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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대중 분노케 한다면 국가 아니다”
3대저작 중 마지막 ‘정치론’ 새 번역본
현대 연구자 해석 참조 상세해설 붙여
민주정에 관심 “국가의 근본은 다중”
한겨레 고명섭 기자
» 〈정치론〉
〈정치론〉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김호경 옮김/갈무리·1만6900원

네덜란드 철학자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1632~1677)의 주저로는 <윤리학> <신학-정치론> <정치론> 세 종이 꼽힌다. 이 가운데 마지막 주저인 <정치론>이 새롭게 번역돼 나왔다. 새 번역본에는 주요 구절마다 옮긴이의 상세한 해설이 달렸다. 옮긴이 김호경 교수(서울장신대·신학)는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를 비롯해 스피노자 철학을 오늘의 사상으로 되살려내는 데 공헌을 한 현대 연구자들의 해석을 적극 참조해 해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의 해석을 통해 스피노자는 ‘전복적·급진적’ 사상가의 모습을 좀더 뚜렷이 드러낸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17세기는 근대국가의 태동기였다. 얼핏 보면 스피노자는 매우 관념적인 사유에 골몰했던 비현실적인 사람 같지만, 실상 그의 관심사는 삶의 구체적 지반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촘촘하게 짜인 논리의 그물로 삶의 문제를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해명하려고 했다. 그런 만큼 삶의 현실을 규정하는 정치의 문제도 그의 사상 속에서 해명되어야 했다.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핀 것이 <정치론>이다. 동시에 <정치론>은 먼저 저술된 <윤리학>과 <신학-정치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저작이다. <윤리학>이 자연이라는 총체적 세계 안에 인간을 배치하고 그 인간의 본성을 포착하는 저작이라면, <신학-정치론>에서는 신학과 함께 민주주의 문제가 탐구된다. <정치론>은 <윤리학>의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삼고 <신학-정치론>의 문제의식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 이 사유들을 응집하고 확장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국가의 세 형태로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을 제시하고 이들을 차례로 고찰한다. 스피노자는 세 정체가 다 나름대로 합리적 존재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근본적으로 민주정에 맞춰져 있다. 민주정이야말로 사람들의 본성을 가장 넓게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스피노자는 민주정 부분을 상세히 서술하지 못하고 폐병의 침탈을 받아 44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미완성 유작이다. 그렇지만 앞선 저작들과 연결지어 살필 때 그의 민주주의 정치이론은 어렵지 않게 구성될 수 있으며, 특히 인간과 국가의 본성을 설명한 <정치론> 전반부를 통해 그의 정치사상은 비교적 충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


» 스피노자 “대중 분노케 한다면 국가 아니다”
스피노자 사유의 출발점은 ‘코나투스’(conatus)다.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에게 ‘자기보존본능’이 내재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코나투스라고 부른다. 코나투스에는 정념과 이성이 함께 섞여 있다. 모든 인간은 이 코나투스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욕망이다. 이 욕망에 휘둘려 정념의 노예가 될 때 인간은 부자유 상태에 빠진다. 반대로 이성이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조절하면 그때 인간은 자유롭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욕망을 근절할 수는 없고, 욕망을 좋은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만이 가능하다. 욕망을 전환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이성이다.

인간이 욕망을 제거할 수 없다면 욕망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욕망을 날뛰게 하는, 사랑·미움·시기·분노 따위의 정념들 때문에 인간은 공동의 법이 없으면 갈등과 충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동의 법을 통해 공동의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자유를 누리려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 하는 데 있다. 스피노자는 국가도 인간과 같이 이성과 정념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본다. 국가가 이성의 명령을 따를 때 구성원의 보편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지만, 정념의 힘에 끌려가면 국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패덕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때 이 국가의 근본이 되는 것이 다중(대중)이다. 국가의 힘을 구성하는 것이 다중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목표도 다중의 평화와 자유다. 여기에 스피노자의 민주주의 사상이 배어 있다.

이 다중의 삶을 배반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의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 국가는 자신의 권력으로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정념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국가는 다중의 존경을 받지만, 이성적이지 못한 국가는 다중의 저항에 부닥친다. 그럴 때 국가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공포를 조장하는데, 공포는 결과적으로 국가 권력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다중이 소요를 일으키고 법을 경멸한다면 그 원인은 다중의 사악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사악함에 있다. “신민(국민)들의 부도덕과 무질서와 불복종은 국가에 원인이 있다.” 이 모든 혼란은 국가가 덕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스피노자는 특히 다중의 자율성과 능동성을 강조한다. “맹종하는 것만을 익힌 양떼처럼 신민들을 다루는 국가는, 국가라기보다는 황무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좋은 국가는 다중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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