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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사후 10



 

0. 들어가며 

...................................................................................................................................................................西山雄二


1. 민주주의의 항상성과 일관성 (Constance et consistance de la démocratie) 

....................................................................................................... Jérôme LÈBRE (일역 松田智裕横田祐美子)


2. 데리다와 랑시에르에게서의 민주주의와 타자의 물음 (La démocratie et la question de l’autre chez Derrida et Rancière)

.............................................................................................................................................................. 亀井大輔


3. 들뢰즈와 데리다두 사람의 운동은 같지 않다 (Deleuze et Derrida, ce n’est pas le même mouvement)

.................................................................................................... Jean-Clet MARTIN (일역 大江倫子西山雄二)


4. 마지막 유대인’ : 데리다유대교와 아브라함적인 것 (« Le dernier des juifs » : Derrida, le judaïsme et l’abrahamique)

........................................................................................................ Gisèle BERKMAN (일역 佐藤香織)


5. 희생된 동물의 두 개의 신체 자크 데리다의 철학에 있어서 동물-정치 개념에 대한 고찰 (Les deux corps sacrifiés de l’animal. Réflexions sur le concept de zoopolitique dans la philosophie de Jacques Derrida)

............................................................................................................................. Patrick LLORED (일역 吉松覚)


6. 자크 데리다동물성의 시학 무인간적인 것에 관해 (Jacques Derrida. Une poétique de l’animalité. Sur l’anhumain)

..................................................................................................................... Gérard BENSUSSAN (일역 桐谷慧)


7. 고양이눈빛그리고 죽음 (The Cat, the Look, and Death)

............................................................................................................................. Darin TENEV (일역 南谷奉良)


8. 대린 테네브고양이눈빛그리고 죽음에 대한 응답

..................................................................................................................................... 大杉重男南谷奉良山本潤


9. 데리다에게서의 증여와 교환 (Gift and Exchange in Derrida (Derridative)

....................................................................................... Darin TENEV (일역 横田祐美子松田智裕亀井大輔)

 

이하 몇 편의 글이 더 있으나 생략.

 

 

首都大学東京人文科学研究科

2015년 6



자크 데리다 사후 10년

‘마지막 유대인’

: 데리다, 유대교와 아브라함적인 것


「最後のユダヤ人」 : デリダ, ユダヤ教とアブラハム的なもの

URL http://hdl.handle.net/10748/7043

Gisèle Berkman, «ʻLe dernier des juifsʼ : Derrida, le judaïsme et lʼabrahamique», Colloque international «Commemorating the10th Anniversary of Jacques Derridaʼs Death», Shanghai Jiao Tong University, le 27 septembre 2014.

지젤 베르크만

(일역 : 佐藤香織 , 首都大学東京非常勤講師)


** 일역본을 중역한 것이다. 또한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하지 않았다. 


 데리다가 세상을 뜬지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살아남기[생존]라는 놀라운 현상에 의해 그의 텍스트가 우리 곁에 도래하고 있는지도 10년이 되려고 한다. 마치 지하납골당〔크립트〕에서 텍스트가 팩스로 보내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저 지하납골당에서 데리다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데리다의 매장을 위해 리스-오랑지스(Ris-Orangis)의 묘지에 갔을 때, 스스로를 “마지막 유대인”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던 그의 매장은, 유대인의 의식에 입각해 치러질까라고 자문한 적이 있음을 떠올린다. 그것은 10월의 구슬픈 맑은 날이었다. 매장은 유대식이 아니었다. 브누아 페타스의 전기에는, 비유대인인 아내 마르그리트가 사후에 그와 다시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데리다는 유대인 구역에 묻히기를 거부했다고 한다.1) 여기서 보이는 것은, 그의 사고에 따라다녔을 유대성〔judéité〕에 대한, 유대적 조건에 대한 불충실한 충실성〔fidélité infidèle〕에 관한 좋은 예이다. 유대적 조건이라는 문제가 담긴 이런 유산을, 그는 점차 자신의 에크리튀르와 사고의 중심에 두게 됐다. 여기서는 주제 이상의 것이 있으며, 그것은 그의 평생 동안 끊임없이 따라다녔던 중심적 동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기보다 더 크다. 그것은 충동이며, 아물지 않는 상처이기도 하며, 중심적 외상이기도 하다. 데리다는 자신을 ‘마지막 유대인〔dernier des juifs〕’이라고 부르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으며, ‘아랍의 유대인’, 자칭 마라노2)였다. 이런 조건, 혹은 오히려 (인질이란 무조건이라고 레비나스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유대적 무조건은, 폭로되어 있는 동시에 비밀이기도 한 그의 사고의 동인이 됐다. 모리스 블랑쇼는 『끝없는 대화』의 「유대인이라는 것」이라는 장에서, “선택〔élection〕이란 변양이다”3)라고 썼다. 데리다는 블랑쇼와 매우 가까웠기에, 이런 표현 방법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시정권의 반유대적인 법의 이름으로 1942년에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데리다는 수탈〔収奪, expropriation : 탈고유화〕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할례고백』에서 그가 말하듯이, 그것은 창설적인 사건이었다. “1942년, 벤 아크눈 고등학교에서 피부색이 까맣고 작고 아주 아랍적인 유대인이 쫓겨났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부모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그에게 그 이유를 조금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다….”4)

 탈구축은 뿌리 뽑음〔déracinement〕, 이화〔異化, dissimilation〕, 그리고 추방〔exil〕이라는 이 경험에서 자신의 기원을 찾아낸 것일까? 이런 경험은 유대성〔judaïté〕과 역사적인 파국 ― 유대성이 위태롭게 사라져 없어지게 할 정도의 파국 ― 의 비할 데 없는 경험에 다름 아니다. 데리다는 합일적이고 공동체적인 모든 융합에 항상 비판적이며(이 점에 관해서는 『우정의 정치』를 다시 읽어주기 바란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정세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결코 자신의 유대성을 부인하지 않았고, 몇몇 상황에서는, 2004년에 장 비른바움(Jean Birnbaum)과 한 마지막 대담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우리 유대인〔nous,les juifs〕”이라고 말하는 데 이르렀다.


우선 두 가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확실히 ‘우리’라고 말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는데요, ‘우리’라고 말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저는 모든 문제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 필두로, 이스라엘과 모종의 시오니즘의, 파멸적이고 자살적인 정책이 있습니다…만, 이 정도의 문제가 있으며, 이 밖에도 많은 문제를 저는 제 ‘유대성’에 대해서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제가 제 ‘유대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죠. 몇 가지 상황에서는, 저는 항상, ‘우리 유대인’이라고 말하죠. 이렇게 못살게 들볶이는 ‘우리’는, 제 사고 속에 있는, 더없이 불안한 것의 핵심에 있습니다. 그것〔그의 사고〕은 제가 거의 농담을 말할 생각도 없이, ‘마지막이자 최저의 유대인’이라고 별명을 붙인 자의 사고입니다. 그것은, 제 사고 속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원하게도 기도〔eukhé〕에 대해 말한 것도 해당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원래 문자 그대로, 기도입니다. 몇 가지 상황에서는, 그러니까, 저는 ‘우리 유대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프랑스인’이라고 말하는 것도.5)


「유대성」이라는 제목의 회의에서 행해진 「아브라함, 또 한 명의」라는 멋진 강연에서, 데리다는 그의 인생의 ‘이론적 뼈대’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것의 독해에 매달렸다. 그가 보여준 것은, 어떻게 해서 유대성의 경험은, 뗄 수 없는 대립하는 수많은 조합 ― 그것은 불충실의 충실함이라는 아포리아의 모든 것이다 ― 사이에서 항상 그를 옥죔으로써, 그에게 다양한 구별을 불가능 혹은 비정통적인 것으로 만드냐는 것이다. 그는 곧바로 이런 것이 “탈구축뿐만 아니라, 계산할 수 없는 것의 내구력에 노출된 결정의 윤리를 수립하는 것, 아포리아로 운명지어지고 바쳐진 결정으로서의, 내 안의 타자의 결정으로서 내가 결정한다는 법에 노출된 결정의 윤리를 수립하는 것”6)으로 등을 떠밀렸다고 덧붙이고 있다. 또한 유대성에 관한 엘리자베스 웨버와의 대담을 인용한다면, “… 제가 할 수 있는 것, 말할 것의 모든 것 속에서, ‘물론 저는 유대인입니다’와 ‘물론 저는 유대인이 아닙니다’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곧바로 부인에 들어섭니다 ―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의 모든 것 속에, 유대적 조건이라는 조금 어설픈 동시에 아이러니한 방식에서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7)

 유대성의 경험은 탈구축의 요인일까? 불가능한 것, 아포리아, 이중구속, 무한한 분할 가능성, 산종 ― 이런 사고의 행동이 모두 유대성의 경험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이 가설은 아직은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아마, 이 가설은, 유대교성과 유대성 사이에 위치하는 간극 속에 있다. 여기서 거론되는 유용한 구별은, 역사가 〔요셉 하임〕 예루살레미(Yosef Hayim Yerushalmi)가 유대문화 및 종교로서의 유대교성〔judaïté〕과, 반드시 종교적이지는 않고, 유대인이라는 사실의 경험으로서의 유대성〔judéité〕 사이에 설정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유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데리다의 사상의 진전을 확인하는 데 매달렸다. 유대성은 처음에는 외적인 동기였으나, 1인칭의 에크리튀르의 동인이 되며, 전대미문의 개념들의 제조소가 됐다. 거기서 “후기 데리다”에 의한 정치적 관심이 말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이렇게 질문을 제기했다. 장-뤽 낭시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기독교의 탈구축에 착수한 것과 똑같이, 데리다는 유대교의 탈구축을 시도한 것일까? 이 질문에 의해, 나는 데리다가 “아브라함적인 것”이라고 명명한 것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데리다는 몇 번이나 전시의 반유대주의 및 알제리의 벤 아쿠눈 고등학교로부터의 퇴학이 그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되돌아갔다. 그는 이로부터 자신에 대한 이타성[타자성]의 경험을 끌어냈다. 이타성의 경험은 정체성에 관한 권리 요구에서부터 가장 멀리 위치해 있다 ― 이런 정체성의 권리 요구는 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의 엄밀하게 동일적인 발상을 둘러싼 장-클로드 밀레르나 베니 레비의 저작에서 발견된다.8) 다만, 데리다는 유대교성을 다루는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유대성으로 향한다.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런 텍스트들은 주로 『에크리튀르와 차이』에 수록되어 있으며, 레비나스, 블랑쇼, 자베스 같은 중개자의 독해가 그에게 가져온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과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으로 레비나스를 다룬 멋진 논고〔잡지 초출은 1964년〕에서 데리다는 레비나스가 말하기를, 뿌리 깊은 관념론의 공범자인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 대해 레비나스가 겨눈 비판에 싸움을 건다. 그러나 『그라마톨로지에 대해』(1967년) 이후, 그 자신이 “현전과 로고스중심주의의 형이상학에 관한 하이데거적 상황의 양의성”9)을 비판하면서, 하이데거의 사고는 아직 뿌리 깊이 현전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마치 레비나스의 독해가 데리다 속에서 은밀하게 작동하고, 데리다 자신이 “그리스적 로고스에 의한 포위의 무한한 힘”이라고 나타낸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도우려 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우선 레비나스에서 유대사상가만을 보기를 거부한다. 「폭력과 형이상학」이 묻는 것은 레비나스에게서의 그리스적 및 유대적 유산의 각각이다. 레비나스의 사고는 철학을 그 고유한 경계의 너머로, 전적으로 다른 것의 극한인 윤리적 극한으로 이끈다. 『율리시즈』에서의 조이스의 유명한 말, “유대-그리스인은 그리스-유대인이다[Jewgreek is greekjew]”를 인용하면서 데리다는 자문한다. “우리는 유대인일까? 우리는 그리스인일까? 우리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 차이가 아마, 역사라고 불리는 것의 통일성이다.”10) 당초 『비평(Critique)』지에 발표된, 레비나스론과 동시기의 논문 「에드몽 자베스와 책의 물음」은 “에크리튀르의 탄생과 정념=수난(passion)”11)으로서의 유대교라는 착상[아이디어]을 발전시킨다. 이 아이디어에 새겨져 있는 것은, 데리다의 유대교성에 대한 진정한 중개자로 볼 수 있는 모리스 블랑쇼에 의한 독해의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이다. 데리다는 각주에서 “중요한 연구들 중” 1964년 5월의 『신프랑스평론(NRF)』지에 발표되고, 블랑쇼에 의해 『끝없는 대화』에 「중단 : 리만 평면 위에서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부분적으로, 그리고 『우정』에 부분적으로 재수록되는 블랑쇼의 논문 「중단」을 인용한다. 데리다의 이 논문에는, 작가가 후퇴하는 것[retrait]이나 전적으로 다른 것의 정념=수난으로서의 유대성에 대한, 블랑쇼에 의한 성찰의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에크리튀르의 정념=수난, 문자의 사랑과 인내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유대인>이 그 주어인지 <문자> 그 자체가 그 주어인지를 말할 수 없다”12)고 데리다는 적는다. 또한 모세에 의해 부서지고, 이어서 신이 다시 준, 율법이 적힌 석판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까 에크리튀르는 기원에 있어서는 봉인된 제2의 것이다.”13) 블랑쇼에 관해 말하면, 『피안으로의 행보』부터 『끝없는 대화』를 거쳐 『재앙의 에크리튀르』로, 그리고 1990년의 『철학잡지』 데리다 특별호에 실린 「자크 데리다 덕분에(자크 데리다에게 감사를)」에 이르기까지, 그는 부서진 석판이라는 일화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했다.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보자. 자신의 사고의 길 그 자체를 구성하는, 고유한 것과 고유화의 탈구축으로 데리다가 전진할수록, 그의 언어는 특이한 관용어Idiom)를 점점 더 가다듬어 가는데, 그것은 이른바 유대적 원천이 전면에 나타나는 것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이다. 『조종』이나 『할례고백』의 말은, 교배하고[혼성화되고] ‘마라노화한’ 이타성의 요소가 보태져 변양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전회는 1970년대 『조종』과 함께 생겨난다. 다단(多段)을 사용한 이 책의 레이아웃은 탈무드의 그것을 연상시키지만, 이 책과 함께 데리다의 유대교성에 대한 특이한 관계가 깊어진다. 이 책이 헤겔과 주네14)를 병치시켜서 동시에 독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후 데리다의 몇 가지 동기가 적절한 위치에 놓인다. 동기란 할례의 상처이며, 또한 『조종』의 표현을 취하면, “무가 되지 않는 것〔le pas-rien〕” 즉 “있는 것이 아니나 무가 아닌 잔여, 엉뚱한 잔여”이다. 이런 표현에 의해 『조종』에서 “지양〔Aufhebung〕에 저항하는 힘들”이 환기되는데, 이 힘들은 헤겔의 논의의 이음매를 전위(転位)시킬 수 있다.15) 무가 되지 않는 것, 이 실체화될 수 없는 잔여는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에서의 헤겔의 경악의 바로 그 정반대이다. 헤겔은 성궤 안에서 바로 “무〔rien〕”를 보고 있으니까.


장막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Rien derrière les rideaux〕. 비유대인이 막사를 열었을 때의, 사람들이 그에게 막사를 열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혹은 그가 막사를 침범했을 때의, 생활 속에, 혹은 신전 속에 그가 들어왔을 때의, 순진한 놀라움은 이로부터 생긴다. 비밀의 중심에 도달하기 위해 의례적인 우회를 여러 번 거친 후, 그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 무〔rien〕밖에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중심은 없다, 마음(심장)은 없다, 공허한 공간, 아무것도.16)


하지만 [이런 헤겔의 주장에 반해] 유대성은 무가 아니다[없는 게 아니다]고 덧붙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는, 어떤 불가능한 고백의 표명, 즉 유대인이라는 것은 성가신 문제점 중 하나라는 표명을 따라 나아간다. “유대인은 또한 타자이기도 하며, 즉 나이면서 타자이다. 나는 ‘유대인, 그것은 본질이라는 것을 갖지 못하고, 무엇 하나 자신에게 고유한 것으로서 갖지 못하는, 혹은 그 고유한 본질이 자신에게 고유한 것을 전혀 갖지 못하는 데 있는 그런 타자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유대인인 것이다”17)라고 데리다는 『쉽볼렛 : 파울 첼란을 위해』에서 쓰고 있다. 이로부터 동시에 도출되는 것은 유대인의 증인의 보편성과 “유대적 관용어(idiom)의 전달 불가능한 비밀”, 그 특이성, “발음될 수 없는 그 이름”이다. 혹은 데리다가 레비나스를 향한 표현방법을 다시 다루고, “모든 타자는 전적인 타자이다”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것”은 이 이타성의 내밀하고 특이한 경험을 이루게 될 것이다.

 데리다가 온몸으로 유대성의 경험에 직면할 때, 아포리아가 상처의 자리, 즉 외상이 언어와 사고의 다수의 파편으로 조각나 울려 퍼지는 장이 된다. 『할례고백』은, 임박한 어머니의 죽음보다 먼저 다 쓰기 위해 허둥대며 서둘러서 쓴 것처럼 읽힌다. 데리다가 제프리 배닝턴의 텍스트 아래에서 전개하는 것은, 1976년의 사적인 노트에서의 다수의 발췌의 인용으로 이루어진 숨이 찬 띠 모양의 에크리튀르이다. 할례의 베인 상처, 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이 홈에 의해 계약(alliance)이 맺어진다. 이 상처는 에크리튀르를 창시하는 알려지지 않은 사건, 에크리튀르의 비할 데 없는 방아쇠가 된다. “할례는 나를 여기에 쓰게 하는 것의 실마리이기를 계속한다. 버티는 것이 고작 하나의 실로 연결되어 있어서, 상실될 우려가 있다고 해도.”18) 그리고 이미 모든 것은 “사이”라는 비밀의 법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 경우, ‘사이’는 이 새로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문화와 다소 비밀스러운 유대교 문화의 사이이다. 더 말한다면, 이 유대교 문화는 비시정권의 법률에 의해 프랑스 국적을 빼앗김으로써 프랑스 내에서 추방된 알제리계의 어린 유대인이었던 그[데리다]가 어느 정도 묵살해온 문화이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나라고 추방되고 교양을 쌓아 국제인이 되는, 이 알제리의 어린 유대인의 교잡한[복잡한, 혼종적인] 정체성. 그의 진짜 이름은 [자크가 아니라] 자키로, 예언자와 똑같은 울림의 엘리라는 [두 번째] 이름도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하임(히브리어로 ‘삶’), 두 명의 할아버지는 모이즈[외가]와 아브라함[친가]19)이라는 이름이다. 부모는 엘리라는 이름으로 데리다의 시민등록을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가족보다 자국에서 오히려 인정받고, 자국보다 유럽에서 오히려 인정받고, 유럽보다 오히려 세계 도처에서 인정받는다. ‘야만인’에서 ‘고집쟁이’로 불렸던 나이지만, 라틴어를 스스로 말하고, sA을 읽으려고 라틴어를 다시 배우도록 강요받았다. 나는 취학 중에 라틴어의 지식을 조금 얻었기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할 수 있었다. 비시정권은 라틴어를 초등학교 6년의 필수로 만들었는데, 그 직후, 라틴어로 말하는 ‘정원제한[numerus clausus'’의 명목으로 우리에게서 프랑스 시민권을 앗아간 다음, 나를 고등학교에서 쫓아냈다.”20)

 『할례고백』이 철학에 의한 아카데믹한 문장 표현의 탈구축에 있어서, 데리다가 가장 멀리까지 가는 텍스트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불가능한 것이라는 형식의 경험을, 즉 “유대인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라는 아포리아 그 자체를 우리에게 맡김으로써, 그는 아카데믹한 문장 표현의 다양한 코드를 폭발시킨다. 그것은 할례의 기억 없이 상처 위에 직접 쓰인 텍스트이다. 이 상처는 『쉽볼렛』, 『아카이브의 병』 같은 다른 많은 텍스트에서 환기되며, 이 상처 위에 데리다가 저작들의 일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유대교성을 언급하는 것은 언어를 언급하는 것, 더욱이 시적인 것의 가능성 그 자체를 언급하는 것이다.21)  『할례고백』은 『타자의 단일 언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추구되는 운동을 개시한다. 『타자의 단일 언어 사용』에서는 유대교성의 문제와 언어의 불가능한 고유화라는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로젠츠바이크는, 독일어 속에서 언어학적으로는 주인이 되는 언어를, 이디시어 속에서 동료들 사이에서의 ‘유대의’ 언어를, 그리고 히브리어 속에서 기도의 언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데리다는 과거의 그 자신의 어린 ‘아랍계 유대인’에 대해, 어떻게 해서 이 세 가지 틀이 금지되고 있는가를 힘차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묘사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프랑스 ― 마그레브계 유대인의 전형적인 상황이란 ― 또 다시 강조해두자 ― 거기에 있어서 수탈(收奪, expropriation)이 다음 세 가지의 믿고 의지하는 것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미치는 상황인 것이다.”22) “식민지의 프랑스어”를 얘기하는 데리다는 히브리어도 유대계 스페인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데리다가 한 것처럼, 이런 근원적인 탈고유화를 표시할 수 있는 저술가는 거의 없다. 이 근원적인 탈고유화에 있어서, 아슈케나지계 유대인23)과 세파르디계 유대인,24) 신앙을 가진 유대인과 신앙을 갖지 못한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아이들과 이스라엘 국가 ― 데리다가 신식민지주의라는 면에서 끊임없이 비판한 이스라엘 국가 ― 사이에서의 유대적 경험이 구성되고 있지만, 이 경험은 데리다가 표시하고, 또 다시 표시하려 한 다양한 차이를 넘어선다.

  몇 개의 텍스트의 행보를 시계열적으로 추적하면, 수많은 차이의 차이에 의해 찢겨진 의식, 국지적인 것, 국가적인 것, 세계적인 것 사이의 다양한 차이화에 의해 찢겨진 의식이, 탈구축의 작용의 이른바 모체(매트릭스)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느냐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탈고유화〔expropriation〕의 ‘탈〔ex〕’, “‘함께〔cum〕’의 원〔cercle〕, 즉 circum〔라틴어의 원, 서커스〕이라는 곳의 서커스〔cirque du circum〕”,25) 기저재〔基底材, subjectile〕의 ‘아래〔sub〕’ ― 이 모든 전치사는 언어와 사고의 수많은 말투를 변화시킨다. 데리다는 이런 말투에 의해, 항상 기원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탐구함으로써, 초월론적인 기원의 학(아르케올로지) ― 고유한 것의 탈구축 ― 을 작동시킨다. 그때 데리다는 『끝없는 대화』의 「유대인이라는 것」이라는 장에서의 블랑쇼의 발언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은 몇 가지의 기원〔des origines〕이 인간이며, 즉 기원이라는 것에 관련된 인간이다. 기원에 머묾으로써가 아니라, 기원에서 거리를 두고, 단초(端初)의 진리는 분리 속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몇 가지의 기원의 인간인 것이다.”26)


데리다는 유대교성에 관한 주요한 개념의 몇 가지를, 그에게 고유한 철학적 관용어로 재번역했다. 그것과 동시에, 그는 이런 개념들을 정치적인 목적지 ― 데리다에게서 그것은 도래할 것〔lʼà-venir〕의 개념이다 ― 에 대한 경유지로 함으로써, 유대교성의 문화적인 차원에서 우회시켰다. 이렇게 데리다는 메시아성 및 유일성에 대한 개념들을 만들고 가다듬는다. 그 기점이 되는 것은 메시아주의 혹은 일신교에서의 신의 통일성이 의미한 것이며, 데리다는 결정 불가능한 미래에로 이 이름들을 다시 던져 넣는다[되돌려준다]. 그는 『아카이브의 병』에서 『맑스의 유령들』에서 가다듬은 ‘메시아성’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만 했다. 그는 예루살레미가 프로이트의 『모세라는 남자와 일신교』를 논한 책의 재독해를 기점으로 아카이브라는 개념을 가다듬고, 이때 유대교에 관한 이 위대한 역사가가 프로이트의 죽음을 넘어서 프로이트에게 보낸 유별난 독백을 장황하게 분석하고 있다. 데리다는 “메카-아카이브는 존재하지 않는다”27)고 적었다. 데리다가 제시하는 것은, 아카이브가 과거의 죽은 자료가 결코 아니라, 기록 보관자에 의해 작성되고 “환원할 수 없는 미래의 경험”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환원 불가능한 경험을 기점으로 하여 메시아성은 요청[호명]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갖게 된다. 재번역 및 우회〔détournement〕와는 다른 효과인 유일성에 관해 말하면, 유일성이란 일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일자(l’Un)가 존재하자마자, 살인이, 상처가, 외상이 있다. 일자는 타자로부터 몸을 지킨다”28)고 데리다는 쓴다. 『자홀 : 유대인의 역사와 유대인의 기억』에서 “‘상기하라’는 명령이 한 민족 모두에게 종교적 명령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뿐이며, 다른 민족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이다”29)고 예루살레미는 적는다. 데리다로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30) 과거와 미래라는 관심사를 오로지 이스라엘에 두는 이런 글이 정당한가라고 자문하고 …, “적어도 이 선택의 논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유일한 이름으로, 이 예상과 이 명령에 있어서 인정되려고 하는 모든 장과 모든 민족은 부르는 것이 아닌 한에서는…”31)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는 『아듀 : 엠마뉘엘 레비나스』에서 비슷하게 행동한다. 데리다는 유대민족이 토라의 역사적인 사자(使者)를 자칭하거나, 특권적인, 더 나아가 유일한 해석자를 자칭하거나 하는 것을 레비나스가 고발했을 때, 레비나스 안에서 자신의 발언의 울림을 찾아내는 것이다. 데리다는 선택을 지정하는 것이 어떤 민족이나 어떤 국가에 제지되는 채로 되지 않는 선택을 사고해야 할 것이다何らかの民族や何らかの国家におしとどめられるがままにならないような選びを思考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고 주석을 단다.32) 이리하여 유대의 전통의 몇 가지 어휘가 변양되고, 방향을 돌리고〔détourné〕, 또한 동시에, 보편적인 것에 대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잠재력을 데리다에 의해 담지되는 것이다.33)

 이렇게 유대적 경험은 “사막 속의 사막”이라는 특이한 장소에서 베껴 써진 듯하다. 데리다에게서 이 장소는 추방과 도래할 것의 경험이라는 비할 데 없는 과장법을 구성한다. “도래하는 대로 되는 것到来するがままになっているもの34)을 나타내는 이 “사막 속의 사막”의 놀라운 이미지가 다듬어졌던 것은 『신앙과 지식』에서이다. 코라(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데리다는 이 비할 데 없는 장을, 모든 장에 있어서 다른 것으로서, 형태를 부여하는 무정형적인 것으로서 이론화했다)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 “사막 속의 사막”이 있을 것이다. 즉, 그리스적인 것과 유대적인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사이에서 작동하는 게 아닐까? 기원을 정하는 것을 끊임없이 거부함으로써 모든 것은 작동하는 게 아닐까? 사르트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한 고찰』에서 “본래적인” 유대인과 “비본래적인 유대인” 사이에 분할선을 집어넣는데, 데리다는 강연 「아브라함, 또 하나의」에서 이런 분할을 비판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데리다는 자신의 유대적 유산과 그에게서의 라틴-기독교적 문화의 유산을 분리하는 것을 항상 거부했다. 라틴-기독교적 문화란, 『신앙과 지식』에서의 조어를 거론한다면, 바로 “세계 라틴성〔mondialatinité〕”35)의 문화이다. 그는 마라노이며, 마라노이기를 계속하지만, 그는 이것을 『할례고백』에서 표명하고 있다.


저는 프랑스의 가톨릭 문화에 속하는 일종의 마라노이며, 기독교인의 신체도 갖고 있는데, 그 신체는 많든 적든 뒤틀린 계보에 있어서, sA(성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계승되고 있다 … 마음속으로 몰래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말하지도 않는, 그런 마라노에 나는 속해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은, 공적인 경계 중 어느 쪽에서 인정받은 마라노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라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결코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 빛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몸을 불태울 각오로, 〔신과 나 사이의〕 불가능한 대면이라는 해괴한 법 아래에서 쓴다는 단지 그 때에….36)


 데리다에게서 <역사〔Histoire〕>는 항상 어떤 출처〔provenance〕와 다른 출처 사이에서 생긴다. 그리고 데리다가 “유대인 문제”로 채운 모든 텍스트에서 사이라는 이 논리를 추적할 수 있다. 이것은 「에드몽 자베스Edmond Jabes와 책의 물음」이라는 논문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말로 얘기됐다. “<유대인>의 자기에의 동일성 등은 아무 실재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자기임의 이 불가능성의 별명일 것이다. <유대인>은 찢겨져 있으며, 그것도 우선, 이의성(異義性, 알레고리)자의성(字義性)이라는 문자의 두 가지 차원 사에서 찢겨져 있는 것이다.”37) 같은 시대에 쓰여진 논문인 「폭력과 형이상학」에서도 다음의 문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차이 속에 살고 있으며, 이 차이가 아마 역사라고 불리는 것의 통일성이다.” 유대적인 것과 그리스적인 것,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등의 사이에서 구성되는 이 차이의 공간 그 자체에 있어서 항들은 교류하며, 교차(키아즘)를 형성한다. 셰익스피어의 더없이 양의적인 연극인 『베니스의 상인』에서 데리다가 시행한 놀라운 분석을 참조한다면,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사이, 즉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사이라는 사례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다시 유대교인이며, 유대교인은 이미 기독교인이다. 그들은 교류하고 술책을 부리며, 금전상의 화해에 있으며, 거래를 한다 …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에서 교묘하게 짜여진 협상의 이 장면에서, 타자는 한 명의 다른 것이며, 동시에, 각각이 다른 쪽을 제 것으로 삼아야만 한다.”38)

 데리다의 “유대적인 것”은 말하자면 분할되어 있으며, 분할 그 자체이다. 유대교와 유대성 사이에 균열을 넣는 것, 고유한 것을 규정하는 것은 결코 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아카이브의 병』에서, 데리다는 예루살레미와 대립한다. 충분히 작동하는 것은, “더 많이 - 더 적게”라는 논리이며, 즉 “<유대인〔Juif〕>보다도 유대인적〔juif〕이며, 또한 <유대인>보다도 유대인적이지 않다”39)는 논리이다. 이것은 마라노의 일격이며, 거짓말을 하는 진실이다. 그렇지만 데리다에게서는, “유대교는 탈구축이다”라는 언명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장-뤽 낭시는 『탈폐쇄 : 기독교의 탈구축』에서 탈구추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탈구축은 “기독교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기원부터 탈구축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의 시작부터, 기독교는, 마치 기원에 있어서의 놀이=느슨함, 간격, 고동鼓動, 개방성에 관계되었듯이, 기독교 자신의 기원으로 관계되기 때문입니다.”40)

 이런 사고의 두 가지 행태는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작용한다. 데리다는 『신앙과 지식』에서 (『단순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전개된) 반성적 신앙에 대한 칸트적 개념 속에 신의 죽음의 도래를 봤지만, 낭시에게서는 일신교의 유대적 창의(創意)에 대해서조차 무신론을 읽어낼 수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라는 형상〔figure〕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는 세계에서 통합되고, 데리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일신교를 나타내고 있다. “이 두 개의 일신교는 ‘일신교’가 일자에 대한, 살아 있는 일자에 대한 신앙과 똑같이 유일신에 대한 신빙信憑을 의미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생각나게 하는 점에서, 그리스-기독교적인 유럽, 이교도-기독교적인 유럽의 심정과는 너무도 이질적이며, 또한 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유럽과도 꽤 이질적이다.”41) 데리다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유대교는 기독교와 다르다. 낭시는 말하자면, 야곱(자크)의 묵시록의 복음서를 주제로 데리다를 다룬 텍스트에서 교묘하게 보여줬듯이, 유대인을 유대-기독교적인 배치 구성으로 흡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텍스트에 의해, 낭시는 “유대-기독교”42)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데리다가 “아브라함적인 것”이라고 명명한 것에 대한 실마리를 따라가야만 할 것이다. “아브라함적인 것”은 이삭의 결박을 둘러싸고 은닉화[隠匿化, 크리프트화]된 어떤 특이한 텍스트의 중심적인 동기를 제공한다. 비밀을 논하는 이 숨겨진 텍스트는 『죽음을 주다』이다. 여기서 데리다는 파토츠카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단적 논고』로부터,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전율]』이라는 매개에 의해 도입된 아브라함에 관한 성찰로 나아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파토츠카의 논고는 플라톤에서 기독교성에 이르는 “다이몬적인” 억제의 역사를 구축하고 있다. 이 역사에서 유대적 예외는 장소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을 주다』에서는 아브라함의 희생의 중단이라는 중심적 신화를 둘러싸고 모든 것이 신속하게 전개된다. 이 신화에는 법의 힘이 주어져 있으며, 데리다는 텍스트의 말미에서 문학에 관한 아주 특이한 계보학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 계보학은 희생이 중단되는 바로 그 장소에서 창설되는 아브라함의 비밀이라는 전통에 의해, 은닉화[隠匿化, 크리프트화]되는 동시에 정초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전설 속에 문학을 다시 정착시키기 위해, 데리다에게는, 출발점으로서 이 희생이 우화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아브라함의 전설]을 우화로 보는 것, 그것은 철학적 혹은 시적 보편성에 잠입하는 것, 그 역사적인 사건성을 해소하는 것이다.”43) 그러나 텍스트의 그 어떤 계기에 있어서도, 데리다는 명시적으로 이 아브라함의 사례를 탈구축 불가능한 것으로 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는 이 장소를 정의에 있어서 두는 것이다. 또한 어쩌면 그는, 아브라함의 전통이 세계적인 규모로 흡수되고 있다고 깨닫고 있다. 『신앙과 지식』에서, 유대적 예외의 생성에 대한 불안으로 찬 이런 종류의 물음이 발견된다. “… 이 존속은, 세계화가 포화된 날에는 (아마 이미 도래하고 있으나) 어떻게 될까?” 그때 데리다는 레비나스를 인용하는 것이다. “나〔레비나스〕는 유대교를, 성서에 문맥을 주고, 성서를 읽게 만들어 놓을 가능성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또한 데리다는 〔세계화〕는 “최악의 것, ‘최종해결’이라는 근본악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에 있어서의 위협적인”44) 문제이라고 덧붙인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는 전통을, 아직 사고되지 않는 그 다름에 대치하는 방식은 분명히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의 환원 불가능한 멜랑콜리를, 아브라함의 이름을 딴 문장에서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탈구축의 물음은, 이 모든 멜랑콜리의 중심에 있다. 왜냐하면 멜랑콜리는 항상 어떤 미래와 관계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적인 종교들이 더 이상 지배력을 갖지 않게 된 세상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45) 이 질문은 참신한 방식으로 접목되고 재번역되는 도래할 역사 전체에도 관련되어 있다. 상하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런 역사의 일례이다. 나치즘의 지배 아래서, 상하이는 무비자의 유대인을 맞아들인 세계에서도 드문 도시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전적으로 다른 역사이다. 똑같은 역사이지만, 또한 다른 역사인 것이다.




1) 〔일역자〕 Benoît Peeters, Derrida, Flammarion, 2010, p. 659.〔『デリダ伝』原宏之・大森晋輔訳, 白水社, 2014年, 736頁〕

2) Cf. “… 나는 더욱 더 진지하게 마라노라는 형상과 놀고 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욱 너는 유대인일 것이다”(«Abraham, l’autre», in Judéités. Questions pour Jacques Derrida, J. Cohen et R. Zagury-Orly (dir.), Galilée, 2002, p.22.). “실제로 스페인의 마라노들은, 단 하나의 비밀스런 기억마저 잃고 분산하고 복수화되었을지도 모른다”(Foi et savoir. Les deux sources de la «religion» aux limites de la simple raison, Seuil, 1996, p.100.) 〔「信仰と知──たんなる理性の限界における「宗教」の二源泉」松葉祥一・榊原達哉訳, 『批評空間』II-14, 177頁〕). 또한 “마라노들에게 나는 항상 몰래 그들에게 동일화됐다(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Mal d’archive, Galilée, 2008, p.111〔『アーカイヴの病』福本修訳, 法政大学出版局, 2010 年, 115頁〕)도 참조.

3) 〔일역자〕 Maurice Blanchot, L’entretien infini, Gallimard, 1969, p.185. 블랑쇼는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안드레 네에르(André Neher)의 분석을 참조하고 있다.

4) Geoffrey Bennington et Jacques Derrida, Derrida, Circonfession, Seuil, 2008, p.57.

5) Apprendre à vivre. Entretien avec Jean Birnbaum, Galilée, 2005, p.41.〔『生きることを学ぶ, 終に』鵜飼哲訳, みすず書房, 2005年, 45-46頁〕. “누군가가 ‘우리 유대인’이라고 말할 때, 그는 어떤 본질을 재고유화[再我有化]하는 것, 얼마간의 귀속을 재인하는 것, 즉 얼마간의 분유의 의미를 손에 넣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Schibboleth, pour Paul Celan, Galilée, 1986, p.90.〔『シボレート, パウル・ツェランに向けて』飯吉光夫・小林康夫・守中高明訳, 岩波書店, 1990年, 155頁〕)도 참조.

6) 〔일역자〕 Judéités, op. cit,, p.25.

7) Jacques Derrida, Questions au judaïsme. Entretiens avec Elisabeth Weber, Desclée De Brouwer, 1996, p.77.

8) 〔일역자〕 Cf. Jean-Claude Milner, Le Juif de savoir, Grasset, 2007; Benny Lévy, Être juif. Étude lévinassienne, Verdier, 2003.

9) De la grammatologie, Éditions de Minuit, 1967, p.36. 피터 트라우니가 『검은 노트』에 할애한 최근의 책(Peter Trawny, Heidegger et l’antisémitisme. Sur les «Cahiers noirs», Seuil, 2014)에서 보여줬듯이, 전제를 철저하게 추궁하면서 데리다가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 속에 “사고의 하자”를 인정하는 것은 훨씬 훗날이다. 레비나스의 독해가 데리다 안에서 갖고 있는 풍부한 사정거리의 더없는 증거이다. 그렇지만 데리다의 이 표명은 당초 독일어로 발표된 논문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프랑스어로는 발표되지 않았다.

10) 〔일역자〕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Seuil, 1967, p.227. 〔『エクリチュールと差異』, 合田正人・谷口博史 訳, 法政大学出版局, 2013年, 305頁〕

11) 〔訳註〕 Ibid., p.99. 〔同前, 126頁〕

12) 〔訳註〕 Ibid. 〔同前〕

13) 〔訳註〕 Ibid., p.103. 〔同前, 131頁〕

14) 데리다가 주네에 대해 항상 품었던 열정, 바로 주네의 반유대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에 대한 데리다의 침묵, 그리고 그런 것이 일으키는 온갖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취급해야만 할 것이다. 데리다는 당연히 주네에게서 불명예스러운 에릭 마티(Éric Marty)의 논문 「샤틸라의 주네」(Les temps modernes, n°622, décembre 2002-janvier2003. 〔Bref séjour à Jérusalem, Gallimard, 2003에 게재〕)에 의해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

15) Glas, Galilée, 1974, p.53.〔「弔鐘」, 第7回, 鵜飼哲 訳, 『批評空間』, II-23, 1999年, 273頁〕

16) Ibid., p.59.〔「弔鐘」, 第8回, 『批評空間』 II-25, 2000年, 327頁〕. 『불량배들』에서 데리다는 “무가 아니다”를 정치적인 것과 사건에 대한 사고의 조건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무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상 도래하는 것이다”(Voyous, essais sur la raison, Galilée, 2003, p.204, n.1.〔『ならず者たち』, 鵜飼哲・高橋哲哉 訳, みすず書房, 2000年, 282-283頁〕).

17) 〔일역자〕 Schibboleth, op.cit., p.91. 〔 『シボレート』前掲, 156頁〕.

18) 〔일역자〕 Circonfession, op.cit., p.171.

19) 그는 이것을 특히 『할례고백』 및 『아카이브의 병』에서 환기하고 있다.

20) Circonfession, op.cit., p.178. sA의 약자로 데리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나타낸다. 데리다는 『할례고백』에서 스스로를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21) 『쉽볼렛』에서, 데리다는 ツヴェタイエヴァ[사바타이 체비 혹은 러시아의 시인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를 가리키는 듯?]의 잘 알려진 말을 인용하고 있다. “모든 시인은 유대인이이다”(Schibboleth, op.cit., p.91.〔『シボレート』前掲, 156頁〕).

22) Monolinguisme de l’autre, Galilée, 1996, pp.99-100.〔『たった一つの, 私のものではない言葉──他者の単一言語使用』守中高明訳, 岩波書店, 2001年, 154頁〕.

23)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8A%88%EC%BC%80%EB%82%98%EC%A7%80_%EC%9C%A0%EB%8C%80%EC%9D%B8

24)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D%8C%8C%EB%A5%B4%EB%94%94_%EC%9C%A0%EB%8C%80%EC%9D%B8

25) 『할례고백』을 참조. “나는 ‘함께〔cum〕’의 원〔cercle〕에, ‘circum〔라틴어로 원, 서커스〕이라는 곳의 서커스〔cirque du circum〕’에, 내가 항상 달아나면서도 찾았던 사람 앞에 … 모이고 싶다”〔Circonfession, op. cit., p.166〕.

26) 〔일역자〕 Maurice Blanchot, L’entretien infini, op. cit., p.185.

27) 〔일역자〕 Mal d’archive, op.cit, p.108. 〔『アーカイヴの病』前掲, 112頁〕.

28) 〔일역자〕 Ibid., p.124. 〔同前, 130頁〕

29) 〔일역자〕 Ibid., p.121. 〔同前, 127頁〕. “자홀”은 히브리어로 “상기하라”의 의미.

30) 〔일역자〕 Ibid., p.124. 〔同前, 130頁〕

31) 〔일역자〕 Ibid., p.122. 〔同前, 128頁〕

32) 〔일역자〕 Cf. Adieu. À Emmanuel Levinas, Galilée, 1997, p.127. 〔『アデュー』藤本一勇訳, 岩波書店, 2004年, 106-107頁〕

33) 할례는 그 비할 데 없는 사례로, 『쉽볼렛』에서 데리다는 참신한 방식으로 시적인 것을 다듬어내고 있다.

34) 〔일역자〕 Foi et Savoir, op.cit., p.29. 〔「信仰と知」, II-12, 93頁〕

35) 〔일역자〕 Cf. 「세계라틴화〔mondialatinisation〕」. Ibid., p.21. 〔同前, 『批評空間』II-11, 96頁〕

36) 〔일역자〕 Circonfession, op. cit., p.145.

37)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op.cit., p.112. 〔『エクリチュールと差異』, 前掲, 145頁〕

38) Jacques Derrida-Michal Ben-Naftali, «La mélancolie d'Abraham» (entretien), in Les Temps Modernes, n° 669, «Jacques Derrida : L'événement Déconstruction», 2012. 데리다는 여기서 「카이에 드 렐르 : 자크 데리다」(2004년)에 재수록된 「『지양하다』 번역이란 무엇인가」에서 행한 분석을 다시 다루고 있다.

39)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op.cit., p.112. 〔『エクリチュールと差異』, 前掲, 145頁〕.

40) Jean-Luc Nancy, La Déclosion. Déconstruction du christianisme 1, Paris, Galilée, 2005, p.217. 〔『脱閉域──キリスト教の脱構築1』大西雅一郎訳, 現代企画室, 2009年, 296頁〕

41) Foi et savoir, op.cit., p.22. 〔「信仰と知」, 『批評空間』II-11, 97頁〕

42) “유대-기독교인”이라는 말은 우선 『유대성』에서 거론되고, 다음으로 『탈폐쇄』에서 다른 형태로 거론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유대-기독교인이란 자크〔자크 데리다 및 야곱〕이다. 그리고 그것은 … 어떤 하나의 실, 은밀한 연결부호이며, 그것에 의해 역사상의 야곱과 이 또 하나의 … 또 하나의 유대-기독교인인, 혹은 또 하나의 다른 유대-기독교인인 자크가 결부된다”(La Déclosion, op.cit, p. 70〔.『脱閉域』前掲, 88-89頁〕).

43) 〔일역자〕 Donner la mort, Galilée, 1999, p.95.〔『死を与える』廣瀬浩司・林好雄訳, ちくま学芸文庫, 2004年, 139頁〕

44) Foi et savoir, op.cit, pp.84-85.〔「信仰と知」, 『批評空間』 II-14, 169-170頁〕

45) «La mélancolie dʼAbraham», op.cit.,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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