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식이론에 있어서 정신분석의 흔적 
: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론』에서 운명과 해방 

歴史認識理論における精神分析の痕跡

ヴァルター・ベンヤミンの『パサージュ論』における運命と解放

프랑수아즈 나이슈타트(Francisco Naishtat)

Francisco NAISHTAT, « Les traces de la psychanalyse dans la théorie de la connaissance historique : Destin et délivrance dans les Passages benjaminiens (Passagen-Werk)», Philosophie et Éducation, UTCP Booklet 1, UTCP, 2008.


Ⅰ. 서론 

 20세기를 통해, 역사기술은 인문과학의 형태와 그 변형과도 관련된 철학적 충격이나 인식론적 충격을 받아왔다. 역사이론의 변용에 수반된 다른 인문과학은 인식론적으로 새롭게 방향이 지어지고, 현대철학은 전회해 왔는데, 본론에서는 이런 변용의 전부를 열거할 수는 없다. 현대의 역사기술에서의 결정적인 변화를 세 가지만 지적한다. 

 (1) 해석학적인 전환 : 역사가의 이해와 해석을 역사인식의 구조에 있어서의 능동적인 결과로 간주하는 것. 

 (2) 사회학적인 전환 : 사회나 역사의 장기적인 구조에 입각해 역사기술의 차원을 재설정하는 것. 이 경우, 개별 사건에 대한 접근법으로부터 구성된 역사기술은 배격된다. 

 (3) 언어학적인 전환 : 역사의 에크리튀르(역사 이야기), 더욱이 역사기술의 텍스트의 에크리튀르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을 수정하는 것. 역사기술의 분야에 텍스트 이론이나 언어이론을 둘러싼 논의를 도입하는 것. 

 이런 역사기술의 변용(우리는 20세기의 철학의 변용과 결부시켜, 이것을 굳이 '전회'라고 표현했다)에 있어서, 정신분석은 얼핏 보면, 별다른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정신분석의 작업에 있어서는, 피분석자의 기억이나 억압된 과거를 현재시와의 동적인 관계에 있어서 파악하기 때문에, 시간 형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역사학 갗은 학문 분야에서 정신분석이 인식론적 충격도 '전회'도 초래하지 못했다는 것은 역시 기묘한 것 아닐까? 역사학의 사명은 바로 "현재시에 있는 <우리들>의 과거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반론은 다음 세 가지 유보를 포함할 것이다. 

 (a) 최근의 역사기술은 분명히 정신분석의 충격을 받고 있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건의 트라우마를 짊어진 희생자의 역사적 기억에 강한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제수용소, 전쟁, 학살, 민족간 폭력 등의 역사적 재앙의 기억이다. 그런데 트라우마의 물음은 분명히 담론이나 이야기의 단절에 관계한다. 즉, 통상적인 사건의 증언과는 달리, 희생자가 사건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의 불가능성과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파울 첼란이 "아무도 증인을 대신해 증언하지 않는다"(Niemand zeugt für den zeugen)[각주:1]는 의미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만 한다. 이 점에서 정신분석은 역사기술에 선행한다. 유아기나 무의식을 다루는 정신분석은 누락 부분이나 트라우마의 어떤 기억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것의 불가능성 앞에서 이야기가 단편화될 때, 담론의 한계가 드러날 때, 정신분석은 역사가에게 어떤 모델을 제공할 것이다. 즉, 그것은 이야기의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뭔가를 지시하고, 상징하고 암시한다는 모델이다.[각주:2] 

 (b) 정신분석에 대한 역사기술의 유보는 후자의 편만이 아니라 전자로부터도 생긴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집단적인 정신분석을 어떤 형식(문화, 사회, 역사)에 있어서도 금지했다. 초자아의 차원에서, 의식은 자기 동일성이나 승화 같은 문화적 모델을 포함시킬지도 모르지만, 무의식 쪽은 각 주체의 개별적인 역사와 밀접하게 결부되며, 항상 개인적인 채로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에게서는 집단적인 정신분석은 인정되지 않으며, 르 봉의 군중심리학에서의 집단심리도, 헤겔의 역사적 관념론에서의 민족정신도 상정되지 않는다.[각주:3] 무의식에서의 집단적 내지 개인적 지위status의 물음은, 프로이트(및 라캉)이 보기에, 이른바 정당한 정신분석과 미숙하고 잘못된 분석이론을 식별하는 시금석이다. 그래서 개인의 주체성의 차원에 한정된다면, 역사기술은 정신분석을 간접적이고 완곡하게 사용하게 된다. 대체로 역사 해석은 개인적 차원에 한정된 정신분석의 가능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개인들의 심리 ― 프로이트나 라캉에게서의 주요한 쟁점 ― 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c) 이런 설명은 더 나아가, 제3의 유보와 깊이 관련될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이론과 역사기술의 실천에 있어서 정신분석과 독자적인 관계를 발전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역사기술의 작업과 이른바 정치, 과거와 역사가의 현재 사이에서 중요한 접점 ― 역사가가 공식적으로는 부정해왔던 접점 ― 을 설치함으로써 실증주의와 역사주의라는 두 개의 극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과거와 정신분석의 관계에 관해서는 벤야민의 역사기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적어도 꼽을 수 있다. 

① 벤야민은 성별(聖別)된 과거와 억압된 과거의 이분법을 시간성의 이론에서 끌어내고, 과거는 두 번 지나간다는 형태로 제시한다. 과거는 첫 번째에는 성취된 과거로서, 두 번째에는 현재시에 대한 새로운 기회chance를 포함한 아직 성취되지 못한 과거로서 지나가는 것이다.[각주:4] 실제로, 정신분석에 있어서는, 추도적追悼的 상기의 작업에 의해 과거는 현재시의 중핵으로 회귀한다.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가 신화로서 경험되고, 각자에게 이른바 숙명으로서 부과될 때, 그런 숙명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벤야민에게 있어서, 특히 19세기에 관한 그의 말년의 탐구에 있어서, 역사가의 작업은 과거의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실증주의)도, 지나가버린 시대가 우리의 반성적 의식에 대해 보유하는 의식을 과거의 한복판으로부터 사후적으로 폭로하는[파헤치는] 것(역사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실들의] 응축이나 변증법적 이미지의 기법이나 몽타주에 의해, 시간의 연속된 흐름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시간의 연속성의 족쇄를 현재시에 있어서 파탄나게 하는 섬광으로서 과거를 발생시키고, 현재시의 중핵에서 특이한 기회chance를 개시하는 것이다.[각주:5] 

② 벤야민은 꿈과 각성의 대립을 정신분석으로부터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섭취한다[받아들인다]. 이 대립에 의해 우리는 모종의 도식을 손에 넣고, 그의 역사인식의 이론에 손을 댈 수 있다. 꿈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과거는 역사가에 의해 고정화되고 영원화되지 않고, 반대로 시간의 연속성을 파탄시킬 수 있도록 재활성화되는 것이다.[각주:6] 여기서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편으로, 벤야민에게서, 우리의 과거 ― 이 경우는 19세기 ― 는 판타스마고리를 포함한다. 판타스마고리가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전통적인 맑스주의가 분석하는 상품 물신주의의 현상과, 공산주의의 선구자나 계급 없는 사회라고 하는 죄 없는 유토피아주의이다. 상품의 물상화의 세계와 그 부정 ―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우정으로 가득 찬 유토피아적 소망 ― 이라는 두 개의 극은 벤야민이 보기에, 같은 시대나 같은 역사적 현상, 즉 자본주의의 판타스마고리적 표현인 것이다.[각주:7] 사회주의적 진보주의는 인류의 역사의 텔로스[목적]를 권위적으로 설정하고, 죄 없는 유토피아를 바라지만, 그것은 결국, 천년낙원을 약속하거나 메시아의 회귀나 시대의 끝[종언]을 한없이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적어도 외관상, 역사유물론은 무적이 된다. 왜냐하면 목적론적 장치는 우리가 진정으로 승부하지 않고, 모든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어떤 불행이나 카타스트로프가 생기더라도, 구원은 이윽고 도래한다는 카드[패]가 수중에 있다.[각주:8] 이리하여 상품 물신주의와 공산주의의 약속에 의한 목적론적 유토피아주의라는 두 개의 극은 동일한 판타스마고리로 집약되며, 그것은 역사를 사는 자에게 피험자의 꿈과 똑같은 의미를 띠게 된다. 즉,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이 속박을 파탄시키려고 하는 바람이다. 둘 다 배우[행위자]는 꿈을 꾸는 방관자이다.[각주:9] 

③ 벤야민에게서 과거의 인식이 우리의 현재의 조건의 마력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반대로, 벤야민은 독특한 몽타주 기법[각주:10]을 갖고서, 과거와 이른바 물신주의의 톱니바퀴가 연관되는 메커니즘을 내다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벤야민은 역사인식이 어떤 충격을, 즉 각성을 일으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때 역사인식은 운명으로부터의 해방의 역할을 맡으며, 우리는 어떤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명의 마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체의 역사적 형이상학의 새로운 형태로서 해석하는 것에는 조심해야 한다. 정신분석 후에 '해방된' 주체의 상태가 무엇을 닮고 있는지를 기술하는 것은 정신분석의 사정거리를 넘어서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회귀로부터 우리에게 도래하는 각성이 무엇을 닮고 있는지를 언표하는 것은 역사기술의 사정거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런 각성은 소묘되고, 예상될 수 있는 경험적 사태와 똑같은 차원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각성을 인식하기 위한 기준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고, 각성은 바로 탈신비화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적합한 때에 우리는 운명의 마력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운명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 또 우리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뒤집고, 역사의 필연이라는 무서운 기계장치를 멈출 수 있도 있을 것이다.[각주:11] 그러나 이런 역사인식은 독일관념론 및 역사주의에 의해 해명된 의식과 동등한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비이성적이고 몽매한 의식의 안티테제로서, 꿈을 파탄나게 할 수 있는 현명하고 이성적인 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아주 기묘한 의미에서, 데리다가 벤야민에 관한 빼어난 텍스트[각주:12]에서 인정했듯이, 벤야민이 말하는 역사가는 꿈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한다〔veiller sur le rêve〕. 즉, 역사가는 꿈을 그 원천으로 소급시켜 감으로써 꿈과 대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의 연속성이나 동질성을 파괴하는, 꿈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나 다름없다.[각주:13] 꿈의 허를 찌르고, 각성에 의해 기회chance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꿈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정신분석의 작업이 해석의 작업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적 삶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인내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무한하게 설정되는 해방을 목적론적으로 갈망[대망]하는 것과는 다르다. 분석작업이 무한하게 연장되는 연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분석을 헐뜯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거꾸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분석이 우리의 지성의 마력을 언어에 의해 배신하는 것을 가능케 했듯이, 분석작업에 의해 마력의 단절이 준비되는 것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게임을 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됐다고 해도, 사물이 무엇에서 어떻게 일어났는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보게 될 것이다.[각주:14] 이리하여 벤야민이 역사기술의 기회로서 논한 역사적 메시아주의는, 영원히 대망되는 메시아의 목적론적 차원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재시의 각 순간이 갖고 있는 기회이며, 출구의 문이며, 역사의 연속의 단절이다. 이런 단절의 시간성에 있어서 메시아적인 것 ― 벤야민에게서의 진정한 신비 ― 이란 도래하는 것(예를 들어 구원이나 낙원 같은 목적론적 사태)이 아니라, 도래 그 자체이다. 즉, 운명의 뒤통수를 치고, 우리 자신의 과거를 해방하는 시간의 열림, 마치 두 번째로, 다만 기회로서 우리에게 도래하는 시간의 열림인 것이다. 

 우리는 역사기술의 작업에 있어서 해석 모델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정신분석을 다뤄왔지만, 그러나 집합적 무의식의 원형 ― 선천적이고 비시간적으로 간주되는 원형 ― 이라는 융의 실체적 해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분석은 주체의 철학 및 역사의 목적론의 아포리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역사, 정치, 철학을 서로 관련시키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파사주론』의 역사인식이론이 불러일으킨 반론의 몇 가지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5] 「역사의 개념에 대해서」의 테제는 『파사주론』과 분리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몇 가지의 단장에 입각해 논의를 계속하자. 벤야민이 역사이론에 있어서 정신분석의 몇 가지 범주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더 예증해보자. 


Ⅱ. 역사인식이론과 벤야민의 『파사주론』

 『파사주론』(Pasaggen-Werk)으로 알려진 저작은 벤야민의 기념비적인 텍스트인데, 1940년 9월에 그가 자살했을 때에는 미완성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사후 42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간행됐다. 1982년 아도르노의 제자 롤프 티데만 등의 손에 의해 편집되고, 주어캄프판의 전집 5권에 수록됐다(프랑스어로는 1989년, 장 라코스트에 의해 번역됐다). 이 책의 제목은 벤야민에 의해 착상된 것이며, 이미 1927년에는 이 기획에 대한 최초의 언급 속에 "파리의 파사주 : 변증법의 요정의 나라"(1928년 1월 30일, 게르숌 숄렘에게 보낸 편지)라고 적혀 있다. 파사주의 도시적인 오브제, 19세기 이후 건축된 파리의 갤러리는 벤야민의 텍스트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다(루이 아라공은 이미 이 대상들 ― 특히 오페라 자리의 파사주에 시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파리의 도시와 19세기가 이 미완의 책에 통일을 가져다주는 중심적 쟁점이라고 하더라도, 『파사주론』은 단순한 역사론도, 도시론이나 문화해석론도 아니고, 오히려 원칙적으로 역사의 정치철학의 책이다. 「파리 : 19세기의 수도」의 처음 노트를 읽었을 때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기대한 것은 이것이었다. 

 『파사주론』은 미학, 도시론, 사회학, 역사학 등 이른바 이종혼합적인 특징을 가진다. 하지만 그런 특징을 넘어서, 이 책이 전개하는 것은 분석철학의 조류에서 유행하고 있듯이, 역사의 의미를, 더 간결하게 말하면 역사인식의 틀을 철학적으로 파악한다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철학적 인식과 현재의 철학적 존재론 사이의 정치적 관계, 즉 역사의 정치에 관련된 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다만 이런 관계는 독립적 형태로 방법론으로서 미리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책의 내용 그 자체이며, 그 전체에 새겨져 있다. 즉 이것은 무엇인가를 언표하고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몽타주 장치를 통해 역사인식의 정치적 비전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책인 것이다. 의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다양한 단계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단순하게는 말할 수 없는 의미를 제시하는 것을 자신의 관건[내깃돈]으로 삼고 있다. 벤야민의 철학적 인식이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사주론』은 미학, 역사기술, 사회, 정치 등 여러 차원의 역사인식을 통합하는 중심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서 그는 '역사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얘기하고 있다. 역사 개념에 대한 벤야민의 유명한 테제는 아도르노의 배려에 의해 이미 50년대에 출판됐지만, 이 테제는 『파사주론』과 독립된 형태로 읽혀져서는 안 되었다. 공교롭게도 따로따로 수용됐기 때문에, 벤야민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역사철학을 전개시키려고 했다고 간주되고, 19세기에 관련된 매우 특이한 조사는 떼어내져 버렸다.[각주:16]

  그의 인식이론에서는 페티시즘, 판타스마고리아, 무의식, 꿈, 몽상, 잠, 각성[잠에서 깸], 눈을 뜸, 기억, 신화적 이미지, 변증법적 이미지, 상기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것들은 여러 가지 영향의 혼합에 의해 초래된 것이지만, 그 주된 것은 마르크스, 루카치, 프로이트, 프루스트, 초현실주의이다.  다만, 이미 첫머리에서 설명했는데,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파사주론』과 프로이트의 저작의 관계이다. 실제로 벤야민은 꿈, 모앙, 판타스마고리아 같은 정신분석의 개념을 자신의 분석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다만 그는 꿈이나 판타스마고리아를 개인적 심리상태의 차원이 아니라, 파리의 파사주나 만국박람회처럼, 집단이 물질이나 도시를 통해 구현되는 차원에서 이해한다. 또한 오스만, 블랑키, 푸리에, 보들레르 등과 같은 상징적인 역사적 인물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다. 즉, 벤야민은 프로이트처럼, 개인의 심리의 현상에서 출발해서, 정신분석적 해석에 입각해 숨어 있는 논리적 구조를 해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구체적인 역사적 물질에서 출발해, 정신분석적 수법(꿈해석)에서 착상을 얻은 해석을 시행하는 것이다. 파사주나 만국박람회는 물질적 현실인 동시에 판타스마고리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바로 자본주의의 상품 페티시즘의 욕망을 나타내며, 계급투쟁이 없는 과거로의 회귀라는 유토피아적 소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판타스마고리아의 현상은 맑스에 있어서는 경제이론에 한정되고, 아도르노나 루카치에 있어서는 맑스가 확립한 페티시즘 현상의 틀 안에서 설명되었다. 하지만 벤야민에 있어서 판타스마고리아 현상은 더 나아가 역사구조의 중핵에 위치지어진다. 즉, 판타스마고리아는 자본주의와 그 물질화라는 형태로 19세기 파리의 생활양식의 모든 수준에 침투해 있는 것이다. 판타스마고리아는 소외적이고 유토피아적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현상을 모순된 변증법으로서 표현하고, 게다가, 이 변증법은 이른바 19세기의 틀을 넘어서, 다음 세기로 연관하는 듯하다. 바로 이것이 『파사주론』의 철학적 힘인데, 꿈 개념은 지나가버린 시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시現在時로 연장된다. 19세기는 다음의 시대를 규정하고 조건짓는다. 즉, 벤야민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란 사회적 현실이며, 어떤 시대의 잠 ― 그 꿈이 더 나아가 우리 시대를 조건짓는다 ― 인 것이다. 즉, 벤야민은 추모적 상기의 작업의 계기를 이루는 "[잠, 꿈에서] 눈을 뜸=각성"과 꿈 개념을 관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의 심리에 있어서의 정신분석의 상기와 유사한, 꿈의 작업의 도달점을 이루고, 몽상의 출구나 해방의 조건을 이루는 "각성"과 꿈 개념을 관계시키는 것이다. 이리하여 『파사주론』에 있어서 프로이트의 흔적은 해석상의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즉, 벤야민은 집단 수준에서 정신분석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는 35년의 편지에서 그것은 융 심리학의 아류라고 지적하고, 벤야민은 융과 선을 긋는다고 자기 변호했다.[각주:17] 벤야민의 말투는 그렇다고 치고, '각성' 개념 ― 꿈이나 판타스마고리 개념을 보완하는 개념 ー 의 사용에서부터, 그는 결국, 프로이트에 가깝다고 가정할 수 있다. 즉, 프로이트의 임상실천에 의한 마력에서의 해방의 구조 속에는, 벤야민의 각성 개념과 유사한 것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벤야민이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면 몇 가지 문제나 아포리아가 반드시 생겨난다. 다음 장에서는 이를 살펴보자. 


Ⅲ. 『파사주론』에서의 벤야민의 아포리아 

 꿈과 깨어남의 물음은 『파사주론』 전체를 통해서, 벤야민 식의 역사기술의 방법과 결부된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그 망라적인 분석을 행할 여유는 없으나, 역사기술과 꿈이나 깨어남의 관계에 관해서, 『파사주론』의 K 분류에 수록된 몇 가지 단장断章을 인용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그것과 함께 꿈에 가득 찬 새로운 잠이 유럽을 휩쓴 하나의 자연현상이며, 그 잠 속에서 신화적 힘들의 재활성화를 동반하는[따르는] 것이었다.[각주:18][K1a,8]

19세기는 개인적 의식이 반성적 태도를 취하면서, 그런 것으로서 점점 더 유지되는 반면, 집단적 의식은 점점 더 깊은 잠에 떨어지는 시대〔Zeitraum〕(혹은 시대가 꾸는 꿈〔Zeit-traum〕)이다.[각주:19][K1,4]

기디온의 명제로부터 더 전진하기 위한 시도. '19세기에 건축 구조는 하위의식의 역하을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건축 구조는 흡사 꿈이 생리적 과정이라는 발판에 들러붙어서 태어나듯이, 그 주위에 이윽고 '예술적인' 건축이 들러붙는 신체적 과정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바꿔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각주:20][K1a, 7]

여기에서는 꿈의 현상은 단지 개인의 심리현상이 아니라, 집단 수준에서 분석된다는 사고방식이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다른 대목에서는 판타스마고리와 묶이고 있다. 

졸저의 조사는 문명의 이 물체화적 표상에 의해, 우리가 지난 세기부터 물려받은 새로운 생활의 형태들이나 경제적 기술적 기반에 선 새로운 창조가, 어떻게 하나의 판타스마고리에 돌입하는지를 나타내고 싶다.[각주:21]

 분명히 벤야민은 판타슴, 꿈, 몽상 같은 정신분석 또는 심리학의 범주를 사회・경제적인 차원으로 이행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개념의 이행 속에서, 마르크스가 『자본』 1권에서 전개한 상품 페티시즘 개념의 흔적을 인식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극히 환상적인 성질을 이미 기술하고 있다. 상품과 주체의 관계는 페티시즘이라는 표현으로 규정되며, 이것은 "사태들의 관계의 판타스마고리 형식"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는 바에서는, 상품의 사용가치 자체는 전혀 신비가 아니더라도, 거기에는 '신비적인 가치'나 '혼' 같은 것이 부가되어 있다. 루카치도 또한, 『역사와 계급의식』의 「물상화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이라는 장에서 물상화 현상에 있어서의 '환상적 객관성', 주체의 행동에 대한 그 영향을 강조했다. 상품은 그 외관에 의해, 욕망을 깨어나게 하며, 상기를 약속하는 그 이미지에 의해 자신의 힘을 성취시킨다. 욕망되는 대상이 끊임없이 연기되며, 유동적이고 표층적인 채로 머물기에, 욕구는 덧없는 현실 속에서 흔들리는 것이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계열성, 나아가 로크의 "불안〔uneasiness〕", 헤겔의 악무한 같은 유명한 개념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플라톤이 감각적인 것이나 현상의 왕국에 입각해 덧없음을 기술한 것도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상품의 소유는 항상 사라질 운명에 있지만, 그러나 항상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상품은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그림자처럼 상징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을 구성하고, 객관성의 기준을 산출한다. 우리의 신체는 꿈의 상징과 비슷한 것이 되며, 욕망이 무제한으로 투영되는 장이 된다. 이런 욕망의 지연에 출구는 없으며, 외관상 이를 정복할 수도 없다. 그것은 악몽의 특징을 띠며, 다나이데스[다나오스의 딸들]나 시지포스의 신화처럼, 마술적 내지 신화적인 관계의 불명료한 가혹함을 연상시킨다. 즉,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인간의 끝없는, 불가능한 노력의 허무함이 암시되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악몽이란 자신이 원하는 대상이 항상 사라지고 만다, 그때마다 손 안에서 무로 돌아가버린다고 하는 악몽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마르크스의 페티시즘 이론에 남다른 특징을 덧붙인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어떤 시대 전체의 생활양식에 있어서 일반화된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상품은 어떤 시대의 꿈이나 집단적 무의식에 바로 유혹을 거는 것이다. 장-미셸 팔미에는 벤야민의 사후 출판에 관한 연구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관계를 둘러싼 분석을 순수하게 경제학적인 것에 머물게 했으나, 벤야민은 페티시즘적 대상과 산보하는 관찰자의 복잡한 관계를 둘러싼 진정한 현상학을 묘사해냈다. 후자에게 상품은 사회 전체의 상징이나 소우주를 이루는 것이다."[각주:22] 이것은 『파사주론』의 서두인 「파리 : 19세기의 수도」라는 유명한 도입부분에서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다. 

개인은 오락산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기분전환에 잠기지만, 그 내부에서, 그는 밀집한 대중의 한 구성요소이길 계속한다. 이런 종류의 대중은 유원지의 제트코스터나 '회전장치'나 '애벌레'에 올라타,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즐기고 있는데, 그것에 의해, 산업적 혹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기대할 수 있는 전적으로 반동적인 복종에의 훈련을 받는 것이다― 상품의 지고권의 확인과 상품을 에워싼 다양한 기분 전환용 빛, 이것은 그랑빌의 예술의 숨겨진 주제이다. 그의 유토피아적 요소와 시니컬한 요소 사이의 불균형은 여기에서 생긴다. 생명 없는 물체의 묘사에 있어서의 그의 교묘한 기교는, 마르크스가 상품의 '신학적 변덕'이라고 부른 것에 대응한다.[각주:23]

 『파사주론』에서는 상품의 페티시즘적 성격을 꿈의 집단(Traumkollektiv)의 관념과 결부시킨다. 이런 연관은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구조가 아니라, 거꾸로, 19세기를 둘러싸고, 잠과 깨어남의 대칭 개념에 의해 정치의 기능을 상기의 역사서술의 내깃돈으로 하는 작업의 중핵을 차지한다. 물론 어떤 역사적 시대의 물질이나 도시의 현상에 있어서 꿈과 환상의 특징을 파악한 것은 벤야민뿐이 아니며, 그가 처음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1983년에 레모 보데이[각주:24]는 벤야민의 『파사주론』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분석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서의 '물질적 의미론'을 논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루이 아라공의 『파리의 농민』 ― 벤야민이 찬양한 작품 ― 도 다시 주목해야 할 텍스트이다. 특히 오페라좌의 파사주」라는 제목의 텍스트에서, 아라공은 부동산 투기에 의해 소멸하고 있던 19세기의 파사주의 분석에 전념하고, 자본주의의 판타슴적 구조에 의해 산출된 그 시대착오적 모양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벤야민에 있어서, 이 모든 것은 정치적인 의미 ― 현재시에의 결정적인 방향 설정 ― 를 부여받고 응축되어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런 현재시에의 방향 설정은 잠에서 깨어남[각성]의 관념과 떼어낼 수 없다(벤야민에게 있어서 잠에서 깨어남[각성]은 꿈의 집단의 범주에 부수한다). 『파사주론』의 몇 가지 단편을 더 인용하자. 

19세기의 집단적 꿈의 현상형식은 무시할 수는 없으며, 또한 그런 현상인식은 과거의 그 어떤 세기를 특징짓는 것보다도 훨씬 결정적으로 19세기를 특징짓고 있다. ―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으며, 그런 현상형식들은, 올바르게 해석된다면, 매우 실천적으로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항해하려고 하는 바다와, 우리가 떠나간 해변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마디로 말하면, 19세기의 '비판'은 이 현상형식에서 시작해야 한다.[각주:25][K1a, 6]

〔…〕 내가 아래에서 제시하려는 것은 깨어남의 기법에 대한 시론이다. 즉, 추모적인 상기의 변증법적 전환 혹은 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인식하려고 하는 시도이다.[각주:26][K1, 1]

역사를 보는 데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이런 것이다. 즉, 지금까지 "일찍이 있었던 것"은 고정점으로 간주되고, 현재는, 더듬어가면서 인식을 이 고정점을 이끌려고 노력한다고 겨져졌지만, 이제 이 관계는 역전되고, 일찍이 있었던 것이야말로 변증법적 전환의 장소가 되며, 깨어난 의식이 갑자기 출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로부터는 정치가 역사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여러 가지 사실이란, 바로 지금 우리에게 닥쳐온 것이 되며, 그리고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상기의 작업이다. 실제로 깨어남은 이런 상기의 모범적인 경우, 즉 우리가 가장 가까운 것, 가장 평범한 것, 가장 자명한 것을 상기하는 것에 성공하는 경우이다. 프루스트가 깨어난 상태에서 가구를 실험적으로 재배치한다는 얘기에 의해 말하려고 한 것, 블로흐가 태어난 순간의 어두움이라는 표현으로 간파했던 것이, 여기에서, 역사적인 것의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확정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찍이 있었던 것에 대한 아직은 의식되지 않은 지식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런 지식의 발굴은 깨어남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각주:27][K1, 2]

 이런 세 가지 단편에 의해 역사인식의 조감도의 핵심에 벤야민의 방법을 뒷받침하는 개념들의 경첩이 놓인다. 그것은 곧 꿈의 집단(Traumkollektiv), 19세기의 비판, 깨어남(Erwachen), 추모적 상기(Erinnerung, Eingedenken), 과거(Gewesene), 현재(Gegenwart), 지금(Jetzt),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등의 개념이다. 

 우선 벤야민에 있어서, 꿈의 집단이란 대중심리가 물상화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의 생리학"에 관한 19세기의 실증주의적, 자연주의적인 방법보다도, 오히려 초현실주의적,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가깝다. 마리오 페첼라가 지적하듯이,[각주:28] 벤야민에게서의 집단적 무의식의 관념에 있어서 '변증법이 첫 번째 계기를, 깨어남이 두 번째 계기를 이룬다. 즉, 깨어남이란, 타자성을 띤 꿈으로 우리의 의식을 열고, 이해와 해석을 위한 순간이다." 이리하여 꿈의 집단은 현실 그 자체와 동일한 심리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적・역사적인 생활양식의 물질적 표현을 해석함으로써 역사가가 벗겨내는 상징적인 형식이나 상징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벤야민은 융과는 달리, 이런 상징적인 형식들을 역사적 변화로부터 떼어내지 않고,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그의 모델이 된다. 즉 역사가의 사명은 집단에 관계하면서도, 개인의 분석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사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페첼라가 더 논하듯이, "특정한 문화에 있어서 작용하는 신화적 요소란 변증법적 사고가 독해해야 하는 꿈의 상징이다. 이런 비평 활동의 절박을, 자아와 무의식 사이의 통합의 결여로부터 신경증이 생길 경우에서의 개인의 분석의 절박과 비교할 수 있다. 프로이트 자신, 문명의 집단적 병을 고찰할 필요를 느꼈다. 이러한 요구에 무관심한 논리는, 현대의 대중의 격정 속에서 해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각주:29]

 그런데 벤야민은 "코페르니쿠스적 전개"라는 표현 속에서, 꿈과 깨어남의 관계 ― 이것이 역사기술의 작업에 정치적 차원을 부여한다 ― 를 둘러싼 모든 의미를 응축시킨다. 역사기술에 있어서 <일찍이 있었던 것(Gewesene)>은 역사가가 접근하고 관계해야 하는 고정점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벤야민에게 있어서는, <일찍이 있었던 것>은 해석의 변증법에 의한 추모적 상기(Eingedenken)의 작동을 통해 위치를 바꾸고, 섬광처럼 현재시에 충격을 주고, 순간이나 지금(Jetzt)을 비연속적인 것으로 한다. 이리하여 『파사주론』의 작업은 비의지적 기억이나 연상의 작동을 결합한 프루스트적 상기를 연상시킨다. 억압되어 잠든 과거의 의식의 흐름을 그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일종의 유물론적 기호론은 깨어남을 초래하고, 시대의 물상화나 다음 시대로 계승되는 그 정치적 공허함의 허를 찌른다. 

 이렇게 논한 단계에서, 벤야민의 역사기술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나 아포리아가 생긴다. 우선 첫째로, 몇몇 비평가가 시사하듯이,[각주:30] 벤야민은 각성 개념을 통해서, 역사의 주체라는 역사적 범주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 깨어 있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깨어 있어야 하는 걸까? 누구를 통해 예기치 않은 깨어남이 생기는 것일까? 자신의 시대에 명석한 의식을 향하는 벤야민의 역사가를,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올빼미]에 포개보고 싶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벤야민은 몰래 역사주의를 다시 도입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자신, 근대성의 마약적인 잠을 초래하는 요인으로서 역사주의를 명백하게 비방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역사의 개념에 대해서」에서 부정되었던 진보 관념이 부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자본주의의 페티시즘의 형식들 속에서 과거가 마비하고 잠들어 있으며, 그에 반해 현재시가 깨어 있다고 하는 진보적인 구도가 도입되는 게 아닐까? 벤야민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해, 각성한 집단(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말하는 계급의식)이라는 전위적이고 본질적인 관념을, 게다가 각성한 민족이라는 개념(예를 들어 전체주의적 관념)을 재도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나치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굴욕과 자유주의의 해악에 맞서서 "독일이여, 깨어나라"고 호소했다. 결국 벤야민은 빛이나 진리에 접근하는 특권적인 철학자-대화자라는 플라톤적 인물상을 부활시킬 우려가 없을까? 그것은 곧, 동물의 마력으로부터 처음으로 해방되고, 감각적 세계의 현상들 속에서 졸고 있는 집단을 깨우는 인물의 복권이다. 

 이런 의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집약된다. 벤야민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범주들을 채용하여 집단을 독해하면서도 후자가 우려하는 지평에 서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즉, 천계설이나 엘리트적인 전위주의 ― 이것이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에서의 "위인"의 이론을 가능케 한 것이다 ― 와 접근함으로써, 분석 치료의 전체주의적 관념이 생긴다는 우려이다. 그것은 대중에 선행하는 역사의식이 정념에 사로잡혀서 과거의 낡은 형식을 오로지 파괴하는 것에 대한 우려이다. 이런 물음은 이리하여 깨어남의 종말론적・신학적 관념을 경유하여, 주술사나 세기말의 지도자 같은 카리스마적 재능으로 귀착하는 모종의 신학정치와도 닮아 있다. 벤야민의 정치적 사상이 물리칠 권위적인 온정주의와 관계하는 것이다. 


Ⅳ. 정신분석과 각성의 세속적 구조 

 우리는 정신분석의 모델을 바탕으로, 이런 아포리아로부터 『파사주론』을 구출해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는 정치적 역사기술에 입각해 그 의의를 다시 방향지을 수 있다. 깨어남에 대해서는 두 개의 모델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본질화된 집단 개념과 결합된 깨어남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의지적 기억이라는 프루스트적 기법과 결합된 깨어남이 있다. 그것은 꿈의 기억을 둘러싼 정신분석의 작업에 가깝다. 후자의 모델에 따르면, 깨어남은 시대에 앞선 의식의 도입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해석 기법에 의해 성취되어야 할 상기의 결과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파사주론』은 식견 있는 집단이 필연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현재의 조건이나 생활양식이 과거에서 유래하는 꿈이나 무의식의 구조에 얽매여 있는 것에 대한 비판 작업의 관점을 연 것이다. 정신분석이 드러내듯이, 각성의 진정한 경험이란 유물론적 역사가가 예기하고 기술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것은 어떤 시대가 스스로에 대한 정치적 작업 ― 이것은 데리다의 "꿈을 유심히 지켜본다"는 실천(각주 13을 참조)과 불가분하다 ― 으로서 이뤄져야 하는 경험이다. 벤야민에 있어서, 유물론적 역사기술은, 시대에 선행하는 "위인"이나 새로운 역사적 영웅에 대한 주의주의적인 호소로 귀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의 신비를 드러내는 아이러니라는 더 겸허한 차원에 위치된다. 이제 한 마디로 말하면, 이런 아이러니에 의해, 우리는 운명의 마력의 허를 찌르고, 과거의 찬스[기회]를 새롭게 부여받을 수 있다. 이런 찬스는 집단이나 선택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벤야민의 메시아적 시간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다. 즉, 메시아주의는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열림 그 자체를 이루는 것이다(여기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밝음〔Lichtung〕'[각주:31]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다시금 인용하면, "아무도 증인 대신 증언하지 않는다"(주1을 참조)는 것이며, 바로 각자가 유물론적 몽타주에 의해, 역사기술의 흐름을 뛰어넘어, 역사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우월 ― 벤야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중핵을 이루는 생각 ― 을 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벤야민의 단장을 두 개 인용한다. 


따라서 한 마디로 말하면, 19세기의 '비판'은 이 현상형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즉, 착수되어야 할 것은 19세기의 기계론이나 동물기계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19세기의 마취적인 역사주의나 그 가장벽(仮装癖)에 대한 비판이다. 누가 뭐래도, 그런 가장벽(仮装癖) 안에야말로, 진정한 역사적 존재의 신호가 숨어 있다. 이 신호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이 신호를 해독하는 것, 이것이 당분간 수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초현실주의가 혁명적・유물론적인 기초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여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진정한 역사적 존재의 신호에 있어서 19세기의 자신의 경제적 기초를 최고도로 표현한다는 것의 충분한 보증이 될 것이다.[각주:32][K1a, 6]

모든 역사적 사건은, 메시아 자신이 도래해야 처음으로 완성된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그 의미하는 바는, 역사적 사건과 메시아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메시아 자신이 처음으로 구제하고 완성하고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자신만의 힘으로, 자신을 메시아적인 것으로 관계시키려고 바랄 수 없다. 따라서 신의 나라는, 역사라는 가능태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신의 나라가 목표로서 설정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신의 나라는 목표가 아니라 종언이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것의 질서는, 신의 나라라는 생각 아래에서 수립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신정정치에는 정치적인 의미는 없으며, 오로지 종교적인 의미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정정치가 가진 정치적 의미를 철저하게 부인한 공적에 있어서는, E.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각주:33]


 깨어남의 기법이 가져올 비판적 차원은, 벤야민의 역사적 메시아주의를 매우 특수한 것으로 한다. 즉 메시아주의가 정치적인 것의 신학화가 아니라, 역사를 정치화하는 충돌로서 이해된다. 이 충돌에 의해 시간은 내재적인 진보의 타성에서, 신의 초월성에 의한 신학적 기회주의에서 벗어난다. 



  1. P. Celan, Aschenglorie, in Strette, Mercure de France, 1971, tr. A. Bouchet, pp. 48–51, repris de J. Derrida, Fichus, Paris, Galilée, 2002, p. 51.〔『フィッシュ』逸見龍生訳、白水社、二〇〇三年、六六頁〕 [본문으로]
  2. P. Ricoeur, La mémoire, l’histoire, l’oubli, Paris, Seuil, 2000.〔『記憶・歴史・忘却』久米博訳、新曜社、二〇〇四―〇五年〕. 트라우마와 역사적 이야기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María Inés Mudrovcik, Historia, narración y memoria(Buenos Aires, Paidós, 2007)를 참조. [본문으로]
  3. S. Freud, Psychologie des masses et analyse du moi (Massenpsychologie und Ich analyse, 1921), OEuvres Complètes, vol. XVI, Paris, PUF, 2003〔「集団心理学と自我分析」、『フロイト全集17』須藤訓任他訳、岩波書店、二〇〇六年〕; G. Le Bon, Psychologie des foules, Paris, PUF, 1991.〔『群衆心理』櫻井成夫訳、講談社学術文庫、一九九三年〕 [본문으로]
  4. 이 표현은 프랑수아즈 프루스트의 것이다. "시간은 <두 번> 지나간다. 시간은 한 번은 죽은 이미지, 공허한 시간, 과거의 추억이 된다. ... 하지만 동시에, 시간은 지나감으로써 다른 장소에 새겨진다. ... 이것이 두 번째 시간, 두 번째 과거, 즉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첫 번째 시간의 그림자이다. 우리는 보는 자가 이 그림자를 부각시키고, 재독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Françoise Proust, L’histoire à contretemps. Le temps historique chez Walter Benjamin, Paris, Cerf, 1994, p. 104. [본문으로]
  5. 역사실증주의나 역사주의와 벤야민의 대립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日本語訳は『ベンヤミン・コレクションⅠ』ちくま学芸文庫、一九九五年などに所収〕에서 명백하다. 특히 테제 Ⅵ, ⅩⅥ, ⅩⅦ를 참조. [본문으로]
  6. 「역사의 개념에 대해」의 테제 ⅩⅣ 등을 참조. [본문으로]
  7. 장-미셸 팔미에는 벤야민의 사후 출판에 관한 최근 논고에서 판타스마고리의 내적 변증법을 해명하고 있다. 이 변증법은 상품 물신주의와 황금시대의 유토피아를 함의한다. 이런 이중성은 물신주의 현상에 대한 순수하게 맑스적, 혹은 아도르노적 사고방식과는 선을 긋는다. 왜냐하면 후자는 물신화된 상품에 있어서의 의식의 소외밖에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cf. J.-M. Palmier, Walter Benjamin. Le chifonnier, l’Ange et le Petit Bossu, Paris, Klincksieck, 2006, p. 447f. [본문으로]
  8. 「역사의 개념에 대해」의 테제 Ⅰ에 묘사된 유명한 자동인형의 알레고리를 참조. 일반적으로 이 테제는 맑스주의의 신학적 요소를 지적한 대목으로 간주됐다. 그렇다고 한다면, 속류 맑스주의와는 다른 맑스주의를 벤야민은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메시아를 기다리는 목적론적 신학과, 역사의 연속을 현재시에 있어서 단절시키는 메시아주의가 있다. 자동인형의 알레고리에 있어서, 난쟁이[小人]는 거짓 자동인형이 모든 승부에서 이기도록 했지만, 이것은 이중의 해석을 띤다. 한편으로 그것은 벤야민이 격투한 역사적 기계론의 경향이다. 이 경우, 신학적 요소는 속류 역사주의나 진보주의 같은 목적론적 성격을 두르고, 현재시의 행동을 무디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메시아적 시간이며, 그 기회chance는 그때마다 꽉 쥐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작용하는 것은 모든 점진적인 기대를 경시하는 비속류적 유물론이다. 점진적 혁명에 의한 천년왕국의 테제와 마찬가지로, 속류 맑스주의는 어떤 패배도 피하고, 완전무결하게 되지만, 자동인형장치는 이런 협잡의 메커니즘의 뒤통수를 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자동인형의 알레고리는 현대의 사이버네틱스 장치에 의해 반전되는 게 아닐까? 살아 있는 인간의 배후에 지능 로봇이 숨어 있고, 목적론적 신학의 역할을 맡는다고 하는 사태를 상상해보자. 숨겨진 지능 로봇이 인간 대신 게임을 하고, 모든 승부에서 이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이 자신의 게임을 할 여지가 없어진다. ... 역사의 맑스주의 내지 목적론적 신학은 현재시를 무디게 하고, 끝없는 가상성에 우리를 내맡긴다. 이런 가상성은 사실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고, 승부에 한 번도 패하지 않고, 하지만 그 때문에, 역사의 행위자는 자신의 게임을 전혀 수행하지 않는다. 분명히 벤야민은 역사에 관한 텍스트에서, 이런 자동인형의 반전을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사주론』 서두에서는 미슐레의 "어떤 시대에도 그것에 이어진 시대를 꿈꾼다"는 문구가 인용되고 있는데, 그 의미를 깊게 이해하면, 이것은 충분히 시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자동인형은 현대의 틀림없는 자동인형을 예견한 판타스마고리적인 일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현대의 자동인형은 인간이나 행동, 정치에 있어서 더욱 가혹하고, 어찌할 수 없이 무적이다. [본문으로]
  9. 이리하여 자본주의는 꿈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는, 그것과 더불어 꿈에 가득 찬 새로운 잠이 유럽을 습격하는 하나의 자연현상이며, 그 잠 속에서 신화적인 힘들의 재활성화를 수반하는 것이었다"[K1a,8] Paris Capitale du XIX siècle. Le livre des Passages, Paris, Cerf, 2006, p. 408.〔『パサージュ論』今村仁司他訳、岩波現代文庫、二〇〇三年、第三巻、一二頁. 이하 Le livre des Passages는 P-W의 약칭으로 표기한다. 일본어 번역본은 岩波現代文庫版의 권수와 쪽수를 나타낸다.〕 [본문으로]
  10. 벤야민의 텍스트에 있어서의 몽타주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F. Naishtat, « La historiografía antiépica de W. Benjamin. La crítica de la narración en las Tesis « Sobre el concepto de historia » y su relación con los dispositivos heurísticos del Passagen-Werk », Actas del II Congreso Internacional de Filosofía de la Historia, Buenos Aires, 2008. [본문으로]
  11. 흥미롭게도 벤야민에게서 혁명은 목적의 왕국의 도래를 앞당기는, 역사라는 증기기관차에 대한 급속한 접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런 증기기관차의 급브레이크이며, 시간을 중지시키고, 위기의 발생을 먹어치운다. 정의를 위한 혁명의 진정한 개입은 천상의 왕국의 약속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게 아니라, 솔직한 '아니오'의 힘, 즉 거절이나 항의를 내뱉는 폭력을 동반한다. 급브레이크로서의 혁명에 대해서는 W. Benjamin, Paralipomena, Gesammelte Schcriften, 1–3, 1228–1252, Berlin, ed. Rolf Tiedemann, Suhrkamp를 참조. [본문으로]
  12. J . Derrida, Fichus, op. cit., pp. 20–21.〔『フィッシュ』前掲、二三頁〕 [본문으로]
  13. P-W., p. 493 [N10, 3].〔第三巻、二一七頁〕 [본문으로]
  14. 칸트에게서의 이성의 역사를 뒤집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현대성과,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의 점진적 혁명의 가상성의 대립에 관해서는 다음의 졸고를 참조. F. Naishtat, « Revolution, discontinuity and progress in Kant. Copernican revolution and Asymptotic revolution in critical philosophy », Proceedings of the Xth Kant International Congress, Berlín, Walter de Gruyter, 2008. [본문으로]
  15. 특히Rita Bischof et Elizabeth Lenk, « L’imbrication surréelle du rêve et de l’histoire dans les Passages de Benjamin », in H. Wismann compilateur, Walter Benjamin et Paris, Paris, Cerf, 1986, pp. 179-200. [본문으로]
  16. 이 점에 관해서는 F. Naishtat, « La historiografía antiépica de W. Benjamin. La crítica de la narración en las Tesis « Sobre el concepto de historia » y su relación con los dispositivos heurísticos del Passagen-Werk », op. cit. [본문으로]
  17. 『파사주론』의 K 및 N을 참조. [본문으로]
  18. P-W, p. 408.〔第三巻、一二頁〕 [본문으로]
  19. Ibid., p. 406.〔第三巻、七頁〕 [본문으로]
  20. Ibid., p. 408.〔第三巻、一二頁〕 [본문으로]
  21. P-W, Paris, Capitale du XIX siècle, Exposé de 1939, Introduction, op. cit., p. 47.〔第一巻、三五頁〕 [본문으로]
  22. J.-M Palmier, op. cit. p. 458. [본문으로]
  23. P-W, Paris, Capitale du XIX siècle, Exposé de 1939, section B. « Grandville ou les expositions universelles », op. cit. p. 51.〔第一巻、四四頁〕 [본문으로]
  24. Cf. Remo Bodei, « L’expérience et les formes. Le Paris de Walter Benjamin et de Siegfried Kracauer », in H Wisman, op. cit. pp. 33–48. [본문으로]
  25. P-W, p. 408.〔第三巻、一一頁〕 [본문으로]
  26. Ibid., p.405.〔第三巻、五頁〕 [본문으로]
  27. Ibid., pp. 405-406.〔第三巻、六頁〕 [본문으로]
  28. Mario Pezzella, « Image mythique et image dialectique. Remarques sur le Passagen-Werk », H. Wisman, op. cit., pp. 517–428. [본문으로]
  29. Ibid. [본문으로]
  30. Cf. notamment Rita Bischof et Elisabeth Lenk, op. cit. [본문으로]
  31. Martin Heidegger, « La fin de la Philosophie et le tournant », in Questions IV, Paris, Gallimard, 2005, p. 295. [본문으로]
  32. P-W., p. 408.〔第三巻、11-12頁〕 [본문으로]
  33. Theologisch-politisches Fragment, GS II, 1, 203, en W. Benjmin, La dialéctica en suspenso, Santiago de Chile, Arcis, 1995, pp. 181–183.〔「神学的・政治的断章」、『来たるべき哲学のプログラム』道籏泰三訳、晶文社、一九九二年、三六〇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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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 빈곤’이라는 포퓰리즘의 토양

― ‘의식의 시장화’로부터 벗어나기

베르나르 스티글러(Bemard Stiegler)

1952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 연구개발 디렉터. 콩피엔느 대학의 지식․조직․기술시스템 연구부 부장 및 교수, 국립 시청각 연구소 부소장, 음향/음악 연구 소장을 역임하고 있음. ‘자본주의의 변혁’을 목표로 한 운동단체인 Ars Industrialis를 주관하고 있다.

― ‘상징적 빈곤’ 개념을 설명해 주십시오.  
‘상징적 빈곤’을 저는 기술철학의 관점에서, ‘생산에서의 빈곤’과의 대비에서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겪은 자본주의에는 두 가지 큰 결과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했습니다. 기술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미 자신의 ‘제작 지식’에 의해 생산을 하지 않고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산과 관련된 지식이 기계로 옮겨가 버렸습니다. 생산자의 신체적 행동은 기계의 자동운동으로 변형되었고 그리하여 개별 생산자의 ‘제작 지식’은 빼앗기게 됩니다.
맑스가 프롤레타리아화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것으로, 내가 자주 참조하는 기술철학자인 시몽동이 ‘비개체화 과정’이라고 불렀던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생산에 있어서의 빈곤’입니다. 두 번째 귀결로서, 19세기의 말이 되자 자본주의는 기계화 때문에 생산성이 확대되었고, 맑스가 ‘이윤율 저하’라는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사회가 생산물을 모두 다 소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맑스가 이미 1865년부터 1870년 무렵에 예고했듯이,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졌고, 그것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자본주의의 제1기의 특징입니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미국형 자본주의, 문화산업, 마케팅
그런데 20세기에는 자본주의의 중심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로 이동합니다. 20세기 초반, 미국형 자본주의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포드주의의 등장입니다. 생산자란 동시에 소비자이며,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이 소비자로서의 생산자의 수입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소비자가 됩니다. 유명한 포드의 T형 자동차는, 바로 이것을 생산한 노동자를 겨냥한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으로, 유럽형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형 자본주의의 혁명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20세기의 미국형 자본주의는 목표로 했던 생산성의 향상과는 다른 과제에 임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보증하는 것은 시장의 확대이기에 미국형 자본주의는 광대한 시장의 획득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국내 시장을, 이어서 세계시장을, 20세기 초반 이래 미국형 자본주의는 세계 규모의 시장 확대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제국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 연동된, 두 번째의 아주 중요한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영화의 등장이자, 미국형 ‘문화산업’의 탄생입니다. 1905년부터 1907년에, 미국 영화는 산업 모델에 근거하여 발달을 시작하게 되었고 1912년에는 영화의 전략적 중요성이 정치에서 이미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영화로 이익을 올리는 것과도 관련됩니다만, 특히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마음이 대중 소비에 의해 조건지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영화산업의 발달을 통해 1930년대에는 ‘미국적 생활방식’이라 불리게 된 행동양식이 미국 내부와 세계적 규모로 촉진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이 점이 극히 중요한 것은, 이것이 포드주의를 보완했기 때문입니다. 포드가 T형을 생산함으로써 목표로 했던 광대한 시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산업 제품을 사람들이 차지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양식을 동시에 발달시켜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산업 제품을 스스로 발전시켜 채택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건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조건 부여의 주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영화의 영상입니다.
영화는 문학, 음악 등의 전통적인 상징표현보다 훨씬 큰 모방 환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코드라는 음악적 산업제품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였고, 이어서 라디오가,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전후에는 드디어 텔레비전이 등장함으로써 구현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내가 ‘산업적 시간 대상’[그 자체 속에 시간성을 구비한 산업 제품, ‘시간의 패키지 제품’]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한 사회의 통제입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휴대 전화 등에 의해 사람들의 생활의 틈새 시간까지도 이러한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차원은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ernays)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마케팅의 등장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조카인 이 사람은 당시에는 ‘PR(Public Relation)’이라고 불렸고 나중에는 ‘마케팅’으로 불리게 된 것을 발명한 사람입니다만, 그는 1917년 이후 자본주의의 문제란 여론(opinion)을 조작하는 것에 있다고, 미국의 또는 세계의 소비자 개인 및 집단 수준에서의 리비도(무의식의 욕망)를 제어하여 방향을 부여하여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팜애에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판매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욕망, 즉 리비도 에너지를 부모나 연인, 종교나 정치라는 이상적인 ‘승화’의 대상으로부터 소비의 대상으로 되돌려 고정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욕망은, 맑스의 말을 빌리자면(원래 맑스와는 다른 의미입니다만), 상품의 물신주의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프로이트는 주식시장에서 배운 원리를 “무의식의 욕망 에너지(리비도 에너지)”의 작동으로 진단하고 ‘리비도 경제’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수립했다.]

‘상징적 빈곤’ ―‘삶의 지혜’의 상실
이러한 과정은 미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만,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텔레비전의 보급에 의해 급속히 발전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의 텔레비전 보급률은 1950년에는 0.1%였으나 1960년에는 13%, 1970년에는 70%, 그리고 현재에는 98%에 이르렀습니다. 즉 50년 사이에 모든 개인이 텔레비전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또 평균 시청 시간도 3시간 반에 이르러, 일하고 출퇴근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빈곤’이라고 제가 부른 사태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시간’을 텔레비전과 같은 문화 산업이 유통시킨 ‘산업적 시간 대상’을 통해 구성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레코드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상상하거나 추억을 마음 속에서 떠올리거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낳기도 하는 ‘삶의 에너지’, 즉 프로이트의 용어로 하면 ‘리비도’가 문화산업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리비도를 고유한 ‘욕망’으로서 표현하고 구성해 나가기 위한 상징적 자원을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적 빈곤’의 진행입니다.
19세기의 산업자본주의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화가 생산수단의 기계화에 의해 ‘생산자’에게서 ‘제작 지식’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것에 비해, 20세기의 소비자본주의에서의 전반적인 프롤레타리아화는 소비자에게서 ‘삶의 지혜’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파악하고 행동을 표준화함으로써 20세기의 소비자는 ‘삶의 지혜’를 잃는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있어서의 ‘삶의 지혜’는 이제 자신의 삶의 현장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리 결정된 매뉴얼이나 취해야 할 행동을 미리 정한 마케팅에 의해 결정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하며,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개인 및 집단 차원에서의 상징적 괴로움, ‘살기 힘들다’는 것을 산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괴로움이야말로 여러 가지 사건이나 흉측한 사건으로 나타나는 ‘결행(acting out)’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에는 ‘살아 있다’는 존재 감각의 상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나 네트워크도 덧붙여야 합니다만) 텔레비전을 필두로 한 문화산업이 보급한 문화 콘텐츠에 의한 대중의 리비도 포착은 궁극적으로 리비도 자체의 파괴로까지 나아갑니다. 리비도를 포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그것을 위해서 기능해야만 하는 것이 오히려 리비도를 파괴해 버립니다. 이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리비도의 담지자가 개체로서의 단독성을 가진 개인이며, 자신의 유일한 존재로서의 단독성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만을 ‘욕망의 대상’으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체의 단독성에 의거한 욕망의 투영 구조는 프로이트가 ‘원-나르시시즘’(원-자기애)라고 부르고, 또 라캉이 ‘거울상 단계’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 개체는 문화산업이 유통시키는 이미지를 손에 넣어 내면화합니다만, 내면화된 이미지는 더욱 더 표준화되며, 개인의 과거는 모든 사람에게서 같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한 사람의 개인에게는 고유의 ‘과거’ 따위란 이미 없으며, 산업적인 ‘한철’(즉 유행)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개인의 단독성의 의지처는 그의 개인으로서의 경험에 있습니다만, ‘개인이다’는 것은 근처에 있는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포드주의에서 보여졌듯이, 생산의 경우 개인은 노동에서는 완전히 과학적인 조직화와 관리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표준화된 작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에 있어서도 문화산업이 유통시킨 ‘산업적 시간 대상’을 통해 통제를 받고 표준화된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개인적 경험을 갖는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조르조 아감벤이 ‘경험의 상실’이라고 부른 사태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문화산업에 의한 ‘과거 파악’[‘산업적 시간 대상’에 의해서 ‘시간’을 산출하여, 공통의 ‘과거’를 사람들의 의식에 의해서 구성하는 것], 즉 ‘기억의 통제’입니다.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휴대 전화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장치의 보급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상시적으로 통제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질 들뢰즈가 ‘통제 사회’라고 부른 사태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화산업에 의해서 리비도가 포착되고, 상징적 빈곤이 진행됨에 따라서 리비도 자체가 붕괴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리비도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단독적인 욕망의 대상이 주어질 때에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비도가 요구하는 대상의 단독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리비도 자체가 단 하나 밖에 없는 개인의 단독성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또한 타자를 욕망할 수 있는 것도 이 개인의 과거의 단독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이 표준화된 것을 소비하기 시작하고 표준화된 과거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단독성을 잃게 되면 이것과 동시에 대상의 단독성에 대한 감성도 잃어버립니다. 리비도가 리비도인 것은 둘 도 없는 단독성을 요구하는 한에서이기 때문에, 이리하여 리비도 자체가 파괴됩니다. 그리하여 제가 ‘리비도 에너지의 체감[감소]’이라고 부른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만, 이것은 자본주의의 두 번째 위기에 다름 아닙니다.

산업 포퓰리즘이 산출한 정치 포퓰리즘
저는 근래 프랑스에서 특이한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행동에 관심을 쏟아 왔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극단적이거나 원리주의적이거나 일본의 옴 진리교에서 보았듯이 종교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나 흉측한 행동 하에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하는, 존재 감각의 상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마케팅의 표적이 되면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실감의 상실 때문에 자신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존재의 증명을 위해서 흉측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이번에는 여론이 패닉상태에 빠지며, 이것이 사회의 퇴행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정치의 수준에서는 ‘질서’나 ‘권위’ 등이 소리 높이 요구되며, 결국 ‘정치 포퓰리즘’의 기초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치 포퓰리즘’ 자체가 ‘산업 포퓰리즘’에 의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현상을 낳는 것은 ‘산업 포퓰리즘’으로서의 마케팅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삶의 단독성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의 의식의 시간은 산업 포퓰리즘에 의해 장악되게 됩니다. 리비도가 자꾸 파괴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제 ‘욕망’이 아니라 ‘충동’에 호소하게 됩니다.
실제로 15년 정도 전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헐리우드 영화는 정의, 이상, 영웅 같은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표현이나 폭력, 게다가 리얼리티 쇼와 같은 모방 행동을 야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직접적인 ‘충동’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정치에서는 죽음의 충동이든 파괴 충동이든, 어쨌든 충동에 호소하는 극우세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산업 포퓰리즘과 정치 포퓰리즘은 똑같은 마케팅 논리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가들의 행동은 점점 더 문화산업의 마케팅과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미디어 정치가들이 태어나는 메커니즘

― 사르코지, 베를루스코니, 고이즈미 같은 정치적 인물이 미디어화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르코지는 기묘할 정도로 고이즈미와 닮아 있으며, 이것은 부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르코지는 부시처럼 연설이나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과정이 일반화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심리적 구조가 어디서든 같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 말한, 산업 포퓰리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또 테크놀로지 환경도 같습니다. 텔레비전, 휴대전화, 컴퓨터를 통해 미디어가 리비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정신의 산업 에콜로지’라고 제가 부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디에서든 동일한 정치적 오작동(malfunction), 정치 포퓰리즘이 산출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리비도의 문제가 지구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유럽이든 미국, 아시아든 선진 산업 국가들의 공통의 문제이며, 똑같은 메커니즘이 똑같은 결과를 무서운 형태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오모테산도의 거리를 걸으면 막스 마라의 부띠끄를 볼 수 있습니다. 막스 마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브랜드를 개입시켜서 리비도의 집단적 개별화를 행합니다. 리비도의 개별화는 이미 국가, 문명, 종교라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적 논리를 개입시켜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각 지역에 특유한 언어, 이념이라는 승화의 대상을 통해서 개별화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더불어 지구화된 브랜드, 제품의 논리에 의한 사람들의 동일화, 개체화입니다. 작금의 자본주의는 영토화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완전히 탈영토화된 자본주의입니다. 이 자본의 탈영토화가 지역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정치가는 자본주의의 탈영토화 논리와 영토적인 지역적 현실 사이의 조정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라는 정치 포퓰리즘의 의미입니다.

― 지난해 프랑스에서 일어난 폭동을 어떻게 봅니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겠죠. 말하자면 프랑스에서 ‘바보 바보’라는 것이 소리 높여 외쳐졌기 때문입니다. 이 폭발은 미디어가 전하는 영상에 의해서, 마치 프랑스가 완전한 혁명상태에 들어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만, 불에 탄 자동차는 1대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상징적 빈곤, 정신적 빈곤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단순히 이슬람계 이민자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의 프랑스인도 살고 있는 지극히 빈곤한 외곽에서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그저 텔레비전뿐입니다. 즉 텔레비전이 사회와 맺는 유일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은 사회관계를 파괴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주하는 단지의 구조는 너무도 심각해서 사람이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 것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로, 소비하는 것 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비자가 되는 것뿐인데, 소비하기 위한 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의 모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소비하는 것 외에는 살아 있다는 존재를 실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도둑질을 함으로써만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처지에 빠져듭니다. 존재상실을 모순 속에서 강렬하게 체험하고, 그들 자신의 분명히 말하듯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도둑질을 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지난 해 말 라디오에서는 파리의 감옥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말했습니다만, 이번 폭동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소년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다루어지고 사회에서 일정하게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고, 정치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불을 붙이는 자신들의 모습을 휴대 전화로 촬영해서 영상을 방송국에 팔았습니다.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행동입니다만, 정치적인 수준에서 리얼리티 쇼를 재현해 보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상징적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 소비사회에 편입되어 단독성을 잃게 되는 상황에 우리들은 어떻게 대결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어떻게 하면 ‘상징적 빈곤’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가 ‘상징적 빈곤’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 말하자면 이대로는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저는 몇 명의 철학자, 지식인, 그리고 산업가들과 함께 ≪Ars Industrialis≫(산업의 방법)이라는 국제적인 운동 조직을 세웠습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결이 될 새로운 산업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포드가 이윤율의 체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던 것처럼,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리비도의 체감’에 대해 새로운 산업모델을 발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식인, 예술가의 역할이란 오늘날에서는 ‘정신의 테크놀로지’로 된 테크놀로지의 문제에 골몰함으로서, 테크놀로지가 새로운 사회화 모델을 자본주의에 대해 제안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산업모델은 ‘소비’와 ‘생산’의 대립이 아니라 지식 테크놀로지, 정신의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개체화 과정에 의거한 것이 될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휴대 전화 등의 기술은 현재 상태로서는 개인의 개성을 잃게 하는 과정을 낳고 있습니다만, 완전히 새로운 개인의 개별화를 산출할 수도 있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마케팅에 의한 사회적 조직화를 의문에 부치고,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입니다. 원래 마케팅 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대로는 소비자는 막스 마라에 코트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러 가게 되겠지요. 자본주의는 소비자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프랑스에서는 반소비 운동이 있습니다만, 반소비 운동이 공격하는 것은 부띠끄가 아니라 광고입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대중운동으로, 지하철에 있는 광고를 폐기하자는 인터넷에서의 요청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광고 공간을 판매함으로써 수입을 얻고 있는 파리지하철공사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또 SUV 자동차에 대한 습격이라는 현상도 있습니다. SUV의 타이어를 펑크내는 것입니다만, 이것도 결국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차의 소유자가 엽총을 꺼내게 되는 폭력이 일어나겠지요. 또는 ‘반소비 운동’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소비를 바라지 않는 소비자들의 운동인 것이죠.
물론 소비를 안할 수는 없습니다만, 소비가 마음을 괴롭게 하고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에 소비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에 의한 운동입니다. 소비는 헤로인 중독과 같아서 괴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소비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마케팅 회사는 재작년에, 이대로라면 프랑스가 소비의 붕괴에 휩쓸려 버릴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비의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소비와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욕망, 문화산업, 개인

베르나르 스티글러
http://www.monde-diplomatique.fr/2004/06/STIEGLER/11261

수십 년 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우화가 있다. 적지 않은 정치사상이나 철학이 그러한 환상의 포로가 되어 왔다. 이 우화에 따르면 1968년을 거쳐서 시대는 ‘여유로운 사회’나 ‘톨레랑스의 사회’, ‘유연한 구조의 사회’ 등, 이른바 여가 사회,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했다고 한다. 탈산업사회론으로 불리는, 이 우화의 이론으로부터 ‘포스트모던’ 철학은 큰 영향을 받았다. 그것이 이 철학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시민사회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이 우화를 믿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사회로부터 중간계급의 사회로 시대가 이행했다고 주창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통계를 보면 프롤레타리아트 숫자는 더욱 많다. 임금노동자의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화하고 있는 현상에서 보면, (직장의 기계화에 따른 결과, 자발성을 발휘할 기회도, 전문직으로서의 지식도 지금 빼앗기고 있다) 오히려 전체적인 숫자는 증가했다. 중간계급도 빈곤화되고 있다. 사전에 따르면 여가, 즉 ‘레저’란 질곡으로부터의 자유, ‘절대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전상의 의미에서 여가가 발달했는지 여부는 극히 의심스럽다.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이 증가하기는커녕, 반대로 더욱 더 시간의 관리와 하이퍼 매스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는 자발적 예속의 새로운 형식을 낳았다. 문화산업과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이 여가의 상업화와 조직화를 추동한 결과, 일찍이 철학자 질 들뢰즈가 말했던 ‘통제사회’가 완성되었다. 통제사회가 확대됨에 따라 문화․서비스 자본주의가 급격히 성장하여 라이프스타일의 세부사항을 만들어내고, 일상생활을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장으로 바꾸었다. ‘마케팅 지향’을 통한 인간의 평준화 역시 진행되었다. 경제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개인의 삶의 시간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삶의 가치’는 이러한 움직임의 전형일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본질은 특이화와 개체화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들뢰즈가 혜안을 가지고 간파했듯이, ‘마케팅’이란 ‘사회의 통제를 위한 도구’[질 들뢰즈, ≪대담≫(Pourparlers), Editions de Minuit, Paris, 2003]이며, ‘탈산업’ 사회라고 칭하는 사회의 실태는 하이퍼산업사회이다.[≪상징직 빈곤에 관하여 1―하이퍼 산업시대≫(De la misère symbolique.1―L’époque hyperindustrielle), Galilée, Paris, 2004를 참조.] 개인주의가 우선시되었기보다는 오히려 개체는 무리를 이뤄 행동하고, 개체화의 기회는 완전히 소멸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이 개체화의 상실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것은 기계의 지배 하에 있는 19세기의 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노동자는 우선 직능을, 그 다음으로 인격을 상실하고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갔다. 이제는 소비자의 행동이 욕망을 포맷하고 개선하여 평준화할 차례이다. 현대의 인간은 살아갈 힘, 다양한 삶을 살 가능성을 잃고 있다. 규격이라는 사고방식이 그 대신 나타났다. 하지만 규격이란 시인인 말라르메가 잡지 ≪최신유행≫에서 논했듯이, 유행에 대한 끝없는 눈짓에 다름 아니다. 현대의 규격은 마케팅 기술이 ‘합리적’으로 촉진하고 있다. 외식산업계를 좌지우지하는 ‘매뉴얼’과 아주 비슷하다. 계약의 파기나 소송을 살짝살짝 언급하면서 프랜차이즈 체인점 산하의 소매사업자들을 굴레에 묶어두는 성스러운 계율과 비슷한 것이다.
‘개체화의 상실’이 ‘삶의 상실’도 의미하고 있다는 것에는 심각한 위험이 들어 있다. 시의회 의원 8명이 희생되었던 낭테르 시의회 총격 사건의 범인인 리샤르 뒤른느는 “한번이라도 살아 있다는 실감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일기에 기록했다.[Le Monde, 10 avril 2002. 또한 「9․11에서 4․21에 걸친 사랑과 자기애, 우애≫(Aimer, s’aimer, nous aimer, du 11 septembre au 21 avril), Galilée, Paris, 2003를 참조.]
1930년,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산업기술이 신에게 어울리는 속성을 인간에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과 닮기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날의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Malaise dans la civilisation), PUF, Paris, 1992.] 이것이야말로 하이퍼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서 인격을 빼앗아 가축떼로 바꾸어 버렸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되지 않은, 요컨대 미래가 없는 가축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비인간적인 가축떼는 광기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1920년에 집필한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에서 프로이트는 집단 광기에 빠지는 군중심리에 대한 분석에 처음으로 임했다.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집단 광기의 배후에 잠복해 있는 죽음의 충동 문제를 채택하여 전체주의나 나치즘, 반유태주의가 유럽에서 발호된 1930년에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을 저술하여 다시 한 번 같은 주제로 돌아갔다.
≪문명 속의 불만≫에서 프로이트는 사진, 레코드, 전화 기술에 관해 논하고 있지만 라디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무솔리니나 스탈린에 이어 히틀러가 빈번히 사용한 영화에 대해서도 한 마디로 거론하지 않았다. “상업은 영화의 뒤를 쫓는다”[장-미셀 프로동(Jean-Michel Frodon), ≪국민적 기획―영화와 국민≫(La Projection nationale. Cinéma et nation), Odile Jacob, Paris, 1998.]고 미국 상원의원이 발언한 것이 1912년이니까 기묘하다고 하면 역시 기묘하다. 나치가 첫 텔레비전 공개방송을 단행한 것은 1935년 4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텔레비전의 발명을 예상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프로이트와 똑같은 시기에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은 전체주의 권력이 어떻게 미디어를 장악하는가라는 문제를 ‘대중의 나르시시즘’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벤야민도 여명기의 문화산업이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장래 모든 나라에서 ‘기능’에 관해서 어떤 신지평을 열게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
이 점을 이론화한 것은 프로이트의 친조카인 에드워드 버네이즈였다. 리비도 경제와 숙부인 프로이트가 명명한 것을 잘 활용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열 것이라고 버네이즈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의 결실이 PR이라는 설득 기법이었다. 1930년 무렵, 버네이즈는 무의식 이론을 기초로 편집한 PR기법을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사를 위해 현장에 적용했다. 확실히 이때는, 프로이트의 눈에는 문명에 대항한 죽음충동이 유럽에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던 시기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프로이트는 미국에 관해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음과 같은 아주 기묘한 한 구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중의 심리적 빈곤>이라고도 불러야할 상태가 생겨날 위험이 임박했다. 이 위기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도자가 될 인재가 지도자이지 않고 사회의 관계가 오로지 구성원 상호간의 동일시에 의해 생겨날 때이다. 이러한 인재가 지도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필요는 대중이 형성되는 곳에서야말로 특히 클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현재 미국의 문화상태는, 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화의 해로움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대의 미국 문화를 비판하고 싶다는 유혹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미국적 방법을 취하려고 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지그문트 프로이트, 앞의 책]

리비도적․정서적 빈곤
문화산업의 기능을 진정한 의미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사상가인 테오도르 W.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로, 이들은 칼 크라우스가 1910년부터 행했던 미디어 비판보다 깊이 파고 들어가 ‘미국식 방법’을 고발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나는 ≪기술과 시간≫(La Technique et le Temps)의 3권인 ≪영화의 시간과 나쁜 존재의 문제≫(Le temps du cinéma et la question du mal-être), Galilée, 2001의 1장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분석이 어떤 점에서 불충분한가를 지적해 두었다. 칸트 사상의 도식론을 원용하면서 이들은 문화산업이 확실히 칸트주의의 비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아도르노 등이 분명히 한 것은 문화산업이 산업전반과 독립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라이프스타일의 대중화를 통해서 소비행동을 일정하게 방향짓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활동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다수의 신상품을 만들어낸다. 원활한 유통은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확보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과잉생산이나 경제공황의 만성적 위기가 문화산업에서도 생긴다. 시스템 자체를 근저에서부터 살펴보지 않는 한, 위기를 뛰어넘으려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말한 야만 자체를 계속 성장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평화 부흥기에 생산과잉은 전체의 40%에 달한다는 예측을 받아들여 PR이론에 이어 ‘구매동기 조사법’이 과잉생산의 해소를 위해 확립되었다. 당시의 광고 대리점이던 한 회사는 1955년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수요와 욕망을 새롭게 만들어낸 동시에, 오래된 것, 구식으로 된 것에 대해 혐오감을 품게 하는 것”을 북미는 자랑해도 좋다고 말이다. 기호와 혐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혐오감을 잘 키워낼 수 있으며 기호 그 자체도 저절로 바뀐다. 요점은 얼마나 “밑의 정서”에 호소력을 갖고 있는가이다. 특히 산업계에서 이 방법은 미국내 공장 제품에 대해 어떻게 하면 시민의 구매욕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능숙한 해결책이 되었다.[방스 파카르(Vance Packard), ≪비합법적인 설득≫(La Persuasion clandestine), Calmann-Lévy, Paris, 1958.]
프랑스에서도 19세기 이래 적지 않게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산업 제품의 도입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어 라이프스타일이 격변했다. 에밀 드 지라드당의 광고회사, 루이 압바스에 의한 통신사의 설립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하지만 시간 소비 제품이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문화산업(영화, 레코드), 특히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한 후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청취자 및 시청자들은 영화와 달리 스피커나 브라운관 앞에 혼자 있기 때문인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간 소비 제품을 통해서 개인의 행동은 대중의 행동으로 바뀌며 개인의 ‘내면’까지도 거뜬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시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의 모든 활동영역이 소비자에게 특유한 충동적이고 모방적인 행동으로 가득 채워진다. 세지나 껌처럼 교육이나 문화, 건강도 소비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개인 소비라는 환상이 욕구 불만이나 의혹, 파괴본능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신이 개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무심코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에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산업활동이 지구 전역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산업계는 규모의 경제의 대규모적인 실현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소비 행동의 기술적 관리와 균질화는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이다. 시간 소비 제품을 마구 사들이고 세상에 넓게 유포시키고 사람들의 시간을 사로잡는다. 포수로 간주된 시간에서 시청자가 생겨나고, 광고주에게 강매하는 상품도 생겨난다.
멜로디나 영화, 라디오, 방송 등 시간의 경과를 주축으로 하는 사물의 본질은 시간 속에 있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유출’이라고 부른 시간인 것이다. 시간은 바뀌고 지나간다. 우리의 의식은 시간적인 사물이 통합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사물도 나타나자마자 금새 사라진다. 1920년의 시민 라디오의 탄생, 1947년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방영 개시를 경계로,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이 우리의 의식의 시간에 딱 들어맞는 사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시간적인 사물은 의식의 시간과 겹쳐져 우리의 의식 속에도 집어넣어진다. 오늘날의 문화산업이 발송하는 것은 치약이나 소다, 구두나 자동차를 소비하는 시간을 대규모의 소비자의 의식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문화산업이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거의 100% 이런 상태이다.
의식이란 본질적으로 ‘자기’ 의식이며, 이 자기의식을 특이성이라고 한다. ‘나’라고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나만의 고유한 시간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만년에 자기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해명에 착수했다. 하지만 문화산업, 특히 텔레비전은 거대한 동기화(同期化) 장치가 되어서 자기를 손쉽게 쳐부숴버린다.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의 텔레비전 시청자가 어떤 실시간 중계 프로그램을 동시에 보고 있는 순간에, 세계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같은 하나의 시간 소비 제품이 미끄러져 들어간다. 매일 규칙적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AV 소비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사람들의 ‘의식’은 최종적으로는 동일한 ‘혼자’의 의식이된다.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닌 의식으로 되는 것이다. 가축떼의 무의식은 심층의 욕망을 해방시킨다. 그것을 제지하여 욕망의 심층과 연결시키는 것이 욕망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불가능하다. 욕망이 생겨나려면 ‘특이성’이 우선 필요하기 떄문이다.
마케팅 기술은 1940년대에 미국의 산업계에서 실행 단계에 들어갔으며 이후 더욱 더 고도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은 상징적 빈곤과 리비도적․정동적 빈곤이다. 리비도적․정동적 빈곤은 일찍이 내가 본원적 나르시시즘이라고 명명한 것의 상실을 초래한다.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장악하여 대중의 행동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지닌 장점이 있다. 탈산업사회론의 우화에는 그런 관점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개인을 집단과 대립시켜 파악하는 그릇된 의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몽동이 완벽하게 분명히 했던 것은 개인이란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며 존재를 향한 ‘생성’ 과정에 있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사태인 것이다. 개인이 마음의 수준에서 개인으로서 성립하려면 집단 속에서 개체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집단은 개체화 과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어떤 특이성이든 ‘전-개체적 저류’라고 시몽동이 부른 공통의 층으로부터 각각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전-개체적 저류’는 몇 세대에 걸쳐 경험이 축적된 것으로부터 생겨난 과거의 유산이다. 특이성은 이로부터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길러내지 않는 한, 그리고 심적인 개체가 그 저류를 서로 공유하여 자기에게 덧붙이면서 바뀌어가지 않는 한, 다음 세대에 그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 하지만 각각의 개체가 그 저류에 개별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면, 서로 공유한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개별적으로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렇게 관련된 방식은 타인과는 다른 특이한 것이어야만 한다. 사회 집단은 공통의 저류 속에서 자기를 재인식한다는 의미에서 독자적으로 길러낸다는 의미에서 통시적인 결합체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콘텐츠 산업은 공시성과 통시성의 공존을 모순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이퍼 싱크로나이제이션, 즉 초동기화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매스미디어 프로그램이 전-개체적 저류를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개체가 특이하게 그 내용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인류학자인 앙드레 르루와-구랑(Andre Leroi-Gourhan)이 사회․민족적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한 것은 오늘날 프로그램 표로 대체되었다. 나는 이웃들과 쏙 빼닮은 체험을 하며, 우리는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다.

나르시시즘의 붕괴
후설은 ‘나’를 ‘일차적 파악(rétentions primaires)’이라고 불렀지만, 시간적인 ‘유출’이 만들어내는 의식이다. ‘일차적 파악’이란 의식의 ‘지금’으로부터 의식이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의 선율 속에서 어떤 음에 잔향되어 있는 바로 직전의 소리는 나의 의식에 경과음으로서 나타난다. 먼저 울린 소리는 선율 속에 영향을 주며, 지금은 지금 속에서, 선율 속에서 유지된다. 바로 앞의 소리가 이어진 소리와 어떤 관계를 만들며, 음정을 만들어 내고, 이어진 음을 ‘구성’한다. 내가 ‘수용하고’, ‘만들어내는’ 다양한 현상과 마찬가지로 (내가 ‘연주’를 하기도 하고 ‘청취하는’ 선율이나 ‘소리를 내기도’ 하고 ‘귀로 듣는’ 문장, 또는 ‘행하기도’ 하며 사람에게서 ‘받아들이는’ 행위 등), 나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일차적 파악으로부터 성립된다.
의식에서의 파악은 ‘선택’을 한다. 나는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일차 파악은 관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선율(멜로디)에서 아르페지오로 연주한 소리의 연속에서 화성이나 음계가 생겨난다. 글 속의 의미론적(sémantiques)․통사론적(syntaxiques)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알기 쉽게 반복되는 것이 나타나는 흐름 속에서 의식은 각각의 파악에 고유한 방식으로 선택한다. 똑같은 선율을 두세 번 계속 들으면 어떻게 될까? 내 의식은 바로 그 선율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일종의 ‘여과’를 통해 선택하는 것이다. 이 여과 행위가 ‘이차 파악’이다. 이차 파악은 기억이 보존하는 일차 파악의 상기이며, 일차파악은 상기를 위한 경험의 토대를 만들어낸다.
의식은 일차 파악과 이차 파악에 의한 여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일차 파악과 이차 파악의 관계는 중층적으로 결정된다. 결정에 관련된 것이 삼차 파악이다. 삼차 파악이란 기억의 버팀목인 사물이나 기억 기술과 같은, 흔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진이나 녹음, 영화나 비디오, 또 하이퍼 산업 시대의 통제사회의 통제적인 인프라가 되는 디지털 기술이다.
삼차 파악은 예를 들어 알파벳 표기처럼 개인이 마음 내부와 집단 내부의 양쪽에서 개체화하는 과정에서 전-개체적인 저류에 도달하기 위한 버팀목이다. 인간 사회에는 예외없이 이러한 삼차 파악이 발견된다. 개체화를 방향짓는 것이 삼차 파악이다. 개체화란 상징적인 공유이며, 개인의 경험이 흔적에 외재하여, 처음으로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화된 경우, 삼차 파악은 통제를 위한 기술로 되며, 상징교환은 심대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생산하는 측과 소비하는 측에 어디까지든 하나의 선분이 그어지며, 다양한 의식 시간이 남김없이 초동기화(超同期化)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식 시간은 엇비슷한 이차 파악이 차지하고 있으며, 마침내 동일한 일차 파악을 선택하게 된다. 모든 것이 더 이상 크게 바뀌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일부러 자기에 대해 말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드물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된다. 집에 틀어 박혀 TV 화면 앞에 앉아 고독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여가라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은 화면을 통해 입수하게 되기에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위의 상징적 빈곤이 진행된 결과, 나르시시즘이 붕괴하여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는 무질서가 격증한다. 나르시시즘은 병리적 상태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나 우선 일차적으로는 마음, 욕망, 특이성의 기능을 조건짓는 메커니즘이다.[Ce terme s’applique « à la découverte du fait que le Moi lui aussi est investi de libido, en serait même le lieu d’origine et dans une certaine mesure en demeurerait le quartier général », Malaise dans la civilisation, op. cit.] 마케팅은 생산자 측이 제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을 질리지 않고 조장하며, 소비자 측의 욕구도 처음부터 생겨나 욕구의 재생산, 다양화, 계층화의 과정에 끊임없이 조정역할로서 관여한다. 이때 시스템의 기능의 윤활유가 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각각이 품고 있는 욕망의 발현인 ‘실존적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노동이나 소비의 리비도는 제3자가 지배하고 이끈다. 본래 노동이란 승화이며 현실 원리였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분업화된 노동에서는 승화의 쾌락이나 나르시시즘의 쾌락을 맛볼 기회는 감소하며, 타인에게 리비도를 빼앗긴 소비자가 소비에서 쾌락을 느낄 기회도 더군다나 줄어든다. 소비자는 반복강박으로 마비되며 욕망은 어찌할 수 없이 ‘쇠약’해진다.
통제사회는 규제사회이며[Pourparlers, op. cit. 참조.], AV기술이나 디지털 기술 등, 미적인 감성(aisthesis, 그리스어로 경험을 구성하는 감성을 뜻한다.)에 호소하는 기술을 구사하여 의식 시간이나 심신의 무의식을 제어한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는 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만이 전면에 나서게 되며, 하이퍼 대중을 조작하여 개인이 마음 속이나 사회에서 맛보는 감각의 경험을 대체해 버린다. 오늘날 경제 전쟁의 무기에서도 무대가 된 것은 상징적 차원이다. 초동기화 탓에 본원적 나르시시즘이나, 개인이 마음과 사회의 양방향에서 개체화해 가는 과정이 완전히 뿌리 뽑혀지며, 사람들의 과거는 균질화되고 그리하여 개체화의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일인칭 단수형의 ‘나’와 복수형인 ‘우리’의 구별은 상징적으로 취약한 무정형의 비인칭 ‘사람’ 속에서 애매하게 된다. 누구나 똑같은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마치 ‘우리’가 두 가지 층으로 나뉘어져 있듯이, 감성의 단층을 우리는 살아 있게 한다. 하지만 상황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의 모든 것’이 음울한 운명을 어찌할 수 없이 겪게 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20세기는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을 최적화한 시대였다. 생산 관리와 투자 관리에서는 정보 컴퓨터 기술이, 소비 관리 및 정치면도 포함한 사회행동 관리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각각 개발되었다. 오늘날 두 개의 영역은 서로 융합하고 있다. 소리 높여 주창되고 있는 것은 이미 ‘여가 사회’가 아니다. 개개의 인간의 욕구를 ‘개인화’하는 것이다. 일찍이 정신분석학자 펠리스 가타리는 개인이 더 한층 하위로 분할되어 가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이성은 인지과학이나 계측공학을 응용한 기술의 지배 하에서 특수성으로 바뀌어 간다.
이러한 기술은 ‘사용 내용 검색’(user profiling) 등 새로운 수법을 통해서,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파블로프의 방법론도 원용하여 교묘한 조건부여의 수법을 짜고 있다. 어떤 책의 독자에게,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를 알려 주면서 그 사람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검색 엔진이 검색 결과 화면의 맨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조회 빈도가 많은 사이트를 내거는 것도 사이트 조회수를 더 늘리려는, 사이트 조회율을 고도로 높이는 것을 촉진하는 기술이 되었다.

특이성의 문제
산업 자동화가 생산 공정의 기억 기술의 중추를 차지하게 된 오늘날, 동종의 디지털 기기가 동일한 규격으로 생산라인의 모든 장면을 관리하게 되었다. 마이크로컴퓨터 방식의 제품도, 통신판매로 고객과 공장을 직접 연결하여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원격 조작에 의한 공장 생산 관리도, 언제 어디서든 같은 기기, 같은 규격이다. 디지털 기기는 마케팅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 소비의 조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벤야민이 상상한 것과는 반대로 하이퍼 대중의 출현과 함께 일어난 것은 대중의 나르시시즘의 광범위한 전개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과 집단의 나르시시즘의 대규모 붕괴이다. 이러한 사태가 의미하는 것은 단적으로 “예외자의 파괴”이다. 본원적 나르시시즘을 일소한 결과 도처에서 무리(떼)의 생활방식이 횡행하고 있다.
개인이 마음의 수준과 집단 내의 쌍방향에서 개체화하는 과정에서는 집단의 상상력이나 개체의 다양한 역사가 서로 묶이게 된다. 시간 소비 제품은 대중 규격을 대리품으로서 강요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의 실천의 특이성이나 개체의 실천에 머무는 예외적인 성격이 조금씩 축소되어 간다. 또한 예외도 하나의 규칙이다. 다만 입으로는 아무 것도 언표하지 않는 규칙인 것이다. 예외는 변칙적인 장면과 조우할 때 처음으로 예외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즉 매뉴얼로 만들 수도, 예측도 할 수 없다. 세부적 차이에는 눈을 감고 무엇에든 대응할 수 있는 규칙을 행하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예외자를 신으로 귀속시켰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신이야말로 특이한 것은 서로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규칙 그 자체이며, 규칙을 절대적으로 초월한 존재였다. 그런데 마케팅 덕분에 특이성은 핵심이 빠져 버려, 바라는 대로 비교나 분류할 수 있는, 내용물이 텅 비어 있는 특수성으로 바뀌어 버렸다. 소비의 하이퍼 대중화와 소비 기호의 분화를 통해 리비도 에너지를 농락했던 지금에서는 이제 완전히 다루기 쉬운 존재가 되어 버렷다.
여기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리비도 경제와는 완전히 반대의 사태이다. 원래 특이성, 예외자만이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게 예외라고 비치는 것만이 나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범용성은 욕망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강박만이 범용성을 지향한다. 마음은 에로스와 죽음 충동이라는 서로 끊임없이 뒤섞이는 두 가지 경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산업과 마케팅은 소비 욕망의 발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 충동을 강하게 하고, 반복강박적인 상황을 만들어내자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문화산업과 마케팅은 삶의 욕망에 있어서 큰 장벽이 된다.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에서의 소비 행동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과정은 자멸적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표현을 따르자면 자기 면역 이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사물의 특이성을 내가 욕망하는 것은 그 물건이 나라는 특이성을 거울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아직 알지 못하는, 나의 특이성이 무엇인지를 사물이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다. 자본이 우리들의 행동을 하이퍼 매스화한다면, 자본은 당연히 욕망의 하이퍼 매스화를 목표로 할 것이다. 개인도 어쩔 수 없이 무리가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논리에서 보면, 예외자는 전적으로 타도해야 할 적이 될 것이다. 이 점은 산업 민주주의 덕분에 가축 사회가 출현할 것이라고 갈파한 니체가 이미 예측하고 있던 것이다. 산업 사회의 정치구조가 품은 진정한 곤란인 것이다. 예외자에 대한 욕망을 투영하는 스크린을 엄중한 관리 하에 두었을 때 타나토스[죽음]의 논리, 즉 엔트로피의 그림자가 세계를 넓게 에워싸기 시작한다. 타나토스란 질서가 무질서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나토스는 열반의 상태이며, 모든 것이 평준화로 향한다. 예외자가 ‘욕망의 욕망하는’ 대상인 한, 타나토스는 모든 예외자를 모조리 부정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이상에서 지적한 문제의 근본부분이 프랑스가 주창하는 ‘문화적 예외’[WTO 창설에 도달한 우루과이 라운드 이래, 문화산업을 무역 자유화의 예외로 할 것을 주창해 온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가리킨다.] 논의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조치를 서둘러 강구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천박한 정치구호 때문에 초점을 희미해질 뿐이다. 이 논의의 주창자들은 예외라는 문제를 좁은 시야에서만 고찰할 뿐, 하이퍼 산업사회의 진전이나 그 귀결인 상징적 빈곤으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과제에 제대로 임하려는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예외를 둘러싼 문제는 내일의 지구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예외’라는 논의는 예외 조치를 국제통상 협정의 틀에서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이러저러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지역이나 산업 부문, ‘이익 단체’의 문제만을 채택할 뿐, 본질적인 문제에는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다.
이것은 문화부가 관할하는 이른바 ‘문화’의 미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이퍼 산업사회는 일상생활의 존재방식에 아주 상세하게 지시를 내리며, 일상생활을 모든 측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산업사회의 생태계가 품은 최대의 불안 요인이 있다[또한 ≪우연의 철학. 엘리 뒤렝과의 대화≫(Philosopher par accident. Entretiens avec Elie During), Galilée, Paris, 2004을 참조]. 인간 집단이 전에 없었던 규모의 대량 파괴를 초래하는 방법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인류의 정신이나 지성, 정동이나 감성은 전면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리비도 붕괴의 원인인 혼란은 정치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가들은 자신들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서 정치에 마케팅 기술을 도입했다. 그 점에서 투표자들은 다른 상품에 싫증을 내듯이 깊은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시민과 시민 대표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눈을 떠야 한다. 특이성의 정치가 지닌 문제의 비중은 지금 결정적인 것으로 되었다. 특이성의 정치가 없으면 정치에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특이성의 정치만이 극우 내셔널리즘이나 모든 원리주의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 장래의 하이퍼 산업사회에 욕망을 복권시키는 것. 혼란의 확대를 미리 저지하는 것. 이것을 위해서는 정치 스스로가 욕망을 솔선하여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3월 28일의 통일지방선거에서 현정권에 반대표를 던지고, 어떤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정당에게 비판의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은 리비도 경제의 전면적인 파괴를 우려하여 전혀 충족될 수 없는 정치적 욕망을 갈망했던 사람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말했던 ‘우애’는 리비도 경제라는 나무에서 향긋하고 잘 익은 과실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2002년 4월 21일의 대통령 선거부터 2004년 3월 28일의 통일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진 운동에서는 정치계급 전체가 상징적․심리적 빈곤, 그리고 불가피하게 정치적 빈곤을 상대로 하여 단호하게 싸우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특히 문화와 연구에 관한 문제에서, 정부가 괴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화는 부차적인 정치적 문제 등이 결코 아니며, 바야흐로 정치의 진수이다. 리비도와 마찬가지로 문화야말로 산업이 궁극적으로 빼앗으려고 하는 요새이다. 때문에 정치는 무엇보다도 우선 문화의 정치가 아니면 안 된다. 이것은 문화부가 문화로 생계를 영위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할 수 있는가 아닌가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하이퍼 산업자본주의는 사회조직이라는 개체가 마음과 집단의 양 측면에서 개체화하기 위한 기반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해 버린다. 문화의 정치는 그 파괴에 대해서 근본적인 비판을 들이댄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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