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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7. 분류학

 

 

데카르트가 원숭이를 보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Cartesius certe non vidit simios.

카롤루스 리네우스[칼 폰 린네]

 

근대의 과학적 분류학의 시조인 린네는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원숭이를 편애했다. 아마 그는 연구를 위해 암스테르담에 체류하는 도중에 원숭이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이국적exotic 동물들을 매매하는 교역의 일대 중심지였다. 훗날 스웨덴으로 귀국해 왕궁 부속 의사의 우두머리가 되면서 그는 웁살라에 작은 동물원을 만들고, 거기에서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를 사육했다. 린네는 그런 원숭이들 중에서도 디아나Diana라는 이름의 한 마리의 바바리 원숭이(Barbary ape)를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다른 짐승(bruta)’과 마찬가지로 원숭이도 혼을 결여하고 있기에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신학자들의 생각에 그는 쉽게 무릎 꿇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데카르트가 원숭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약간 초조한 어조로 이렇게 단언한 린네는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의 각주에서 자동기계(automata mechanica)’라는 관점에서 동물을 파악한 데카르트의 이론을 일축했다. 나아가 그는 인류의 사촌[Menniskans Cousiner]이라는 제목의 나중에 쓴 논문에서,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종차specific difference를 특정하는identify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한다. 물론 린네도 도덕적 수준과 종교적 수준에서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떼어내는[분리하는] 뚜렷한 차이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린네Carl von Linné (1707-78). 스웨덴의 식물학자. <이명법(二名法)>을 창시하고, 분류학의 확립에 기여했다. 원래의 성은 린네우스(Linnaeus)였으나, 1762년에 귀족으로 서훈된 후, 폰 린네로 개명했다. 1728년에 웁살라대학교에 입학. 네덜란드로 갔다가 귀국하면서부터, 스톡홀름에서 개업의가 되며, 나중에 웁살라대학교 의학부 교수가 됐다. 1751년에 이명법(라틴어의 명사 단어 한 개의 속명과 형용사 단어 한 개의 종소명에 의한 종의 표시)을 제창했다. 그때까지의 학술명은 여러 단어로 이루어진 종의 특징의 서술이었지만, 이명법에서는 간결하고 단순한 호칭이 되며, 이것에 의해 생물의 학술명이 안정됐다. 현재의 국제명명규약에서는, 식물에 대해서는 린네의 식물의 종초판(1753), 동물에 대해서는 린네의 자연의 체계10(1758)의 종명을 기준으로 삼기로 정해졌다

[자동기계(automata mechanica)시계와 물레방아처럼, 자족적으로 작용원천을 가지고, 그 자체로 작동을 계속하는 듯이 보이는 기계의 총칭.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이나 라 메트리의 인간기계론에서처럼, 인간이나 동물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사용됐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홉스 등에게 심신문제나 국가론의 설명도식으로 등장한다

인간은 «창조주»가 그토록 믿기 어려운 정신을 가진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동물이다. «창조주»는 인간을 당신의 총애의 대상으로 채택하고 싶어 했고[여겨 우리를 자식처럼 아꼈으며] 인간에게 더 고귀한 실존을 마련해줬다. 심지어 «»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지상에] 보내기까지 했다(Linneo 1955, 4).

 

그러나 그의 결론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다른 법정forum에 속하는 것이다. 마치 제화공이 끝까지 작업 책상에 매달리듯이, 나 자신도 내 실험실에 머무르면서 한 명의 자연과학자로서, 인간과 그의 신체를 고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원숭이에게는 송곳니와 다른 이빨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빼면, 인간을 원숭이들로부터 떼어내는[인간과 원숭이를 구별하는] 구별 표시는 거의 찾아낼 수 없다[무엇 하나 발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자연의 체계에서 원숭이(Simia), 여우원숭이(Lemur), 박쥐(Vespertilio)와 나란히, 인류(homo)를 안트로포모르파Anthropomorpha (, order)(1758년의 10판 이후, 영장목(Primates)이라 불리게 된 것)에 배정한 그의 단호한 몸짓은 전혀 놀랍지 않다. 게다가 그 분류법의 시비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야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despite the polemics that his gesture did not fail to provoke, 이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중지된 채로 있었다in a certain sense the issue was in the air. 이미 1693, 존 레이는 네 발 동물 중에서 안트로포모르파Anthropomorpha의 그룹, 인간 같은[유인목(類人目)]manlike동물들의 그룹을 구별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구체제 시기에서 인간의 경계는 19세기, 즉 인간과학들의 발전 이후에 나타나게 될 것보다 훨씬 불확실[부정확uncertain]하고 유동적이다. 특히 인간이라는 것을 식별하는 특징이 될which would become man’s identifying characteristic par excellence 언어는 18세기까지, ()과 목()이라는 분류를 훌쩍 뛰어넘었다. 왜냐하면 새도 말을 할 수 있다고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존 로크처럼 신뢰할 수 있는 증인조차도 나소(Nassau)의 군주가 기르던 앵무새의 이야기를 다소간 신빙성 있다more or less as a certainty고 언급한 것이다. 이 앵무새가 대화를 할 수 있고 이성을 가진 피조물처럼like a reasonable creature질문들에 응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과 다른 종들 사이의 물리적인 경계설정physical demarcation도 확고한 소속certain identities을 할당할 수 없는 미확정의 지대zones of indifference를 수반[내포]했다. 페타 아르테디가 쓴 어류학(1738) 같은 본격적인 과학서는 바다표범과 바다사자 다음에 세이렌도 여전히 열거했으며, 사실 린네 자신도 그의 책 유럽의 판(Pan Europaeus)에서 세이렌 덴마크의 해부학자 카스퍼 바르톨린은 이것을 해인(海人, Homo marinus)’이라고 불렀다 을 인간과 원숭이와 함께 분류하고 있다. 다른 한편, 유인원과 몇몇 원시인 사이의 경계도 결코 자명하지 않다. 의사 니콜라스 툴립이 쓴 1641년의 오랑우탄에 관한 최초의 서술은 이 숲의 인간(Homo sylvestris)(말라이Malay어의 표현인 오랑우탄은 이런 뜻이다)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원숭이와 인간의 신체적physical 차이가 비교해부학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처음으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타이슨의 논문 오랑우탄 혹은 숲의 인간, 또는 피그미의 해부(Orang-Outang, sive Homo Sylvestris: or, the Anatomy of a Pygmie)(1699)를 기다려야만 한다. 비록 이 논문이 영장류학primatology의 일종의 초기 간행본incunabulum으로 간주되긴 하지만, 타이슨이 피그미(Pygmie)’라고 부르는 생물creature(해부학적으로는 인간과는 48개의, 원숭이와는 34개의 특성에 의해 구별된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일종의 중간동물intermediate animal을 대표하며, 이런 점에서, 천사와는 대칭적으로 정반대의 관계에 서 있다. [팔코나 경(Lord Falconer)에게 바친 헌사에서 타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존 레이] John Ray (1627-1705). 영국의 성직자, 철학자, 박물학자[자연학자]. 영국에서의 박물지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식물을 떡잎이나 꽃잎에 의해 분류하는 근대적인 자연분류체계를 제창했으나, 그의 공적은 오랫동안 린네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 1686년에 식물지를 간행하고 씨앗을 처음으로 정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케임브리지 박물목록(1686), 식물신방법론(1682), 창조물에 이름을 붙인 신의 지혜(1691), 자연-신학 3(1692) 등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페타 아르테디Peter Artedi (1705-35). 스웨덴의 박물학자로, 어류학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웁살라 대학에서 처음에는 신학을 배운 후, 의학, 박물학, 그리고 나중에는 어류학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부유한 네덜란드인 알베르트 세파가 소장했던 당시 유수한 콜렉션을 분류하는 작업에 씨름했다. 그가 남긴 원고는 요절한 그를 대신해 친구 린네의 손에 의해 정리되고, 사후 1738년에 라이덴에서 어류백과사전, 어류철학으로 출판됐다

[카스퍼 바르톨린Casper Bartholin (1655-1738). 덴마크의 의사, 해부학자. 신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캐스퍼 바르톨린 대공(1585-1629)의 손자로, 해부학에서는 바르톨린 샘()”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

[니콜라스 툴립] Nicolas Tulp. 공개해부학 강의를 묘사한 렘브란트의 집단초상화 «니콜라스 둘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로 유명한 외과의, 해부학자

[에드워드 타이슨Edward Tyson (1650-1708). 영국의 의사, 해부학자. 방울뱀, 촌충류에 관한 중요한 논고를 남기고, 젊은 침팬지의 비교해부 등도 했다

 

제가 해부한 동물은 «인류(Mankind와 가장 가까운 것이며, 각하처럼 «이성적인 분(the Rational«동물(the Animal사이의 «매듭(Nexus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런 서열의 동물들은, 이해도의 점에서도 지혜라는 점에서도,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피조물의 종과 닮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경계가 실제의 동물뿐만 아니라 신화에 나오는 생명체creatures에 의해서도 여전히 얼마나 위협 받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논문의 제목 전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오랑우탄, 또는 숲의 인간, 또는 원숭이, 유인원, 인간과 비교한 피그미의 해부, 덧붙이면, 고대인들의 피그미, 견두인(犬頭人, Cynocephali), 사티로스(Satyrs), 스핑크스와 관련해, 이들 생명체들이 유인원이거나 원숭이 중 하나이며, 과거에 주장되었던 것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문헌학적 논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린네의 천재성은 그가 인간을 영장목에 등록한 결단력resoluteness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다른 종에 대해서 한 것과는 달리 호모()이라는 명칭 바로 옆에 너 자신을 알라(nosce te ipsum)”라는 오래된 철학적 격언 이외의 어떤 종류의 표시[식별하는 특징]도 기입하지 않았다는 그 아이러니에 있다. 자연의 체계10판에서 정식 명칭이 호모 사피엔스가 됐을 때조차도,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부가형용사는 분명히 하나의 기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호모라는 용어의 바로 옆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는 말의 옆에 배치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는 방금 말한 격언이 간소화되고simplification[저속해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모든 증거가 시사한다. 이 분류법적 변종anomaly에 관해 성찰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 변종은 하나의 소여가 아니라 하나의 정언명령imperative, 종차[종으로서의 차이]로서 할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체계의 첫머리인 서문(Introitus)을 분석하면, 린네가 인간은 그저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말고는 다른 어떤 종적 특성specific identity도 갖고 있지 않다라는 모토에 귀속시킨 의미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남겨두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그 어떤 타고난 기질(nota characteristica)’[이라는 특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인식을 통해 정의한다는 것은, 인간이란 그런 것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이란 스스로를 인간이려고 하는 인간으로 인식해야 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사실 린네는 탄생의 순간에, 자연이 인간을 벌거벗은 지상에 벌거벗은 채로”, 즉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알 수도, 말할 수도, 걸을 수도, 혹은 먹을 수도 없는 채로 인간을 던졌다[낳았다]고 적었다(Nudus in nuda terra cui scire nichil sine doctrina; non fari, non ingredi, non vesci, non aliud naturae sponte). 인간은 인간을 넘어설 때에야 비로소 인간 자체가 되는 것이다(o quam contempta res est homo, nisi supra humana se erexerit).

린네의 자연의 체계에서는 인간이 원숭이의 이미지로 창조된 것 같다며 반대한 비판가인 요한 게오르크 그멜린(Johann Georg Gmelin)에게 보낸 편지에서, 린네는 자신의 모토가 지닌 진의를 제시함으로써 이것에 응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스스로를 인식합니다. 어쩌면 저는 이 말을 철회해야겠죠. 그렇지만 제가 당신과 온 세상[학자들]에 말하고 싶은 것은 자연사의 원리들과 일치하는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속적generic 차이를 제가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차이를 전혀 모릅니다”(Gmelin, 55). 또 다른 비판가인 테오도어 클라인(Theodor Klein)에게 응답하기 위해 쓴 노트는 호모 사케르의 정식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린네가 어디까지 밀고나가려고 하는지를 보여준다. , 자연의 체계에서 린네가 인간에게 할당한 입장에 자신이 처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클라인 같은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령을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한다[자기 자신에게 비춰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원숭이들 사이에 두고 있기[자신들을 원숭이의 동료로 헤아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는 명확하게 정의된 종도 아니고 실체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인정을 산출하기 위한 하나의 기계 혹은 장치이다. 그 당시의 취향과 합치하듯이, 이 인간발생적(anthropogenic)(혹은 푸리오 이에지의 표현을 취한다면 인간학적(anthropological)) 기계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보면서 항상 이미 원숭이의 용모로 기형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보는 일련의 거울들로 구성된 하나의 광학기계이다(가장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것은 리바이어던에도 기재되어 있는 장치이며, 아마 린네는 그 책의 서론에서 너 자신을 알라(nosce te ipsum)’라는 모토를 끌어온 것 같다. ‘최근에는 이해되고 있지 않은 격언(saying not of late understood)’을 홉스는 너 자신을 읽어라(read thyself)라고 번역한다). ‘호모인간의 모습을 한(anthropomorphous)”(린네가 자연의 체계10판까지 일관되게 사용한 용어를 따라 말한다면, “인간과 흡사한”) 것으로서 구성된 동물이며, 이 동물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비인간적인 것들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푸리오 이에지] Furio Jesi(1941-80). 이탈리아의 독일 연구자, 신화학자. 팔레르모대학과 제노바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강의하고, 릴케, 카네티, 캐스터니다, 뒤메질의 번역, 슈펭클러의 서양의 몰락의 교정 재판본의 감수, 갈상티 유럽백과사전의 종교학 분야의 고문 등을 맡았다. 그의 박학다식함은 흡혈귀의 이미지에 관한 최후의 밤(1987)에도 발휘됐다. 이 밖에도 스파르타쿠스 : 반란의 상징학(1969년 집필, 2000년 간행) 등이 있다. 최근 재평가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중세의 도상에는 원숭이가 거울을 들고 있는데, 이 거울에서 죄를 진 인간은 스스로를 신의 원숭이(simia dei)’라고 인정[인식]해야 한다. 린네의 광학기계에서는 스스로를 원숭이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모두 하나가 된다[린네는 원숭이가 자기 인식을 갖는다는 것을 부인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원숭이는 린네의 광학기계 속에서 자기를 인식하게 된다In Linnaeus’s optical machine, whoever refuses to recognize himself in the ape, becomes one]. 파스칼의 말을 쉽게 고쳐 말한다면, 인간을 만드는 자가 원숭이를 만든다(qui fait l’homme, fait le singe). ‘호모를 동물,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고 인식했을 때에만 존재하는동물이라고 정의한 린네는, 바로 이 때문에 자연의 체계의 서문의 끝부분에서,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비판가로 분장한 원숭이들을 참아내야만 한다must put up with apes disguised as critics climbing on his shoulders to mock him[큰 원숭이들이 그를 비판하는 자들로 분장해서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그를 조롱하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리는 사티로스를, 내 어깨 위로 뛰어올라 의기양양해 하는 긴꼬리원숭이도 참아냈다”(ideoque ringentium Satyrorum cachinnos, meisque humeris insilientium cercopithecorum exsultationes sustin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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