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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와 사형 문제1)

* 글쓴이 : 고우하라 카이(郷原佳以)

* 출  처 : ≪현대사상≫, 2008년 10월호, 162~179쪽.

* 옮긴이 : sanggels@gmail.com / 2009. 02. 01. / 거친 초역본이라 향후 수정 예정.


들어가며 ― 데리다와 사형 문제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어떤 철학을 근거로 한 사형폐지운동이 과연 존재할까?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가 사형폐지운동이 의존할 수 있는 철학자를 찾아보려고 하면, 사형존치론은 발견되나 사형 폐지론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어찌 보면 사형폐지운동은 철학과 그다지 상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자’란 사형의 필연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이론은 갖고 있으면서도 사형의 부당성을 보여주기 위한 이론은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러한 것일까? 그리고 그렇다면 ‘철학자’이자 사형에 반대하는 자신은 사형문제에 대해서 도대체 어떠한 사상을 내세울 수 있을까? 과거의 철학자의 사형존치론에 필적하는 철학적 수준에서 사형폐지론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가 말년에 사형을 고찰 대상으로 선택했을 때, 그를 괴롭혔던 것은 이러한 의문, 또는 오히려 갈증이었다.

1999년, 데리다는 1984년부터 행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세미나 ― 1991년 이래 모든 세미나가 ‘책임-응답가능성’이라는 큰 테마 하에서 조직되고 이로부터 수많은 저작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 의 테마로 ‘사형’을 택했다. 이 테마는 2000년도까지 두 학기에 걸쳐 논의되었다.

데리다와 사형 문제. 데리다의 사상에 정통한 철학연구자에게도 이것은 결코 자명한 테마가 아니다. 그것은 단적으로, 데리다가 이 세미나에서의 연구를 책자 형태로 승화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2) 이 글에서는 책자가 되기 전의, 또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남긴 채 제시되었다고 해도 좋은 사형론 세미나에서 필자가 청강한 2000년도의 내용을 소개한다. 한 학기에 걸쳐 약 18시간 동안 이루어진 강의를 한정된 지면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치(精緻)한 논의보다는 큰 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데, 데리다가 사형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에 대해 어떠한 전망을 품고 있는가, 그 방향성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3)


2000년도 데리다 세미나

데리다의 세미나에서는 늘 그렇듯이, 2000년에도 다양한 텍스트가 다루어졌으며,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었다. 주요 저작corpus을 언급된 순서로 거론하면, 방브니스트, 벤야민, 칸트, 프로이트, 테오도르 라이크, 카프카, 쉬네, 하이데거, 드노소 코나테스 등이다. 이 속에서 데리다가 가장 강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칸트, 프로이트, 라이크 등 세 명의 주장이었다. 이 중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 라이크는 많은 경우에도 다루어졌으며, 또는 「칸트와 정신분석학」으로도 바꿔 말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결론을 이미 말하자면, 데리다는 철학적으로 엄밀한 칸트의 사형긍정론을 탈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신분석이 칸트를 타파한다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데리다의 사명 ― 원리적인 사형폐지론

앞에서도 말해듯이, 2000년도 세미나의 전제가 되었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지금까지 어떠한 철학적 담론도 철학의 입장에서 사형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플라톤부터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는 오히려 명확하게 사형찬성의 입장을 취해 왔다. 헤겔 이후에도 철학자에 의한 사형에 대한 이의신청이 나오지 않았다. 데리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인간을 ‘죽음에 직면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검토해 온 하이데거도 사형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세미나에서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이데거는 사형의 문제가 ‘죽음에 직면한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대해서 이차적인 물음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며, 그리고 사형을 비본래적인 죽음으로 분류할 것이다.” 데리다가 자신에게 부과했던 것은 사형에 대해 이렇게까지 냉담한 철학사에 대해서 철학자로서 마주대한다는 곤란한 과제였다.

그러나 도대체 ‘철학으로서’라는 것은 어떠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주지하듯이, 사형폐지론 자체는 ≪범죄와 형벌≫에 의해 큰 영향력을 지닌 18세기 이탈리아 계몽사상가 체사레 베카리아를 효시로 하여 20세기의 카뮈, 바뎅테르Robert Badinter 등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많다고는 말할 수는 없어도 계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폐지론은 모두 철학적인 것이 아니며, 그 때문에 불충분하다. 철학적이 아니라는 것은 이 경우 원리적이지 않다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원리적이다란 어떠한 조건에서도 무관계하게 명제의 정통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며, 원리적이지 않다란 명제가 조건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리다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칸트가 베카리아에 대해 겨냥한 비판이었다. 2000년도의 세미나에서 일관되게 독해 대상이 되었던 것은 칸트의 ≪인륜의 형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1797) 제1부 「법론(法論)」 중에서 ‘국가법’에 관한 장에 수록된 “형벌권 및 사면권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달린 절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칸트는 분명히 베카리아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 따르면 ― 과거에서부터 지적되어 온 것이었지만 ― 칸트는 이 절의 시작부터 베카리아를 논적으로 상정한다. 말하자면, 절을 시작할 때부터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에 의한 형벌은 범죄자 자신에게 있어서, 또는 시민사회에 있어서 다른 선을 촉진할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항상 오로지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즉, 인간이 타인의 의도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다루어진다는 것, 물권의 대상과 하나로 간주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 행복론의 고부라진 길을 기어 돌아다니며, 예상된 수익 때문에 사형을 면제한다, 또는 한 단계만 경감하는 어떤 이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 즉 ‘전 인류가 멸망하기보다는 한 명이 죽는 편이 낫다’는 바리새인의 표어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재난이든.”


여기에서 ‘바리새파’라고 가차없이 비난받고 있는 것이 바로 베카리아로 대표되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전체 인류가 멸망하기보다는 한 명이 죽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 있어서 나오게 되는 것은 하나의 계산이다. 데리다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칸트에게 있어서 유용성에 기반을 둔 사형론이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사형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위선이며, 계산에 의한 상인문화, ‘시장가격’의 문화에 속하는 것이다. ‘전체 인류가 멸망하기보다는 한 명이 죽는 것이 좋다’는 언명은 사형폐지가 아니라 사형찬성을 위한 언명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베카리아의 폐지론은 사실 이러한 계산과 이질적이지 않다. 왜 그러한가? 여기에서 베카리아의 폐지론의 안목(眼目)은 ‘전체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 한 명이 죽은 편이 낫다’가 아니라면 사형은 불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전체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 한 명이 죽는 편이 낫다’가 되면 사형은 용인된다. 사실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형이란 한 사람의 국민에 대해서 국가가 그를 멸망하는 것을 필요 또는 유용하다고 판단할 때 선포하는 선전이다. 그렇지만 만일 내가 국민의 이러한 죽음은 국가의 통상적 상태에 있어서는 유용하지 않으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면, 나는 인간성을 위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4) 그리고 이 직후에는 “한 명의 국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두 가지 경우”의 설명이 이어진다. 따라서 베카리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용성’, ‘필요성’이며, 그 때문에 그의 폐지론은 어지까지나 조건지어진, 부분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원리적이 아니라는 것은 이것이다. 실제로, 데리다는 루디네스코와의 대담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 문장은 가장 효과적인 사형옹호론으로 독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5)라고 통렬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얄궂게도 앞의 문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1981년에 프랑스를 사형폐지로 이끌었던 로베르 바뎅테르에 의해 그의 저서 ≪사형폐지≫6)의 머리글로 내걸려 있다. 따라서 데리다는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확신에 가득찬 바뎅테르와 같은 폐지론자에게서조차 ‘유용’이라는 것이 문제로 된다. 그것은 항상 공리주의적, 실용주의적, 경험주의적인 폐지론이다.” ― 그렇지만, 말할 것도 없지만, 데리다는 바뎅테르의 공적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형존폐를 넘어서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는 점에서 칸트와 데리다는 공통적이다. 즉, 범죄억지력을 근거로 한 사형존치론도, 정당방위를 근거로 한 사형폐지론도, ‘유용성’에 의한 사평폐지론이라는 것에 있어서 원리적이지 않다.7) ― 차원을 달리 하는 논점이며, 세미나에서는 문제로 되지 않았으나 면죄를 근거로 한 사형폐지론도 마찬가지로 원리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데리다의 기본 자세는 명확하게 되지 않았을까?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하자면, 철학자 데리다는 베카리아와 같은 공리주의적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폐지론보다는 칸트와 같은 원리적이기 때문에 존치론 쪽을 겨냥해야 할 사고방식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사형폐지론자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기획은 칸트와 동일한 철학적 수준에서, 사형을 원리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 기획에 따라서 데리다는 칸트의 논고의 탈구축을 시도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사실상 몹시 곤란한 목표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데리다의 2000년도 세미나는 이 목표를 완전히 달성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데리다 자신이 책의 형태로 정리하지 않았던 것에도 역시 걸어야 할 행로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데리다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세미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형선고란 인위적인 선고, 즉 [삶의] 정지arrêt이며, 안배이다. 따라서 탈구축가능하다.”


형벌(peine)이란 무엇인가 ― 형벌의 이중성

데리다의 탈구축적 전략의 경향인데, 사형론에서도 그는 문제의 정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형’을 어원에서 다시 묻는다. ‘사형’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을 가하는 ‘형(刑)’이다. 그렇다면 우선, ‘형벌(peine)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거기에서 데리다는 언어학자 에밀 방브니스트의 ≪인도 유럽어족 제도어휘집≫ 제5장 「명예와 포상」을 참조하여 이 물음을 던진다. 우선 ‘형벌’이라는 말의 어원이 「명예와 포상」에 관한 장에서 찾아진다는 것에 주목해 보자. 방브니스트의 서술이 복잡하게 얽혀있기는 하지만, 데리다의 논의의 전제로 되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브니스트는 이 장에서 ‘포상’ 및 ‘명예’를 의미하는 단어의 기원을 꼼꼼하게 조사한다. 우선 ‘포상’을 의미하는 géres라는 그리스어의 파생어나 용법이 검토된다. 이어서 ‘명예’나 ‘위엄’을 의미하는 timḗ라는 그리스어를 검토한다. 우리들에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후자이다. timḗ는 ‘존경하다’를 의미하는 고대 동사 tiō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말한 후에, 방브니스트는 timḗ가 결합된 어원군을 열거한다. 즉, “timáō, átimos(timḗ를 빼앗겼다) 외에, tínō(지불하다), tínumai(지불받다, 상을 받다), tísis(벌, 보복), átitos(지불받지 않다, 벌을 받지 않다) 등으로 이루어진 어군이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용어는 부채에 대한 지불이나 나쁜 일ㆍ비행의 변상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죄를 갚기 위해 치러야 할 부채를 나타내는 그리스어의 poinḗ나 라틴어 poena가 프랑스어 peine의 어원이다. 그리고 나아가, 방브니스트에 따르면 timḗ는 산스크리트어, 아베스타어에서도 ‘존경하다’와 ‘지불하다’, ‘벌하다, 혼내주다’, ‘보복’, ‘증오’를 의미하는 단어와 대응한다고 한다. 이처럼 방브니스트의 어원학적 조사에 따르면 인도-유럽어를 조어(祖語)로 하는 곳에서는 ‘명예를 부여하다’라는 의미와 ‘벌하다’라는 의미는 같은 어휘에 속하고 있다. 데리다는 이 연구를 소개하면서 모순된 현상을 앞에 둔 방브니스트의 당혹감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즉 방브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의미의 차이에 의해서 어떤 문제가 생겨난다. ‘벌하다’와 ‘존경하다’라는 두 개념 중 어떤 개념이 우선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어떻게 ‘벌을 주다, 복수하다’에서 ‘존경하다, 명예가 되다’로의 의미상의 이행이 가능했을까?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정합하게 만드는 것은 상당히 막연한 연결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8) ‘명예’와 ‘형벌’의 ‘상당히 막연한 연결 관계’, 데리다는 이것을 (독인 동시에 약인) 파르마콘처럼 낯선 친숙한unheimlich 것이라고 형용했다. 그러나 방브니스트 자신은 결국 이 이율배반은 ‘우연에 지나지 않다’9)고 하며 ‘명예’와 ‘형벌’의 두 계열을 분리하여 순수한 개념을 보존하여 낯선 친숙함을 추방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데리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두 계열의 혼란이라는 이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데리다는 이 ‘명예’와 ‘형벌’의 결합에 구애된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은 이 이중성이 칸트의 사형긍정론의 밑바탕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나아가지 않으면서 데리다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방브니스트에 의거하여 ‘형벌’(peine) 속에서는 그 대(對)개념인 ‘명예’가 깔려 있다는 이율배반을 보여준 후에, 데리다는 방브니스트의 어원학적 고찰을 넘어서 나간다. 그는 첫째로, 프랑스어 peine이 지닌 다른 하나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peine에는 ‘형벌’ 외에 ‘아픔’이라는 의미가 있다. J'ai de la peine이라고 말하면 “나는 아프다, 나는 고뇌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나는 형벌을 갖고 있다”이다.) 영어로 말하면 pain과 penalty라는 두 가지 의미가 peine라는 프랑스어에는 포함되어 있다. 우리들이 그다지 주의하지 않고 사용하는 관용구의 어원적 의미를 상기하게 한다는 것은 데리다의 논의의 정석인데, 그는 여기에서도 ‘나는 아프다’ 안에는 ‘형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견, 사형문제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되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데리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론 당연히 ‘형벌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묻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오히려 프랑스어로 “peine란 무엇인가?”라고 바꿔 말하는 편이 좋다. 여기에서의 데리다의 물음이란 우리들이 “나는 아프다”라고 말할 때, 그 peine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다는 것이 내가 어떤 형벌을 받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형벌= 아픔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순수하게 나의 외부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순수하게 나의 내부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닐 것이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peine(아픔=형벌)은 내부-외부로부터 와서 내부-외부에 머문다. 즉 순수한 자기-처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형벌’과 ‘아픔’의 이중성을 보여준 다음에, 데리다는 이제 ‘사형’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이번에는 ‘사형’의 예외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즉, ‘형벌’이 ‘아픔’과 동의어라고 한다면, 형벌의 주체는 고통의 주체, 아프다는 경험의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엄밀하게 말하면, 사형에서는 사형이라는 형벌이 집행되는 순간, 즉 죽음의 순간에서는 ―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 ‘형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현실의 사형수의 아픔을 생각하면, 이러한 논의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 때문에 데리다가 특유의 전미래형을 사용하여 말했던 것에 따르면, “누구도 사형에 의해서는 처벌되지 않았던 것이 된다.”이다.

일찍이 ‘형벌’과 ‘아픔’의 이중성의 귀결 ― 즉, 엄밀하게 말하면 ‘사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 를 보여준 후에 데리다는 다시 ‘형벌’과 ‘명예’의 이중성으로 돌아가서 ‘형벌’과 ‘명예’의 ‘낯선 친숙한’ 연결관계에 이름을 부여하고자 시도한다. 그것은 ‘분배’, ‘보수’, ‘보상’ 등의 말로 불려진 후에, 마지막으로 단적으로, prix라는 한 마디로 언표된다. 영어로 말하면 price이다. 그런데 프랑스어의 prix에는 ‘가격’ 외에 ‘상, 포상금’ 등의 의미도 있다. ‘형벌’이 ‘상’이라는 것은 흡사 범죄가 공적(功績)으로서 찬양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지적하자, 데리다는 이것을 검증하면서 벤야민의 「폭력비판론」(1921)의 검토에 들어간다.


“모든 사형수는 정치범이다.”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 관해서는, 데리다는 이미 10년 전인 1990년, ≪법의 힘≫10)에 수록된 강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고찰을 전개하고 있다. 세미나에서의 논의는 그것을 토대로 한 것이며, 나아가 사형의 문제에 조준을 맞춘 것이다. ≪법의 힘≫에서 명확하게 되고 있듯이, 「폭력비판론」에서 벤야민이 명확하게 했던 것은 근대법에는 근거 부여가 되지 않은 채로 법을 정초하는 ― 그 때문에 법의 내부에 있는 법의 외부의 심급으로서 법 자체에 위협을 미친다 ― 법정초적 폭력과, 정초된 법을 더 강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법유지적 폭력이라는 두 종류의 폭력이 내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의 힘≫에서 데리다가 강조했던 것은 폭력의 ‘두 가지 기능’으로서 제시된 이 두 종류의 폭력이 사실상 엄밀하게는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이며, 두 종류의 폭력의 혼합이야말로 법을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벤야민에게 있어서 두 가지 폭력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무시무시한[역겨운, 불쾌한] 장으로서 다루어진 법제도에는, 근대법 자체의 근거 없는 근거가 구체적으로 현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벤야민은 그러한 예로 특히 두 개의 법제도를 지명했다. 사형과 경찰이 그것이다. 세미나에서는 이 중 사형을 둘러싼 서술이 전개되었는데, 데리다는 해당 부분의 검토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하나의 대목을 다루었다. 우선 그것부터 확인해 두자.

벤야민의 논의의 출발점에 있는 것은 근대법이 개인들의 폭력행사를 금지하고 폭력을 자신만이 독점하고 한다는 하나의 사실이다. 벤야민은 법이 무엇을 위해 (“법의 이해관심interest”) 폭력을 독점하는가를 물으며, 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독점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법의 수중에 없는 폭력은 그것이 추구할지도 모르는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법의 틀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의해 언제나 법을 위협하기”[법의 수중에 있지 않을 때의 폭력은 그것이 추구할 수도 있는 목적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의 바깥에 현존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법을 위협하기, 144쪽]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법은 법의 외부에 존재하는 폭력에 의해 위협을 느끼는가? 그것은 왜냐하면, 혁명적 총파업이나 전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폭력에는 법을 제정하는 성경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법은 원래 폭력적인 법제정에 의해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 폭력을 독점하고 자신 이외의 법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설을 보강하는 것으로서 벤야민은 하나의 현상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대’ 범죄자”가 자주 인민(대중)의 은밀한 감탄을 자아낸다는 현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중의 감탄은 그의 행동이 아니라, 오직 그 행동이 증언하고 있는 폭력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오늘날 법이 모든 행위 영역에서 개인들에게 허용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폭력이 위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법을 반대하는 군중(인민)의 공감을 자극한다.”11)(144쪽) 이 대목을 부연하여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민은 은밀하게 대범죄자에게 명예를 부여하고, 처형 장소에 나가 매료되며 환희한다. 처형을 요구하는 동시에 대범죄자를 숭배하며 ‘공감’한다. 법 및 국가에 대한 대범죄자의 잠재적인 항의 속에서 인민을 대표하는 것으로서의 궁극적인 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숭배는 극히 은밀하여 분명하지가 않고 명확하지 않다.” 인민이 대범죄자에게 ‘공감’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범죄자에 의해 국가법에 대항하는 다른 법의 제정 가능성이 시사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때문에, “대범죄자는 혁명가로서 숭배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대범죄는 정치적 공적(功績)이다.” 그리고 대범죄란 국가법에 의해 사형을 언도당하는 범죄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면, 요컨대 “모든 사형수는 정치범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벤야민이 “‘대’ 범죄자”라고 ‘대’를 강조하여 표기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자.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이른바 절대적 범죄자인다. 데리다에 따르면, “절대적 범죄자란 여차저차한 범죄를 저지른 자가 아니라 최고의 범죄를 범한 자이며,  그 때문에 법 속에서의 법이며, 따라서 누구보다도 정치적이다. 그는 법과 결합하여 있다. 그 때문에 인민은 매료되는 것이다.” 앞의 범죄가 공적으로서 찬양받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형벌’과 ‘명예’의 이중성이 떠오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국가의 주관자와 절대적 범죄자란 모두 힘의 일격에 의해 법을 제정하는 잠재력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관계와 부정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다만, 주권자는 법을 중단하고 사면을 제공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또한 나아가 결정적인 것인데, 처벌조차도 되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절대적인 범죄자와 다르다. 아니, 오히려 이 두 가지 점이야말로 주권자의 정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주의해 두고 싶은 것은 이상의 데리다의 논의는 기본적으로는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의 충실한 부연이라는 것이다. 다만, 대범죄자에 대한 인민의 ‘공감’에 관해서는 벤야민의 관심사를 넘어서서 문제를 응시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말하자면 데리다는 이러한 ‘공감’을 ‘무의식적 정동’이라고 고쳐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인민은 무의식이며, 무의식을 지닌다. 명백하다고 할 수 없는 숭배는 외적으로 가해진 형벌과 자연적인 형벌이라는 두 개의 공간 사이에서, 무의식의 문턱 속에서 진행한다.” 앞에서 서술한 순수한 외부도 순수한 내부도 아닌 peine의 ‘내부-외부’성이 떠올려질 것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대범죄자를 둘러싼 인민의 무의식은 이러한 ‘내부-외부’에 위치지어질 수 있다.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사이의 공간’이야말로 데리다의 사형론의 열쇠이다.

그런데 대범죄자를 둘러싼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한 다음에, 데리다는 사형을 둘러싼 벤야민의 논의의 검토에 들어간다. 벤야민은 우선,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원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동기가 원리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의 대목을 읽어보자. “사형 비판가들은 사형에 대한 공격이 처벌의 기준이나 개별적인 법Gesetz[개별 법규]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법 자체를 그 기원에서부터 공격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아마도 그 이유를 제시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심지어 이를 느끼려고 의도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150쪽) 사형폐지론은 법 자체의 기원(근원)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은 즉, 사형이란 법 자체의 기원의 노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만약 폭력 ― 운명에 의해 왕좌에 오른 폭력 ― 이 법의 기원이라면, 가장 끔찍한 폭력인 생사에 관한 폭력에서, 이 폭력이 법질서 안에 출현하는 곳에서, 법의 기원은 실존하는 것 안에서 대표적인 방식으로 부각되고 자신들의 두려운 모습을 내비치게 되기 때문이다.”(150쪽, “폭력 ― 운명에 의해 왕좌에 오른 폭력 ― 이 법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폭력이 법질서 안에서 출현할 때의 최고의 형태인 생사를 좌우하는 폭력이 되며, 법의 근원이 대표적으로 실체화되고 공포스러운 모습을 여기에서 현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다.”, 번역수정) 즉, 사형이란 이것이 법질서의 틀 안에서 행사되는 살인이라는 최대의 폭력인 한에 있어서, 이제 처벌의 한 형태라는 것을 넘어서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최대의 폭력이며, 그런 의미에서 법 자체를 성립시키는 폭력의 실체화라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벤야민은 사형 속에는 “법 안의 썩어 있는 어떤 것이 섬세한 감성에게 매우 뚜렷하게 전달”[법 안의 썩어 있는 어떤 것이 느껴지게]된다고 서술한다.(150쪽)12) 이상의 대목을 부연하여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형폐지론자는 확실히 법의 기원과 탄생을 계시하는 제도에 도전하게 된다.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법에 대해 법을 제정한다는 것, 법을 그때 재발명한다는 것이다. 사형은 균형 잡힌 형벌로서의 처벌이 아니라 등가적 관계없이, 완전히 불균형하게 ‘보다 위에서’, 최상급에서, 과장되게 가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때문에 그것이 죽음을 부여하는 것인 한에 있어서, “<사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벌’이거나 ‘죽음’이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앞에서 제시된 사형의 예외성도, 벤야민을 경유하여 다른 각도에서 확인되게 된다. 즉, “<사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벤야민을 통해 사형이란 법을 유지하는 것만 아니라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최대의 폭력이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셈인데, 사형폐지를 요구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커다란 사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사형을 폐지하고자 한다면, 법 자체를 ― 이와 동시에 모든 ‘형벌’을, 그리고 국가라는 틀 자체를 폐지해야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이미 19세기 전반에, 사형폐지론에 대한 의문이라는 형태로 도노소 코르테스Donoso Cortes가 명확하게 말했던 것이기도 하다.13)

이상에 의해, 법에 의한 ‘사형’의 극히 특수한 위치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도대체 정말로 사형폐지론과 관련되어 있는가? 그러한 불안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전개이다. 그런데 이상의 논의를 가지고 데리다는 칸트의 논고로 돌아간다.


법적 형벌 / 자연적 형벌?

베카리아의 공리주의적 폐지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최초로 다루었던 칸트의 문장으로 돌아가자. 앞에서는 생략했던 대목에 이번에는 주목해 보자.


“재판에 의한 형벌은 … 항상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 물권의 대상과 하나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며, 시민적 인격이라는 것을 박탈하는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생득적 인격이라는 것이, 그렇게 다루어지는 것으로부터 그 사람을 지키기 때문이다. 처벌해야 한다는 인정이 범죄자 자신 또는 동료 시민에게 그 형벌에 의해 초래된 이익에 관해 생각하는 것에, 선행해야만 한다. 형벌의 법칙은 정언명령이다.14)


형벌은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가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단순한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문제로 되는 것은 형벌이 어떠한 외적인 이해관심에도 도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외적인 이익에도 이바지하지 않고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범죄자에게 ‘시민적 인격’으로부터 구별된 ‘생득적 인격’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 이른바 ‘명예’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벌해야 한다[strafbar]”고 인정하는 것은, 일체의 감정적인 동인과는 무관하게, 범죄자가 ‘처벌받을 만한’ ‘인격’을 보존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격’이란 외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와는 달리, 그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이성적 존재재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있어서 법을 위반한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그 자의 ‘인격’에 대한 정의의 행위이며, 거꾸로 어떠한 외적인 이익 때문에 형벌을 완화하는 것이나 어떠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벌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의에 대한 침해가 된다. 그 입장을 명료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궁극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시민사회가 전체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쪼개져서 세계의 곳곳으로 흩어지자고 결정한다고 하자) 그 전에 감옥에 갇힌 최후의 살인범이 사형을 사형에 처해야만 한다. … 왜냐하면 처벌하지 않으면, 정의에 대한 이러한 공적인 침해의 공범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15) 이처럼 칸트의 사형긍정론의 근저에는 방브니스트에 있어서 어원학적으로 확인된 ‘처벌’과 ‘명예’의 이중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에게 있어서 ‘인격’의 존엄은 계산가능한 어떠한 이해관심보다도 상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보다는 훨씬 높은 지고한 가치이다. ― ‘생명의 존엄성’을 도그마로서 재단하는 것은 벤야민도 마찬가지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칸트에게 있어서는 지고한 가치인 ‘인격’의 존엄은 계산가능한 가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으며, ‘인격’의 존엄은 계산을 넘어선 곳에 있다. 그런데 칸트는 동시에, 양형(量刑)의 기준으로서는, ‘상호대등성의 원리’,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탈리오의 법’(lex talionis, 동해보복同害報復의 법)16)을 거론한다. 그 때문에 데리다는 형벌이 목적으로 한 ‘인격’의 존엄이 계산불가능한 이상, ‘인격’과 ‘인격’의 평등성은 측정될 수 없기 때문에, 칸트의 ‘상호대등성’은 ‘두 개의 척도 없는 것 사이의 계산불가능한 상호대등성’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것과 관련하여, 「법론」의 보론 제5절 「형법이라는 개념의 해명에 관한 보족」을 검토하고, ‘강간’, ‘소년애’, ‘수간’이라는 세 종류의 범죄에 대해서는 칸트 자신이 ‘탈리오의 법’에 따른 형벌을 주는 것의 곤란함을 눈치채고 당혹해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17) 그렇지만 앞의 신중한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데리다는 칸트가 자신의 주장과는 반대로 계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모순을 폭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적에서 데리다의 주안은 오히려 “계산은 항상 계산불가능한 것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에 있다. 상술할 수는 없으나, 이 명제를 둘러싸고는 ‘계산’과 ‘이성’의 관계에 간한 하이데거의 ≪근거율≫의 검토가 행해졌다.

그런데 칸트는 위의 논의에 이어서, 범죄자 자신의 판단에 관한 검토를 시작한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자는 ‘명예’를 알고 있다면 스스로 사형을 바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에게 말을 하라고 한다면,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은 죽음을 선택하고, 악당은 손수레를 선택한다.”18) 여기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이성적 주체의 자율이라는 칸트의 관념이다. 그것에 따르면 처벌할 수 있는 이성적 주체는 자율적이다. 자율이란 자기 자신에게 법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이성적 주체는 반성적 계기를 내재화하며, 스스로 산출하는 법에 따른다.” “범죄자는 이성적으로 처벌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며, 자신의 사형을 요청하며, 자기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한다.” 이로부터 데리다는 나아가 두 개의 말바꾸기를 끌어낸다. 즉, 칸트의 논리에 기대면, 사형은 ‘자기처벌’이며 ‘자살’이다. 데리다는 이 귀결을 ‘사형의 자살적 진리’라고 부르는데, 이 귀결을 보강하기 위해 데리다가 참조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카프카의 텍스트였다. 즉, ≪아메리카≫, ≪소송≫, 그리고 일기이다. 이유 없는 체포의 이야기인 ≪소송≫의 말미에 나오는 K의 처형장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처형이 잠재적인 자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915년 9월 30일자 카프카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로스만(≪아메리카≫의 주인공)과 K, 죄 없는 자와 죄 있는 자, 결국 둘 모두 구별 없이 죄를 받아 살해당한다. 죄 없는 자는 보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쓰러진다기보다는 옆으로 밀쳐지면서.19) 자기처벌로서의 사형, 여기에서 데리다는 “칸트적인 논리”의 표현을 간파했다. 칸트적인 카프카, 카프카적인 칸트. 데리다는 이 접속에서 칸트의 논의의 대전제가 붕괴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억지로 생략해 왔었는데, 계속 반복하여 참조하고 있는 대목 앞에는 논의의 대전제로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놓여 있다. “재판에 의한 형벌(poena forensis)은 자연에 의한 형벌(poena naturalis)과는 구별된다. 자연에 의한 형벌은 범죄 그 자체가 스스로를 벌하는 것이며, 입법자가 반드시 이를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에 의한 형벌은….”20) 이 문장은, 이후의 논의의 주어가 모두 “재판에 의한 형벌”, 즉 “법적 형벌”이라는 것을 앞에서 규정하고 있다.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칸트는 여기에서 “법적 형벌 ― 타자(국가)에 의해 가해진 인위적, 역사적, 외적, 비자연적, 제도적 형벌 ― 과 자연적 형벌 ― 범죄자 자신의 처벌 ― 을 구별하고 있다.” 법과 자연, 외부와 내부, 타자와 자기의 경계선이 여기에서 그어진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이, 칸트적 논리에 따르면, 궁극적인 법적 처벌에 다름 아닌 사형의 진리는 자살이 아니면 안 된다. 그렇지만 외부/내부의 경계선은 성립할 수 없지 않을까?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타자―처벌이 항상 자기-처벌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면, 법적 형벌과 자연적 형벌은 더 이상 구별될 수 없으며, 칸트의 논리의 근거는 자기파괴적이게 된다. 형벌의 근거 자체에 의해서 칸트적 합리성의 초확증(超確證, hyperconfirmation)은 자기파괴적이게 된다.” 타자-처벌이 자기-처벌을 포함하는 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본 peine의 ‘형벌’과 ‘아픔’의 이중성을 토대로, 데리다는 나아가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자연적 형벌, 즉 자기-처벌은 내 속의 타자로부터 오는 이상, 권리상 항상 이미 외적이다. 순수한 자기-처벌도 순수한 타자-처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형벌’과 ‘명예’, ‘형벌’과 ‘아픔’이 서로 오염시키고, 순수할 수 없게 되듯이, 자기-처벌과 타자-처벌도 서로를 오염시킨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모두 이 경계선의 전위(轉位)를 목표로 하여 진행되어 왔다.

거기에서는 칸트가 논의의 서두에서 고찰 대상에서 제외했던 ‘자연적 형벌’에 착목하고, 자기-처벌과 타자-처벌의 대립을 무효로 하고자 하는 데리다를 배후에서 떠받쳐 왔던 것은 어떠한 사고였을까? 데리다는 여기에서 결국 그것으로 다시 향한다. 정신분석적 사고인 것이다.


프로이트와 라이크

데리다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자연적 형벌과 특권적 관계를 맺어왔다.” 벤야민에 관한 논의에서 대범죄자에 대한 인민의 ‘공감’이 “외적으로 가해진 형벌과 자연적 형벌이라는 두 개의 공간 사이에서, 무의식의 문턱 속에서 진행되는” “무의식적 정동”이라고도 바꿔 말해졌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문제가 이미 정신분석의 어휘로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세미나에서의 데리다의 정신분석과의 대담을 모두 재구성할 수는 없었으나, 우선 다루어진 문헌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 「전쟁과 죽음에 관한 시평」(1915) ; 「테오도르 라이크, ≪종교심리학의 문제들≫ 서문」(1919) ; 「처녀성의 금기」(1919) ; 테오도르 라이크의 대필에 의한 「사형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1929) 및 라이크, ≪고백욕구≫(초판은 1926~1928). 이 중 데리다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은 라이크가 대필한 사형에 관한 문장이었던 것 같다. 테오도르 라이크는 미국으로 건너가 활약한 프로이트의 제자로, 프로이트 이론을 원점에서 ‘죄책감’과 문명의 문제들, 특히 범죄와의 관계에 관해서 신화나 종교의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계속 고찰한 정신분석가이다.

문제의 문장은 2쪽 분량으로 짧은데, 이것은 현재 프로이트 전집이 아니라 라이크의 저서 ≪고백욕구≫의 끝 부분에 ‘후기’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문장의 기묘한 위치설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경위가 있있던 것일까? 라이크가 본문의 앞에 내건 설명에 따르면, 이 문장의 초판은 1926년이며, 재판관 에밀 데젠하이머의 기획에 의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출판된 ≪사형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책에 수록된 것이다. 이 재판관은 당시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형문제에 관해서 프로이트나 토마스 랑 등의 지식인에게 편지를 보내 견해를 들었다. 그런데 라이크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이 문제에 관해 장시간에 걸쳐 나와 논의한 후, 재판관이 던지 세 개의 질문에 자신을 대신하여 답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고 하며, 그렇게 쓰여진 것이 이 문장이다. 그 대답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사형에 반대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프로이트 교수는 당신의 질문을 나에게 부탁하여, 자기 대신 대답하도록 맡겼습니다. 저는 제가 당신의 조사의 취지에 기대, 현재의 상황에서 정신분석이 당신의 질문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1) 이어서 알 수 있듯이, 확신에 찬 라이크의 어조이다. 동시에 그 자신이 이중화되어 있다는 것도 볼 수 있다. 즉, 첫째로 자신은 프로이트의 견해를 숙지하고 있으며, 스승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 둘째로는 정신분석은 사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데리다의 세미나를 통해 사형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힘든 것인가를 확인했는데, 이렇게 보면 라이크의 자신감은 놀라운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정신분석은 어떻게 사형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그것은 “프로이트의 견해”일까? 서명은 라이크였으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 문장의 까다로운 구조는 데리다와 같은 독자를 고심하게 만든 것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데리다는 즉각 이 텍스트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고, 텍스트를 틀짓는 구조부터 분석했다. 데리다가 주목했던 것은 프로이트와 라이크의 일종의 부자관계이다. 라이크는 프로이트가 자신에게 준 신뢰를 자꾸만 강조한다. 한편으로 프로이트도 라이크의 책에 서문을 붙여 자신의 이론에 대한 제자의 충실함을 인정한다.22) 라이크는 프로이트의 필적으로 관록이 붙은 동시에 프로이트도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라이크는 무엇에 있어서 스승에게 충실한 것일까? 두 사람이 모두 인정하듯이,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1913)에서 제시한 ‘죄책감’에 관한 테제에서이다. 즉, 일찍이 신인 아버지는 원초의 인간군의 수장으로 지배권을 누려 왔는데, 그 자신들이 결속하여 이 아버지를 무너뜨린 결과 최초의 사회적 속박, 그리고 도덕적 제한이 생겨났다. 도덕적 제한이란 원부살해가 자식들에게 심어준 ‘죄책감’에 의해 생겨난 ‘법’이다. 그것이 첫 번째로 부과된 것은 ‘법’의 기원으로 된 원부살해를 반복하는 것의 금지, 즉 살해의 금지이다. 라이크는 프로이트로부터 이 원부살해 이론을 계승하고 이 이론 때문에 프로이트를 아버지로 맞이하며, 나아가 사형에 관한 견해를 대필한다. 이 텍스트에는 부재한 프로이트가 유령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자(父子)’의 사형론은 어떠한 것인가?

라이크는 우선, 사형문제에 관한 공적으로서,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및 논문 「죄의식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자」(1919)를 거론하고, 이것들이 “그렇게 멀지 않은 장래, 정당하게 평가된다면, 그 발견은 범죄자의 심리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적으로 바꾸고, 어쩌면 형법의 대규모 개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고 커다란 자부심을 보인다. 이어서 그 자신이 최신작인 ≪고백강박과 처벌욕구≫에서 이미 “프로이트 연구의 성과를 범죄학의 문제와 형법의 이론에 적용하고 있다”고 자기 책을 소개한다. 그런 다음에 구체적인 응답이 시작된다. 짧은 문장이기에 인용하면서 따라가 보자.

우선 결론이 앞에 나온다. 그것에 따르면 범죄도 사형도 탈리오의 법에 기반한 것인데, 탈리오의 법이란 “극도로 폭력적인 욕동의 표현, 복수의 정신과 보복의 갈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삶의 무의식적 정동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프로이트와 라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사형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따라서 인도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죽이지 마’라는 보편적 금지가 심리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들은 곧바로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다음에, 이상의 입장의 정신분석적 근거를 제시한다. “프로이트가 보여주었던 바에 따르면, 형법이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반사회적 개인은, 사실상 나쁜 짓을 저지르기 이전에 극히 강력한 무의식적 죄책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선행하는 죄책감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억압된 욕동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죄책감은 범죄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라고 생각된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귀결이 도출된다. “범죄는 … 죄책감의 욕동을 무엇인가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것으로 결부시키기 때문에 안도감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범죄는 금지된 욕동을 대신하여 충족시키는 것으로, 선행하는 죄책감을 근거짓는 동시에 누그러뜨린다.” 따라서 형벌에 의한 ‘범죄억지력’을 주장하는 이론은 진실과는 정반대되며, 어떤 종류의 상황에서는 “형벌은 … 사람들을 무의식 속에 범죄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교사가 된다.”23) 이상의 논의는 확실히 프로이트 자신이 이미 「죄의식 때문에 죄를 저지른 자」에서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희망에 찬 한 문구에 관해서는, 어쩌면 프로이트의 견해라기보다는 라이크의 견해에 가까운 것이지 않는가라고 추측된다. “정신분석적 연구의 귀결들에 의해 우리는 아주 깊이 범죄의 진정한 동기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적 죄책감의 수수께끼 같은 힘을, 심리적 차원에서 누그러뜨리고 잘 다루며, 나아가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24) 즉, 정신분석이 죄책감에 다른 분출구를 부여하여 해소시킨다면, 범죄도 잔혹한 처벌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프로이트와 라이크의 사형폐지론이다. 칸트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데리다가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그가 이상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죄책감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으며, ‘자연적 형벌’에 다름 아닌 그 안마당의 악함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외적으로 가해진 형벌’, 즉 ‘법적 형벌’에 의해 처벌되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사고를 배경으로 하여 데리다는 “순수한 자기―처벌도 순수한 타자―처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으며, 칸트의 논의의 핵심을 뚫고 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정신분석적 사고에 의해 칸트의 논의가 격파된다고 데리다가 생각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데리다에 대한 커다란 오해이다. 위의 논의만으로는 칸트의 사형긍정론을 탈구축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칸트의 사형긍정론에서는 감정적인 동인이 쓰이지 않고 있으며, 형벌의 근거는 프로이트와 라이크가 주장한 “극도의 폭력적 욕동”과는 상이한 것에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이크는 ≪고백욕구≫에서 칸트의 사형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데리다는 그의 칸트 해석을 “날카로움을 결여하고 있다”고 단 칼에 제외해 버리고, 양자의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즉 “칸트에게 있어서는 사형은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형벌은 안도감을 초래하는 것일 수 없다.” 그러한 칸트의 초월론적 사형론에 대해 데리다는 “칸트에게서 계산가능한 광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데리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형론이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데리다는 라이크의 견해를 전면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가 정신분석에 극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더욱이 어떤 의미에서는 라이크의 낙천적인 희망과 서로 닮은 데가 있을 정도이다. 우선 라이크의 희망에 관해 확인해 두자. 앞에서 프로이트와 라이크의 텍스트의 끝 부분에 놓인 희망으로 가득찬 한 문장은 라이크 자신의 견해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것은 라이크가 ≪고백욕구≫의 제2부 「고백강박」 제6절 “형법의 정신분석적 이론”에서 위의 논의를 더 전개하여 정신분석이 죄책감에 다른 분출구를 부여한다면 잔혹한 처벌은 폐지할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분출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고백’이다. 라이크의 연구는 모두 ‘고백’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좋다. 라이크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고백욕구’에 의해 시달리고 있다. 종교도 문학도 유머도 기지(機智)도 강박신경증도 범죄도, 억지력 이론에서조차도, 자신이 잠재적으로 유죄라는 것의 ‘고백’의 한 양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즉, 죄책감이 원초적인 것이며, ‘고백욕구’ 자체는 억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고백’하는가라는 것이 된다. 라이크에 따르면 억압된 자기―처벌의 욕구를 범죄로 향하게 하지 않는 형태로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야말로 정신분석이라는 것이다.25)

정신분석 덕분에 범죄도, 잔혹한 처벌도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는 꿈과 같은 미래를 라이크가 상상하고 있었던 때로부터 80년이 흘렀다. 이 사이에 정신분석은 라이크가 바랬던 대로 ‘세계화’를 이룩하지 못했다. 데리다는 물론, 라이크처럼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는 세미나에서 “정신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어떻게 정신분석을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통절한 양식으로 호소했다.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어쩌면 데리다는 정신분석을 고무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그 해의 세미나는 그가 세미나를 시작하기 약간 전인 2000년 7월 16일에 정신분석가들의 대규모 학회인 ≪정신분석 삼부회≫에서 행한 강연, “정신분석의 정신상태 ― 정신분석 삼부회에의 호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 강연에서 사형의 문제가 다루어졌다26)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자세히 논할 여유는 없으나 최저한의 시사만이라도 해 둔다면, 우선 데리다가 이 강연에서 행했던 것은 정신분석가들에 대한 ‘호소’(adresse)이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서 프로이트의 「왜 전쟁인가?」를 독해하면서 문제시 했던 것은 ‘잔혹함’과 ‘주권’, 또는 ‘주권’의 ‘잔혹함’의 문제였다. 데리다는 정신분석가들을 앞에 두고 정신분석은 신학적, 형이상학적인 ‘알리바이 없이’ ― 요컨대 무조건적으로 ― “심리적 잔혹함”의 고유성을 재차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담론이 아닌가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나아가 하나의 가설로서 다음과 같이 당사자들에게 물으면서, 정신분석에 대한 최대의 기대를 표명했다. “도래할 정신분석적 사고에는 다른 하나의 너머가 있을 수 없을까? … 죽음의 욕동 또는 주권적인 지배의 욕동의 너머, 즉 잔혹함의 너머가?”27) 그리고 이와 동일한 것을 데리다는 세미나에서도 말하게 된다. 제11회 세미나에서 데리다는 이렇게 언명했다. “나는 죽음의 욕동의 너머, 즉 잔혹함의 너머를 상정하고 있다. 그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논증할 수 없더라도 그것은 존재할 수 있다. 그 바닥 없는 심연의 바닥으로부터 잔혹함이나 주권 등 불가피한 현상이 출현한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심연조차도 사고한다.”

데리다는 ‘죽음의 욕동’이라는 말을 가지고 칸트를 비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데리다에게 있어서 라이크의 논의는 아직 불충분하다. 세미나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듯이, “칸트를 읜칙의 수준에서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면, 문제로 되어야만 하는 것은 “계산을 가능케 하는 계산 불가능한 것”의 위상이다. 데리다가 “죽음의 욕동의 너머”, “잔혹함의 너머”라는 말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은 이 위상에 다름 아니다. 일체의 공리주의를 없애고 철학자로서 원리적인 수준에서 사형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의 가능성을 폭력적일 정도로 크게 밀어붙이고, “죽음의 욕동의 너머”라는 것은 즉, “쾌락 원칙의 너머의 너머”를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잠정적으로 말해서, 데리다가 도달했던 결론이었다.


데리다의 사형론 세미나는 사형폐지의 현실을 겨냥하여 도움이 되기 위한 새로운 폐지의 근거를 제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수한 사형긍정론을 논파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베카리아의 사형폐지론보다도, 라이크의 사형폐지론보다도 일관되게 칸트의 사형긍정론을 모델로 내거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보강하는 형태로, 방브니스트 ― ‘형벌’과 ‘명예’의 ‘수수께끼 같은’ 연결, 그리고 드노소 코르테스나 벤야민 ― 법 자체의 근원의 실체화로서의 사형 ― 의 해당 대목을 배치한다는, 비슷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실상 기묘한 사형폐지론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데리다는 라이크처럼 낙천적이기만 한 환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러나 동시에 절대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잔혹함의 너머’로 사색을 도달하게 하고, 그것에 의해 ‘사형’을 탈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듯 침착하고 느긋한 원리론은 사형폐지가 실현되어 이미 20년 이상이 지난 나라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배심원 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사형, 그리고 형벌 일반에 관한 일본의 상황은 극히 절박하다. “신속하게 결말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이라는 초조하고 애타게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피해자 감정’을 근거로 사형존치 여론이 큰 경향이 있는 작금의 일본에서야말로 사형존폐를 넘어서는데 있어서 칸트, 벤야민, 데리다가 함께 추구했던, 일체의 공리주의적 형벌, 감정적 동인에 의한 형벌을 인정하지 않는 원리적인 형벌론이 크게 재검토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데리다가 죽은 지금, 사형론 세미나의 방향을 추측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다만, 데리다가 사형론의 탈구축에 대해 보여주었던 큰 희망, 그리고 정신분석에 정신분석의 너머를 요구한다는, 정신분석에 걸었던 너무 크다고도 볼 수 있는 기대를 생각해 볼 때, 원리적인 사형폐지론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1) 이 글은 2006년 10월 26일에 동경일불학원에서 열린 심포지엄 「사형의 다양한 표상에 관하여」의 발표원고를 재구성한 것이다.


 

2) 다만, 정신분석가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와의 대담 ≪도래할 세계를 위하여≫(2001, 藤本一勇ㆍ金澤忠信 옮김, 이와나미, 2003)의 제8장은 사형문제에 할애되어 있다. 40쪽 분량의 이 장은 대담이라고 말해도 데리다의 사형론의 특징이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더욱이 대담 속에서 몇 번이나 시사되었듯이, 대담은 사형론 세미나와 가까운 시기에 행해졌으며, 세미나에서 논해졌던 것의 단서가 명확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대담에 의거하여 데리다의 사형론을 논한 일본어 문헌으로는 松葉祥一, 「사형ㆍ주권ㆍ구출」, ≪현대사상≫ 2004년 3월호; 守中高明, ≪법≫(이와나미, 2004) 등이 있다.

   그러나 대담과 세미나 사이에는 논의의 중심이 다분히 이동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대담에서 강조된 것은 서양에서의 사형이 항상 종교, 즉 기독교와 국가의 유착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는 사실이지만, 세미나에서의 고찰의 중심은 칸트의 사형론의 분석에 있었다. 세미나에서는 칸트의 사형론의 주위로 철학, 정신분석, 언어학, 문학에서의 다양한 문헌이 배치되고, 칸트의 사형론의 탈구축이 기획되었다.


 

3) 이 글에서 소개한 것은 필자가 청강한 2000년도의 세미나이다. 1999년도의 세미나에 관해서는 高桑和已, 「오늘날의 데리다」(≪미래≫ 2001년 8월호, http://www.miraisha.co.jp/derrida/today.html)를 참조할 것. 2년간 세미나의 구성으로서는 첫해에는 유고, 카뮈, 쥬네, 보들레르 등, 문학적인 문헌의 독해에 중심이 놓여졌으며, 둘째 해에는 철학이나 정신분석 관련 문헌의 독해에 중심이 놓여졌다고 한다.


 

4) 체사레 베카리아,


 

5) Jacques Derrida/Elisabeth Roudinesco, De quoi demain …, Fayard/Galilée, 2001, p. 242.


 

6) Robert Dadinter, L'abolition, Fayard, 2000.


 

7) 아직 사형폐지론이 달성되지 않았던 1977년에 정신분석가 장 라플랑슈가 발표한 사형론도, 확실히 이것과 같은 입장에서 나온, 공리주의적 폐지론의 비판이었다. 장 라플랑슈, 「인간성 박탈로의 길(사형에 관하여)」, 졸역 및 해제, ≪현대사상≫, 2004년 3월호.


 

8) Émile Benveniste, 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éennes 2. pouvoir, droit, religion, Minuit, 1969, p. 50.


 

9) Ibid., p. 55.


 

10) Derrida, Force de loi, Galilée, 1994.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 지성사]


 

11) 발터 벤야민, 「폭력비판론」, 野村修 옮김, 이와나미 문고, 1993년, 35쪽.[「폭력의 비판을 위하여」, 진태원 옮김, 문학과 지성사]


 

12) 상동, 42~43쪽. 자세히 논할 수는 없으나, 벤야민이 말한 이 ‘법 안의 썩어 있는 어떤 것’이야말로 데리다가 주권에 관한 맥락에서 ‘잔혹함’(cruauté)이라고 부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cruauté란 어원적으로 ‘유혈(流血)’을 의미하는 라틴어 cruor와 관련되어 있다. 사형이란 법의 근원에 있는 유혈의 실체화이다. 그렇다면 사형은 법을 성립시키기 위한 일종의 희생제의이다. 이러한 “희생제의의 유혈로서의 사형”이라는 생각은 칼 슈미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19세기의 스페인 보수적 가톨릭 정치사상가 호안 드노소 코르테스가 ≪카톨릭교, 자유주의, 사회주의에 관한 평론≫(1851)에서 주장하고, 그 강고한 사형필수론의 논거로 삼았는데, 데리다는 사형을 이렇게 파악하는 방식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세미나에서는 코라테스가 ‘카인과 아벨’의 우화를 예증 삼아 카톨릭교에서의 ‘유혈의 희생제의’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또한 그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사형의 필요성을 역설한 같은 책 제3권 제6장이 상세하게 검토되었다. 드노소 코르테스의 사상에 관해서는 古賀敬太, ≪칼 슈미트와 카톨릭교≫(창문사, 1999) 제2장 「드노소 코르테스의 정치신학」을 참조.


 

13) Donoso Cortés, Essai sur le catholicisme, le libéralisme et le socialisme, Aux bureaux de la bibliothéque nouvelle et de la revue catholique de la jeunesse, 1851, pp. 361~362.


 

14) ≪인륜의 형이상학≫, 178~179쪽. 고딕체 강조는 인용자.


 

15) 상동, 181쪽.


 

16) 상동, 179쪽.


 

17) 상동, 218~219쪽.


 

18) 상동, 181쪽


 

19) 프란츠 카프카, ≪꿈, 아포리즘, 시≫, 吉田仙太郞 옮김, 평범사 라이브러리, 1996, 279쪽.


 

20) ≪인륜의 형이상학≫, 178쪽. [임마뉴엘 칸트, ≪도덕 형이상학≫, 형설출판사.]


 

21) Theodor Reik, “Freud's view on capital punishment” in The Compulsion to Confess : On the Psychoanalysis of Crime and Punishment, Grove Press, 1959, p. 472.


 

22) 프로이트, 「테오도르 라이크 박사 ≪종교심리학의 문제들. 제1부 ― 의례≫에 부치는 서문」(1919).


 

23) Reik, art. cit. pp. 473-474.


 

24) Ibid., p. 474.


 

25) Reik, “Part Two: The Compulsion to Confess,” in The Compulsion to Confess, op. cit.


 

26) Derrida, États d'âme de la psychanalyse. Adresse aux États généraux de la Psychanalyse, Galilée, 2000, p. 54.


 

27) Ibid.,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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