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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성의 근원 (5) : 위장과 은폐의 바로크

글쓴이 : 大竹弘二

출처 : AT플러스 15 : 2013년 2월, 96-114쪽.

옮긴이 : 김상운


공개성의 근원 (5) - 위장과 은폐의 바로크20151102.pdf


1. 현인과 대중

근대정치의 출발점에는 종교전쟁이라는 일종의 예외상태가 있었다. 이런 아노미상태를 통치하기 위해 요청된 것이 자주 통상적인 법이나 도덕을 훌쩍 뛰어넘는 국가이성이다. 규범에 어긋나는 이런 비상수단은 근대초기에는 특히 정치 지배자에 의한 ‘위장’의 문제로서 제기됐다. ‘위장(simulatio)’과 ‘은폐(dissimulatio)’는 바로크시기에 특히 선호된 정치적 주제 중 하나이다. 그것은 비난받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지배자가 지녀야 하는 ‘사려(prudence)’1)로 생각됐던 것이다. 정치학자 유스투스 립시우스(Justus Lipsius, 1547∼1606)는 저서 『정치학』에서 여우로서의 군주의 소질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사려’에는 일정한 속임수가 포함된다고 말한다.


비록 물이 약간 섞였다고 해도 포도주는 포도주이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비록 몇 방울의 기만이 섞였다 해도, 사려는 여전히 사려이다.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좋은 목적을 위한 소극적인 기만이다.2)

(4권 13장)


립시우스는 이 속임수를 동반하는 사려, 즉 ‘불순한 사려(prudentia mixta)’의 사용을 분명히 인정한다. 립시우스를 비롯한 타키투스주의자들에게 위장 기술은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허용되는 정치수단이며, 나아가 통치를 행하는 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할 정치수단이나 다름없다. 이상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56?~ 120?)의 『연대기』에 등장하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이다.3)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미덕이라고 믿어지고 있는 것 중에서 본심을 감추는 성향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했다”4)(4권 71절).

정치지배자는 거짓말을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중을 향하는 공적인 이야기와 정치의 심오함을 통달한 약간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비밀의례[密儀]의 이야기로 분열된다. ‘정치적 사려’란 소수자를 수신자로 한 비교적(秘教的)인 지식이나 다름없다. 근대초기의 이런 사상에서 간파할 수 있는 것은 고대 이후의 ‘현인’이라는 이상이다. 특히 근대 초기에는 립시우스로 대표되는 신플라톤주의의 지대한 영향 아래서 이런 현인론에 근거한 처세담5)이 유행하게 된다. 그러나 근대 초기의 이런 ‘현인’은 단순히 관조적 생활에 몰두하는 비정치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스토아적 현인은 여기서 마키아벨리즘 또는 타키투스주의와 결부돼 있다. 즉, 그는 아르카나(arcana)6)나 국가이성이라는 비밀의 정치적 지식을 조작하는 정치 엘리트이다. 이리하여 근대초기의 정치이론에서는 오로지 소수의 지배자를 위해 쓴 ‘군주감(Fürstenspiegel, Miroirs des princes)’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제왕학 문헌이 일대 장르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대중용과 현인용이라는 이중적 이야기하기의 사상의 고대적 원천은 타케투스만이 아니다. 그것은 주지하듯이, 지배자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종중 유익하다고 역설한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미 발견되는 것이며(389B-C), 이것은 일반적으로 ‘고귀한 거짓말’(414B)로서 인구에 회자된다. 플라톤 이후의 이런 비교(秘敎)주의를 정치철학의 전통의 핵심으로 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치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이다. 그는 현대에서는 망각된 ‘행간에 쓰기’라는 기법을 계몽주의 이전의 근대철학자 속에서 발견하려 한다.7) 그에 따르면, 근세의 철학적 저작에는, 아마도 18세기의 레싱에 이르기까지, 공교(公敎)와 비교(秘敎)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독특한 저술 기법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계몽주의의 지평에 이르는 현대의 우리는 은폐하면서 진리를 개시한다는 기법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스트라우스가 말하듯이 16/17세기에서는 책의 비교성이 큰 문제계를 이루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비밀의 지식을 포함한 저작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될 필요가 없으며, 잘못된 자의 손에 넘어가면 그 내용이 파괴되고 만다. 그 때문에 예를 들어 당시의 스페인에서는 타키투스의 저작이 널리 출판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주 일부 사람을 위한 초고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고, 또 알노르트 크라프마의 아르카나론에 대한 응답으로 가브리엘 노데가 집필한 『쿠데타에 관한 정치적 성찰』(1639년)은 소수의 정지지배자에게 보낸 저작으로, 초판을 겨우 12부만 인쇄했다. 이런 문맥 속에서 대중과 거리를 취하는 스토아적 현인이 이 시대의 모범이 됐던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당시의 ‘군주론’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이성론과 결합됨으로써 엘리트주의적 비밀정치, 즉 일종의 ‘철인정치’를 정당화하게 된다.

다른 한편, 계몽주의 철학이 추구한 것은 이렇게 스스로를 비교의 영역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18세기에 등장하는 역사철학의 도움을 빌려 수행된다. 계몽의 시대에도 확실히 비밀의 영역은 존재한다. 즉, 시간적인 미래라는 영역이다. 자신의 의도를 은닉하는 지배자와 대중 사이에 존재한 ‘관찰의 비대칭’은 이제 과거와 미래 사이의 ‘시간적인 비대칭’으로 전이된다.8) 근대에서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은 미래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의 진행에 의해 밝혀지게 될 비밀이다. 역사철학적인 진보신앙은 모든 비밀의 폭로를 필연적이게 한다. 비밀이나 거짓말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일정한 시간적 유예 후에 결국에는 반드시 진리가 겉으로 드러난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해명했듯이, 근대 역사철학은 계몽의 최종적인 승리를 보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아르카나는 ‘역사철학의 비밀(arcana)’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 혁명의 승리와 아르카나의 폐절은 미리 예정된 것이다.9)

반면 철학의 비교성이라는 반근대주의적 입장에 천착하는 스트라우스에게는 철학적 진리와 정치 사이의 가교에 대한 회의가 있다. 그때 그의 관심은 엘리트에 의한 ‘철인정치’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자가 겪는 박해의 문제에 있었다. 철학자가 이중의 저술 기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진리를 공개적으로 개시함으로써 다름 아닌 정치적 박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비교적 이야기 속에서 철학자는 자신의 내면적 자유를 보존한다. 박해의 위험이 있는 곳에서 철학적 저작은 비교성을 띤다는 것이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박해와 저술 기법의 이런 관련은 대중이 철학자를 탄핵한다고 관해 말했던 플라톤에서 시작되며(『국가』 494A), 마이모니데스 등 중세 유대-이슬람 철학을 거쳐 홉스나 스피노자 같은 근세 유럽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트라우스에게 이런 사상의 자유의 확보는 현대의 대중사회 상황에서도 여전히 철지난 문제가 아니다. 그리하여 그 자신은 관조적 삶의 우위라는 고대 그리스적인 이상으로 은퇴하게 된다.

스트라우스 자신의 이런 입장에 동의하느냐 여부는 차치하고, 박해와 비교주의에 일정한 관계가 있음은 확실하다. 왜 비밀과 은폐의 몸짓이 특히 근대 초기의 정치적·철학적 담론 속에서 이렇게도 많이 발견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스피노자의 저작에 대중용과 현인용의 이중언어가 발견된다는 것은 이미 누차 지적되었는데, 이루미야후 요벨은 스트라우스의 테제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오로지 특수한 유대인적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즉, 종교적 박해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은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베리아의 개종 유대인인 ‘마라노’의 경험이다.10) 그렇지만 이 시대 철학에서의 비교주의는 결코 스피노자나 유대인에게 특유한 것이 아니며, 마라노성으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근대초기의 정치철학에서 위장의 문제는 더 일반적으로 종교전쟁이라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 아래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종교분열의 시대, 스피노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배자의 압제에 의한 것이든, 대중의 광신에 의한 것이든, 박해의 위험을 앞두고 자신의 신앙과 내면성을 위장하도록 강제당했다. 거기서는 내면과 외면의 분리는 극한까지 확대된다. 위장과 은폐는, 이것이 군주의 국가이성적 술책 때문이든, 피박해자의 내면적 자유의 보호 때문이든, 이 내전의 시대에 특유한 몸짓이다. 그것은 이른바 자신의 참된 의도를 은닉함으로써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크적인 ‘현인’의 처세술이나 다름없다.


2. 내전 시대의 군주감(君主鑑) : 덕에서 사려로

그러나 사실상 위장과 은폐는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에서는 오로지 지배자를 위한 ‘군주감’이라는 장르 속에서 다뤄진 주제였다. 이런 비밀 정치의 권유에서 전제되고 있는 것은 군주와 시민 사이의 가교 불가능한 간극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제시된 것이 16세기 전반까지 겨우 존재했던 공화주의적 정신의 소멸이다. 그때까지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번창하던 시민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는 전란 속에서 진전되고 있던 군주로의 집권화 앞에서 쇠퇴한다. 이와 더불어 공화주의적 시민은 정치의 장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이른바 수동적인 단순한 신민으로 탈정치화된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강하게 간직하고 있던 공화주의에 대한 신뢰는 메디치가의 중신(重臣)이 됐던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에게서는 극히 희박해진다. 1527년부터 30년에 걸쳐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전제(専制) 지배에 대한 최후의 공화주의적 저항이 행해졌을 때, 귀차르디니는 동시기에 집필한 잠언집 『리코르디』에서 시민의 정치관여에 관해 비관적인 전망을 말했다. “정청(政庁, 팔라초palazzo)와 광장(広場, plazza) 사이에는 매우 짙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거나 혹은 두꺼운 벽으로 차단되어 있기에, 인간의 눈을 갖고서는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다.”11)

이런 변화와 더불어, 16세기 중반 이후에는 시민의 공화주의적 자유가 정치사상의 관심사에서 물러나고, 그 대신 군주의 통치술이라는 문제가 부상하게 된다. 바로크 시기에는 인문주의적 공화주의가 군주의 변명론으로 대체된 것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것은 더 이상 공화정 아래서의 시민이 갖춰야 할 덕이 아니라, 군주에게 필요하다고 간주된 덕이다. 현인이어야 할 군주에게 바쳐진 심오한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시기의 일련의 ‘군주감’은 공화주의의 종언의 표식에 다름 아니다.

확실히 군주감은 이미 세네카 등 고대 로마의 스토아주의자에 의해 선호되고, 중세에서도 계속 존재했던 전통적인 장르이다. 거기서 문제가 됐던 것은 유덕한 군주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의무론이며, 폭군이 되지 않기 위한 조건이다. 이것은 고대 스토아파의 군주감이든, 중세의 그리스도적인 군주감이든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폭군과 유덕한 군주, 혹은 전제(専制)와 진정한 왕제(王制)를 구별하는 문제설정은 근대 초기에 종교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서서히 받아들여지게 된다. 즉, 평온과 질서의 회복이 사람들의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가운데, 이런 규범적 구별을 도입하는 것은 자주 저항권이나 폭군방법을 정당화하고 내전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기피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초기에 등장한 군주감은 전통적인 군주감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즉, 그것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군주의 처세술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단순히 유덕하다는 것은 더 이상 군주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음모나 반란의 가능성에 항상 노출된 군주가 그 위험을 피하려면 덕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자주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전통적 군주감이 상정했듯이, 군주는 도덕적 혹은 신학적으로 완벽한 이상적 인격을 갖출 필요가 없다. 만인이 모범으로 삼는 존재일 필요도 없다. 적대성 속에서 살아가는 군주는 위장과 비밀에 의해 사람들을 속이면서 통치를 수행해야 한다. 이 시대의 군주감에서 역설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교활한 사려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전통적인 군주감의 스타일을 따른 저작이면서도 그것과는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이유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12) 그가 말하는 역량(virtu)은 그 이전의 군주감이 문제 삼았던 덕(virtus)이 아니다. 그는 영원불변한 군주의 인격 이상에 관해 말하는 덕론(徳論)과는 무관하다. 『군주론』에서는 군주의 바람직한 이상상을 역설하는 군주감이 “꿈에서나 나올 법한 군주에 대한 이야기”라며 버림을 받는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모습을 보려고도 알려고도 않은 채,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으로 논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13) (15절).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무시간적인 도덕 규범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 새로운 군주의 역량(virtu)은 급진적으로 시간화된 세계 속에서, 시기에 따라 그때마다 자신의 외관을 바꿔가는 능력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주가 어떤 내면성과 인간본성이 아니라, 그 외양이나 평판에 다름없다는 점이다.

『군주론』에서 거듭 강조되는 것은 군주에게 명성이나 평판이 어떻게 결정적으로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군주는 실제로 어떠한가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 의한 위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군주는 앞서 말한 좋은 기질은 무엇부터 무엇까지 현실에서 갖추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갖추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대담하게 이렇게 말해두자. 이렇게 훌륭한 기질을 갖추고 있고, 애지중지 지키는 것은 해롭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유익하다고 말이다.14) (18절)


이것은 단순한 ‘마키아벨리주의’적인 권모술수를 역설하는 게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군주의 힘이란 그가 대중 앞에 현전하는 이미지 속에 있다는 것이다. 힘을 지닌 자란 힘을 갖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군주는 자신의 외양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군주론』에서는 어떻게 민중의 존경을 얻어내야 하는가, 혹은 미움을 받고 경멸당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가를 말한다(19절). 외적(外敵)에 대해서든, 국내의 음모·반란에 대해서든, 군주는 자신의 명성과 평판을 가장 유효한 무기로 쓸 수 있다. 군주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닌 위장의 달인이다.

이리하여 16세기 후반 이후의 타키투스주의적인 군주감에서도 위장은 중요 주제가 된다.15) 립시우스의 『정치학』도 군주감의 겉모양[体裁]16)을 취한 저작이지만, 거기서는 ‘덕’과 더불어 정치생활의 두 가지 기둥을 이루는 원리로서, 기만을 포함한 ‘사려’가 말해진다. 올란드[네덜란드] 독립 전쟁 속에서 몇 번이나 개종을 반복하면서 자주 ‘카멜레온’이라고 야유를 받은 립시우스 자신도 종교전쟁 속에서 스스로를 위장하는 법을 몸에 익혔다고 말할 수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가이성·아르카나論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피오네 암미라토(Scipione Ammirato)의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에 관한 논설(Discorsi sopra Cornelio Tacito ; Discourses upon Cornelius Tacitus)』는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장사를 하는 상인과 마찬가지로 비밀 장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권장하며, 지배자의 위장이나 기만을 옹호한다.17) 아르놀트 클라프마르(Arnold Clapmar)의 『공무의 아르카나에 관해(De arcanis rerum publicarum)』에서도 6권(libri sex)의 전편에 걸쳐 아르카나 실천의 일부로서의 ‘위장’(simulacra)이 논의된다.18) 또한 타키투스주의는 1600년 전후에 엘리자베스 왕조의 잉글랜드에도 전파되고, 특히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에섹스 백작 주변의 동아리에서 관심을 끌었는데,19) 그 중 한 명이었던 프랜시스 베이컨도 『수상록』(1597/1625)의 제6편을 ‘위장과 은폐’에 관해 고찰을 할애한다. 그는 “지식은 힘”이라고 논한 자연과학적 연구자에 어울리게 위장의 술책을 비판하고 있으나, 일정한 유보 아래서 역시 이것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내전 상황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어디까지나 위장의 기술의 사용을 거부한 미셸 드 몽테뉴 같은 도덕주의자는 예외였다고 하겠다. 위그노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썼던 『에세이』(1580/88)에서는 이렇게 단언한다.


왜냐하면 요사이 크게 대접받고 있는 분장이나 위장 같은 새로운 덕에 관해서는, 나는 이것을 철저하게 미워한다. 또 모든 덕 중에서 나는 이것에 마음의 비겁하고 야비함을 나타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20) (2권 17장)


그러나 다른 한편, 몽테뉴의 친구였던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샤론의 『지혜에 관해』(1601)도 내전 시대의 처세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작이지만, 그 속에서는 불신이나 불성실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에서는 “개인에게 악덕인 듯한 은폐는 군주에게는 극히 필요 불가결하다”고 말한다21)(3권 2장 7).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장은 살아남기 위해 불가결한 처세술로 의식됐던 것이다.


3. 문명, 의례, 위선

외양을 가장 중시하는 듯한 삶의 방식은 군주뿐 아니라 상류계급의 궁정인 전반이 익혀야 할 이른바 ‘예의범절[격식]’로서 서서히 정착된다. 따라서 유명한 발타자르 카스틸리오네(Balthazar Castiglione)의 『궁정인(Il Libro del Cortegiano ; The Book of the Courtier)』(1528)이나 조반니 델라 카사(Giovanni della Casa)의 『예의범절(격식, Galateo)』(1558) 같은 궁정 예법을 위한 입문서도 이 시대에 특징적인 저작 장르이다. 궁정인으로서 바람직한 행동거지에 관해 상세하게 해설한 이 저작들에서 설파되는 것은 인격적 도야 등이 아니라 복장, 대화법, 식사 방식 등 사교상의 일정한 양식이다. 거기에는 의례나 예법[격식] 같은 것에 대한 매우 형식주의적인 집착이 있다. 궁정인에게는 상품(上品)으로 보이는 외양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궁정생활은 이른바 ‘가면’의 삶이다. 거기서는 외견상의 행태야말로 유덕함을 증명한다. 궁정인들은 타자 앞에서 연극적으로 자기를 제시함으로써 살아간다. 이런 외견과 현전성이 우위에 선 가운데 절대 왕정기의 ‘대표적 공공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예절 입문서는 근대 초기 민중문화로부터 상층계급의 철수를 보여준다. 이미 역사가 피터 버크(Peter Burke)가 밝힌 대로, 일찍이 중세에서는 상층문화와 하층문화의 구별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귀족이나 지배자도 민중의 축제(카니발)에 참여했고, 길거리의 예능인이나 광대도 왕 앞에서 연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층계급은 대중으로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왕후·귀족은 품위 있는 예법과 세련된 행동을 익힘으로써 야만적이고 몽매한 민중문화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하려 한 것이다.22)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더 넓은 관점에서 상층계급의 예법의 이런 유행을 ‘문명화 과정’의 결정적인 첫걸음으로 간주하고 있다.23) 그는 이 시대의 ‘예의(civilité)’ 개념 속에서 ‘문명(civilisation)’ 개념의 근원을 찾아내려 한다. 예의범절 같은 외면적 형식을 통해 정념의 발로를 억누르고 자신의 행동양식을 통제하는 ‘궁정적 합리성’이란,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일종의 자기 감시 메커니즘이며, 이로부터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근대적 개인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 슈미트도 이 시대의 ‘정치’, ‘내치(polizei)’와 더불어 ‘예의(Politesse)’ 개념의 출현을, 그가 생각한 문명화, 즉 유럽 공법 아래서의 전쟁의 제한과 관련짓는다.

겉보기의 효과에 집착한 바로크 시기의 현인론으로 특히 유명한 것이 스페인의 예수회 계열의 사상가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의 『신탁 지침 및 사려의 기술(Oráculo manual y arte de prudencia)』(1647)이다.24) (19세기에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번역에 의해 알려지게 되기 이전에) 이미 동시대의 프랑스에서 『궁정인』이라는 제목으로 보급된 이 저작에서는25) 궁정인에게 전형적인 삶의 방식, 즉 행위의 형식을 갖추는 것에 통한 처세술이 설파되고 있다.


어떻게 잘 해낼 것인지가 모든 사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남에게 주는 인상이 좋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교묘하게 파악한다. 우아한 행동거지는 생활을 화려하게 한다. 품위 있는 행동을 마음에 새긴다면, 어떤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26) (14번)


마키아벨리를 격렬하게 탄핵한 가톨릭 예수회의 회원이지만, 그의 이 저작에서는 틀림없이 마키아벨리즘 또는 타키투스주의의 흔적이 발견된다. 즉, 현명한 삶의 방식이란 위장에 의한 삶인 것이다.


사물은 실제 내용보다 겉보기가 버젓이 통용되는 것이다. … 요점은 겉보기에 좋은 것이 내용의 완벽함을 보여주는 최상의 표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27) (130번)


이 시대의 처세담에서 오로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라는 행위의 형식이다. 이처럼 가시적인 외면의 형식에 기초한 궁정세계의 정치적 공공공간은 자신의 본질을 결코 밝히지 않는 바로크적인 침묵과 은폐의 몸짓과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도덕론자들(moralist)의 저작에는 이처럼 외견상의 행동거지나 격식에 의해 지배된 궁정 세계에 대한 신랄한 눈길을 간파할 수 있다. 라 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1613~1680)의 『잠언집』(1665) 전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세간에서 말해지는 미덕의 배후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를 폭로하고, 미덕의 허위성을 보여주려는 몸짓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미덕은 대부분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28) 그렇지만 그는 이른바 도덕가가 아니며, 이러한 세태에 대한 윤리적 비판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악덕의 사용은 종종 처세에 유용한 사려로 간주된다.


악덕은 약을 조제하는 데 독이 사용되듯이, 미덕의 조제에 사용될 수 있다. 사려가 이를 혼합하고 완화하여, 인생의 고난에 잘 듣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29) (182번)


그는 그저 미덕과 악덕이 뒤섞인 ‘위선’으로서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판적 관찰자에 머물고 있다. “위선은 악덕이 미덕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시이다”(218번).30)

라 브뤼에르(Jean de La Bruyère, 1645~1696)도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풍속을 풍자한 저작 『캐릭터들(Les Charactères)』(1688)에서 이렇게 위선으로 가득 찬 세태를 묘사한다. “인간은 날 때부터 거짓말쟁이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자연스럽지만, 인간은 외관과 장식을 욕망한다”(제16장 22).31) 이것은 특히 궁정생활에서 현저하게 간파할 수 있다. 궁정인이야말로 본심을 속이고 처신할 수 있는 위장의 달인이다. “궁정풍을 잘 아는 사람은 몸짓도 안색도 얼굴도 자유자재로 한다. 좀처럼 속마음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흉한 것도 못 본 척하며 적에 대해서도 미소를 지으며 불쾌감도 꾹 누르고, 정념도 가장하며, 심정은 거짓부렁이고, 자신의 본심과는 거꾸로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세련도 필경 허위라는 부덕일 뿐이다”(제8장 2).32)

라 로슈푸코나 라 브뤼에르가 이런 책들을 집필했던 17세기 후반은, 위그노 전쟁이 종결된 것은 물론이고 프롱드의 난(1648-53년)33)도 이미 진압되고, 절대왕정이 그 기초를 확고히 다진 루이14세의 시대이다. 그러나 위장에 의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과거의 내전 시대의 불신과 의심의 공간은 어떤 의미에서 궁중의 내부로 전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프랑스의 도덕론자들의 저작이 보여주는 것은 절대왕정기의 궁정생활이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야만 하는 내전 속에서의 삶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는 통찰이나 다름없다. 이런 한에서 이들은 저 타키투스주의적인 내전이론가들의 틀림없는 후예인 것이다.


4. 대중에 대한 공포

위장을 하는 정치지배자들의 삶과 대중의 삶 사이의 거리를 넓힌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종교전쟁의 격화(escalate)이다. 종교개혁에 따른 대립과 혼란의 확대는 지배자와 지식인들에게 정동적인 존재로서의 대중에 대한 경멸 혹은 공포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의례나 격식[예법]을 통해 스토아주의적으로 정념을 억누르려 하는 현인에 대해, 비이성적인 대중은 격정의 발로를 억누를 수 없으며 광신으로 흐르게 된다. 대중용으로는 다른 말투를 사용하는 지배자의 이중언어도 이로부터 요청된다. 지배자에게 현인이기를 요구하는 이 시대의 담론이 보여주는 것은 이런 대중 멸시 혹은 대중공포의 의식이다.

대중에 대한 경멸적 감정은 얼핏 보면, 아직 종교전쟁이라는 문제와 무관했던 마키아벨리에게서도 존재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인상과는 반대로, 그는 여전히 민중이라는 존재에 높은 정치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확실히 민중은 지배자를 그 외양만으로 평가하는 것이며, 때문에 군주는 오명이나 악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수법34)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군주의 지배의 안정성은 바로 민중에게서 나오는 평판에 의존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키아벨리에게서 정치지배는 뭔가의 초월적·신학적 근거에 의해 ‘위로부터’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정념과 상상력에 의해 ‘아래로부터’ 한정되는 것이다. 반면, 귀차르디니의 『리코르디』에서는 곳곳에서 민중에 대한 가차 없는 모욕적 발언을 찾아볼 수 있다. “인민을 말한다는 것은 미쳐 날뛰는 짐승을 말한다는 것과 같다. 이 놈들은 셀 수 없는 실수와 바보 같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35) “인민에 관해 말하는 자는 바로 광인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정한 견해가 없고 오류투성이의 도깨비인 것이다”36) 운운.

이런 대중 멸시는 신스토아주의자들의 사려론에서 특히 현저하다. 정념에 쉽게 휩쓸리는 대중의 억견은 현인(혹은 현인이어야 할 군주)에게 장애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립시우스는 『정치학』에서 민중의 특징을 ‘쉽게 바뀐다’, ‘정념에 사로잡힌다’, ‘판단력을 결여한다’, ‘국가를 무시한다’ 등등으로 일일이 열거하며(4권 5장),37) 그들을 정치적 불안정성의 원인으로 간주한다. 스토아적 현인론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샤론의 『사려에 관해서』에서도 “지혜에 있어서 두 가지 악 혹은 두 가지 명백한 장애물”인 “민중의 억견이나 악덕” 및 “정념”이 지적되며,38) 이것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2권 1장). 이런 “대중에 대한 공포”는 스피노자에게서도 여전히 보인다. 그의 『신학정치론』(1670)은 ‘철학적 독자’만을 겨냥한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포, 희망, 증오, 분노 등의 정동에 휩쓸리고 편견이나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민중은 자유로운 철학을 방해할 뿐이기 때문이다.39)

정념적 존재로서의 대중에 대한 이런 인식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정동을 이용한 정치 전략도 산출하게 된다. 즉, 종교를 통한 대중의 정념의 통제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종교의 이런 정치 이용을 권장한다.


공화국이나 왕국의 주권자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종교의 토대를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이렇게 해두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각각의 국가에 종교적 분위기를 침투시킬 수 있으며, 그 결과 국내의 질서가 갖춰지고, 그 통일도 강고해진다. 설령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종교적인 분위기를 무르익게 할 것 같은 것이라면, 뭐든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40) (1권 12장)


귀차르디니도 더 경멸적인 말투를 사용해 대중은 종교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종교라든가 혹은 신의 이름과 관련된다고 생각되는 것과는 결코 싸워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바보들의 두뇌에서 터무니없이 커다란 힘을 휘두르기 때문이다.”41)

근대정치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세에서 종교의 정치적 우위를 부정한 것이다. 정치는 이제 종교로부터 자립함으로써 종교를 자신의 도구로 삼을 가능성도 입수하게 된다. 자율적 시스템으로서의 근대 정치 아래서 종교는 자주 정치에 의해 이용된다. 즉, 타키투스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는 대중용 수사학으로 환원되며, 미신이 깊이 박혀 있는 대중의 지배수단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암미라토는 타키투스론에 대한 보론에서 종교적 외경심을 품게 만듦으로써 시민은 쉽게 지배자에게 따른다고 주장한다.42) 클라프마르도 『공무의 아르카나에 관해』에서 “종교에 의해 민중을 사로잡을 것”을 주장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인 아르카나 기술이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말하는 “교묘하게 고안된 정략(ton politeion sophismata)”(1297a, 1308a) 등을 언급하면서, 고대 이후 종교에 의한 위장은 대중 지배를 위한 유효한 수단이었다고 강조되고 있다(2권 9장).43)

그렇지만 국가이성·아르카나 논자들도 종교를 노골적으로 단순한 권력수단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종교가 이처럼 정치에 종속되는 것은 단순히 비도덕적인 권력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공 안녕과 질서 유지라는 공공복리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의 종교전쟁 상황에서 종교 분열을 극복하고 평화를 확립하는 길을 바로 종교에 대한 정치의 우위 속에 발견하려 했다. 예를 들어 립시우스는 현명한 생각을 갖춘 군주라면 국민에게 종교적 통일성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종교는 통일의 창설자이며, 혼재하는 종교로부터는 항상 혼란이 생긴다”(4권 2장).44) 립시우스는 국가의 종교로부터 일탈하는 자는 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종교적 불관용 때문에 자주 비판을 받지만, 그의 이런 입장은 국가의 안정에는 종교의 통일이 불가결하다는 신념에서 나온다.45) 『에세』에서 신앙의 이름 아래 정치 반란을 일으켰던 위그노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과거의 종교를 준수해야 한다고 역설한 몽테뉴의 종교적 보수주의도 내전의 억지라는 마찬가지의 관심에서 유래한다. 이런 사상 안에서 신앙에 대해 주권자가 결정함으로써 공공 안녕과 질서가 확보될 수 있는 홉스적인 국가의 싹을, 혹은 베스트팔렌 체제와 더불어 확립된 “영토를 지배하는 자가 종교를 지배한다(cuius egion, eius religio)”라는 원칙의 단서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종교가 대중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적하는 것은 타키투스주의의 사려론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평가절차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가 종교에 의한 위장의 효용을 역설한 것은 단순히 대중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종교에서 표현되는 대중의 정념과 상상력은 하나의 커다란 정치적 힘이며, 그것은 군주에게는 정치권력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주지하듯이 이런 대중의 상상력을 통한 권력구성은 스피노자에게서도 간파할 수 있다. 설령 ‘상상력’에 의해 지배당한 대중이 종교에 얽매여 있다고 해도, 이런 상상력을 출발점으로 역사적 종교를 안쪽에서부터 변혁함으로써 이성적 인식(‘완전한 인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신학정치론』의 기획의 관건은 이것이다. 이것은 종교라는 상상력의 담론을 (『윤리학』에서의) 현인에 의한 과학적 방법(‘기하학적 방법’)으로 가교하려는 시도이다. 대중의 상상력이나 정념은 이성적 국가를 향한 권력구성이 행해지는 내재성의 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대중 및 그 종교적 상상력에 대한 스피노자의 불균형적 평가 속에는 근대 초기의 위장이라는 문제계가 품고 있는 양의성이 나타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대중용 말투는 뭔가 감춰진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외피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 자체를 무시하기 힘든 현실로서의 힘을 인정해야 하는가? 위장은 어디까지나 거짓에 머무는가, 아니면 그 픽션성 자체에 일정한 리얼리티가 있는 것일까? 가령 그라시안의 『신탁의 지침 및 사려술』에서 보이는 것은 이런 동요나 다름없다. 그는 악덕이 지배하는 시대의 부득이한 처세술로서 가면의 삶을 권유하면서도, 경건한 예수회 회원으로서 신 앞에서의 성실성을 포기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내면적 덕을 갖춘 ‘성인’이기를 추구했다(300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자 앞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태나 행동이 내면화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지금 남에게 보이고 있다고, 혹은 머지않아 보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각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인지상정이다. … 설령 혼자 있을 때라도 마치 세상 전체의 눈에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서 행동한다.46) (297番)


여기서는 외견상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실제로 ‘되라’고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위장이나 은폐의 권유가 아니다. 인간의 실존은, 그것이 ‘있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 로슈푸코도 위장이 더는 위장이 아니게 된 인간의 이런 존재방식에 관해 오히려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우리는 너무도 타인의 눈에 자신을 위장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도 자신을 위장하는 데 이르렀다.47) (119)


이런 이른바 자기기만은 타자 앞에서의 자기 현시에 의해 살고 있는 궁정인들에게 특히 전형적이다. 극장적인 자기 제시에 근거한 이 시대의 ‘대표적 공공성’은 위장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되는 자기기만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5. 비밀과 공개의 중간지대

자신의 감춰진 본질과 그것을 감추는 외관이 더 이상 구별될 수 없게 되는 인간의 존재방식.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1963)에서는 프랑스혁명에 선행한 귀족사회의 이런 상황이 마치 20세기 전체주의의 원형(prototype)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혁명 이전의 궁정사회에서 ‘위선(hypocrisy)’이 지배했음을 간파한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에 의한 혁명기의 공포정치는 바로 이런 ‘위선에 대한 투쟁’의 결과로 생겼다고 생각한다. 혁명의 테러와 더불어, 엘리아스가 말한 ‘문명화’뿐만 아니라,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화’의 급진적인 심원이 입을 연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음모와 배신이 항상적이게 된 그 이전의 궁정사회의 ‘반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48)

여기서 말해지는 ‘위선’은 단순한 거짓말이나 허위가 아니다. 위선자는 거짓된 외관에 의해 진실한 자신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외관으로서 무장하고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위선자)는 자신이 속일 작정인 상대만큼이나 자신의 허위의 희생자이다. … 위선자의 죄는 자신에 대해 허위의 증언을 하는 데 있다. … 위선자만이 정말로 뼛속부터 썩어 있는 것이다.49)


즉, 위선자는 겉보기[외관]로서의 연기가 자신의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위선의 배후에는 폭로해야 할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위선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히포크리테스’는 원래 배우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것은 연극 때 착용하는 가면으로서의 ‘페르소나’와는 다르다. 즉, 그것을 떼어내어 그 아래에 있는 것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위선자는 가면을 쓰지 않은 배우 자체이기 때문에, 설령 위선자의 가면을 벗겨내더라도 그 가면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50)

아렌트는 정치 공간을 자주 극장모델로 말했다. 즉, 정치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은 가면(페르소나)을 쓴 사람들이 공공의 무대에서 행하는 역할 연기이며, 이런 공개된 곳의 배후에 있는 것은 당장은 정치와 무관하다. 그러므로 정치에서는 ‘존재’와 ‘출현(appearance)’은 동일하며, 둘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혁명 이전의 궁정인들의 행태가 이런 연극적인 정치적 공론장과 아무리 비슷한 듯 보이더라도, 아렌트는 결코 이 둘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궁정사회는 오히려 아렌트적인 ‘출현의 정치’의 퇴폐적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치적 연기자들의 가면(페르소나)의 배후에 있는 숨겨진 사적인 자기가 있을 여지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선자는 자신이 연기에 의해 자연적인 자기를 아주 성실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믿어버림으로써 공적인 공연과 사적인 비밀의 구별을 헐어 버리는 것이다.

아렌트가 보는 바인,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바로 이런 궁정사회의 위선과 거울상을 이루는 것이다. 자코뱅이 목표로 한 것은 위선자의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순진무구한 ‘자연인’, 즉 궁정사회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는 본래의 유덕한 인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위선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한, “위선자에 대한 추궁[追及, 뒤쫓음]은 제한이 없다.”51)즉, 이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추구하는 무한한 폭로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리하여 인간 본래의 원초적인 덕을 밝게 드러내려는 불가능한 시도는 ‘덕의 전제(專制)’로서의 혁명의 테러로 귀착된다. 그리고 이것은 공공의 무대에서 상연하기 위한 가면(페르소나)이라는 정치적인 조건도 파괴하게 된다.


그들은 위선자에 대한 제한 없는 추궁과 사회의 가면을 벗겨내는 열정에 의해, 의식하지는 않았으나 페르소나(persona)의 가면을 찢어버렸던 것이다.52)


위선의 폭로 속에서 노출되는 것은 결국 정치공간을 파괴하는 빈민들의 ‘분노’일 뿐이다.

아렌트는 궁정사회의 위선과 자코뱅의 공포정치 사이의 거울상적 관계 안에서 ‘근대’의 심연을 간파하는 것이다. 이는 20세기의 전체주의에서 그 극점에 이른다. 『혁명론』에서 위선이 단순한 거짓말이나 허위와는 구별될 때, 그것은 더 시사적인 다른 논문 「진리와 정치」(1967)에서 ‘전통적인 거짓말’과 ‘현대의 거짓말’의 구별,53) 혹은 1971년에 공표된 베트남 전쟁에 관한 국방부 비밀 보고서를 다룬 논문 「정치에서의 거짓말」(1971)에서 단순한 ‘기만’과 ‘자기기만’의 구별에 대응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54) ‘현대의 거짓말’이나 ‘자기기만’에서는 사실과 허위의 구별 자체가 폐기된다. 아렌트에게서 이것은 전체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서방의 대중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리얼리티 상실 상황이나 다름없다. 여기에서는 방위를 정하기 위한 판단 기준이 완전히 상실됨으로써 공공의 눈앞에 있고 모든 사람에게 보이고 있을 것이 그 자체로 오히려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궁정사회의 위선이 공론장의 이런 퇴폐의 원래의 근원에 있다. 그래서 아렌트가 묘사하는 혁명기 이전의 위선의 사회는 비밀관방정치[비밀내무정치]이든 궁정의 예절범절이든, 무엇인가 진실을 은폐한 허위가 지배하는 세계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는 이제 거짓과 진실의 경계선이 말소되었으며 비밀과 출현이 구별 불가능할 정도로 뒤얽혀 있다. 과거의 궁정사회는 이미 아렌트가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현대사회와 마찬가지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현대에서 공개와 비밀의 이런 교차에 대해 권력의 ‘눈에 보이는 얼굴’(‘법ius’)과 ‘감춰진 얼굴’(‘아르카나’)이라는 클라프마르의 구별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생명정치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이 두 개의 얼굴의 일치하는 지점이며, 아르카나 임페리이가 그것으로서 밝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르카나는 이른바 그 자신의 노출에 있어서 비가시인 채로 있으며, 눈앞에서 공개될수록 감춰진 것이 된다.55)


단순히 공개성으로부터 은퇴[후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런 비밀은 ‘신비’도 ‘아르카나’도 아니며 ‘secretum’으로서의 비밀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56) 그것은 ‘신비’처럼 결코 불가지적인 신적 비밀이 아님은 물론이고, ‘아르카나’처럼 어떤 숨겨진 구체적인 지식[앎]인 것도 아니다. ‘secretum’은 현실에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비밀이 아니며,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은 눈앞에 폭로되어 있으나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의식되어 있는 비밀이다. 그것은 이른바 과잉으로 현전하는 정보나 이미지의 비현실성에 의해 일찍이 그 효과로서 산출되는 비밀이다. 그것은 항상적으로 현전하면서도 숨어 있는 비밀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비밀은 또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그 배후에 더 이상 어떤 의미도 감춰져 있지 않은 ‘수수께끼=숨은 그림(Rätsel)’이라 부른 것이다. 그것은 모든 정보나 이미지가 의미를 완전히 빼앗긴 잡동사니·잔해가 되며, 나중에는 그저 (언젠가 ‘독해’되기를 기다리는) ‘문자’(Schrift, écriture)로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생기는 비밀이다. ‘문자’란 곧 정보나 이미지가 단순히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투명한 매체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일종의 물질적 실재로서, 달리 말하면 “목적 없는 순수한 수단성” 자체로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언론에 고유한 이런 물질성은 투명한 의사소통을 오히려 방해한다.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듯한 ‘물건’이 되며, 더 이상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게 된 이미지나 정보는 수수께끼 같은 것으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비밀스런 것으로서 현전하는 스펙터클의 폐허를 이미 벤야민은 바로크 비극의 알레고리적 광경 속에서 찾아냈다. 그의 시도는 바로크적인 가시성과 이미지의 세계를 ‘문자’를 통한 안티-스펙터클의 실천으로 반전시키는 데 있었다.

이제 이미지와 가시성의 부재가 아니라 그 과잉에 의해, 의사소통의 부족이 아니라 그 과다에 의해 사회공간의 불투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사람들은 도처에서 비밀을 인식한다. 그 때문에 종종, 낡은 아르카나가 정치적 판타지로서의 ‘음모론’이라는 형태로 회귀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물론 무슨 숨은 의도나 권력이 실제로 배후에서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비밀은 오히려 복잡하게 기능 분화된 사회공간에 유통되는 정보의 혼탁과 다수성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는 완전한 공개성이 평범한 것으로서 편재하는 비밀과 병존한다. 이때, 공개성은 단지 투명한 의사소통의 공간으로 찬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전면화된 감시 사회의 위험을 낳는 것으로 경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비밀도 단순히 국가이성적인 관방[내무=내치]정치로서 비난받아야 할 것이 아니며, 프라이버시의 피난처로서 불가침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출현하고 있는 것은 권력이 단지 공개적인 장에서 통제되는 것도, 비밀리에 작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 두 가지 측면(법과 집행, 이름의 영광과 무명성, 인간의 활동과 동물적 생명 …)이 얽혀서 하나의 권력의 에코노미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아렌트에게 비밀과 출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이런 공간은 정치적인 것의 파괴의 징후일 따름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적인 것의 출발점은 바로 이 중간지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1) [옮긴이] 필자는 prudence를 일관되게 叡智(예지)로 표현하지만, 이는 ‘뛰어난 지혜’를 뜻하는 말로 원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prudence는 사려와 신중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모두 ‘사려’로 일관되게 옮긴다.


2) Justus Lipsius, Politicorum: sive civilis doctrinae libri sex, Lugduni 1594 (reprinted: Kissinger Publishing 2009), p.230. 인용은 원문에서 필자가 직접 번역.


3) [옮긴이]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Tiberius Julius Caesar Augustus, 기원전 42년 11월 16일 ~ 37년 3월 16일)는 로마 제국의 제2대 황제이다. 아구구스투스의 양자로 들어가기 전 이름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이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들이자 아우구스투스의 황후였던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아들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B%B0%EB%B2%A0%EB%A6%AC%EC%9A%B0%EC%8A%A4


4) 타키투스, 『연대기(年代記(上)』, 国原吉之助 訳, 岩波書店, 1981, 311頁. [타키투스, 『타키투스의 연대기』, 박광순 옮김, 종합출판범우, 2005.]


5) [옮긴이] 본문에서 ‘처세훈(処世訓)’으로 표기됐으나 이하 ‘처세담’으로 일관되게 옮긴다.


6) [옮긴이] ‘아르카나’는 라틴어로 아르카눔(arcanum)의 복수형이며, ‘책상서랍’이라는 의미에서 서랍에 숨겨진 ‘감춰진 것’을 가리키게 됐으며, 더 나아가 ‘비밀’, ‘신비’ 등의 의미가 됐다.


7) Leo Strauss, “Persecution and the Art of Writing,” in Persecution and the Art Writing,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 pp.22-37. [「迫害と著述の技法」, 石崎嘉彦訳, 『現代思想』, 제24권 14호, 1996, 185-197頁.]


8) Niklas Luhmann/Peter Fuchs, »Geheimnis, Zeit und Ewigkeit«, in: des., Reden und Schweigen, Frankfurt a.M. 1989, S.136f.


9) Reinhart Koselleck, Kritik und Krise. Eine Studie zur Pathogenese der bürgerlichen Welt, Suhrkamp, Frankfurt a. M, 1973 ; Critique and Crisis: Enlightenment and the Pathogenesis of Modern Society, Cambridge, Mass.: MIT Press, 1988. [라인하르트 코젤렉, 『비판과 위기(批判と危機)』, 村上隆夫 訳, 未来社, 1989, 149-150頁.]


10) Yirmiyahu Yovel, Spinoza and Other Heretics I : The Marrano of Reas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 Spinoza and Other Heretics II : The Adventures of Imman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이르미야후 요벨, 『스피노자 : 이단의 계보(スピノザ異端の系譜)』, 小岸昭ほか 訳, 人文書院, 1998, 51-52頁, 179-210頁.]


11)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 『피렌체의 명문귀족의 처세술 : 리코르디(フィレンツェ名門貴族の処世術 リコルディ)』, 永井三明 訳, 講談社学術文庫, 1998, 129頁. [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 『귀치아르디니의 처세의 법칙』, 김희진 옮김, 원앤원북스, 2014.]


12) 『군주론』과 그 이전의 군주감 사이의 절단에 관해서는 Michel Senellart, Les arts de gouverner, Seuil, 1995, pp.211-230.


13)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君主論)』, 池田康 訳, 『마키아벨리 전집 1(マキャヴェッリ全集 I)』, 筑波書房, 1998, 51頁.


14) 같은 책, 59頁.


15) 근대초기의 정치사상에서의 위장의 문제에 관해서는 August Beck, »Die Kunst der Verstellung im Zeitalter des Barock«, in : Festschrift der wissenschaftlichen Gesellschaft der Goethe-Universität, Wiesbaden 1981, S.85-103 ; Herfried Münkler, Im Namen des Staates, Frankfurt a. M. 1987, S.306-313.


16) [옮긴이] 体裁는 외관, 겉모양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일정한 양식이나 형식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대체로 후자의 의미로 보인다.


17) Senellart, Les arts de gouverner, pp.54-55.


18) [옮긴이] Arnoldus Clapmarius라고도 불린다. Arnold Clapmar(1574–1604)가 본명이다. 위의 책 제목은 일본어로 『国事のアルカナにについて』로 옮겨지고 있다.


19) Cf. Richard Tuck, Philosophy and Government 1572-1651,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pp.104-119.


20) 몽테뉴, 『수상록(随想録(エセー)下』, 松浪信三郊 訳, 河出書房新社, 2005, 202頁.


21) Pierre Charron, De la Sagesse, Fayard, 1986, p.557.


22) 피터 버크, 『유럽의 민중문화(ヨーロッパの民衆文化)』. 中村緊二郎・谷参 訳, 人文書院, 1988, 41-48頁, 350-363頁. [Peter Burke, Popular Culture in Early Modern Europe, 1978(Ashgate; 3rd Revised edition edition, 2009)]


23)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의 과정(文明化の過程(上)(下)』, 波田節夫ほか 訳, 法政大学出版局, 1977/78.


24) [옮긴이] 이 책의 영역본은 몇 개가 있다. The Art of Worldly Wisdom, by Joseph Jacobs, 1892 ; The Oracle, a Manual of the Art of Discretion, by L.B. Walton ; Practical Wisdom for Perilous Times, in selections by J. Leonard Kaye ; The Science of Success and the Art of Prudence.


25) 엘리아스, 『문명화의 과정 (하)』, 372頁.


26) 발타자르 그라시안, 『처세의 지혜(処世の智恵)』, 東谷穎人 訳, 白水社, 2011, 18頁.


27) 같은 책, 102頁.


28) 라 로슈푸코, 『라 로슈푸코 잠언집(フ・ロシュフーコー箴言集』 二宮フサ 訳, 岩波文庫, 1989, 11頁.


29) 같은 책, 58頁. 번역 수정. 


30) 같은 책, 69頁.


31) 라 브뤼에르, 『캐릭터들(カラクテール<下>)』, 関根秀雄 訳, 岩波文庫, 1953, 136頁.


32) 라 브뤼에르, 『캐릭터들(カラクテール<中>)』, 関根秀雄 訳, 岩波文庫, 1953, 8頁.


33) [옮긴이] 프롱드의 난(프랑스어: La Fronde)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권에 대한 귀족세력의 최후의 반항에 의해 일어났던 내란이다. 프롱드라 함은 당시 파리의 어린이들이 관헌에 반항하여 돌을 던지는 놀이에서 사용한 ‘투석기’에서 유래된 말인데 점증하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었다. 제1회는 고등법원(高等法院)의 프롱드(Fronde Parlementaire, 1648∼1649), 제2회는 귀족의 프롱드(Fronde des nobles, 1649∼1653)이다. 루이 14세의 즉위(1643) 당시 모후(母后)와 로마 가톨릭교회 추기경이자 재상인 마자랭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파리의 고등법원(법복귀족(法服貴族))이 칙령의 등록을 거부함으로써 왕권에 반항하여 왕실도 한때는 피난하여 파리를 퇴각하였으나, 왕당파의 콩데 공(公)에 의하여 반란은 진압되었다. 그러나 콩데 공은 마자랭과의 반목으로 체포되었고 지방에서는 반왕당파 귀족이 동맹하여 반항하였으므로 왕실과 마자랭은 다시금 파리를 퇴각하였다. 파리는 에스파냐의 원조를 받고 있는 콩데 군(軍)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리 시민의 반감을 사서 드디어는 왕당파에 의한 탄압으로 왕실은 파리로 귀환하였다. 이 프롱드의 반란은 프랑스에 있어서의 귀족세력의 왕권에 대한 최후의 반란으로 부르봉 절대왕정 확립의 길을 터놓은 것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위키피디아 전재]


34) [옮긴이] 일본어로 手管(테크다)는 ‘살살 구슬려내는 솜씨나 수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농간’을 부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순우리말로는 ‘엄펑소니’라 한다.


35) 귀차르디니, 『피렌체의 명문귀족의 처세술 : 리코르디(アィレンツェ名門貴族の処世術 リコルディ)』, 129頁.


36) 같은 책, 238頁.


37) Lipsius, Politicorum, pp.132-138.


38) Charrron, De la Sagesse, p.377.


39) 바루흐 스피노자, 『신학·정치론(神学・政治論)』, 畠中尚志 訳, 岩波文庫, 1944, 55-56頁.


40) 『마키아벨리 전집2 : 로마사논고(マキァヴェッリ全集2 ディスコルシ)』, 永井三明訳, 筑摩書房, 1999, 49-50頁.


41) 귀차르디니, 『피렌체명문귀족의 처세술 : 리코르디(アィレンツェ名門貴族の処世術 リコルディ)』, 191頁.


42) Vgl. Michel Behnen, »ARCANA - HAEC SUNT RATIO STATUS«, in : Zeitschrift für historische Forschung, 14(1987), S.154.


43) Ebd., S.168f.


44) Lipsius, Politicorum, p.121.


45) Cf. Tuck, Philosophy and Government 1572-1651, pp.58-59.


46) 그라시안, 앞의 책, 227頁.


47) 라 로슈푸코, 앞의 책, 42頁.


48) 한나 아렌트, 『혁명에 관하여(革命について)』, 志水速雄 訳, ちくま学芸文庫, 1995, 155-156頁.


49) 같은 책, 153-154頁. 괄호 안은 저자의 것.


50) 같은 책, 159頁.


51) 같은 책, 145頁. [옮긴이] 여기서 추궁으로 옮긴 것은 책임추궁이라고 할 때의 추궁보다는 뒤쫓는다는 의미에 가까운 듯하다. 원문을 봐야 확정할 수 있다.


52) 같은 책, 161頁.


53) 한나 아렌트, 「진리와 정치(真理と政治)」, 『과거와 미래 사이(過去と未来の間)』, 引田隆也/齋藤純一 訳, みすず書房, 1994, 344頁.


54) 한나 아렌트, 「정치에 있어서의 거짓말(政治における嘘)」, 『폭력에 관하여(暴力について)』, 山田正行 訳, みすず書房, 2000, 33-34頁.


55)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 上村忠男/廣石正和 訳, 月曜社, 2001, 211頁. 번역수정.


56) 비밀의 이런 구별에 관해서는 Eva, Der geheime Krieg, Frankfurt a. M. 2007, S.105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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