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뱅주의와 시민사회

: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제 :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十九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研究の現状と課題

저자 :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

출처 : 社会思想史学会, 『社会思想史研究』, 31권, 2007, 108-117.

http://dspace.lib.niigata-u.ac.jp/dspace/bitstream/10191/6613/1/31_108-117.pdf






1. 들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사의 고전을 쓴 막심 르루아(Maxime Leroy, 1873-1957)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89년 이후의 모든 역사는 …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립으로 귀결된다.”[각주:1] 르루아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1789년의 원리, 즉 개인적 자유와 소유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 구성의 원리이며, “사회적인 것”이란 평등과 관련된 것이면서 개인의 불행을 집합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노동이나 분배와 관련된 1793년의 원리이다.[각주:2]

르루아가 지적하듯이, 19세기의 프랑스 역사는 1789년에 선언된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대혁명 시기에 제창됐던 ‘정치적’원리는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조건에 입각한 ‘사회적’인 질서 원리에 의해 항상 비판되며 수정을 겪었다. 양자의 상극과 조정이 반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기 이후의 사상사를 구성한다.

다만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논자마다 매우 다양하다. 크게 말해서, 1960년대까지 19세기 사상사를 해석하는 틀은 경제구조에 기인하는 계급대립에 의해 주어졌다. 생디칼리즘을 대표하는 이론가 르루아가 양자의 대립을 자유주의적 권력구성원리와 노동자의 사상·운동과의 대립으로 파악했던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런 해석 도식은 크게 변경된다. 역사학·정치사상사·철학 등의 분야들에서 지적인 쇄신이 일어나고, 오히려 일원적 통합원리(정치적인 것)와 다원성 원리(사회적인 것)의 긴장관계가 논자의 주된 관심 대상이 된다(다만, 나중에 다루는 르포르와 고셰는 양자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 혹은 일원적 통합원리와 다원성 원리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최근까지의 연구사를 재정리하고, 그 현황과 과제에 관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2. 일원적 통합원리에 대한 비판

1) 자코뱅주의의 유산

196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타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간주한 정통사학을 비판했던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 등이 혁명기의 정치적 담론에 주목한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했다.[각주:3] 퓌레에 따르면, 단일한 ‘인민’이라는 허구의 집합을 통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하는 문학자, 철학가의 담론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혁명의 급진화와 자코뱅 지배가 초래됐다. 19세기 이후의 사상적 과제는 ‘자코뱅주의’를 극복하고 ‘혁명을 끝내게 하는’것에 있었다고 간주된다.[각주:4]

퓌레의 연구는 정치사상사 분야에서 ‘정치문화’론이라 불려야 할 새로운 연구사조를 산출했다.[각주:5] 그것은 경제구조로부터의 정치적 담론의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동시대의 정치적 담론의 배치, 그 내재적 논리를 탐구하는 역사연구로의 길을 개척했다.[각주:6] 여기서는 퓌레의 문제관심을 계승하는 한 명으로서 뤼시앙 좀(Lucian Jaume, 1946~)의 연구를 다뤄보고 싶다.

좀은 퓌레의 담론분석 방법에 의거하면서, 대혁명에서 비롯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의 특징을 탐구한다. 『자코뱅파의 담론과 민주주의』(1989)에서는 혁명기의 클럽과 의회에서의 자코뱅파의 담론을 검토하고, 당(parti)에 의한 도덕적 혁명운동이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의 일체성을 산출하며, 주권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정치관의 성립을 지적했다.[각주:7] 이런 정치관은 나폴레옹 제정기의 집권론,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의 이성주권론으로 계승된다. 그는 이어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의 사조들을 검토하고, 거기서 일관된 특징을 ‘삭제된 개인’(individu effacé)라고 평했다.[각주:8] 대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는 세 개의 사조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항하고 개인의 내면적 자유의 불가침성과 입헌주의에 의한 권력억제를 주창한 스탈 부인, 콩스탕, 프레보스트-파라돌(Prevost-Paradol) 등의 사조이다. 둘째는 개인보다 ‘사회’를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의지[의사]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으로의 집권화에 의해 더 고차적인 자유가 실현된다고 파악한 르와이에-코라르, 레뮈제, 기조 등 독트리네르의 사조이다. 셋째는 개인적 자유에 대해 종교적 ‘진리’를 우위에 두고 신적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라므네, 몽타랑베르, 세기말의 자유주의 가톨릭 등의 사조이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사조가 프랑스 자유주의의 주류를 두고 다투며, 두 번째 사조가 1875년 이후에 체제원리가 되며, 자유주의와 양립하는 공화체제를 이끌게 됐다고 한다.[각주:9]

2)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

퓌레나 좀의 연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을 ‘자코뱅주의’적인 일원적 통합원리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1970년 이후의 정치철학에서는, 이런 사상적 전통을 근대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조가 있다. 이하에서는 클로드 르포르, 마르셀 고셰를 중심으로 그런 19세기론을 다뤄보고 싶다.[각주:10]

르포르(Claude Lefort, 1924~)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다. 1949년부터 60년까지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를 간행한 그는, 6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토크빌과 아렌트의 사유에 의해 촉발되고, 근대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정치인식의 문제성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권’의 역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개념의 분석이라는 두 가지 점에 집중해서 그의 연구를 일별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회가 ‘외부’에서 질서의 일체성을 보장하는 참조점(신, 자연, 왕의 신체)을 갖고 있었던 반면, 근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런 참조점들을 거부하고(가령 프랑스혁명에 의한 왕의 신체의 폐절), ‘내부’에서만 질서의 입각점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각주:11] 그 입각점은 ‘인간’(homme)이라 칭해지며, ‘인간의 권리’의 실현이 근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된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공통성을 추상화한 집합을 가리키는데, 외부의 지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언급[참조, 지시]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확정성을 갖는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권’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로서 확대를 거듭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권력도 ‘복지국가’(État-providence)로서 비대화를 계속했다.[각주:12]

여기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루고 싶다. 르포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특히 자코뱅주의와 20세기의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것은 모든 다원성이나 차이를 배제한 ‘일자-인민(Peuple-Un)’이라는 표상이 통치의 기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인민’은 개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며, 개인을 초월한 집합으로서 관념되며, ‘사회적 권력’이라고도 일컬어진다. 19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콩스탕이나 기조가 아니라 토크빌이야말로 이런 단일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제(專制)’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각주:13] ‘인권’은 이 ‘사회적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전제’를 억지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인간’관념은 개별 인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재시킨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전체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는 구별될 수 없다.[각주:14]

르포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국가권력의 행사)를 일상생활의 곳곳에 침투시키는 논리를 내재시킨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나누는 것은 권리·정치제도 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차원’, 즉 자유로운 언론에 의해 통치권력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제약하는 ‘공적 영역’의 존재뿐이다.[각주:15] 이 공적 영역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권리·정치제도나 공/사의 구분을 다시 묻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운동’뿐이라고 한다.

르포르가 탐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셰(Marcel Gauchet, 1946~)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적 조건’아래에서 더욱 탐구됐다.[각주:16] 고셰는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의 곤란의 출발점을 대혁명에 둔다. 기독교의 성립과 세속화는 개인이 세계의 의미를 자기 해석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는 것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혁명은 탈종교화와 왕의 부정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을 초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연대가 모든 외부성이나 내적 다원성을 갖지 않는 단일한 집합(‘사회’)으로 관념됨으로써, 개개인을 초월하는 ‘사회’에 의한 새로운 전제(專制)나 억압을 초래할 가능성도 일어났다.[각주:17] 고셰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입법부로의 중앙집권화, 자코뱅주의에서의 ‘단일한 집합체’관념의 성립에서 개인의 자율과 양립할 질서의 형성 실패의 요인을 찾아낸다. 혁명기의 시에예스에 의한 의회감시의 ‘제3의 권력’도입론, 콩스탕의 중립적 권력론, 대의제론 등은 ‘사회’의 관념에 기초한 일원적 통치상을 비판하고 다원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로 독해된다.[각주:18]

고셰에 의한 19세기 이후의 역사상을 일별해두자.[각주:19] 19세기 전반기에는 좌우 당파의 대립, 국왕·정부·의회의 분리, 대표제 등, 일정한 ‘다원성’원리의 도입이 꾀해진다. 제3공화정 시기의 양원제의 도입은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분업의 진전이나 계급대립에 의해 간과된 ‘사회’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희구가 현재화하고, ‘단일한 인류(Une humanité)’라는 종교적 관념이 부상한다.[각주:20] 이것은 민족·국민 등으로 모습을 바꿔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치를 석권한다. 고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정당이나 결사의 다원성, 대의제는 행정기구에 의한 리스크의 예측이나 불확실성의 제거·통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의 ‘지배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해지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문화적 획일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매몰·함몰에 의해 단일한 ‘사회’의 논리에 기초한 일원적 지배로 전화될 가능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고셰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외부’의 삭제라는 문제로 되돌아가, 탈종교화의 역사를 정치사상의 문제로서 연구하게 됐다.[각주:21]

3) 생명정치의 확산

1970년대의 지적 쇄신 속에서 생겨난 두 번째 사조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이후의 19세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조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각주:22] 푸코는 1977-78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18세기 이후의 통치권력의 성질변화를 주제로 삼는다.[각주:23] 그에 따르면, 상업과 도시의 발전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국가(내치)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통치의 효율화(économie)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치경제학(économie politique)의 내실은 18세기 후반기에 치안유지에서 ‘인구’의 학(學)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사람들의 생물학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을 ‘생명정치’(biopolitique)라고 칭하고, 이런 권력실천이 공중위생·인구정책·의료·식량정책으로서 전개됐다는 것, 그 담지자가 국가관료뿐 아니라 ‘사회적’영역에서의 병원·공장·교육기관·경제학자·위생학자 등으로 학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푸코에게 ‘시민사회’란 이런 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영역에 다름 아니며, ‘자유주의’란 새로운 통치의 방식을 정당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다.[각주:24] 푸코의 ‘생명정치’, ‘사회적인 것’, ‘자유주의’등의 개념은 이후 19세기 연구에서 비교·대조되는 틀이 되며, 빈곤문제나 감옥, 공중위생, 가족, 의료 등과 관련된 많은 역사연구를 산출했다.[각주:25]

위에서 다뤘던 두 개의 사조는 각각 상이한 관심에서,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의 일원적 통치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퓌레와 좀은 자코뱅주의의 유산이 19세기 이후에도 잔존하며, 영국식 자유주의나 입헌주의가 정착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르포르나 고셰는 ‘인간’이라는 자기언급적 개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단일한 집합체(‘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그리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이끌 위험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논했다. 푸코주의자는 18세기 이후의 개개인이 단일한 생물학적 집합(‘인구’)로 파악됨으로써 집합적 생명의 효율적 유지·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사회적’영역으로 확산되고 개개인의 생명의 관리·규율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각자는 이런 일원적 통치원리에 대항하는 다원적 질서구성원리의 추구 ― 퓌레와 좀에게서의 대의제와 경쟁적 정당제, 르포르와 고셰에게서의 운동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외부’의 탐구, 말년의 푸코에게서의 ‘자기에의 배려’에 기초한 고대 그리스의 주체상과 자기-타자관계 ― 를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이런 연구사조들과 교착되면서도,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거기서 긍정적인 발전사를 독해해내려는 것이 다음에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다.

3. 일원적 통치원리로의 회귀 : 로장발롱의 19세기론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1948~)은 중도노조인 CFDT의 고문이라는 사상사 연구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말에 푸코의 세미나에 출석했으며, 최초의 사상사 연구서인 『유토피아적 자본주의』를 출판했다. 80년대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소속되어 퓌레, 르포르, 고셰, 마넹 등과 교류하면서 역사연구·현대정치연구를 행했다.[각주:26] 90년대에 들어서자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3부작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정치사상사 연구의 제일인자가 된다.[각주:27] 2002년부터는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로장발롱의 19세기 연구상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기에 성립된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이 거듭 비판에 처해지면서도 수정되어 회귀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 발전사로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인식(‘일반성의 정치문화’라고 일컬어진다)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를 거의 답습하고 있다.[각주:28] 혁명기에는 전통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끄집어내어 동질적·추상적 개인으로 구성된 단일한 집합체(‘개인으로 구성된 사회sociétéd’individus’)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랑스의 특징은 헤겔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변증법이 상정되지 않고,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강조된 것이다. 개별 이익을 추상화하는 ‘대표’라는 메커니즘이 중시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에는 ‘특수이익’에서 ‘일반이익의 창출’이라는 비약이 상정된다. 양자를 매개하는 정치적 결사는 부정되고, 직업단체, 지역성, 남녀의 성차 등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 일반성을 체현하는 것은 ‘법’뿐이며, 대표자에 의한 입법행위가 신성시된다.

둘째로,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이런 정치인식은 거듭 비판에 처해졌다.[각주:29] 르 샤플리에법에서 볼 수 있는 중간단체의 부정은 개인의 원자화, 국가의 비대화,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19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7월 왕정기에 재생한다. 기조, 티에르 등의 자유주의자는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구별을 도입한다.[각주:30]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 집권화에 의해 전통적인 특권들(libertés)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liberté)가 실현된다. 자코뱅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확대와 자유의 실현은 상보적이라고 파악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으로는 언론·집회활동의 자유나 행정적 분권화가 허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다원성은 사회에 분산된 엘리트의 의견을 통치기구로 집약하고, 일원화하기 위한 매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적/사회적 영역의 구분과 상호보완으로 구성된 그들의 질서관은 제2제정기의 정치적 결사 금지와 직업적 결사 승인(1864년법)으로 계승되며, 제3공화정기의 ‘수정 자코뱅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셋째로, 제3공화정기에 자코뱅주의의 쇄신이 완수된다.[각주:31] 여기서 로장발롱이 중시하는 것은 유기체적 질서관을 따라 자코뱅주의적인 국가-개인의 이원적 질서관을 비판하고 중간단체 재건을 제창한 사회학자(Fouillée, Durkheim, Ferneuil, Duguit 등)의 사상이 아니라,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양극화(polarisation)’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화파 정치가(Waldeck-Rousseau, Léon Bourgeois, Paul-Boncour 등)의 질서관이다. 후자는 1884년법(직업조합 자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결사가 질서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승인한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통한 의사집약과 일반이익의 일원적 ‘대표’라는 시각을 유지한다. 정치적 결사는 1901년법까지 자유화되지 않으며, 이 법에서도 결사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제도적 제약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가 제창한 직능대표론이나 생디칼리스트가 주창한 생산자의 공화국론(M. Leroy), 코포라티즘론은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는 시도였다. 다른 한편, 공화파 정치가의 질서관에 따르면, ‘사회적’다원성은 ‘정치적’집권성과 명료하게 구별되며, 그 통제 아래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야말로 20세기의 프랑스 정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위와 같이 로장발롱에 따르면, 혁명기의 자코뱅주의는 몇 번이나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오늘날의 정치사상적 과제는 이제 자코뱅주의의 극복이나 토크빌적인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의 옹호가 아니다. ‘사회적’영역에서 중간단체가 다양한 발전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즉 ‘일반이익’이나 통합의 공통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라고 한다.[각주:32]

4. 마치며

지금까지 달음박질치듯이 30년 동안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뒤쫓았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과제를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서이다. 퓌레 이후의 19세기 사상사 연구는 담론사, 사회사, 심성사 등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고전적 사상가의 텍스트를 넘어선 폭넓은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 기존의 일본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사상가의 주요 텍스트를 ‘점’과 ‘점’으로 묶음으로써 사상사가 구성된 것이 적지 않았다. 향후에는 프랑스에서의 역사 연구의 진전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담론 상황을 ‘면’으로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대상의 확장이 요구된다.

둘째는 분석 틀에 관해서이다. 본고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이라는 도식을 사용해서 본 것처럼, 19세기에 정치사상의 대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자코뱅 주의의 영향,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회로의 권력의 확산, 사회 문제의 출현 등에 의해 분석 틀도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대립이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일원성과 다원성, 정치적 질서의 내부와 외부, 규율과 자율, 중간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역할 등, 논자에 따라서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로 ‘정치적인 것’자체가 논쟁적 개념이 되며, 그 개념 규정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과제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이런 문맥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깊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주도하는 로장발롱의 틀에 내포된 일정한 편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로장발롱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있던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고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런 관심의 전환의 배후에는 현대 프랑스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논의 상황이 있다. 즉, 한편으로는 전지구화, 유럽화에 의한 프랑스 국가의 자율성의 흔들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회적 분단(이민자·청년·배제문제 등)의 심각화와 대의제의 기능장애이며, 이런 것들로부터 귀결되는 ‘프랑스 모델’의 전환이라는 논의이다.[각주:33] 이런 문맥 속에서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과 대의제를 옹호하고 국민(naion)의 재구축을 호소하는 등, 현대정치에 대해 활발한 제언을 계속하고 있다.[각주:34]

그러나 위와 같은 실천적 관심을 배후에 지닌 19세기 연구는 대상에 본래 내포된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훼손하고 이것들을 정태적인 역사관으로 회수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하고 ‘정치적인 것’(일원적 통합원리)의 일관된 우위를 상정한다는 틀로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Constant, Madame de Stäel, C. Dunoyer), 중반기의 사회주의자,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등 ‘사회적인 것’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묻고자 한 사상가들의 상당수가 곁가지에 자리매김 된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상이 ‘자코뱅주의’와 대립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재구축을 모색하고, 사회주의에서 보수주의까지 폭넓은 사상 투쟁을 벌였다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의 지속성을 축으로 삼은 그의 역사관에 대해 복수(複數)의 ‘사회적인 것’의 경합 속에 새로운 질서 구성 원리를 찾아내려는 사상사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은 향후의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 본고는 제31회 사회사상사학회(2006년 10월 22일)의 섹션 「프랑스형 『시민사회』 모델의 가능성 : 피에르 로장발롱을 둘러싸고(フランス型『市民社会』モデルの可能性──P. ロザンヴアロンをめぐって」를 조직한 北垣徹(西南学院大学), 高村学人(立命館大学) 두 사람과의 공동토의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집필에 있어서는 아래의 연구조성의 일부를 활용했다. 平成十七─十八年度文部科学省科学研究費補助金(若手研究B), 平成十八年度新潟大学プロジェクト推進経費(若手研究者奨励研究費).


  1.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1, Paris, Gallimard, 1946, p.13. [본문으로]
  2.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2, Paris, Gallimard, 1950, pp.11-13 ; t. 3, 1954, pp.27-38. [본문으로]
  3.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1978. [본문으로]
  4.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au 19 siècle,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reation of modern political culture, 4 vol., New York, Pergamon Press, 1987-1994. [본문으로]
  6.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서는 다음의 것이 있다. Claude Nicolet, L’idée républicaine en France, 1789-1924, Paris, Gallimard, 1995는 ‘과학’, ‘사회’ 등 19세기의 주요 사상 개념의 배치 속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의 생성과정을 상술하고, 정치사적 서술에 머무는 다른 연구(가령 Pamela Pilbeam, Republicanis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1814-1871, Basingstoke, Macmillan, 1995)와 비교해서 출중하다. Sudhir Hazareesingh, From Subject to Citizen : the Second Empir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French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은 제2제정기의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가톨릭의 담론을 망라하여 검토하고, 그 연방·분권론에 자코뱅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할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생성을 찾아낸다. Laurent Mucchielli, La découverte du social : naissance de la sociologie en France (1870-1914), Paris, Découverte, 1998은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과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착에서부터 당시의 담론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7. 그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첫째, 제도로서의 대표가 부정되는 한편, 혁명운동에 의한 ‘인민’의 대표라는 관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도덕적 일체성에 기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인민’이 대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에 의해 ‘인민’이 창출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이 운동에서 당이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Lucien Jaume, Le discours jacobin et la démocratie, Paris, Fayard, 1989, pp.387-403). [본문으로]
  8. Lucien Jaume, L’individu effacé, ou le paradoxe du liberalisme français, Paris, Fayard, 1997. 또한 좀의 관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저작으로 Lucien Jaume, Echec au liberalisme : les jacobins et l’État, Paris, Kimé, 1990이 있다. [본문으로]
  9. Jaume, L’individu effacé, op.cit., pp.19-21, pp.59-117, pp.124-148, p.340 et s. 독트리네르의 사상이 제3공화정의 체제원리가 됐다는 이해는 후술하는 로장발롱의 기조론에서도 볼 수 있다. Pierre Rosanvallon,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p.358 et s. [본문으로]
  10. 그들을 포함해 최근의 프랑스 논의 상황을 정리한 문헌으로 宇野重規, 『フランス政治哲学』, 東京大学出版会, 2004가 있다. [본문으로]
  11.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94, pp.63-66. [본문으로]
  12.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p.32. [본문으로]
  13. Ibid., p.38. 르포르의 논의는 피에르 마넹(Pierre Manent, 1949~)의 다음의 논의에도 빚지고 있다. Pierre Manent, «Démocratie et totalitarisme : à propos de Claude Lefort», Commentaire, t. 16, 1981-1982, pp.574-583. [본문으로]
  14.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op.cit., pp.171 et s. [본문으로]
  15.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op.cit., p.55. [본문으로]
  16. 고셰의 지적 배경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인류학, 정신분석 등 다양하다. 르포르와의 관계에 관해 고셰는 1966-67년에 그의 강의에 참여하여 ‘선열한 충격을 받고’ 르포르와의 대화로부터 연구 테마를 찾아냈다고 회고했다(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Paris, Gallimard, 2003, p.29). 또한 난해한 고셰의 사상의 도입으로 다음이 편리하다. Marc-Olivier Padis, Marcel Gauchet : la genèse de la démocratie, Paris, Michalon, 1996. [본문으로]
  17. March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pp.1-26. [본문으로]
  18. M.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Paris, Gallimard, 1995. ; «Benjamin Constant : l’illusion lucide du libéralisme», dans Benjamin Constant, Ecrits politiques, Paris, Gallimard, 1997, pp.1-110. [본문으로]
  19.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op.cit., pp.27-35. [본문으로]
  20. M. Gauchet, La condition politique, Paris, Gallimard, 2005, p.371. [본문으로]
  21. M. Gauchet, La religion dans la démocratie, Paris, Gallimard, 1998. [본문으로]
  22. 田中拓道『貧困と共和国』人文書院、二〇〇六年、第四章 ; 同「フランス福祉国家論の思想的考察──『連帯』のアクチュアリテイ」『社会思想史研究』二人巻、二〇〇四年、53-68頁. [본문으로]
  23. Michel Foucault, Se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Paris, Gallimard/Seuil, 2004. [본문으로]
  24. Ibid., p.357. ;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Paris, Seuil/Gallimard, 2004. [본문으로]
  25. 대표적인 예로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Paris, Fayard, 1984 ; François Ewald, L’État-providence, Paris, Grasset, 1986 ; Giovanna Procacci, Gouverner la misère, Paris, Gallimard, 1995 ; Andrew R. Aisenberg, Contagion : Disease, Government, and the ‘Social Question’ in Nineteenth-Century Fra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푸코의 도식과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의 사상사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중요한 연구로는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26. Pierre Rosanvallon, Le libéralisme économique, Paris, Seuil, 1979. 그 내용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론과 근본적으로 겹친다. 18세기의 ‘시장의 발견’을 효율적인 통치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원리로서 위치짓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세미나의 요약에서 이 연구를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op.cit., p.326). [본문으로]
  27. P. Rosanvallon,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2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8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2000. [본문으로]
  28. P. Rosanvallon,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2004, pp.25-105. [본문으로]
  29. Ibid., pp.131-195. [본문으로]
  30. Ibid., pp.218-227. [본문으로]
  31. Ibid., pp.343-360. [본문으로]
  32. Ibid., p.434.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로장발롱이 편집한 La République des Idées 시리즈의 한 권인 La nouvelle critique sociale, Paris, Seuil, 2006. 혹은 P. Culpepper et al. dir., La France en mutation, 1980-2005, Paris, Presses de la Fo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2006. [본문으로]
  34. 로장발롱은 최근 저작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그 불신을 조장하고 키워왔던 기존의 정치사상 연구를 비판한다. P. Rosanvallon,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2006, pp.24 et s. 국민의 재구축에 관해 로장발롱의 「일본어판 서문」, 『연대의 새로운 철학』, 北垣徹訳)「日本ヒ語への序文」『連帯の新たなる哲学』勁草書房, 2006, v頁.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 다음 제시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문제 1> 제시문 <가>는 개인주의가 추락한 모습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설명하시오. (500자 이내)

<문제 2> 제시문 <가>는 국가, 시민사회 및 개인이 취해야 할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하시오. (1000자 내외)

<가> 시민사회가 개인주의적이지도 않고 집단주의적이지도 않은 사회라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걸쳐져 있다. 나는 여기에서 일찍이 미국의 풍경 속에 산재했던 많은 합숙소, 클럽, 정당의 지역 조직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 헌법 비준에 관한 심의에서 헌법초안을 지지했던 페더럴리스트(연방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반대자들과 반-페더럴리스트가 서로 손을 잡았던 것은 소규모 사회(라틴어의 키비타테civitate)의 세계에서였다. 건전한 시민단체가 장기간에 지속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해, 반-페더럴리스트는 페더럴리스트 정도의 자신감이 없었고, 그러한 단체를 번영시키기 위한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키길 바랬다. 반-페더럴리스트들은 하나의 자립적 공화국가를 이상상으로 명확히 내세우고, 그것에 의해 강대한 권력을 배척하고 반대로 시민의 미덕과 공통의 선이라는 고전적 원리에 토대를 두고 구상된 국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 헌법 초안 심의를 연구했던 역사가 랄프 케참은 다음과 같이 썼다.

“반-페더럴리스트들은 풀뿌리의 작고 온화한 정부를 이상으로 삼았고, 그 이상상과 새로운 헌법 초안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강대한 정부와 그 장대한 야심을 날카롭게 대립시켰다. … 전자는 시민이 자신의 삶을 각각 자유롭게 보낼 수 있고 공화국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미덕(사적일 뿐만 아니라 공적이기도 한 미덕)을 함양(涵養)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한편으로 후자는 세금과 징병제와 관료를 산출하며, 전쟁을 시작하고, 자치에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했다.”

반-페더럴리스트는 자신들의 논의를 장밋빛 논조로 물들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들은 어떤 중요한 문제점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중에 알렉스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상세하게 전개한 악순환에 빠지고 싶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악순환을 끊고 싶다고 생각했다. 토크빌은 하나의 경고로서, 몰락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 그가 미국에서 실제로 조사한 강건한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세계를 묘사해 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민주적 시민은 그들의 생활양식이 부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최악의 사례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자들이 사회생활 속에 이중삼중으로 존재하는 상태로, 결사에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억제력과 영양소로부터 분리된 결과 “위로부터의 통제”를 점점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나쁜 의미의 무제한적 개인주의로부터 생겨난 사회를 해체시키는 힘이 실제로는 적어도 몇 가지 억제된 ‘위로부터의 통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의 주변부가 생겨나지 않아야만 한다고 그는 경고했다. 국가의 영역 이외의, 오히려 그 아래에 있는 정치적 영역을 중요하게 지키고 육성하며, 약동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토크빌은 중심 또는 정점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방 의회나 위원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비대하고 집중된 권력은 오히려 권력이 전혀 없는 상태 ― 즉 무정부 상태와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소규모 사회에 의해서 비로소 개개인은 시민으로서 민주적 미덕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육성하고 민주주의의 드라마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민주주의에의 참가는 공동사회에 어떤 형태로,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 관계를 갖게 된다. 시민의 적극적 참가를 허용하고 또한 장려하는 한도를 넘어서 권력이 과도하게 행사되면, 시민으로서의 존엄이 훼손되고, 마침내 민주적 자치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반-페더럴리스트들의 권력 집중에 대한 염려는 토크빌의 우려를 선취한 것이었다. 토크빌에 따르면 반대로 권력의 강함 ― 예를 들어 군사력의 우위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된 나라의 강대함은 ‘민주주의 국가의 인민의 가슴에 쾌감을 준다’, ‘생명의 위험이 있다고 하는 예외에서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생생한 영광을 갑자기’ 마치 도처에서 주어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이론가, 사회이론가는 토크빌의 우려에 관해 그 동안 많은 논의를 해 왔다. 이 점에서 토크빌을 따르는 사람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실체가 고대의 비민주적인 기구와 의무로부터 개개인을 해방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동시에 사적 이익에만 전념하는 이른바 사유화(privatization)의 경향도 해방되었다. 토크빌이 두려워했던 것은 플라톤이나 토마스 홉스와 같은 비민주적인 철학자가 말하듯이, 그 결과로서 무정부 상태가 생겨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적 이익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상업 국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지배가 생겨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나쁜 형태의 개인주의를 ‘이기주의(egoism)’라고 부르고, 민주적인 생활양식이 번창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적 존엄과 자기 책임이라는 관념과 구별하고자 했다. 당시까지 사람들을 지켜왔던 사회적 그물망이 점차 흩어지게 되면, 개인은 각각 고립되고 무력화되며, 여러 가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공백 상태에 정부의 조직적 권력이 상층부의 중앙집권적 국가라는 형태로 치고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토크빌의 심려에 관해서 곧바로 국가와의 관계에서 더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전에 우선 현대 서구의 민주적 생활양식에 대해 몇 가지 비판, 나아가 비난에 관해 논해 보겠다.

우선, 이러한 심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머지않아 개인이 자아중심에 이르기까지 고립되며, 철저한 개인의 자립이 찬미되기에 이르면, 개개인 상호간의 의무나 상호의존망은 이미 의심의 눈초리로 보여지게 된다. 이러한 도식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들만이, 그/녀의 선택만이다. 그리고 선택이 이렇게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버리면,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의무의 관계라는 중대한 문제가 소멸되어 버린다. 개인주의의 한 극에 모든 것을 미리 맡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는 민주적 개인이란 ‘무제한적으로 주관주의적이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아니라’라고 할 수 있으나 문제로 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된다는 점이다. 토크빌이 시의적절하게 보여준 민주적 생활의 장소 ― 특히 평등의 정신, 상이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서로 섞이게 되며, 이것 이외의 가장 놀라운 자기 폐쇄적인, 시기심과 의심 및 냉소주의라는 관습과 기질이 전면에 나오게 된다.

역사가이자 문화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래쉬(Christopher Lasch)는 <진실의 유일한 천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8세기의 근대 자유주의의 창시자들은 인간의 욕구와 필요는 확대하며, 오히려 인간의 욕구와 필요를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전제에서 논의했다. 이러한 필요의 창출과 충족이라는 쉴새 없는 사이클cycle을 충족시키기고, 더욱이 촉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경제생활에서의 생산력의 무한한 성장이 필요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진보라고 불리는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의 세계로부터 시간이라는 요소를 가둬버리고, 완전히 수수방관하기 힘든 낙관론으로 귀착해 간다고 라슈는 주장한다. 어떤 생활양식이 시간이 지나도 전혀 상처받지 않고 그 자신의 가장 중요한 원리에 심한 왜곡이 생겨나지도 않는다는 수수방관하기 힘든 낙관론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유형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20세기의 진보 이데올로기를 떠받쳐왔지만, 그 공유재산은 끝이 없는 성장의 세계를 축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이 없는 성장이란 실제로는 보다 큰, 그리고 보다 좋은 소비자주의를 의미한 것이었다. 생산자를 찬미하는 것으로부터 소비자의 찬미로 이행하는 것, 그것이 중심적인 문제점이었다. 과소 소비는 투자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생겨난 것은,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바란다, 지금 당장 바란다는 태도이다. 생활의 모든 곳에 시장이 침투하고, 시장의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다. 미국의 도시 중심부에서 젊은이들이 고가의 스니커즈(고무바닥을 천으로 만든 운동화) 등을 빼앗기 위해 서로를 때리고 쟁탈전을 벌이고 결과적으로 서로를 죽이는 것, 또는 미국 교외의 부유한 가정 젊은이들이 학교의 면학이나 공동사회에 참가하는 것을 기피하고 파트타임 일에 종사하여 어떤 새로운 소비재를 사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놀라워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래쉬의 논의가 법왕 요하네 파울로 2세의 사회적 관심에 관한 1988년의 회장(回章)(Sollicitudo Rei Socialis, ‘진정한 개발이란 인간 부재의 개발에서 인간 존중의 개발로’)에서의 ‘자유-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유사하다고 해석한다. 요나네 파울로는 진보 이데올로기의 독선적인 자기 만족에 반대하고, 특히 ‘온갖 물질적 재화가 상당히 많고, 몇 가지 사회적 집단에는 오히려 좋지 않은’ 상태라는 ‘초고도 발전’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초고도 발전’은 “사람들을 ‘소유’와 지금 만족을 찾고 싶다고 하는 욕구의 노예로 만든다.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더 많게, 또는 그것을 대신하여 그 밖의 더 좋은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싶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소비’ 또는 ‘소비자주의’의 문명이다. 그것은 많은 것을 ‘버리고’ 또는 ‘낭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요하네 파울로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순진한 소비자주의에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굴복하는 것의 비참한 결과”는 물질주의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하게 된다’는 끊임없는 불만이다. 타인과 교류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적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더 깊은 바램은 질식되어 버린다. 이 바램을 요하네 파울로는 ‘연대’라고 명명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불행에 대한 막연한 동정이나 옅은 곤혹의 감정” 등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인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공통의 선, 모든 개개인의 선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결의를 가리킨다. 요하네 파울로의 말에는 연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을 … 단순히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 ‘협력자’ … 우리 모두가 신으로부터 초대받은 인생의 향연에 우리와 대등한 입장으로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요하네 파울로의 말은 유토피아적, 또는 소박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즉 그 정도로 우리는 시민사회를 상실하고 있다. 적어도 사회학자 알랭 울프는 <누구의 수호자인가? 사회과학과 도덕적 의무>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울프는 토크빌을 현대인과 대조시켜, 현대가 점점 더 나쁜 의미에서의 개인주의의 길로부터 어느 정도로 멀리, 또한 어느 정도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각자는 각각의 작은 왕국에 밀집해 있는 결과, 점점 더 큰 관리와 통제, 정치․경제의 권력 집중이 필요하게 되었는가를 측정하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 특히 미국의 현대사회가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잘 되어가지는 않는, 무엇인가가 심각하게 되어 버렸다는 감각이 있다는 것, 때로는 절망적인 감각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시민은,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고 있지만, 울프에 따르면 우리는 “무릇 자유를 가능케 하는 … 사회적 의무라는 점이 되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져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혼란은 시장에서 가정, 나아가 대학으로 모든 수준에서 침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혼란은, 과거 수십년간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권리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큰 관계가 있다. 미국인은 지금까지 오랜 기간, 권리에 관해 말해 왔다. 그것은 우리가 계승한 유산의 일부이며, 애플 파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적인 것이다. 미국 헌법 초안에 권리 장전이 부가되고, 미국 헌법의 일부로 되었을 때, 권리가 먼저 어떻게 말해졌는가를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의 권리는 사회적 자유 ― 즉 집회, 출판,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며, 정부는 시민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없는가(예를 들어 부당한 조사나 체포를 해서는 안 된다)에 관련된 것이다. 권리는 오로지 불가침의 권리, 존대한 정부권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정해지며, 어떤 의미에서의 ‘자격’으로서는 정해지지 않았다. 권리를 가진 시민이란 사회적 산물이며, 공동사회의 산물이며, 내가 앞에서 말한 시민 사회의 세계 속애 존재하는 가족, 그 가족 속의 남녀였다. 하지만 시간이 결과함에 따라, 권리를 가진 개인이 “나(me)와 나(my)의 권리”로서 자립하게 되었다. 일찍이 단순히 개인의 욕망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권리로서 요구되게 되었다. 그 권리는 성적 충족, 자존심, 무제한의 자족표현을 ‘권리’로서 요구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여러 가지 소비자로서 선택하는 ‘권리’를 갖는다는 관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메어리 앤 그랜든이 <권리에 관한 담화>에서 지적했듯이, 여기에서는 권리와 권리를 규정된 자아가 자립하게 된다. 사회성과 책임이라는 차원이 결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돌이켜보면, ‘권리 담의’에서 생기는 정치적 부산물을 이해하게 쉽게 된다. 확실히 그것이 민주주의를 심판하는 입장에 서게 한다. 내가 앞에서 말한 하나의 논점을 더욱 밀고 나아가, 이 점을 설명해 보자. 우리가 보는 바, 도덕적으로 몹시 지친 좌익은 욕망을 권리로 전환하고자 함으로써, 시장의 논리에 도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적 좌익은 오늘날에도 엄밀히 경제적 의미에서의 시장을 길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회적 관계에 관한 시장 모델을 승인하고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지니며 살아가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이미 권리와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인정하기 힘든 제한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으로 좌익인 많은 사람들은 경제생활에서는 시장의 무제한의 작동(제약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한다)을 애호하면서, 가족생활과 노동생활에서는 엄격하게 성적, 사회적 원칙을 필두로 하여 전통적 도덕의 부활을 바라고 있다. 양자 모두 “각각의 도덕적 의무를 정하는데 있어서” 시장이나 나아가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셈인데, 그러나 “양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시민사회 ― 가족, 공동사회, 우정의 네트워크, 직장에서의 연대, 자발적 활동, 자연발생적인 그룹과 운동 등이며, 그것은 근대화, 현대화의 진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정시키는 것이다”라고 울프는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귀중한 목표의 달성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권리라는 것을 철저하게 사회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오랜 관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권리는 항상 다른 것에 대한 일이다. 항상 우리를, 타인들과 관련시키는 것이다. 권리는 자립적인 것이 아니다. 권리는 우리가 누구인가, 무엇인가가 제일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아픈 아이를 밤새도록 간병하는가, 이웃 사람이 퇴원하면 왜 스프를 끓여서 가지고 가는가? (홍수나 허리케인처럼) 자연재해의 피해자에게 구호물자가 두루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 왜 몇 시간이나 일을 하는가? 이러한 이유를 오늘날의 ‘권리 담의’ 속에서, 그것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사회적 책임감과 공감에 토대를 둔 활동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해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를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유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고 느낄 때에는, 우리의 관심을 현실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으로, 또한 비사회적으로 설명하기 십상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최고의 논의’는 권리의 논의라는 입장으로 다시 귀결되어 버리는 것이다.

강대한 국가(여기에 우리가 친숙한 복지국가를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에 대한 토크빌식의 의미에서의 불안에 관해서는, 내가 앞에서 거론한 정치사상가는 아무도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복지-군사’ 국가였다. 여기에서 사회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국가에 충실하게 의존하게 하는 것을 명확하게 꾀하고 있었다. 사회적 통제가 그 목적이며, 복지는 그를 위한 전략이었다. 현대 서구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국가는 시민사회가 시장의 힘에 굴복하기 시작했을 때에 생겨난 윤리적 관심과 정열로부터 출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심이 국가는 ‘시민사회의 도덕적 유대를 대신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신념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과거 50년의 사실에서 명확하게 되었듯이, 국가에 의한 원조의 논리와 장기적으로 국가에 의존하는 계급의 출현이 모두, “정부에 의한 통치를 가능하게 해 온 사회적 유대 자체”가 더 한층 약화되었던 것이다.

이 점을 확실히 해 보자. 나는 국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소박하지 않으며 어리석지도 않다. 국가는 잘 키우기만 한다면, 민주사회에서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게 있어서는 오히려 국가주의의 논리에 관해 불안하게 생각한다. 그 논리란 우선 국가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는 사람들의 관심에 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국가가 그러한 역할을 확대하게 되면 지방적인 제도의 능력을 서서히 축소되어 버린다. 그것이 하나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러야만 할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장 자크 루소가 염두에 두었던 시민적 국가체제,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을 포함한 시민적 활동가가 오랜 기간 동안, 실천으로 옮겨왔던 시민적 정치체제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북미에서는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다.

국가주의자란 국가주의적인 시민은 국가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고 충성하고, 국가와 그 목적을 우선시하는 시민이다. 국가주의자는 우리 시민을, 아주 강력한 중앙집권적 기구에 의해 동원되는 대상으로 간주하고, 가족의 일원, 이웃 사람, 공제조합이나 여성의 의료 조합 회원, 아프리카 코끼리를 멸종으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활동가, 독서회의 참가자, 침례교도나 가톨릭교도 등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국가주의자는 우리가 여러 가지 국가의 명령에 에워싸이고, 의무를 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민주적 시민사회의 시민은 정부가 도덕적 의무를 약화시키기도 하고 강화시키기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의무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몇 세대를 연결시킨 인간관계, 친구나 이웃사람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개별적인, 도덕적 근거의 어떤 책임감이 쇠퇴하게 되면, 국가가 그것의 빈틈에 파고 들어온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의 한정된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는지도 모르나, 그러나 확실히 이 국가에 의한 해결은 장기적으로는 의무감을 더욱 엷게 만들어버리게 된다. 머지않아 국가 자체를 지지하는 힘이 저하되며,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권리를 손상시킬 수 있으며, 불만만이 자라게 할 수 있다. 그 증거가 탈세행위이며, 사람이나 재산에 대한 폭력 행위의 증가이며, 가족을 포함한 사회적 유대의 전례 없는 대규모의 해체이며, 절망감과도 닮은 정치적 냉소주의의 대두이다.

현대의 수많은 관찰자는 서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복지-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도, 그러한 시민적, 사회적 위기의 배후를 보고 있다. 고령자의 고독, 젊은이들의 무관심, 교회나 공동 사회 조직의 쇠퇴, 가족의 유대와 가족생활의 의례와 리듬의 해체 등의 이야기는 이미 친숙한 것이다. 복지 수당이 직접 그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상층부만 비대한 관료제라는 부담을 지고 있는 국가는 국민을 그 ‘필요’에 의해 분류하고, 그 필요를 전제로 여러 가지 개혁 방안을 실행하지만, 그것은 이른바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민주적 자유, 시민사회, 개인의 자유 사이에 긴장을 낳는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개인주의라는 유력한 수사학과 냉소주의 문화,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실제로 가족, 공동사회, 교회, 이웃관계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 이 양자를 구별해야만 하는 것은 지금 분명하다. 어쩌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 일상생활은, 확실히 강한 압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법과 질서’를 추구하며, 범죄자에 대해서 더 엄한 벌을 추구한다. 미국에서 사람들은 안전이 가장 공격적인 자조(自助)라고 생각하며, 자위의 무기를 지니게 되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정치가한테 그만두라고 절규하는데, 그렇지만 새로운 정치가가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이웃집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보다 더 부당하게 편애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심려한다. 절망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활과 주변 사람들과의 생활을 파괴한다. 이유를 분간하는 못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며, 주변이 혼란하여, 자신이 누구인가, 무엇인가도 확실하게 않게 된다. 부주의한 사람들은 자기네 아이들을 돌보지 않게 되며, 그래서 교사와 사회적 노동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게 된다. 양친이 일으킨 분쟁을 교사나 사회적 노동으로 처리하자고 하지만, 글래서 “자기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 처리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결점의 상당수는 처리되지 않는다. 인간생활의 모든 것은 이른바 조용히 체념하면서 보내지게 된다. 우리는 모두, 때로는 공포와 슬픔으로부터 구출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절망, 냉소주의, 폭력을 시대의 음울한 배후로 보고, 그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하나의 경고로 이해하고 있다. 민주주의 자체가 여러 가지 갈망 ― 자유, 공정, 평등에 대한 갈망을 해방시켰는데, 그러한 갈망을 충족시킨다는 과제를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 Jean Bethke Elshtain, Democracy on Trial. New York: Basic Book, 1995.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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