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 2015년 2월 임시증간호

자크 데리다

 

<미번역 텍스트>

1. 하이데거에 관한 대담자크 데리다

 

<데리다의 삶과 사상>

2. 데리다의 최고 전성기, M. 나스

3. 탈구축<, R. 가쉐

4. L’enfant que donc je suis 혹은 고양이의 에피소드는 왜 자전적인가郷原佳以

5. 데리다 처음으로 존재론적 차이와 존재자적 은유増田一夫

 

<인터뷰>

6. Deadletter로서의 철학아즈마 히로키

 

<사형>

7. 엑스 렉스 자크 데리다의 사형론 세미나, J. 페닝턴

 

<하이데거>

8. 자기 전승과 자기 촉발 데리다의 하이데거 강연(1964-1965)에 관해,

 

<철학>

9. 평행적 차이 자크 데리다장 뤽 낭시

10. 주변에서 주변으로 데리다/들뢰즈의 곶으로부터,

11. 우뚝 솟은 상태의 철학말라부

12. 타자성의 분유 계획 불가능한 것의 계산藤本一勇

 

<정치>

12. ‘전쟁의 일상화와 무조건의 환대-평화’ 사이에서松葉祥一

13. 호명으로서의 우애애도로서의 우애 자크 데리다의 우애론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宮崎裕助

14. 차연과 평등 타자의 윤리인가 아니면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인가梶田裕

 

<신학>

15. 데리다의 급진적 무신론,

16. 현상을 가르치기 레비나스데리다와 메시아주의의 물음마르셀

17. 데리다와 존재신학 칸트하이데거레비나스가 교착하는 장소로長坂真澄

 

<문학>

18. 팔루스유령천황제 자크 데리다와 中上健次

19. 데리다 미학의 연구 문학 혹은 픽션성의 제도立花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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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전쟁의 상태화/일상화와 무조건의 환대-평화’ 사이에서 (2/2)

마츠바 쇼이치(松葉祥一)

 

1/2에 이어서....


4. 칸트적 평화와 레비나스적 평화

데리다는 아듀에서 성서의 행방에 수록된 레비나스의 강연 정치는 나중에1(Lévinas 1982)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레비나스의 평화론과 칸트의 평화론을 대립시킨다(Derrida 1997b). 레비나스는 칸트의 영구 평화를 위하여를 옹호하고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입장에 서 있으며, 그 차이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데리다의 결론이다.

확실히 칸트는 전쟁과는 다른 차원의 영구평화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의 평화론은 슈미트-하이데거적인 일상화된[常態的] 전쟁론과는 다른 전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그 전제는 다음의 두 개의 명제이다. “1, 평화는 자연스러운, 대칭적인, 단순히 전쟁과 대립시킬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평화는 다른 차원의 현상이며, 자연스런 본성이 아니라 제도적인 본성(즉 정치적-사법적 본성)을 가진다. 2, 평화는 단순한 적대행위의 정지, 전쟁을 벌이는 것의 자제, 즉 휴전이 아니다. 평화는 영구평화로서, 영구평화의 약속으로서 제도화되어야 한다”(Derrida 1997b:132). , “만일 평화가 있다면, 그 평화는 영구적이지 않으면 안 되며, 제도화된 평화, 법적-정치적 평화로서, 비자연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Derrida 1979b:133)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평화는 가능할까? 적어도 정치적 방법에 의해서는 이런, 영구평화에는 도달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영구평화는 정치적이지 않게 된다. 데리다는 여기서의 칸트가 레비나스에 접근한다”(Derrida 1997b:133)고 말한다.

그러나 칸트와 레비나스는 갈라진다. 칸트는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이어야 할 환대를 제한해 버리는 것이다. 데리다는 만국의 세계시민들이여, 다시 한 번 노력하라!(Derrida 1996)에서, “세계시민의 법권리는 보편적인 환대의 조건들에 제한되어야 한다”(Kant 1795:49)라는 세 번째 확정조항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칸트가 환대의 법을 방문권에 한정하고, 체류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손님의 권리(이 권리를 요구하려면 그를 일정 기간 가족의 구성원으로 다룬다고 하는, 호의 있는 특별한 계약이 필요해질 것이다)가 아니라 방문의 권리인데, 이 권리는 지구의 표면을 공동으로 소유할 권리에 기초하여, 서로 교제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처럼, 모든 인간에게 속해 있는 권리이다”(Kant 1795:49). 데리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방인/방문자]는 체류권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방문권만 인정받는 것입니다. 칸트는 이 점에서 수많은 확연한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조건부 환대라고 부르며, ‘무조건의환대 혹은 순수한환대라고 부르는 것에 대립시키고 싶습니다. 이것은 조건 없는 환대이며, 설령 신참자가 시민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요구하지 않습니다”(Derrida 1999).

여기서 칸트는 환대에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환대=평화를 진보의 최종 단계로 되돌려보낸다는 것이다. 그것은 칸트의 평화 개념에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칸트에게서 영구평화, 세계시민적인 법권리, 보편적인 환대 같은 것의 제도화는 자연적인 적대성 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Derrida 1997b:134).

그에 반해 레비나스의 경우, 환대=평화는 무조건이어야 한다. 레비나스는 평화를 지금(La paix maitenaint)”(Derrida 1997b:134)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코스모폴리터니즘보다도 보편성을 택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레비나스에게서 모든 것은 평화에서 시작되는것이다. “이 평화는 자연이 아니다 . 또 이 평화는 단순히 제도적 내지 법적-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환대 속에서 타자의 얼굴을 맞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Derrida 1997b:137, 강조는 데리다). 레비나스에게서는 칸트와는 반대로, 전쟁 자체도 맨 얼굴의 평화로운 맞아들임의 증언이 되는 흔적을 보존하고 있으며, “전쟁이 평화의 증언인 것, 전쟁은 평화의 한 현상에 머무는 것”(Derrida 1997b:144)이 된다.

레비나스는 전쟁-평화의 대칭성을 절단하는 점에서는 칸트와 같다. 그러나 방향은 정반대이다. 칸트의 경우, 전쟁이 기반이 됐던 반면, 레비나스의 경우 평화-환대가 기반이 된다. “전쟁 자체, 적대성, 나아가 살해마저도 얼굴로의 열림이라는 근원적 맞아들임아직도 전제하며, 변함없이 맞아들임의 표명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얼굴에 대해서만이며 타자의 얼굴의 의미이기도 한 살인하지 마라는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윤리의 근원이다”(Derrida 1997b:138, 강조는 데리다). 칸트에게서는 평화를 제도화해도 자연상태로서의 전쟁의 흔적은 남는다. 거꾸로 레비나스에게서 전쟁, 면역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환대를 스스로 신청하는 경우뿐이다. 레비나스는 칸트적인 무장된 평화’, ‘휴전으로서의 평화’, 법적-세계시민주의와 절연하고 있다. 따라서 레비나스에게서 전쟁은 수단에 의한 평화의 계속”(Derrida 1997b:144)이며, 전쟁은 환대의 파생물이게 된다. “이 위대한 담론은 종말론적 평화를, 또한 무엇에도 선행될 수 없는 환대적인 맞아들임을 말한다. 거기서 무엇을 듣더라도 상관없으나, 다만 정치적인 평화신학만은 들을 수 없다”(Derrida 1997b:144). 데리다는 이런 레비나스의 평화 개념을 ()-근원적인 환대혹은 과정 없는 평화”(Derrida 1997b:139)라고 부른다.

레비나스는 이 평화-환대의 기반을 언어작용에서 간파한다. 왜냐하면 레비나스는 언어작용의 본질은 선량함이며, 나아가 언어작용의 본질은 우애이며 환대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Derrida 1997b:138). 가령 전체성과 무한의 끝부분에서, 언어 속에서 타자, 그 어떤 경계선도 부정도 없는, <타자와의> 평화적 관계의 적극적인 전개가 산출된다고 말했음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거기서는 급진적인 분리의 다원론”(Derrida 1997b:146)이 문제가 됐다. 그것은 전체적인 공동체의 다원성이 아닌 듯한, 다원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정합성이 아닌 듯한 다원론”(Derrida 1997b:146)이다. 거기서의 다원성의 통일이야말로 평화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평화를 전쟁의 종식과 동일시할 수 없다”(Lévinas 1999:471).

그러나 데리다는 이런 레비나스에게서의 평화론을 두 가지 점에서 비판한다. 한편으로, -근원적인 환대’, ‘아나키한 선량함부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Derrida 1997b:143-144). 그 결과, 평화에는 계층질서적인 비대칭성이 남게 된다. 다른 한편 이런 레비나스의 윤리적 평화론은 보편주의-배외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죽이지 말라라는 윤리적 명제를 절대화함으로써 자신의 입장만이 보편적이며 다른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 배외주의에 빠지며, 폭력적 배제나 처벌에 길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비나스가 시오니즘이 내셔널리즘을 넘어선 윤리적 입장이라고 주장할 때, 이 위험에 길을 열고 있다(Derrida 1997b:165). 현실에서 시오니즘이 배타적 폭력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게 될 때, 이 입장의 위험성을 알 수 있다.

 

5. 윤리적 평화와 정치적 평화 사이에서

우리는 칸트와 레비나스의 평화론을 윤리적 평화냐 정치적 평화냐라는 문제로서 검토했던 적이 있다(松葉 2008). 한편으로 윤리적 평화론이 무력하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평화론에 늘 위험이 따라다닌다는 것도 사실이다. 1차 대전 후의 부전조약[不戰條約, Treaty for the Renunciation of War; 켈로그-브리앙 조약]이나, 유엔헌장에서 무력행사를 행할 수 있는 예외적 조건으로서 자위권이 인정된 이후, 팽창일로를 거듭해 왔다. 그것은 무력행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대외적, 대내적인 논거로서 계속 확대되며, 이제는 예방적·선제적 자위권이나, 확대된 집단적 자위권까지 주장하게 되며, 어떤 군사적 행동도 그 안에 던져 넣을 수 있는 개념이 되고 있다. 이런 자위 개념의 팽창을 억누르는 것은 더 이상 정치적 수단만으로는 곤란하다. 칸트나 아베 드 생-피에르(Abbe de Saint-Pierre)가 주장한 이성=이익에 기초한 정치적 수단으로는 자위 개념의 비대화와 그것에 기반한 정전론(正戦論)의 부활을 막을 수 없으며, 정치적 차원에서 윤리적 차원으로의 전회가 필요하다는 것은 틀림없다(松葉 1995).

다른 한편으로 윤리적인 평화론이 불충분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전쟁의 일상화[常態化]가 기본인 한, 그것이 아무리 일시적이고 위험한 것이라 해도, 정치적인 수단에 의한 해결책의 추구는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칸트적인 세계시민공화국에서의 도래할 민주주의를 상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리다가 지적하듯이 칸트는 정치적 평화를 위해 국가연맹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그저 현실주의적인 타협안으로서 제기했던 것에 불과합니다”(Derrida 1997a). 실제로 칸트는 두 번째 확정조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 관계가 있는 국가들에 있어서 그저 전쟁밖에 없는 무법적인 상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의거한 다음의 방책밖에는 없다. , 국가도 개개인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미개한(무법적인) 자유를 버리고 공적인 강제법에 순응하고, 그리고 하나의(가장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 민족들의 합일국가(civitas gentium)을 형성하고, 이 국가가 항상 지상의 모든 민족을 포괄하도록 한다는 방책밖에는 없다”(Kant 1795:47). 그러나 이런 세계시민국가라 해도, 자기 면역으로서의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전쟁의 본질에 대치할 수 있는 것은 윤리적 평화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평화를 조금씩이라도, 일시적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수단에 의한 것밖에는 없다.

확실히 영구평화를 위해영구평화의 어정쩡한 약속, 유보 없는 환대에 관한 양의적인 혹은 위선적인 약속”(Derrida 1997b:151)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칸트는 무덤을 갈망하는 것도, 평화주의적 철학자의 달콤한 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Derrida 1997b:151-152). 칸트는 이 양자택일에 대한 응답으로서, 환대의 법권리나 세계시민정치를 제안한다”(Derrida 1997b:152).

여기서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적어도 칸트와 레비나스 사이에 있는, 어떤 차이를 여기서 첨예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르완다에서, 유럽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에서, 그리고 세계 속의 생베르나르(Saint Bernard) 교회에서, 무수한 상파피에홈리스들이, 다른 국제법, 국경선에 관한 별도의 정치, 인도(人道)에 관한 별도의 정치, 나아가 국민국가의 너머에서 실효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인도적 참여engagement, 그런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도처에서, 칸트와 레비나스의 이 치아는 전례 없이 중요한 것이다”(Derrida 1997b:152).

우리는 슈미트-하이데거적인 전쟁의 일상화[常態化]’를 인정하면서도, 그 저편에서 전쟁의 결여태로서의 평화와는 상이한 평화를 찾아내고, 정치적 평화윤리적 평화라는 두 개의 항 사이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방책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이의 경계선은 단순하지 않다. “윤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는 하나의 경계선이 지닌 분할 불가능한 단일성을 결정적으로 잃고 있기”(Derrida 1997b:149)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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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지금 요구되는 것은 확고한 전쟁 개념에 대응하는 확고한 평화개념을 대치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어떻게 생존 공간을 다시 만들 것인가, 거기서 필요한 최저한의 질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사고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리라. 집단적 자위권이 도입되고, 무기수출의 3원칙이 변경되고, 비밀보호법이 시행된다는 예외상태속에 있는 현재, 이제 상황은 실재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에서 현전한전쟁 속에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현재는 전시’(辺見 2013)이라는 인식이며, 필요한 것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 중>이라는 사고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이런 움직임에 이의를 제기하고, 할 수 있는 한 명문화된 개헌을 멈추는 최대한의 정치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정치의 텔로스가 전쟁인 한, 정치적 방법으로는 전쟁은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본질이 타자의 존재를 신체적-물리적으로 말소하는 것에 있는 전쟁을, ‘죽이지 말라라는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평화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고, 실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데리다는 우정의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것은 가능성의 반대가 아니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불가능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Derrida 2001b:43)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불가능한 것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시행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인용할 때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경우는 그 쪽수를 표기했다. 다만, 문맥에 비춰서 번역문을 일부 변경한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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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rida, J. (1994) / 鵜飼哲大西雅一郎松葉祥一訳(2003), 友愛のポリテイツクス, 2권 중 제1, みすず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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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rida, J. (1997b) / 藤本一勇訳(2004), アデュー──エマニュエル・レヴィナスのために, 岩波書店.

Derrida, J. (1999) / 安川慶治訳(1999), ジヤツク・デリダとの対話──歓待正義責任, 批評空間, II,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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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rida, J. (2003a) / 藤本一男澤里岳史訳(2004), テロルの時代哲学使命, 岩波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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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谷修土佐弘之岡真理 (2014), 「「非戦化する戦争, 現代思想, 2014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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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ler, M. (1937) / 駒井義昭訳(1991), 平和理念平和主義, 富士書店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데리다와 사형 문제1)

* 글쓴이 : 고우하라 카이(郷原佳以)

* 출  처 : ≪현대사상≫, 2008년 10월호, 162~179쪽.

* 옮긴이 : sanggels@gmail.com / 2009. 02. 01. / 거친 초역본이라 향후 수정 예정.


들어가며 ― 데리다와 사형 문제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어떤 철학을 근거로 한 사형폐지운동이 과연 존재할까?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가 사형폐지운동이 의존할 수 있는 철학자를 찾아보려고 하면, 사형존치론은 발견되나 사형 폐지론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어찌 보면 사형폐지운동은 철학과 그다지 상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자’란 사형의 필연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이론은 갖고 있으면서도 사형의 부당성을 보여주기 위한 이론은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러한 것일까? 그리고 그렇다면 ‘철학자’이자 사형에 반대하는 자신은 사형문제에 대해서 도대체 어떠한 사상을 내세울 수 있을까? 과거의 철학자의 사형존치론에 필적하는 철학적 수준에서 사형폐지론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가 말년에 사형을 고찰 대상으로 선택했을 때, 그를 괴롭혔던 것은 이러한 의문, 또는 오히려 갈증이었다.

1999년, 데리다는 1984년부터 행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세미나 ― 1991년 이래 모든 세미나가 ‘책임-응답가능성’이라는 큰 테마 하에서 조직되고 이로부터 수많은 저작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 의 테마로 ‘사형’을 택했다. 이 테마는 2000년도까지 두 학기에 걸쳐 논의되었다.

데리다와 사형 문제. 데리다의 사상에 정통한 철학연구자에게도 이것은 결코 자명한 테마가 아니다. 그것은 단적으로, 데리다가 이 세미나에서의 연구를 책자 형태로 승화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2) 이 글에서는 책자가 되기 전의, 또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남긴 채 제시되었다고 해도 좋은 사형론 세미나에서 필자가 청강한 2000년도의 내용을 소개한다. 한 학기에 걸쳐 약 18시간 동안 이루어진 강의를 한정된 지면으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치(精緻)한 논의보다는 큰 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데, 데리다가 사형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에 대해 어떠한 전망을 품고 있는가, 그 방향성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3)


2000년도 데리다 세미나

데리다의 세미나에서는 늘 그렇듯이, 2000년에도 다양한 텍스트가 다루어졌으며,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었다. 주요 저작corpus을 언급된 순서로 거론하면, 방브니스트, 벤야민, 칸트, 프로이트, 테오도르 라이크, 카프카, 쉬네, 하이데거, 드노소 코나테스 등이다. 이 속에서 데리다가 가장 강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칸트, 프로이트, 라이크 등 세 명의 주장이었다. 이 중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 라이크는 많은 경우에도 다루어졌으며, 또는 「칸트와 정신분석학」으로도 바꿔 말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결론을 이미 말하자면, 데리다는 철학적으로 엄밀한 칸트의 사형긍정론을 탈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신분석이 칸트를 타파한다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데리다의 사명 ― 원리적인 사형폐지론

앞에서도 말해듯이, 2000년도 세미나의 전제가 되었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지금까지 어떠한 철학적 담론도 철학의 입장에서 사형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플라톤부터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는 오히려 명확하게 사형찬성의 입장을 취해 왔다. 헤겔 이후에도 철학자에 의한 사형에 대한 이의신청이 나오지 않았다. 데리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인간을 ‘죽음에 직면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검토해 온 하이데거도 사형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세미나에서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이데거는 사형의 문제가 ‘죽음에 직면한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대해서 이차적인 물음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며, 그리고 사형을 비본래적인 죽음으로 분류할 것이다.” 데리다가 자신에게 부과했던 것은 사형에 대해 이렇게까지 냉담한 철학사에 대해서 철학자로서 마주대한다는 곤란한 과제였다.

그러나 도대체 ‘철학으로서’라는 것은 어떠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주지하듯이, 사형폐지론 자체는 ≪범죄와 형벌≫에 의해 큰 영향력을 지닌 18세기 이탈리아 계몽사상가 체사레 베카리아를 효시로 하여 20세기의 카뮈, 바뎅테르Robert Badinter 등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많다고는 말할 수는 없어도 계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폐지론은 모두 철학적인 것이 아니며, 그 때문에 불충분하다. 철학적이 아니라는 것은 이 경우 원리적이지 않다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원리적이다란 어떠한 조건에서도 무관계하게 명제의 정통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며, 원리적이지 않다란 명제가 조건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리다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칸트가 베카리아에 대해 겨냥한 비판이었다. 2000년도의 세미나에서 일관되게 독해 대상이 되었던 것은 칸트의 ≪인륜의 형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1797) 제1부 「법론(法論)」 중에서 ‘국가법’에 관한 장에 수록된 “형벌권 및 사면권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달린 절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칸트는 분명히 베카리아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 따르면 ― 과거에서부터 지적되어 온 것이었지만 ― 칸트는 이 절의 시작부터 베카리아를 논적으로 상정한다. 말하자면, 절을 시작할 때부터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에 의한 형벌은 범죄자 자신에게 있어서, 또는 시민사회에 있어서 다른 선을 촉진할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항상 오로지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즉, 인간이 타인의 의도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다루어진다는 것, 물권의 대상과 하나로 간주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 행복론의 고부라진 길을 기어 돌아다니며, 예상된 수익 때문에 사형을 면제한다, 또는 한 단계만 경감하는 어떤 이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 즉 ‘전 인류가 멸망하기보다는 한 명이 죽는 편이 낫다’는 바리새인의 표어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재난이든.”


여기에서 ‘바리새파’라고 가차없이 비난받고 있는 것이 바로 베카리아로 대표되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전체 인류가 멸망하기보다는 한 명이 죽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 있어서 나오게 되는 것은 하나의 계산이다. 데리다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칸트에게 있어서 유용성에 기반을 둔 사형론이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사형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위선이며, 계산에 의한 상인문화, ‘시장가격’의 문화에 속하는 것이다. ‘전체 인류가 멸망하기보다는 한 명이 죽는 것이 좋다’는 언명은 사형폐지가 아니라 사형찬성을 위한 언명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베카리아의 폐지론은 사실 이러한 계산과 이질적이지 않다. 왜 그러한가? 여기에서 베카리아의 폐지론의 안목(眼目)은 ‘전체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 한 명이 죽은 편이 낫다’가 아니라면 사형은 불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전체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 한 명이 죽는 편이 낫다’가 되면 사형은 용인된다. 사실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형이란 한 사람의 국민에 대해서 국가가 그를 멸망하는 것을 필요 또는 유용하다고 판단할 때 선포하는 선전이다. 그렇지만 만일 내가 국민의 이러한 죽음은 국가의 통상적 상태에 있어서는 유용하지 않으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면, 나는 인간성을 위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4) 그리고 이 직후에는 “한 명의 국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두 가지 경우”의 설명이 이어진다. 따라서 베카리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용성’, ‘필요성’이며, 그 때문에 그의 폐지론은 어지까지나 조건지어진, 부분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원리적이 아니라는 것은 이것이다. 실제로, 데리다는 루디네스코와의 대담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 문장은 가장 효과적인 사형옹호론으로 독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5)라고 통렬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얄궂게도 앞의 문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1981년에 프랑스를 사형폐지로 이끌었던 로베르 바뎅테르에 의해 그의 저서 ≪사형폐지≫6)의 머리글로 내걸려 있다. 따라서 데리다는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확신에 가득찬 바뎅테르와 같은 폐지론자에게서조차 ‘유용’이라는 것이 문제로 된다. 그것은 항상 공리주의적, 실용주의적, 경험주의적인 폐지론이다.” ― 그렇지만, 말할 것도 없지만, 데리다는 바뎅테르의 공적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형존폐를 넘어서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는 점에서 칸트와 데리다는 공통적이다. 즉, 범죄억지력을 근거로 한 사형존치론도, 정당방위를 근거로 한 사형폐지론도, ‘유용성’에 의한 사평폐지론이라는 것에 있어서 원리적이지 않다.7) ― 차원을 달리 하는 논점이며, 세미나에서는 문제로 되지 않았으나 면죄를 근거로 한 사형폐지론도 마찬가지로 원리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데리다의 기본 자세는 명확하게 되지 않았을까?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하자면, 철학자 데리다는 베카리아와 같은 공리주의적이기 때문에 부분적인 폐지론보다는 칸트와 같은 원리적이기 때문에 존치론 쪽을 겨냥해야 할 사고방식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사형폐지론자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기획은 칸트와 동일한 철학적 수준에서, 사형을 원리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 기획에 따라서 데리다는 칸트의 논고의 탈구축을 시도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사실상 몹시 곤란한 목표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데리다의 2000년도 세미나는 이 목표를 완전히 달성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데리다 자신이 책의 형태로 정리하지 않았던 것에도 역시 걸어야 할 행로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데리다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세미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형선고란 인위적인 선고, 즉 [삶의] 정지arrêt이며, 안배이다. 따라서 탈구축가능하다.”


형벌(peine)이란 무엇인가 ― 형벌의 이중성

데리다의 탈구축적 전략의 경향인데, 사형론에서도 그는 문제의 정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형’을 어원에서 다시 묻는다. ‘사형’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을 가하는 ‘형(刑)’이다. 그렇다면 우선, ‘형벌(peine)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거기에서 데리다는 언어학자 에밀 방브니스트의 ≪인도 유럽어족 제도어휘집≫ 제5장 「명예와 포상」을 참조하여 이 물음을 던진다. 우선 ‘형벌’이라는 말의 어원이 「명예와 포상」에 관한 장에서 찾아진다는 것에 주목해 보자. 방브니스트의 서술이 복잡하게 얽혀있기는 하지만, 데리다의 논의의 전제로 되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브니스트는 이 장에서 ‘포상’ 및 ‘명예’를 의미하는 단어의 기원을 꼼꼼하게 조사한다. 우선 ‘포상’을 의미하는 géres라는 그리스어의 파생어나 용법이 검토된다. 이어서 ‘명예’나 ‘위엄’을 의미하는 timḗ라는 그리스어를 검토한다. 우리들에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후자이다. timḗ는 ‘존경하다’를 의미하는 고대 동사 tiō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말한 후에, 방브니스트는 timḗ가 결합된 어원군을 열거한다. 즉, “timáō, átimos(timḗ를 빼앗겼다) 외에, tínō(지불하다), tínumai(지불받다, 상을 받다), tísis(벌, 보복), átitos(지불받지 않다, 벌을 받지 않다) 등으로 이루어진 어군이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용어는 부채에 대한 지불이나 나쁜 일ㆍ비행의 변상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죄를 갚기 위해 치러야 할 부채를 나타내는 그리스어의 poinḗ나 라틴어 poena가 프랑스어 peine의 어원이다. 그리고 나아가, 방브니스트에 따르면 timḗ는 산스크리트어, 아베스타어에서도 ‘존경하다’와 ‘지불하다’, ‘벌하다, 혼내주다’, ‘보복’, ‘증오’를 의미하는 단어와 대응한다고 한다. 이처럼 방브니스트의 어원학적 조사에 따르면 인도-유럽어를 조어(祖語)로 하는 곳에서는 ‘명예를 부여하다’라는 의미와 ‘벌하다’라는 의미는 같은 어휘에 속하고 있다. 데리다는 이 연구를 소개하면서 모순된 현상을 앞에 둔 방브니스트의 당혹감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즉 방브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의미의 차이에 의해서 어떤 문제가 생겨난다. ‘벌하다’와 ‘존경하다’라는 두 개념 중 어떤 개념이 우선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어떻게 ‘벌을 주다, 복수하다’에서 ‘존경하다, 명예가 되다’로의 의미상의 이행이 가능했을까?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정합하게 만드는 것은 상당히 막연한 연결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8) ‘명예’와 ‘형벌’의 ‘상당히 막연한 연결 관계’, 데리다는 이것을 (독인 동시에 약인) 파르마콘처럼 낯선 친숙한unheimlich 것이라고 형용했다. 그러나 방브니스트 자신은 결국 이 이율배반은 ‘우연에 지나지 않다’9)고 하며 ‘명예’와 ‘형벌’의 두 계열을 분리하여 순수한 개념을 보존하여 낯선 친숙함을 추방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데리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두 계열의 혼란이라는 이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데리다는 이 ‘명예’와 ‘형벌’의 결합에 구애된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은 이 이중성이 칸트의 사형긍정론의 밑바탕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나아가지 않으면서 데리다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방브니스트에 의거하여 ‘형벌’(peine) 속에서는 그 대(對)개념인 ‘명예’가 깔려 있다는 이율배반을 보여준 후에, 데리다는 방브니스트의 어원학적 고찰을 넘어서 나간다. 그는 첫째로, 프랑스어 peine이 지닌 다른 하나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peine에는 ‘형벌’ 외에 ‘아픔’이라는 의미가 있다. J'ai de la peine이라고 말하면 “나는 아프다, 나는 고뇌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나는 형벌을 갖고 있다”이다.) 영어로 말하면 pain과 penalty라는 두 가지 의미가 peine라는 프랑스어에는 포함되어 있다. 우리들이 그다지 주의하지 않고 사용하는 관용구의 어원적 의미를 상기하게 한다는 것은 데리다의 논의의 정석인데, 그는 여기에서도 ‘나는 아프다’ 안에는 ‘형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견, 사형문제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되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데리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론 당연히 ‘형벌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묻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오히려 프랑스어로 “peine란 무엇인가?”라고 바꿔 말하는 편이 좋다. 여기에서의 데리다의 물음이란 우리들이 “나는 아프다”라고 말할 때, 그 peine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다는 것이 내가 어떤 형벌을 받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형벌= 아픔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순수하게 나의 외부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순수하게 나의 내부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닐 것이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peine(아픔=형벌)은 내부-외부로부터 와서 내부-외부에 머문다. 즉 순수한 자기-처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형벌’과 ‘아픔’의 이중성을 보여준 다음에, 데리다는 이제 ‘사형’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이번에는 ‘사형’의 예외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즉, ‘형벌’이 ‘아픔’과 동의어라고 한다면, 형벌의 주체는 고통의 주체, 아프다는 경험의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엄밀하게 말하면, 사형에서는 사형이라는 형벌이 집행되는 순간, 즉 죽음의 순간에서는 ―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 ‘형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현실의 사형수의 아픔을 생각하면, 이러한 논의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 때문에 데리다가 특유의 전미래형을 사용하여 말했던 것에 따르면, “누구도 사형에 의해서는 처벌되지 않았던 것이 된다.”이다.

일찍이 ‘형벌’과 ‘아픔’의 이중성의 귀결 ― 즉, 엄밀하게 말하면 ‘사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 를 보여준 후에 데리다는 다시 ‘형벌’과 ‘명예’의 이중성으로 돌아가서 ‘형벌’과 ‘명예’의 ‘낯선 친숙한’ 연결관계에 이름을 부여하고자 시도한다. 그것은 ‘분배’, ‘보수’, ‘보상’ 등의 말로 불려진 후에, 마지막으로 단적으로, prix라는 한 마디로 언표된다. 영어로 말하면 price이다. 그런데 프랑스어의 prix에는 ‘가격’ 외에 ‘상, 포상금’ 등의 의미도 있다. ‘형벌’이 ‘상’이라는 것은 흡사 범죄가 공적(功績)으로서 찬양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지적하자, 데리다는 이것을 검증하면서 벤야민의 「폭력비판론」(1921)의 검토에 들어간다.


“모든 사형수는 정치범이다.”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에 관해서는, 데리다는 이미 10년 전인 1990년, ≪법의 힘≫10)에 수록된 강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고찰을 전개하고 있다. 세미나에서의 논의는 그것을 토대로 한 것이며, 나아가 사형의 문제에 조준을 맞춘 것이다. ≪법의 힘≫에서 명확하게 되고 있듯이, 「폭력비판론」에서 벤야민이 명확하게 했던 것은 근대법에는 근거 부여가 되지 않은 채로 법을 정초하는 ― 그 때문에 법의 내부에 있는 법의 외부의 심급으로서 법 자체에 위협을 미친다 ― 법정초적 폭력과, 정초된 법을 더 강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법유지적 폭력이라는 두 종류의 폭력이 내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의 힘≫에서 데리다가 강조했던 것은 폭력의 ‘두 가지 기능’으로서 제시된 이 두 종류의 폭력이 사실상 엄밀하게는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이며, 두 종류의 폭력의 혼합이야말로 법을 성립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벤야민에게 있어서 두 가지 폭력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무시무시한[역겨운, 불쾌한] 장으로서 다루어진 법제도에는, 근대법 자체의 근거 없는 근거가 구체적으로 현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벤야민은 그러한 예로 특히 두 개의 법제도를 지명했다. 사형과 경찰이 그것이다. 세미나에서는 이 중 사형을 둘러싼 서술이 전개되었는데, 데리다는 해당 부분의 검토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하나의 대목을 다루었다. 우선 그것부터 확인해 두자.

벤야민의 논의의 출발점에 있는 것은 근대법이 개인들의 폭력행사를 금지하고 폭력을 자신만이 독점하고 한다는 하나의 사실이다. 벤야민은 법이 무엇을 위해 (“법의 이해관심interest”) 폭력을 독점하는가를 물으며, 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독점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법의 수중에 없는 폭력은 그것이 추구할지도 모르는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법의 틀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의해 언제나 법을 위협하기”[법의 수중에 있지 않을 때의 폭력은 그것이 추구할 수도 있는 목적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의 바깥에 현존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법을 위협하기, 144쪽]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법은 법의 외부에 존재하는 폭력에 의해 위협을 느끼는가? 그것은 왜냐하면, 혁명적 총파업이나 전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폭력에는 법을 제정하는 성경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법은 원래 폭력적인 법제정에 의해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 폭력을 독점하고 자신 이외의 법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설을 보강하는 것으로서 벤야민은 하나의 현상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대’ 범죄자”가 자주 인민(대중)의 은밀한 감탄을 자아낸다는 현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중의 감탄은 그의 행동이 아니라, 오직 그 행동이 증언하고 있는 폭력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오늘날 법이 모든 행위 영역에서 개인들에게 허용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폭력이 위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법을 반대하는 군중(인민)의 공감을 자극한다.”11)(144쪽) 이 대목을 부연하여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민은 은밀하게 대범죄자에게 명예를 부여하고, 처형 장소에 나가 매료되며 환희한다. 처형을 요구하는 동시에 대범죄자를 숭배하며 ‘공감’한다. 법 및 국가에 대한 대범죄자의 잠재적인 항의 속에서 인민을 대표하는 것으로서의 궁극적인 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숭배는 극히 은밀하여 분명하지가 않고 명확하지 않다.” 인민이 대범죄자에게 ‘공감’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범죄자에 의해 국가법에 대항하는 다른 법의 제정 가능성이 시사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때문에, “대범죄자는 혁명가로서 숭배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대범죄는 정치적 공적(功績)이다.” 그리고 대범죄란 국가법에 의해 사형을 언도당하는 범죄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면, 요컨대 “모든 사형수는 정치범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벤야민이 “‘대’ 범죄자”라고 ‘대’를 강조하여 표기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자.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이른바 절대적 범죄자인다. 데리다에 따르면, “절대적 범죄자란 여차저차한 범죄를 저지른 자가 아니라 최고의 범죄를 범한 자이며,  그 때문에 법 속에서의 법이며, 따라서 누구보다도 정치적이다. 그는 법과 결합하여 있다. 그 때문에 인민은 매료되는 것이다.” 앞의 범죄가 공적으로서 찬양받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형벌’과 ‘명예’의 이중성이 떠오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국가의 주관자와 절대적 범죄자란 모두 힘의 일격에 의해 법을 제정하는 잠재력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관계와 부정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다만, 주권자는 법을 중단하고 사면을 제공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또한 나아가 결정적인 것인데, 처벌조차도 되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절대적인 범죄자와 다르다. 아니, 오히려 이 두 가지 점이야말로 주권자의 정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주의해 두고 싶은 것은 이상의 데리다의 논의는 기본적으로는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의 충실한 부연이라는 것이다. 다만, 대범죄자에 대한 인민의 ‘공감’에 관해서는 벤야민의 관심사를 넘어서서 문제를 응시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말하자면 데리다는 이러한 ‘공감’을 ‘무의식적 정동’이라고 고쳐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인민은 무의식이며, 무의식을 지닌다. 명백하다고 할 수 없는 숭배는 외적으로 가해진 형벌과 자연적인 형벌이라는 두 개의 공간 사이에서, 무의식의 문턱 속에서 진행한다.” 앞에서 서술한 순수한 외부도 순수한 내부도 아닌 peine의 ‘내부-외부’성이 떠올려질 것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대범죄자를 둘러싼 인민의 무의식은 이러한 ‘내부-외부’에 위치지어질 수 있다.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사이의 공간’이야말로 데리다의 사형론의 열쇠이다.

그런데 대범죄자를 둘러싼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한 다음에, 데리다는 사형을 둘러싼 벤야민의 논의의 검토에 들어간다. 벤야민은 우선,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원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동기가 원리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의 대목을 읽어보자. “사형 비판가들은 사형에 대한 공격이 처벌의 기준이나 개별적인 법Gesetz[개별 법규]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법 자체를 그 기원에서부터 공격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아마도 그 이유를 제시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심지어 이를 느끼려고 의도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150쪽) 사형폐지론은 법 자체의 기원(근원)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은 즉, 사형이란 법 자체의 기원의 노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만약 폭력 ― 운명에 의해 왕좌에 오른 폭력 ― 이 법의 기원이라면, 가장 끔찍한 폭력인 생사에 관한 폭력에서, 이 폭력이 법질서 안에 출현하는 곳에서, 법의 기원은 실존하는 것 안에서 대표적인 방식으로 부각되고 자신들의 두려운 모습을 내비치게 되기 때문이다.”(150쪽, “폭력 ― 운명에 의해 왕좌에 오른 폭력 ― 이 법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폭력이 법질서 안에서 출현할 때의 최고의 형태인 생사를 좌우하는 폭력이 되며, 법의 근원이 대표적으로 실체화되고 공포스러운 모습을 여기에서 현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다.”, 번역수정) 즉, 사형이란 이것이 법질서의 틀 안에서 행사되는 살인이라는 최대의 폭력인 한에 있어서, 이제 처벌의 한 형태라는 것을 넘어서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최대의 폭력이며, 그런 의미에서 법 자체를 성립시키는 폭력의 실체화라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벤야민은 사형 속에는 “법 안의 썩어 있는 어떤 것이 섬세한 감성에게 매우 뚜렷하게 전달”[법 안의 썩어 있는 어떤 것이 느껴지게]된다고 서술한다.(150쪽)12) 이상의 대목을 부연하여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형폐지론자는 확실히 법의 기원과 탄생을 계시하는 제도에 도전하게 된다.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법에 대해 법을 제정한다는 것, 법을 그때 재발명한다는 것이다. 사형은 균형 잡힌 형벌로서의 처벌이 아니라 등가적 관계없이, 완전히 불균형하게 ‘보다 위에서’, 최상급에서, 과장되게 가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때문에 그것이 죽음을 부여하는 것인 한에 있어서, “<사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벌’이거나 ‘죽음’이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앞에서 제시된 사형의 예외성도, 벤야민을 경유하여 다른 각도에서 확인되게 된다. 즉, “<사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벤야민을 통해 사형이란 법을 유지하는 것만 아니라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최대의 폭력이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셈인데, 사형폐지를 요구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커다란 사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사형을 폐지하고자 한다면, 법 자체를 ― 이와 동시에 모든 ‘형벌’을, 그리고 국가라는 틀 자체를 폐지해야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이미 19세기 전반에, 사형폐지론에 대한 의문이라는 형태로 도노소 코르테스Donoso Cortes가 명확하게 말했던 것이기도 하다.13)

이상에 의해, 법에 의한 ‘사형’의 극히 특수한 위치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도대체 정말로 사형폐지론과 관련되어 있는가? 그러한 불안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전개이다. 그런데 이상의 논의를 가지고 데리다는 칸트의 논고로 돌아간다.


법적 형벌 / 자연적 형벌?

베카리아의 공리주의적 폐지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최초로 다루었던 칸트의 문장으로 돌아가자. 앞에서는 생략했던 대목에 이번에는 주목해 보자.


“재판에 의한 형벌은 … 항상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 물권의 대상과 하나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며, 시민적 인격이라는 것을 박탈하는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생득적 인격이라는 것이, 그렇게 다루어지는 것으로부터 그 사람을 지키기 때문이다. 처벌해야 한다는 인정이 범죄자 자신 또는 동료 시민에게 그 형벌에 의해 초래된 이익에 관해 생각하는 것에, 선행해야만 한다. 형벌의 법칙은 정언명령이다.14)


형벌은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가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단순한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문제로 되는 것은 형벌이 어떠한 외적인 이해관심에도 도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외적인 이익에도 이바지하지 않고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범죄자에게 ‘시민적 인격’으로부터 구별된 ‘생득적 인격’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 이른바 ‘명예’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벌해야 한다[strafbar]”고 인정하는 것은, 일체의 감정적인 동인과는 무관하게, 범죄자가 ‘처벌받을 만한’ ‘인격’을 보존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격’이란 외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와는 달리, 그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이성적 존재재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있어서 법을 위반한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그 자의 ‘인격’에 대한 정의의 행위이며, 거꾸로 어떠한 외적인 이익 때문에 형벌을 완화하는 것이나 어떠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벌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의에 대한 침해가 된다. 그 입장을 명료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궁극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시민사회가 전체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해체된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쪼개져서 세계의 곳곳으로 흩어지자고 결정한다고 하자) 그 전에 감옥에 갇힌 최후의 살인범이 사형을 사형에 처해야만 한다. … 왜냐하면 처벌하지 않으면, 정의에 대한 이러한 공적인 침해의 공범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15) 이처럼 칸트의 사형긍정론의 근저에는 방브니스트에 있어서 어원학적으로 확인된 ‘처벌’과 ‘명예’의 이중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에게 있어서 ‘인격’의 존엄은 계산가능한 어떠한 이해관심보다도 상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보다는 훨씬 높은 지고한 가치이다. ― ‘생명의 존엄성’을 도그마로서 재단하는 것은 벤야민도 마찬가지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칸트에게 있어서는 지고한 가치인 ‘인격’의 존엄은 계산가능한 가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으며, ‘인격’의 존엄은 계산을 넘어선 곳에 있다. 그런데 칸트는 동시에, 양형(量刑)의 기준으로서는, ‘상호대등성의 원리’,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탈리오의 법’(lex talionis, 동해보복同害報復의 법)16)을 거론한다. 그 때문에 데리다는 형벌이 목적으로 한 ‘인격’의 존엄이 계산불가능한 이상, ‘인격’과 ‘인격’의 평등성은 측정될 수 없기 때문에, 칸트의 ‘상호대등성’은 ‘두 개의 척도 없는 것 사이의 계산불가능한 상호대등성’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것과 관련하여, 「법론」의 보론 제5절 「형법이라는 개념의 해명에 관한 보족」을 검토하고, ‘강간’, ‘소년애’, ‘수간’이라는 세 종류의 범죄에 대해서는 칸트 자신이 ‘탈리오의 법’에 따른 형벌을 주는 것의 곤란함을 눈치채고 당혹해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17) 그렇지만 앞의 신중한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데리다는 칸트가 자신의 주장과는 반대로 계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모순을 폭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적에서 데리다의 주안은 오히려 “계산은 항상 계산불가능한 것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에 있다. 상술할 수는 없으나, 이 명제를 둘러싸고는 ‘계산’과 ‘이성’의 관계에 간한 하이데거의 ≪근거율≫의 검토가 행해졌다.

그런데 칸트는 위의 논의에 이어서, 범죄자 자신의 판단에 관한 검토를 시작한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자는 ‘명예’를 알고 있다면 스스로 사형을 바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에게 말을 하라고 한다면,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은 죽음을 선택하고, 악당은 손수레를 선택한다.”18) 여기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이성적 주체의 자율이라는 칸트의 관념이다. 그것에 따르면 처벌할 수 있는 이성적 주체는 자율적이다. 자율이란 자기 자신에게 법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이성적 주체는 반성적 계기를 내재화하며, 스스로 산출하는 법에 따른다.” “범죄자는 이성적으로 처벌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며, 자신의 사형을 요청하며, 자기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한다.” 이로부터 데리다는 나아가 두 개의 말바꾸기를 끌어낸다. 즉, 칸트의 논리에 기대면, 사형은 ‘자기처벌’이며 ‘자살’이다. 데리다는 이 귀결을 ‘사형의 자살적 진리’라고 부르는데, 이 귀결을 보강하기 위해 데리다가 참조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카프카의 텍스트였다. 즉, ≪아메리카≫, ≪소송≫, 그리고 일기이다. 이유 없는 체포의 이야기인 ≪소송≫의 말미에 나오는 K의 처형장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처형이 잠재적인 자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915년 9월 30일자 카프카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로스만(≪아메리카≫의 주인공)과 K, 죄 없는 자와 죄 있는 자, 결국 둘 모두 구별 없이 죄를 받아 살해당한다. 죄 없는 자는 보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쓰러진다기보다는 옆으로 밀쳐지면서.19) 자기처벌로서의 사형, 여기에서 데리다는 “칸트적인 논리”의 표현을 간파했다. 칸트적인 카프카, 카프카적인 칸트. 데리다는 이 접속에서 칸트의 논의의 대전제가 붕괴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억지로 생략해 왔었는데, 계속 반복하여 참조하고 있는 대목 앞에는 논의의 대전제로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놓여 있다. “재판에 의한 형벌(poena forensis)은 자연에 의한 형벌(poena naturalis)과는 구별된다. 자연에 의한 형벌은 범죄 그 자체가 스스로를 벌하는 것이며, 입법자가 반드시 이를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에 의한 형벌은….”20) 이 문장은, 이후의 논의의 주어가 모두 “재판에 의한 형벌”, 즉 “법적 형벌”이라는 것을 앞에서 규정하고 있다.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칸트는 여기에서 “법적 형벌 ― 타자(국가)에 의해 가해진 인위적, 역사적, 외적, 비자연적, 제도적 형벌 ― 과 자연적 형벌 ― 범죄자 자신의 처벌 ― 을 구별하고 있다.” 법과 자연, 외부와 내부, 타자와 자기의 경계선이 여기에서 그어진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이, 칸트적 논리에 따르면, 궁극적인 법적 처벌에 다름 아닌 사형의 진리는 자살이 아니면 안 된다. 그렇지만 외부/내부의 경계선은 성립할 수 없지 않을까?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타자―처벌이 항상 자기-처벌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면, 법적 형벌과 자연적 형벌은 더 이상 구별될 수 없으며, 칸트의 논리의 근거는 자기파괴적이게 된다. 형벌의 근거 자체에 의해서 칸트적 합리성의 초확증(超確證, hyperconfirmation)은 자기파괴적이게 된다.” 타자-처벌이 자기-처벌을 포함하는 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본 peine의 ‘형벌’과 ‘아픔’의 이중성을 토대로, 데리다는 나아가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자연적 형벌, 즉 자기-처벌은 내 속의 타자로부터 오는 이상, 권리상 항상 이미 외적이다. 순수한 자기-처벌도 순수한 타자-처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형벌’과 ‘명예’, ‘형벌’과 ‘아픔’이 서로 오염시키고, 순수할 수 없게 되듯이, 자기-처벌과 타자-처벌도 서로를 오염시킨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모두 이 경계선의 전위(轉位)를 목표로 하여 진행되어 왔다.

거기에서는 칸트가 논의의 서두에서 고찰 대상에서 제외했던 ‘자연적 형벌’에 착목하고, 자기-처벌과 타자-처벌의 대립을 무효로 하고자 하는 데리다를 배후에서 떠받쳐 왔던 것은 어떠한 사고였을까? 데리다는 여기에서 결국 그것으로 다시 향한다. 정신분석적 사고인 것이다.


프로이트와 라이크

데리다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자연적 형벌과 특권적 관계를 맺어왔다.” 벤야민에 관한 논의에서 대범죄자에 대한 인민의 ‘공감’이 “외적으로 가해진 형벌과 자연적 형벌이라는 두 개의 공간 사이에서, 무의식의 문턱 속에서 진행되는” “무의식적 정동”이라고도 바꿔 말해졌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문제가 이미 정신분석의 어휘로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세미나에서의 데리다의 정신분석과의 대담을 모두 재구성할 수는 없었으나, 우선 다루어진 문헌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 「전쟁과 죽음에 관한 시평」(1915) ; 「테오도르 라이크, ≪종교심리학의 문제들≫ 서문」(1919) ; 「처녀성의 금기」(1919) ; 테오도르 라이크의 대필에 의한 「사형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1929) 및 라이크, ≪고백욕구≫(초판은 1926~1928). 이 중 데리다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은 라이크가 대필한 사형에 관한 문장이었던 것 같다. 테오도르 라이크는 미국으로 건너가 활약한 프로이트의 제자로, 프로이트 이론을 원점에서 ‘죄책감’과 문명의 문제들, 특히 범죄와의 관계에 관해서 신화나 종교의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계속 고찰한 정신분석가이다.

문제의 문장은 2쪽 분량으로 짧은데, 이것은 현재 프로이트 전집이 아니라 라이크의 저서 ≪고백욕구≫의 끝 부분에 ‘후기’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문장의 기묘한 위치설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경위가 있있던 것일까? 라이크가 본문의 앞에 내건 설명에 따르면, 이 문장의 초판은 1926년이며, 재판관 에밀 데젠하이머의 기획에 의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출판된 ≪사형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책에 수록된 것이다. 이 재판관은 당시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형문제에 관해서 프로이트나 토마스 랑 등의 지식인에게 편지를 보내 견해를 들었다. 그런데 라이크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이 문제에 관해 장시간에 걸쳐 나와 논의한 후, 재판관이 던지 세 개의 질문에 자신을 대신하여 답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고 하며, 그렇게 쓰여진 것이 이 문장이다. 그 대답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사형에 반대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프로이트 교수는 당신의 질문을 나에게 부탁하여, 자기 대신 대답하도록 맡겼습니다. 저는 제가 당신의 조사의 취지에 기대, 현재의 상황에서 정신분석이 당신의 질문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1) 이어서 알 수 있듯이, 확신에 찬 라이크의 어조이다. 동시에 그 자신이 이중화되어 있다는 것도 볼 수 있다. 즉, 첫째로 자신은 프로이트의 견해를 숙지하고 있으며, 스승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 둘째로는 정신분석은 사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데리다의 세미나를 통해 사형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힘든 것인가를 확인했는데, 이렇게 보면 라이크의 자신감은 놀라운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정신분석은 어떻게 사형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그것은 “프로이트의 견해”일까? 서명은 라이크였으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 문장의 까다로운 구조는 데리다와 같은 독자를 고심하게 만든 것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데리다는 즉각 이 텍스트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고, 텍스트를 틀짓는 구조부터 분석했다. 데리다가 주목했던 것은 프로이트와 라이크의 일종의 부자관계이다. 라이크는 프로이트가 자신에게 준 신뢰를 자꾸만 강조한다. 한편으로 프로이트도 라이크의 책에 서문을 붙여 자신의 이론에 대한 제자의 충실함을 인정한다.22) 라이크는 프로이트의 필적으로 관록이 붙은 동시에 프로이트도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라이크는 무엇에 있어서 스승에게 충실한 것일까? 두 사람이 모두 인정하듯이,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1913)에서 제시한 ‘죄책감’에 관한 테제에서이다. 즉, 일찍이 신인 아버지는 원초의 인간군의 수장으로 지배권을 누려 왔는데, 그 자신들이 결속하여 이 아버지를 무너뜨린 결과 최초의 사회적 속박, 그리고 도덕적 제한이 생겨났다. 도덕적 제한이란 원부살해가 자식들에게 심어준 ‘죄책감’에 의해 생겨난 ‘법’이다. 그것이 첫 번째로 부과된 것은 ‘법’의 기원으로 된 원부살해를 반복하는 것의 금지, 즉 살해의 금지이다. 라이크는 프로이트로부터 이 원부살해 이론을 계승하고 이 이론 때문에 프로이트를 아버지로 맞이하며, 나아가 사형에 관한 견해를 대필한다. 이 텍스트에는 부재한 프로이트가 유령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자(父子)’의 사형론은 어떠한 것인가?

라이크는 우선, 사형문제에 관한 공적으로서,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및 논문 「죄의식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자」(1919)를 거론하고, 이것들이 “그렇게 멀지 않은 장래, 정당하게 평가된다면, 그 발견은 범죄자의 심리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적으로 바꾸고, 어쩌면 형법의 대규모 개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고 커다란 자부심을 보인다. 이어서 그 자신이 최신작인 ≪고백강박과 처벌욕구≫에서 이미 “프로이트 연구의 성과를 범죄학의 문제와 형법의 이론에 적용하고 있다”고 자기 책을 소개한다. 그런 다음에 구체적인 응답이 시작된다. 짧은 문장이기에 인용하면서 따라가 보자.

우선 결론이 앞에 나온다. 그것에 따르면 범죄도 사형도 탈리오의 법에 기반한 것인데, 탈리오의 법이란 “극도로 폭력적인 욕동의 표현, 복수의 정신과 보복의 갈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삶의 무의식적 정동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프로이트와 라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사형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따라서 인도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죽이지 마’라는 보편적 금지가 심리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들은 곧바로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다음에, 이상의 입장의 정신분석적 근거를 제시한다. “프로이트가 보여주었던 바에 따르면, 형법이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반사회적 개인은, 사실상 나쁜 짓을 저지르기 이전에 극히 강력한 무의식적 죄책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선행하는 죄책감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억압된 욕동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죄책감은 범죄의 결과가 아니라 동기라고 생각된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귀결이 도출된다. “범죄는 … 죄책감의 욕동을 무엇인가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것으로 결부시키기 때문에 안도감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범죄는 금지된 욕동을 대신하여 충족시키는 것으로, 선행하는 죄책감을 근거짓는 동시에 누그러뜨린다.” 따라서 형벌에 의한 ‘범죄억지력’을 주장하는 이론은 진실과는 정반대되며, 어떤 종류의 상황에서는 “형벌은 … 사람들을 무의식 속에 범죄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교사가 된다.”23) 이상의 논의는 확실히 프로이트 자신이 이미 「죄의식 때문에 죄를 저지른 자」에서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희망에 찬 한 문구에 관해서는, 어쩌면 프로이트의 견해라기보다는 라이크의 견해에 가까운 것이지 않는가라고 추측된다. “정신분석적 연구의 귀결들에 의해 우리는 아주 깊이 범죄의 진정한 동기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적 죄책감의 수수께끼 같은 힘을, 심리적 차원에서 누그러뜨리고 잘 다루며, 나아가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24) 즉, 정신분석이 죄책감에 다른 분출구를 부여하여 해소시킨다면, 범죄도 잔혹한 처벌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프로이트와 라이크의 사형폐지론이다. 칸트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데리다가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그가 이상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죄책감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으며, ‘자연적 형벌’에 다름 아닌 그 안마당의 악함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외적으로 가해진 형벌’, 즉 ‘법적 형벌’에 의해 처벌되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사고를 배경으로 하여 데리다는 “순수한 자기―처벌도 순수한 타자―처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으며, 칸트의 논의의 핵심을 뚫고 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정신분석적 사고에 의해 칸트의 논의가 격파된다고 데리다가 생각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데리다에 대한 커다란 오해이다. 위의 논의만으로는 칸트의 사형긍정론을 탈구축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칸트의 사형긍정론에서는 감정적인 동인이 쓰이지 않고 있으며, 형벌의 근거는 프로이트와 라이크가 주장한 “극도의 폭력적 욕동”과는 상이한 것에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이크는 ≪고백욕구≫에서 칸트의 사형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데리다는 그의 칸트 해석을 “날카로움을 결여하고 있다”고 단 칼에 제외해 버리고, 양자의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즉 “칸트에게 있어서는 사형은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형벌은 안도감을 초래하는 것일 수 없다.” 그러한 칸트의 초월론적 사형론에 대해 데리다는 “칸트에게서 계산가능한 광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데리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형론이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데리다는 라이크의 견해를 전면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가 정신분석에 극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더욱이 어떤 의미에서는 라이크의 낙천적인 희망과 서로 닮은 데가 있을 정도이다. 우선 라이크의 희망에 관해 확인해 두자. 앞에서 프로이트와 라이크의 텍스트의 끝 부분에 놓인 희망으로 가득찬 한 문장은 라이크 자신의 견해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것은 라이크가 ≪고백욕구≫의 제2부 「고백강박」 제6절 “형법의 정신분석적 이론”에서 위의 논의를 더 전개하여 정신분석이 죄책감에 다른 분출구를 부여한다면 잔혹한 처벌은 폐지할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분출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고백’이다. 라이크의 연구는 모두 ‘고백’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좋다. 라이크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고백욕구’에 의해 시달리고 있다. 종교도 문학도 유머도 기지(機智)도 강박신경증도 범죄도, 억지력 이론에서조차도, 자신이 잠재적으로 유죄라는 것의 ‘고백’의 한 양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즉, 죄책감이 원초적인 것이며, ‘고백욕구’ 자체는 억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고백’하는가라는 것이 된다. 라이크에 따르면 억압된 자기―처벌의 욕구를 범죄로 향하게 하지 않는 형태로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야말로 정신분석이라는 것이다.25)

정신분석 덕분에 범죄도, 잔혹한 처벌도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는 꿈과 같은 미래를 라이크가 상상하고 있었던 때로부터 80년이 흘렀다. 이 사이에 정신분석은 라이크가 바랬던 대로 ‘세계화’를 이룩하지 못했다. 데리다는 물론, 라이크처럼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는 세미나에서 “정신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어떻게 정신분석을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통절한 양식으로 호소했다.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어쩌면 데리다는 정신분석을 고무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그 해의 세미나는 그가 세미나를 시작하기 약간 전인 2000년 7월 16일에 정신분석가들의 대규모 학회인 ≪정신분석 삼부회≫에서 행한 강연, “정신분석의 정신상태 ― 정신분석 삼부회에의 호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 강연에서 사형의 문제가 다루어졌다26)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자세히 논할 여유는 없으나 최저한의 시사만이라도 해 둔다면, 우선 데리다가 이 강연에서 행했던 것은 정신분석가들에 대한 ‘호소’(adresse)이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서 프로이트의 「왜 전쟁인가?」를 독해하면서 문제시 했던 것은 ‘잔혹함’과 ‘주권’, 또는 ‘주권’의 ‘잔혹함’의 문제였다. 데리다는 정신분석가들을 앞에 두고 정신분석은 신학적, 형이상학적인 ‘알리바이 없이’ ― 요컨대 무조건적으로 ― “심리적 잔혹함”의 고유성을 재차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담론이 아닌가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나아가 하나의 가설로서 다음과 같이 당사자들에게 물으면서, 정신분석에 대한 최대의 기대를 표명했다. “도래할 정신분석적 사고에는 다른 하나의 너머가 있을 수 없을까? … 죽음의 욕동 또는 주권적인 지배의 욕동의 너머, 즉 잔혹함의 너머가?”27) 그리고 이와 동일한 것을 데리다는 세미나에서도 말하게 된다. 제11회 세미나에서 데리다는 이렇게 언명했다. “나는 죽음의 욕동의 너머, 즉 잔혹함의 너머를 상정하고 있다. 그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논증할 수 없더라도 그것은 존재할 수 있다. 그 바닥 없는 심연의 바닥으로부터 잔혹함이나 주권 등 불가피한 현상이 출현한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심연조차도 사고한다.”

데리다는 ‘죽음의 욕동’이라는 말을 가지고 칸트를 비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데리다에게 있어서 라이크의 논의는 아직 불충분하다. 세미나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듯이, “칸트를 읜칙의 수준에서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면, 문제로 되어야만 하는 것은 “계산을 가능케 하는 계산 불가능한 것”의 위상이다. 데리다가 “죽음의 욕동의 너머”, “잔혹함의 너머”라는 말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은 이 위상에 다름 아니다. 일체의 공리주의를 없애고 철학자로서 원리적인 수준에서 사형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의 가능성을 폭력적일 정도로 크게 밀어붙이고, “죽음의 욕동의 너머”라는 것은 즉, “쾌락 원칙의 너머의 너머”를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잠정적으로 말해서, 데리다가 도달했던 결론이었다.


데리다의 사형론 세미나는 사형폐지의 현실을 겨냥하여 도움이 되기 위한 새로운 폐지의 근거를 제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수한 사형긍정론을 논파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베카리아의 사형폐지론보다도, 라이크의 사형폐지론보다도 일관되게 칸트의 사형긍정론을 모델로 내거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보강하는 형태로, 방브니스트 ― ‘형벌’과 ‘명예’의 ‘수수께끼 같은’ 연결, 그리고 드노소 코르테스나 벤야민 ― 법 자체의 근원의 실체화로서의 사형 ― 의 해당 대목을 배치한다는, 비슷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실상 기묘한 사형폐지론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데리다는 라이크처럼 낙천적이기만 한 환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러나 동시에 절대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잔혹함의 너머’로 사색을 도달하게 하고, 그것에 의해 ‘사형’을 탈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듯 침착하고 느긋한 원리론은 사형폐지가 실현되어 이미 20년 이상이 지난 나라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배심원 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사형, 그리고 형벌 일반에 관한 일본의 상황은 극히 절박하다. “신속하게 결말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이라는 초조하고 애타게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피해자 감정’을 근거로 사형존치 여론이 큰 경향이 있는 작금의 일본에서야말로 사형존폐를 넘어서는데 있어서 칸트, 벤야민, 데리다가 함께 추구했던, 일체의 공리주의적 형벌, 감정적 동인에 의한 형벌을 인정하지 않는 원리적인 형벌론이 크게 재검토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데리다가 죽은 지금, 사형론 세미나의 방향을 추측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다만, 데리다가 사형론의 탈구축에 대해 보여주었던 큰 희망, 그리고 정신분석에 정신분석의 너머를 요구한다는, 정신분석에 걸었던 너무 크다고도 볼 수 있는 기대를 생각해 볼 때, 원리적인 사형폐지론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1) 이 글은 2006년 10월 26일에 동경일불학원에서 열린 심포지엄 「사형의 다양한 표상에 관하여」의 발표원고를 재구성한 것이다.


 

2) 다만, 정신분석가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와의 대담 ≪도래할 세계를 위하여≫(2001, 藤本一勇ㆍ金澤忠信 옮김, 이와나미, 2003)의 제8장은 사형문제에 할애되어 있다. 40쪽 분량의 이 장은 대담이라고 말해도 데리다의 사형론의 특징이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더욱이 대담 속에서 몇 번이나 시사되었듯이, 대담은 사형론 세미나와 가까운 시기에 행해졌으며, 세미나에서 논해졌던 것의 단서가 명확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대담에 의거하여 데리다의 사형론을 논한 일본어 문헌으로는 松葉祥一, 「사형ㆍ주권ㆍ구출」, ≪현대사상≫ 2004년 3월호; 守中高明, ≪법≫(이와나미, 2004) 등이 있다.

   그러나 대담과 세미나 사이에는 논의의 중심이 다분히 이동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대담에서 강조된 것은 서양에서의 사형이 항상 종교, 즉 기독교와 국가의 유착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는 사실이지만, 세미나에서의 고찰의 중심은 칸트의 사형론의 분석에 있었다. 세미나에서는 칸트의 사형론의 주위로 철학, 정신분석, 언어학, 문학에서의 다양한 문헌이 배치되고, 칸트의 사형론의 탈구축이 기획되었다.


 

3) 이 글에서 소개한 것은 필자가 청강한 2000년도의 세미나이다. 1999년도의 세미나에 관해서는 高桑和已, 「오늘날의 데리다」(≪미래≫ 2001년 8월호, http://www.miraisha.co.jp/derrida/today.html)를 참조할 것. 2년간 세미나의 구성으로서는 첫해에는 유고, 카뮈, 쥬네, 보들레르 등, 문학적인 문헌의 독해에 중심이 놓여졌으며, 둘째 해에는 철학이나 정신분석 관련 문헌의 독해에 중심이 놓여졌다고 한다.


 

4) 체사레 베카리아,


 

5) Jacques Derrida/Elisabeth Roudinesco, De quoi demain …, Fayard/Galilée, 2001, p. 242.


 

6) Robert Dadinter, L'abolition, Fayard, 2000.


 

7) 아직 사형폐지론이 달성되지 않았던 1977년에 정신분석가 장 라플랑슈가 발표한 사형론도, 확실히 이것과 같은 입장에서 나온, 공리주의적 폐지론의 비판이었다. 장 라플랑슈, 「인간성 박탈로의 길(사형에 관하여)」, 졸역 및 해제, ≪현대사상≫, 2004년 3월호.


 

8) Émile Benveniste, 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éennes 2. pouvoir, droit, religion, Minuit, 1969, p. 50.


 

9) Ibid., p. 55.


 

10) Derrida, Force de loi, Galilée, 1994.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 지성사]


 

11) 발터 벤야민, 「폭력비판론」, 野村修 옮김, 이와나미 문고, 1993년, 35쪽.[「폭력의 비판을 위하여」, 진태원 옮김, 문학과 지성사]


 

12) 상동, 42~43쪽. 자세히 논할 수는 없으나, 벤야민이 말한 이 ‘법 안의 썩어 있는 어떤 것’이야말로 데리다가 주권에 관한 맥락에서 ‘잔혹함’(cruauté)이라고 부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cruauté란 어원적으로 ‘유혈(流血)’을 의미하는 라틴어 cruor와 관련되어 있다. 사형이란 법의 근원에 있는 유혈의 실체화이다. 그렇다면 사형은 법을 성립시키기 위한 일종의 희생제의이다. 이러한 “희생제의의 유혈로서의 사형”이라는 생각은 칼 슈미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19세기의 스페인 보수적 가톨릭 정치사상가 호안 드노소 코르테스가 ≪카톨릭교, 자유주의, 사회주의에 관한 평론≫(1851)에서 주장하고, 그 강고한 사형필수론의 논거로 삼았는데, 데리다는 사형을 이렇게 파악하는 방식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세미나에서는 코라테스가 ‘카인과 아벨’의 우화를 예증 삼아 카톨릭교에서의 ‘유혈의 희생제의’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또한 그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사형의 필요성을 역설한 같은 책 제3권 제6장이 상세하게 검토되었다. 드노소 코르테스의 사상에 관해서는 古賀敬太, ≪칼 슈미트와 카톨릭교≫(창문사, 1999) 제2장 「드노소 코르테스의 정치신학」을 참조.


 

13) Donoso Cortés, Essai sur le catholicisme, le libéralisme et le socialisme, Aux bureaux de la bibliothéque nouvelle et de la revue catholique de la jeunesse, 1851, pp. 361~362.


 

14) ≪인륜의 형이상학≫, 178~179쪽. 고딕체 강조는 인용자.


 

15) 상동, 181쪽.


 

16) 상동, 179쪽.


 

17) 상동, 218~219쪽.


 

18) 상동, 181쪽


 

19) 프란츠 카프카, ≪꿈, 아포리즘, 시≫, 吉田仙太郞 옮김, 평범사 라이브러리, 1996, 279쪽.


 

20) ≪인륜의 형이상학≫, 178쪽. [임마뉴엘 칸트, ≪도덕 형이상학≫, 형설출판사.]


 

21) Theodor Reik, “Freud's view on capital punishment” in The Compulsion to Confess : On the Psychoanalysis of Crime and Punishment, Grove Press, 1959, p. 472.


 

22) 프로이트, 「테오도르 라이크 박사 ≪종교심리학의 문제들. 제1부 ― 의례≫에 부치는 서문」(1919).


 

23) Reik, art. cit. pp. 473-474.


 

24) Ibid., p. 474.


 

25) Reik, “Part Two: The Compulsion to Confess,” in The Compulsion to Confess, op. cit.


 

26) Derrida, États d'âme de la psychanalyse. Adresse aux États généraux de la Psychanalyse, Galilée, 2000, p. 54.


 

27) Ibid., p. 14.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 http://www.usm.maine.edu/~bcj/issues/three/rorty.html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In a report from Bosnia some months ago1, David Rieff said "To the Serbs, the Muslims are no longer human... Muslim prisoners, lying on the ground in rows, awaiting interrogation, were driven over by a Serb guard in a small delivery van". This theme of dehumanization recurs when Rieff says

A Muslim man in Bosanski Petrovac... [was] forced to bite off the penis of a fellow-Muslim... If you say that a man is not human, but the man looks like you and the only way to identify this devil is to make him drop his trousers - Muslim men are circumcised and Serb men are not - it is probably only a short step, psychologically, to cutting off his prick... There has never been a campaign of ethnic cleansing from which sexual sadism has gone missing.

The moral to be drawn from Rieff's stories is that Serbian murderers and rapists do not think of themselves as violating human rights. For they are not doing these things to fellow human beings, but to Muslims. They are not being inhuman, but rather are discriminating between the true humans and the pseudohumans. They are making the same sort of distinction as the Crusaders made between humans and infidel dogs, and the Black Muslims make between humans and blue-eyed devils. The founder of my university was able both to own slaves and to think it self-evident that all men we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inalienable rights. He had convinced himself that the consciousness of Blacks, like that of animals, "participate[s] more of sensation than reflection"2. Like the Serbs, Mr. Jefferson did not think of himself as violating human rights.

The Serbs take themselves to be acting in the interests of true humanity by purifying the world of pseudohumanity. In this respect, their self-image resembles that of moral philosophers who hope to cleanse the world of prejudice and superstition. This cleansing will permit us to rise above our animality by becoming, for the first time, wholly rational and thus wholly human. The Serbs, the moralists, Jefferson, and the Black Muslims all use the term "men" to mean "people like us". They think the line between humans and animals is not simply the line between featherless bipeds and all others. They think the line divides some featherless bipeds from others: There are animals walking about in humanoid form. We and those like us are paradigm cases of humanity, but those too different from us in behavior or custom are, at best, borderline cases. As Clifford Geertz puts it, "Men's most importunate claims to humanity are cast in the accents of group pride"3.

We in the safe, rich, democracies feel about the Serbian torturers and rapists as they feel about their Muslim victims: They are more like animals than like us. But we are not doing anything to help the Muslim women who are being gang raped or the Muslim men who are being castrated, any more than we did anything in the thirties when the Nazis were amusing themselves by torturing Jews. Here in the safe countries we find ourselves saying things like "That's how things have always been in the Balkans", suggesting that, unlike us, those people are used to being raped and castrated. The contempt we always feel for losers - Jews in the thirties, Muslims now - combines with our disgust at the winners' behavior to produce the semiconscious attitude: "a plague on both your houses". We think of the Serbs or the Nazis as animals, because ravenous beasts of prey are animals. We think of the Muslims or the Jews being herded into concentration camps as animals, because cattle are animals. Neither sort of animal is very much like us, and there seems no point in human beings getting involved in quarrels between animals.

The human-animal distinction, however, is only one of the three main ways in which we paradigmatic humans distinguish ourselves from borderline cases. A second is by invoking the distinction between adults and children. Ignorant and superstitious people, we say, are like children; they will attain true humanity only if raised up by proper education. If they seem incapable of absorbing such education, that shows they are not really the same kind of being as we educable people are. Blacks, the whites in the United States and in South Africa used to say, are like children. That is why it is appropriate to address Black males, of whatever age, as "boy". Women, men used to say, are permanently childlike; it is therefore appropriate to spend no money on their education, and to refuse them access to power.

When it comes to women, however, there are simpler ways of excluding them from true humanity: for example, using "man" as a synonym of "human being". As feminists have pointed out, such usages reinforce the average male's thankfulness that he was not born a woman, as well as his fear of the ultimate degradation: feminization. The extent of the latter fear is evidenced by the particular sort of sexual sadism Rieff describes. His point that such sadism is never absent from attempts to purify the species or cleanse the territory confirms Catharine MacKinnon's claim that, for most men, being a woman does not count as a way of being human. Being a nonmale is the third main way of being nonhuman. There are several ways of being nonmale. One is to be born without a penis; another is to have one's penis cut or bitten off; a third is to have been penetrated by a penis. Many men who have been raped are convinced that their manhood, and thus their humanity, has been taken away. Like racists who discover they have Jewish or Black ancestry, they may commit suicide out of sheer shame, shame at no longer being the kind of featherless biped that counts as human.

Philosophers have tried to clear this mess up by spelling out what all and only the featherless bipeds have in common, thereby explaining what is essential to being human. Plato argued that there is a big difference between us and the animals, a difference worthy of respect and cultivation. He thought that human beings have a special added ingredient which puts them in a different ontological category than the brutes. Respect for this ingredient provides a reason for people to be nice to each other. Anti-Platonists like Nietzsche reply that attempts to get people to stop murdering, raping, and castrating each other are, in the long run, doomed to fail - for the real truth about human nature is that we are a uniquely nasty and dangerous kind of animal. When contemporary admirers of Plato claim that all featherless bipeds - even the stupid and childlike, even the women, even the sodomized - have the same inalienable rights, admirers of Nietzsche reply that the very idea of "inalienable human rights" is, like the idea of a special added ingredient, a laughably feeble attempt by the weaker members of the species to fend off the stronger.

As I see it, one important intellectual advance made in our century is the steady decline in interest in the quarrel between Plato and Nietzsche. There is a growing willingness to neglect the question "What is our nature?" and to substitute the question "What can we make of ourselves?". We are much less inclined than our ancestors were to take "theories of human nature" seriously, much less inclined to take ontology or history as a guide to life. We have come to see that the only lesson of either history or anthropology is our extraordinary malleability. We are coming to think of ourselves as the flexible, protean, self-shaping, animal rather than as the rational animal or the cruel animal.

One of the shapes we have recently assumed is that of a human rights culture. I borrow the term "human rights culture" from the Argentinian jurist and philosopher Eduardo Rabossi. In an article called "Human Rights Naturalized", Rabossi argues that philosophers should think of this culture as a new, welcome fact of the post-Holocaust world. They should stop trying to get behind or beneath this fact, stop trying to detect and defend its so-called "philosophical presuppositions". On Rabossi's view, philosophers like Alan Gewirth are wrong to argue that human rights cannot depend on historical facts. "My basic point", Rabossi says, is that "the world has changed, that the human rights phenomenon renders human rights foundationalism outmoded and irrelevant"4.

Rabossi's claim that human rights foundationalism is outmoded seems to me both true and important; it will be my principal topic in this lecture. I shall be enlarging on, and defending, Rabossi's claim that the question whether human beings really have the rights enumerated in the Helsinki Declaration is not worth raising. In particular, I shall be defending the claim that nothing relevant to moral choice separates human beings from animals except historically contingent facts of the world, cultural facts.

This claim is sometimes called "cultural relativism" by those who indignantly reject it. One reason they reject it is that such relativism seems to them incompatible with the fact that our human rights culture, the culture with which we in this democracy identify ourselves, is morally superior to other cultures. I quite agree that ours is morally superior, but I do not think this superiority counts in favor of the existence of a universal human nature. It would only do so if we assumed that a moral claim is ill-founded if not backed up by knowledge of a distinctively human attribute. But it is not clear why "respect for human dignity" - our sense that the differences between Serb and Muslim, Christian and infidel, gay and straight, male and female should not matter - must presuppose the existence of any such attribute.

Traditionally, the name of the shared human attribute which supposedly "grounds" morality is "rationality". Cultural relativism is associated with irrationalism because it denies the existence of morally relevant transcultural facts. To agree with Rabossi one must, indeed, be irrationalist in that sense. But one need not be irrationalist in the sense of ceasing to make one's web of belief as coherent, and as perspicuously structured, as possible. Philosophers like myself, who think of rationality as simply the attempt at such coherence, agree with Rabossi that foundationalist projects are outmoded. We see our task as a matter of making our own culture - the human rights culture - more self-conscious and more powerful, rather than of demonstrating its superiority to other cultures by an appeal to something transcultural.

We think that the most philosophy can hope to do is summarize our culturally influenced intuitions about the right thing to do in various situations. The summary is effected by formulating a generalization from which these intuitions can be deduced, with the help of noncontroversial lemmas. That generalization is not supposed to ground our intuitions, but rather to summarize them. John Rawls's "Difference Principle" and the U.S. Supreme Court's construction, in recent decades, of a constitutional "right to privacy" are examples of this kind of summary. We see the formulation of such summarizing generalizations as increasing the predictability, and thus the power and efficiency, of our institutions, thereby heightening the sense of shared moral identity which brings us together in a moral community.

Foundationalist philosophers, such as Plato, Aquinas, and Kant, have hoped to provide independent support for such summarizing generalizations. They would like to infer these generalizations from further premises, premises capable of being known to be true independently of the truth of the moral intuitions which have been summarized. Such premises are supposed to justify our intuitions, by providing premises from which the content of those intuitions can be deduced. I shall lump all such premises together under the label "claims to knowledge about the nature of human beings". In this broad sense, claims to know that our moral intuitions are recollections of the Form of the Good, or that we are the disobedient children of a loving God, or that human beings differ from other kinds of animals by having dignity rather than mere value, are all claims about human nature. So are such counterclaims as that human beings are merely vehicles for selfish genes, or merely eruptions of the will to power.

To claim such knowledge is to claim to know something which, though not itself a moral intuition, can correct moral intuitions. It is essential to this idea of moral knowledge that a whole community might come to know that most of their most salient intuitions about the right thing to do were wrong. But now suppose we ask: Is there this sort of knowledge? What kind of question is that? On the traditional view, it is a philosophical question, belonging to a branch of epistemology known as "metaethics". But on the pragmatist view which I favor, it is a question of efficiency, of how best to grab hold of history - how best to bring about the utopia sketched by the Enlightenment. If the activities of those who attempt to achieve this sort of knowledge seem of little use in actualizing this utopia, that is a reason to think there is no such knowledge. If it seems that most of the work of changing moral intuitions is being done by manipulating our feelings rather than increasing our knowledge, that will be a reason to think that there is no knowledge of the sort which philosophers like Plato, Aquinas, and Kant hoped to acquire.

This pragmatist argument against the Platonist has the same form as an argument for cutting off payment to the priests who are performing purportedly war-winning sacrifices - an argument which says that all the real work of winning the war seems to be getting done by the generals and admirals, not to mention the foot soldiers. The argument does not say: Since there seem to be no gods, there is probably no need to support the priests. It says instead: Since there is apparently no need to support the priests, there probably are no gods. We pragmatists argue from the fact that the emergence of the human rights culture seems to owe nothing to increased moral knowledge, and everything to hearing sad and sentimental stories, to the conclusion that there is probably no knowledge of the sort Plato envisaged. We go on to argue: Since no useful work seems to be done by insisting on a purportedly ahistorical human nature, there probably is no such nature, or at least nothing in that nature that is relevant to our moral choices.

In short, my doubts about the effectiveness of appeals to moral knowledge are doubts about causal efficacy, not about epistemic status. My doubts have nothing to do with any of the theoretical questions discussed under the heading of "metaethics", questions about the relation between facts and values, or between reason and passion, or between the cognitive and the noncognitive, or between descriptive statements and action-guiding statements. Nor do they have anything to do with questions about realism and antirealism. The difference between the moral realist and the moral antirealist seems to pragmatists to be a difference which makes no practical difference. Further, such metaethical questions presuppose the Platonic distinction between inquiry which aims at efficient problem-solving and inquiry which aims at a goal called "truth for its own sake". That distinction collapses if one follows Dewey in thinking of all inquiry - in physics as well as in ethics - as practical problem-solving, or if one follows Peirce in seeing every belief as action-guiding5.

Even after the priests have been pensioned off, however, the memories of certain priests may still be cherished by the community - especially the memories of their prophecies. We remain profoundly grateful to philosophers like Plato and Kant, not because they discovered truths but because they prophesied cosmopolitan utopias - utopias most of whose details they may have got wrong, but utopias we might never have struggled to reach had we not heard their prophecies. As long as our ability to know, and in particular to discuss the question "What is man?" seemed the most important thing about us human beings, people like Plato and Kant accompanied utopian prophecies with claims to know something deep and important - something about the parts of the soul, or the transcendental status of the common moral consciousness. But this ability, and those questions, have, in the course of the last two hundred years, come to seem much less important. Rabossi summarizes this cultural sea change in his claim that human rights foundationalism is outmoded. In the remainder of this lecture, I shall take up the questions: Why has knowledge become much less important to our self-image than it was two hundred years ago? Why does the attempt to found culture on nature, and moral obligation on knowledge of transcultural universals, seem so much less important to us than it seemed in the Enlightenment? Why is there so little resonance, and so little point, in asking whether human beings in fact have the rights listed in the Helsinki Declaration? Why, in short, has moral philosophy become such an inconspicuous part of our culture?

A simple answer is that between Kant's time and ours Darwin argued most of the intellectuals out of the view that human beings contain a special added ingredient. He convinced most of us that we were exceptionally talented animals, animals clever enough to take charge of our own future evolution. I think this answer is right as far as it goes, but it leads to a further question: Why did Darwin succeed, relatively speaking, so very easily? Why did he not cause the creative philosophical ferment caused by Galileo and Newton?

The revival by the New Science of the seventeenth century of a Democritean-Lucretian corpuscularian picture of nature scared Kant into inventing transcendental philosophy, inventing a brand-new kind of knowledge, which could demote the corpuscularian world picture to the status of "appearance". Kant's example encouraged the idea that the philosopher, as an expert on the nature and limits of knowledge, can serve as supreme cultural arbiter1. By the time of Darwin, however, this idea was already beginning to seem quaint. The historicism which dominated the intellectual world of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had created an antiessentialist mood. So when Darwin came along, he fitted into the evolutionary niche which Herder and Hegel had begun to colonize. Intellectuals who populate this niche look to the future rather than to eternity. They prefer new ideas about how change can be effected to stable criteria for determining the desirability of change. They are the ones who think both Plato and Nietzsche outmoded.

The best explanation of both Darwin's relatively easy triumph, and our own increasing willingness to substitute hope for knowledge, is that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saw, among the Europeans and Americans, an extraordinary increase in wealth, literacy, and leisure. This increase made possible an unprecedented acceleration in the rate of moral progress. Such events as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ending of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 prompted nineteenth-century intellectuals in the rich democracies to say: It is enough for us to know that we live in an age in which human beings can make things much better for ourselves7. We do not need to dig behind this historical fact to nonhistorical facts about what we really are.

In the two centuries since the French Revolution, we have learned that human beings are far more malleable than Plato or Kant had dreamed. The more we are impressed by this malleability, the less interested we become in questions about our ahistorical nature. The more we see a chance to recreate ourselves, the more we read Darwin not as offering one more theory about what we really are but as providing reasons why we need not ask what we really are. Nowadays, to say that we are clever animals is not to say something philosophical and pessimistic but something political and hopeful, namely: If we can work together, we can make ourselves into whatever we are clever and courageous enough to imagine ourselves becoming. This sets aside Kant's question "What is Man?" and substitutes the question "What sort of world can we prepare for our great-grandchildren?".

The question "What is Man?" in the sense of "What is the deep ahistorical nature of human beings?" owed its popularity to the standard answer to that question: We are the rational animal, the one which can know as well as merely feel. The residual popularity of this answer accounts for the residual popularity of Kant's astonishing claim that sentimentality has nothing to do with morality, that there is something distinctively and transculturally human called "the sense of moral obligation" which has nothing to do with love, friendship, trust, or social solidarity. As long as we believe that, people like Rabossi are going to have a tough time convincing us that human rights foundationalism is an outmoded project.

To overcome this idea of a sui generis sense of moral obligation, it would help to stop answering the question "What makes us different from the other animals?" by saying "We can know, and they can merely feel". We should substitute "We can feel for each other to a much greater extent than they can". This substitution would let us disentangle Christ's suggestion that love matters more than knowledge from the neo-Platonic suggestion that knowledge of the truth will make us free. For as long as we think that there is an ahistorical power which makes for righteousness – a power called truth, or rationality – we shall not be able to put foundationalism behind us.

The best, and probably the only, argument for putting foundationalism behind us is the one I have already suggested: It would be more efficient to do so, because it would let us concentrate our energies on manipulating sentiments, on sentimental education. That sort of education sufficiently acquaints people of different kinds with one another so that they are less tempted to think of those different from themselves as only quasi-human. The goal of this manipulation of sentiment is to expand the reference of the terms "our kind of people" and "people like us".

All I can do to supplement this argument from increased efficiency is to offer a suggestion about how Plato managed to convince us that knowledge of universal truths mattered as much as he thought it did. Plato thought that the philosopher's task was to answer questions like "Why should I be moral? Why is it rational to be moral? Why is it in my interest to be moral? Why is it in the interest of human beings as such to be moral?". He thought this because he believed the best way to deal with people like Thrasymachus and Callicles was to demonstrate to them that they had an interest of which they were unaware, an interest in being rational, in acquiring self-knowledge. Plato thereby saddled us with a distinction between the true and the false self. That distinction was, by the time of Kant, transmuted into a distinction between categorical, rigid, moral obligation and flexible, empirically determinable, self-interest. Contemporary moral philosophy is still lumbered with this opposition between self-interest and morality, an opposition which makes it hard to realize that my pride in being a part of the human rights culture is no more external to my self than my desire for financial success.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Plato had decided, as Aristotle was to decide, that there was nothing much to be done with people like Thrasymachus and Callicles, and that the problem was how to avoid having children who would be like Thrasymachus and Callicles. By insisting that he could reeducate people who had matured without acquiring appropriate moral sentiments by invoking a higher power than sentiment, the power of reason, Plato got moral philosophy off on the wrong foot. He led moral philosophers to concentrate on the rather rare figure of the psychopath, the person who has no concern for any human being other than himself. Moral philosophy has systematically neglected the much more common case: the person whose treatment of a rather narrow range of featherless bipeds is morally impeccable, but who remains indifferent to the suffering of those outside this range, the ones he or she thinks of as pseudohumans8.

Plato set things up so that moral philosophers think they have failed unless they convince the rational egotist that he should not be an egotist – convince him by telling him about his true, unfortunately neglected, self. But the rational egotist is not the problem. The problem is the gallant and honorable Serb who sees Muslims as circumcised dogs. It is the brave soldier and good comrade who loves and is loved by his mates, but who thinks of women as dangerous, malevolent whores and bitches.

Plato thought that the way to get people to be nicer to each other was to point out what they all had in common – rationality. But it does little good to point out, to the people I have just described, that many Muslims and women are good at mathematics or engineering or jurisprudence. Resentful young Nazi toughs were quite aware that many Jews were clever and learned, but this only added to the pleasure they took in beating them up. Nor does it do much good to get such people to read Kant, and agree that one should not treat rational agents simply as means. For everything turns on who counts as a fellow human being, as a rational agent in the only relevant sense – the sense in which rational agency is synonomous with membership in our moral community.

For most white people, until very recently, most Black people did not so count. For most Christians, up until the seventeenth century or so, most heathen did not so count. For the Nazis, Jews did not so count. For most males in countries in which the average annual income is under four thousand dollars, most females still do not so count. Whenever tribal and national rivalries become important, members of rival tribes and nations will not so count. Kant's account of the respect due to rational agents tells you that you should extend the respect you feel for people like yourself to all featherless bipeds. This is an excellent suggestion, a good formula for secularizing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brotherhood of man. But it has never been backed up by an argument based on neutral premises, and it never will be. Outside the circle of post-Enlightenment European culture, the circle of relatively safe and secure people who have been manipulating each others' sentiments for two hundred years, most people are simply unable to understand why membership in a biological species is supposed to suffice for membership in a moral community. This is not because they are insufficiently rational. It is, typically, because they live in a world in which it would be just too risky – indeed, would often be insanely dangerous – to let one's sense of moral community stretch beyond one's family, clan, or tribe.

To get whites to be nicer to Blacks, males to females, Serbs to Muslims, or straights to gays, to help our species link up into what Rabossi calls a "planetary community" dominated by a culture of human rights, it is of no use whatever to say, with Kant: Notice that what you have in common, your humanity, is more important than these trivial differences. For the people we are trying to convince will rejoin that they notice nothing of the sort. Such people are morally offended by the suggestion that they should treat someone who is not kin as if he were a brother, or a nigger as if he were white, or a queer as if he were normal, or an infidel as if she were a believer. They are offended by the suggestion that they treat people whom they do not think of as human as if they were human. When utilitarians tell them that all pleasures and pains felt by members of our biological species are equally relevant to moral deliberation, or when Kantians tell them that the ability to engage in such deliberation is sufficient for membership in the moral community, they are incredulous. They rejoin that these philosophers seem oblivious to blatantly obvious moral distinctions, distinctions any decent person will draw.

This rejoinder is not just a rhetorical device, nor is it in any way irrational. It is heartfelt. The identity of these people, the people whom we should like to convince to join our Eurocentric human rights culture, is bound up with their sense of who they are not. Most people – especially people relatively untouched by the European Enlightenment – simply do not think of themselves as, first and foremost, a human being. Instead, they think of themselves as being a certain good sort of human being – a sort defined by explicit opposition to a particularly bad sort. It is crucial for their sense of who they are that they are not an infidel, not a queer, not a woman, not an untouchable. Just insofar as they are impoverished, and as their lives are perpetually at risk, they have little else than pride in not being what they are not to sustain their self-respect. Starting with the days when the term "human being" was synonomous with "member of our tribe", we have always thought of human beings in terms of paradigm members of the species. We have contrasted us, the real humans, with rudimentary, or perverted, or deformed examples of humanity.

We Eurocentric intellectuals like to suggest that we, the paradigm humans, have overcome this primitive parochialism by using that paradigmatic human faculty, reason. So we say that failure to concur with us is due to "prejudice". Our use of these terms in this way may make us nod in agreement when Colin McGinn tells us, in the introduction to his recent book9, that learning to tell right from wrong is not as hard as learning French. The only obstacles to agreeing with his moral views, McGinn explains, are "prejudice, vested interest and laziness".

One can see what McGinn means: If, like many of us, you teach students who have been brought up in the shadow of the Holocaust, brought up believing that prejudice against racial or religious groups is a terrible thing, it is not very hard to convert them to standard liberal views about abortion, gay rights, and the like. You may even get them to stop eating animals. All you have to do is convince them that all the arguments on the other side appeal to "morally irrelevant" considerations. You do this by manipulating their sentiments in such a way that they imagine themselves in the shoes of the despised and oppressed. Such students are already so nice that they are eager to define their identity in nonexclusionary terms. The only people they have trouble being nice to are the ones they consider irrational – the religious fundamentalist, the smirking rapist, or the swaggering skinhead.

Producing generations of nice, tolerant, well-off, secure, other-respecting students of this sort in all parts of the world is just what is needed – indeed all that is needed – to achieve an Enlightenment utopia. The more youngsters like this we can raise, the stronger and more global our human rights culture will become. But it is not a good idea to encourage these students to label "irrational" the intolerant people they have trouble tolerating. For that Platonic-Kantian epithet suggests that, with only a little more effort, the good and rational part of these other people's souls could have triumphed over the bad and irrational part. It suggests that we good people know something these bad people do not know, and that it is probably their own silly fault that they do not know it. All they have to do, after all, is to think a little harder, be a little more self-conscious, a little more rational.

But the bad people's beliefs are not more or less "irrational" than the belief that race, religion, gender, and sexual preference are all morally irrelevant – that these are all trumped by membership in the biological species. As used by moral philosophers like McGinn, the term "irrational behavior" means no more than "behavior of which we disapprove so strongly that our spade is turned when asked why we disapprove of it". It would be better to teach our students that these bad people are no less rational, no less clearheaded, no more prejudiced, than we good people who respect otherness. The bad people's problem is that they were not so lucky in the circumstances of their upbringing as we were. Instead of treating as irrational all those people out there who are trying to find and kill Salman Rushdie, we should treat them as deprived.

Foundationalists think of these people as deprived of truth, of moral knowledge. But it would be better – more specific, more suggestive of possible remedies – to think of them as deprived of two more concrete things: security and sympathy. By "security" I mean conditions of life sufficiently risk-free as to make one's difference from others inessential to one's self-respect, one's sense of worth. These conditions have been enjoyed by Americans and Europeans – the people who dreamed up the human rights culture – much more than they have been enjoyed by anyone else. By "sympathy" I mean the sort of reaction that the Athenians had more of after seeing Aeschylus' The Persians than before, the sort that white Americans had more of after reading Uncle Tom's Cabin than before, the sort that we have more of after watching TV programs about the genocide in Bosnia. Security and sympathy go together, for the same reasons that peace and economic productivity go together. The tougher things are, the more you have to be afraid of, the more dangerous your situation, the less you can afford the time or effort to think about what things might be like for people with whom you do not immediately identify. Sentimental education only works on people who can relax long enough to listen.

If Rabossi and I are right in thinking human rights foundationalism outmoded, then Hume is a better advisor than Kant about how we intellectuals can hasten the coming of the Enlightenment utopia for which both men yearned. Among contemporary philosophers, the best advisor seems to me to be Annette Baier. Baier describes Hume as "the woman's moral philosopher" because Hume held that "corrected (sometimes rule-corrected) sympathy, not law-discerning reason, is the fundamental moral capacity"10. Baier would like us to get rid of both the Platonic idea that we have a true self, and the Kantian idea that it is rational to be moral. In aid of this project, she suggests that we think of "trust" rather than "obligation" as the fundamental moral notion. This substitution would mean thinking of the spread of the human rights culture not as a matter of our becoming more aware of the requirements of the moral law, but rather as what Baier calls "a progress of sentiments"11. This progress consists in an increasing ability to see the similarities between ourselves and people very unlike us as outweighing the differences. It is the result of what I have been calling "sentimental education". The relevant similarities are not a matter of sharing a deep true self which instantiates true humanity, but are such little, superficial, similarities as cherishing our parents and our children – similarities that do not interestingly distinguish us from many nonhuman animals.

To accept Baier's suggestions, however, we should have to overcome our sense that sentiment is too weak a force, and that something stronger is required. This idea that reason is "stronger" than sentiment, that only an insistence on the unconditionality of moral obligation has the power to change human beings for the better, is very persistent. I think that this persistence is due mainly to a semiconscious realization that, if we hand our hopes for moral progress over to sentiment, we are in effect handing them over to condescension. For we shall be relying on those who have the power to change things – people like the rich New England abolitionists, or rich bleeding hearts like Robert Owen and Friedrich Engels – rather than on something that has power over them. We shall have to accept the fact that the fate of the women of Bosnia depends on whether TV journalists manage to do for them what Harriet Beecher Stowe did for black slaves, whether these journalists can make us, the audience back in the safe countries, feel that these women are more like us, more like real human beings, than we had realized.

To rely on the suggestions of sentiment rather than on the commands of reason is to think of powerful people gradually ceasing to oppress others, or ceasing to countenance the oppression of others, out of mere niceness, rather than out of obedience to the moral law. But it is revolting to think that our only hope for a decent society consists in softening the self-satisfied hearts of a leisure class. We want moral progress to burst up from below, rather than waiting patiently upon condescension from the top. The residual popularity of Kantian ideas of "unconditional moral obligation" – obligation imposed by deep ahistorical noncontingent forces – seems to me almost entirely due to our abhorrence for the idea that the people on top hold the future in their hands, that everything depends on them, that there is nothing more powerful to which we can appeal against them.

Like everyone else, I too should prefer a bottom-up way of achieving utopia, a quick reversal of fortune which will make the last first. But I do not think this is how utopia will in fact come into being. Nor do I think that our preference for this way lends any support to the idea that the Enlightenment project lies in the depths of every human soul. So why does this preference make us resist the thought that sentimentality may be the best weapon we have? I think Nietzsche gave the right answer to this question: We resist out of resentment. We resent the idea that we shall have to wait for the strong to turn their piggy little eyes to the suffering of the weak. We desperately hope that there is something stronger and more powerful that will hurt the strong if they do not – if not a vengeful God, then a vengeful aroused proletariat, or, at least, a vengeful superego, or, at the very least, the offended majesty of Kant's tribunal of pure practical reason. The desperate hope for a noncontingent and powerful ally is, according to Nietzsche, the common core of Platonism, of religious insistence on divine omnipotence, and of Kantian moral philosophy12.

Nietzsche was, I think, right on the button when he offered this diagnosis. What Santayana called "supernaturalism", the confusion of ideals and power, is all that lies behind the Kantian claim that it is not only nicer, but more rational, to include strangers within our moral community than to exclude them from it. If we agree with Nietzsche and Santayana on this point, however, we do not thereby acquire any reason to turn our backs on the Enlightenment project, as Nietzsche did. Nor do we acquire any reason to be sardonically pessimistic about the chances of this project, in the manner of admirers of Nietzsche like Santayana, Ortega, Heidegger, Strauss, and Foucault.

For even though Nietzsche was absolutely right to see Kant's insistence on unconditionality as an expression of resentment, he was absolutely wrong to treat Christianity, and the age of the democratic revolutions, as signs of human degeneration. He and Kant, alas, shared something with each other which neither shared with Harriet Beecher Stowe – something which Iris Murdoch has called "dryness" and which Jacques Derrida has called "phallogocentrism". The common element in the thought of both men was a desire for purity. This sort of purity consists in being not only autonomous, in command of oneself, but also in having the kind of self-conscious self-sufficiency which Sartre describes as the perfect synthesis of the in-itself and the for-itself. This synthesis could only be attained, Sartre pointed out, if one could rid oneself of everything sticky, slimy, wet, sentimental, and womanish.

Although this desire for virile purity links Plato to Kant, the desire to bring as many different kinds of people as possible into a cosmopolis links Kant to Stowe. Kant is, in the history of moral thinking, a transitional stage between the hopeless attempt to convict Thrasymachus of irrationality and the hopeful attempt to see every new featherless biped who comes along as one of us. Kant's mistake was to think that the only way to have a modest, damped-down, nonfanatical version of Christian brotherhood after letting go of the Christian faith was to revive the themes of pre-Christian philosophical thought. He wanted to make knowledge of a core self do what can be done only by the continual refreshment and re-creation of the self, through interaction with selves as unlike itself as possible.

Kant performed the sort of awkward balancing act required in transitional periods. His project mediated between a dying rationalist tradition and a vision of a new, democratic world, the world of what Rabossi calls "the human rights phenomenon". With the advent of this phenomenon, Kant's balancing act has become outmoded and irrelevant. We are now in a good position to put aside the last vestiges of the ideas that human beings are distinguished by the capacity to know rather than by the capacities for friendship and intermarriage, distinguished by rigorous rationality rather than by flexible sentimentality. If we do so, we shall have dropped the idea that assured knowledge of a truth about what we have in common is a prerequisite for moral education, as well as the idea of a specifically moral motivation. If we do all these things, we shall see Kant's Foundations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as a placeholder for Uncle Tom's Cabin – a concession to the expectations of an intellectual epoch in which the quest for quasi-scientific knowledge seemed the only possible response to religious exclusionism13.

Unfortunately, many philosophers, especially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are still trying to hold on to the Platonic insistence that the principal duty of human beings is to know. That insistence was the lifeline to which Kant and Hegel thought we had to cling14. Just as German philosophers in the period between Kant and Hegel saw themselves as saving "reason" from Hume, many English-speaking philosophers now see themselves saving reason from Derrida. But with the wisdom of hindsight, and with Baier's help, we have learned to read Hume not as a dangerously frivolous iconoclast but as the wettest, most flexible, least phallogocentric thinker of the Enlightenment. Someday, I suspect, our descendants may wish that Derrida's contemporaries had been able to read him not as a frivolous iconoclast, but rather as a sentimental educator, another of "the women's moral philosophers"15.

If one follows Baier's advice one will not see it as the moral educator's task to answer the rational egotist's question "Why should I be moral?" but rather to answer the much more frequently posed question "Why should I care about a stranger, a person who is no kin to me, a person whose habits I find disgusting?". The traditional answer to the latter question is "Because kinship and custom are morally irrelevant, irrelevant to the obligations imposed by the recognition of membership in the same species". This has never been very convincing, since it begs the question at issue: whether mere species membership is, in fact, a sufficient surrogate for closer kinship. Furthermore, that answer leaves one wide open to Nietzsche's discomfiting rejoinder: That universalistic notion, Nietzsche will sneer, would only have crossed the mind of a slave – or, perhaps, the mind of an intellectual, a priest whose self-esteem and livelihood both depend on getting the rest of us to accept a sacred, unarguable, unchallengeable paradox.

A better sort of answer is the sort of long, sad, sentimental story which begins "Because this is what it is like to be in her situation – to be far from home, among strangers", or "Because she might become your daughter-in-law", or "Because her mother would grieve for her". Such stories, repeated and varied over the centuries, have induced us, the rich, safe, powerful, people, to tolerate, and even to cherish, powerless people – people whose appearance or habits or beliefs at first seemed an insult to our own moral identity, our sense of the limits of permissible human variation.

To people who, like Plato and Kant, believe in a philosophically ascertainable truth about what it is to be a human being, the good work remains incomplete as long as we have not answered the question "Yes, but am I under a moral obligation to her?". To people like Hume and Baier, it is a mark of intellectual immaturity to raise that question. But we shall go on asking that question as long as we agree with Plato that it is our ability to know that makes us human.

Plato wrote quite a long time ago, in a time when we intellectuals had to pretend to be successors to the priests, had to pretend to know something rather esoteric. Hume did his best to josh us out of that pretense. Baier, who seems to me both the most original and the most useful of contemporary moral philosophers, is still trying to josh us out of it. I think Baier may eventually succeed, for she has the history of the last two hundred years of moral progress on her side. These two centuries are most easily understood not as a period of deepening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rationality or of morality, but rather as one in which there occurred an astonishingly rapid progress of sentiments, in which it has become much easier for us to be moved to action by sad and sentimental stories.

This progress has brought us to a moment in human history in which it is plausible for Rabossi to say that the human rights phenomenon is a "fact of the world". This phenomenon may be just a blip. But it may mark the beginning of a time in which gang rape brings forth as strong a response when it happens to women as when it happens to men, or when it happens to foreigners as when it happens to people like us.

[ Manuscri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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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가> 인간은 교육되어야 할 유일한 피조물이다. 동물은 그들의 힘을 갖게 되자마자 규칙적으로, 즉 그들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 힘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새끼제비가 알에서 막 기어 나와 아직 눈조차 뜨지 못할 때 그들의 배설물을 둥지 밖으로 버릴 줄 아는 것을 보면 사실 경탄할 만하다. 그러므로 동물은 전혀 양육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양육이란 아이들이 그들의 힘을 해롭게 사용하지 않도록 양친이 배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동물이 태어났을 때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운다면, 그 소리에 유인된 늑대나 다른 맹수의 먹이가 될 것이 틀림없다.
훈육 또는 계도(啓導)가 동물성을 인성(人性)으로 바꾸어 놓는다. 동물에게는 모든 것이 본능이다. 그 어떤 다른 이성이 그 모든 것을 배려해 놓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이성이 필요하다. 인간은 본능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행동계획을 스스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바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야생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대신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훈육은 인간이 그의 동물적 충동으로 인해 그가 지닌 인성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예를 들어, 훈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거칠게 분별없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어야 한다.
야만성은 법칙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훈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법칙에 복종시키는 것이며, 법칙의 강제를 느끼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훈육은 일찍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를 우선 학교에 보내는 것은 거기서 그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용히 앉아 있고 지시 받는 것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데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결코 어린이들이 장차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자유에 대한 강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얼마동안 자유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이다. 바로 그 때문에 매우 일찍이 훈육이 필요하다. 일찍이 훈육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인간을 변화시키기란 어렵다. 그런 사람은 제멋대로 된다. 우리는 그것을 미개한 나라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이 비록 유럽인들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봉사해 왔다 하더라도 결코 유럽인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루소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를 향한 고귀한 성향은 아니다. 그것은 동물성이 인간성을 아직 어느 정도 자체 내에 발달시키지 못한 그 어떤 야만성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일찍부터 이성의 규칙에 따르는 데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릴 때 맘대로 내버려두고 거절하지 않게 되면 인간은 어느 정도의 야만성을 평생 동안 지니게 된다. 
                                                                                                 ― 임마누엘 칸트, <칸트의 교육학 강의>

<나> 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과거 교육의 전형적 문제점들, 즉 과거 교육은 아이들의 태도를 수동적이게 한다는 것, 아이들을 기계적으로 집단화한다는 것, 커리큘럼과 교육방법이 획일적이라는 것을 약간 과장(誇張)했는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히 밝혔다. 과거의 교육을 요약하면, 무게 중심이 아이들 이외의 것에 있었다는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 무게 중심이 교사, 교과서, 그밖의 무엇이든, 특히 아이들 자신의 직접적인 본능과 활동 이외의 것에 있었다. 그런 이상, 아이들의 생활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학습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말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오늘날, 거대한 변혁이 우리 교육에 도래하고 있다.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천체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이동했을 때와 비교할 수 있는 변혁이며, 혁명이다. 이럴 때마다 아이들이 태양이 되며, 그 주변을 교육의 제반 행위가 회전한다. 아이들이 중심이고, 그 중심의 주변에 제반 행위가 조직되는 것이다.
이상적인 가정, 즉 부모가 모두 총명하고, 아이들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분간하고,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여기에 있다고 하자. 그런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가족 사이의 대화나 그 가족의 관습을 통해 사물을 배울 것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이러저러한 발언을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질문이 오가며, 자신이 잘못 생각한 점이 있다면 정정한다. 더욱이 아이들은 가정의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함으로써, 근면, 질서, 타인의 권리와 사상을 존중하는 관습을 익히고, 더욱이 자기의 활동을 가정 전체의 이해에 복종시킨다는 기본적 관습도 몸에 익힌다. 이상적인 가정이기 때문에 당연히 작업실이 따로 있고, 아이들은 거기에서 구성적인 본능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작은 실험실도 있고, 그 실험실에서 아이들의 여러 가지 의문이 해답으로 이끌릴 것이다. 아이들의 생활은 바깥을 향해 확대되며, 정원으로까지, 이웃집 정원이나 숲에까지 이른다. 아이들은 소풍을 나아기고 걷고 말한다. 그때 뜰 밖의 넓은 세계가 그의 앞에 펼쳐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 말한 모든 사태를 조직화고, 일반화해 본다면, 거기에는 이상적 학교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이상적 학교의 창설에, 신비적인 것 등은 하나도 없으며, 교육학과 교육이론에 있어서 신기한 발견도 없다. 그것은 단순히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떤 이유 때문에 비교적 빈약하게, 우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을 조직적으로, 나아가 대규모로, 잘 생각해서 확실한 방법으로 행하는 과제에 불과하다. 우선 첫째로, 이상적 가정이 확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의 생활을 최대한 자유롭고 최대한 풍요로운 사회생활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대세(大勢)의 어른과 그리고 더 대세(大勢)의 아이들과 접촉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가정이라는 환경 속의 작업이나 관계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 특별히 선발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주된 목적은 다른 것에 있고, 아이들이 이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것은 부가적인 것이다. 이로부터 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에서야 비로소 아이들의 생활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목적으로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모든 수단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다. 학습은 어떤 것인가라고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확실히 학습은 행해진다. 하지만 생활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학습은 생활을 통해, 또한 생활과 관련하여 행해진다. 이처럼 아이들의 생활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삼고 조직화하게 되면, 아이들은 어떤 것은 접어두고, 많은 책상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진 교실에 착석하고, 침묵을 지키며 교사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니, 확실히 그 반대이다. …<중략>…
아이들은 곧 여기저기 뛰어 돌아다니며, 물건을 넘어뜨리고, 모든 종류의 활동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곧 격렬하게 활동적이기 때문에, 교육이란 아이들의 여러 활동을 파악하고, 그러한 활동에 방향을 부여한다. 지도에 의해, 즉 조직적으로 다루게 됨으로써, 아이들의 여러 활동은 산만하게 되기도 하고, 단순히 충동적 발견에 그대로 내맡겨두기도 하는 것을 그만두고, 여러 가치 있는 결과로 향하게 된다.
                                                                                                                   ― 존 듀이, <학교와 사회>

<다> [새로운 학습이론은] 놀이와 공부 사이의 구분을 가능한 한 없애는 일 ― 전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 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했으며, [이것에 의해 교육의 위기를 초래했다.] 놀이는 아이들이 세계 속에서 제몫을 감당하는 가장 활기 넘치고 적절한 방식으로, 또한 아이라는 실존체로부터 자발적으로 진화하는 활동의 유일한 형태로 간주되어 왔다. 오로지 놀이를 통해 학습될 수 있는 것만이 [아이들의] 활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아이의 특징적인 활동은 놀이 속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이를 수동적인 태도로 몰아가는 옛날식의 학습법은 아이가 자신의 유희적 독창성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략>…
함(doing)과 앎(knowing) 사이의 연관성이 무엇이든 혹은 실용주의 공식의 타당성이 무엇이든 교육, 즉 아이의 학습방식에 그것을 적용하는 것은 …<중략>… 어린이의 세계를 절대적으로 만들기 쉽다. 여기서도 아이들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구실로 아이들은 성인들의 세계에서 내쫓기고, 그들의 세계라고 불리는 곳에 부자연스럽게 남겨진다. 그것이 하나의 세계로 불릴 수 있는 한에서 말이다. 아이를 뒤에 남겨두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렇게 할 경우 가르침과 배움으로 이루어지는 성인과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관계가 끊어지고, 동시에 아이는 발달 중인 인간이고 유년기는 성인기를 준비하는 일시적인 단계라는 사실과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략>…
아이가 아직 세계와 친분을 쌓지 못했다면 아이는 점차적으로 세계에 소개되어야 한다. 그가 새로운 성원인 한, [세계는] 이 새로운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성숙하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교육자들은 한 세계의 대표자로서 젊은이와의 관계 위에 서 있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 세계를 만들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은밀히 혹은 공개적으로 기존의 세계가 아닌 다른 모습의 세계를 원할지라도, 교육자들은 세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책임은 교육자들에게 자의적으로 지워진 것이 아니다. 그러한 책임은 어른들이 계속해서 변하는 세계 속으로 젊은이들을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속에 함축되어 있다. 세계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게 교육의 역할을 맡겨서도 안 된다.
교육의 장에서 세계에 대한 책임은 권위의 형태를 취한다. 교육자의 권위와 교사의 자격요건은 같은 것이 아니다. 비록 자격의 척도가 권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지라도 최고의 자격요건은 결코 스스로 권위를 발생시키지 못한다. 교사의 자격요건은 세계에 대해 알고 그것을 타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지만, 그의 권위는 세계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일에 달려 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교사의 책임은 [세계 내] 모든 성인 거주자의 대표로서 아이들에게 세계에 관한 세부사항을 알려주면서 ‘이것이 우리의 세계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략>…
근대 세계의 교육문제는 교육이 본질적으로 권위나 전통을 무시할 수 없는 반면에 권위에 의해 구조화되지도 않고, 전통으로 함께 묶이지도 않은 세계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와 교육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하나의 세계에서 아이들, 그리고 젊은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그들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취하는 태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교육의 영역을 다른 영역, 무엇보다도 공적․정치적 삶의 영역에서 확실하게 떼어내야 한다. 그것은 교육의 영역에는 적합하지만 일반적 타당성은 없고 성인의 세계에 대해 일반적 타당성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권위의 개념과 과거에 대한 태도만을 교육의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이것의 첫 번째 결과는 학교의 기능이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어떤 곳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일 것이다. 세계는 오래되었고 언제나 아이들보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존이 현재 속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머물게 될 것인가와 무관하게 배움은 과거로 향할 수밖에 없다. 둘째, 아이와 성인 사이에 그어진 선이 시사하는 바는 성인을 교육할 수도 없고 아이들을 성인처럼 다룰 수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선이 마치 아이들이 성인들과 같은 세계에서 살지 않는 것처럼, 마치 유년기가 자체의 법칙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자율적인 인간 상태인 것처럼 아이들을 성인의 공동체에서 분리하는 벽으로 자라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중략>…
교육은 우리가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질만큼 세계를 사랑할지, 같은 이유로 [세계의] 경신(更新) 없이, 즉 새롭고 젊은 사람들의 도래 없이는 파멸이 불가피한 세계를 구할지를 결정하는 지점이다. 또한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을 우리의 세계로부터 내쫓아 그들이 제멋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그들이 뭔가 새로운 일, 뭔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공통의 세계를 새롭게 하는 임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킬 정도로 그들을 사랑할지를 결정하는 지점인 것이다.
                                                                                                       ― 한나 아렌트, <과거와 미래 사이>

논제 : 교육하는 자(부모, 교사)와 학습하는 자(아이, 학생)의 관계에 관하여, 제시문 <가> ~ <다>의 사고방식의 공통점과 차이점 또는 대립점에 관해 9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예시답안>
듀이는 교육이 아이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칸트와 아렌트는 어른이 아이들을 교화하여 어른의 세계로 이끌 필요가 있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다만, 아렌트의 논의는 듀이식 교육이론에 대한 반박으로, 교육을 하는 쪽인 어른의 책임과 태도를 강조하는 내용인 반면, 칸트는 교육의 주된 목적을 아이들의 사유의 자유에서 찾고 있기에 둘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칸트에 따르면 교육이란 소여로서의 인간을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며,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사유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하는 자는 학습하는 자에게 복종을 하게끔 강제해야만 하는데, 이는 아이가 자신의 자유를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반면 듀이는 교육이란 아이들의 생활이나 활동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교육에서는 학습하는 자가 중심이며, 교육하는 자는 아이들의 생활을 최대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것을 조직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듀이의 교육관에서 교육하는 자는 소극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아렌트는 이러한 듀이식 교육이론에 관해, 거기에서는 아이들의 세계가 절대화되고, 아이들은 인공적으로 그들만의 세계에 갖혀버리게 된다고 비판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동 시절은 성인에 이르는 준비단계이며, 아이는 세계로 인도되어야만 한다. 교육하는 자는 학습하는 자에게 기존의 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에 있으며, 교육하는 자가 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책임은 권위라는 형태를 취한다. 교육의 영역에서 어른은 권위를 체현하고, 과거를 지키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시문 <다>는 교육에서 어른과 아이의 관계 중에서 교육하는 자인 어른에 역점을 두고 있을 뿐, 학습하는 자인 아이가 교육을 통해 세계에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아렌트의 논의는 칸트와 다르다. 칸트의 교육론에서는 교육하는 자가 부과하는 강제는 학습하는 자의 자유를 목적으로 한다고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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