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일본어 서평 2


토호쿠대학의 모리 이치로 교수가 쓴 것이다. 다음은 원문 링크이다. 

http://booklog.kinokuniya.co.jp/mori/archives/2013/02/post_8.html?hc_location=ufi


아래는 번역이라기보다는 대체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그리고 글의 앞 부분은 번역을 안 했는데 생각해보니 중요한 대목이기는 하다. 


앞 부분에서 서평자는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했던 세 개의 구분인 노동, 작업, 활동의 구별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아래에서 보듯이 이소노미아를 풀이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페팃의 공화주의로 이어지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읽기 전에 다음의 정보도 미리 전달한다. 

검색해보니, 일본에서는 <철학의 기원>을 다룬 잡지의 특집호가 있었다.http://www.ohtabooks.com/publish/2013/02/08165414.html

나는 당분간 읽을 시간이 없지만, 아무튼 구입은 해 놔야겠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여기에 大竹弘二가 쓴 「イソノミアの名、民主主義の名」라는 글이 있는데, 이 글에 따르면, 발리바르와 호이징거, 하이에크도 이소노미아에 대해 언급을 했다고 한다.

1. 발리바르
1) "(De)Constructing the Human as Human Institution: A Reflection on the Coherence of Hannah Arendt's Practical Philosophy"
2) "Historical Dilemmas of Democracy and their Contemporary Relevance for Citizenship"
* 분명 두 개의 글을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뒤적여봐야겠다.

2. 호이징거는 일본어 번역본 『汚された世界』(磯見昭太郎訳、河出書房新社)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3. 하이에크는 『自由の条件Ⅱ 自由と法』(気賀健三・古賀勝次郎訳、春秋社)이라고 하니, The Constitution of Liberty인 것 같다. 
* 이 책도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ㅠㅠ

** 이 정보는 http://makorin.blog.jp/archives/51951042.html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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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절호의 기회에, 다시금 이렇게 물어보자.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에서 끄집어낸 ‘이소노미아’란 무엇이었는가라고. 이것을 감안해야 가라타니의 이소노미아 해석의 특이성도 부각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소노미아란 ‘이소(같다, 동등하다)’와 ‘노모스(관습, 법)’의 합성어다. ‘법적 평등’이라는 번역어도 있을 수 있지만, 이 말에는 강한 의미에서의 ‘법’이라는 함의는 없다. 오히려 이 경우의 ‘노모스’란 ‘퓌시스(자연)’와 대비되는 ‘인위’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즉 자연적으로는 평등하지 않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근저에 있으며, 그렇기에 자연적 격차와는 별도로, 어디까지나 인간들 사이의 약속으로서, 서로 대등한 정치적 주체로서 간주한다는 약정이 오간다. 그러 합의 아래서 형성된 동등한 자들의 공동체 형성이 ‘이소노미아’라고 불린다. [지금] 봤듯이, 이 발상은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근대의 공리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인간들 사이에는 외모, 능력, 재산 등의 사적 처지[境遇]의 점에서, 메우기 힘든 불평등이 있다. 하지만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면 좋은 것이며, 그렇기에 공동체에 대한 각자의 귀속의식도 강해지고, 그 결과 공동체 전체의 사기도 올라간다. 한줌의 주인(owner)이 홀로 판단[専断]하기보다는 구성원 전체가 공동 참가자로서 나란히 서로 겨루는 쪽이 [그 기세가] 드높여진다. 역시 각자가 경합을 벌이고 자기를 주장하는 만큼, 귀찮은 일이 생기고 비효율적으로도 보이겠지만, 길게 보면 가장 잘 된다. 크고 작은 단체에 관해서도 해당되는, 이 조직 활성화의 비결을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리로서 채용하는 것이 정치형태로서의 이소노미아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 말을 ‘대등제도’(対等制度)라고 직역하기로 했다.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를 ‘민주정(데모크라티아)’과 대비시키고, 고대에 출현한 탁월한 정치형태로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정당하며, 이 책의 가치도 거기에 있다. ‘민중’의 ‘지배’라는 뜻의 약간 자극이 강한 말에 비해, 페어플레이의 경기정신을 구현하는 ‘대등제도’는, 헤로도투스부터 플라톤까지 아름다운 말로 간주됐다. 그렇지만 고대민주정과 근대민주주의를 싸잡아 생각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소노미아를 ‘무지배’라고 번역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가라타니가 인용하는 혁명론의 대목에서 아렌트도 ‘무지배(no rule)’라는 이소노미아의 첫 번째 뜻을 강조한다. 하지만 ‘무지배’라는 소극적 규정만으로는 이소노미아의 본 뜻은 분명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배로부터의 자유’는, 적극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라타니는 여기서, 빈부의 격차 없음, 즉 경제적 평등이라는 논점을 꺼낸다.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식민도시에서는 당초, 식민지 이주자들이 구속이나 특권 없는 맹약 공동체를 창설하고, “사람들은 실제로 경제적으로도 평등했다”(25頁). “이오니아의 도시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료는 거의 없음”(42頁)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담하게 몰아붙이는 것의 옳고 그름은 차지하더라도, 적어도 이소노미아를 경제적 평등에 귀착시키는 논의에는 찬성할 수 없다. 가라타니는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이소노미아 개념을 발견한 유일한 논자가 아렌트라는 것을 인정한다(24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체제를 논할 때 경제적 평등이라는 근대적 개념을 척도로서 들여오는 것에 대해 아렌트가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은 아주 깨끗하게 무시하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원래 맑스의 유물사관에서의 ‘생산양식’에 대한 정위[위치규정定位] 대신에, ‘교환양식’의 차이로부터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보고자 한다. 그 위에서 자신의 ‘세계공화국’이라는 선전문구(catchphrase)에 걸맞는, 더욱이 보편종교일 수 없는 이상적 ‘교환양식’을 추구하며, 이것을 이소노미아에서 자유와 평등이 양립됐다는 흔적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가라타니가 발견한 ‘어디에도 없는 나라(유토피아)’는, 어떤 사정거리를 간직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실측(実測)은 다른 논자들에게 맡기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사관의 재검토에 관해서도 제외한다. 나로서는 윤색된 이소노미아 개념의 향배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고대에 구축된 대등제도의 의미 차원을 발굴하고자 하는 아렌트의 시도를, 자신에게 맞게 왜곡하고, 그 중 맛있는 곳만 집어먹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고대 그리스의 풍경을 일신하는 듯 보이는 이 책은, 사실 현대인에게 흔해빠진 편견에 휩싸여 있다. 정치적 평등을 “단순한 추상적 평등성”(27頁)으로 간주하고, 경제적 평등을 중시하는 발상부터가 그렇지만, 그것과 나란히 눈에 띄는 것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그것이 노예제에 의거하고 있음을 방패로 삼아 단죄하는 상투적인 논조이다. 노동이나 작업을 시민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경멸한, 활동 본위의 폴리스적 신분질서가 허용될 수 없는 것도, 생산성에 무게를 둔 근대인의 품질증명일 것이다. 현대의 논자가 보기에, ‘노동/작업/활동’이라는 아렌트적 삼분법은, 난센스처럼 비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아테네 ‘제국’이, 이것도 현대식으로 고발되는 한편, 여러 차례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불려진다. 폴리스를 뛰어넘은 ‘코스모폴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의 장점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을 철폐하려고 한 점에 있다고 한다. 공과 사의 구별이라는, 근대사회에서 들어맞는 표적이, 여기서도 저격된다. 그 무차별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정치적인 것’은 완전히 지워진다. 
“소크라테스가 목표로 한 것은 통치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무지배)이다”(213頁). 맑스주의자라면 ‘국가의 폐절’을 이상으로 삼는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폴리스를 사랑한 고대의 시민철학자에게, 그 취향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정말이지 “‘소크라테스 이전’이라고 하면, 소크라테스 그 사람을 거기에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217頁)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크라테스를 폴리스를 싫어하는 근대인에 포함시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이소노미아란 ‘무지배’, 즉 지배하는 것에도 지배되는 것에도 무게를 두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특히 지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점에 특징이 있다. 누군가에게 지배된다는 것은 사절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지배된다는 것은 예속되는 것, 즉 자유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그 반대로,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쪽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달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지배하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 경합할 가능성을 빼앗기는 것이기도 하며, 그것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유형의 인간도 있다. 이소노미아는 이렇게, 지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하는 것도 좋다고 하지 않는, 자유를 사랑하는 자들이 공동으로 구축하고 대등한 유동공간의 것이다. 
이소노미아를 이소노미아답게 하는 것은 공공의 사항에 동등하게 참여할 자유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의 기쁨이다. 이 경우의 ‘자유’란, 빈부의 격차의 해소도 구속으로부터의 해방도 아니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새로운 시작’에서야 비로소 열리게 되는 ‘빈 틈’을 의미한다. 
복수성에서 빛을 내며 나타나는 자유의 경험. 이런 경험 지평이 고대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이소노미아라는 고어는 전하고 있다. 이 공적 자유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근대에서 혁명정신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번번이 재발견됐다. 그 이야기꾼이고자 했던 것이 아렌트였다. 이소노미아의 빛줄기에, 우리는 몇 번이나 이것저것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 회상의 기회를 다시 갖게 된 것을 새삼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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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1. 일본어 서평 

* 아래의 링크는 아래의 서평 원문이고, 밑의 글은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가 삭제된 것이다. 논의를 위한 자료 차원에서 블로그에 복제해둔다. 

* http://d.hatena.ne.jp/whomoro/touch/20130217/1361065937?hc_location=ufi

* http://d.hatena.ne.jp/whomoro/touch/20130222/1361537378?hc_location=u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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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uall ㅣ 2015-04-08 ㅣ 공감(5) ㅣ 댓글 (0)
1. 가라타니의 매너리즘 또는 아집
철학의 시작을 서술한 서적은 허다하지만 철학의 기원을 탐구한 서적은 적다. 그 탐구를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라타니는 행하겠다고 한다. 철학에 대한 희구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의 기원』은 사람들의 관심 저 밑에 있는 것을 다루려고 하는 저작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가라타니의 탐구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무지배)’가 역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논증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논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아사회와 이소노미아가 단순하게 등호(等號)로 연결되고, 그것을 전제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史實)의 오인이다. 이소노미아라는 말도 정확하게 분석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무지배’라는 번역어에 대한 상세한 고찰과 비판 없이 자명한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이오니아=이소노미아=무지배’는 유토피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가라타니의 처음부터의 목적이었는지 궁금하다. 그것이 유토피아인 이상, 역사상의 아테네가 단죄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지향한 것은 통치 그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가라타니가 지향한 것은 ‘통치 그 자체의 폐기’라고 추측할 수 있으며, 그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 사술(詐術)적인 논리이며, 소크라테스를 강인하게 자신과 동일한 사상을 갖는 주체로 설정한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를 등장시켰다. 이 이소노미아가 허구인 것은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의해 언제나 ‘이소노미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환기하는 효과를 갖는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라타니는 자신의 투쟁을 이소노미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2. 통설과의 접목
서장에서는 기원전 6~기원전 5세기에 관한 통설적인 윤리사상사(가령 야스퍼스의 ‘세계사의 기축시대’가 떠오른다)가 소개되며 거기에 가라타니의 교환양식설이 접목되고 있다. 윤리사상사 자체는 다소 고풍스럽고 평범하여 새로운 시점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 풍부한 참고자료를 자랑하던 가라타니의 저작을 생각해 보면 일본 내의 동 시기에 대한 많은 저작들을 참고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은 점이 의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곳부터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해서는 ‘유대교-기독교’라는 유럽 중심의 발상범위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선악이원론이나 최후의 심판으로 유대교에 큰 영향을 준 조로아스터교는 가라타니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가라타니가 조로아스터교의 강한 윤리성을 주목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의 철학적 사고의 탄생은 중요하지만, 화폐의 등장(역사상 최초의 주조화폐는 기원전 7세기에 소아시아의 리디아에서 만들어졌다)과 화폐의 일정한 보급은 인간의 사고와 경제생활 진전에 깊이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화폐의 상징기능이 사회에 침투해 가는 가운데 처음으로 철학적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엄청난 시간 속에서 배양된 신화적 사고가 있다. 철학의 기원이라는 문제는 신화적 사고(유토피아)와 철학적 사고(로고스)와의 관계/단절이라는 문제이다. 거기에는 문학의 발생이라는 문제도 포함될 것이다. 신화적 사고 속에서 철학적 사고는 어떻게 석출(析出)되었는가. 그러나 가라타니에게는 그러한 발상을 볼 수 없다. 덧붙이면 가라타니는 “주술은 정주 이후의 씨족사회에서 발달했다”고 논하고 있지만, 유목민에게도 수렵민에게도 주술전통은 존재하고 있었다.

3. 이오니아와 이소노미아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의 도시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나타내는 사료는 거의 없다”고 서술하면서도, 이오니아와 이소노미아를 스스럼없이 등호로 연결해 버렸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역사를 상세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설을 전개하고 있다.

가라타니는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폴리스와 이오니아의 폴리스를 구별해 ‘씨족적인 여러 제도가 농후한 사회’ vs ‘씨족적 전통이 없는 식민사회’로 대치시키는 것에 치중한다. 그러나 보통 밀레토스 등은 식민도시로 분류하지 않으며, 모시(母市)와 식민도시(그 성격은 일률적이지 않다)를 전혀 별개로 논의할 수는 없다. 일본의 그리스 역사가 사쿠라이 마리코(?井万里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인의 식민활동의 전제로서 폴리스의 성립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민활동을 포함한 거대한 시대의 너울 속의 여러 요인이 상호 작용해 결정화한 결과가 폴리스의 성립이었다고 간주된다.” 더욱이 “다양한 공동체로부터 나온 식민지인들로 이루어진 이오니아에서는 처음부터 ‘개인’이 존재했다. 이오니아의 폴리스는 그러한 개인의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근대의 개인이나 사회계약의 개념을 고대 이오니아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도 종종 인용되고 있다. 가라타니는 아렌트의 『혁명론』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오니아=이소노미아’설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말을 어디까지나 도시국가의 평등을 논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오니아라고 하는 말은 전혀 쓰지 않았다. ‘이오니아=이소노미아’를 아렌트로부터 끌어와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이소노미아’를 역사적으로 논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아=이소노미아’는 『철학의 기원』을 관통하는 개념이 되고 말았다. ‘이소노미아로서의 이오니아’는 말하자면 유토피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소노미아로서의 이오니아’ 인 것이다.

원래 이소노미아는 무엇인가. ‘무지배’라는 번역어는 적절한 것인가.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말은 ‘이소(iso, 같다는 의미)’와 ‘노모스(nomos, 법, 넓게는 인위적인 것)’로 나뉜다(노모스는 physis(자연)과 대비되는 언어다). 따라서 아렌트의 이소노미아라는 말의 사용법은 옳다. 이소노미아의 원뜻은 도시국가의 ‘인위적 공공공간에서의 평등’=법적 평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무지배’라는 번역어는 이것을 등한시한 편협한 기능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라타니가 인용한 부분의 바로 뒤에서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소노미아는 평등을 보장했으나,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고 평등하게 자라나서가 아니라, 반대로 사람은 자연에서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인위적인 제도인 법 즉 법률에 따라 사람들을 평등하게 하는 도시국가를 필요로 한 것이다. 평등은 사람들이 서로 사인(私人)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만나는 이 특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존재했다.”

또한 아렌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로도토스가 자유를 무지배와 동일시했을 때, 그 논점은 지배자 자신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지배하는 것에 의해 지배자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본래라면 자유로웠을 타인들을 스스로 떠났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정치적 공간 그 자체를 파괴한 것이며, 그 결과 그 자신에게도, 그가 지배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자유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자유는 시민들의 법적 평등과 동의라고 이해된다.

이상으로부터 고대 그리스에서의 이소노미아는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 노력’ 자체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노력은 폴리스라는 인위적 공공공간(‘사람들이 서로 사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만나는 특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민은 정치와 군사를 공동으로 담당하고 폴리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했다.”

이소노미아는 도시국가의 통치방식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통치의 폐기’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소노미아와 노예제는 병존하게 된다.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에서는 노예제 생산에 의존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오니아를 이상화했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오니아의 반란에서 큰 역할을 한 폴리스인 키오스는 ‘섬의 강 건너 소아시아에 가지고 있던 페라이아(Per?a, 해외 영토)에서 노예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를 행하여’ 번영했다. 원래 ‘식민 시절에 원주민을 종속민의 지위에 빠뜨리는 일도 있었고, 주변의 이민족으로부터 노예를 조달하는 것도 차츰 잦아진’다고 사쿠라이 마리코는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가 실현된 예로서 아이슬란드와 18세기 미국의 타운쉽을 거론하지만, 이것은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 대한 놀라운 사실(史實) 오인이다. 가라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식민지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하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왔다. 한편 영국 식민지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시민혁명(1648년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정도의 사람이 이런 오류를 태연하게 기술한다는 것은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담배 플랜테이션 노동력으로서 흑인노예의 도입이 시작된 것은 1619년의 일이었다. 시민혁명과 노예제의 부정을 연결하는 논술은 논외라고 할 수밖에 없다.

4. 자연철학, 플라톤
이른바 자연철학에 대한 가라타니의 기술은 ‘이오니아=이소노미아’에 집착하고 있는 것 외에는 그다지 통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는 통설과 다른 위상(반 피타고라스=반 플라톤)을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타당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교적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지만 독해 자체가 치밀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오니아의 유물론적 사상’이라는 표현이 보이나 자연철학자들에게서 물질과 영혼은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리스의 철학의 기원을 논하면서 로고스에 별로 언급이 없는 것도 의문이다. ‘이소노미아’에 집착한 나머지 왜 이오니아에서 로고스가 생겼는지를 가라타니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뮈토스((muthos, 이야기 또는 신화)와 로고스의 관계야말로 철학탄생의 비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가 ‘있다’의 사색을 시의 형태로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을 상기해 보자. “영혼의 끝을 당신은 걸어가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깊은 로고스를 그것은 갖고 있다.”

가라타니의 단조로운 플라톤 비판(이데아론 비판, 철인정치 비판)은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플라톤 철학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력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 거기에 오히려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관념론으로 간단하게 치부하지 않는 것은 관념의 강렬한 자기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을 표방하는 가라타니의 표면적인 플라톤 비판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온다. 가라타니의 ‘이소노미아’론은 대부분 플라톤적인 이데아론으로 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애타게 연정을 보이는 가라타니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5. 소크라테스
가라타니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사회에 대하여 아테네를 ‘정치적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열’이라는 근대적인(헤겔-맑스적인) 개념으로 분석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크라테스까지도 이소노미아와 연결하고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속의 “사인(私人)으로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 공인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소크라테스가 가져온 것은 공인인 것과 사인인 것의 가치 전도다”라 하고, “소크라테스가 목표로 한 것은 통치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비판을 예상했는지 소크라테스는 ‘자신도 모르고’ ‘그렇게 의식함이 없이’ 이오니아적 사상을 부활시켰다는 논리를 편다. 이 정도면 견강부회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통치 자체의 폐기’를 지향하고 ‘사인으로서’ 죽은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 및 사상과 폴리스라는 공공공간은 분리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사회적인 규약(노모스)’에 따라 정의를 존중하는 신념이 각인의 삶의 방식에 관련된 신념군 중 최고 중핵을 구성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활동은 곤란에 처한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는 펠로폰네소스전쟁과 그 패전 후의, 노모스의 혼란기였기 때문이다. 노모스의 동요 속에서 왜 소크라테스는 아고라라는 공공적인 장으로 나가 집요한 대화를 행했는가. 거기에는 폴리스라고 하는 인위적 공공공간의 소생을 ‘영혼에 대한 배려’로부터 행하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고투가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란 그 고투에 다름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그 싸움을 최후까지 이끈 것을 그의 죽음이 나타낸다.

30인 정권의 전제정치와 그것의 붕괴, 혼란기에 소크라테스의 ‘공인과 사인’의 문제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은 법과 일체가 됨으로써 자유롭다고 하는 그리스적 법사상을 소크라테스도 신봉했다. 그것이 어떤 정의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지던, 국법에 대해 개개 시민의 저항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국법 자체의 파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테나이의 국법이 시민에게 다른 폴리스로의 이주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근원적인 구속이 거기에서 생겨 시민과 국법 사이에 실제 존재한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 다만, 국법과 시민의 일체성을 강조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는 진정한 정치술(즉 영혼의 정화)은 폴리스의 공적인 일에 종사하기보다, 오히려 개개 시민과의 사적인 대화에 의해 달성된다고 하는 현실정치와 덕(탁월성)의 함양과의 사이의 긴장관계를 파악하려는 사고였지 않나 싶다.

더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공과 사’를 근대사고의 틀에서 보면 안 된다는 점이다. 사쿠라이 마리코는 공적(데모시오스)인 영역과 사적(이디오스)인 영역 외에 ‘코이노스’의 영역이 있음을 지적하고, ‘공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데모시오스와 코이노스의 두 종류가 있었다는 것’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한 ‘사적인 대화’의 장은 바로 ‘코이노스’의 영역이었다. “코이노스의 영역은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집합활동을 하는 그룹이 공유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민뿐만 아니라 재류 외국인과 노예, 여성 등 아테나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생활의 장, 즉 주민 사이의 다양한 교류,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폴리스적) 공간도, 오이코스(집)에 해당하는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한 것은 이러한 코이노스의 영역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는 아고라에서 열렸지만, 아고라는 ‘코이노스’라는 ‘공’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라타니는 소크라테스를 ‘이소노미아’와 결부시켜 허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철학의 기원’에 대해 무엇을 밝혔는가. 유감스럽게도 ‘이소노미아’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설적으로 『철학의 기원』은 ‘이소노미아’나 ‘통치 자체의 폐기’을 애타게 사모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새삼 가르쳐 주었다. 우리의 현실은 비참한 사건으로 넘쳐나지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이소노미아’로 일탈하는 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어려움 그 속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 아래의 링크에 <자신이 쓴 글인 양> 누군가가 올려 놨다가 최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삭제됐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06916

출처를 밝히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왜 삭제했는지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출처를 안 밝히는 것이 삭제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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