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에르 로장발롱이 <21세기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기조강연을 했나 봅니다. <아사히신문>에 실린 것을 옮겨둡니다. 아래의 링크는 원문입니다. 


https://www.asahi.com/articles/DA3S13162714.html


기조 강연 21세기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 

写真・図版


  현재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정치가의 태만이나 정치 부패도 있지만더 구조적인 원인은선거에 의한 의회제 민주주의가 더 이상 충분히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거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을 대표한다, 통치자나 제도에 정당성을 제공한다, 의원을 견제한다는 세 가지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주의가 진척되고, 시민 개개인의 정체성이 부각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선거에서 다수파를 획득했다고 해도, 더 이상 사회 전체의 의사는 아닙니다. 이제 사회는 많은 소수파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는 정치에 반영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선거에서는 대표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선거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장이 아니라, 욕구 불만을 표현하는 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포퓰리즘은 그런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전 대통령이 나는 인민이다라고 말했듯이, 포퓰리즘에서는 지도자가 인민을 체현하고 있다고 표방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인이나 이민자를 배척하고, “진정한 인민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어 대립시키고, 일체감을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포퓰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사회의 의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대표의 채널을 늘리고 민주주의를 복잡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되지 않은 사람들은 공적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어둠 속에서 방치되면 편견이나 불신, 공포가 점점 심해집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공적 공간에서 가시화하고, 모든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 의한 대표제를 추진해야 합니다. “사회를 이야기하기때문에 문학이나 사진, 영화 등 다양한 대처에 의해, 있는 그대로를 서로 인정하는 상호 이해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한 임명의 순간뿐 아니라 선거와 선거 사이에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뿐 아니라, 권력에서 벗어나 감시나 규제를 담당하는 독립기관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헌법재판소도 그 중 하나겠죠. “사람들의 눈도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민에 의한 감시는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라는 이념을 지키는 데 불가결합니다. 시민 자신이 주체이며, 책임자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