도 그룹을 정리하고자 하며, 대문자로 시작되는 “Ecole”[학교제도 일반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학파나 고등사범학교의 약창이기도 하다]이라는 저작의 출판을 의욕하고, 교육의 문제에 매달렸다. 그러나 누가 참여했는가를 대외적으로는 숨긴 채 과거의 작업 그룹을 유지하려고 한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고 합니다. 확실히 68년 이후에 균열이 들어와, 공산당에서 나간 사람들은 당연히 남은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그 반대도 있었죠.

 

니시카와 : 그것은 이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죠.

 

비국민과 혁명의 주체

니시카와 : 오나카 씨로부터 비국민의 문제가 언급되는 가운데, 불탄 자리의 체험(焼跡体験)68년과 냉전 붕괴라는 세 가지 혁명을 제 세대의 특권적 체험이라는 형태로 시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만, 조금 오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반성으로서 말하는 것인데요, ‘체험이라는 말은 조금 조심해서 쓰는 편이 좋을지 모릅니다. 체험은 나중에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저는 패전 때 소학교 5학년으로 만주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종전 3일 전에 갑자기 무개화차(無蓋貨車[덮개가 없는 화물열차])에 실려 남쪽으로 갑니다. 결국 서울 가까이서 내려지고 패전을 맞고, 거기서 1년 정도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달아나 국경(38)을 넘는다. 그런 난민체험 같은 것이 있고, 불탄 자국(焼跡)이라는 것을 정말로 몰랐다. 그렇기에 모종의 이상화가 있는지도 모르며, ‘폐허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나카 씨가 일본의 전후소설(日本戦後小説)(1988)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국민국가론에 연결시켜준 것은 고마우며, 저로서는 기쁩니다. 사실은 또 한 명 그것을 지적해신 분이 있는데, 그것은 역사가 야스다 츠네오(安田常雄) 씨입니다. 야스다 씨에 따르면, 니시카와의 국민국가론의 입구는 폐허이고 출구는 사문화(私文化)’입니다. 야스다 씨는 폐허라는 원기의 장소(廃墟という原基場所), 단순히 전쟁 직후의 불탄 자리(焼跡)뿐 아니라, 고도성장기의 폐허’, 685월 혁명의 폐허라는 식으로 더듬고 있다(牧野憲夫 , <>에게 있어서의 국민국가론(にとっての国民国家論), 274이하). 오나카 씨가 말하는 세 번째 혁명(동유럽혁명)을 그것에 보태도 좋고, 또한 사문화(私文化)’비국민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국민이란 불탄 자리의 체험도 물론 있습니다만, 그 전의 전쟁 중의 체험입니다. 전쟁 중, ‘비국민이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나 힘 일인지, 거기서의 감각이 잘 전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국민의 특권성이라고 말하기 전에, ‘비국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강제당했는지를 상상해 보세요. 전에 조금 쓴 적이 있는데요(제국의 형성과 국민화(帝国形成国民化)), ‘비국민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청일-러일 전쟁 때입니다. 반전론자는 비국민으로 취급당했습니다. ‘국민의 창출과 비국민의 창출은 궤를 같이 합니다. ‘국민이라는 메이저리티의 형성, nation-building에는 피차별적 마이너러티의 존재가 필요하다. 모든 국민국가에 공통된 국민통합의 메커니즘이죠. ‘비국민이라는 말로 직접 연상되는 것은 대역사건, 오스키 사카에(大杉栄)나 이토 노에(伊藤野枝)의 학살 등입니다만, 따지고 보면 과거에는 참정권이 없는 여성이나 가난뱅이는 비국민이었습니다. 아이도 외국인도 비국민. ‘국민의 역사에 대해 비국민의 역사를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 전쟁 중은 주의자뿐 아니라, 병자와 장애자도 비국민이었습니다. 레지스탕스 시대의 독일 협력을 이유로 머리를 삭발당한 여성도 비국민인데요, 문화대혁명 때 규탄을 당해 곤욕을 치룬 사람도 비국민이죠. 전후의 일본사회에서도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당도 애국자이며 민족주의자이며, 이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어느 정도의 압력이 걸리고, 고독으로 내몰리게 되는가. 그런 생각이 한편에 있으며 비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제게는 비국민이라고 불리는 악몽이 줄곧 있었습니다. 저는 애국소년이었습니다만, 만약 적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됐을 때, 고문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마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줄곧 생각했습니다. ‘비국민이 되는 공포가 있었던 겁니다.

불면증 얘기가 나왔는데요(웃음), 그것은 꽤 전략적으로 끄집어낸 것입니다. , 국가로부터의 압력이 개인의 내면에 무의식에까지 파고들어갔으며, 그런 문제로서 국가를, 세계 시스템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현재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뼛속까지 국민화된, 즉 국가의 가치들을 내면화한 인간에게 어떻게 제대로 된 국가비판이 가능할까?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결국 국가 이데올로기의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 사실은 그런 숨겨진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내 이 짧은 에세이(국민화와 시간병(国民化時間病))으로 제 국민국가론을 대표시키고 훌륭한 분석을 해주신 사람이 있습니다(畠山弘文, 動員史観へのご招待). 저는 이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전혀 모르는 분이라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에 따르면, 야마노우치 야스시(山之内靖)와 무라카미 야스스케(村上泰亮)와 함께, ‘네오 마키아벨리안이 된다는 것 같습니다.

알튀세르에 대한 저의 사고는 그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국가비판의 길을 가르쳐준 것은 알튀세르였습니다. 알튀세르가 다른 맑스주의자와 다른 곳은, ‘국가 사멸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나키즘과의 관계에서 모두 주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착취계급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기에, 저는 혼자서 말하게 되고 있는데요(웃음), 꽤 고독합니다. 국가비판을 어디서 멈추고 있느냐라는 문제인데요, 일본의 맑스주의도 그렇습니다만, 결국 전부 국가 유지예요. 반면 알튀세르는 국가 장치의 파괴로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국민비국민이 된다.

 

이부키 : 이 책에서도 알튀세르는 확실히 레닌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것은 잠정적인 것, 과도적인 것이며, 하나의 이행기일 뿐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거듭 강조하고 있네요.

 

니시카와 : 그렇군요. 알튀세르가 갖고 있는 것은 국가에 대한 그런 자세네요. 또 하나는 착취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네요. 그것과 혁명입니다. 그것들은 제게 있어서도 아무래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그것은 야마카 씨가 말하신 헤게모니론과 관련됩니다만, 저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몇 차례나 읽어도 잘 모르겠고, 애매하지 않느냐는 곳에서는 알튀세르와 같은 생각입니다. 알튀세르는 쓰지 않았습니다만,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 혹은 이데올로기론이 별종의 헤게모니론으로, 혹은 혁명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내기를 걸고 있다. ‘비국민은 그 지점에서 새로운 풍부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부키 씨가 말씀하신 맑스주의 속에서 생각하는, 맑스주의 안에 위치된다는 것인데요, 저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은 알튀세르에 대한 생각인 동시에 맑스주의에 대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은, 보나파르티즘론이 전형인데요, 맑스에 대해서는 맑스 비판이고, 알튀세르에 대해서는 알튀세르 비판입니다. 알튀세르는 이번의 책 속에서도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 공화주의의 전통을 상대화하고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관점을 획득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본서에는 근대 프랑스사에 관한, 교과서적이랄까, 교육적 기술이 꽤 포함되어 있어서 (예를 들어 7) 재미있는 지적도 몇 가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는 낡은 정통파적 해석에 의거하고 있고, 알튀세르적 독자성은 별로 볼 수 없다.

 

이부키 : ‘비국민얘기로 말하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바로 이것과 관련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호명 びかけ=尋問’ interpellation의 논의입니다. <주체> 혹은 이데올로기로부터 개인들 individus이 호명되고, 그것에 응함으로써 개인들은 주체들 sujets이 된다는 논의인데요, ‘비국민이란 이 개인들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들은 알튀세르의 논의를 정확하게 읽어내면, 본래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터입니다. 왜냐하면 주체는 항상 이미 주체이기때문입니다. 이간은 이미 항상 주체이며,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주체인 셈이니까, 주체 이전의 개인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개인이 <주체>로부터의 호명에 응함으로써 비로소 주체로 승격되며, 주체가 존재하게 된다는 구도이다. <주체>의 위치에 국가를 놓으면, 이로부터의 호명에 응하지 않는 것이 있다. ‘비국민입니다. ‘비국민은 국민의 비-주체입니다.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은, 즉 개인인데요, 그러나 개인은 이론상으로는 원래 존재하지 않을 것,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국민도 국가 속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나카 : 그 논의에 관해서는 보다 일신교적인 담론이기 때문에 일본사회에는 타당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데요, 일신교 운운을 말하기 전에, ‘비국민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구조로서 그런 것인 이상, 이 이데올로기론은 일본사회에 100퍼센트 타당하다는 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점은, “항상 이미 주체인 이상,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논의에 대해서인데요, 그런 시간 계열이 되고 있습니다만, 저 시퀀스는 편의상 그러하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알튀세르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점에 관련해서 생각하는 것은, 알튀세르 말년의 에피쿠로스의 원자 얘기입니다. 원자도 부딪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부딪치면, 개물(個物), 구체적인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감성적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 개인은 individual한 것, 분할 불가능한 것이라는 한에서 바로 원자입니다.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있어서 원자는 보통, 허공을 수직으로 등가 속도로 낙하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 구체적인 대상을 산출하지 못하는 수직 낙하의 운동을, 일상적인 지배관계의 재생산이라고 한다면, 이로부터 한없이 미세하게 사행(斜行)하는[비스듬하게 나아가는] 원자의 우동이 클라나멘입니다. 클리나멘도 또한, 호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성 devenir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원자의 수직 낙하가, 호명의 이야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상황의 재생산 얘기라고 했다면, 그로부터 빗나가는 것이 클리나멘이며, 그것은 수직 낙하로부터 한없이 미소(微少)하게 틀어지고 있다. 알튀세르는 변증법의 새로운 논리의 탐구를 위해 중층적 결정이나 여러 가지 도구를 동원한 끝에, 매우 간단하면서도 우아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 자유의 물음은, 만년의 알튀세르는 철학적 문제틀problematique를 같이 하지 않던, 23살의 맑스가 박사논문에서 제기한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685월과 알튀세르

니시카와 : 역자해설에서 강조해 둠으로써, 거꾸로 제가 여러분께 의견을 여쭙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이 초고에 대한 68년의 크기에 관해서입니다. 역자해설“1968년의 5월과 그것에 이어진 사건들은 알튀세르와 본서에, 매우 굴절된 형태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각인을 남기고 있다”(439)고 썼습니다만, 알튀세르는 685월을 복잡한 처사[仕方]라고 말합니다만, 오히려 비판적 방식[仕方]으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만, 과연 68년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 또한 맑스가 파리 코뮌에 직면하여, 자기의 역사=국가이론의 새로운 전개를 피할 수 없게 됐듯이, 알튀세르는 ‘5월혁명에 직면하여, 이데올로기와 국가장치, 더욱이 혁명적 운동에 관한 자기의 이론의 새로운 전개를 피할 수 없게 된 것 아닌가”(440)이라는 가설을 세웠는데요, 맑스가 프랑스 내전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 정황과 겹쳐서 이 책을 이해할 수는 없을까요?

 

야마카 : 알튀세리앙이 아닌 제 입장에서, 화제를 흔들기 위해서도, 굳이 말하자면, 푸코와 들뢰즈 등등, 누구든 좋지만, 그들이 취한 68년에 대한 자세에 비하면, 알튀세르가 취한 자세는 아까 선생이 말씀하신 지식의 중앙집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얘기를 중지하더라도, 아주 좁게느껴집니다. 그것이야말로 현재에서부터 부딪쳐 본다면, 매우 시시콜콜한 곳에서 아주 시시콜콜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해버린 불행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웃음). 그런 것이 알튀세르라는 사람에게, 독특한 매력을 주고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이부키 : ‘좁다거나 시시콜콜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죠? ‘당의 입장이라고요?

 

야마카 : 그렇습니다. 그 맥락에서만 정황적인 발언을 할 뿐이며, 이 책에 프로파간다적인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에 대해 알튀세르가 보냈던 기대를 우리에게서는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튀세르의 이 좁음을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다시 받아들이느냐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나카 : 685월의 문제에 대해, 알튀세르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제도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라는 문제가 아닐까요? 당도 그렇습니다만, 이 책에 나오는 가족도 제도입니다. 알튀세르가 당이라는 제도 속의 사람이고, 또한 에콜 노르말이라는 제도 속의 사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 관해서도, 좋은 곳과 나쁜 곳의 두 측면을 인식하고, 모순의 내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까 니시카와 선생이 최근에 모두 착취라는 것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을 억척스럽게 맑스주의적으로 생각했을 때, ‘착취라는 것을 과연 지금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그런 것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려고 할 때, 균열된 상태[股裂状態]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19세기의 대공업모델로 작성된 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의 자본주의의 진전이 있다. 이것을 뒤쫓으려 하면, 기술이나 사회편성의 변천은 뒤쫓을 수 있으나, 자본이 모범적으로 행하고 있는 착취의 원리론을 일반적인 형태로 심화시켜가는 것은 어렵다. 다른 한편, 순수이론, 자본의 텍스트 해석에서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면, 가치론이나 노동시간의 문제는 뒤쫓을 수 있으나, IT나 전지구화의 현실은 좀체 추적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하고, 맑스주의가 제도로서 붕괴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론상의 어려움이 있기에 착취가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착취에서 시작해서, 모든 상부구조의 논의 등 논리적으로 개념이 구축되고 있습니다. 현상으로서 착취가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