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2

 

 

목차

사상의 말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I. 푸코 재고

1. -‘생명정치학적 고찰

우노 쿠니이치(字野邦一)

2. 정신과 심리의 통치

고이즈미 요시유키(小泉義之)

3.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 미셸 푸코의 생체권력론

히로세 고지(廣瀬浩司)

4. 구조주의의 생성변화

에두아르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II. 이탈리아에서

5. ‘죽음정치에서 비정치: 이탈리아에서의 생명정치의 전개

오카다 아츠시(岡田温司)

6. 인간과 동물의 문턱 : 조르조 아감벤에게서의 생명 개념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7. 생명권력과 생명역량[잠재력]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III. 인류학의 지평

8. 오늘날의 생명정치학 : 푸코와 레비스트로스

프레데릭 켁

9. 생명권력의 외부 : 현대인류학을 통해서 생각하기

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

10. 3종의 정치를 향하여 : 인류학적 생명권력론의 한 시도

야나이 타다지(箭内匡)

11. 신체의 산출, 개념의 연장 : 마릴린 스트라썬에게서의 멜라네시아, 민족지, -생식기술을 둘러싸고

사토미 류지(里見龍樹)구보 아키노리(久保明教)

 

IV. 착종의 장으로

12. 합성생물의 생명정치학

가나모리 오사무(金森 修)

13. 출현하고 있는 생명의 형식?

니콜라스 로스

14. 스스로 움직이는 것의 생태학

노타카 테츠시(野中哲士)

15. 라 보르도 병원의 transversalité

미와키 야스오(三脇康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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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말 : 언어와 생명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원래 이 글은 조르조 아감벤이 집필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오카다 아츠시岡田温司 선생에 따르면, 언제나 그렇듯이 지연되어) 마감을 넘겼는데도 아감벤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내가 이 특집의 좌담, 원고, 번역에 많이 힘을 쓰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원고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부득이하게 떠맡게 되었다.

언어와 생명은 어려운 테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학문을 그리스부터든 고대 중국에서부터든 아무튼 시작한 이래,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고 학문을 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학문이 학문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야생의 사고든, 언어적 상징을 이용한 논리 조작이 어딘가에서 필요할 터이다. 그러한 합리화나 논리화, 혹은 규범화를 갖지 않은 지적 활동은 원래 있을 수 없다. 근세 이후, 유럽에서 학문이,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경이로운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수학이라는 추상적인 기호계의 전개가 있었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언어란 어떤 것이든, 어떤 일반화를 행하는, 이 세계를 범주로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언어의 조작에 의해 인식의 계층성이 생겨나며, 분류로서의 학이 시작된다.

하지만 언어란 우선 인간의 것이다. 우선이라고 말한 까닭은 인간 이외의 생물이 (잠재적으로든) 언어적인 무엇을 사용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고, 또 인간이 언어를 획득한 것도 분명히 자연 진화의 과정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어를 명시적인 수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렇기에 자연에 대해, 물질에 대해, 생명에 대해 인간이 자신의 존재방식을 주장하고자 할 때는, 언제나 언어의 힘을 끌어들이게 된다. 이 경향은 고대의 언령적言霊的 발상에도, 지난 세기에 언어론적 전회가 (내게 그것은 근대의 결실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전되었을 때에도 발견된다. 특히 후자에서는, 언어가 의식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키는 보루가 되었다. 확실히 그래서 언어의 광기가 얘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언어가 지닌 다양성이 다문화주의의 원천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아무튼, ‘인간이란 역시 하나의 에 불과하다. 다언어주의 속에서 번역의 문제가 인문학의 열쇠처럼 다뤄졌다고 하더라도, 늘 번역은 이루어진다. 번역은 물론 인간이 갖추고 있는 근원적인 차이나 교통 불가능성을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번역은 동종의 인간 사이에서의, 마찬가지로 진화한 뇌의 기능 사이에서의 번역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생명은 전혀 다르다. 물론 생물학으로서의 생명의 지식, 즉 생명을 분류하고 논리화하는 시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옛날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이나, 생명으로서 존재하는 것 자체는, 윤리적인 삶의 방식의 문제이기는 해도, 원리적으로 지식의 문제가 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생명에 독특한 물질=질료성, 그저 태어나고 그저 생식하고 그저 죽어갈 뿐인 생명으로서의 이러한 나, 이것은 지식의 대상으로서는 기피되어야 할 영역이었던 것이 아닐까? 너무 분류하고 명석화하는 것으로부터는, 뭔가 다른 어떤 것이 있는 게 아닐까?

거기에는 상반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지성을 축으로 한 생물인 인간에게, 스스로가 포함하는 역설, 스스로가 품고 있는 모순을 노정시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물질적 생명을 포섭할 수 없다. 지식은 어디서든 생명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의존하지만, 그러나 생명 자체를 묻는다면, 자신의 근거가 희박하고 소멸한다는 감각이, 즉 일종의 두려운 낯설음(unheimlich)’의 감각이 항상 따라다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두려운 낯설음일까?

두려운 낯설음은 현대사상(혹은 그 발단의 시기)에서 처음부터 중시된 말이다. 실존주의나 생철학은 지식의 너머인 이러한 영역이나, 거기서 발견되는 부조리성이나 우연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학들은, 이 영역이 품고 있는 본질적인 실정성을 명시할 수 없었다. 언어론적 사고를 섭취한 정신분석은 언어화도 상징화도 할 수 없는 이 너머실재자체로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서 방치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극히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그저 살아 있다고 하는 너머를 실정적으로 밝혀주는 것은 바로 인간 지식의 극한 같은 생물학이었다. 뇌과학이 해명하는 시냅스 연쇄로서의 지식이나 정서의 기능, 분자생물학이 그리는 분자적으로 해체되는 신체의 이미지, 면역 기능이 제시하는 흔들리는 자기의 애매함 . 그것은 확실히 지식이 노정시키는 신체이자 자기이다. 그 때문에 그것들은 언어를 축으로 한 근대적 지식이 자기의 기반에 위험한 방식으로 구부려왔던[주름을 접혀왔던] 것의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식으로 생명을 파악하는 것, 이것은 지식이 지식이라는 것(인간이라는 것)을 붕괴시키는 사태를 포함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의 지식에 집착하는 철학만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었다. 물질로서의 지식을, 생의 한가운데서 다루는 것은 불가피해진다.

여기에는 다른 방면에서의 호응도 있었다. 그것은 이론보다 훨씬 실천적인 지향이 강한, 정치나 윤리에서의 지식의 담론으로부터의 의 위치에 관한 것이다. ‘생 그 자체의 정치학’, 이것은 본 특집에 그 일부의 번역이 게재된 니콜라스 로즈의 말인데, 정치의 중심에 생명을 두는 것은, 돌이켜보면 20세기를 뒤덮었고 21세기에서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감벤이 강조하는(그것이 얼마나 인류사적 비정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우슈비츠에 한정되지 않는다. 19세기적 민족주의를 이어받은 20세기는, 필연적으로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의 세기이기도 했다. 살아 있는 것의 인종성이, 자유나 민주주의, 그리고 국가의 시스템의 저변에 깔려 있고, 그것을 떠받친 구조가 되었던 것이다. 그곳은 그저 살아 있는 것의 신체성이 그것만으로 정치화되고 분석되는 극한적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부터의 다양한 사례는 이미 이러저러하게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을 축으로 한 생식에 대해서는 기술적 조작이 가능해지고 있고(클론, 인공수정, 대리모), 그것은 세포 자체의 생식성(ES세포나 iPS세포)까지 미치고 있다. 인종차별=인간차별적 사태는 이제 양수 검사에서의 태아의 장애의 명확화에 의한 암묵적인 생의 선별, DNA 검사에 의해 제시되는 잠재적인 병의 가능성까지 확대되며, 살아 있는 미시적 물질성을 대상으로 하면서 광역화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의 고도화는 뇌사의 문제를 야기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 자체의 애매함을, 단순히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문제로서도 초래하고 있다. 이것들은 언어와 지식을 갖춘 인간 자체가 그 범주로는 수습될 수 없는 생명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는 사례이다.

미셸 푸코는 자신이 설정한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학이 이런 사정거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념은 유효하면 유효할수록 발명자의 의도를 넘어서 확산된다. 이렇게 확산된 결과, 생명권력은 이제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조차도 규정하기 어려워졌지만, 그러나 이와 동시에 21세기의 사고의 구도를 그릴 때 불가결한 조작 개념이 되었다. 이것이 향후에도 계속 유효한 개념일 수 있는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적 사고가 언어나 의식을 넘어서 그 기반에 시선을 돌릴 때, 그리고 정치나 윤리라는 사태 속에 언어를 넘어선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파고들어온다는 것이 분명해질 때, 언어와 생명이 결정적으로 뒤얽혀 있는 이 위상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그것은 조화로운 생명의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생명을 원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언어가, 뭔가 그 모습을 꼼짝 못하게 누르려고 하는 어려움이야말로 거기에서 노정되어야 한다.

생명의 윤리학이나 정치적 사고는, 스스로 이러한 역설적 상황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부터 너무도 외면해 왔다. 일본에서의 생명윤리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몇 사람의 논자들이, 지난 세기의 생명윤리의 불철저함을 자각하면서,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학에서 그 존재론적 검토의 재료를 찾고자 했던 것은 (예를 들어 金森修, 『〈生政治哲学(ミネルグァ書房, 2010), 小松美彦, 生権力歴史 脳死尊厳死人間尊厳をめぐって(青土社, 2012))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징조처럼 보인다. 단순한 윤리를 넘어서, 생명의 존재론이나 그 근원적 정치성을 묻는 탐구는, 향후 아마도, 예상도 못할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로 결실을 맺을 것이다. 거꾸로, 거기서는 푸코의 의도에 따른 한에서의 생명권력이라는 용어는, 이제 소멸해도 상관없을 것이 될 터이다.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일본의 <현대사상> 2006년 6월호에 수록된 우에무라 타다오(上村忠男)와 타자키 히데아키(田崎英明)의 대담인 "言語と時の<閾>"을 원문 그대로는 아니지만, 하여간 대략적으로 옮기고자 한다. 며칠이나 몇 주가 걸리겠지만,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적어둘 것이다. 한국어로는 어감이 이상하다고 하더라도 가급적 일본어에 충실하고자 하며, 우리 말과 다른 것은 "일본어/한국어" 식으로 병기를 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문장의 경우에는 "일본어[한국어]" 식으로 처리할 것이다. 단, 영어가 가타가나로 표기되어 있을 경우에는 한국어로 옮기거나 한국어/영어 등으로 표기한다. [참고로 우에무라 타다오는 <유년기와 역사>, <남은 시간> 및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의 일본어판 역자/공역자이다. 또 <호모 사케르> 등에 대한 해제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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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이 끝나면 아감벤에 관한 1차 문헌과 2차 문헌들을 본격적인 번역서가 나오기 전에 옮길 것이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 드디어 대략적인 초역이 끝났다. 중간에 오타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다. 물론 내용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믿는다.) 나중에 더 발견되면 고칠 것이다. 이것은 6월 15일부터 열리는 <인권연구소 창>의 아감벤 세미나에서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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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 세미나를 위해 교정할 필요가 생겼다. 2010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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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
타자키 : 조르조 아감벤은 1970년대부터 작업을 해 온 사람이고, 저는 일단 이탈리아어로 읽었는데, 영역본이 나오고[나서야 제대로], 아감벤의 작업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늦은, 1990년대 정도부터였습니다. 더욱이 그것은 여러 가지 액추얼한/현실적인 문제와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아감벤의 사상, 아감벤의 이름이 부상하게 된 것은, 역시 미셸 푸코가 생정치, 생권력이라고 말했던 것을 아감벤이 다시 다룬 점, 그 개념을 재편성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개념을 상당히 확장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감벤이 말한 생정치가, 우선 그 내용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그 때문에 생정치라고 말했을 때, 이것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됩니다만, 생정치라는 말만이 독보적이게 되고, 예를 들어 푸코의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 나아가 아감벤이 주목을 받은 후에, 생정치 등을 키워드로 하여 주목받게 되었던 사상의 하나로서,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감벤에게서 생정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생정치가 오늘날 액추얼/현실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왜 그런가에 관해서 우에무라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에무라 : 곤란하군요(웃음) 사실을 말하자면, 제 자신은 푸코가 말한 "생정치"라든가 "생권력" 등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 액추얼리티/현실성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받아도, 대답할 말이 빈곤하다고 정직하게 말해야겠습니다.
아감벤이라는 인물 자체에 관해서도, <스텐차 : 서구문화에서의 말과 판타스마>(1977년)에 관한 오카타 아츠시(岡田温司)의 일본어 번역판 <스탄체 : 서구문화에서의 말과 이미지>(아리나서적, 1998년)[岡田 温司訳『スタンツェ――西洋文化における言葉とイメージ』,ありな書房,290p.]를 통해 존재는 알고 있었으며, 저와 동시대의 이탈리아인이 그 책 속에서 유감 없이 발휘해 보여주고 있는 눈부신brilliant 재능에 혀를 내두른 기억도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그래도 제가 동시대의 이탈리아 역사가인 카를로 긴즈부르그에게 경도되었던 것 만큼의 각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말이지,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 : 문서고와 증인>(1998년)[上村忠男・広石正和訳,『アウシュヴィッツの残りのもの――アルシーヴと証人』,月曜社,256+5p]에 관해서는, 새롭게 출판사를 설립한 코바야시 히로시(小林浩) 씨와 칸바야시 유타카(神林豊) 씨 등 두 명의 젊은 편집자의 열의에 이끌려 번역을 맡게 되었습니다만(히로이시 마사카즈廣石正和 씨와 공역으로 月曜社에서 2001년에 간행),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우슈비츠"가 문제로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문제는, 당시의 제게는, "역시의 헤테롤로지"로 향한 길을 어떻게 열 것인가라는 것과 관련이 있고, 어떻게 보면 문제 중의 문제였죠. 

타자키 : 그렇군요. 확실히 아우슈비츠라고 말할 때, 생정치라는 것으로부터의 접근법에 한정해 보더라도, 아감벤은 푸코가 수용소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죠. 푸코가 <성의 역사> 등에서 생정치에 관해 얘기할 때, 그 흐름 속에서, 특히 20세기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수용소의 경험을 다뤘어야만 했었는데도,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다룬다는 스탠스/자세/stance가 있죠. 수용소의 경험이라는 것, 이것은 극히 20세기적인 경험이며, 거기에서는 아렌트가 부버=노이만 등과 호응하면서, 20세기를 수용소의 시대로 특징짓고 싶어하는 것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그것을 어떤 문맥에서 파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에무라 : 그래도, 동일한 "아우슈비츠"의 문제라고 해도, 예를 들어 <호모 사케르 :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1995년, 高桑和巳訳, 以文社, 2003년)에는 "근대적인 것의 생정치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수용소"와 같은 규정이 나오고 있는데요,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러한 생정치적인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증언론이라는 측면이었습니다. 이것은 아감벤 속에서는, 동일하게 푸코를 실마리로 삼고 있다고 해도, <앎의 고고학>의 언어론으로부터 나오는 문제였지, <성의 역사>의 생정치적 측면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타자키 : 확실히 하나는 증언론의 문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아감벤의 초기부터의 언어론, 언어철학, 언어와 죽음의 문제, 이름의 문제, 그러한 계보, 아감벤 속에 있는 문제의 연장입니다. <언어와 죽음>은 아감벤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역시 문제가 된 것은 언어와 생(生)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벤야민은 <폭력비판론>에서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도그마의 역사가 해명되어야만 한다고 말했었죠. 예를 들어, 생명이라는 것이 사회를 탈취해간다, 공공영역을 탈취해간다는 것은,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현대사회에 관해 말했던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생명과 언어가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20세기에, 벤야민도 하이데거도 그렇습니다만, 그들의 사고가 언어를 중심으로 하여, 그것 이전의 "생의 철학"이라고 말합니다만, 문화를 단순히 생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듯한 사고와는 선을 그은 다음에, 정말로 생과 언어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려는 문제관심이 1910년대의 말 정도에, 물론,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 또는 "경험의 빈곤"을 배경으로 하여 부상하게 됩니다. 그러한 문제관심은, 벤야민의 순수언어론뿐만 아니라, <폭력비판론>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런데, 언어에 대한 관심이 80년대 이래의 벤야민의 수용 속에서, 이른바 권력이라든가 정치의 문제와 연계되지 않는 듯이 보이면서, 순수한 언어철학이라든가, 또는 어떤 종류의 신비주의적 언어관 -- 언어는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동물들과 공통하고 있는 생명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언어관 -- 이 강조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신비주의, 혹은 더 분명하게 말해서 맑스주의와 신비주의의 양자택일이라는 도식이 벤야민 해석을 이리저리 끌고 돌아다니던 감이 있었던 시기에, 20세기의 정치적 과제와 언어와 삶의 문제권의 접점을 명료하게(clear) 꺼냈던 사람이라는 점이, 아감벤이 주목을 받은, 아니 제가 주목을 했던 큰 이유 또는 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감벤 자신 속에서도 꼭 탁월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이지는 않는 언어와 생을 둘러싼 문제와, 생과 정치를 둘러싼 문제라는 이 두 가지 문제계가, 어쩌면 어떤 방식으로는 그가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서 가장 단적으로 마주쳤던 충돌/crash이었다는 느낌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우에무라 :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타자키 :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아감벤을 읽는 사람들은 오늘날, 우에무라 씨도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만,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한편으로는 푸코 쪽에서의 접근으로, 생정치의 확장이라는 방향으로 읽어가는 사람과, 다른 한편으로는 데리다와 같은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우에무라 씨도 말씀하신 아우슈비츠와 표상의 한계의 문제, 쇼아를 둘러싼 아우슈비츠와 표상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이라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쇼아>가 일본에서 상연되었을 때에도, 푸코의 생정치나 권력론을 연구해 오던 사람들과, 쇼아를 둘러싼 표상의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을 말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논의의 수준에서는 썩 잘 결합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고 느꼈습니다. 그것이, 아감벤의 출현에 의해 결합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에무라 : 확실히, 저도,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는 증언론에 대한 관심 때문에 파고들었으면서도, 그것이 푸코적인 "생정치"의 문제권과 분리하기 힘들 정도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이처럼 아감벤에게는 두 가지 문제권이 교차된 형태로 파악되고 있는 것이 지닌 의미에 관해서, 그렇게 생각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권과 생정치
우에무라 : 다만, "생정치"의 문제가 정면에서 주제적으로 논해지고 있는 것은, <호모 사케르>라고 선전된 정치철학에 관한 3부작인데요, 그 제1부 <호모 사케르>에서이기는 합니다만, 거기에서는 부제도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이라고 하듯이, 푸코가 말한 "생정치"의 문제는 특히 칼 슈미트의 주권론과의 관련에서 문제로 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정치신학>(1923년)에서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자를 일컫는다"와 같이 정의한 다음에, 그 주권자에 의해 결정된 "예외상태"에 관해 날카로운 고찰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슈미트의 주권론 = "예외상태"론과 푸코의 "생정치"론 사이에는 밀접하게 서로 관련된 것이 있다고 아감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푸코 자신은 "생정치"를 근대에 특유한 새로운 정치의 형태라고 보는 것과 더불어, 이 새로운 정치의 존재방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권의 정의라든가 국가의 이론 등과 같은 법제도적인 모델에 기초한 전통적 접근법으로는 잘 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타자키 씨도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미 이것만으로도, 아감벤은 "생정치"의 푸코적 원의에서 대폭 수정을 가하고, 그 적용범위를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타자키 : 그렇죠. 그것도 과거(고대 로마)와 현재(강제수용소)의 양방향으로, 거의 무리하게 확장하고자 하고 있죠.

우에무라 : 게다가, 그것만이 아닙니다.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전개하고 있는 주권론 = "예외상태"론과, 그 직전에 발표된 벤야민의 <폭력비판론>(1920~21년) 사이에는 서로 호응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슈미트가 묘사하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의 존재방식과, 벤야민이 묘사하는 "법제정적/법정립적 폭력" -- 특히 그 원형의 형태인 "신화적 폭력" -- 의 "벌거벗은 생"(das bloße Leben)에 대한 처리방식 사이에서 인정되는 상동성입니다. 아감벤은 바로 이 사실에 착목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법제도적인 모델과 생정치적인 모델 사이에는, 어쩌면 정치적 권력이라는 것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세계에 등장했던 바로 그 초기부터 감추어진 교차점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증으로서, 로마의 고대법에 등장하는 "호모 사케르(성스러운 인간)"라는 존재를 끌어냅니다. 이 사람[호모 사케르]은, 세속의 법질서의 바깥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법률상의 살인죄를 묻지 않고 살해할 수 있으며, 게다가 바로 성스러운 존재로서 그 자체가 원래 신과 동류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의례상의 수순을 밟아 신에게 희생으로서 바칠 수도 없다고 간주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감벤은 이리하여 어쩌면 일체의 법적 보호의 바깥으로 쫓겨나 "벌거벗은 생"을 완전히 드러내 보인 호모 사케르가 당시의 법적-정치적 공동체와의 사이에서 맺게 된 관계 속에서, 푸코가 말한 "생정치"의 원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동시에, 거기에는,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분석하고 있는 주권의 존재방식 사이에 위상학적인/topological 상동관계가 보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런 식으로 보면 [아감벤의] 확대 해석도 괜찮죠.

타자키 : 말씀하신대로입니다. 푸코는 <성의 역사> 제1권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럽의 정치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바뀌지 않았고, 생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민중의 생은 권력으로부터 방기되어 있었던 거죠. 푸코의 관심은, 민중의 생이 어떻게 정치에 포섭되어 가는가, 예를 들어 "인구=주민"이라는 개념의 형성이 그런데요,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만, 아감벤은 생과 정치의 관계 없음 그 자체를, 정치에 의한 생의 일종의 사전의 추방 또는 유기/내던져짐으로서, 정치공간의 내부로 #몰려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적 권력은 최초부터 생정치였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죠.
이 아감벤에 의한 "생정치"의 확대 해석의 타당성에 관해서, 우에무라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에무라 : 푸코를 전문적으로 공부해온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대담하다고나 할까, 무모한 해석으로 비치겠죠. 너무 사정(事程)이 확대되었고, "생정치"라는 것을푸코가 말했을 때 생각을 품었던 고유한 근대비판적 동기가 상실되어 버릴 위험이 있지 않는가라고 걱정하는 움직임도 있죠.

타자키 : 푸코에게 생정치나 그 전의 규율권력/훈육권력이란 주권권력이 없어지고 왕이 없어졌기 때문에 나오게 되었다는 아야기인데요, 슈미트 유형의 주권권력의 이야기가 되면, 추방된 누군가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죠. 즉, 양자의 논의 사이에는 단절이 있다. 그런데 푸코의 논의와 슈미트의 주권권력 논의가 아감벤을 읽으면 왠지 연결되어 버린다. 그렇게 연결해도 좋은가 어떤가. 연결하여 해석하는 쪽이 생산적인가, 아니면 역시 푸코처럼 분리하여 사고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또한, 벤야민이 예외상태 -- <역사철학 테제>의 경우에는 "비상시(非常時)"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됩니다만 -- 를 "바로크론"[<독일 비애극의 기원>]에서의 주권자의 문제로부터, <역사철학테제>에서의 피억압자의 문제로까지 끌고간, 그러한 궤적도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죠.

<문턱>으로부터의 사고
우에무라 :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예외"에 관한 아감벤의 해석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외"(exceptio)라는 것은 ex(바깥에, 바깥으로)와 captio(←capio)[취하다, 포착하다]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두 개는 "바깥으로 꺼내다, 배제하다"의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에 아감벤은 "바깥에 있고 (바깥으로부터) 포착하다"라는 의미를 덧붙입니다. 그리고 "바깥으로 배제하면서, 그 바깥으로 배제한 것을 자신의 안으로 포착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해서 보여줍니다만, 이 해석은 자의적 해석으로서 약간의 무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다만, 이 "예외"에 관한 아감벤의 해석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이것을 슈미트의 주권론과의 관련 속에서 놓고 본 경우에는, 슈미트가 말했던 것이라고 추측되는 주권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구조가 선명하게 부상하게 된다는 면이 확실히 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죠. 훌륭하다고 할 수 있어요.

타자키 : 그렇군요. 예를 들어 예외상태라는 것, 이것은 법치상태의 내부에 있는가 외부에 있는가라고 말하면, 이것은 내부이면서도 외부, 외부이면서도 내부라고 하는 어떤 쪽도 아닌 상태라는 거죠. 통상의 단순한 형태로 생각한다면, 법이 있거나 없다는 둘이 있고, 법이 없다면 있는 쪽이 좋기 때문에 법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됩니다.
그 때문에 이제, 미국의 부시 정권이 이라크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가 있고, 민주주가 없는 나라에는 민주주의를, 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법을 만들고자 하는 것을 주창하는 것입니다만, 그러한 것 자체가 관타나모 기지이거나, 아브그레이브 수용소와 같은, 법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내 버리는 것이죠. 또는 법의 외부라면 미국은 방치해 둘 것인데도 방치해 두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이 행사하는 권력의 내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법이 미치지 않는, 관타나모 기지와 같은 불가사의한 공간을 만들어내어 버립니다. 그러한 실제의 우리들의 경험이 있다.
또는 아우슈비츠도 종래와 같은 의미에서의 법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다. 실정법이어도 관습법이어도 좋지만,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여 내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은가의 판단을 쉽게 하는 규칙의 체계라는 것이 없다. 친위대원이 자의적으로 규칙을 매일 바꾸어간다. 그렇지만 그것은 완전한 아나키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으며, 역시 어떤 종류의 규칙이 있다. 이렇게 단순히 지금까지와 같은 형태로 규칙이 있는가 없는가, 법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사실은 20세기라는 시대를 특징지으며, 그것은 1990년대 이래,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이래 끔찍하게 되어 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벤야민이 제1차 세계대전을 눈앞에 두고 <폭력비판론>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직면했던것이라고 생각하며, 나치스 독일과 소련의 강제수용소라는 것을 앞에 두고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경험이라는 것을 규정하는 듯한 법이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둘 중 어떤 것이라고 정해져 버림으로써, 실제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권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될 때, 그 상황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라는 것이, 아감벤이 열심히 연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개념적으로는 그러한 상황을 깊이 있고 탁월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네그리가 구성적 권력이라고 말하고, 법제정권력[제헌적 권력]의 패러독스라는, 그 자체는 슈미트나 아감벤 등에서는 예외상태의 순간으로 말해지는 동일한 패러독스입니다만, 그것이 네그리=하트의 경우 등, 대개 구성하는 것과 구성되는 것의 변증법이 되고 있고,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에 나오는 실천적 타성태의 논의와 같은 수준에서 처리되어 버립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태의 복잡함, 번거로움이라는 것을, 네그리=하트처럼, 구성하는 는동성과 구성되는 수동성을 #기라성처럼 나누어 논의를 수립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탁월하게 파악되지 않죠.
능동도 수동도 아닌 어떤 위상, 아감벤은 일관되게 그러한 것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에 대해서도 권력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만, 더 이상 그것이 제게는 현대라는 것을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조금은 추상적인 것을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에무라 : 확실히 아감벤에게는 능동도 수동도 아닌 어떤 위상에 대한 주목이 일관되게 보이죠. 이 아감벤의 사고의 스탠스/입장을 가리켜, 우리는 "<문턱>으로부터의 사고"라고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아감벤의 사고에 관해서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빌려와 사용하는 "잠세력"(potenza/잠재력, 역량)과 "현세태"(atto/현실태)와의 이항관계적인 것의 파악방식이 자주 특징으로 거론됩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아감벤의 사고의 특징을 하나 더 말하자면, 그것은 오히려 "<문턱>으로부터의 사고"처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가, 우리들의 관점입니다. 조에와 비오스, 오이코스와 폴리스, 외부와 내부, 또는 생과 사,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 이러한 고대 그리스 이래의 유럽에서의 사상의 전통을 형성했던 대립하는 두 항이 서로 관통하는, 벤야민이 말한 "정지의 변증법"을 구성하며, 서로의 구별이 불분명하게 되는 문턱. 그러한 불분명화의 문턱이야말로 문제의 집약점이라고 아감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거기에서 정립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사고를 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감벤은 "잠세력"의 사상가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우선 바로 "문턱"의 사상가이죠. 그가 벤야민에게 무엇보다 친분을 맺었다는 것[은], 벤야민도 또한 "문턱"의 사상가였다는 것과 어쩌면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문턱(soglia)"(="경계선")이라는 말은 <호모 사케르>를 구성하는 세 개의 부 각각의 고찰을 소괄(小括)한 부분의 표제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메시아니즘
타자키 : 아감벤은 "문턱"의 사상가라는 지적은 그대로, 확실히 놓쳐서는 안 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늘 "사이"를 문제로 삼는다.
이것은 그의 시간론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노시스주의[그노시즘]에 관해서 그가 말하는 것에서 재미 있는 것은, 그노시스주의의 시간이라는 것이 점선이다, 파선(破線)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화학이라든가 인류학 등에서 나오는 시간의 개념이라는 것은, 아주 길게 그어진 직선이거나, 어느 한쪽에 끝이 있는 선분이거나, 양 끝이 끊어져 있는 선이거나, 원이거나 -- 특히 어디부터 어디까지는 연속하여 선이 길게 그어져 있고, 그것이 끝에서만 끝어져 있거나 끊어져 있지 않다는 이미지입니다만, 아감벤은 페쉐(ピュエシェ)를 인용하면서 그노시스주의에 있어서의 시간은 점선이라고 평가한다. 늘 무엇인가가 연속하여 있고, 한쪽으로 커미트/committ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끝이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바울로의 시간"에도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끝이 서로 ***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싶다는 것이 아감벤의 일관된 관심으로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에무라 : 그렇죠. "문턱" 또는 "사이"의 문제는, 바울로를 따라서 말하자면 바로 메시아 도래의 때(時)인 "지금의 때(時)(ho nyn kairos)의 문제로서 있는 것입니다만,그의 바울로의 시간론을 테마로 한 <남은 시간>(=上村 忠夫 訳, 『残りの時――パウロ講義』, 岩波書店,296+12p, 2005년)[김승훈 옮김, <남겨진 시간>, 인간사랑]에는, 확실히 <고린토인에게 보내는 편지> 10장 11절을 "시간의 종말이 서로 마주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라는 식으로 읽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시간의 종말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로"라거나 "세상의 종말에 도달해 버리고 있는 이러한 우리들에게로" 등으로 번역되는 대목으로, 아감벤의 해석은 극히 독특합니다. 이 대목의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종말"에 해당하는 명사가 중성 복수형이 되어 있습니다만, 번역서에 해설로 수록한 저와의 대담 <아감벤의 때(時)>에서 신약학자인 오오누키 타카시(大貫隆) 씨도 지적해 주셨듯이, 고대 그리스어 및 신약의 그리스어에서는, 중성명사의 복수형에 한정이 있고, 집합적 단순로서 다루어지는 규칙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통설은 바울로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古い) 세계 시간뿐이라고 받아들여지고,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의 종말" 또는 "세계의 종말"이 지금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잇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감벤은 복수형을 문자 그대로 복수로 해석하여, 과거의(古い) 세계 시간의 종말과 새로운 메시아적 시간의 발단 -- 이것도 아감벤에 따르면 "종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 즉 두 개의 근본적으로 상이한 시간의 '끄트머리'(단, 端)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 마주침의 "사이"에 자신들은 서 있다. 이것이 바울로가 말하고자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우누키 씨에 따르면, 뜻풀이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오누키 씨도 인정하듯이, 바울로의 시간론, 특히 그의 "지금의 때"라는 개념의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자키 : 이것은,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서 나오는 이미지이기도 하며, 여기에서부터 <폭력비판론>에서도 나오는 수수께끼 같은 "신적 폭력"이죠. "신화적 폭력"이라는 것은 법제정적 폭력 및 경찰권력의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샘솟습니다. 그런데 "신적 폭력"이라는 것은, 모두 말만 반복하고, 그것 이상은 거의 말할 수 없습니다. 신화적 폭력이 아니다는 것 이상의 말은 모두 할 수 없는 셈이죠.
그 신적 폭력이라는 것을, 그저 단순히 말만 하는 것 또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역사적으로 경험 속에서 생각한다, 그를 위한 실마리를 아감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데리다 본인은 별도로 하더라도, 탈구축이라는 것을 말한 경우에, 신적 폭력은 현전의 최고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신적 폭력은 나올 수 없다, 같은 곳에서, 신적 폭력은 포지티브하게 말해질 수 없는 것을 포지티브하게 해석하여, 신화적 폭력의 탈구축이라는 곳에 머무른다는 몸짓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하여, 데리다도 종말론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만, 그래도 아감벤은 우에무라 씨가 <남은 것>의 해설이나 오오누키 씨와의 대담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신학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메시아나 종말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데리다는 종말론은,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문장의 표면적 의미에서는 상당한 유보를 여느 때처럼 덧붙입니다. 이렇게 하면, 무방비로 보일 정도로 아감벤은 종말론적 몸짓을 현대사상 속에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아감벤의 매력일 수도 있으며, 또는 그것이 싫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싫은 것이죠. 아감벤의 종말론에 관해서는 어떤가요? 어떤 문맥인가, 또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우에무라 : 종말론이라기보다는 메시아니즘입니다. 아감벤은 메시아적 시간과, 고대 유대교의 묵시록에 고지되어 있는 종말론적 시간을 준별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한 아감벤의 메시아니즘에 관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제 자신의 판단은 우선은 유보라는 것으로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어떻게 아감벤이 이렇게까지 메시아니즘에 구애되었는가? 그 이유라고 하여, 동기에 관해서, 정직하게 말해서, 제 자신이 지금 하나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벤야민의 메시아니즘에 관해 아감벤이 <남은 시간>에서 제출하고 있는 해석에 관해서는, 아주 납득이 가는 것이 있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타자키 : 즉 벤야민 해석으로서 타당하다는 것이군요.

우에무라 :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 씨는<벤야민 '역사철학테제' 정독>(이와나미 서점, 2000년)[『ベンヤミン「歴史哲学テーゼ」精読』(岩波書店)]에서, 벤야민이 고대 유대교의 메시아니즘을 확실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벤야민의 '메시아'는 역사적 시간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인식의 기능으로 변환된 것이며, 그것을 종교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은 없다고까지 말했습니다만, 과연 그런 것일까요? 이렇게 벤야민을 할 수 있는 한 비신학화함으로써 받아들이려고 하는 수용방식에는 전부터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남은 시간>은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역사철학테제>) 속에서 우리들이 알아들었던 고대 유대교의 메시아니즘의 메아리라는 것이, 사실은 바울로의 "지금의 시간"에서 직접 유래하는 것이라는 것을, 루터에 의한 독일어 번역본 성서와의 대조 등을 통해서, 문헌학적으로 분명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감벤 자신도 빚을 지고 있듯이, 확실히 사상사 상에서의 괜찮은 "발견"이라고 해도 좋은 공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타자키 : 메시아론을, 내실이 신학인가 여부는 별개로 하고, 이런 문맥에 열려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감벤 자신은 벤야민에 대해서, 사회민주주의는 가망이 없다/안 된다고 벤야민이 말했고, 따라서 종말은 온다. 역시 메시아가 온다, 종말이 온다는 것과, 끊임없이 사회민주주의적인 개량주의가 아니라 혁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쪽에 비중이 있는가는 해석입니다만, 또한 그것은 이탈리아의 문맥에서 말하면, 예를 들어 "약한 사고"와 같은 가다머, 로티 등을 치켜세우고, 해석학을 표방하여, 이탈리아의 포스트모던 사상은 왜 해석학인가가, 리오타르 식의 작은 이야기라는 것이 전체를 단숨에 해석할 수 있게 되고,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문제를 포스트모던의 논의 속에서 독파하여, 완전한 의미의 군림은 없으며, 늘 국소적으로, 즉 항상 전체가 액추얼하게/현실적으로 현전하는 것으로서 주어지지는 않으며, 국소적으로 해석을 겹치게 되고, 그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개량이라고 할까 사물을 변화시키게 되는, 그것밖에는 없다고 하는 것에 반대하여, 명백히 그러한 개량주의적인, 국소적으로 해석하여 변해가는, 개량해 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풍스런 말솜씨로 말하자면 전체성 같은 것이 현전하는 계기를 어딘가에서 긍정하는, 평가하고 있는 곳이, 아감벤의 벤야민 이해에는 있는 것이죠.
그러한 문제도 있으며, 아우슈비츠의 표상불가능성이라는 것을 생각한 경우에도, 물론 말로는 표상은 완전히 가능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예를 들어 어떤 것이 완전히 도래하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할 때에, 클로드 란즈만 등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감벤은어떤 종류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네거시오니스트[부정적 시오니스트]로 되어버립니다. 즉 아우슈비츠의 절대성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우슈비츠의 절대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완전히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게다가 그것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것만 결정적으로 일어났다고 하는 사고에 반대하여, 어쩌면 다른 선을 아감벤의 사상이라는 것은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우에무라 : 카키모토 아키히토(柿本昭人) 씨가 <아우슈비츠의 '회교도' -- 현대사회와 나치즘의 반복>[アウシュヴィッツの〈回教徒〉 ― 現代社会とナチズムの反復, 春秋社, 2005년]에서 제출하고 있는, 아감벤과, 그의 사상을 일본에 소개하는데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간주된 우리들에 대한 비판도, 이것들과 관련되어 있죠. 우리들이라면, 표적을 잘못 보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비판입니다만...

타자키 : 그러한 여러 가지 보조선을 그어 보았을 때, 바로 그러한 벤야민의 이해에, 신학과 역사적 유물론을 분리할 수 없다, 즉 그것은 분리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하나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즉 신학만으로도 절대로 안 되며, 역사적 유물론만으로도 인형은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이 일체화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 하나가 본질이고 다른 하나가 표현이라는 것도 아니다, 상자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난장이와 인형과 기계라는 이미지로 말하는 셈입니다. 어쩌면 그의 신학적인 것과, 세속적인 혹은 맑스주의적인 것을 한번에 파악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 <역사철학테제>가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을 가까스로 해 나가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감벤의 메시아주의 이해라는 것도, 신학적인 뚯풀이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인형 체스를 지도한다는 영역에 접속시켜 가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무엇인가 있습니까?

우에무라 : 거듭 말합니다만, 아감벤이 여태까지 메시아니즘에 구애된 이유라고 할까, 동기 자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정직하게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떄문에 아감벤의 메시아니즘 이해에 관해, 그것은 신학적인 뜻풀이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인형 체스를 지도한다는 영역으로까지 접속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되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셨어도, 대답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이탈리아에서 1980년대에 들어 해석학자 쟌니 바티모에 의해 제충된 "약한 사유"(pensiero debole)라는 것이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개량주의로 된다는 것은 어떤가요? 또한 그의 "약한 사유"의 조류에 아감벤이 "전체성의 사유"를 대치하고자 하는 것, 과연 그대로인가, 의문이 듭니다. "전체성의 사유"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한다면, 알겠습니다만.... 네그리 등도 "전체성의 사유"가 되지 않습니까?

타자키 : 아감벤은 물론 전체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포스트모던의 작은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고 그것이 어딘지 모르게 평화공존한다면 좋지 않은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른 한편, 네그리에 관해 말하면, 네그리는 훨씬 단적으로 유적 존재라는 형태로 전체성을 전제하고 있죠.

우에무라 :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들은 오히려 네그리 쪽에 비판적이겠군요. 네그리는 1998년에 편집된 그의 스피노자 논집 -- 여기에는 <야생의 별종>(1981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에 붙인 후기에서, 바티모와 피에르 알도 로밧티의 공동편집에 의한 <약한 사유>(1983년)에 결집된 논자들의 사고경향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여러 가지 새로운 약한 현상학적 고찰"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에 "하나의 긍정적인 (경험과 존재의) 존재론, 하나의 긍정의 철학"을 대치하며, 스피노자의 별종에 관한 그의 철학사적 고찰의 의의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라고 할까, 함정은 오히려, '약한 사유'보다는, 네그리 쪽의 "약함", 또는 철저하게 긍정적이고자 하는 자세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됩니다. "약한 사유" = 포스트모던파의 "냉소주의/cynicism"를 비판하는 것은 좋죠. 경험과 존재의 무한정한 다수성으로부터의 새로운 민주주의/democracy의 구축을 기획하는 것도 좋죠. 그러나 네그리 등이 현존의 법치형식을 취한 국가에 대치하고자 하는 "전복의 정치"가, 내부에 아이러니컬한 자기파괴의 계기를 결여한 채, 물질적 집합 이성 또는 "다중/멀티튜드/multitude"(다슈자=군집)의 직접 무매개적인 끊임없는 자기 구성의 작업으로서이해될 때, 이로부터 출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적인 공화국이 그 자체 하나의 자기 억압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감벤은 네그리 류의 "구성하는 권력"론과는 한 선을 긋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만, 1996년에 미국의 독자를 위해 편집된 파올로 비르노와 마이클 하트의 공동 편집에 의한 <이탈리아에서의 급진적 사상>에는 그 3부 "포텐셜 폴리틱/잠재적 정치/Potential Politics를 위한 개념들"에, <목적 없는 수단>(1996년 : 高桑和巳訳, 『人権の彼方に――政治哲学ノート』, 以文社)에도 수록되어 있는 <삶의 형식>과 <인권을 넘어>라는 두 논문이, 네그리의 논고 "구성하는 공화국"과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잠세력"으로부터의 정치의 창출이라는 아이디어에 있어서는,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아감벤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감벤의 메시아니즘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 우리가 비판을 유보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것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타자키 : 나중에, 아감벤은 푸코, 들뢰즈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언급이 많습니다만, 데리다에 관해서는 가혹합니다. 언급해도 비판적인 경우가 꽤 있습니다. 현대사상 속의 위치잡기라는 것을 생각했을 경우, 데리다의 스탠스/stance와 아감벤의 스탠스는 어떻게 다른가, 아감벤은 데리다의 작업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가.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만.

우에무라 : 제가 아는 한, 데리다에 관해서는, 우선 <남은 시간>에서 <목소리와 현상>(1967년)과 <철학의 여백>(1972년)에서부터 "원흔적" 및 "근원적 대리-보충"과 관련된 대목을 직접 인용하는 꽤 말하는 언급이 보입니다만, 거기에서는, 언급은, "탈구축이란 저지된 메시아니즘이며, 메시아적 테마의 정지에 다름 아니다"라고 하며, 비판적인 어조로 끝맺고 있습니다.
나아가 <목소리와 현상>에 대한 언급은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서도 나오고 있는데요, 거기에서는 생물학적 생을 살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과말을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사이에는, 이러한 본성으로 인해, 쌍방이 결합되게 되는 장소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이 결합의 비-장소에 에크리튀르의 운동을 새겨넣은 '탈구축'의 시도를 나름대로 평가하면서도, 아감벤 자신은 그와 동일한 결합의 비-장소에, 에크리튀르가 아니라 오히려 '증언'의 생기(生起)를 보고자 합니다.
다른 한편, <호모 사케르>에서는, 그 1부 "주권의 이론"에서 카프카의 우화 <법 앞에서>를 둘러싼 데리다의 독해의 시도 <판단[판결] 이전>(1983년)이 다루어집니다만, 거기에서도 그 우화를 "도래하지 않는 것으로 도래하는 사건"의 이야기로 읽고자 한 데리다의 독해방식이 비판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말씀하셨듯이, 데리다에 대해서는 아감벤의 평가는, 총괄하면, 상당히 엄격한 것 같아요.

타자키 : 그렇죠. 그 엄격함은 어디에서 온다고 우에무라 씨는 생각하십니까?

우에무라 : 직접적인 대답이 될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카프카의 우화 <법 앞에서>를 둘러싸고는, 우리도 어떤 장소에서 독해 같은 것을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법의 "열린 문" 앞에서>, <<대항해>> 제50호, 2004년 4월) 그 때에도 소개되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감벤은 카프카의 우화가 법의 열린 문을 앞에 두고,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길 바라는 시골에서 온 남자에게, "아직은 안 돼"라며 몇 년이나 입장을거부하는 문지기의,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에 둔 남자에게 큰 소리로 이렇게 이르는, "자, 이제 나는 가려고 해. 문을 닫겠어"라는 말로 이미 매듭짓고 있는 것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온 남자에게 "앞길을 방해받은 기독교적 메시아"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크루트 바인베르크의 연구 <카프카의 꾸며낸 이야기>(1963년)에서 시사를 얻어, "도래하는 자"에 관한 몇 가지 하다가를 포함하는 15세기의 어떤 히브리어 사본에 투입된 한 장의 세밀화에 생각이 미칩니다. 그 세밀화에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아닌가라고 추측되는 젊은이가,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향해 활짝 열려진 문 앞에서 정지한 말 위의 메시아와 문 사이에 서서 문쪽을 가리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기에는, 아무래도 젊은이의 임무는 메시아가 들어오는 것을 준비하고 쉽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설적인 임무가 아닐까요? 말하자면, 문은 활짝 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 사실은 메시아의 입장을 방지하고 있는 셈이며, 따라서 젊은이의 임무는 문지기에 대해서 문을 닫으라고 강제하는 것에 있게 됩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카프카의 우화 속의 시골에서 온 남자가 놓여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남자가 마지막으로 문지기에게 "문을 닫을 거야"라고 말했던 것은, 남자에게 맡겨진 "메시아적 임무"의 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아감벤은 우화 <법 앞에서>에서 카프카가 의도했던 바를 독해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에서는 데리다의 "탈구축"은 "저지된 메시아니즘"이라고 정리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데리다에게 있어서는 저지된채로 머물고 있다고 판정된 메시아니즘을 실현을 향해 타개하고자 한 길은 없는 것인가 아닌가, 그것을 아감벤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로부터 엿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아감벤의 메시아니즘 지향에 대해서는, 제 자신은 자주 경계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타자키 : 확실히, 카프카의 <법=정(掟)의 앞>이라는 우화의 해석은, 카차리도 갖고있으며, 현대사상의 하나의 초점을 이루고 있죠. 데리다도 아감벤도 발화행위론에서 말하는 바의 수행적 발화의 존재를 극히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데리다였다면, "수행적 발화"는 늘 "사실확인적 발화"와의 결정불가능성 속에 놓여 있습니다. 문은 열려져 있는데도, 들어가려고 생각하면 들어가고, 또는 그럴 것 같은데도, 들어가지 않았다. 거기에 역점이 있죠. 그렇지만 카차리는, 이미 문이,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는 쪽에 주목을 하며, 아감벤도, 오히려, "들어가지 않았다"가 실현하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잠재력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판스/유아기/Infancy
우에무라 : 그런데 타자키 씨, 저는 지금 <유아기와 역사>(Infancy and History)와 씨름하고 있는데요.

타자키 : <유아기와 역사> 말입니까?

우에무라 : 네 그렇습니다. 초판은 1977년에 간행되었습니다만, 그후 2001년에 증보신판이 나왔습니다. 부제는 <경험의 파괴와 역사의 기원>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부제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제가<역사적 이성의 비판을 위하여>(이와나미서점, 2002년)에서 정리한 <역사의 헤테롤로지>를 향한 일련의 논고 속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것과 동일한 성질의 문제를 제시한 것은 것은 아닌가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저의 <역사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는 이치무라 히로마사(市村弘正) 씨의 <패배의 20세기>[敗北の二十世紀 (世織書房, 1998년; 현재에는 ちくま学芸文庫, 2007)]를 비평한 <경험의 패배>라는 문장을 서장에 배치하면서 논의를 전개했습니다만, 거기에서 다루었던 <경험의 빈곤>이라는 벤야민의 1933년의 에세이는 아감벤의 책에서도, 그 제1논고인 <유아기와 역사 -- 경험의 파괴에 관한 논고>의 첫머리 부분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것과는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의 증언론과의 연결입니다. 언어학자 에밀 방브니스트는 1969년, 길거리에서 급병으로 쓰러져 완전한 실어증에 빠졌고, 이후 76년에 타계할 때까지 전혀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브니스트가 불치의 병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발표한 <언어의 기호학>(1969년)에서 묘사하고 있는 "언어의 의미론 속에서 구축된 메타 의미론의 완성을 통한, 텍스트 및 작품에 관한 초언어학적 분석"이라는 플랜을,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1969년)에서 "언표된 것"의 이론을 창설함으로써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의 가능성을 구축하는 시스템으로서의 랑그와, 실제로 말해지고 쓰여진 파롤의 총체를 모은 코르퓌스 사이에, 담론상 가능한 바를 정의하는 제반 규칙의 총체로서의 '아카이브'라는 것을 규정/설정/정립함으로써, 그 플랜의 구체화를 시도해고자 했습니다만, 여기에서 중점을 랑그로 옮기고, 랑그 자체의 내부에 있어서 내부와 외부라는 것을 생각해 본 경우에는 어떠한가. 바꿔 말하면, "말하는 것의 잠재력" 그 자체를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으로 분절해 보면 어떠한가. 그렇게 하면, 다름 아니라 "증언"이 차지하는 독자적인 위치가 부각되지 않을까가. 그런 취지를 아감벤은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서 서술합니다만, 이 술어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파헤쳐 고찰해 보고 싶었던 거죠.

타자키 : 인판스는, 20세기의 사상에 있어서도 아주 큰 문제이죠. 저는 인판스를 '유년기'라고 번역합니다만, 그것은 벤야민의 <베를린의 유년시대> 또는 프로이트와의 연계를 명시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인판스라는 것은 "말을 지껄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서의 "문턱"에 관한 얘기도 그렇습니다만, 예를 들어 대략적으로 파악해 보면, 한쪽에는 말이나 명제가 있고, 다른 쪽에는사물이 있어서, 말과 사물의 대응관계에서 참이나 거짓, 아니면 의미작용이나 지시 혹은 언급이 시작된다고 간주된다. 사물이라는 것은 말의 외부에 있다. 그렇다면 사물을 어떻게 말은 지시하게 되는가라는 물음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게 됩니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말이 왜 의미를 갖는가, 말이 왜 말이 아닌 사물을 지시할 수 있는가라고 할 때에는, 말의 한 가운데에 어떤 말해지지 않는 사물, 언어의 외부가 아니라 말의 한 가운데에서 말해지지 않는 사물이 있다는 것을 아감벤은 강조하고 싶은 것이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언어가 있다라는 것, 언어의 존재(il y a)입니다.
언어가 있다는 경험은, 비트겐슈타인이 "세계가 있다는 것은 신비다"라고 말했던 것과 동일하게, 세계의 경계선을 우리는 경험할 수 없는데도 "세계가 있다"는 것은 왜인가라는 것과 동일하게, 언어의 경계선을 우리는 경험할 수 없는데도 "언어가 있다"라는 것은 왜인가.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편에는 말, 한편에는 사물과, 언어와 사물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것입니다만, 사실 이것은 누구도 경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말을 사용한다. 말이 말해지지 않는 사물을 지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실은 말을 사용한다는 일상적인 것을, 그 자체로 서양의 철학에서 말하면 고래로부터 인간을 쭉 정의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장면을, 사실은 불가사의한 "초월론적 경험"이라는 역설적인paradoxical 표현으로밖에는 파악할 수 없음을 아감벤은 강조하는 셈입니다.
말 속의 말해지지 않는 것, 그것은 사실 철학사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말해져 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Se*라는 재귀동사의 목적어, 즉 <그것 자체>, 하이데거에게서도 헤겔에게서도 selbest, 자기로서 파악된 무엇인가라는 형태를 취하여.
또는,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라면, 그것은 정치적 공동체의 경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소리라면 동물도 갖고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 쓰고 있습니다. 고통이나 쾌감을 표현하는 소리는 어떤 종류의 동물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랑시에르가 <불화>에서도 말했던 것입니다만, 인간은 자신이 겪은 위해를 호소하는 로고스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소리와 로고스의 관계, 또는 인간적 공동체로서의 폴리스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의 구별은 어디에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소리 속에는 문자가 있다는 것입니다만, 소리 속의 문자, 그것을 어떤 의미에서는 외부로부터 동물과 인간이라는 구별을 아프리오리하게 도입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이야기하다는 경험의 한 복판에서부터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판스와 역사> 또는 <언어의 이데아>는 정말 엄청 전율적thrilling이고 재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말을 지닌 동물이다"라고 한다. 본래 "소유하다, 갖고 있다"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 수 없는 사태입니다. 예를 들어 소유를 둘러싼 로마법의 논의도 있으며, 또는 하이데거는 가능성에 관해 그것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를 문제로 삼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죽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동물은 가능성으로서의 죽음을 갖고있지 않다)", "인간은 이야기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만일 생애 내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든가 "동물은 세계를 빈곤하게 갖고 있다"라든가. 즉, 인간은 무엇무엇이 아니라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이 "갖고 있다"라는 것의 불가사의함인 거죠.
아감벤더러 말하라고 하면, 오히려 동물이라는 것은 언어이다고.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고. 이른바 본능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하면, 누구든 배우지 않더라도 동류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나 파충류를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만, 애비는 새끼들을 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알에서 깨어난 후에 처음 동류의 개체와 만나 어엿하게 교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왜 인가라고 말하면, 그것들은 언어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만은 말을 갖지 않고 태어나며, 말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을 배운다는 것의 불가사의함은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이며, 또는 벤야민이 <유년시대>에서 "헌법과 같은" 말에 관해 썼던 것입니다. 또는 들뢰즈에게 있어서도 "배우다"라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아감벤더러 말하라면, 인간만이 말을 지껄이지 못하는 시기, 즉 언어의 외부에 있었던 시기를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물이라는 것은 언어 속에 잠겨 있다. 그런데 인간만은 유년기라는 언어의 외부를 갖고 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논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의식, 즉 말을 지껄이지 못할 때의 기억이라는 것은 언어화하여 타인에게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재현할 수밖에 없다. 즉 이것이 "질병/病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프로이트에게서 인간이 신경증이 없었다면, 즉 전부를 타자에게 말하게 되었다면, 인간의 존재의 핵심은 없어져 버린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감벤에게서도 인간적 경험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하면, 언어의 경험입니다. 즉 언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없으면 허사인 거죠. <언어의 이데아>에서는, 우리는 언어의 바깥에 있어서 보는 것이며, 그것이 언어의 경험이라고 말했던 거죠.

우에무라 : <언어의 이데아>라는 논고는, 원래는, 분명 1948년[1984년이 아닌가 싶다 - 옮긴이]에 <아우트 아우트>(Aut Aut)에 발표된 것이죠. 맑스주의적 현상학자인 엔초 파치가 창간한 잡지입니다. 같은 취지의 것은, 1989년에 <인판스와 역사>의 프랑스어판이 나왔을 때, 그 프랑스어판을 위해 썼던, 바로 <언어의 경험>이라는 제목이 달린 서문이 있습니다만, 그 서문에서도 말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같은 책에서 나타나는 "경험"이라는 것은 도래하는 철학에 관한 벤야민의 프로그램이 시사하는 바를 따라서, "초월론적 경험"이라고 하는, 칸트의 입장에서 보면 어의모순이 아주 격심하다고 할 수밖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에 덧붙여서, 그러한 초월론적 경험의 장소는, 랑그와 파롤의 차이, 또는 오히려 방브니스트가 말한 "기호론적인 것"과 "의미론적인 것"의 차이 위에 있다고 지적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에 유의했던 것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야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의 철학과 과학에남긴 뒤나미스와 에네르게이아와 더불어, 그 함의를 부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집니다. 즉, 언어를 경험한다는 것은, 랑그와 파롤의 차이 속에 인판스(무언)인 채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통해, 원래 말하다라는 능력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경험해 본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타자키 : 방브니스트가 말한 세미오틱semiotics = 기호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하면,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랑그라는 것은 차이의 체계이다", "빨강이라는 것은 파랗지 않다"고 하는, 랑그라는 시스템 속에서 파악된 것입니다. 한편 세만틱semantique = 의미론이라는 것은 발화를 다루며, '나'라든가 '너'라든가 '지금'이라든가 '여기'라든가, 이것은 랑그의 시스템에서는 의미가 정해지지 않는다. 즉, 구조주의적 언어관에서는 언어의시스템 속에서 의미가 결정될 터이지만, 언어의 한 복판에서 언어사용의 요체에 있는 '나'라든가 '너', '지금', '여기'라는 것이, 사실은 언어의 외부에 있다, 랑그의 외부라고 하는 것이 된다. 그러한 '나'라든가 '너'를, 우리들은 언어 속에서 폭로되는 언어의 외부라는 것을, 사실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즉, 언어와 언어가 아닌 것의 경계선을 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보통 생각되듯이, 이것은 사물이다, 이것은 사물의 이름이다라는 형태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말로 여러 가지의 것을 지명할 때,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인판시, "말을 지껄이지 못하는 것"의 문제가, 말한다는 것이 항상 늘 품고 있는 말이 아닌 무엇인가와의 관계의 문제가 사고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감벤의 궁극적 아이디어라는 것은 거기에서 다 나오는 거죠.

우에무라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이 언어의 순수경험의 시도를 통해서, 아감벤은 이로부터 에티카, 이어서 폴리스를 향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열려진, 이후의 서양철학과 과학을 크게 규정해 왔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인간의 음성 속에 있고 그것을 동물의 음성으로부터 로고스로 분절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그것은 문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감벤은, 음성과 로고스의 사이에는 원래 분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에티카 및 폴리스라는, 오로지 인간 존재에만 특유한 공간의 개시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와 같이 상정했습니다. 음성과 언어의 사이에는 칸트가 말한 의미에서의 "공허한 공간"이 뻐끔히 구멍을 뚫고 있으며, 양자 사이에는 상호이행의 가능성은 없다. 이어서, 인간은 음성에 의해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내던져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에토스와 같은 것, 그리고 공동체가 가능하게 된다고 하는 셈인 거죠.

타자키 : 그것이 아우슈비츠의 증언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로부터 여러 가지의 것을 보게 되면, 처음에는 언어철학, 미학으로 간주되는 것이 정치철학에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판스와 역사>라든가 <언어와 죽음>이라든가 <산문의 이념/이데아>라든가, 아감벤은 벤야민이 말한 바의 "에세이스트"라고 생각하며, 뿌리를 내린 곳은 당연히 응축된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부터 뒤따라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그의 언어관을 거치지 않으면, 그의 정치철학이라는 것도 알 수 없다.

우에무라 : 엑추얼리티만을 추구하여 "생정치"를 다루는 것도 훌륭합니다만, 지나치게 그런 것만을 해도 곤란하겠죠. (웃음)

도래하는 공동체
타자키 : 예를 들어 앞에서도 다뤘던 주권권력의 문제 또한 슈미트를 끌어들인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인 문제로서는 언어의 외부와 내부의 문제입니다. 최초에 추방이 있다는 것은 인판스와 동일하며, 논리구조로서는 기본적으로 언제나 동일한 구조가 얼굴을 드러냅니다.
아감벤은 최종적으로는 주권권력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즉 어떻게 하면 주권권력이라는 형태 속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셈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를 들어 벤야민은 말년의 <역사철학 테제>에서 피억압자는 늘 예외상태에 있다고 말하는데요, 슈미트의 주권자의 정의는 예외상태를 정의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벤야민이라면 피억압자가 됩니다. 물론 벤야민이 말한 피억압자가 스스로 예외상태를 정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피억압자가 놓여 있는 예외상태를 정의하는 주권자가 벤야민의 논의의 틀에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벤야민이 직접 슈미트를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크 연극론?>부터인데요, 절대군주가 있고 그 속에서 이른바 운명이 자연사적인 연관으로부터 인간의 힘으로 이행해 간다. 그러한 절단으로서 그리스 비극적인 운명이 애도극적인, 또는 소크라테스적인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다"라는 연관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20세기에서의 피억압자의 상황을 생각할 때에, 어디까지 주권이라는 것을 생각했는가. 또한 예외상태와 주권자와 피억압자의 관련의 배치가 규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에무라 : <호모 사케르>에는 카프카의 우화 <법 앞에서>를 제재로 하여 <주권의 역설>에 관해 고찰한 제1부의 마지막 장에서, "주권의 역설로부터 벗어나, 어떠한 금지령/추방으로부터도 해방된 정치로 향해가기" 위해서는 "유기된 것/내던져진 것을 모든 법 관념의 너머에서 사고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취지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또한 2003년에는 <호모 사케르>의 제1부의 1에 해당하는 <예외상태>라는 책이 간행되었습니다만, 거기에서도 법권리를 생/삶에의 비연관성에 놓고, 또한 생/삶을 법권리로의 비연관성 속에 놓을 수 있게 되어야 비로소, 양자의 사이에서, 일찍이 "정치"의 이름을 요구해 왔던 인간의 활동을 위한 공간을 여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와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정치"에는 겉치레(翳り)가 생겼습니다만, 그것은 정치가 법권리와 혼동되고, 법권리와의 단순한 교섭권력으로 환원되어 버리거나, 기껏해야 구성하는 권력, 즉 법을 정립/제정하는 폭력으로서 자신을 생각해 왔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폭력과 법의 관계를 단절하는 행동이야말로 본래의 의미에서의 "정치"라는 것이 아닌가라는 셈인 것입니다.
이 "정치를 모든 관계의 너머에서 사고한다"는 것이야말로 "도래하는 공동체"를 향한 아감벤의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요점을 이루고 있는 점이 아닌가라고 우리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실험에 관한 한, 아감벤의 시도를 이후에도 전면적으로 응수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경험과 언어의 관계, 또는 "언어의 경험"이라는 것에 관한, 앞에서도 보았던 것에서 괄목해야 할 통찰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것으로부터 나온 실험이었다고 본다면 말입니다.
덧붙여 말한다면, 여기에서의 아감벤은 "잠재력"의 사상가라기보다는 "문턱"의 사상가로서의 아감벤입니다. (대담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마토바 아키히로(的場昭弘)*1)가나가와(神奈川) 대학 교수/ 사회사상
번역: 장화경 성공회대학교 교수/일본학과
진보평론

1. 들어가며

일본에서의 맑스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일본에서의 맑스주의 운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바로 그 점이 일본에서의 맑스주의 연구의 커다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세기 초에 출판된 『공산당선언』의 일본어역은 일본의 맑스주의 운동, 정확히 말하면 아나키즘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가타야마 센(片山潛),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오스기 사카에(大杉榮) 등이 초기 일본의 맑스주의 도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시작된 제3인터내셔널의 영향은 그 당시까지의 맑스주의 운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제3인터내셔널과 일본공산당은 그 영향력을 무산대중뿐 아니라 전위인 지식인들, 구체적으로는 대학인에게 확산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라고 불렸던 시대에 대학이라고 하는 제도 속으로 맑스주의가 침투해 가서 이미 1920년대에 정치나 운동으로부터 분리된 맑스 연구라는 아카데믹한 분야가 만들어졌다. 물론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총력전 상황 속에서 공개적인 맑스주의 연구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학생과 교사에게 미친 영향력은 전후에 개화하게 된다. 전후에 맑스주의 강좌는, 공산주의 탄압(red purge)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져서 대학이라고 하는 공적인 장소에서 맑스 연구는 오랫동안 매우 융성하게 된다.

대학에서의 연구와 맑스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집단 및 학생운동 집단에 의한 연구는 어느 면에서 중첩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분리된 형태로 전개되어 갔다. 전후 맑스주의 연구에서 화제의 중심이었던 맑스의 가치론을 둘러싼 논쟁은 당초에는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이 민주적 사회를 실현시킬 것인가' 라는 폭 넓은 현실 문제에 비추어서 전개되어 널리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나, 많은 맑스 연구는 그러한 문제로부터 동떨어진 『자본론』의 훈고학적 연구였다.

훈고학적 연구는 한편에서 학계에 맑스 연구라는 분야를 만들어 갔다. '『자본론』 성립사' 라는 훈고학적 연구 분야는 맑스의 초기 저작에 관한 문헌적 연구, 나아가서는 맑스에게 영향을 준 헤겔, 헤겔 좌파, 포이에르바흐 등에 관한 연구로 파급되어 갔고, 17세기·18세기의 존 로크, 홉스, 스미스 등과의 연관(context) 분석, 19세기 동시대의 사회주의자 푸르동, 푸리에 등의 연구로 파급되어 갔다.

그러나 사회운동과 분리된 맑스 연구는, 그 연구자들이 의식했든 아니든 관계없이, 맑스주의를 표방하는 소련과 동유럽 여러 나라의 존재에 의해 규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지상의 낙원이라고 생각되었던 대학에서의 맑스주의의 극도로 치밀한 문헌해석학 연구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와 함께 우르르 한꺼번에 소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맑스 연구의 오랜 전통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소멸된 오늘날에도, 사회운동으로서보다는 그 아카데믹한 방법에서 국제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긴 맑스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인도 사회운동과 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맑스 연구는 사회운동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면서도 과거의 아카데믹한 문제를 견지하면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전개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사회운동의 배경에 관해서도 언급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학술적인 맑스 연구에 관하여 다루기로 하겠다.

접어두기..

2. 최근 일본에서의 맑스 연구

1) 1991년까지의 이단파의 맑스 연구
여기에서 '최근'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맑스 연구에 있어서는 자동적으로 소련 붕괴 이후를 의미한다. 그만큼 연구 조건, 연구의 방향이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선, 그 당시까지 세력이 있던 맑스 연구자의 다수가 침묵하거나 다른 분야로 옮겨갔다. 많은 대학의 경제학부에는 맑스 경제학을 가르치는 '경제원론'이란 강좌가 있는데, 그 강사의 다수가 전공을 바꾸거나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그 결과, 당시까지 이단시되어 그늘에 숨어 있던 맑스 연구자가 한꺼번에 양지에 나오게 되었다. 이단이란 일본공산당계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통칭 신좌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1960년 안보투쟁을 앞두고 일본공산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동맹(Bund)을 만들었는데, 1970년 안보투쟁까지의 과정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되어 간다. 맑스 연구자 가운데 당시에 주목을 끈 사람으로는 우노 코조(宇野弘藏), 히라타 키요아키(平田淸明), 히로마츠 와타루(廣松涉), 라치 치카라(良知力) 등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미 사망했지만 1991년 이후 맑스 연구를 이끌어가는 연구자의 다수는 대부분 그들의 제자들이다.

우노 코조는 이미 1950년대부터 우노파라는 독자적인 파벌을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와 경제학부를 중심으로 펼치고 있었다. 『자본론』을 경제원론으로 순화시키고 정책론이나 역사적 단계론을 거기(『자본론』: 역자)에서 삭제하는 우노의 접근방식에 대해 정통파 맑스 경제학자로부터 혹독한 비판이 전개되었다. 우노파는 제자인 후리하타 세츠오(降旗節雄), 야마구치 시게카츠(山口重克), 다쿠미 미츠히코, 이토 마코토(伊藤誠) 등을 중심으로 학파를 형성해 갔다.

히라타 기요아키는 개체적 소유론이라는 독자적 사회주의를 전개하고 시민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접합을 시도하였다. 사적 소유가 아닌 개체적 소유의 부활은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비민주적인 정치를 비판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서구적 전통에서 맑스를 해석하는 방향을 만들어 나갔다. 히라타는 요코하마국립대학, 나고야대학, 교토대학, 가나가와대학을 전전했는데 만년에는 조절이론, 그람시 연구 등을 전개하였고 많은 제자를 키웠다. 특히 우치다 히로시(內田弘), 야마다 토시오(山田銳夫), 야기 키이치로(八木紀一郞) 등이 애제자다.

히로마츠 와타루는 1970년 학생투쟁의 영웅이었다. 히로마츠 와타루는 『독일 이데올로기』의 편집문제를 계기로 『엥겔스론』(1969)을 발표하였다. 1845-6년에 쓰여져서 초고인 채로 방치되었던 『독일 이데올로기』의 편집상의 의문점, 특히 맑스와 엥겔스의 필적을 분석하여 초고가 쓰여진 당시까지는 엥겔스 쪽이 맑스보다 앞서 있었다는 '엥겔스 제1 바이올린설'을 주장하였다. 도쿄대학 교양학부로 옮긴 히로마츠의 주위에는 히로마츠파라고 불리는 그룹이 형성되어, 커다란 맑스 연구집단이 형성된다.

위에서 살펴본 세 사람에 비해 라치 치카라는 두드러진 존재는 아니었다. 그의 연구 스타일이 소박했기 때문이다. 라치 치카라는 호세이대학(法政大學)에서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學)으로 옮긴 다음에도 초기 맑스의 치밀한 문헌 연구를 계속했다. 동독에 유학했던 라치 치카라는 할레(Halle) 부근에 있는 메르제브르크(Merseburg)의 경찰 자료를 세밀하게 조사하여 맑스와 당시의 노동자 운동의 관계를 극명하게 분석하였다. 라치 치카라계(系)인 오츠카 긴노스케(大塚金之介)의 학문 스타일은 서구 연구는 서구의 세밀한 문헌자료를 사용하여 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라치 치카라뿐 아니라 『엘레노아 맑스』를 영국에서 출판한 츠즈키 츄시치(都筑忠七)를 포함한 히토츠바시학파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에 일어난 맑스붐을 유지시켰던 것은 정통파 사람들이 아니라 우노, 히로마츠, 히라타, 라치 등 이단파였던 것이 1991년 소련 붕괴 후 이단파의 약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거론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사망했다. 1898년생인 우노는 물론이거니와 라치 치카라는 1985년 55세에 암으로 쓰러졌고, 히로마츠 와타루와 히라타 기요아키는 1991년의 소련 붕괴를 직접 보긴 했지만, 히라타는 1995년에 73세로, 히로마츠는 1994년에 61세로 타계했다. 흔히 일본에는 초기 맑스 연구자는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다. 정통파의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대결했던 사람들은 확실히 젊어서 세상을 떠났다. 정통파가 힘을 잃은 가운데 그들이 차례로 죽어간 것은 얄궂은 일이라고 해도 좋을 지 모르겠다.

2) 소련 붕괴 후의 맑스 연구
이렇게 해서 '최근'의 연구는 어떻든 크게 바뀌었다. 4월에 간행된 책으로 내가 편집책임을 맡고 있는 『아소시에』(アソシエ)6호는 "21세기 맑스로부터 무엇을 볼 수 있는가"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이 표제는 역설적이지만 또한 "21세기 맑스로부터 무엇을 볼 수 없는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소시에』는 '아소시에' 그룹의 기관지이기도 하다. 회원수가 650명이고 매년 4회 잡지를 간행하고 있다. 참가자의 다수는 신좌익계지만, 급진적인 시민과 학자도 참가하고 있다. 『아소시에』는 1990년에 생긴 '포럼 90'을 계승한 것이다. '포럼 90'은 히로마츠파와 우노파 사람들, 그리고 신좌익계 활동가 등에 의해 형성된 시민조직이었는데, 1990년에 분열되어 '아소시에'가 탄생한다.

『아소시에』에 게재된 15편의 논문을 보면 먼저 집필자의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있어서 하나로 수렴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히라타 시민사회론이나 히로마츠 와타루론 등도 있긴 하지만, 급진적 민주주의, 정보론, 페미니즘론, 아나키즘론, 분석 맑스주의론 등 다양하다. 권두의 대담(야마노우치 야스시[山之內靖] 對 마토바 아키히로)에서 히로마츠 와타루와 동세대의 중진인 야마노우치 야스시는 맑스주의가 재생할 가능성은 근대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수밖에는 없다며 맑스주의 속에 빠져 있는 자연 개념을 포에르바흐(Feuerbach)와의 관계에서 소급해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맑스가 『경제학ㆍ철학 초고』의 제3 초고에서 포이에르바흐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히로마츠나 프랑스의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가 1960년대, 70년대에 주장했던 초기와 후기의 단절은 자연과 인간사회의 관계가 위기에 놓인 현재 전혀 무의미하다며 '『경제학ㆍ철학 초고』로 돌아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마노우치의 이러한 주장의 배경은 현재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간에 의한 자연의 재생산 시스템 파괴로부터 몸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지리적 공간을 완전히 상품화한 후에, 자연의 재생산 메커니즘의 상품화와 가상적인(virtual) 인간정신의 세계에서의 상품화를 진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계를 먼저 인식하고, 그러한 문제을 이해한 위에서 맑스를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마의 확산 현상은 단지 『아소시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1999년에 역시 내가 편집한 아사히신문사의 『아에라 무크』의 특집 '맑스를 알다'도 마찬가지의 문제의식에 의한 것이었다. 계급투쟁, 변증법, 공황론과 같은 종래의 언설(言說) 대신에 문화 연구, 오리엔탈리즘, 니체, 베버, 프로이트 등의 테마가 다루어진 것도 그러한 현실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맑스 사상의 편제 개편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3) 엥겔스 사후 100년
1991년 이후 맑스 연구는 일단 한풀 꺾였다. 그러다가 새로운 기운으로 재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1995년이다. 1995년은 엥겔스가 1895년에 서거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로서 엥겔스 특집이 그 계기가 되었다. 스기하라 시로(衫原四郞)와 후루하타 세츠오가 편집한 『엥겔스와 현대』(御茶の水書房)는 엥겔스에 관한 연구 논문 15편을 게재하고 있는데, 맑스와는 별개의 인격체로서의 엥겔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논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맑스는 독립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엥겔스를 별도로 취급한다는 습관은 이제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히로마츠 와타루의 『엥겔스론』(盛田書店, 1968)이 있긴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기 엥겔스를 다루고 있는 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영국의 카버(Carver)의 『맑스와 엥겔스의 지적 관계』(山之內弘 역, 世界書院, 1995)가 번역되었는데, 카버는 만년의 엥겔스에 이르기까지 맑스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엥겔스를 그리고 있다.

그 해에 나온 조금 색다른 책으로는 나카무라 세이지(中村靜治)의 『엥겔스 찬가』(信山社, 1995)일 것이다. 나카무라는 1970년 이후의 주요한 맑스 연구자들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맑스와 엥겔스는 일체라는 정통파의 언설을 부활시킨다. 여기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 히로마츠 와타루와 스기하라 시로 등이다. 스기하라는 『월간 포럼』(포럼 90' 편, 社會評論社)의 1995년 7월호 특집 「엥겔스 사후 100년」에서 나카무라의 이 책을 거론하면서 비판한다. '포럼 90'이 엥겔스를 특집으로 한 것 자체가 새로운 맑스 연구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맑스 연구에서 터부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그 해에 『파리에서의 맑스』(御茶の水書房, 1995)와 『프랑스에서의 독일인』(御茶の水書房, 1995)이라는 두 권의 연구서를 출판했다. 이것은 1986년에 낸 『트리어의 사회사』(未來社, 1986)와 마찬가지로 맑스에 관한 내용인데, 맑스의 동시대 인물과 역사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소련으로부터 예전에는 부르주아적 '맑스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 비판의 의미가 무언가 하면, 아무렇든 상관없는 소소한 맑스의 스캔들을 들어 맑스를 비방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맑스 연구에 어떤 종류의 터부가 있었던 때에 성립하는 것으로 이제 그러한 비판은 효력이 없어진 것이다. 당연히 나카무라는 『「자본론」과 「논어」』(信山社, 1996)의 첫머리에서 나와 같은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4) 1998년 『공산당선언』 150주년
1995년에 시작된 맑스 연구는 1998년 『공산당선언』 150주년부터 기세를 더해 간다. 별책 『정황』(情況社)은 7월호에서 「『공산당선언』과 혁명의 유훈」이라는 특집을 조직했다. 정통파를 제외하고 신·구 맑스 연구자가 모두 모인 기획에는 수십 명의 연구자가 참가하였다. 1998년은 1848년 혁명의 150주년이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공산당선언』과 1848년 혁명 연구라는 두 가지 논점에서 논문이 편집되었다. 그 해 이시즈카 마사히데(石塚正英), 시노하라 도시아키(조原敏昭)가 편집한 『공산당선언 - 해석의 혁명』(御茶の水書房)과, 마토바 아키히로와 다카쿠사키 코이치(高草木光一)가 편집한 『1848년 혁명의 사정(射程)』(御茶の水書房)이 출판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19세기 고전독서회가 다듬어서 내놓은 연구서인데, 맑스를 19세기의 역사 속에서 재확인한다고 하는 작업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해에는 오무라 이즈미(大村泉)의 『신 MEGA와 『자본론』의 성립』(八朔社)이나 시부야 다다시(澁谷正)가 편집한 『초고완전복각판 독일 이데올로기』(新日本出版社) 등의 이색적 서적도 출판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에 신메가(『새로운 맑스 엥겔스 전집』)는 소련의 손을 떠나서, IMES(국제 맑스 엥겔스 재단)으로 옮겨갔는데, 편집 작업에 일본인 연구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오무라 이즈미는 『자본론』 2권의 초고 편집에 참가하고 있는데, 그러한 편집 작업에서 이 책이 태어난다. 시부야의 책은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히로마츠 판의 뒤를 잇는 본격적인 판이다. 오무라 등은 『맑스 엥겔스 맑스주의 연구』(八朔社)라는 잡지를 매년 간행하고 있다.

1998년에는 각 잡지에 맑스 특집이 마련되었다. 전통 있는 철학잡지인 『사상(思想)』(894호, 岩波書店)은 '『공산당선언』 150주년'을, 『이상(理想)』(662호, 理想社)은 '맑스, 지금' 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짜고 있다.『사상』특집에서는 '공간론'으로 유명한 하비(Harvey)의 논문이나 벤사이드(Bendsaid)의 논문이 게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2000년 이후 맑스 연구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논문이었다.

1995년 이후 특징적인 것은, 1980년대까지 중심을 이루었던 맑스 경제학 쪽으로부터의 접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서적의 수가 적을 뿐 아니라 특집으로 짜여지는 횟수, 나아가서는 맑스 경제학을 특집으로 하는 경제 잡지의 소멸이다. 일본 공산당계의 『경제(經濟)』(新日本出版社)는 남아 있지만 시판되고 있는 맑스 경제학 잡지는 아주 적어졌다. 그런 가운데 『경제와 사회(經濟と社會)』(時潮社)가 1998년 겨울호에 '특집 『공산당선언』 150주년'을 조직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실질적으로는 경제학자의 논문은 적었고 역사가와 사상가의 논문만이 두드러졌다. 이 잡지는 그 후 소멸되었다.

맑스 사상에 대한 특집이 그동안 비교적 마이너(minor)한 잡지에 치우쳐 있었던데 반해서 판매부수에서는 6,000부 가까이 팔리고 있는 종합지 『대항해(大航海)』(新書館)가 '맑스의 고고학'이라는 특집을 마련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일본사를 개척하고 있는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미야타 노보루(宮田登)를 비롯하여 현대사상의 이마무라 마사시(今村司), 프랑스 문학의 가시마 시게루(鹿島茂), 경제학자인 가네코 마사루(金子勝)와 같은 논단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 맑스론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에 다쿠미 미츠히코의 『'대공황형' 불황』(講談社, 1998)이 항간에서 많이 읽혀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맑스를 대망하는 소리는 반쯤 혐오하면서도 조금씩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5) 『맑스를 알다』와 『맑스의 현재』
1999년이 되어 3만 부를 발행하는 『아에라 무크』가 '맑스를 알다' 라는 특집을 짰다. 맑스 연구자가 격감해 가는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은 조금씩 맑스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고도 생각되었다. 실제로는 약간 예상이 빗나갔음은 알지만, 『아에라 무크』중에서도 1, 2위를 다툴 정도로 팔렸던 것도 사실이다. 마침 그것과는 반대로 아주 마이너한 출판사인 '돗데모벤리출판부'에서 예전에 뉴아카데미즘의 기수라고 불렸던 아사다 아키라(淺田彰)와 문예적 맑스론으로 고정 팬을 가지고 있는 가라타니 코진(柄谷行人)이 쓴 『맑스의 현재』가 출판되었다. 기획자는 교토대학(京都大學) 학생이었는데, 이 책은 아사다, 가라타니의 명성에 더해 네그리 등과의 재미있는 대담으로 판을 거듭하게 된다.

1999년에 두 권의 책이 순간적이긴 했지만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매일 800만부를 발행하는 거대 신문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학예부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99년 11월에 아사다와 가라타니의 '오사카 아소시에 대회'에는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고, 같은 달 도쿄 에서의 발표자로 우치다 히로시(內田弘), 강상중(姜尙中), 요네타니 마사후미(米谷匡史), 사회자 마토바 아키히로의 '맑스를 알다'라는 모임의 토론회에도 100여 명이 참가했다. 11월 18일에는 '세기 말에 맑스를 묻는다' 라는 특집이 『아사히신문』에 게재되어, 지금 맑스가 계속 읽히고 있다는 기사가 실리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오해였지만, 젊은이들이 맑스를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면은 진실이기도 하다. 마침 같은 해에 역시 『아시히신문』에 의해 문화 연구가 불붙여진 것과 매우 비슷하다. 단지 독자 중에는 종교적인 열광을 찾아서 맑스에게 온 사람도 있고, 데리다나 푸코와 같은 포스트모던의 관점을 통해 맑스를 접한 사람도 있어서 천차만별이었다.

6) 『맑스 카테고리 사전(事典)』과 『신맑스학 사전(事典)』
맑스 연구의 부활과 새로운 방향의 시작은 잡지나 신문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맑스 사전을 편집하는 작업이 이루어져 1998년과 2000년에 완성된 것을 들 수 있다. 사전을 만든다는 기획은 오랜 편집 작업과 또 사전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라는 점에서 출판사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다. 맑스주의의 쇠퇴가 주장되는 가운데 오츠키출판사(大月書店)는 『맑스ㆍ엥겔스 전집』의 증쇄를 중지해 버렸고 오츠키문고(大月文庫)의 맑스·엥겔스의 저작도 품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에서조차 상품 부족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맑스ㆍ엥겔스 선집의 번역[梵摩書房], 헤이본샤(平凡社) 라이브러리의 맑스 선집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사전 출간은 커다란 도박이었다.

『맑스 카테고리 사전』(靑木書店, 1998)과 『신맑스학 사전』(弘文堂, 2000)은 완전히 취지가 다른 사전이다. 사전의 규모와 집필자는 거의 같지만, 의도와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먼저 큰 차이로 들 수 있는 것은 『맑스 카테고리 사전』이 현대에서 본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항목 수를 엄선하고 한 항목에 6000자라는 대항목주의임에 비해서, 『신맑스학 사전』은 맑스를 19세기에서 보았을 때에 관련되는 항목을 고르고 그다지 맑스주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두 사전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어 완성 시점도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편집 개념이 이처럼 다른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차이가 있는 사전이 나온 것 자체가 현재의 일본의 맑스 연구의 자유로운 점인지도 모른다. 『맑스 카테고리 사전』도 맑스의 현대성을 설명하면서 그다지 당파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엄선된 항목을 살펴보면 추상적인 개념이나 역사적 항목이 많다. 또 한편에서 『신맑스학 사전』 쪽도 19세기에 맑스를 말한다고 하면서 그 분석 방법, 자료 분석, 아날학파적 접근 등 현대 역사학의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맑스와 관련된 사전으로서는 『자본론 사전』, 『맑스주의 사전』 등의 제목으로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가 나와 있는데, 각각 매우 당파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 있었음에 비해서 이 두 사전은 말하자면 사전을 읽을 거리로 해서 맑스를 재구성해 간다고 하는 방향에서 쓰여 있다. 독자에 의해 다양한 맑스상(像)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1991년 이후의 맑스 연구의 변화의 한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3. 이후의 맑스 연구

1) 과거 연구의 곤란: 시스템론의 등장
21세기를 막 시작한 오늘날에 맑스를 연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의가 있는가? 그 답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20세기 말에는 급속한 세계화(globalization)가 진행되고, 각 나라나 지역은 역사적으로 발전단계가 다르고, 각각의 발전 유형이 있고, 그에 상응해 각자의 맑스 이해가 있다는 사고가 상당히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전후는 소련에 의한 맑스주의의 확대 시대, 1950년대는 냉전에 의한 적대의 시대, 1960·70년대는 후진국의 독립과 혁명의 시대였다. 1980년대 말이 되어 소련 및 동유럽의 붕괴와 함께 세계의 개별적 현상은 상호관련이 더욱더 강해져서 한 나라나 한 지역의 자유로운 전개가 억제되어 가는 시대가 시작된다. 1980년대에 왈러쉬타인(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자유주의 경제와 소련이라는 대항도식은 본래 허구이고, 현실적으로는 세계시장을 견인하는 중앙과 주변밖에 없어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그 주변(소련도 주변에 들어간다)이라는 대항관계는 19세기로부터 20세기까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 지적은 개발독재나 사회주의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주변의 반응으로 나올 수 있으나, 후자가 전자를 대신하는 일은 없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은, 공산주의이든 개발독재이든 간에, 주변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이 지적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나온다. 그것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대항관계, 즉 중앙과 주변의 대항관계는 전자가 후자의 미래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중앙이 언제나 주변을 필요로 하는 이상, 두 개는 역사적으로 동시대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닌 현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세계시장이 언제나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를 동시에 만들고 있는 이상, 주변은 항상 주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계급투쟁과 변증법적 유물론 시대의 종언
전후의 맑스주의는 소련을 중심으로 여러 후진국으로 만연해갔다. 그것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중앙-주변과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맑스주의에 대한 신앙을 각국에서 만들어 갔다. 혹시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중앙의 재편성이었다. 1980년대의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는 소련이나 중국도 휩쓸어 넣어서 중앙과 주변을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이리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의 주변에 소련이 편입됨으로써 사회주의권이라는 환상은 무너졌다.

그런 가운데 맑스주의 연구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았다. 1960년대·70년대까지의,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의 구축(構築)에 의한 새로운 중앙과 주변으로의 분할이 붕괴됨으로써 소련형 맑스주의가 효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코민포름의 명령을 기초로 소련의 명령을 받아서 각지에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전략, 소련형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발상은 근본에서부터 무너져 버렸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1956년의 스탈린 비판 무렵에 매듭이 지어졌지만, 민족독립운동에 불타던 나라들의 다수는 이러한 소련형 맑스주의를 받아들였다. 이 때 소리 높여 주장된 것이 계급투쟁과 경제공황이다.

맑스주의의 기본 테제로서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계급 대립을 파헤쳐내고, 그 철저한 대항관계로부터 다음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기대를 건다. 최종적으로는 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로부터 이탈하는 데에는 경제공황이라는 경제적 계기가 필요하고, 많은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공황이나 임금노동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스탈린의 조어는 맑스의 그럴 듯한 언설로서 당시의 맑스주의자들에게 채용되었다.

그런데 계급투쟁은 고도성장에 의한 임금상승으로 점차 효력을 상실하고, 계급투쟁은 표면상의 방침으로 하고 오로지 임금 상승만을 생각하는 노동조합 운동으로 변모해갔다. 물론 후진국가들 중에는 한 때는 절대적 궁핍화에 의한 빈곤화에 맞서기 위해 철저한 항쟁과 계급투쟁론이 반영된다. 그러나 개발독재가 끝날 무렵이 되면 그러한 나라들에서도 고도성장이 일어나서 민중은 그러한 운동에서 이탈해간다. 이리하여 계급투쟁과, 자본주의의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혁명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맑스주의도 전후 거의 1960년대까지 그러한 방향을 취했는데, 그것은 나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3) 시민사회의 형성과 맑스주의의 변용
맑스주의에서 계급투쟁과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개념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 대신에 시민사회의 형성이 문제로 대두된다. 히라타 기요아키의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라는 말이 주장되어 학생과 시민이 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말이다. 고도성장에 의해 중산계급이 확대되어 가고 사람들의 관심은 마이홈을 갖는 것으로 이동해간다. 그러한 가운데 국유나 사회적 소유라고 하는 개념에 비판이 가해지고, 개인적 소유의 완성이야말로 사회주의라고 말해지게 된 것이다.

히로마츠 와타루와 라치 치가라의 맑스 연구의 새로움은 이러한 시민의식을 19세기 노동자계급 운동의 배후에 흐르는 지하수맥으로서 파악하려 한 점이다. 맑스의 초기 작품에는, 소련식으로 말하자면, 부르주아적 요소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맑스는 휴머니스트나 개혁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경제학ㆍ철학 초고』와 『독일 이데올로기』를 연구함으로써, 맑스의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부분을 분석했고, 이를 통해 맑스의 사상 속에 있는 시민사회적 요소를 추출하려 했던 것이 그들의 공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향했던 운동형태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생활협동조합운동이나 시민운동이었다. 변용돼 가는 세계에 대해서 맑스 연구는 시민사회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으로, 계급투쟁과 혁명이란 표어로부터 이탈하고 살아남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환경문제, 페미니즘 등도 차례로 편입되어 좌익연합군으로서 맑스의 연명이 이루어져 간다. 그런데 시민사회론의 최대의 약점은 자본주의의 진짜 무서움을 모르는 데에 있다. 자본주의는 중산계급의 형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중산계급은 선진국이 후진국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후진국의 노동자로부터 잉여가 생기지 않게 되면 선진국은 자국의 중산계급으로부터 착취할 수밖에 없다. 후진국이 완전히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가 되어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공장을 후진국으로 이전시키고, 따라서 선진국에서도 고도의 노동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현상이 그것인데, 일본에서의 1억 총중산 계급이라는 꿈의 붕괴와 함께 시민사회의 신화도 붕괴되어 간다.

시민사회라는 발상은 원래 1920년대·30년대의 포드주의의 선물이다.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 먼저 임금을 올리고 임금의 상승에 의해서 경기를 부양시켜 간다는 장미빛 세계는 국가가 다른 나라의 노동자나 상품과 경쟁하지 않는 시대에 만들어져 간다. 국가가 경제적·군사적·정치적으로 다른 나라를 이기기 위해서 국가 전략으로서 국민의 복리후생을 향상시켜 간다는 것은 이른바 '총력전체제'라고 불리고 있다. 연금이나 보험제도 등 복리후생제도는 거의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시민사회 역시 국가주의의 한 형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에 있어서도 시민사회의 논의가 활발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국내 문제로 향했다.

4) 자본주의에 의한 공간의 정복
자본주의는 지구의 지리적인 정복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 나아가서는 정신의 정복까지 임박해 있다. 앙리 르페브르(H. Lefebvre)는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 1974)에서 자본이 공간을 균질적인 것으로 바꾸어 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공간의 균질화란 자본에 의해 공간의 정복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본은 그 다음에 우리의 신체까지도 균질적인 것으로 만들어간다. 전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는 거의 같은 지역으로부터 원료인 소고기가 보내져 오고 같은 조리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소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다시 소의 사료도 균질화하고 호르몬을 투여하고, 소의 고기를 소에게 먹이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광우병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요컨대, 자본이 진행시킨 신체에 대한 침략은 우리들 신체의 재생산 기능까지 파괴해간다.

신체의 관리는 푸코(Foucalt)가 말한 바와 같이 18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결국 신체의 상품화 및 균질화는 현대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신체의 균질화는 지리적 공간의 정복을 끝낸 자본에게 있어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미개척지이기도 하다. 유전자 공학, 복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가까운 장래에 거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산업이 될 것이고, 이를 둘러싸고 자본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가운데 자연으로서의 인간은 계속 파괴되고 있다.

더욱이 자본은 인간의 가상적인 세계로 진출했다. 인터넷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은 아직 자본이 완전하게 공간적 정복을 하지 못한 영역이다. 그러나 IT혁명에 의한 네트 사회의 실현은 허구가 가치를 낳고 한 순간에 거대한 부를 획득하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의 어디에서나 네트 공간에 들어감으로써 그 역사성이나 민족성을 잃는다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 국가나 민족이 지니고 있던 후진성이나 선진성을 파괴해간다. 맑스주의가 지금까지 가장 강조해 왔던 사적유물론이라는 발상은 가상적 공간 속에서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희박해지고 공간적 의식도 희박해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상적 공간의 출현에 의한 바가 많다는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5) 맑스 연구의 가능성
현대 자본주의는 20세기에 생각된 것으로부터 현저하게 변용되고 있다. 그러한 변용을 인식하지 않고 맑스주의의 과거의 테마를 말하는 것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확실히 구조조정에 대해서 노동조합에 의한 철저한 항쟁과 파업, 그것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계급투쟁론도 단기적으로는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다만 경영 효율이 나쁜 회사에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기회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패쇄경제에 의해서 생을 부지할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일 것이다. 또한 경제공황과 그에 따른 사회주의의 실현의 견지에서 볼 때는 공황은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니 디플레이션 현상과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이미 공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황이 일어났다고 해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도 곤란하다. 소련형의 국유화와 통제경제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도저히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고, 이것도 조만간에 붕괴된다.

여기에서 문제로 삼을 테마를 좁혀 보자. 우선, 크게 말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 문제를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우리들은 자연 속에 있는 불문율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맑스의 자연관에 관한 문제인데, 맑스의 자연 개념에 관해서는 독일의 슈미트(A. Schmidt)가 행한 연구 외에 거의 연구된 바가 없다. 이는 환경과 맑스라는 협소한 주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파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파괴에 어떻게 대응할까를 맑스 속에서 읽을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여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파괴란 자본의 대량생산이 만들어내고 있는 유전자 조작 등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1998년에 남프랑스에서 일어난 맥도날드 습격 사건은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맥도날드가 호르몬 주사를 놓은 소를 수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이 자연적 식품을 원하는 운동으로서 세계에 파급된 것이 그것이다. 인간은 유기농법의 식품을 먹을 권리가 없는 것인가? 맑스가 『경제학ㆍ철학 초고』에서 쓰고 있는 소외론은 바로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노동은 자연의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사적 소유의 원인이 됨으로써 독자적 행보를 하게 되었고,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갔다." 맑스는 대체로 이러한 내용을 제3 초고의 첫머리에 쓰고 있다. 진보적이어야 할 고전경제학은 자연을 망각함으로써 근대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근대사회를 피할 수 없다는 데에 소외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맑스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운명을 받아들인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서 맑스는 해답을 주고 있지 않지만, 옛날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인류가 지혜를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맑스와 같이 유대인인 스피노자(Spinoza)도 인류가 자기 멋대로 세계를 변혁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계를 마음대로 바꿨을 때 인류는 불행에 빠진다. 신(神), 곧 자연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때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맑스의 의도도 의외로 그러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야마노우치 야스시를 중심으로 한 그룹은 이러한 견지에서 초기 맑스의 재검토를 꾀하고 있다.

다음으로 맑스와 역사의 문제가 있다. 자본이 공간과 신체를 점차 균질화함으로써 인간사회는 더욱더 균질화되고 역사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게 되어가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역사의 종언이라고 불린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가 초래한 필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사회에서 차이는 불필요한 것일까? 차이라고 하면 국가나 민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서구화된다고 하는 것은 서구에 의해 강요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다. 이제 세계사는 하나이고, 아시아 국가의 역사 등은 무의미한 것일까? 오리엔탈리즘론이나 문화연구론은 그러한 것을 문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론이나 문화연구론 역시 아시아 등의 마이너 문화의 의의를 설명할 뿐이고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라는 편제 속에 편입되어진 것이라고 쉽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의 문화에 의한 압력과 그에 대한 선망은 맑스 시대에도 있었다. 헤겔(Hegel) 및 청년 헤겔파가 품었던 프랑스나 영국에 대한 선망은 오히려 독일의 사회변혁의 역사적 의미를 이끌어 내게 되었다. 자본주의, 구체적으로는 서구문화의 세계 지배가 역으로 아시아·아프리카에 역사의식을 창출했음은 분명하다. 균질화와 차이화는 오히려 상호보완적이기도 하다. 서구화가 강요되는 가운데 아시아란 것이 자각됨으로써 종속이 강요된다. 헤겔 좌파 및 독일 역사학파는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나 영국의 압력에 대한 독일이 취한 반응의 하나이기도 했다.

헤겔 좌파는 뒤쳐진 독일이야말로 역으로 역사의 발전을 인식할 수 있다는 역전의 발상으로 역사의 세세한 사실보다는 사변적인 역사이론의 구축으로 나아갔다. 맑스가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의 11번째 항에서 말한, "이제까지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추상적 논의를 버리고 현실적인 논의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다듬어져서 확고하게 된 이론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현실이 변하는 것이라는 자신이 숨겨져 있다. 먼 장래에 변혁을 기대한다고 하는 의식이 현실에서 구축된다고 한다면, 변혁은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나 영국에서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독일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뒤쳐진 나라이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직감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균질화에 대한 대항으로서 맑스류의 유토피아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블로흐(Bloch)나 데리다(Derrida)의 논의는 뜻밖에 그런 점에 있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시점은 특히 젊은 연구자들에게 공유되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 중에는 맑스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결시키는 가운데 데리다의 『맑스의 망령』(Spectres de Marx, 1993)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4.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맑스 사상에 대한 관심은 일본 고유의 문제를 빼고 논해진다면 내용은 공허해질 것이다. 사상은, 해외와의 교류 없이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풍토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맑스 연구가 일본에서 그 나름대로 오랜 전통을 만들어온 배경에 맑스 연구와 일본사회의 변용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던 점이 있다. 전후의 생산력 논쟁, 가치 논쟁도 일본의 경제 부흥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고, 시민사회론도 고도 경제성장과 결부되어 있었다. 맑스 연구의 변화도 일본사회의 커다란 변용, 나아가 세계의 커다란 변용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유토피아론도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구성해 갈 것인가, 또한 자연과 인간의 소외 문제도 일본의 불교적ㆍ유교적 도덕관과 어떻게 관련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는 일본사회에서 맑스 연구에 기여하는 바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일본사회 및 세계는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로 삼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맑스 연구자가 계급투쟁론이나 공황론, 변증법에 흥미가 없다고 해서 탄식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사회의 변용과 동시에 맑스 연구도 변하고, 그리고 나아가서는 맑스 연구도 사회의 변용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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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 1952년 생. 경응의숙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가나가와 대학 정경학부 교수. 주요저서로는 『トリ??アの社會史』(未來社, 1986), 『パリの中のマルクス』(御茶の水書房, 1995), 『フランスの中のドイツ人』, (御茶の水書房, 1995) 등이 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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