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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9. 인간학 기계

 

 

Homo alalus primigenius Haeckelii

(헥켈의 말을 갖지 못한, 일찍 태어난 인간 )

한스 바이힝거(Hans Vaihinger)

 

1899년 예나 대학의 교수인 에른스트 헥켈은 슈투트가르트의 크뢰너 출판사에서 세계의 수수께끼(Die Welträtsel)를 출판했다. 이 책은 모든 이원론과 형이상학에 맞서 철학적 진리 탐구와 자연과학의 진보를 화해시키려고 꾀했다. 이 책이 다루는 문제들의 전문성과 폭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기간에 15만부 이상이 팔리면서 이른바 과학적 진보주의의 복음서[성서]가 됐다. 책 제목은 에밀 뒤 보아-레이몽이 이보다 수년전에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에서 했던 강연에 대한 아이러니한 암시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이 강연에서 저명한 과학자는 일곱 개의 세계[과학]의 수수께끼를 열거했는데, 그 중 세 가지를 초월적이고 해결 불가능한 수수께끼”, 다른 세 가지를 아직 해결되지 못했으나 해결할 수 있는 수수께끼,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를 불확실한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뒤 보아-레이몽의 처음 세 개의 수수께끼를 독자적인 실체론[물질론]에 의해 말끔하게 해소했다고 믿은 헥켈은 책의 5장에서 인간의 기원이라는 문제 중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헥켈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으나 해결 가능한 뒤 보아-레이몽의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든 인간의 기원의 문제 자체에 결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and that in some ways encompasses Du Bois-Reymond’s three solvable, though not yet solved, problems. 그리고 여기서도 헥켈은 다윈의 진화론을 철저하고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의문을 명확하게 해결했다고[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헥켈은 이미 토머스 헉슬리인간이 원숭이의 자손이라는 이론이 어떻게 다윈주의의 필연적 귀결인가를 보여줬다고 설명한다(Haeckel, 37). 그러나 바로 이 확신은 비교해부학의 결과는 물론이고 고생물학적 연구의 발굴에 기초해 인간의 진화사를 재구축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부과한다[그러나 바로 이 확신 탓에 곤란한 과제가 생기게 된다. , 비교해부학의 연구 성과와 마찬가지로 고생물학 연구의 발굴결과에 기초해 인간 진화의 역사를 재구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헥켈은 1874년의 인류발생학(Anthropogenie)에서 이미 이 과제에 전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실루리아기의 어류에서 시작되고, 3기 중신세Miocene의 인원(人猿)manapes이나 유인원(類人猿)Anthropomorphs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를 재구축했다. 그러나 헥켈이 특별히 기여한[진력했던] 그가 자랑하듯 얘기한 것 은 유인원(類人猿)anthropoid apes(혹은 인원man-apes)에서 인간으로의 이행의 한 형태로서 특별한 존재를, 즉 그가 원인ape-man(Affenmensch)’, 혹은 언어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피테칸트로아스 알랄루스Pithecanthropus alalus[언어를 갖지 못한 원숭이와 비슷한 인간]라고 부른 특별한 존재를 가정했다는 것이다.

 

3기 초반(시신세)배반포 유류Placentals에서부터 영장목의 최초 선조인 반원(半猿, semiscimmie)이 파생됐다. 3기 중신세에 접어들면, 이 반원에서 진화해 본래적 의미의 원숭이가 등장했다. 보다 정확을 기한다면, 협비류(狭鼻類)의 원숭이로부터, 우선 처음으로 개코 원숭이dog-apes(긴꼬리 원숭이Cynopitheci), 그 다음에는 인원man-apes(人猿)(유인원Anthropomorphs)이 생겨났다. 이 가장 나중의 유인원의 혈통에서 선세기(Pliocene period)의 시기에, 언어를 갖지 못한 원인(猿人)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가 파생되며, 그리고 결국에는 이 원인으로부터 말을 하는 인간이 탄생한다(Ibid.)


이런 피테칸트로푸스 또는 원인ape-man이 실존했다는 것은 1874년의 시점에서는 아직 단순한 가설에 불과했지만, 1891년에 네덜란드의 군의사 유진 뒤보아가 자바섬에서 현생 인류의 것과 유사한 두개골과 대퇴골의 뼛조각[두개골의 뼛조각과 현생 인류의 것과 유사한 대퇴골]을 발견했을 때 현실reality이 됐다. 그리고 헥켈을 크게 만족시켰던 것은 (헥켈의 열광적인 애독자였던) 뒤보아가 이때 그 뼈의 주된 존재에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직립원인]이라고 명명했던baptized 것이다. 헥켈은 단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확언했다. “이것이야말로 영장목(霊長目)의 진화[]적 연쇄에 있어서 간절히 원했던, 부족하다고 가정됐던 잃어버린 고리이다. 이것은 열등한 협비류(狭鼻類) 원숭이로부터 가장 고도로 진화된 인간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고 쭉 뻗어 있다is in truth the much-sought ‘missing link,’ supposed to be wanting in the evolutionary chain of the primates, which stretches unbroken from the lowest Catarrhines to the highest developed man”(Ibid., 39).

그러나 말을 갖지 못한 원인[sprachloser Urmensch]이라는 이 관념 이것도 헥켈이 정의한 것인데 은 그가 전혀 깨닫지[예상치] 못한 듯한 몇 가지 아포리아를 수반[내포]했다.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이행은,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의 발굴자료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둘 중 어느 하나와는[그 어떤 것과도] 아무 관계도 없는 요소, 그 대신 인간을 규정하는 특징[인간의 상징]이라며 전제되었던 요소, 즉 언어라는 요소를 빼버림으로써 산출됐다. 스스로를 언어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말하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자 아직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서[이미 인간인 것이든,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든] 자기 자신의 바깥에 자신의 고유한 침묵성을 두고 있다.

여기서 얘기는, 근대과학의 방법을 유대교 연구에 응용하려 한 유대주의의 과학[Wissenschaft des Judentums]을 대표하는 마지막 후예 중 한 명이기도 한 하이만 슈타인탈이라는 언어학자로 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말을 갖지 못한 사람(Homo alalus)’이라는 헥켈의 이론,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근대의 인간학적 기계라고 부르는 이론에 내포된[숨어 있는] 아포리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원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서 슈타인탈은 헥켈보다 훨씬 몇 년 전에, 인류의 전언어적 단계라는 관념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개진했다. 슈타인탈은 언어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무렵에 인간의 지각적 생명[지각에 의해서만 영위된 인간의 생명]의 단계를 상상[상정]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는 이 단계를 동물의 지각적 생명[지각에 의해서만 영위된 동물의 생명]의 단계와 비교했다. 그러고 나서 슈타인탈은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지각적 생명에서 샘솟아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동물의 지각적 생명에서는 그럴 수 없었는지를 보여주려고[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그가 불과 몇 년 후에 완벽하게 깨달았던[지겨울 정도로 되새기게 됐던] 하나의 아포리아가 출현했다. 슈타인탈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이 순수하게 가설적인 인간의 정신 단계를 동물의 그것과 비교하고, 대체로 모든 면에 걸쳐, 전자 속에서 힘의 과잉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인간 정신이 이 과잉을 언어의 창출에 할당한 채로 내버려뒀다. 이리하여 우리는 왜 언어가 인간 정신과 그 지각에서 비롯되는지, 왜 동물의 그것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 의한 인간 정신 및 동물의 정신의 서술에 있어서, 우리는 언어를 도외시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언어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우선 제시해야 했던 것은 언어가 형성하는 정신의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였다. 언어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 힘은, 언어에서 유래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에 선행하는 인간단계를 상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인간단계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사실, 언어는 인간 존재에 있어서 매우 필연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며, 언어를 빼고서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하는 것으로서 고찰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갖고 있거나, 혹은 단순히 갖고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한쪽은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허구를 정당화하는 것인데 언어를, 인간 정신 속에 이미 생득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으로서 고찰할 수도 없다. 오히려 아직 충분히 의식되고 있지 않지만, 언어는 이미 인간의 생산물이다. 언어는, 정신의 한 발전 단계이며, 그것에 선행하는 선행단계로부터 연역될 필요가 있다. 언어와 더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 활동이 시작된다. 언어는 동물계로부터 인간계로 통하는 가교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성으로부터 인간성에 이르기까지 언어를 통해서 진보를 걸었던 것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뿐이었다는 근거를, 동물과 동물인을 비교함으로써 설명하고 싶다고 원했던 것이다. 이 비교에 의해 판명된 것은, 우리가 상상하려 한 인간, 즉 언어를 갖지 못한 인간이란, 동물인[Tier-Mensch]이며, 인간-짐승[Menschentier]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래도 이것은 이미 인간종이며, 동물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Steinthal 1881, 355-56).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하는 것은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의 정신물리학적[심적] 구조 속에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자연적 소여가 아니다natural given already inherent in the psychophysical structure of man. 오히려 언어는 역사적 산물이다. 따라서 그런 것으로서의 언어는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고유하게properly 할당[배정]될 수 없다. 만일 이 요소가 사상(捨象)된다면, 동물에서 인간으로 이행하는 가교로서 기능하게 될 말하지 않는nonspeaking 인간 바로 호모 알랄루스(Homo alalus[말을 갖지 못한 인간]) 을 상상하지 않는 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없어질[무효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말을 갖지 못한 인간이 언어가 드리우는 그림자, 말을 하는 인간의 전제조건일 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오히려 말을 하는 인간에 의해 항상 인간의 동물화(헥켈의 원인ape-man과 같은 동물인animal-man) 혹은 동물의 인간화(인원man-ape)만을 [이 둘 중 하나만을] 입수한다obtain[추출하는 것이다]. 동물-인간과 인간-동물은 두 측면들 중 어느 하나에 의해서도 수리될 수 없는 단일한 균열[단절]fracture의 두 측면들이다.

몇년 후, 슈타인탈은 그 당시 과학 논쟁과 철학 논쟁의 중심부에[소용돌이에] 있던 다윈과 헥켈의 테제들을 배운 후에, 자신의 이론으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의 가설에 내포된[암시된] 모순을 완벽하게 깨닫는다. 슈타인탈이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은 왜 동물이 아니라 인간만이 언어를 창출하는가였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어떻게 동물에서 기원하는가를 이해하는 것과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직관이라는 전 언어적 단계는 하나일 수 있을 뿐, 이중적일 수가 없다. 그리고 직관은 동물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다를 수 없다. 만약 동물과 인간에게서 직관이 다르다면, 즉 만약 인간이 동물보다 자연적으로 고등하다면[처음부터 원숭이보다 고등하다면], 인간의 기원은 언어의 기원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기원은 동물의 직관인 저등한 형태의 직관에서 기원하는 인간의 고등한 직관의 형식의 기원과 일치할 것이다. 나는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이 기원을 전제로 삼았다. , 이런 인간적 특성을 지닌 인간은 사실상 [신에 의한] 창조를 통해 내게 주어진 것이며, 그리하여 인간에게서 언어의 기원을 발견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는 언어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 하나의 동일한 것이라는 나의 전제와 모순을 범하게 됐다. 나는 먼저 인간을 설정하고 그 다음으로 인간이 언어를 산출하게 했던 것이다(Steinthal 1877, 303).


슈타인탈이 여기서 감지하는 모순은 우리 문화에서 고대와 근대적인 그 두 개의 변이들에서[고금의 이중주를 확대 전개하면서] 작동하고 있는 인간학 기계를 정의하는 것과 똑같은 모순이다. 인간/동물, 인간/비인간의 대립을 통한 인간의 산출이 여기에서[오늘날의 문화에서] 관건인 한에서, 인간학 기계는 필연적으로 배제(항상 이미 포획이기도 하다)와 포함(항상 이미 배제이기도 하다)에 의해 기능한다. 실제로 인간이 매번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학 기계는 일종의 예외상태를, 즉 외부가 내부의 배제에 다름 아니고 내부가 다시 외부의 배제일 뿐인 미결정의 지대a zone of indeterminacy를 현실적으로 산출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근대인들의 인간학적 기계를 갖고 있다. 우리가 봤듯이, 이 기계는 이미 인간 존재인 것을 (아직) 인간이지 않은 것으로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기능한다. , 인간을 동물화함으로써, 인간 내부에서 비인간적인 것인 호모 알랄루스(Homo alalus)’ 혹은 원인ape-man을 분리함으로써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영역을 몇십 년 전으로 돌려놓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런 무해한 고생물학적 발굴 자료를 대신해 우리는 유대인을, 달리 말해서 인간 내부에서 산출된 비인간non-man, 혹은 새로운 사체(新死體, néomort)나 과잉혼수상태, 즉 인간 신체 내부에서 분리된 동물을 손에 넣을 것이다.

초창기[고대인의] 시대의 기계는 정확하게 이와 대칭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만일 근대인들의 기계에서 외부가 내부의 배제를 통해 산출되고 비인간이 인간을 동물화함으로써 산출된다면, 여기서 내부는 외부의 포함을 통해 획득되며, 비인간non-man은 동물의 인간화에 의해 산출된다. , 인원man-ape, ‘야생아enfant sauvage혹은 호모 페루스Homo ferus’, 하지만 또한 무엇보다 우선, 인간의 형태를 한 동물의 형상들로서의 노예, 야만인, 이방인들이 그렇다. [고대와 근대의] 두 기계는 그 중심에 미식별 지대a zone of indifference를 설정함으로써만 기능한다. 이 중심 안에서는 이미 잠재적으로 현전하고virtually present 있기 때문에 항상 결여하고 있는 잃어버린 고리[상실된 환경]로서 인간과 동물, 인간과 비인간[인간이 아닌 것]nonman, 말하는 존재와 살아 있는 존재 사이의 분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든 예외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이 미식별 지대는 사실상 완벽하게 텅 비어 있으며, 거기서 생겨야 마땅한 진정으로 인간적인 존재는 끊임없이 최신의 것으로 갱신되는 결정의 장소일 뿐으로, 이 장소에서는 [인간적인 것을 결정하는] 간극caesurae과 그 재분절화가 항상 새롭게 탈구되며dislocated 자리바꿈된다displaced. 하지만 그렇게 획득될 수 있는 것은 동물적인 생명도 인간적인 생명도 아니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된 생명, 즉 벌거벗은 생명뿐이다.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이런 극단적 형상[벌거벗은 생명]과 접하면, 두 개의 기계들(혹은 똑같은 기계의 두 개의 변종들)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거나 더 효과적인지를 묻는 것 아니 오히려 둘 중 어떤 것이 덜 치명적이고 피비린내가 덜 나는지를 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런 기계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고, 결국에는 이런 기계들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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