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그리스 이후의 사상사를 되돌아보면, 현재 진행 중인 혁명세계공화국의 출현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제창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 칸트적 규제이념(뒤따라가지 않을 이상이라고 바꿔 말해도 된다)이 아니라, 위기에서 출발해 발명되는 특수한 정체이념으로서의 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이념은, 민주정도 귀족정도 군주정도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세 정체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방식을 둘러싼 분류였다. 민중(데모스), 다중(멀티튜드)이 권력을 쥐는가, 귀족, 특권계급, 엘리트가 과두제 지배를 행하는가, 아니면 왕, 절대군주에 통치를 맡기는가. 자세한 것은 생략하지만, 폴리비오스 이후의 세 가지 정체론은 주권을 둘러싼 유형론인 동시에 순환론이기도 했다. 어떤 통치유형에도 고유한 결함이 있으며, 그 결함 때문에 장기간 지속되면 반드시 부패하여 스러지기에 세 정체는 순환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은 그 본원적 불안정성 내지 중우정치에 의해, 군주를 구세주로서 도래시킨다(최초의 군주정은 민주적 독재였다). 데모스나 멀티튜드[다중]의 비호자로 처신하는 군주의 정치는 특권적 소수자의 반발과 저항에 의해 실질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귀족정으로 이행한다. 그리고 정치에 귀족층의 등장은 그들과 피지배층 사이에 계급투쟁을 초래하며, 이 투쟁은 국가의 하부를 떠받치는 인민의 승리로 끝난다. 이리하여 사이클이 닫히며, 재개될 것이다. 세 정체론은 곧 정체에 고유한 부패를 둘러싼 이론, 이런 의미에서 정체위기론이며, 부패에 의한 위기의 영구순환을 결과로서 주장하는 것이었다. ‘부패가 반드시 도덕적 부패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일개 생명체로서의 정체가 품고 있는 구조적 한계나 결함을 정체론은 부패의 이름으로 가리켰다. 공화주의는 이 부패에 맞서는 지속 가능한 정체를 구상하는 곳에서 이론적으로 연원한다. 권력을 둘러싼 누구라는 물음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쥐더라도 국가를 무너뜨리지 않고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는 물음이 공화주의를 형성한다. 물론 그 대답에는 다양한 변이variation, 위상, 역사적 변화가 있지만, 공화주의를 공화주의답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체의 전권을 넘기는 주권을 주권자로서 출현시키는 대신에 그 누구에게도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는다는, 그리고 정치의 영역 전체에 외부로부터 선험적인 목적 그것으로 향함으로써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발상은 혼합정체론에서 이윽고 삼권분립론으로 계승되는 권력분산의 이론으로 성장하며, 후자의 발상은 정치에 이나 인간의 완성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지속적인 목적을 내장시켰다built-in. 목적론적 정치란, 정체지속 문제 혹은 그 욕망의 철학적 표현이다. 공화주의자는 권력의 누구가 아니라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국가주권론자이며, 세속에서 살아가는 형이상학자이다. 정체의 부패를 끊임없이 억누르고, 정체를 일개의 생명체로서 지속시키는 사상이 공화주의의 알파이다. 부패에 대한 저항, 지속에 대한 갈망이 공화주의를 키운 것이다.

오늘날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durabilité은 유행 이상의 공공적 문제로서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채무가 커져도 상환방법이 확립되어 있으면 괜찮다는 케인스주의적 사상의 슬로건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긴축 재정에 의해서도 시장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하는 신자유주의적 기대의 별명이며, “지속 가능한 복지사회란 어디까지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하는가(그러나 누가?)를 둘러싼 싸움판의 이름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일반이란 생태계와 에너지 문제이며, 지속 가능성이 공공의 것 res publica”의 핵심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세계 공화국 res publica”이 세계의 지속 문제 속에 실재하고 있다. 공화주의의 역사와 앞에서 본 오늘날의 혁명의 실태가 가르쳐주는 것은, 지속 가능성이란 어떤 정치를 배제하는, 숨은 사회계약이며, 그런 것으로서 다른 정치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배제되는 것은 물론 부패이며, 이로부터 생겨나는 정체의 죽음과 재생, 즉 일반적 의미에서의 혁명이며, 이 배제와 동시에, 구성원 사이의 계급투쟁은 공동체 내에서 사회문제라는 이름을 다시 부여받는다. 이 배제와 전환은 어디까지나 노력해야 할 목표일 뿐이다. 만약 그것이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면, 인간이 완성되는 완전한 정체가 있다는 얘기가 되며, 지속을 문제로서 제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화국은 순환론으로서의 세 정체론이 가리키는, 약자가 패배하고 손해를 보는 순수한 힘관계의 영역을, 자신의 존속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서, 적극적으로 내부에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절대적 강자(그 자에게 이기면 정체가 안정되는 인간 또는 세력)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행방에 우연성이 따라다니는 권력투쟁의 영역을 공화국은 스스로를 부패시키는 요인이라며 계속 배제하며, 그것을 자신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부패란 공화주의가 권력을 문제 삼는 정치에 부여하는 호칭에 다름 아니며, 공화주의적인 정치는 국내적으로는 이 부패와의 싸움으로서 수행될 것이다. 공공성 개념을 정치의 요체에 놓으려고 하는 정치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자는 계급투쟁그 자체를 적으로 삼는 것이다. 분쟁 없는 사회가 항상 공공의 것 = 공화국의 이상이면서, 그것이 달성되지 않는 것도 또한, 현실적인 일종의 이상을 구성한다. 공화국에 있어서 계급투쟁은 적이자 친구, 친구이자 적이다.

이때 진정한 공화주의자, 근대에서는 가령 마키아벨리는, 어떤 정책이 공화국의 이런 내재적 목표에 적합한가에 대해 충분히 자각적이었다. 공화국 내부로부터 분쟁을 없애고 공화국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영토 확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침략의 을 계속 주는 것으로써만 내부의 분배 문제가 계급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공화국의 지속은 공화국의 팽창, 성장에 달려 있다. ‘이나 인간의 완성이라는 정치의 궁극 목표, 정치의 형이상학적 사명은, 세속적으로는 공화국의 확대라는 전략 목표로 변환될 것이다. 대외적 긴장이야말로, 내부에서 부패를 키우는 정치적 우연성을 없애준다. 외부에서 유래하는 우연성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며, 공화국의 본질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마키아벨리가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탐지해낸 교훈이었다.

그렇게 하면, 오늘날의 혁명이 공화주의에 들이대는 난점도 동시에 불거진다. 오늘날의 지속 가능성은, 세계공화국에는 더 이상 침략 가능한 외부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 곳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등장 이후 1970년대까지는, 계속 늘어나는 공적 채무가 그 외부였을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이 외부를,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채무의 증대로 대체하려고 했다. 채무로부터 부를 끌어내는 전략을, 전후 세계는 공화주의의 요체로 삼아온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물리적인 영토가 국가의 진정한 영토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근대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프리드리히 2세 이후의 전략 전환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외부의 영토로부터 부를 끌어내는 전략의 유효성이 상실되고, 지속 가능성 문제가 순수하게, 즉 그 어떤 해결책도 동반하지 않고 부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공공성 문제인 것이다. 혹은 우리 눈앞에서 출현하고 있는 세계공화국이란 죽음의 문턱에 있는 공화주의의 모습이다. 구성원에 대한 을 그것으로부터 취해야 할 외부를 상실한 공화국은, 어떻게 지속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 ‘기대에 의해 채무의 영토적 외부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현실의 부로 전환하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상적 자본주의 노선조차도 효력을 잃을 때, 공화국은 구성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문제가 지속인 한에서, 실행 가능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대답은 분명하다. 공화국의 축소이다. ‘탈성장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것은 공화국에 있어서 부패요인의 성장 이외일 수 있을까? 정치를 다시 한 번, 정체론이 발견한 힘관계와 우연성의 영역에 맡기는 게 되지 않을까? 외부에 존재할 터인 영토채무의 최종 부담자나 상정 원본의 현실적 홀더holder나 보험금의 지급자 등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공화주의에는 계급투쟁이라는 부패원인을 제거하는 수단이 없을 것이다. 부담을 누군가에게 요구해야만 하며, 누군가라는 문제의 삭제에 공화국의 존립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성립시키는 사회계약에는 그것을 삭제하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대외 전쟁 때에는, 공화국은 모든 것을 갹출하라고 시민에게 요구할 수 있지만, 내전에 관한 규칙을 이 사회계약은 정할 수 없다. 내전을 정지하라, 이것이 계약의 본뜻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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