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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26 공개성의 근원 1회. 주권 vs 통치 오오타케 코지(大竹弘二)

공개성의 근원 

1. 주권 vs 통치

오오타케 코지(大竹弘二)



1. 민주주의와 통치능력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조용히 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의 이념을 공공연하게 부정하기란 확실히 여전히 쑥쓰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근대민주주의의 기초인 인민의 의지라는 것에는, 지금까지 없던 불신의 시선이 향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때 염두에 놓인 것은 어떤 때는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민의이며, 어떤 때는 특정한 지역이나 단체에 의한 (종종 이익유도를 수반하는) 공공투자 혹은 행정급부의 요구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회의는 분명히 세계나 일본에서의 최근의 정치상황에 의해 깊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 공통되는 병리현상으로서는, 정부의 공공지출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가 선진국들의 재정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얘기되고, 일본 국내에 한정하면, 바뀌기 쉬운 여론이 작금의 일본정치의 불안정성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도 보인다. 이처럼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대부분이 민주주의의 결함에서 찾아지고 있다. , 의심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통치능력(governability)”이나 다름없다. 무책임한 민중(demos)의 지배가 통치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극히 고전적인 문제가, 오늘날의 정치정세 속에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안정적인 통치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이리하여 현재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통치의 안정을 헤치는 곳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적인 가치들과 친화성을 지닌 자유의 이념에 비해, 작금의 민주주의의 이념은 반드시 형세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지금에서야 시작된 것이 전혀 아니다. 고도경제성장의 종언과 더불어 복지국가의 위기가 의식되게 됐던 1970년대에 신보수주의적인 통치불능론이 등장한 이래, 민주주의의 가치 절하는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 이른바 정부에 대해 지나친 요구를 부과하는 민주주의의 하중 초과통치능력의 저하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사무엘 P. 헌팅턴 등이 집필한 미일유럽 삼극위원회의 보고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시정일관 이런 어조로 관통되고 있다. 이리하여 국민의 요구들의 부하를 가능한 한 경감한 작은 정부가 지향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의 전지구화에 의해, 이런 담론은 점점 더 유력해지는 듯하다. “신중상주의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전지구적 경제 경쟁 속에서, 각국은 파이로서의 국민총소득의 확대를 지상명제로 삼는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국가전략에 있어서 우선 중시되는 것은, 특정한 성장산업혹은 성장분야를 늘리는 것이다. 이런 성장전략에 있어서는, 국민에 대한 소득재분배는 부차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소득의 공평성이나 평등을 요구하는 국민의 근시안적인 관점은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국민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며 배척된다. 전지구적인 경쟁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하중 초과에 대한 비판은 더욱 공고해지며, 민주주의의 위기는 가속화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근대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정당성은 주권개념에 의해 담보되었다. , 16세기의 유럽에서 탄생한 이 역사적지리적으로 고유한 개념이, 18세기 이후의 인민주권론의 기초가 됐다. 근대의 절대주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봐서 어떤 경위를 거쳐서 탄생했든, 주권의 개념 자체는 결코 단순한 사실적인 폭력 독점에 기초한 절대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댕, 홉스, 루소 모두, 주권의 본질적 정의는, 그것이 입법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모든 실정법의 규범 근거이며, 통치에 규범성을 가져다주는 정당화 원천이다. 확실히 입법자에 의한 근원적인 법정립은, 결국 힘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라는 문제는 있다. 그러나 주권 개념이 원래 목표로 했던 것은, 중세적인 종교 규범이 붕괴하고, 종파 내전에 시달리던 근대 초기에, 정치의 규범성을 더 세속화된 형태로 되찾는 것이었다. 주권이라는 근본 규범이 없으면 정치는 단순한 권력 조작의 기술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위기가 단순히 민주주의나 인민주권의 위기인 게 아니라, 주권의 위기, 혹은 이 말이 너무 진부하다면, 근대의 발명품인 주권 개념이 목표로 했던 것의 위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통치, 법이나 주권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은 주권의 소재가 인격화된 군주에 있는가, 국민 내지 인민에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또한 기준의 민주주의가 국민국가의 틀 내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문제시하는 논의도, 여기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문제로 삼는 것은, 내셔널이든, 전지구적이든, 원래 통치 행위가 규범에서부터 자립하고, 정당화의 절차를 무용지물로 삼고 있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통치의 이런 변질을 앞에 두고, 주권의 최고 발현인 헌법제정권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확실히 오래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사회학의 맥락에서는, 이미 전후의 이른 시기부터, 헬무트 셸스키(Helmut Schelsky) 같은 보수파든 하버마스 같은 좌파든 불문하고, “산업사회에서는 테크노크라시적인 기술관리가 정치적 정당화를 대체한다는 진단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정당화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치는 점점 더 기술조작으로서의 그 성격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제, 반드시 전문가 집단을 수반한 행정관료기구의 테크노크라시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통치가 국가의 외부에 민간 위탁됨으로써, 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 이행함으로써 초래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수십 년 전부터 지적되었던 낡은 문제라고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근대 주권 국가에 있어서는, 그것이 탄생 초기부터 마주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장 근원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혹은 오히려, 주권 개념은 바로 통치의 기술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의 주권 이론의 이런 의의는, 세속화의 기능(, 중세적인 교회권력으로부터의 정치권력의 자립화)라는 의의에 비하면, 고려되는 경우가 너무도 적다. 근대 국가는 주권 개념에 의해, 기술로서의 통치 행위를 길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주권통치사이의 이런 접합은 절단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은, 알기 쉽지만, 그러나 오해를 사는 사고방식이다. 통치라는 것은, 주권에 의한 제어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닐까?

바로 통치행위를 규범에 의해 구속하는 것이 근대 초기에서의 정치이론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창출된 주권 개념이었지만, 그것이 절대 왕정 하에서 확고한 것으로 될 때까지, 당분간은 통치의 자립성에 시달리게 된다. 이것은 16-17세기의 정치 혹은 문학의 담론들 속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거듭 문제가 되는 것은, 주권자를 괴롭히는 어떤 아포리아에 다름 아니다. 주권이론의 이런 걸림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를 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2. 주권자의 전락 : 칸토로비츠와 셰익스피어

주권자에게 들러붙어 다니는 특유의 아포리아. 이 고찰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역사가 에른스트 H. 칸토로비츠의 유명한 저작 왕의 두 신체(1957)의 논의이다. , 왕의 신체는 항상 정치적 신체와 자연적 신체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 왕의 신체에는 상징적의례적인 측면과 가사(可死)의 개인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른바 거기에는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저작은 중세정치신학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칸토로비츠는 이 개념 장치를 사용해 중세 유럽 왕권의 상세한 분석에 매달리는 것이다.

 Kantorowicz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Kantorowicz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러나 이런 왕의 신체의 이중성은 중세 왕권에 고유한 것인가? 칸토로비츠 자신이 말하듯이, 원래 왕의 두 개의 신체라는 교설은, 에드문드 프라우든을 시작으로 하는 16-17세기의 엘리자베스 왕조 및 스튜어트왕조 시대의 잉글랜드 법학자들 속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을 중세 왕권 전체의 분석에까지 부연해 들어간 것은 칸토로비츠의 특유한 역사 이해이며, 따라서 이 교설의 발단은 어디까지나 근대 초기에서 찾아져야 한다. 실제로 왕의 두 신체의 첫머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엘리자베스 왕조를 살았던 작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차드 2의 분석이다. 칸토로비츠는 1600년 전후에 성립된 이 극 속에서, “왕의 두 신체라는 사상이 전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조의 마지막 왕인 리차드 2세의 폐위를 그린 이 사극이 무대로 삼는 것은, 14세기 말의 잉글랜드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중세에 일어난 이 사건 속에, 종교내전이 격해지고 있고, 아직 절대왕권이 확립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그 자신의 시대의 잉글랜드를 투영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랭카스터 왕조의 시조가 되는 헨리 볼링브로크(나중의 헨리4)에 의해 폐위되는 리차드2세는, 영광이 있는 전능한 왕에서 약하고 비참한 한 개인으로 전락한다. 칸토로비츠에 따르면, 이 극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왕의 두 신체의 일체성[통일성]이라는 픽션의 해체이다. 거기에서는 왕은 그 정치적 신체를 벗겨내지고, 불쌍하고 자연적인 신체를 노출당하게 됐다. 이중적 신체를 가진 왕에게는, 성스러운 존재와 비천한 존재가 항상 반전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왕의 보석을 내놓고 수도승의 염주나 차고

궁전을 내놓고 은둔자의 움막으로 가야지

어의는 벗고 거지의 누더기를 입어야지

황금 장식 새겨진 술잔은 내려놓고 나무 잔이나 들어야지

왕홀은 지팡이와 바꾸고 수많은 신하들 대신 나무로 만든 성자의 조각상 두 개만 곁에 두어야지

광대한 왕국은 버려두고 작은 무덤으로 가야지. 작고 작아서 땅 위로 솟아오르지도 못한 무덤으로.

 

그 어떤 왕이라 해도, 불사이자 영원한 정치적 신체를 완전히 떠맡을 수는 없다. 그 자신은 결국, 일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모두가 살해되었는데 -- 죽을 수밖에 없는 왕의 관자놀이를 둘러싼 텅 빈 왕관 안에는 

죽음의 신이 궁전을 차려놓고 있고, 거기에는 죽음이라는 광대가 앉아서,

왕의 권위를 조소하고 왕의 영화에 냉소를 보낸단 말이다. 

All murdered. For within the hollow crown

That rounds the mortal temples of a king

Keeps Death his court, and there the antic sits,

Scoffing his state and grinning at his pomp, (3.2.151-59)

* 이 두 번째 구절의 번역본과 영문은 모두 정선영,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리차드 2』, 정치신학과 정신분석>, 453쪽에서 재인용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대부분은, 왕좌에서 전락하는 군주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유한한 존재자가 무한한 권능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데에서 오는 비극이다. 이미 칸토로비츠에 앞서서 발터 벤야민은 독일비극의 근원[각주:1](논문 제출은 1925)에서, 바로 이 점에 바로크 시대의 비극의 특징을 봤다. 지배자로 인정받은 절대적 권한과 지배자 개인의 통치능력 사이의 어긋남이 근대 비극에서의 군주의 우울(멜랑콜리)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신과도 비슷한 위계를 수여받으면서 그 자신은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군주는, 주권자로서 기대되는 절대적 결단을 담당할 수 없다. 주권자는 그 이중의 신체 때문에, 전능한 주권자로서의 스스로의 역할을 맡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17세기 독일의 바로크 연극의 주인공은, 이런 무력감에 휩싸여 몰락하는 군주들에 다름 아니다. 벤야민에게서는 특히, 행동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햄릿이야말로 이런 근대 비극의 주인공의 범형이다. 이렇게 이중의 신체에 시달리는 주권자라는 것은, 근대 초기의 비극에서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따라서 왕의 이중의 신체라는 교설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비극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칸토로비츠가 특히 리차드 2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근대 초기의 잉글랜드의 정치상황 속에서 특히 정치성을 띤 극이었기 때문이다. 리차드 2세와 볼링브로크와의 싸움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 유력한 신하였던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빌과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리차드 216012월에 일어난 에섹스 백작에 의한 봉기의 실패와 그 처형의 전후에, 셰익스피어 자신이 그것에 가까운 곳에 있던 에섹스 파의 사람들에 의해 반복해서 상연됐다고 얘기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내가 리차드 2세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리차드 2에 혐오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 극에 대한 그녀의 거부 반응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어리 스튜어트와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의 기억도 생생하고 종교 내전도 완전히 수습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정치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시대의 왕권은 아직 취약하며, 항상 폐위의 가능성에 떨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리차드 217세기 후반에는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2세의 치세 하에서 상연 금지됐다고 한다. 이렇게 퓨리턴 혁명 이후 왕정복고기에 셰익스피어의 이 연극이 미움을 받은 것은, 퓨리턴 혁명에서 처형된 순교자 왕찰스 1세의 운명이 사람들의 의식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토로비츠는 혁명기에 퓨리턴 진영이 국왕에 적대하며 내걸었다고 간주된 슬로건을 언급하고 있다. , “(King)을 지키기 위해 왕(king)과 싸운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왕의 두 신체의 통일성은 파괴되고, 그 폭력적 분리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왕의 정치적 신체의 이름 아래에서 왕의 자연적 신체가 희생에 처해지고, 찰스 1세는 그 순교자가 된다. 특히 왕당파 사람들에게는 리차드 2는 찰스 1세에게 닥쳐온 비극을 상기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의 두 신체라는 교설이 바로 이 시기의 잉글랜드 법학자에 의해 유포됐다는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주권자에 의한 통치의 확립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 어려움에 직면했던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주권 이론이 갖는 비극적 성격, 혹은 그 실현 불가능성은, 이 시대의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두 개의 정치신학 : 슈미트에 맞선 칸토로비츠

왕의 두 신체는 중세의 정치신학연구로 간주됨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는 칼 슈미트가 완전히 묵살되고 있다. 두 사람이 다루는 주제의 친근성에도 불구하고, 칸토로비츠의 저작에서 슈미트가 언급되는 일은 전무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30년대에 사망할 때까지 독일의 지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독일계 유대인인 칸토로비츠가 슈미트를 무지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50년대에 왕의 두 신체에 앞서서 쓴 칸토로비츠의 논문을 보면, “정치신학에 관해서 “1930년대의 독일에서 활발하게 논의된문제와의 주석이 이뤄지고 있다. 칸토로비츠의 전기를 쓴 역사가 앨런 브로에 따르면, 이것은 과거 신학자 에릭 페터존이 정치적 문제로서의 일신교(원저 1935)에서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제출한 격렬한 비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칸토로비츠가 슈미트의 논의를 전혀 몰랐다는 일은 있을 수 없고, 그가 거의 슈미트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30년대의 독일에서의 정치신학에 관한 논의는 슈미트와 페터존 사이의 논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신학의 친파시즘적 경향은, 슈미트뿐 아니라 나치의 권력탈취 전후의 시기에 독일에서 유행한 라이히 신학이라고 불리는 사상 조류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담론에서는 세상의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가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을 괴롭히던 핍곤 상태의 극복에 대한 기대와 결부됐다. 그리고 이런 민족주의적 기대의 성취를 나치 정권 속에서 찾아내려고 한 라이히 신학자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페터존의 저작은 무엇보다 우선, 이런 독일 민족주의적인 정치신학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종말론적인 국가구원자를 찾는 독일의 민족주의 신화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잠들어 있는 황제의 전설이다. , 어디선가 계속 잠을 자는 과거의 신성 로마 제국의 영웅적인 황제가 국난(國難)일 때에 되살아나 독일을 구원한다는 민간전승 설화이다. 잠들어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 이 황제가 누구인가에 대해 설들이 난무하지만, 이 전설은 20세기 초의 독일에서 새로운 리바이어던을 보여주었고, 라이히 신학의 동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때 큰 역할을 한 것이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서클이다. 게오르게 등은 언젠가 현실의 독일 국가를 넘어서 부활할 터인 숨어 있는 독일을 탐지해내고, 13세기의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잠들어 있는 황제의 임무를 맡기려고 했다. 이리하여 이슬람교도에 대한 종교적 관용으로 알려진 시칠리아 출신의 이 이단자 황제가 게오르게 서클 속에서 하나의 신화적 인물상으로까지 드높여질 수 있었다.

바로 이 게오르게 서클의 가장 열성적인 구성원 중 한 명이 젊은 날의 칸토로비츠였다. 이를 착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증언이 되는 것이 그의 1929년의 최초의 저작이다. , 황제 프리드리히 2. 2차 세계대전 전에 출판된 이 초판의 서언(緖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창설된 나폴리대학이 700주년을 맞이한 1924, 칸토로비츠는 서클의 동료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에 있는 황제의 무덤으로 순례 여행을 하고, “우리 황제들, 영웅들에게 / 숨어 있는 독일이라고 새겨진 비명(碑銘)을 두었다고 한다. 게오르게파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2세가 자라난 지중해이탈리아 남부에서 독일의 재생을 가져다줄 비밀의 지하수맥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젊은 칸토로비츠의 황제 프리드리히 2의 독일 민족주의적 함의는 명백하다. 예를 들어 게오르게 자신이 나치와 거리를 두었다고 해도, 혹은 게오르게파 내부로부터 나치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왔다고 해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게오르게 서클의 구성원 중에, 1944720일 히틀러 암살계획을 지휘하게 된 크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있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암살계획이 실패하고, 총살되기 직전에 슈타우펜베르크가 외쳤다고 하는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숨어 있는 독일 만세!” , 그는 현실의 나치국가에 대한 저항의 거점으로서 도래할 숨어 있는 독일의 이념에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종류의 보수 엘리트주의적인 반히틀러 운동을 과도하게 찬양할 필요는 없다. 게오르게파에서 보이는 종말론적인 민족주의가 파시즘과 일정한 친화성을 가진 것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훗날의 칸토로비츠는 황제 프리드리히 2의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의식한 것 같다. 실제로 전후의 그는 황제 프리드리히 2의 재판을 찍는 일을 오랫동안 주저했다고 한다. 브로의 전기에 따르면, 칸토로비츠는 숨어 있는 독일의 승리와 독일 민족 재생에 대한 바람을 담아 쓴 20년대의 이 책이, 시대착오의 국가주의를 고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전후의 저작인 왕의 두 신체에는 과거의 황제 프리드리히 2에 대한 자기비판이 표현되어 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세속적 세계 속에서 초월을 실현하는 것의 불가능성이다. 왕의 신체의 이중성, 주권자에 있어서의 신과 인간의 공존은, 결코 그러한 차이의 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칸토로비츠 자신이 말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리차드 2의 독해로부터 분명히 밝혀지는 것은, 주권자의 경험적 신체는 초월적 신체를 결코 떠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왕의 두 신체는 그 일체성[통일성]이라는 픽션의 배후에서, 항상 대립과 분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한에서 왕의 두 신체는 독일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요구하는 과거의 게오르게파적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을 증언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칸토로비츠가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대한 참조를 주의 깊게 기피하는 이유도, 이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세에서의 초월의 개입과도 비슷한 결단을 내리는 슈미트의 주권자는, 신성을 담지하면서도 동시에 애처로운 한 개인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칸토로비츠의 주권자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슈미트는 설령 법의 내부에 있는 동시에 법의 외부에 있다고 하는 주권의 역설”(아감벤)을 의식했다고 하더라도, 주권자가 법의 바깥으로 유기됨으로써 따르게 되는 애처로운 한 개인으로서의 운명을 고려하지 않는다. 칸토로비츠는 바로 주권자가 벗어날 수 없는 이런 양의성을 밝히고 있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브로가 말하듯이, 칸토로비츠는 정치신학에 대한 슈미트의 테제를 역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훗날의 슈미트가 왕의 두 신체라는 저작을 알았는지 여부는 불명료하다. 하지만 칸토로비츠에 대한 있음직한 반론은 이미 그 직전에 출판된 슈미트의 후기 저작 햄릿 혹은 헤쿠바(원저 1956)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슈미트는 벤야민의 독일비극의 근원에 대한 반론을 시도한다. 벤야민은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은근히 비판하고, 결단하는 주권자라는 바로크 절대왕권의 이미지를 역전시켜,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주권자라는 반대상을 제출했다. 그 범례로서 햄릿을 들먹이는 벤야민에 대해, 슈미트는 이런 우울한 군주는 단순히 근대주권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상황을 비춘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아직 국가적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조야한혹는 야만적인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주권자에 따라다니는 특유한 무력함은, 국가주권이 확립하는 것과 더불어 해소될 것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런 비판은, 칸토로비츠에 대해서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가 분열하는 두 개의 신체로 찢겨진다고 하는 비극적 문제는, 근대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의 바람을 배반하듯이, 근대의 주권 개념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상 주권자를 괴롭히는 이런 아포리아는, 칸토로비츠의 연구가 관심을 기울인 중세 주권, 혹은 국가주권이 아직 생성 도상에 있던 근대 초기의 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말한다면, 인민주권의 정착에 앞선 18세기까지의 절대주의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능한 주권자가 스스로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비틀거린다는 이 문제는, 원래 주권국가에 있어서의 권리상의 권능과 사실상의 능력 사이의 어긋남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립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다고 간주된 주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통치 능력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주권과 통치 사이의 이런 간극은 결코 메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주권자에게 기대되는 권능이 절대적일수록 더욱 확대된다. 주권이 그 초월의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르는 만큼, 구체적인 통치행위의 실천은 이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이것은 군주제 하에서든 민주제 하에서든 다를 바 없다. 주권을 한 명의 인격에 의해 떠맡았던 과거의 국왕뿐 아니라, 근대 정치의 주권자인 우리 인민도 벗어날 수 없는 곤란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의 군주의 우울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의 우울이기도 하다. 통치에 관련된 모든 정치적 결정을 주권이라는 하나의 규범 근거에 의해 집권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는 근대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이 물음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는 과연 통치할 수 있는가?

 

4. 주권을 넘어선 통치 : 집행권력의 계보학을 위해

근대의 주권 개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아포리아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런 주권의 아포리아를 문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법의 최고 근거인 동시에 법의 외부로 유기된다는 주권의 역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한, 그것은 단순한 사고의 폐색밖에는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왕의 두 신체라는 분석은 출발점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서는 주권 개념을 급진적으로 재고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신체의 이중화에 시달리는 주권자의 비극 이야기 속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눈을 돌려야 할 것은 초월과 경험의 이런 이중성에 의해 열린 새로운 공간에 다름 아니다. 그것에 의해 우리는 비극 속에서 머뭇거리는 주권자를 넘어선 지평으로까지 이끌리게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사고의 지평은, 사실 근대 초기의 비극 작품에서도 그 모습을 간파할 수 있다.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주권자의 전능성에 대한 그 통치능력의 절대적 부족을 보완하는, 혹은 그 약점을 틈타서 이를 이용하는 인물상들이다. 주권자의 주위에는 여러 인물상들이 배회한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리어왕을 따라다니는 광대이며, 코르네유나 라신의 프랑스 고전비극에서는 왕이나 황제의 궁정신하들이, 독일 바로크 비극에서는 책략을 부리는 궁정의 음모가들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바로 주권자의 통치 무능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권자의 권능은 종종 그들에 의해 횡령된다. 현실의 통치 권력이 주권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군주를 지탱하는 궁정이란, 이런 양의성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미셸 푸코는 이렇게 지적한다. 프랑스 고전 비극의 행하는 것은, 군주를 주권 대표자로서 현전시키는 궁정의 의례와 전례를 반대 방향으로하는 것이다. , 거기서 궁정은 오히려 주권을 비극적으로 해체하는 장소로서 묘사되는 것이다.

통치 권력이라는 것은 주권자를 기초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배후에 있는 이런 공간 속에서 자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권력의 공간이야말로 이른바 주권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루는 게 아닐까? 이런 새로운 지평에 관심을 다시 기울일 때, 주권의 초월성은, 권력의 내재성의 평면으로 완전히 해소된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이 내재 평면과의 벗어나기 힘든 의존관계 속에서 상대화된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일 뿐 아니라, 통치행위의 효과로서 주권이 생산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서는 주권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통치가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근대 초기의 정치적 저작가들이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문제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제 중세적인 종교 규범은 붕괴했으나 아직 근대적인 주권 개념은 확립되지 않은 이 시기의 정치적 담론에 있어서, 아무런 법규점에도 의거하지 않는 통치의 모습과 그 귀결에 대한 순수한 사유가 전개됐다고 간주할 수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정치규범을 탐색했던 당시의 정치이론가들에게, 이렇게 단순히 기술화된 통치의 모습은 오로지 비난받아야 할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와 타키투스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이런 통치의 기술을, 공언할 수 없는 이국적인(esoteric)” 기법으로 내몰았다. 통치가 가진 이런 비밀스런 성격은 절대주의의 대표적(repräsentativ) 공공성”(하버마스)이 세련되어감에 따라, 서서히 정치이론의 주제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정치는 바로 공개성을 근본 원칙으로 하게 되며, 그것은 법의 최고 근거인 주권자의 공적 현전에 의해 담보된다. 통치는 주권 하에 속하며, 공개성의 빛 아래에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이처럼 공개성 하에서만 통치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것은, 절대주의의 대표적 공공성하에서든, 더 민주적인 시민적 공공성하에서든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근대의 정치적 공개성이 기능 장애에 빠지고 있다는 것의 징후가 아닐까? 통치로부터 민주주의의 부담을 경감시키려고 하는 최근의 풍조에서 엿보이는 것은, 통치가 정치적 공개성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립화한다는 사태 아닐까? 그것을 오늘날 일으키는 것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든, 경제합리성의 추구이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주권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의 상황의 회귀이다. , 근대 초기의 정치적 저작가들에 의해 기밀”(아르카나)이라고 불렸던 권력 공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정치상황과 현재의 그것 사이의 안이한 동일시는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일 현재, 통치의 규범적 정당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 바로 똑같은 종류의 위기가 문제이게 된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생을 향한 새로운 사고를 찾기 위해서도, 공개성으로부터 물러서 숨은 이 통치공간, 공개성의 근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가주권을 전제로 한 고전적인 근대 민주주의이든, 그 민족주의적인 한계를 비난하는 급진적인 민주주의이든, 단순히 주권 개념에서 문제의 소재를 보고 있는 한, 민주주의의 이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 역할에 여전히 기대를 하는 것이든, 그 위험성을 비난하는 것이든, 주권에 오늘날의 정치학의 궁극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정치적 위기는 주권 개념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효력 상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가령 근대적인 국가주권의 부흥을 꾀하는 것이 이 위기에 대한 잘못된 응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것이 시대착오의 무기력한 해결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로 주권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통치의 지평을 고려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재생을 향한 그 어떤 시도도 불충분한 채로 그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근대정치학에서의 주권 개념의 중심성에 의해 은폐되어버린 이 통치공간이 통치성이라고 명명한 것을 규명하기 위한 작은 기여이기도 하다.

주권에 대한 통치의 양의성으로 가득 찬 관계. 이것은 바로 조르조 아감벤이 왕국과 영광(원저 2007)에서 중심적 주제로서 다뤘던 것이다. 이 저작이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왕국(regno)”통치사이의 상호의존성인 동시에, 이것들의 필연적인 분할이다. 통치는 왕국혹은 영광이라는 주권적 권위에 의한 정당화의 계기를 불가결하게 한다. 그러나 통치는 또한, 항상 그로부터 자립하여 활동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주권의 행사일 터인 통치행위는 해당 주권을 무위 속으로 몰아넣고 말소할 수도 있다. 거꾸로 말하면, 주권은 스스로를 실효적으로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집행되는 것을 필요로 하지만, 바로 그 집행속에서 스스로가 무력해진다는 역설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집행으로서의 통치행위는 결코 단순히 주권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초월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립성을 갖는 독자적인 내재성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력이 항상 초월과 내재로 분열한다는 것이야말로 근대 주권 국가의 이론이 직면한 근본 문제의 하나이다.

게다가 아감벤은 이 고찰을, 신과 그 세계 통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개한다. , 근대국가에서의 주권(‘왕국’)과 통치(‘오이코노미아’)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이미 그 이전에 신학적 패러다임 속에서 논의됐던 무위의 신활동하는 신”, 물러서 숨은 신과 피조물, 신의 원리와 그 잠재력, ‘1원인2원인등등의 관계가 세속화된 것이라는 얘기이다. 거기까지에도 사상사적으로 사정거리를 확대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논고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근대 국가가 신학적인 통치 기계가 내포한 아포리아를 계승하고 있다는 아감벤의 통찰이다. , 입법권력 또는 주권권력과 집행권력 또는 통치권력 사이의 구별이 초래할 초월과 내재의 이중구조이다. 근대 국가에서의 입법권과 행정권의 역할 분담은 겉보기만큼 알기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배후에는 주권과 통치의 관계가 내포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아감벤도 인용하는 홉스의 시민론의 한 구절. “최고명령권[주권]에 속하는 권리와 그 집행은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둘은 떼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고명령권에 속하는 권리와 그 집행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 국가의 통치는, 만물의 제1동인인 신이, 2원인의 질서를 통해 자연스런 결과를 산출하는 통상적인 세계통치와 비슷하다.”

통치의 집행자는 주권자에 의한 입법을 단순히 적용할 뿐만이 아니다. 칼 슈미트가 지적했듯이, 법의 집행은 자신이 적용하려고 하는 바로 그 법 자체를 넘어서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예외상태라고 불렀다. 이를 더욱 파고들어감으로써 왕은 군림(regno)하나 통치(guberno)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의 급진적인 함의를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집행이란 그것이 의거하고 있는 바로 그 주권자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에서는, 이렇게 통치가 규범성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더욱 강하게 의식됐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확립된 근대 주권 국가에서의 삼권분리 하에서는 은폐된다. 집행권력은 주권적 결정의 장소인 입법부에 종속하는 행정부로 길들여진다. 이것이 근대정치학에서 주권과 통치 사이의 분리라는 문제가 보이기 어렵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은, 근대 주권 개념에 의해 구축된 모종의 픽션이다.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치를 단순한 집행권력으로서 이해한다는 오해는, 서양 정치의 역사에 있어서의 가장 중대한 잘못 중 하나이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되는 끝이, 근대의 정치적 고찰이, , 일반의지, 인민주권 등과 같은 공허한 추상물의 배후에서 길을 잃고, 모든 관점에서 볼 때 결정적인 문제, 즉 통치 및 통치와 주권 사이의 접합이라는 문제를 방치한다는 사태이다. 최근작[왕국과 영광]에서 나는 정치의 중심적인 수수께끼는 주권이 아니라 통치, 신이 아니라 천사, 왕이 아니라 장관, 법이 아니라 경찰임을, 더 정확하게는 이것들이 형성하고 계속 움직이는, 이중의 통치기계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거듭 말하지만, 통치는 주권자의 입법을 단순히 적용할 뿐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에 길들여진 행정활동으로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는 본질적으로, 법과 주권으로부터 분리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열리는 것은, 군주를 에워싼 장관의, 법률을 지배하는 관료와 경찰의, 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천사의 세계이다. 통치의 공간은 이른바 주권의 매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근대 초기의 공개성의 근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탐색하려고 한 것은, 이런 매체로서의 권력공간이다. 근대 주권 개념 하에서 구축되어 온 민주적 공개성의 제도들이 신뢰를 잃고 있는 가운데, 근대정치학의 이런 지하 계보에 눈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적 통치의 재생에 있어서 불가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민주적 합의를 위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반민주적인 정치적 공개성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통치 불능때문에 부담이 된 민주주의가, 이제 자꾸만 갈망되고 있는 리더십이라는 것의 단순한 보완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 통치가 스스로의 정당화, 영광, 나중에는 또 포퓰리즘적인 박수갈채로서만 필요로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 [옮긴이] 일본에서도 책 제목의 번역이 분분하다. 옮긴이는 '애도극'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현재로서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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