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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6. 경험적 인식 Cognitio experimentalis

 

 

그러므로 우리는 암브로시아 도서관의 세밀화에 그려진 동물의 머리를 한 의인들의 표상[재현]을 그토록 수수께끼처럼 만드는 것에 관한 몇 가지 잠정적인 가설을 개진할 수 있다. 역사의 메시아적 종언 또는 구원이라는 신적인 오이코노미아의 완성[실현, 완수]은 하나의 임계적 문턱을 정의하는 바, 그 문턱에서는 우리 문화에 그토록 결정적인 동물과 인간 사이의 차이가 사라질[말소될, vanish] 위험에 처해 있다. ,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는 역사연구가 필연적으로, 제일철학[존재론]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역사ultrahistory의 언저리fringe와 대결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영역의 경계선을 표시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선을 결정하는 것이 철학자와 신학자, 과학자, 정치가에 의해 무수히 논의된 하나의 물음이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만 인간과 같은 어떤 것이 결정되고 산출되는 근본적인 형이상학적-정치적인 작동이라는 것과 같다. 만일 동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완벽하게 중첩superimpose될 수 있다면, 인간도 동물도 그리고 어쩌면 신조차도 더 이상 사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후역사posthistory에의 도달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이 확정되었던 전역사적prehistoric 문턱의 재현실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천국[낙원]»은 에덴동산을 다시 의문에 부친다.

Utrum Adam in statu innocentiae animalibus dominaretur(순진무구함의 상태에 있는 아담은 동물들을 지배하는가 아닌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인 신학대전(Summa)의 한 구절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놓여 있을 수도 있는 인식적 경험을 환기함으로써 한순간에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순진무구한 상태에서 인간들은 육체적 필요 때문에 동물들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은 옷을 입기 위해 동물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었지만 이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방탕한 색욕(inordinate concupiscence)의 어떠한 충동motion도 없었다. 인간은 낙원의 나무로부터 먹을거리를 얻었기 때문에 어떠한 음식도 필요치 않았다. 더욱이 운송수단을 위해 동물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런 목적이라면 자신의 육체만으로도 충분히 강했기 때문이다[더욱이 자신의 육체가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운송수단을 위해 동물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의 본성으로부터 경험적 인식을 끌어내기 위해서 동물을 필요로 했다[Indigebant tamen eis, ad experimentalem cognitionem sumendam de naturis eorum]. 이것은 각각의 본성을 지칭하는 이름을 동물들에게 부여하면서, 신이 동물들을 인간[아담]보다 앞에 뒀다[앞으로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이런 경험적 인식(cognitio experimentalis)에서 무엇이 관건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어쩌면 신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학, 윤리학, 법학jurisprudence 또한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있어서 [경계가] 그어지고 중지되어 있다. 이 차이에서 쟁점이 되는 인식적 경험cognitive experiment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이런 인간 본성의 산출과 정의 과 관련된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de hominis natura)’ 하나의 경험[실험, experiment]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사라지고 두 용어가 오늘날 자주 일어나듯이 서로서로 붕괴하고 있다면[이 두 극이, 오늘날 자주 일어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처럼 모두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면], 존재와 무, 합법과 비합법, 신과 악마 등의 차이도 서서히 사라지며[무효가 되며], 그 자리에는 우리가 심지어 이름조차도 결여하고 있는 듯한 어떤 것이 나타날 것이다[그 대신 이를 지칭하기 위한 이름조차도 결여되어 있는 어떤 것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마 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도 이런 종류의 경험[실험],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에서[인간인가 비인간인가를] 결정하려는 극단적이고 괴물과도 같은 시도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결국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할 가능성 자체를 폐허로 끌고 가는 것으로 끝나버릴 것이다[파국적으로 말려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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