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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201412

10년 후의 자크 데리다

 

1. 사상의 말

高橋哲哉

2. <좌담회> 10년 후의 자크 데리다 [1]  [2]  [3]  [4]

鵜飼哲西山雄二國分功一郎崎裕助

 

1

3. 미국독립선언

자크 데리다

   * 생략 : 자크 데리다, <법의 힘>(진태원 옮김, 민음사)에 수록되어 있음. 


4. 국가창설의 퍼포머티브와 서명의 정치 : 자크 데리다의 미국독립선언

宮崎裕助


5. 입헌 민주주의의 위기와 예외상태 : 데리다, 아감벤, 벤야민, 슈미트와 유령의 회귀

佐藤嘉幸


6. 세계의 종언 후에 : 말년의 자크 데리다의 묵시록적 어조에 관해

酉山雄二


7. 목적론에서의 종말론의 균열

亀井大輔

* * *


8. 신조어, 새로운 ~주의, 포스트~주의, 기생 및 그 밖의 작은 지진현상에 관한 몇 개의 성명과 자명의 이치

자크 데리다

 

 

2

9. 베리테에서 바리테 : 라캉-데리다 논쟁을 재고하다

松本卓也


10 언어·표상·: 인지과학 대 탈구축

케어리 울프


11. 시간의 원물질성 : 탈구축, 진화, 사변적 유물론

Martin Hägglund


12. 그라마톨로지와 가소성可塑性

카트린 말라부

 

 

3

13. 테크놀로지와 도래할 텍스트

藤本一勇


14. 더욱 잉여의 사랑 : 자크 데리다에 의한 에코포이에시스와 표박의 나르시시즘

リピット水田尭


15. <인터뷰> 자크 데리다 영화와 그 유령들

앙투안 드 베크, 티에리 주스

 

 

* * *

16. 철학의 재묘哲学再描 : 데리다/낭시, 사라지는 선()을 묘사하며

柿並良佑


17. <토의> 자크 데리다, 필립 라쿠 라바르트, 장 뤽 낭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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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좌담회> 10년 후의 자크 데리다 (1)


우카이 사토시(鵜飼哲)니시야마 유지(西山雄二)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郎)미야자키 유스케(宮崎裕助)

 

* 이 글은 자크 데리다 사망 1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좌담회의 기록으로, 일본의 사상2014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원래 각주는 없었으나 가독성을 위해 문헌 등은 각주로 옮겼습니다

 

 

들어가며

미야자키 유스케(宮崎裕助, 이하 미야자키’) : 올해는 자크 데리다(1930~2004)의 사후 10년이 됩니다. 돌아가신 때를 떠올려 보면, 바로 프랑스 현대사상의 마지막 거성이 졌구나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미셸 푸코(1926~84), 질 들뢰즈(1925~95),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95), -프랑수아 리오타르(1924~98) 같은 사람들이 죽었고, 마침내 데리다마저? 라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데리다는 죽기 직전까지도 맹렬한 속도와 밀도로 집필 활동과 발언을 계속 했습니다. 거기서 제시된 주제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본질적 물음을 데리다와 공유하고 있다는 긴장감과 기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데리다의 사망은 사유의 주춧돌을 잃어버렸다고도 느껴지는 사건이었습니다. 데리다의 죽음은 현대사상 자체의 종언을 고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데리다가 사망한 후의 10년을 돌이켜보면, 세계사적 격동이 있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형태로 세계금융위기가 생긴 결과, 미국에서는 부시 시대의 단독패권주의를 대신해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일련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3년 전[2011]에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고, 그 여파로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영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격동의 배경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비롯한 미디어 상황의 대변화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한편, 사상의 장면(scene)을 보면, 프랑스현대사상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영미권의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프래그머티즘의 영향이 커졌으며, 원래 사상이라는 것이 지닌 소구력이 확산되는 듯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유 없는 변화가 아닙니다. 그만큼 데리다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이를] 학분 분야를 넘어서 전개할 것인가는, 자크 데리다라는 거대한 존재를 아는 사람에게 질문되고 있는 과제입니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에 서서, 오늘은 고쿠분 고이치로 씨, 니시야마 유우지 씨, 그리고 우카이 사토시 씨와 함께 10년 후의 자크 데리다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1. 사후 10년을 돌이켜보기

데리다의 텍스트에 관한 상황

미야자키 : 맨 처음으로, 최근 10년의 데리다에 관한 텍스트의 상황을 개괄하고 싶습니다. 우선 일본어로 데리다 수용에 관해 말하면, 정직하게 말해서 유산상속은 그다지 잘 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푸코와 들뢰즈는 번역이 거의 정비됐으나, 이에 비해 데리다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주요 저서가 있으며, 젊은 세대의 연구자도 결코 많지 않습니다. 데리다의 작업이 지닌 놀라운 범위와 다양함에 걸맞은 응답=책임을 맡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이번의 특집이 조금이라도 그 보충이 되기를 바랍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뤄진 작업에 한정해 데리다의 주요 저작을 꼽아보면, 드 만에 관한 장대한 논의를 포함한 파피에 머신(Papier machine)(Galilée, 2001), 노동론이 되기도 하는 응축된 대학론인 조건 없는 대학(L’université sans condition)(Galilée, 2001), 정신분석가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와의 대담 도래한 세계를 위해(De quoi demain ... Dialogue)(Fayard Galiléé, 2001), 911 동시다발 테러의 여파 속에서 편찬된 위르겐 하버마스와 지오반나 보라도리와의 공저 테러 시대의 철학의 사명』 [각주:1], 추도문집인 그럴 때마다 단 하나, 세계의 종언(Chaque fois unique, la fin du monde)(Galilée, 2003), 가장 완성된 민주주의론인 불량배들(Voyous)(Galilée, 2003) 등이 있습니다. 데리다의 최후의 발언 중 하나인 인터뷰 사는 것을 배우다, 마침내에는 나는 나 자신과 전쟁상태에 있다는 인상적인 문장이 있는데요, 마지막 4, 5년은 정말 치열하게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했던 즉흥적 대담과 인터뷰, 영화출연 등의 작업도 받아들이고, 정말로 분골쇄신으로 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숨진 뒤에도 마치 데리다의 유령이 계속 쓰고 있는 것 마냥 저작들이 줄줄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세미나의 간행입니다. 말년의 2001년부터 03년에 행한 강의 짐승과 주권자가 총 2권으로 출판된 것을 시작으로[각주:2] 1999년부터 2001년의 사형론 강의[각주:3] 그리고 단숨에 초기로 돌아가 1964년부터 65년에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 : ENS)에서 행한 하이데거에 관한 강의 [각주:4]가 현재까지 간행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죽음의 직전까지, 40년 이상에 미치는 강의록의 출판이 계획되고 있고, 실현되면 엄청난 양이 될 것입니다.

 

니시야마 유지(西山雄二, 이하 니시야마’) : 전체 43, 총계 104천 장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미야자키 : 터무니없이 많은 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생전에 출판된 저작이 얇은 것까지 포함해 7, 80권은 있으니까, 게다가 대량의 강의록까지 보태면, 도대체 누가 다 읽을 수 있겠나 생각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웃음).

 

니시야마 : 사후 출판된 책 중에서도 세미나는 매우 중요해요. 포인트는 세 가지 있습니다. 우선 첫째 이것은 편집자 서문에서도 말해진 바가 있습니다만 세미나에서는 데리다가 생전에 출판한 막대한 텍스트가 형태를 이뤄가는 과정, 교육을 통해 사유가 세련되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데리다에 의한 교육의 실천인 동시에, 사유의 작업 현장 자체입니다. 사후 출판이기 때문에, 편집자가 최저한도로 체크했을 뿐 저자 자신의 퇴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실수도 모두 그대로 되어 있는 만큼, 더욱 그런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둘째 [말투, 어조]”을 들고 싶습니다. 강의록은 여름방학에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분명히 청중을 앞에 둔 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리 내어 읽다[낭독하다]”, “논평하다”, “판서”, “번역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시도 기입되어 있고, 출판된 저작과는 다른 독특한 톤이 있습니다. 데리다는 톤이라는 것을 중요한 사상가이기 때문에, 그것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세미나의 출판에 의해 초기, 중기, 후기 등의 단계론에 대해 재독해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1960년대까지의 초기에는 철학이나 문학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있고, 70년대부터 중기에는 실험적 시도가 전개되며, 그리고 80년대 중반에 시작되는 후기에는 정치학적, 종교학적, 윤리학적인 전회가 일어났다고 말해집니다. 그러나 강의록을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연구자들이 나눈] 기존의 시기 구분과 관계없이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단계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아이디어의 연속적인 산종에 의한 사상 형성의 확대가 보이게 됩니다. 다만, 이것은 총 43권이 출판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전모가 분명해지려면 50년 이상이 걸릴 겁니다(웃음).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郎, 이하 고쿠분’) : [그때가 되면] 오늘의 멤버는 이제 아무도 살고 있지 않겠죠(웃음).

 

미야자키 : 사후 출판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동물론입니다. L’animal que donc je suis(Galilée, 2006)이 그것으로, “나는 동물이다로도, “내가 동물을 쫓고 있다고도 번역되는 다의적 제목입니다. [각주:5] 동시대적으로 보면, 푸코에서 조르조 아감벤(1942년 생)에 이르는 생명정치론이나,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동물의 권리론, 동물윤리학 등과 길항하는 형태로, 데리다의 동물론이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10년을 생각할 때, 동물론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가 불가결한 토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데리다를 둘러싼 움직임에 눈을 돌리면, 브누와 피테스가 쓴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빼어난 평전 [각주:6]이 간행되며, 영어권을 중심으로 잡지의 특집이나 논집이 여럿 출판되는 등 다양한 반응과 반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년[2014] 5월 말에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학회 오늘의 데리다(Derrida Today)4회 대회가 뉴욕에서 개최됩니다만, 전환점이 되는 해인지라 대규모로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우카이 씨, 니시야마 씨, 그리고 제가 중개인이 되어 지난해 탈구축연구회를 발족시키고, 금년에도 심포지엄 등의 기획을 생각 중입니다(또 이런 학회나 심포지엄의 기록에 관해서는 탈구축연구회의 홈페이지 [각주:7]를 참조해 주세요).

 

니시야마 : 평전에 대해서는 또 한 권, 에드워드 베어링의 청년 데리다와 프랑스 철학』 [각주:8]도 보태고 싶습니다. 데리다의 문서고가 일반에 공개된 것을 받아들여 쓰인 노작으로, 루이 르 그랑 학교에서의 학생시절부터 고등사범학교에서의 교원시대 초기에 이르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청년 데리다가 어떻게 자기[] 형성했는가를 텍스트의 변천과 지식사회의 분석으로부터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평전 등에서는 알제리 시대의 데리다의 경험과 추억으로부터, 알제리의 유대인인 자키 [각주:9]가 어떻게 철학자 데리다가 됐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말년의 데리다는 무스타파 셀리프와 알제리에 관한 대화를 했습니다, [각주:10] 사후인 2006년에는 알제리국립도서관에서 심포지엄도 열렸습니다[각주:11] 지중해 남북 양안 주변이나 연안은 탈구축적인 물음 자체입니다 이 데리다의 중요한 사상적 광경임을 재확인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데리다를 대상으로 한 사전(事典)이 두 권 나왔으며[각주:12] 작년은 키워드북도 나왔습니다[각주:13]

   「오늘의 데리다를 말씀하셨는데, 프랑스에서도 200510월에 고등사범학교에서 데리다, 철학의 전통(Derrida, la tradition de la philosophie)라는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프랑스의 철학자가 데리다를 독해한 것으로, 데리다의 철학을 탈구축’, ‘차연’, ‘에크리튀르[기록]를 축으로 하여 철학의 전통과 대치시키는 시도였습니다. 다른 한편, 오늘의 데리다는 프랑스인이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번에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교에서 개최됐습니다만, 어떤 프랑스인을 보고 뭘 연구하십니까?”라고 물어봤더니 나보코프” [각주:14]라고 말해서 아주 놀랐습니다. 이렇게 보면, 데리다의 사유가 계승되는 흐름이나 인맥이 영미계와 프랑스계로 나눠지는 조짐이 느껴집니다.

 

미야자키 : 적어도 사람[연구자]의 흐름에 관해서는 분단되어 있네요.

 

세대의 문제

니시야마 : 오늘은 사후 10년을 계기로 한 좌담회입니다만, 데리다 본인이 누군가의 죽음에 임해서 뭔가를 특권적으로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죠. 미야자키 씨가 말씀하신 추도문집[그럴 때마다 단 하나, 세계의 종언[각주:15]에도 분명히 있지만, 이것은 미국에서, 게다가 데리다 자신이 아니라 두 명의 편집자의 책임 아래서 나온 것입니다. 데리다 속에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죽어간다고 하는 목소리와 현상(원저 1967)의 테제에 의한 협박이 항상 있었습니다. 항상 이미 내가 죽어가고 있는 듯한 상태의 존재론(ontologie), 유령적인 유재론(幽在論, hantologie) [각주:16]입니다. 이것을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나의 죽음’, 레비나스의 타자의 죽음’, 그리고 프로이트의 죽음충동이라는 세 종류의 근본적 경험으로부터 불가능한 것이라는 형태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데리다만의 물음입니다만, “사후라는 표현과 계기는 이미 이런 사상적 과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고쿠분 : 오늘의 멤버 중에서는 [제가] 데리다에 관해 가장 초보자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입장에서 말씀 드리면, 저는 옛날의 데리다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귀찮은 것을 조금 어렵게 말하고 말장난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재미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Ecole des hautes études en sciences sociales: EHSS)에서 했던 데리다의 강의에 참석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사람과는 전혀 달랐어요. 하이데거라든가 칼 슈미트 등에 점점 파고들어가면서, 아주 호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청중을 웃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에 갖고 있던 데리다의 이미지는 단순히 일부의 데리다 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잔하고 신비적이며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깨질 것 같은 이미지더군요. 생각하면, 데리다뿐 아니라 프랑스 현대사상은, 특히 1960년대에는 신비적인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인상에 남은 것은 현대사상의 특집 미번역 북가이드 : 현대사상 22(19864월호)입니다.

 

미야자키 : 그랬군요.

 

고쿠분 : 마치 외래품의 이미지입니다. 아직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훌륭한 보물이 이역만리 땅에 있다는 이미지 말입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거꾸로 사상에 끌려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때에 데리다 본인을 만났던 것은 매우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놀란 것은 데리다가 논의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장난을 하면서 까다로운 말을 하잖아요. 매우 어려워서 간단하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든 알기 쉽게 하려고 고심하면서 자세하게 논의를 해부하여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장난으로 보이는 것은, 거기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란 말인가!”라고 감격했으며, 데리다의 강의를 들은 것은 제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말하기 방식이나 쓰기 방식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 고바야시 야스오(小林康夫) 선생에게 이런 발표에서 자네는 데리다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게 없군이라고 말씀하시며 혼내셨던 것도 있고(웃음), 제 자신은 데리다를 기준으로 하여 단련되었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제가 데리다의 강의를 청강했던 것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즉 그의 마지막 4년 동안입니다. 사형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지금 말했듯이, 아주 자극적이었습니다만, 한 가지 깨닫게 된 바가 있는데, 그것은 데리다 속에서 언어라는 문제가 뒤로 물려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데리다라는 것은 뭐니 해도 언어의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어역사가 데리다의 사상 속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에크리튀르라는 것은 물론 언어와 관련된 것이지만, 원래 역사의 담지자이기도 하잖아요. 데리다는 에크리튀르라는 토픽을 통해 언어를, 따라서 역사를 계속 물었습니다.

   최근에야 [일본어] 번역이 나온 철학의 여백(원저 1972)이라는 중기의 작업 등을 읽으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이로부터 현 상태를 다시 보면, 데리다 자신의 강의에서 언어의 문제가 후퇴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인문 지식이 어딘가 언어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1960년대부터 70년대는 누구나 소쉬르를 읽었습니다. 구조주의에 대한 과거의 열광적인 관심도 그것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1990년대 중반에 학생시절을 보냈는데, 그 무렵에도 아직 언어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저하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면, 최근 10년 동안에,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다지 데리다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어역사에 대한 관심의 저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오늘날, 일본에서 함부로 역사, 역사 라고 말합니다만,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 ‘언어역사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절대적인 조건이 지금 제대로 따져 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데리다가 한 것의 의의를 알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바로 그렇기에 저는 데리다에게서 언어의 문제, 따라서 역사의 문제를 다시금 강조하고 싶네요.

 

우카이 사토시(鵜飼哲, 이하 우카이’) : 고쿠분 씨가 말씀하신 것에 저도 찬성으로, 데리다는 처음부터 역사의 물음에 천착했습니다. 후설에 관해서도 생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앞서 소개된 1964~65년의 강의도 하이데거 : 존재의 물음과 역사라는 제목입니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주제는 냉전의 종언 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영향도 있어서, 당시 이미 한창 논의되었습니다. 데리다에게서는 다른 역사의 사고를 어떻게 열 것이냐가 첫 번째에 놓인 물음으로, 그라마톨로지에 관해(원저는 1969)도 그 문제의식 속에서 가다듬어졌다고 말할 수 있죠.

 

미야자키 : 확실히 생명정치나 영미계의 문제의식에서 보면, 언어의 문제를 중심으로 파악한 데리다는 텍스트주의적 혹은 문헌[]주의적으로 보입니다. 최근 카바이예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인식론(epistemologie)의 빼어난 연구를 하고 있는 곤도 가즈노리(近藤和敬) 씨가 데리다를 필두로 하는 프랑스 현대사상에는 명작을 감상하는 듯한 태도가 근본에 있다고 쓰고 있고(문제-인식론과 물음-존재론 : 들뢰즈에서 메이야수, 데란다로), [각주:17] 자신보다 젊은 세대에게는 텍스트를 읽는다라는 것이 그렇게 비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의 다층성이 간과되고, 국어시간에 독서 감상문을 쓸 때와 같은 어휘로 회피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보는 방식이 완전히 변해버렸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니시야마 : 고쿠분 씨가 말씀하신 세대 경험은 매우 중요하고, 키워드는 신비성언어의 놀이[게임]’가 아닐까요. 신비성에 관해서는, 들뢰즈의 철학 등의 긍정성과의 대비도 있고, 부정신학이라는 문제가 유포되어 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부정신학이라고 하면, 사유의 몽매주의적이지 않은 어색함을 이끄는 것으로, 그것을 회피하고 긍정적이고 내재적인 사유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다만, 데리다 자신, 부정신학에는 아주 주의 깊게, 부정신학이라고 불리는 것의 근원성과 복수성을 고찰했던 것도 있습니다(이름을 구하다 : 부정신학에 관한 복수의 목소리). [각주:18] 언어의 놀이에 관해서는 말의 다의성이나 조어가 많이 사용되는 데리다의 텍스트가 일본어에 다양한 부하를 거는 형태로 번역되고 있으며, 그 복잡함에 대한 피로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물의 데리다를 보고 몽매함이 깨졌다는 고쿠분 씨의 증언은 사실 납득이 가는 것으로, 제 자신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했습니다. 데리다의 세미나는 독특하고, 결코 언어의 놀이에 의한 텍스트주의라고는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간행된 세미나의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교육자 데리다 특유의 명쾌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들려줄 작정입니다. 우리는 살아생전의 데리다에게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로서, 살아생전의 데리다를 모르고 [데리다의] 텍스트에서만 출발하는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합니다. 이 때문에라도 이 신비성언어의 놀이라는 문제를 자기 나름대로 해결하는 작업을 연구교육번역의 면에서 전개하고 싶습니다.

 

데리다와의 기억

우카이 : 저는 데리다와 개인적으로 꽤 오랫동안 교류가 있어서, 우선 말년의 일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1980년대의 일본에서 온 유학생 가운데 데리다와 직접 관련을 맺은 그룹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으로, 데리다의 집에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망하기 두 달 전, 20048월에도 그의 집에서 만났으며, 이후에도 두 차례 전화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데리다가 사망한 것은 109일이었습니다만, 설마 그렇게 일찍이 [사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항암제 치료제로 식욕은 떨어져 있었지만, 검사 수치는 변함이 없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8월 말부터 9월 초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콜로퀴를 위해 마지막 강연을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만류했지만, 그는 이 콜로퀴는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이기 때문에 취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데요, 데리다는 취소를 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것은 병을 얻고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전에도 종교에 대한 심포지엄 때문에 질 아니자르(Gil Anidjar), [각주:19] 하셈 포다(Hashem Foda)와 함께 미국의 서해안으로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실현되지 않은 것은 원래 블랙팬더로, 경찰 살해 혐의로 미국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현재에는 종신형으로 감형됐습니다만 흑인 저널리스트 무미아 아부-자말(Mumia Abu-Jamal)을 방문하는 계획입니다. 데리다가 국제적인 사형폐지 운동에 거의 활동가라고 말해도 좋을 자세로 관여했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한 마디 해두고 싶습니다.

   여기서 단숨에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에 데리다를 선택한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떤 동기로 생겨났는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오직 들뢰즈만 유행한다고들 하지만, 제 감각으로 말하면 항상 들뢰즈가 주류였습니다. 특히 제가 있는 교토대학교에서는 학년 위에도 아래에도 우수하고 개성적인 들뢰지안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다. “왜 너는 데리다인 거야라는 얘기를 듣는 환경에 처음부터 몸담고 있었기에, 데리다가 인기가 없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상한 것도 없고, 그의 작업은 항상 일종의 떠맡게 된 주변부성을 느끼게 합니다. 실제로 데리다의 텍스트는 [궁합이 맞는] 사람을 고른다는 게 있기에, 제 자신은 이른바 유행과는 무관한 곳에서 부합한다고 느낍니다.

   1930년대 생인 데리다는 사르트르 이후의 사상가 가운데서는 이른바 막내입니다. 한편, 1940년대 생의 후속 인물들과는 전쟁 경험도 포함해 큰 세대적 단절이 있습니다. 데리다에게는 모종의 브라더 콤플렉스가 있으며, 형인 르네 데리다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대립했으며, 르네는 유대계의 잡지에 친이스라엘적인 투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피터스의 평전에는 어린 시절부터 형이 정치적으로 우파의 입장에 서 있어서 동생과 사사건건 부딪쳤다고 적혀 있습니다. 어떤 영화작품에서 형은, “우리 집에는 별로 책도 없었는데 동생의 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각주:20] 가정환경이나 상징자본이라는 면에서 보면, 데리다라는 존재는 돌연변이라는 거죠. 미야자키 씨가 프랑스 현대사상 최후의 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만, 확실히 데리다는 동생적 존재로, 가장 나중에 외래자로서 작업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까 고쿠분 씨가 언어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1950년대부터 60년대의 구조주의를 중심으로 한 전개입니다. 저는 포스트구조주의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베어링의 평전에서는 데리다의 초기 발상이 오히려 포스트실존주의적이라고 말합니다. 즉흥적인 말씀처럼 느껴지는 바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자료를 본 뒤에 선택된 이 말에는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고쿠분 씨나 미야자키 씨가 거론하신 데리다에게 있어서의 키에르케고르적인 계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제와도 관여하고 있습니다[각주:21] 푸코론인 코기토와 광기의 역사(에크리튀르와 차이, 원저 1967년에 수록)에도 제사[銘句]로서 키에르케고르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언어의 문제는 당연히 번역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게 그 커다란 계기는 1983년에 데리다가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강연 중 하나가 바벨의 탑(타자의 언어 : 데리다의 일본 강연[각주:22]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우리 세대에게는 이 논문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언어론 일반에서 번역론으로의 이동(shift)은 언어의 복수성을 처음부터 그 안에 담고 있는 사유를 요청합니다. 그것은 단일하다고 간주되는 언어의 내적복수성의 물음에도 열려 있습니다.

   나중에 데리다의 텍스트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게 됐는데, 번역의 사상가의 텍스트를 번역하고 있다는 긴장감은 [지금도] 항상 [갖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작업으로서 데리다를 참조하면서 번역론을 축으로 벤야민을 수용했던 것도 같은 무렵입니다. 하나의 텍스트는 복수의 언어로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데리다가 드 만에 대한 추도문 속에 부여한 탈구축의 정의가 하나 이상의 말(plus d’une langue)”라는 것이었다는 것으로도 연결됩니다[각주:23] 현대의 문화상황에서는 한 언어로 써져 있는 것을 한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투명성에 대한 지향이 회귀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데리다만이 아니라 크레올(Créole, 크리올) 문학처럼, 원래 복수의 언어로 써 있는 것을 일본어로 번역한다는 근본적인 아포리아를 안고 있는 작업이 경원시되고 있습니다. 그런 경향이 데리다를 읽기 어렵게 느끼게 하며, 번역론이라는 회전(curve)을 거친 후의 언어론을 성가시게 느껴지게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계속)

  1. [옮긴이] 지오반나 보라도리, 『테러 시대의 철학 :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손월성, 김은주, 김준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본문으로]
  2. Séminaire : La bête e le souverain, 2. vol. édition établie par Michel Lisse, Marie-Louise Mallet et Cinette Michard, Galilée, 2008-10. [본문으로]
  3. Séminaire : La peine de mort, édition établie par Geoffrey Bennington, Marc Crépon et Thomas Dutoit, tome I (1999-2000), Galilée, 2012. [본문으로]
  4. Heidegger : la question de l’Êtat et l’Histoire. Cours de l’ENS-Un (1964-1965), édition établie par Thomas Dutoit avec la collaboration de Marguerite Derrida, Galilée, 2013. [본문으로]
  5. [옮긴이] 자크 데리다,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계속)」, 『문화과학』, 76호, 299-378쪽. 뒤의 ‘동물론’ 관련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판본에 차이가 있다. [본문으로]
  6. Benoît Peeters, Derrida, Flammarion, 2010. [본문으로]
  7. http://www.comp.tmu.ac.jp/decon [본문으로]
  8. Edward Baring, The Young Derrida and French Philosophy, 1945-1568,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본문으로]
  9. [옮긴이] 자크가 아니라 자키로 불렸다. [본문으로]
  10. Jacques Derrida et Mustapha Chérif, Islam et l’Occcident : Rencontre avec Jacques Derrida, Odile Jacob, 2006. [본문으로]
  11. Derrida à Alger : un regard sur le monde, sous la direction de Mustapha Chérif, Actes Sud, 2008. [본문으로]
  12. Niall Lucy, A Derrida Dictionary, Blackwell, 2004 ; Simon Morgan Wortham, The Derrida Dictionary, Continuum, 2010. [본문으로]
  13. Maria-Daniella Dick and Julian Wolfreys, The Derrida Wordbook,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3. [본문으로]
  14. [옮긴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Vladimirovich Nabokov),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소설가. [본문으로]
  15. Jacques Derrida, Chaque fois unique, la fin du monde, Textes présentés par Pascale-Anne Brault et Michael Nass, Galilée, 2003. [본문으로]
  16. [옮긴이] 일본에서는 빙재론 유재론 등으로 불리고 '유령론'으로 불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처럼 유령론이라고 하게 되면 '존재'와 관련된 어감이 사라지는 문제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유령론'이라고 쓰고 원어를 병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본문으로]
  17. 近藤和敬, 「問題i認識論と問い存在論──ドゥルーズからメイヤスー、デランダヘ)」, 『現代思想』, 2014년 1월호. [본문으로]
  18. Jacques Derrida, Sauf le nom, Galilée, 1993. [본문으로]
  19. [옮긴이] 질 아니자르는 Jacques Derrida, Acts of Religion, Routledge, 2002의 영어판 편집자이자 서문을 썼다. [본문으로]
  20. Derrida. directed by Kriby Dick and Amy Ziering Kofman, Zeitgeist Films, 2004. [본문으로]
  21. 특집 「キルケゴール」, 『現代思想』, 2014년 2월호. [본문으로]
  22. 「バベルの塔」, 『他者の言語──デリダの日本講演』, 高橋允紹 編訳, 法政大学出版局, 1989년 수록. [본문으로]
  23. Jacques Derrida, Mémoires : pour de Paul de Man, Galilée, 198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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